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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10 중요기사

[동문]보험계리사 합격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보험계리사는 보험회사의 위험을 분석·평가하고 보험 상품 개발에 대한 허가 업무, 보험료 계산 업무를 수행한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보험계리학과는 지난 2013년도에 신설된 후 꾸준히 보험계리사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올해 제41회 보험계리사 합격자 124명 중 한양대 ERICA캠퍼스 출신은 김보근(보험계리학과 4) 씨, 서예지 동문(보험계리학과 13), 주형민 동문(금융보험학 석사)이다. 세 명의 합격자들과 지난 8일 서울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보험계리사 합격자들의 시험 조언을 들어보자. ▲보험계리사 최종 합격자 김보근(보험계리학과 4) 씨, 서예지(보험계리학과 13), 주형민(금융보험학 석사)동문을 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씨와 서 동문은 보험계리학과가 처음 만들어진 2013년에 입학했다. 서 동문은 “1학년까지만 해도 보험계리사에 대한 진로가 확실하지 않았다”고 했다.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고, 과에서 학생들이 보험계리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이 밀어 주셨어요. 전공 공부가 재밌기도 해서 그때부터 꿈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김 씨는 “보험계리학과 1기라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과는 진로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보험계리학과는 보험계리와 관련된 직무가 전부잖아요. 게다가 1기라는 책임감에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어요.” 주 동문은 학부 때 수학을 전공했지만 평소 금융에 관심이 많았다. “금융 관련 직무 중에 보험이 수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일을 다뤄요.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아 금융보험학 석사를 하고 보험 쪽으로 진로를 바꿨죠.” 보험계리사 시험은 1·2차 시험으로 나뉜다. 1차 시험은 선택형으로 ▲보험계약법, 보험업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경제학원론 ▲보험수학 ▲회계원리 과목으로 구성돼 있고, 2차 시험은 약술형 또는 주관식 풀이형으로 ▲계리리스크관리 ▲보험수리학 ▲연금수리학 ▲계리모형론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2차 시험은 지난 2014년도 합격자가 0명일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지만 과목별로 부분합격이 가능하다. 5년 안에 60점 이상 받은 과목은 합격 상태가 유지된다. 김 씨는 재학 상태에서 1차 두 번, 2차 두 번 만에 합격했고 서 동문과 주 동문은 보험 회사를 다니면서 1차 한 번, 2차 네 번 만에 합격했다. ▲ 서예지 동문(보험계리학과 13)이 보험계리사 2차 시험 과목 ▲계리모형론을 공부한 흔적이다. 서 동문은 “공부 내용을 노트에 정리한 뒤 반복적으로 외웠다”고 말했다. (서예지 동문 제공) 세 합격자가 가장 어려워한 2차 시험 과목은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이다. 김 씨는 이 과목의 시험 범위가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보통 100만 해도 합격할 수 있는데 시험 범위는 300이에요. 다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안 하려니 공부 안 한 곳에서 나올 까봐 찝찝하죠.” 서 동문은 위 과목을 공부할 때 “흥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실 2차 시험을 4번째 준비할 땐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그래서 무조건 재밌게 공부하려고 했어요.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강사 강의도 들어보고, 암기보다는 흐름을 타면서 공부했습니다.” ▲ 주형민 동문(금융보험학 석사)은 회사를 다니면서 보험계리사 시험을 준비한 케이스다. “날마다 정해놓은 공부 분량을 하기 전까지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주형민 동문 제공) 김 씨는 학원 공부보다 독학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보험계리는 학원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서 강사들이 한정적이에요. 게다가 보험계리사 시험은 변동성이 크고 범위가 넓은 시험인데, 총 시험 범위가 500이라고 하면 학원에선 300밖에 다루지 않아요.” 오랜 시간 동안 시험 준비를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주 동문은 “한국 보험계리사 시험과 미국 보험계리사(SOA, The Society of Actuaries) 시험을 병행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보험계리사 시험은 1년에 한 번씩 보고 결과 발표도 오래 걸려서 답답한 감이 있어요. 미국 보험계리사 시험은 유형마다 다르긴 하지만 여러 번 볼 수 있죠. 중간에 결과를 받으니까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합격자 세 명 모두 학원에 다니지 않고 각자의 공부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했다며 자기주도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 보험계리사는 1260명이지만, 오는 202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 보험계리사 수요가 3000여명까지 급증할 예정이다. 새로운 체계가 도입되면, 많은 기업에서 바뀐 업무에 최적화 된 보험계리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서 동문은 “공부와 실무 경험을 같이 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보험계리사 시험이 변동이 크긴 하지만 IFRS17 도입을 앞두고 많이 쉬워지고 있어요. 공부에 올인 하는 건 1~2년 정도, 그 다음에는 실습이 중요해요.” 서 동문은 처음 보험사 업무와 공부하던 내용이 괴리가 커서 놀랐다고 전했다. 공부는 그저 답을 구하면 되지만 회사 일은 더 복잡하다고. “관련 아르바이트, 인턴, 회사 직무 경험을 쌓는 걸 추천해요. 실제로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험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김 씨와 보험계리사 시험 합격이 높은 스펙을 대체할 만큼 보람 있는 시험임을 알렸다. 주 동문도 보험계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한양인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보험계리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추세잖아요. 지금 열심히 공부하셔서 성장할 기회를 잡길 바라요.”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12 02 중요기사

