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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04 중요기사

[동문]김정범 동문, "세계여행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멘토가 되고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던 세계여행. 그러나 현실은 짧은 여행도 다녀오기도 녹록지 않다. 김정범 동문(기계공학 석사)이 들려주는 세계여행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유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다른 문화를 만나고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김 동문. 그는 현재 여행 멘토로서, <세계여행 플랜북>을 출간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오다 30개국 150여 개의 도시. 김정범 동문(기계공학과 석사)의 여행기록이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김 동문은 기계공학과 자동차 전공학회 ‘바쿠넷’ 회장을 거쳐 현대자동차 연구소 개발자로 지난 2010년에 입사했다.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비를 몽땅 털어 여행을 떠났을 정도로 여행 광이었던 그는 회사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제한적인 해외 현지 시장의 분위기나 정보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아내와 함께 회사를 나와 1년 동안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중국, 인도, 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자동차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여행경로를 짰다. 각국의 자연경관과 환경을 보며 현지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몸소 느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게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외부 시선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퇴직을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김 동문의 생각은 달랐다. 직장생활 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기술 영업과 여행컨설팅이란 꿈에 확신이 생겼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1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 동문은 현재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뤘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서 기술영업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여행 컨설팅회사 넥스트립(클릭 시 이동)에서 기획 담당으로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있다. ▲ 김정범 동문(기계공학 석사)과 지난 8월 29일 서울 삼성역 부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의 가치를 나누고자 출간한 책 김 동문은 지난 6월 21일 <세계여행 플랜북>을 출간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연과 세계일주 스터디 그룹에서 활동한 지식을 책으로 공유하고 싶었다고. “지금까지 세계여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봤어요. 저도 그랬지만, 여행경로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책을 출간했죠.” 함께 세계일주 스터디 그룹에서 활동하는 여행전문가 4인과 함께 지역을 나눠 책 집필에 힘썼다. 형식적인 여행가이드북이 아닌 현지에서 통하는 실생활 정보와 조언을 함께 담았다.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로부터 효율적인 여행경로 짜는 법, 놓치지 말아야 할 시기별 축제와 여행지 등 최신정보를 가장 잘 담은 책이라 평가 받고 있다. 김 동문은 지난 3년을 책 집필에 매달렸다.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몸으로 느낀 알짜배기 정보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여행 플랜북>은 서점과 온라인매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그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효율적인 여행경로를 계획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김정범 동문이 집필한 <세계여행 플랜북>이 지난 6월 21일 출간됐다. 현재 서점과 온라인매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1년간의 세계여행은 김 동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바라본 석양, 쿠바 현지인들에게 받았던 순수한 마음, 여행길 위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나눈 인생 고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아내를 위한 프러포즈 등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나를 배운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전에는 알 수 없었던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죠. 여러분들도 살면서 꼭 한 번쯤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김 동문은 대학생이라면 꼭 외국을 방문해 현지 대학생들과 대화해보길 권유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나누면서 수업에선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깨우칠 것이라 덧붙였다. “여러분의 4년을 전공 서적보다 다양한 경험으로 더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여행과 진로에 관한 질문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문의해주세요.” 김 동문의 연락처는 kimjbno1@gmail.com 이다.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 베테랑' 김 동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떨까.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8 26 중요기사

