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215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9-03 15

[교수][사랑, 36.5°C]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날갯짓

기부는 어느 정도 이상의 금액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 혹은 특별한 동기가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로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기부는 습관이다.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은 기부란 굳이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소소하게 자주 나누는 습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바람을 일으키듯, 세상을 움직이는 훈풍은 어느 한 사람의 통 큰 기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소소한 나눔에서 피어난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Q.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고고학 1세대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하셨습니다. 한양대에 재직하신 시기가 언제였습니까? A. 1978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되어 2003년에 퇴임했으니 꼬박 26년을 한양대에 재직했습니다. 내 일생의 중요했던 시기들을 한양대에서 보낸 셈입니다. 당시 건물이 5동 밖에 없었고 전임교수가 10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으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학교의 규모가 거의 10배 이상 불어났죠? 우리사회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온 한양의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Q. 교수님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는 한양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A. 한양대는 옛날부터 나눔의 정신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학교 주변에 소리 소문 없이 쌀가마를 돌렸고, 교직원들 월급에서 1%씩 떼어 지역구제에 쓰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잘 되는 집안들은 늘 베푸는 집안이었죠. 그저 여유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도덕 같은 거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도 매년 연말이면 제 연구소가 있는 지역의 동사무소나 기관을 찾아가 어려운 지역주민을 위해 써달라고 쌀을 기부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Q.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부와 나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A. 저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장학금의 위력을 체감한 사람입니다. 9남매의 8형제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살림이 어려워 부모님이 항상 형들에게 먼저 등록금을 주고 제게는 꼴찌로 줬습니다. 그러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1기로 입학했는데,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이라는 게 생겨난 겁니다. 4년 내내 학교를 거저 다니고 졸업한 뒤 그 돈을 갚을 수 있어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간 뒤에도 마침 우리 정부가 영국과 과학기술 계약을 맺는 바람에 제가 첫 번째 장학금 수혜자가 될 수 있었고요. 만약 이러한 제도들이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Q. 지난 2006년 문화인류학과 발전기금으로 1천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기부를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문화인류학과는 전공 특성상 고고학 발굴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많이 씁니다. 필드 연습을 안 하면 졸업해도 아무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어 해외답사를 못 가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다녀오려면 적어도 100만원은 드는데, 제가 1천만 원을 내면 학생 10명이 갈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적은 금액이라도 학술용역을 맡으면 그 돈을 쪼개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줬는데, 특히 지방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집이 서울이 아닌 학생들에게 서울 생활은 전투와 같거든요. 내 밑에서 교수가 10명, 박사가 20명 나왔는데, 특히 지방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많이 성공했습니다. 그런 게 보람이지요. ▲ 김 교수는 "만약 학자금대출이나 장학금 제도가 없다면 가난한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 볼 엄두를 내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게 하려면 장학혜택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Q. 얼마 전 총장전략기금으로 2천만 원을 또 기부하셨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학교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제가 아들이 둘인데 둘 다 한양대를 나왔습니다. 장학금 덕에 두 녀석이 혜택을 많이 입었으니, 아들들이 받은 혜택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스며갈 수 있도록 갚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는 아버지 세대에서 기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지만, 제가 기부하는 것을 보고 아들들도 훗날 여유가 생길 때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동행한대 2018년 Autumn (제11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함께 그려가는 한양의 미래

지난 2017년 11월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1층에 문을 연 ‘양민용 커리어라운지’는 재학생들의 진로 준비 및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복지공간이다. 오밀조밀 쓸모있게 지어진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보다 편리하게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학교의 발전상을 이 곳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재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임도균 학생(정책학과 4학년)은 “선배님들의 기부로 학교가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게 된다”고 대답했다.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는 자부심, 나아가 자신들 역시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동기부여야말로 ‘양민용 커리어라운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가 아닐까.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한양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현장, ‘양민용 커리어라운지’에서 양민용 동문을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양민용(영어영문학 77) 성광어패럴 회장 Q.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공간을 내어주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한마디로 행복하고, 기쁨 그 자체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가 우리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77학번인데 그 사이 학교가 참 많이 발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 건물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아진 점도 무척 색다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는데, 우리 후배들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모교의 평가 순위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고,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Q.