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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 06 중요기사

[학생]암호분야 인재의 산실이 될 한양대 HUCC

한양대학교 암호 동아리 HUCC(Hanyang University Crypto Club)가 지난달 30일 ‘대학 암호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2016년에 시작된 대학 암호 동아리 지원 사업은 암호 인력양성 기반 마련을 위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한국암호포럼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우수동아리에 선정된 바 있고 올해로 4년째 지원 동아리에 선정된 HUCC는 내년에도 국가 지원을 받으며 우수 동아리로서 활약을 이어간다. HUCC를 만나 그간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 지난달 30일, 2019년도 대학 암호동아리 위촉식에서 ‘대학 암호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된 동아리원들의 모습. (한국인터넷진흥원 제공) 암호 동아리는 암호를 공부하는 학술 동아리다. 4차 산업에 필수적인 암호학은 기본적으로 정보보호를 위한 이론과 기술(암호 기법, 암호 해독)에 대한 학문이다. 실제 적용 분야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암호화폐가 있다. 더 나아가 5세대 이동통신에도 암호기술이 필요하다. 지난 2016년에 창립한 한양대학교 수학과 암호 동아리 HUCC(Hanyang University Crypto Club)는 각종 대회에서 매해 수상경력을 쌓으며 국내 최우수 대학 암호동아리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이번 2019년도 국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암호 동아리는 총 여덟 군데다. 작년에 탈락한 곳을 포함해 총 40여개 동아리가 이번 사업에 지원했다. HUCC 회장 김정민(수학과 4) 씨는 올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떻게 암호학에 대한 지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급하고 있는지,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알려주고 홍보하고 있는지가 높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운영과 수상경력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 한국암호포럼에서 지난해 12월 개최한 ‘2018 국가암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HUCC. (한양대학교 HUCC 제공) HUCC는 동아리원끼리 하는 스터디 외 다양한 학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생소한 암호학에 대한 이해를 전공 학생 외 일반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개 학술 세미나와 학술제를 열거나, 자체적으로 암호경시대회를 개최해 학생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암호학에 대한 인식을 깨뜨리고 암호기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 HUCC는 지난해 10월 모든 한양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양대학교 암호경시대회를 진행했다. 모든 참가자에게 야식과 참가상을 증정하고, 수상자들을 위한 시상식도 함께 열었다. 김정민 씨는 앞으로의 HUCC 활동 계획에 대해 “계속해서 암호학의 보급을 중점으로 둘 것”이라며 “공개 세미나를 열 때 암호 분야 관련 유명 외부인사들을 초청하고, 학업을 위한 기본적인 자제와, 관련 서적, 기자재들을 구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공모전과 학술제가 동아리에서 국한되지 않고 많은 학생을 위한 자리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암호가 실제로 많은 분야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암호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관심을 갖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황성진(수학과 4) 씨, 배용준(수학과 2) 씨, 권다운(수학과 석사과정) 씨, 박도원(수학과 석사과정) 씨, 김정민(수학과 4) 씨, 주영진(수학과 석사과정) 씨. HUCC는 “앞으로 계획한 것들을 하나씩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4 09 중요기사

[학생]벌드수흐,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되는 그날까지 (1)

