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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06

[학생]로봇 '간장게장', '레알밥도둑'이네! (2)

지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진행된 ‘2017 국제로봇콘테스트&R-BIZ 챌린지’에서 우리대학 로봇공학과 ‘레알밥도둑’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간장게장처럼 생겨서 ‘간장게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들의 터틀봇은 경쟁하는 다른 로봇들보다 빠른 속도로 주행하며 무대를 장악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 한 변수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레알밥도둑’팀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극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간장게장’은 어떻게 대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을까. 기본에 충실한 터틀봇, ‘간장게장’ ‘레알밥도둑’팀은 팀장 이도규(로봇공학과 2) 씨와 정민재, 정현철, 조민수(이상 로봇공학과 3) 씨로 구성됐다. 로봇공학과에 입학해 3년을 다녔지만 로봇을 실제로 만들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는 ‘레알밥도둑’팀 일원들은 여러 대회를 찾아보다가, 학회 선배로부터 ‘터틀봇 오토레이스’ 대회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저희는 대회의 취지가 되는 로봇운영체제 ‘ROS(Robot Operating System)’을 익혀보고 싶었어요. 개발 환경도 컴퓨터 언어 중에서 C++, Python이라서 저희 팀원들이 부담없이 작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계된 ‘간장게장’ 로봇은 로봇 회사인 ‘로보티즈(Robotis)’에서 출시한 ‘터틀봇3’에 기반을 둔다. ROS기반 자율주행 로봇플랫폼인 ‘터틀봇3’은 360도 방면의 모든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저 센서 ‘라이더(lidar)’와 이동물체의 속도와 방향, 중력, 가속도를 측정하는 장치인 ‘관성 측정장치(Inertial Measurement Unit)’, 그리고 각종 센서들이 탑재돼 있다.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 ‘터틀봇3’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Building)’기능과 길을 찾아가는 ‘NAVIGATION’기능을 갖춘다. ‘레알밥도둑’팀은 제안서를 ‘로보티즈’에 제출 후 ‘터틀봇3’을 무상으로 지급받았다. ▲’레알밥도둑’팀의 로봇 ‘간장게장’. ROS로봇인 ‘터틀봇3’에 성능을 더한 로봇이다. (출처: 이도규 씨) 최대한 기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 ‘간장게장’의 특징이다. 다음은 이 씨의 설명. “저희는 제공받은 플랫폼인 ‘터틀봇3’을 변형하거나 해체시키지 않았어요. 다른 팀들은 로봇을 해부해서 한층 더 쌓고, 몇 백 만 원짜리 센서를 부착할 때, 저희는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저가 센서와 컨트롤러를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간장게장’은 영상처리와 물체인식을 하기 위한 카메라, 마이크로컴퓨터의 종류 중 하나이자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라즈베리파이3’, 통신 간섭을 피하기 위한 5Ghz 대역 와이파이 동글, 차단바, 그리고 터널 구간에 활용하기 위한 초음파 센서 부착으로 ‘탈바꿈’ 했다. 새로운 장비를 장착할 때 이 씨와 팀원들은 로봇 플랫폼에 구동이 가능한지, 그리고 내부 설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연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본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로봇도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 이 씨는 ‘ROS 입문하기’를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터틀봇 자체가 ROS 기반이어서 ROS를 모르면 아예 사용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ROS는 로봇에 달린 센서들이 가져오는 데이터들을 서로 주고 받을 때 용이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로봇 운영체제로, 통신을 코딩으로 다뤄요. 주변에 ROS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인터넷 카페와 구글을 통해 독학을 했습니다. 그 결과 원하는 알고리즘을 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사전 설정이 끝난 후, ‘간장게장’이 대회 환경에서 제대로 동작을 하게끔 여러 값들이 조정됐다. 값을 바꿀 때마다 로봇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최고’를 제치고 우승을 거두다 ‘간장게장’이 통과해야 하는 세부미션은 신호등 인식, 주차 표지판 인식, 차단바 인식, 그리고 터널 통과였다. 주어진 시간 안에 로봇이 미션을 잘 수행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미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닥에 그려진 선을 따라 가는 ‘라인트레이싱’이다. ‘레알밥도둑’팀은 로봇대회에서 명성이 높은 광운대학교 ‘ROBIT’팀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간장게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바닥에 그어놓은 선을 따라 움직이는 ‘라인트레이싱’에서 비교를 해 봤을 때, ‘간장게장’이 다른 팀들에 비해 1.5배 빨랐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라인트레이싱’에 더욱 공을 들였죠.” ▲본선 2차주행 때 사용된 경기장 트랙의 모습이다. (출처: 이도규 씨) 대회 당일날, 모든 팀들은 일산 킨텍스에 모여 대회 시작 전 까지 연습주행을 했다. ‘간장게장’은 대회 당일까지 연습주행에서 한번도 완주를 하지 못했지만, 대회 시작 2시간 전에 첫 완주를 성공했다. 1차주행과 함께 대회가 시작 된 후, ‘레알밥도둑’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른 팀들이 경기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실수를 하실 때마다 괜히 저희 팀도 실수한 느낌이 들어 많이 긴장했습니다.” ‘간장게장’은 대회 당일 첫 미션을 통과했지만, 두 번째 미션인 ‘주차구간 인식’에 실패했기 때문에 ‘레알밥도둑’팀은 다음날 대회를 위해 늦게까지 코드를 수정했다. 준비는 ‘레알밥도둑’팀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회 이튿날, 2차주행을 앞둔 많은 팀들은 연습주행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이 씨는 그 때의 긴장감을 회상했다. “그 때는 마음을 비우고 목표를 ‘1위를 하자’가 아닌 ‘완주를 하자’로 바꿨어요. 본선 직전까지 연습주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차주행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후, ‘간장게장’은 전원이 켜지자마자 신호등구간을 통과하고, 1차주행 때 통과하지 못했던 ‘주차구간 인식’ 또한 성공했다. 터널입구를 진입할 때 로봇이 입구에 걸려 감점을 당했지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최단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한 ‘간장게장’은 결승선에 통과했다. 라이벌인 광운대학교 ‘ROBIT’팀은 중간에 로봇의 이탈 때문에 은상을 확보했고, ‘레알밥도둑’팀은 영광의 1등을 수상했다. ▲로봇공학과 학회방에서 연습용 트랙을 제작해 터틀봇으로 연습했던 모습. 연습용 트랙은 실제 경기장의 규격에 맞춰 제작 됐다. (출처: 이도규 씨) 배운 이론들을 적용해보는 소중한 경험 ‘레알밥도둑’팀 일원인 정민재 씨는 대학에서 배운 이론들을 실제로 써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17 국제로봇콘테스트&R-BIZ 챌린지’가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론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다름에도 이론이 왜 중요한지 알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팀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고 배우는 경험이 제일 즐거웠습니다.” 나머지 팀원들도 정 씨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들은 1등으로 호명되는 순간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했다. ‘간장게장’과 함께했던 3개월의 시간이 곧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었다. 또한, 이 씨는 도움을 주신 로봇공학과 교수님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강민성 교수(로봇공학과)님께서 작업 환경, 연장, 그리고 각종 장비를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재권 교수(로봇공학과)님께서는 대회 현장을 잘 모르는 저희에게 대회 3일 전에 와이파이와 통신 문제를 상담 해주셨고, 5G대역폭을 지원하는 와이파이 동글을 제공해 주셔서 네트워크 통신의 간섭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대회에서 사용한 여러 지식을 알려주신 모든 로봇공학과 교수님들이 계셔서 더욱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당분간 학업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레알밥도둑’팀. 경험을 쌓자는 취지로 시작된 그들의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내년 대회 시즌이 올 때 까지 또 이론을 연구하고 내공을 쌓을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팀원들 각자가 원하는 로봇 대회에 나가서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정민재, 정현철, 조민수(이상 로봇공학과 3)씨와 이도규 씨(로봇공학과 2)가 '금상' 푯말을 자랑스럽게 들고 있다. (출처: 이도규 씨)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2017-10 04

