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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16

[동문][꿈꾸는 청춘] 빅데이터로 여성들의 속사정을 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는 고객별로 원하는 제품을 주문할 수 있는 하이퍼 퍼스널라이징(초개인화)이다. 하지만 국내 속옷 시장은 여전히 고객이 정해진 사이즈에 맞춰야 한다. 이에 럭스벨의 김민경 대표는 맞춤 브래지어로 속옷 시장의 변혁을 선도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과감하게 속옷 시장에 도전한 김민경 대표를 만나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럭스벨 대표 김민경(건설환경공학과 03) 동문 속옷 시장에 출사표 던진 엔지니어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고객들에게 ‘진짜 편하다’, ‘몰랐던 나를 알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거든요.”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사업이기에 지난 2015년 10월 법인 설립 후 사업 방향을 잡는 데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아야 했던 김민경 대표. 시범 사업을 통해 데이터 및 생산 인프라 구축 후 본격적으로 ‘사라스핏’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그는 누구보다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기성 속옷 브랜드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기껏해야 열 개 남짓입니다. 하지만 고객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이에 맞출 수는 없어요. 사라스핏은 1대1 컨설팅으로 고객의 가슴 모양, 흉곽의 크기와 형태, 지방 분포 등을 정확하게 측정한 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이즈, 날개 각도, 어깨끈 위치 등 최적의 브래지어를 제작해드립니다.” 아무리 예뻐도 어딘지 모르게 착용감이 불편하면 손이 가지 않는 법. 천편일률적으로 디자인과 볼륨감만 강조하는 국내 이너웨어 시장에서 자신만의 사이즈와 핏에 맞는 속옷을 만날 수 있다니, 그동안 하소연도 못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많은 여성들이 두 손 들어 반길만한 희소식이다. 게다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니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더해진다. “제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 정확한 수치를 중시합니다. 이를 통해 편안함을 찾아주는 공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와도 접목하고 싶었고요.” 흡사 디자이너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김민경 대표는 의외로 건설환경공학과에서 교통시스템공학을 전공했다. 사업 아이디어도 독특한데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니, 도대체 속옷 시장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유학 시절 스타트업 열기 경험 대학 졸업 후 김민경 대표는 삼성SDS에서 교통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공을 충실히 살리고 있던 터라, 장차 속옷 시장은 물론 창업에 뛰어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엔지니어 기반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사업 방향은 경영기획부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영학 공부에 갈증을 느꼈다. “엔지니어로서 펼치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화되기까지 많은 벽에 부딪히면서 경영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전략이나 마케팅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 미시간대학의 MBA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업은 그의 선택지에 없었다. 당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태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당당히 회사를 차리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젊은이들을 통해 창업의 열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 그러면서 귀국 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대기업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은 감히 키우지 못했다. 워낙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성격 탓이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신규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해보고 싶다는 열망의 싹이 그때부터 시나브로 자라고 있었다. MBA 취득 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시카고 무역관으로 일하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귀국 후에는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걸스인텍(Girls in Tech)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기술 분야의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을 많이 만났다. 창업하기 직전까지는 반도체 관련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스타트업 경영 노하우를 배웠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창업에 대한 용기를 키워나갔다. 차근차근 창업 기반 다지며 도전 도전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유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김민경 대표. 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이력을 보면 누구보다 창업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착실히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새로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 대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기보다 차근차근 사업 기반을 다지며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때가 됐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일찍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어 놓았던 여성 속옷 시장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미국 유학 시절, 거리낌 없이 속옷을 패션의 하나로 드러내고 여성 중심의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그곳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제안해주는 서비스도 이미 시작된 상태였죠. 무엇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속옷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국내와는 달리 다양한 브랜드들이 여심을 얻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한 것이다. 김 대표는 속옷 전문 디자이너에게 패턴과 디자인 수업을 받으며 관련 전문 지식을 쌓고, 온라인 설문 및 오프라인 피팅룸을 운영하며 고객 데이터를 차곡차곡 구축했다. 이를 통해 30여 개의 수치 데이터를 입력하면 추천 사이즈가 나오는 알고리즘을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고객에게 최적의 사이즈를 제안할 수 있는 오프라인 피팅룸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즌별로 유행 색상, 레이스 등에 맞춰 트렌디한 디자인을 개발해 생산 라인을 활발히 가동시킬 계획이다. 현재는 백화점 및 편집숍 등의 숍인숍 입점을 추진 중이다.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을 받은 고객의 90%가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 말 못할 불편을 참아야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여성의 80%가 자신의 사이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보호해야 할 가슴을 불편하게 했던 거죠.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 김민경 동문은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라고 말한다. 최종 목표는 ‘물음표’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에서 알고리즘 개발, 디자인 및 생산, 판매 시스템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막 도움닫기를 마친 상태다.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지만 당시는 전공 공부에만 열중했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김 대표. 그렇기에 후배들은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야를 넓혀가길 바란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신의 성향을 고려해 신중히 도전해야 합니다. 아이템과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경영, 파트너십 등 매니지먼트 능력을 타고났다면 바로 도전해도 좋지만, 저처럼 회사 생활을 통해 기업의 생리를 배운 후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마련이 관건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정부 지원금이나 엔젤투자를 통해 피팅룸을 마련하고 디자인을 개발했다. 현재는 다음 시즌 생산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앞으로 중국과 대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아시아가 이제 막 속옷 시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거든요. 시스템만 구축하면 얼마든지 해외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아직은 미정이라고 답하는 김민경 대표. 한 평 남짓의 피팅룸에서 시작된 그의 도전이 무한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16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한양대 최초의 항공사 CEO, 도전과 성취의 날개를 달다