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제조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에 계시다보니 모교와 인연을 유지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계기로 기부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교와 인연을 다시 맺게 된 조금 특별한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한 15년을 앓아온 지병이 있었습니다. 건선이라는 악성 피부병인데, 그 병을 치료하려고 독일의 뒤셀도르프 대학병원부터 런던, 일본, 싱가포르, 중국까지 안 다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져서 거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죠. 그래서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학교 병원을 추천받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게 계기가 되어 학교에 처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2016년 의과대학 메디컬센터 건립기금으로 2천만 원을 기부하신 게 바로 그때군요? 그럼 이번에 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기부하신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영문학과 1년 후배이자 현재 모교에 재직 중인 이기정 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캠퍼스에 학생들의 커리어 지원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영무 총장님과 이기정 교수의 애교심, 겸손한 태도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이 분들의 소유도 아니고, 임기가 만료되면 보직을 내려놓으실 분들인데 이렇게 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감동이 되더군요. 이런 분들이 학교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기꺼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 양 회장은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Q. 큰 돈을 주저 없이 기부하는 게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예전부터 기부에 뜻이 있으셨는지요? A.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인생의 모토였을 뿐, 특별히 기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고 살아서인지 기부나 나눔, 봉사에 대한 머뭇거림은 없었습니다.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을 쓰는 곳이 또 있으신지요? A. 제 사업체가 있는 방글라데시는 정말 환경이 열악한 곳입니다. 특히 교육여건이 그렇습니다. 학교들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학교운영 자체가 어렵고, 학교 수가 워낙 부족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학교를 지어 운영할 수 있어서 주로 외국인들이나 NGO단체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자금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0년 째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하지 않으면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정말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돈을 버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쓰지도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가 쓸 수 있는 데까지가 자기 돈이지, 쓰지 않고 쌓아두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회장님의 기부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혹은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형,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매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썼는데, 어머니는 항상 “남이 한 번 밥을 사면 너도 꼭 사라. 절대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제가 원하는 액수보다 항상 1~2천원이라도 더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은 아니지만, 베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늘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남을 돕는 일이 축복이 오는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 스스로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Q. 기업을 경영하시며 직원을 채용해본 경험이 많으실텐데 후배들에게 취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인재상은 무엇입니까? A. 인성이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발전하게 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반대로 인성이 부족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신하기보다는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기업만 찾고, 서울 근무만 찾고, 순간적인 이익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우리 후배들이 중소기업이나 지방 근무나 불리한 근무조건에 실망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그 분야의 TOP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안전한 선택보다는 도전하기를, 우리 후배들이 인생의 개척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A.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잘 압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따르는 편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계획이 있다면, 그동안 일에만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나눔으로 돌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이 2만 명이나 되니 잠도 제대로 편하게 잘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사업활동은 좀 줄이고, 실질적으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동행한대 2018년 Autumn (제11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아픔을 아픔으로 머물게 하지 말고 슬픔을 슬픔으로 남게 하지 말라

ERICA 캠퍼스 경상대학 건물 앞. 나란히 마주한 벤치 두 개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많이 앉았었는지 원래 칠해졌던 밤색이 다 지워지고 좌석과 등받이 부분이 닳아 하얗게 바랜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증) 김충연-02학번 경영학부 1983~2013’이라고만 간단히 씌어 있는 벤치. 바로 이 자리에서 故 김충연 동문의 아버지 김진호 대표를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진호 수호스포츠 대표│故 김충연 (ERICA 경영학 02) 동문 부친 가장 보람 있는 선택 벤치에 앉아 등받이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김진호 대표의 손길을 보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김진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2013년 8월, 생일을 열흘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난 뒤 깨달았죠.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구나.” 미국 출장 때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 마을에서 눈여겨봤던 벤치 기부를 이렇게 아들 이름을 넣어 활용하게 될 줄이야. 