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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8 인터뷰 > 교수 중요기사

제목

함께한 17년, 일구어 낸 성과를 바라보며

기부문화의 정착에 함께한 예종석 교수

채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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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5CZP

내용

기부문화 확산, 공익기금 조성,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아름다운재단’이 올해로 17주년을 맞았다. 특정 개인이나 기업, 종교기관의 지원 없이 시민들의 참여로 설립된 이 재단은 사회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공익활동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이런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재단의 활동에 창립 초기부터 참여해온 사람이 있다. 2000년부터 아름다운재단에 참여하고 2012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2017년 2월까지 봉사한 예종석(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뉴스 H가 예종석 교수를 만나봤다.

 
흙 속에서 피운 꽃


“뿌듯하고,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창립 초기부터 함께한 단체의 약진을 바라본 예종석 교수의 회고다. 재단이 출범한 2000년부터 창립에 참여하고, 정책 자문단장을 거쳐 기부문화연구소장을 역임한 후, 재단 이사를 거쳐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아름다운재단’을 이끌었다. “그 당시 한국의 대다수가 바라보는 일반적인 재단의 위치는 재벌의 상속수단,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조세피난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복지정책의 그늘에 놓인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싶었던 예 교수는 어려운 길로 발을 내딛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처음 들어보는 신생 재단에 기부를 하겠습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새로이 출범한 재단이라는 핸디캡을 떠 안은 채 업무를 이어 나가던 중,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께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 5천만원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기부를 종자돈으로 재단의 사업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던 당시의 예종석 교수. 재단이 마주한 현실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박진영 기자)

가까스로 재단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애물은 많았다. “보수정권에서 아름다운재단을 안 좋게 봤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재단을 거쳐 정계로 진출한 인사들이 대부분 야권에서 활동해서 보수정권에선 당연히 재단을 좋게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정치 이념에 관련되지 않는 일을 하고, 관여하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격과 압박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린 예 교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기업의 기부가 끊기기 시작하고, 극우보수단체들이 심심치 않게 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도 할 때였습니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고소고발도 15건씩이나 받았고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역량을 기르는 것. 예종석 교수는 어떠한 여건에서도 할 일을 할 수 있는 재단이 되기 위해 체질을 바꿔야 했다고 한다. “역량을 길러서 어떠한 난국에서도 소외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목적사업을 해 나갈 수 있는 재단이 되어야 했습니다.” 다액 소수의 기부에서 소액 다수의 기부로, 준조세성 기부에서 자발적 기부로, 기업 기부에서 개인 기부로. 아름다운재단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의 판도를 바꿔 나갔고, 고정 기부자들을 확보해 나갔다.

2017년 현재, 아름다운재단은 크게 성장했다. “많은 참여자들 덕분입니다. 재단에 참여한 수많은 기부자들과 봉사자들이 없었으면, 재단의 오늘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재단에 관련된 모두가 함께 일구어 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많은 도전, 그걸 위한 사명감

위에서 말한 아름다운재단의 성과 외에도 예종석 교수의 족적은 매우 많다. 기업과 비영리 단체 양 쪽을 오가며 수많은 경영에 참여했다. 교수로서의 업무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위의 업적들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종석 교수는 사명감이라고 답했다. “기업과 비영리 섹터, 양 쪽을 이해하고 중간에서 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주최하는 기부문화 관련 연구자료 발표행사인 기빙코리아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 예 교수는 기업과 비영리 단체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 교수는 양자 간의 간극을 좁히고 기부문화를 개선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인의 기부는 대부분 법인의 돈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의 홍보 효과를 위한 수단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 활동으로서 기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인 기부에서 개인 기부로, 다액소수의 기부에서 소액다수의 기부로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사명감을 차치하고라도, 예 교수는 이러한 활동을 자신이 좋아하기에 큰 부담 없이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즐겁게 하는 일은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힘든 일이지만, 제가 좋아하고 즐기던 일이었으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어서, 그리고 즐거워서. 예종석 교수는 본인이 접한 다양한 길들을 걷게 된 이유를 단 두 가지로 설명했다.

이러한 업적을 쌓는 데 필요한 경영학적 소양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예종석 교수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껴 경영학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공부할 당시에는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경영대학에서 소비자의사결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큰 매력을 느꼈어요.” 경영학에서 소비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흥미를 느꼈다는 예 교수는 경영학에 입문하고 나서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을 만나는 행운 또한 얻었다고 한다. “그 당시 최고의 교수들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학자들이 한 대학에 모여 있기 쉽지 않았는데, 저는 학생으로서는 매우 행운아였죠.”
 
가고자 하는 곳으로, 열심히 그리고 또 열심히 달려라

예종석 교수는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열심히 하세요. 꿈을 이루고 싶다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남들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예 교수는 노력 위에 먼저 생각할 몇 가지 것들을 주문한다. “지금 막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은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시기에 살게 될 겁니다. 현재도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변화의 물결이 진행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예정입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잡으세요.” 
 
예종석 교수는 2019년 2월 정년을 맞는다. 이제는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인생을 살 계획입니다. 물론, 그것도 제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할 겁니다.” 전업 작가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예 교수는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번잡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일해본 경험이 새로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그 경험들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수, 기업의 경영자문역, 기부문화운동가, 비영리단체 경영자, 마케팅 전문가, 시사 칼럼니스트, 음식문화평론가, 체육단체간부 등 수많은 직함을 갖고 활동을 했던 예종석 교수는 경험을 살려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예종석 교수가 써 내려갈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된다.
 
▲예종석 교수는 다양한 경험을 살려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예정이다.


글 / 사진 채근백  
        cormsqor1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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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댓글 1

  • 동문2017/11/07

    예교수님 존경합니다 언젠가는 한양대 총장으로서 한국 제1의 대학으로 우뚝 서게 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