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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9 인터뷰 > 동문

제목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동문(체육 77)

올초 아시아 U-23축구대회 준우승 이끌어

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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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KSSc

내용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중심에 한양인이 있었다. 바로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그 주인공. 박 동문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이하 U-23)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베트남은 올해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AFC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동남아시아 국가가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 동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악바리의 드리블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세며 모진 사람. 박 동문의 별명은 ‘악바리’였다. 늦은 시작탓에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니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1학년 2학기 때부터 고등학교 축구팀에 들어갔죠. 운동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습니다.” 박 동문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한양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 럭키 금성 선수 시절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제공)

박 동문은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고(故) 최은택 교수(체육학과)님과 고(故) 배기면 교수(체육학과)님의 가르침으로 선수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박 동문은 한양대 졸업 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얼마 있지 않아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전역하고 럭키 금성 황소(현 FC 서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해 맹활약했다. 1985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86년에는 주장으로 선임됐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5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박 동문은 후배 선수를 키우고 싶었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은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일찍 선수 생활을 그만 두는 것도 아쉬웠죠. 하지만 빨리 지도자로 자리 잡을 수 있어 후회하지 않습니다.” 1989년부터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의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LG 치타스의 코치를 거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지난 기사 보기 - 월드컵 4강 신화 일군 `특급 참모`)
 
 ▲ 박항서 동문이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하고 있다. (베트남 축구협회 제공)

시간이 흐르며 월드컵 열기가 식듯, 박 동문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2015년 12월에는 상주 상무 감독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7개월 전에는 3부 리그인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었다. 젊은 지도자들이 계속 배출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박 동문에게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선수와 지도자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지식과 철학을 쏟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축구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후배 감독들에게도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박 동문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AFC 주최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3급 노동 훈장을 받았다. 노동, 창의성, 국가건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3급이 가장 높다. 불과 작년만 해도 밀려난 지도자였던 박 동문. 지금은 박항서 열풍을 일으키며 자신의 업적을 새로 쌓고 있다.
 
▲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박항서 동문이 ‘사부의 한마디’를 말하고 있다. (SBS 제공)

 끝으로 박 동문은 한양인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전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베트남 선수들에게도 했던 말이다. 박 동문 역시 선수와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많이 넘어졌고, 힘든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 숙이지 않고 묵묵히 달린 결과 끝내 베트남의 별이 됐다. “한양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사세요. 최선을 다했으면 당당해도 됩니다. 결과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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