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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 15

[교수]‘IT인력양성의 선봉장’ 정통대 이병호 교수

대형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 바코드를 찍을 필요 없이 출구를 지날 때 가격이 계산된다. 더 이상 종이 지폐도 점원도 필요 없다. 책, 침대, 의자, 보일러, 차량, 냉장고, 전등 등이 디자인을 가지듯 모든 사물이 칩을 가지게 되는 세상. 이것은 장차 유비쿼터스(ubiquitous)가 실용화될 때의 세상을 스케치한 내용이다. 유비쿼터스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라틴어로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줄임말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것을 이용하더라도 온라인 네트워크 상에 있으면서 서비스를 받는 환경과 공간을 의미한다. 정보통신대에서 미디어통신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병호 교수는 이러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1980년 한국전자연구원에서 국제전화가 가능한 디지털전화기 개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숱한 밤을 새우며 만든 프로그램을 신형 전화기에 적용시키고 난 후 완성된 제품을 처음 사용했을 때의 짜릿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이 교수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SDR(Software Defined Radio) 단말기를 구축하는 것이다. SDR을 직역하면 다중모드로 움직이는 단말기로 풀이되는 데 쉽게 말하면 PCS와 셀룰러폰 방식을 하나의 기계로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용화되면 하나의 기계로 세계 어디서나 다양한 통신방법을 소화할 수 있어 기계를 교체해야하는 번거로움과 비용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이 SDR은 이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본교의 연구특성화 IT사업단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대학과 기업간의 원활한 협력을 바탕으로 한 연구 활동 뿐 아니라 그가 요즘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고급 IT인력을 양성하는 것. 기업이 원하는 수요 지향적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정부, 관련 단체들이 총 출동한 'IT인력양성협의회' 가 발족돼 초대 회장으로 이 교수가 추대된 것이다. "이 협의회가 활성화되면 전문대 정도의 소양을 갖춘 사람과 대학과 석사과정에서 좀더 고급화된 인력, 그리고 박사 이상의 최고급 인재양성을 효율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IT 전문인력 양성은 본교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정보통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단과대를 설립해 이미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정보통신학부는 기존 관련 학과들이 공대의 커리큘럼 속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정보기술경영, 소프트웨어, 미디어통신공학 등과 같이 완전히 특성화된 신 개념의 전공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보통신학부 설립에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교수는 공학과 정보기술경영 마인드를 두루 갖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유례없는 맹활약을 떨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이 교수는 정보통신 분야의 연구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탄력이 붙는 외로운 운동이라고 비유한다. 중간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마라톤처럼 꾸준히 앞을 향해 뛰어가야 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현재 이 교수에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진행 중인 SDR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10년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기술 발전이 빠른 분야라는 이 교수에게서 학문과 교육이라는 기나긴 코스를 뛰는 마라토너의 기상을 느낀다. 학력 및 약력 이병호(정통대·미디어통신)교수는 1975년 본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77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93년 일본 국립 지바대학 전기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한 이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거쳐 81년 본교 전자컴퓨터공학부에 부임했다. 현재 본교 총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교무처장, 입학관리실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고 대외적으로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하 'IT인력양성 협의회' 의장, 상임이사와 평의원, 한국정보과학회 평의원, 한국정보치리학회, 일본 IEICE, 미국 IEEE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02 08

