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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21

[동문][도전#해시태그] 미디어와 커머스의 조우 (1)

미디어 커머스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미디어 콘텐츠와 커머스(상거래) 상품의 융합이 주목받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 미디어에 스토리를 입힌 동영상을 게시해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상품 정보를 전달한다.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글. 유승현 사진. 안홍범 ▲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 레드오션 속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다 퍼플오션(Purple ocean)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퍼플링크도 마찬가지다. 퍼플링크는 이미 널려 있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요구) 중 ‘언멧니즈(Unmet needs, 미충족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회사 퍼플링크의 브랜드는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뷰티 브랜드 ‘낫포유’, 리빙 브랜드 ‘데이포유’와 향수 브랜드 ‘프라그라피’가 있다. 낫포유(NOT4U)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뷰티라이프’를 지향한다. 주력 제품은 이중 복합필터를 사용해 수돗물의 잔류 염소와 녹물을 제거하고 비타민C를 공급하는 ‘비타클렌징 샤워’, 연고처럼 바르는 여드름 패치 ‘리얼스킨패치’ 등이다. 생활에 필요한 무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데이포유(DAY4U)는 '당신에게 필요한 삶, 안심되는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제품으로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세탁할 수 있는 ‘런드리볼(세탁볼)’과 광합성 작용으로 유해물질을 분해하고 악취를 제거하는 ‘광촉매탈취제’ 등이 있다. 프라그라피(Fragraphy)의 핵심 가치는 ‘나를 표현하는 향기’다. 이성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춰 두 종류의 니치 향수(소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 ‘시그니처 블랙(남자 호감 향수)’과 ‘어나더 레이디(여자 호감 향수)’를 선보였다. 새로운 트렌드, 콘텐츠 마케팅 조관제 대표가 마케팅에 발을 디딘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그는 ‘딩고 뮤직’으로 잘 알려진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업부에 입사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개인을 뜻한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팀장을 맡게 된 조관제 대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인플루언서로 양성했다. 회사의 도움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 구독자에게 제품을 홍보한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유통하며 뉴미디어 마케팅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특히 연예인 위주였던 인플루언서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보다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콘텐츠 마케팅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는 조관제 대표 ▲#소비자 #사로잡는 #라이프스타일 #탄생 퇴사 후 창업에 도전하다 조관제 대표는 회사를 나와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 대표(경제금융학 05)와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를 창업했다.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경험을 살려 남성 화장품 브랜드 블랙몬스터를 기획했다. 커머스 운영부터 제품 마케팅까지 도맡아 3개월 만에 15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 “여기에 만족할 수만은 없었어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제가 직접 회사를 꾸리고 싶었어요. 블랭크를 퇴사하고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커머스 회사인 퍼플링크 창업을 준비했어요.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조관제 대표는 반드시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전의 경험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관제 대표는 수중에 있는 돈과 5000만 원의 청년 창업자금 대출로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첫 제품을 준비하는 데 전부 사용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불안했어요. 처음 창업하고 3개월 동안은 전기·수도·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미납했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수중에 2300원밖에 없는 거예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컵라면을 사니 딱 50원이 남더군요.” 좌절의 쓴맛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작한 비디오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첫 제품 출시 다음 날 판매율이 전날 대비 30% 뛰었다. 우려가 기대로 바뀐 순간이었다. 미처 몰랐던 욕구를 발견하는 과정 퍼플링크의 마케팅은 다소 독특하다. 제품 기획 전 단계부터 콘텐츠에 제품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는지 고려한다. 좋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콘텐츠 마케팅 적합성이 떨어지면 만들지 않는다. “동시에 소비자도 몰랐던 히든니즈(Hidden needs)를 파악하는 데 힘써요. 네이버,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검색량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경쟁 제품의 후기, 블로그 포스팅도 확인해요. 그다음으로 메시지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죠.” 낫포유 제품 ‘클리어바디미스트’ 광고는 소비자의 큰 관심을 샀다. 클리어바디미스트는 등과 가슴에 나는 여드름 제거에 유용하다. 퍼플링크는 제품의 성능을 알리기 위해 바디 트러블로 고민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했다. 최종 선발된 한양여자대학교 축구부 선수가 촬영한 제품 사용 과정이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출시 1년 만에 20만 개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 퍼플링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랏빛으로 물들일래요 퍼플링크는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채울 수 있는 종합 커머스 기업’을 꿈꾼다. 현재 다양한 브랜드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 뷰티와 리빙을 넘어 패션, 푸드와 펫 등 소비자 니즈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오는 2020년까지 10개 이상의 브랜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퍼플링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고 흥미를 느낄 만한 메시지를 콘텐츠로 풀어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고객이 꾸준히 퍼플링크 라이프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퍼플링크는 설립 2년 만에 1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조관제 대표의 자기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퍼플링크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크고있어요. 제 성장이 회사의 성장보다 느려지는 순간 과감히 회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때는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해요. 퍼플링크에서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회사의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3-04월 (제247호) 이북 보기

2019-03 19 중요기사

