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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13

[교수][시선집중] 성실함으로 오롯이 한길을 걷다

지난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물리학과 김은규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 석상일 교수, 고려대학교 노준홍 교수가 공동 연구한 세계 최고 효율의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태양전지에 대한 연구 성과가 실렸다. 김은규 교수에게는 지난 30년간 굳건히 한길을 걸어온 결실이자 성과였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물리학과 김은규 교수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 과학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논문이 실리길 소망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 <사이언스>. 하지만 까다로운 심사와 함께 경쟁률이 높아 누구나 논문 게재의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 물리학과 김은규 교수는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태양전지연구센터를 이끌었던 울산과학기술원 석상일 교수, 고려대학교 노준홍 교수와 함께 세계 최고 효율을 기록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그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 6월 30일자에 게재됐다. 기쁨의 크기가 너무 컸던 것일까. 김은규 교수는 논문이 게재된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을 때 의외로 덤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3월 말에 논문을 투고했는데 1~2주 후 1차 심사를 통과했다는 편집자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1차 심사를 통과한 것은 그만큼 연구 성과가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게재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최종 통보는 5월 중순께 받았어요.” 하지만 논문이 실린다는 소식에 담담했던 것과는 달리 논문 요약문의 첫 문장, 첫 단어로 ‘결함 상태 분석’이 거론된 것에 대해서는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저널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논문의 의의를 밝히는 요약문이 실리는데, 여기에 첫 단어로 언급됐다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결함 상태 분석’을 김은규 교수가 담당했다. “우리 연구실의 반도체 결함 상태 분석 기술이 유무기 태양전지 고효율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매우 기쁩니다.” 세계 최고 효율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 태양전지는 무한한 청정 태양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원으로 변환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근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강력히 추진함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의 보급, 확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태양광에너지는 유력한 대체에너지 중 하나다. 그러나 현재 약 90% 이상 사용되고 있는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는 효율은 높지만 고도의 기술과 다량의 에너지가 필요해 비용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제작 가능한 유기 및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효율이 낮아 대규모 상용화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현재는 다양한 태양전지들이 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합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 중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유무기 하이브리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기존의 유기 및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효율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실리콘 태양전지나 박막형 태양전지의 효율에 근접하고 있어 차세대 태양전지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은규 교수는 약 5년 전부터 한국화학연구원의 태양전지연구센터와 유무기 혼성 반도체 태양전지에 대해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성을 높이는 연구를 함께추진하게 됐다. 공동 연구팀은 지난 2013년부터 해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광전변환 효율을 16.2%에서 17.9%, 20.1%로 세 차례 갱신한 바 있는데, 그동안은 소재 합성 및 소자 구조나 공정 변화로 효율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번에 광전 효율을 22.1%까지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광전 에너지 변환 효율을 감소시키는 소재 내부의 결함을 줄인 덕분이다. “근원적으로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내부 결함 문제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그동안 연구해온 DLTS(Deep Level Transient Spectroscopy, 깊은 준위 분광법)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양이온, 음이온, 할로겐화물로 구성된 신소재인데, 광전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진 할로겐화물의 결함을 잡아 변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즉 할로겐화물의 내부 결함을 줄이기 위해 요오드화 이온의 형태를 제어하는 방안을 도출하고, 이를 소자에 적용해 세계 최고의 공인 인증 효율인 22.1%의 광전변환 효율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결함 상태’ 연구 “향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대면적화 및 태양열에 의한 온도 상승 시 열적 안정성, 소자 신뢰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결함 상태 연구가 주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 분야가 연구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태양전지 소자의 결함 농도 및 결함의 에너지 준위를 측정할 수 있는 DLTS는 김은규 교수가 1980년대 중반부터 심취한 분야다. 특히 반도체물리학 전공자로서 반도체 소재의 물성 및 결함 상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당시만 해도 이 분야 연구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자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은규 교수는 성실한 연구자의 태도를 우직하게 고수했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DLTS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연구자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빛이 보이고 길이 생기더군요.