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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 21

[동문]노래하는 영어교사, 수험생 제자 위한 노래 만들다

“너희 오늘 혼날 일이 있으니 수업 후 강당으로 모여.” 인천 소재의 하늘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김경훈 동문(교육학과 94)의 불호령에 6월 모의평가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이 겁에 질려 강당에 모였다. 선생님이 나타나고 이내 학생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혼나서가 아니었다. 김 동문이 지난 2년 반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감정을 담은 위로곡 '하늘로'를 불러줬기 때문이다. ▲ 하늘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인 김경훈 동문(교육학과 94). 수험생 제자를 위한 자작곡으로 화제가 된 김 동문을 만났다. 이젠 날아라, 하늘로! 지난 5월 19일, 대한민국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곡 하나가 음원 사이트에 발표됐다. 김경훈 동문이 작사, 작곡한 ‘하늘로’다. 이 곡에는 ‘미래를 알 수 없이 그저 달려만 가는 매일이 두렵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네가 넘어진 날들은 결코 헛된 것이 없다’며 답하는 김 동문의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다. “올해 처음 고3 담임을 맡고, 입시 상담도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우는데 너무 안쓰러웠죠. 수험 생활에 작은 즐거움을 주고 싶어 틈틈이 곡을 만들었어요."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 너만의 가치가 있지 너의 한계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네가 꿈꿔왔던 날들은 수없이 넘어진 날들은 결코 헛된 것이 없단다 이젠 날아라 저 하늘로 - 김경훈 동문의 자작곡 '하늘로' 가사 중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동문을 찾아서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서 울었다"는 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다. 제자들을 향한 마음이 알려진 덕에 '노래하는 영어 교사'로 언론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쓴 곡인데, 학생들이 곡에서 큰 의미를 찾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 하늘고등학교 영어교사 김경훈 동문이 수험생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 '하늘로' 노래하는 영어교사, 김경훈 김 동문은 12년차 영어교사이자 데뷔 10년차인 가수이다. 2008년부터 직접 만든 CCM 15곡을 발표했고, 2016년부터는 솔로 프로젝트 그룹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 앨범 3장을 발표했다. 작사와 작곡, 보컬까지 혼자서 맡는 그는 가끔 마음이 맞는 아티스트나 노래를 좋아하는 제자들과 함께 녹음하기도 한다. 지난해 발표한 ‘햇살 속의 너’는 여행스케치 출신의 김수현 씨와 불렀고, 현재는 랩에 뛰어난 제자 두 명과 신곡을 준비 중이라고. “어쿠스틱 프로젝트란 이름엔 ‘청각'(Acoustic)과 관련된 모든 시도를 해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단순히 전자 음악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만은 아닌 거죠." 그는 고교 시절 음악 학원을 다니며 처음 작곡을 했을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가수의 꿈을 꾸던 어느 날, <죽은 시인의 사회>란 작품을 접하고 교사의 꿈을 갖게 됐다. 여기에는 여행 작가 겸 국어 교사로 활동했던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그 선생님처럼, 본업으로 교사를 하면서 취미로 음악을 계속하기로 결심했어요." . ▲어쿠스틱 프로젝트란 활동명을 갖고 있는 김경훈 동문이 녹음 중인 모습. (출처: 김경훈 동문) 미래는 두려운 것 아닌 설레는 것 교육 철학을 묻자 김 동문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인생의 종착역은 멀기에 지치지 않고 활기차게 살기를 바란다고. 그런 제자의 곁에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하겠다는 김 동문.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기 좋아해요. 세련된 인테리어, 멋진 옷처럼요. 하지만 청각적인 요소를 아름답게 꾸밀 생각은 많이 못 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행복을 주겠다는 그가 있어 제자들은 오늘 한번 더 웃는다. ▲ “원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두려운 것이 아닌 설레는 일이 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6 12 중요기사

