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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 01

[동문]`강원도의 힘` 삼척대 장태연 총장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쓰는 '강원도의 힘' "한 명의 훌륭한 소방관을 만든는 것은 서울대가 하지 못하는 일"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삼척대 장태연 총장 ⑥ 동신대 이상섭 총장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을 두고 세간의 평은 크게 엇갈린다. 일상을 가감 없이 냉철하게 그려낸 독특한 작가주의 작품으로 칭송을 받기도 하고, 이전 데뷔작의 진술을 단순 반복하는데 그친 진부한 작품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삶에 대한 냉소와 허무로 가득 찬 「반낭만주의」라는 진술은 상반된 평가의 중간 어디쯤을 차지한다. 삼척대학교 장태연 총장(토목 58학번)은 그런 면에서 홍 감독과 닮은 구석이 있다. 홍 감독이 일상에 대해 꾸밈없는 시선을 견지한다면 장 총장에게는 지역사회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이 있다. 그는 지역이 처한 척박한 현실을 애써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강원도를 굳이 「시골」이라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거나 지역사회가 가진 상처의 흔적들을 현란한 언어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냉소와 허무를 뛰어넘어 지역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것. 학문이란 사태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이전에 사태의 상처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그가 견지하는 또 하나의 연출 포인트다. 배움이 부족한 주민들을 위해 위탁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저개발 지역사회를 위한 기술인력 육성에 주력하는 등, 지역의 상처를 학문으로 치유하려는 그의 진솔한 교육철학을 들어보았다. 열린교육, 평생학습 장태연 총장은 토목공학과 58학번이다. 이후 인하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았다. 1964년 「화천실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그는 삼척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삼척공업전문대학」 그리고 「삼척산업대」를 거쳐,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삼척대의 제2대 총장으로 지난 98년 취임했다. 교편을 잡기 전 삼척군청에서 근무했던 시간까지 따지자면 30년의 세월을 강원도와 함께 한 영원한 「강원인」이다. 그래서인지 대학경영의 궤적을 설명하는 장 총장의 말 마디마디에도 지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난다. - 올해로 임기 4년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고 계십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된 일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시골 벽지의 학교에서 애로사항이 많은데 총장이 되고 나서 위탁교육 그리고 최고경영자 과정을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의 유명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초빙하고 또 그런 강사진을 모아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시작했는데 매년 150여명씩 다녀갑니다. 또한 지난 번 개교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KBS 「열린 음악회」를 주최했는데 지역이 좁다보니까 예산 확보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시에서 협조를 잘 해주고 동문들과 지역 주민들이 또한 적극 협조를 해서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의 예산이 없는데도 지역사회가 베풀어준 따뜻한 협조, 이런 것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삼척대가 지역사회로부터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른 바 '열린교육, 평생학습'을 모토로 실시하는 위탁교육은 지역사회를 위한 대학의 노력을 엿보게 합니다만. 『시골에 있으면서 이곳보다 더 오지, 즉 태백이나 정선 등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예전에 전문대학을 졸업했다든지 혹은 아예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위탁교육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이런 기회로 그 사람들은 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대학으로서는 큰 홍보 효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대다수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해 주었습니다. 비록 시골에 있는 대학이지만 지역사회에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요.』 지역사회 발전의 밑그림, '그린 프로젝트' 삼척대의 강원사랑은 비단 주민들의 학구열을 채워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그린 프로젝트'로 명명된 삼척대의 특성화 정책은 강원도의 저개발 혹은 훼손된 환경 복원을 통해 지역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매우 구체적인 노력으로 꼽힌다. 산불과 휴폐광, 시멘트 광산 등으로 파괴된 자연환경을 복원하면서 2차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한편, 체험관광을 활성화하는 환경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활성화된 산학협동 과정과 함께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삼척대의 노력을 잘 대변하는 사업들이다. - 삼척대에서 추진 중인 '그린 프로젝트'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많습니다. 사업 추진의 배경이나 주요 성과들이 궁금합니다. 『삼척대가 처음에는 주로 토목, 광산학에서 시작해서 성장, 발전을 해왔습니다. 주로 이 지역에서는 산업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려다 보니까 주로 공과계열 학과들이 많이 발전했지요. 지금도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과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작년의 경우 산불이 많이 나서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당시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불을 진화시키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이러한 지역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서울 유수의 대학처럼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수험인력을 기르지 않고 지역의 실정에 맞는 기술인력을 양성해서 환경기술인으로서 취직을 잘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누가 소방관이 되려고 서울대를 가겠습니까?』 - 같은 맥락입니다만 삼척대의 산학협동전략은 특히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외에 삼척대의 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전국에서 우리 학교가 등록금이 가장 쌉니다. 한 학기에 100만원 정도 합니다. 사립대학 같은 경우는 300만원에 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100만원 미만으로 저렴한 등록금에다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취직도 잘 되고 해서 시골에 있으면서도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학협동의 성과에도 물론 자부심이 있지요. 본교의 자연공학과, 토목과 그리고 환경공학과 소속의 교수님들이 쌍용이나 동양시멘트 등 인근 기업의 기술자문을 하는데 많은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이 발전을 하려면 기업들이 먼저 성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연구, 개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학협동에 대한 삼척대의 각별한 노력은 지난 해 있었던 강원도내 산학연 컨소시엄 사업 지원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강원도와 강원지방중소기업청이 산학연 공동기술개발 컨소시엄 사업에 선정된 도내 9개 대학을 평가한 결과, 삼척대가 규모 면에서 월등히 앞선 여타 대학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행정기관과 지역사회가 삼척대에 대해 갖는 기대를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재직교수의 출신 대학도 '한양'이 최다 장 총장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한양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1년 전인 1958년이다. 충북대 신방웅 총장과는 2년의 터울이 있는 선후배 사이가 된다. 모교에 대한 감회를 묻자 장 총장은 「돌산」에 대한 회고로 말문을 시작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 이야기를 좀 많이 거슬러 보겠습니다. 총장님께서 대학을 다니던 50년대 말, 60년대 초는 한양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모교의 발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때는 모교가 참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지요. 우리가 들어갔을 때만해도 아직 종합대학 승격 전인 한양공과대학이었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발전을 많이 해서 뿌듯한 마음이 있지요. 저희 삼척대의 교수님들도 학부 출신을 따지자면 한양대가 가장 많아요. 저희가 공과계열 학과가 많다보니까 그런 점도 있지요. 제가 강원도 교육위원을 두 번 역임하고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해서 최종 경선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영동지역의 인구가 좀 작다보니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그러한 선거의 과정에서도 보니까 어디를 가도 한양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부디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 총장은 급격한 발전상에 뿌듯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한양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의 소임을 다할 것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대학이 어떻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되묻는 그다. 삼척대가 연출하는 '강원도의 힘', 그 진솔한 학문의 꿈에 다섯 개의 별을 드린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 동신대학교 이상섭 총장은 지병 관계로 인터뷰 및 보도가 연기되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 편집자주 학력 및 경력 1958 강릉상고 졸업 1963 한양대 토목공학 학사 1982 인하대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 1990 인하대 대학원 토목공학 박사 1964 화천공업고등학교 교사 1966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전임강사 1979 삼척공업전문대학 교수 1991 삼척산업대학교 교수 1991 강원도교육위원회 위원 1995 강원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 1995 강원도교육위원회 부의장 1998 삼척대학교 총장

