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74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6-04 07

[교수]고독한 검투사 처럼, 무대 위 성악가의 끝없는 결투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시작되고 오페라 극장의 막이 오르면 무대 위의 성악가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가 된다. 목소리만으로 수많은 관객과 마주해야 하는 장장 세 시간의 공연. 그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돌리기 위해선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그 신념 하나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알린 바리톤 고성현 교수(성악과)를 지난 18일 만났다. 성악가이자 교수로,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음악에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바리톤 고성현 교수(성악과)를 만나 어린 시절 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이야 기를 들었다. 고성현 교수는 온 세계를 누비며 우리나라 성악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23년 전 한양대학교에 임용됐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세계 무대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베르디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독일 쾰른에서 공연된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는 서양 성악가들을 제치고 전체 공연의 주연을 꿰찼다. 셀 수 없이 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서 지난 2003년 공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 무대에서 고 교수는 음악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띤 환호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번의 실내 공연이 끝나고 추가로 진행된 야외 공연에 15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모였던 것.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곡을 불렀을 땐 무대와 관객이 하나되는 것 같았다고. “수많은 관객이 주황색 야광봉을 촛불처럼 들고 있었어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 거죠. 어떤 음악가라도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준 무대를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꼽을 거예요.” 고 교수가 이 무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국에서의 출연 요청을 고사하고 올라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이스라엘에 체류 중이던 당시 ‘런던으로 날아와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공연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급박한 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고 교수는 예정된 공연을 생각해 이스라엘 텔아비브 극장과의 신의를 지켰다. “성악가의 커리어에서는 어디서 어떤 공연을 했는지가 중요해요. 런던 코벤트 가든은 이스라엘에 비할 수 없는 큰 무대에요. 그런데 런던으로 날아가면 바로 무대에 서야 했어요. 그렇게는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교수의 결정은 이스라엘 안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제가 당연히 런던으로 갈 줄 알았대요. 남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마지막 야외 공연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생중계 됐어요. 신문에서는 ‘한국에서 온 모세’라고 대서특필 됐어요. 외국에서 잘 안되면 귀국해서 제자들하고 노래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인데, 결과적으로는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셈이 됐죠.” 고 교수가 쉽게 타협하지 않은 이유는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임용된 교수이면서,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 서는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것. “성악가는 고대 로마의 검투사 같은 존재에요. 적게는 2천 명, 많게는 수만 명 앞에서 싸워야 하니까요.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음악과, 물소 떼처럼 무대로 달려들 것 같은 관객 앞에 서는 제 목소리에 힘이 없다면 저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는 거에요. 해외 무대에서는 더 그렇겠죠.” 고 교수는 늘 자신이 가진 능력의 최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마지막 결투를 마친 뒤 홀연히 자리를 떠나는 서부 영화 주인공처럼, 어떤 미련과 후회도 남지 않도록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한다. 더 많은 이들과의 소통을 꿈꾸다 고 교수는 오페라 극장 밖에서도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방송 출연은 물론, 작년에는 크로스오버 앨범도 발매했다. 좋은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말하는 고 교수. 순수한 정서가 담긴 노래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높이를 더 높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셰프들은 방송에 출연해서 떡볶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을 만들면서 인기를 얻고 있잖아요. 제가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고,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이태리어나 독일어로 부르는 것보다는 우리말로 부르면 더 많은 사람이 듣게 될 테니까요.” ▲ 오페라 <팔리아치>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고성현 교수. 이탈리아에서는 성악가 네 명의 목소리를 합친 것과 같다며 '콰트로 바리토니'라는 찬사를 받았다. (출처 : 고성현 교수) 클래식이라는 틀 안에만 자신의 음악을 가두어두고 싶지 않다는 고 교수. 대중음악을 부르는 것은 자신을 통해서 더욱 많은 이들이 클래식과 오페라에 가까워지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가는 한 과정이란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가 거의 주식에 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먹는 음식이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진거 같아요. 유럽에서는 오페라가 대중적인 문화예술이지만 여기서는 아니잖아요. 제가 오페라만 혹은 클래식만 고수하면 누구하고도 소통할 수 없을거에요. 음악은 함께 즐겨야 하는 거잖아요.”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다 고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을 내려놓고 지금보다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역할에 온 힘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쉽게 부정하지 않는 것이 고 교수가 생각하는 겸손의 의미다. “사람들은 제가 모든 성악가가 꿈꾸는 벨 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얘기하는데, 저도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저도 소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데요. 제가 살아있을 때는 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조금 더 나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어른들이 젊은 친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그래서인지 고 교수는 제자들을 대할 때만큼은 자신의 기준을 잠시 뒤로 하고,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려고 한다. 제자들의 부족한 점을 더 많이 보게 됐지만, 그것을 다 지적하지는 않는다고. 설령 제자들이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제가 저를 대하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면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더 노래해야 자신의 음악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을 키워주려면 제가 그 눈높이로 내려가야죠.” ▲ 고성현 교수는 "순수한 정서가 담긴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영상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문화빅뱅 더 콘서트/네이버 TV캐스트)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 음악의 향기를 전하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문화재단을 설립해, 클래식 음악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열고, 그곳에서 노래하겠다는 것. 작은 봉고차에 스피커 하나만 싣고, 시골 마을과 섬마을,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것이 고 교수의 꿈이다. “제가 번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재능기부의 형태로 노래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거에요. 차나 스피커를 사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저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기업가들이 기부해줬으면 해요.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보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거죠.” 고전 음악을 노래하는 성악가이지만, 고 교수의 눈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넘어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으로 더 밝은 내일을 만들기를 꿈꾸는 고 교수의 노래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질 것이다. ▲ "나이가 들면 사람의 생각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요. 그때가 오기 전에 여러분 안에 있는 긍정의 힘을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고성현 교수의 목소리에는 내일을 꿈꾸는 긍정의 힘이 담겨 있다. 글/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이재오 기자 bigpie19@hanyang.ac.kr