[동문]한양대 모의유엔 초대 사무총장, 유엔과 시민사회 잇는 가교 되다

유엔 대표 파트너 기관인 유엔협회세계연맹(이하 WFUNA, World Federation of United Nations)은 유엔의 비전과 가치를 시민사회에 널리 알려 둘 사이 교류 및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보니안 골모하마디(Golmohammadi) WFUNA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지난 2015년 서울에 제3사무국이 들어섰다.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의 뒤를 이은 것이다. 서울 사무국에서 세계시민 양성 및 유엔의 활동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 교육 주임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을 만났다. 유엔의 동반자, WFUNA WFUNA는 유엔 설립 일 년 후인 1946년에 발족한 비영리 국제기구다. 로고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의 국가 간 전쟁 방지, 평화 유지, 인권 보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린다.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유엔 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영진 동문은 “유엔의 주요 활동과 비전을 지지하고,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WFUNA의 역할을 소개했다. ▲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은 지난 8월 '2018 청소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인솔했다. (이영진 동문 제공) 이 동문은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유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매년 7월 말 개최하는 ‘유엔협회세계연맹 청소년 캠프’에서 유엔기구 진출과 미래 지도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교육한다. 8월에는 일주일간 ‘청소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인솔한다. 학생들은 뉴욕 유엔본부 및 제네바 유엔사무국에서 유엔 주요 의제를 공부한다. 최근에는 11월 3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2018 UN 청소년 환경총회’ 준비를 시작했다. 모의 유엔으로 키운 꿈 WFUNA에서 선보이는 그의 힘찬 발걸음은 고등학교 때 부터였다. 이 동문은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모의 유엔 활동을 하게 됐다”며 “이후 유엔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다양한 의제를 공부하고 토의하며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모의 유엔 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3학년 때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함께 모의 유엔 회의 형식을 기반으로 한 교육사업을 진행했다. 국내외 학생들에게 인권, 평화, 안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 유엔의 자매기구인 유엔협회세계연맹(이하 WFUNA : World Federation of United Nations)에서 근무하는 이영진 동문을 종각 서울글로벌센터 WFUNA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동문은 모의 유엔 회의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강재현 동문(국제학부 08)과 함께 2009년 한양대학교 제1회 모의 유엔 회의(이하 HYMUN)를 주최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 모의 유엔이 한양대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였다. 당시 그는 사무총장을 맡아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이 동문은 “HYMUN을 준비하면서 모의 유엔 회의 활동에 전문성을 기를 수 있었다”며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국제기구, 이렇게 준비했어요 이 동문은 졸업 후 해군 통역 장교로 임관했다. 15년도에 제대하면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국제학부 선배의 권유로 WFUNA에서 진행하는 ‘유엔협회세계연맹 청소년 캠프’ 트레이너로 참가하게 됐다. 그는 “캠프에서 모의 유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평소에 하고 싶던 분야와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추후 채용 과정을 거쳐 WFUNA의 일원이 됐다. 이전부터 계속해 오던 모의 유엔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 이영진 동문이 WFUNA 로고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국제기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 동문은 “업무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관에서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 직무기술서를 분석하면 어떤 직무가 나와 맞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유엔은 별도의 홈페이지(클릭 시 이동)를 통해 직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동문은 “학점과 스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8-08 17 헤드라인

