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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 09

[교수]공학과 예술, 교육의 융복합 빛나다

평소 시각장애인 교육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현은령 교수(응용미술교육과)에게 반가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학부생연구프로그램(URP)을 통해 학부생들과 함께 시각장애아 미술 교육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현 교수의 주도로 모인 6명의 재학생이 연구에 힘을 모았다. 약 7개월 동안 진행한 연구는 지난해 12월 2016년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우수 연구과제로 뽑히는 성과를 올렸다. 공학과 예술, 교육의 융복합 빛나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지원 사업은 약 7개월 동안 학부생이 과학기술 분야를 탐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연구성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박사 학위 소지자)에게 책임 자격을 부여해 학부생의 연구 과정을 이끌도록 한다. 현은령 교수가 지도를 맡은 연구팀은 창의·융합 부문에서 연구 자격을 얻어 ‘3D프린터를 활용한 시각장애아 공감각 인지촉진 미술 감상 교구개발’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현 교수는 “특수교육현장에서도 소수자를 위한 교육 교구 개발은 매우 미진한 상태”라며 “이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 한국창의과학재단 2016 학부생연구프로그램 우수 연구과제로 선정된 현은령 교수(응용미술학과) 연구팀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희령, 송시영(응용미술교육과 2) 씨, 현은령 교수, 장진호(기계공학과 2), 최기봉(컴퓨터공학과 3) 씨. 3D프린팅과 미술 교육이란 분야를 접목한 주제에 맞게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모였다. 공학대의 장진호(기계공학과 2), 최기봉(컴퓨터공학부 3) 씨가 기술적인 부분을 맡고, 사범대의 김정현, 김희령, 송시영(이상 응용미술교육과 2) 씨와 윤여진(성신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3) 씨가 예술과 교육 파트를 담당하는 구성이었다. 연구팀은 지난해 4월 주제 선정을 마친 후 5월까지 시각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학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6월부터 7월까지는 3D프린터로 제작할 교구를 선정해 교수-학습지도안을 개발했다. 8월부터는 미술 감상 교구를 실제 학교에 적용하며 관찰 연구를 지속했다. 이후에는 관찰 내용과 성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번 연구는 170여개 연구과제 중에 선정된 17개 우수 연구과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공학과 예술, 교육 분야의 융복합 연구 역량을 인정받은 셈이다 또 김희령 씨는 학부생 5명에게만 주어지는 우수 연구 노트 작성자에 선정돼 2관왕의 기쁨을 누렸다. 김희령 씨는 “나를 위한 공부만 하다가 타인을 위해 공부하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었다”며 “교육 분야에 적절한 기술을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알게 된 만큼 더욱 다양한 방안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아를 위한 연구 펼치다 “시각장애 아동은 보통 촉감에만 의존해 작품을 감상해요. 그러다보니 공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죠.” 현은령 교수는 3D프린터를 활용, 입체적으로 제작된 자료를 통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수업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연구는 그 효과를 실제로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 학교의 아동은 전맹과 저시력 학생이 통합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 전맹용과 약시용으로 나눈 맞춤형 감상 교구를 구상했다. ▲3D 모델링 도구 라이노5.0을 활용해 모나리자 이미지를 작업하는 과정 (출처: 현은령 교수) 연구팀이 교구 평가를 위해 협조를 구한 곳은 인천혜광학교였다. 담당 교사와 논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교재로 정했다. 3D프린터로 미술감상 교구를 제작하고, 왕십리와 인천을 오가며 실제 교구를 활용하는 아동들을 지켜봤다. 그 결과 보통 시각장애 아동의 미술 교육을 위해 쓰이는 소리 료에 비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담당 교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새 교구를 사용했을 때 양질의 질문이 늘어났으며,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에 대해 구제척으로 질문하며 다음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팀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김희령 씨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예상보다 생각도 깊고 똑똑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앞으로는 이들이 더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학도인 장진호 씨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열악한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며 “특수교육 분야에서도 기술적인 도움이 더 확대되면 좋겠다"고 했다. 2017년에도 후속 연구 이어갈 것 현은령 교수는 올해에 있을 학부생연구프로그램에서 후속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연구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교적 짧은 기간 때문에 현장 관찰을 많이 못 했다는 거예요. 미술 교구의 세세한 측면이나 시력 차이에 따른 추가적인 요구사항들이 있었어요. 그들을 토대로 보완에 신경을 쓰면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술 교구를 만들 생각입니다." 학생들도 후속 연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는 이들이다. 장진호 씨는 “응용미술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를 익히는 한편, 논문의 기본 포맷이나 연구노트 작성법 등을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기봉 씨는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은령 교수는 우수연구 과제에 우리대학에서 1팀이 선정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도전을 독려했다. "이번 사업에서 우리대학의 참여율이 낮았어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죠. 올해는 교수와 학부생이 협력해서 진행하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은령 교수팀은 올해도 도전을 이어가 '사랑의 실천'을 몸소 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6-12 26 중요기사