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여건에 성실하게 임하면 됩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반 산업이다.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안전성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태양전지 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LED와 관련된 다양한 기업에서 공동 연구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반도체와 관련된 구조는 DLTS를 통해 결함 상태의 에너지 준위를 측정해 소자의 신뢰성 및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측정 장비와 분석 노하우를 갖춰야 하는데, 김은규 교수는 지난 30년간 해당 연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DLTS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됐다. ▲ 김 교수는 "연구자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빛이 보이고 길이 생기더군요." 라고 말한다. 자연 현상 원리 밝히는 재미있는 물리학 일반적으로 물리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이에 대해 김은규 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물리학은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보편적인 원리로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수학적인 도구를 사용해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자연 현상들이 어떤 원리에 의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니까요.” 복잡한 수학 공식보다는 원리를 밝히는 것이 물리학의 목적이라고 강조하는 김은규 교수. 중·고등학교 때 어려운 수학 공식보다 실험 도구를 자주 접하면 물리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물리학과 반도체 소자 관련 연구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김 교수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양자기능연구실’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현재까지 반도체 소자 물리는 고전 역학 및 고전 전자기학으로도 충분히 설명됐습니다. 하지만 향후 나노 구조의 양자 소자는 양자역학적 개념을 이용한 반도체 소재나 구조로 창출될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적 개념의 기능을 가진 양자 소자를 제안하고 응용하기 위해 양자기능연구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은규 교수는 “창의력은 튼튼한 기초를 기반으로 탄생하는 법”이라며 기초 학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물리학이라는 기초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질 때 비로소 양자 기능의 미래 소자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2

[동문][꿈꾸는 청춘] 반가운 실패! 청춘이라면 두려워 말라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권현진 씨. 청춘의 다른 이름이 열정과 패기라면 권현진 씨는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를 온전히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일찍이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으며 꿈을 키워나간 권현진 씨의 취업 성공 비결은 실패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개선한 것이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권현진(스포츠산업학과 08) 동문 꿈에 그리던 금융사 취업에 성공 졸업 2년 만에 처음으로 모교를 찾은 권현진 씨. 몰라보게 달라진 교정의 모습에 그동안 소원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지방에서 근무하다 보니 모교를 자주 찾지 못했습니다. 바뀐 게 너무 많네요.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후배들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2015년 8월에 졸업한 권현진 씨는 졸업을 한 달 앞둔 그해 7월, 국민은행의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은행원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증권사, 생명보험사 등 여러 금융사에 도전했던 권현진 씨는 세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결국 네 번째 도전에서 축배를 들 수 있었다. “금융사 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은 은행에 취업하게 돼 더욱 기뻤습니다.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취업 후 고향인 포항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권현진 씨. 이제 만 2년이 된 새내기 은행원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가계여신 업무를 담당한 지 6개월이 됐습니다. 증권사의 대학생 서포터즈로 활동하던 시절, 무작정 현직 종사자들을 찾아가 궁금한 점을 묻곤 했습니다. 나름 금융 지식을 탄탄히 쌓았다고 자신했는데 제 착각이더군요. 현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만날 때마다 또 다른 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최강 열정 오래전부터 은행원을 꿈꿀 정도로 평소 금융에 관심이 많았던 권현진 씨. 의외로 그의 전공은 스포츠산업학과다. 물론 전공과 무관한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스포츠 관련 공기업이나 협회, 프로구단 등에서 일하는 다른 동기들과 비교하면 은행에서 일하는 권현진 씨의 행보가 이색적인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은행원을 꿈꾸게 된 걸까. 권현진 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대학 진학에는 뜻이 없었지만 한양대학교에 스포츠산업학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학과 창립 이듬해에 지원했다. 좋아하는 운동은 취미 생활로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경영학을 다중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단순히 자산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금융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배달, 공사장 일용직, 판매원, 장사를 비롯해 헬스 트레이너, 경호원, 유아 체육 강사, 보험설계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경험을 쌓았다.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재미있어 보이는 일은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에도 늘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취업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전역한 3학년 때부터다. 