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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 25

[동문]성실한 건축학도, 대학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다 (3)

우리대학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이 인천도시공사가 주최한 ‘제2회 대학생 설계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참가신청은 771팀에 달하고 최종적으로 72개 대학 170팀이 작품을 접수한 가운데, 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민 지 동문은 최종심사를 거쳐 지난 3월 30일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 생활 마지막 도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 기쁘다는 지 동문.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그를 만났다. 해방촌에 공유를 입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대학생 설계 공모전은 새로운 주거유형을 모색하고 대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목표로 한다. 이번 대회는 ‘공유와 거주’를 주제로 열렸다. 지수연 동문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을 건축 대지로 잡아 ‘Next step for urban steps’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지 동문은 근 30년간의 개발이 대형화, 획일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작은 규모의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전 소규모 단독주택에서 70년대 이후 5층 이하의 다세대 주택, 그리고 8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 왔어요. 저는 급박하게 변화한 주거환경 속에서 작은 조직으로 남아있는 마을에 대한 미래 주거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과 지난 2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방촌은 지 동문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었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인 데다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주를 이뤘다. “해방촌 입구에는 108계단이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면서 만든 계단이에요. 해방 후 신사는 없어지고 계단만 남았는데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주변 건물은 노후 된 채 발전하지 못한 상태죠.” 이러한 상황에서 맞물려 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해방촌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비율이었다. “해방촌에는 '빈집 프로젝트'라고 1인 가구들이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뤄져요. 이렇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주거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파악했어요.” 지수연 동문은 정교한 설계 작업을 통해 108계단과 접하는 1층에는 소강당이나 도서관, 갤러리와 같이 공용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상층부인 2, 3, 4층에는 1인가구를 위한 소형 주거를 배치했다. “1인 거주자들은 ‘빈집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원룸 형태의 독립된 집을 갖지만, 집 사이사이에 공용부엌과 화장실, 옥상 테라스 등 다양한 틈새 공간들을 공유하도록 설계했어요.” 1인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을 마련한 동시에 공유의 가치를 더한 것. 작업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가파른 지형에 무계획적으로 지어진 해방촌의 특성상, 초반 설계 작업에서 형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 동문은 직접 모형을 만들면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나갔고 주변의 조언을 토대로 보완 작업을 했다. “가능한 한 간결하게 주거공간을 구상했어요. (해방촌이) 여유 있는 공간이 아니거든요. 최대한 실용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죠.” 이에 더해, 채광 및 조망, 환기에 대한 측면을 비롯해 경사지의 풍경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지수연 동문이 완성한 ‘Next step for urban steps’의 모습. 각각의 동이 체계적이면서 경사지 마을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출처: 지수연 동문) 건축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같아 지수연 동문은 어릴 적부터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 이왕이면 좀 더 크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건축학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이후 지 동문은 재수 끝에 우리대학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건축학과생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프로젝트와 밤샘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건축학과 학생은 교양 듣기도 힘들어요. 1학년 때부터 필수 과목들을 신청하면 학점이 다 차거든요.” 학과 내 학회인 ‘Art space’에서의 활동도 바쁜 삶에 한몫했다. 방학 때면 강의실과 설계실을 빌려 2주 내지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학과는 보통 지도 교수님 한 분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해요. 매시간 본인의 작품에 대해 발표하고, 피드백을 듣죠.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완성해가도 교수님들의 크리틱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다시 작업해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빽빽한 생활에 힘이 부칠 때도 잦았지만, 지 동문에게 후회란 없었다.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해요. 구상했던 작업이 논리적으로, 설계적으로 전부 조건에 부합했을 때 희열을 느끼죠. 그럴 때면 ‘그동안 들였던 시간이 의미없진 않구나’란 생각을 해요.” 올해 졸업한 지수연 동문은 현재 네덜란드와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지만, 지 동문은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사실 제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했어요. 저 혼자 이 길을 가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하게 됐어요. 저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이번 공모전 입상으로 받을 상금은 유학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예정이라고. 긍정적 영향 미치는 건축가가 될 것 지수연 동문이 꿈꾸는 건축가의 모습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축가’다. 자신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을 짓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아니었지만, 지 동문의 뚜렷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는 평생을 건물 안팎을 드나들며 살아가요. 이때 건물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도시 계획 쪽으로도 관심이 많아요. 계획이 잘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수연 동문은 실용적인 건축가를 꿈꾸며,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3

[동문]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정신으로, 디자인의 길을 찾다!