[동문]데뷔 10년차 보컬리스트의 화려한 귀환

큰 활약 뒤 다시 성과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10년 만에 첫 솔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로 성공적으로 귀환한 가수가 있다. 바로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 키즈’의 전 보컬리스트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 08)이다. 솔로 앨범 출시와 함께 최근 종영한 드라마 <제3의 매력>에서 리메이크곡 ‘희재’로 OST에도 참여했다. 임 동문은 녹슬지 않은 명품 가창력을 재입증하며 차세대를 이끌 솔로 보컬 주자로 불리고 있다. 보컬부터 작사 및 작곡, 음악감독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임 동문.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가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솔로 보컬리스트로 돌아오다 스무 살, 아이돌 그룹 ‘에이스타일’로 음악가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발라드 열풍에 일조한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 키즈’를 거쳐, 이제는 남자 솔로 보컬 주자로 돌아왔다. 첫 솔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은 임 동문이 작사 및 작곡, 디렉팅까지 직접 해 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추워지는 계절의 감성을 담은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은 깔끔한 고음, 애절한 목소리와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오랜 시간 그룹 활동에 익숙해 홀로 무대에 서는 것에 부담이 있었지만, 그동안 다진 탄탄한 가창력과 많은 연습으로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에게 컴백 소감을 묻자 “공개 후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앨범의 흥망을 떠나 음악적으로 ‘잘 만들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던 그는 음악인들의 평가와 대중적인 성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뒀다. ▲ 남성 보컬 그룹 ‘먼데이키즈’의 전 보컬리스트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08)을 그의 소속사 모스트웍스(MOSWORKS)사무실에서 만났다. 임 동문은 지난 2015년부터 자신의 노래 연습 영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발전하는 것을 남기고 선보이고 싶은 일종의 창구였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입소문을 타 구독자 수가 15만 명을 넘었다. 조회 수 역시 굉장하다. 개인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에 다양한 커버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며 대중에게 솔로 가수 ‘임한별’을 더 잘 알렸다.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물었다. 이번 신규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가장 먼저 언급했다. 커버 곡으로는 드라마 <제3의 매력> OST인 성시경의 <희재>와 300만을 넘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엠씨 더 맥스(M.C The Max)의 <어디에도>, 윤종신의 <좋니>를 꼽았다. 이 노래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습 영상들은 모두 임한별 씨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감상할 수 있다. (클릭 시 이동-임한별 공식 유튜브) ▲드라마 <제 3의 매력>의 OST인 최근 리메이크 곡 <희재>영상. (출처: 임한별 동문 유튜브) 베테랑의 겸손과 끝없는 노력 그의 새로운 별명 중 하나인 ‘보컬의 교과서’. 완벽하게 표현하는 고음과 창법으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그는 데뷔 10년 차임에도 시종일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임 동문은 “사실 조금 쉽게 자만하는 스타일”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려고 합니다. 안주하는 순간 바로 퇴보하더라고요. 그동안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해봐서 항상 연구하고 연습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해요.” 마음이 풀어질 때마다 다시 자극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연구한다는 그는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음악적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10년 동안 연습에 매진했다. 그동안 그는 존경하는 선배들을 통해 음악적 표현 방법과 삶까지 연구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보고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에 뿌듯함과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임한별 동문의 프로필 사진. (모스트웍스 제공) 베테랑에게도 거저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다. 그는 솔로 활동 준비를 위해 먼데이 키즈 활동 이후 골방 같은 작업실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본격적인 솔로 활동 전 작가 활동(작사 및 작곡)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음악감독도 겸하며 음악이라는 영역 안에서 많은 것을 접하려고 노력했다. “작사 작곡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하다가 목이 쉬어 라이브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말한 임 씨는 여러가지 일을 계속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같이 일 하고 있는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진심을 담은 노래를 할 수 있길 바라요” 그가 가끔 특강을 가거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꼭 하는 이야기는 ’진정성’이다. “진심이 아닌 것은 들으면 느껴져요.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집중하지 못하거나 진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잠재력이 표출되지 않는다며 ‘진심을 담은’ 음악을 강조했다. 이어서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꼭 잡으세요. 도전 뒤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기회를 만드는 후배분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임한별 동문(정보사회학과08)은 가수를 꿈꾸는 한양인들에게 실패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잡으라 조언했다. 그는 현재 오는 1월에 발매할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번 앨범 <이별하러 가는 길>에 이어 새로운 곡을 낼 예정이다. 한국을 넘어 미국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틀 안에 날 가두지 않고 지금처럼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그 곳에서도 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목표를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11 26 헤드라인