[동문]나는 매일 성장하는 1번 타자

성장은 비단 나이를 먹고 체형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단어 안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폭넓어진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 박해민 동문은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로만 뛴 데다 수비가 약점으로 취급되던 선수였다. 2012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신고(육성)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군만 해도 이미 자신만큼 치고 수비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3년 연속 도루왕에 국내 최정상급 외야수로 평가받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동안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 미디어전략센터 / 사진 손초원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 선수(스포츠과학부 08)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문하다 무더위가 온몸을 덮치던 지난여름, 삼성 라이온즈가 원정경기차 찾은 잠실야구장에서 박해민 동문을 만났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박해민 동문은 특히 도루와 수비 능력이 뛰어난 국내 대표 1번 타자로 통한다. 2014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능력을 향상시키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뛰어난 낙구 판단과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가 빛을 발하며 외야 수비에서도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이제 많은 2군 및 신인 선수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박해민 동문이지만 처음부터 빛을 발했던 것은 아니다. "2012 KBO 드래프트 나갈 당시 대학 선수 중 타격 성적(4할 2푼 9리)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 때문에 쉽게 뽑힐 줄 알았고, 프로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지명이 되질 않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2루수)로만 뛰던 그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후 야구부 감독 및 코치진들에게 외야수로 전향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내야수로 뛰기에는 송구 등의 수비 문제가 지적된 것. 내야수라는 포지션에 애착이 많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다. “외야수를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려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 넘어서까지 연습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4년 동안 매일 갈고 닦았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는 타격이 좋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외야 수비는 대학교 들어서야 전향했고, 도루는 대학 통산 7개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드래프트 직후, 그의 가능성을 본 삼성 라이온즈는 그에게 신고(육성) 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안을 보낸다. ‘신고 선수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군 주전의 열쇠- 주루와 수비 신고 선수는 쉽게 말해 연습생으로 신고만 되어 있을 뿐, 정식 등록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리그 최저 연봉을 보장받지 못하며 당장 언제 퇴출당할지 알 수 없다. 박해민 동문은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어 2014년 1군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군 코치님들이 제게 강조하신 건 주루와 수비였어요. 그래야 제가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타격이나 다른 부분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주루와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조건을 뛰어넘으며 1군 주전으로 발돋움한 박해민 선수 경기 후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는 대학 때와는 달리 프로에서는 일주일에 여섯 번은 경기에 나서고, 매일 훈련을 했다. 그는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프로 세계에 맞게 만들어나갔다. 시간과 땀이 쌓일수록 요령이 보였고, 그럴수록 두 눈 앞에는 프로야구의 더 넓은 길이 보였다. 람보르미니가 되기까지 박해민 동문은 야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손꼽는다. 우승 외에 2014년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해 비로소 팀의 주전 외야수이자 1번 타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6개 도루를 기록한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팬들은 그가 람보르기니처럼 빠르게 질주한다며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당시 김평호 코치님이 도루 요령을 세심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가르쳐주신 내용을 실전에 적용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도루를 잘하려면 상대 투수의 버릇을 유심히 관찰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구 때 뛰는 게 시간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 그 타이밍을 파악하려고 애쓰죠. 도루할 때는 그저 ‘한 베이스 더 나가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중요한 건 내 기록이 아닌 팀의 승리니까요.” ▲박해민 선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 외야 전향 직후 ‘수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대학 때도 프로에서도 그는 묵묵히 연습에 매진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대략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겠다는 감이 생겼다. 매일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선수들은 무더위는 물론 주변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모든 것이 컨디션과 직결되니까 말이다. 박해민 동문이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래야 몸이 충분히 회복될 수 있거든요. 그 밖에는 체력 보강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컨디션 유지에 힘쓰는 건 물론 리그 일정 때문이지만, 올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8월부터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떠오른다는 그는 특히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당시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야구에 대한 고민이 많던 때에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만나 외야수라는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측면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인간적으로 잘 챙겨주셨죠. 프로 세계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고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야구부 자체가 대학 야구의 명문이잖아요? 학교 측 지원이 워낙 좋았고 야구부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해민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태극마크는 쉽게 오르기 힘든 만큼 어떤 선수나 동경하는 일일 테다. 그는 자신이 주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주자로 나가든, 대수비로 나가든 최선을 다해 우승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보다 빠르게 뛰어 베이스를 훔치고, 한 발 앞서 수비하며, 더 정교하게 타격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노력만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는 듯이.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람보르미니라는 별명 외에도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 항상 노력하는 선수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역시 그 수식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팬 분들도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시고요.” 그의 몸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지만 성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야구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은 ‘그’라는 세계를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의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얼마나 매혹적인 야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야구와 이 세계를 배워나가고 있다.