2002-05 29

[동문]실용학풍의 전당 호원대 강희성 총장

전원에 건설하는 실용학풍의 전당 "2010년, 전북 최고의 사립명문으로 도약하겠다"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동신대 이상섭 총장 ⑥ 삼척대 장태연 총장 전북 군산 인근에 위치한 호원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세 번은 놀라게 된다. 국도를 타고 야트막한 언덕을 넘을 때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전원 캠퍼스의 아름다움에 처음 놀라고, 막상 교정에 들어서면 본관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5년 전 지금의 옥구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강의와 연구시설 건립을 최우선으로 추진했던 탓이다.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모든 환경이 구비된 후에 본관이 완공될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이 무척 인상적이다. 중앙도서관 건물의 1층 화장실 옆, 구석의 공간을 빌어 위치한 총장실에서 비서팀장이 귀띔한다. 『총장님을 처음 뵙는 많은 분들이 곧잘 놀라시곤 합니다.』 앞 뒤 설명 없는 말의 의중을 헤아리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와 대뜸 악수를 청하는 신사가 있다. 40의 나이를 갓 넘겼을까 싶은 젊은 인상과 세련된 외모의 그가 환한 미소로 자리를 권한다. 호원대 강희성 총장(경제 75학번)이다. 「서해안 시대」 주도할 젊은 지성의 전당 강희성 총장은 경제학과 75학번이다. 젊은 인상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유려한 언변이 그의 연륜에 대한 「오해」를 종종 낳지만 굳이 나이를 따지자면 40대 후반인 셈이다. 강 총장은 학부를 마친 이후 미국 뉴욕의 Pace University에서 MBA를, 다시 모교인 한양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호원대의 전신인 전북산업대에서 교직을 시작한 이래 사무처장과 기획실장을 거쳐 지난 해 제 4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해안 개발의 붐을 타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이 요구되는 지역정서와 대학의 요구가 그의 젊음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 호원대는 25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성장이 돋보입니다. 새롭게 도래한「서해안 시대」라는 지정학적 발전 가능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만. 『1978년에 군산공업전문학교로 개교한 이래 지금의 호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급속히 성장한 대학이라 자부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학부나 전공들이 실용적 학문으로 구성되어 실생활이나 산업계의 요구에 직결되어 있었고, 이는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에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과 새만금간척사업의 재개, 군산자유무역지대 지정 등으로 인해 환황해권 중심도시로서 군산시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에 가득 찬 이러한 활력을 바탕으로 젊은 우리 대학도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질문일 듯 싶습니다. 지난 해, 취임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소명」을 강조하셨습니다. 산학협력 혹은 지역 연계사업의 구체적 모습들이 궁금합니다. 『제가 총장에 취임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소명을 강조한 것도 앞서 말한 군산시의 발전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호원테크노경영원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산업체와의 지속적인 산학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내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와 함께 각종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그렇고 지역사회 정보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근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전산교육과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지요. 재학생들의 사회봉사 학점제는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헌신임과 동시에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얻지 못하는 중요한 체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도 매우 우수합니다. 실제로 본교의 학생들이 사회봉사분야에 있어 도지사 표창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각종 협력과 실용주의 전략은 호원대의 가장 큰 원칙입니다.』 취업률 100%, 실용학풍이 경쟁력이다 호원대는 백화점식 커리큘럼을 갖춘 종합대학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용학풍에 기초한 특성화 전략을 고집한다. 젊은 총장의 리더십이 지닌 활력을 증명하듯이 그는 서구에서 체험한 독특한 합리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호원대는 호원대만의 전략이 유효하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 세분화된 전공과정과 대폭 강화된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언제든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준비된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 호원대의 커리큘럼을 이른바 '맞춤교육'이라고 평가한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이론과 실무의 적정 배율을 어느 정도로 고려하고 계십니까? 『물론 지방 중소대학이 나름의 특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만 본교의 교육은 산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전문직업엘리트」를 양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론교육 이상으로 실습, 실험과 같은 실무교육에 타 대학보다 월등히 많은 투자와 시간이 들어갑니다. 모든 전공에서 최소 30% 이상, 많게는 50%까지 실무교육과목을 개설하도록 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수진도 전임교수 외에 산업계의 임원급을 겸임교수로 대폭 채용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 특화된 교육과정의 내용만큼이나 그 성과도 궁금합니다. 최근 호원대의 취업현황은 어떻습니까? 『일개 특정학과를 선별해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학과가 고루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취업률을 중심으로 본다면 컴퓨터 학부, 관광학부, 유아교육과, 사회체육학과 그리고 산업디자인학과 등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100%의 취업률입니다. 학생들이 각 전공별로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동시에 전자상거래나 e-비즈니스와 같이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주요 학문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창업실무 및 전공심화학습과정」을 3,4학년을 대상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했던 것이 더욱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 총장은 호원대의 실용학풍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곳으로 관광학부를 꼽는다. 강의의 내용과 방식을 호텔 및 여행업계 대표, 관련 공무원들이 포함된 산학협력위원회서 구성하고 현장에 투입해 즉시 활용 가능한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또한 특급호텔의 지배인, 여행사 간부 등이 겸임교수로 출강하여 현장실무를 교육한다. 외국어 역시 이러한 커리큘럼에서 빠지지 않는다. 토익과 토플 등 단순한 어학점수 취득에서 탈피하여 영어, 중국어, 일어 등 다국적 회화능력 향상에 중점을 둔 강의가 진행된다. 강의로도 부족하여 관광학부 내에서만 매년 20여명의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떠날 만큼 실용회화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성적표로 대변되는 이른바 '죽은 지식'은 호원대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내 집 같은 학교, 「첨단 주거형 캠퍼스」 도심에서 떨어져 호젓한 전원에 위치한 캠퍼스의 교육환경은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나지막한 산세를 등에 엎고 자리한 교정의 맑은 공기와 쾌적한 자연환경은 학생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강의실이다. 교내에 조성된 호수와 산책로는 신축된 건물들과 함께 하나의 리조트를 방불케 한다. 인터뷰에 이어 강 총장이 직접 캠퍼스를 안내하며 소개한 기숙사와 학생식당 그리고 샤워장과 헬스시설에 이르기까지 교내 곳곳에 갖추어진 각종 복지시설도 수준 급이다. - 캠퍼스 구성 자체가 매우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이전하면서 특히 역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습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대학은 5년 전에 새로 이사를 온 캠퍼스입니다. 대학을 이전하면서 건설비용은 더 들었지만 캠퍼스를 가장 아늑하고 편리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지역 출신의 학생들도 많지만 서울, 경기를 비롯해서 수도권 출신의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집에서 다니는 것처럼 학교를 「첨단 주거형 캠퍼스」의 개념에 부합되도록 조성하고자 했지요. 그 동안의 노력 덕택에 모든 방문객과 학부모님들이 캠퍼스에 대해 매우 좋은 평가를 주고 계십니다.』 강 총장은 지난 97년 캠퍼스 이전 직후 호원대가 추진한 첫 번째 사업은 대학을 「종합생활문화공간」으로 육성하여 우수한 교육여건과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호원대는 교육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호원비전 2010」이라는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다. 2010년께는 전북 최고의 사립명문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는다. 강 총장이 일축한「작지만 강한 대학」은 호원대를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정의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1975 대광고등학교 졸업 1979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6 미국 New York Pace Univ., MBA 1996 한양대학교 경제학박사 1988-99 전북산업대 사무처장·기획실장 1996 전북산업대 특임대우교수 1998 호원대 부교수 1999 호원대 부총장 2001-현 호원대 총장