2016-03 15

[교수]세기의 숙제...'중력파 연구'에서 두각, 이현규 교수

중력파가 발견됐다.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지 정확히 100년 만이다. 힉스 입자와 더불어 21세기 물리학 분야의 최고 성과라 꼽히는 중력파 검출. 1000여명이 참여한 이번 논문에는 한국인 과학자 14명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 연구진들이다. 한양대 이현규 교수도 여기에 속해있다. 한평생 물리학을 연구하고, 올해로 교직을 떠나는 이현규 교수(물리학과)를 만났다. 아인슈타인의 숙원을 풀다 ▲ 지난 2월 26일 한양대학교 자연과학관에서 정 년퇴임을 앞둔 이현규 교수(물리학과)를 만났다. 이현규 교수는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의 단원으로 이번 중력파 발견 연구 논문에 당당히 이 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입자물리학의 범주 안에서 ‘고밀도 강입자’, ‘천체 입자’ 등을 연구해 온 학자다. 특히 '쿼크'의 기본 모형을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쿼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장 작은 입자로 불리지만, 그 구조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등을 자세히 관찰하면 쿼크의 상호 작용을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감마선 폭발이라는 새로운 천체 현상이 발견됐죠.” 감마선 폭발은 중성자별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현상이다. 중력파 역시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데, 이들이 쿼크 입자의 구조를 판별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중력파는 물질과 간섭하지 않고, 무한히 뻗어나가기 때문에 쿼크의 구조를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단서라는 것. 그렇게 이 교수는 중력파 연구에 발을 디디게 된다. “각지에서 중력파를 연구하는 이들이 모여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을 만들었어요. 지난 2000년 초반의 일이었죠. 그리고 지난 2009년 라이고 과학협력단(LSC,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인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가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력파는 굉장히 미약할뿐더러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때문에 단 한번의 중력파 검출을 위해서도 막대한 정보량을 수집해야 한다. 이 교수는 “입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일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감마선 폭발로 인한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중력파 검출이 가진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이 교수는 “우리가 전자기파를 통해서 새롭게 우주를 보게 된 것처럼, 중력파를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들을 수 있게 됐다”며 “또 다른 정보체계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력파 연구가 파생시킬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빅뱅 직후의 우주를 탐구할 수도 있고, 다양한 천체 형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중력파엔 어떤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그 정보를 통해서 굉장히 작은 입자의 구조를 볼 수도 있고, 폭발 전 별의 상태도 알 수가 있어요.” 이 교수는 “중력파를 이용한 통신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지구를 투과해 통신이 가능한 만큼 통신 분야에서의 활용도 기대가 됩니다.” ▲ 데이비드 라이츠(David Reitze) 미국 라이고(LIGO) 실험 책임자(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한국시간으로 지난 2월 1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력파를 찾았다고 발표하고 있다. 물리학에 입문하다 ▲ 이현규 교수는 37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는 소감 에 대해 "그동안 했던 일을 계속할 예정이라 그런 지 생각만큼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평생 물리학을 연구했다.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물리반에서 활동했어요. 학교에 마침 실험기구도 많았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죠”. 이 교수는 중력가속도를 탐구하려고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몇 개의 추랑 스톱 워치만 가지고 단출하게 시도한 실험이에요. 고도가 높은 산에선 추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고도가 낮은 바다에선 추가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측정하는 거였죠 .” 변변찮은 장비라 실험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 과정만큼은 너무나 즐거웠다는 이 교수. 결국 물리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학부 시절부터 물리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 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교수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고. 하지만 물리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은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미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물리학을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화학이나 기계공학 같은, 더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을 주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우직하게 물리학 연구를 계속했다. “학문에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강직하게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교수의 연구 열정은 퇴임 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중력파 연구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에요. 중력파를 통해 입자 내부의 구조를 발견하려는 연구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물리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이 교수는 퇴임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로 “꿈을 잃지 말되,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경이 바뀌면 꿈을 잃게 됩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고 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죠.” 일생을 물리학 연구에 바친 학자의 면모가 풍겼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을 통해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리학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그. 물리학 이야기를 전하는 이 교수의 눈빛이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글/ 이재오 기자 bigpie19@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6-03 09

[교수]나눔을 통한 한양다움, 한양대 이영무 총장 인터뷰

* 본 인터뷰는 한양대 사회봉사단 저널 '희망 함께 한대' 2016년 2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한양대 이영무 총장과의 인터뷰. ‘사랑의 실천’, ‘사회봉사 과목’, ‘사회봉사단’ 등과 관련한 진솔하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사랑의 실천에 관한 총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이를 실천하신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양대학교에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정신이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를 세워주신 설립자 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양대학교를 마친 뒤 유학을 가고, 교수로 재직하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면서 제가 받은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재학 4년 간 학교의 신문 기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장학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성적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지요. 학업을 마친 뒤 1982년도에는 제2기 교비 유학생으로 뽑혀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가기 전에는 본교로 돌아와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겠다는 서약에 서명하는 과정이 있었고, 저는 제가 학교와 다른 분들에게 받은 배움과 사랑을 다시금 나누기 위해 한양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교수로 재직하던 중,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들에게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도에 2학년 2학기 복학을 준비하는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른다섯의 교수였어요. 이 학생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친구였고 등록금이 없어 복학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성내 역 근처의 쓰레기 집하장이 그 친구의 집이었는데 저는 그의 눈빛에서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받아 온 기회와 사랑, 가능성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위해 받을 수 있는 장학 혜택을 알아봐주었고 제 사비를 내어 주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를 돕고 싶었고 제가 받은 사랑을 깨닫게 해 주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학생은 무사히 졸업한 뒤 지금은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빚을 상속받은 여학생이 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곧잘 해 대학에 왔고, 저는 그 학생이 ‘중간고사 공부 좀 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공부란, 너무도 하기 싫은 일이었을 텐데도 그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부족해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저는 이러한 만남들을 계기로 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제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의 자리에서 제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2000년도는 저의 아들과 딸이 모두 한양대학교에 들어 온 해입니다. 감사하게도 둘 다 등록금 장학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이들의 혜택이 다른 친구에게도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등록금 기부를 할 수 있었고 이러한 기회에 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2020년 퇴직을 앞두고 조그만 목표를 하나 정했습니다. 매 년 1000만원씩 기부를 목표로 퇴임까지 1억 원 정도의 장학 혜택을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렇듯 나눔을 결심하고 나니 나눌 것이 더 커지는 일이 생기더군요. 저는 제 전공을 살리면서 누군가를 돕고 싶었습니다. 고분자학을 전공했는데 세상으로 눈을 돌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전공 연구와 논문 등을 기반으로 2010년에 녹색기술대상 상금으로 3000만원을 받게 되었고 적정 기술 관련 물 부족 국가를 위한 고분자 필터 개발로 경암 학술상으로 2억 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2000년도에는 창업을 통해 메디폼, 가딕스 등의 제품으로 1억 원 정도의 배당금을 받아 이 모든 상금들을 통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모으고자 했던 ‘파이’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퇴임 전까지 5억 원을 기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이러한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이유는 ‘나누려 할수록 커진다’는 것을 제가 경험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약 43년간의 기간 동안 제가 받은 것들을 나름대로 나누려고 했던 것들을 나누다 보니 그럴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얼마를 기부하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자리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만큼 보람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Q. 현재 한양대학교에서는 사회봉사 과목이 정규 교과과목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갖는 사회적 영향과 그 의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1994년 전국의 대학들 중 최초로 사회봉사단을 창단하고 사회봉사를 교과목으로 학점화 하면서 한양대학교는 기타 다른 대학의 봉사를 이끌어내는 선도주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에서의 봉사에 관한 일종의 ‘메카’가 된 것이지요. 또한 2009년에는 이를 기초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여 한양대학교의 모든 학생에게 봉사에 관한 기회가 더 크게 열렸습니다. 이것을 통해 학생들이 대학 시절에 봉사를 경험하면서 졸업 후에도 사회 각 자리에서 봉사에 대한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동문 봉사단인 ‘희망 한대’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 봉사단 출신이고, 열정적인 활동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접한 봉사가 성인이 되어서도 개인의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요. 저는 봉사가 우리 사회를 위한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남기보다는,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봉사라는 가치를 통해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국제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류에 이바지하는 변화를 이끌어 내리라 생각합니다. Q. 대학에서 사랑의 실천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학생들 입장에서의 사회봉사도 중요하지만, 학생과 교수, 그리고 임직원 모두가 마음속에 대학의 가치인 ‘사랑의 실천’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역할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총장 입장에서 사랑의 실천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생각해 보고, 교육자적 입장에서 강의에 대한 발전을 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며 학교의 구성원인 임직원들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역시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임직원 선생님들은 학교의 학생들에게 어떠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혹은 미래의 우리 학생들인 캠퍼스 투어를 온 고등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것들을 배려하는 것 역시 사랑의 실천입니다. 물질적인 것, 물건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나누며 베풂을 실천하는 것 역시 사랑의 실천이며 이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한양대학교 사회봉사단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총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기존 22년 동안 사회봉사단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길을 닦고 많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국제사회에 대해, 대학의 전공 지식을 기반으로 전문화된 봉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명문 대학들의 시야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도, 국내의 문제에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을 베풀 수 있는 글로벌 이슈, 예를 들면 기후 변화라든가 물 부족 문제와 같은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대학의 입장에서, 학생의 입장에서 가지고 있는 솔루션을 내 놓는 것이 지금 우리가 국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봉사단 역시 20년 동안 많은 디딤돌을 놓았기에, 이제는 글로벌 이슈에 관해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연탄 봉사, 김장과 같은 봉사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지속하면서 한 차원 도약할 수 있는 성장하는 봉사자의 역할이 필요해졌다고 봅니다. 단순히 학생들, 사회 봉사단 뿐 아니라 동문들과 기업의 참여 역시 어우러져 더욱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는 사랑의 실천을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사랑의 실천을 실천하고 있는 한양대학교의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이라는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시절은 정말 중요한 시기이죠. 이 때 어떤 인풋을 받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집니다. 학생들이 내가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누는 경험을 하는 것, 그 가치를 갖고 세상을 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말 큰 차이를 가져요. 우리 학생들이 사회와 미래를 위한 재목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하며 계층 간 희망의 끈, 인류를 향한 무한한 사랑의 실천을 이루는 사람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인터뷰·이정우 | 사진·정해준