2018-07 29 중요기사

[동문]중동에서 온 청년, 한양에서 성장하다

매주 다양한 국가의 20~30대 청년들이 뜨거운 안건을 놓고 토론하는 예능 프로그램 JTBC <비정상회담>이 지난해 12월 마침표를 찍었다. 사메르 샘훈(Samer Samhoun) 동문(경영학 석사 졸업)은 레바논을 대표해 18회(2014. 11. 03) ‘일일비정상’으로 출연했다. 당시 샘훈 동문은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지금 그는 한국 시민권을 기다리고 있다. 한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사메르 샘훈(Samhoun) 동문이 JTBC <비정상회담> 18회(클릭 시 다시보기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레바논 대표로 출였했다. (JTBC 제공) 유학생의 한양살이 2008년 여름이었다. 샘훈 동문은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업가인 아버지께서 한국과 중동 간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 말씀하셨죠.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 사업(KGSP, Korean Government Scholarship Program)에 선발됐습니다.” 교육부는 전 세계의 고등교육 우수 인재를 초청해 국내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샘훈 동문은 한양대 어학당에서 8개월 한국어 연수 과정을 이수한 뒤 기계공학부 09학번이 됐다. 학교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샘훈 동문은 서툰 한국어 실력으로 종종 곤욕을 치렀다. “처음에 반말과 존댓말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어요. 반말이 짧아 존댓말보다 편하다고 생각했죠. 수업 중 교수님께 ‘이건 뭐야?’라고 여쭤봤어요. 갑자기 교실이 조용해졌지만, 모두 제가 유학생인 것을 알고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한국인 학생들과 친해지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다른 유학생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한국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어요.” ▲ (왼쪽에서 두 번째)사메르 샘훈 동문이 '2013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사진 촬영하고 있다. 그는 한양대에서 기계공학부를 이수했다. (샘훈 동문 제공) 학부는 마쳤지만, 한양에 더 머물기로 했다. 샘훈 동문은 더 심도 깊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졸업 전 삼성 에스원 해외 영업 파트 태스크포스팀(TFT, Task Force Team)에서 잠깐 일하는 동안 중동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는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진학해 글로벌 창업(Global Startup)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레바논 대표에서 한국인으로 샘훈 동문은 JTBC <비정상회담>의 처음이자 마지막 레바논 대표였다. MBA 과정을 거칠 때, 그는 삼성의료원에서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간호사의 추천에 의해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출연을 망설였다고 한다. 학업과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다. “여러 국적의 패널들과 이혼과 양육권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 사회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 사메르 샘훈 동문(경영학 석사 졸업)은 한국과 중동 사이 가교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샘훈 동문 제공) 그는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한국 시민권 취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재 하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현재 샘훈 동문은 스타트업에 자문을 제공한다. 이 뿐 아니다. 중동 진출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에도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의료 관광객을 위한 통·번역 회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제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얻고 싶어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샘훈 동문은 한양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학교에서 전공 지식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도우면서 성장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샘훈 동문은 재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한양플라자에서 커피를 사는 학생이 사회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편의점에서 빵을 사 먹는 학생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한양인 모두가 한양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2018-07 09 중요기사

[동문]국제학도들, 경찰의 길을 택하다. (1)