지난 4월 3일 최종구 동문이 이스타항공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최 대표는 2008년 케이아이씨 전무를 역임했으며, 2013년 2월 이스타항공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사내에서 영업통으로 불리며 실적 도약을 이끌었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이스타항공 대표 최종구(정치외교학과 84) 동문 창립 10주년, 제2의 도약 꿈꾼다 국내 LCC(Low Cost Carrier, 저비용항공사) 이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내선은 60%, 국제선은 30%를 넘어섰다. LCC에 소비자의 시선이 쏠리면서 이스타항공 역시 국민 모두에게 익숙한 항공사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저비용항공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영역은 동북아시아 노선. 그중에서도 국내 LCC가 취항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 중국이다. 하지만 최근 한・중 외교 문제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줄면서 항공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종구 대표는 “대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하지만 기존의 업무 경험과 다양한 대외 업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립 10주년인 올해를 ‘제2의 도약’ 원년의 해로 만들어 최고의 글로벌 항공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항공 사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이스타항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LCC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모든 LCC가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매출 3,797억 원, 영업이익 64억 원을 달성하며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면서 올해는 매출액 5,000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이는 이스타항공의 모든 임직원이 최고의 항공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하나 되어 매진한 결과다. 중거리 노선 확장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이스타항공은 2007년 10월 기존 대형 항공사 위주의 항공 시장 독과점을 깨고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항공 여행을 대중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동남아, 일본, 중국 등 24곳의 국제노선과 5곳의 국내노선을 운항하고 있으며, 베트남 다낭과 일본 삿포로에도 취항을 앞두고 있다. 또 현재 운영 중인 17대의 항공기 외에 올해 추가로 2대의 항공기를 들여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동아시아를 넘어 중거리로 노선을 확장하고 있는 적극적인 행보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홍콩과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LCC 동맹 연합체인 ‘유플라이 얼라이언스(U-FLY Alliance)’에 합류하며 국내 LCC 최초로 인천-홍콩-치앙마이를 잇는 인터라인(노선 제휴) 사업을 시작한 것. 이어 인천-홍콩-쿤밍, 인천-홍콩-나트랑, 인천-나리타-홍콩, 인천-오사카-홍콩, 인천-후쿠오카-홍콩의 5개 노선을 추가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해 가고 있다. 다양한 노선을 운항하고 있지만, 최종구 대표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난 2015년 8월 이희호 여사의 평양 방북 특별 전세기를 운항한 것이다. “LCC 최초로 평양 특별 전세기를 운항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남북 노동자 통일 축구대회 방북 전세기를 운항하면서 통일 민간 행사에도 앞장섰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국내 최초 ‘비행기 끌기 대회’에 항공기를 지원, 국민 항공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 국내와 해외지점을 직접 돌아보며 현장 경영을 펼치는 최종구 대표 중국 노선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 최종구 대표는 부사장 재직 시절부터 직원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지금도 국내와 해외지점을 직접 돌아보며 적극적인 현장 경영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타항공의 사훈이 정직, 질서, 배려입니다. 이 세 가지 사훈을 토대로 직원들과 언제 어디서나 소통하려 합니다.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와 안전한 비행을 제공하기 위해, 또 직원과 고객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취항 초기부터 중국 노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스타항공의 중국 지역 정기 노선은 인천-제남과 제주-취앤저우를 비롯해 청주에서 닝보, 심양, 연길, 대련, 하얼빈, 상해로 이어지는 총 8곳으로 국내 LCC 중 가장 많은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제한으로 인해 대부분의 노선이 운휴 중으로, 청주-연길 노선만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8~9월 중 대부분의 노선이 재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항공사와 관광 산업은 물론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정부 출범에 맞춰 한・중 관계가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양 국가 간의 원만한 해결책을 통해 다시 중국 시장이 활발해질 것을 대비해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운항을 중단했던 노선들의 재운항과 다양한 부정기 노선의 확대 운영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중국 노선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강점을 살려 방한 중국인 수송에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동남아 지역과 일본 노선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다양한 부대 수익을 통한 매출 증대도 꾀하고 있다. LCC의 경쟁력은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에 있다. 이는 대형 항공사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던 기내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기에 가능했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좌석이 넓은 앞좌석과 비상구 좌석, 수화물 등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으며, 기내식 식사와 음료, 주류, 담배 등의 상품을 유료로 판매해 이를 부대 수익으로 연결하고 있다. ▲ 소통을 중시하는 최종구 대표가 승무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폭넓은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 최종구 대표가 한양대를 졸업한 지도 30여 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양대 졸업생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그의 모습은 어땠을까. “동기를 포함해 선후배들과의 폭넓은 관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동문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친구로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 모든 것이 새롭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 대표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남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배움의 자세로 모든 일에 임했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솔하고 솔직하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며 학창 시절에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 나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은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직장의 원칙이 우선일 때가 있고, 상사 및 후배와의 관계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욱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맺은 인간관계와 네트워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든든한 재산이 되지요.” 올해 이스타항공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고객의 성원과 사랑에 보답하고 이스타항공의 설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다양한 노선을 취항하고 항공 여행의 대중화에 힘쓸 것이다. “회사의 성장은 곧 일자리와 이어집니다. 어렵게 공부한 우리 청년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이스타항공이 동북아시아 최고의 LCC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역량과 경험을 쏟아붓겠다는 그의 말이 더없이 든든하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14 중요기사

[동문]이 시대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2)

살다 보면 우리에겐 점점 더 많은 사회적인 역할이 부여된다. 가정에선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며, 직장에선 누군가의 상사이자 부하직원이다. 이 때 종종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우리는 수많은 '역할 갈등'에 직면한다. 특히, 사회생활 시작 후 결혼·임신·출산이라는 생애 주기를 겪는 커리어 우먼의 경우, 그 갈등의 골은 깊을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육아 전쟁’ 속에서 직장 생활이라는 이중고를 견뎌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은 ‘경력단절 여성(이하 ‘경단녀’)'이란 꼬리표를 달게 된다.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이런 현실, 혹은 지금 당장 본인의 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마주치거나 주변에서 겪게 될 삶에 대해 공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의 리즈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여자라이프스쿨의 대표로 활동 중인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최근 몇 년간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삶을 보냈다. 한 초등학생 딸아이의 엄마로 육아를 하는 동시에, 각종 강연회에 출연하고 타 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작가로서 끊임없이 커리어를 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우리대학 교육공학과 박사과정에서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동문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를 보고 영감을 얻어 여자라이프스쿨을 세웠다. “당시 저도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삶에 관한 폭넓은 질문을 던지는 인생학교의 지향점에서 좀 더 좁고, 깊게 파고들어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루고 싶었죠.” 그 후 이 동문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들의 커리어와, 사랑과 관계 등에 대해 상담과 코칭을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과 지난 13일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사과정을 밟고 본인의 경험과 여러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최근엔 경단녀와 복직 준비 여성에까지 관심이 확대됐다. 특히 지난 5월엔 ‘다시 일이 그리워질 때’라는 책을 발매하며 경단녀의 사회 재진출을 위한 발판 마련을 도왔다. “현재 사회는 전업맘은 일하지 않는 여성, 워킹맘은 일하는 여성으로 이분화하는데 이는 전혀 건강하지 않다고 봐요. 생애경력과 직업경력 중 무게중심이 어디 있느냐의 차이지 사실 이 둘은 공존할 수 있거든요. 즉, 누구든 생애 주기에 따라 언제든 전업맘이나 워킹맘이 될 수 있어요.” 이는 평소 자신만의 꿈과 목표를 갖고 있던 여성들이 출산 후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분열을 반영한다. 20대 때는 본인만의 일에 대한 온전한 꿈이 있었다면, 출산 후에는 모성애를 느끼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소중한 또 다른 가치가 등장한다. 바로 이때가 일에 중심적인 가치를 뒀던 여성들이 많이 깨지고 흔들리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이 동문은 위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자아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주인공은 항상 자기 자신이고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이죠. 그리고 현재는 생애 주기에 따라 본인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좀 더 집중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경단녀’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단절’이라는 말이 ‘끊어졌다’는 부정적 어감을 주기에 ‘경력 쉼 여성’, ‘경력 전환 여성’ 등 경력이 생애 주기에 따라 순환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지난 5월 발매된 '다시, 일이 그리워질 때'는 우리 사회의 경단녀들에게 전하는 가슴 따뜻한 조언을 통해 구직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출처: 이재은 동문 페이스북)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신을 잃지 마세요’ 이렇듯 현재 많은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멘토이자 롤모델로 활동하는 이 동문은 언제부터 여성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을까? “제가 딸만 셋인 집안의 맏이였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막냇동생이 아들이길 바랐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는 제가 장녀로서 아들 부럽지 않게 성장해야 한다는 원죄(原罪) 의식이 있었어요.” 그 후 대학 4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이 동문에겐 삶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수동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또 평소에 글짓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 부분을 살려 책도 많이 읽고 취재 기자로도 활동했죠” 그 후로 이 동문은 상담이나 코칭 관련 수업을 듣고 석사학위를 따는 동시에 ‘여자 Life 스쿨’, ‘여자 Life 사전’, ‘서른 Life 사전’등을 집필하며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 3명과 함께 현재의 여성라이프 스쿨을 설립했다. “처음엔 주변 남성들의 보수적 시각에 상처를 받았어요. 또 남·여에 따라 일과 경력을 보는 시야가 많이 다르다는 점도 느꼈죠. 남성들은 대체로 직업을 수직적으로 바라보고 어렸을 때부터 강하고 독립된 존재로 커오기 때문에 자신이 ‘제1의 생계부양자’라는 인식이 강해요. 반면에 여성들은 수평적 관계에 익숙하고 결혼 후에도 자신은 ‘생계를 돕는다’는 인식이 크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성들이 경쟁구조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무시한 채 남성스러움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남성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모습도 요구되지만 여성 특유의 풍부한 감수성과 다채로운 에너지를 통해 스스로를 더 가치 있게 꽃피우는 것 중요하다. ▲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여성 스스스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측불가능속의 성장 어느 순간부터 이 동문은 구조화된 계획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삶은 굴곡이 심하고 본인이 인식하고 지향하는 바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동문은 큰 틀만을 설정해 두고 그 내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편이다. “우선은 여자라이프스쿨에서 더 대안적이고 여성주의적 시각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또 대학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동문은 ‘우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즉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것. 상대적으로 직업과 사랑에 밀리는 것이 우정인데, 현재의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관계는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힘들거나 지칠 때 그 내부에서 받는 위로와 지지의 유무에 따른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에 이 동문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사람과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힘을 주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연대를 꼭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8 14 중요기사