2016-03 09

[교수]기업가를 키우는 도전... 창조와 균형의 기업생태계를 가꾸다

기업은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며 쇠퇴하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업 현장을 발로 뛰며 연구한 교수가 있다. 한정화 교수(경영대 경영학)는 벤처기업과 경영전략을 연구하며 많은 기업인을 만나 목소리를 듣고, 기업의 성공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학자였다. 그 경험을 인정받아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장(이하 ‘중기청장’)으로 발탁됐다. 역대 중기청장중 가장 오래 재임하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에 필요한 정책들을 안착시켰다. 2년 10개월의 긴 공직 생활을 마치고 강단으로 돌아온 한 교수를 찾아가, 공직 생활의 소회에 관해 물었다. 창업자에게 힘이 되는 정책을 만들다 ▲ 지난 2월 25일, 학교로 돌아온 한정화 교수(경 영대 경영학)를 만나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 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중소기업청은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와 벤처기업 육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 환경 구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부처다. 여러 업종의 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책기관의 수장으로서 한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교수는 ‘창조정책’과 ‘균형정책’이 기업생태계 구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더욱 많은 사람이 벤처창업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하는 것이 창조정책입니다. 균형정책은 시장 독점력을 가진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정책이고요. 이 두 정책을 통해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기업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한 교수의 창조정책을 대표하는 것은 실패한 창업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이른바 ‘재도전정책’이다. 중기청장이 되기 전부터 한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이 창업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창업에 실패한 이들이 막대한 빚 때문에 재기하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한 번 실패하면 인생에 금이 간다는 인식이 창업에 도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에요. 그래서 과거의 빚이라는 족쇄에 매여 시장에서 고전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교수는 팔을 걷어붙였다. 창업자의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는 창업자 연대보증제도를 폐지하고, 열심히 기업 활동을 했지만 실패한 창업자들에 대한 채무조정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 밖에도 재창업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시행해 실패한 창업자들의 경험이 더 큰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했다. 전문가들의 기술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를 도입한 것도 한 교수의 중요한 성과다. ▲ 한정화 교수가 중소기업청장이었던 지난 1월, 놀이방 매트 생산업체 아이앤에스를 찾아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한 교수는 언제나 문제의 답을 찾아 현장으로 나서는 학자이자, 공직자였다. (출처: 한정화 교수 페이스북) ‘갑질’ 없는 사회를 생각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을 조정하고,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하는데에도 한 교수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중기청장으로서 가장 주목받는 성과는 공영홈쇼핑 채널인 ‘아임쇼핑’을 설립한 것. 방송사업을 주관하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협력한 결과다. 홈쇼핑은 중소기업의 중요한 유통채널이자 홍보수단이지만, 대기업 채널들의 지위 남용으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았다. 아임쇼핑은 기존 채널보다 판매수수료가 최대 11%포인트 낮고, 판매 수익을 농가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해 홈쇼핑의 공공성을 강화했다. 한 교수는 “홈쇼핑 업체들의 이른바 ‘갑질’이 심하다보니, 중소기업들은 납품하고도 제대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아임쇼핑이 홈쇼핑의 공공성을 높이는 도전을 시작한 후, 다른 업체들도 자극을 받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공정거래 환경 구축을 위해 더 힘쓰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시장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균형과 불평등을 없애고 동반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공정거래 문제에는 아직도 힘의 불균형이 너무 큽니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의 핵심 인력을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해서 기술을 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어요.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법적으로 대응하려고 해도, 소송을 통해 구제받기는 쉽지 않아요.” 불공정 경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에 가까운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교수는 말한다. “공정거래 문제는 국가가 위에서 강하게 틀을 잡아줘야 해요. 언제까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다릴 순 없어요.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람직한 국가의 역할이잖아요. 우리 사회가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해서 지금의 문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중소기업청장 재임 시절, 한정화 교수는 여러 차례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진은 작년 6월에 청주육거리시장에서 떡집 상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출처: 한정화 교수 페이스북) 기업가를 키우는 새로운 도전 한 교수는 이제 3년간의 공직 경험을 밑거름으로 내일의 기업가를 키우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다루면서 얻은 경험과 통찰력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동시에, 학생들이 창업에 도전해 내일의 기업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교수는 ‘한중창업전략연구회’를 만들어, 한국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이 함께 창업할 기회를 줄 계획이다. “우리 학생 중에는 중국을 무대로 사업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하죠. 중국 학생들도 한국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어해요. 두 나라의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거에요. 단순히 기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자금을 유치해서 실전에 도전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기업가정신은 무엇인지 한 교수에게 물었다. 한 교수는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성(Tolerance for Ambiguity)’을 갖춰야 한다고 답했다. “사업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세상의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거든요. 무엇이든 확실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창업에 도전하면 건강을 해쳐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입니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고, 작은 기업도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역할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기업가를 길러 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한 한 교수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 한정화 교수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창조적으로 해결하는것이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글/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2016-01 27