국제학부는 2003년도 신설된 이래 많은 인재를 배출해왔다. 글로벌 사회로 진출한 많은 동문이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그중 국민의 안전을 위해 밤낮없이 활동하고 있는 경찰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이 있다. 국제학부에서 경찰의 길은 흔치 않은 경우. 경찰의 길을 택한 정현중 동문(국제학부 06)과 서준 동문(국제학부 08), 두 사람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본교 출신으로 현직 경찰이 된 정현중 동문(국제학부 06, 왼쪽)과 서준 동문(국제학부 08, 오른쪽)을 지난 4일 학교 안 카페에서 만났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현중: 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찰청 교육정책담당관실 인재선발계에 재직 중인 정현중입니다. 서준: 안녕하세요. 저는 경찰청 외사국 국제협력과의 서준입니다. Q 경찰청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정현중: 제가 있는 곳은 쉽게 채용 부서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경찰채용과 관련된 법령개정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30가지가 넘는 채용에 대해서 각 부서와 협의 후 기획부터 채용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담당하죠. 특별채용과 승진시험 문제를 내기도 합니다. 경찰은 의료, 의류, 전산, 항공헬기 조종사까지 굉장히 다양한 채용이 이루어집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업무를 해내고 있죠. 서준: 네 저는 그래서 경찰청이 또 다른 소(小) 생태계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크고 다양한 경찰청 속의 작은 외교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찰은 대한민국이 관할이지만, 관할 밖인 해외에 있는 국민들도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구금되거나 외국으로 도피한 범인을 검거해야 할 경우 외국 경찰과의 협력관계가 굉장히 중요하죠. 이를 위해 우리나라 경찰청이 원만한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제활동을 펼치는 곳입니다. 저는 주로 통번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서준 동문(국제학부 08)은 우리나라 경찰이 원만한 국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있다. 위 사진은 주한 이탈리아 대사 의 경찰청 방문 당시 통·번역을 담당한 서준 동문(왼쪽)의 모습. Q. 국제학부에서 경찰의 길을 택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정현중: 처음에는 외무고시를 준비하고자 국제학부에 들어왔어요. 현실적인 장벽으로 고민하던 중 군에 입대했는데, 그곳에서 인생이 바뀌었죠. 전투경찰로 배치받아 일하면서 좋은 선임들을 만나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게 됐어요. 도전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면서 경찰에 대한 꿈이 커졌습니다. 경찰후보생 추천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경찰 준비를 하게 됐죠. 서준: 저 같은 경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찰에 대한 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경찰차만 지나가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대학에서 진로 고민을 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하고 깊게 생각하다 보니 어렸을 때 꿈꿔왔던 경찰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경찰에 대한 꿈이 커져갔고, 마침 외국어 특별채용 전형이 떠서 지원하게 됐죠. Q 경찰을 준비하신 전반적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현중: 제대 후 두 학기가 남았을 때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죠. 공부할 때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경찰시험에 집중시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서준: 저 같은 경우는 특별채용이었기 때문에 준비과정이 조금 다릅니다. 특별채용에서는 해당 특기 실기가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들어온 외국어 특별채용의 경우에는 어학 · 번역능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저는 시중에 존재하는 모든 기출문제를 모아서 시간과 단어 수를 하나하나 세어가며 연습을 했어요. 영자신문을 옆에 놔두고 비교하면서 계속 준비했죠. 체력 부분이 미흡한 것 같아 체력학원을 병행했어요. 저는 운전면허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지원 전에 1종 보통 자격증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땄죠. ▲ 정현중 동문(국제학부 06)이 경찰을 준비했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Q 국제학부에서 경찰을 준비한다는 것이 힘들진 않았나요? 정현중: 오히려 국제학부에서 배웠던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국제학부 수업 중에 국제법 수업이 있었는데, 경찰학 개론에서 배우는 외사경찰 분야와 흡사한 부분이 많았어요.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됐죠. 서준: 저도 외국어 특별채용 전형이었기 때문에 국제학부를 다녔던 게 더 큰 도움이었죠. 실기시험에서 번역문제를 풀 때, 재학하면서 경험했던 번역 아르바이트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국제학부 특성상 법학, 건축, 공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번역하곤 했는데, 마침 법학 분야 번역문제가 출제됐어요. 국제학부의 간 학문적인 학풍이 지금의 저를 이끈 것 같아요. 후배들도 취업만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네요. Q 경찰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서준: 아무나 하는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게 되죠. 살아가면서 살인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나요? 변사체는요? 경찰을 준비하고자 하는 후배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유행한 경찰 드라마를 보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죠. 밖에서 이틀 삼일 밤을 새우면서 일할 수 있는지, 위험한 상황과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지. 이런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라요. 저는 이만큼 보람찬 직업이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가도 경찰의 길을 택할 겁니다. 정현중: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찰업무에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언론에 가장 민감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거든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혹시나 경찰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저희처럼 이미 경찰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으면 좋겠네요. 두려워하지 말고 연락하길 바라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8-07 09

[동문]우인철 동문 "청년정치 시대 열겠다"