[동문]튜터링, 모바일 영어 학습의 새 지평을 열다

모바일 영어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든 스타트업 ‘튜터링’이 주목 받고 있다. 전화 영어와 유사해 보이나 해외콜센터를 없애 가격을 낮췄고, 온라인으로 어디서든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생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인 튜터링은 우리대학 선후배가 뭉쳐 만든 스타트업이다. 공동대표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과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부 01)이다. 이들 중 최경희 동문을 만나 튜터링의 창업 과정과 계획에 관해 들었다. 대기업 회사원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과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부 01)은 언론정보대학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로, 튜터링의 창업자이자 공동 대표다. 최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줄곧 영어 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스타트업과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창업을 권유한 것이 김미희 동문이다. 김 동문은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창업을 준비했다. KAIST 경영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며 경영 지식을 쌓았고, 퇴사 전 5년 동안 틈틈히 사업 계획을 세웠다. 최 동문은 꼼꼼하기로 소문난 그의 성격을 알기에 창업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백업 플랜을 두지 않고 모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훌륭한 창업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직장인이라면 갖춰야 할 소양이나 위기 관리 능력은 스타트업에도 필요하고요." 한편 UX기획 전문가인 김 동문은 교육 분야의 전문가인 최 동문의 역량이 필요했다. 이처럼 두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살려 만든 것이 모바일 영어 교육 플랫폼 튜터링이다. "10년 이상 오프라인 교육 시장에 있었지만, 모바일에 대한 이해 없이 교육 사업을 했다면 망했을 거예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런 점에서 저희 둘이 만나 창업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교육과 기술 분야의 지식이 시너지 효과를 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는 최 동문. 튜터링을 시작하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말하는 그다. ▲ 튜터링의 대표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 그는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고 01)과 함께 지난해 모바일 영어교육 플랫폼 '튜터링'을 세웠다. 수강생의 필요에 맞춘 최적의 서비스 튜터링은 지난해 법인을 설립, 6개월 후에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네이버, SBS 등을 포함해 12개 기업과 제휴를 맺으며 주목 받고 있는 튜터링은 지난 가을 출시 이후 5만 5천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다. 사용자는 외국인 튜터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원하는 튜터와 주제,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 가능하다. 튜터링은 교육 방식과 노하우가 포화 상태를 이루는 영어 교육 시장에서 해외 지사를 없애고 온라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튜터링의 광고.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주제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어학 공부가 가능하단 것이 튜터링의 장점이다. (출터: 튜터링) 두 대표는 튜터링을 통해 기존 영어 교육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다. 학원의 경우 정해진 수강 시간에 학습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전화 영어의 경우 일상적인 대화 이상으로 깊이 있는 공부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대학 입학 후 직장 생활을 하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해봤죠. 소비자로서 느낀 교육 방식의 장단점을 보완하고자 했어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게요."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튜터링은 학습 의지만 있다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 없이 심도 있는 학습이 가능하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 비즈니스 상황이나 면접 등 다양한 상황을 골라 연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 동문은 영어가 아닌 언어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중국어, 한국어를 비롯하여 더 넓은 어학시장에 튜터링을 접목시킬 생각입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한양인에게 최 동문은 창업을 말리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창업만 하면 기업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학생들이 창업의 위험성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이 뛰어나면 창업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창업은 조직 관리, 세무, 법률, 인사 등을 다 관리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회초년생의 경우 그럴 만한 경험이 부족하니, 먼저 창업 기업에서 일해보기를 권해요." 최 대표는 도전에 따르는 책임을 알아야 도전이 더 가치를 지닌다고 조언했다. ▲ 튜터링 대표 최경희 동문은 한양인에게 "무턱대고 창업하기 보다 기업에서 먼저 일해보라"고 조언했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5 16 중요기사

[동문]학생들과 가까운 멋쟁이 수학 선생님! (1)

한양대는 사범대학 및 교직 이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생들을 교직으로 배출하고 있다. 학창시절 하늘과 같은 존재였던 선생님이 알고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인 셈. 선생님들의 학창 시절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졸업 후 미래 걱정도 하고, 대책없이 놀기도 하고, 대학로 곳곳을 다니며 풋풋한 연애도 했을 것. EBS 고교 수학 강사이자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을 만나 교단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에서 EBS 인강을 맡기까지 남치열 동문은 중학교 5년, 고등학교 7년 근무의 12년차 수학 교사다. 지난해부터는 EBS인터넷강의를 통해 수리논술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내신 수학, 수능 수학영역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고등학교에 발령받고 수학 재능기부 동아리를 만들고, 1년 간의 수리논술 수업 연구 후 2년차부터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제가 근무하는 파주는 농어촌지역이라 논술 학원이 그 당시 한 군데도 없었어요. 제가 책임지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네이버 카페 ‘치열한 수리논술’을 만들어서 강의 자료도 핸드폰으로 찍어 올리고, 1년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교재와 인강으로 열심히 연구했죠.” 그러다 작년에 학교로 EBS 강사를 뽑는 공문이 내려왔다. ”제가 수리논술 가르치는 게 자신있으니까, 파주 외에도 저기 섬에 살고 있어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EBS 강사 면접은 1차로 서류전형 및 핸드폰으로 촬영한 10분 남짓의 강의 시연, 2차로 강남 매봉역 EBS 본사에서 카메라 테스트, 3차로 최종 면접을 통해 진행됐다. ‘치열한’ 면접 과정을 거쳐 지금의 EBS 인강 강사가 됐다. ▲ EBS 수학 강사이자 파주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 '학고'로 시작해 과 수석으로 졸업하기까지 학창시절 남 동문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홈쇼핑 호스트와 아나운서를 꿈꿨던 학생이다. 학부 시절에는 0.38의 학점으로 '학사 경고'를 받기도 했다. “스무 살엔 정말 개구쟁이였어요. 가방에 선글라스, 영자신문, 수건, 체육복을 넣고 11시에 농구장으로 등교했죠. 네다섯 시간동안 농구를 하고, 샤워한 뒤에 방과 후엔 동기들과 당구장도 가고, 미팅도 했어요. 한 과목 C 빼고 모든 과목이 F로 0.38 학점을 받았어요.” 처음엔 재밌었지만 1년을 그렇게 지내니 ‘내가 인생을 너무 망치는 건 아닌가’ 싶었던 남 동문. 군대에 다녀온 후 1년동안 휴학을 하는 동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동대문 시장 문구점에서 2달동안 12시간씩 최저임금으로 일해도 보고,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은행에서 가스총 차고 보안경찰도 6개월간 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살기엔 아깝지 않나’ 반문하게 됐어요. IMF가 터지면서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생각하게 됐기도 했고요.” 남 동문은 수학과로 전과해 임용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교사라는 꿈이 생기자 열정에 불이 붙었다. 2학년에 무턱대고 임용고시를 보고, 임용고시 수학 단과 학원에 들어갔다. “하루는 선생님이 과제를 주시고, 광화문 카페에서 보강을 하겠다고 했는데, 같이 수업 듣는 4학년 선배들은 아무도 없고 저만 온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대학 후배들을 가르치는 스터디에 불렀어요. 학원비 낼 필요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 봐주겠다면서요." 남 동문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 독서실에서 매일 11시간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고 임용에 성공했다. ▲ 남치열 동문은 현재 EBS에서 인기리에 활동 중인 수학 강사다.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 남 동문의 메신저 소개말에는 ‘세계 최고의 수학교사가 되자’는 목표가 있었다. 그런 그의 목표는 EBS 강의를 계속 진행하며 역량을 쌓는 일이다. “대학생 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설령 재수, 삼수로 1,2년 늦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하고싶어도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모험과 시도를 좋아한다는 남 동문에겐 인터넷 강의도 하나의 도전이다. "젊음이 유지되는 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서 정년에 가까워지면 교육 봉사를 하려고 해요.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아이들에게 무료 교육봉사를 하고 싶고, 수학 외에 다른 재능이 있다면 문화센터, 주민자치센터에서 무료봉사로 강연활동도 하고 싶어요.” ▲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가 좌우명인 남치열 동문은 끝까지 교육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글/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5 12