[교수]'고백할 수 없는'으로 영화에게 고백을

“어릴 때부터 늘 꿈꿔왔던 칸의 레드 카펫은 아니었지만, 작년 한해를 통틀어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최인규(언론정보대 신문방송학) 교수의 또 다른 이름은 ‘영화 감독’이다. 지난해 열린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았다.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던 교수가 아니라, 엄연한 영화 감독으로 찾은 영화제였다. 영화 <고백할 수 없는>(2015)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온 최 교수. 언젠가 자신의 수업에서 소개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고백할 수 없는’으로 영화에 고백을 ▲ 최인규 교수(언론정보대 신문방송학)는 자신의 첫 장 편 연출작 <고백할 수 없는>(2016)에 대해 "선망 받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인규 교수는 ERICA 캠퍼스의 교양수업 ‘영화와 커뮤니케이션’으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런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영화 감독’이다. <고백할 수 없는>(2016)으로 첫 장편 영화를 연출했고, 지난해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작에 선정됐다. 최 교수는 이전에도 <드라이플라워>(1998)를 비롯해 (2000) 등 다수의 단편 영화에 참여했고, <역전에 산다>(2003)를 기획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에 참여했으나, 10년이 넘도록 직접 연출한 작품은 없었다고. <고백할 수 없는>은 최 교수의 첫 장편 영화다. “많은 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 등 여러 작품을 기획했지만 영화화된 작품은 없었죠. 소위 말하는 대로 전부 ‘엎어’졌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는 영화 연출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장편 영화 데뷔를 준비했다. <고백할 수 없는>은 2013년 무렵부터 ‘순결한 고백’이란 가제로 촬영한 작품이다. 고백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다. 한 유명한 영화감독 병천은 딸의 사생활을 감시하다가 그녀를 괴롭히는 한 남자친구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병천은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그 친구를 납치해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는 폭력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병천과 딸, 남자친구. 이 세명을 중심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 놓을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묘사한 것. <라쇼몽>(1950)의 현대판 재해석이다. 이 작품은 ‘만약 내가 유명한 감독이 된다면?’이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최 교수는 “유명해져버린 저를 생각해봤다”며, “허위의식과 매너리즘이 있을 법한 유명한 감독을 모델링 해서 썼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숨겨진 악마성을 심리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 받았다. 최 교수는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기쁜 일이었다”며 “환호를 받는 무대에 설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영화 일을 하며 효도한 일이 얼마 없었는데, 영화제 기간 동안 부모님들을 전주에 초대해 며칠 같이 지냈어요. 두 분의 격려를 받을 수 있었죠. 처음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은 보람을 느꼈어요.” <고백할 수 없는>은 이처럼 최 교수와 소중한 사람을 연결해 준 작품이 됐다. ▲영화 <고백할 수 없는>은 3월경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영상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 "점심 시간에 영화를 보고, 휴가 때마다 영화제를 가는 저를 보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 요." 그날로 최인규 교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 고 영국으로 떠났다. (출처 : 헤럴드 리뷰스타) 최 교수는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이다. 원체 활동적인걸 좋아했던 최 교수. 대학교에 입학한 후 극회, 방송국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한 선배의 소개로 영화 동아리 ‘소나기’에 들어가게 된다. “선배의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미래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 어영부영 만들던 영화가 알게 모르게 인생에 스며든 거죠.” 최 교수는 졸업 후 우연히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갈수록 마음 한 켠에 영화를 만들고 싶다란 생각을 키웠다. “점심시간에 영화를 보고, 휴가를 내서 영화제를 가는 스스로를 보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궁핍하더라도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평소 <트레인스포팅>(1996), <풀몬티>(1997) 등 영국영화 특유의 자유로움을 좋아하던 최 교수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영화 프로듀서로 데뷔하며 강단에 서게 됐다. 최 교수가 강의하는 ‘영화와 커뮤니케이션’은 ERICA캠퍼스의 인기 교양 강좌다. 영화가 어떤 언어와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알려주는 수업. 어느덧 맡은 지 10년이 지났다. “과거엔 감독들만이 전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 이를테면 미장셴이나 특유의 기법들을 가르쳤어요. 지금은 동시대의 영화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개봉한 영화들이 이전의 영화들과 가진 차별성을 통해 영화를 이해시키는 것이죠.” <현대 영화의 은밀한 매력>과 <영화적 순간>은 이 수업을 위해 최 교수가 직접 집필했다.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충분한 영화다 최 교수는 주로 어디서 영감을 떠올리냐는 질문에 “영감을 얻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호기심에서 비롯한 관찰”이라고 답했다. 안 가본 곳을 가는 것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고. “거창하게 외국이 아니더라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골목에 가보는 거죠.” 그는 “골목의 체취나 새로 생긴 숍 등 모든 흥미로운 것들이 생각을 고취시키는 요소”라고 말했다. “만약 언덕이 있다면, ‘언덕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하고 생각합니다. 안 타본 버스 같은 걸 타고 종점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의 많은 아이디어들은 이런 관찰에서 시작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그의 꿈은 다양했다. 칸의 레드 카펫을 밟는 것, 본인의 수업에서 본인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 지망생과 멋지게 재회하는 것 등. 하지만 ‘영화인’ 최인규의 최종 목표는 본인의 철학을 온전히 다 담아낸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결국에 감독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전해질 때 비로소 제 꿈이 완성되는 거죠.” 인터뷰를 통해 관찰한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즐거운 한 편의 영화였다. ▲ "영화가 가진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가지고 내 철학을 고백하는 것"이 영화인으로서의 최종 목표라는 최인규 교수. 영화 이야기에 눈이 반짝거리던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였다. 글/ 이재오 기자 bigpie19@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6-01 21

