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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21

[동문][도전#해시태그] 미디어와 커머스의 조우

미디어 커머스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미디어 콘텐츠와 커머스(상거래) 상품의 융합이 주목받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 미디어에 스토리를 입힌 동영상을 게시해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상품 정보를 전달한다.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글. 유승현 사진. 안홍범 ▲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 레드오션 속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다 퍼플오션(Purple ocean)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퍼플링크도 마찬가지다. 퍼플링크는 이미 널려 있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요구) 중 ‘언멧니즈(Unmet needs, 미충족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회사 퍼플링크의 브랜드는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뷰티 브랜드 ‘낫포유’, 리빙 브랜드 ‘데이포유’와 향수 브랜드 ‘프라그라피’가 있다. 낫포유(NOT4U)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뷰티라이프’를 지향한다. 주력 제품은 이중 복합필터를 사용해 수돗물의 잔류 염소와 녹물을 제거하고 비타민C를 공급하는 ‘비타클렌징 샤워’, 연고처럼 바르는 여드름 패치 ‘리얼스킨패치’ 등이다. 생활에 필요한 무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데이포유(DAY4U)는 '당신에게 필요한 삶, 안심되는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제품으로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세탁할 수 있는 ‘런드리볼(세탁볼)’과 광합성 작용으로 유해물질을 분해하고 악취를 제거하는 ‘광촉매탈취제’ 등이 있다. 프라그라피(Fragraphy)의 핵심 가치는 ‘나를 표현하는 향기’다. 이성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춰 두 종류의 니치 향수(소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 ‘시그니처 블랙(남자 호감 향수)’과 ‘어나더 레이디(여자 호감 향수)’를 선보였다. 새로운 트렌드, 콘텐츠 마케팅 조관제 대표가 마케팅에 발을 디딘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그는 ‘딩고 뮤직’으로 잘 알려진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업부에 입사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개인을 뜻한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팀장을 맡게 된 조관제 대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인플루언서로 양성했다. 회사의 도움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 구독자에게 제품을 홍보한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유통하며 뉴미디어 마케팅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특히 연예인 위주였던 인플루언서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보다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콘텐츠 마케팅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는 조관제 대표 ▲#소비자 #사로잡는 #라이프스타일 #탄생 퇴사 후 창업에 도전하다 조관제 대표는 회사를 나와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 대표(경제금융학 05)와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를 창업했다.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경험을 살려 남성 화장품 브랜드 블랙몬스터를 기획했다. 커머스 운영부터 제품 마케팅까지 도맡아 3개월 만에 15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 “여기에 만족할 수만은 없었어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제가 직접 회사를 꾸리고 싶었어요. 블랭크를 퇴사하고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커머스 회사인 퍼플링크 창업을 준비했어요.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조관제 대표는 반드시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전의 경험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관제 대표는 수중에 있는 돈과 5000만 원의 청년 창업자금 대출로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첫 제품을 준비하는 데 전부 사용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불안했어요. 처음 창업하고 3개월 동안은 전기·수도·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미납했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수중에 2300원밖에 없는 거예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컵라면을 사니 딱 50원이 남더군요.” 좌절의 쓴맛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작한 비디오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첫 제품 출시 다음 날 판매율이 전날 대비 30% 뛰었다. 우려가 기대로 바뀐 순간이었다. 미처 몰랐던 욕구를 발견하는 과정 퍼플링크의 마케팅은 다소 독특하다. 제품 기획 전 단계부터 콘텐츠에 제품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는지 고려한다. 좋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콘텐츠 마케팅 적합성이 떨어지면 만들지 않는다. “동시에 소비자도 몰랐던 히든니즈(Hidden needs)를 파악하는 데 힘써요. 네이버,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검색량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경쟁 제품의 후기, 블로그 포스팅도 확인해요. 그다음으로 메시지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죠.” 낫포유 제품 ‘클리어바디미스트’ 광고는 소비자의 큰 관심을 샀다. 클리어바디미스트는 등과 가슴에 나는 여드름 제거에 유용하다. 퍼플링크는 제품의 성능을 알리기 위해 바디 트러블로 고민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했다. 최종 선발된 한양여자대학교 축구부 선수가 촬영한 제품 사용 과정이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출시 1년 만에 20만 개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 퍼플링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랏빛으로 물들일래요 퍼플링크는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채울 수 있는 종합 커머스 기업’을 꿈꾼다. 현재 다양한 브랜드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 뷰티와 리빙을 넘어 패션, 푸드와 펫 등 소비자 니즈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오는 2020년까지 10개 이상의 브랜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퍼플링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고 흥미를 느낄 만한 메시지를 콘텐츠로 풀어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고객이 꾸준히 퍼플링크 라이프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퍼플링크는 설립 2년 만에 1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조관제 대표의 자기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퍼플링크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크고있어요. 제 성장이 회사의 성장보다 느려지는 순간 과감히 회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때는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해요. 퍼플링크에서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회사의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3-04월 (제247호) 이북 보기