한양대에서 약 1011km 떨어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84학교'.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길거리 농구코트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슛을 날릴 때 가장 행복했던 한 아이는 몽골이 아닌 이 땅 한국에서 농구선수가 됐다. 매 경기 평균 득점 20점, 명실상부 한양대 농구부 에이스 히시게 벌드수흐(189cm, 포워드). 그는 지난해 7년 만에 대학 리그 플레이오프(PO)에서 떨어진 한양대 대학농구의 위상을 다시 세울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다. 몽골 소년에서 한양대 농구선수까지. 이제는 한국 농구 국가대표를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한국 농구 국가대표를 꿈꾸는 히시게 벌드수흐(체육학과 2)입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다. 그는 “몽골에서 어렸을 때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어머니가 일하시는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농구가 좋았던 벌드수흐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부에 들어갔다. ▲ 히시게 벌드수흐(체육학과2) 씨와 서울캠퍼스 올림픽체육관에서 지난 5일 진행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히시게 벌드수흐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일하시는 한국에 들어왔다”며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히시게 벌드수흐(체육학과 2)는 “여기로부터 약 1011km 떨어진 몽골 울란바토르 84학교에 다녔다”며 “학교 끝나면 길거리에서 형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농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방인으로서 농구선수에 도전하는 길은 어땠을까. 그는 중고등학교 때 엄연히 학교를 대표하는 농구선수였지만 전국체전과 같은 큰 대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는 시합을 못 뛰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꿈 많은 시기였던 초등학교 때는 경기를 하나도 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의료보험’을 꼽으며 “시합 중 다치면 병원에 가야지만 외국인들은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높게 책정된다”고 말했다. “부담스러운 병원비로 가장 힘들었다”며 “외국인들은 간단한 서류조차 발급받기 어려웠습니다”고 밝혔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입학했지만, 당시 리그에는 한 게임도 뛸 수 없었다. “같이 연습하고 동고동락한 팀이었지만, 친구들과 선배들이 뛰는 것을 관람석에서 지켜만 봐야 했다”며 “특히 지난해에는 대학 리그 성적이 저조해서 많이 질 때는 창피했고, 내가 다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당시 심정을 말했다. 힘들었던 과거도 잠시였다. 벌드수흐는 지난해 10월 8일 한국에 귀화했다. 1, 2차로 나눠진 필기와 면접을 통과하고 애국가도 4절까지 외워 시험에 합격했다. “병원에 가면 주민등록증 하나로 해결된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처음 접수처에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 히시게 벌드수흐(체육학과 2) 씨는 ”외국인 선수는 초등학교 농구 시합에는 한 게임도, 중고등학교 때는 큰 시합은 못 뛰게 되어 있다”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한국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꿈꿔왔었다”고 말했다. 벌드수흐 씨는 “외국인 전형으로 다른 동기들보다 입학이 늦었지만, 모두 환영해주고 스스럼없이 반겨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중순쯤 합숙 생활에 합류했어요. 경기할 때 팀워크가 좋고, 든든한 수비로 인해서 속공이 좋은 팀인 한양대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그는 “졸업하기 전에 대학리그 우승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며 “지금 팀에 저학년이 많은데 같이 열심히 훈련하면서 팀워크를 키운다면 우승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벌드수흐 씨는 올해가 리그 첫 출전이지만 매 경기 평균 득점 20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벌써 상대팀이 긴장하는 선수가 됐다. 그는 “팀원들이 정신력을 잘 잡아주는 덕택”이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양대 마크에 이어 태극마크를 향해 달리는 히시게 벌드수흐의 눈부신 앞날을 기대해보자. 글/ 김가은 기자 kate981212@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9-04 07 중요기사

[학생]카자흐스탄과 한국을 잇다 

의료관광은 개인이 자신의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지방이나 외국으로 이동해 현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2017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강남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7만2346명, 카자흐스탄에서 오는 관광객이 네번째로 많다. 최근 3년간 한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방문객은 약 90%가량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포착한 카자흐스탄 출신 유학생 자나딜 탈디바예프(Taldybayev, 경영학부 석사과정) 씨는 한국을 찾는 카자흐스탄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컨설팅사 KMK(KazMediKor)를 설립했다. 한국에서 창업할래요! 카자흐스탄에서 동양학을 전공했던 탈디바예프 씨는 우연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했다. 그 후 교환학생으로 1년간 한국을 방문했고, 2017년 9월 국가초청장학생으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던 탈디바예프 씨는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의료컨설팅사 KMK 회사를 설립했다. “카자흐스탄에는 한국 기업들이 많고, 한국과 사업 파트너 관계도 돈독해요. 따라서 한국에서 창업하면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의료컨설팅사 KMK(KazMediKor, 클릭 시 홈페이지로 이동) 회사는 김슬아(경영학부 박사과정) 씨와 자나딜 탈디바예프(Taldybayev, 경영학부 석사과정) 씨와 카킴 다나바예프(Danabayev, 언론정보대학원 박사과정) 씨가 함께 설립했다. 의료관광을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한건 탈디바예프 씨. 그는 “어머니가 의료관광으로 한국을 방문해 치료를 잘 받으셨다"며 "이후 다른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계속 한국에 치료를 받으러 오는 걸 보면서 창업 아이템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탈디바예프 씨는 지난해부터 247 스타트업 돔(클릭 시 관련기사로 이동)에서 생활했다. 그는 "상담을 받으며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계획서를 작성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겪는 문제도 비슷하니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상의해요. 매주 보고서를 제출해 학기 말에 최종평가를 받습니다. 팀별 멘토링도 받으며 점차 성장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폭풍 성장 의료컨설팅사 KMK 의료컨설팅사 KMK는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이어주는 의료관광 플랫폼 역할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통역 및 여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설립 이후 올해 2월부터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탈디바예프 씨는 의료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병원들과 사업관계를 맺고, 카자흐스탄에서 저명한 인플루언서(유명인)들을 초대해 회사 서비스를 홍보한다. “올해 백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카자흐스탄 국회의원이 한국을 방문해 저희 서비스를 사용했습니다. 한국 병원에서 건강검진과 피부관리를 받은 뒤에 한양대학교도 방문했죠. 덕분에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끊임없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탈디바예프 씨의 안목은 뛰어났다. 그는 우연히 방문한 취업박람회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유학생 카킴 다나바예프(Danabayev, 언론정보대학원 박사과정) 씨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유튜버와 기자로 활동하며 카자흐스탄에서 넓은 인맥을 보유한 카킴 씨는 현재 진행 중인 홍보활동을 모두 가능케 했다. 탈디바예프 씨의 연구실 동료인 CEO 김슬아(경영학부 박사과정) 씨 또한 한국 관련 행정을 도맡아 회사 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그는 셋의 팀워크가 뛰어나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탈디바예프 씨는 직접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컨설팅사 KMK의 총 직원 수는 일곱명으로, 한국에는 공동대표 세 명과 프리랜서 한명, 카자흐스탄에는 두 명의 직원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 탈디바예프 씨는 앞으로 기존 카자흐스탄 고객을 포함해 러시아권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넓힐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할 그는 “한양대학교의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너무나도 많고, 이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25 중요기사