[동문]'운동장이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인 학교를 만들다'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의 수업 분위기는 뭔가 특별하다. 주요 교과목에 열 올리는 요즘 중∙고교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적극적인 체육 활동에 그 이유가 있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학생들은 체육 정규교육과정 수업을 넘어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 조성엔 한대부중 교장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과 체육 과목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체육시간이 즐거운 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체육학으로 학사(76학번)부터 박사 학위 과정까지 밟은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은 국내에 흔치 않은 체육 전공 교장이다. 후학양성이 보람된 일이라 여겨 노 동문은 체육 교사로 교직에 몸을 담아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교장 자리까지 왔다. 체육학을 전공한 교장 덕인지 한대부중은 다른 학교에 비해 '스포츠클럽'이라 불리는 체육 활동이 활발하다. “한창 클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폭력과 같은 각종사고가 줄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더 즐겁게 합니다.” 이른 시기부터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 학생들에게 예체능 교육은 사치라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건강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한대부중의 체육 활동 프로그램. 현 공교육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에서 만난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 학생들이 생활체육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건강과 동시에 교육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체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내 수업부터 방과 후 활동으로 야구, 농구, 배드민턴, 풋살과 요가, 방송댄스, 치어리딩까지 다양한 범위의 스포츠 활동이 꾸려져 있어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한대부중 내 체육 교사들뿐 아니라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토요 스포츠 클럽도 운영해 방과 후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연습량이 부족한 학생들도 운동할 수 있다. 또 체육 활동을 교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시합 및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미 한대부중 학생들은 여러 종목에서 많은 수상 경력을 쌓고 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체육이 아닌 국∙영∙수 같은 교과목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2배 이상이다. “농구, 축구 시합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듯이 학생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연식야구(여자) 수업에 방문한 강병철 전 프로야구 감독과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한대부중 여자 연식야구팀은 매년 교육청이 주관하는 ‘안중근 피스컵’에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자 연식야구팀의 김소연(한대부중 3) 양은 연식야구 외 축구와 배드민턴 등 다양한 체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다 같이 협동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도 많이 좋아졌어요.” 김채원(한대부중 3) 양은 체육에는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처음에 어려워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차근히 다져졌어요.” 또 체육을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러워했다. ▲ 스포츠 클럽 활동의 하나로 요가도 이뤄지고 있다. 편안한 복장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 지난 2015년도 서울시경찰청장배 청소년야구대회에 한대부중 야구(남자)팀의 경기 출전 모습. 야구팀은 창단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대부중 제공) 사명감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노지호 동문과 함께해온 체육 교사들의 몫이 크다. 석현호 체육부장과 권창훈 선생 등 한대부중 체육 교사들의 열의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대부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두 체육 교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식야구협회장 대회 안중근 피스컵, 소프트볼 협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회 등에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스스로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등수를 떠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씨와 석 씨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체육교육 활성화 지원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한대부중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의 체육 활동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체육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죠. 일반 교과목 선생님들은 성적 상승에 목표를 둘 것이고, 체육 선생님들은 체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가르칩니다” 노지호 동문은 “현재 한대부중의 체육 학습 프로그램과 면학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말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체육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은퇴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체육 선생님들이 계속 학생들을 위해 활발한 체육 활동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노 동문의 말 속에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배어 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9-03 15

[동문][사랑, 36.5°C] 기부의 무한 변신 (3)

프레디 머큐리의 하얀 민소매 셔츠,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처럼 우리는 때로 옷으로 사람을 기억한다. 옷만큼 단번에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또 있을까. 최근 권오수 대표는 우리 대학 졸업예정자 20명에게 권오수클래식의 맞춤 정장을 기부했다. 청년들을 향해 그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을 보낸 것이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권오수 권오수클래식 대표 Q. 졸업생에게 정장을 기부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A. 요즘은 대부분 기성복을 사서 입지만,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이 양복을 맞춰 주셨지요. 그 옷 한 벌 해 입히면서 사회로 진출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아들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으며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일을 참 좋아합니다. 1년 열두 달 쉬지 않고 일해 왔지만 이 일이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이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민하던 중 우리 청년들을 생각해냈죠. Q.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 그 일을 통해 기부도 한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부에 대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양복 기술이 참 좋다고 자부합니다. 명동의 쇼윈도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조용필 씨, 이주일 씨, 임동진 씨 등 유명 연예인들에게 턱시도를 맞춰주며 돈도 제법 벌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차피 인생이란 게 태어나서 갈 때는 옷 한 벌 입고 가는 건데, 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눈을 감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오수클래식’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장애인 사업장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거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죠. 그런데 저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내가 자주 아팠고, 한 15년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기부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학생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이번 기부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학생들에게 손수 옷을 지어 입히며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할 시기에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마침 자형이 양복점과 양재학원을 하고 있어서 자연히 이쪽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렇게 한평생 열심히 살다 이제 한양대 졸업생들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첫 걸음이라 더 많이 돕지 못하고 20명의 학생만을 선발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주로 선발을 했습니다.