2002-05 22

[동문]`공익 우선하는 삶, 평생을 떳떳하게 사는 길`

공익 우선하는 삶, 평생을 떳떳하게 사는 길 "돈 많이 벌고 싶으면 공직생활 피해가라" "젊은 사무관부터 청와대까지 사고가 굳어져 있다. 정부의 관료체계가 군(軍) 관료체계와 똑같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무원 인사와 인사제도의 개혁을 위하여 국민의 정부 들어 처음 신설된 중앙인사위원회 김광웅 초대 위원장의 이임사 한 대목이다. '공무원 조직의 상상력과 창의력 실종'을 개탄한 그의 이임사는 공직자들이 듣기에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만 하다. "공직 인사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혈액의 흐름을 막는 혈전(血栓)처럼 끼어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성과마저도 한순간에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임해종 동문(법학과 81년졸)을 만나러가는 날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공무원 정원을 6백여명 늘리는 것을 의결했다. 언론에서는 대번 국민의 정부가 약속한 '작은 정부'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비판했다. 중앙인사위원장의 이임사도 그렇고, 공무원 증원 계획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생각하니 '작지만 효율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신설된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개혁업무에 주력하고 있는 임 동문을 만나러가는 길은 이래저래 심난했다. 공공부문 개혁은 행정 효율이 핵심 정부개혁실에 들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40대 중반의 푸근한 인상의 사나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정부개혁실 행정1팀장 임해종 동문이었다. 임 동문은 평소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딱딱하고, 고압적이며 엘리트적인 '관료'의 인상보다는 퇴근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에 더 가까웠다. IMF 구제금융의 부담을 떠 안고 출범한 현 정부가 노동과 금융, 기업 그리고 공공부문의 4대 개혁을 천명한지 4년이 넘었다. 그 작업의 성과를 결산하는 시점에서 공공부문의 개혁이 가장 부진하다는 비판이 언론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계속적으로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임 동문은 공공부문 개혁의 범위를 좀더 명확히 해야함을 역설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을 일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정부개혁이라 함은 자체 정비와 일하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민들은 조직관리에 한정하지 않고 의료, 사법, 정치, 부패 등의 문제와 같이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크게 보면 정부 공공개혁 범주에 들어가지만 솔직히 기획예산처 소관이 못됩니다. 정치개혁은 정치인, 사법개혁은 법원이나 검찰이 해야하고 교육, 의료개혁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하는 일이지요." 임 동문은 국가경영에 대한 평가기관인 스위스의 IMD(Institution of Management Development)가 우리나라의 국가경영 수준을 97년의 세계 30위에서 27위로, 행정효율은 38위에서 25위로 올렸다면서 이는 대대적 개혁의 성과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비판에 마냥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임 동문은 "좀 억울하기 하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다"라고 실토한다. 비록 거대한 정부에서 세부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크게 봐서 '국민'의 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공의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멸사봉공' 정신으로 쉴 새 없이 내달린 20년 임 동문은 법대 77학번으로 민주당 최고위원인 추미애 동문과는 동기동창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들이 많았지만 그는 행정고시를 선택해 3학년때 1차, 4학년때 2차에 합격해 81년 총무처 수습행정관으로 처음 공직에 몸담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재직 중에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90년대 경제분야의 주요한 이슈였던 부동산, 선물거래제도, 준조세제도 등 우리 나라 경제기획의 주요 사안은 모두 임 동문의 손길이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습'딱지를 떼고 '엘리트' 공무원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경제기획원을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묻자 임 동문은 '왠지 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타 부서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의욕으로 작용했을까. 임 동문은 그의 20여년 공직생활을 다른 것을 별로 생각할 겨를 없이 '쉴 새 없이 달려왔다'라고 표현한다. 재정경제원과 기획예산위원회를 거쳐 현재의 기획예산처에 이르기까지 각종 재정관련정책과 제도개선, 재정운영 계획수립과 집행관리 그리고 공공부문의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에 관한 사무를 책임지는 업무는 일하는 보람도 많겠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법이다. "인원이 250명 정도로 공무원 수로 보면 아주 적은데 할 일은 아주 많은 조직이 기획예산처입니다. 야근도 많고 예산이라는 게 국회 승인이 나야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힘든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정부개혁실도 '떡 하나 더 주기 보다는 더 많이 먹는다고 뺏는 일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겉보기와는 달리 화려하지도 않고, 별로 환영받는 조직도 아닙니다. 일을 처리할 때 불편부당하지 않도록 조절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어떤 위치까지 왔냐구요? 아직 졸병이죠 뭐" 임 동문이 생각하는 공직 생활은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압축된다. 모든 일에 대한 판단 기준을 공익성에 두다 보면 가장 보람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은 공직생활이 절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부자체 개혁의 일환으로 학자금 무상 지원을 폐지하고 퇴직금도 줄었습니다. 월급도 초봉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크게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일하는 것도 공공성을 앞세우다 보니 효율성보다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많이 따지게 되죠. 10년 정도 공직에서 일하다 보면 민간 부문 종사자와는 일에 접근하는 방법이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어떤 일을 해서 자기 조직에 얼마나 많은 이익이 들어오느냐 보다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때문에 평생 떳떳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도 있지요. 능력을 발휘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삶, 공직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뚜렷한 공직관을 지닌 젊은 관료에게 인생관이랄까 뭐 거창하지는 않지만 인생철학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임 동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선 할 이야기 없는 사람인데요. 이건 생략합시다. 자식에게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라는 이야기를 못하는데요 뭘. 그런 거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생활 20년이면 이제 중고참이다. 고시를 통하지 않은 공무원들이라면 평생동안 근무해도 오르기 힘든 4급 서기관이다. 하지만 임 동문은 스스로를 여전히 '졸병'이라고 말한다. 정권말기가 가까워오면서 벌써부터 '복지부동'이니 '줄서기'니 하는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재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지금, '공무원 조직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만난 임 동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충실한 '공복(公僕)'의 모습 그것이었다. '졸병' 서기관 임해종 동문의 정부개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임해종 동문은 누구? 임해종 동문은 77년 본교 법학과에 입학해 80년 24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87년부터 94년까지 경제기획원(행정사무관), 94년부터 96년까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서기관)에서 근무했다. 이후 충남도청 경제협력관, 재정경제부 경제홍보기획단 국내홍보과장,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를 거쳐 지난 2001년부터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재직하고 있다. 재정1팀장을 거쳐 현재 행정1팀장을 맡고 있는 임 동문은 92년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표창(93년)을 수상한바 있다.