[동문]꼭 맞는 맵시로운 속옷을 선물하다

한국 여성 중 80퍼센트 정도가 맞지 않는 속옷을 입고 있다는 말이 있다. 맞지 않는 속옷을 입으면 불편하고 모양도 흐트러진다. 시중에 나와 있는 속옷은 불편하게 느껴지면 맞춤 속옷을 입어보자. 사라스핏(Sara’s fit)은 럭스벨 대표 김민경 동문(교통시스템공학부 03)이 만든 속옷 프리미엄 브랜드로,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 체형 데이터를 분석하고 맵시로운 속옷을 제작한다. 법인을 세운지는 1년 반, 서비스 오픈한지는 두 달 째인 신생 브랜드다. 1:1 컨설팅 통해 맵시있는 속옷 찾기 브랜드 명 사라스핏(Sara’s fit)은 고객 ‘사라’의 꼭 맞는 속옷을 찾아준다는 뜻으로, 라인이 ‘살아’있다 등의 언어적 유희도 담겼다.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 이름을 쓰고 싶어서 ‘Sara’라고 지었죠. 보통 Sarah를 쓰지만, 아시아권에 친근한 이름을 쓰기 위해 h를 없앴어요.” 주 고객은 20대 후반에서 50대까지의 여성이다. "어릴 때는 맞는 속옷을 왜 입어야 하는지 몰라도, 20대 후반만 되면 불편하고, 모양이 흐트러지는 게 느껴지죠. 근데 해결 방법을 못 찾는 거예요. 분명 속옷 매장은 엄청 많고, 어릴 때부터 측정해 왔는데도요." 수많은 손님들에게 시도해본 결과 생각보다 맞춤속옷 수요가 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김 동문이다. ▲사라스핏(Sara’s fit) 대표 김민경 동문(교통시스템공학부 03)을 지난 9일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손님 한 명당 40분 정도의 사전 대화를 통해 불편한 점을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한다. 오프라인 1:1 컨설팅에서 24가지 방법으로 사이즈를 측정하고, 측정값 솔루션을 입력하면 빅데이터를 통해 자동으로 체형에 맞는 속옷 유형과 사이즈를 추천해준다. 피팅 후 입는 방법을 설명하고, 손님이 디자인을 고르면 최종적으로 주문제작에 들어간다. 세심한 관리 덕에 재구매율도 높다. "특히 처음 오신 분은 관리를 세세하게 하고 있어요. 재구매의 경우는 앞으로 온라인으로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샘플 제품은 40~50개 정도 구비돼 있고, 고객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유형의 속옷을 추천한다. 만족도는 90퍼센트 이상. 사라스핏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감동적인 사례도 많다. “속옷이 불편해서 러닝 톱만 입는 손님이 계셨죠. 불편해하는 점을 찾아 조절했더니 편하고 라인도 예쁘다며 맨날 입는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다른 손님은 특이한 경우로, 가슴살이 물처럼 고정이 안되는 분이라 땀이 많이 차셨어요. 몇 가지 틀을 사용했는데 모두 안 맞아서 모양을 조정한 결과 딱 맞는 속옷을 드릴 수 있었죠.” “전국에 맞춤속옷 브랜드가 몇 군데 없는데 그마저도 빅 사이즈 위주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은 사이즈도 고민이 많거든요. 모든 사이즈를 아우르는 것이 사라스핏의 장점이죠.” 디자인은 레이스에 귀여운 스타일보다는 캐주얼, 모던함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속옷도 패션이라고 보기 때문에 디자인도 놓치지 않았다. 틀을 잡아주는 몰드 종류도 많다. 기성 속옷 사이즈가 9개라면 사라스핏의 사이즈는 30가지다. ▲해외 톱스타들과 체형을 비교하며 본인의 체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처: 사라스핏) 공부만 하던 모범생, 넓은 세상을 보다 김 동문이 속옷에 애초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안정적인 미래를 예측해서 골라준 학과에 입학했고, 공부만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고. 김 동문이 인생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첫 선택은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었다. “원래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어서 학과 공부만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3학년 때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미국은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구나’,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걸 중요시해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었죠.” 속옷에 대한 관심도 이 때 생겼다. “우리나라는 속옷은 감춰야 하는 것인데 미국은 속옷 사이즈도 다양하고 인식도 개방적이더라고요.” 졸업 후 동기들 중 유일하게 대기업에 들어가 IT를 배우고, 지금 회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부서 이직을 위해 다녀온 미국 MBA에서는 스타트업을 접했다. “2011년 당시에는 창업이 활발하지 않았을 땐데, 미국은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말 잘하는 학생들이 모두 창업에 도전하는 창업 붐이었어요. 관심이 생겨서 중소기업 이어주는 코트라 시카고 무역관에 가게 됐죠.” 그러던 중 코트라 업무가 아쉬워서 국내 대기업에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했다. “속옷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데이터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빅데이터와 접목시켜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현재 김 동문은 회사의 대표와 디자이너를 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옷은 패턴사와 디자이너를 따로 두는데, 란제리는 두 개 다 동시에 해야 해요. 그래서 디자이너 선생님께 1년 반 동안 디자인을 배워서 이제는 선생님이 큰 틀을 만들면 그걸로 세부적인 디자인을 하는 정도까지 가능해요.” 현재 디자이너는 메인 디자이너 선생님과 김 동문을 비롯해 총 4명이다. 디자인은 보통 겉 레이스를 달고, 가슴 원형에 맞는 몰드 컵 모양에 맞게 디자인해서 패턴까지 마무리하는 식이다. “란제리 산업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잘 알려주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고, 위계 질서도 견고해서인지 디자인 원리를 아는 분이 전국에 다섯 명도 없어요. 그 중 한 분을 어렵게 모셔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죠.” ▲김민경 동문은 현재 디자이너와 대표를 겸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속옷 브랜드를 향해 “목표는 아시아의 맞춤 빅토리아 시크릿! (웃음) 이미 유럽, 미국엔 맞춤형 속옷 시장이 커요. 메이저도 많고, 스타트업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시아는 아직 시작단계예요. 빨리 시장을 확장시키는게 목표예요. 동시에 자금도 확보해야죠.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국내에서 해외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업을 하면서 힘들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는 김 동문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봉사도 진행할 예정. “어린 친구들이 처음에 속옷을 어떤 걸 입어야 하는지, 올바른 속옷을 입을 때 좋은 영향과 악영향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육 봉사를 하려고 해요. 주니어 브라를 내년에 오픈하는데 중·고등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예정이네요.” ▲김민경 동문의 사업 목표는 사라스핏을 '아시아의 맞춤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김민경 동문)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8 08