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건 좋은 기술 하나뿐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사용하고 싶습니다. Q. 학생들이 매장에 와서 치수를 재고 옷을 입어보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자로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학생들 연령대에서는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선지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하더군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앞으로 이 기부가 좀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졸업생들이 일정금액을 기부하고 우리는 재능을 기부해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 기부를 확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복 재킷 안에 기존의 라벨 대신 [한양대-권오수-기부자 이름]을 새겨 ‘선배가 해준 옷’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가 해준 옷을 입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한양대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고 값진 일인가요? ▲ 권 대표는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라고 말한다.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기부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수는 죽어도 노래는 남잖아요. 저는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 기부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저는 저의 재능을 선한 일에 보탬으로써 이 사회에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가게들의 기부는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큰돈을 기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대기업보다 저희 같은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대기업의 기부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밝은 에너지로 넘쳐나겠어요? 저는 작은 기부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inter (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삶 속에 스며든 사랑의 가르침

지난해 3월 윤성태 부회장의 기부로 제2공학관에 ‘Huons FABLAB(이하 팹랩)’이 문을 열었다. 팹랩은 ‘제작’을 뜻하는 단어 Fabrication과 '연구소'를 뜻하는 단어 Laboratory의 합성어로, 지난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처음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윤성태 부회장은 팹랩 관련 기부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교에 총 10억 원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각종 동문 모임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등 모교와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오고 있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윤성태(산업공학 83)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Q. 부회장님께서 기부한 공간에서 후배들이 실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이 공간은 학생들이 실습도 하고 수업도 받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팅기가 갖춰져 있어 자신이 설계한 도안으로 직접 제작까지 해볼 수 있는 공간이죠.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책으로만 배웠지 실습하는 게 참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 공간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자기가 설계한 걸 제작해보며 요긴하게 잘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로서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대학의 학습이 실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한데요, 학교에서 공간을 마련해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저로서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최근 5~6년간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해오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처음에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되면서 사업에만 전념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모교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끼거든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83학번 홈커밍데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83학번 동기회장을 맡았었는데 학교와 계속 연을 이어오다 보니 학교의 속사정도 좀 더 잘 알게 되고, 대출받아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도 듣게 되었죠. 알면 알수록 어려움이 더 많이 보이니 회피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 학교랑 인연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Q.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친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선배 한 분이 계셨습니다. 황성박 회장님이라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저희 산업공학과 동문회 회장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재학 시절 그분이 후배들을 위해 참 열심히 활동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후배들 만나서 술도 사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나도 언젠가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진짜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네요. Q. 말씀을 듣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선배나 학교의 잠재적 교육에 의해 전달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께서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기업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대학 졸업하면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그런 평범한 삶을 꿈꿨던 학생이었는데, 인생이란 게 예측한대로 흐르지 않더군요. 뜻하지 않게 선친이 경영하시던 회사를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큰 위기도 여러 번 견디면서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니 봉사의 기회가 주어져 이렇게 기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녹여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가 모교에서 나왔다는 걸 요즘 부쩍 느끼며 삽니다. Q. 제약업계 10위권의 휴온스글로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실질적 대표이신데, 직함이 부회장이십니다. 회장직을 공석으로 두고 계속 부회장직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실무를 디테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1997년 영업적자였던 회사를 맡아 지금은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가 현장을 챙기고 있죠. 부회장으로 있는 것이 실무를 챙기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의약품회사에서 이제는 의료기기와 화장품, 식품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헬스 케어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가 실무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회장은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잖아요. 하하하 ▲ 윤 동문은 "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다. Q. 