[교수]디스플레이·반도체 선구자 권오경 교수, 한국공학한림원 회장되다

공학은 단순히 비용과 시간을 투입한다고 발전하는 분야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비전과 목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공학한림원(NAEK, 이하 공학한림원)이 있다. 대선이 있는 5년마다 정책 총서를 발간, 대선 후보에게 공학 정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과 공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연구한다. 공학 분야 핵심 기관 중 하나인 공학한림원 신임 회장에 권오경 교수(융합전자공학부)가 선임됐다. 임기는 2017년 1월 1일부터 2년이다. 한국공학한림원과 권오경 교수의 인연 ▲지난 12월 23일 만난 권오경 교수(융합전자공학부) 권오경 교수와 공학한림원의 인연은 1995년 한림원이 생긴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보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입회 원서가 왔었어요. 그때만 해도 '미국에나 있는 한림원이 한국에?'란 생각에 신경을 안 썼죠." 한림원에 가입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다.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던 이기준 교수가 절 불러서 야단을 쳤어요. ‘내가 가입 원서를 보냈는데 답변도 없느냐'고요. 그렇게 야단을 맞으며 공학한림원에 가입했죠(웃음)." 가입 이후 권 교수는 국제협력위원회와 기획사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기획사업위원회에 있으면서 한림원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알게 됐고, 한림원의 역할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90년대 말부터 4년 동안 기획사업위원장, 지난 2011년 부회장과 2014년 상임부회장을 거쳐 2017년 회장에 선임됐다. 그렇다면 한림원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권 교수는 4가지를 꼽았다. “공학한림원에서는 대선이 있는 5년마다 정책총서를 발간해요. '누가 당선되든 공학 분야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권하는 책이죠. 또 지금의 성장률로는 실업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언하는 것도 한림원의 역할입니다." 이른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 교육 방안과, 통일 이후를 대비한 정책도 한림원의 중요한 업무다. 이를 위해 권 교수는 재정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좋은 조직이 되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미국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입니다. 어떻게 재정을 더 지원받을 수 있을지가 최우선적인 고민입니다." 공학 교육 혁식도 권 교수의 관심사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매우 크던 때도 있었고, 현재도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과학에 정을 떼는 일이 많습니다. 대학 재정도 줄어가는 시점이라, 줄어든 재정 속에서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 선도주자 되기까지 권 교수는 공학한림원의 중역으로서만 아니라, 공학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가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를 논할 때 권 교수의 연구를 빼놓고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군대에서 신호 처리 기술을 연구했는데, 기밀을 알고 있단 이유로 유학을 못 갔었어요. 그래서 통신 분야로 바꿔서 연구하다보니, 통신 장비를 만들기 위해선 반도체 기술이 절실하더군요. 그래서 반도체 연구를 잘 한다는 스탠포드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본격적으로 디스플레이를 연구한 것은 지난 92년 우리대학에 조교수로 들어왔을 무렵이다. “이전까지 미국 회사에서 전기자동차, 디스플레이, 우주선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연구했습니다. 92년도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 회사들이 찾아와서 자문을 요청했어요. 제가 다닌 미국 회사에서 절 찾아가라고 말했다면서요." 그러나 막 귀국해 조교수가 된 그에게는 연구를 진행할 곳도, 기자재와 동료도 없었다. 권 교수는 이를 들어 요청을 거절했지만, 강변역 인근의 연구실과 연구 비용,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요청을 이기지 못해 디스플레이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도 권 교수는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반도체 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휴대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칩이 있다. “휴대폰은 배터리를 쓰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량에 따라 입력되는 전압이 변해요. 대략 4.5~2.8V를 오가는데 안에 장비들은 일정한 수준의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죠. 이를 10년전에 개발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감지 센서에 들어가는 칩을 개발했습니다. 엑스레이 장비에도 ‘엑스레이 디텍터’라는 것을 개발해 엑스선을 적게 쐬고도 촬영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물인터넷에 전력을 공급하는 센서 개발이나 초음파 탐지 칩을 개량해 특정 부위에만 약을 투여할 수 있게 하는 등 권 교수의 기술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 신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권오경 교수는 공학자로서도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분야의 선두자로 인정받고 있다. 기술은 우리 삶에 큰 영향, 언제나 이면 살펴야 공학자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윤리 의식'이라는 권오경 교수. 지속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앞서 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그다. "신선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죠. 그러나 공학자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윤리 의식입니다." 어떤 기술이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으므로 이를 항상 염두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술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도 만들지만, 우리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이런 점을 생각하고, 자신의 기술이 나쁘게 쓰이지 않도록 제어하는 장치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성장 동력인 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의 권위자인 동시에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쓴 권 교수. 정년 이후가 되면 신경 과학과 같은 원천 기술을 연구하고 싶다고. “공학 분야에 있다보면 원천 기술에 전념할 기회가 잘 없는데, 여유가 생기면 꼭 연구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더 새로운 공학자이길 바라는 권 교수가 회장을 맡은 이후 공학한림원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6-12 12

[교수]학생 입장 먼저 생각하는 '선생'이고 싶어 (1)