2002-05 15

[동문]21세기 신인재 기른다 안동대 권영건 총장

"훌륭한 전통과 도전적 창조정신 있으면 '위기'는 없다"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동신대 이상섭 총장 ⑥ 삼척대 장태연 총장 경북 안동은 예로부터 '조선인재(朝鮮人才) 반다영남(半多嶺南), 영남인재(嶺南人才) 반다안동(半多安東)'이라 할 정도로 명현거유(名賢巨儒)가 많이 배출된 선비의 고장이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 안동이 배출한 시대의 석학과 그 제자들을 모두 열거하자면 조선 유학의 학문적 계보, 그 자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된다. 이러한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대학교는 경북 남부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으로서 지식인 양성과 지역 개발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온 학문의 전당이라 자임한다. 전통에 기인한 것인가. 속세에 팽배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신열을 극복한 것은 비단 퇴계만이 아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고향, 안동에 내려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보니까 생리적으로 맞질 않아요. 그래서 수단으로서 택했던 학문을 천직으로 삼아 지금까지 왔습니다.』안동대학교 제3대 총장 권영건 동문(정외 64학번)의 말이다. 국내 유일무이한 국학의 전당 [인터뷰 동영상보기] 권영건 총장은 정외과 64학번이다. 이후 연세대와 고려대를 거쳐 다시 모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1983년 안동대 행정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에서 묵묵히 학자의 길만을 걸어온 이른바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그렇다고 그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전통적 가치만으로 동시대 학문적 요구와 시대적 수요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 안동은 조선유학과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학문의 고장입니다. 민속학과 한문학 등 안동대의 특화된 분야가 이를 반증합니다만. 『물론 지역·문화적으로 유교문화의 오랜 전통을 가진 고장이기 때문에 한국학, 동양철학, 한문학, 민속학 분야 등 국학이 발전했습니다. 특히 민속학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학과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70%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합니다. 이런 주민들의 경제적 입장을 생각해서 농학계열을 특성화했고 4년 전부터 국책대학으로 인정받아 매년 60억 정도를 지원 받고 있지요.』 - 너무도 당연한 까닭에 세계화, 정보화에 대한 요구가 벌써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만 전통을 계승하는 것 외에도 대학에 대해 현재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는 보다 다양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학이나 농학만이 안동대의 경쟁력은 아닙니다. BK21 사업에 본교 기계공학부가 참여해서 지난해 평가에서 전국 4위를 차지했습니다. 기계공학분야에도 저희 대학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앞으로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서 환경분야나 한의학 등 다양한 부분을 특성화시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화,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이 있는데 뭐 한국학 쪽의 고유분야는 당연히 특성화해야 하지만 중소도시에 있는 대학으로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정보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이 생존력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선비'는 지금 비즈니스 중 그는 전통과 창조의 관계에 내재한 역동성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이른바 선비의 표상이던 권 총장이 국내 교육계 내에서 최고의 '비즈니스 총장'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설을 잘 반증한다. 안동대가 최근 3백 20억원의 국고지원 예산을 확보해 전국 국립대 최대 규모의 기숙사 신축과 제2도서관, 국제관 등 대규모 교육시설 확충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권 총장의 적극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기인한 성과라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권 총장이 지원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김덕중 전 교육부총리를 만나 '시골 출신 학생들에게 더욱 최고의 대우를 해 주고 싶다'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던 일은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일화다. 한정된 국고 예산으로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 지방 국립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점잖던 '선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 지방 국립대가 지닌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이 예산의 문제라는데 공통된 인식이 있습니다. 안동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재정문제는 이른바 다다익선이라고 하는데 지역이 중소도시이고 주민들의 경제적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저희대학은 발전기금을 모으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대학 자체가 수익사업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자체 사업으로 재정을 확충할 방법이 없습니다. 등록금도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한해서 마음대로 올릴 수 없지만 장학금은 전교생의 40% 이상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립대학이니까 정부에서 세웠으니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정부 관계 부처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현재 안동대가 건설 중인 12층 규모의 제 2기숙사는 골조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건물 내외부를 모두 대리석 자재로 마감하고 각 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따로 갖춘 호텔급 기숙사가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학생들의 기숙사치고 너무 사치스런 면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권 총장의 답변이 명쾌하다. 교수들을 위한 시설을 이토록 화려하게 한다는 것은 비난의 여지가 있지만 학생들을 위한 시설을 최고로 만들겠다는데 무슨 논란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더욱이 안동대 소속 학생의 대부분이 농촌 출신임을 감안할 때 '농부의 자녀'들에게 도회보다 훌륭한 최고의 시설을 제공하고 싶다는 그의 취지를 듣고 나면 대개가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5개 대학 통합한 '대구경북국립대학교' 추진 21세기의 '선비'는 한학은 물론 양학과 컴퓨터에도 조예가 깊어야 하는 것인가? 안동대의 영어 관련 커리큘럼과 컴퓨터 교육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권 총장의 각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 국학의 중심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안동대는 해외 인턴쉽 제도를 비롯한 국제화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어는 학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입니다. 본교에는 현재 19명의 외국인 교수가 있습니다. 전교생이 3년 동안 영어회화, 토플, 토익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수업도 1년 과정의 필수로 지정되어 있어서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안동대 학생이라면 영어와 컴퓨터에 있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것으로 자부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학생들의 해외 경험을 유도하기 위해 3년째 해외 인턴쉽 사원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기업에서 6개월 혹은 1년간 일을 하고 돌아와 학점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작년도에 일본의 자스넷 회사와 제휴하여 19명의 학생들을 그곳에 취업시킨 성과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4, 50명까지 확대할 생각입니다.』 지방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안동대의 노력은 비단 커리큘럼과 학사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안동대는 상주대, 금오공대, 경북대, 대구교대 등 대구·경북 지역의 5개 대학을 통합한 종합 국립대학 건설을 주도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러한 사업의 배경에는 국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 운영에 있어서도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갖춰야 한다는 권 총장의 생각이 깔려있다. 지방 국립대간 유사학과 통합과 시설 및 학제간 교류를 극대화하여 예산의 중복 지출을 막고 연구와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 대구·경북국립대학(TKNU) 건설 사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방대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의 위스컨신 주립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모델을 가지고 대학간 통합 기획안을 교육부에 제출했습니다. 대구·경북지역의 5개 대학간에 교수와 학생, 직원간의 교류 및 공동연구 그리고 도서관 등 학교 제반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유사학과의 통폐합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년도까지 사업 기반을 조성하고 2005년까지는 기반 강화, 2010년도에 교명을 '대구경북국립대학교'로 통합하면서 캠퍼스는 5개로 나누어지는 모델입니다. 지금은 사업의 성공여부를 확신할 수 없지만 관건은 5개 대학 구성원들의 의지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여하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전국의 국립대학이 나아가야 할 확실한 지표라는 생각입니다.』 21세기적 선비정신은 '사랑의 실천'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도로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뜻을 접고 후학 양성의 길을 택한 권 총장에게 시국에 대한 세평을 물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을 후진적인 정치인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날카로운 일침이 곧장 되돌아온다. 이 시대에 필요한 '선비정신'이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한양대학교의 교시가 사랑의 실천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학교를 다닐 때나 젊어서 이 교훈을 깊이 음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씩 살면서 나이도 들고, 경륜이 쌓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야 이 말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한양인의 도덕적 기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도덕적 기반이자 가치 있는 규범으로 생활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68 한양대 정치외교학과(학사) 1973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무행정(행정학석사) 1977 고려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교육학석사) 1986 한양대 대학원 정치학과(정치학박사) 1974-83 가톨릭상지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1983-91 안동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부교수 1986-88 미국 애쉬랜드대 교환교수 1991-99 안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995.1-95.12 한국정치학회 이사 1995-96 안동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현) 학교법인 경일학원 이사장 (현) 안동대학교 총장