2019-03 19 중요기사

[동문]'운동장이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인 학교를 만들다'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의 수업 분위기는 뭔가 특별하다. 주요 교과목에 열 올리는 요즘 중∙고교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적극적인 체육 활동에 그 이유가 있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학생들은 체육 정규교육과정 수업을 넘어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 조성엔 한대부중 교장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과 체육 과목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체육시간이 즐거운 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체육학으로 학사(76학번)부터 박사 학위 과정까지 밟은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은 국내에 흔치 않은 체육 전공 교장이다. 후학양성이 보람된 일이라 여겨 노 동문은 체육 교사로 교직에 몸을 담아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교장 자리까지 왔다. 체육학을 전공한 교장 덕인지 한대부중은 다른 학교에 비해 '스포츠클럽'이라 불리는 체육 활동이 활발하다. “한창 클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폭력과 같은 각종사고가 줄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더 즐겁게 합니다.” 이른 시기부터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 학생들에게 예체능 교육은 사치라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건강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한대부중의 체육 활동 프로그램. 현 공교육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에서 만난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 학생들이 생활체육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건강과 동시에 교육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체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내 수업부터 방과 후 활동으로 야구, 농구, 배드민턴, 풋살과 요가, 방송댄스, 치어리딩까지 다양한 범위의 스포츠 활동이 꾸려져 있어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한대부중 내 체육 교사들뿐 아니라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토요 스포츠 클럽도 운영해 방과 후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연습량이 부족한 학생들도 운동할 수 있다. 또 체육 활동을 교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시합 및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미 한대부중 학생들은 여러 종목에서 많은 수상 경력을 쌓고 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체육이 아닌 국∙영∙수 같은 교과목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2배 이상이다. “농구, 축구 시합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듯이 학생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연식야구(여자) 수업에 방문한 강병철 전 프로야구 감독과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한대부중 여자 연식야구팀은 매년 교육청이 주관하는 ‘안중근 피스컵’에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자 연식야구팀의 김소연(한대부중 3) 양은 연식야구 외 축구와 배드민턴 등 다양한 체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다 같이 협동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도 많이 좋아졌어요.” 김채원(한대부중 3) 양은 체육에는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처음에 어려워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차근히 다져졌어요.” 또 체육을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러워했다. ▲ 스포츠 클럽 활동의 하나로 요가도 이뤄지고 있다. 편안한 복장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 지난 2015년도 서울시경찰청장배 청소년야구대회에 한대부중 야구(남자)팀의 경기 출전 모습. 야구팀은 창단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대부중 제공) 사명감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노지호 동문과 함께해온 체육 교사들의 몫이 크다. 석현호 체육부장과 권창훈 선생 등 한대부중 체육 교사들의 열의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대부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두 체육 교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식야구협회장 대회 안중근 피스컵, 소프트볼 협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회 등에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스스로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등수를 떠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씨와 석 씨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체육교육 활성화 지원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한대부중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의 체육 활동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체육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죠. 일반 교과목 선생님들은 성적 상승에 목표를 둘 것이고, 체육 선생님들은 체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가르칩니다” 노지호 동문은 “현재 한대부중의 체육 학습 프로그램과 면학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말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체육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은퇴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체육 선생님들이 계속 학생들을 위해 활발한 체육 활동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노 동문의 말 속에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배어 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9-03 15

[동문][사랑, 36.5°C] 기부의 무한 변신

프레디 머큐리의 하얀 민소매 셔츠,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처럼 우리는 때로 옷으로 사람을 기억한다. 옷만큼 단번에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또 있을까. 최근 권오수 대표는 우리 대학 졸업예정자 20명에게 권오수클래식의 맞춤 정장을 기부했다. 청년들을 향해 그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을 보낸 것이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권오수 권오수클래식 대표 Q. 졸업생에게 정장을 기부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A. 요즘은 대부분 기성복을 사서 입지만,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이 양복을 맞춰 주셨지요. 그 옷 한 벌 해 입히면서 사회로 진출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아들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으며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일을 참 좋아합니다. 1년 열두 달 쉬지 않고 일해 왔지만 이 일이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이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민하던 중 우리 청년들을 생각해냈죠. Q.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 그 일을 통해 기부도 한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부에 대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양복 기술이 참 좋다고 자부합니다. 명동의 쇼윈도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조용필 씨, 이주일 씨, 임동진 씨 등 유명 연예인들에게 턱시도를 맞춰주며 돈도 제법 벌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차피 인생이란 게 태어나서 갈 때는 옷 한 벌 입고 가는 건데, 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눈을 감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오수클래식’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장애인 사업장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거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죠. 그런데 저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내가 자주 아팠고, 한 15년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기부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학생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이번 기부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학생들에게 손수 옷을 지어 입히며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할 시기에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마침 자형이 양복점과 양재학원을 하고 있어서 자연히 이쪽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렇게 한평생 열심히 살다 이제 한양대 졸업생들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첫 걸음이라 더 많이 돕지 못하고 20명의 학생만을 선발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주로 선발을 했습니다.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건 좋은 기술 하나뿐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사용하고 싶습니다. Q. 학생들이 매장에 와서 치수를 재고 옷을 입어보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자로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학생들 연령대에서는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선지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하더군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앞으로 이 기부가 좀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졸업생들이 일정금액을 기부하고 우리는 재능을 기부해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 기부를 확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복 재킷 안에 기존의 라벨 대신 [한양대-권오수-기부자 이름]을 새겨 ‘선배가 해준 옷’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가 해준 옷을 입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한양대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고 값진 일인가요? ▲ 권 대표는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라고 말한다.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기부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수는 죽어도 노래는 남잖아요. 저는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 기부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저는 저의 재능을 선한 일에 보탬으로써 이 사회에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가게들의 기부는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큰돈을 기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대기업보다 저희 같은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대기업의 기부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밝은 에너지로 넘쳐나겠어요? 저는 작은 기부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inter (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삶 속에 스며든 사랑의 가르침