사법고시, 행정고시, 세무사, 관세사, 노무사 등 각종 국가고시와 자격시험이 1년에도 100개 이상 치러진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시험에 빠지지 않는 과목이 있다면, 아마 모든 행정 작용의 절차와 원리를 규정한 '행정법'일 것이다. 이호용 교수(정책학과)는 지난 2002년부터 각종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참여, 200여개의 시험의 문제를 출제했다. 우리대학에서는 행정구제법, 행정법강론 등의 강의와 로스쿨 준비반 전담 교수를 맡고 있다. 추천으로 시작한 출제위원, 15년간 계속해 2001년 우리대학 법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한 이 교수는 이듬해인 2003년 강릉대 교수로 취임했다. '출제위원' 이호용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다른 출제위원들의 추천으로 시험문제를 내게 됐어요. 첫 출제가 뭐였는지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출제해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웃음)." 이 교수는 그때부터 각종 국가고시 및 자격시험 문제를 출제했다. “해마다 7-8개 시험을 맡았고, 각종 시험의 문제 풀(Pool)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으니 적어도 200번은 넘을 거예요." 이 교수는 강의로 바쁜 와중에도 문제 출제를 15년 간 이어왔다. “큰 시험의 경우에는 통신 장비를 모두 반납하고 합숙을 해요. 그러면 문제 출제하는 시간 외에는 정말 휴식 시간인거죠. 바쁜 와중에 가끔씩 들어가서 쉬고, '출소'한단 느낌으로 돌아왔어요." ▲이호용 교수(정책학과)는 사법시험, 행정고시, 변호사 시험, 공무원 시험 등의 출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시험의 면면을 살펴보자. 06년, 10년, 13년 행정고시, 08년, 09년, 13년, 14년 사법시험. 이 외에도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7급, 9급) 시험, 세무사, 관세사, 노무사 나아가 경비지도사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법 관련 국가고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교수는 이 시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사법시험을 꼽았다. “같은 전공 교수들과 하는 문제 출제보다는 실무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더라고요. 사법시험 같은 경우 현직 판사들과 함께 출제하게 되는데 전공의 스펙트럼이 다르다 보니 서로 배울 점도 많았어요.” 한 번 합숙을 하게 되면 최대 열흘 동안 같이 지내기 때문에 이후에도 만남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흥미 느껴 시작한 행정법, 이제는 로스쿨 준비반 교수로 이 교수는 강릉대, 단국대의 교수직을 거쳐 지난 2012년 우리대학 정책학과의 전임교수로 취임했다. 전공은 행정법. “형법이나 민법 쪽이 더 흥미롭기는 해요. 그렇지만 국가를 규율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행정법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죠.” 행정을 처리할 때 법이 정한 절차와 원리를 따르게 함으로써 국가가 올바른 행정 집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법이란 의미다. “그러한 견지에서 국가와 국민 관계에 있어서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규율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행정법에 뜻을 두게 된 이 교수는 이후 법무부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동시에 공부에 매진해 우리대학 법학과 석박사(각각 96년, 01년) 학위를 취득한다. 이 교수는 현재 로스쿨준비반의 전담교수로 활동 중이다. “학교로 돌아온 게 2012년이었고, 이듬해 의욕적으로 시작했어요. 현재는 해마다 100명-130명 정도가 로스쿨로 진학하고 있죠. 로스쿨준비반에서 이 교수의 역할은 ‘학생 관리’ 이상이다. 고등학교 3학년반의 담임처럼 개개인의 시험 성적, 학점, 어학 성적 등을 보고 합격의 가능성을 판단한다. “개인적으로 로스쿨 진학은 법조인이 되는 7부 능선을 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죠.” 입시철이 되면 이 교수의 스케줄은 ‘입시상담’으로 빼곡히 채워진다. “바빠도 도움 필요하다는 학생들 도와주는 거, 그게 교수가 맡아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하는 거죠.” 학생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교수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학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이 교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로스쿨 진학해서도 학비가 문제이고, 로스쿨 진학에도 학점이 가장 중요한데 가정형편상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하는 친구들은 좋은 학점을 따기가 힘들겠죠? 그러면 학생들의 공부기회를 차단하게 되는 거에요. 로스쿨은 유지하되,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하거나 사법시험을 유지시켜서 다른 통로를 확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법조인으로 향하는 통로를 단일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 “학생들은 저를 고무시키는 존재들이에요. 학생들이 ‘도움 많이 됐다', 감사하다’ 한 마디만 해주면 저도 모르게 힘이나더라고요.” 이 교수가 생각하는 미래의 목표에도 ‘학생’은 빠지지 않는 존재다. “지금은 큰 형, 삼촌, 미래에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학생들 이끌어주고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네요. 더 큰 바람이 있다면, Best Teacher상 받는 거? 그 외에는 없습니다(웃음).” 결국 이 교수가 바라는 것은 학생을 위한 ‘좋은 선생’. 그의 목표는 언제나 학생과 함께하는 것이다. ▲학생을 위한 '좋은선생'이 목표라고 하는 이 교수, 큰 형, 삼촌 내지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학생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한다. 글/ 박성배 기자 ppang1120@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hanyang.ac.kr

2016-11 16

[교수][사랑 36.5℃] 10년간의 기부로 이어가는 제자 사랑의 전통

1985년 설립된 컴퓨터공학과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학생들이 학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모든 교수진들이 학과 발전기금으로 매월 일정금액을 기부해 오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학과장 조성현(91 전자계산학) 교수를 만나 컴퓨터공학과의 아름다운 전통, ‘기부’에 대해 들어 보았다. ▲조성현 컴퓨터공학과 학과장은 “학과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물적 자원의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이에 학과의 구성원인 교수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여 학과 발전기금 조성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했다. 컴퓨터공학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부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본 학과는 1985년도에 설립된 이래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학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교육과 연구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인 것에 더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에 대해 교수진들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를 배후에 두고 있는 UC버클리, 스탠퍼드대학교를 보면서 컴퓨터공학과가 발전하는 데에는 기부금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과 모든 교수들이 학과 발전기금으로 10년간 매월 10만 원씩 약정을 맺어 지속적인 기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기부라는 전통을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학사회에서도 학과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물적 자원의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이에 학과의 구성원인 교수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여 학과 발전기금 조성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졸업 동문들이 주축이 되는 발전기금 조성이 필요할 텐데, 학과 교수들이 솔선수범하여 먼저 기틀을 세워두면 이것이 초석이 되어 동문 주축의 발전기금 모금 전통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과 교수님들의 기부에 대한 학과 학생들의 자부심도 높을 것 같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속담처럼 저희 학과 교수들의 기부활동을 학생들에게 드러내놓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방향인지 고민되어 재학생들에게는 교수들의 기부활동에 대해 별도로 홍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 동문들에게는 적극 홍보하고 있으며, 졸업한 학과 동문들은 교수들의 기부활동에 대해 알게 되면 많이들 놀랍니다. 그리고 기부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로 전향되는 것 같습니다. ▲조성현 학과장은 기부에 대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안에서 그걸 조금씩만 나눈다고 생각하면 훨씬 쉬울 것 같다고 전했다. 기부에 대한 교수님의 평소 생각과 소신을 듣고 싶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기부문화가 성숙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대표가 얼마 전 아이들 평등을 위해 페이스북 지분 99%(약 45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지요. 또 빌게이츠 부부가 2000년부터 빈민 구호를 위해서 기부한 금액이 30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기부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점점 커져가는 양극화 현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꿈조차 꿀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이 없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는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양대의 기부 문화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한양대의 건학이념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기부를 통한 장학금, 기부라는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한 한양대 인재가 사회로 나가 더 큰 기부를 하고, 또 그 기부가 씨앗이 된 인재가 사회로 나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져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요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양대에서 말하는 ‘사랑의 실천’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생각, 한양대 구성원들은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양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바로 이런 노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부 자체를 어렵게 생각하기 쉬운데, 기부를 망설이고 있는 잠재적 기부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기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평생 하기 어려운 것이 기부인 것 같습니다. 아주 약간의 관심과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안에서 그걸 조금씩만 나눈다고 생각하면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부가 꼭 금전적인 기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능력, 시간을 기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10 31

