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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16

[교수][시선집중] 연구자의 길은 자신만의 나무를 가꾸는 여정

제5회 백남석학상을 수상한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연구 주제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촉진수송 분리막과 고체상 염료감응 태양전지 개발이라는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 정년 앞두고 뜻 깊은 백남석학상 수상 “그동안 함께 고생한 학생들 덕분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양대학교에 재직한 지 12년이 됐는데, 길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지난 5월 15일 열린 개교기념식에서 제5회 백남석학상을 수상한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의 수상 소감이다. 백남석학상은 한양학원 설립자인 백남 김연준 박사의 건학 정신을 기리고자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교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강용수 교수는 이러한 큰 상의 공을 주저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돌리며 개인적인 감회를 덧붙였다. 그가 지난 2005년 20여 년간 몸담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한양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강단에 서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과학자는 새로운 현상을 접했을 때 이를 어떻게 응용할까 고민하는 유형과 원리를 탐구하는 유형으로 나뉘는데, 저는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학자 타입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죠. 강의하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서슴지 않고 학생들이 삶의 원동력이라고까지 말하는 강용수 교수는 천생 타고난 학자임에 틀림없다. 촉진수송현상의 수학적 모델 수립 강용수 교수가 백남석학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고체상에서의 촉진수송현상’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분리막 및 태양전지에 응용한 공로 덕분이다. 촉진수송현상은 운반체라는 물질을 이용해 분리하고자 하는 두 물질 간의 이동속도 차이를 야기하는 것으로, 강 교수는 이 개념을 화학물질을 분리하는 분리막에 적용했다. 즉 고체상에서의 촉진수송현상과 운반체로 고분자 전해질 소재를 이용해 에틸렌, 프로필렌과 같은 올레핀 기체를 선택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촉진수송 분리막을 제조한 것이다. 촉진수송 분리막을 이용하면 분리막에 특정 물질에만 반응하는 운반체를 넣어 간단하게 화합물을 분리할 수 있다. 따라서 끓이고 식히고 또 끓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야 하는 기존의 저온증류법과 비교하면 매우 효율적이다. 공정을 단축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순도의 원료를 얻을 수 있으니 석유화학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관련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강용수 교수는 1996년 촉진수송현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처음으로 수립해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1998년에는 혁신성을 높이 평가받아 대규모 연구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에 선정돼 2005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촉진수송 분리막 연구단을 이끌었다. 이는 강용수 교수의 30년 연구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원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시기로, 우리 기술과 우리 소재를 이용해 촉진수송 분리막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촉진수송 분리막에 대한 이해와 성능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연구팀보다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현재 상업화를 위한 연구가 세계 최초로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실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태양전지 개발에 응용 촉진수송현상은 석유화학 공정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강용수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신재생 에너지에 접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분리막에 사용한 고분자 전해질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니 소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사회적 관심이 높은 분야에 적용할 수 없을까 고심하게 됐습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공학자다운 고민 끝에 강용수 교수는 고분자 전해질을 응용해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그 후 태양전지에 대한 연구가 성황을 이루면서 한때 그는 태양전지 전문가로 불리기도 했다.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태양전지 기술 중 하나입니다. 식물의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광합성하는 원리를 응용했는데, 태양 빛을 받아 전자를 생성하는 특별한 염료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합니다.” 이는 기존 반도체를 이용한 태양전지보다 제조단가가 낮은 데다 가볍고 투명한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다양한 색과 형태로 만들 수 있어 건물 유리에 알록달록한 색상을 가미하면 디자인 감각까지 높일 수 있고, 각종 휴대용 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 및 내구성이 떨어져 이를 보완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강용수 교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이공학분야(ERC)’에 선정돼 차세대 염료감응 태양전지기술센터의 센터장을 역임했다. ERC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덕분에 학교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염료감응 태양전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연구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연구 지원을 받아 30년 동안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 저는 연구자로서 운이 아주 좋았던 편입니다. 꾸준히 연구를 지속한 덕분에 전문성과 자신감을 갖게 됐으니까요. 그 결과 새로운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개성’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연구를 이어온 강용수 교수는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만의 개성이라고 말한다. “남의 나무의 가지를 더 크게 하는 일보다는 비록 나약할지라도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에게 개성은 독자성과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라 해도 우선은 전문성을 탄탄히 다진 후에 열린 마음으로 협업하고 융합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울러 30년간 한 가지 주제에만 매진한 연구자로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동안 촉진수송현상을 연구해왔지만 제가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많이 묻고 배우고 있습니다.” 앎을 확신하는 사람은 의심하거나 성찰하지 않는다. 이는 연구자가 지양해야 하는 태도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하지 않는가. 강용수 교수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30년 연구 인생에서 터득한 소중한 지혜를 공으로 얻게 된다. 더불어 그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지식을 탄탄히 갖춰야 응용력을 키울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적응력도 키울 수 있고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그동안의 연구가 기술이전으로 결실을 맺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현재 상용화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지만 내년까지 완성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 기술이 실용화되면 정말 신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저만의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했다고 자부합니다.” 평생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개의 연구 나무를 겸허한 자세로 가꾸어온 강용수 교수. 한 분야에 깊이 심취해온 그의 연구 인생에 경애의 마음을 보낸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5 23 중요기사

