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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 01

[학생]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필드의 정복자 꿈꾸는 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2002-01 22

[학생]금융감독원 류한은 양

여학생으로 본교 최초 금감원 공채 발탁 끊임없이 공부하는 금융전문가 되고파 금융감독원 류한은(경영 97학번)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던 20세기에 은행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들은 통장과 도장도 없이 은행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출금'을 요구했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었다. 시커먼 복면을 하고 커다란 자루를 든 채, 창구로 뛰어들어 현금을 요구했던 그들은 '대기표'도 뽑지 않았다. 비록 성공사례는 드물다 해도 지금까지도 영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들의 활약상은 빈한한 낭만주의의 표상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이제 복면을 두른 사람들이 아니다. 비록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며 은행내에 비치된 통속잡지들을 읽지는 않지만 그들은 은행문을 점잖게 열고 들어와 '현금'이 아닌 '장부'를 요구한다. '경제검찰', '금융권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직원들이다. 금감원, 공정위와 함께 양대 '경제검찰'로 활약 지난 해 가을, 금감원 공채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류한은(경영 97) 양은 금감원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매우 겸손한 소개말을 던진다. "금융권의 경영에 대해 위법행위가 있는지 조사, 검사, 감독하는 일들이지만 이것은 금융소비자, 넓게는 모든 국민에 대한 봉사,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들은 공무원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지난 1997년 제정된 '금융감독기구의설치등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기존의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그리고 신용관리기금 등 4대 금융감독기관이 1999년 통합되면서 발족한 것이 지금의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금융감독위원회 또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지시나 위임에 의해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현황에 대한 각종 검사를 수행한다. 이는 금융시장의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IMF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증대하고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금감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업무의 성격상 철저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기에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것으로 압니다. 일종의 감사기관이므로 운영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기관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원칙을 갖고 있지요.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경제부패사건에서 관련 정부기관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지만 금감원의 경우 최종적으로 혐의가 인정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금감원의 청렴한 분위기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비록 연수 중이라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금감원 직원들은 주식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선배들이 그러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기업으로 가라, 그러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려거든 너의 직장은 아주 멋진 선택이다'라고 말입니다." 금감원 공채 실시 이후 여학생으로는 본교 최초 입사 지난 해 가을에 있었던 금감원의 제3기 공채에서 본교는 모두 6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류양 외에도 법학과의 김철영군, 김신영양, 최홍수군, 경제학과의 김미선양 그리고 경영학과의 권순표군이 류양과 함께 합격한 입사 동기들이다. 이들은 같은 과 학생들의 대다수가 사법고시나, 공인회계사 등 전통적인 진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전공에 대해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금감원이 공채를 실시한 이후, 그녀는 김미선, 김신영양과 함께 여학생으로는 본교 출신 최초로 금감원에 진출하는 영예도 안았다. 때문에 진로에 대한 조언을 바라는 여러 후배들의 '즐거운'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금감원을 생각하고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니에요. 대학원 진학을 꿈꾸다가 낙방의 쓴맛을 보고 나서 지금까지 했던 공부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저는 스스로 정말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제가 입사했으니 누구든지 도전하면 되지 않겠어요?" 참으로 겸허한 조언이다. 경제난 속에 극심한 취업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국내 최고의 금융감독기관에 입사한 류양이 실제로 취업을 위해 50여 곳에 원서를 넣고 단 두 번의 면접 기회를 가졌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한양인, 자부심으로 도전하라 금감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법학 중 한 가지의 전공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1차 서류전형을 통해 선발된 10배수의 응시자들이 2차 필기시험을 치를 자격을 받는다. 필기시험은 영어와 논술 그리고 전공시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면 까다로운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 류양이 털어놓는 비결이란 무엇일까? "점잖은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비교적 내성적일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매우 외향적입니다. 우연히 길에서 한국은행에 다니는 선배를 만났을 때, 그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조언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함도 있지요. 취업을 희망하는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조언을 얻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한양대요? 이 땅에 우리 선배들이 없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되요."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류양은 입사한 직장의 일들이 여성으로서 감내하기에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하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힘겨운 순간이 닥쳤을 때 여성들이 남성보다 쉽게 퇴사하는 경향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분노 반, 격려 반이다. "직장생활에 지쳤을 때, 제발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너무 제한된 사고를 갖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과 전망들을 생각했으면 해요. 또한 높은 점수와 좋은 학점만을 회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당신의 회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자신감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삶에 포기란 없다' 강조하는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일찍부터 유별났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봉사 수강이 불가능한 휴학 기간에도 실무자를 졸라 '세무서 부가가치세 신고업무'에 대한 사회봉사를 하기도 했고, 지난 97년의 대선 때에는 선거감시 봉사활동을 하는 등 한낱 점수와 학점보다 현장에 대한 경험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는, 참으로 고집스런 그녀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온 몸으로 사회 속에 뛰어든 그녀의 모습에서 '인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한다. '대기표'를 뽑아들고 누군가 자신의 번호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이, 그의 삶은 이미 청춘이 아니다.