[동문][한양피플] 친구에서 부부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부부는 한양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여느 청춘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웃고 공부하고 사랑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가정을 꾸려 올해로 25년이 됐다. 어느덧 아이가 자라 부모의 추억이 담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청춘을 그려가고 있다. 부부이자 동문이고 선배이자 후배인 최종호·성주은 부부와 딸 최정윤 학생의 이야기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최종호·성주은(철학과 86) 동문 부부 30년의 시간을 건너 캠퍼스 커플이었던 최종호·성주은 부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었다. 30년 전, 재학 시절의 한양대는 부부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최종호 씨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교내 중창단 동아리 ‘징검다리’다. 동아리방이 없어 강의실을 전전하며 연습하던 그 시절이 그에겐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징검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한양대에 대한 자긍심도 상당하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징검다리가 일정 부분 학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도 누구보다 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죠.” 성주은 씨는 가파른 진사로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바로 이어지지만, 저희 때는 등교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가파른 진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뒤에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인문대가 나왔어요. 강의가 없거나 쉬는 시간이면 인문대 화단 앞에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놀았죠. 그곳이 만남의 장소였어요. 남편도 그 자리에서 자주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2대를 이어준 한양 1992년에 부부가 된 이들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아이 둘을 낳았다. 부모의 바람이었는지 혹은 영향이었는지 딸 최정윤 학생이 지난 2014년에 한양대에 입학했다. 딸의 합격 소식에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사실 부부가 딸의 입학을 이렇게 반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최정윤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수를 꿈꾸며 보컬과 재즈 피아노 등 음악을 공부했다. 그런데 3학년을 앞두고 슬럼프가 찾아와 음악 공부를 중단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1년 남짓 공부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힘들었지만 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양대를 선택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한때나마 엄마의 마음을 졸이던 딸은 이제 성주은 씨의 말을 빌면 ‘거침없이 멋지게’ 살고 있다. 최정윤 학생은 입학 후 단과대 회장, 유엔 대학생 홍보대사, 세이브더칠드런 해외 인턴, 아시아나 플라잉마케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최종호 씨는 “저희 부부가 학창 시절 하지 못한 것들을 딸이 지금 다 하고 있다”며 대견해 했다. 최정윤 학생은 현재 교환학생으로 영국 리즈대학교에 가 있다. 학기를 마치면 프랑스와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7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주시는 멋진 분들이에요. 도전을 즐기는 저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추억을 공유하다 ▲ 어머니 성주은 씨(왼쪽)와 딸 최정윤 학생 부부와 자녀가 모두 동문인 이들에게 한양대는 어떤 의미일까. 최종호 씨는 “예전에 학교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을 아이가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한양대에서 아내를 만났고, 딸도 이곳을 다니고 있으니 제 인생에서 한양대를 빼면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며 웃었다. 최정윤 학생에게 한양대는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추억이자 20대의 시작”이다. “부모님과 같은 대학교에 다녀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학교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 30년 전과 현재의 왕십리를 비교하면서 사라지거나 새로 생긴 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기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꽃다운 20대를 상상하면서 같은 곳에서 같은 나이의 제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요.” 딸이 자랑스러운 한양인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는 최종호·성주은 부부. 그리고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최정윤 학생. 한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들은 오늘도 행복한 꿈을 꾼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08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아름다운 노래 맑은 영혼 의 연주