젊음의 거리 홍대를 지나, 연남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가게들 사이, 짙은 청록색 외관의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갖고 1층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각종 피규어와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가 눈에 띈다. 바로 달걀 껍데기를 머리에 쓰고 있는 병아리 ‘꼬모’다. 바로 이 곳이 지나가는 아이들도 ‘꼬모’를 보고 발길을 멈춘다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의 제작사 디자인 에그’다. 화창한 봄 날씨가 한창이던 지난 21일 회사 근처 한 카페에서 ‘디자인 에그’의 대표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을 만났다. 꿈을 향해 달려온 10년 어린 시절부터 만화나 영화에 빠져 살던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신만의 꿈을 좇기 위해 치열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처음엔 화가였던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공대에 진학했지만, 2학기 땐 아버지 몰래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교 입학 후 돈을 벌어 그 떄 학원비를 낸다는 조건으로, 학원을 다녔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일도 많이 했구요.” 이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정 동문은 언젠가 자신의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밟아 나갔다. “원래 졸업 후 최대한 빨리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 전에 사회 경험도 쌓을 겸 영화사에서 잠깐 일을 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눈 여겨 봤었죠” 당시 업계의 열악한 처우와 감독들의 하대하는 분위기는 정 동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 땐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가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를 차리면 기존 디자인 업계의 관습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정 동문은 2007년에 마음 맞는 다른 동기와 함께 현재의 디자인 에그를 설립하게 됐다. 회사명은 ‘달걀 껍데기를 남이 깨면 후라이가 되고, 본인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는 점에 착안해 지었다. 그리고 벌써 창업 10주년을 맞은 올해, 디자인 에그는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점차 관습을 바꿔나가고 있어요. 연봉이나 복지도 늘려주고, 야근도 줄이는 식으로요” ▲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를 지향한다며, "회사 내에선 누구든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마음껏 편하게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토닥토닥 꼬모’를 통해 빛을 발하다 현재 디자인 에그는 크게 ‘커머셜’ 파트와 ‘콘텐츠’ 파트로 나누어 일을 하고 있다. ‘커머셜’ 파트의 경우 공공기관이나 방송사 등에서 외주를 받아 영상 등을 기획, 진행한다. 반면에, ‘콘텐츠’ 파트는 직접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어플리케이션 등을 기획, 개발하는 방식이다. 정 동문은 장기적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커머셜 파트보다 콘텐츠 파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파트를 진행하려면 큰 돈이 필요해서 초기엔 커머셜 파트에 집중했어요. ‘토닥토닥 꼬모’를 제작할 당시에도 잠시 회사가 휘청했죠(웃음)” 겁 많은 아기 병아리 ‘꼬모’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는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자체 콘텐츠로 제작했다가 유행을 타 지상파 SBS에도 방영되고, 작년엔 중국 상하이 방송까지 진출했다. 일반 영상 에이전시에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 것도 대단하지만, 지상파에 방영된다는 것은 더욱 드문 일이다. 정 동문은 이처럼 ‘토닥토닥 꼬모’가 큰 인기를 끈 비결로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메시지를 꼽았다. “’토닥토닥’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길 바랐어요.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정제원 동문이 추천하는 에피소드. 꼬모와 친구들이 열매를 먹으려고 돌을 던져 나무에 상처를 냈고, 그날 밤 꼬모 꿈에 나무가 나타난다. 꼬모가 울고 있는 나무를 위로하며 상처를 이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존에 제작하던 커머셜 영상은 1분 30초 내외의 짧은 편이었지만, 애니메이션 영상은 한 편에 7분 정도로 긴 편이었기 때문에 작업에 익숙지 않았다. 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린이 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데모버전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에서 웃고 어떤 부분에서 딴 짓을 하는지 체크했어요. 또, 아이를 키우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눴구요.” 결국, 이와 같은 몇 년의 기다림과 인고의 과정 끝에 디자인 에그는 꼬모를 통해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됐다. ▲ 아이들이 '토닥토닥 꼬모' 캐릭터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머리에 달걀 껍데기를 쓴 캐릭터가 주인공 '꼬모'다. (출처: 정제원 동문) 앞으로도 꾸준히 일 하고파 정 동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기에 몇 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컴퓨터 2대로 시작했고, 6개월 가까이 통장 잔고가 늘 바닥이었어요.” 다만, 절대 남에게 빚은 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빚을 지면 재기할 기회가 줄어들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회사가 자리를 잡았기에, 정 동문은 다 같이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한국은 디자이너가 평균 근속 연수가 짧은 편이에요. 저는 늙어서도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 정제원 동문은 창업을 고려중인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라"고 조언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0

[동문][사랑, 36.5°C] 당신의 정 묻은 손이 누군가에게 삶을 지탱해 주는 동력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혹은 종교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가 가는 길에 긍정적인 발자국을 남기게 한다면 그 발자국은 뒤에 오는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본인이 몸 담았던 모교 운동부를 위해 발전기금 3,000만 원을 쾌척한 박민수 동문은 자신의 시작에 거창한 의미가 담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익힌 자신의 신념대로 그저 행했을 뿐이다. ▲박민수 (13 스포츠산업학과) 동문 Q 졸업과 동시에 모교 운동부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시합에 나가 한양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양대 선수들만의 단합된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꼭 한양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운동부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좋은 성적을 많이 거뒀는데, 그런 추억들이 모교에 대한 애정으로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실업팀과 계약하자마자 함께 뛰던 후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들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계약금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Q 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돈이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제가 한양대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실업팀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셨고, 제게도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권하신 분들이라 이번 일에도 이견은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만 아파하는 동정심도 가진 사람이 부리는 오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오셨네요? 네, 거창한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통해 선교나 고아원 등의 봉사활동을 일찍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장학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더 좋은 기회들이 저절로 찾아왔던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기부는 다른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기부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박민수 동문이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완벽하지 않잖아요. 저 역시 개인으로서나 운동선수로서나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가슴 깊이 찌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이라고 표한하기 어려운… 그 경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질이 주는 행복감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Q 박민수 선수의 기부금이 운동부실의 발전에 어떻게 사용되었으면 합니까? 사실 운동을 하려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면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되었으면 하고, 일부는 후배들이 단체복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선수들의 소속감이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시각적인 수단이니까요.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가 모두에게 필수는 아닙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미루다가 나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마시고, 일단 저지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기부 약정을 통해 조금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독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사는 게 조금은 짐을 더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민수 동문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기부는 힘든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짐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 말한다. Q 앞으로의 포부와 후배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4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됩니다. 하루 7시간 이상 훈련을 하느라 많이 힘들지만, 꿈이 있기에 이 모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후배들도 큰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디어 냈으면 합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좋은 결과로 되돌아오니까요.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4 20