2002-01 15

[학생]한국무용계 긴장시킨 `물 오른 춤꾼`

한국무용가 김신아(무용학과 95) 양 지난해 여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을 지켜본 평론가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다. 평론가들이 우수한 신예 무용가들을 선정, 초청하여 무대에 올리는 위 공연에서 스물 다섯 살, 최연소 나이의 어린 춤꾼이 보여준 열정과 에너지가 모든 관객과 평론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신아를 두고 '이번 공연이 찾아낸 보석 같은 존재'라 호평하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다. 안무작 포함 출연작만 30여편 "당신 신인 맞아?" 가녀린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 반듯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박또박 말을 잇는 그녀를 두고 풋풋함이 감도는 '신예무용수'라 호칭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1995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흰 옷'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편이 넘는 작품들에 출연했던 경력은 물론,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5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한 바 있는 그녀다. 그렇다고 경력상의 이유를 들어 '중견'의 대접을 받기에는 스물 여섯의 나이가 좀 억울하다. "다소 어린 나이에 일찍 안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지도해주신 김운미 교수님의 큰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신아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레슨을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한국무용계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운미 교수의 지도와 함께 남다른 근면함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서울캠퍼스 무용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가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보수적이던 집안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잠시 무용을 접었다가 고교 2년에 춤에 대한 넘치는 '끼'를 결국 이기지 못해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음악만 들으면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추었대요. TV를 봐도 노래하는 가수보다 그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 관심이 있었다니까요." 무릇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누워 있다가도 몸이 욱신거려 벌떡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를 누가 말리랴. 타고난 열정 탓에 결국 춤꾼의 길로 접어든 그녀가 일찍부터 '한양대'로 자신의 입지를 정하고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한국무용의 대가 김운미 교수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던 탓이다. 김신아는 원대로 합격 후부터 지금까지 김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남다른 예술적 광기와 기개 무용계가 김신아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사)한국무용연구회에서 주최한 '신인 안무가전'에서 작품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하며 연기상을 받았다. 그녀는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된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존경하는 선배인 지제욱 동문이 안무한 이 작품에서 김신아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지난 2000년 같은 '신인 안무가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안무한 〈얼음 위의 영혼Ⅰ〉을 내놓으며 안무상을 수상해 안무를 맡기에 다소 어린 나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김신아는 1999년 이후에만 5편의 작품을 창작,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지난 해 있었던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출품작인 〈내가 깊은 곳에서〉는 한국무용계에 '김신아'라는 이름 석 자를 새롭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론가 성기숙은 "폭발하는 끼와 예민한 감각, 도발적 실험을 서슴치 않는 용기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안무의 저력 등 김신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밝히며 그녀를 '한국창착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기대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김신아의 저력은 그녀가 지닌 예술적 광기에 있다. 그녀는 기존의 고답적인 한국무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존의 문법에 적응하기보다는 왜곡과 해체, 굴절을 일삼아 새로운 코드와 기법을 창출해 낸다. 지난해 직접 안무하여 '젊은 무용가전'에 출품한 〈내가 깊은 곳에서〉를 지켜본 성기숙은 이를 두고 "한국춤의 기본원리와 호흡체계가 단단히 녹아있다.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무당적 기질에 몽환적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춤만 추겠습니다" 김신아는 자신의 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성실함을 두번째는 체력을 그리고 세번째는 스승이다. 춤이란 화가처럼 앉아서 어깨품을 팔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적 범주의 예술이 아니다. 몸을 부려 하루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처럼 춤이란 움직이고 뛰어야 '밥값'을 하는 가장 고된 예술의 부류다. 공연이 닥치면 하루 12시간 이상 강행되는 연습과 훈련을 이겨내야 하고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만들어진 몸을 잃지 않기 위해 4시간 이상 꾸준한 연습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 별을 보며 등교해서 저녁 별을 보고 귀가하는 나날이 많았어요. 하루는 밤 늦게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에 언뜻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혀가 축 처져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거에요. 순간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일이라 버틸 수 있었어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수발을 해야했던 시간만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레슨에 빠져 본 적이 없다는 김신아의 근면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녀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김신아가 스스로 토로하는 자신의 또다른 저력은 강인한 체력이다. 그토록 힘겨운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역한 의지와 각오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체력이 좋아 보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 역시 김신아의 체력과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평론가 성기숙은 말한다. "솔로로 20여분 이상을 무대에서 견뎌낸다는 것은 중견무용가로서도 그리 쉽지 않다. 김신아는 20여분 이상을 홀로 춤추고도 언제나 거뜬한 모습이다. 광기서린 그녀의 춤의 에너지가 넘쳐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김신아가 인터뷰 내내 빠뜨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은 스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는 김신아가 밝히는 세 번째 저력이기도 하다. 김신아는 올해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김운미 무용단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사사한 김운미 교수에 대해서는 "어머님 같으신 분이세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엄하시지만 늘 자상하시고 저를 가장 예뻐하세요. 교수님 제자들은 모두 교수님이 자신을 가장 아끼시는 것으로 믿어요."라고 농담 어린 애교를 던진다.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수님의 지도와 주위 동료들의 덕분이라 밝히는 겸손함도 예사롭지 않다. '죽는 그 순간까지 춤만 추겠다' 말하는 그녀의 각오가 섬뜩하다.