[학생]이제 시작이야,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테니

9월의 어느 날, 21살의 갓 청년의 문턱에 들어선 대학생이 모교에 1억 원을 기부했다. 1억. 단 두 글자지만, 그 두 글자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움과 노력은 이 액수를 기부한 대학생에 대해 놀라움과 궁금함을 자아내게 한다. 모교인 한양대학교에 1억 원을 기부하고 현재는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뛰고 있는 원두재(생활스포츠학부 2) 씨를 인터뷰했다. 이미 정한 꿈, 남은 건 시작 뿐 많은 사람이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스포츠계에 뛰어든다. 여기에는 각자의 꿈과 비전, 계기가 뒤따른다. 누군가의 훌륭한 플레이를 목격했거나, 처음 차 본 공이 발에 부드럽게 감기는 걸 경험하며, 미래의 정상급 선수가 된 나를 머릿속에 품는다. 하지만 원두재 씨의 계기는 조금 더 저돌적인 대답이었다. “정식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어요. 중학교 들어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원두재(생활스포츠학과 2) 씨는 2017년 7월 후쿠오카 아비스파에 입단하여 센터백으로 뛰고 있는 실력파 선수다. (출처: 원두재 씨 페이스북) 16학번임에도 망설임 없이 프로의 길을 택했고, 데뷔를 거친 지금은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는 원 씨. 졸업 후 프로팀에 입단하는 길도 있었을 텐데, 힘든 일정을 무릅쓰고 프로의 길을 걸은 이유는 왜일까. 원 씨의 의중을 물어보자, 좋은 기회를 얻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려서부터 프로에 가서 축구로 돈을 벌고 싶었어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빠르게 프로로 이끌었습니다.” 환경의 절박함과 더불어 원두재 씨가 지닌 자신감 또한 프로 데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 무대 가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힘들어도 겪을 가치는 있다 지금은 자신감과 실력으로 무장한 원 씨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고민과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경기 도중에도 ‘열심히 뛰고, 자신감 있게 잘하자’는 자기최면을 걸 정도로요.” 대학교 입학 전, 고등학교에서 보낸 대표팀에서도 육체적,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원 씨는 고백했다.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갔죠. 아는 사람도 없고, 운동도 힘든데다가 스포츠 탈장에 걸려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참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그 땐 대표팀에 너무 뽑히고 싶었거든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연달아 겹치며 마음고생을 했다는 그다. “오른쪽만 수술해도 될 걸 참고 안 하다가, 결국 양쪽 다 수술을 해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꽤나 고생했죠.” ▲힘든 시기를 보낸 원두재 씨는 이 시기가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담금질 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출처: 원두재 씨 페이스북)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원 씨가 성장할 수 있는 촉매재였다. 힘든 기억들은 당시에 원 씨를 괴롭혔지만, 현재의 원 씨를 있게 하는 토대 중 하나로 든든히 자리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29일 6시 홈경기, 야마가타와 데뷔전이 있었어요. 원래는 긴장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고등학교 시절 대표팀에서 마음고생을 너무 하다보니 많이 떨리지가 않았습니다. 무려 데뷔전이었는데, 오히려 기대가 더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또한 그는 고등학교의 힘든 시절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를 주변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언으로 꼽았다. “아현 중학교, 운호 고등학교에서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을 만났습니다. 좋은 것들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이것저것 많이 신경을 써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양대를 가슴에 품고 더 멀리, 더 높이 K리그와 유럽, 일본 프로 팀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으며 어엿한 프로로 뛰고 있는 원두재 씨는 ‘내가 성장한 곳은 한양대’라고 말한다. “(제 미래에 대해) 선택의 기로에 선 적은 많았어요. 하지만 대학교 감독님이 절 믿고 경기에 투입해주신 것처럼, 저도 감독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겼어요.” 인생의 큰 기로에서 대학교 감독님의 선택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중학교 때는 미드필드 수비, 고등학교 때는 미드필더, 대학교에서는 포워드와 미드필드 중앙 수비를 했어요. 비슷하지만 다 다른 포지션이에요. 그래도 혹시나 제가 못할까 라는 불안감을 접어두시고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셨어요. 고마울 따름이죠.” 힘들 때 자신을 믿어준 한양의 신뢰를 가슴에 간직한 원두재 씨는 프로 입단 이후 지난 9월 4일, 1억이라는 거금을 우리 학교에 전달했다. “축구부가 운동장이 없어요. 웨이트실도 모든 운동부가 다 같이 써서 사실상 마음껏 운동하기가 힘들죠.” 원 씨는 열악했던 운동시설을 떠올리며 기부한 금액이 축구부에게 큰 힘이 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많이 열악했던 시설과 물건들을 새로 마련하고, 좋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양을 가슴에 품은 원두재 씨의 한양사랑은 뒤따라 올 학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성인으로서, 한 사람의 선수로 프로의 길을 걷고 있는 원두재 씨. 축구가 자신의 전부이자 매력덩어리라는 원 씨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되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다’, ‘출세했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멀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고, 더 올라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포부를 밝힌 원 씨는 같은 길을 걷는 동기들과 뒤따라올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자는 격려의 메시지도 전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지만, 다같이 축구를 항상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2017년, 프로 축구계에 또 한번 한양의 족적을 성공적으로 남긴 원두재 씨. 앞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뛰어나갈 그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2017-10 03