학교에서 소나무 아래 비석을 하나 세워주자고 제안했는데 김진호 대표가 비석 대신 벤치기증을 제안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이 벤치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쉬어갈 수 있기를, 누구라도 한 번쯤 이 자리에 앉으며 혹시라도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한 1년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항상 옆에 있는 것 같고, 어떨 땐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아이의 이름으로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 기부를 오래 지속하는 방법 사실 기부는 김진호 대표가 늘 생각하던 일이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는데 형제들을 둘러보니 세월이 흘러 다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재산을 정리해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뜻하지 않게 아들 이름의 장학금을 먼저 기부하게 됐을 뿐. “교통사고 보상금과 취직했던 회사에서 들어준 상해보험, 장례식 부의금까지. 아들 이름으로 남은 돈은 1원 한 장까지 다 모았더니 한 5억이 되더군요. 여기에 돈을 좀 더 보태 신대방동에 원룸 건물을 하나 매입하고, 아들 이름을 따서 충연하우스라고 지었어요. 한 번으로 그치는 장학금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기부하고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죠.” 충연하우스가 기금이 되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첫 해에는 2명, 이듬해부터는 3명으로 늘려 각 1백만 원씩 장학금을 수여했으니 올해까지 그 수혜자가 벌써 11명이나 된다. 선배가 주는 장학금 언젠가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단다. 받은 돈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학생에게 김진호 대표는 “아주 잘 했다”라고 칭찬을 해 줬다고 한다. 이 장학금이 무조건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진취적인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게 김진호 대표의 바람이다. 절박한 친구가 받아 잘 쓰는 게 제일 좋고, 혹시라도 조금 여유 있는 친구가 받게 된다면 그동안 맘먹었는데 못했던 자기계발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 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으면 젊은이가 아니에요. 세상을 두려워만 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다, 니들 선배가 주는 장학금이다 라고요”. 기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 처음엔 하늘에 대고 화내는 심정으로 시작했다는 김진호 대표.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든 혹은 다른 곳이든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문화를 자꾸 전파시키면서 경우의 수를 늘려나가고, 이것을 점차 전통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꼭 돈이 많아야 기부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 같은 경우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한 저는 오래 기부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의 뜻이고, 아들의 이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교수][사랑, 36.5°C] 스승에서 제자로 전해지는 내리사랑

아프리카의 빽빽한 열대우림에선 광합성을 위한 식물들의 극한 경쟁이 펼쳐진다. 이 가운데 덩굴식물 라피도포라(Rhaphidophora)는 조금 특별한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나무 꼭대기의 잎사귀들이 스스로 제 몸에 구멍을 내 아래쪽 잎사귀들로 햇빛을 내려 보내주는 것이다. 햇빛을 골고루 나누기 위한 식물의 자기희생이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최형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석좌교수 제자들에게 징검다리 되어주고파 배우의 자리는 무대 위지만, 스승의 자리는 무대 뒤다. 배우는 조명을 ‘받는’ 사람이지만, 스승은 제자들을 향해 그 조명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톱스타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최형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밀림 속 라피도포라가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찍이 한양대 동문극단인 <한양레퍼토리>를 창단한 것도, 몇몇 졸업생들과 의기투합해 내리사랑 장학금을 조성한 것도, 아래쪽 잎사귀들에게 햇빛을 내려 보내주고픈 정글 속 라피도포라와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졸업생들에게 일종의 징검다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연극과 교수들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가 되면 늘 미안하거든요. 나가서 돈벌이가 안 되니까. 미국 예일대학에 보면 예일 레퍼토리 컴퍼니가 있는데, 그게 너무 부러워서 저희도 하나 만들었죠.” 국내 유일의 대학 동문 극단인 <한양레퍼토리>의 탄생 배경이다. 1992년에 창단한 <한양레퍼토리>는 매년 질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생들에게 훌륭한 무대를 제공해줬고, 덕분에 많은 졸업생들이 방송이나 공연 현장으로 바로 캐스팅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사랑이 많으면 일이 많다 ‘사랑이 많으면 일이 많다’ 한양대 교수로 부임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쭉 최형인 교수의 연구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글귀다. 사랑이 많으면 다른 사람의 아쉬운 사정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고 일일이 돕다보면 바빠질 것이니, 인생을 밀도감 있게 잘 살라는 의미로 친언니가 써준 글귀라고 한다. 사랑이 많아 제자들의 어려운 사정이 눈에 더 밟힌 걸까. 최형인 교수는 지난 2011년부터 학과 발전기금으로 총 6천5백만 원을 기부해왔다. 그중 5천만 원은 ‘연극영화학과 내리사랑 장학금’ 명목으로 기부했는데, 이 장학금은 최 교수가 몇몇 졸업동문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장학기금이다. 설경구, 박미선, 홍석천, 정일우 등 연예인 동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억 2천만 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했다. 비단 장학금만이 아니다. 대학로에서 ‘밥 아줌마’로 불릴 만큼 제자들에게 밥을 해먹이며, 고집스러울 만치 지독하게 연습했던 시간들은 이미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를 훌쩍 넘어선다. 사랑이 많으면 일이 많다 했는가. 제자들의 시시콜콜한 사정까지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스승의 마음이 결국 ‘내리사랑 장학금’으로 탄생한 것이다. “우리 과가 연극 전공이 한 100명 되는데, 진짜 멀리서 다니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거든요. 이 돈이 그 아이들에게 편안한 차비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매일매일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앙상블일 때 가장 아름답다 앙상블(Ensemble)은 ‘함께’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주로 음악에서 두 사람 이상이 연주하는 합주 혹은 합창을 가리키는 용어다. 비단 음악뿐이랴. 최 교수에 따르면 연극은 앙상블이며, 우리 인생도 앙상블이 되어야 아름답다고 한다. “연극을 가르치면서 제일 강조하는 게 휴머니티(Humanity)예요. 우리는 막이 오르기 전에 이미 예술을 하는 거예요. 서로 도와주고, 서로 안아주고, 힘들 때 위로해주고, 그렇게 부대끼는 게 연극이에요. 나를 보여주려고만 하면 그것만큼 미운 게 없어요. 앙상블이 될 때 연극은 가장 아름다워집니다.” 잎사귀에 구멍을 내 햇빛을 공유하는 라피도포라처럼, 스승의 내리사랑으로 제자가 자란다. 스승은 ‘키워냄’으로 인생의 앙상블을 완성해간다.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선한 행동은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남몰래 책상 위에 올려둔 도시락을 먹고 소년이 자랍니다. 소년이 먹은 건 단지 밥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일 겁니다. 소년은 성장해 훗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수많은 학생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아프리카의 한 청년은 보장된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 학교를 세우고 사람을 길러냅니다. 지난 3월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한 재미사업가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만들어 갑니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 Q. 