[교수]광고홍보학과 부부 교수, 최우수학술상 받다

국적을 비롯해 언어와 문화, 심지어 성별까지. 정말 다른 점이 많은 두 남녀가 ‘홍보’라는 공통 분모로 만났다. 토마스 호비(Hove) 교수(언정대 광고홍보)와 백혜진 교수(언정대 광고홍보)의 이야기다. 두 교수는 지난 11월 27일 공동 집필한 논문 ‘위험 제시 형식과 공포 메시지가 위험 인식에 미치는 효과 연구’를 통해 2015년 한국PR학회 최우수 학술상을 수상했다. 학문의 최우수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너지 효과를 보다 ▲ '공포확산', '패닉' 등 뉴스에서 다뤄지는 언어적 표현이 인간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출처: Wikipedia) 한국PR학회 최우수 학술상은 학회지 <홍보학 연구(Journal of Public Relations Research)>에서 그 해의 가장 우수한 논문을 선정해 저자에게 주는 상이다. 토마스 호비 교수와 백혜진 교수는 공동 집필한 논문 ‘위험 제시 형식과 공포 메시지가 위험 인식에 미치는 효과(Effects of risk presentation format and fear message on lay people’s risk perceptions)로 이 상을 수상했다. 호비 교수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주제였기에 한국PR학회에서 관심을 가진 것이라 생각한다”며 “놀랍고도 고마운 결과”라고 했다. 백 교수도 “상을 받는 것은 항상 기쁜 일”이라며 “국내로 들어와 처음 맡은 연구가 그 가치를 인정받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논문은 기자들이 위험을 묘사하는 방식에 따라, 대중들의 위험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다뤘다. 연구에서 위험은 발암물질, 광우병, 신종플루가 해당된다. 설문조사를 통해 연구가 진행됐다. 사람들에게 같은 위험에 대한 두 버전에 기사를 읽게 했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통계화시켰다. 그 결과 사람들은 ‘치사율 3%’와 같은 구체적인 수치보다 ‘죽음의 확산’같은 언어적 표현에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메르스 사태 때도 메르스 공포확산, 패닉상태 등의 표현이 대중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죠”. 백 교수는 “10을 기준으로 메르스의 실제 위험이 2 정도였다면, 대중들의 공포는 8에 달했다”며 “6의 차이는 기사에서 형성된 공포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녀는 기자들이 정확한 수치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기사를 쓰는 법을 숙달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 과정에서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백 교수는 데이터에 기반한 통계분석, 양적 연구 등 실질적인 측정치를 다뤘다. 반면, 호비 교수는 추상적인 개념을 다룬 논문을 많이 쓴 이론가다. 호비 교수는 백 교수의 데이터에서 일리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언어 능력이 탄탄한 호비 교수 덕분에 데이터로 보여주기 어려운 내용까지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두 사람은 각각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들의 조화가 연구 속에 녹아 들었고 완성도 높은 논문이 탄생했다. ▲ 서로의 강점이 조화를 이루며 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백혜진 교수와 토마스 호비 교수(언정대 광고홍보) 학문의 동료에서 인생의 동반자로 두 사람은 미국에서 처음 만났다. 생김새와 자라온 환경 등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러나 금발의 미국인 남성과 까만 눈동자를 가진 한국인 여성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같은 분야를 공부하면서다. 호비 교수는 “위스콘신대학 대학원에서 광고를 전공하며 백 교수를 만났다”고 운을 뗐다. “백 교수는 박사 학위를 끝내고 조지아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어요. 그녀를 따라가 다른 학부에서 교수직을 시작했죠.” 두 사람은 그 뒤로도 동행을 계속했다. 지난 2008년 백 교수는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을 때 호비 교수를 함께 추천했다. 대학 측의 허가로 두 사람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두 사람은 끝내 결혼에 성공, 가정을 꾸리게 됐다. 그러던 중,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태평양을 건너 약 1만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리대학이 백 교수에게 교수직을 제안한 것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두고 심각하게 논의했죠.” 백 교수는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호비 교수가 미국사람이고, 미시간에 정착하려는 마음으로 집도 사둔 상태였어요.” 하지만 호비 교수는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호비 교수는 “미국에서의 향후 20년은 예측 가능한 삶이었다”며 “한국에서 새롭게 펼쳐질 문화와 경험에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은 2012년 한국 땅을 밟았다. ▲ 위스콘신(Wisconsin), 조지아(Georgia), 미시간(Michigan)을 거쳐 10000여km 떨어진 우리대학까지 두 사람의 동행은 이어졌다. (출처: 구글지도) 귀국 후 두 사람은 빠르게 국내 생활에 적응했다. 호비 교수의 믿음직한 통역관이자, 한국 생활의 안내자인 백 교수 도움이 컸단다. 힘든 점도 있었다. “미국의 생활보다 5~6배 바빠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교수 업무 외에도 학회 등 외부 활동이 잦기 때문이라고. 바쁜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이해’다. 같은 분야의 일을 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가 가능했다. “잦은 업무로 서로에게 소홀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은 채울 수 있었죠.”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분야의 종사자라면 흔히 경쟁 구도가 있기 마련인데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맞춰온 호흡을 통해 연구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했다. 이해하고 협력하는 생활이 그들의 연구까지 이어진 셈이다. 멈추지 않는 도전 ▲ 서로를 의지하고 협력하면서 두 사람의 새로운 도전도 계속된다. (출처: 백혜진 교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수상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두 사람은 같은 분야에서 도전을 이어 가고 있다. 호비 교수의 최대 과제는 한국어 정복이다. 개인 튜터까지 둬가며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미국 문화와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 백 교수는 헬스커뮤니케이션(Health Communication)분야를 필두로 홍보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자 한다. 이 분야에서 한국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집필하고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에 100편의 논문을 싣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최근에는 코이카(KOICA)와 협력해 공감캠프에 뛰어들었다. 향후 동티모르를 방문해 보건학자와 의료학자들과 협력하고 융합적인 차원의 보건 연구를 펼칠 계획이다. 호비 교수는 백 교수에 대해 묻는 질문에 “굉장히 사려 깊으며, 내가 본 사람 중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제가 한국에서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 백 교수도 “호비 교수는 정말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며 강한 신뢰를 나타냈다. 부부이자 동료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두 교수. 국경을 뛰어 넘은 ‘같이’의 가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5-12 29