[동문]전통 예술의 명맥을 잇는 혁신 연출가

거침없는, 실험적인, 상식을 깨는 무대. 윤한솔(사회학과 90) 연출가의 무대에 따라오는 수식어다. 윤 동문은 전통 예술을 파격적이고 첨예한 구성의 현대 예술로 재탄생 시킨다. 전공 공부보다 예술 동아리 활동이 더 좋았던 그는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담아 이야기하는 '연극 연출가'가 됐다. 최근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 장기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윤한솔 동문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시대 속으로 사라져가는 예술의 현대적 해석 윤 동문은 지난 2014년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데모 버전> 공연을 극단 '그린피그'의 무대에 올렸다. ‘전통은 재미가 없다’는 인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공연은 판소리 <적벽가>의 한 대목을 다루며 1980년도 광주민주항쟁을 이야기 한 작품이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판소리를 직접 배웠다. “판소리를 맛깔스럽게 하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기도 하고 민요와 창법까지 공부했어요.” 사실적이고 신선한 공연으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재해석한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 장기 공연이 막을 내렸다. 연출가 윤한솔 동문(사회학과 90)은 전통 유지를 위해 새로운 창조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후 윤 동문은 전통을 공유할 수 있는 다음 장르를 고민했다. 한국무용가 고(故)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선보이기로 했다. ‘병신춤’은 한국무용에 서민적인 해학과 개성을 더한 1인 창무극이다. 왜 많은 한국무용 중 공옥진의 병신춤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제도적으로 계승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답했다. “전통무용이 아닌 창작무란 이유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취소됐어요.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있던 전통 공연이 그 계보를 잇지 못하고, 전수자 역시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고(故) 공옥진의 병신춤을 현대 장르로 재해석해 선보이기로 했다. ▲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을 공연한 배우들의 모습. 공옥진의 수제자를 자처하는 7명의 배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옥진의 춤을 익히는 과정과 사건들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 (그린피그 극단 제공) 윤 동문은 관객들이 더 쉽게 즐기기 위해 색다른 연결 매체를 고안했다. ‘키넥트 센서(Kinect sensor)’를 공연에 도입했다. 키넥트 센서는 동작 인식 카메라로 움직임을 감지하고 데이터로 처리한다. 센서를 장착한 배우들은 스크린 위 공옥진 선생님의 실제 춤 영상을 보고 게임처럼 병신춤을 배운다. 한국 전통 무용을 관람객들이 재미있게 접근하게끔 하는 의도였다. 이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센서 기술을 영상팀과 함께 고민했다. 기술과 함께 유튜브와 같은 유통경로도 갖췄다. “이렇게 접근성이 쉬워지면 전도율이 높아져 장르가 견고해지겠죠. 그렇게 되면 전통에 대한 가치와 존중이 더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실험적 장르로의 변곡점, 그 이후 연출 첫 시작부터 그의 무대는 실험적이거나 과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한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2000년도 공연 예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정한 후 떠난 미국 뉴욕(New York)에 9∙11 테러가 터졌다. 살던 곳에서 불과 2~3분만 걸으면 분진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내전이 일어나는 이유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나 자신에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죠.” 학부생 때는 손대지 않았던 전공책을 뒤늦게 읽기 시작해 유학 내내 사회학까지 공부했다. 작업 스타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그만의 작품 세계가 형성됐다. 그는 공연의 내용뿐 아니라 공연 이후의 사회적 영향도 고려한다. 관객들이 공연의 메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공연을 섬세하게 연출한다. “전통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과 함께 작품 안에 다루는 장애, 권력 관계에 대한 질문, 여성이나 장애를 묘사하는 방법들의 맥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건강하고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윤한솔 동문은 연출가를 꿈꾸는 한양대 후배들에게 사물과 사건, 그리고 스스로와의 ‘관계 맺음’을 토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드물게 학생들에게 ‘롤모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한다"며 웃음을 보인 그는 연출가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에게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극 연출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히 갖기 위해선 특별한 사물이든 사건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윤 동문이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은 ‘이주와 정주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혁신적인 무대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11 11

[동문]안방 1열을 경기장 관중석으로 물들이다 (5)

‘안방 1열’은 안방이 곧 극장이란 뜻의 신조어다.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람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TV를 통해 즐길 때 주로 사용한다. 스포츠 캐스터는 화면으로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의 안방 1열에 현장감을 더한다. STN SPORTS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김우진 동문(경기지도학과 05)은 스포츠 중계에 그의 목소리를 담아 시청자들을 경기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스포츠 중계에 눈을 뜬 전직 윈드서핑 선수 김 동문이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진 꽤 오래됐다.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중학교 때 윈드서핑에 발을 들여놓았다. 윈드서핑은 요트의 돛과 서프보드를 결합한 해양 스포츠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윈드서핑을 곧잘 타 머지않아 선수 생활을 했고, 요트 체육특기자로 한양대에 입학했다. 4학년 때는 국내 윈드서핑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가천대 총장배 전국윈드서핑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10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김 동문은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 김우진 동문(경기지도학과 05)은 중학교 시절부터 원드서핑 선수로 활동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김 동문은 그에게 윈드서핑을 전수한 은사의 자리를 물려받아 서울 광남고등학교 요트부 코치를 맡았다. 그는 학생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 코칭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던 중 선수 육성에 전념하던 김 동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방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중계방송을 즐겨 봤다”며 “어느 순간 스포츠 캐스터들이 중계하는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송사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경기 현장을 전하다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김 동문은 올해 초부터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한국 실업 축구 내셔널리그와 프로와 아마추어 최강자를 가리는 대한축구협회(FA)컵을 중계한다. 한 달 전에는 ‘2018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 수영과 탁구 경기 현장을 전했다. 그는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국제 대회에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며 “생중계한 경기에서 조원상 수영선수가 한국 첫 메달을 목에 걸어 태극기가 올라갈 때까지 현장의 감동을 함께 할 수 있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 (왼쪽)김우진 동문(경기지도학과 05)이 지난 9월 14~15일에 열린 '2018 데이비스컵 테니스대회' 한국과 뉴질랜드 경기를 김성배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하고 있다. (김우진 동문 제공) 이색적인 경기 중계도 그의 몫이다. 김 동문은 지난 9월 충북 충주에서 진행된 소방관들의 올림픽 ‘2018 세계 소방관 경기대회’의 현장을 전했다. 63개국 6600명의 소방관이 축구·야구·수중 인명구조 등 75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뤘다. 그는 “대회 경기 중에서 가로수, 공중전화 등에 숨겨진 쪽지를 찾아 적힌 임무를 수행하고 징을 먼저 치면 승리하는 ‘보물찾기’ 종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2018 정기 연고전(고려대 주최)' 마지막 종목인 축구를 중계했다. 올림픽 승리의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스포츠를 중계하는 자리에 가기까지 김 동문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시험장에서 유창하게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며 “어느 경기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수없이 반복하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 캐스터로 활약 중인 한양대 생물학과 79학번 배기완 SBS 아나운서를 보면서 중계에 대한 추세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김 동문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한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경기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 "스스로도 스포츠를 즐겨야 좋은 스포츠 캐스터가 될 수 있어요!" 김우진 동문(경기지도학과 05)는 스포츠 캐스터의 가장 큰 매력으로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으며,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한양인을 응원했다. 김 동문은 운동선수를 하면서 한양대에 진학해 메달도 따고, 지도자 경험도 쌓았다. 그러나, 그가 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올림픽 출전이다. 김 동문은 “선수로는 올림픽을 겪지 못했지만, 캐스터로 올림픽을 중계하고 싶다”며 “한국이 승리하는 순간에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김 동문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목을 넘나들며 중계하면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 금빛 물결이 실리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10 29 중요기사