[교수]‘기초 과학의 기수’ 이영백(자연대·물리) 교수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해보면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 대 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가격이 내려갔다. 이렇게 된 바탕에는 응집 및 응용 물리학의 기술들이 있었다. 이영백(자연대·물리) 교수는 1백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며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응집 및 응용 물리학(Condensed Matter Physics and Applied Physics)은 응집체에 대한 물리학을 다루는 학문으로, 첨단 전자·전기 장치나 부품 등의 개발 기반이 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즉,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반도체 소자나 전자기 소자, CD, DVD 등에 사용되는 자성체 박막 등을 개발하는 데 기초가 되는 연구 분야이다. 이 교수는 92년 한국의 대표적 과학기술 상의 하나인 장영실 상을 수상했다. 특허와 함께 논문으로 발표된 '무개스 아아크 방전 이온플레이팅'(내마모성과 윤활성을 증진시키고 부식속도를 지연시키는 기능성 박막)과 관련된 수상이었다. 이 밖에도 해외 학술지 발표 논문이 110여 편, 국내 학술지를 포함한 기타 논문이 120여 편, 그 중에서 SCI(Science Citation Index, 국제 과학논문 인용 색인 : 국제적 저명 학술지라는 공인) 논문만도 110여 편에 달한다. 특허를 낸 것만도 40여 건에 이르며, 그 중 일부는 실용화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첨단 자성 및 광자성 박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초고밀도 정보 저장 매체를 개발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발견해 나가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를 위해서 광자기 분광분석(적외선에서 X-선 영역에 걸쳐 물질의 자성과 전자파간 상호작용을 측정하는 기술)이라는 실험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과거의 선형적인 방법이 아닌 비선형적인 광자기 분광분석을 국내 최초로 시도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학문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과학 분야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외모는 성숙했지만, 삶에 대한 혹은 학문에 대한 진지함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려는 이 교수의 신념은 한양의 미래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학력 및 약력 이영백 교수는 75년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87년 미국 I아이오와 주립대(owa State University)에서 물리학과 졸업하고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90년부터 96까지 포항 공대 겸직 교수로 있었으며 2000년부터 본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양자광기능물성연구센터장을 지내고 있다. 92년 장영실 상 수상을 비롯해 99년 한국물리학회 응용물리학분과 Best Poster 상, 같은 해 미국 LBNL ALS 이용 우수연구업적에 선정됐다.

2005-02 08

[교수]‘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다’ 국문과 박노준 교수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전승되어 규범적인 힘이 되는 정서나 가치를 전통이라 부른다. 따라서 전통은 한 시대만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은 더욱 전통과 함께 발전해나간다. 즉, 전통에 대한 이해가 전제 되어야 오늘의 예술 활동이나 문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박노준(인문대·국문과) 교수가 현대시의 정서적 원류를 고전시가로 거슬러 되짚어 나가는 노력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생을 향가와 고려 속요에 관한 연구를 해 온 박 교수의 학부 시절 전공은 본래 현대문학이었다. 그런 박 교수가 대학 3학년 때 지도교수였던 조지훈 선생과 한용운 전집 편찬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대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때의 성과가 대학 4학년이라는 신분으로 60년 「한용운 연구」 편찬으로 이어지며 고전 시가에 빠져들게 됐다. 고전문학 전공인 박 교수는 향가와 속요를 연구하며 옛 시가의 정서가 현대시와 맥이 닿고 있음을 인식했다. 향가와 속요에 담긴 조상들의 정서가 비단 한 시기를 구분 짓는 특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인식을 「향가여요의 정서와 변용」이라는 책으로 펴내며 기존의 단편적 논의를 학술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전까지 전통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정서적인 차원에서만 찾은 반면, 박 교수는 향가·속요의 현대시로의 계승을 주제면, 표현면,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 등으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그 흐름을 파악했다. 이러한 박 교수의 노력으로 2000년에는 도남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이 고전 작품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향가나 속요를 현대시로 되살려낸 일부 시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전의 변용에 대해 “고전의 변용이 원전의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이지, 원전에 오히려 울타리를 둘러놓는 작업은 아니다”라고 후배들을 위해 충고했다. 고전의 품격과 원형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변용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도는 좋을지 모르나, 원전의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무조건으로 전통을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연구는 현대를 살아가며 현대적인 정서에 더 많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해석하는 좋은 열쇠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박 교수의 연구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이라는 시대의 벽을 허물고, 장르의 벽을 허물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통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며 전통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학력 및 약력 박노준 교수는 1960년 고려대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68년과 82년,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 수여 받았으며 72년부터 81까지 강원대 국문과 교수, 82년부터 본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용운 연구」(60년, 통문관), 「신라가요의 연구」(82년, 열화당), 「현대시의 전통과 창조」(98년, 열화당) 등의 저서 이외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5-02 08