2002-01 08

[학생]`지성이면 감천` 장애우 삼수끝 법대 합격

시각장애 이유로 교대 입학 거부당한 김훈태 군 사회 편견 바로잡는 판사되고자 법대로 진로 선회 "신체적 불이익은 노력 여하에 따라 나를 발전시키는 자극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오른쪽 눈만으로는 한 시간 이상 책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책을 놓아야 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회마저 박탈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고자 판사의 꿈을 위해 절치부심의 자세로 노력했습니다." '양쪽 눈 교정시력 0.4 미만인 자는 불합격 처리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지난 2000년 대입특차모집에 합격하고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S교대 입학을 거부당했던 장애 학생이 2002년 정시모집에서 본교 법대에 높은 점수로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이와 같은 휴먼스토리의 주인공은 후천성 시각장애 6급인 김훈태 군. 김 군과 가족은 지난 99년말 합격을 취소한 S교대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 2000년도 입학 자격을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한번 입은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 법. 학교에 정을 두지 못한 김 군은 바로 휴학 신청을 한 뒤 "장애인 입장에서 법정 소송을 벌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며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인해 2001학년도 수능시험은 포기한 김 군은 2년 동안 대학입시에 매진하며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데 '대입 삼수'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 군은 어릴 때 백내장 수술이 잘못돼 중학교 시절부터 왼쪽 눈이 서서히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소망해 오던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0년 S교대 특차지원에서 합격의 영광을 손에 쥐었었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의 아픔을 겪은 그는 "시력을 잃은 것보다 초등교사의 꿈을 잃어버린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며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장애우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앞으로 음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다짐했다. 그는 졸업후 사회적 편견을 바로 잡는 판사가 되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어린 새싹들의 꿈을 키우고자 했던 초등교사에서 법조인으로 삶의 목표를 수정한 김 군은 불우한 사람들의 꿈을 근거없이 꺾어버리는 세상을 바로 잡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김 군이 법학을 공부해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지켜내는 '파수꾼'이 되려는 것이다. "눈이 안 좋아 법학 공부가 쉽지 않겠지만 또 한번 장애인의 인간승리를 이뤄내고 싶다."는 당찬 아들에게 아버지 김종원 씨는 "혼신을 다하는 자세로 늘 배우고 익히려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과거의 어둠이 올 해에는 빛이 되어 더욱 기쁘다. 앞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뜻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격려했다.

2001-12 01
2001-10 15
2000-11 15

[학생]21세기는 여성의 시대

2002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 열려

2000-11 01

[학생]활발한 한양의 교류

2002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