[교수]개교 78주년, 백남석학상의 주인공을 만나다

한양대 78주년 개교기념식이 지난 5월 15일 백남음악관에서 열렸다. 우리대학은 매년 개교기념일에 고(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뜻을 기리며 ‘백남석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본 상은 일생을 교육 사업에 전념한 김연준 박사의 정신을 잇는다는 점에서 한양의 ‘학술적 가치’를 대표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아 강용수 교수(에너지공학과)가 백남석학상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개성 있는 연구를 추구하다 수상 소감을 묻는 말에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강용수 교수는 “연구실에 훌륭한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고 그동안 일을 워낙 잘해줘서 12년 동안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번 수상은 개인적으로 매우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늘 독창적으로 연구 문제에 접근하려는 습관이 현재의 강용수 교수를 만들었다. 우리대학으로 오기 전, KIST 연구원으로 재직한 그는 첫 프로젝트로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를 분리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분리막 개념을 적용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분리막 기술’의 시작이었다. ▲백남석학상 수상자인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오른쪽)가 김종량 학교법인 한양학원 이사장과 15일 한양대 78주년 개교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한양대학교) 강 교수 연구의 근간이 되는 것은 ‘고체상에서의 촉진수송 현상’이다. 분리막을 구성하는 혼합물 중 특정 성분과 반응을 할 수 있는 운반체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들의 가역반응으로 인해 물질 전달이 추가로 일어나 물질 전달이 촉진되는 현상을 ‘촉진 수송’이라 한다. 강 교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의 목적으로 촉진수행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는 각각 ‘분리막 기술’과 ‘태양전지 기술’ 분야의 응용 연구로 이어졌다. 먼저 강용수 교수는 촉진수송을 이용한 올레핀 분리막을 개발해 분리막 기술의 새로운 학문 분야를 열었다. 올레핀 물질은 수요가 많은 기본 화합물로, 에틸렌/에탄 혹은 프로필렌/프로판 혼합물로부터 저온 증류법으로 생산된다. “공장을 따라 늘어선 긴 굴뚝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굴뚝 안에서 저온 증류법 과정이 이뤄지는 거죠.” 강 교수는 “이러한 저온 증류공정은 에너지 수요가 크다”며 “간단한 분리막 공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고체상 촉진수송 현상을 성공적으로 분리막 개발에 적용했다. 더불어 올레핀 분리막의 성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현재는 촉진수송 분리막을 상업화 및 실용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용수 교수와 지난 18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강 교수는 과거를 회상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꺼냈다.. 어려운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나아가 강용수 교수의 연구 인생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매 순간이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양대로 옮겨올 때의 순간은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는 KIST 재직 시절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을 통해 10년간 예산을 지원받아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대학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연구비가 단절됐고 재정적 어려움이 닥친다. 이때 값진 은혜를 입은 인물이 당시 삼성의 나노 전문가로 있던 김종민 교수(현 케임브리지대학)다. 김종민 교수는 강 교수가 맡고 있던 연구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흔쾌히 1억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했다. “몇 번 만나본 것이 전부였던 사이지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이 연구비를 통해 우리대학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가능했죠.”. 위기를 넘긴 강 교수는 우리대학에서 ‘염료감응 태양전지 분야’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유기 태양전지의 일종인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모방해 개발한 기술이다. 에너지 변환효율이 비교적 높을 뿐만 아니라 제조 단가가 낮은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에너지 변환효율이 낮아 실용화엔 어려움이 있었다. 강용수 교수는 촉진수송 개념을 고체 전해질에 적용해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내구성과 에너지 변환효율을 동시에 향상하면서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실용화에 필요한 원천기술(Oligomer approach)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연구를 통틀어 SCI 등재지 32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고 50건 이상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그이다. ▲염료감응 태양전지 연구 과정에서 강용수 교수가 같은 팀 연구원과 논의를 하고 있다. 강용수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이라는 말이 있다. ‘백척 높이의 흔들리는 장대 위에서 한 발 더 내디디면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뜻이다. “95%의 연구가 진행됐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막힐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을 뛰어넘어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끈기를 가지고 연구를 이끌어온 강 교수. 그의 설명에서 의연함이 묻어났다. 강용수 교수는 뛰어난 연구 업적 외에도 우리대학에서 지난 12년 동안 교육자로서 다양한 공헌을 이어왔다. 화학공학과 교수로 시작해 현재는 에너지공학과에 재직 중인 그는 학부과정에서 '에너지 소재' 및 '기능성 고분자' 등 새로운 교과목 개발했다. 2015년 11월에 수상한 '베스트 티처(Best Teacher)' 상은 강 교수에게 뜻깊은 순간이었다. “Best Teacher 상을 받은 것이 제일 큰 자부심입니다. 학생들의 평가를 토대로 받은 상이기 때문에 학생이 준 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죠.” ▲연구면 연구, 교육이면 교육. 강용수 교수는 두 분야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교수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마지막 꿈 이뤄내길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헌신한 강용수 교수는 어느새 다음해 8월로 정년으로 앞두고 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 목표는 '분리막 기술' 연구의 상업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다. “상업화까지 가까이 왔는데 쉽지 않네요. 종종 ‘정년까지 이뤄내기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로선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보고 싶습니다.” 강 교수는 “정년 후에는 전문성을 살려 재능기부를 하고 살면 좋을 것 같다”며 “현재는 어떤 기회가 있을지 탐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저는 축구를 좋아해요. 축구를 할 때, 11명이 선수로 뛰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죠. 선수들은 본인에 역할에 맞는 적절한 위치에 들어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팀으로서 융합할 수 있습니다.” 강 교수는 전문성을 키우고 협력하는 생활을 강조했다. 나아가, 개성을 가지고 공부할 것을 당부했다.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자기 특성을 파악하고 유지하다 보면 좋은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취업에 얽매여 불안해하지 말고 공부를 재미있게 했으면 좋습니다.” 글, 사진/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2017-05 11