[교수]대학 교육의 모범을 제시하다

2012년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ACE, Advancement of College Education)으로 선정된 한양대학교. 창의, 소통, 통섭의 핵심 역량을 갖춘 다이아몬드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대한민국 고등교육 선진화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간 교육선진화사업단이 이룬 성과와 발전은 타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선 김성제 단장을 만났다. 에디터 박선영 | 글 이은아 | 사진 김민주 ▲ 한양대 교육선진화사업단장 김성제 교수 Q. (생소한 분들을 위해) ACE, 즉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을 소개해주세요. 간단히 말해서 ‘잘 가르치는 대학’ 지원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대학이 제시하는 고등교육선진화 모델 중 우수 모델을 교육부가 선정해 육성합니다. ACE의 영예를 얻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사업 초기에는 경쟁률이 20 대 1을 상회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대학 가운데서도 6년째 고배를 마신 곳도 꽤 있죠. 한양대학교는 서울 소재 대학 중 세 번째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Q. 한양대학교가 ACE 사업을 통해 구현하려는 선진화 모델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패러다임이 지식정보 사회로 전환되면서 학생들이 길러야 하는 핵심 역량도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전공 지식만 익히고 응용하는 수준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형 인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업단은 여러 차례의 회의와 조사를 거쳐 한양인상에 부합하는 핵심 역량을 창의, 소통, 통섭 3가지 키워드로 압축했습니다. 창의력은 새로운 생각을 하는 힘입니다. 소통은 창의력의 결과물을 세상과 나누는 능력이고요. 글로벌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이 2가지 역량을 함양하려면 창의와 소통을 아우를 수 있는 융합, 다시 말해 통섭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양대는 융합에 특화된 대학입니다. 이미 10년 전 이공계는 물론 인문계도 융합전공을 도입했고, 융합교육의 선두 주자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Q. 창의, 소통, 통섭의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이 (한양대 선진화 모델의) 목표라는 말씀이시군요. 학생들의 창의·소통·통섭 능력을 키우기 위해 넓은 토대 위에서 깊고 높게 교육하는 학부교육선진화 모델을 고안했습니다. 전공 교육은 돌탑 쌓듯 높게, 교양 교육은 우물 파듯 깊게, 인성·사회봉사·진로 같은 비교과 교육은 터 닦듯 넓게 익힐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강화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다면체의 ‘다이아몬드형 인재’입니다. 높이와 깊이와 너비까지 고려한 선진화된 교육 모델이죠. ▲ 학부교육 선진화 모델로 고안된 ‘다이아몬드형 인재’ 다면체. 다이아몬드 인재 양성을 위해 전공 교육은 돌탑 쌓듯 높게, 교양 교육은 우물 파듯 깊게, 인성·사회봉사·진로 같은 비교과 교육은 터 닦듯 넓게 익힐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강화했다. Q. ACE 사업 선정 대학 가운데 한양대가 올해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수한 성과 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관리 시스템이 있습니다. 한양대는 목표 설정, 전략 수립, 지표 개발, 객관적인 평가 등 성과 관리 프로세스가 잘 정립돼 있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을 실행한 후 개선점을 찾아 다음에 반영하는 환류 과정을 포함해 전체적인 관리 체계가 치밀합니다. ACE가 국책 사업인 만큼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목적에 맞게 써서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고요. Q.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한양대 ACE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잘 가르치는 대학은 결국 창업·취업률이 높은 대학입니다. 한양대의 실용학풍 역시 사회에 힘이 되는 인재를 배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창업·취업 역량은 직접 해볼 때 길러집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스스로 고기를 잡게 해야 하죠. 시대를 앞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과 연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실용학풍’을 지향하는 만큼 학생 스스로 참여하는 자율적인 교육을 중시합니다. 현장 실습이나 산학협력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고, 학생들이 자기 설계나 자기 진단을 할 수 있는 치밀한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런 부분이 다른 대학과의 차별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ACE 사업 재진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2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ACE 사업의 지원 기간은 4년입니다. 2012년에 이어 한양대는 내년에 두 번째 ACE 도전에 나섭니다. 큰 틀은 변화가 없을 겁니다. 다만 1기보다 더 선진화된, 더 구체화된 교육 모델을 제시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적성과 진로에 맞춰 커리큘럼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학과 교육과정을 세분화하고, 지적 능력 못지않게 감성 능력이나 실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보완합니다. 그래서 창의(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 통섭(Consilience)의 3C와 더불어 마음(Heart), 손(Hand), 머리(Head)의 3H를 두루 갖춘 교육으로 실효성을 높일 예정입니다.

2015-12 23

[교수]동양인 최초 국제 학술지 편집장, 음성학 분야의 새로운 돛대가 되다

세계 무대에 한양의 이름이 올랐다. 한양대 조태홍 교수(인문과학대 영어영문학과)가 세계저명학술지 ‘저널 오브 포네틱스(Journal of Phonetics)’의 편집장을 맡게 됐다. 한국인으로서도, 동양인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논문이 실리는 것조차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는 이 학술지에 조 교수가 편집장을 맡은 것은 우리나라 인문사회계열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다. 지난 5년 간 부편집장을 맡았으며, 내년 1월 1일부터 편집장으로 활동할 조태홍 교수(인문대과학대 영어영문학과)를 만났다. 유래 없는 기록, 한국대학 교수가 국제 학술지 편집장이 되다 ▲ '저널 오브 포네틱스(Journal of Phonetics)'의 편집장을 맡 게 된 조태홍 교수는 "학자로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힘든 과정 들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음성학’은 인간의 의사 전달 수단인 언어를 구성하는 ‘언어 음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분야다.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포네틱스’의 신임 편집장에 조태홍 교수가 선정됐다. 저널 오브 포네틱스는 국제적 수준의 학술지를 분류하는 기준인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에 등재돼 있는 음성학 학술지 중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그 명성을 자랑한다. 조 교수는 지난 5년 간 부편집장으로 활동했고, 오는 2016년 1월부터 편집장 자리에 오른다. 이제는 편집장으로서 동료들을 마주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함께 일해왔던 동료들과 학자들의 신임을 받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선 수준 높은 학문적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학자로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힘든 과정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널 오브 포네틱스’는 음성학 분야에서 상징적인 위치에 있다. 학자들에게는 논문을 게재하는 것만으로 대단한 영광으로 여겨진다. 서양의 학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인문사회계열에서 한국대학 교수가 학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편집장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한국에 기반을 둔 인문사회계열의 연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 교수는 그간 논문을 통해 학자로서 역량을 인정 받아왔다. 지난 15여 년 동안 30여 편의 논문(A&HCI/SSCI급)을 국제저명학술지에 꾸준히 게재했으며, 현재는 유럽 전문학술저서 ‘언어과학출판사(Language Science Press)’의 편집인을 역임 중이다. 구글학술검색 인용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간 조 교수의 논문 인용 횟수는 3000건이 넘어 간다. 편집장에 선정된 것은 이런 다양한 성과를 반영한 결과다. 이 학술지의 경우 SSCI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JCR(Journal Citation Report)에서 상위 10%에 드는 것. 때문에 이곳에 게재되는 논문은 까다로운 검정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을 걸쳐 진행되는 검토 과정을 모두 총괄하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다. “1년에 200여 편의 장문 논문이 학술지로 투고돼요. 저는 이 논문들을 읽고 학문적 가치를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계적으로 3분의 1은 그 자리에서 거절당하죠.” 논문을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찾고, 이들에게 검토를 맡기는 이 과정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까지 간다. “언어학은 제 전문 분야지만 세계 유수 학자들이 쓴 논문의 학문적 가치를 판단 한다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논문 거절에 대한 이의제기를 받아 해결하는 것까지 모두 편집장의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음성학, 내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 ▲ '저널 오브 포네틱스(Journal of Phonetics)'는 음성학 분야 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이다.(사진 출처 : Journal of Phon etics) 언어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음성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조 교수. 그가 처음 음성학을 접하게 된 것은 영어공부를 하면서였다. “그 시절에는 영어만 잘해도 주변에서 우러러봤죠. 저는 하루에도 10시간씩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서 음성학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됐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죠. 처음 발음공부를 했을 때 고심했던 것들이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단 걸 발견한 거죠. 발화의 원리를 접하면서 음성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조 교수는 학부를 졸업하고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UCLA에서 ‘음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故) 피터 라데포그드(Peter Ladefoged) 교수의 지도를 받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막스프랑크 심리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Psycholinguistics)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세계무대에서 쌓은 연구경험은 훗날 조 교수의 학문적 토대가 됐다. 조 교수는 아직도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이 즐겁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이와 상관없이 연구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는 다짐에서 학문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와 학술지 활동에 보내는 조 교수에게도 소소한 취미가 있다. 차 안에서 혼자 음악감상을 하는 것. 음성학을 연구해서일까? 소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음악 또한 그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음악감상은 저의 유일한 취미입니다. 큰 소리로 혼자 차 안에서 좋아하는 곡을 듣는 것은 연구 이외의 또 다른 즐거움이죠. 해마다 12월이 되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즐겨 듣습니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마치 생명의 탄생과 소멸하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아요. 꼭 한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자신의 선택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 2005년 한양대에 교수로 부임해 이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조 교수에게는 대학교육 역시 큰 의미를 가진다. 조 교수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덧붙여 설명했다. “대학은 학문하는 곳입니다. 문제상황을 분석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질문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사고 과정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요. 단순히 교과서를 암기하거나 지나치게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에게 문제 해결 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 돕고 새로운 연구성과와 생생한 연구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제저명학술지의 편집장은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받은 학자가 오를 수 있는 자리로 학자에게는 최고의 명예직이다. 그가 음성학이라는 한 분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순간의 선택에 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저는 어떤 선택이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는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죠. 다른 것과 저울질 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것의 최고의 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결국 최선의 선택을 만듭니다. 그러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가게 될 거예요.” ▲ 조태홍 교수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며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수정 기자sj930212@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박설비 기자sbi444@hanyang.ac.kr