지난 4월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세경 씨가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오페라 애호가들의 귀를 호강시켰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의 전성기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여전히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성악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글. 박영임 / 사진. 임세경·안홍범 ▲ 성악가 임세경(성악과 94) 동문 1년 만에 찾은 한국 무대 소프라노 임세경 씨를 만난 건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수개월간 연습한 열정과 천부의 재능을 여한 없이 무대에서 불사른 예술가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여전히 달뜬 표정일까, 아니면 모든 에너지를 연소해 심연의 바닥에 침착한 모습일까. 의외로 임세경 씨의 얼굴에는 지난밤 화려한 무대의 프리마돈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일상성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는 임세경 씨. 유럽 첫 무대가 2004년이니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무대에 대해 겸허한 마음이다. “원래 공연을 마친 후에는 무대에서 어떻게 노래했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불러보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다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되뇌다 밤을 새곤 합니다.”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선 임세경 씨는 사실주의 오페라 3대 걸작으로 꼽히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푸치니의 ‘외투’를 엮은 ‘팔리아치&외투’에서 화려한 유랑극단의 배우와 가난한 청소부 여인이라는, 성격이 다른 1인 2역을 소화해 발성이 견고하고 감정 표현이 압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평소 비극적인 역할을 많이 맡다가 ‘팔리아치’의 발랄한 넷다를 연기하며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으로 영역을 넓혔으니 유럽이나 미국 무대에서도 새로운 제안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한국인 최초 주역으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 서다 임세경 씨에게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의 주역을 맡았다는 영광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매년 6~8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을 기념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많은 성악가들이 이곳에서 명성을 쌓았다. 특히 고대 로마시대의 야외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 역을 맡아 열연했다. “1만 6,000석의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를 보니 앞이 깜깜하더군요. 저 거대한 무대에서 작은 체구의 제가 보일까, 제 목소리가 들릴까 걱정했어요. 10년 이상 무대에 선 동료가 눈을 딱 감고 첫 소절을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너무 긴장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으니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그래서 안정감을 찾고 무대를 즐겼습니다. 꿈의 무대에 데뷔하는 소프라노의 흥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공연을 시작으로 그 후 매년 페스티벌에 초대받았다. 지난해는 먼저 제안받은 스위스 아방쉬 페스티벌에 출연하느라 고사했지만, 올해는 ‘아이다’, ‘나비부인’에 이어 ‘토스카’, ‘나부코’까지 제의를 받아 최종 출연 작품을 조율 중이다. “최초라는 수식어보다는 저의 발전한 모습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노래를 할 만하니 무대가 끝나 아쉬웠어요. 이번에는 여러 회 출연하기 때문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제가 가진 가장 좋은 빛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뒤늦게 도전한 성악가의 꿈 ▲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에서 호연한 ‘나비부인’의 한 장면 임세경 씨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외에도 지난 2015년과 2016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빈국립극장)에서 ‘나비부인’을 호연했는데, 이 극장에서 한국인 소프라노가 주역으로 선 것은 조수미, 홍혜경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1월에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토스카’에 출연하는 등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의 존재감은 의외로 미미했다. “성량은 좋았지만, 노래를 그리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뭐든 좀 늦은 편이거든요.” 게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1년 넘게 중환자실을 지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를 잃고 졸업을 한 후에는 성악가의 꿈보다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우선했다. 그렇게 졸업 후 3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은 돈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버니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분연히 일어섰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제 노래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테크닉은 부족해도 마음을 전하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나의 소리가 어떻게 발전할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딱 3년만 공부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오페라의 변방 한국에서 온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성지 이탈리아에 모인 세계 각국의 소프라노들 틈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빛낼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조바심도 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우연히 개인적으로 사사받은 한 마에스트로에게 ‘남들보다 잘 하려고 하지 마라. 남들과 다르면 된다’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세상에 저와 똑같은 목소리는 없잖아요. 외국인이라고, 약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개성을 살리면 되는 거죠. 그때부터 무대가 두렵지 않았어요. 후배들도 대학 시절에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성악과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 서길 바랍니다.” ▲ 국립오페라단 작품 ‘메피스토펠레’에서 열연하고 있는 모습 임 동문은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 서양의 소프라노들보다 늦게 데뷔한 임세경 씨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유럽의 유명 무대에 서며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그는 늦깎이 성악가로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저는 지금 시기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에 큰 무대에 섰다면 발성의 완성도나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오래 서지 못했을 거예요. 모든 영역대의 소리를 소화하며 성대가 가장 건강할 때라는 점에서 전성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직 전성기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더 발전해야죠. 베르디, 푸치니, 벨리니, 도니제티 등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도 너무 많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소위 5대 오페라 극장을 섭렵해야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소리가 무르익을수록 인생도 원숙해지는 법.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살아보니 삶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임세경 씨. 대신 어디에 서든 자신이 선 무대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천상의 소리란 인간의 의지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성대를 빌어 울리는 아름다운 영혼의 연주라는 의미이리라. 5월 미국 워싱턴 케네디홀에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과 핀란드, 스페인, 독일, 일본 등 차례차례 임세경 씨를 기다리는 무대들. 마음을 맑게 닦은 그에게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에 브라바(여성 독창자에 대한 찬사)를 외치는 기립 박수가 화답할 것이다.

