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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1 인터뷰 > 동문

제목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다

디자인 이유(DESIGN EU) 대표 공간디렉터 박은아 동문(산업디자인 00)

김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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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B0YP

내용

사람들은 누구나 공간 속에서 생활한다. 휴식을 위한 주거공간부터 회사의 업무공간, 여가를 위한 문화공간까지 그 범위도 다양하다. 공간의 내부는 밖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외관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물의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선 후에야 비로소 그 건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한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바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딱딱하고 차가운 공간도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면 포근하고 아늑한 곳으로 변화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공간들에는 사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있다. 사용자가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은아 동문(산업디자인학과 00)을 만났다.
 

모교를 탈바꿈하다

 최근 ERICA캠퍼스에는 단과대학별 PBL라운지가 새롭게 조성됐다. 협소하고 노후했던 기존의 모습에서 탈피해 오직 학생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10개의 각 단과대학별 라운지가 전혀 다른 컨셉으로 꾸며져 라운지를 찾는 학생들에게 쏠쏠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마치 카페처럼 휴식과 학업이 모두 가능해 라운지를 찾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건물의 주 사용자인 학생들을 전적으로 고려한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은아 동문(산업디자인 00)의 손끝에서 탄생했다.그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한양대 각 사업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  박은아 동문이 직접 디자인한 ERICA 캠퍼스 언론정보대학 라운지 모습 (사진 출처: 박은아 동문)

각 단과대학의 특성과 주 사용자를 고려한 환경개선이 이번 디자인의 쟁점이었다. 박 동문은 언론정보대학 ‘확산’, 예체능대학 ‘표현’, 디자인대학 ‘변형’ 등 각 단과대학의 컨셉트를 직접 선정했다. 그 역시 학부 시절 4년을 보냈던 공간이기에 학생들의 요구와 불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감재, 그래픽, 조명과 가구까지 고민을 거듭하며 세심하게 선정했다. “모교와 후배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기회가 어디 흔할까요? 14년간 디자인한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무척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였습니다.”
 
▲ 박은아 동문이 직접 디자인한 ERICA 캠퍼스 디자인학 라운지 모습 (사진 출처: 박은아 동문)


확고한 꿈 그리고 도전

‘집을 짓고 싶다’는 박 동문의 꿈은 19살부터 이어졌다. 학창시절에는 막연하게 건축가를 꿈꿨으나 점점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이 옮겨 갔다.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학부시절 내내 건축학과 수업을 함께 들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즐겁게 학업에 임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 덕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인테리어 설계회사에 입사했다. 현업에서 실무를 익히며 기본기를 쌓았다. 5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업계 특성 상 하나의 프로젝트나 설계에 돌입할 때마다 며칠씩 밤을 새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박 동문은 매 순간이 즐거웠다. “사실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죠. 일찍이 확고한 꿈을 찾았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데다 그 일을 즐기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박은아 동문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그 일을 즐기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는 자신만의 신념을 밝혔다.

하지만 29살의 박 동문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직장, 안정적인 직급을 내려놓고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나만의 작품이 아니라 찍어내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고민 때문이었다. 스무 살부터 10년을 오직 꿈을 향해 달려왔기에, 스스로 휴식이 필요한 순간임을 직감했다. 많은 이들이 말렸지만, 언제나 그랬듯 박 동문은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반 년을 뉴욕에 머무르며 오직 공부와 휴식에만 집중했다. 잊고 지냈던 디자인적 감수성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휴식이 있었기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맨 땅에 헤딩하듯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낯선 미국 땅에서 바닥부터 다시 디자인에 도전했다. 외국인 인턴으로 시작해 정규 디자이너로 인정받기까지 꼬박 2년 반이 걸렸다. 피나는 노력 끝에 박 동문은 결국 타국에서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자리잡았고, 그제야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공간,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한국에 돌아와 거취를 고민하던 박 동문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에 대한 무한한 애정,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사용자를 배려하는 박 동문의 섬세한 감각은 금세 입소문이 났다. 감사하게도 그를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고, 지난 2012년 인테리어 설계회사 ‘디자인이유(Design EU)’ 설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박 동문은 “디자인이유는 나만의 소신이 담긴 이름”이라고 말하며 “'그 공간의 사용자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제 디자인의 이유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10년이 넘는 디자인 외길 인생, 그러나 박은아 동문은 여전히 디자인이 즐겁다.

박은아 동문이 공간을 디자인할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공간의 사용자’다.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나아가 사용자가 행복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 그는 주거공간부터 오피스 및 상업공간까지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3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부터 3000평에 달하는 공간까지 그 크기와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모든 디자인에 최선을 다해 임한다.

디자인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어떤 제안도 거절해 본 일이 없다. 물론 힘든 순간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는 결국 정해진 예산 내에서 공간을 설계해야 하기에 디자인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다. 언제나 따라오는 창작의 고통과, 여성으로서 견뎌야 하는 크고 작은 수모도 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인이 즐겁다는 박 동문이었다. 그에게 디자인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결코 없을 테니, 어려운 순간에도 즐겁게 자신 있게 헤쳐 갈 생각입니다. 디자이너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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