당시 그 흔한 토익 점수 하나 없어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어려웠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교내 커리어개발센터의 모의 면접과 취업 박람회 등 각종 프로그램에 무조건 참여했다. 여기에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운영하는 학술 동아리, 증권사의 대학생 서포터즈, 한국경제신문의 대학생 경제포럼, 평창 스페셜올림픽 스태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문 지식을 쌓아갔다. 무슨 활동을 하던 팀장을 자처하며 리더십을 키웠다. 남들보다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직책을 도맡았던 것이다. 이런 열정으로 하루 수면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의 치열했던 시간들 없이 오늘날의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 권 동문은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해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낙담하기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슬럼프에 빠질 새가 없죠." 라고 말한다. 프레젠테이션의 고수가 되기까지 권현진 씨가 졸업 전에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이다. 특히 프레젠테이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발성과 발음 연습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데 익숙해지도록 발표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다녔다. 덕분에 지금은 대중 앞에서도 떨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전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 때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발표 수업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을 때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발표를 못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힘들겠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발표의 기회를 늘렸습니다.” 발표 수업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찾아서 수강하고 발표자를 자원했다. 경험을 늘리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발표 경험이 쌓이니 서서히 무대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경제신문 대학생 경제포럼에 참여했을 때는 500여 명 앞에서도 성공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칠 수 있었다. “특히 경영학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발표 수업이 많거든요. 간혹 팀플레이 수업을 할 때 수동적인 학생들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해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은행원은 나의 천직이자 운명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는 한 신문사의 사망 기사 전문 기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광고인에게 성공 비법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주저 없이 말한다. “성공 비법? 그런 건 없어. 성공하려면 크게 한번 넘어져봐야 해.” 그러면서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너를 만든다”고 조언한다.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권현진 씨에게 성공이라는 수식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그 또한 다년간의 사회 경험 덕분인지 영화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실패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말한다.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해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낙담하기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슬럼프에 빠질 새가 없죠.”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최종 면접에서 여러 차례 낙방했지만 절망하기보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분석한 권현진 씨. 혹시라도 자신의 활동적인 성향과 금융권에서 바라는 인재상이 맞지 않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은행원이 되려는 이유와 함께 자신의 꿈과 열정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은행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들려줍니다. 그러면 저는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고, 저 또한 도움을 받고 정보를 청하기도 합니다. 은행원은 어느 직업보다 세상을 폭넓게 배울 수 있고, 끝없이 공부하며 성장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은행원은 저의 천직입니다.” 누구보다 투철한 직업관을 가지고 있는 권현진 씨. 그는 금융 전문가의 꿈을 향해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1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민화에 이야기를 담는 스토리텔러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미인도, 초충도 등을 그리며 전통화 디렉터로 활약한 민화 작가 오순경 동문.드라마 종영 후 신사임당의 진품과 드라마 속에 사용된 작품을 나란히 감상할 수 있는 ‘사임당, 그녀의 이야기’전을 열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을 찾아 민화와 그녀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민화, 복을 비는 그림 “연꽃은 군자의 그림으로 입신출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자녀가 과거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 화원을 불러 옆방에서 연화도를 그리게 했죠. 그리고 과거를 보러 떠나기 전날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연화도를 펼쳤습니다.” 오순경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단순히 연꽃을 그린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던 연화도에서 아들의 장원급제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다. 고이 간직했던 그림을 펼치는 마음 자체가 정결한 의식이 아니었을까. 오늘날로 치면 수능 시험을 보는 자녀를 위해 백일기도를 드리거나 백팔배를 올리는 부모의 심경과 같았으리라. 오순경 작가는 그림 속의 꽃, 새, 물고기 하나도 뜻 없이 등장하는 것이 없다며 설명을 이었다. “연과(연밥)는 연이어 과거에 급제함, 잉어 두 마리는 소과와 대과, 여뀌(보리처럼 생긴 알맹이가 붉은 식물)는 고난을 극복하고 공부를 마침, 갈대는 임금이 내리는 밥상, 한 마리의 해오라기는 일로(一路), 즉 한길을 걷는 군자를 뜻합니다. 