[동문]글로써 춤을 사유하는 무용 연구가

한국 무용을 연구하는 김윤지 동문(무용학과 97)이 2018년 한국연구재단 박사 후 국내 연수 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최근 5년간 무용계열에서 연구 대상자로 연속 두 번 선정된 경우는 김 동문이 유일하다. 그는 현재 한국연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 사업 과제 세 개를 진행하고 있다. 수혜 금액만 대략 8억원이다. 한양대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무용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인 김 동문을 만났다. 한양대 예술체육대학 전체 수석 졸업 김 동문은 무용 교사의 추천으로 중학생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97년에 한양대 무용학과에 입학했다. 예체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학에 들어오니 IMF 외환위기로 인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져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며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어려움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때를 계기로 지금까지 공부를 이어올 수 있었다. 그는 이 자리를 빌려 모교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2003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김윤지 동문(무용학과 97, 가운데). (김윤지 동문 제공) 학부 재학 당시 김 동문은 한국 무용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지도 교수의 조언에 따라 한국 무용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한양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탈을 예로 들며 “탈은 보편적인 예술 도구지만 지역마다 수십 가지의 탈춤이 전승되고 있다”며 “이처럼 보편성과 다양성을 함께 갖는 것은 한국 예술의 정체성이자 우수성”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무용이 가진 매력은 김 동문이 한국 무용을 연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는 현재 한양대 무용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3년간 개인 연구비 총 1억1640만원 수혜 김 동문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연구재단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개인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무용계열 선정자 중 최대 금액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 사업의 일환인 공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김 동문의 개인 연구는 전승 문제를 비롯한 무형문화재 제도의 개선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이 사안은 당장 급조된 제도나 정책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공공성을 기반으로 한 근본적인 성찰을 토대로 해결책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남학술정보관에서 만난 김윤지 동문은 " 좋아 하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용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동문은 한국 무용이 나아갈 방향과 방법을 찾고 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무용은 서사적 구조를 도출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여러 콘텐츠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트렌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한국 무용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동문은 공동 연구로 한국학 분야 사전 편찬 정보 통합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학문 분야들 중 전통예술·무형예술·공연예술을 담당한다. 결이 곱고, 격이 깊은 연구자 김 동문은 "한국 춤은 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했고,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주적 역량으로 전승돼 온 한국 전통 예술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절의 시대인 근대를 겪으면서까지 전승돼 온 한국 춤의 정신과 한민족의 심(心), 정(情), 예(禮), 재(才), 색(色) 등 한국 전통 예술의 근간을 마주할 때 마다 신중해지고 겸손해진다"고 덧붙었다. 김 동문은 추후 이 마음을 담을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김윤지 동문은 춤이란 움직이는 시 (詩)이기에 어렵고 총체적이며 고도의 단계에 있는 예술이라 말했다. 김 동문은 “내년부터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해 한국 무용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관심은 무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융합 연구를 통해 사회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자 한다. 끝으로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식인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10 24

