남북 하나된 시드니 올림픽 총감독으로 참가

새천년 첫 올림픽이었던 지난해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장면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에 벅찬 기립박수의 감격을 안겨 주었다.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힘차게 흔들며 97번째로 입장한 '코리아'는 남북한이 하나된 모습을, 스포츠를 통해 통일의 첫걸음을 내디뎠음을 전세계에 알렸다. 남북한 선수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모습은 이념이나 정치적 이슈보다도 민족 화해와 단결의 의지가 훨씬 강력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북한 선수들의 손을 마주 잡게 한 올림픽. 긴장감이 흐르던 한반도에 훈풍을 몰아주었던 시드니 올림픽에서 총감독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이학래 교수이다.

"시드니 올림픽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선수들이 손을 잡고 입장하는 장관을 연출했지요. 이후 남북 체육 교류에 있어 가시적인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체육을 통한 남북한 화해의 분위기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이 의미 깊습니다"

남북한 체육 교류의 교두보 마련

이 교수는 90년도와 91년도에 남북체육회담의 대표로 평양을 다녀왔다. 이 교수가 참가한 체육회담 대표팀이 최초로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성사시켰다. 이 때의 벅찬 감격을 잊을 수 없는 이 교수는 통일 체육을 통해 평화적인 조국 통일에 기여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이 민족통일체육연구원의 창립이다.

남북정상 회담 이후 사회·경제적으로는 남북간 교류가 계속되어 왔으나, 체육 교류는 오히려 다소 부진한 편이었다. 이 교수는 '남북간 화해, 협력을 통한 평화적 분위기 조성에는 무엇보다 동질성 회복이 가장 중요하며, 이러한 역할을 스포츠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간 체육 교류는 평화정착의 밑거름이 되므로, 남북의 교류는 체육인 교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그의 생각은 아직은 구상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남북간 체육시설을 공유하는 방안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남과 북에 각자 지어진 체육시설을 공유하여, 경기는 물론 전지 훈련을 위한 시설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거지요. 또 비무장지대 내에 통일 체육 공원을 조성할 것도 계획하고 있어요. 선수들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 캠프장으로 응용도 해보고, 선수 합숙소로 사용할 수도 있지요, 여기서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할 경우 남북한이 공유하는 평화의 상징적 공간이 되도록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의 상징적 요새로 알려진 비무장 지대에서, 남북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합숙을 하고 늦은 밤이면 마당에 모닥불이라도 피워 놓고 마주 앉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정치적 논리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에 의한 통일은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야 가능할 터이다.

이 교수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두대간에 동계스포츠 타운을 건설하여 남북간 스포츠의 발전은 물론이고, 동계스포츠를 위해 유럽 등지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동남아 스포츠 자원을 끌어 모을 수 있으리라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뿐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관광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일에도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 모든 노력이 선진화된 스포츠 정책을 낳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나라의 스포츠 정책은 지나치게 금메달이 가능한 종목만을 집중적으로 양산해 엘리트 스포츠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사실 88 서울 올림픽 때는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 4위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는 장기적인 스포츠 발전에 있어서는 오히려 위해를 끼치는 정책이다.

이 교수는 '국민의 문화체육수준을 함께 향상하는 방향으로 스포츠 정책이 개편되어야 한다'고 본다. 선진국처럼 장기적인 청사진 아래 스포츠 저변이 확대되어 언제 어디서든지 생활체육 활동이 가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위주의 엘리트 육성 체제가 클럽 중심의 생활체육 활성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생활체육은 정부에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소홀히 취급해 왔던 부분이지요"

이 교수가 총감독이었던 시드니 올림픽은 동시 입장을 통해 남북간 체육 교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주소를 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대회이기도 했다.

"시드니 올림픽은 엘리트 스포츠에서 국민생활체육의 정책으로 전이되는 분기점이 되는 대회였습니다. 엘리트 스포츠의 경기력을 평가하는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금 12개로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도 금 8개를 따 종합 12위에 머물렀습니다. 금메달을 딴 종목 역시 국가 정책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레슬링, 유도, 배드민턴, 탁구, 여자 하키 등의 경기에서는 하위권의 성적이 속출했습니다. 금 8개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4개를 획득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합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올림픽 총감독의 입장에서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다들 8개의 금메달이 가져다 준 환희의 순간만을 기억하고, 금메달의 영광에만 휘둘려 있을 때에도 과오를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이 교수의 말은 어느 때보다도 진정하게 다가온다.