부회장님에 대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결정하는 경영인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한양대학교의 실용학풍에서 영향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이나 실용 학풍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한양 동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코스닥 상장사 하이랭커 중에 우리 한양대학교 출신의 대표들이 많고, 벤처기업이나 창업부문에서도 우리 학교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요. 4차 산업이 각광받는 요즘,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과 실용학풍이 그러한 시대적 부름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고, 요즘처럼 산업이 고도화되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동문을 주축으로 한 여러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고, 한양미래전략포럼이나 바이오 포럼 등의 모임을 통해 동문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먼저 기부해보신 선배로서 기부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잠재적 기부자인 우리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사회가 각박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작게,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을 학교가 시스템적으로 마련해주면 더욱 좋겠죠. 우선은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작을 하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면서 그렇게 싹이 틀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Winter(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함께 그려가는 한양의 미래

지난 2017년 11월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1층에 문을 연 ‘양민용 커리어라운지’는 재학생들의 진로 준비 및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복지공간이다. 오밀조밀 쓸모있게 지어진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보다 편리하게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학교의 발전상을 이 곳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재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임도균 학생(정책학과 4학년)은 “선배님들의 기부로 학교가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게 된다”고 대답했다.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는 자부심, 나아가 자신들 역시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동기부여야말로 ‘양민용 커리어라운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가 아닐까.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한양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현장, ‘양민용 커리어라운지’에서 양민용 동문을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양민용(영어영문학 77) 성광어패럴 회장 Q.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공간을 내어주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한마디로 행복하고, 기쁨 그 자체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가 우리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77학번인데 그 사이 학교가 참 많이 발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 건물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아진 점도 무척 색다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는데, 우리 후배들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모교의 평가 순위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고,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Q.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제조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에 계시다보니 모교와 인연을 유지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계기로 기부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교와 인연을 다시 맺게 된 조금 특별한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한 15년을 앓아온 지병이 있었습니다. 건선이라는 악성 피부병인데, 그 병을 치료하려고 독일의 뒤셀도르프 대학병원부터 런던, 일본, 싱가포르, 중국까지 안 다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져서 거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죠. 그래서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학교 병원을 추천받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게 계기가 되어 학교에 처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2016년 의과대학 메디컬센터 건립기금으로 2천만 원을 기부하신 게 바로 그때군요? 그럼 이번에 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기부하신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영문학과 1년 후배이자 현재 모교에 재직 중인 이기정 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캠퍼스에 학생들의 커리어 지원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영무 총장님과 이기정 교수의 애교심, 겸손한 태도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이 분들의 소유도 아니고, 임기가 만료되면 보직을 내려놓으실 분들인데 이렇게 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감동이 되더군요. 이런 분들이 학교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기꺼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 양 회장은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Q. 큰 돈을 주저 없이 기부하는 게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예전부터 기부에 뜻이 있으셨는지요? A.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인생의 모토였을 뿐, 특별히 기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고 살아서인지 기부나 나눔, 봉사에 대한 머뭇거림은 없었습니다.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을 쓰는 곳이 또 있으신지요? A. 제 사업체가 있는 방글라데시는 정말 환경이 열악한 곳입니다. 특히 교육여건이 그렇습니다. 학교들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학교운영 자체가 어렵고, 학교 수가 워낙 부족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학교를 지어 운영할 수 있어서 주로 외국인들이나 NGO단체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자금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0년 째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하지 않으면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정말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돈을 버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쓰지도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가 쓸 수 있는 데까지가 자기 돈이지, 쓰지 않고 쌓아두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회장님의 기부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혹은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형,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매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썼는데, 어머니는 항상 “남이 한 번 밥을 사면 너도 꼭 사라. 절대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제가 원하는 액수보다 항상 1~2천원이라도 더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은 아니지만, 베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늘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남을 돕는 일이 축복이 오는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 스스로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Q. 기업을 경영하시며 직원을 채용해본 경험이 많으실텐데 후배들에게 취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인재상은 무엇입니까? A. 