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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9 한양뉴스 >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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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첫 동계올림픽과 함께한 4人의 한양인

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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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9y6V

내용
 
지난달 9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역대 최고의 겨울올림픽’이라는 찬사와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 각 종목에서 활약한 선수들이다. 그렇다고 동계올림픽을 세계인의 즐거운 축제로 이끈 사람들의 훈훈한 뒷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다. 개막식부터 폐회식까지, 영하권의 날씨 속에 진땀을 흘리며 올림픽과 함께한 한양인 김천우(국제학부 3), 라대한(사회학과 3), 윤소민(국악과 1), 차영준(체육학과 3) 씨를 만났다.
 

‘하나된 열정’, 평창올림픽
 
평창은 지난 2011년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약 7년간의 준비 끝에 93개국 2,925명의 선수들을 성공적으로 맞이했다. 선수단 외에도 수많은 올림픽관계자들이 평창에 모였다. 그중엔 한양인도 있었다. 김천우 씨는 ‘플레이백 오퍼레이터(Playback Operator)’로, 라대한 씨는 자원봉사자로, 윤소민 씨는 폐회식 거문고 공연 연주자로, 차영준 씨는 경기 티켓 매니저로 활동했다. 길고도 짧았던 17일 동안 ‘하나된 열정’으로 평창올림픽을 꾸려나간 4명의 한양인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네 사람에게 평창을 묻다
 
Q. 평창올림픽에서 맡은 업무는 어떤 것이었나요?
 
윤소민(이하 소민): 지난달 25일 폐회식 제1공연 ‘조화의 빛’ 때 거문고 연주를 했어요. 80명의 연주자들 중 한 명이었죠. 지난해 11월에는 학교에서, 12월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그리고 평창에 와서 8박 9일 동안 합숙 연습을 진행하고 공연에 올랐습니다.
 
▲윤소민(국악과 1) 씨는 폐회식 '조화의 빛' 공연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이 어우러져 멋들어진 소리가 평창에 울려펴졌다. (출처: 2018 평창사진공동취재단) 

차영준(이하 영준): 저는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스키점프 등 설상 경기들이 열리는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에서 근무했어요. 주 업무는 입장권 기획이었습니다. 판매가 부진한 비인기종목 티켓을 판매할 때 인기가 많았던 평창 기념품을 함께 증정해주는 식으로 홍보했죠.
 
김천우(이하 천우): ‘플레이백 오퍼레이터’는 관제탑에서 전광판에 송출될 콘텐츠를 제작하고 영상을 띄우는 역할을 해요. 저는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보드 종목 경기가 열리는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 있었어요. 제가 속한 ‘스포츠 프레젠테이션(Sports Presentation)’ 팀은 경기에 필요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담당하는 팀이었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플레이백 오퍼레이터(Playback Operator)로 활동한 김천우(국제학부 3) 씨가 관제탑에서 일하는 모습 (출처: 김천우 씨)

라대한(이하 대한): 저는 ‘이벤트 서비스 팀’의 자원봉사자로 있었어요. 주로 하는 일은 평창올림픽 플라자에 머무르며 관중 안내를 돕는 거였죠. 그 외에도 경기장 게이트 앞에서 관객들을 안내하고, 경기장 구역 관리도 했어요. 아, 그리고 사진도 엄청 많이 찍어드렸어요!
 
Q. 어떤 계기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천우: 스포츠를 사랑하거든요! 국제행사 경험이 몇 번 있어서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그것 때문에 다시 지원한 건 아니에요(웃음).
 
대한: 저는 사회복지 쪽에 관심이 있어서 패럴림픽 자원봉사자로만 신청했다가, 올림픽도 같이 하게 됐어요. 근데 일이 고되기도 하고, 개인 스케줄 때문에 패럴림픽 봉사는 못 가게 됐네요.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라대한(사회학과 3) 씨(사진 왼쪽). 관객 안내에 전념하느라 경기 관람과 자유시간을 누리지 못한 게 아쉽다고 전했다. 