능산(能散)이라는 호에 이사장님의 삶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A. 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에 ‘賢者 積而能山 安安而能遷 (현자 적이능산 안안이능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재산을 쌓되 나누는데 능하고, 편안함을 즐기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요, 이 구절에서 택했다며 지인이 지어준 호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이런저런 사유로 알게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더군요. 특히 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어렵던 시절을 살아왔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씨앗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올바르게 노력했더니 제게 더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 제 것은 아니지요. Q.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돈을 버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며 살다 보니 갑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더군요. 그때쯤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옛날 내가 어떤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었는지 그런 생각들이 다 떠올랐습니다. 특히 나를 아무 대가 없이 진정한 사랑으로 돌보아주신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어요.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나 개인의 축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습니다. Q. 베풂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분이 있으신가요? A. 피난 시절 충남 합덕이라는 곳에서 한 1년 반 학교를 다니며 지낸 적이 있는데, 가뜩이나 보릿고개라 먹을 게 없던 때였어요. 도시락을 쌀 수 없었던 저는 점심시간이면 하는 수없이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제게 오시더니 “책상 위에 도시락이 있던데 가서 먹지 왜 나와 있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가봤더니 정말 도시락이 있더군요. 배가 고프니 그걸 먹었습니다. 누가 가져왔는지도 모르고 1년을 꼬박 먹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집으로 불러 시험지 채점을 시키신 일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저녁때가 되어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저녁상을 차려오셨는데, 그 저녁을 먹다 말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김치와 장아찌가 도시락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거든요. 어린애지만 부끄러워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도시락을 놓아두신 선생님.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Q. 이번에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하신 건 어떤 인연에서인가요? A. D.K.KIM 재단을 설립하고 지원할 학교를 알아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의 교수님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분들이 진짜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참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방문해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가다 설립자이신 故 김연준 박사님의 설립정신이 새겨진 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제가 일평생 생각해왔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습니다. 그 생각을 실천하신 분이 나보다 훨씬 전에 여기 계셨다는 사실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 학교가 나의 생각을 실천해줄 곳이라고 느꼈고, 한양대학교의 설립정신이 이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Q. 한양대뿐 아니라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고등학교를 두 곳이나 세워 헌정하셨고, 미국 내에서도 오랫동안 UC버클리와 USC에 장학지원을 해 오신 걸로 압니다. 특히 교육분야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어려서 꿈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되지 못했죠. 대신 다행스럽게도 많은 선생님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어렵게 살아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잘 사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그 빠르고 정확한 길이 교육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학생입니다. 제가 지원한 학생들은 주로 졸업을 하고 나면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졸업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그곳에서 자선사업을 하고 학교를 세웠는데, 달랑 기계과랑 전자공학과 두 개밖에 없는 작은 학교지만 공과대학을 세워 그 나라에서 최고의 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지요. Q. 이사장님이 성공을 일구기까지 지켜온 원칙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은 어차피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분배되는 거죠. 다만, 돈은 반드시 남의 주머니에서 기쁘게 나온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가 있습니다. 복권을 탔거나 억지로 쥐어짜서 버는 돈은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방법이 정당해야 됩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죠. 믿을지 모르지만, 무형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면, 더 많은 유형의 재산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Q. 실제로 무형의 가치 실천이 유형의 재산으로 돌아온 경험 한 가지만 들려주세요. A. 1979년인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일본의 엔화가 하루 사이 두 배로 오르고 반대로 원화는 반 토막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서 포토앨범을 제작해 다량을 수출하고 있었는데, 환율차로 원래 이익을 제하고도 50%의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수출액이 2백만 불이 넘었으니, 백만 불 이상이 하룻밤 사이에 공짜로 생긴 것입니다. 저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바이어와 추가 이익을 반씩 나눴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 저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사막에 떨어져서 오아시스를 찾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이 바이어가 입이 닳도록 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까닭 없이 나눠줬던 5십만 불이 몇십 배가 되어 돌아왔는지 계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당하게 벌고 가치 있게 쓰는 일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경험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은 보잘것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기꺼이 돕고 싶습니다. 받아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는 나눔이 더욱더 중요한 일입니다. Q. 이사장님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한양대에서도 또 다른 나눔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학생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하고 많이 합니다. 