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음악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대중음악도 아닌 순수음악을, 그것도 첼로리스트 장한나나 소프라노 조수미씨 같이 노래나 악기로서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악보로서 그 존재를 알리는 작곡가의 삶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작곡가 하면 비발디, 모차르트, 베토벤이 떠오르고 우리나라로 보면 안익태나 윤이상, 백병동 선생 정도가 생각나는 상황에서 현대 작곡가의 울타리에 들어가려 문을 두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직한 방음문을 열기가 저어스러워 한참을 망설이다 작곡가의 방에 들어서자 '2002 아시아현대음악제' 포스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이스라엘, 베트남 등 10여 개 나라의 당대 음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는 호평을 얻은 음악제였다. 개막음악회에서 첼로리스트 장한나가 윤이상의 대표작인 첼로협주곡을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아시아 초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음악제를 준비한 장본인이 바로 서경선 교수이다.

여성작곡가들의 목소리 대변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긍지를 가지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3번의 행사를 모두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한국회장으로, 집행위원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했죠. 다행스럽게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일생 중 가장 보람 있고 성공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어요.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서 교수가 작곡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50여 년의 삶은 여성작곡가들의 토대를 구축하는 활동과도 맥이 닿아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창단 멤버이기도 한 서 교수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할 당시에는 여성이 6명 중 2명밖에 없었고 발표를 할 기회나 직업을 가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20주년 기념음악제를 하기도 했던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서 교수는 남성 일색이던 작곡계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앞장서 왔다.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면 유럽의 백인 집안에서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여성들의 입지는 세계적으로 미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음악계의 '브리태니커' 즉, 최고의 권위로 꼽히는 '그로브 음악사전'에 당당하게 등재된 것은 서 교수의 작곡가적 능력과 세계 음악사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한국에는 전업 작곡가가 한 명도 없다?

서 교수의 작곡가에 대한 애정은 비단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 외에도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창악회 심의 위원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서 교수는 순수 창작으로 작품활동을 위한 경비를 충당하고 생계까지 이어가려면 음반 판매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현실에 대한 근심이 크다. 전업작곡가가 한국에 한 명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곡가들은 레슨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대기업 차원의 후원이 절실하다는 서 교수의 사자후는 구구절절하다 못해 비장함마저 서려있다.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같은 극장도 매표수입으로는 전혀 운영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왕족과 귀족이 후원자였듯이 산업사회에서는 재벌이 후원자가 돼 주어야 합니다. 폴란드가 공산국가일 때는 작곡가 동맹 멤버가 되면 국가에 기금을 요청해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국가차원에서 문예진흥원에서 작품 하나에 7,80만원 정도 지원을 해주긴 하지만 그것으론 어림도 없지요. 고급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몇몇 사람이 후원해줄 수도 있지만 한계가 많지요"

한양대를 창작음악의 산실로 만들겠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작곡가들이 창작생활을 안정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하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타전공자들에 비해 작곡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연구활동이 곧 작품을 쓰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악기 전공자들을 만날 수 있고 현대음악에 대해 마음이 맞는 사람과 모여서 일을 하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본교는 국악과가 있어 동양과 서양음악을 접목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 교수가 대학에 갖는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서 교수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뛰어든 것이 본교에 '공연예술대학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각종 동서양 악기를 전공하는 교수와 작곡 그리고 연극영화, 무용과까지 세 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본교는 우수한 공연을 창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계획이 잠시 보류됐지만 본교 음대가 발전할 수 있는 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중학교 때 음악에 깊이 심취해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굳히게 됐다는 서 교수에게는 교육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상주하는 현대음악 앙상블로 을 만드는 것.

"미국의 뉴욕대는 매년 5월에 현대음악제를 세미나와 함께 개최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제이지요.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습니다. 매년 한 번 일주일 정도 현대음악제를 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양대 하면 창작음악의 중심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정년이 5년 반정도 남았는데 퇴임할 즈음에 사재를 털어서라도 이런 창작음악제를 지원하는 기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서 교수의 인생철학이 있다면 '온유한 것이 이긴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절대 화나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수많은 음악제를 성사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고 말하는 서 교수에게 은은한 난초꽃 향을 느끼며 취재수첩을 덮는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서경선 교수 학력 및 약력

서경선 교수는 1964년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2년 미국 Univ.of Massachusetts에서 음악석사를 받은 서 교수는 이화여중고, 서울예고 교사,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본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창악회 및 한국음협이사, 아시아작곡가연맹 본부이사, 한국여성작곡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서 교수는 현재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한국여성작곡가회 및 창악회 심의 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는 국내작품발표 18편, 국외작품발표 10회, 국내논문 3편, 국외논문 2편이 있으며 국내에 3권의 저서가 있다. 1991년 한국 음악상(창작 부문), 96년 백남학술상 (인문, 예술분야), 98년 대한민국 작곡상(실내악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