[교수][시선 집중] 삶 속에서 발견을 일구는 연구자

한양대 ITBT관의 한 연구실로 들어서면 한쪽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도 있다. 책상 쪽에는 화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유전자 치료가 전문 분야인 생명공학과 이민형 교수의 연구실이다. 예술과 생명이 꿈틀거리는 이 연구실에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이민형 교수의 연구가 자라나고 있다. (글. 노윤영 / 사진. 하지권) HMGB1과의 만남 이민형 교수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유전자 치료다. 유전자 치료란 외부에서 치료용 유전자를 주입해 이상이 생긴 유전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질병에 적용할 수 있는 유전자 개발은 물론 유전자를 환부까지 전달하기 위한 전달체 개발 연구도 필요하다. 이민형 교수는 고분자 및 단백질을 전달체로 이용하고자 찾던 중 한 물질에 주목했다. HMGB1(High Mobility Group Box 1)이라는 단백질이었다. 그는 세포의 핵 안에 존재하는 이 단백질을 DNA에 결합시켜 유전자 전달체로 이용해보고자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이자경 교수와의 만남으로 그의 연구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교수는 마침 뇌졸중에서의 HMGB1의 역할을 연구 중이었다. 이민형 교수는 이자경 교수와 연구를 진행하면서 HMGB1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항염증 나노입자’ 개발이다. 급성폐손상 치료 위한 HMGB1 연구 “HMGB1이 염증 유발 인자라는 게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이에요. 그 전까지는 크로마틴 (Chromatin, 염색질)을 형성하는 단백질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죠.” 급성폐손상은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해도 호전되지 않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심장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급성으로 시작되는 폐부종을 말한다. 바이러스나 병원균 감염뿐 아니라 패혈증과 심한 외상 등으로 발병하고는 하는데, ‘급성 호흡 곤란 증후군’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HMGB1이 급성폐손상의 원인 인자로 알려지면서 이후 많은 연구가 줄을 이었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패혈증 등으로 인해 세포가 급격히 사멸할 경우 HMGB1은 다른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한다. HMGB1을 새롭게 수용한 세포는 신체의 문제를 알리고, 자가 치유를 위해 염증을 일으킨다. HMGB1 자체는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내는 알람 역할을 하므로 문제가 없지만, 이로 인해 심각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민형 교수는 2003년께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건은 HMGB1을 억제해주는 입자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입자를 폐 안에 넣으려면 크기가 작을수록 좋겠죠. 또한 폐에는 점막이 있는데, 양이온성을 띨 경우 이 점막을 통과하기 어려워요. 때문에 나노입자인 동시에 음이온성인 입자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민형 교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HMGB1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BOX A 부분만 분리했다. 이 단백질은 양이온성을 띠고 있었기에 여기에 음이온성 물질을 붙였다. 그러고는 ‘헤파린(항응고제)’이라는 음이온성 고분자를 이용해 나노입자를 만들었다. 이 입자는 크기가 100나노미터 정도로 아주 작았으며,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처럼 분리된 BOX A를 ‘항염증 펩타이드(나노입자)’라 부른다. 이민형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은 급성폐손상 환자의 폐에 이 항염증 펩타이드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항염증 펩타이드는 쉽게 말해 단백질 신약인데 투여 방법, 인체 내 투여했을 때의 안정성, 독성 여부 등 아직 해결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안전하게 작용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요.” 인간에게도 안전하게 작용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흡입을 통해 이 항염증 펩타이드를 투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높은 치사율을 기록하는 급성폐손상도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 획기적인 이번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이민형 교수는 급성폐손상 치료제 개발에 기 여할 수 있도록 보완점을 개선해나갈 예정이다. 더불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유전자 개발과 유 전자 전달체 개발 연구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이민형 교수는 2005년 한양대에 부임했다. 학교에는 그와 같은 연구자를 꿈꾸는 제자들도 많을 터. 연구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민형 교수는 ‘성실성’을 첫째 덕목으로 강조했다. “물론 연구가 재미있어야겠죠. 하지만 그건 아주 기본적인 거예요. 이를 바탕으로 하되 성실해야 합니다.” 연구는 숱한 실패 속에서 ‘성공’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이런 쉽지 않은 과정을 성실한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면 결코 연구자로 성장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민형 교수의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다. 성실해야 한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연구실에만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한양대에 부임했을 때부터 줄곧 아이디어가 다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죠. 보통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떠올리고는 하잖아요.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되도록 그러지 말라고 해요. 평소보다 아침 일찍 와서 연구와 공부를 하되, 일과를 마치면 남는 시간에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다니고 운동도 하라고 합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니까요.” 과천에 사는 이민형 교수는 시간이 날 때면 과천미술관에 가서 그림도 보고, 인근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소설가나 음악가들이 평소 자신의 삶 속에서 혹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얻듯 과학 연구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삶이 곧 연구, 연구가 곧 삶 이민형 교수는 연구 자세를 은사들에게서 배웠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에는 박종상 교수에게 성실함을, 박사후연구원(Post-Dr, 포스닥) 과정을 밟던 미국 유타대 시절에는 김성완 교수(현 한양대・유타대 석좌교수)에게 연구와 학생 교육 등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 덕분에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발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보통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단계적으로 연구를 하지요. 그게 개발이에요. 답을 정 해놓고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방식 말입니다. 물론 그런 연구도 필요해요. 그런 일만 해도 바쁠 거예요. 하지만 제 바람이 있다면 발견하는 연구자가 되는 겁니다.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몰랐던 현상이나 원리를 발견할 수 있겠죠. 그동안은 바빠서 생각들을 접어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앞으로는 새로운 현상과 원리를 통해 참신한 ‘발견’을 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샤갈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다.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푸른빛을 뽐내는 화분도 있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예술과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곳에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치열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발견을 위한 아이디어 역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연구실 너머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삶과 연구를 분리시키지 않는 연구자이니 말이다. 연구 시간 또한 연구실에 있는 시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삶이 곧 연구이고, 연구가 곧 삶이다. 삶 속에서 발견을 일구어내는 이 연구자를 앞으로 주목해보자.