지난해 3월 윤성태 부회장의 기부로 제2공학관에 ‘Huons FABLAB(이하 팹랩)’이 문을 열었다. 팹랩은 ‘제작’을 뜻하는 단어 Fabrication과 '연구소'를 뜻하는 단어 Laboratory의 합성어로, 지난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처음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윤성태 부회장은 팹랩 관련 기부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교에 총 10억 원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각종 동문 모임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등 모교와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오고 있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윤성태(산업공학 83)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Q. 부회장님께서 기부한 공간에서 후배들이 실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이 공간은 학생들이 실습도 하고 수업도 받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팅기가 갖춰져 있어 자신이 설계한 도안으로 직접 제작까지 해볼 수 있는 공간이죠.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책으로만 배웠지 실습하는 게 참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 공간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자기가 설계한 걸 제작해보며 요긴하게 잘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로서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대학의 학습이 실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한데요, 학교에서 공간을 마련해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저로서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최근 5~6년간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해오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처음에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되면서 사업에만 전념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모교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끼거든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83학번 홈커밍데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83학번 동기회장을 맡았었는데 학교와 계속 연을 이어오다 보니 학교의 속사정도 좀 더 잘 알게 되고, 대출받아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도 듣게 되었죠. 알면 알수록 어려움이 더 많이 보이니 회피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 학교랑 인연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Q.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친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선배 한 분이 계셨습니다. 황성박 회장님이라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저희 산업공학과 동문회 회장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재학 시절 그분이 후배들을 위해 참 열심히 활동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후배들 만나서 술도 사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나도 언젠가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진짜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네요. Q. 말씀을 듣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선배나 학교의 잠재적 교육에 의해 전달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께서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기업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대학 졸업하면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그런 평범한 삶을 꿈꿨던 학생이었는데, 인생이란 게 예측한대로 흐르지 않더군요. 뜻하지 않게 선친이 경영하시던 회사를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큰 위기도 여러 번 견디면서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니 봉사의 기회가 주어져 이렇게 기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녹여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가 모교에서 나왔다는 걸 요즘 부쩍 느끼며 삽니다. Q. 제약업계 10위권의 휴온스글로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실질적 대표이신데, 직함이 부회장이십니다. 회장직을 공석으로 두고 계속 부회장직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실무를 디테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1997년 영업적자였던 회사를 맡아 지금은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가 현장을 챙기고 있죠. 부회장으로 있는 것이 실무를 챙기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의약품회사에서 이제는 의료기기와 화장품, 식품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헬스 케어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가 실무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회장은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잖아요. 하하하 ▲ 윤 동문은 "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다. Q. 부회장님에 대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결정하는 경영인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한양대학교의 실용학풍에서 영향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이나 실용 학풍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한양 동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코스닥 상장사 하이랭커 중에 우리 한양대학교 출신의 대표들이 많고, 벤처기업이나 창업부문에서도 우리 학교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요. 4차 산업이 각광받는 요즘,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과 실용학풍이 그러한 시대적 부름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고, 요즘처럼 산업이 고도화되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동문을 주축으로 한 여러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고, 한양미래전략포럼이나 바이오 포럼 등의 모임을 통해 동문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먼저 기부해보신 선배로서 기부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잠재적 기부자인 우리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사회가 각박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작게,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을 학교가 시스템적으로 마련해주면 더욱 좋겠죠. 우선은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작을 하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면서 그렇게 싹이 틀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Winter(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1 중요기사