[동문][NOW 꿈꾸는 사람들] 포기는 없다! 꿈을 향해 전진 앞으로

‘한 나라의 과학기술력은 그 나라의 국방과학력에서 엿볼 수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고출력 레이저에 의한 항공기 영상 탐지 시스템의 손실을 연구한 윤성희 씨는 지난해 12월 공군 소위로 임관했다. ‘금녀의 벽’을 깨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범상치 않은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박영임 사진. 안홍범 ▲윤성희 공군 소위(기계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14) 체구는 작아도 정신력은 최고 지난 2월의 어느 주말, 캠퍼스 곳곳에서는 빛나는 졸업장을 들고 그보다 더욱 빛나는 졸업의 순간을 담기 위해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졸업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 틈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어 캠퍼스를 바라보는 윤성희 씨. 2017년 8월에 졸업했으니 딱 6개월 만의 모교 방문이다. 물론 6개월이라는 기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 6개월 사이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신분부터 공군 장교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2017년 9월부터 12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12월 1일 공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현재는 공군 군수사령부 항공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작은 체구로 행군이나 유격훈련 등 힘든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체구로만 판단하면 단단히 실수하는 것. 이론 및 훈련 성적과 체력검정을 포함해 여후보생 중 1위, 남녀 통합 상위 7%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했을 뿐 아니라, 군사훈련 기간 중에는 여후보생 최초로 중대 기수를 맡고 더 나아가 대대장 근무 후보생으로서 전체 310명의 동기들을 이끌었다. 대학원 생활 내내 연구실에만 앉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어려운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사실 거의 공부만 하던 몸이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중대 기수는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중대원들을 이끌고 뛰어야 하기 때문에 뒤처지면 안 됩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마다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해서야 어떻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딛다보면 어느새 훈련이 끝나있더군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신력이 바로 체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교 후보생 생활 내내 입고 먹는 모든 것이 국민들의 세금이라는 생각으로 단언컨대 1초도 성실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고 말하는 윤성희 씨. 진심이 발하는 눈빛에서 그녀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에서 무기 연구자로 급선회 ▲ 대학원 생활을 하던 지난 2016년 7월 9일 서울 서초동 브라움홀(braum hall)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의 공군 입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윤성희 씨의 이력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반전 인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부에서 어렵기로 유명한 물리학을 전공한 그녀의 어릴 적 꿈은 지금과는 한참 거리가 먼 바이올리니스트. 고등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음대에 진학할 것이라는 그녀의 미래를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헬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부 중이던 그녀의 신경을 거슬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잠시 짜증을 냈다가 바로 잊어버릴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헬기의 소음을 줄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위상(진동이나 파동과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어떤 시각 또는 어떤 장소에서의 변화의 국면을 가리키는 물리학 용어)이 반대인 파장을 쏘면 소음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사랑하는 항공기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군의 무기체계와 방산연구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다가 급기야 진로 변경을 결심했다. “국내 무기체계는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자체 연구·개발에 힘을 보태 나라를 빛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아요. 우선은 모든 공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바이올린만 켜느라 수학이나 과학 공부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중학교 수학과 과학 교과서부터 펼쳤다. 뒤늦은 공부로 또래들을 따라잡기 위해 새벽 2~3시까지 불을 밝히고 독하게 공부에 매진해 3개월 만에 중학교 3년 과정을 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만에 과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해 일반고 출신자로는 유일하게 전국의 날고 긴다는 과학고 학생들과 실력을 겨뤘다. “동기가 뚜렷하고 쟁취하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마는 성격입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편입니다. 열정과 노력만큼은 그 누구와 겨뤄도 자신 있습니다.” 악바리 정신을 군인 정신으로 승화 노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기에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이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공대 대학원생들은 거의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연구하고 논문만 쓰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죠. 하지만 저는 바이올린도 계속 연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독주회를 계획했습니다. 독주회를 열려면 최소 6개월간은 하루에 5시간 이상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밤 8~9시에 연구실에서 퇴근한 뒤 연습실에서 첫차 운행시간까지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한두 시간 눈을 붙인 뒤 다시 연구실에 출근했죠.” 이 정도면 윤성희 씨의 노력에 순순히 ‘인정’이라는 의미의 엄지손가락을 내보이지 않을 수 없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고 물리학에 도전, 그 후 기계공학도로 변신해 무기체계를 연구하며 군에 입대한 그녀의 이력은 한마디로 금녀의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물리학이나 기계공학, 그리고 군대 모두 압도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은 곳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저는 남녀 구분이라는 인식 자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죠. 어릴 때부터 씨름도 좋아하고, 남자들과 축구도 잘 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뒤에 물러서 있는 것을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그녀의 도전에는 종종 색안경을 낀 주변의 시선이 따랐다. 그런 탓에 매번 두 개의 목표를 넘어야 했다. 하나는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순수한 목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변의 선입견이다. “저를 제대로 알기 전에 여자라서 ‘약할 것이다’, ‘컴퓨터를 못할 것이다’, ‘수학공식을 못 풀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벽을 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편견을 극복하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현재 그녀가 근무하는 공군 항공기술연구소에서는 항공기의 수명 관리, 결함 분석, 항공기술 개발 등의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그녀의 업무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공군 항공기의 부품을 국내 기술력으로 국산화해 개발하는 것이다. 타 부대에 비해 여군 배치가 적은 곳이기에 무슨 일을 하던 주목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주변의 선입견을 하루 속히 깨뜨리고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 임관 때 받은 호부와 임관사령장 “군복이 가장 아름다워요” 여전히 주변에는 대기업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군대를 택한 윤성희 씨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많다. 그녀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후배들을 위해 그녀는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의 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며 그래야 후회가 없는 법이라고. “언제나 저의 선택 기준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가’입니다. 주변의 의견이나 기대에 흔들려서는 안 되죠. 의지와 열정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다 보면 길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현재 저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제가 바라던 일을 실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오랫동안 꿈꿔왔던 국방과학의 자주적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열정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된 윤성희 씨. 아직은 짧은 머리가 어색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군복은 그 어느 옷보다 아름다운 옷이라고. 사랑한대 2018년 03·04월호 (통권 241호) 이북 보기 사랑한대 2018년 03·04월호 이북 전체 리스트