2016-10 31

[교수][기술 한양] 변화를 이끄는 공간의 완성

안기현 교수는 최근 2016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해 ‘용적률 게임’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리. 오인숙 / 사진 제공. 안기현 교수)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 수상 ‘젊은 건축가상’ 2016년 수상자로 안기현 교수가 선정됐다. 준공된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완성도, 건축과 사회에 대한 사고, 조직과 작업 방식, 변화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 등 건축가로서의 기본 역량과 잠재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이 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나라의 미래 건축 문화를 선도할 우수한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총 28개 팀이 지원해 3팀(5명)의 최종 수상자가 선정됐으며, 안기현 교수는 AnlStudio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대표와 함께 ‘AnlStudio’ 팀으로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심사 총평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을 창의적으로 조직하는 건축가로서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건축의 사용자 그리고 건축 생산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 모두에게 열린 플랫폼으로 확장된 영역에서 건축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 건물로, 효율성과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작은 입면의 변화를 통해 각 층별로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다 ▲ 아모레퍼시픽뮤지엄에 설치했던 아트워크로, 연질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이용해 경계가 불분명한 파빌리온을 구축했다 ▲ 10평의 땅에 올린 3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 제약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극소주택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공간과 건축 안기현 교수가 운영하는 AnL연구실에서 주력하는 연구 분야는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공간과 건축’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부분의 공간과 건축은 경제성과 효율성의 논리 아래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돼왔습니다. 쉽게는 서울 인구의 반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그렇고, 한양대 학생들이 매일 공부하는 교육 공간도 예외는 아니죠. 저희 연구실은 이런 일상 속에 결여되어 있는 여러 개인적·사회적 표현 욕구와 충족되지 못한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건축과 공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삶의 방식들을 제안해나가고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환경은 지난 60년간 근대화에서 산업화 과정을 거쳐 빠르게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성장과 개발을 위해 생산성과 기능성에 집중하다 보니, 간과된 것들 혹은 편향된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 채워진 것이 많다. 동시에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건축(공간)에 대한 사회문화적 요구는 다양해지고, 그 양상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안 교수는 “AnL연구실이 많은 이용자의 인식과 일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건축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풍성한 문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 AnL연구실의 작업은 하드웨어 제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율하려면 물리적인 하드웨어뿐 아니라 내재해 있는 다양한 습성과 문화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고 과거와 현재, 지역과 전체, 이상과 현실, 개인과 집단과 같은 21세기의 공간적 조건을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탐구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AnL연구실에서 진행하는 미디어의 발달과 변화에 따른 설계 방법의 연구, 빅 데이터와 연관된 건축 환경 변화와 분석 방법에 대한연구, 디지털 툴과 구축 방법의 변화에 따른 건축 설계 및 구축 방법의 비교 연구, 스토리텔링 및 브랜딩과 연관한 공간/건축/도시설계 연구는 이에 필요한 리서치와 디자인 툴이다. 안 교수의 연구는 미래의 공간과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저희 연구실의 작업은 모범 답안을 찾기보다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해석과 다양한 해결 방안을살펴야 하기에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누적되어 새로운 프로젝트에 더 넓은 스펙트럼을 제공할 때 우리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이렇게 확장된 사고가 결국 우리의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의미 있는 건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안기현 교수가 지향하는 연구실은 좀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말랑말랑하고 다방면의 기능을 갖춘(generalist-ic) 모습이다. 일례로, 디자인만이 아닌 계획에서 시공(직접 제작하는 수작업 포함), 건축에서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설치미술, 리서치, 전시 기획)까지 참여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세는 내부만이 아닌 외부로도 향해 있다. 관련 기술자나 협업 작가 심지어 클라이언트에게도 적용된다.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아직까지는 먼 미래보다는 주변에서 가능한 모든 재원을 파악하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 역시 끊임없는 변화로 다양한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확장된 다양성으로 의미 있는 건축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안기현 교수와 AnL연구실의 의미 있는 도전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6-10 18