[동문][희망, 100℃] 한양대 출신의 리더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나오는 날까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도, 삶의 무수한 샛길들에 곁눈질을 해본 적도 없었다는 이범택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크린토피아를 설립하는 것이었고, 비즈니스가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이 가진 부를 나누는 일이 그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모교에 기부를 해 온 이범택 회장은 최근 노후화된 한양예술극장의 리모델링을 위해 3억 원을 쾌척하고, 진행에 부족한 예산의 추가적인 기부까지 약정했다. 자신이 행한 일들이 떠들썩한 칭찬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망설이는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 주는 추임새가 되었으면 한다는 이범택 회장을 만나보았다. ▲ ㈜크린토피아 회장 이범택(섬유공학 72) 동문 십시일반 만든 한양대의 성장동력 삶에 있어 잘한 일 몇 가지를 꼽는다면 그 중 하나가 한양대에서 공부했던 일이라는 이범택 회장은 어딜 가나 모교 자랑이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상들을 많이 받았지만,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상으로 ‘한양을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상’과 ‘한양경영인상’을 꼽을 만큼 그에게 ‘한양’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재학시절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언제든 자신이 돌아갈 보금자리 같은 곳이 바로 모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꼭 하자는 것이 학교에 대한 기부였다. 이는 단순히 학교에 도움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후배들에 대한 투자라고 이범택 회장은 말한다. “우리가 기부한 돈은 학교의 환경 개선뿐 아니라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후배들이 미래에 모교를 이끄는 교수가 될 수도 있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한양대 출신의 리더들이 많아질수록 한양대 동문들의 명예와 자긍심도 올라가니, 이보다 더 유망한 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큰 고생 없이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자신의 대학시절과 비교해 보면 고단하기만 한 요즘의 후배들에게 마음이 쓰인다는 이범택 회장. 당장 눈앞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느라 꿈을 갖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세태에, 그는 앞선 자로서의 책무와 대학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인재블랙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을 일컫는데, 우리나라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그러기 위해선 대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학점과 스펙에만 연연하지 않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꿈을 세우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대학이 만들어 줘야 합니다. 사회에서 일하다 보면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창의적인 인재가 절실한데,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선 대학에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 기부금이 대학의 순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만큼 대학성장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범택 회장의 말대로 학교 혼자서는 성장의 견인차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배들이 십시일반 성장동력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 이범택 회장이 학교에 대한 기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러한 이범택 회장의 철학은크린토피아의 사회공헌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타당한 이유와 올곧은 원칙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기업이 감수해야 한다는 게 ‘기업인 이범택’의 철학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을 보탠다는 단순한 접근을 통해, 고아원에서 양로원, 그리고 교복물려입기 캠페인까지 수많은 일들이 크린토피아의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이 만큼 살다 보니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눈에 보인다는 이범택 회장의 사람 좋은 미소는 단순히 연륜에 의한 측은지심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늘 사려 깊은 시선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시하고,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단단히 쌓아올린 사람만이 내다볼 수 있는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누군가를 돕는 일만큼은 젊은 직원들도 따라 올 수 없다는, 체력을 넘어선 솔선수범의 자세는 그가 이제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인간에 대해 얼마나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는 삶의 이력서 같은 것이다. “몇 해 전 강원도에 큰 수해가 나서 농부들이 힘겹게 일군 감자밭이 수몰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직원들과 함께 달려가서 감자밭 수확을 도왔죠. 한시라도 빨리 건져야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나중에 보니 젊은 직원들보다 제가 훨씬 많이 수확을 했더군요. 무슨 일이든 마음이 시켜서 집중을 하게 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 이범택 회장은 “후배들이 젊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선배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고민하고 나눠야 합니다. 후배들의 성공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일 때에비로소 우리의 책무도 가벼워지니까요.” 라고 말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인생의 한때인 젊음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더라는 이범택 회장.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에 후배들이 꿈과 도전이라는 말들을 너무 멀리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후배들이 젊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선배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한다. 그리고 그의 고민이 행동으로 이어져 한양의 발전을 이끌고 후배들의 성공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일 때에 비로소 선배의 책무도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무는 비단 자신 혼자만의 몫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양의 이름으로 묶여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자긍심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자는 것이 기부와 나눔을 망설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이범택 회장의 조언이다.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4 17 중요기사