[학생]불가능을 가능으로, 평범한 대학생의 도전 인생 (2)

“거창한 계기는 없었어요. 우연히 한 잡지를 읽었는데, 고비 사막을 완주한 해병대 예비역 3명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굳이 사막에 가서 고생한 이유가 궁금했죠.”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는 세계 4대 극지마라톤 시작 3개월 전 대회 소식을 접하면서 바로 출전 준비에 들어갔다. 평발에 과거 무릎 수술, 막대한 대회 참가비. 걸리는 게 많았지만 직접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지난해 4월 아프리카 사하라, 나미비아 사막 레이스를 시작으로 몽골 고비 사막, 악명 높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거쳐 12월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그는 만 22세의 나이로 최연소 그랜드슬램에 올랐다. 꿈 같은 1년간의 대장정 대회 출전자는 각각 250km에 달하는 4개 지역 사막의 6개의 스테이지, 총합해서 대략 1000km를 걷는다. 1년 동안 4개의 사막을 완주하는 ‘세계 4대 극지마라톤’이 지난 2008년에 만들어진 뒤, 완주에 성공한 사람은 총 78명이다. 그리고 지난해 열린 극지마라톤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완주 기록을 세운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아직 마음은 사막에 있는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 경험했던 대자연이 아직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며“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그 때가 생각나요. 갑자기 일어나서 뛰고 싶어요."고 말했다. “처음 아프리카에 내려서 대회 집결지로 이동하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아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담도 됐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유동현 씨는 출발 전 당시를 회상하면서 부풀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사막 마라톤 출전은 440만 원, 남극 마라톤까지 출전하려면 1460만 원의 참가비가 추가로 필요했다. 학교 선배와 군대 전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여러 기업에도 후원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여러 곳에서 유 씨를 응원하는 도움의 손길이 십시일반 모여 600만 원으로 첫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출전 비용으로 충당하고 남은 금액으로 40여 가지의 필수 장비를 마련했다. “마라톤 경력도 없고 완주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는 한 젊은이의 도전을 응원해준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 사하라 사막 레이스 직후 다리가 보라색 점이 생기면서 마비됐 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유동현 씨 제공) 고되지만 값진 경험의 길 4개 지역의 사막 레이스 거리는 각각 250km에 달한다. 출전자는 식량과 각종 장비를 든 배낭을 메고 일주일 안에 완주해야 한다. 250km의 거리를 80km, 40km, 10km 씩 몇 구간으로 나눠 달리는데, 80km구간은 서두르지 않으면 추운 밤까지 뛰어야 한다. 자신이 악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유 씨는 다른 참가자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레이스 최종 구간인 남극마라톤을 뛸 때는 시각장애인 친구, 한쪽 다리를 잃은 마라토너가 있었어요. 저는 달리면서 힘들어하고 불평도 했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여유로웠어요.” 일흔이 넘는 노인, 몸이 불편한 사람, 엘리트 선수들, 재력가. 이들 모두 똑같이 힘든 환경, 공평함 속에서 함께 도우며 생활한다. “노인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꿋꿋이 완주하는 모습에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그는 1등이 중요한 레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동했다. 또 각국에서 참가자들이 모이다 보니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유 씨는 저녁 시간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각국의 소식과 그들의 생각에 대해 들었던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친 와중에도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에너지가 넘쳐서 덩달아 힘을 얻었어요. 다녀와 보니 갈 때 체력뿐 아니라 나라마다 간단 한 상식과 외국어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 유동현 씨는 마라톤을 통해 소중한 인연들도 얻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비사막 마라톤에서 완주한 후 친구들과 찍은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함께 합숙한 텐트 메이트들과 한 컷, 가장 고단했던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함께한 친구와 포옹하는 모습, 남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직전 종합 등수 1위 친구와 찍힌 사진. (유동현 씨 제공) ‘사람들이 왜 이런 걸 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던 마라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고 말했다. “평소에 당연히 여기던 것들이 없어지니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됐어요. 환경부터 사람까지. 내리막길을 내려올 땐 절 지원해주신 분들이 떠올랐어요. 나중에는 절 도와준 분들처럼 꿈은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도전을 꺼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도전하는 삶 현재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도전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올해 철인삼종경기와 여름방학 때 미국 자전거 횡단을 계획 중이에요. 미국 자전거 횡단 대회는 7월 여름에 있는데 아침잠을 줄여가며 수영을 하고 자전거로 통학하며 틈틈이 준비 중이에요.” ▲ 사하라 사막 횡단 도중 유동현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동현 씨 제공) 마지막으로 유동현 씨에게 마라톤이 어떤 의미가 됐는지 물었다. “일상이 됐어요. 마라톤을 벗어나서도 마라톤 하기 전과 후의 나를 보면 스스로 달라진 제 모습이 보여요. 마라톤은 피니쉬 라인이 언제든 있어요.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어찌 됐든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끝에 도달해요. 전에는 포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의 밝고 당찬 대답에서 단단해진 내면을 볼 수 있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25 헤드라인