[교수]학자의 길로 돌아온 법관, 양창수 교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지난 2014년 9월 대법관의 임기를 마치고 우리대학에 부임한 양창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헌법 제10조를 직접 읽어주며 우리나라가 나아갈 기본 방향이 이 조문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11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양창수 교수의 대법관 시절 (출처: 연합뉴스) 양창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1976년 군법무관으로 법률가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연수원, 판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트랙을 밟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판사직에 오래 있지 않고 1985년 서울대 법대 민법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법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자 생활을 동경했습니다. 짧은 판사 생활 중에, 사회 맥락과는 무관하게 소개되는 법 이론만으론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교수로 24년 간 재직한 양 교수는 지난 2008년 임기 6년의 대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법관이 되어서도 법관과 학자 사이에서 끊임 없이 갈등해야 했다. “법관은 늦지 않게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겠지만, 저는 결론을 내리게 된 과정을 이론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 결과를 판결문에 담고자 했습니다.” 양 교수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판례를 재검토하고, 더 적절한 판결을 내릴 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끊임 없이 새 사건을 맡다 보면 모든 경우를 꼼꼼하게 검토할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양 교수가 보기에 종전의 판례는 성급한 것이 많았고, 현 상황에 비춰 재고돼야 할 것도 많았다. “재판은 시대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범죄, 새로운 거래 형태는 계속해서 생겨나요. 이에 대해 오랜 시간 가다듬은 판단을 내리는 것이 대법관의 책무죠." 양 교수가 우리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판사와는 달리 교수는 자유가 있잖아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스스로 택해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개인은 국가보다 앞서야 ‘개인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양 교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인류의 발전 경험을 지표로 만든 것이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 제10조를 보세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죠. 모든 사람은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 권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양 교수는 국가가 개인에게 인권을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국가 이전에 가지는 기본권이 있다고 했다. 그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양 교수는 "개인이 국가에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이나 멸사봉공(滅私奉公),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된 맥락은 이해하지만, 말 자체로는 헌법 정신을 위배합니다. 전체를 위하여 개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법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 지난 12일 제2법학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양창수 교수가 헌법 제10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양 교수는 개인이 진정 원하는 바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사실 기본적인 가치는 1948년의 제헌헌법을 통해 선언됐어요.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기아와 전쟁, 분단을 거치며 이런 생각이 퇴색되고, 국가를 위해 많은 개인이 희생됐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야 합니다.” 개인의 부활을 위해 양 교수가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학교 교육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올바른 지향점과 가치관을 제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변화에는 그 변화가 지향하는 인간상에 맞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교육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지향점을 탐구하고, 국가는 개인이 원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것이 양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다. 사람에 대한 관찰이 법 적용의 기반 양 교수는 법조계, 특히 판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갖춰야 할 능력으로 ‘법 공부에 대한 성실한 태도’와 함께 ‘사람에 대한 관찰’을 꼽았다. 사건을 재구성하고, 당사자의 언행의 의미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은 100억년이 넘는 우주에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인생의 원칙입니다. 나아가, 법조인으로 살면서 언제나 사회보다 그 속의 개인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양 교수와의 인터뷰는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는 가치를 다시 상기시켰다. ▲ 양창수 교수는 ‘법공부에 대한 성실한 태도’와 함께 ‘사람에 대한 관찰’이 법관의 중요 자질이라고 얘기한다. 글/박성배기자 ppang1120@hanyang.ac.kr 사진/최민주기자 lovelymin@hanyang.ac.kr

2016-09 21

[교수]사서(四書) 완역, 24년간의 결실 맺다

1992년 여름, 우리대학 부총장을 역임했던 고(故) 김병채 교수와 대만유학 1세대 동료 학자들이 모여 ‘동양고전연구회’를 설립했다. 이들은 동양철학의 기본서인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온전한 번역을 시작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나가고자 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24년, 지난 8월 드디어 완역본이 출간됐다. 김병채 교수의 권유로 2009년부터 번역작업에 참여해 지난 8년 간 <대학>, <중용>의 수정 작업과 <맹자>의 번역 작업에 참여한 김태용 교수(철학과)에게 25년 간의 완역 작업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김태용 교수(철학과)를 지난 9월 6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태용 교수는 "사서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번역 작업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전공 분야 아니라 망설였지만 책임감에 참여해 김태용 교수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자리를 잡아가던 지난 2009년 고(故) 김병채 교수로부터 번역 작업에 참여할 것을 제안 받았다. 노자(老子)를 전공한 김 교수는 전공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참여를 망설였다고 했다. “<중용>으로 학위논문을 쓰긴 했지만 제 주전공이 아닌 원전을 번역한다는 것, 특히 유가의 가장 중요한 서적인 사서를 번역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그를 번역 작업으로 이끈 것은 사서에 대한 ‘책임감’이다. “모든 동양철학자들의 입문서가 사서예요. 그 책들을 통해 처음으로 한문을 익히고 동양철학의 기본 관념을 배우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사서의 목소리를 ‘원의(原意)’ 대로 전달해 지금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는 책임감은 김 교수를 동양고전연구회로 이끌었다. 김 교수가 참여할 당시 동양고전연구회는 이미 10년 간의 <논어> 번역을 마친 후 2002년 출간하고, <대학>과 <중용>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다. 김 교수는 <대학>과 <중용>의 수정을 맡고, <맹자>의 초역과 완역에 참여하게 된다. 여러 학자가 모여 정확한 번역에 뜻을 모으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러 세대, 여러 대학에서 모인 학자들이니 의견 차도 많았죠. '모두가 해석에 동의할 때까지'라는 원칙 아래 어떨 때는 7-8시간씩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도 다른 작업이 있었다. “의미에 대해 합의한 이후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는 과정이 뒤따랐어요. 옛 문헌을 지금에 옮기다보니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았죠.” 이처럼 여러 단계의 장고를 거쳐 <대학>과 <중용>은 도합 8년, <맹자>는 3년이 걸려서야 세상에 나왔다. ▲사서는 <논어> 번역에 10년, <대학>과 <중용>에 8년, <맹자>의 번역에 3년이 걸렸다. 이후 검토와 수정 작업까지 24년이 걸려서야 완역됐다. 사서(四書) 번역의 방향성과 원칙 동양고전연구회는 기존의 사서 번역과 어떤 차이를 두고 작업했을까. 평균 5-6년이란 긴 시간을 번역에 힘쓴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원의(原意)’에 가깝게 쓰는 것. “우리나라에서 나온 사서의 번역본은 주희(朱熹)의 주석본에 기초하고 있어요. 하지만 주희는 사서가 집필된 시기와 800-900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 학자입니다." 동양고전연구회는 주희의 해석을 벗어나 사서가 집필될 당시에 맡는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사서가 집필됐던 당대부터 나온 모든 주석본을 참고하며 썼습니다. 작업이 더딜 수 밖에 없었죠." ‘현대적 언어로의 번역’에도 공을 들였다. “동양고전연구회의 취지는 ‘동양고전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찾기 위함’이에요. 때문에 현재의 독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를 비롯한 동양고전연구회 학자들은 지난 2014년 번역이 일단락 됐음에도 불구, 출판사 측과 합의해 2년 간의 수정 작업을 추가로 거쳤다. “당시에는 뜸만 들이고 출판은 안 한다고 출판사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어요. 결과물을 보니 그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은 ‘이름을 건다’는 책임감. “학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예요. 자신이 쓴 것에 대해 모두 책임을 지겠다는 거니까요." 우리대학 교수진뿐만 아니라 강원대, 연세대 등 여러 대학의 학자가 모여 자존심을 걸고 작업했다. “'지(知)'라는 글자 하나를 해석할 때도 도덕을 뜻하는 지(知), 앎을 뜻하는 지(知)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에 앞뒤가 맞을 수 있도록 조율하고 통일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결국 ‘원의의 탐구’, ‘현대적 해석’, ‘학자의 명예’라는 3가지 요소는 번역 과정을 지난하게 했던 동시에 더 ‘완전한’ 번역본이 만들어질 수 있게끔한 원동력이었다. 사서(四書), 현대적 감각으로 다가설 수 있길 김 교수는 동양철학이 생소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화 이후 들어온 서양철학의 역사는 기껏해야 100년이지만 동양철학은 최소 500년 이상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른에게는 예의를 갖춘다’, ‘친구 사이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와 같은 것들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에요. 동양철학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쉬울겁니다.” 이번 사서의 완역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김 교수는 <논어>의 한 구절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지식을 넓히고 쌓는 것’을 의미해요. 하지만 정심성의(正心誠意), 즉, 바르게 마음을 가다듬고 그 지식을 사용해야만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서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마음과 성실한 뜻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김태용 교수는 지식을 넓힌단 의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의 '정심성의(正心誠意)'를 강조하며 "학문의 길 또한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글/박성배 기자 ppang1120@hanyang.ac.kr 사진/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6-08 31