2002-05 08

[동문]우리 문화 보급의 첨병 박형식 정동극장장

공익성ㆍ수익성 조화로 극장 내실 다져 "예술가이자 경영자인 삶도 조화시키고파" '최근 일요일을 맞아 서울 정동극장을 가족과 함께 찾았다. 매표소 입구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입장객들에게 정성을 쏟는 직원들에게서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산조 합주를 비롯해 부채춤, 사물놀이와 관현악 연주, 판굿 등 우리의 전통예술에 흠뻑 취했다. 한글과 영어·일어 자막서비스는 물론 출연자와 신명나는 뒤풀이 한마당과 출연자와의 기념촬영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상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는지 외국인들이 성황을 이루어 보기에 흐뭇했다. 왜 이런 곳을 진작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모 일간지 여론면에 실린 독자투고글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객석 4백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인 정동극장의 진면목을 알기에 이 글에서 빼고 더할 것이 없다. '고객편의주의'를 표방하는 극장의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와 전통예술공연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극장장의 경영철학이 관객의 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익성과 공익성을 조화시키는 게 경영목표 기자가 찾은 지난 4일에도 극장 내 쌈지마당에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아이와 함께 아동극〈강아지똥〉을 관람하러온 주부들은 물론 이제 막 회사를 마친 직장인 그리고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찾아간 극장장실은 채 5평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한해 15억의 공연 수입을 올리는 '작지만 큰 극장' 정동극장의 경영전략과 공연기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형식 동문(성악 78년졸)이 지난 2000년 3월 신임 극장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문화계에서는 기대반 호기심반의 시선을 보낸바 있다. 95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연간 9천만원에 불과하던 극장 수입을 5년만에 17억원으로 끌어올려 '스타 극장장 시대'를 연 홍사종(현 숙명여대 문화관광과 교수) 전임 극장장이 워낙 매스컴의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취임 당시 박 동문은 "전임 극장장이 너무 잘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조금씩 변화와 새로운 색깔을 더해나가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바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박 동문은 과거의 부담감을 얼마나 떨쳐버렸을지 궁금했다. "극장이 수익성을 너무 따지면 공익성이 약해지고 또 공익성을 강조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최근 저희 극장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만 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극장이니만큼 공익성도 잘 살려나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과 공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저의 경영목표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동극장은 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체제로 문을 열었다가 97년 국가가 운영비를 일부만 지원하는 민간위탁방식으로 전환한 문광부 산하 공공법인이다. 박 동문은 정부가 좋은 위치에 극장을 지어 운영하도록 한 것은 공익성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익만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사무실을 지어 임대료를 받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그는 좋은 볼거리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어루만져줌과 동시에 좋은 배우와 작품을 발굴,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확대된 전통예술공연, 외국 관광객에게 인기 비록 전임자의 성과이긴 하지만 정동극장은 민간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독특한 경영기법과 마케팅 전략으로 우리 극장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유리도 없이 훤하게 트인 곳에서 표를 살 수 있도록 한 열린 매표소, 주부와 가족 관람객을 배려한 어린이 탁아소, 관객들이 공연을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마련한 화랑 등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타 극장들이 쉽게 도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직장 여성을 위해 모포를 나눠주고 음악을 감상하게 한 낮잠상품과 겨울철 야외 공연시 군밤을 나눠준다거나 1천원짜리 커피를 제공하는 등의 '깜짝 이벤트'는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곳에 가면 뭔가 즐거운 것이 있다'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다 양질의 공연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되돌려줘야한다는 것이 박 동문의 생각이다. 이러한 박 동문의 생각은 전통예술공연의 확대를 통해 엿볼 수 있고 앞으로 운영할 문화센터를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99년까지 주 2회 운영해왔던 전통예술공연을 2000년 4월부터는 주 6회로 늘렸습니다. 이 상설국악공연에는 지금까지 3만명 이상이 관람했는데 전체 관람객의 80% 가량이 외국인이에요.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후 8시 극장앞에는 어김없이 관광버스가 서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자부합니다. 러시아의 볼쇼이극장과 같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극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문화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문화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매우 힘든게 사실이다. 특히 주5일제 근무제가 도입되어 여가시간이 크게 늘어나면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 또한 증가하기 마련이다. 물론 각 구청마다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각종 사설 문화센터가 속속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예술기관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한다는 것이 박 동문의 지론이다. 악기도 배워보고, 직접 연기를 해보는 등의 체험을 통해 길러진 문화적 소양이 결국 연극, 공연관람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극장측으로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음악은 나의 운명 …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극장의 경영자이기 이전에 박 동문은 성악가이다. '명태'라는 노래로 유명한 바리톤 오현명 전 음대 교수로부터 사사받은 그는 20여년간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약했고, 많지는 않지만 홀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악가의 길이 아닌 '예술경영'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왠만한 음대생이라면 다 간다는 외국 유학을 마흔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녀온 박 동문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나오지 말았어야 좋았을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 성악가로 살수는 없습니다. 무대, 조명, 음향 등을 성악과 출신이 하지 못하란 법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실력이 있건 없건간에 유학도 가고, 그것에만 매달립니다. 예술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성악가 출신이 이런 극장을 맡으면 부정적으로 보았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해 문의도 하고,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니까요."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꼭 노래를 불렀다는 점, 학창시절 음악선생님이 꼭 수업시간에 독창을 주문했다는 점을 회고해볼 때 음악을 하라는 운명을 타고났던 것 같다는 박형식 동문. 매 시기에 요구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고, 임기가 끝나면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일을 즐겁게 해 나갈 뿐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그는 앞으로도 돋보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존재, 화려하기보다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전임 극장장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동극장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박형식 동문 학력 및 약력 바리톤 박형식 동문은 지난 78년 본교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합창단에 입단해 수석단원, 기획실장, 단장을 역임했다. 86년에는 단국대학교 대학원 성악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89년 중앙대 예술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95년부터 97년까지 이탈리아 리노로타 음악원에서 지휘와 성악을 공부했다. 국립오페라단 '원효대사', '세빌리아의 이발사, 김자경오페라단의 '카르멘' 등 다수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했으며 두차례의 독창회를 열었다. 서울시장 표창과 중구문화예술상(2001년)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5 01
2002-04 22
2002-04 15