[교수][인터뷰] ‘김우승’ 한양대 신임 총장…3S 전략으로 세상과 동행하는 대학 만들고파 (3)

“세상과 동행하는 한양” 봄소식과 함께 새 총장이 취임했다. 김우승 한양대학교 15대 총장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ERICA캠퍼스 부총장, PRIME 사업단장, 산학협력단장 그리고 LINC 사업단장 등을 역임하며 세계 속 한양의 모습을 그리던 김 교수는 지난달 25일 총장으로 취임해 앞으로 4년 동안 한양을 이끌게 된다. 김 총장은 최근 교내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양의 미래상을 선보였다. 스마트와 스타트업, 사회혁신이 담긴 ‘3S 전략'의 계승 ▲ 새로운 한양의 리더가 된 김우승 신임 총장. 김우승 총장은 인터뷰에서 “15대 총장으로서 한양의 미래를 짊어지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성장했고 앞으로는 세상과 동행하며 세상을 바꾸는 대학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세상과 동행하는 대학’을 꿈꾸는 김 총장의 계획은 무엇일까. “대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대학들은 이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 세계에 펼쳐진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과 동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목표부터 내용, 환경까지도 바꿔야 한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이루기는 힘들겠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기꺼이 첫발을 내디딜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3S 전략’의 계승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작년 한양대 미래위원회를 통해 구체화된 3S 전략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창의적 성과를 창출하는 스마트(Smart) 대학, 국가 성장에 기여하는 스타트업(Startup) 대학, 세상을 변화하는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 대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한양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한양이니까 가능한 교육, 한양이 지향하는 ‘한양다움’을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실현해왔다. 앞으로도 창업 분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김 총장은 “창업은 한양대의 인재양성 전통인 ‘실용인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스타트업 타운과 같은 창의적 발상이 가능한 창업 교육 공간을 확대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실무경험을 위해 현장 실습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LINC+, PRIME 등과 같은 국가재정지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주했으며 국내 최초로 산업연계 교육자문위원회(Industrial Advisory Board, IAB) 도입(2017년), 국내 최초 인턴십 의무화(2013년)와 같은 혁신적 교육 성과를 이뤘다. “두 번째 스마트(Smart) 전략을 통해 교육 혁신을 계속 이뤄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융∙복합 교육과정을 수립할 것이며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R-PBL/IC-PBL’ 교육과정 고도화에 아낌없이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마지막 전략은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라며 “한양대는 글로벌 사회혁신대학 네트워크인 아쇼카(Ashoka U)에 국내 최초로 가입한 만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사회혁신 교과-비교과 프로그램을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운영,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행하는 삶, 서울캠퍼스∙ERICA캠퍼스 동반발전 특별 위원회 설치부터 ▲ 김우승 신임 총장이 3S(스타트업∙스마트∙사회혁신)전략의 구체적인 계승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HYU 2022 중기발전 계획을 수립해 3S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청사진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 한양대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 간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 총장은 “물리적 거리가 있는 만큼 협력 분야에서 부족했던 점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2023년 신안산선 개통으로 서울캠퍼스에서 ERICA캠퍼스까지 58분밖에 걸리지 않게 된다. 상당한 시간 단축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양 캠퍼스 간 역량을 한데 모아 인적교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는 서울캠퍼스와 개교 40주년인 ERICA캠퍼스는 그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뤄왔다. 서울캠퍼스는 교육과 연구 부문에서, ERICA 캠퍼스는 산학협력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김 총장은 “서울캠퍼스 교학 부총장과 경영 부총장, ERICA 캠퍼스 부총장을 공동 위원장으로 ‘서울∙ERICA 한양 동반발전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오는 10월까지 특별위원회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을 예시로 들며 “프린스턴대학은 2016년 생명과학 분야 기술이전으로 1410억 원의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서울캠퍼스 의과대학과 ERICA캠퍼스의 약학대학의 연구역량이 융합될 경우 미래 주요 연구 분야로 손꼽히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의 혁신적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 캠퍼스의 동반 발전은 단순히 캠퍼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양 캠퍼스의 강점을 융합∙발전시켜 한양만의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의미다. 소통 중시하는 ‘실무형 총장’으로 거듭날 것 ▲ 김우승 신임 총장이 지난 12일 서울캠퍼스 신본관에서 열린 교내 매체 공동 인터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S 전략, 한양 동반발전 특별 위원회 등 굵직한 사안을 무리 없이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학생, 교수, 직원, 동문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김 총장은 “지난 80년간 한양대의 눈부신 발전은 학생, 교수, 직원, 동문 등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달성했고, 앞으로 더 큰 발전을 하기 위해서 구성원 간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협력은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이뤄지기에 앞으로 임기 동안 이를 강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계획으로는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 등 구성원별로 각자의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런치미팅(lunch meeting)의 날’을 운영할 예정이다. 작은 회의실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신이 속한 집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수렴된 의견은 정책화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공유함으로써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요즘 트렌드에 맞게 모바일로 대학의 정보를 구성원들과 공유할 수 있는 HCSC(Hanyang Contents Sharing Community)도 운영하고자 한다”며 “확인 속도가 느린 이메일 대신 실시간 의견 수렴이 가능한 모바일 연락체계를 갖추겠다”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 김우승 신임 총장은 한양 동반발전 특별 위원회, 동문 네트워크 강화 등 주요 운영 계획을 통해 "학생들이 존중받는 행복한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만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학살하던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가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가 한 말”이라며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 데서 나온다. 학생들이 책임질 준비를 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김가은 기자 kate981212@hanyang.ac.kr