[교수][시선 집중] 땀구멍 지도 우연한 발견에서 길어 올린 과학적 성취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 분석법’을 개발한 김종만 교수가 우수한 연구 실적을 인정받아 ‘2017 한양대학교 학술상’의 영광을 안았다. 김종만 교수는 2014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과 2015년 ‘삼성고분자학술상’을 받은 바 있지만, 이번 학술상은 한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게 돼 더욱 특별하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화학공학과 김종만 교수 땀구멍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땀구멍 지도(sweet pore map)’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땀구멍 지도란 손가락 끝의 땀샘에서 나오는 수분을 감지해 이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아무리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라도 각자 다른 지문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문과 같이 땀구멍 패턴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사람마다 땀구멍의 위치, 크기, 모양이 다 다릅니다. 40여 개의 땀구멍만 있으면 신원을 밝힐 수 있지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우리는 이미 주민등록증을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출입문 등의 각종 지문인식시스템을 통해 신원을 증명하고 있다. 범죄 현장에서도 지문은 범인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김 교수는 왜 땀구멍 지도를 활용해 새로운 지문 분석법을 개발한 것일까. “지난 100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융선(지문 곡선)을 이용한 지문 분석법은 지문의 많은 부분이 찍혀 있어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즉 대량의 잠재 지문이 필요합니다. 또한 종이, 지폐와 같은 다공성(내부 또는 표면에 작은 빈틈을 많이 가진 상태) 고체 표면에는 융선이 아니라 점 모양으로 많이 남기 때문에 융선 패턴과 대조하기 어렵습니다.”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 분석법은 일부의 지문이나 다공성 고체 표면에 찍힌 지문으로도 신원을 파악할 수 있어 융선을 이용한 지문 분석법의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다. 우연이 선물한 ‘유레카’ 우리의 손가락 끝에 있는 땀구멍에서는 피부를 촉촉이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소량의 땀(수분)이 배출된다. 수변색(hydrochromic, 수분과 반응해 물질이 지니고 있는 색이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 공액(다중 결합이 단결합을 사이에 하나 끼워 존재하고 상호 작용을 나타내는 것) 고분자인 ‘폴리다이아세틸렌(Polydiacetylene, PDA)’은 수분을 감지하면 청색에서 적색으로 바뀌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손가락 끝을 폴리다이아세틸렌 필름에 날인하면 미량의 수분을 감지해 적색의 땀구멍 패턴을 얻을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김종만 교수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이 수분 접촉에 의해 색이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온도, 압력, 유기용매에 의해 색이 변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수분에도 감응 한다는 사실은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어느 날 저희 연구팀의 한 연구원이 폴리다이아세틸렌에 입김을 불었더니 색이 바뀌더군요. 입김 속의 수분에 감응한 것이지요.” 알렉산더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생성된 푸른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탄생시켰듯이, 김 교수는 사소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연구자의 예리한 통찰을 발휘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혹시 손가락 끝의 땀에도 감응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실험을 진행했더니 붉은색으로 변하더군요. 이를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땀구멍 패턴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땀구멍 패턴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정밀한 검증 작업이 필요했다. 고해상도 스캐너를 이용해 인체에서 땀구멍을 추출한 뒤, 별도의 이미지 매칭 프로그램을 개발해 폴리다이아세틸렌으로 얻은 이미지를 대조한 결과, 이 둘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의 땀구멍 지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후 김 교수가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면 잠재 지문의 땀구멍과 대조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발급 시 융선과 함께 땀구멍 데이터를 구축하면 향후 범죄 수사나 신원 파악 시 효율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융선과 달리 위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화장품 회사에서도 관심이 높은데 활성 땀구멍과 비활성 땀구멍의 분포를 파악, 여름철에 땀을 억제해주는 데오드란트 제품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다한증을 비롯한 땀 분비 관련 질환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지문 분석법은 2014년 4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려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같은 해 5월에는 과학 전문 주간지인 <네이처 (Nature)>의 연구 하이라이트(research highlight)에도 게재됐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10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로 선정됐다. ▲ 땀구멍 패턴들. 왼쪽부터 융선 지문 패턴, 잠재 지문, 패턴 매칭, 종이 위에 찍힌 실제 지문. 운명의 고분자 ‘폴리다이아세틸렌’ 김종만 교수가 이끌고 있는 유기나노소재연구실은 주로 외부의 화학적, 물리적 자극에 감응해 색이 변하는 센서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센서는 질병의 조기 진단, 환경 오염 물질 검출, 식품의 안전성 테스트, 생화학 테러 물질 검출 및 위조 방지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주 소재로, 지문 분석 외에도 가짜 휘발유 감별, 위조 방지 센서 등을 개발했다. 현재는 나노 튜브 구조의 센서 및 신호 증폭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3D 센서를 개발 중이다. 김 교수가 이렇게 폴리다이아세틸렌에 심취하게 된 것도 벌써 20년이 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절, 한 세미나에서 외부 자극에 색이 변하는 고분자 소재를 알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폴리다이아세틸렌이었다. 기존의 센서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가의 분석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폴리다이아세틸렌은 육안으로도 청색이 적색으로 변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단번에 매료됐다. 그렇게 김 교수 연구 인생의 운명적 파트너라 할 수 있는 폴리아다이아세틸렌과 조우한 후 ‘왜 색이 변하는 것일까?’, ‘다시 본래의 색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등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연구 초기에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의 분자 설계법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짜 휘발유 식별 등 실용적인 주제 로 확대했습니다.” 공과대학 교수로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공액 고분자를 이용한 가짜 휘발유 식별 센서칩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등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한 센서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김 교수는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돼야 고등학교 시절부터 벤젠의 고리 구조에 흥미를 가졌다는 김종만 교수. 실제 김 교수 연구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육각형 모양의 벤젠 고리가 한가득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가 꿈에서 발견했다는 벤젠의 독특한 분자 구조가 한 고등학생을 화학의 세계로 안내한 것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테크니션이 되지 말고 사이언티스트가 돼라’고 강조하는 김 교수는 과학자에게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엉뚱한 아이디어도 좋으니 생각을 많이 하고, 인문학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김종만 교수의 다음 연구 목표는 무엇일까.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해 폐암 진단 센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폐암 환자의 날숨에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일종인 톨루인이 정상인보다 세 배나 많이 검출되는데, 이를 센서로 인식하면 폐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습니다.”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은 조기에 자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간단하게 조기 진단할 수 있다면 완치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한 그의 연구 영역은 이렇게 점점 깊고도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사이언티스트 김종만 교수의 연구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4 20

[교수][사랑, 36.5°C] 기부는 삶의 아름다운 소명입니다

삶을 어느 정도 살아왔다면,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욕심보다는 남은 삶에 대한 아름다운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기부만큼 “웰 에이징”의 본뜻을 의미 있게 실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을 가꾸어 가는 일이 생의 큰 화두라는 신정식 명예교수, 정년퇴임 이후 이제는 기부자로서 한양과 함께 하고 있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Q 퇴임하신 이후 지금까지 1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기부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2002년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양과 함께 하였습니다. 한양에서 보낸 수많은 계절들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회계학교수로서 이론과 실무를 연계한 다수의 논문을 써 우리나라 회계제도의 글로벌화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주로 공인회계사제도를 강조하는 기조에서 학생들을 교육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의 한양대 경영대학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다고 봅니다. 후반 16년은 대학본부의 행정에 참여하여 격동기의 대학경영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기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젊은 날 한양에 쏟았던 애정이, 나이가 들면서 한양의 발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무로 다가왔습니다. ▲ 신정식 경영학부 명예교수 Q 기부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했을 텐데요, 가족들은 선뜻 동의하셨나요? 가족들과 먼저 상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일단 실행하고 나중에 가족들에게 얘기를 하는 편인데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내는 누군가를 돕는 일에 저보다 더 열성적입니다. 지금도 노인복지관 등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공연 봉사 활동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봉사나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한양대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하시는 다른 기부나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제가 공인회계사이기 때문에 협동주택공동체나 종친회 등 비영리 단체의 회계감사를 무료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 권유로 시작했는데 제가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금전적 기부와는 또 다른 보람을 줍니다. 비영리 단체의 경우 대부분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저처럼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런 면에서 기부의 또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부를 하시는 데 있어 교수님만의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섬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말을 믿습니다. 큰 금액을 쾌척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물론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소액 기부자의 수를 늘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기부문화의 중심이 된다면, 아마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활성화 될 것입니다. 우리대학은 동문 수 대비 기부 인원이 아직 많지 않은데, 동문들이 소액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캠페인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기부금 조성전문팀을 대학기구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운영 하는 것도 하나의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또한 기부를 받는 기관의 기부금회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도 참여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Q 교수님의 기부금이 한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기업은 짧은 기간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대학은 하루아침에 위상을 높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대학을 한 단계씩 도약시켜야 합니다. 지속적인 투자 즉, 선진연구시설과 유능한 교수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설립자이신 故 김연준 박사님은 철저하게 검약하시며 사랑을 실천하셨던 분입니다. 오직 한양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셨죠. 설립자님의 뜻이 실현되는 데에 저의 작은 기부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정식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나눔을 실천하면 우리사회의 품격이 성숙해지고 우리가정이 따뜻해지고 개인의 위상이 더 높아집니다. 기부를 통해 세상에 온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말한다. Q 기부를 망설이는 다른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를 하는 데에 금액의 크기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액수가 크든 적든 기부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심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 시작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심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실천하시기를 권합니다. 나눔을 실천하면 우리사회의 품격이 성숙해지고 우리가정이 따뜻해지고 개인의 위상이 더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주는 삶의 변화를 경험해 보실수 있습니다. 날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세상에 온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글로벌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그 바탕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들의 작은 결심과 실천이 그 기부문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3 21