[동문]가야금 퉁기며 노래하는 소리꾼

흔히 판소리는 노래하는 소리꾼과 옆에서 북 치는 고수 둘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야금이 함께하는 가야금 병창이야말로 판소리의 백미. 소리꾼이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형태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버스킹하는 가수들을 연상케 한다. 우리대학 국악과를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를 수료한 최민혁 동문(국악과 03)은 학부 시절 만난 '국가무형문화제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로부터 가야금 병창을 직접 이수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간 열린 '제26회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에서 가야금 병창으로 대통령상인 우륵대상을 수상했다. 남성 소리꾼의 특징 살린 곡 선정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는 가야금의 발상지이자 우륵의 고장인 고령군에서 열리는 대회로, 가야금 쪽에서는 제일가는 경연대회다. 올해로 26회를 맞이한 이 대회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누어 경연하며 가야금 기악과 병창을 합쳐 시상자를 뽑는다. 이 중 일반부에서만 대통령상인 우륵대상을 시상하는데, 최 동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예심과 본심으로 나뉜 이 대회 참가자만 총 214팀 234명을 기록했다. ▲최민혁 동문(왼쪽에서 네번째)이 '제26회 고령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출처: 최민혁 동문) 최 동문이 이번 대회에서 선정한 곡은 두 곡. 예선에서는 '적벽가 중 화룡도'를, 본선에서는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을 부르고 연주했다. 화룡도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대패한 후 도망가다 관우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또한 황성 올라가는 대목은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가는 여정을 노래한 곡으로 이 두 곡은 가야금병창에서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이 두 곡의 공통적인 특징은 남성 화자라는 점이다. 사실 최 동문은 그 점에 주목해 곡을 선정했다. "가야금 음악 전공자 중에 남자가 10%도 안돼요. 이 때문에 가야금과 판소리를 동시에 하는 남자는 더더욱 흔치않죠." 적벽가 중 화룡도,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 두 곡 모두 남성 화자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특히 화룡도는 전쟁의 강렬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기에 "내 소리의 장점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었다"고 최 동문은 말한다. 부전공으로 시작해 가야금 이수자가 되다 최 동문은 원래 판소리 전공자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판소리에 빠져 전공까지 하게 됐다. 그럼에도 가야금을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대학에서 가야금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학에 오니까 부전공으로 가야금 수업이 열렸어요. 들으면서 '가야금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가야금병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죠." 우연히 시작한 가야금이지만, 최 동문은 부단한 노력으로 가야금을 배웠다. 그 성과로 얻은 것이 바로 '국가무형문화제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라는 칭호. 우리대학서 부전공 수업 때 국가무형문화제 보유자인 강정숙 선생을 만나 전수 받았다. 이수자로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하는 최 동문은 하루 일과를 연습 또 연습에 매진한다. ▲최민혁 동문이 무대에서 가야금 연주에 노래를 하고 있다. (출처: 최민혁 동문)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 전문 연주자로서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최 동문은 때로는 무모하게 음악을 배우고자 떠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한 가지가 굿에 쓰이는 음악을 배운 일. 죽은 사람을 보내는 굿에 쓰이는 음악은 현재는 공연 무대에도 자주 올라간다. 하지만 최 동문이 학부생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그만큼 알려지진 않은 장르였다. "진도 씻김굿을 배우려고 선후배들과 진도로 떠났어요. 씻김굿의 명인 채정례 선생님 댁을 찾아갔는데 연락처나 주소도 전혀 모르고 가서 물어 물어 찾아갔어요." 또 최근에는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판소리를 알리고자 강습도 자주 나간다.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연주자의 기본 자세라면 국악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 또한 국악을 전공하는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최 동문은 말한다. "우리 전통음악인 판소리는 서양음악처럼 무대의 연주자와 객석의 관객이 분리돼있지 않죠. 관객과의 호흡이 아주 중요합니다. 판소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강습 나갈때 마다 강습을 통해 편견을 없애고자 다짐합니다." 우리 음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편견이 아쉽다는 최 동문. 그를 최고의 소리꾼으로 만드는 것은 국악에 대한 애정과 욕심 때문일 것이다. ▲최민혁 동문(국악과 03)이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최민혁 동문)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04 16 중요기사

[동문]꿈을 찾아왔던 26살 새내기 마음으로, 무대 위의 빛 디자인하다

'연극이 고파서' 26살에 새내기가 됐다. "20대 중반에 진로를 바꾸는 것은 전혀 늦은 게 아니"라며 거듭 강조하는 최보윤 동문(연극영화학과 01)은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는 인기 조명디자이너다. 요즘은 한창 진행 중인 작품 <목란언니> 조명 디자인 부터, 모교에서의 강의까지 병행하느라 바쁘다. 대학로에 있는 작업실에서 조명디자이너 최 동문을 만났다. 연극에 숨결을 불어넣는 조명 "연극은 현실을 각색한 세계를 만들어서 관객한테 전달을 해주는 것." 무대 디자이너가 연극 속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면 조명 디자이너는 전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게 그 세계에 빛을 불어넣는다. 요즘 한창 작업 중인 작품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음악 공연과 두산아트센터의 <목란언니> 연극 공연. 그중에서도 북으로 돌아가고 싶은 탈북자 조목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목란언니>는 5년 전 초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현재 3번째 재연에 돌입한 작품이다. 배우를 제외한 연출, 스텝들 모두 5년 전 초연을 같이 참여했던 식구들인 만큼, 다들 30대 중반, 40대 초반이 되니 작품을 보는 시선이 그때와 달라졌다고. "초연은 전체적으로 색감도 조명도 화려했는데, 다시 작품을 준비하며 생각해보니 북한 탈북자 목란이가 한국에서 느낄 빛은 차가울 것 같았어요. 피할 곳이 없을만큼 폭력적인, 그런 빛 안에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화려한 조명을 모두 뺐어요." 조명 디자인은 배우들의 위치와 무대의 형태에 따라 정한다. 대본을 받고 연습을 참관하면서 배우와 연출에게 방향성을 듣고 '배우가 공간에서 어떻게 보여야 할지' 고민한다. 세부적인 장면 스케치는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습하면서 동선이 구현될 때 배우들의 정서나 빛의 질감 정도를 러프하게 디자인한다. 디자인 어시스트와 연습에 같이 참여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순서로 어떠한 순서로 바뀌는지 큐시트나 리허설이 정리될 때쯤에 디자인을 완성한다. ▲대학로의 작업장에서 최보윤 동문(연극영화학과 01)을 만났다. 연극영화학과로 3번째 새내기, 인생의 전환점 되다 최 동문은 과거 다카라즈카(寶塚) 뮤지컬 극단에 푹 빠져 팬페이지 운영자까지 맡았다. "'꿈을 판다'는 말이 있죠. 영화만 봤지 공연은 처음이었는데, 대형 무대에서 펼쳐지는 진한 분장과 화려한 쇼에서 꿈의 세계를 봤어요. 일주일 동안 TV 방송을 녹화해서 계속 돌려봤어요." 야후 닷컴 검색결과를 출력해서 공부하고, 국내 팬 사이트를 찾아 가입하고 네이버에 뮤지컬 카페도 운영했다고 한다. 명문대 기계전자공학부 3학년 재학중이었던 최 동문은 연극을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다시 수능을 봐 26살에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늦깎이 새내기로 입학했다. "그때까지 공부 잘하는 범생이로 살아왔는데, 컴퓨터가 아닌 연극을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도 집중이 안 되고, 멍하니 상상을 하게 됐어요. 문득 20대 중반이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극이 너무 고파서' 왔고 또 그만큼 뭐든 열심히 하려는 최 동문을 예뻐한 교수와 선배가 많았다고 한다. 20대 중반의 나이에도 주저 없이 연극영화학과 새내기를 자처한 최 동문은 졸업 후에도 꾸준히 모교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부터 캡스톤디자인 강의에서 조명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 있는 조명기와 극장의 조명기에 대해 설명하고, 자동화 된 무빙라이트를 운영하는 법도 가르친다. ▲ 최보윤 동문(연극영화학과 01)이 무대 조명디자인을 맡은 <목란언니>. (출처 : 두산아트센터) 조명디자이너 최보윤의 길 최 동문의 목표는 계속 즐겁게 길게 일하는 것. "나이가 들면 저보다 훨씬 어린 연출들과 일하게 될 텐데, 언제까지 감각을 잃지 않고 생각을 교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돼요. 저희 선생님이 지금 50대 후반이신데, 계속 발전하는 모습에 '이게 되는 거구나' 하고 자극을 받아요. 저도 후배에게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최 동문은 혹시 진로를 고민하는 한양대 후배가 있다면, 주저없이 시도하라고 한 마디 남겼다. "저는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에요. 20대는 뭐든 시도할 수 있는 나이고, 뜨겁게 좋아할 수 있는 에너지도 엄청나죠. 본인이 원하는 목표가 생기면 아무도 못말리게 돌진하길 바랍니다." ▲ 후배들에게 "늦었다는 생각 말고 꿈을 향해 도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3 29