한국체육학회 위상 국제적 수준으로 높여

이 교수는 88 서울 올림픽 때는 IOC 위원장에 이어 심판과 임원을 대표하는 선서를 했다. 스스로도 경기인 출신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의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이 교수의 이러한 노고를 인정하여 정부는 국무총리 표창(1986년), 대통령 표창(1987년), 대한민국 체육상(1987년), 체육훈장 백마장(1990년)을 수여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체육학회의 학회장으로서 그동안 국내 수준에 머물렀던 학회의 학술대회를 명실상부한 국제적 체육, 스포츠 관련 학술대회로 한 단계 위상을 높였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한국체육학회 학회장을 맡게 되어, 이러한 학회의 학술대회를 국내 수준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대시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유럽과 미주 등은 대륙별 체육학회가 존재하고 대륙별 학회간의 국제적 교류도 활발한데, 아시아에는 그러한 조직체가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아시아 체육학회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는 한국체육학회를 통해 '21세기에 예견되는 스포츠 현상의 복잡성과 다양성에 대해 조명함으로써 바람직한 스포츠의 역할과 기능을 제시'하였으며, '한국체육학회가 미래 사회의 체육 및 스포츠 관련 학문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욕적인 포부를 밝혔다.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 최선 다한다는 신조로 살아

이 교수 방에는 오래된 흑백 사진 하나가 낡은 나무 액자에 끼워져 있다. 사진 속의 청년, 이학래 교수는 하얀 유도복을 입고 커다란 우승컵을 든 채 기쁨을 감추고 서 있다.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땀과 함성으로 가득 찼을 이 교수의 선수 시절이 그대로 내비치는 것만 같다.

"64년 당시 유도 선수로 활동할 때의 사진입니다. 무제한급에서 우승을 했었지요. 당시에 저는 80kg급이었는데 무제한급에서 130kg급 선수를 이겼습니다. 그 때의 벅찬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승의 영광에 도취된 선수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 교수 역시 이기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수 생활을 할 시절, 그는 매번 이번 경기가 결승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했다. 상대가 아무리 약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허점을 노린 상대에게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는 경기에 임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같은 충고의 말을 남긴다.

"선수 생활이라는 것이 언뜻 보면 화려하고 재미있어 보이지만, 그 과정은 사실 엄청난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것에 모든 젊음을 바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능한, 아주 길고도 외로운 싸움입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고, 경기에 임하면서 다듬어진 정신력 때문일까. 정년을 3년 앞둔 노교수 답지 않게 이 교수는 건장하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도 지치는 기색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젊은 정신과 젊은 마음을 지닌 이 교수. 통일 체육을 향한 발걸음을 오늘도 내딛는다.

학력 및 경력사항

학력
1961 - 1965 한양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경제학사)
1965 - 1967 한양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 (체육학사)
1967 - 1969 프랑스 Universite de Toulouse 체육학 Diplome Superieur 취득
1974 - 1976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학과 (교육학석사)
1980 - 1986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문학박사)

경력사항 <교육>
1971 - 현재 한양대학교 체육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1982 - 1983 브라질 Saopaulo 대학교 체육대학 교환교수
1984 - 1986 한양대학교 예·체능대학 학장
1992 - 1997 한양대학교 학생처장
1995 - 1996 전국대학 학생처장협의회 회장
1997 - 1999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장
1998 - 1999 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 수석부회장

경력사항 <체육계 활동>
1977 - 1982 서울특별시 체육회 운영이사
1981 - 1983 한국체육학회 부회장
1985 - 1988 '86 - '88 올림픽대회 스포츠과학 학술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겸 체육사 분과위원장
1985 - 1987 한국사회체육진흥회 운영위원 겸 자문교수
1988 '88 올림픽대회 개막식 심판 및 임원 대표 선서
1988 '88 올림픽대회 경기전문위원
1989 - 1993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1989 - 1993 남북체육회담 차석대표
1989 - 1997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상임위원
1989 - 1992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남자감독
1990 남북통일축구대회 고문 - 평양방문
1991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고문(평양방문)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섭외임원
1993 - 현재 대한체육회 이사
1993 버팔로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2000 시드니 올림픽 한국선수단 총감독

경력사항 <학회 활동>
1997 - 현재 서울특별시 체육회 이사
1997 - 현재 국제체육학회 비교체육학위원회 위원장
1999 - 현재 한국체육학회 회장
1999 - 현재 한국체육단체연합 대표
2000 - 현재 아시아체육학회 회장

수상경력
1982. 한양대학교 교수학술연구상 수상
1986. 국무총리 표창(체육공로)
1987. 대통령 표창(체육공로)
1987. 대한민국 체육상(연구부문)
1990. 체육훈장 백마장

논문 및 저서
논문 : 국내 29편, 국외 1편
저서 : 14권 (공저 포함)

대표 저서 : 한국근대체육사연구(1990, 지식산업사)
          한국유도발달사(1990, 보경분화사)
          한국체육사(1994, 지식산업사)
          북한의 체육(1995, 사람과 사람)
          현대사회의 건강과 운동(1995, 21세기 교육사)
          현대사회와 스포츠(1998, 사람과 사람)
          한국체육백년사(2000, 한국체육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