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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인터뷰 > 동문

제목

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자 박종현 동문(법학과 92)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

김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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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t4jQ

내용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시작으로 70년간 대한민국의 법조인을 배출했던 사시제도는 59회 사법시험을 끝으로 폐지됐다. 배경에 관계없이 오직 시험 결과만으로 선발하는 희망의 사다리였고, 또 수많은 고시낭인을 양산해 고급 인력을 낭비하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제도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이번 사법시험에서 한양인 7명이 당당히 합격을 거머쥐었다. 그중 최고령 합격자 박종현 동문(법학과 92)을 만났다.


15년의 공부, 포기는 없었다


박종현 동문이 지난 11월 7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9회 사법시험 3차 합격자 명단 55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박 동문은 마지막 사법시험의 최고령 합격자가 됐다. 합격하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20대 끝자락에 뛰어들어, 30대 전부를 보내고, 4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법조인의 꿈을 이뤘다. 우직하게 사법시험 하나만을 목표로 달려온 시간이었다. “우선 꿈을 이뤄서 기쁘죠. 끝내 좋은 결과를 얻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최고령 합격자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어 감사하고요. 요즘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종현 동문(법학과 92)이 "부끄럽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대학 시절에는 뚜렷한 꿈이 없어 사법시험에 큰 뜻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온 20대 후반에서야 ‘전문성’을 갖춘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학과를 나왔으니 법조계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박 동문은 결혼과 함께 2002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에 뛰어 들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와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했다. 식사 시간과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에 몰두했다. 적어도 30분은 매일 운동했다. 사회와 단절되어 학원과 독서실만 오가는 생활이기에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분명 초조할 때도 있었지만 박 동문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이러다 영원히 사회에 못 나가는 건 아닐까 불안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하늘도 언젠가 제 뜻을 이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타고난 긍정적인 마인드 덕에 긴 시간 잘 이겨냈죠.” 또 박 동문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든든한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5년간 한결같이 박 동문을 응원해 준 아내의 공이 컸다. “한 번도 제 공부에 대해 불만이나 비난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공부에 소홀하면 제 할 일은 공부라며 저를 이끌어 줬습니다. 가족 덕분에 저도 목표를 이룰 수 있었네요.”
 
길었던 20대의 방황, 끝내 꿈을 찾다
 
박 동문은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스스로의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남들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미팅도 하고 학회도 하는 딱 평범한 학생. 그런데 공부보다는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 때부터 마음을 잡고 법을 공부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박 동문은 ”종종 장학금도 받았고 주어진 일은 열정적으로 해냈다”며 “단지 스스로 원하는 일이 뭔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뚜렷한 목표나 꿈을 찾지 못한 채 대학 생활 4년을 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동문의 시작이 남들보다 조금 늦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한 번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뒤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박종현 동문은 "특유의 유쾌한 성격 덕에 힘든 순간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의 경우 1차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다음 해 1차 시험을 면제 받는다. 2차 시험을 여섯 번 보고나니 12년이 훌쩍 흘렀다. “돌아보니 15년이네요. 처음부터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1차에 합격하면 2년의 기회가 주어지니 포기가 쉽지 않았다.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날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특유의 유쾌함과 확고한 소신이 그를 일으켰다. 박 동문은 오히려 함께 스터디하는 어린 친구들을 독려했다. 탈락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펜을 들었다.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내는 성격 덕분에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
 
박 동문은 꿈에 그리던 사법연수원 입소만을 앞두고 있다. 다음 해 3월 연수원 입소 전까지 박 동문은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생각해보니, 배낭 여행 한 번을 못 갔어요. 공부하면서 그게 큰 한이 되더라고요. 유럽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예비 법조인으로서 마음가짐을 전했다. "연수원에 입소하면 또 열심히 공부해야죠. 한양의 구성원으로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요. 지금 이 마음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박종현 동문은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법조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사회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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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댓글 2

  • 동문2017/11/24

    굿 뉴스 감사합니다,

    화이팅2017/12/01

    고생많으셨습니다. 훌륭한 법조인 되시길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