인성이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발전하게 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반대로 인성이 부족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신하기보다는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기업만 찾고, 서울 근무만 찾고, 순간적인 이익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우리 후배들이 중소기업이나 지방 근무나 불리한 근무조건에 실망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그 분야의 TOP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안전한 선택보다는 도전하기를, 우리 후배들이 인생의 개척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A.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잘 압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따르는 편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계획이 있다면, 그동안 일에만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나눔으로 돌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이 2만 명이나 되니 잠도 제대로 편하게 잘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사업활동은 좀 줄이고, 실질적으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동행한대 2018년 Autumn (제11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아픔을 아픔으로 머물게 하지 말고 슬픔을 슬픔으로 남게 하지 말라

ERICA 캠퍼스 경상대학 건물 앞. 나란히 마주한 벤치 두 개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많이 앉았었는지 원래 칠해졌던 밤색이 다 지워지고 좌석과 등받이 부분이 닳아 하얗게 바랜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증) 김충연-02학번 경영학부 1983~2013’이라고만 간단히 씌어 있는 벤치. 바로 이 자리에서 故 김충연 동문의 아버지 김진호 대표를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진호 수호스포츠 대표│故 김충연 (ERICA 경영학 02) 동문 부친 가장 보람 있는 선택 벤치에 앉아 등받이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김진호 대표의 손길을 보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김진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2013년 8월, 생일을 열흘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난 뒤 깨달았죠.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구나.” 미국 출장 때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 마을에서 눈여겨봤던 벤치 기부를 이렇게 아들 이름을 넣어 활용하게 될 줄이야. 학교에서 소나무 아래 비석을 하나 세워주자고 제안했는데 김진호 대표가 비석 대신 벤치기증을 제안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이 벤치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쉬어갈 수 있기를, 누구라도 한 번쯤 이 자리에 앉으며 혹시라도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한 1년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항상 옆에 있는 것 같고, 어떨 땐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아이의 이름으로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 기부를 오래 지속하는 방법 사실 기부는 김진호 대표가 늘 생각하던 일이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는데 형제들을 둘러보니 세월이 흘러 다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재산을 정리해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뜻하지 않게 아들 이름의 장학금을 먼저 기부하게 됐을 뿐. “교통사고 보상금과 취직했던 회사에서 들어준 상해보험, 장례식 부의금까지. 아들 이름으로 남은 돈은 1원 한 장까지 다 모았더니 한 5억이 되더군요. 여기에 돈을 좀 더 보태 신대방동에 원룸 건물을 하나 매입하고, 아들 이름을 따서 충연하우스라고 지었어요. 한 번으로 그치는 장학금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기부하고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죠.” 충연하우스가 기금이 되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첫 해에는 2명, 이듬해부터는 3명으로 늘려 각 1백만 원씩 장학금을 수여했으니 올해까지 그 수혜자가 벌써 11명이나 된다. 선배가 주는 장학금 언젠가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단다. 받은 돈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학생에게 김진호 대표는 “아주 잘 했다”라고 칭찬을 해 줬다고 한다. 이 장학금이 무조건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진취적인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게 김진호 대표의 바람이다. 절박한 친구가 받아 잘 쓰는 게 제일 좋고, 혹시라도 조금 여유 있는 친구가 받게 된다면 그동안 맘먹었는데 못했던 자기계발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 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으면 젊은이가 아니에요. 세상을 두려워만 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다, 니들 선배가 주는 장학금이다 라고요”. 기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 처음엔 하늘에 대고 화내는 심정으로 시작했다는 김진호 대표.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든 혹은 다른 곳이든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문화를 자꾸 전파시키면서 경우의 수를 늘려나가고, 이것을 점차 전통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꼭 돈이 많아야 기부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 같은 경우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한 저는 오래 기부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의 뜻이고, 아들의 이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선한 행동은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남몰래 책상 위에 올려둔 도시락을 먹고 소년이 자랍니다. 소년이 먹은 건 단지 밥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일 겁니다. 소년은 성장해 훗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수많은 학생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아프리카의 한 청년은 보장된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 학교를 세우고 사람을 길러냅니다. 지난 3월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한 재미사업가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만들어 갑니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 Q. 능산(能散)이라는 호에 이사장님의 삶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A. 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에 ‘賢者 積而能山 安安而能遷 (현자 적이능산 안안이능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재산을 쌓되 나누는데 능하고, 편안함을 즐기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요, 이 구절에서 택했다며 지인이 지어준 호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이런저런 사유로 알게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더군요. 특히 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어렵던 시절을 살아왔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씨앗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올바르게 노력했더니 제게 더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 제 것은 아니지요. Q.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돈을 버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며 살다 보니 갑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더군요. 그때쯤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옛날 내가 어떤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었는지 그런 생각들이 다 떠올랐습니다. 특히 나를 아무 대가 없이 진정한 사랑으로 돌보아주신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어요.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나 개인의 축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습니다. Q. 