[동문]나만의 시계 보며 달린 11년,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녹아있는 강렬한 힘, 묵직한 저음부터 시원한 고음까지 커버하는 노래 실력, 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녹여내는 절절한 연기. 흥행돌풍을 일으킨 뮤지컬 <팬텀>에서 주인공 ‘에릭’ 역을 맡은 박은태 동문(경영학부 00)에 대한 평가다. 최근 국내 초연을 앞둔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인공에 단독으로 캐스팅되며 그 저력을 입증한 박 동문을 만났다. ▲뮤지컬 배우 박은태 동문(경영학부 00) 불행한 삶 연기했지만 ‘에릭'이어서 행복했다 박 동문은 지난해 말부터 5개월 동안 <팬텀>의 에릭으로 살았다.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티켓판매율 1위에 오른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루르의 원작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각색한 작품. 오페라의 유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에릭의 비극적인 삶을 재조명한다. 에릭은 천부적인 노래실력을 지녔지만 흉측한 얼굴 탓에 극장의 지하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에릭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배우 크리스틴에게 반하지만 그 사랑도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에릭의 슬픈 운명을 연기하며 일상마저 흔들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 동문은 연기와 일상을 구분하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프랑켄슈타인>이란 작품에서 비극적인 괴물 연기를 맡았을 때, 극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일상 생활까지 우울해졌어요. <팬텀>의 에릭을 맡으면서는 에릭의 삶과 실제 제 삶을 분리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박 동문이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에릭으로 살아남는 법’이다. 비록 박 동문이 연기한 에릭의 삶은 불행했지만, 박 동문은 <팬텀>을 공연하는 내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음역이나 노래 스트레스 없이 무대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몸에 잘 맞는 배역을 만난 거였어요." 얼마 전 <팬텀>의 마지막 무대에 섰던 그는 "아쉽지만 곧 시작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새 옷을 입어야 하기에 정든 에릭을 잘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 박은태 동문은 뮤지컬 <팬텀>에서 주인공 에릭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꿈을 위해 포기한 것 지난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의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박 동문은 <노트르담 드 파리>, <모차르트!>, <엘리자벳>,<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도리안 그레이> 등 유수의 작품에서 주연으로 무대에 섰다. 대극장 공연을 한 해에만 2-3편 소화한 왕성한 활동력이었다. 박 동문이 이처럼 사랑 받는 배우가 된 배경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다. 평소 커피를 즐겨마신다는 박 동문은 인터뷰 당일 커피 대신 '바나나 우유'를 주문했다. 내일 아침 라디오 녹음이 예정돼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목이 안 좋으면 무대 위에 있는 내내 숨통이 조여요. 그래서 더 스스로 엄하게 절제하며 컨디션 관리를 하는 편이에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야식도, 음주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박 동문을 지탱하는 힘은 가족과 친구의 진심어린 응원에 더해, 자신에 대한 강력한 채찍질에서 나온다. 박 동문은 MC스나이퍼의 노래 ‘Better than Yesterday’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유혹을 참는다고 했다. “학부 시절 뒤늦게 전공이 아닌 뮤지컬로 배우를 정했을 무렵 이 노래를 들었어요. ’너의 꿈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니'란 구절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죠." 위태위태 혼수상태 저기 발끝 밑에 라면 한 봉에 하루를 살던 그때 습기 가득한 지하 방에서 훗날을 도모한 나는 증오와 분노와 깊은 밤을 함께 했네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얼마나 절실하니? 너의 꿈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니? 패기와 용기 어금니 꽉 문 너의 오기는 대체 네 삶 어디에 투자됐니? MC 스나이퍼 – ‘Better than yesterday’ 중 비전공자 약점 극복하고 최고의 배우 되기까지 박 동문의 이력 중 돋보이는 점은 경영학을 전공했단 사실이다. 상당수의 뮤지컬 배우가 성악을 전공한 것과는 다른 면모다. “어렸을 때 적성검사를 하면 늘 ‘군인’이나 ‘경찰’이 나왔어요. 실제로 그 길을 준비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꿨죠. 우선은 대학에 가서 새로운 꿈을 찾자는 마음으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경영학부에 입학했어요." 대학 입학 후 박 동문은 밴드 ‘소리로 크는 나무’의 보컬로 활동했다. 2학년 때는 밴드 동료들과 강변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타기도 했다. “군대 전역 후 1년 동안은 공부에 매진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노래에 대한 미련이 남았죠. 노래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뮤지컬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임했죠." 스물 여섯의 박 동문은 이렇게 뮤지컬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늦게 도전장을 내민 만큼 박 동문은 초조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시계만 보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예고를 나온 사람이라면 저보다 10년 먼저 이 분야를 준비한 거잖아요. 당장은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10년 더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달린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박 동문은 모든 연출가가 탐내는 한국의 대표 뮤지컬 배우가 됐다. “10년을 꾸준히 달려서 지금의 제가 됐어요. 10년 더하면 조금 더 늘어있지 않을까요?" ▲박은태 동문이 2013년과 2015년 출연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메인 넘버 '겟세마네(Gethsemane)'. 박 동문의 연기력과 탄탄한 고음에 많은 이가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뮤지컬 배우’ 박은태입니다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을 때 가장 기분이 좋냐는 질문에 박 동문은 "특별한 수식어는 욕심일 뿐 '뮤지컬 배우'라는 소개만 붙이고 싶다"고 했다. 단단한 내공에는 거창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의 소망은 20년, 30년 후에도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는 것. “뮤지컬 배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을 때, 관객 분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확인할 때, 퇴근 길에 사인 요청을 받을 때 정말로 황홀해요. 이런 일을 한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에요.” 박 동문은 오는 15일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 역으로 새로운 무대에 오른다. 상대 배우 옥주현과 함께 원 캐스팅으로 극을 이끌 예정.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스스로를 재촉하는 그이기에, 박 동문이 선보일 무대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박은태 동문은 오는 15일부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 역으로 무대에 선다. 국내 초연이라는 점에서 두 어깨가 무거운 그는 막바지 연습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2017-03 21

