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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1 인터뷰 > 동문 중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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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미술로 심신을 진단합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의 저자 박광혁 동문(의학과 92)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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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hyfS

내용

지난 11월 개봉해 아직까지도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러빙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고흐가 사망한지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반 고흐의 정확한 사인(死因)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여러 작품을 통해 당시의 의료 실태는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명화를 통해 의학 지식을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고자 내과 의사 박광혁 동문(의학과 92)이 최근 <미술관에 간 의학자>라는 책을 냈다.

                                                
                                                     
그림 속에 스며든 화가의 모습
▲<미술과에 간 의학자>의 저자 박광혁 동문(의학과 92)을 지난 28일 중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늦은 저녁시간. 노곤한 몸을 이끌고 많은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너나 할 거 없이 ‘압생트’(쑥을 주원료로 만든 녹색의 도수가 높은 술)를 주문한다. 공허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마시는 술 한 모금. 그러나 당시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고 발작을 일으키는 유해 물질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펴지며 결국 20세기 초 유통이 금지된다. 그리고 당시 압생트를 즐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빈센트 반 고흐. 1889년에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의 노란색 코로나는 그가 압생트에 중독돼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아 그렇게 표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 이는 잘못된 정보에요. 당시 고흐는 간질을 앓고 있었고, 간질을 치료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코로나 현상이 보인 거죠. 그리고 실제 압생트의 독성은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고흐가 총상을 입고 쓰러진 당시 그를 목격했던 ‘가셰 박사’는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큼 고흐와 절친한 사이였지만, 의사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해 고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징계 및 범법 사유에 해당하는 의료 과실이죠. 비록 가셰 박사가 정신과 의사이긴 했지만, 그 후 고흐는 30시간이나 살아있으며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니까요.”
▲(왼쪽부터)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가셰 박사의 초상>. 고흐는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밤하늘에 요동치는 소용돌이로 묘사했으며, 그의 작품에 노란색이 많은 이유는 그가 황시증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초상화 장르에 대한 고흐의 실험정신이 담긴 작품이며,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 이후 종적을 감췄다. 
▲(왼쪽부터)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나이인 37세에 세상을 뜬 '툴루즈 로트레크'의 모습과 그가 그린  <커피 포트>.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으로 키가 152cm에 불과했던 그는 성장이 멈춘 자신의 짧은 다리와 큰 머리, 통통한 몸을 커피포트에 빗대어 그렸던 19C 말의 화가로 고흐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미술작품으로 상처를 치유하다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했던 박 동문은 우연한 기회에 ‘프로메테우스(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인해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당하는 신화 속 인물)’의 그림을 보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당시 글로 된 이야기보다 그림 한 편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느꼈어요. 또 그 이후로는 그림에 관심을 갖고 틈틈이 갤러리도 가곤 했죠.”

대학 시절 떠난 유럽 배낭여행은 그를 서양 미술에 더 매료되고 빠져들게 만들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본 것이 바로 그 계기였다.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리고 있는 해당 작품 앞에서 박 동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고교 시절 신촌에 볼일이 있어 나갔던 적이 있어요. 그때가 1987년 6월이었는데 당시 제 앞에서 한 청년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이한열 열사더군요”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앓았다는 박 동문은 작품에 나온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때 확신했어요. 진짜 나를 힐링 해주고 치유 해주는건 그림이구나.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도 스트레스를 풀러 미술관에 갔어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였던 들라크루아는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조국의 승리를 위해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지금은 내과 개업의로 자리를 잡았지만, 박 동문은 오후 시간대 학교나 기업체∙ 관공서 등에 강의를 하러 다니기도 한다. 지난 2010년 처음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시작한 강의가 점차 인기를 끌며 유명세를 타게 된 것. 또 현재는 ‘모나리자 스마일’이라는 비공개 모임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여러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해 해당 미술 작품을 설명하기도 한다. “명화로 보는 도박, 명화로 보는 갑상선, 명화로 보는 키스 등 매번 다른 주제를 정하는데 저 스스로도 그 과정이 정말 즐겁고 행복해요. 평소에도 틈이 날 때마다 늘 강의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죠”  
▲지난 2016년 9월부터 진행해 온 '모나리자 스마일' 모임. 박광혁 동문은 해당 모임에서 강의해 온 내용과 그동안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이번 <미술관에 간 의학자>책을 편찬했다. (출처: 박광혁 동문)
 
미술을 향한 무한한 애정 

지금까지 의사의 길을 걸으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박 동문.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엔 일에 쫓겨 여유 없이 살아왔지만 개업 후 조금씩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미술관을 가고 꾸준히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바쁘고 여유가 없어도 늘 옆구리에는 미술책을 지니고 있었어요. 이게 저에겐 정말 큰 힘이 됐죠.”    

이렇게 자신의 삶에 큰 버팀목이 돼준 미술. 그만큼 박 동문은 앞으로도 더욱 많은 활동을 하며 역량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화가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분들의 작품을 다룬 책을 한 권 더 써보고 싶어요. 또 앞으로 융∙복합적인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강연하고 싶기도 해요.”
▲박광혁 동문은 "우리나라 화가들 중엔 반 고흐처럼 물감 값이 없어서 그림을 못 그리는 분들도 많다"며 "이런 분들을 위한 전시 기회와 지원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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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댓글 1

  • 한양대화이팅2018/01/05

    의학과 미술의 조화,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