베풂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분이 있으신가요? A. 피난 시절 충남 합덕이라는 곳에서 한 1년 반 학교를 다니며 지낸 적이 있는데, 가뜩이나 보릿고개라 먹을 게 없던 때였어요. 도시락을 쌀 수 없었던 저는 점심시간이면 하는 수없이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제게 오시더니 “책상 위에 도시락이 있던데 가서 먹지 왜 나와 있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가봤더니 정말 도시락이 있더군요. 배가 고프니 그걸 먹었습니다. 누가 가져왔는지도 모르고 1년을 꼬박 먹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집으로 불러 시험지 채점을 시키신 일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저녁때가 되어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저녁상을 차려오셨는데, 그 저녁을 먹다 말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김치와 장아찌가 도시락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거든요. 어린애지만 부끄러워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도시락을 놓아두신 선생님.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Q. 이번에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하신 건 어떤 인연에서인가요? A. D.K.KIM 재단을 설립하고 지원할 학교를 알아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의 교수님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분들이 진짜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참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방문해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가다 설립자이신 故 김연준 박사님의 설립정신이 새겨진 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제가 일평생 생각해왔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습니다. 그 생각을 실천하신 분이 나보다 훨씬 전에 여기 계셨다는 사실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 학교가 나의 생각을 실천해줄 곳이라고 느꼈고, 한양대학교의 설립정신이 이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Q. 한양대뿐 아니라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고등학교를 두 곳이나 세워 헌정하셨고, 미국 내에서도 오랫동안 UC버클리와 USC에 장학지원을 해 오신 걸로 압니다. 특히 교육분야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어려서 꿈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되지 못했죠. 대신 다행스럽게도 많은 선생님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어렵게 살아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잘 사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그 빠르고 정확한 길이 교육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학생입니다. 제가 지원한 학생들은 주로 졸업을 하고 나면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졸업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그곳에서 자선사업을 하고 학교를 세웠는데, 달랑 기계과랑 전자공학과 두 개밖에 없는 작은 학교지만 공과대학을 세워 그 나라에서 최고의 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지요. Q. 이사장님이 성공을 일구기까지 지켜온 원칙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은 어차피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분배되는 거죠. 다만, 돈은 반드시 남의 주머니에서 기쁘게 나온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가 있습니다. 복권을 탔거나 억지로 쥐어짜서 버는 돈은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방법이 정당해야 됩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죠. 믿을지 모르지만, 무형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면, 더 많은 유형의 재산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Q. 실제로 무형의 가치 실천이 유형의 재산으로 돌아온 경험 한 가지만 들려주세요. A. 1979년인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일본의 엔화가 하루 사이 두 배로 오르고 반대로 원화는 반 토막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서 포토앨범을 제작해 다량을 수출하고 있었는데, 환율차로 원래 이익을 제하고도 50%의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수출액이 2백만 불이 넘었으니, 백만 불 이상이 하룻밤 사이에 공짜로 생긴 것입니다. 저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바이어와 추가 이익을 반씩 나눴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 저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사막에 떨어져서 오아시스를 찾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이 바이어가 입이 닳도록 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까닭 없이 나눠줬던 5십만 불이 몇십 배가 되어 돌아왔는지 계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당하게 벌고 가치 있게 쓰는 일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경험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은 보잘것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기꺼이 돕고 싶습니다. 받아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는 나눔이 더욱더 중요한 일입니다. Q. 이사장님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한양대에서도 또 다른 나눔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학생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하고 많이 합니다. 그 자격으로만 보면 세상 어디 내놔도 떨어지지 않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거기까지 가기 위해 너무 격심한 경쟁을 겪어서 자기 담벼락을 너무 높이 쌓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비를 위주로 하다 보면 그 경기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골을 넣어야 이기는 거죠. 너무 자기 것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면 정작 세상의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회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닙니다. 너무 주저하는 사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성공확률도 줄어듭니다. 자기 보호를 하느라 체면을 따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길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나눌 수 있어 신바람난 이 남자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두밥에 누룩을 섞고 물을 부어 한 열흘 묵혀두면 발효가 시작되며 술이 익는다. 물을 술로 만드는 힘은 얼마 안 되는 누룩 한 줌에서 나온다. 적다고 얕보지 마라. 누룩의 미약함이 독 안에 든 물 전체를 바꾸지 않는가. 행복은 어느 한 사람의 초인적 힘으로 만들어지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는 화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눔이 그렇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최종구 (정치외교학 84)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사회에 기여함으로 내게도 기쁨이 직업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LCC(저비용항공사)에 대해 설명하는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최종구 동문의 모습에선 신바람이 절로 느껴진다. “저는 LCC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항공사가 독과점 체제일 때는 항공요금이 비쌌지만, 저비용항공사가 생기면서 이제는 잘만 고르면 싼 요금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함으로써 여행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니 그게 바로 보람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힘이 넘쳤고, 더 잘해 보고픈 의욕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무엇이 최 동문을 이토록 신바람 나게 하는 걸까? 어디서 이런 의욕이 샘솟는 걸까? 