[교수]‘법 해석도 다원화 시대’ 법학과 오영근 교수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제 250조) 이 문장에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과 ‘살해’라는 두 가지의 단어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나도 자명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사람’과 ‘살해’라는 단어에 대해서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태아상태에서부터 인간이라고 봐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모체 밖으로 배출된 후부터를 인간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또한, 모체 밖으로 배출되기 이전의 태아가 누군가의 고의로 인해서 사망하게 된다면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인가? 이렇듯, 복잡하기만 한 우리사회를 법률 한 문장에 의존해서 해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법해석학이다. 오영근(법대·법학) 교수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에 발맞춘, 다원화된 법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범죄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법해석 역시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적 해석이 존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한국의 법문화의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교수의 지론이다. “사법시험은 지금의 고시제도가 아니라, 운전면허와 같은 ‘자격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면허가 중요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운전면허가 인간의 생명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실제 검사들이 사형에 구형하는 경우는 1년에 20명도 채 안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한해 수 백 명에 이릅니다.” 그는 고시원에서 오직 책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반문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법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 교수는 불필요한 규정들에 대한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불필요한 규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을 ‘전과자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법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법은 적용과 집행보다는 ‘예방’이 더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법 규정을 줄이고, 합리화를 이루는 것은 다원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 과제입니다.” 즉, 규정을 과감히 정비함으로써, ‘최소한의 법’으로서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고, 법적해석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오교수의 주요 관심사는 이러한 한국 법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 특히 형법분야의 법규를 정비하고, 법리의 합리화를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피해자학회 회장, 한국형사정책학회 연구이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항상 연구하며 한국 법학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오 교수. 올바른 법해석을 통해 죽은 법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다. 학력 및 약력 오영근 교수는 1979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Bonn대학, 1997년과 2001년 독일 Konstanz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펼쳤다. 한국형사법학회 편집위원, 한국형사정책학회 연구이사,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 형사판례연구회 이사, 한국소년법학회 부회장, 서울보호관찰심사회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전문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고 최근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에 선임됐다. 저서로 국내 10권, 논문으로 국내 100여 편, 국외 5편이 있다.

2005-02 08

[교수]‘남북체육교류의 선봉’ 체육과 이학래 명예교수

‘남북한이 스포츠라는 이름아래 하나였던 순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제 27회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닌, 하늘색의 한반도기를 양선수단이 들고 입장했던 당시의 모습은, 전 국민으로 하여금 가슴 찡한 감동과 함께, 통일의 의지를 되새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북이 동시입장 했고, 이제는 국제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입장은 양국간 합의된 하나의 문화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감동의 순간을 연출했던 주역중의 한명이 본교 이학래 명예교수이다. 이 교수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총감독을 맡아, 스포츠라는 이름아래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받는다. “남북간 화해, 협력을 통한 평화적 분위기 조성에는 무엇보다 동질성 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스포츠가 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체육교류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청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할 남북단일팀 구성을 성사시켰을 때라고 말한다. 90년과 91년 이교수가 참가한 체육회담 대표팀이 이뤄낸 ‘남북한 최초의 단일팀’이라는 성과에 감격한 후, 이때부터 평화적인 조국 통일을 위한 노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통일체육연구원의 창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2002년 ‘남북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한민족 체육학술 교류의 기본방향’을 주제로한 학술세미나 개최, 2003년 ‘한반도 평화구축과 2010 평창 겨울올림픽게임’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 세미나의 개최 등의 활동을 통해 구체화 시켰고, 이러한 활동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 교수는 남북간의 체육교류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계의 앞날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육성정책’에서 ‘국민생활체육의 육성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위주의 엘리트 육성 체제가 클럽 중심의 생활체육 활성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 동안 생활체육은 정부에서 가시적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소홀히 취급해 왔던 부분이지요.” 지금까지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2004년 ‘제1회 한양체육인 상’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시상하기도 한 이 교수. 현재 그는 민족통일체육연구원 이사장, 아시아체육학회장, 대한체육학회 부회장, 남북체육 교류협력위원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통해, 스포츠를 넘어, 남북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결실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학력 및 약력 이학래 교수는 지난 1965년 경제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1967년 본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1969년 프랑스 Universite de Toulouse 체육학 Diplome Superieur를 취득, 1976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지난 1971년부터 본교에 몸을 담았으며 2003년 정년을 맞이해 지금은 명예교수로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브라질 Saopaulo대학교 체육대학 교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민족통일체육연구원 이사장, 아시아체육학회장, 대한체육학회 부회장, 남북체육 교류협력위원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5-02 01