[동문]지휘봉 하나로 피어나는 오색의 화음

매주 고양아람누리 연습실에서는 무더운 날씨를 잊게 해주는 맑고 청량한 화음이 울려 퍼진다. 한창 연습 중인 고양혼성합창단 단원들은 모두 음악이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우리대학 이은석 동문(성악과 88)은 이곳에서 지휘자를 맡고 있다. 창단의 순간부터 정기공연에 오르기까지 오랜 기간 지휘봉을 잡은 그의 손짓 아래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이 조화를 이룬다. 지난 5일 아마추어 합창단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끌고 있는 이 동문을 만났다. ‘마을 합창제’에서 시작된 인연 이은석 동문은 지난 95년 우리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에서 9년의 유학 생활을 했다. 유학 중 로마에서 성악가로서 첫 데뷔 무대를 올린 이 동문은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04년에 갑작스러운 귀국을 하고 난 후, 힘든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보다 상대적으로 무대 기회가 적은 한국에서는 음악가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양한 오페라단을 돌아다녔는데 공연을 1년에 1~2번밖에 못했어요. 음악을 전공한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이런 부담감을 10년 동안 겪었죠.” 이 동문의 고민은 고양시로 이사를 하면서 풀렸다. 지인 덕분에 고양시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마을 합창제’의 지휘자로 참여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고양시 서구 합창단을 맡게 된 그는 단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교회 성가대원과 제자들에게 부탁해 총 28명의 인원을 모았고 무사히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 동문이 합창제 기간에 이끈 서구 합창단은 마을 합창제가 끝나서도 인연을 이어나갔다. “나머지 2개의 구 합창단들은 합창제가 끝난 후 공중분해 됐는데, 지인들로 이루어진 서구 합창단은 단원들이 계속 활동하길 원했어요. 이렇게 ‘고양혼성합창단’이 탄생했죠.” 28명으로 시작한 고양혼성합창단은 입소문을 타며 인원이 늘었고 합창을 취미로 삼은 60여 명의 단원이 모였다. 단원들이 온전히 합창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단 한 번. 길지 않은 연습 시간 동안 60명의 비전공자는 합창에 열정을 쏟았다. 그렇게 고양혼성합창단은 총 2회의 정기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 동문이 지휘하는 또 다른 단체인 하나오케스트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고양혼성합창단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이 동문의 남다른 책임감이 빛났다. “아마추어분들이다 보니까 동기부여와 목적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연습시간은 즐거워야 하고, 한 분 한 분 천천히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했죠.” 이 동문은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비전공자를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호흡을 위한 근육도 없고, 생목소리로 부르는 분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그분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그렇게 막상 연습한 걸 해내시면 굉장한 희열을 느껴요.” ▲고양혼성합창단의 1회, 2회 정기공연의 짜릿한 추억이 담겨있는 공연 팸플릿. 이은석 동문이 또 다른 지휘자로 있는 하나오케스트라와 합작을 이뤘다. 다사다난했던 음악 인생 이 동문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입시 미술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창단 동아리에 가입했고 동아리 선배를 따라 국립오페라단에서 주최하는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 “아마 본 무대를 봤으면 성악에 관심이 안 생겼을 거예요. 제가 따라간 곳은 리허설 무대였는데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쉬고, 잡담하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어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관심을 가졌죠.” 중창단 동아리 가입 후 그는 노래 한 번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진지하게 레슨을 받아보라는 동아리 선배들의 권유를 받은 이 동문은 미술을 그만두고 성악가의 길을 택했다. 우리대학 재학 중에도 진로를 두고 여러 갈림길에 섰다는 이 동문. 음악 선생님을 목표로 교직 이수를 공부하던 그는 3학년이 되던 해에 음악적인 비전을 더 폭넓게 가져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그 당시 새로 임용된 고성현 교수(성악과)가 이 동문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2년 동안 고성현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름난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고요.” ▲이은석 동문을 지난 5일 고양시 아람누리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악과 지휘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이 동문은 졸업 후 이탈리아행을 택했다. 로마에서 첫 데뷔 무대를 올린 뒤 산타 체칠리아 음악학교(Santa Cecilia Conservatory of Music)에서 스카우트할 만큼 이 동문은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산타 체칠리아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무대를 포기해야만 했다. 학교 교장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 “거기서 취직을 해서 무대를 넓혀가야 하는데, 학위 하나를 위해 묶여있어야 하는 시간을 참지 못했어요. 결국, 졸업하는 해에 학교를 그만뒀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동문은 학교 중퇴 후 개인 사정 때문에 꿈을 뒤로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열창했던 무대를 포기한 한 남성이 풀어내는 추억담에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동양인으로서 무대를 서는 것이 힘들었죠. 그래도 당시에는 운 좋게 계속 대회를 나갈 때마다 수상을 했어요. 무대에 계속 서니, 도전정신도 생겼고요. 다양한 국적의 성악가들과 경쟁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길이 열리는 것에 즐거움이 매우 컸죠. 유학생활의 짜릿함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성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기도 하죠.” ▲아마추어를 가르칠 때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이은석 동문. 그는 인내심과 이해심을 갖는 것이 지휘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성악과 지휘, 둘 다 놓치지 않을 것 음악 인생에서 다양한 굴곡이 있었지만, 이 동문은 성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성악을 사랑한다. 오는 8월 20일에도 연주를 앞두고 있고, 동료 성악가들과 연주회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젠 음악을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살펴본다는 것에 있다. “박 터지게 경쟁하는 건 외국에서 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즐기는 거죠.” 지휘자로서의 삶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 동문은 현재 고양혼성합창단 외에도 고양챔버오케스트라, 하나오케스트라, 행복한산책합창단 등 다양한 음악단의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로서의 길도 꾸준히 개척해나가고 있다. 음악을 지위 상승을 위해서가 아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지휘에 임한다는 그다. “음악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의 기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커요.”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8 07