[동문]그림책 작가가 된 건축학도

한 청년이 책 <그림책의 모든 것>을 쥐고 건축학부 수업이 있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과학기술관 건물로 들어간다. 그림책의 대표 이론서로 불리는 책을 헤질 때까지 읽던 그는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 동문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다. 어떤 계기였을까? 지난 8일 학교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은 학부 시절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위를 봐요!>를 출판했다. 정 동문은 두 살 때 사고를 당한 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병실에서 할 일이 없어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푹 빠진 후 커서도 보게 됐죠.” 그는 크면서 건축가라는 꿈이 생겼다. 한양대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학부 시절 건축회사 인턴을 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가고 싶던 건축 회사에서 7개월 정도 인턴을 했는데 제 생각과 업무가 달라 실망했죠.” ▲ 책 <위를 봐요!>의 한 장면이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정진호 동문 제공) 반면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 출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당시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님이 개설한 동화책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교수님께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제가 만든 그림책들을 보여드렸죠.” 정 동문의 작품을 높이 산 강 교수는 그림 파일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 “그중 한 출판사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죠. 그렇게 출판한 책이 <위를 봐요!>입니다.” ▲ 그림책 작가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 자신의 책 <벽>을 보고 있다. <벽>은 3차원의 입체공간을 창의적으로 보여준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 동문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위를 봐요!>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주시한다. 이후 출판한 책 <벽>도 마찬가지다.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3차원의 입체 공간을 표현했다. 두 책 모두 건축학도의 시선이 녹아있는 점이 특징이다. 건축가라는 꿈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정 동문에게 건축은 여전히 작품 속에 살아있다. 정 동문의 두 작품은 세계 최고 권위의 그림책 상인 ‘볼로냐 라가치’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위를 봐요!>는 지난 2015년 오페라 프리마 부문 관심작에, <벽>은 작년 ‘예술〮건축/디자인(ART, ARCHITECTURE AND DESIGN)’ 부문 스페셜멘션(특별언급)에 선정됐다. ▲ 책 <벽>의 한 장면이다. 데뷔 5년 차 작가인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목표는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다. (정진호 동문 제공) 정 동문은 평균 1년에 한 권의 창작 그림책을 출판한다. 주로 연초에는 작품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림책 수업과 강연을 나간다. 정 동문은 현재 작업 중인 책에 대해 살짝 귀띔했다. “지금까지는 건축의 모습을 책에 많이 담았지만, 이번엔 도시의 모습을 담으려고 해요. 제목은 ‘까만 도시’로, 검은색 도시가 색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이제 데뷔 5년 차인 정 동문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다. “예전에 존경했던 교수님이 ‘꾸준히 그 자리에서 노력한 사람이 대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도 거창한 목표 없이 작가로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한양대 학생들에게 “전공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오히려 전공과 다른 일을 택했을 때 자신만의 특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양하게 도전해 보고 겁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정 동문이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10 중요기사

[동문]대한민국과 한양대를 빛낼 예술인, 박지윤

국악(國樂)은 나라의 고유한 음악이다. 대표적인 국악기인 가야금은 900년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에 가야금이 따분하다는 시선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던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은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추구하며 가야금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에 알렸다. 곰삭은 소리를 내기까지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던 박 동문은 음악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는 등 악기 연주에 재능을 보였다. 이모부이자 인간문화재인 고흥곤 선생의 가르침으로 가야금을 중학교 때 시작했고,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피아노로 쇼팽의 교향곡을 치던 아이에게, 단선 악기인 가야금은 상대적으로 쉬웠죠.” ▲지난해 12월에 열린 서초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25현 가야금'으로 새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 가야금에 매력을 느낀 박지윤 동문은 화려한 가락이 돋보이는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30년간 끊임없는 연주자의 길을 달렸다. “가야금에도 산조가 다양해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때까지는 김죽파류를 연주했는데, 이와 굉장히 상반되는 산조인 김병호류도 연주해보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김병호류 산조를 공부하고, 가야금으로 '곰삭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곰삭은 소리'는 무르익는다는 뜻으로, 손 끝에서 나는 성음이 깊을 때 사용한다. 서양 음악과의 만남 세계가 변화하는 만큼, 가야금 또한 다양한 형태로 개량됐다. 박 동문은 ‘줄의 수에 따라 17현, 18현, 25현 가야금 등이 있고, 25현은 거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퓨전 국악이나 협주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전통음악을 고집하지 않되 서양음악을 그대로 따라 하지도 않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세계적인 음악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죠. 저는 배경음악은 세계적이지만 익숙하고도 가야금이 주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지난해 12월 서초교향악단과 함께 독주회를 열었다. 이는 박 동문의 명성을 드높이는 기회가 됐고, ‘2019년 대한민국을 빛낼 인물·브랜드 대상’ 중 ‘예술인 부문 대상’ 수상의 명예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아시아 금(琴) 교류회 연주, 음반 발매, 중국 난닝에서 개최하는 축제 참여 등 서양 음악과 조화가 어우러진 가야금 연주를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잘 가르치는 교수 박 동문은 모교인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출강하면서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로 가톨릭대학교 통합예체능과목 교수로 활동하며 동시에 한양대에서 강사로도 나서고 있다. 박 동문은 '제일 뿌듯한 순간은 가르쳤던 학생들이 콩쿠르나 정기 연주회 때 빛날 때'라며, 지금처럼 한양대가 국악으로 빛나기 위해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지윤 동문의 최종 목표는 '국악을 통해 한양대의 이름을 드높이고, 대한민국을 빛낼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자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저의 꿈도, 학생들의 꿈도 모두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9-02 21