그 자격으로만 보면 세상 어디 내놔도 떨어지지 않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거기까지 가기 위해 너무 격심한 경쟁을 겪어서 자기 담벼락을 너무 높이 쌓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비를 위주로 하다 보면 그 경기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골을 넣어야 이기는 거죠. 너무 자기 것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면 정작 세상의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회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닙니다. 너무 주저하는 사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성공확률도 줄어듭니다. 자기 보호를 하느라 체면을 따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길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나눌 수 있어 신바람난 이 남자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두밥에 누룩을 섞고 물을 부어 한 열흘 묵혀두면 발효가 시작되며 술이 익는다. 물을 술로 만드는 힘은 얼마 안 되는 누룩 한 줌에서 나온다. 적다고 얕보지 마라. 누룩의 미약함이 독 안에 든 물 전체를 바꾸지 않는가. 행복은 어느 한 사람의 초인적 힘으로 만들어지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는 화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눔이 그렇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최종구 (정치외교학 84)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사회에 기여함으로 내게도 기쁨이 직업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LCC(저비용항공사)에 대해 설명하는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최종구 동문의 모습에선 신바람이 절로 느껴진다. “저는 LCC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항공사가 독과점 체제일 때는 항공요금이 비쌌지만, 저비용항공사가 생기면서 이제는 잘만 고르면 싼 요금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함으로써 여행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니 그게 바로 보람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힘이 넘쳤고, 더 잘해 보고픈 의욕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무엇이 최 동문을 이토록 신바람 나게 하는 걸까? 어디서 이런 의욕이 샘솟는 걸까? 정치외교학 후배들 위해 9년째 십시일반 최종구 동문은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9년째 정치외교학과 후배들을 위해 매월 3만 원씩 십시일반장학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9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모교와 끈을 이어오고 있다는 건 단순히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사회과학대 장학금으로 매년 5백만 원씩 4년간 총 2천만 원 기부를 약정하기도 했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해 나눔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기부 외에도 일터를 통해 싱글맘을 위한 대만 힐링여행,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제주여행, 쪽방촌 연탄 나눔, 소아암 환우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벌여오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사회과학대학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싶습니다. 기부도 너무 한 곳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과학대는 정원수도 점점 줄고 상대적으로 기부도 적은 편이죠. 돈 버는 학문만 할 게 아니라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저만치 반짝이는 별 하나가 발견되고, 또다시 바라보면 그 옆에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눔도 똑같다. 나누다 보면 나눔이 필요한 곳들이 더 자꾸 눈에 들어오고, 외면할 수 없으니 또 돕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 걸음을 뗀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발걸음도 뗄 수 있게 된다. 최종구 동문은 한사코 큰 금액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한다는 건 나눔의 본질로 그만큼 더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마음 씀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저도 월급쟁이라 큰돈을 척척 기부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도움이 사회과학대 후배들에게 장학금이나 생활비로 사용될 걸 생각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원해주겠다, 결혼할 때 전세자금 일부를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라고요. 엄마 아빠가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올라와 일군 것이니 그 이상은 욕심내지 말라고 말입니다. 점점 더 삶에 가치를 둘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이 돼 나눌수록 기쁨이 배가되는 원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종구 동문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큰 금액의 기부보다 소액 기부의 가치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누구나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한양 쥬빌리, 한양 간호학이 꿈꾸는 미래 100년

2019년 12월은 한양대 간호학부가 설립인가를 받은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반세기를 달려온 한양대 간호학부가 남은 반세기를 향해 백년지대계를 완성할 채비를 구축하고 있다. 사랑을 실천할 간호 인재 육성과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 공간 마련을 위해 선배들이 나섰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탁영란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장, 이선이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 동문회장 한양간호 인재육성을 위한 미래교육관 건립, 미래 간호 리더의 산실이 되어주길 한양대 간호학부가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1900여 명. 졸업 후 대부분 동종 업계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특성상 아무래도 다른 학과에 비해 동문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간호학부는 기수 당 40명 소수 정예로, 간호사로 평생 같은 보건의료현장 혹은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유독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간호학부와 간호학부 동문회는 지난해 12월 13일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개최하고 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교육혁신과 미래교육관 건립에 뜻을 모았으며, 2019년 50주년 기념해까지 모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고 있다. 후배들이 미래 보건의료 인재로 사회의 힘이 되어 날아오를 수 있도록 교육혁신 인프라를 마련해 한양 간호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은 간호학부장 탁영란 동문 및 간호학부 동문회장 이선이 동문과 나눈 일문일답. Q. 간호학부 설립 50주년을 기해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 캠페인을 진행 중이신데요. 어떻게 이런 계획을 마련하게 됐습니까? 탁영란_교육에 있어 50주년은 변화의 상징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간호학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공간’이었거든요. 학생들의 학습공간이 현대 간호교육에 적합하냐에 대해 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실무 중심으로 이뤄지는 간호교육은 임상실무의 혁신을 위해 교육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교육 공간 혁신을 위해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 우리가 제2의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도 느꼈고요. Q. 