정치외교학 후배들 위해 9년째 십시일반 최종구 동문은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9년째 정치외교학과 후배들을 위해 매월 3만 원씩 십시일반장학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9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모교와 끈을 이어오고 있다는 건 단순히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사회과학대 장학금으로 매년 5백만 원씩 4년간 총 2천만 원 기부를 약정하기도 했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해 나눔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기부 외에도 일터를 통해 싱글맘을 위한 대만 힐링여행,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제주여행, 쪽방촌 연탄 나눔, 소아암 환우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벌여오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사회과학대학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싶습니다. 기부도 너무 한 곳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과학대는 정원수도 점점 줄고 상대적으로 기부도 적은 편이죠. 돈 버는 학문만 할 게 아니라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저만치 반짝이는 별 하나가 발견되고, 또다시 바라보면 그 옆에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눔도 똑같다. 나누다 보면 나눔이 필요한 곳들이 더 자꾸 눈에 들어오고, 외면할 수 없으니 또 돕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 걸음을 뗀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발걸음도 뗄 수 있게 된다. 최종구 동문은 한사코 큰 금액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한다는 건 나눔의 본질로 그만큼 더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마음 씀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저도 월급쟁이라 큰돈을 척척 기부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도움이 사회과학대 후배들에게 장학금이나 생활비로 사용될 걸 생각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원해주겠다, 결혼할 때 전세자금 일부를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라고요. 엄마 아빠가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올라와 일군 것이니 그 이상은 욕심내지 말라고 말입니다. 점점 더 삶에 가치를 둘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이 돼 나눌수록 기쁨이 배가되는 원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종구 동문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큰 금액의 기부보다 소액 기부의 가치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누구나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한양 쥬빌리, 한양 간호학이 꿈꾸는 미래 100년

2019년 12월은 한양대 간호학부가 설립인가를 받은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반세기를 달려온 한양대 간호학부가 남은 반세기를 향해 백년지대계를 완성할 채비를 구축하고 있다. 사랑을 실천할 간호 인재 육성과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 공간 마련을 위해 선배들이 나섰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탁영란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장, 이선이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 동문회장 한양간호 인재육성을 위한 미래교육관 건립, 미래 간호 리더의 산실이 되어주길 한양대 간호학부가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1900여 명. 졸업 후 대부분 동종 업계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특성상 아무래도 다른 학과에 비해 동문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간호학부는 기수 당 40명 소수 정예로, 간호사로 평생 같은 보건의료현장 혹은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유독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간호학부와 간호학부 동문회는 지난해 12월 13일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개최하고 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교육혁신과 미래교육관 건립에 뜻을 모았으며, 2019년 50주년 기념해까지 모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고 있다. 후배들이 미래 보건의료 인재로 사회의 힘이 되어 날아오를 수 있도록 교육혁신 인프라를 마련해 한양 간호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은 간호학부장 탁영란 동문 및 간호학부 동문회장 이선이 동문과 나눈 일문일답. Q. 간호학부 설립 50주년을 기해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 캠페인을 진행 중이신데요. 어떻게 이런 계획을 마련하게 됐습니까? 탁영란_교육에 있어 50주년은 변화의 상징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간호학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공간’이었거든요. 학생들의 학습공간이 현대 간호교육에 적합하냐에 대해 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실무 중심으로 이뤄지는 간호교육은 임상실무의 혁신을 위해 교육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교육 공간 혁신을 위해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 우리가 제2의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도 느꼈고요. Q. 그게 바로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이군요. 탁영란_네, 저희 간호학부가 원래 모으고 있던 발전기금이 있었는데, 여기에 지난해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열어 캠페인을 선포하고 쥬빌리 기금으로 확대했습니다. ‘쥬빌리(Jubilee) 기금’ 명칭은 원래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서 소명을 밝힌 지 50년이 되던 해에 만든 간호교육기금이에요. 간호교육의 미래 100년을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되 50주년 기점으로 미래교육의 혁신을 도모하고 새로운 교육공간을 마련하자는 목표를 갖고 쥬빌리 기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후배들을 더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교육에 투자해야 하고, 결국 이것이 우리 선배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Q. 이선이 동문회장님은 한양대 구리병원 간호국장으로 지내시다 지난해 퇴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동문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거우시겠어요. 이선이_일단은 50주년까지 미래교육관 건립에 목표를 두고 집중하고 싶고요.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그동안도 사실 꾸준히 기부를 해왔어요. 어차피 한양 식구니까요. 마치 내 집 보수하면서 내 몫의 벽돌 한 장을 얹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죠. 나의 모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이미지가 좋아지면 저에게도 그게 기쁜 일이거든요.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문화를 뿌리내리고 싶어요. Q. 앞장서시는 분이 항상 솔선수범하게 되죠. 이번에 탁영란 학부장님과 간호학과 재직교수 6인이 2억 원, 이선이 동문회장님이 천만 원을 쥬빌리 기금으로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탁영란_이번에 쥬빌리 기금을 조성하면서 느낀 게 참 많아요. 우리 졸업생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모교사랑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양 간호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선배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교수님들도 많이 붐업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함께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기뻤고, 동문들에게서 학교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 기쁘고 스스로 회복되었다 문자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선이_저는 우리 한양대 간호학과가 좋은 인재를 키워내고 밖에 나가서도 어느 대학에 밀리지 않는 후배들로 커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후배를 받고 싶고, 그러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선배들이 만들어줘야 하는 건데, 말로만 잘 크라고 할 수는 없죠. 후배들을 위한 초석을 다져주고 투자를 해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선배의 마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Q. 