[동문]국제현상설계대회 2위 입상한 전경환 동문

'정보와 생활의 중첩' 주제로 베를린 인포럼 빌딩 설계 "건축물에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하는 건축가 되겠다" 흰 도면의 설계는 지상의 빌딩을 꿈꾼다. 건물은 사무실, 상가, 주택 등으로 건축되어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된다. 도면 위의 건축가는 지상 위에서 사람들의 공간을 나누고, 형성하고, 재구성한다. 건축분야에서 컴퓨터 활용에 관한 정보교류와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ACADIA(Association For Computer Aided Design In Architecture) 주최로 지난 해 11월 28일에 열린 '국제 현상설계대회(International Design Competition)'에서 건축디자인대학원 전경환(3기) 군이 2위에 입상했다. 총 150작품이 출품되어 경합을 벌인 이번 대회에서 입상한 전경환 동문을 만나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수상소감은 국제 대회에 출품한 것은 처음이다. 지도를 맡으신 노승범 교수님도 외국인들의 실력도 알아볼 겸 배우는 자세로 임하라고 조언해주셨고 나의 생각도 같았다. 똑같은 부지에서 똑같은 용도의 건물을 놓고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공부하는 자세로 출품하였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국제 현상설계대회는 어떤 대회인가 설계할 건물의 부지는 옛 베를린 장벽이 있는 곳으로 각종 대사관, 금융권 건물이 있는 의미가 깊은 장소였다. 작업은 미국 대사관 자리에 베를린 인포럼 빌딩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보통 도면에 설계하고 그것을 모형으로 만드는 대신, 이 대회에는 홈페이지로 모형을 제출해야 했다. 따라서 그래픽 등에 능숙해야 하고, 팀이 아닌 개인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참가자들도 교차심사를 통해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다른 팀의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출품한 작품의 특징은 어떤 것이었나 '정보'를 주축으로 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부각시켰다. 정보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공유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벽을 유리로 하고 천장도 역시 유리면적을 넓게 하여 투명성을 강조했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볼 때 내부 공간 내에서의 생활을 알 수 있다. 건물 안에서도 스크린 월(Screen Wall)을 통해 겹겹이 싸인 정보망을 표현했으며, 그러한 구조 속에 사람들의 행위는 중간에서 이루어진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정보의 중첩, 생활의 중첩, 시각적인 중첩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은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작품기간의 1/3은 밤을 새면서 고생했다. 그만큼 고된 작업이다. 특히 우리나라 건축계는 다소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면 그 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반화된 것보다는 늘 새로운 것을 뒤쫓고 싶다. 일본의 센다이 미디어센터는 벽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깨면서 직선의 기둥을 그물처럼 형성시켰다. 들어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느낌이 새롭다. 나의 건축은 실용미를 가지면서 같은 기둥과 벽이라도 구조적으로 새로운 해석,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정신을 갖고 싶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또다른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전 군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서 외롭게 도면을 비추던 스탠드 불빛이 환해 보였다. 젊은 건축가의 꿈을 비추기 때문일까. 이승연 학생기자 skyzoa@ihanyang.ac.kr

2002-03 15

[동문]KBS 뉴스9 앵커 홍기섭 동문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뉴스광장'에 이어 '9시뉴스' 전격 발탁 KBS 뉴스9 앵커 홍기섭 (경제학과 80) 매일 저녁 전국 250만대의 텔레비전 세트에 그가 등장하고 1천만명의 시청자가 그를 바라본다. 방송시간만을 따지자면 할 말은 더욱 많다. '핑클'이 방송에 출연하여 50여 차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재방영을 포함하여 주 4회 출연하는 방송시간을 모두 합한 것만큼 그도 방송을 탄다. 비록 팬레터는 없어도 4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오랜 시간 공중파에 실려 있는 사람. KBS 9시 뉴스 앵커 홍기섭(경제 80) 동문이다. 뉴스에 재방송은 없다 "9시 뉴스가 가장 긴 뉴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아침 6시에 방송되는 뉴스광장이 실제로는 가장 긴 뉴스죠. 1시간 45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뉴스라고 할 수 있죠. 거의 3년의 시간동안 새벽 뉴스를 진행하다 갑자기 저녁 뉴스로 오니, 사실 지금도 적응이 잘 안돼요. 간판뉴스가 주는 정신적인 중압감도 있고 어깨가 무겁습니다." '뉴스광장'을 진행하던 홍기섭 동문이 '뉴스9' 앵커로 전격 발탁된 것은 지난 3월 5일. 2년 10개월 동안 진행해온 아침 6시 뉴스에서 갑자기 프라임타임으로 방송을 옮기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의 반나절을 거슬러 살아야 하는 점도 그렇고 9시 뉴스만이 지닌 부담도 여간하지 않다. 보도국 앵커룸에서 만난 홍 동문은 그야말로 '시차적응'에 대한 고충으로 말문을 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다가 갑자기 일상이 바뀌니 힘든 부분이 없지 않죠. 지금도 새벽 5시나 6시쯤 되면 저절로 잠이 깨지만 좀더 자야한다는 생각으로 8시까지 선잠을 잡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고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냅니다. 빨리 새로운 스케줄에 적응해야겠죠. 