[학생]무대 위 피아노가 되다 (1)

막이 오르고 적막이 가득했던 무대에는 쇼팽의 녹턴 13번이 흐른다. 무대 위 무용수는 마치 피아노가 된 듯 오직 몸짓만으로 녹턴을 표현해낸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하다. 마치 눈에 보이듯 무용수의 손과 발이 녹턴의 선율을 형상화한다. 감정이 절제된 동작임에도 단조곡 특유의 서정성과 애상감이 섬세한 근육의 결을 따라 뿜어 나온다. 무대는 온전히 무용수의 몸짓으로 채워지고, 주저함 없는 눈빛으로 무용수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불과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무용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오른다. 무대 위 피아노가 되다 권재헌(무용학과 4) 씨가 지난 9일 천안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2017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KIMDC)’에서 시니어 남자부분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고, 올해로 8회를 맞은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는 타 장르 없이 오직 현대무용만으로 경연하는 유일한 국제 대회다. 올해는 한국 외 폴란드, 타이완, 말레이시아, 일본 등 12개국에서 온 209명의 무용수가 열띤 경합을 펼쳤다. 지난 6월 이미 한 차례의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쟁쟁한 무용수들을 뚫고 권 씨는 당당히 대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 9일 열린 '2017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에 참가한 권재헌 씨의 모습 (출처: 권재헌 씨) 권 씨에게 대상의 쾌거를 안겨준 작품 '하울링, 80개의 건반'은 서정적인 선율의 '녹턴 13번'에 맞춰 창작됐다. “무대 위의 저는 피아노예요. 제 움직임에 따라 녹턴이 울려 퍼지는 거죠(하울링).” 일반적인 작품의 경우, 내면의 감정을 신체로 표현해야 하기에 무용수의 감정 표출은 좋은 무대를 위한 핵심 요소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권 씨는 오히려 감정을 절제하는데 주력했다. “악기에는 감정이 없잖아요. 절제된 감정으로 녹턴의 서정성을 뿜어내는 게 이번 작품의 핵심이었어요.” 권 씨의 이번 수상은 지난해 ‘제 46회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수상 이후 불과 일 년여 만에 이룬 쾌거다. 하지만 경험 많은 그에게도 국제무대 첫 대상의 무게는 남달랐다. “사실 은상까지 제 이름이 호명되지 않아서 거의 낙담한 상태였어요. 대상에 제 이름이 불리자마자 눈물부터 나더군요. 주변 사람들 말로는 정말 아이처럼 울었다네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좋은 결과를 얻어 정말 뿌듯해요.” 아울러 권 씨는 이번 국제대회 대상 수상을 통해 군면제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남자 무용수들에게 20대 초반 2년이라는 군 복무 기간은 현실적으로 큰 타격이기에 권 씨에게 이번 수상은 더욱 의미가 깊다. 대상, 인고의 시간 사실 권 씨는 지난해에도 이 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쉽게도 장려에 그쳐 미련이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수많은 무대에 올랐던 권 씨지만, 콩쿠르 준비는 매번 힘들고 긴 자신과의 싸움이다. 음악 선정은 물론 안무 구상, 동선, 무대 기획까지 모든 과정이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권 씨는 지난 5월 교내 오디션에서 이번 작품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평가는 냉정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능성이 없다는 교수님의 말에 크게 상처 입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열심히 준비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권 씨는 경연에 오르기 직전까지 음악과 안무를 수정하는 등 인고의 시간을 견딘 끝에 대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스스로 지난해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권 씨는 “떨림을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는 겸손한 답을 건넸다. 언젠가 “진정한 고수는 힘이 안 들어간다”는 큰아버지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권 씨는 "지난해에 비해 늘어난 경험과 여유가 수상에 기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끝에 권재헌 씨는 대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춤이 좋았던 소년, 자유를 탐닉하다 “어릴 적부터 무대에서 춤 추는 걸 좋아했지만 따로 사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었어요. 혼자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고 따라 추는 정도였는데 우연히 중학교에서 열린 지역 예술고등학교 입시설명회를 찾았다가 지원하게 됐죠.” 발레에 적합한 체형을 갖추고 있던 권 씨는 운 좋게도 체격 및 체력 조건으로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 덕분에 예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 이후 본격적인 무용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종합예술학교 진학을 꿈꿀 때 권 씨에게는 한양대 무용학과가 가장 큰 목표였다. 우리대학 출신 이준욱 무용수의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작품을 우연히 본 것이 계기였다. 대학 입시에 필수적인 경연대회 역시 ‘한양대학교무용콩쿨’을 선택했고, 한양대 교수진이 심사위원인 대회들을 찾아 나섰다. 실기 시험 당일 권 씨는 약 4분의 시험을 마치고 나오면서 합격했음을 직감했다고. “오전 7시 반부터 새벽 레슨을 받아야 하고, 대회를 준비할 때는 12시간이 넘도록 연습실에 머물러야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이니 즐겁게 하고 있어요.” 권 씨는 현대무용의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현대무용은 정해진 틀이 없어요. 어디든 무대가 되고, 무엇을 해도 정답이라는 완전한 자유에 매력을 느껴 현대무용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역시 관객들하고 어울리며 자유롭게 춤췄던 작품이다. “지난 2015년 선배님과 함께 했던 <하모니 어스(Harmony Us)>라는 작품이에요. 제가 관객석에 앉아 사람들과 섞여 있고, 선배님이 내려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죠. 그 후 제가 모른 척 무대위로 끌려 올라가면 그 때부터 공연이 시작되는 거예요. 형식적이거나 어둡지 않고 춤추는 저희도, 보는 관객들도 모두 밝게 웃으며 즐겼던 작품이네요. 자유로운 현대무용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죠.” ▲사진은 하모니 어스 공연모습 (출처: 권재헌 씨) 강연하는 안무가를 꿈꾸며 권 씨의 오랜 꿈은 ‘안무가’다. 무용을 잘한다고 해서 안무를 잘 짜는 것은 아니다. 안무가는 춤 추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자에 가깝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음악 공연과 전시회를 찾아 다닌다. “창작자는 시야가 넓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하려고 노력해요. 현대무용에 답은 없지만 분명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존재하잖아요.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안무를 창작해내고 싶어요.” 권 씨는 최근 안무가 외에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는 것이라고 답해요. 하지만 현실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무용에 대해 강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 제 강연을 듣는다는 건 결국 제가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언젠가 제 이름을 걸고 강연에 나서길 바라고 있어요.” ▲권재헌 씨는 지난 달 20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강연하는 안무가를 꿈꾼다"고 말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10 02