[교수][시선집중] 암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열정 바친 20년 연구 인생

한양대학교 생명공학과 윤채옥 교수가 암 유전자 치료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6년. 그 후로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윤 교수는 온전히 유전자 치료 연구에만 몰두했다. 지난해에는 그러한 노고를 기념하듯 국제암세포유전자치료학회의 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윤 교수의 연구 인생 20주년을 더욱 뜻 깊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인류의 염원, 암 정복 지난해 조선일보가 선정한 ‘2016 올해의 책’ 중에서 전문 선정위원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책은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었다. 폴 칼라니티라는 신경정신과 의사가 쓴 이 책은 출간 4개월 만에 10만 부가량 판매되며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라는 담담하지만 강렬한 프롤로그의 도입부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에는 10년이라는 혹독한 수련의 기간을 끝낼 무렵 암 선고로 삶의 정점을 잃은 한 젊은 의사의 마지막 회고가 담겨 있다.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이룰 수 있는 전문의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암 환자의 안타까운 투병기는 우리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비단 책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암은 기대수명 80세를 넘어 100세, 120세를 바라보는 현대인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친조부모, 외조부모 등 주변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암 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윤채옥 교수. 그 또한 가까운 가족들을 암으로 잃으며 암 유전자 치료제 연구에 열정을 쏟게 됐다. ▲ 윤채옥 교수(생명공학과) 국내 최초 국제암세포유전자치료학회 심포지엄 개최 지난해 11월 한양대학교에서는 국제암세포유전자치료학회(ISCGT)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들만이 활동할 수 있는 국제암세포유전자치료학회는 신규 회원의 입회가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윤채옥 교수는 연구 성과 및 논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6년 국내 최초로 학회 일원이 됐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건만 윤 교수는 여전히 국내 유일의 학회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 심포지엄의 책임자까지 맡았다. “매년 각 국가별 회원들이 돌아가며 심포지엄을 열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개최됐는데, 한국에서는 처음 주최하는 것이었죠. 혼자 행사를 준비해야 돼 부담이 컸지만, 다행히 행사 3일 동안 700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기대 이상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심포지엄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최근 의약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분야의 최신 연구 동향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영국 유전자치료학회장 레너드 시모어(Leonard W. Seymour), 독일 병리학 학회장 만프레드 디텔(Manfred Dietel), 유럽 의료공학 학회장 네기 하빕(Nagy Habib), 싱가포르 국립 암센터 원장 켐 휘(Kam M Hui) 등 세계적인 대가들과 바이오 신약 산업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암젠 제약회사의 안젤라 엄(Angela Yum)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이들을 연사로 섭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국내외 19개 제약회사들의 지원도 이끌어냈다. “세포 치료제와 유전자 치료제의 활발한 연구 및 제품 상용화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기존 심포지엄에서는 학계 중심의 기초연구 발표가 주를 이뤘는데, 이번에는 임상시험 중이거나 제품화된 사례 발표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국제 심포지엄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전 세계에 한양대학교의 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한다? 현재 윤채옥 교수는 생명공학과의 유전자치료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유전자 치료란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거나 특정 유전자를 환자의 세포 안에 넣어 질병을 치료, 예방하는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유전자치료연구실의 주요 연구 분야는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살상할 수 있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해 종양 살상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에이즈, 에볼라 등 질병을 발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러스로 암을 치료한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 교수는 이러한 반응에 익숙한 듯 바이러스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 윤 교수의 연구실에서도 지난해 정부 과제로 선정된 췌장암 유전자 치료제와 유효성 검증을 마치고 독성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폐암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다. “바이러스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4만여 종에 이르는 바이러스 중 인체에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는 상당히 제한적이며, 그중에서도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해한 것들이 많죠.” 그렇다면 유전자 치료에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몸은 여러 층위의 방어 체계를 이루고 있어 외부에서 무언가를 유입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증식을 위해 세포 내에 잘 침투하는 성질을 갖고 있죠. 이러한 성질을 역이용해 바이러스를 유전자 치료의 핵심 기술인 유전자 운반체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바이러스에 유전자 치료제를 실어 세포에 주입한다는 말이다. 특히 윤 교수는 암세포만 골라 사멸시키는 아데노바이러스를 개발해 정상 세포가 피해받는 것을 줄였다. 아데노바이러스는 바이러스가 감염시킨 숙주 세포의 유전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안전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구토, 탈모 같은 항암 치료제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암세포 특이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해 암 전이도 막을 수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각종 암 치료를 위해 종양 특이적 살상 아데노바이러스를 이용한 전임상 및 임상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윤 교수의 연구실에서도 지난해 정부 과제로 선정된 췌장암 유전자 치료제와 유효성 검증을 마치고 독성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폐암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암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외길 인생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윤채옥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유전자 치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전자 치료는 단순히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발병 원인을 근원적으로 밝혀 치료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윤 교수는 유전자 치료 연구에 단숨에 매료됐다. 이후 지금까지 오로지 유전자 치료 연구라는 외길만 걸어왔다. “제가 특별히 지조가 굳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전자 치료 연구에만 매달려도 연구할 것이 너무 많아 다른 분야에 눈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유전자 치료 방법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치료에 세포 치료제나 나노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는 등 타 분야와의 융합도 적극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 틈틈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논문을 읽고 있다는 윤 교수. “학생들에게도 논리적이며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T자형 인재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공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동시에 타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전공 분야에만 매몰되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니까요.” ▲ 윤 교수는 "전공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동시에 타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전공 분야에만 매몰되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유전자 치료 분야는 암뿐 아니라 유전병, 심혈관 질환, 파킨슨병, 정신 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어 촉망받는 연구 분야다. 하지만 단지 괄목할 만한 연구로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상용화 과정을 거쳐 실제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 “제 연구가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길 바랍니다.” 차세대 신약 개발로 인류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윤채옥 교수의 연구는 그래서 더 많은 기대를 모은다. 윤 교수의 연구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은 암 정복이라는 인류의 염원을 앞당기는 희망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12

[교수]입양아의 머리 속엔 모국어가 남아 있다?