[동문][세계 속의 한양인] ចេះខ្មែរដែលបង(캄보디아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한영사전, 한일사전, 한중사전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어학 사전’으로 검색했을 때 쉽게 볼 수 있는 사전들이다. 영어권 국가나 일본, 중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어떨까. 시중에 나온 사전은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인터넷에서는 뼈대만 있는 부실한 오픈 사전을 가지고 씨름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덜어주고자, 김우택 동문(자동차공학과 박사)은 지난해 한국어-캄보디아어 사전을 정식 출간했다. 언어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독학을 통해 사전을 만들어낸 김 동문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 한 권에 쏟은 열정 “처음부터 감히 사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김우택 동문이 사전을 만든 계기는 거창한 업적을 남기가 위해서가 아니었다. “제가 공부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을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다 보니 자료가 쌓였고, 이 자료들이 아까워 사전을 만들자고 마음을 먹었죠.” 본인이 힘들게 공부한 기억을 떠올린 김 동문. 그는 돈이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본인과 같은 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사전을 집필했다. “캄보디아어를 배우는 한국인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뻐요. 편찬에 도움을 주신 캄보디아 교민분들께도 감사드리고요.” 물론 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의 모든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사전을 샀어요. 모두 캄보디아-캄보디아 사전과 캄보디아-영어사전뿐이었죠.” 처음 만든 자료들은 모두 단어장에 불과해 혼자밖에 쓸 수 없었다. “20건이 넘는 사전을 한 장씩 타이핑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각 단어에 적합한 한글을 찾아 넣었어요.” 사전 한 권의 페이지 수는 대략 1800장에서 2000장 내외. 쉬지 않고 1800장을 타이핑하는 데 족히 3일이 걸렸다. 그 후에도 김 동문의 고독한 작업은 계속됐다. “4년이 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시간과의 싸움이었죠. 밤마다 타이핑하느라 바빴고, 동시에 적당한 한글을 찾아내는 작업도 힘들었어요. 인문학을 배우지 않아서 문맥을 이해하기도 힘들었고요.” 하지만 김 동문은 포기하지 않았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 오재응 교수님(기계공학부)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어떠한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진짜 박사과정이다’라는 말에 교수님의 철학이 담겨있었죠.” 그는 현지인의 발음을 듣고 현지 단어에 읽기 표시를 추가하고, MP3로 회화를 독학하는 한편, 실생활에서 캄보디아어로 대화하며 얻은 모든 정보를 전부 사전에 적어넣었다. “교수님 말씀처럼 살아가는 건 모두 같습니다. 그 안에서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김우택(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동문은 지난해 한국어-캄보디아어 사전을 독학으로 집필해 주목을 받았다. (출처: 김우택 동문) 캄보디아, 나를 원하는 곳 “캄보디아에 정착한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업무차 캄보디아에 왔다 머물게 됐죠.” 캄보디아에 처음 도착한 순간은 그저 담담했다는 김 동문이다. “사전을 만들기 전에는 가이드를 하면서 지냈어요. 그 때 찾았던 지역들을 자료화하고 캄보디아 관광 가이드북을 만들었어요.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한국어판 캄보디아 가이드북이었죠.” 여행 가이드로 캄보디아 생활을 시작한 김 동문은 매일같이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김 동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여행사뿐만 아니라, 타국에 한국의 농업기술을 전수해주는 KOPIA 기관 홍보위원 일도 하고, 캄보디아농업정보센터에서 정부나 기관이 필요로 하는 정보도 제공해주고 있네요. 참, 3년 전에는 대사관의 지원으로 ‘캄보디아 농업 가이드북’을 출판하기도 했어요.” 다양한 업무를 하는 틈틈이 사전을 만들었다. 김 동문의 체력이 놀랍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곳은 싸우고 이기는 곳이 아니에요. 베풀고 돕는 곳입니다. 정신적으로 홀가분한, 행복한 삶이 있는 곳이죠.” 김 동문이 캄보디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준 아내와 옆에서 자신을 도와준 지인들이었다. “5년 전 결혼해 1년간 캄보디아어를 가르쳐준 아내 소피읍(Som Sopheap)에게 가장 고맙습니다. 어려움을 함께해줬죠.” 5년을 함께한 아내와 늘 조언을 아끼지 않은 동문들은 그에게 소중한 인연이었다. “아내도, 한양인들도 저한테는 영원한 가족이네요." ▲김우택 동문과 부인 소피읍(Som Sopheap) 씨가 나란히 사진을 찍고 있다. 김우택 동문은 캄보디아에서 생활하며 아내와 한양 동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출처: 김우택 동문) 행복한 미래가 있는 방향으로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 쉬울리 없다. 방대한 어휘와 문장을 담으면서도 정확해야 하는 책이 바로 사전이다. 4년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인 사전 편찬을 마무리한 지금, 김우택 동문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이곳에 살면서 저도 미래를 꿈꾸고 살아갑니다. 이제부터는 한국과 캄보디아의 농업에 있어 다리 역할을 하려고 해요.” 일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다시 새로운 역할을 찾아 떠나는 김 동문은 행복해 보였다. “매일이 바쁘지만, 할 일이 있고 내가 필요한 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김우택 동문은 최근 ‘사진으로 보는 캄보디아 여행지 30선’이란 책을 출판했다. 계속되는 작업이 힘들진 않는지 묻는 말에 김 동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에요. 서두르기보다는 남은 인생의 미래를 보고 행복한 미래로의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행복한 미래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고요.”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자신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김우택 동문. 행복한 미래를 향한 그의 여정은 계속된다. (출처: 김우택 동문)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2017-07 31