[동문]다큐멘터리 영화의 새 지평을 열다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 누적 관객 185만, 관람객 평점 ‘9.49(10점 만점)’,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초청. 이는 지난 5월 말에 개봉한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흥행 성적표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을 다룬 이 영화는 4번의 낙선,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후보가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 참여경선’을 통해 결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빼꼼하게 그려낸다. 당시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제작됐을까.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감독 이창재 동문(법학과 88)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파격적인 시도, 그리고 예상치 못한 흥행 올해 우리나라는 헌정(憲政) 상 유례없는 ‘첫 현직 대통령 탄핵’과 ‘장미 대선’을 동시에 치렀다. 그 결과, 약 9년 만에 여야가 바뀌었고, 민주당 계열의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막을 연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5월 25일 극장가에 정식 개봉 후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단기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제16대 대통령 선거로 노 전 대통령이 선출되고 약 15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지난 2013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과 지난해 가을 개봉한 <무현-두 도시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고 제작됐을까. "현재 사회는 대의정치를 표방하지만 실제론 Top-down 방식으로 당 수뇌부가 많은 결정을 하죠. 또 최근엔 여러 부정부패들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신뢰도 역시 하락했습니다." 이 동문은 우리가 ‘국민주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영화를 제작했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 제도는 전무후무(前無後無) 한 제도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일반 국민이 50%의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5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기억을 상당 부분 잊어버렸죠." 이 동문은 파란만장했던 노 전 대통령의 일생 중 ‘승리하는 인생’을 보여주고 잊힌 기억을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 2002년 경선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동서통합과 화해를 이루자"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신과 정치관을 잘 담아냈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지난 1992년 제14대 총선(부산 동구)을 시작으로 4번의 낙선 끝에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白眉)라 꼽을 수 있는 부분은 중간중간 총 39명의 인터뷰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대통령 보좌진과 비서관 등 쟁쟁한 정치인부터 영화배우 명계남 씨, 운전기사 노수현 씨, 작가 유시민 씨, 전 중앙정보부 공무원 이화춘 씨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섭외했다. “섭외 과정이 어렵진 않았어요. 오히려 인터뷰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감정 조절을 힘들어하셨죠” 원래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 특성상 감독이 주인공의 내밀한 심정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수반된다. 다만 이번 영화는 주인공 없이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모습을 그려내야 했다. “각 인터뷰이들이 하나의 세포가 되어 모자이크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그려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보통 객관적인 인터뷰의 경우 인물을 15도나 30도 등 측면으로 담는데, 저는 정면으로 인물들을 담아냈습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인터뷰이로 출연한 현 충남지사 안희정 씨. 영화 촬영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 는 총 9000분 정도지만, 실제로는 40분 정도만 사용됐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갈 지(之):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꿈과 가치 사실 지금까지 이 동문은 <사이에서>(2006), <길 위에서>(2012), <목숨>(2014) 등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왔다. “주변에선 이런 말을 하죠. 상업적으로 보면 돈도 안 되는 영화를 왜 계속 만드냐고. 하지만, 저는 영화가 끝났을 때 큰 찬사를 받지 않더라도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한 점에 만족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계속 전하고 싶은 다른 이야기들을 만드는 거고요.” 물리적인 성공은 파이가 정해져 있기에 한계가 있고, 결국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외적 가치가 아닌 내적 가치라는 것. “꿈은 우리에게 목표를 향해 달리게 하는 동력, 즉 동기를 부여합니다. 반면에 가치는 달려가는 과정에서 회의감에 빠지지 않고, 왜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합니다. 그렇기에 이 둘은 항상 함께해야 하죠.” 이는 서른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영화를 배우러 미국 유학을 간 이 동문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창재 동문(법학과 88)을 지난 9월 29일 중앙대에 위치한 교수실에서 만났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법과 관련된 실무적인 일을 하기는 싫었고, 평소 글쓰기와 독서를 좋아해 문학 쪽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교내 ‘언론고시반’의 초기 멤버로 활약했고, 졸업 후 신문사와 광고기획사, 다큐멘터리 방송 채널 등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인생에 회의감이 찾아왔다. 나이 든 다른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본인도 언젠가 저들처럼 틀에 박힌 삶을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패도 인생의 일부기 때문에, 꿈을 타협하지 말고 내가 책임지면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주변의 만류와 걱정을 뿌리치고, 결국 이 동문은 지난 2001년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귀국 후에는 형 집에 붙어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온갖 정력을 다한 뒤에 더 한층 노력을 기울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제 모든 걸 소진했다고 느낀 시점에 대학 교직 자리가 났죠.” 그 후 이 동문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교수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메인 예고편. (출처: Youtube) 주체성 있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제가 유학을 떠나기 전엔 IMF로 많은 분들이 실직, 해고를 당했고 그런 외부적인 상황은 항상 썰물∙밀물처럼 오고 갔습니다. 또 현재 많은 젊은 청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모르는 채 단지 불안하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앞서가려 무엇이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처럼, 이 동문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하며 갈 지(之)자를 그리더라도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 고되고 힘들지라도,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길 바랍니다. 운이 따르려면 운에게도 기회를 줘야 합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메인 포스터와 티저 포스터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9 27