앵커는 몸 관리와 시간 관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방송인 중에서도 앵커의 생활은 정확한 시간 준수를 생명으로 한다. 2시쯤 회사에 출근해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회의가 끝나는 3시 20분부터 부서별 뉴스를 파악한 뒤 기사를 검토한다. 4시 30분에 목욕을 한 뒤 5시 30분부터 당일의 뉴스와 관련된 기타 변동사항을 확인하고 주요 석간 신문을 검토한다. 6시 30분이 되면 또다시 확인해야 할 가판 조간신문이 도착한다. 앵커는 24시간 뉴스에 접속하고 있어야 한다. 기타 신문과 방송 등, 모든 뉴스채널을 놓치지 않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촉각을 세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송 한 두시간 전에 몰려드는 40여건의 기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핵심을 짚어내지 못한다. 7시 30분부터는 원고 작성 및 분장. 출근 전에 면도를 했다가도 이 시간쯤 되면 다시 면도를 한다.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분장을 마치고 최종 원고를 검토하며 초조함을 달래다보면 어느새 '큐사인'이다. 9시 뉴스, 전통의 신뢰 지키고파 '앵커'라는 말은 1952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원래 육상의 '릴레이 주자'를 의미하던 이 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의 시사프로 '60분(60Minutes)'의 프로듀서를 지냈던 휴이트가 미국 정당들의 전당대회를 취재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일반 아나운서와는 다르게 보다 전문적인 '뉴스 진행자'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뉴스의 전달이라는 것이 단순히 '팩트(fact)'를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1989년 '타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는 '뉴스 선택에 있어 앵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답하고 있었다. 같은 뉴스라도 앵커에 따라 수용자의 신뢰도와 이해력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제가 지향하는 앵커는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속도감을 유지하고,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 신뢰감을 주는 것입니다. 기자로서 10년이 넘는 기간의 현장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사태를 단순히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간파해내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죠. 1시간 45분의 아침 뉴스를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익힌 순발력이 큰 도움이 됩니다." 12년 간 사회부와 정치부, 경제부를 넘나들며 각종 특종상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던 홍 동문은 '뉴스광장'이야말로 앵커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시험하는 프로라고 말한다. 짧은 새벽의 시간에 당일의 모든 이슈를 종합하고 2시간에 가까운 방송에 들어가자면 어지간한 순발력과 아니고서야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 동문이 9시 뉴스에 발탁된 배경에는 이러한 경력과 검증된 자질이 있다. 새벽 6시에 방송되는 '뉴스광장'이 다소 저조했던 시청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며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앵커로서 홍 동문 활약이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일관된 설명이다. "9시 뉴스는 KBS의 대표 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간판뉴스라고 생각합니다. 시청률만 따지더라도 3개 공중파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으니까요. 지금 가장 어려운 점은 시청자들이 9시 뉴스에 보내준 신뢰의 전통과 앵커에 대해 갖고 있는 일종의 기대감을 잘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부담에 있습니다. 오직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양인, 2개 공중파 프라임뉴스를 점령하다 홍 동문의 9시 뉴스 발탁으로 한양은 3개 공중파 중 2개 방송의 메인 뉴스 앵커를 배출한 명실공히 '앵커학교'가 됐다. 현재 SBS 8시 뉴스를 맡고 있는 이영춘 앵커는 경제학과 79학번이다(2001년 8월 보도분 참조). 굳이 학번을 따지자면 80학번인 홍 동문 역시 경제학과로 이영춘 앵커와는 1년 터울의 선후배간이다. 이 외에도 작고한 이득열 전 문화방송 사장은 한양이 자부심을 가졌던 전설적인 앵커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각하고 언론계의 문은 더욱 좁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언론사는 오히려 학벌이나 지역, 출신 등에서 자유로운 곳입니다. 모교에서 언론계 입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은 지극히 평범한 조언으로 들릴지라도 부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개인의 실력과 역량일 뿐입니다. 한양이 가지 못할 곳, 여러분이 오르지 못할 산은 이제 없습니다." 최근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 그리고 NBC의 톰 브로커 등 앵커들이 수백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미국의 방송시장을 거론하며 국내 방송계가 고급 전문인력인 앵커에 대한 처우와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이 유달리 강조되듯이 방송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해외 시장과는 구별되는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다는 홍 동문의 각오가 '책임'과 '봉사'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촌음을 다투는 긴장과 격무 속에도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사람들은 '공인'이라 부른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1960년생 1980년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7년 KBS 입사,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기자 1998년 대통령 표창 수상 1999년 '뉴스광장' 앵커 1999년 KBS 앵커상 수상 2002년 '뉴스9' 앵커