[동문][NOW 꿈꾸는 사람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양인

2006년 한국인 최초 UN 사무총장이 선출됐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기뻐했다. 국제기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 위상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세계를 누비는 일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의 일원인 이영진 동문은 그 꿈의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라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글. 강숙희 사진. 안홍범 ▲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 책임과 어려움 있어도 보람과 성취 커 “처음엔 프로젝트사무소로 작게 시작된 곳이에요. 그러다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선출되면서 한국 내 UN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고, 연맹에서도 마침 아시아·태평양권에 사무국을 찾고 있던 상황이라 서로의 요구가 맞아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에 이어 2015년에 세 번째로 한국 서울에 사무국을 차린 거죠.” 이영진 동문이 활약하고 있는 유엔협회세계연맹은 UN과 별도로 설립된 독립적 비영리 국제기구다. UN의 활동과 비전을 지지하고 이를 시민사회에 알리며 서로를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유네스코와 유니세프 등 또 다른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는 교육 주임으로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캠프와 UN본부 연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한국 대학생 대표단을 UN본부에 파견해 관계자들과 토의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을 돕고 있다. 이는 UN이 청년들의 생각을 소중하게 여겨 가능한 일이다. 그와 UN의 인연은 꽤나 길고도 깊다. 고등학교 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모의 UN 활동을 한 경험을 계기로 국제학부에 진학했다.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한양대에 모의 UN을 만들어 사무총장으로서 매년 모의 UN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렇게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연맹 관계자의 추천으로 청소년 캠프 강사 역할을 맡게 됐다. “연맹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꼭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여기가 아니었더라도 국제기구 어딘가에서는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국제기구라고 해서 모두 직원이 많은 건 아니다. 서울 사무국 직원만 해도 여섯 명이 전부다. 이는 뉴욕과 제네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반 기업에 비해 담당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넓고 그로 인한 책임감과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워낙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데다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다. 뜨거운 가슴으로 교류하고 토의하라 이영진 동문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5년간 아프리카 수단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언어를 익히는 게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한국에서처럼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어 무척 즐거웠다. 방과 후엔 늘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기고 운동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사귀고 교류하며 국제적인 시야를 갖췄다. 한양대 재학 시절, 대부분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국제학부 친구들과도 그런 면에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워낙 열정적인 성격에 활동 분야도 넓어 학생회와 영어 토론 동아리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교류하고 토의하는 복합적인 활동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애써 모의 UN을 한양대에 도입한 것도 그런 열정의 일환이다. “다른 학교에는 있는데 왜 우리 학교에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친한 친구와 함께 임시로 사무국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UN 의제를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참가자를 모집했죠. 모든 회의가 영어로 진행됐는데, 무려 백 명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했어요. 정말 가슴 뜨거운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모의이긴 했지만 실제 UN 의제를 가지고 젊은 시각으로 다시 토의하는 건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 이 동문은 "아이들이 진로를 정하고 꿈을 꾸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캠프에 참여했다가 중요한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걸 보면 감동적이더라고요." 라고 말한다. 교육으로 변화하는 세상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능력은 바로 소통과 설득 그리고 이해다. 그런데 열정과는 별도로 이영진 동문은 의외로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발표하고 토의하면서 위축되기보다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렇게 딛고 일어난 힘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전까지 참여한 프로그램이 무려 20여 개. 난민 문제와 환경 등 국제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를 조율하고 고민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보람을 느껴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에게 미치는 교육의 효과였다.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된 그는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진로를 정하고 꿈을 꾸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캠프에 참여했다가 중요한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걸 보면 감동적이더라고요.” 지식 습득이 아닌 토의와 협상을 통해 교류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을 느낀다는 이영진 동문. 처음엔 자료 찾는 일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노하우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주 놀라곤 한다. 물론 충분한 과정을 겪어야 가능한 일이다. ▲ 2017 제8회 WFUNA 청소년 캠프 ▲ 2018 UN청소년환경총회 대표단 워크숍에서 이영진 동문이 발표하고 있다 ▲ 2019년 2월에 뉴욕 UN본부로 출국하는 제5기 WFUNA UN본부 한국 대학생 대표단 발대식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 많은 이들이 국제기구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의 자세한 활동은 알지 못하지만 그 명예에 대한 선망만은 명확하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기구라 해도 협의 과정을 주로 거치는 만큼 실제론 정치적 경쟁도 치열하다. 스트레스도 잦고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사소하게는 연맹에서 국제회의를 할 때 시차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아 밤 10시에 회의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국제기구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다. 힘든 상황을 잊게 할 만큼 보람과 성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경쟁률도 무척 높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연맹의 경우는 영어와 불어가 주 언어라 둘 중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팁은 언어 능력 중에서도 보고서 작성이 많은 만큼 쓰기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외에도 팀워크가 필요하고 창의성도 갖춰야 해요. 또 학습에 대한 열의도 있어야 하고요.” 꿀팁 하나 더. 국제기구라도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곳을 정해 해당 기구의 업무 분위기나 실제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인턴십을 통해 직접 업무 분위기를 파악해보길 추천한다. 현재 유엔협회세계연맹에도 한양대 학생이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유엔의 경우 관련 사이트(careers.un.org)에 가면 직무기술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으니, 이를 분석해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취업을 앞두고 하는 준비가 모두 결과 중심이라 가끔은 안타까워요. 수료증 하나 더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어떤 활동이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그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배우는 경험과 교류가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갈 큰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 역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등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 이영진 동문.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활짝 꽃피우는 일은 그의 말대로 과정을 즐기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사랑한대 2019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9-02 21