그게 바로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이군요. 탁영란_네, 저희 간호학부가 원래 모으고 있던 발전기금이 있었는데, 여기에 지난해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열어 캠페인을 선포하고 쥬빌리 기금으로 확대했습니다. ‘쥬빌리(Jubilee) 기금’ 명칭은 원래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서 소명을 밝힌 지 50년이 되던 해에 만든 간호교육기금이에요. 간호교육의 미래 100년을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되 50주년 기점으로 미래교육의 혁신을 도모하고 새로운 교육공간을 마련하자는 목표를 갖고 쥬빌리 기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후배들을 더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교육에 투자해야 하고, 결국 이것이 우리 선배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Q. 이선이 동문회장님은 한양대 구리병원 간호국장으로 지내시다 지난해 퇴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동문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거우시겠어요. 이선이_일단은 50주년까지 미래교육관 건립에 목표를 두고 집중하고 싶고요.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그동안도 사실 꾸준히 기부를 해왔어요. 어차피 한양 식구니까요. 마치 내 집 보수하면서 내 몫의 벽돌 한 장을 얹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죠. 나의 모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이미지가 좋아지면 저에게도 그게 기쁜 일이거든요.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문화를 뿌리내리고 싶어요. Q. 앞장서시는 분이 항상 솔선수범하게 되죠. 이번에 탁영란 학부장님과 간호학과 재직교수 6인이 2억 원, 이선이 동문회장님이 천만 원을 쥬빌리 기금으로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탁영란_이번에 쥬빌리 기금을 조성하면서 느낀 게 참 많아요. 우리 졸업생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모교사랑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양 간호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선배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교수님들도 많이 붐업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함께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기뻤고, 동문들에게서 학교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 기쁘고 스스로 회복되었다 문자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선이_저는 우리 한양대 간호학과가 좋은 인재를 키워내고 밖에 나가서도 어느 대학에 밀리지 않는 후배들로 커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후배를 받고 싶고, 그러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선배들이 만들어줘야 하는 건데, 말로만 잘 크라고 할 수는 없죠. 후배들을 위한 초석을 다져주고 투자를 해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선배의 마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Q. 동문회장으로서 계속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독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선이_ 동문회장을 맡고 나니 동문들에게 기부를 독려하고 대표로 앞에 나가 말을 할 기회가 많아졌는데요, “누가 얼마 했으니 여러분도 얼마 정도는 해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모금 캠페인을 하면서 저는 정말 우리 동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대학 친구들이 노하우를 물어보지만, 사실 노하우는 없습니다. 진짜 우리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진심이죠. 말로써 설득하는 게 아니라,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선후배가 더 친해지고,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기부를 계기로 학교와 동문 그리고 후배,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주길 끝으로 이선이, 탁영란 동문은 후배들에게 ‛한양다움을 잃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양인 특유의 따뜻함,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간호사, 마찬가지로 동문들끼리도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이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는 선후배 관계를 지속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교가 발전해야 현장에서 일하는 동문들도 한양의 힘으로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게 된다. 마중물, 펌프에 흘려버리는 한 바가지 물이 우리 모두의 목을 풍성하게 적시듯, 학교와 동문이 서로를 끌어줄 때 비로소 함께 성장해가는 역사를 쓰게 된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한양의 색채로 시대를 리드하라

배움의 요람은 실로 놀랍다. 이 요람을 거쳐 간 이들은 마치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난 자식들처럼 묘하게 그들만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학풍이랄까? 이십 대 청춘을 이곳에서 물들인 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는 빛깔이 있다. 변봉덕 회장도 그랬다. 한양의 빛깔을 가졌으니, 유연하되 단단하고 역동적이지만 안온함이 내재한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변봉덕 (수학 58) (주)코맥스 회장 사람이 최고의 자산 변봉덕 회장은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해 (주)코맥스를 스마트홈 IoT 시스템 분야 글로벌 톱 브랜드로 끌어올리기까지 회사를 진두지휘해 왔다. 전화교환기부터 도어폰, 이제는 스마트홈 시스템과 시큐리티 솔루션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하나하나 직접 써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그림으로 그려 금형을 요청해 디자인에 반영했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회사를 알리고 거래처를 개척했다. 시대의 발전을 반 발짝 리드하며 차근차근, 하지만 탄탄하게 성장해온 코맥스는 최근 ‘2018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대상’에서 리더십 경영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장기간 건실한 기업경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문 장수기업’ 선정과 ‘금탑산업훈장’도 수훈했다. 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 게 자동으로 이뤄지는 꿈같은 기술을 우리 눈앞에 고스란히 가져다준 사물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건만 변봉덕 회장은 요란하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나는 기술도 없고, 경영능력도 없고 판매능력도 없어요. 그런데 시작해놓고 보니 만들기도 해야 하고, 팔기도 해야 되고, 서비스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떡해요? 사람이 제일 중요하죠. 관계를 맺으면 신뢰를 주고, 끝까지 지켜내는 걸로 여기까지 왔어요.” 바쁘되 분주하지 않고, 첨단기술로 무장했으나 사람을 제일로 여기는 가치. 그래서 코맥스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신뢰의 관계망 안에서 촘촘하게 지속성을 유지한다. 거래처도 처음 관계 맺은 그 거래처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대리점을 하는 이들도 대부분이 코맥스 출신으로 한 번 맺은 관계를 끝까지 지켜내니 애사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직을 실천해내는 것 변봉덕 회장은 정직을 실천해낸 것이 오늘의 코맥스를 만들었다며, 사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사업 초기 겪었던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사업 초기였다. 그런데 이미 판매한 제품에서 불량이 발견된 것이다. 