연화도는 결국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공부를 마친 뒤 연이어 과거에 급제해 임금님이 주는 밥상을 받고 군자의 길을 걸으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민화에는 그림마다 복을 비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파초도는 기사회생, 모란도는 부귀영화, 나비는 평안장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민화는 길상도(부귀와 행복 등 염원을 사물에 의탁해 나타낸 그림)라 불린다. 그저 다채로운 색감에 해학적인 그림이라 생각했던 민화. 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흥미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드라마 전통화 디렉터라는 새로운 분야 개척 오순경 작가에게는 전통화 디렉터라는 또 다른 직함이 있다. 미인도, 초충도, 궁모란도 등 전시회 속 작품들이 사용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전통화 디렉터로 활동하며 미술 자문은 물론 드라마 속 그림을 그렸다. 특히 드라마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하는 미인도는 신사임당 역을 맡은 배우 이영애씨의 아름다움을 단아하게 표현해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지난 2014년 민화 작가가 주인공이었던 <마마>라는 드라마에서 미술 자문을 하며 전통화 디렉터라는 말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미술감독과는 다른 일이기에 전문적인 직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드라마에서 한 점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화면에 담으려면 초본, 중간본, 80% 완성본, 100% 완성본처럼 같은 그림을 네 가지 버전으로 준비해야 한다.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는 총 2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게다가 기획 단계부터 충분한 협의를 거쳐 어떤 그림을 사용할 것인지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전날 대본이 수정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촬영에 지장이 없도록 뜬눈으로 밤을 새며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기에 작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드라마는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에 수출되는 작품이라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우리의 전통미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시대적으로 조선 전·중기 화풍만 담아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설득해 현대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미술관에서 조선 후기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 속에서는 상당 부분 편집되고 말았죠.” 드라마뿐 아니라 민화 에세이 <민화, 색을 품다>를 출간하는 등 누구보다 민화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오순경 작가. 드라마 덕분에 신사임당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하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신사임당의 작품과 비교되는 것이 부담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고화’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민화’는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요. 한자리에서 고화와 민화를 같이 감상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취향을 깨우쳐주는 것도 작가의 일이니까요.” 인생이라는 무대, 뜨거운 열정으로 돌진 연극영화학과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오순경 작가는 민화 작가로 활동하기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에서 미술 자문을 맡아 일했다. 드라마 <마마>와 <사임당, 빛의 일기> 이전에는 드라마 <연애시대>와 영화 <싸움>, <오싹한 연애>, <파파> 등의 미술 자문을 했다. 이런 이력이 있었기에 보다 수월하게 전통화 디렉터로 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대미술과 민화 작가라는 독특한 조합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고등학생 시절 미대 진학을 준비하던 오순경 작가는 응용미술 분야를 탐색하던 중 무대미술이라는 분야를 처음 알게 됐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기에 연극영화학과가 있는 대학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무대미술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때마침 무대미술을 전공한 신일수 교수가 한양대학교에 부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앞뒤 잴 것 없이 지원했다 . 민화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우연히 펼친 잡지에서 접하게 된 민화. 평소 현대화보다 고화를 좋아했던 오순경 작가는 단번에 민화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길로 민화 강좌에 등록했다. “어느 날 정조 능행도를 보고 저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정조 능행도가 전시된 미술관을 전시 기간 내내 출근하듯 찾아가 그렸습니다. 완성하는 데 총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죠.” 가로 10m, 세로 2m에 이르는 대작인 데다 손톱만한 크기의 인물이 7,000명 넘게 등장하는 정조 능행도는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오순경 작가는 기어코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 집념을 높이 산 민화계의 원로 송규태 선생이 그녀를 기꺼이 문하생으로 받아줬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정조 능행도를 완성하고 나니 실력은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집념과 근성이 민화 만학도를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이다. “무엇을 하든 제대로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무언가에 꽂히면 거침없이 돌진하고, 하나에만 몰입하는 성격이에요.” 이야기를 전하는 민화 작가 그렇다면 대학 시절은 어땠을까. 무대미술은 물론 연기까지 도맡았던 오순경 작가는 4년 내내 최다 출연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을 보다 열심히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라고. “지금 대학 생활을 열심히 보내고 있다면 자신을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세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분명 미래에 도움이 될 겁니다.” 열정의 소유자 오순경 작가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그녀 역시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전시회,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민화가 전통만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창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오순경 작가. 다음 전시회에서는 그녀의 그림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사랑한대 2017년 9-10월호 이북 보기