2015-12 01

[교수]'수능을 오류에서 구하라' 철학자에게 내려진 특명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지난 2년간 수능에서는 출제 오류로 인해 복수정답이 인정되면서, 시험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정부는 출제와 검토 과정을 개선하고 더욱 정확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 이번 2016학년도 수능부터 출제위원장과 동급인 검토위원장직을 신설했다. 초대 검토위원장을 맡은 민찬홍 교수(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는 수능뿐만 아니라 공직적격성검사(PSAT), 법학적성시험(LEET) 등, 여러 시험을 출제한 논리사고측정 분야의 전문가다. 수능 일주일 뒤, 민 교수를 만나 시험의 개발과 출제에 대해서, 그리고 시험을 뛰어넘어 진정한 지성인이 되는 공부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특명, 수능을 오류에서 구하라 ▲ 수능 시험일인 지난 12일, 민찬홍 교수가 수능 출제와 검토에 대해 브리핑했다. (사진출처: 뉴시스) 수능은 대학교수로 구성된 출제위원이 문항을 출제하고,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이 검토위원으로 참여해 문항의 오류나 난이도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하지만 검토위원이 출제위원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검토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수능 출제오류의 원인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민 교수는 “검토위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검토위원 선생님들은 의견을 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움츠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원래 검토위원은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의심하기 위해 있는 자리에요. 그래서 저는 의심스러운 문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도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의 압박감이 심했던 이번 수능. 검토위원장으로서 민 교수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출제된 모든 문항을 직접 점검했다고 한다. “시험이 끝난 후에 오류로 판명되는 문항들은 사실 출제 과정에서 적어도 한 번은 이의제기가 있었던 문항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능 출제에서는 검토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들이 묻히지 않도록, 충분히 문항 점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험 출제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어떤 검토의견이나 문항을 주의해서 봐야 하는지 보이더라고요. 문항들이 어떻게 수정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출제위원들의 긴장감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조금 어렵게 출제된 이번 수능. 해마다 반복되는 시험의 난이도 논란에 대해서도 민 교수는 “시험의 난이도는 출제위원의 의견이 아닌 교육부 정책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응시자의 평균 점수는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하나라도 틀리면 1등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습니다. 사실 시험을 어렵게 내려고 하면 충분히 어렵게 낼 수 있어요. LEET같은 시험은 변별력 확보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수능에서는 1등급 컷이 100점이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만점자 비율이 1퍼센트 미만이어도 안되는 제약이 있어서 미세한 난이도 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등급 컷으로 예상되는 점수 분포가 가장 이상적인 난이도라고 할 수 있어요.” 철학도, 최고의 논리학 선생님이 되다 민 교수는 시험 출제 전문가이기 이전에 철학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철학 공부가 꿈이었다는 민 교수. 철학을 공부한다는 꿈은 인간이 이룬 중요한 이론적 성취를 모두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았어요. 물리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 철학밖에 없더라고요. 어떤 분야든 관심을 잃지 않고, 학부 전공자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추면서 철학을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철학과 학부 시절에는 수리논리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수학과 교수님들도 많이 찾아갔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수리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극소수여서, 제가 수리논리학 논문을 쓰면 읽어 줄 사람이 대한민국에 다섯 명도 안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 민찬홍 교수는 "철학 선생님으로서 죽기 전에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힐 좋은 글을 남기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한 다. 과학철학, 인지과학, 심리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 온 민 교수는 “수능 언어영역(현재의 국어영역) 출제에 참가한 후부터 모든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비판적 사고 훈련의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분석철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민 교수는 현재 우리대학에서 논리적 사고, 분석과 비판, 칸트와 롤즈의 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민 교수의 수업은 쉽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 과목에서는 학생들이 논리를 세워 민 교수를 설득시켜야 하는 과제가 부여되기도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타고난 언어적 재능에 따라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민 교수 과목의 성적을 ‘모태학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들이 모태학점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저도 정책대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분석적으로 읽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논리력이라는 게 짧은 시간 공부해서 실력이 늘진 않아요. 제 수업에서 고생을 많이 한 학생들이 나중에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호기심, 지적 성장의 원동력 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으며 지적 훈련을 꾸준히 할 것을 당부했다. “롤즈의 정의론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명저를 많이 읽어야 해요. 제일 이상적인 건 책의 내용을 다 외우는 거에요. 한 단락을 읽으면 책을 덮고, 그 단락의 내용이 무엇인지 스스로 요약해보세요. 한 장(Chapter)을 읽으면 그 내용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책 여백에 내용을 적으면서 읽어도 좋아요. 궁극적으로는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여러분의 설명을 듣고 책을 읽은 것처럼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에요. 글을 분석적으로 읽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교육을 받아서 위대한 사상가가 된 거에요.” 강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책을 탐독하는 것이 민 교수가 말하는 지적인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다른 즐거운 일들을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오랜 시간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다 보면 엄청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제가 관여해서 만드는 LEET나 PSAT 같은 시험들은 결국 대학생활 4년 동안 지적인 훈련을 충분히 했는지를 평가하는 거에요. 하나도 준비 안 하다가 서너 달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죠. 고생을 좀 해야 돼요. 하지만 유념할 것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여러분도 언젠가 더 큰 그릇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 "꾸준히 좋은 책을 읽겠다는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민찬홍 교수는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2015-11 18