[동문][도전 #해시태그] 창업, 농업을 만나다

구한솔 ㈜농사청 대표가 한국 농업의 새 길을 열고 있다. 농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농자재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을 준비 중이다. 농사청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건강과 여유를 찾아주자’는 작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글. 유승현(학생기자) 사진. 안홍범 ▲왼쪽부터 농사청의 유지원 팀장, 구한솔 대표, 백가영 팀원 ▲ 구한솔 ㈜농사청 대표(파이낸스경영학 12) 농업을 사랑하는 청년들 농사청은 ‘농업을 사랑하는 청년들’을 줄인 말이다. 구한솔 대표(파이낸스경영학12)를 중심으로 2018년 초 유지원 팀장(중앙대 경영학 16)과 백가영 직원(중앙대경영학 16)이 만나 회사를 꾸렸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도시농업 활성화, 가드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농사청은 첫 프로젝트로 온라인 쇼핑몰 ‘팜디포’를 기획했다. 기존 오프라인에서 유통하던 농자재의 판매 범위를 온라인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팜디포 홈페이지(farmdepot.co.kr)에는 홈 가드닝용품부터 씨앗, 모종, 비료, 농기구, 묘목까지 다양한 제품이 올라와 있다.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활발한데, 유독 농업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복잡한 농자재 유통 구조로 인해 소비자는 불편을 겪고, 생산자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소비자가 다양한 농자재를 쉽고 빠르게 구매하고 나아가 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떠올렸습니다. ”현재 팜디포는 농업 자재 구비와 쇼핑몰 홈페이지 단장을 마친 상태다. 오는 3월 초 론칭 이벤트와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전업 농부뿐 아니라 농사를 취미로 즐기는 도시인 모두 만족할만한 농업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업에 빠진 시골 청년 구한솔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반년 준비했고, 신림동에서 1년 반가량 행정고시 공부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주어진 내용을 익히는 것보다 직접 기획하고 꾸리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그래서 수험 생활을 접고 꿈을 찾는 여정을 떠났다. 가장 먼저 동문 스타트업 기업이자 인공지능(AI) 전문 개발사인 ‘블랙루비스튜디오’의 기획팀 인턴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어 사회혁신 비즈니스 동아리(SEN)에도 들어갔다. 이곳에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 비즈니스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유지원 팀장, 백가영 직원과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구한솔 대표가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류창완 산업융합학부 교수의 농업 벤처 서적 집필을 보조하면서부터다. 프로젝트를 도우며 국내 농업 관련 정책이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약한 한국 농업 벤처의 현실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준 건 피부로 느낀 농촌 생활이었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시골에서 자랐다. 농사를 짓던 외할아버지의 논과 밭에서 자주 뛰어 놀았다. 어릴 적부터 농촌이 친숙했다. 덕분에 농업이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생각이 비슷했던 유지원 팀장과 백가영 직원이 뜻을 함께했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1차 산업입니다. 그만큼 농업은 중요한 산업이죠. 하지만 정부에서는 농민을 지원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경우 농업 벤처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업을 비즈니스로 접근해 농업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농사청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세대융합 창업캠퍼스 사업에 선정돼 약 9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들은 정부과제를 수행하며 창업을 이어가고 있다. ▲ #팜디포 #농자재 온라인 플랫폼 #farmdepot.co.kr 창업하기 좋은 한양대 구한솔 대표는 지난해 4월 개관한 한양대 창업기숙사 ‘247 스타트업 돔’에 1기로 입사했다. 247 스타트업 돔은 우수 학생창업기업의 발굴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다. 매년 30명을 선발해 1년간 기숙사실과 전용 창업 활동 공간 등을 제공한다. “247 스타트업 돔에는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 대표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배울 수 있는 데다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는 창업지원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업의 방향을 잡고 회사 운영 방법을 터득하는 등 창업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한양대는 창업 엑셀러레이팅 제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학생 입장을 고려한 창업 컨설팅도 진행됩니다. 저는 ‘점심한끼’ 프로그램에 참여해 창업지원단 교수와 식사하며 편하게 아이디어를 상담받기도 했습니다. 창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어요.” 또 창업지원단 ‘한양스타트업아카데미’에서 인사를 비롯한 재무와 세무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힘들어도 즐거우니까 전공을 살리면 금융 회사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도 있었을 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실제로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차라리 취업을 할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은 확신으로 변했다. 농자재 업체 종사자와 농부 등 업계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막연했던 일도 점차 현실화돼 갔다. 약 열 곳의 기업과 제휴를 맺고, 온라인에서 판매할 농자재도 구비했다. “지난해 1학기까지 1년간 창업과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즐거웠어요.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이어서 힘이 났죠.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구한솔 대표는 직접 농사도 짓는다. 회사 건물 베란다에서 오이, 토마토, 나팔꽃, 채송화 등을 키우고 있다. 불편한 점을 직접 느껴보며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게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루는 잘 자라던 오이에 반점이 생기더니 이틀 만에 죽었어요. 이유를 몰라 답답했죠. 그때 농사 관련 지식이 부족한 도시농부를 위해 농사 지식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올해는 성동무지개텃밭을 분양받아 직접 농사를 짓고 수익을 학교에 기부할 계획이다. 도시농업 선구자를 꿈꾸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은퇴 후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도시농업을 장려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8년 초 ‘제2차 도시농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도농 상생 사업 기반을 마련해 2022년까지 도시농업 참여자를 400만 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서둘러 ‘도시농업 5개년 발전계획’을 구축하고 있다. “저는 이 분야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육성하는 산업인데도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거든요. 농사청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남보다 앞서 시장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농사청은 당분간 온라인 쇼핑몰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팜디포를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다. “우선 팜디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키고 싶습니다. 이후 현대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농업 관련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동아리 차원의 농촌 봉사 활동(농활)이 아닌 농부와 대학생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농사청은 도시농업 선구자를 꿈꾼다. 구한솔 대표는 농사청을 국내 최고의 농자재 회사로 만들고 나아가 한국의 농자재를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농업의 미래를 그리는 농사청의 사업으로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앞당겨지길 희망한다. 사랑한대 2019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12 10 중요기사