[교수]‘만년청년’ 이승훈(인문대·국문과) 교수

‘사이의 미학, 반미학, 혹은 복합매체(intermedia) 미학’ 이 낯선 단어들로 표현되는 불확정적이고, 전환적이며, 끝없이 떠도는 작품세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승훈(인문대·국문) 교수다. 스스로를 언어파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언어에 대한 탐구에 몰두해오고 있다. 또한 이 교수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 ‘시인 이승훈’ 이듯이 그의 학문적 활동이나 성과를 말할 때도 그의 시 세계를 빼놓고는 온전한 그를 담아내기 어렵다. 1942년 춘천에서 출생한 이 교수는 61년 본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른바 ‘공돌이’였던 그가 시에 취해 국문과로 전과한 것은 이미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인 3학년 때다.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낮’ 등 두 편의 시가 잡지에 실렸다. 그 후 이 교수는 불교와 만나게 된다. 불교는 그에게 새로운 문학 지평을 열어준 계기이자 통로였다. 이때부터 시의 중심은 주체 분열에서 주체 부정으로 변모했으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선(禪)사상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의 시(詩)세계는 그의 학문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교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결과적으로 그의 시에 생명을 불어넣게 됐다. 시 이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새로운 시 형태 개발을 위한 시도는 지속적인 시작(詩作)을 위한 힘이었다. 96년 시의 미적 가능성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을 때 해체주의를 옹호하며 정신주의 진영의 비판을 반박했던 대표적 학자도 바로 이 교수였다. 그의 그런 학문적 토대 덕분에 현대시 동인들의 몰락 속에서도 이 교수는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하는 것들에 대해 호의적이다. “형식과 장르를 깨야 해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거든요.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한국 시인들의 병폐는 조로에요. 일찍 늙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하는 것이죠.” 이 교수는 신인 작가들의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최근 전통 서정으로 회귀하는 한국 시 문단을 고려할 때 새로운 시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교수다. 그러고 보면 그가 그토록 젊은 시인이라고 극찬했던 김춘수 시인만큼이나, 그도 같은 이유로 젊은 시인인 듯싶다. 그는 아직도 ‘바람 불면 괴로운’ 낭만 가득한 순수청년이다. 학력 및 약력 이승훈 (인문대 국문과) 교수는 1942년 춘천에서 태어나 본교 인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 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사물 A’, ‘환상의 다리’, ‘당신의 초상’, ‘사물들’,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비누’ 등이 있으며, 시론집 ‘시론’, ‘모더니즘 시론’. ‘포스트모더니즘 시론’, ‘한국현대시론사’, ‘한국 현대시 새롭게 읽기’ 등을 출간했다.

2005-02 01

[교수]`정도를 지킨다` 사회대 사회학과 김두섭 교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 65세 이상인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또한 오는 2019년에는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14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문제는 인구가 고령화 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반면 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져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고령화 문제를 비롯한 인구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바로 인구학. 인구학은 통계적·수리적 방법을 사용해 인구 변동의 여러 요인을 연구, 사회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하루하루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진단해 장차 인구 변동에 대비한 정책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인구학 연구의 중심에 본교 김두섭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인구학의 방법론인 통계라는 주제에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수치들이 사회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통계의 바다’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일 언론 지상을 오르내리는 각종 통계수치는 과연 믿을 만 한 것일까. 김 교수가 경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통계 수치에 숨어있는 ‘의도성’이다. 김 교수는 “조사는 신뢰성, 정확성, 대표성이 생명인데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의도한 결과를 내기 위해 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사 결과가 여과 없이 일반에 전달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구라는 것은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 때, 정책을 만들어 하루아침에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인구 문제를 항상 멀리 내다보고 미리 대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인구 문제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당시 서독의 인구가 동독의 그것에 비해 4배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동·서독은 이질감 극복을 위해 10여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잠정적인 집계로 남한의 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인 현 상황을 고려해볼 때 통일 후 남·북한의 이질감은 동·서독의 경우보다 더욱 심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자료는 일부 탈북자들의 말이나 외신 보도에만 의존하는 정도로 낙후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통일 후 나타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북한 구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호남 지역감정보다 더욱 심각할 남·북 간의 이질적인 지역정서 문제 또한 인구학적인 분석을 통해 가능함은 분명하다. 사람을 공부하는 만큼, 그 공부의 결과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김 교수. 그가 인구문제와 관련한 언론 보도마다 이름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교육환경이 아니라 김 교수 스스로가 견지한 학문에 대한 성실함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성취와 기쁨을 다시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인구, 즉 사람 그 자체가 학문의 테마인 김 교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학력 및 약력 김두섭 교수는 서울대에서 1975년 문학사를, 197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3년 미 브라운대학(Brown Univ.)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본교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지난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현재 한국 인구학회와 한국사회학회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21세기 남북문화 연구원 이사, 본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구분석, 센서스자료 분석 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옥조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5-02 01