2017-09 11

[학생]시각 장애인도 자유로이 책 읽을 수 있도록

시각 장애인은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자를 읽는다. 이는 그들이 점자화 혹은 음성화 된 도서만 읽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필연적으로 도서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수 있는 비율은 겨우 5%를 웃도는 실정이다. 대다수의 시각 장애인들은 높은 독서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 셈이다. 신체의 불편이 곧 정보소외, 교육부재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네 명의 대학생들이 손 내밀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책 읽는 세상을 꿈꾼다"는 휴즈(Hues) 팀의 이야기다. 책, 귀로 읽습니다 ▲사진은 마이리스를 착용한 모습 (출처: 키뉴스) ‘마이리스(Miris: Memorable Iirs)’는 책을 읽어주는 시각 장애인용 보조 기기다. 마이리스를 안면에 착용한 채 책을 읽으면 기기에 내장된 모듈이 문자를 즉각적으로 인식해 음성으로 송출한다. 문자를 귀로 읽게 되는 셈. 마이리스는 올해 초 개발에 돌입해 현재 프로토타입까지 제작됐으나, 완성품 출시까지는 아직 여러 단계가 남아있다. 하지만 마이리스가 상용화 될 경우 단순히 시각 장애인의 독서를 넘어, 그들의 인쇄정보 접근성과 문자정보 수용력 역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기술력과 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마이리스가 네 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개발됐다는 사실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마이리스는 지난 7월 개발팀 휴즈(Hues)가 ‘한양-SK 청년비상 창업경진대회’에서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위 대회는 SK그룹에서 시행하는 ‘청년비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SK그룹과 대학이 협력해 학생 창업의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한양대는 지난 2015년부터 주관기관으로 선정됨에 따라 경진대회를 개최해왔다. 나아가,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아이템 개발, 전문가 멘토링, 시제품 출시와 소셜벤처 사업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휴즈의 팀원들은 “마이리스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가의 조언 및 개발 비용 확보를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개최된 한양-SK청년비상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휴즈팀 (출처:키뉴스) 마이리스의 개발은 신정아(정보시스템학과 3)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점자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시각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신 씨는 그들의 열악한 독서 환경을 보며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하나의 감각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들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점자보다는 음성을 제공할 경우 시각 장애인들이 더욱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신 씨는 마이리스 개발을 위해 이미 친분이 있던 학생 개발자 김기태(한국외대), 김보운(국민대) 씨와 의기투합했고, 기획 및 발표를 맡을 성영재(경영학과 4) 씨를 섭외했다. 그렇게 세 명의 개발자와 한 명의 기획자로 올해 초 휴즈가 결성됐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빛깔을 제시하고파 ‘문자를 읽어준다’는 것이 얼핏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은 무척 까다롭고 정교한 기술력을 요구한다. 실제로 마이리스는 세 가지 기술력의 집합으로 탄생했다. 문자를 인식하고(영상처리 기술), 분석해(OCR 기술), 음성화(TTS 기술)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 “무료 오픈 소스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고, 기술 개발 자체는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죠. 학생이기에 자본금이 넉넉하지도 않고, 수요 자체가 적은 제품이니까 투자도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경진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신정아(정보시스템학과 3) 씨와 성영재(경영학부 4) 씨가 마이리스의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술 개발 외에 팀원들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제품 테스트’ 과정이었다. 대상이 명확한 제품 특성상 마이리스의 테스트는 실제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테스터 모집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팀원들이 “혹시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웠다고. 하지만 팀원들은 우리대학에 공문 발송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으로 서울 시내 여러 시각장애 복지관을 정식 섭외할 수 있었다. 이후 휴즈 팀원들은 여러 차례 시각 장애인들과 만남을 갖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질적인 조언을 구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이겨내고 팀원들이 힘을 합친 끝에 마이리스는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휴즈 팀원들은 입을 모아 “마이리스가 상용화 된다 해도 이윤을 추구할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팀명 휴즈의 뜻은 빛깔(hue)이에요. 시각 장애인분들께 작은 빛깔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신체적 결함으로 교육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이윤은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죠.”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를 꿈꿨던 신정아 씨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장래희망이 하나 더 늘었다. “무언가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는 확고합니다. 다만 이번 마이리스 개발을 통해 앱이 아니라 실제 제품 개발에도 흥미가 생겼어요.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 개발하든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편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공학도가 되고 싶습니다.” 마케팅 전문가를 희망하는 성영재 씨 역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기술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IT 혹은 통신 기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끝으로 두 사람은 “어떤 업(業)을 갖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전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손 내밀어 함께하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두 사람은 "어떤 업을 갖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9 04 중요기사