2019-03 21

[동문][도전#해시태그] 미디어와 커머스의 조우 (1)

미디어 커머스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미디어 콘텐츠와 커머스(상거래) 상품의 융합이 주목받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 미디어에 스토리를 입힌 동영상을 게시해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상품 정보를 전달한다.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글. 유승현 사진. 안홍범 ▲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 레드오션 속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다 퍼플오션(Purple ocean)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퍼플링크도 마찬가지다. 퍼플링크는 이미 널려 있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요구) 중 ‘언멧니즈(Unmet needs, 미충족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회사 퍼플링크의 브랜드는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뷰티 브랜드 ‘낫포유’, 리빙 브랜드 ‘데이포유’와 향수 브랜드 ‘프라그라피’가 있다. 낫포유(NOT4U)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뷰티라이프’를 지향한다. 주력 제품은 이중 복합필터를 사용해 수돗물의 잔류 염소와 녹물을 제거하고 비타민C를 공급하는 ‘비타클렌징 샤워’, 연고처럼 바르는 여드름 패치 ‘리얼스킨패치’ 등이다. 생활에 필요한 무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데이포유(DAY4U)는 '당신에게 필요한 삶, 안심되는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제품으로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세탁할 수 있는 ‘런드리볼(세탁볼)’과 광합성 작용으로 유해물질을 분해하고 악취를 제거하는 ‘광촉매탈취제’ 등이 있다. 프라그라피(Fragraphy)의 핵심 가치는 ‘나를 표현하는 향기’다. 이성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춰 두 종류의 니치 향수(소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 ‘시그니처 블랙(남자 호감 향수)’과 ‘어나더 레이디(여자 호감 향수)’를 선보였다. 새로운 트렌드, 콘텐츠 마케팅 조관제 대표가 마케팅에 발을 디딘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그는 ‘딩고 뮤직’으로 잘 알려진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업부에 입사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개인을 뜻한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팀장을 맡게 된 조관제 대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인플루언서로 양성했다. 회사의 도움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 구독자에게 제품을 홍보한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유통하며 뉴미디어 마케팅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특히 연예인 위주였던 인플루언서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보다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콘텐츠 마케팅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는 조관제 대표 ▲#소비자 #사로잡는 #라이프스타일 #탄생 퇴사 후 창업에 도전하다 조관제 대표는 회사를 나와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 대표(경제금융학 05)와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를 창업했다.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경험을 살려 남성 화장품 브랜드 블랙몬스터를 기획했다. 커머스 운영부터 제품 마케팅까지 도맡아 3개월 만에 15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 “여기에 만족할 수만은 없었어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제가 직접 회사를 꾸리고 싶었어요. 블랭크를 퇴사하고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커머스 회사인 퍼플링크 창업을 준비했어요.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조관제 대표는 반드시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전의 경험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관제 대표는 수중에 있는 돈과 5000만 원의 청년 창업자금 대출로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첫 제품을 준비하는 데 전부 사용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불안했어요. 처음 창업하고 3개월 동안은 전기·수도·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미납했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수중에 2300원밖에 없는 거예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컵라면을 사니 딱 50원이 남더군요.” 좌절의 쓴맛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작한 비디오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첫 제품 출시 다음 날 판매율이 전날 대비 30% 뛰었다. 우려가 기대로 바뀐 순간이었다. 미처 몰랐던 욕구를 발견하는 과정 퍼플링크의 마케팅은 다소 독특하다. 제품 기획 전 단계부터 콘텐츠에 제품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는지 고려한다. 좋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콘텐츠 마케팅 적합성이 떨어지면 만들지 않는다. “동시에 소비자도 몰랐던 히든니즈(Hidden needs)를 파악하는 데 힘써요. 네이버,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검색량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경쟁 제품의 후기, 블로그 포스팅도 확인해요. 그다음으로 메시지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죠.” 낫포유 제품 ‘클리어바디미스트’ 광고는 소비자의 큰 관심을 샀다. 클리어바디미스트는 등과 가슴에 나는 여드름 제거에 유용하다. 퍼플링크는 제품의 성능을 알리기 위해 바디 트러블로 고민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했다. 최종 선발된 한양여자대학교 축구부 선수가 촬영한 제품 사용 과정이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출시 1년 만에 20만 개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 퍼플링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랏빛으로 물들일래요 퍼플링크는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채울 수 있는 종합 커머스 기업’을 꿈꾼다. 현재 다양한 브랜드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 뷰티와 리빙을 넘어 패션, 푸드와 펫 등 소비자 니즈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오는 2020년까지 10개 이상의 브랜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퍼플링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고 흥미를 느낄 만한 메시지를 콘텐츠로 풀어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고객이 꾸준히 퍼플링크 라이프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퍼플링크는 설립 2년 만에 1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조관제 대표의 자기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퍼플링크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크고있어요. 제 성장이 회사의 성장보다 느려지는 순간 과감히 회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때는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해요. 퍼플링크에서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회사의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3-04월 (제247호) 이북 보기