[동문]“국악하는 제자들이 절 통해 많이 얻어갔으면 해요”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환경이라면, 그건 곧 배움이 있는 곳일 테다. 특히 예술을 하는 이에겐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예술학교에 진학한다. 그 중 국악을 하려는 이들이라면 절대 모를 리 없는 학교가 있다.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는 국립국악중·고등학교와 더불어 전국에 두 곳뿐인 '국립 국악학교'다. 지난 9월, 판소리 학사 1호로 알려진 왕기철 동문(국악과 81)이 국립전통예술중·고교 신임 교장으로 취임했다. 최초의 소리꾼 교장 되시겠다. 설립자의 제자가 모교의 교장으로 왕기철 동문은 판소리 명창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이며, 제27회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판소리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1999년부터 13년 동안 국립창극단에서 명창으로서 주연을 도맡아 무대를 펼치곤 했다. 국립창극단은 국악 중 창극을 하는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왕기철 동문(국악과 81)과 지난 25일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만났다. 왕 동문과 국립전통예술중·고 사이의 인연은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 동문은 열여섯 살에 형의 추천으로 가야금 병창의 명인 향사 박귀희 씨의 제자가 됐다. 그 뒤 박 씨가 설립한 서울국악예고(현 국립전통예술고)를 졸업했다.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하고는 다시 서울국악예고로 돌아와 1998년까지 십여 년 동안 판소리 전임으로 교편을 잡았다. 이듬해 1999년부터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다 몇 년 전부터 또다시 모교로 돌아왔다. 줄곧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번 학기부터 교장으로 임명됐다. 햇수로만 따지면 국립창극단에 있던 기간보다 오래 모교에 있었던 셈. 최근 돌아오게 된 계기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무대에 서며 느낀 점들을 알리겠다는 바람에서다. “국립창극단에 있는 게 예술에 전념하긴 좋아요. 매번 공연만 연습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후배들, 혹은 전통예술을 이끌어 갈 학생들과 함께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어 어렵사리 다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모교로 돌아온 때는 지난 2013년. 소위 판소리에는 잔뼈가 굵었지만, 국립학교기에 남들과 똑같이 필기, 실기 시험을 통해 평교사로 들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교사로서 자부심은 있어요. '나도 다 시험 통과해서 들어왔다' 그런 거죠.” 교장이지만 학생들과 계속 교류하고파 교장선생님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겐 멀기만 하다.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는 높은 분일 뿐이다. 하지만 왕 동문은 그간 해왔듯 학생들과 면대면 교류를 이어가고자 한다. “학교 선배로서, 선생으로서, 국립창극단에서 뛰었던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연습이나 삶에서 힘든 점이 있는 학생들은 여전히 절 찾아오곤 하죠. 그럴 때면 반갑게 맞이하고 제 경험을 통해 알려주는거죠. 그 아이들이 원하는 길을 걸어온 자로서 건네는 구체적인 도움이죠. 앞으로도 그런 교장으로 지내고 싶습니다.” 실제로 왕 동문이 걸어온 길은 국립전통예술고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무척 가고싶은 길이다. 고교 졸업 후 국악과에 들어갔고, 이후 국립예술단체에 들어가 메인을 도맡았다. 그런 길을 걸어왔기에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다. “또한 학생들의 삶에 대한 고민도 들어주곤 해요. 공연자의 마음이 좋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날 수 없죠. 그래서 항상 밝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합니다. 또 요즘은 인터넷으로 영상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제가 나서는 무대를 보면서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죠.” 또다시 1호란 타이틀 왕 동문의 이번 교장 임명은 판소리계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간 없었던, 소리꾼이 교장이 된 첫 경우이기 때문. “지금도 여기저기서 축하인사가 와요. 그 축하 받은거 만큼, 교장으로서 주어진 일도 잘 해야겠죠. 소리꾼으로서 활동도 계속 하고요.” 이미 소리꾼 학사 1호라는 타이틀을 한 번 얻어서인지, 왕 동문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처음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책임감이 가득했다. ▲왕기철 동문은 "교장으로서 그리고 선배 소리꾼으로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9 20 중요기사

[교수]“왜 로봇을 만드냐고요? 재밌잖아요”

TV 속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은 멋지다.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우리를 닮은 거대로봇이 날아와 거뜬히 사람을 구한다. 로봇은 많은 남성들의 어린시절을 장식했던 소재다. 만화 속 이야기일 뿐이던 로봇이, 어느새 실재하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걸음의 선두에는 ‘로봇덕후’ 한재권 교수(융합시스템학과)가 있다. 그의 곁은 로봇투성이 한 교수는 국내외로 유명한 로봇공학자다.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과 동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무기 산업에서 종사하다 십년 전부터 로봇공학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은 온통 로봇 천지다. 중앙에는 최근 개발한 스키로봇 ‘다이애나’가, 책상 위에는 그의 첫 작품 ‘험비’가, 그 밖에 어딜 둘러보든 로봇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의 아버지가 바로 한 교수 되겠다. ▲지난 18일 연구실에서 만난 한재권 교수(일반대학원 융합시스템학과)로부터 로봇과 함께한 이야기를 들었다. 로봇은 이미 우리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다. 과거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로봇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있고, 얼마 후면 흔히 상상하는 ‘사람을 닮은 로봇’, 곧 휴머노이드 또한 흔해질 거라곤 말한다. 하지만 로봇을 만드는 로봇공학은 무척 낯선 분야다. 특히 국내에는 로봇공학을 하는 기업이나 대학이 그리 많지 않다. 한 교수의 직업이 더욱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특별한 사람으로 분류되기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좋아했던 일을 쫓은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 언론이나 방송에서 한 교수를 동생을 위해 로봇공학자가 된 사람이라 말한다. 뇌성마비인 동생을 돕고 싶어 로봇을 만들게 됐다고. 하지만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따지고 보면 결국 TV 속 로봇이 멋있다고 생각해서 이 길을 택한거죠. 만약에 그때 의학드라마에 몰입했더라면 의사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늦었지만 제대로 가슴속에 품어 둔 로봇이지만, 한 교수의 어릴 적 한국은 지금보다 로봇을 배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아쉬움 속에 기계공학과를 택했고, 석사까지 취득했지만 바로 로봇의 길로 가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방법은 있었어요. 일본이나 미국처럼 로봇공학이 발달한 곳으로 유학을 고려해볼 수 있었죠. 그땐 확신이 없었던 듯해요.” 한 교수는 석사 이후 얼마간 대기업에서 무기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늦게나마 유학을 마음먹었고, 또다른 유명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가 있는 버지니아 공대로 가 제대로 로봇을 배웠다. 그동안 본격적으로 로봇을 만들지 못해서 였을까, 한 교수는 이후 엄청난 속도로 로봇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 처음 선 보인 로봇은 변신하는 ‘험비’. 미군 장갑차 형태의 RC카를 일주일 만에 개조해 만들었다. “그때 막 <트랜스포머> 첫 시리즈가 나왔을 때에요. 영화 보고 무척 감명받았는데, 마침 회사에서 휴가를 길게 얻어서 ‘이때다’하고 만들었죠.” 그렇게 만든 로봇은 유투브에도 올라와 현재 3백만 회가 넘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만들었던 모든 로봇이 소중한 그에게 아직도 험비는 큰 인상과 함께 사무실 책상에 남아있다. 다가오는 로봇시대는? 흥미롭게도, 로봇공학자로서 한 교수는 되려 “꼭 로봇공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로봇 기술은 분명 세상을 바꿀 겁니다. 현존하는 많은 직업이 사라지겠죠. 하지만 대신, 로봇을 이용한 무수히 많은 직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는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하며,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와 같은 부정적인 예측이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 일자리를 돌려달라’며 기계를 부쉈지만, 이내 그 기계들을 활용한 새 일거리를 하러 다들 흩어졌죠. 로봇도 단기적으로는 경쟁자로 보이지만, 결국 또 다른 일거리를 만들테죠.” 그렇다면 어떤 직업이 생겨날까. 한 교수는 과도한 예측은 또한 경계했다. “어떤 직업이 나타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미래를 예측한다는 얘기는 사기죠. 다만, 로봇의 특성을 잘 알고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그는 로봇의 특징으로 고도화된 계산 능력,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 등을 꼽았다. “반대로 사람은 비이성적이고, 계산 대신 직관에 많이 의존해요. 과거에는 인간의 단점으로 여긴 것들이지만, 이젠 이를 활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로봇 제작에 공학만 이용되지 않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 교수는 자신의 작품 중 외형이 예쁜 로봇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한 아내 엄윤설 교수의 손을 거쳤다고 강조한다. 또한 가장 최근에 제작한 스키 로봇 ‘다이애나’는 전 스키 국가대표 문정인 씨와 협업을 거쳤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로봇들은 심리학 쪽 연구자와의 협업으로 만들었다. “크게 보면 로봇은 도구이기도 해요. 로봇 자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가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도 중요한거죠.” 평생가겠다, 로봇 사랑 한 교수는 재작년부터 우리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도 도모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회였던 DARPA(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 로보틱스 챌린지에 참가하며, 한국에 로봇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ERICA캠퍼스에 로봇공학과가 생겨 일반대학원 융합시스템학과와 공학대학 로봇공학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최근엔 지도했던 학생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관련기사:유호연·배종학 학생 ‘로보페스트 국제대회’ 우승) 앞으로도 물론 로봇을 만들어갈 한 교수다. “아주 장기적으로는 만화 속 거대로봇도 만들고 싶어요. 이유요? 멋있잖아요! 물론 쉽진 않을거고, 가깝게는 휴머로이드도 계속 만들고, 재난 탐사에 필요한 로봇도 더 만들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HRI로봇도 만들겁니다.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한재권 교수가 최근 만든 스키로봇 '다이애나'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박영민 기자 pym0212@hanyang.ac.kr