[교수]‘과거와 현재의 가교’ 배기동(국문대·문인과) 교수

국사 교과서 앞머리에 등장하는 전곡리 유적은 정부가 국가사적(國家史蹟)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구석기 유적 중의 하나이다. 배기동(국문대·문화인류)교수는 이 발굴에서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찍고 자르는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는 도끼)를 출토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동아시아 구석기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계기가 됐으며, 또한 외국 문화사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전기(前期) 구석기 유적으로 당당히 수록될 만큼 우리나라의 큰 문화유산 중 하나가 되었다. 과거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고고 인류학을 전공하게 된 배 교수는, 국내에서 고고학 석사를 마친 후 좀 더 폭넓은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 삼성미술문화재단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UC Berkeley 인류학과 및 동아시아 연구소 강사 등을 거쳐 본교에 취임하게 된 배 교수는 51편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하고 30권의 저서를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배 교수는 고고학자로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선사 시대 유물을 통해 이제는 다 풍화돼 없어져간 선사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20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일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전곡리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했으며, 98년에는 구석기 연구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배 교수는 이에 대해 문화재 보존기금에 대한 시론을 쓰는 등 문화재 보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배 교수는 고고학자가 단지 과거의 유물을 발견하거나 수집하는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고고학은 과거의 복원을 통해 현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이며, 결국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배 교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고고학을 통한 인간 삶의 복원일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집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상아탑 속의 연구도 좋지만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발굴에 참여하기를 더 좋아하는 배 교수는 고고학이 단순히 유물을 발굴하고 분류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과거를 통한 인간 행위의 복원이라는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참지식인이다. 학력 및 약력 배기동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인류학 박사(Ph.D)를 취득했다. 국내로 돌아와 삼성미술문화재단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및 서울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본교에 적을 두게 되었다. 현재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 운영을 맡고 있으며, 50편이 넘는 논문과 30권이 넘는 저서를 발행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주요저서 및 역서로는 전곡리구석기유적(1989), 금파리구석기유적(1999), 한국선사고고학사(공저 1991), 문명의 여명(1988, 번역), 일본인의 기원(1992, 번역), 아프리카역사의 이해(2001)등이 있다.