2002-02 22

[동문][인터뷰] 주목받는 신인 소프라노 현명희 동문

각 대학 우수 음대생 출연한 신인음악회서 호연 "신이 주신 목소리로 닫혀있는 마음 열고 싶어요" 현명희 (음대 성악과) 지난 24일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제2회 국민일보 신인음악회'가 열렸다. 이 음악회는 각 대학의 음대 학장 추천으로 뽑힌 우수 음대생들이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음악가로의 가능성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이 음악회에 출연한 소프라노 현명희(음대 성악과 2002년졸) 양은 다수의 입상경력을 갖춘 이제 막 졸업한 신인 성악가로 공연 전부터 '가장 가능성 있는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그녀는 이 음악회에서 오페라 아리아 '줄리엣의 왈츠'와 한국 가곡 '별과 새에게'를 화려한 음성으로 소화해내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졸업하고 나서 하는 음악회라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흐뭇한 느낌이네요."라고 소감을 밝히는 현양은 감회가 새로운 표정이다. 그녀는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악바리'였다. 스승과 친구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 등 인복이 많은 편이라는 현양은 특히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부족한 저에게 장학금을 주며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어딜 가서나 한양대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요. 정문을 지나 언덕을 오를 때가 늘 정겨웠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본교 성악과는 국내 최고"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녀는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초등학교 시절, 현양은 피아노를 전공으로 했었지만 교회 성가대를 하면서 노래에 대한 애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부모님을 설득하여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한 노래는 그녀 삶에 있어서 충만한 에너지, 그 자체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그녀의 실력은 가속도가 붙었다. 고3 시절, 세종대가 주최한 대회에서 대상을 타기 시작해 지난해 중앙일보 콩쿠르, 한·미 콩쿠르, 마산 MBC 콩쿠르 등에서 각각 입상했으며 지난 2000년 음대 40주년 기념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기도 했다. 성악을 "작디작은 성대가 울려서 나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현양은 "내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들었을 때, 노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꼈어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아직 음악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과정에 있으며 그저 모방하는 수준이라며 겸손해하는 현양은 오는 3월 중순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가서 성악을 정통으로 배울 계획이다. 아직은 막막하고 두렵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 "한계가 느껴질 때, 나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요. 좌절만 하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니까요." 한계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그녀는 오히려 과거를 돌아보며 발전된 자신을 찾게 된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위안해요. 자신을 아껴주는 것이 최고의 자신감을 가져다줍니다."라고 밝게 웃는 현양의 낙천적인 성격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존경하는 성악가로 조수미씨와 신영옥씨를 꼽는다. 조수미씨의 예술가로의 끼와 신영옥씨의 겸손함을 닮고 싶다는 현양은 "신이 주신 선물로 사람들의 닫혀있는 마음을 열고 싶다."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성악가는 되는 것도 좋지만 노래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그녀의 말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노래 잘하는 성악가도 되고 싶지만 음악을 아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바램은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긴 여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