[교수]기부 문화 통한 '사랑의 실천' 꿈꾸다

올바른 기부문화의 확산을 바라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발안으로 지난 2000년 시작된 아름다운 재단은 소액기부를 통해 기부의 대중화에 기여한 ‘1% 나눔운동’, 파업 이후 손해배상 판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작한 ‘노란봉투 캠페인’ 등에 성공하며 시민 기부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예종석 교수(경영학부)는 아름다운 재단이 설립 당시의 정책자문단장으로 활동을 시작, 지난 2012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아버지 따라 시작한 자선사업의 길, 아름다운 재단까지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예 교수. 자선사업가셨던 아버지를 통해 ‘사랑의 실천’을 몸에 익혀 왔다. “아버지는 장학재단 영도육영회를 설립한 자선 사업가셨어요. 당시 열악했던 영도에 학교, 도서관 등을 지으면서 자선 사업을 몸소 행하셨죠.” 예 교수는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장학재단 ‘영도육영회’의 이사로 활동했고, 지난 2000년 시작된 아름다운 재단의 창립 멤버가 된다. “아름다운재단을 시작할 때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생을 사신 김군자 할머니께서 5,000만원을 기부하셨고, 성수동에서 구둣방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던 고(故) 이창식 선생님께서 수입의 1%를 기부하기로 약속하셨어요.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초기 자금을 마련했죠.” 아름다운 재단은 ‘아름다운 1% 100인위원회’를 발족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예 교수는 정책자문단장으로 참여해 ‘기부의 대중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86년부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예 교수는 전공 분야인 ‘마케팅’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마케팅의 기본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만족시키는 거에요.” 기부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부를 받는 사람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단 의미다. “모금은 마케팅이 필요해요. 당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사회복지 쪽 전공자가 많았는데, 마케팅 전공자였던 저는 모금 활동에 있어서 어느 정도 비교우위에 있었던 거죠(웃음).” 예 교수는 이후 ‘1% 나눔운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비영리 마케팅’을 통해 기부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며, 아름다운 재단을 공익단체의 선두로 발돋움 시키는 데 기여했다. 예 교수는 동시에 여러 기업의 자문을 맡았던 경험을 살려 기업만의 ‘기부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름다운 재단과 기업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기부자로서의 기업과 이들이 지원하게 될 수혜자 사이를 연결할 사람이 필요했고, 경영학을 기본으로 마케팅을 전공한 제게 딱 맞는 영역이었어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예 교수는 지난 2012년부터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현재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이다. ▲ '1% 나눔운동'과 '노란봉투 캠페인' 등을 성공적으로 이끈 예종석 교수(경영학부)는 현재 아름다운 재단 내에서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가 나아가야 할 길 ▲ 예종석 교수는 기부의 발전을 위해서 '사회환원의 전통 수립'과 '기부 및 봉사의 습관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 교수는 두 가지 차원에서 기부 문화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사회환원의 전통이 성립돼야 한다. 예 교수는 일례로 1910년대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일화를 말했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말년에 회사 지분을 모두 처리한 뒤 자선사업에만 몰두했어요. 자신의 부가 자신의 능력만이 아닌 사회로부터 비롯될 수 있음을 알았던 거죠.” 부의 사회 환원이란 전통은 빌 게이츠에서 마크 저커버그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 교수는 특히 한국은 재벌 중심의 경제 발전을 이룬 탓에 사회구조적으로 이들에게 부가 편중됐던 점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사회환원의 전통이 확립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발전 방향은 기부와 봉사의 ‘습관’ 문제였다. 예 교수는 교육제도의 문제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 교육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교육 여건에는 ‘박애주의의 기쁨이 반영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 “기부와 봉사는 습관처럼 당연한 것이 돼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제도는 이것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기부와 봉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지 않게 하는 것이죠.” 또 예 교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선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모의 솔선수범이 학생들의 기부와 봉사에 대한 습관화에 큰 영향을 끼칠 겁니다.” 사회 환원의 전통 수립과 기부 및 봉사의 습관을 위한 교육. 두 가지가 예 교수가 바라는 또 다른 기부의 형태였다. ‘사랑의 실천’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대학생은 지성인이고 이 사회의 리더입니다. 그걸 잊지 말고 사회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인터뷰를 통해 ‘기부’의 중요성을 설파한 예 교수는 학교 안에서도 ‘십시일밥’ 등의 단체를 지원하며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생이면 이 사회의 지성인이며, 사회로부터 일정 부분 혜택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사회에 자신이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것도 중요하죠.” 예 교수는 ‘사랑의 실천’을 잊지 말라고 재차 부탁했다. ▲ '대학생은 사회의 지성인이며, 사회의 혜택을 받은 자'이기에 다시 사회로 혜택을 환원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예종석 교수는 한양대 학생들에게도 '사랑의 실천'을 당부했다. 글/ 박성배 기자 ppang1120@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6-08 02