2005-02 01

[교수]‘고분자 연구의 선봉’ 공과대 응용화공 서경도 교수

“항상 학생들에게 독창적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학생들이 독창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하지만 결국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공학은 자연과학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자연에 대한 ‘발견’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의적인 사고는 공학을 연구하는 이에게 꼭 필요한 소양이다. 서경도(공과대·응용화공) 교수의 ‘고분자 표면 및 계면 연구실’에서는 특히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강조된다. 어떠한 기술이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응용에도 성공하지 못하며 이러한 응용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서 교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서 교수가 본교로 부임하면서 설립된 ‘고분자 표면 및 계면 연구실’은 국산 LCD 모니터 개발의 길을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LCD 모니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도성 유리(ITO Glass)를 5마이크로미터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서 교수가 개발했다. 전도성 유리 사이에 주입시킬 스페이서(spacer, 지름 5마이크로미터의 크기가 똑같은 입자)의 생산을 가능케 한 것. 유일하게 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두·세 개의 회사만이 보유한 기술이다. 이 뿐 아니라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고기능성 화장품이나 전자 종이 등 작은 소재에 대한 서 교수의 탐구는 일상에서 그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전자종이는 자료를 다운받아 수백만 번 썼고 지우고를 반복할 수 있으며 적은 량의 에너지로도 사용 가능해 책과 신문은 물론 기존의 인쇄매체를 대체할 혁신적인 재료로 기대된다. 서 교수는 이러한 핵심 기술들의 개발은 가격보다는 우리가 독창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원천기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내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은 상품 개발과 운영에 능하지만 기초기술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연구능력이 없다”고 말하며 “대학이 원천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해야만 한다”고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 덕분에 서 교수의 연구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빌리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현재 서 교수는 생리활성화 물질(bioactive material)의 안정화 연구와 전자종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비타민 등 인체에 유익한 물질인 생리활성화 물질은 불안정해 분해가 쉽게 일어나는 데 서 교수가 연구하는 것은 이를 안정화시키는 기술. 이미 개발돼 고기능성 화장품에 적용 됐던 이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 액정을 캡슐화 시켜 고분자 분산형 액정에 적용시키거나 흑연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자종이의 개발에 접근하고 있다. 학생들과 매 주 두 번의 보고회를 함께하며 연구내용에 대해 서로 토론하도록 독려한다는 서 교수는 “교수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를 하고 싶게끔 도와주는 사람이다”며 자신의 모든 연구결과를 학생들의 공으로 돌린다. ‘모든 성과가 저 개인보다 학생들이 노력한 결과물일 뿐입니다’라고. 학력 및 약력 서경도 교수는 지난 1977년 본교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과 1987년에 일본 동북대학교에서 화학 제 1전공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동북대학교 조수, 89년부터 91일까지 동양나일론 책임연구원을 거친 그는 지난 1991년부터 본교 공업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 교수는 또한 한국공업하학회, 한국고분자학회, 한국고무학회, 한국유변학회 등에서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01 22

[교수]일본문학 비평의 선구자 윤상인(국문대 일본언어문화)교수

소설 '노르웨이 숲'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라을 받고 있고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예인 배용준과 보아 는 일본 가정의 문지방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이렇듯 한일 상호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일본을 알려면 일본 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라고 충고하는 이가 있다. 바로 국제문화대 일본언어학부의 윤상인 교수. 그는 작게는 일본 문학을 넓게는 일본 문화를 연구하는 일본 문학 비평의 선구자이다. 또한 그는 한국사상사학회와 일본비교문학학회에서 활동 중이며, 두뇌한국21의 핵심 사업 분야 중 ‘학제적 일본연구 전문 인력 양성팀’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윤 교수의 주요 연구대상은 근대 일본, 즉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1945년까지이다.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두뇌한국21’ 연구 사업에서도 이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대 일본문학에 대한 비평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일본의 근대와 현대를 비교하는 일은 익숙해져 버린 일인 것이다. 그런 윤 교수는 근대 일본과 현대 일본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지금의 일본과 과거 군국주의의 일본과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10여 편이 넘는 일본 문학작품의 번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을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윤 교수를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화 메신저’라고 일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일본에서 발간한 김광규 시인의 시집은 일본 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윤 교수는 거대담론적 성격의 김지하, 황석영 씨 작품만이 소개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적 성향이 짙은 김광규 시집을 소개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행동 밑바탕에는 한국의 다양성을 일본에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또한 문화교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윤 교수는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수 년 전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거셀 때도 그 만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일본문화가 풍토가 다른 한국문화에 진입하는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대등한 관계로의 인식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일본 문화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보단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십여 년 동안 회자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가 10여년 후에는 한국 사회에서 철학의 부재로 이어질 것이라 염려하는 윤 교수는 "타국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내적 발전, 나아가 문화 선진국도 따져보면 인문학적 소양 즉, 철학이 뒷받침 돼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의 교육 철학 역시 한국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철학을 가진 제자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학력 및 약력 윤상인 교수는 1983년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1988년과 1991년 각각 문학석사 학위와 비교문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런던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 학부에서 2년여 동안 연구활동을 하기도 한 윤 교수는 1992년부터 본교에서 일본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논문으로 국내 19편, 국외 11편을 발표했으며 국내외 저역서(공저포함) 17권을 출판했다. 1994년 <세기말과 나쓰메 소세키>로 산토리 출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사상사학회와 일본비교문학학회에서 활동 중이며, 두뇌한국21의 핵심사업분야 중 ‘학제적 일본연구 전문인력 양성팀’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