2019-03 19 중요기사

[동문]'운동장이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인 학교를 만들다'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의 수업 분위기는 뭔가 특별하다. 주요 교과목에 열 올리는 요즘 중∙고교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적극적인 체육 활동에 그 이유가 있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학생들은 체육 정규교육과정 수업을 넘어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 조성엔 한대부중 교장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과 체육 과목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체육시간이 즐거운 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체육학으로 학사(76학번)부터 박사 학위 과정까지 밟은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은 국내에 흔치 않은 체육 전공 교장이다. 후학양성이 보람된 일이라 여겨 노 동문은 체육 교사로 교직에 몸을 담아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교장 자리까지 왔다. 체육학을 전공한 교장 덕인지 한대부중은 다른 학교에 비해 '스포츠클럽'이라 불리는 체육 활동이 활발하다. “한창 클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폭력과 같은 각종사고가 줄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더 즐겁게 합니다.” 이른 시기부터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 학생들에게 예체능 교육은 사치라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건강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한대부중의 체육 활동 프로그램. 현 공교육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에서 만난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 학생들이 생활체육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건강과 동시에 교육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체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내 수업부터 방과 후 활동으로 야구, 농구, 배드민턴, 풋살과 요가, 방송댄스, 치어리딩까지 다양한 범위의 스포츠 활동이 꾸려져 있어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한대부중 내 체육 교사들뿐 아니라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토요 스포츠 클럽도 운영해 방과 후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연습량이 부족한 학생들도 운동할 수 있다. 또 체육 활동을 교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시합 및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미 한대부중 학생들은 여러 종목에서 많은 수상 경력을 쌓고 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체육이 아닌 국∙영∙수 같은 교과목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2배 이상이다. “농구, 축구 시합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듯이 학생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연식야구(여자) 수업에 방문한 강병철 전 프로야구 감독과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한대부중 여자 연식야구팀은 매년 교육청이 주관하는 ‘안중근 피스컵’에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자 연식야구팀의 김소연(한대부중 3) 양은 연식야구 외 축구와 배드민턴 등 다양한 체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다 같이 협동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도 많이 좋아졌어요.” 김채원(한대부중 3) 양은 체육에는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처음에 어려워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차근히 다져졌어요.” 또 체육을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러워했다. ▲ 스포츠 클럽 활동의 하나로 요가도 이뤄지고 있다. 편안한 복장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 지난 2015년도 서울시경찰청장배 청소년야구대회에 한대부중 야구(남자)팀의 경기 출전 모습. 야구팀은 창단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대부중 제공) 사명감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노지호 동문과 함께해온 체육 교사들의 몫이 크다. 석현호 체육부장과 권창훈 선생 등 한대부중 체육 교사들의 열의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대부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두 체육 교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식야구협회장 대회 안중근 피스컵, 소프트볼 협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회 등에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스스로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등수를 떠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씨와 석 씨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체육교육 활성화 지원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한대부중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의 체육 활동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체육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죠. 일반 교과목 선생님들은 성적 상승에 목표를 둘 것이고, 체육 선생님들은 체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가르칩니다” 노지호 동문은 “현재 한대부중의 체육 학습 프로그램과 면학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말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체육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은퇴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체육 선생님들이 계속 학생들을 위해 활발한 체육 활동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노 동문의 말 속에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배어 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9-03 15