영∙유아기에 해외로 입양 된 한국인이 성인이 됐을 때, 그들에겐 모국어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수행인문학연구소 최지연 박사후연구원(음성과학·심리언어연구실)에 따르면 입양후 모국어를 수십 년간 사용하지 않은 사람도 그 기억이 있어 모국어 학습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번 논문 <성인이 된 한국 입양인의 한국어 말소리에 대한 기억>으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끈 최지연 연구원을 만났다. 어린 시절 언어 습득, 성인기에도 영향 미쳐 최지연 연구원은 이번 논문을 통해 기존 학계의 통념을 뒤집었다. 기존 심리언어학에서는 생후 6-12개월 사이에 음소(언어의 음성 체계에서 단어의 의미를 구별 짓는 최소의 소리 단위) 지식이 쌓인다고 봤다. 이번 논문은 생후 3-70개월 사이에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국인을 대상으로 했고, 이를 통해 생후 6개월 이전에도 음소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모국어에 대한 학습은 태어나기 3개월 전인 뱃속에서부터 시작돼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청각 체계도 잡히고, 나라별로 중요한 음소체계를 구별하기 시작하죠." 이번 연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만의 특수한 '음소 체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어 자음에는 평음(ㄷ), 경음(ㄸ), 격음(ㅌ)이라는 '3언 대립'이 있다. 그러나 영어나 네덜란드어 등 대부분의 언어는 'B'와 'P'를 구분하는 정도의 '2언 대립'이 주를 이룬다.?최지연 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위해 29명의 실험집단(네덜란드로 입양된 한국인)과 29명의 통제집단(보통의 네덜란드인)에 한국어를 학습하게 하고, 이들이 3언 대립을 얼마나 잘 구별하고 발화하는지를 측정했다. 10일간의 훈련 후 나타난 결과는 놀라웠다. 같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입양인의 학습 능력이 보통 네덜란드인보다 더 뛰어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실험 집단의 평균 입양 시기가 생후 17개월이었는데, 입양 시기와 학습 능력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생후 6개월 이전에도 음소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며, 그 지식을 수십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더라도 성인이 됐을 때 모국어 학습에 도움을 준단 점을 입증했다. ▲ 최지연 연구원은 "한국어가 가진 '3언 대립'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언어학에서는 한국어가 다양한 실험에 쓰인다고 했다. 더 높은 신뢰도 확보를 위한 노력 최 연구원이 이번 논문을 쓴 계기는 무엇일까. "기존의 연구에서 보완할 부분을 찾는 과정에서 이 주제를 발견했어요. 언어 습득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한국인 입양인이라면 실험 과정에서 경계심을 풀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입양인 표본을 수집하고, 그들이 사는 곳까지 찾아가 실험을 진행한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실험 진행 과정에서 네덜란드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연구소의 도움을 받았고, 귀국 후 결과값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대학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처럼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최 연구원은 실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배제했다. 예를 들어 ‘입양인들이 어린 시절 접한 2개 국어에 대한 경험이 언어 학습 능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문을 예상,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실험을 진행했다. 다른 언어를 통한 실험에서는 별다른 학습 능력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 입양인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도 고려했다. 때문에 통제집단은 실험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배우자나 형제∙자매 등을 선택했다.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이 연구에 참여한 동기를 묻는 질문에서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보다 ‘과학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답변이 컸다. 이런 부분도 이번 연구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 최지연 연구원은 "앞으로 입양아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한국 영유아의 언어 습득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를 믿고 연구에 전념해야 인터뷰를 마치며 ‘바람직한 연구자의 자세’를 묻는 질문에 최 연구원은 ‘일희일비’ 하지 않기를 강조했다. 연구가 잘 풀리는 날도, 안 풀리는 날도 있지만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위해서는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이번 논문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버텼기에 가능한 말이다. 최 연구원은 조태홍 교수(영어영문학과)에게 큰 감사를 표하며, 실험에 참가한 재학생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 최지연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녹음된 음성 언어를 분석하고 있는 모습. 네덜란드에서 기차를 타고 장비를 운반할 만큼 연구 열정이 대단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2 20 중요기사

