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라면 누구나 한번쯤 교내에서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둑판 모양으로 정확히 구획이 나뉜 안산캠퍼스와 달리 서울캠퍼스의 구조는 미로같이 복잡하다. 때문에 학교를 찾은 외부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 갈래로 난 길 때문에 캠퍼스 안에서 친구와 서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며 진땀을 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위클리한양이 나섰다. ‘목월길’에서 ‘폭풍의 언덕’까지, 한양인이 즐겨 쓰는, 혹은 잘 알지 못했던 서울캠퍼스 지명을 총정리 했다.

한양의 명소, 한양의 지명

특정 지명이 한양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것은 그곳이 곧 한양의 명소라는 뜻이기도 하다. 교내에서 만남의 장소나 이정표로 가장 사랑받는 곳은 애지문, 한마당, 노천극장, 행원파크 등이 있다. 지난 2002년 개통된 국내 유일의 캠퍼스 내 지하철 출구인 ‘애지문’은 매일 수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한양의 문(門)이다. 애지문은 본교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에서 사랑 ‘애(愛)’, 지혜로운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의 지혜 ‘지(智)’를 합성해 만든 명칭이다. 당시 본교가 주최한 ‘지하철 교내 출입구 이름’ 응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주형진(토목 2003년 졸) 동문은 “애지문은 ‘본교의 건학이념으로 통하는 문이며 지혜로운 사랑의 실천자들이 더 큰 세계로 나가는 문’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때론 지명에 추억이 담기기도 한다. 경영관 앞에 자리한 ‘행원파크’는 기존의 ‘백남공원’이 새롭게 탈바꿈한 뒤 붙은 이름이다. 최근 군 휴학을 마치고 복학한 함민우(경금대·경제금융 2) 군은 “잔디밭이 전부였던 공간이 인공폭포와 조경시설을 갖춘 멋진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해 깜짝 놀랐다”며 “캠퍼스의 변화된 모습이 만족스럽긴 하지만, 이제는 이곳을 정겨운 이름인 ‘백남공원’ 대신 ‘행원파크’로 부르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목월길에서 느끼는 가을밤의 정취

교내 구석구석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기 위해 학교가 나서기도 했다. 본교는 지난 2003년 개교 64주년을 맞아 ‘교내 길 이름 공모 행사’를 가진 바 있다. 한양인 스스로가 한양의 정체성을 찾고, 방문객들에게 친근한 학교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다. 서울캠퍼스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 총 2백 12명이 참여해 5백 33건의 길 이름을 응모했다. 네 차례에 걸친 엄격한 심사 결과 15개의 길 이름이 최종 확정됐다.

구 정문을 통한 서울캠퍼스의 주요 차량 진입로인 동문회관, 병원, 중앙도서관,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을 잇는 길에는 '희망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생활과학대학, 음대, 법대, 체대를 지나는 길은 창조적 인재양성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창조로’로 명명됐다. 사범대에서 제 1공학관 시계탑을 거쳐 본관, 과학기술관에 이르는 길은 고(故) 김연준 설립자의 대표 가곡 ‘청산에 살리라’에서 착안해 ‘청산로’로 , 젊음의 나래를 펼치는 공간인 노천극장 주변은 ‘나래길’로 각각 이름을 지었다. 한마당에서 인문관으로 오르는 계단 길은 박목월 시인이 본교 교수로 재직당시 자주 거닐었기에 ‘목월길’로 재탄생했다. 또 고시반 기숙사 옆길은 ‘청운로’로, 의과대학 본관 앞길은 사랑을 나누라는 뜻의 ‘나눔로’로 각각 명명됐다.

이처럼 각각의 길 이름에는 ‘사랑의 실천’, ‘젊은이의 꿈과 희망’과 같은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의미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당시 행사를 담당한 유권창(총무처 인사팀) 직원은 “그 해 하반기에 관리처와 협의를 거쳐 학내에 새로운 이름을 담은 이정표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계획이 무산됐다”며 “잘 지은 길 이름들을 적극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폭풍의 언덕’, ‘F학점 계단’… 톡톡 튀는 지명들

때론 한양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공식 이름들이 더욱 사랑을 받기도 한다. 특히 언덕이 많은 서울캠퍼스의 지형 탓에 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다. 경제금융관, 경영관, 법학관, 정보통신관 등은 교내 다른 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고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따라서 수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면 이곳을 찾는 학생들이 드물다. 이 때문에 서울, 안산 양 캠퍼스에 이어 ‘제 3캠퍼스’란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대동제가 열리는 5월이면 경금대, 경영대, 법대 학생들만을 위한 ‘제 3캠퍼스 가요제’, ‘제 3캠퍼스 체육대회’ 등이 열린다.

제 3캠퍼스로 뻗어있는 생활과학관 앞길은 유독 거센 바람 때문에 ‘폭풍의 언덕’으로 불린다. 낮 동안 캠퍼스의 비탈면이 햇빛에 가열돼, 이를 따라 위로 부는 골바람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본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인문관, 자연과학관, 사범관을 이르러 ‘미나스티리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7층의 계단형 도시 이름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유명해진 이름도 있다. 한마당과 사회과학관을 잇는 ‘88계단’은 ‘F학점 계단’으로 더욱 유명하다. 아래에서 올려봤을 때 오른편에 있는 계단으로 다니면 F학점을 맞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88계단의 실제 계단 수는 85개다. 오래 전 보수공사로 계단이 3칸 줄었지만 아직도 88계단이라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다.

‘캠퍼스 지명은 한양의 과거와 오늘, 미래를 담는다’

시간이 변함에 따라 일부는 지명도 변한다. 끝없이 펼쳐진 가파른 길로 악명 높은 목월길의 ‘138계단’은 이제 ‘158계단’으로 불리게 될 듯하다. 물에 쉽게 부패하고 단의 높이가 제각기 달라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었던 기존의 목재 계단을 새롭게 단장 하는 과정에서 계단 개수가 20개나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단의 높이를 일관성 있게 조정하는 한편 소재도 친환경 목재로 바꾼 덕에 오히려 캠퍼스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계단 중턱에 조성된 ‘목월 시 동산’과 왕십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멋진 조망 역시 목월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한편 한양인의 오붓한 쉼터로 사랑받았던 ‘아크로폴리스’에는 신본관이 들어섰다. 올해 말 공사가 끝나고 나면 이제 이곳은 09학번 새내기들에게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정문에서 동문회관으로 가는 길을 ‘벚꽃 길’로 부른다는 안영은(인문대·사학 2) 양은 “따뜻한 봄이 되면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가 너무 아름다워 붙인 이름”이라며 “종종 친구들과 사진을 찍곤 하는 나의 아지트”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진사로’, ‘138계단’과 같이 한양인들로부터 수 십 년에 걸쳐 불리는 이름이 있는 반면 아직 정식 명칭을 갖지 못한 곳도 많다.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우리도 학교 곳곳의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다만 하나의 장소에 지나지 않던 그곳에 청춘의 추억을 입힌 우리들만의 살가운 이름을.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마주한 두 동문이 캠퍼스에서의 추억을 같은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한양의 역사가 새겨진 오래된 이름을 아끼는 것은 물론 이름이 없는 곳에도 추억이 녹아들어갈 수 있는 이름을 붙이는 일. 이는 또 하나의 전통을 세우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부터 시작하자.


글 : 이현정 취재팀장 norubia@hanyang.ac.kr
사진 : 권순범 사진기자 pinull@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