[학생][사랑, 36.5°C] 기부에서 찾은 삶의 비전

기부란 성공한 후에 하는 것,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이 기부의 공식을 깨트린 사례가 있다. 우리 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서예슬 학생이 그 주인공. 서예슬 학생은 지난해부터 학교 축제기간 중 플리마켓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액세서리들을 판매해 그 수익금을 ‘또래장학금’으로 학교에 기부해 왔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서예슬(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 14) 학생 Q. 축제기간을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흔치 않은 경우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요즘은 학교에 다니며 창업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저 역시 1학년 때부터 친언니와 함께 액세서리를 만들고 판매하는 온라인 편집샵 ‘딥브로우(Deepbrow)’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언니랑 제가 모두 디자인 전공이라 전공을 활용해 창업을 한 것이죠.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학교 축제기간에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학생들로부터 얻은 수익금이니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부를 하려고 결심했습니다. 때마침 저희 판매 부스 앞에 학교의 ‘또래장학금’ 홍보 부스가 있어서, 결심한 것을 쉽게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죠. Q. ‘또래장학금’이란 무엇인가요? A. 학교 사회봉사단에서 기획한 모금 캠페인인데,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차원에서 기획했다고 들었습니다.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몇 천원을 기부하기도 하고, 공강 시간을 이용해 식당 설거지를 하면서 받은 식권을 기부하기도 하죠. 학생들이 기부한 액수만큼 학교도 같은 금액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기금을 마련해, 학기말에 형편이 어려운 학우를 돕는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기부경험을 쌓게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부도 습관이니까요. Q. 재학생은 장학금 수혜자가 되기는 쉬워도 장학금 기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기부를 결심하기까지 특별히 영향을 준 사람이나 계기가 있을까요? A. 나누고 베푸는 삶에 대해 늘 비전을 품고 있었어요. 신앙의 영향도 있고, 가수 션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기와 부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 부유하게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어려움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죠. 지금은 작은 규모지만 제 사업을 하고 있으니 등록금이랑 용돈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저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고 다시 복학하고 그러면서 어렵게 등록금을 마련했거든요. 어려운 친구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 서예슬 학생은 "저는 기부가 누구보다 제 자신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기부에 동참하면서 삶의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고 말했다. Q. 자신도 넉넉지 않으면서 남을 돕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막상 기부하려고 마음먹었다가 다시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습니까? A. 쉽게 번 돈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돈의 가치를 잘 알죠. 하지만, 저는 제 사업이 있으니까 어디서든 또다시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거든요. 그런 자신감이 있어서인지 별로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기부였어요. 그런데 제가 기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잖아요. 너무나 만족감이 컸습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도 당당히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망설이기보다는 액수가 너무 적어서 오히려 부끄럽고 아쉬웠습니다. Q. 친구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같이 해보고 싶다는 친구는 없었나요? A. 올해로 2년 째 축제 때 번 돈을 기부한 건데요, 처음엔 워낙 부끄러운 액수이기도 하고, 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알게 되었는데, 다들 대단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같이 기부에 참여하자고 말하기는 어렵더군요. 학생들이라 워낙 작은 자본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기부까지 생각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은 액수라도 동참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기부가 누구보다 제 자신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기부에 동참하면서 삶의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기부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A. 나눔을 실천하면서 인생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의 작은 보탬과 손길도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요. 처음엔 기부라는 것이 뜬 구름처럼 막연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기부를 해보니, 나도 할 수 있는 거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꿈을 더 크게 갖고 넓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졸업하신 선배님들의 기부는 큰돈이어서 후배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저 같은 학생의 소액 기부는 솔직히 기부하는 제 자신에게 더 큰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행해 나가는데 굉장히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학우들에게도 기부문화를 널리 퍼뜨리고 싶습니다. 동행한대 2018년 Winter (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기부의 무한 변신 (3)