[동문]한식을 다각적으로 해석하다

팔팔 끓는 뜨거움과 혀가 얼얼할 정도의 맵고 자극적인 맛. ‘한식’ 하면 우리 머릿속에서 쉽게 떠오르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신간 <한식의 품격>의 저자이자 음식평론가인 이용재 동문(건축공학과 94)은 한식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에 반문을 던진다. “뜨거운 뚝배기에 국물 같은 것을 먹으면 분명히 입천장을 데는데, 우리는 왜 굳이 이것을 먹어야 할까요?” 한식을 맛, 서비스, 형식 등에서 다방면으로 고찰하는 이 동문은 그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던 한식의 문제점들을 시원하게 지적한다. ‘한식의 품격’을 찾아서 이용재 동문은 지난 01년 우리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유학 준비를 한 뒤, 02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건축 이론을 공부했다. 이후 박사 과정 중 학교를 그만 두고 건축 설계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09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파란만장한 7년간의 외국생활은 이 동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하나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음식을 향한 이 동문의 애정은 남달랐다. 우리대학 재학 시절, 사근동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혼자 해 먹는 음식에 익숙해진 것에 이어, 미국 유학 시절에는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들과 책을 접했다. 음식은 자연스럽게 이 동문의 일상이 됐다. 하지만 종종 한국에 귀국해서 음식을 먹을 때면 매번 실망감을 느꼈다는 그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한국의 음식 문화를 보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비단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식당에서 나오는 ‘먹을 것’만 생각하기 쉽지만, 맛을 비롯해 서비스와 형식 등에 있어 전반적인 '경험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들을 생각하게 됐죠.” 이 동문은 한식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음식의 원리와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시작했다. 음식평론가로서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음식의 ‘원리’ 는 이 동문이 건축학을 공부하며 배운 내용과 평행을 이룬다. “전공이었던 건축에서 많은 원리를 배웠어요. 다양한 원리와 개념, 사물을 보는 3차원적인 방식을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했죠.” 예컨대 맛도 음식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지만,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소들도 음식의 기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음식과 건축이 갖고 있는 유사점 중 하나”라고 이 동문은 말했다. ▲<한식의 품격>의 표지. 올바른 음식 비평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은 이용재 동문의 바람이 담겨있다. 그렇게 3년의 노고 끝에 탄생한 책이 한식 비평서 <한식의 품격>이다. 끝없는 탐구 속에서 발견한 음식의 원리와 문화를 한식에 대입한 이 동문은 책에서 ‘한국 음식은 맛이 없다’고 언급한다. “맛이 없다는 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음식 자체가 맛없다는 의미도 있지만, 비싼 고깃집을 가도 식탁에 비닐을 깔고 싸구려 멜라민 접시 같은 곳에 반찬이 담겨서 나오는 모습 자체가 맛이 떨어지는 상황인 거죠.” 이 동문은 진정한 ‘맛’에 대해 다각도로 바라본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것이 하나의 새로운 시도라고 강조했다. 다른 비평가들은 사회와 정치적인 요소들을 음식과 연관시키느라 ‘맛’에 집중하지 못했다면, 그가 음식에서 가장 가치 있다 생각하는 것이 ‘맛’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 식재료가 반드시 맛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생산과정에서 안전을 확보해 줄 수는 있지만, 유기농이라서 맛있고 무농약이라서 맛없을 것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어요. 실제로 맛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죠.” 한식에 켜진 ‘적신호’를 짚어내다 한식의 ‘품격’이 점점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동문은 한식의 단점이 크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먼저 재료와 온도예요. 재료가 지나치게 너무 익을 때도 있고, 너무 안 익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냉면의 계란은 항상 너무 익어있어요. 노른자를 못 먹을 정도로요.” 음식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재료와 익힘의 온도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 한식의 실상이라고 바라본 것. 또한, 이 동문은 한식에 개인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가지각색의 반찬 위주로 차려진 우리나라의 밥상에서는 맛있는 반찬을 먹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지목한 문제점은 바로 양념이 음식 본연의 맛을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음식과 양념은 별개인데, 양념으로만 간을 맞추려는 경향이 강해요. 간을 맞춰주는 소금을 잘 못 쓰기도 하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동문은 우리가 흔히 ‘회를 초장 맛으로 먹는다’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한다. "회의 맛과 초장의 맛은 완전히 별개예요." 한식의 전통이라고 하면 보통 불변하는 일종의 ‘법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원래의 방법이 마냥 좋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합당한 것인지 검토하는 ‘객관화’가 필요하다. “내가 좋다고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죠. 덮어놓고 좋다고 얘기하면 발전할 수 없어요. 외국에는 외국 나름대로의 음식 문화가 있는데, 김치를 무조건 해외로 진출 시킨다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이어서 이 동문은 “‘전통이니까 이렇게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냉정한 시선으로 한식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용재 동문은 “한식에도 ‘적폐청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소 과격하게 보일 수 있는 단어선택이지만, 이 동문은 자신의 직설적인 언어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펄펄 끓는 국과 밥에, 비슷한 반찬을 꼭 여러 가지로 내서 먹어야 하나요? 그런 것들도 누군가에겐 부담이 된다면 적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아울러, 이 동문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편견을 한식의 식문화에서도 짚어냈다. “기본적으로 한국 여성이 부담해야 하는 가사노동의 비율이 굉장히 높아요. 한국 여성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죠. 거기에 '집밥'이니, '엄마 손맛'이니 이런 단어들을 통해 여성이 음식을 해야 한다는 사회의 선입견을 계속 강화시키고 있어요.” ▲집에서도 요리책을 공부하며 새로운 요리를 시도 한다는 이용재 동문. 그는 "먹으면 사라지는 '음식'일지라도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이용재 동문) 미식가 아닌 음식평론가로서의 이용재 이용재 동문은 자신을 매일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다니는 미식가로 칭하지 않았다. 음식평론가로서의 이 동문이 굳건히 지키는 신념은, ‘거리 두기’와 ‘객관화’이다. 음식에 있어 생산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고, 객관성에만 초점을 둬 맛의 원리와 음식의 개념을 설명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보편적으로 우리나라는 비평 문화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요. 비평이 필요한 미술과 음악도 생산자와 거리를 둔 비평이 별로 없어요. 음식은 아예 제대로 생성 된 적 조차 없고요. 그래서 그런 인식들과 싸우고 있어요. 음식도 비평이 가능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음악가는 음악을 음표로 표현하듯이 음식에도 표현 될 수 있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여러 번역서와 저서 세 권을 출간한 이 동문은 “앞으로 음식 관련된 책을 시리즈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 한국 사회에서 낭만적으로 간주되는 ‘혼밥’ 과 ‘자가요리’를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의 삶과 체계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직설적이고 통쾌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음식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이 동문이었다. 글/ 유혜정 기자 catherineyoo95@gmail.com