[동문]보험계리사 합격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보험계리사는 보험회사의 위험을 분석·평가하고 보험 상품 개발에 대한 허가 업무, 보험료 계산 업무를 수행한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보험계리학과는 지난 2013년도에 신설된 후 꾸준히 보험계리사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올해 제41회 보험계리사 합격자 124명 중 한양대 ERICA캠퍼스 출신은 김보근(보험계리학과 4) 씨, 서예지 동문(보험계리학과 13), 주형민 동문(금융보험학 석사)이다. 세 명의 합격자들과 지난 8일 서울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보험계리사 합격자들의 시험 조언을 들어보자. ▲보험계리사 최종 합격자 김보근(보험계리학과 4) 씨, 서예지(보험계리학과 13), 주형민(금융보험학 석사)동문을 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씨와 서 동문은 보험계리학과가 처음 만들어진 2013년에 입학했다. 서 동문은 “1학년까지만 해도 보험계리사에 대한 진로가 확실하지 않았다”고 했다.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고, 과에서 학생들이 보험계리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이 밀어 주셨어요. 전공 공부가 재밌기도 해서 그때부터 꿈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김 씨는 “보험계리학과 1기라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과는 진로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보험계리학과는 보험계리와 관련된 직무가 전부잖아요. 게다가 1기라는 책임감에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어요.” 주 동문은 학부 때 수학을 전공했지만 평소 금융에 관심이 많았다. “금융 관련 직무 중에 보험이 수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일을 다뤄요.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아 금융보험학 석사를 하고 보험 쪽으로 진로를 바꿨죠.” 보험계리사 시험은 1·2차 시험으로 나뉜다. 1차 시험은 선택형으로 ▲보험계약법, 보험업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경제학원론 ▲보험수학 ▲회계원리 과목으로 구성돼 있고, 2차 시험은 약술형 또는 주관식 풀이형으로 ▲계리리스크관리 ▲보험수리학 ▲연금수리학 ▲계리모형론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2차 시험은 지난 2014년도 합격자가 0명일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지만 과목별로 부분합격이 가능하다. 5년 안에 60점 이상 받은 과목은 합격 상태가 유지된다. 김 씨는 재학 상태에서 1차 두 번, 2차 두 번 만에 합격했고 서 동문과 주 동문은 보험 회사를 다니면서 1차 한 번, 2차 네 번 만에 합격했다. ▲ 서예지 동문(보험계리학과 13)이 보험계리사 2차 시험 과목 ▲계리모형론을 공부한 흔적이다. 서 동문은 “공부 내용을 노트에 정리한 뒤 반복적으로 외웠다”고 말했다. (서예지 동문 제공) 세 합격자가 가장 어려워한 2차 시험 과목은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이다. 김 씨는 이 과목의 시험 범위가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보통 100만 해도 합격할 수 있는데 시험 범위는 300이에요. 다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안 하려니 공부 안 한 곳에서 나올 까봐 찝찝하죠.” 서 동문은 위 과목을 공부할 때 “흥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실 2차 시험을 4번째 준비할 땐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그래서 무조건 재밌게 공부하려고 했어요.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강사 강의도 들어보고, 암기보다는 흐름을 타면서 공부했습니다.” ▲ 주형민 동문(금융보험학 석사)은 회사를 다니면서 보험계리사 시험을 준비한 케이스다. “날마다 정해놓은 공부 분량을 하기 전까지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주형민 동문 제공) 김 씨는 학원 공부보다 독학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보험계리는 학원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서 강사들이 한정적이에요. 게다가 보험계리사 시험은 변동성이 크고 범위가 넓은 시험인데, 총 시험 범위가 500이라고 하면 학원에선 300밖에 다루지 않아요.” 오랜 시간 동안 시험 준비를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주 동문은 “한국 보험계리사 시험과 미국 보험계리사(SOA, The Society of Actuaries) 시험을 병행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보험계리사 시험은 1년에 한 번씩 보고 결과 발표도 오래 걸려서 답답한 감이 있어요. 미국 보험계리사 시험은 유형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러 번 볼 수 있죠. 중간에 결과를 받으니까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합격자 세 명 모두 학원에 다니지 않고 각자의 공부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했다며 자기주도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 보험계리사는 1260명이지만, 오는 202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 보험계리사 수요가 3000여명까지 급증할 예정이다. 새로운 체계가 도입되면, 많은 기업에서 바뀐 업무에 최적화 된 보험계리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서 동문은 “공부와 실무 경험을 같이 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보험계리사 시험이 변동이 크긴 하지만 IFRS17 도입을 앞두고 많이 쉬워지고 있어요. 공부에 올인 하는 건 1~2년 정도, 그 다음에는 실습이 중요해요.” 서 동문은 처음 보험사 업무와 공부하던 내용이 괴리가 커서 놀랐다고 전했다. 공부는 그저 답을 구하면 되지만 회사 일은 더 복잡하다고. “관련 아르바이트, 인턴, 회사 직무 경험을 쌓는 걸 추천해요. 실제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험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김 씨와 보험계리사 시험 합격이 높은 스펙을 대체할 만큼 보람 있는 시험임을 알렸다. 주 동문도 보험계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한양인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보험계리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추세잖아요. 지금 열심히 공부하셔서 성장할 기회를 잡길 바라요.”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12 02 중요기사