2017-09 18 중요기사

[동문][세계 속의 한양인] 지구 반대편에서는 빙수가 열풍!

잉카문명의 발원지이자,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나라 페루. 한국에서 무려 21시간을 비행해야만 도착하는 이곳에선 새로운 디저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슈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눈꽃 빙수. 표지도 동문(경영학부 09)은 아이스크림의 수요가 높은 페루에 빙수라는 음식을 알리기 위해 친구와 함께 페루 최초의 빙수 가게 ‘미스터 빙수’를 차렸다. 여름엔 줄 서서 먹는다고 소문난 이 가게, 어떻게 페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어서 와, 빙수는 처음이지? 올해 4월 초, 페루의 수도 리마에 개업한 ‘미스터 빙수’는 현재 다섯 개의 메뉴인 ‘딸기 빙수(Fresa Bingsu), ‘망고 빙수(Mango Bingsu)’, ‘초코 빙수(Choco Bingsu)’, ‘치즈 빙수(Cheese Bingsu), 그리고 ‘멜론 빙수(Melon Bingsu)’를 페루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빙수 외에도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허니브레드’와 ‘초코브레드’, 그리고 컵라면과 한국 과자들도 판매한다. ▲’미스터 빙수’의 다섯 가지 빙수. 과일 빙수는 제철과일에 따라 대체되기도 한다. (출처: 표지도 동문) 빙수 재료는 모두 페루에서 구하지만, 한국의 생과일 빙수와 다를 것 없다는 점이 특징. “오히려 한국적인 메뉴를 페루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다만,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팥빙수나 인절미 빙수는 아직 팔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팥이나 떡을 현지인들이 좋아하진 않거든요.” 한국의 빙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표 동문은 그 경험을 살려 빙수를 직접 만든다. 듬뿍 담겨 있는 제철 과일과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는 미세한 우유 얼음 조각들은 페루인의 입맛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처음 맛보는 디저트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맛있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생과일과 우유가 들어간 메뉴다 보니, 기존에 현지인들이 즐겨 먹던 아이스크림보다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현재 ‘미스터 빙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무려 1만 4천여 개에 달한다. 개업한지 5달 남짓이지만, 현지 방송에도 출연할 만큼 ‘빙수 열풍’은 대단하다. ▲한국으로부터 상륙한 눈꽃 빙수를 맛보기 위해 ‘미스터 빙수’앞에 줄서 있는 현지인들. (출처: 표지도 동문) 지난 2014년에 교환학생으로 페루 땅에 첫발을 디딘 표 동문. 흥미롭게도 중학생 때부터 장래희망이 ‘사장님’이었던 그는 현지에서 생활하며 각종 사업 아이템을 물색했다. 그렇게 1년 후 표 동문은 이곳에 빙수를 들여오기로 했다. “페루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인기에 비해 종류가 많지 않더라고요. 눈꽃 빙수라면 통할 거라고 확신했죠.” 빙수가 이미 보편화된 한국과는 달리,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던 남미행은 성공적이었다. 창업의 밑거름이 된 대학생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폭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달았죠.” 페루에서의 경험은 표 동문 인생의 전환점이자 창업의 원동력이었다. 페루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도 잊을 수 없다. “저를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이라며 따뜻하게 맞아 주신 페루 홈스테이 가족들은 낯선 땅에 도착한 저에게 포근한 둥지를 제공해줬어요. 이들의 존재가 창업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표 동문은 언어에도 두려움 없이 부딪혔다. “일부러 현지인들을 계속 만나서 현지언어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모르는 단어나 문장은 그때그때 적어서 외웠고, 1년간 한국어를 쓰지 않고 스페인어만 하니 저 스스로가 뿌듯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늘었죠.” 덕분에 표 동문은 창업 과정 중 언어의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손님들과의 일상생활 소통도 가능하기에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현지인 손님들과 포즈를 취하는 표지도 동문(오른쪽)과 동료 김주엽씨. 표 동문은 손님들이 한 번 빙수를 맛보고 꾸준히 다시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출처: 표지도 동문) 표 동문은 교환학생 외에도 ‘또래 튜터링’, 멕시코 어학 프로그램, 응원단, 그리고 가지각색의 아르바이트로 바쁘게 지냈던 대학 생활을 진심으로 그리워했다. “지금도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 정도로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어요. 특히 과 자체가 창업과 밀접하기도 했고, 창업을 지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창업에 관련된 수업인 ‘경영자료분석’에서 창업을 가정하여 사업계획서를 써보고, 분석하고, 발표했던 것이 실제로 가게를 낼 때 많은 도움이 됐죠.” 남미 전역이 ‘눈꽃’으로 물들 때까지 “남미 전역에 확장할 계획이 없었다면 시작도 안 했어요.” 표 동문은 미스터 빙수의 분점을 페루의 타지역들과 남미의 다른 나라에 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확장을 위해서는 넉넉한 자본이 필요한 것이 현실. 그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현재, 페루의 겨울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여름을 준비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가오는 여름에는 과일 빙수의 종류를 늘리고 커피 빙수도 추가하면서 빙수의 종류를 다양화할 계획이라고. “고객들이 빙수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한국의 디저트 문화를 경험하는 동시에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페루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들과 좋은 인연들을 새기며 언제나 정성 들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표 동문. ‘세계 속의 한양인’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남미에서 높이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페루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여행 중인 한양인이라면, 먼 타지에서 맛볼 수 있는 빙수를 만나러 ‘미스터 빙수’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스터 빙수’가게 안에서 빙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표지도 동문(왼쪽)과 동료 김주엽씨. 옆 쇼윈도에는 한국 과자인 ‘빼빼로’도 판매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표지도 동문)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2017-09 14