[동문]바람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나이 (5)

드넓은 바다, 요트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전세계를 누빈다면. 낮에는 떠오르는 해를 보고, 밤에는 반짝이는 별을 보며며 망망대해를 거니는 일.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만에 다른 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대지만, 항해는 보통의 육지 여행과는 또 다른 낭만이다. 장재익 동문(스포츠산업학과 09)은 이 매력에 빠진 후 이를 쫓아 영국에서 요트를 배웠고, 지난해 세계적인 요트 대회에서 한국팀으로 출전했다. 낭만에 이끌려 시작한 항해 장재익 동문이 요트에 빠진건 학부 시절 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다. 지중해에 떠있는 수백대의 요트, 그들이 항해하는 모습은 장 동문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자정쯤이었어요. 한 가족이 요트를 타고 출항하는 장면을 봤죠. 부모들은 돛을 펴고, 아이들은 밖으로 손을 흔들고요. 요트는 고급 스포츠인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한국에 돌아온 장 동문은 때를 기다렸다. 졸업과 군 복무를 마친 후 네덜란드에서 요트를 배웠다. 실력이 조금씩 쌓였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영국왕립요트협회(RYA)의 요트마스터 과정을 밟게됐다. "네덜란드에서 딴 자격증만으로도 어지간한 곳에서 요트를 타는 건 가능했어요. 하지만 이왕 배우는 거 확실하게 하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요트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웃음)" ▲지난 3월 18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장재익 동문(스포츠산업학과 09)를 만났다. 그가 만난 요트는 마냥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었다. 수일에서 수주를 넘는 장거리 항해에는 집중력과 강한 체력이 필요했다. "장거리 항해의 경우 컨디션 조절이 무척 중요해요. 혼자서든, 그룹으로 타든 항해 중에 꼭 쉬어줘야 해요." 그룹 항해의 경우 조를 나눠 돌아가며 잠을 잔다. 생각보다 편하게 자기는 어렵다. "그래도 혼자 항해할 때보다는 나은 편이에요. 자동 항해 기능이 있어서 혼자있어도 어느 정도는 쉴 수 있지만, 배가 많거나 파도가 심한 곳에선 계속 깨어있을 수 밖에 없죠." 이처럼 치열한 항해 중에 마주치는 풍경은 요트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무척 맑은 날, 망망대해 위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또 밤에는 별이 정말 많이 보여요. 도시에 살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풍경이죠. 너무 아름다워요." 때로는 비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거센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이를 극복해내면서 얻는 또 다른 성취감이 있다. ▲ 장재익 동문은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항해할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했다. (출처: 장재익 동문) 유수 깊은 요트 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 어느 날, 장 동문에게 요트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왔다. 요트마스터 과정 중에 만난 김한울 씨('클리퍼 세계일주 요트대회' 한국 최초 참가자)의 소개로 세계 3대 레이스 중 하나인 '롤렉스-시드니 호바트 요트레이스'에 출전했다. 72년 동안 이어진 유수 깊은 대회의 첫 한국 대표 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대회는 시드니부터 약 1170km를 모터 없이 자연의 힘 만으로 운항하는 대회에요. 전 막내 선원으로 배에 올랐죠." - 관련 기사: [연합뉴스] 도전이 나를 키운다…세계 3대 요트레이스에 한국팀 첫 신고 여러 날을 배 위에서 동고동락하는 요트 대회의 특성상, 막내라고 일을 덜할 수는 없었다. 교대로 업무를 나눠 맡는 상황에서, 배테랑 팀원들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장 동문에겐 큰 자산이 됐다. "정말 많이 배웠죠. 베테랑 선장이신 노광민 교수님을 포함해 함께 항해했던 모든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 '롤렉스-시드니 호바트 요트레이스'에 출전한 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장재익 동문(가장 왼쪽) (출처: 장재익 동문) 요트, 한국서도 많이 즐길 수 있길 바라 '요트는 부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바뀌고는 있지만, 국내에서 요트는 여전히 상류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한국에 돌아온 장 동문은 국내에 요트 문화가 더 많이 퍼지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는 요트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고 싶다고.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는 아직 고민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봤던 풍경처럼 가족 단위로 요트를 즐기는, 그런 장면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장 동문. 드넓은 바다를 겪은 이의 포부는 단단했다. ▲장재익 동문은 "국내서도 요트를 즐길 기회가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3 20