2018-10 23

[동문][도전#해시태그] 의학과 기술이 만났을 때 #블록체인 #개인이 관리하는 의료 데이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이슈가 뜨겁다. 이에 발맞춰 이은솔 메디블록 대표는 영상 의학 전문의로서의 경험을 살려 블록체인 기술과의 결합을 도모했고, 메디블록 전용 암호화폐인 메디토큰(MED)을 개발했다. 메디블록은 국내 의료 시스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사진. 안홍범 ▲ 이은솔 메디블록 대표(의예과 03) 험난한 길? 원하는 길! 이은솔 대표는 영상의학 전문의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길을 바꿨다. 누군가는 그런 그의 선택을 두고 안정된 길을 버리고 험난한 길을 택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젊잖아요. 언젠간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다만 언제 실행하느냐가 문제였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뛰어들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험난하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만나보면 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걸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래도 의사 면허와 전문의를 딴 후에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의사의 길 대신 좀 더 색다르고 도전적인 일을 선택한 것뿐이라는 그의 말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로서의 생활은 일한 만큼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환자 진료에서는 확장성이나 부가가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간 IT 기술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기반을 다져왔던 이은솔 대표는 다른 여러 분야에 비해 의료 분야가 유독 IT와의 결합이 더디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일을 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판단에 창업을 결심했다. “간단하게는 레고를 만드는 것부터 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세상에 없는 어떤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의료 정보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블록체인과 의학의 결합 현재 의료 정보 시스템은 모두 병원이 관리하고 있다. 나의 의료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병원에 방문해 종이 문서로 받아야 한다. 또 한 곳에서 의료 기록을 종합적으로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병원에 일일이 방문해 문서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반면 메디블록을 이용하면 병원에서만 받아볼 수 있는 나의 건강 기록을 몇 번의 터치만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저희는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는데, 본질적으로 병원이 의료 데이터를 비롯해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게다가 개인이 의료 데이터를 관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있었고요. 그런데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저희가 걱정한 부작용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블록체인을 적극 도입하기로 결정했죠.” 공공거래장부라고도 불리는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의 해킹과 사용자의 조작을 막음으로써 신뢰도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즉 메디블록은 현재 중앙화된 의료 시스템을 탈중앙화하여 개개인이 기록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이처럼 의학과 블록체인 기술의 만남이 가능하게 된 데는 이은솔 대표와 IT의 깊은 인연이 바탕에 있었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경시대회 입상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했고, 진학 후에도 꾸준히 경시대회에 참가해 수상했다. 대학 시절에는 IT기업에서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런 오랜 경험이 그를 지금의 길로 이끈 것이다. IT와 의료계의 탄탄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 대표의 강점은 곧 메디블록의 경쟁력이 됐다. 두 분야 모두에서 이해도가 높은 그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또 의료 전문가로 활약하며 내·외부적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끌고 있다. 내 손 안의 건강 관리 시스템 메디블록은 궁극적으로 개인이 의료 데이터 또는 건강 데이터를 직접 휴대폰을 통해 관리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꾸고 있다. 이은솔 대표는 의료 시스템을 카메라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필름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고 직접 사진을 편집해 업로드하듯이, 개인의 데이터를 제3자가 관리해주는 게 아니라 휴대폰을 통해서 직접 관리하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병원에서도 진료를 하지만 집에서 개인적으로도 검사를 많이 해요. 근데 이 두 개가 완전히 따로 분리돼 있어요. 이 두 축이 통합적으로 관리되면 더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데 이를 관리할 시스템이 없는 거죠.” 더 나아가 이 대표는 현재 병원이 개인의 기록을 관리함으로써 발생하는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메디블록을 제시했다. 그는 개인이 원하는 기록만 공개하는, 개인이 주도적으로 의료 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언젠가는 그런 사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 메디블록이 그 주춧돌이 되고 싶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사람 IT와 의료는 이은솔 대표의 전문 분야지만, 창업은 처음 해보는 만큼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이 대표는 창업을 위해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보고 관련 행사를 찾아다녔다.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경험도 쌓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함께 일할 좋은 동료를 구하는 일이었다. “회사든 뭐든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좋은 사람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함께 일할 우수한 인재를 찾는 건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에요.” 동시에 이 대표는 좋은 동료를 구하기 위한 대표의 노력도 언급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대표가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스스로 그 분야에서 전문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공부하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또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발전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창업 아이디어는 비슷한 경우가 많으므로 공유하는 것을 꺼리지 말고, 다른 사람과 논의함으로써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이은솔 대표는 마지막까지 ‘사람’을 강조했다. 항상 주위 사람을 소중히 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이 대표만의 확고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세상은 그의 도전을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정한 길은 아닌지 우려한다. 그러나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이 대표의 다음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사랑한대 2018년 03·04월 호 (통권 241호) 이북 보기 사랑한대 2018년 03·04월호 이북 전체 리스트