동문회장으로서 계속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독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선이_ 동문회장을 맡고 나니 동문들에게 기부를 독려하고 대표로 앞에 나가 말을 할 기회가 많아졌는데요, “누가 얼마 했으니 여러분도 얼마 정도는 해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모금 캠페인을 하면서 저는 정말 우리 동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대학 친구들이 노하우를 물어보지만, 사실 노하우는 없습니다. 진짜 우리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진심이죠. 말로써 설득하는 게 아니라,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선후배가 더 친해지고,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기부를 계기로 학교와 동문 그리고 후배,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주길 끝으로 이선이, 탁영란 동문은 후배들에게 ‛한양다움을 잃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양인 특유의 따뜻함,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간호사, 마찬가지로 동문들끼리도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이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는 선후배 관계를 지속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교가 발전해야 현장에서 일하는 동문들도 한양의 힘으로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게 된다. 마중물, 펌프에 흘려버리는 한 바가지 물이 우리 모두의 목을 풍성하게 적시듯, 학교와 동문이 서로를 끌어줄 때 비로소 함께 성장해가는 역사를 쓰게 된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한양의 색채로 시대를 리드하라

배움의 요람은 실로 놀랍다. 이 요람을 거쳐 간 이들은 마치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난 자식들처럼 묘하게 그들만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학풍이랄까? 이십 대 청춘을 이곳에서 물들인 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는 빛깔이 있다. 변봉덕 회장도 그랬다. 한양의 빛깔을 가졌으니, 유연하되 단단하고 역동적이지만 안온함이 내재한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변봉덕 (수학 58) (주)코맥스 회장 사람이 최고의 자산 변봉덕 회장은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해 (주)코맥스를 스마트홈 IoT 시스템 분야 글로벌 톱 브랜드로 끌어올리기까지 회사를 진두지휘해 왔다. 전화교환기부터 도어폰, 이제는 스마트홈 시스템과 시큐리티 솔루션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하나하나 직접 써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그림으로 그려 금형을 요청해 디자인에 반영했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회사를 알리고 거래처를 개척했다. 시대의 발전을 반 발짝 리드하며 차근차근, 하지만 탄탄하게 성장해온 코맥스는 최근 ‘2018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대상’에서 리더십 경영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장기간 건실한 기업경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문 장수기업’ 선정과 ‘금탑산업훈장’도 수훈했다. 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 게 자동으로 이뤄지는 꿈같은 기술을 우리 눈앞에 고스란히 가져다준 사물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건만 변봉덕 회장은 요란하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나는 기술도 없고, 경영능력도 없고 판매능력도 없어요. 그런데 시작해놓고 보니 만들기도 해야 하고, 팔기도 해야 되고, 서비스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떡해요? 사람이 제일 중요하죠. 관계를 맺으면 신뢰를 주고, 끝까지 지켜내는 걸로 여기까지 왔어요.” 바쁘되 분주하지 않고, 첨단기술로 무장했으나 사람을 제일로 여기는 가치. 그래서 코맥스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신뢰의 관계망 안에서 촘촘하게 지속성을 유지한다. 거래처도 처음 관계 맺은 그 거래처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대리점을 하는 이들도 대부분이 코맥스 출신으로 한 번 맺은 관계를 끝까지 지켜내니 애사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직을 실천해내는 것 변봉덕 회장은 정직을 실천해낸 것이 오늘의 코맥스를 만들었다며, 사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사업 초기 겪었던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사업 초기였다. 그런데 이미 판매한 제품에서 불량이 발견된 것이다. 불량품을 회수하자니 문을 닫게 생겼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난 것이다. 변 회장은 용단을 내렸다. 비록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믿고 물건을 구입해준 사람들에게 보상해줘야 한다고. 변 회장은 구매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량품을 전량 회수했다. 고객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는 리콜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예 없던 시절. 잘못을 인정하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는 고객들에게 신용이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고, 그때의 교훈이 지금까지 코맥스의 기업철학이 되었다. 정직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직은 결정적인 순간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잠깐은 손해를 안겨줄 게 분명하지만, 그러나 변봉덕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또렷이 말해준다. 피하지 않고 정직한 선택을 했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고 말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회피하지 않을 때, 실패는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한양스타트업타운 조성 기금 10억 원 기부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친구로, 후배로, 그리고 고스란히 모교사랑으로도 이어졌다. 그간 경영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제 9, 10, 11대 총동문회장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애교심을 보여 왔던 변 회장이 이번에는 후배들의 창업지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재학생 창업지원공간인 ‘한양스타트업타운’의 조성 기금으로 모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창업자가 공업화의 역군이었고, 한양공과대학에서 시작한 뿌리를 갖고 있는, 실학적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거든요. 한양스타트업타운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도전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봉덕 회장은 후배들에게 주변에 무한한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늘 기회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매진하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한양은 나의 뿌리 변봉덕 회장은 자신 역시 한양의 뿌리에서 자라났기에 모교에 기부하는 일만큼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모교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능력이 된다는 건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제 일생을 한양대학교 졸업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한양은 내 이력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죠. 모교가 발전해야 나의 긍지도 커지는 것이며, 모교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야 할 책임도 동문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존경받는 대학이 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동문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양에서 배우고 익히고 숙성해낸 경험들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한 시대를 살아냈고, 이제는 견고하게 뿌리내린 큰 나무가 되어 후배들을 위해 그늘을 내어주는 선배. 한양으로부터 받았고 다시 한양으로 전수하며, 그렇게 한양의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우리 대학이 벌써 32만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모교 발전을 위해 동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동문들이 함께 참여해 더욱 발전된 한양의 모습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