[교수]문학을 보는 또 다른 눈

“문학평론가란 독자의 위치에서 문학을 읽되 작가와 나란히 서기도 하는 역할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국어국문학과)의 말이다. 우리는 평소 비평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접하지만, 정작 '평론가의 일'은 잘 알지 못한다. 평론가는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작품에 접근하고 글을 쓸까. 유성호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 비평’에 대해 들었다. 독자와 작가, 그 사이 어딘가의 평론가 유성호 교수는 어려서부터 쓰고 읽는 일을 좋아했던 천상 문학도다. 1999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대학교수가 되고 난 뒤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다들 그 늦은 나이에 왜 했냐고 의아해했지만, 신춘문예 당선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문학 비평을 쓴 것은 1992년 대학 강사로 강단에 섰을 무렵부터다. 유 교수는 이후 10권이 넘는 비평서를 집필하며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적인 평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엔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으로 ‘제26회 팔봉비평문학상’ 외 2개의 상을 받았다. 이 현대시조 비평집은 시조의 탈격이나 변격이 빈번한 요즘, 본래의 격식을 지키는 시조 미학을 다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유 교수가 생각하는 ‘훌륭한 비평’이란 무엇일까. 비평은 작품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누군가는 비평을 할 때는 작품의 좋은 점 보단 부족한 점을 중점적으로 말하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와 반대로 생각해요. 비평은 작품과의 따뜻한 협업입니다.” 작품을 읽고 그에 담긴 의미를 온당하게 밝혀내는 것이 비평의 핵심이다. 작품론이든 작가론이든, 비평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 지난 2월 16일 사회교육원장실에서 유성호 교수(국어국문학과)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많이 읽은 사람만이 잘 쓸 수 있다 비평가의 기본 소양을 물었더니 유 교수는 ‘다독(多讀)’과 ‘뛰어난 문장력’을 꼽았다. 특별하지 않은 답변이었지만, 이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비평가가 많기에 하는 말이었다. "저는 일급의 문장가가 되지 못하면 다른 자질도 결국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뛰어난 문장가가 되는 길은 결국 많이 읽는 것이에요.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합니다." 보다 깊이 있는 평론을 위해서는 작품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는 눈도 필요하다.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접근법에는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이 있다. 거시적 접근이란 작가 또는 작품에 반영된 현상을 보는 것이며, 미시적 접근은 어감, 문체 등 작품의 형식적인 면을 보는 것이다. 거시적 접근을 위해선 역사와 철학에 밝아야 하고 미시적 접근을 위해선 언어의 특성에 밝아야 한다. “두 측면에 동시에 접근할 때 작품을 완전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부분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당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평론의 깊이에 큰 영향을 미쳐요." 비평은 결국 평론가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 "그 취향과 가치 판단이 곧 비평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취향을 숨기고 가치로만 쓰거나, 가치 없이 취향만으로 쓰면 금방 가난함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 유성호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학생들과 회의를 하는 모습.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기억은 글로 남겨져야”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국 문학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유 교수의 추천작은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죽은 소년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이자 증언서다. “<채식주의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사실 한강의 대표작은 이 책이에요. 당시 국가가 기록을 소멸시켰기에 기억만 남아있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냈죠.“ 유 교수는 “’죽은 자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현시대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도 잊지 않고 미래에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져야 함을 역설했다. “세월호 사건도 잊혀지지 않고 미래에 이 책처럼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느냐에 공동체의 힘이 있다고 말하는 유 교수는 우리의 섣부른 망각에 일침을 가했다. ▲ 유성호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 교수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며 비평가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글/ 최연재 기자 cyj0914@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1 12

[교수][시선집중] 세계적인 담론의 장에 한 목소리를 당당히 울리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은용수 교수의 저서 <국제관계학에서의 다원주의와 이론적 관여>가 영국 팔그레이브 맥밀란과 독일 스프링거에서 공동 발간됐다. 두 출판사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학술 출판사로, 저서 발간은 학자로서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 것이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의 학자들이 이들 출판사에서 저서가 출판되면 특별 승진이 되기도 하고 석좌교수직을 보장받기도 한다. 글. 박영일 / 사진. 안홍범 저명 출판사에 새로운 시각 제시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 학술적 논의를 펼치는 담론의 장에 저도 동참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두 출판사 모두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출간을 원하는 곳인데, 이렇게 발간하게 돼 뿌듯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70년 전통의 ‘팔그레이브 맥밀란(Palgrave Macmillan)’은 인문사회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들이 저서를 출판하는 곳으로, 20개가 넘는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사회과학 논문인용 색인) 인문사회과학 저널도 보유하고 있다. 영미 학자들은 팔그레이브 맥밀란에 자신의 저서가 출판되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명한 출판사에서 영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부인 아시아, 그중에서도 작은 나라 한국의 학자가 단독으로 저서를 출간하게 됐으니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은용수 교수가 이러한 영광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3년 전부터 팔그레이브 맥밀란에 출판기획안을 보내 문을 두드린 은 교수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과 경쟁하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팔그레이브 맥밀란의 심사를 당당히 통과했다. 연구를 시작한 처음 단계에서부터 은 교수의 주장이 여러 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저술 작업에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논리를 더욱 가다듬고 깊은 철학적 논의를 만들어내 결국 최종 심사 단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출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심사에 참여한 학자로는 세계 3대 국제정치 이론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웬트(Alexander Wendt) 교수, 국제정치 페미니즘이론의 대가인 앤 티크너(Ann Tickner)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완성된 은 교수의 저서는 2016년 10월 <국제관계학에서의 다원주의와 이론적 관여(Pluralism and Engagement in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표제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미국국제정치학회 티비 폴(T.V. Paul) 회장은 서양과 비서양, 실증주의와 비실증주의의 가교 역할을 하며 국제정치학의 진정한 국제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저서라고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이어 은 교수의 원고를 보고 독일의 ‘스프링거(Springer)’에서 공동 출간을 제안했다. 스프링거는 물리, 화학, 의학, 경제학 노벨상 수상자 200여 명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는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 출판사인데, 과학적 지식 발전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은 교수의 저서를 높이 평가했다. ▲ 은용수 교수(정치외교학과) 진정한 다원성을 위한 작은 도전 이렇게 세계적인 출판사들이 은용수 교수의 저서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대부로 불리는 미셀 푸코는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이며, 제도와 장치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주장했다. 미셀 푸코의 주장을 이론적 기반으로 디디고 있는 은 교수의 이번 저서는 영미 중심의 소수 주류 학자들에 의해 패권화된 국제정치학계에 의미 있는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진정한 다원화를 촉구하며 지성적 성찰을 요구했기에 저명한 출판사의 공동 발간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미 냉전 이후 학계에는 다양성이 확보됐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이론과 연구방법론이 등장하고, 학제적 연구 풍토에 의해 양적으로 다원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은 교수는 본질적으로 다원화됐다고 할 수 있는지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다양한 이론과 방법론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어떠한 이론과 방법이 과학적인가에 대한 규정은 과거와 동일한 실증주의 인식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과학철학에서는 정당성이 무너진 인식론입니다. 그럼에도 정치외교학 등 사화과학에서는 여전히 과학적 연구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수의 영미권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단 기준을 다수의 전 세계 지식행위자들이 출판, 강의, 논문 지도 및 심사 등의 지식사회적 활동을 통해 재생산하면서 실증주의 자체가 일종의 권력이 됐기 때문입니다.” 은 교수는 저서에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얼마나 많은 이론과 방법들이 학계에 ‘등장’했는지가 아니라 그것들이 실제로 ‘실천’되고 있는지, 나아가 그것들의 기반을 이루는 인식과 존재론은 얼마나 다양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 학계가 매우 편협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식생산체제를 만드는 행위자들이 성찰적 다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을 생산, 소비, 공유하는 자가 아니라 지식의 ‘규범적’ 패권이나 패러다임을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기적인 행위자입니다. 이를 깨달으면 지금의 편협한 지식생산구조의 생성 및 유지에 스스로 얼마나 기여해왔는지를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지식인은 다른 사회행위자들보다 정치경제적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자율적 행위자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말로만 외쳤던 다원성을 실천할 수 있는 동기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은용수 교수는 "앎의 기회를 확장해주면 학생들 의 사고가 더욱 창의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연구하게 됩니 다."라고 말한다. 주류 언어로 지속적인 말 걸기 물론 다원화는 이론과 이론, 시각과 시각의 충돌로 결국 학문적 파편화를 야기해 지식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 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류 언어로 말 걸기’다. 주류의 언어와 개념을 사용해야 주류에 속해 있는 이론가들의 관심을 끌고, 다르게 보기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의 언어를 사용하면 주류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주류의 정체성을 흔들기 위한 전략적 사용입니다. 라이팅백(되받아쓰기)을 통해 그들의 언어, 개념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은 교수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출판사나 학술지에 꾸준히 원고를 투고하는 것도 주류 언어로 말 걸기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은 교수는 팔그레이브 맥밀란과 함께 사회과학 출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루틀리지(Routledge)’에서 ‘아시아에서의 국제정치 이론과 실제’라는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 중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의 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취지를 설명, 기획에 동참시키고 1년 넘게 루틀리지를 설득한 끝에 시리즈의 편집장을 맡았다. 지난해 출간된 첫 번째 책을 필두로 10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발행할 계획이다. “아시아 시리즈라고 해서 서양과 비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 영어권 학자들의 이론, 사상만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서양, 즉 주변으로 내밀려 있는 이론과 사상, 역사적 경험을 체계적으로 담아내는 게 시리즈의 목적입니다.” 실천하는 유기적 지식인 지난해 은용수 교수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팔그레이브 맥밀란 및 스프링거의 공동 출간과 루틀리지의 아시아 시리즈 출판 외에도 국제학술대회를 기획하고, 세계정치학회의 SSCI 학술지 <IPSR(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Review)>에 연구 논문도 발표했다. 세계 4대 무크(MOOC, 온라인 공개 수업) 제공업체인 영국의 ‘퓨처런(Future Learn)’에 참여해 영어 강의도 진행했다. 게다가 학과장까지 수행하고 있어 하루 24시간이 빠듯한 나날이었다. 그래서 은 교수에게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연구 시간이자 연구실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편입니다. 지하철을 애용하는데, 특히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처럼 은 교수의 왕성한 연구 활동의 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학생들에게서 열정을 얻는다고 답한다. “앎의 기회를 확장해주면 학생들의 사고가 더욱 창의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연구하게 됩니다. 기존 담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독자들이 제 글을 재미있게 읽기를 바랍니다.” 출판을 통해, 그리고 교육 현장인 강의실에서 스스로 유기적 지식인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은용수 교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비주류 목소리들이 중심부에서 제 소리를 울릴 수 있도록 지식 담론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교수][신년인터뷰] 위기를 기회 삼아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한다