2018-09 04 중요기사

[동문]김정범 동문, "세계여행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멘토가 되고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던 세계여행. 그러나 현실은 짧은 여행도 다녀오기도 녹록지 않다. 김정범 동문(기계공학 석사)이 들려주는 세계여행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유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다른 문화를 만나고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김 동문. 그는 현재 여행 멘토로서, <세계여행 플랜북>을 출간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오다 30개국 150여 개의 도시. 김정범 동문(기계공학과 석사)의 여행기록이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김 동문은 기계공학과 자동차 전공학회 ‘바쿠넷’ 회장을 거쳐 현대자동차 연구소 개발자로 지난 2010년에 입사했다.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비를 몽땅 털어 여행을 떠났을 정도로 여행 광이었던 그는 회사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제한적인 해외 현지 시장의 분위기나 정보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아내와 함께 회사를 나와 1년 동안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중국, 인도, 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자동차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여행경로를 짰다. 각국의 자연경관과 환경을 보며 현지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몸소 느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는 게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외부 시선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퇴직을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김 동문의 생각은 달랐다. 직장생활 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기술 영업과 여행컨설팅이란 꿈에 확신이 생겼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1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 동문은 현재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뤘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서 기술영업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여행 컨설팅회사 넥스트립(클릭 시 이동)에서 기획 담당으로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있다. ▲ 김정범 동문(기계공학 석사)과 지난 8월 29일 서울 삼성역 부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의 가치를 나누고자 출간한 책 김 동문은 지난 6월 21일 <세계여행 플랜북>을 출간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강연과 세계일주 스터디 그룹에서 활동한 지식을 책으로 공유하고 싶었다고. “지금까지 세계여행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봤어요. 저도 그랬지만, 여행경로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책을 출간했죠.” 함께 세계일주 스터디 그룹에서 활동하는 여행전문가 4인과 함께 지역을 나눠 책 집필에 힘썼다. 형식적인 여행가이드북이 아닌 현지에서 통하는 실생활 정보와 조언을 함께 담았다.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로부터 효율적인 여행경로 짜는 법, 놓치지 말아야 할 시기별 축제와 여행지 등 최신정보를 가장 잘 담은 책이라 평가 받고 있다. 김 동문은 지난 3년을 책 집필에 매달렸다.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몸으로 느낀 알짜배기 정보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여행 플랜북>은 서점과 온라인매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그 노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효율적인 여행경로를 계획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김정범 동문이 집필한 <세계여행 플랜북>이 지난 6월 21일 출간됐다. 현재 서점과 온라인매장에서 베스트셀러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1년간의 세계여행은 김 동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다.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바라본 석양, 쿠바 현지인들에게 받았던 순수한 마음, 여행길 위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나눈 인생 고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아내를 위한 프러포즈 등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자 추억이었다. “나를 배운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전에는 알 수 없었던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죠. 여러분들도 살면서 꼭 한 번쯤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김 동문은 대학생이라면 꼭 외국을 방문해 현지 대학생들과 대화해보길 권유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나누면서 수업에선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깨우칠 것이라 덧붙였다. “여러분의 4년을 전공 서적보다 다양한 경험으로 더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여행과 진로에 관한 질문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문의해주세요.” 김 동문의 연락처는 kimjbno1@gmail.com 이다.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 베테랑' 김 동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떨까.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8 26 중요기사

[동문]한양대 모의유엔 초대 사무총장, 유엔과 시민사회 잇는 가교 되다

유엔 대표 파트너 기관인 유엔협회세계연맹(이하 WFUNA, World Federation of United Nations)은 유엔의 비전과 가치를 시민사회에 널리 알려 둘 사이 교류 및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보니안 골모하마디(Golmohammadi) WFUNA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지난 2015년 서울에 제3사무국이 들어섰다.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의 뒤를 이은 것이다. 서울 사무국에서 세계시민 양성 및 유엔의 활동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 교육 주임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을 만났다. 유엔의 동반자, WFUNA WFUNA는 유엔 설립 일 년 후인 1946년에 발족한 비영리 국제기구다. 로고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의 국가 간 전쟁 방지, 평화 유지, 인권 보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린다.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유엔 정책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영진 동문은 “유엔의 주요 활동과 비전을 지지하고,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WFUNA의 역할을 소개했다. ▲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은 지난 8월 '2018 청소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인솔했다. (이영진 동문 제공) 이 동문은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유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매년 7월 말 개최하는 ‘유엔협회세계연맹 청소년 캠프’에서 유엔기구 진출과 미래 지도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교육한다. 8월에는 일주일간 ‘청소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인솔한다. 학생들은 뉴욕 유엔본부 및 제네바 유엔사무국에서 유엔 주요 의제를 공부한다. 최근에는 11월 3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2018 UN 청소년 환경총회’ 준비를 시작했다. 모의 유엔으로 키운 꿈 WFUNA에서 선보이는 그의 힘찬 발걸음은 고등학교 때 부터였다. 이 동문은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모의 유엔 활동을 하게 됐다”며 “이후 유엔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다양한 의제를 공부하고 토의하며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모의 유엔 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3학년 때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함께 모의 유엔 회의 형식을 기반으로 한 교육사업을 진행했다. 국내외 학생들에게 인권, 평화, 안보, 문화 다양성에 대한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 유엔의 자매기구인 유엔협회세계연맹(이하 WFUNA : World Federation of United Nations)에서 근무하는 이영진 동문을 종각 서울글로벌센터 WFUNA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동문은 모의 유엔 회의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강재현 동문(국제학부 08)과 함께 2009년 한양대학교 제1회 모의 유엔 회의(이하 HYMUN)를 주최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이미 진행하고 있는 모의 유엔이 한양대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였다. 당시 그는 사무총장을 맡아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이 동문은 “HYMUN을 준비하면서 모의 유엔 회의 활동에 전문성을 기를 수 있었다”며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국제기구, 이렇게 준비했어요 이 동문은 졸업 후 해군 통역 장교로 임관했다. 15년도에 제대하면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국제학부 선배의 권유로 WFUNA에서 진행하는 ‘유엔협회세계연맹 청소년 캠프’ 트레이너로 참가하게 됐다. 그는 “캠프에서 모의 유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평소에 하고 싶던 분야와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추후 채용 과정을 거쳐 WFUNA의 일원이 됐다. 이전부터 계속해 오던 모의 유엔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 이영진 동문이 WFUNA 로고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국제기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이 동문은 “업무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관에서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 직무기술서를 분석하면 어떤 직무가 나와 맞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유엔은 별도의 홈페이지(클릭 시 이동)를 통해 직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동문은 “학점과 스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8-08 17 헤드라인