[동문][꿈꾸는청춘] 색으로 인생의 빛을 밝혀라

최근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면접이나 비즈니스 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이미지 컨설턴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예슬이미지’를 운영하며 이미지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천예슬 씨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자신의 브랜드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이미지 컨설턴트 천예슬(국어국문학과 07) 동문 십인십색, 저마다 다른 색 하얀 색 테이블 위에 형형색색의 진단 천을 무지개처럼 펼쳐 놓으니 같은 듯 다른, 색상별 차이가 오묘하다. ‘푸르스름하다’와 ‘푸르죽죽하다’는 둘 다 조금 푸른색을 이르는 말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심상을 전하듯이 말이다. 망막에 맺힌 빛을 시각중추로 인식하는 게 색이라는데, 우리는 같은 색이라도 채도, 명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이미지 컨설턴트로 일하는 천예슬 씨는 사람도 이처럼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흔히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 하는데, 본래 이 말의 뜻은 사람마다 생각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의미다. 헌데 문자 그대로 십인십색, 즉 사람마다 색이 다르다고 그녀는 말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피부,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상뿐 아니라 채도, 명도, 온도 등 색의 톤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울리는 색도 다르다는 것. 이렇게 자신만의 고유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는 색을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라고 한다. 똑같은 의상을 입어도 같은 옷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사람마다 퍼스널 컬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얼굴이 환해진다고 퍼스널 컬러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색깔보다는 얼굴에 눈이 가게 하는 색,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색이 진정한 퍼스널 컬러라 할 수 있죠.”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여정 ▲ 밝거나 어두운, 혹은 선명하거나 탁한 수십 장 의 진단 천을 얼굴에 하나하나 대보며 고객에게 어울리는 색 계열, 색톤을 찾는다. 고객에게 퍼스널 컬러를 찾아주는 천예슬 씨의 사무실 내부는 온통 하얗다. 그래야 고객의 퍼스널 컬러를 찾는 일에 시각세포를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면 퍼스널 컬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의 피부색, 눈동자 색, 머리카락 색을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밝거나 어두운, 혹은 선명하거나 탁한 수십 장의 진단 천을 얼굴에 하나하나 대보며 고객에게 어울리는 색 계열, 색톤을 찾는다. 퍼스널 컬러 진단이 끝나면 어떤 색의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게 좋은지 조언해준다. 그래서 화장대 위에는 다양한 색상의 화장품들이 펼쳐져 있다. 이와 함께 얼굴 골격에 따른 메이크업과 체형에 맞는 스타일링 제안, 퍼스널 쇼퍼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기업체의 신입사원이나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현대가 이미지 시대라 하지만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이미지 컨설팅이 필요한 것일까? “이미지 컨설팅과 이미지 메이킹은 다른 개념입니다. 이미지 컨설팅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미지를 이론이나 도구를 기반으로 찾아서 구성해주는 일이죠.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알면 삶을 보다 효율적으로 영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쇼핑할 때 어떤 색의 옷을 구입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주죠.” 최근 수많은 상품의 홍수 속에서 결정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데,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다면 선택은 오히려 즐거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퍼스널 컬러의 옷이나 화장품을 이용하면 좀 더 생기 있고 건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밝은 색이 잘 어울린다는 컨설팅 결과를 듣고 34년 만에 처음으로 밝은 색 염색을 해보았다는 고객이 있었습니다. 염색 후 인상까지 밝아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단지 모발의 색을 바꿨을 뿐이지만, 이러한 작은 변화가 인생의 큰 변화를 이끌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를 이끄는 이미지의 힘 누구보다 천예슬 씨가 이미지의 위력을 경험한 장본인이다. 중학교 때 줄넘기로 10kg 이상 살을 뺀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원래 맨 뒷줄에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살을 빼고 나니 칭찬해주는 선생님이나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이 늘었어요. 자신감을 갖게 돼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창 시절을 보다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교내 합창대회에서 MC도 봤고요. 그때 겉모습으로 내면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죠.” 최근 천예슬 씨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이미지 컨설턴트가 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천예슬 씨는 이미지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컬러 이미지 컨설턴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국의 이미지 인스티튜트 등 여러 전문 과정을 수료했지만, 먼저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누군가의 이미지를 찾아주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적인 일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일이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녀 또한 항공사 승무원과 매거진의 피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을 쌓았다. 한데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천예슬 씨는 어떻게 이미지 컨설턴트의 길을 걷게 됐을까? “잡지사 일을 그만둔 후 CS강사 수업을 들었습니다. 과정 중 이미지 메이킹 수업이 있었는데 한눈에 반한 것처럼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그 후 컬러 컨설턴트, 이미지 컨설턴트 양성 과정을 수료했는데, 국내 수업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승무원 시절 모아놓았던 거금을 털어 영국의 전문기관에서 이미지 컨설턴트 과정을 밟았다. 귀국 후 지인을 중심으로 컨설팅을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개인뿐 아니라 학교, 기관, 기업체 등 그녀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면서 사무실 ‘예슬이미지’도 마련했다. 셀프 인테리어로 꾸민 이곳은 그녀의 땀과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천 동문은 "누군가의 이미지를 찾아주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적인 일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일이죠.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라 대학 시절 단과대 노래패와 밴드를 비롯해 기업의 대학생 마케터 및 홍보대사, 리포터 등 교내외 다양한 무대를 누비며 후회 없는 대학 생활을 보냈다는 천예슬 씨. 대학생이라는 말이 붙은 일은 모조리 다 해보고 싶었단다. 덕분에 동기들에게 얼굴 보기 힘들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사회에 나오기 전에 자신의 취향을 선명하게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죠.” 천예슬 씨가 이러한 조언을 하는 이유는 이미지 컨설팅을 의뢰하는 고객들도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을 브랜드로 내세워야 하는 시대,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경쟁력을 찾아 브랜드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후배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기를 더욱 권하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고 있는 천예슬 씨는 당당히 말한다. “이미지 컨설팅을 할 때는 연예인 누구처럼이 아니라, 고객 본연의 모습을 찾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본래 자신의 모습이어야 하니까요. 표정이나 태도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13 중요기사