[교수]세모난 집 '시선재'를 짓다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기까지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 의뢰인의 요구를 지키는 동시에 건축물에 자신만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건축가의 중요 임무다. 서현 교수(건축학부)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지은 삼각형 모양의 주택 ‘시선재’를 통해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 보였다. 시선재를 지은 과정과 이에 담긴 가치는 서 교수의 신간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짓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시선재’를 짓기까지, 건축가 서현의 첫 ‘집 짓기’ 책 ▲ 서현 교수(건축학부)를 지난 22일 연구실에서 만나 '시선재'와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짓기>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서현 교수는 건축과 사회의 소통을 고민하는 건축가이자 한양대 건축학부의 대표 교수다. ‘효형출판 사옥’, ‘김천상공회의소’, ‘해심헌’, ‘건원재’ 등을 설계했으며 해심헌은 ‘아름다운 제주 건축 7선’에 선정된 바 있다. 스테디 셀러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등 7권의 저작을 펴낸 서 교수. 지난 15일에 신간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짓기>가 출간됐다. 서 교수가 지은 ‘시선재’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세세히 기록한 첫 번째 집 짓기 책이다. 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건축가를 공학 지식을 갖춘 기술자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국내 여러 대학의 건축학부가 공과대학에 속해 있단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사실 건축학을 공대에서 배우는 곳은 동아시아뿐이에요.” 서 교수는 건축학이 공학의 하위 학문이 아니라 말한다. “건축가라면 공학, 인문학, 자연과학 등을 다 조금씩 알아야 해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알아야 건축에 활용할 수 있죠.” 서 교수의 ‘건원재’가 그런 작품이다. 건원재는 충남 공주에 위치한 주택으로 ‘둥근 하늘이 있는 집’이란 뜻을 가졌다. “건원재 중앙엔 동그란 천장이 있어서 1년에 2번, 춘분과 추분에 햇볕이 벽에 동그랗게 들어와요. 절기를 고려해 설계한 결과죠.” 서 교수의 이번 책에는 건축가의 역할과 고민이 도면과 스케치 등의 시각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건축물을 홍보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에요. 홍보라면 언론이나 잡지에 알리는 편이 더 예쁘게 나오죠. 그보다는 이번 건물을 지은 과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서 교수는 “건축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며 “건축학 전공자에겐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다른 이들에겐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아요. 지휘자를 보고 ‘연주는 안하고 봉만 흔드는 사람’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지휘자의 역할은 엄청나죠. 건축가도 마찬가집니다.” 건물에 가치 담는 것이 건축가의 일 ▲ '시선재'는 바닷가를 향하는 모서리가 유리로 돼있어 쉽 게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서현 교수는 "의뢰인이 '자신에 게 주는 선물'이기에 지금처럼 독특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다. (출처: 서현 교수) 그렇다면 ‘시선재’는 어떤 공간일까. 시선재는 삼각 기둥 형태의 건축물로 한 모서리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의뢰인 부부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집을 부탁했다. “선물이라면 그 안에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처음부터 평범한 아파트와는 다른 공간을 짓기로 결정했죠.” 시선재는 특별한 집을 원하는 의뢰인의 의견과 독특한 부지 모양을 살려 삼각 기둥 형태가 됐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외관만이 아니다. 시선재의 창문은 바닷가를 향해 난 ‘모서리’에 있다. 이렇게 모서리에 창문을 낸 것은 바다와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한 것이라고 한다. “창문을 모서리에 내면 설계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이니까’ 어려워도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해결책을 강구한 끝에 건물을 완공할 수 있었어요.” 서 교수는 건축물에 가치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선재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건축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는 매번 달라져요. 주택의 경우 거주자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서죠.” 서 교수는 이런 건축을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연구실을 짓는 경우에도 그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이와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이의 연구 방식이 다를 테니까요. 각자의 연구 방식에 대해 아는 것이 이들을 위한 공간을 짓는데 큰 도움이 되죠.”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생활 공간이란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바퀴를 삼각형으로 만들고 범퍼도 공기 저항을 크게 받게 만들어 놓으면 예쁘다 한들 아무도 타지 않습니다. 건물도 그래요.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간과한 건축물은 가치가 담겼다고 볼 수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서 교수는 이화여대 ECC를 좋은 건축으로 뽑았다. “ECC가 훌륭한 이유는 공간을 매우 잘 활용했단 점 때문이에요. 일반적인 건축물은 길을 막을 수 밖에 없는데, ECC는 길을 막지 않고 양 옆에 여러 공간을 수용했죠. 때문에 버려지는 곳이 없어요.” 미적 요소만큼 실용성이 중요하단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건축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서 교수는 “공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건축가의 일”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건축물로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고 싶다. “지금까지 7권의 책을 펴내며 건축에 관한 좋은 책을 쓰겠다는 목표는 이룬 것 같아요. 하지만 건축가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로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책으로 보여준 것에 걸맞은 건축물을 짓고 싶어요. 후배들이, 제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는 건물을 짓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매 작업마다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서 교수. 그의 목표는 언제나 ‘좋은 건물’이다. ▲ "건축가로서 부족하다"고 말하는 서현 교수지만 그의 건축물인 시선재는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출처 : 서현 교수)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