2017년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지난해 한양대학교는 각종 대학 평가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성장과 발전을거듭했다. 올해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와 혁신을 하게 될까? 이영무 총장을 만나 지난해 성과와 올해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한양대학교 이영무 총장 Q. 지난해 한양대학교는 많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2016년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지난해 학생들을 위한 여러 계획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목표했던 것만큼 충분히 달성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학생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요구했던 것들 중 올해 어느 정도 완성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남학술정보관 앞 광장이 햇빛이 반사되는 바닥 재질로 인해 눈부심이 생겨 불편하다는 민원이 있었는데, 지난 여름방학 기간에 기존 바닥을 철거해 불편함을 개선하고 앞마당 공간을 광장 형태로 조성해서 보다 안락한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3층에는 강대창·한금태 스터디룸 두 곳을 만들어 기존 독서실 형태에서 카페형 열린 공간으로 변화를 줬습니다. 또 캠퍼스에 오픈된 공간이 없어서 학생들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밖에 여학생을 위한 파우더룸, 제1공학관의 ‘노영백 학생 라운지’, 신소재공학관에 위치한 ‘김무연 세미나실’ 등 학생 친화적인 공간을 다수 조성한 것이 지난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난 연초에 계획하셨던 경영 계획과 목표를 되짚어보실 때 2016년 한양대학교가 거둔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또 어느 정도 만족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16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서울캠퍼스가 전년도 3위에서 2위로 한 단계 올라섰고, ERICA캠퍼스는 8위를 유지했습니다. 2016 QS 세계대학평가에서도 전년도 193위에서 22단계 올라서서 171위를 기록했고요. 이를 통해 한양대학교에 대한 평가가 안정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지난해 공고가 되거나 계획했던 국고 사업이나 재정 지원 사업이 상당히 많이 달성됐습니다. 목표대로 잘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교수들의 대형 연구 사업이 선정될 수 있도록 협력했던 부분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소위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 행정직의 최종 합격자가 21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또 기술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 기술직에서도 19명의 최종 합격자를 배출, 역대 최고 합격자 수를 갈아치우며 서울대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는 한양대학교에서 추진하는 우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정점을 찍은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난해 목표는 충분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Q. 연구 분야의 성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는 지난 2015년에 취임하면서 투필러 리서치(Two-pillar research)를 강조했습니다. 즉 기초 연구(원천 연구)를 강화하거나 또는 응용 연구(실용 연구)에 집중해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연구는 빼자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기초 연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2015년 5월 1일부터 2016년 4월 30일까지 국내 대학의 네이처 인덱스(68개의 자연과학 저널에 게재된 우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지수)를 살펴보면, 한양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학술지로 평가받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기준, 연구자의 실질적인 기여도를 평가하는 수치 FC(Fractional Count)에서 포스텍과 카이스트에 이어 세 번째로 높으며, 국내 종합대학 중에서는 1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두 저널에 게재된 우수 논문 중 한양대학교 연구진이 세 건의 연구에 이름을 올리는 등 최고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Q. 올해에도 한양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텐데요. 2017년 한양대학교는 어떤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게 될까요? 제가 총장이 되면서 ‘창의’와 ‘나눔’이라는 키워드를 말씀드렸습니다. 나눔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건학 이념을 어떻게 하면 보다 잘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지난해까지 준비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나눔 프로그램이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나눔 활동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쇼카 유니버시티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양대학교가 아쇼카 유니버시티에 가입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라고 하면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진정한 인재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제가 취임 초에 창의와 나눔이란 키워드를 선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나눔 관련 프로그램에 보다 방점을 찍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쇼카 유니버시티 프로그램 외에 기부도 포함됩니다.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해 기부 문화를 더욱 확산시킬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고액 기부자 프로그램은 물론 중·고액 및 대중모금 기부 캠페인을 확산시켜서 동문과 재학생이 함께하는 기부 프로그램들을 보다 구체화하고 나눔 프로젝트를 강화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은 기금은 학생들을 위한 시설 개선, 장학금, 해외 유명 대학과의 나눔 프로그램 진행, 저명 교수 초빙 등에 사용될 것입니다. 올해는 보다 다양한 사랑의 실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Q. 2017년 한양대학교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계획 및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한양대학교는 2016 QS 세계대학평가에서 171위를 기록했습니다. 200위 내에 들어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아직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재임 기간에 150위 내로 들어서는 것이고, 중기적인 목표이자 숙제는 100위권 내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사뭇 기대가 큽니다. 저 역시 이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국내 평가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학과 간의 연구력을 좀 더 높이고 학생들에게 보다 정성스럽게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정성스러운 교육이란 잘 가르치는 것과 학생들의 인성을 바르게 키우는 것을 포함합니다. 학과 간의 장벽을 터서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다중 전공, 융합 전공 프로그램도 보다 늘어날 전망입니다. 또 현재 외국인 유학생이 6,000명가량 되는데, 교육의 질을 높이고 혹시라도 내국인 학생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과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양적인 증가보다는 질 향상에 보다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아울러 기초 연구 및 응용 연구 강화를 비롯해 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창업 교육과 이를 통한 창의성 개발 및 협동심 배양 등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것들을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 ▲ 이영무 총장은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기억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Q. 지난해 여러 대학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오는데요. 한양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 본래의 모습은 뭘까,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대학 교수는 무엇을 하고, 대학생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와 같은 기본적인 물음을 던져봤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말을 잊고 지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에 들어올 때, 대학 교수가 될 때 각자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려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Back to the Basic’, 즉 기본에 충실하라,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기억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Q. 2017년 새해를 맞아 한양인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한 해는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 이상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랬고, 78년 한양대학교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사실 어렵지 않은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위기를 겪고, 이를 기회로 삼아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양대학교는 물론 동문, 재학생, 구성원 모두가 이를 기회로 삼아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양대학교 역시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힘차게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09