2017-07 31 중요기사

[동문]세상에 없던 새로운 툴(Tool)을 창조하다

이른 아침 지하철에 오른 ‘김한양’ 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 잠금을 푼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발견한 것은 여행 관련 ‘카드뉴스’ 게시물. 눌러 보니, 국내외 추천 여행지부터 예상 경비, 이동 시간과 숙박 등 모든 정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김한양 씨는 짧은 시간에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카드뉴스를 애용하는 편이다. 요즘엔 수많은 정보가 카드뉴스 형태로 간편하게 올라온다. 혹시 이런 카드뉴스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가능한 일이다. 쉽고 빠르게 카드뉴스를 제작할 수 있는 툴(Tool), ‘타일(Tyle)' 덕분이다. 2번의 실패 끝에 타일로 ‘스타트업’에 성공한 이흥현 동문(광고홍보학과 02)을 합정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를 외쳐라! 이흥현 동문은 지난해 4월 ‘타일(Tyle)'을 개발해 알파버전으로 출시했다. 카드뉴스 제작 툴 서비스의 첫 시작이었다. 타일은 사용자가 텍스트만 입력하면 해당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디자인을 수정 및 추천해 눈앞에서 바로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즉, 사용자가 택한 디자인에 알맞게 화면이 변하며, 이에 따라 누구나 손쉽게 카드 뉴스나 ‘썸네일’(페이지 전체의 레이아웃을 볼 수 있게 전체를 작게 줄여 화면에 띄운 것)을 제작할 수 있다. 또한 SNS에 최적화된 사이즈로 자동 조절되기 때문에 어느 작업 환경에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추가적인 노력 없이 여러 채널이나 미디어로 변환 가능하며, 애써 이미지를 잘라낼 필요가 없다. ▲‘타일(Tyle)'의 개발자 이흥현 동문(광고홍보학과 02)과 지난 27일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처럼 이 동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타일’을 통해 디자인 분야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사람들이 평소에 당연시하는 영역을 깨고 싶었어요. '디자인의 효용을 일반인들도 어떻게 하면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점이었죠.” 하지만 디자인은 개인의 취향이 워낙 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소비자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주위에서 서비스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보였어요. 특히 디자인을 여러 종류로 정량화해 보여준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죠.” 그럼에도 이 동문은 예상되는 디자인 결과물의 사례들을 끊임없이 수집하며, 총 6번의 ‘프로토 타입’(Prototype: 본격적인 상품화에 앞서 성능을 검증·개선하기 위해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을 통해 현재의 서비스를 완성했다. 처음부터 현재 모습에 방점을 찍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에 초점을 두고 점진적으로 개발 단계를 거친 것이다. “현재 정말 많은 분들이 타일을 사용하고 계세요. 마케터(Marketer) 분들이나 프리랜서 분들, 언론사, 학교 등 수요가 굉장히 다양하죠.” 활용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디자인을 평준화해서 제공하더라도 모든 이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란 지금도 쉽지 않다. “만족도가 0%부터 100%까지 있을 때, 95%까지는 확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이상 올리는 것은 정말 힘들죠.”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이 동문은 "앞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용자의 의도와 요구에 맞게 더 정확하고 섬세한 알고리즘을 대응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마음에 드는 테마를 선택해 텍스트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디자인이 변경되며 손쉽게 카드 뉴스나 썸네일 제작이 가능하다. 각 디자인은 '제목텍스트', '본문텍스트', '로고', '박스', '이미지' 총 5개 부분으로 나뉜다. (출처: '타일'(Tyle) 홈페이지) "대학 시절, 많이 배웠어요" 이흥현 동문은 "대학 재학 시절 배웠던 전공 지식들과 당시 참여했던 공모전 등이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시각적 피드백을 주고받고 전방위적으로 폭넓은 분야를 다루는 데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유용했다. “또 2학년 때 처음 참여한 공모전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입상했는데, 그때부터 광고에 관심이 생겼죠.” 그렇게 차근차근 진로를 구상하던 이 동문은 그 후 ‘대한민국 공익광고대상’에서도 2회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밖에도 평소 IT와 창업 쪽에 관심이 많아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등을 독학하며, 재학 시절엔 수강신청용 시간표 프로그램 개발자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 때 정말 '이게 내 길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창업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죠.” 여기에 이 동문은 광고홍보학과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조모임을 통해 의견을 효과적으로 피력하는 법과 감정을 제어하는 법, 상대를 설득하는 법 등을 배웠다. “결국 학창 시절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 셈이죠.” 졸업 이후에도 이 동문은 한양과의 연을 이어갔다. 교내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학교로부터 창업 공간과 멘토링을 지원받았다. “현업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소개도 받고, 주변 창업 팀들과도 교류할 수 있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이 동문이 처음부터 이렇게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타일’을 제작하기 전 2번의 사업 실패가 있었기 때문. “처음엔 라이트 노벨(light novel: 표지 및 삽화에 애니메이션풍의 일러스트를 많이 사용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소설)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하지만, 기술만 보유한 채 해당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어 결국 실패했죠.” 다음 사업에선 전반적인 콘텐츠 플랫폼을 다뤘지만 제작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또 다시 고배를 마셨다. “돌이켜보면,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市場)이 원하는 것을 했어요. 동기랑 공동 창업을 했었는데 마음이 들떠서 ‘뭐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2번의 실패는 이 동문에게 새로운 동기가 됐고 이 동문은 철저한 준비 끝에 타일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어엿한 타일의 개발자가 된 이 동문. 그가 이용자들에게 바라는 점은 목적에 맞게 카드 뉴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타일은 일종의 도구예요. 결국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이흥현 동문은 "디자인 자동화를 통해 이용자들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싶다"며, "그 어떤 툴(Tool)보다 '타일'이 빠르고 편리하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공부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이 동문은 앞으로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자신이 특정 포지션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해당 분야만을 파는 건 위험해요.” 즉, 현재는 일자리의 복잡도가 증가했고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일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타일 역시 지금까지는 너무 제품 중심으로 운영돼 왔어요. J-커브(스타트업의 예상 현금 흐름)로 폭발적 성장을 하기 위해선 앞으로 마케팅이나 브랜드 확립에도 더 신경 쓸 계획입니다. 저 역시 기존엔 엔지니어링 쪽만 담당하고 있었는데 최근엔 우혁준 공동대표와 CEO를 맡고 있어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타일(Tyle)' 서비스 바로가기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7 26