정치가 젊어지고 있다. 로마 첫 여성 시장 비르지니아 라지(Raggi)는 39세다. 에마뉘엘 마크롱(Macron) 프랑스 대통령은 39세에 당선됐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Kurz)는 31세에 취임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회의원 평균 연령 55세. 30대는 겨우 두 명뿐이다. 경력과 나이를 정치능력의 중요 잣대로 삼고 있다. 여기에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세대교체를 통해 새 정치를 꿈꾸는 청년, 우리미래 중앙당 조직위원장 우인철 동문(분자생명과학부 05)을 만났다.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우 동문은 한양대에서 분자생명과학을 전공했다. 언뜻 보면 의아하다. 배운 것이 정치와 크게 관련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학생회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난달 13일에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시작은 4학년 때 한 대외활동이었다. 우 동문은 청년 주거 문제, 등록금 문제, 취업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청년단체 ‘청년포럼'에 참여했다. ▲ 우인철 동문(분자생명과학부 05)과 지난 6일 우리미래 중앙당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창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청춘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을 때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뒀다. 우 동문은 ‘청춘콘서트’에 참여한 사람들과 뜻을 모아 청년당을 창당했다. “정치를 통해 삶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등록금 문제만은 바로잡고 싶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죠.” 그러나, 신생 정당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득표율이 3%에 못 미쳤다. 원내 진출이 좌절됐고, 정당은 해산했다. 정치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우 동문은 정당 해산 후 3년간 서울시 청년허브 일자리 사업단에서 청년 혁신 일자리 사업, 청년 정책 네트워크 사업, 청년 교육 사업을 담당했다. 지난 2015년부터는 인문학 공동체 연구모임 ‘수유너머’와 청년포럼에서 청년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우 동문은 청년당 시절에 못 했던 새로운 정치를 하고 싶어졌다. “정치를 통해 우리 삶을 치유하고 싶었어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우리미래’를 창당했다. ▲ 청년임대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철야 텐트 시위를 했던 당시 우인철 동문의 모습(우리미래 홈페이지 갈무리) 청년 문제는 곧 사회 문제다. 우 동문은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 곳곳은 청년임대주택사업이 무산될 위기다.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우 동문은 현장을 찾아가 '청년임대주택을 지키기 위한 청년텐트'를 치고 밤을 새며 시위했다. “살인적인 월세와 집값으로 휘청대는 청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채용비리 의혹이 있는 의원의 구속수사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뛰며 우 동문은 ‘청년들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싶어’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렇게 묻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대입니다. 어둡다고만 할 수 없지만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방황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시도하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환경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우 동문은 1만1599표(득표율 0.2%)를 받으며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결과만 봤을 때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서울시장 선거는 시작일 뿐이었다. 1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이 공감하고 선택했다. ▲ 우리미래의 슬로건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우인철 동문. 우 동문은 청년의 힘으로 변화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년 주거 문제 등과 관련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정치 세대 교체를 하고, 사회를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2020년 총선 때는 ‘우리미래’에 원내 진출을 하는 청년 국회의원들이 한 명 이상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 동문은 보편화 돼 있는 엘리트의 의미를 다시 정의한다. “엘리트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한양대 후배들이 엘리트가 되길 바랍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6 10 중요기사

[동문]누구나 스마트폰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창작은 이런 지루함에서 탈피하는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작곡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사진 아티스트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스마트폰 사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진작가 방현수(기계공학부 08)씨를 지난 4일 만났다. “저희 전공 수업 중에 ‘열역학’이라는 과목이 있어요. 이 수업을 4번이나 재수강을 했는데, 그래도 F학점을 받았죠.” 방현수 씨(기계공학부 08)는 자신의 대학생활을 방황했던 침체기라 말했다. 전공 공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방씨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과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던 방 씨는 첫 여윳돈으로 카메라를 샀다. ▲ 지난 4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공업센터에서 자신의 대학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점을 설명하고 있는 방현수(기계공학부 08) 씨. “그 당시 정체된 저와 달리 매일 성장하는 동기들의 소식을 들었죠.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 방 씨를 치유해 준 것은 카메라였다. 소소한 집안의 사물부터 집밖 풍경을 찍다 보니 자신에게도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으로 자신감을 얻은 방 씨는 복학을 결심했고, 당시 기계과 내 사진 동아리 '빛담'(현재는 공대 소속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했다. 다음해 11월에는 방송사 tvN에서 주최하는 ‘위시캠핑 포토스타’ 프로그램에 나가 2위를 차지했다. 사진작가로서 커리어를 쌓던 중 Frip(야외 엑티비티 플랫폼)에서 사진 강연 요청을 받았다. 카메라에서 위로를 받았던 방 씨이기에, 어떻게하면 이 감동을 청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 밤낮없이 고민했다. 방법은 '스마트폰 사진 강연'이었다. 고가의 사진 장비 대신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법을 알려주자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에도 계속해 강연 요청이 이어졌고, 방 씨는 이 분야에서 창업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스마트폰 사진에 대한 강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1인 기업을 설립하게 됐다. ▲ 방 씨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방현수 씨 본인 제공) ▲ 방 씨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방현수 씨 본인 제공) “사진을 찍으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덜하게 나올 때가 많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장비로,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방 씨는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전공 공부가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이 많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그 고민의 과정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민하고 방황했던 덕분에 안 맞는 일은 확실하게 찾았죠. 그렇게 계속 고민하다보면 결국에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 김가은 기자 kimgaeun98@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6 09