[학생][한양피플]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삶

사막 마라톤, 철인 3종 경기, 봉사 활동, 학업, 직장 생활… 김채울 학생의 하루는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흐른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그녀를 가슴 뛰게 만드는 목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마음껏 욕심을 부려본다는 꽃다운 청춘을 만났다. 글. 박도근 / 사진. 안홍범, 김채울 ▲ ‘사하라 사막 마라톤’ 완주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채울(산업융합학부 16) 학생 아픈 아이들을 위한 사막 마라톤 지난 5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라 불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완주한 김채울 학생. 누군가는 왜 사서 고생이냐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성취였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종종 봉사 활동을 다녔어요. 그러다가 2014년에 회사(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진행하는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 3종 경기’에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고, 이후 장애 아동들에게 조금 더 보탬을 줄 수 없을까 고심하다가 사막 마라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모아 아픈 아동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사막 마라톤 도전을 통해 아동 환우 전문 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막 마라톤은 일주일간 10~15Kg의 배낭을 짊어지고 매일 40~50Km의 먼 거리를 뛰어야 하는 힘든 대회다.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한 정신력은 필수. 이를 위해 작년 10월부터 훈련에 매진했다. 웬만한 훈련은 다 해봤다고 자부했지만, 실전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대회 첫날부터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싶을 정도로 무척 힘들었어요. 특히 전에 수술했던 무릎 부위에 통증이 왔을 때는 너무 아파서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죠.” 가야할 길은 까마득했고, 모든 것이 막막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고,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힘들 때마다 이 도전이 갖는 의미를 떠올리며 달렸고,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김채울 학생은 이번 사하라 사막 마라톤 도전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67명의 기부자로부터 모은 700여만 원을 어린이 재활 병원 기금으로 전달했다. ▲ 대회 여섯째 날, 사막의 언덕(듄)에서 달리고 있는 모습 ▲ 레이스 시작 전 다른 참가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만의 인생을 설계한다 김채울 학생은 소위 말하는 ‘직대딩’이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과 주말에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녀가 대학 입시 대신 취업을 선택한 건 중학교 때 알게 된 ‘선취업 후입학’ 제도 덕분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졸업 후 취업이라면, 대학 진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취업을 목표로 스펙을 쌓고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3년간 경영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15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결과 한국지역난방공사에 공채로 합격할 수 있었고, 이후 계획대로 재직자 전형을 통해 지난해 한양대 산업융합학부에 입학했다. “진학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는 선배가 없어서 경험담이나 조언을 들을 수 없었죠. 그래서 ‘직대딩’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직접 만들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 진학을 꿈꾸는 분들이 저처럼 헤매지 않고 쉽게 정보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삶을 사는 김채울 학생. 그녀의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빼곡하다. 그 안에는 사막 마라톤처럼 이미 이뤄낸 것보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이 더 많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도전도 있다. 그럼에도 결국은 모두 해낼 것이라 확신한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결국 목표를 이루게 되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은 조금 고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30~40대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 30~40대의 자신이 인정할 만한 20대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가 바쁘게 살면서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는 이유다. ▲ 롱데이(무박으로 80km를 달리는 날) 중간 지점에서 물을 보충받고 있는 모습 ▲ 일주일간의 레이스 완주 후 한국인 참가자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4