[교수]공학과 예술, 교육의 융복합 빛나다

평소 시각장애인 교육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현은령 교수(응용미술교육과)에게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학부생연구프로그램(URP)을 통해 학부생들과 함께 시각장애아 미술 교육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현 교수의 주도로 모인 6명의 재학생이 연구에 힘을 모았다. 약 7개월 동안 진행한 연구는 지난해 12월 2016년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우수 연구과제로 뽑히는 성과를 올렸다. 공학과 예술, 교육의 융복합 빛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지원 사업은 약 7개월 동안 학부생이 과학기술 분야를 탐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연구성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박사 학위 소지자)에게 책임 자격을 부여해 학부생의 연구 과정을 이끌도록 한다. 현은령 교수가 지도를 맡은 연구팀은 창의·융합 부문에서 연구 자격을 얻어 ‘3D프린터를 활용한 시각장애아 공감각 인지촉진 미술 감상 교구개발’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현 교수는 “특수교육현장에서도 소수자를 위한 교육 교구 개발은 매우 미진한 상태”라며 “이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 한국창의과학재단 2016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우수 연구과제로 선정된 현은령 교수(응용미술학과) 연구팀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희령, 송시영(응용미술교육과 2) 씨, 현은령 교수, 장진호(기계공학과 2), 최기봉(컴퓨터공학과 3) 씨. 3D프린팅과 미술 교육이란 분야를 접목한 주제에 맞게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모였다. 공학대의 장진호(기계공학과 2), 최기봉(컴퓨터공학부 3) 씨가 기술적인 부분을 맡고, 사범대의 김정현, 김희령, 송시영(이상 응용미술교육과 2) 씨와 윤여진(성신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3) 씨가 예술과 교육 파트를 담당하는 구성이었다. 연구팀은 지난해 4월 주제 선정을 마친 후 5월까지 시각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학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6월부터 7월까지는 3D프린터로 제작할 교구를 선정해 교수-학습지도안을 개발했다. 8월부터는 미술 감상 교구를 실제 학교에 적용하며 관찰 연구를 지속했다. 이후에는 관찰 내용과 성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번 연구는 170여개 연구과제 중에 선정된 17개 우수 연구과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공학과 예술, 교육 분야의 융복합 연구 역량을 인정받은 셈이다 또 김희령 씨는 학부생 5명에게만 주어지는 우수 연구 노트 작성자에 선정돼 2관왕의 기쁨을 누렸다. 김희령 씨는 “나를 위한 공부만 하다가 타인을 위해 공부하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었다”며 “교육 분야에 적절한 기술을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알게 된 만큼 더욱 다양한 방안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아를 위한 연구 펼치다 “시각장애 아동은 보통 촉감에만 의존해 작품을 감상해요. 그러다보니 공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죠.” 현은령 교수는 3D프린터를 활용, 입체적으로 제작된 자료를 통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수업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연구는 그 효과를 실제로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 학교의 아동은 전맹과 저시력 학생이 통합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전맹용과 약시용으로 나눈 맞춤형 감상 교구를 구상했다. ▲3D 모델링 도구 라이노5.0을 활용해 모나리자 이미지를 작업하는 과정 (출처: 현은령 교수) 연구팀이 교구 평가를 위해 협조를 구한 곳은 인천혜광학교였다. 담당 교사와 논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교재로 정했다. 3D프린터로 미술감상 교구를 제작하고, 왕십리와 인천을 오가며 실제 교구를 활용하는 아동들을 지켜봤다. 그 결과 보통 시각장애 아동의 미술 교육을 위해 쓰이는 소리 료에 비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담당 교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새 교구를 사용했을 때 양질의 질문이 늘어났으며,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에 대해 구제척으로 질문하며 다음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팀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김희령 씨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예상보다 생각도 깊고 똑똑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앞으로는 이들이 더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학도인 장진호 씨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열악한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며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기술적인 도움이 더 확대되면 좋겠다"고 했다. 2017년에도 후속 연구 이어갈 것 현은령 교수는 올해에 있을 학부생연구프로그램에서 후속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연구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교적 짧은 기간 때문에 현장 관찰을 많이 못 했다는 거예요. 미술 교구의 세세한 측면이나 시력 차이에 따른 추가적인 요구사항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토대로 보완에 신경을 쓰면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술 교구를 만들 생각입니다." 학생들도 후속 연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는 이들이다. 장진호 씨는 “응용미술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를 익히는 한편, 논문의 기본 포맷이나 연구노트 작성법 등을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기봉 씨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은령 교수는 우수연구 과제에 우리대학에서 1팀이 선정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도전을 독려했다. "이번 사업에서 우리대학의 참여율이 낮았어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죠. 올해는 교수와 학부생이 협력해서 진행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은령 교수팀은 올해도 도전을 이어가 '사랑의 실천'을 몸소 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