[동문]나는 매일 성장하는 1번 타자

성장은 비단 나이를 먹고 체형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단어 안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폭넓어진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 박해민 동문은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로만 뛴 데다 수비가 약점으로 취급되던 선수였다. 2012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신고(육성)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군만 해도 이미 자신만큼 치고 수비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3년 연속 도루왕에 국내 최정상급 외야수로 평가받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동안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 미디어전략센터 / 사진 손초원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 선수(스포츠과학부 08)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문하다 무더위가 온몸을 덮치던 지난여름, 삼성 라이온즈가 원정경기차 찾은 잠실야구장에서 박해민 동문을 만났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박해민 동문은 특히 도루와 수비 능력이 뛰어난 국내 대표 1번 타자로 통한다. 2014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능력을 향상시키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뛰어난 낙구 판단과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가 빛을 발하며 외야 수비에서도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이제 많은 2군 및 신인 선수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박해민 동문이지만 처음부터 빛을 발했던 것은 아니다. "2012 KBO 드래프트 나갈 당시 대학 선수 중 타격 성적(4할 2푼 9리)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 때문에 쉽게 뽑힐 줄 알았고, 프로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지명이 되질 않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2루수)로만 뛰던 그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후 야구부 감독 및 코치진들에게 외야수로 전향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내야수로 뛰기에는 송구 등의 수비 문제가 지적된 것. 내야수라는 포지션에 애착이 많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다. “외야수를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려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 넘어서까지 연습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4년 동안 매일 갈고 닦았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는 타격이 좋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외야 수비는 대학교 들어서야 전향했고, 도루는 대학 통산 7개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드래프트 직후, 그의 가능성을 본 삼성 라이온즈는 그에게 신고(육성) 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안을 보낸다. ‘신고 선수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군 주전의 열쇠- 주루와 수비 신고 선수는 쉽게 말해 연습생으로 신고만 되어 있을 뿐, 정식 등록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리그 최저 연봉을 보장받지 못하며 당장 언제 퇴출당할지 알 수 없다. 박해민 동문은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어 2014년 1군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군 코치님들이 제게 강조하신 건 주루와 수비였어요. 그래야 제가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타격이나 다른 부분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주루와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조건을 뛰어넘으며 1군 주전으로 발돋움한 박해민 선수 경기 후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는 대학 때와는 달리 프로에서는 일주일에 여섯 번은 경기에 나서고, 매일 훈련을 했다. 그는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프로 세계에 맞게 만들어나갔다. 시간과 땀이 쌓일수록 요령이 보였고, 그럴수록 두 눈 앞에는 프로야구의 더 넓은 길이 보였다. 람보르미니가 되기까지 박해민 동문은 야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손꼽는다. 우승 외에 2014년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해 비로소 팀의 주전 외야수이자 1번 타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6개 도루를 기록한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팬들은 그가 람보르기니처럼 빠르게 질주한다며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당시 김평호 코치님이 도루 요령을 세심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가르쳐주신 내용을 실전에 적용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도루를 잘하려면 상대 투수의 버릇을 유심히 관찰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구 때 뛰는 게 시간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 그 타이밍을 파악하려고 애쓰죠. 도루할 때는 그저 ‘한 베이스 더 나가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중요한 건 내 기록이 아닌 팀의 승리니까요.” ▲박해민 선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 외야 전향 직후 ‘수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대학 때도 프로에서도 그는 묵묵히 연습에 매진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대략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겠다는 감이 생겼다. 매일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선수들은 무더위는 물론 주변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모든 것이 컨디션과 직결되니까 말이다. 박해민 동문이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래야 몸이 충분히 회복될 수 있거든요. 그 밖에는 체력 보강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컨디션 유지에 힘쓰는 건 물론 리그 일정 때문이지만, 올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8월부터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떠오른다는 그는 특히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당시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야구에 대한 고민이 많던 때에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만나 외야수라는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측면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인간적으로 잘 챙겨주셨죠. 프로 세계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고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야구부 자체가 대학 야구의 명문이잖아요? 학교 측 지원이 워낙 좋았고 야구부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해민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태극마크는 쉽게 오르기 힘든 만큼 어떤 선수나 동경하는 일일 테다. 그는 자신이 주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주자로 나가든, 대수비로 나가든 최선을 다해 우승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보다 빠르게 뛰어 베이스를 훔치고, 한 발 앞서 수비하며, 더 정교하게 타격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노력만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는 듯이.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람보르미니라는 별명 외에도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 항상 노력하는 선수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역시 그 수식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팬 분들도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시고요.” 그의 몸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지만 성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야구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은 ‘그’라는 세계를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의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얼마나 매혹적인 야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야구와 이 세계를 배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