불량품을 회수하자니 문을 닫게 생겼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난 것이다. 변 회장은 용단을 내렸다. 비록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믿고 물건을 구입해준 사람들에게 보상해줘야 한다고. 변 회장은 구매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량품을 전량 회수했다. 고객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는 리콜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예 없던 시절. 잘못을 인정하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는 고객들에게 신용이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고, 그때의 교훈이 지금까지 코맥스의 기업철학이 되었다. 정직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직은 결정적인 순간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잠깐은 손해를 안겨줄 게 분명하지만, 그러나 변봉덕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또렷이 말해준다. 피하지 않고 정직한 선택을 했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고 말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회피하지 않을 때, 실패는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한양스타트업타운 조성 기금 10억 원 기부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친구로, 후배로, 그리고 고스란히 모교사랑으로도 이어졌다. 그간 경영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제 9, 10, 11대 총동문회장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애교심을 보여 왔던 변 회장이 이번에는 후배들의 창업지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재학생 창업지원공간인 ‘한양스타트업타운’의 조성 기금으로 모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창업자가 공업화의 역군이었고, 한양공과대학에서 시작한 뿌리를 갖고 있는, 실학적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거든요. 한양스타트업타운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도전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봉덕 회장은 후배들에게 주변에 무한한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늘 기회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매진하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한양은 나의 뿌리 변봉덕 회장은 자신 역시 한양의 뿌리에서 자라났기에 모교에 기부하는 일만큼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모교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능력이 된다는 건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제 일생을 한양대학교 졸업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한양은 내 이력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죠. 모교가 발전해야 나의 긍지도 커지는 것이며, 모교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야 할 책임도 동문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존경받는 대학이 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동문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양에서 배우고 익히고 숙성해낸 경험들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한 시대를 살아냈고, 이제는 견고하게 뿌리내린 큰 나무가 되어 후배들을 위해 그늘을 내어주는 선배. 한양으로부터 받았고 다시 한양으로 전수하며, 그렇게 한양의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우리 대학이 벌써 32만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모교 발전을 위해 동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동문들이 함께 참여해 더욱 발전된 한양의 모습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1 중요기사

[학생]휴머노이드 로봇의 치열한 스포츠 대전 (1)

로봇이 누비는 축구 경기장. 최고 공학기술의 결정체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가 만났다. 올해 7회째를 맞은 ‘로보컵코리아오픈(RoboCup Korea Open 2019)’ 대회. 지난 2월 14일 열린 대회는 국내외 800여 명의 선수로 구성된 290여 개 팀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대학부에선 한양대학교 히어로즈(HERoEHS: Hanyang Erica Robot Engineering Human Society)팀이 휴머노이드(Humanoid) 축구 경기 어덜트 사이즈(Adult size) 리그에서 최종 우승했다. 로봇과 함께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히어로즈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공지능 로봇들의 월드컵 명령에 따라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의 시대는 지났다. 사람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는 휴머노이드(Humanoid)형 로봇이 나타났다. 실제로 자유자재로 공을 드리블하고 슛을 하며 치열하게 움직인다. 지난 1997년 일본 나고야에서의 로보컵을 시작으로 매년 세계 각국에선 로봇공학자들의 로봇 기술의 각축장이 열린다. 당시엔 휴머노이드 리그가 없었지만, 지난 2002년부터 인간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리그가 열린 뒤 로보컵은 더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로보컵코리아는 한국로보컵협회와 로봇신문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 강원도가 후원한다. 개최 첫날은 개막식과 6개 부문별 예선, 둘째 날엔 본격적인 결승 경기가 열렸다. 예선전은 리그전으로, 전반전과 후반전 각 10분씩 쉬는 시간 포함 총 30분으로 진행한다. 결승전은 토너먼트로 이어간다. 후반전까지 경기가 끝나지 않으면 승부차기를 한다. 3등까지 메달을 획득하고 최종 우승팀은 트로피를 거머쥔다. ▲ 한양대학교 히어로즈팀이 로보컵코리아2019 휴머노이드(Humanoid) 축구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히어로즈팀 제공)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휴머노이드 축구 경기 어덜트 사이즈(Adult size) 리그로 출전한 한양대학교 히어로즈팀은 가장 주목받은 경기를 펼쳤다. 키즈(Kids), 틴(Teen), 어덜트(Adult) 리그 중 로봇 설계 및 경기 진행이 가장 까다로운 어덜트 사이즈 리그 경기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세계 각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각각의 리그는 사이즈가 다른 만큼 경기당 로봇 개수와 무게 규정이 달라요. 크기가 클수록 충돌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어덜트 사이즈 리그는 출전자들이 꺼리는 종목이에요.” 사용하는 모터 역시 고성능에다 고가격이다. 하지만 한양대학교는 다른 대학에 비해 선행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역량이 충분했다. ▲본격적인 경기 시작에 앞서 준비하는 한재권 로봇공학 과 교수와 최정훈(메카트로닉스공학과 석사과정) 씨의 모습. 로봇의 이름은 ‘앨리스(Alice)’다. (히어로즈 제공) 즐기며 성장하는 히어로즈 팀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의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는 히어로즈팀은 로보컵 코리아 이전에도 대회 경험이 많다. 작년 2월 평창올림픽 기간 중 열린 세계 최초 스키로봇 챌린지에 참가했다. 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캐나다 로보컵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준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성적을 얻었지만, 이번 대회에 우승하게 된 발판이 됐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키로봇 챌린지 때 제작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토대로 축구 경기에 적합한 로봇으로 다시 제작했어요.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 대회에 다녀온 뒤 보완해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고 로보컵코리아에 출전했습니다.” 