2017-04 25

[동문]성실한 건축학도, 대학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다 (3)

우리대학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이 인천도시공사가 주최한 ‘제2회 대학생 설계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참가신청은 771팀에 달하고 최종적으로 72개 대학 170팀이 작품을 접수한 가운데, 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민 지 동문은 최종심사를 거쳐 지난 3월 30일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 생활 마지막 도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 기쁘다는 지 동문.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그를 만났다. 해방촌에 공유를 입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대학생 설계 공모전은 새로운 주거유형을 모색하고 대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목표로 한다. 이번 대회는 ‘공유와 거주’를 주제로 열렸다. 지수연 동문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을 건축 대지로 잡아 ‘Next step for urban steps’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지 동문은 근 30년간의 개발이 대형화, 획일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작은 규모의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전 소규모 단독주택에서 70년대 이후 5층 이하의 다세대 주택, 그리고 8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 왔어요. 저는 급박하게 변화한 주거환경 속에서 작은 조직으로 남아있는 마을에 대한 미래 주거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과 지난 2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방촌은 지 동문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었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인 데다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주를 이뤘다. “해방촌 입구에는 108계단이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면서 만든 계단이에요. 해방 후 신사는 없어지고 계단만 남았는데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주변 건물은 노후 된 채 발전하지 못한 상태죠.” 이러한 상황에서 맞물려 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해방촌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비율이었다. “해방촌에는 '빈집 프로젝트'라고 1인 가구들이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뤄져요. 이렇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주거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파악했어요.” 지수연 동문은 정교한 설계 작업을 통해 108계단과 접하는 1층에는 소강당이나 도서관, 갤러리와 같이 공용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상층부인 2, 3, 4층에는 1인가구를 위한 소형 주거를 배치했다. “1인 거주자들은 ‘빈집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원룸 형태의 독립된 집을 갖지만, 집 사이사이에 공용부엌과 화장실, 옥상 테라스 등 다양한 틈새 공간들을 공유하도록 설계했어요.” 1인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을 마련한 동시에 공유의 가치를 더한 것. 작업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가파른 지형에 무계획적으로 지어진 해방촌의 특성상, 초반 설계 작업에서 형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 동문은 직접 모형을 만들면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나갔고 주변의 조언을 토대로 보완 작업을 했다. “가능한 한 간결하게 주거공간을 구상했어요. (해방촌이) 여유 있는 공간이 아니거든요. 최대한 실용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죠.” 이에 더해, 채광 및 조망, 환기에 대한 측면을 비롯해 경사지의 풍경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지수연 동문이 완성한 ‘Next step for urban steps’의 모습. 각각의 동이 체계적이면서 경사지 마을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출처: 지수연 동문) 건축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같아 지수연 동문은 어릴 적부터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 이왕이면 좀 더 크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건축학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이후 지 동문은 재수 끝에 우리대학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건축학과생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프로젝트와 밤샘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건축학과 학생은 교양 듣기도 힘들어요. 1학년 때부터 필수 과목들을 신청하면 학점이 다 차거든요.” 학과 내 학회인 ‘Art space’에서의 활동도 바쁜 삶에 한몫했다. 방학 때면 강의실과 설계실을 빌려 2주 내지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학과는 보통 지도 교수님 한 분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해요. 매시간 본인의 작품에 대해 발표하고, 피드백을 듣죠.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완성해가도 교수님들의 크리틱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다시 작업해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빽빽한 생활에 힘이 부칠 때도 잦았지만, 지 동문에게 후회란 없었다.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해요. 구상했던 작업이 논리적으로, 설계적으로 전부 조건에 부합했을 때 희열을 느끼죠. 그럴 때면 ‘그동안 들였던 시간이 의미없진 않구나’란 생각을 해요.” 올해 졸업한 지수연 동문은 현재 네덜란드와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지만, 지 동문은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사실 제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했어요. 저 혼자 이 길을 가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하게 됐어요. 저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이번 공모전 입상으로 받을 상금은 유학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예정이라고. 긍정적 영향 미치는 건축가가 될 것 지수연 동문이 꿈꾸는 건축가의 모습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축가’다. 자신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을 짓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아니었지만, 지 동문의 뚜렷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는 평생을 건물 안팎을 드나들며 살아가요. 이때 건물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도시 계획 쪽으로도 관심이 많아요. 계획이 잘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수연 동문은 실용적인 건축가를 꿈꾸며,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3

[동문]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정신으로, 디자인의 길을 찾다!