[교수][한양의 새 얼굴]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영화의 본질'을 묻다

길종철 교수(예술·체육대학 연극영화학과)는 영화 비즈니스에서 뼈가 굵은 인물이다. 25년 이상 대기업의 영화 사업 부문에 종사하며 대표직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최근 회사를 떠나 학교로 부임했고, ‘스토리’에 대한 강의로 학생들을 만난다. 비즈니스맨이 회사를 떠나 스토리 연구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양의 새 얼굴, 그 세 번째 이야기. 영화의 본질을 따라가다 학교까지 흘러왔다는 길종철 교수의 이야기다. 영화를 선택한 공학도 길종철 교수는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취업난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던 때였다. 전자 산업 분야의 인력 수요가 급증해서, 다들 어렵지 않게 대기업에 취직했던 그런 시절. 길 교수는 회사에 들어간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TV 보는 것을 유달리 좋아했어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되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러던 중 ‘삼성영상사업단’에 합류하게 됐다. 과거 삼성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담당, 문화예술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던 곳이다. “가전 제품을 팔던 부서에서 음악과 영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예요. 비디오 플레이어만 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를 고민했던 시점이죠. 소프트웨어가 발달해야 하드웨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그때 막 생겨났어요.” ▲ 길종철 교수(예체대 연영)는 우리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다. 길 교수는 90년대 삼성영상사업단에 합류한 이후 25년 이상 영화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했다.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만난 길 교수는 계속 영화 산업에 머물렀다. 사업단에서 다수의 영화 제작을 담당한 뒤, 한국영화아카데미 책임 교수를 거쳐 2005년 CJ 엔터테인먼트(현 CJ E&M 영화사업부문)에 합류했다. 이후 마케팅전략기획실장, 콘텐츠연구소장을 거쳐 국내사업 대표직을 역임했다.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른 삶이었으나 역시 ‘현장 경험’보다 확실한 지식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너무나 많아요. 소재 발굴, 기획, 제작, 투자 등 영화 산업 전 분야를 통틀어 안 맡아본 일이 없죠. 촬영 현장에도 있어 봤고 감독들도 수없이 만났어요. 영화제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고요. 영화계에서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일까. 길 교수는 ‘시장 전체를 보는 눈’이라고 말한다. “영화에도 역사가 있어요. 그 흐름을 이해하고 ‘바로 지금’에 필요한 영화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게 됐죠. 한편으로는 이것이 팔리는 이야기냐, 아니냐를 알아보는 현실 감각. 경험이 가져다 준 산물이죠.” 하지만 길 교수에게 영화가 ‘비즈니스’의 영역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광으로서의 면모도 있다.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개봉 시기에 맞춰서 볼 것. 그의 감상 원칙이다. 때문에 일주일에 두 세번 이상은 극장을 찾는다.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도 재밌게 보는 방법이 있어요. 왜 재미 없는지를 찾아보는 거죠. 그런 게 더 공부가 돼요. 이렇게 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봤더니 결국은 ‘절대량’이 늘어나게 됐어요.” 분석하듯 영화 보는 방식은 그만의 습관이다. 작품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시계를 보며 시작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확인한다. “메모를 하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시계를 보는 거죠. 시간대 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면 한번만 보고도 영화 전체를 분석하기 쉬워요.” 주말에도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약속보다 영화를 우선 순위에 둔다는 길 교수. 영화는 그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다. 영화의 본질, 스토리의 힘 ▲ 길종철 교수는 올해 초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고 그것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길 교수는 스토리를 화두로 교내 안팎에서 강의 중이다. (사진 출처 : 씨네 21) 빠르게 뜨고 지는 영화 산업을 지켜보며 길 교수는 좋은 영화의 본질을 묻게 됐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만 좋은 영화라 부를 수 있을까. 길 교수는 오랜 고민을 통해 영화의 본질이 ‘스토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비즈니스적 요소가 영화에 힘을 보탤 수는 있겠지만,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힘은 결국 스토리에서 나와요. 영화 산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찾다보니 스토리로 돌아오게 됐죠.” 기업가의 입장에 섰던 그가 내린 결론으로는 의아하다. 대기업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다는 손가락질에도 익숙한 그였다. 길 교수는 대기업이 영화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산업 안에서 교류가 일어나고 자금이 움직이기 때문. 하지만 이 역시도 훌륭한 영화적 스토리가 계속 나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스토리가 영화의 본질인 이유다. 길 교수는 영상에 맞는 스토리 문법에 대한 강의로 학생들을 만난다. 이론 중심의 설명보다 대중 영화의 다양한 사례를 활용해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실제 작품를 뜯어보며 감독과 작가가 스토리를 풀어낸 형식을 이해하고, 이에 따른 대중의 반응을 살펴본다. 스토리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원리에 집중하는 수업이다. 길 교수는 영화의 본질을 좇다보니 학교까지 오게된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 산업이 지금은 잘 되는 것 같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학생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면 지금의 산업도 물거품이 될 거예요. 이처럼 영화의 근본을 찾는 고민을 하다보니 학교에도 오게된 것 같아요.” 인재를 발굴하는 일이 곧 이야기의 원천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치열함 끝에 아이디어가 나온다 길 교수의 노력은 집요하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스포츠 등 온갖 종류의 트렌드를 섭렵하고자 한다. “TV를 볼 때도 사람들이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요. 요즘은 주 단위 시청률이 인터넷에 공개되니까 시간날 때마다 확인해요. 나에게는 재미가 없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이 주관성과 객관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정말로 필요한 공부예요.” 길 교수가 공부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치열함 끝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갑자기 툭 튀어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집요한 연구가 있어야만 나오는 거예요. 영화 시장이 성공 사례만 있는 것처럼 화려해 보여도, 사실은 보여줄 기회도 얻지 못한 아이디어가 수없이 사장되고 있어요. 그말은 곧, 누구보다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거죠.” 길 교수는 노년까지 연구를 계속하며 현장의 후배들과 교류하는 삶을 꿈꾼다. 세계적 명성의 스토리 전문가 로버트 맥키(Robert McKee)의 워크샵에 참석한 후로 그 꿈을 갖게 됐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혈기왕성하게 강단을 누비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강연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저거다’ 싶었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도 저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다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 길종철 교수는 스토리 전문가로의 새 삶을 꿈꾼다. 연구와 강의에 매진할 계획을 밝힌 길 교수는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곽민해 기자 cosmos3rd@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