로보컵코리아에 본격적으로 몰두한 것은 대회 한 달 전부터다. 스키로봇의 경우 추진력이 필요할 뿐 걸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축구는 걸어야 한다. 그 때문에 로봇의 경량화가 주된 작업이었다. 보행 알고리즘 또한 필요했다. 안정적인 보행을 위해 가속도 센서, 포스 센서 등을 써 사람처럼 무게가 치우치지 않고 보행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한재권 교수 지도 아래에 짧은 시간 내에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사실 우승을 바라고 간 게 아니라 로봇 컨디션과 새로운 알고리즘을 테스트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는데 큰 결과도 함께 얻어 감사해요.” ▲ 지난해 6월에 열린 ‘로보컵캐나다2018’에 출전한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히어로즈팀의 모습. (히어로즈 제공) 계속 이어갈 로봇 열정 로보컵코리아에서 우승한 1, 2, 3등 팀에게는 올해 7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참여 자격이 주어졌다. ‘시드니로보컵2019’에서 바뀔 규정에 맞게 로봇을 추가 개발하고, 대대적인 경량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로봇의 재질을 바꾸고, 높은 토크(torque, 모터의 힘)를 낼 수 있는 모터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참여에 의의를 두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할 거예요.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엔 좀 더 온 힘을 다해서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치고, 즐겁게 팀워크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려고요.”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근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최정훈(메카트로닉스공학과 석사과정) 씨, 박재훈(소프트웨어학부 4) 씨, 김현석(융합공학과 2) 씨, 민인준(융합시스템공학과 석사과정) 씨, 유동하(융합시스템공학과 석사과정) 씨. 로봇공학의 어떤 점이 이들을 이토록 빠지게 만들었을까 유동하(융합시스템공학과 석사과정): 로봇공학은 설계부터 프로그램, 전자까지 다양한 걸 배우는데 여러가지를 배운 게 너무 도움이 돼요. 전자에서 배운 것을 알고리즘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많이 접목합니다. 다양하게 배우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김현석(융합공학과 2): 내가 원하는 대로 프로그래밍해서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게 매력적이에요. 로봇이 내 생각대로 확실히 움직일 때 제일 보람차요. 박재훈(소프트웨어학부 4): 원래 컴퓨터 쪽 전공이어서 로봇을 늦게 접했는데, 화면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상상한 것 실제로 구성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선 것으로요. 민인준(융합시스템공학과 석사과정): 전자부터 설계까지 다 해서 다른 사람의 분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서로 안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서 일하면서 도움이 되고, 분야가 다르더라도 이해하고 서로서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최정훈(메카트로닉스공학과 석사과정): 로봇공학의 제일 큰 매력은 결과물을 제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다는 것. 다른 경우는 그저 이론에서 끝낼 수 있는데, 로봇 공학은 실제로 만들고 그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예를 들어 영화에 보이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가능하게 하죠.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11 중요기사

[동문]그림책 작가가 된 건축학도

한 청년이 책 <그림책의 모든 것>을 쥐고 건축학부 수업이 있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과학기술관 건물로 들어간다. 그림책의 대표 이론서로 불리는 책을 헤질 때까지 읽던 그는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 동문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다. 어떤 계기였을까? 지난 8일 학교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은 학부 시절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위를 봐요!>를 출판했다. 정 동문은 두 살 때 사고를 당한 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병실에서 할 일이 없어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푹 빠진 후 커서도 보게 됐죠.” 그는 크면서 건축가라는 꿈이 생겼다. 한양대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학부 시절 건축회사 인턴을 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가고 싶던 건축 회사에서 7개월 정도 인턴을 했는데 제 생각과 업무가 달라 실망했죠.” ▲ 책 <위를 봐요!>의 한 장면이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정진호 동문 제공) 반면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 출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당시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님이 개설한 동화책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교수님께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제가 만든 그림책들을 보여드렸죠.” 정 동문의 작품을 높이 산 강 교수는 그림 파일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 “그중 한 출판사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죠. 그렇게 출판한 책이 <위를 봐요!>입니다.” ▲ 그림책 작가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 자신의 책 <벽>을 보고 있다. <벽>은 3차원의 입체공간을 창의적으로 보여준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 동문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위를 봐요!>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주시한다. 이후 출판한 책 <벽>도 마찬가지다.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3차원의 입체 공간을 표현했다. 두 책 모두 건축학도의 시선이 녹아있는 점이 특징이다. 건축가라는 꿈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정 동문에게 건축은 여전히 작품 속에 살아있다. 정 동문의 두 작품은 세계 최고 권위의 그림책 상인 ‘볼로냐 라가치’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위를 봐요!>는 지난 2015년 오페라 프리마 부문 관심작에, <벽>은 작년 ‘예술〮건축/디자인(ART, ARCHITECTURE AND DESIGN)’ 부문 스페셜멘션(특별언급)에 선정됐다. ▲ 책 <벽>의 한 장면이다. 데뷔 5년 차 작가인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목표는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다. (정진호 동문 제공) 정 동문은 평균 1년에 한 권의 창작 그림책을 출판한다. 주로 연초에는 작품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림책 수업과 강연을 나간다. 정 동문은 현재 작업 중인 책에 대해 살짝 귀띔했다. “지금까지는 건축의 모습을 책에 많이 담았지만, 이번엔 도시의 모습을 담으려고 해요. 제목은 ‘까만 도시’로, 검은색 도시가 색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이제 데뷔 5년 차인 정 동문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다. “예전에 존경했던 교수님이 ‘꾸준히 그 자리에서 노력한 사람이 대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도 거창한 목표 없이 작가로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한양대 학생들에게 “전공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오히려 전공과 다른 일을 택했을 때 자신만의 특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양하게 도전해 보고 겁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정 동문이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