젊음의 거리 홍대를 지나, 연남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가게들 사이, 짙은 청록색 외관의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갖고 1층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각종 피규어와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가 눈에 띈다. 바로 달걀 껍데기를 머리에 쓰고 있는 병아리 ‘꼬모’다. 바로 이 곳이 지나가는 아이들도 ‘꼬모’를 보고 발길을 멈춘다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의 제작사 디자인 에그’다. 화창한 봄 날씨가 한창이던 지난 21일 회사 근처 한 카페에서 ‘디자인 에그’의 대표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을 만났다. 꿈을 향해 달려온 10년 어린 시절부터 만화나 영화에 빠져 살던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신만의 꿈을 좇기 위해 치열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처음엔 화가였던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공대에 진학했지만, 2학기 땐 아버지 몰래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교 입학 후 돈을 벌어 그 떄 학원비를 낸다는 조건으로, 학원을 다녔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일도 많이 했구요.” 이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정 동문은 언젠가 자신의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밟아 나갔다. “원래 졸업 후 최대한 빨리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 전에 사회 경험도 쌓을 겸 영화사에서 잠깐 일을 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눈 여겨 봤었죠” 당시 업계의 열악한 처우와 감독들의 하대하는 분위기는 정 동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 땐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가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를 차리면 기존 디자인 업계의 관습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정 동문은 2007년에 마음 맞는 다른 동기와 함께 현재의 디자인 에그를 설립하게 됐다. 회사명은 ‘달걀 껍데기를 남이 깨면 후라이가 되고, 본인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는 점에 착안해 지었다. 그리고 벌써 창업 10주년을 맞은 올해, 디자인 에그는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점차 관습을 바꿔나가고 있어요. 연봉이나 복지도 늘려주고, 야근도 줄이는 식으로요” ▲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를 지향한다며, "회사 내에선 누구든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마음껏 편하게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토닥토닥 꼬모’를 통해 빛을 발하다 현재 디자인 에그는 크게 ‘커머셜’ 파트와 ‘콘텐츠’ 파트로 나누어 일을 하고 있다. ‘커머셜’ 파트의 경우 공공기관이나 방송사 등에서 외주를 받아 영상 등을 기획, 진행한다. 반면에, ‘콘텐츠’ 파트는 직접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어플리케이션 등을 기획, 개발하는 방식이다. 정 동문은 장기적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커머셜 파트보다 콘텐츠 파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파트를 진행하려면 큰 돈이 필요해서 초기엔 커머셜 파트에 집중했어요. ‘토닥토닥 꼬모’를 제작할 당시에도 잠시 회사가 휘청했죠(웃음)” 겁 많은 아기 병아리 ‘꼬모’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는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자체 콘텐츠로 제작했다가 유행을 타 지상파 SBS에도 방영되고, 작년엔 중국 상하이 방송까지 진출했다. 일반 영상 에이전시에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 것도 대단하지만, 지상파에 방영된다는 것은 더욱 드문 일이다. 정 동문은 이처럼 ‘토닥토닥 꼬모’가 큰 인기를 끈 비결로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메시지를 꼽았다. “’토닥토닥’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길 바랐어요.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정제원 동문이 추천하는 에피소드. 꼬모와 친구들이 열매를 먹으려고 돌을 던져 나무에 상처를 냈고, 그날 밤 꼬모 꿈에 나무가 나타난다. 꼬모가 울고 있는 나무를 위로하며 상처를 이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존에 제작하던 커머셜 영상은 1분 30초 내외의 짧은 편이었지만, 애니메이션 영상은 한 편에 7분 정도로 긴 편이었기 때문에 작업에 익숙지 않았다. 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린이 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데모버전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에서 웃고 어떤 부분에서 딴 짓을 하는지 체크했어요. 또, 아이를 키우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눴구요.” 결국, 이와 같은 몇 년의 기다림과 인고의 과정 끝에 디자인 에그는 꼬모를 통해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됐다. ▲ 아이들이 '토닥토닥 꼬모' 캐릭터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머리에 달걀 껍데기를 쓴 캐릭터가 주인공 '꼬모'다. (출처: 정제원 동문) 앞으로도 꾸준히 일 하고파 정 동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기에 몇 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컴퓨터 2대로 시작했고, 6개월 가까이 통장 잔고가 늘 바닥이었어요.” 다만, 절대 남에게 빚은 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빚을 지면 재기할 기회가 줄어들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회사가 자리를 잡았기에, 정 동문은 다 같이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한국은 디자이너가 평균 근속 연수가 짧은 편이에요. 저는 늙어서도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 정제원 동문은 창업을 고려중인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라"고 조언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0