[동문][사랑 36.5℃]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기부문화, 한양대의 따뜻한 전통이 되길 (1)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듯, 물질도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러내려야 사회가 순환된다. 결국 물질의 순환을 돕는 건 사람의 마음인지라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방향이 중요하다. 최근 자신들이 졸업한 경영대학의 발전을 위해 각각 100만 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한 이희성·고정인 동문 부부. 먼저 기부를 결심한 남편의 마음에 선뜻 뜻을 함께해 준 고정인 동문은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찬 응원이 되는 선(善)한 시간의 축적이길 바란다고 한다. ▲ 이희성(98 경제금융학) & 고정인(06 경영학) 부부 Q 두 분 모두 한양대를 다니셨지만 학번과 학과가 다르던데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이희성_ 제가 회계사반 조교를 했었어요. 그때 게시판 Q&A에 아내가 시험 관련 질문을 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회계사반 시험을 보러 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어요. 조교생활이 끝나고 2008년 아내가 회계사반에 들어왔는데 이름이 익숙해 생각해 보니 그때 그 학생이더군요. 같이 회계사반에서 공부하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에 함께 다니게 되었고, 아내가 2차 시험을 끝내고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제가 고백을 했죠. Q 특별히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정인_ 어떤 삶을 살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요.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많이 벌어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고요. 그때는 막연히 경영자에 대한 그런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하자 생각했고,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경영자가 되기 위한 직업군을 찾다 그 베이스가 될 수 있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준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누는 일을 생각한 게 놀랍네요. 그런 맥락에서 <Club 동행한대> 캠페인을 통해 기부를 결심하신 건지요? 고정인_ 아직 많이 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이 성과급을 받아 함께 기부하는 게 어떨까 제안을 했죠. 이번이 아니면 시작을 못할 것 같아 그러자 했어요. 이희성_ 회계사반에서 공부할 때 여러 면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꼭 돌려주자 다짐했었습니다. 한양대 회계사 동문회 ‘디딤돌’에는 그해 합격한 사람들이 소정의 돈을 모아 후배들에게 지원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합격하면 그것 말고도 꼭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다짐했었죠. Q 남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셨는데 망설임은 없었나요? 고정인_ 저희도 아직 신혼이라 돈 쓸 데가 많긴 한데요. 교회의 영향을 받아 평소에 기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 시작 전에 교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의 성과를 영상으로 보여 주는데 그때마다 저도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가장 쉬운 게 돈으로 하는 기부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이번 기부 외에도 개인적으로 계획 중인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이희성_ 아내와 함께 교회 푸른나눔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회계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기업에 회계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었죠. 둘 다 바빠서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참여하려고 합니다. 또한 장모님께서 장기기증 서약을 하셨는데, 아내와 함께 이 문제 역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Q 경영대학 발전기금으로 기부를 하셨는데 특별히 사용되었으면 하는 데가 있을까요? 이희성_ 저희도 집이 부유한 건 아니라 학교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요즘은 꿈을 이루는 데도 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올라갈 수 있는 후배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그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고정인_ 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뿐 아니라 한양대에 기부를 하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우리 주변에 서로를 돕고자 하는 의지가 있구나,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구나 느끼고, 그 마음을 후배들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희성_ 저는 선배들에게 받은 사랑과 지원이 아래로 계속 흐르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화가 되고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학교를 나와 일을 하다 보니 성장하는 데에 학교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만일 다른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 이룬 것들도 어쩌면 접어야 하는 꿈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시절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여러분의 관심이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25

[동문][희망, 100℃] 부족한 세대의 기억이 나눔의 시작이 되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아낸 황인수 회장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생각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내가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시작한다는 황 회장의 의지는 모교 건축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었고, 최근 총장전략기금 1억 원 기부까지 이어졌다. 부족함을 기억하는 세대도 자신의 세대가 마지막일 거라며, 그렇기에 더욱 나눔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 성일건설 회장 황인수(58 건축공학) 동문 현장과 강의실을 오가며 몸에 밴 공부 사실 한양대 입학은 황인수 회장의 선택이 아니었다. 타 대학 낙방 후 교육자인 형님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건축이 필요하다며 한양대 건축학과를 추천하였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장학금도 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학교 공부만 해서는 현장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학과공부에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바로 체득하고, 현장에서 알고 싶었던 것을 강의실에서 배우며 공부가 몸에 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현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4학년이 되면서 설계도를 그리게 되었고, 현장감독을 하면서 나이에 비해 빠른 경력을 쌓았다. 이 경력으로 군 입대 후에는 공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군 생활 중 신일토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정말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신일토건에 다니면서 굵직굵직한 공사를 많이 했지요. 한창 일에 재미가 붙고 건설시장 체계를 알 즈음 창업을 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셋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들과 내가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들이 남들보다 빠르고 성공적인 출발선이 되어 주었죠.” 행동이 가장 강한 설득력 삼십대, 남들은 직장을 얻고 일을 알아갈 때쯤 사회적으로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황 회장은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안정을 선(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때 삶의 지표로 세운 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는 생활, 봉사하는 생활’이라는 쉽지 않은 좌우명이다. 당시 서울지구 JC특우회 회장이었던 그는 새벽에는 현장을 돌고 오후에는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충북 단양의 한 시골에 일본 JC에서 지원해 온 치과의사들과 협력해 무의촌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또한 소득증대사업으로 발을 짜 판매하는 방식으로 낙후부락이었던 마을을 자립부락으로 만들며 놀라운 기적을 함께 이루어내기도 했다.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부족함은 불편한 일이지만, 제 경우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이 저는 기부와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인색함이란 있을 수 없죠.” 정신없이 현장을 오가면서도 그의 봉사하는 삶은 중단되는 일이 없었다. 서울남산로터리클럽 회장을 하며 중국 연변에 의료봉사활동을 추진하였고, 재작년엔 네팔에 도서관을 건립하여 현재 도서기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10년 동안 한양대 동문 부회장을 하며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에도 솔선수범하였다. 늘 남을 독려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행해야 설득력을 가진다는 황 회장은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현장에서에서 5,000만 원을 기부하였다. 동문회장이 먼저 시작하니 줄줄이 기부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만 10억 원을 모금한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 황인수 동문은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제게 부족함은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은 기부와 봉사입니다." 라고 말한다. 가까운 곳의 어려움을 챙기는 성일장학재단 기부나 봉사를 시작하는 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는 황인수 회장은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도와줄 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때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일건설의 경우 2007년부터 사단법인 성일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건설시장이 위축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진 현장 소장이나 하급직원의 자녀들을 추천받아 1년에 10명 안팎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세월이 10년 흐르다 보니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들도 이젠 꽤 많아졌다. 그 수가 많아진 만큼 잘 된 학생들의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한 번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며 한 학생이 인사를 온 적이 있었다며, 일찍이 많은 것을 이루었던 자신에게 인생의 즐거움이란 이렇게 곳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황인수 회장은 결혼을 하면서 아내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책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아껴 쓰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집을 샀고, 아이들을 교육했고, 후일엔 후배들을 위해 쓰면서 한양대 발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현재의 후배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시작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한다면 더 좋지 않겠냐며, 황인수 회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