[학생][도전한대] 세상을 놀라게할 괴물의 등장

대학생 종합 혜택 서비스를 지향하는 팝몬스터는 지난 2016년 10월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약 3만 명에이르는 페이스북 유저를 보유하고 있다. 대학생 장학금, 무료 체험, 할인숍까지 대학생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이해하고 해결해주는 몬스터가 등장한 것에 많은 유저들이 열광하고 있다. ‘팝!’ 하고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괴물처럼 세상을 놀라게 하기 위해 나선 팝몬스터 대표 최지은 학생을 만나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 팝몬스터 대표 최지은(생체공학과 12) 학생 기업과 대학생의 연결고리 “360만 대학생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팝몬스터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다. 팝몬스터의 메인 서비스인 장학금은 기업이 지출 하는 광고비의 일부를 대학생에게 혜택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기업들은 매년 광고를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사용하는데 확실한 타깃 광고를 하지 못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팝몬스터가 기업에게는 효율적인 광고 서비스를 보장하고, 대학생에게는 기업이 제공한 장학금과 물품 및 서비스를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최지은 대표는 “스타트업 홍보팀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비효율적인 광고에 대한 문제를 깨닫게 됐다”며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과 대학생의 입장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며 팝몬스터의 장학금 서비스를 구상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팝몬스터는 장학금 이외에도 캠페인과 대학생 할인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캠페인은 일종의 체험단 모집에 해당한다. 즉 기업의 제품을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리뷰를 제공받는 구조다. 할인숍은 대학생이면 누구나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처럼 팝몬스터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다. 이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로 뛰고 있다. “저희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연락을 주는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경우 저희가 먼저 적극적으로 알리는 편이에요. 그분들에게 저희가 어떤 취지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지, 무분별한 광고를 하기보다는 정확한 광고 타깃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설득합니다. 일종의 광고 컨설팅인 셈이죠.” ▲ 교통카드 칩이 내장된 팔찌로 ‘ 테크노경영학’ 강의에서 대상을 받은 모습 다채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다 최지은 대표는 평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적목 색맹 환자를 위한 LED 패턴 횡단보도와 하지마비 환자를 위한 자동 휠체어를 발명한 경력이 있다. 대학에 와서도 그 관심은 계속돼 교통카드 칩이 내장된 팔찌로 ‘테크노경영학’ 강의와 한양대 창업경진대회인 ‘라이언컵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대회에서 인정받은 경험들이 실제 창업에도 도움이 됐다. 창업과 발명,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영역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통통 튀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저는 뉴스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SNS도 즐겨 해요. 인터넷 서핑을 가리지 않고 많이 하는 편인데, 이 과정을 통해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죠. 그러면 그 키워드 하나를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적어놓는데, 이런 아이디어 2~3개를 붙여서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기도 하죠.” 새로운 것들을 생각해내길 좋아한다는 최지은 대표. 이런 작은 아이디어를 모으고 메모하는 습관이 결국 창업에 이르게 된 원동력은 아닐까. 실제로 그녀는 팝몬스터에 대한 아이디어 하나를 가지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 이후 1년 동안 코칭을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렇게 올 초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창업을 하는 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던 정말 좋은 제도예요. 저는 2016년 6기와 2017년 7기로 2년 연속 선발됐는데, 이곳에서 받은 도움이 없었더라면 창업이 힘들었을거예요. 창업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 현재 팝몬스터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팝몬스터의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기업들과 협업을 맺어 대학생을 위한 혜택으로 돌려준다면 회원 수도 자연스럽게 늘 것이다. 아울러 대학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 경쟁보다는 제휴를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죠. 이를 바탕으로 팝몬스터를 하루 빨리 성장시키는 것이 당장의 목표입니다.” 이와 함께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구상 중에 있다. 취업 정보 공유 서비스를 비롯해 쉐어하우스나 노트필기 공유와 같은 서비스가 그것. 최 대표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나씩 서비스를 확장 시켜나갈 계획이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거예요. 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면 취업을 할 수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뿌리치고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스펙 쌓기용으로 하는 창업은 절대 반대다. “간혹 스펙을 쌓기 위해 창업을 시도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말리고 싶어요. 창업은 그렇게 간단하고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야말로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도전해야 할 분야예요.” 최지은 대표에게도 분명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할 것이라는 편견 섞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런 시간을 뛰어넘어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마친 그녀. 팝몬스터가 대학생 대표 서비스로 하루 빨리 자리매김하길 바라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 Q 청년창업사관학교란 어떤 곳인가요? A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국가 정책 중 하나입니다. 최대 1년 동안 1억 원을 지원해줍니다. ‘학교’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것처럼 이름 그대로 창업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 같은 곳이에요. 이곳에서 지원금도 받고, 창업 교육과 멘토링도 받으면서 창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Q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서류 제출 후 2주 동안 매일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임원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후 두 번의 PT 발표를 거쳐 최종 선정이 됩니다. 선발 과정이 까다로운 만큼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Q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나요? A 아이디어만 가지고 입교를 하면, 해당 아이디어를 고객에게 검증받을 수 있고, 이와 함께 고객 발굴 방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후 1년에 걸쳐 개발, 디자인, 마케팅, 투자 등에 대한 전반적인 창업 교육을 받게 됩니다. Q 한양대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 중 이용한 게 있다면요? A 저는 지금 창업 동아리 소속이에요. 그래서 글로벌기업가센터에서 동아리 지원금을 받고 다양한 자문도 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무료법률 자문 등을 꼽을 수 있어요. 또 여러 대외 활동을 지속적으로 알려주셔서 빠짐 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지속적인 멘토링과 성과 체크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3

[동문][동고동락] 세 국적, 다섯학생의 글로벌 창업 체험

지난 6월 21일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2017 글로벌 창업 아이디어 해커톤대회’가 열렸다. 이날 처음 만나 ‘한중미’ 팀을 이룬 한국, 중국, 미국 국적의 다섯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아 우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한중미 팀을 이끈 이강우(철학과 13) 학생과 중국 국적의 고영군(대학원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석사과정 16) 학생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 2017 글로벌 창업 아이디어 해커톤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한중미’ 팀 ▲ ‘한중미’ 팀에 유일한 한국인 학생으로 참여한 이강우 학생 현장에서 처음 만난 한국, 미국, 중국 학생들 글로벌 해커톤대회의 주제는 국가별 특성에 맞는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이었다. 대회 참가자들이 나름의 창업 아이템을 미리 준비해 오고, 이를 토대로 팀원을 모아 기획한 뒤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따로 참여했던 이강우 학생과 고영군 학생 역시 나름의 창업 아이템을 준비해왔지만 팀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랜덤으로 구성된 팀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그 자리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국적의 도레이(대학원 유아교육학과 석사과정 17) 학생이 중국 유아교육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인 팀원들을 비롯해 모두가 이에 대해 크게 공감했고, 그렇게 한중미 팀의 주제는 ‘중국 유아시장 교육 콘텐츠’로 정해졌다. 팀원 다섯 명 중 한 명은 한국인, 또 다른 한 명은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 나머지 세 명이 중국인이었던 만큼 중국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고영군 학생은 “중국에서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 무척 큰 편”이라며 “중국의 유아시장이 아직은 많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 타깃으로 잡으면 좋을 것 같았다”며 주제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강우 학생은 “중국은 두 자녀 정책 도입 이후 어린 아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동시에 맞벌이 부부 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대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 맡겨져 길러지는데, 그러다 보니 중요한 시기에 감수성이나 사회성 등과 같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 이강우 학생(왼쪽)과 고영군 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인생의 튼튼한 토대가 될 다양한 창업 경험 ▲ 해커톤대회를 통해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하는 고영군 학생 한국, 중국, 미국 세 국가의 학생들이 만난 만큼 의사소통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강우 학생은 “한국말을 못하는 중국인 유학생도 있었고, 영어를 못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반면에 미국 친구는 중국어를 하지 못해서 소통을 할 때 몇 번의 통역을 거쳐야 했죠”라고 대회 당시의 고충을 밝혔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로 바뀌었다. 다른 팀에 비해 높은 외국인 학생 비율이 한중미 팀의 장점이자 차별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미리 준비해 온 아이디어로 발표를 준비한 다른 팀들과는 달리 한중미 팀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팀원들의 특성을 살려 주제를 정하고, 발표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대회의 취지에 더 부합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중국 유아시장 콘텐츠는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결국 우수상을 받았다. 고영군 학생은 “이번 대회 참여를 통해 창업 아이템 기획 단계에서의 노하우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대회 참여 소감을 전했다. 이강우 학생은 다양한 창업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대회 지원자 중에는 실제로 창업을 해본 분들도 있었어요. 심사위원들 중에 전문가와 투자자도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수업으로는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백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자의든 타의든 창업은 이제 필수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지금 당장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비록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한중미 팀원들. 창업에 대한 그들의 남다른 관심이 언젠가 알찬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