[동문][사랑, 36.5°C] 당신의 정 묻은 손이 누군가에게 삶을 지탱해 주는 동력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혹은 종교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가 가는 길에 긍정적인 발자국을 남기게 한다면 그 발자국은 뒤에 오는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본인이 몸 담았던 모교 운동부를 위해 발전기금 3,000만 원을 쾌척한 박민수 동문은 자신의 시작에 거창한 의미가 담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익힌 자신의 신념대로 그저 행했을 뿐이다. ▲박민수 (13 스포츠산업학과) 동문 Q 졸업과 동시에 모교 운동부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시합에 나가 한양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양대 선수들만의 단합된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꼭 한양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운동부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좋은 성적을 많이 거뒀는데, 그런 추억들이 모교에 대한 애정으로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실업팀과 계약하자마자 함께 뛰던 후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들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계약금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Q 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돈이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제가 한양대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실업팀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셨고, 제게도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권하신 분들이라 이번 일에도 이견은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만 아파하는 동정심도 가진 사람이 부리는 오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오셨네요? 네, 거창한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통해 선교나 고아원 등의 봉사활동을 일찍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장학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더 좋은 기회들이 저절로 찾아왔던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기부는 다른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기부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박민수 동문이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완벽하지 않잖아요. 저 역시 개인으로서나 운동선수로서나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가슴 깊이 찌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이라고 표한하기 어려운… 그 경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질이 주는 행복감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Q 박민수 선수의 기부금이 운동부실의 발전에 어떻게 사용되었으면 합니까? 사실 운동을 하려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면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되었으면 하고, 일부는 후배들이 단체복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선수들의 소속감이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시각적인 수단이니까요.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가 모두에게 필수는 아닙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미루다가 나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마시고, 일단 저지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기부 약정을 통해 조금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독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사는 게 조금은 짐을 더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민수 동문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기부는 힘든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짐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 말한다. Q 앞으로의 포부와 후배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4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됩니다. 하루 7시간 이상 훈련을 하느라 많이 힘들지만, 꿈이 있기에 이 모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후배들도 큰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디어 냈으면 합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좋은 결과로 되돌아오니까요.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4 20

[동문][희망, 100℃] 한양대 출신의 리더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나오는 날까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도, 삶의 무수한 샛길들에 곁눈질을 해본 적도 없었다는 이범택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크린토피아를 설립하는 것이었고, 비즈니스가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이 가진 부를 나누는 일이 그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모교에 기부를 해 온 이범택 회장은 최근 노후화된 한양예술극장의 리모델링을 위해 3억 원을 쾌척하고, 진행에 부족한 예산의 추가적인 기부까지 약정했다. 자신이 행한 일들이 떠들썩한 칭찬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망설이는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 주는 추임새가 되었으면 한다는 이범택 회장을 만나보았다. ▲ ㈜크린토피아 회장 이범택(섬유공학 72) 동문 십시일반 만든 한양대의 성장동력 삶에 있어 잘한 일 몇 가지를 꼽는다면 그 중 하나가 한양대에서 공부했던 일이라는 이범택 회장은 어딜 가나 모교 자랑이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상들을 많이 받았지만,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상으로 ‘한양을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상’과 ‘한양경영인상’을 꼽을 만큼 그에게 ‘한양’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재학시절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든 자신이 돌아갈 보금자리 같은 곳이 바로 모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꼭 하자는 것이 학교에 대한 기부였다. 이는 단순히 학교에 도움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후배들에 대한 투자라고 이범택 회장은 말한다. “우리가 기부한 돈은 학교의 환경 개선뿐 아니라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후배들이 미래에 모교를 이끄는 교수가 될 수도 있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한양대 출신의 리더들이 많아질수록 한양대 동문들의 명예와 자긍심도 올라가니, 이보다 더 유망한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큰 고생 없이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자신의 대학시절과 비교해 보면 고단하기만 한 요즘의 후배들에게 마음이 쓰인다는 이범택 회장. 당장 눈앞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느라 꿈을 갖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세태에, 그는 앞선 자로서의 책무와 대학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인재블랙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을 일컫는데, 우리나라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러기 위해선 대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학점과 스펙에만 연연하지 않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꿈을 세우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대학이 만들어 줘야 합니다. 사회에서 일하다 보면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창의적인 인재가 절실한데,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선 대학에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 기부금이 대학의 순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만큼 대학성장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범택 회장의 말대로 학교 혼자서는 성장의 견인차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배들이 십시일반 성장동력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 이범택 회장이 학교에 대한 기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러한 이범택 회장의 철학은크린토피아의 사회공헌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타당한 이유와 올곧은 원칙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는 게 ‘기업인 이범택’의 철학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을 보탠다는 단순한 접근을 통해, 고아원에서 양로원, 그리고 교복물려입기 캠페인까지 수많은 일들이 크린토피아의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이 만큼 살다 보니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눈에 보인다는 이범택 회장의 사람 좋은 미소는 단순히 연륜에 의한 측은지심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늘 사려 깊은 시선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시하고,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단단히 쌓아올린 사람만이 내다볼 수 있는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누군가를 돕는 일만큼은 젊은 직원들도 따라 올 수 없다는, 체력을 넘어선 솔선수범의 자세는 그가 이제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인간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삶의 이력서 같은 것이다. “몇 해 전 강원도에 큰 수해가 나서 농부들이 힘겹게 일군 감자밭이 수몰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직원들과 함께 달려가서 감자밭 수확을 도왔죠. 한시라도 빨리 건져야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나중에 보니 젊은 직원들보다 제가 훨씬 많이 수확을 했더군요. 무슨 일이든 마음이 시켜서 집중을 하게 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 이범택 회장은 “후배들이 젊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선배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고민하고 나눠야 합니다. 후배들의 성공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일 때에비로소 우리의 책무도 가벼워지니까요.” 라고 말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인생의 한때인 젊음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더라는 이범택 회장.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에 후배들이 꿈과 도전이라는 말들을 너무 멀리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후배들이 젊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선배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한다. 그리고 그의 고민이 행동으로 이어져 한양의 발전을 이끌고 후배들의 성공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일 때에 비로소 선배의 책무도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무는 비단 자신 혼자만의 몫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양의 이름으로 묶여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자긍심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자는 것이 기부와 나눔을 망설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이범택 회장의 조언이다.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4 17 중요기사