[동문]'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동문(체육 77)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중심에 한양인이 있었다. 바로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그 주인공. 박 동문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이하 U-23)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베트남은 올해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AFC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동남아시아 국가가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 동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악바리의 드리블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세며 모진 사람. 박 동문의 별명은 ‘악바리’였다. 늦은 시작탓에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니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1학년 2학기 때부터 고등학교 축구팀에 들어갔죠. 운동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습니다.” 박 동문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한양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 럭키 금성 선수 시절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제공) 박 동문은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고(故) 최은택 교수(체육학과)님과 고(故) 배기면 교수(체육학과)님의 가르침으로 선수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박 동문은 한양대 졸업 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얼마 있지 않아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전역하고 럭키 금성 황소(현 FC 서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해 맹활약했다. 1985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86년에는 주장으로 선임됐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5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박 동문은 후배 선수를 키우고 싶었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은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일찍 선수 생활을 그만 두는 것도 아쉬웠죠. 하지만 빨리 지도자로 자리 잡을 수 있어 후회하지 않습니다.” 1989년부터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의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LG 치타스의 코치를 거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지난 기사 보기 - 월드컵 4강 신화 일군 `특급 참모`) ▲ 박항서 동문이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하고 있다. (베트남 축구협회 제공) 시간이 흐르며 월드컵 열기가 식듯, 박 동문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2015년 12월에는 상주 상무 감독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7개월 전에는 3부 리그인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었다. 젊은 지도자들이 계속 배출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박 동문에게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선수와 지도자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지식과 철학을 쏟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축구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후배 감독들에게도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박 동문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AFC 주최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3급 노동 훈장을 받았다. 노동, 창의성, 국가건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3급이 가장 높다. 불과 작년만 해도 밀려난 지도자였던 박 동문. 지금은 박항서 열풍을 일으키며 자신의 업적을 새로 쌓고 있다. ▲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박항서 동문이 ‘사부의 한마디’를 말하고 있다. (SBS 제공) 끝으로 박 동문은 한양인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전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베트남 선수들에게도 했던 말이다. 박 동문 역시 선수와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많이 넘어졌고, 힘든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 숙이지 않고 묵묵히 달린 결과 끝내 베트남의 별이 됐다. “한양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사세요. 최선을 다했으면 당당해도 됩니다. 결과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2018-06 04

[동문]춤을 통해 그가 말하는 세상

무용은 추상적이고, 정형화되지 않는다.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에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 많은 느낌과 생각을 은유적으로 실체화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은은하면서 강력하기도 한 춤은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한다고 김성용 동문(무용학 박사과정)은 말한다. 1997년 만 20세 최연소로 제27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 수상. 이어서 2000년에 일본으로 넘어가 개인작으로 무대를 선보이더니, 2년 뒤 한국인 최초로 나고야 국제 현대무용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일본을 포함, 세계를 주목시켰다. 지난해 12월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안무자로 취임한 무용인 김성용 동문이다. ▲ 1976년생, 43세의 나이의 젊은 리더십을 갖춘 김성용 동문(무용학 박사과정) (김 동문 제공)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이 과학자, 선생님을 꿈으로 이야기 할 적에도 김성용 동문은 안무가를 꿈꿨다. 그것도 대구 무용단의 안무감독이라는 구체적인 꿈을 그렸다. 김 동문은 10대 시절부터 몸으로 활동하는 것을 곧잘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연기를 추천했다. 당시 대구에는 연기를 배울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북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남자 무용수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한양대 무용학과에 입학해 2000년에 학사 과정을 마친 김 동문은 무용학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어가고 있다. 부임 후 첫 데뷔작 ‘군중’과 그 이후 김 동문은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을 때에도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무용단 데뷔작으로는 <군중>을 기획했다. 김 동문이 대구시민들과 첫 조우한 작품이다. <군중>은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을 독창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인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모두에게 상처가 존재한다는 다소 어둡지만 희망적인 내용이다. 이 작품으로 김 동문은 지난 3월 13~14일 양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정기공연을 마무리지었다. ▲ 작품 <Moving Violence Episode 1&2>의 공연 모습. (김성용 동문 제공) 김 동문은 “순수 예술가들은 '작품의 깊이'와 '대중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합의점을 찾아 표현을 멈추지 않는다. 관객이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고, 일상에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동문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길 희망한다. 관객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무대에 담아내 대중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용수로서의 삶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차세대 독보적인 현대무용가로서 김 동문은 8월 29일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받아 신작 발표를 준비중이다. 10여 명의 무용수들과 투어공연을 할 예정이다.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9월 베트남 호치민 오페라하우스 무대와 11월 미국 플로리다 던컨시어터 공연 등을 준비하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 무대 위 김성용 동문의 모습. 흡인력 있는 눈빛과 연기로 몰입을 고조시킨다. (김 동문 제공) 무대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잠재돼 있는 무언가를 찾게 해주고 싶다는 김 동문.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과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그 안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 말로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무용 예술의 가치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2018-05 23 중요기사