소민: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학교로 연주자 섭외문이 들어왔어요. ‘이건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바로 신청했죠. 거문고 연주를 하는 사람이 워낙 많지 않아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어요.
 
영준: 처음에는 올림픽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일한 부서에 먼저 있던 지인이 채용 공고가 났다고 말해줬어요. 우연찮게 일을 잡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요.
 

감동과 환희의 순간들
 
Q. 올림픽 현장에서 겪으셨던 특별한 일들을 공유해주세요.
 
소민: 연습했던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사진으로만 대화하는 ‘고독한 카톡방’을 저희끼리 만들어서 놀기도 했죠. 폐회식 때 성화 소화 후, EDM(Electronic Dance Music) 파티가 열렸었는데, 그 때 외국 선수들이랑 같이 춤을 추고 사진도 찍어서 즐거웠어요.
 
영준: 제가 담당했던 종목 중에 북한 선수들과 경호원들이 경기를 보러 왔어요. 경기 후 출구 쪽에서 다시 만났는데, ‘언제 또 북한 선수들을 만나볼까’란 생각에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죠. 궁금한 걸 여쭤봐도 되는지 물었더니, “일 없다(북한말로 ‘괜찮다’)”고 하셨어요. 북한에서도 스마트폰을 쓰는지 여쭸는데, “물론이죠!”라면서 ‘천리안 스마트폰’을 쓴다고 얘기해줬어요.
 
▲선수들을 마주칠 기회가 많았던 차영준(체육학과 3, 오른쪽) 씨가 캐나다 남자 컬링 선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차영준 씨)

대한: 아무래도 관객 안내 중에 외국인 관중들을 많이 마주하잖아요. 저는 영어를 정말 못하거든요. 그래도 신난 마음으로 올림픽을 보러 오신 외국인 손님들을 즐겁게 응대해드렸어요. “I can’t speak English, but I love you!”라고 말하니까 엄청 좋아하셨죠. ‘고마워, 사랑해’라고 대답해주기도 하고, 자원봉사자 분들이 하는 인사말 ‘아리아리’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셨어요. 유쾌한 분들이에요.
 
천우: 기타 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부모님께 평창 오시는 길에 기타 좀 부탁드렸어요. 손에 얻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데, 장내 아나운서 분들께서 같이 공연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경기 시작 전에 즉흥으로 개사한 빌리 조엘의 <Piano Man>을 불렀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어요. 다음 날에는 연출하신 분께서 독무대 기회를 주셨어요. 언젠가는 데뷔하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때에 강제로 데뷔를 하게 돼서 기분이 묘했어요.
 
▲평창에서 '데뷔무대'를 가진 김천우 씨가 기타를 들고 웃고 있다. (출처: 김천우 씨)

Q. 가장 힘드셨던 순간과, 뭉클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영준: 추운 게 제일 힘들었어요. 콧물이 나오는데, 얼어서 들어가질 않아요. 영하 10도라고 하면 날씨가 풀린 정도였으니까요. 일하면서 가장 힘 났던 순간은 바로 ‘만석 달성’을 했을 때입니다(일동 웃음).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다 차 있는 걸 보니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대한: 자원봉사자 수가 워낙 많아서 과잉 인력 때문에 허비하는 시간도 많았어요. 할 일이 없을 때 지루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경기 표도 얻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개회식과 폐회식을 다 못 봐서 아쉬워요. 그래도 제가 있던 평창올림픽 플라자에서 메달 수여식이 열린 건 좋았어요. 한국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고 흘러나오는 애국가에 맞춰 태극기가 걸릴 때 감동적이었네요.
 