[동문]화제의 7시간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연출하다 (1)

국내 최초로 7시간 동안 진행하는 연극이 화제다.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지난 3월 4일부터 오는 19일까지 공연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1부와 2부로 나눠 이틀 동안 3시간 30분 씩 관람해야 하는 대장정임에도 지난 주말 500석이 모두 매진됐다. 이처럼 과감한 공연의 기획자가 나진환 동문(일어일문학과 85). 한결 따스해진 햇살이 비친 지난 10일, 극장 내의 한 카페에서 나진환 동문을 만났다. 7시간 연극, 그 기획 의도는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나진환 동문이 이끄는 극단 ‘피악'(PIAC, Performing Image Art Center)이 선보이는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각색한 것. 나 동문은 이 시리즈의 앞선 작품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악령>을 선보인 바 있다. 두 작품 다 러닝 타임이 3시간 30분을 넘겼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무려 7시간이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실패가 두렵지는 않았어요. 이 작품을 마침내 무대에 올린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연출가 나진환 동문(일어일문학과 85). 극단 '피악'의 대표이자 성결대학교 교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준비 기간만 3년. 그가 공연 시간의 압박을 이기고 '7시간 연극'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 동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메시지를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의료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섰던 적이 있어요. 이후 인간 삶의 본질은 무엇일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스토예프스키 만큼 인간의 내면을 잘 분석하고 성찰한 작가는 없었고, 비로소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방탕한 아버지와 그의 이복 아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마찰을 빚는 이야기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적나라한 심리 묘사를 통해 본성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결국 화해하고 용서해서 행복하게 살자는 거예요. 다만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제시해요. 그래서 짧게 각색할 수가 없었어요."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장면. '이반'역의 지현준과 '스메르쟈코프'역의 이기돈이 서로의 본성을 드러내며 마찰 중이다. 크기가 다른 두 의자를 서로 번갈아 앉으며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출처: 나진환 동문) ‘연극 인생 살겠다’ 마음 먹기까지 나 동문은 학부 시절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연극에 입문했다. “연극이 좋았고 잘 하고 싶었어요. 공연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다음 공연을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저를 발견했죠." 4학년 때 공연한 사르트르 원작의 <무덤없는 주검>은 연극을 계속 해야겠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니까. 제게 ‘연극’은 좋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학부 졸업 후 그는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공연학 박사 과정을 지내며 자신만의 미학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다양한 연출가의 작품에 참여했고, 프랑스 극단에서 배우와 연출로 경력을 쌓기도 했다. 10년 간의 파리 생활을 통해 나 동문은 ‘씨어터 댄스'(Theater-Dance, 배우의 움직임과 무대 장치가 어우러져 만드는 메타포)라는 자신만의 미학을 창조했다. “제 무대에는 고정적인 게 없어요. 모두 계속 움직이죠.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관객의 감각을 건드리고 사유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그 덕분인지 7시간의 공연은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무대 소품인 탁자와 거울은 회전했고,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조명이 다 꺼진 상태에서 대화가 오가기도 하고, 대사 없이 춤으로만 내면을 묘사하기도 했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 역의 배우와 내면 속 악마인 '식객'이 대치 중인 장면이다. (출처: 나진환 동문) 인간의 본질을 말하는 연출가 그에게 ‘좋은 연극’에 대해 묻자 망설임 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는 연극'이라고 했다. 그것이 연극의 본질이란 말도 덧붙였다. “연출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미학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이를 위해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좌표를 끊임 없이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 동문은 앞으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작품을 계속해서 올리고자 한다. 이번 작품을 끝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라고. “연출가는 관객이 원하는 게 아닌 필요한 것을 줘야해요. 저는 관객에게 필요한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울림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하고요." ▲ 나진환 동문의 새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연극계에 새 울림을 주리란 것만은 확실하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