[동문]가야금 퉁기며 노래하는 소리꾼

흔히 판소리는 노래하는 소리꾼과 옆에서 북 치는 고수 둘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야금이 함께하는 가야금 병창이야말로 판소리의 백미. 소리꾼이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형태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버스킹하는 가수들을 연상케 한다. 우리대학 국악과를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를 수료한 최민혁 동문(국악과 03)은 학부 시절 만난 '국가무형문화제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로부터 가야금 병창을 직접 이수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간 열린 '제26회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에서 가야금 병창으로 대통령상인 우륵대상을 수상했다. 남성 소리꾼의 특징 살린 곡 선정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는 가야금의 발상지이자 우륵의 고장인 고령군에서 열리는 대회로, 가야금 쪽에서는 제일가는 경연대회다. 올해로 26회를 맞이한 이 대회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누어 경연하며 가야금 기악과 병창을 합쳐 시상자를 뽑는다. 이 중 일반부에서만 대통령상인 우륵대상을 시상하는데, 최 동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예심과 본심으로 나뉜 이 대회 참가자만 총 214팀 234명을 기록했다. ▲최민혁 동문(왼쪽에서 네번째)이 '제26회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출처: 최민혁 동문) 최 동문이 이번 대회에서 선정한 곡은 두 곡. 예선에서는 '적벽가 중 화룡도'를, 본선에서는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을 부르고 연주했다. 화룡도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대패한 후 도망가다 관우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또한 황성 올라가는 대목은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가는 여정을 노래한 곡으로 이 두 곡은 가야금병창에서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이 두 곡의 공통적인 특징은 남성 화자라는 점이다. 사실 최 동문은 그 점에 주목해 곡을 선정했다. "가야금 음악 전공자 중에 남자가 10%도 안돼요. 이 때문에 가야금과 판소리를 동시에 하는 남자는 더더욱 흔치않죠." 적벽가 중 화룡도,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 두 곡 모두 남성 화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특히 화룡도는 전쟁의 강렬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기에 "내 소리의 장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었다"고 최 동문은 말한다. 부전공으로 시작해 가야금 이수자가 되다 최 동문은 원래 판소리 전공자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판소리에 빠져 전공까지 하게 됐다. 그럼에도 가야금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대학에서 가야금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학에 오니까 부전공으로 가야금 수업이 열렸어요. 들으면서 '가야금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가야금병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죠." 우연히 시작한 가야금이지만, 최 동문은 부단한 노력으로 가야금을 배웠다. 그 성과로 얻은 것이 바로 '국가무형문화제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라는 칭호. 우리대학서 부전공 수업 때 국가무형문화제 보유자인 강정숙 선생을 만나 전수 받았다. 이수자로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하는 최 동문은 하루 일과를 연습 또 연습에 매진한다. ▲최민혁 동문이 무대에서 가야금 연주에 노래를 하고 있다. (출처: 최민혁 동문)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 전문 연주자로서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최 동문은 때로는 무모하게 음악을 배우고자 떠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한 가지가 굿에 쓰이는 음악을 배운 일. 죽은 사람을 보내는 굿에 쓰이는 음악은 현재는 공연 무대에도 자주 올라간다. 하지만 최 동문이 학부생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그만큼 알려지진 않은 장르였다. "진도 씻김굿을 배우려고 선후배들과 진도로 떠났어요. 씻김굿의 명인 채정례 선생님 댁을 찾아갔는데 연락처나 주소도 전혀 모르고 가서 물어 물어 찾아갔어요." 또 최근에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판소리를 알리고자 강습도 자주 나간다.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연주자의 기본 자세라면 국악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 또한 국악을 전공하는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최 동문은 말한다. "우리 전통음악인 판소리는 서양음악처럼 무대의 연주자와 객석의 관객이 분리돼있지 않죠. 관객과의 호흡이 아주 중요합니다. 판소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강습 나갈때 마다 강습을 통해 편견을 없애고자 다짐합니다." 우리 음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편견이 아쉽다는 최 동문. 그를 최고의 소리꾼으로 만드는 것은 국악에 대한 애정과 욕심 때문일 것이다. ▲최민혁 동문(국악과 03)이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최민혁 동문)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