▲라대한(맨 왼쪽) 씨는 자원봉사 일이 고됐지만,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힘이 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처: 라대한 씨)

천우: 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많았잖아요. 저도 큰 기대 없이 갔던 올림픽이었지만, 외국에서 일하러 오신 분들이 업무에 대한 기회를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전반적으로 훌륭한 올림픽이었다고 선수들과 언론에서도 말해주니 뿌듯했죠. 단지 평창에 있는 동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소민: 핫팩을 6개씩 붙일 정도로 추웠어요. 그래도 공연 준비를 위해 힘썼으니까, 힘들진 않았어요. 폐회식 때 연주가 끝나고, 불이 꺼지면서 제가 리프트에 앉아있었어요. 리프트가 내려가면서 관중석을 바라보는데 열렬하게 환호해주시니까 꿈만 같았습니다.
 
▲폐회식 공연을 앞두고 윤소민 씨가 연습 중에 찍은 사진.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 모두가 '한국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연습했다. (출처: 윤소민 씨)

Q. 자원봉사자와 직원 분들 처우에서 개선 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한: 셔틀버스가 항상 늦게 도착하곤 했어요. 그것 때문에 식사시간을 못 맞춰서 밥을 제때 챙겨먹지 못한 경우도 많았어요. 숙소가 원주 쪽이어서 많이 멀기도 했고요. 설 연휴 때는 왕복 3시간이나 걸렸네요. 다음에는 이런 부분들이 개선됐으면 해요. 그때는 제가 행사 구조와 체계를 관리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영준: 셔틀버스 저도 불만이었어요. 전반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소민: 저희도 숙소가 멀었어요. 속초였는데, 평창까지 왕복 3시간은 기본이었어요. 이런 점을 보완하면 체력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천우: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 큰 대회에서 자원봉사자가 도중에 그만두는 비율이 높다는 건 문제예요. 관리차원에서 부족한 게 있다는 뜻이잖아요. 다른 봉사자들의 노고와 열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Q.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무엇을 얻으셨나요?
 
소민: 저는 제 전공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다음에는 카메라에 꼭 잡혔으면 좋겠어요.
 
대한: 웃음의 가치요. 저는 항상 웃으면서 일을 하고, 관중 분들을 대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같이 웃으면서 커피와 호떡을 나눠주시더라고요. 그거 거기서 엄청 비싼데(웃음).
 
천우: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인 ‘유비무환’의 교훈을 얻었어요!
 
영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지니는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일을 하며 부딪혔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세 마디는 꼭 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하니 제가 원하던 일들이 잘 풀리더라고요.
 
Q. ‘평창동계올림픽은 나에게 000(이)다’에 답변을 해주신다면?
 
대한: 무전여행. 첫 날에 숙소와 지리에 대한 정보 없이 다른 자원봉사자 분들과 함께 모든걸 찾아내고 발견했어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과 했던 경험들, 모든 순간이 여행 같았습니다.
 
영준: 기분 좋은 아쉬움. 처음이라서 미련도 남아 있고, 아쉽잖아요. 다시 하면 더 능숙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완벽하지 못했던 제 모습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배워나갈 수 있으니, 값지다 생각합니다.
 
▲차영준(왼쪽에서 세번째) 씨가 오륜기 조형물 앞에서 다른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출처: 차영준 씨)

소민: 다시 꾸고 싶은 꿈. 거문고 공연을 올림픽에서 했다는 것이 꿈만 같았어요. 그 꿈이 이뤄지고 나니, 다시 꾸고 싶어졌어요.
 
천우: 모든 것의 데뷔 무대. 사람들은 자신만의 ‘데뷔 무대’를 꿈꾸잖아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제가 갈고 닦아온 노래와 기타 실력을 뽐낼 수 있었어요. 저에겐 단순한 공연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어요.
 

다음 국제행사에도 이바지 하고 싶어

 
언젠간 대한민국에서 열릴 또 하나의 국제행사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뒤로 하고 4명의 한양인들은 평창동계올림픽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현장에서 일하며 얻었던 소중한 교훈과 가치들을 가슴에 새기겠다는 네 사람. 한국의 멋과 친절함을 세계에 보여준 자랑스러운 한양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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