프레디 머큐리의 하얀 민소매 셔츠,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처럼 우리는 때로 옷으로 사람을 기억한다. 옷만큼 단번에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또 있을까. 최근 권오수 대표는 우리 대학 졸업예정자 20명에게 권오수클래식의 맞춤 정장을 기부했다. 청년들을 향해 그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을 보낸 것이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권오수 권오수클래식 대표 Q. 졸업생에게 정장을 기부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A. 요즘은 대부분 기성복을 사서 입지만,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이 양복을 맞춰 주셨지요. 그 옷 한 벌 해 입히면서 사회로 진출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아들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으며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일을 참 좋아합니다. 1년 열두 달 쉬지 않고 일해 왔지만 이 일이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이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민하던 중 우리 청년들을 생각해냈죠. Q.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 그 일을 통해 기부도 한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부에 대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양복 기술이 참 좋다고 자부합니다. 명동의 쇼윈도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조용필 씨, 이주일 씨, 임동진 씨 등 유명 연예인들에게 턱시도를 맞춰주며 돈도 제법 벌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차피 인생이란 게 태어나서 갈 때는 옷 한 벌 입고 가는 건데, 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눈을 감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오수클래식’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장애인 사업장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거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죠. 그런데 저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내가 자주 아팠고, 한 15년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기부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학생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이번 기부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학생들에게 손수 옷을 지어 입히며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할 시기에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마침 자형이 양복점과 양재학원을 하고 있어서 자연히 이쪽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렇게 한평생 열심히 살다 이제 한양대 졸업생들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첫 걸음이라 더 많이 돕지 못하고 20명의 학생만을 선발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주로 선발을 했습니다.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건 좋은 기술 하나뿐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사용하고 싶습니다. Q. 학생들이 매장에 와서 치수를 재고 옷을 입어보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자로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학생들 연령대에서는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선지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하더군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앞으로 이 기부가 좀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졸업생들이 일정금액을 기부하고 우리는 재능을 기부해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 기부를 확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복 재킷 안에 기존의 라벨 대신 [한양대-권오수-기부자 이름]을 새겨 ‘선배가 해준 옷’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가 해준 옷을 입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한양대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고 값진 일인가요? ▲ 권 대표는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라고 말한다.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기부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수는 죽어도 노래는 남잖아요. 저는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 기부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저는 저의 재능을 선한 일에 보탬으로써 이 사회에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가게들의 기부는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큰돈을 기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대기업보다 저희 같은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대기업의 기부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밝은 에너지로 넘쳐나겠어요? 저는 작은 기부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inter (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삶 속에 스며든 사랑의 가르침

지난해 3월 윤성태 부회장의 기부로 제2공학관에 ‘Huons FABLAB(이하 팹랩)’이 문을 열었다. 팹랩은 ‘제작’을 뜻하는 단어 Fabrication과 '연구소'를 뜻하는 단어 Laboratory의 합성어로, 지난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처음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윤성태 부회장은 팹랩 관련 기부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교에 총 10억 원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각종 동문 모임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등 모교와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오고 있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윤성태(산업공학 83)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Q. 부회장님께서 기부한 공간에서 후배들이 실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이 공간은 학생들이 실습도 하고 수업도 받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팅기가 갖춰져 있어 자신이 설계한 도안으로 직접 제작까지 해볼 수 있는 공간이죠.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책으로만 배웠지 실습하는 게 참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 공간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자기가 설계한 걸 제작해보며 요긴하게 잘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로서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대학의 학습이 실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한데요, 학교에서 공간을 마련해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저로서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최근 5~6년간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해오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처음에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되면서 사업에만 전념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모교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끼거든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83학번 홈커밍데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83학번 동기회장을 맡았었는데 학교와 계속 연을 이어오다 보니 학교의 속사정도 좀 더 잘 알게 되고, 대출받아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도 듣게 되었죠. 알면 알수록 어려움이 더 많이 보이니 회피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 학교랑 인연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Q.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친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선배 한 분이 계셨습니다. 황성박 회장님이라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저희 산업공학과 동문회 회장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재학 시절 그분이 후배들을 위해 참 열심히 활동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후배들 만나서 술도 사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나도 언젠가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진짜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네요. Q. 말씀을 듣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선배나 학교의 잠재적 교육에 의해 전달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께서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기업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대학 졸업하면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그런 평범한 삶을 꿈꿨던 학생이었는데, 인생이란 게 예측한대로 흐르지 않더군요. 뜻하지 않게 선친이 경영하시던 회사를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큰 위기도 여러 번 견디면서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니 봉사의 기회가 주어져 이렇게 기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녹여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가 모교에서 나왔다는 걸 요즘 부쩍 느끼며 삽니다. Q. 제약업계 10위권의 휴온스글로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실질적 대표이신데, 직함이 부회장이십니다. 회장직을 공석으로 두고 계속 부회장직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실무를 디테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1997년 영업적자였던 회사를 맡아 지금은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가 현장을 챙기고 있죠. 부회장으로 있는 것이 실무를 챙기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의약품회사에서 이제는 의료기기와 화장품, 식품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헬스 케어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가 실무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회장은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잖아요. 하하하 ▲ 윤 동문은 "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다. Q. 부회장님에 대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결정하는 경영인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한양대학교의 실용학풍에서 영향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이나 실용 학풍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한양 동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코스닥 상장사 하이랭커 중에 우리 한양대학교 출신의 대표들이 많고, 벤처기업이나 창업부문에서도 우리 학교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요. 4차 산업이 각광받는 요즘,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과 실용학풍이 그러한 시대적 부름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고, 요즘처럼 산업이 고도화되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동문을 주축으로 한 여러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고, 한양미래전략포럼이나 바이오 포럼 등의 모임을 통해 동문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먼저 기부해보신 선배로서 기부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잠재적 기부자인 우리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사회가 각박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작게,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을 학교가 시스템적으로 마련해주면 더욱 좋겠죠. 우선은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작을 하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면서 그렇게 싹이 틀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Winter(제12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