[동문]데뷔 10년차 보컬리스트의 화려한 귀환

큰 활약 뒤 다시 성과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10년 만에 첫 솔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로 성공적으로 귀환한 가수가 있다. 바로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 키즈’의 전 보컬리스트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 08)이다. 솔로 앨범 출시와 함께 최근 종영한 드라마 <제3의 매력>에서 리메이크곡 ‘희재’로 OST에도 참여했다. 임 동문은 녹슬지 않은 명품 가창력을 재입증하며 차세대를 이끌 솔로 보컬 주자로 불리고 있다. 보컬부터 작사 및 작곡, 음악감독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임 동문.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가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솔로 보컬리스트로 돌아오다 스무 살, 아이돌 그룹 ‘에이스타일’로 음악가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발라드 열풍에 일조한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 키즈’를 거쳐, 이제는 남자 솔로 보컬 주자로 돌아왔다. 첫 솔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은 임 동문이 작사 및 작곡, 디렉팅까지 직접 해 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추워지는 계절의 감성을 담은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은 깔끔한 고음, 애절한 목소리와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오랜 시간 그룹 활동에 익숙해 홀로 무대에 서는 것에 부담이 있었지만, 그동안 다진 탄탄한 가창력과 많은 연습으로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에게 컴백 소감을 묻자 “공개 후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앨범의 흥망을 떠나 음악적으로 ‘잘 만들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던 그는 음악인들의 평가와 대중적인 성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뒀다. ▲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키즈’의 전 보컬리스트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08)을 그의 소속사 모스트웍스(MOSWORKS)사무실에서 만났다. 임 동문은 지난 2015년부터 자신의 노래 연습 영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발전하는 것을 남기고 선보이고 싶은 일종의 창구였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입소문을 타 구독자 수가 15만 명을 넘었다. 조회 수 역시 굉장하다. 개인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에 다양한 커버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며 대중에게 솔로 가수 ‘임한별’을 더 잘 알렸다.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물었다. 이번 신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가장 먼저 언급했다. 커버 곡으로는 드라마 <제3의 매력> OST인 성시경의 <희재>와 300만을 넘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엠씨 더 맥스(M.C The Max)의 <어디에도>, 윤종신의 <좋니>를 꼽았다. 이 노래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습 영상들은 모두 임한별 씨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감상할 수 있다. (클릭 시 이동-임한별 공식 유튜브) ▲드라마 <제 3의 매력>의 OST인 최근 리메이크 곡 <희재>영상. (출처: 임한별 동문 유튜브) 베테랑의 겸손과 끝없는 노력 그의 새로운 별명 중 하나인 ‘보컬의 교과서’. 완벽하게 표현하는 고음과 창법으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그는 데뷔 10년 차임에도 시종일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임 동문은 “사실 조금 쉽게 자만하는 스타일”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려고 합니다. 안주하는 순간 바로 퇴보하더라고요. 그동안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해봐서 항상 연구하고 연습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해요.” 마음이 풀어질 때마다 다시 자극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연구한다는 그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음악적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10년 동안 연습에 매진했다. 그동안 그는 존경하는 선배들을 통해 음악적 표현 방법과 삶까지 연구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보고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에 뿌듯함과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임한별 동문의 프로필 사진. (모스트웍스 제공) 베테랑에게도 거저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다. 그는 솔로 활동 준비를 위해 먼데이 키즈 활동 이후 골방 같은 작업실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본격적인 솔로 활동 전 작가 활동(작사 및 작곡)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감독도 겸하며 음악이라는 영역 안에서 많은 것을 접하려고 노력했다. “작사 작곡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하다가 목이 쉬어 라이브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말한 임 씨는 여러가지 일을 계속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같이 일 하고 있는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진심을 담은 노래를 할 수 있길 바라요” 그가 가끔 특강을 가거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꼭 하는 이야기는 ’진정성’이다. “진심이 아닌 것은 들으면 느껴져요.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집중하지 못하거나 진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잠재력이 표출되지 않는다며 ‘진심을 담은’ 음악을 강조했다. 이어서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꼭 잡으세요. 도전 뒤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기회를 만드는 후배분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08)은 가수를 꿈꾸는 한양인들에게 실패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잡으라 조언했다. 그는 현재 오는 1월에 발매할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번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에 이어 새로운 곡을 낼 예정이다. 한국을 넘어 미국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틀 안에 날 가두지 않고 지금처럼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그 곳에서도 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목표를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