[동문]여행 사진작가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

이정현 작가의 세계 여행 사진전 <ESSE>가 지난 4월 15일 막을 내렸다. 해방촌에서 첫 사진전을 가진 뒤 두 번째 전시다. 29살에 7만 원으로 세계여행을 나서 여행 작가로 돌아온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을 만났다. 지난 20일 일요일, 남대문 근처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교에서 온 연락이라 더 반갑다며 밝게 웃는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 이 씨는 23살에 중국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한국에 와 한양대 ERICA캠퍼스에 편입했다. 생활비 때문에 영어 강사 일을 시작한 그는 경제적인 여유를 경험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돈을 잃었고, 군 전역 후에는 고작 150만 원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5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을 갑자기 잃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영어강사로 번 돈을 잃은 거니 영어강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요.” 이 씨는 '도피처'로 여행을 생각했다. 이정현 동문의 세계여행 사진전 <ESSE>에 실린 작품들. (이정현 동문 제공) 첫 여행지였던 중국의 비자 발급비와 비행기 값을 빼니 이 씨에게 남은 것은 고작 7만원과 손에 쥔 카메라가 전부였다. 사실 이 씨는 군 생활 내내 사진병보다 자주 촬영 현장에 불릴 만큼 사진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이 씨는 사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처음 1년은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 줬다. 돈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그의 각오 때문이다. 대신 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에 십시일반으로 그를 후원했다. 그렇게 여행 동안 받은 후원금만 1500만 원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유스호스텔 스태프로 일하면서 손님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해 주는 작업을 했다. 그가 찍어준 스냅사진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씨는 확신했다. “돈 때문에 영어 강사를 했는데 돈보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게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돈이 아닌 인생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요.” 고민 끝에 이 씨는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남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이 고민했던 인생의 본질을 찾은 것이다. 이정현 동문은 자신이 찍어준 사진에 기뻐하는 여행객들의 얼굴을 보고 다짐한다. (이정현 동문 제공) 그렇게 이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는 왜 전시 제목을 ‘ESSE’로 정했을까? ESSE는 영어 단어 Essence의 어원이다. 라틴어로 ‘존재’라는 뜻이다.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라는 뜻이 담겨있어요. 결국 무소유, 집착하지 않는 삶이죠.” 이 씨는 요즘 웨딩 저널리즘 사진을 찍고 있다. 저널리즘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사진이다. 사진가의 지시에 따라 찍는 콘셉트 사진과는 반대다. “저널리즘 사진은 피사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이에요. 전시회도 그렇지만,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여행 작가로서의 삶도 여전하다. 이 씨는 다음 프로젝트인 ‘한국을 걷다’를 계획 중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지역을 한 달에 한 번씩 출사하는 내용이다. “사진을 찍을 때 프레임 안에 꼭 넣어야 할 것만 담아요. 인생도 같은 맥락이에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죠.” 도피로 시작한 654일간의 여행은 그에게 삶의 목적을 알려줬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사진작가로서 그의 여행은 이제 막 반점을 찍었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