[동문]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되고파

재즈 음악은 즉흥성과 유연함이 매력이다. 보컬은 악보에 적힌 박자와 음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그루브와 감성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채워 나간다. 그래서 재즈에는 노래하는 이의 개성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 있는 재즈의 특성. 그러나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 97)은 그것을 재즈의 매력으로 손꼽는다. 따듯한 노랫말과 몽환적인 보이스로 풍성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재즈 보컬리스트 조정희 동문을 만났다. 늦깎이 음악인, 재즈를 만나다 조정희 동문은 재즈 보컬리스트다. 지난 2011년 재즈 프로젝트 밴드 ‘박근쌀롱’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며 국내 재즈씬(Scene)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녀는 ‘3월의 토끼’라는 밴드를 결성해 재즈 보컬로 본격 데뷔했다. 그 밖에도 다수의 개인 앨범을 발표했으며 ‘엔젤아이즈’, ‘굿와이프’ 등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며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그녀만의 입지를 굳혀왔다. 조 동문의 음악을 논할 때 밴드 '3월의 토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재즈 프로젝트 밴드 '3월의 토끼'로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이 때 작업한 세 편의 앨범은 재즈 음악계에 보컬 조정희를 알리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3월의 토끼'라는 귀여운 이름에는 사실 그녀의 음악적 철학이 담겨 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잖아요. 이처럼 많은 분들이 저희를 통해 재즈 음악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 지은 이름이에요. 아마 이 때부터 대중들과 재즈로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인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과 97) 재밌는 점은 그녀가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부 시절 조 동문은 그저 음악을 좋아하던 국문학도였다. 대학 생활은 즐거웠고, 학과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졸업을 목전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불현듯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조 동문은 졸업 후 뒤늦은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개인 레슨을 받으며 기본기를 다졌고 맨몸으로 무대에 올랐다. 비교적 늦은 시작인만큼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며 실력을 쌓았다. “젊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 좋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잊혔으니까요.”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 보컬리스트로 데뷔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음악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황의 시간이었다. 대중가요부터 팝, 메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의 방황을 끝낸 것이 바로 재즈였다. 재즈를 만난 후 그녀는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늘 존재했지만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녀의 음악을 찾는 이들도 점점 많아져 갔다. 재즈,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 되길 어느덧 15년 차 음악인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국어국문학과 출신답게 최근에는 윤동주 시인의 동시에 재즈 선율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지원한 창작 동요제에서는 결선 진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앨범 작업 역시 진행 중이다. 그녀는 이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들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음악적 계획도 덧붙였다. ▲지난 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정희 동문이 재즈 대중화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래서 그녀는 설명이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재즈는 어렵고 낯선 장르인 것 같아 늘 안타까워요. 과거에는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하는 재즈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재즈가 됐으면 해요.” 음악 안에서 가슴 뛸 것 조 동문은 현재 우리대학 실용음악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그녀는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전하는데 주력한다. 오디션을 위한 테크닉보다는 노래하는 이의 감성이 담긴 진짜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는 그녀. "퍽퍽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인의 꿈을 잃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무척 대견하다"는 조 동문은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들을 향해 “소신을 잃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조정희 동문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소신껏 좋아하는 음악을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9 04 중요기사

[학생]타고난 스토리텔링으로 공감 이끄는 '강백수' (1)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아티스트가 있다. 강민구(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씨는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쓸 땐 본명 ‘강민구’,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낼 땐 가수 ‘강백수’가 된다. 시인과 가수를 넘나드는 강 씨의 노래는 가사가 일품이다. 때론 찌질함이나 쓸쓸함을, 때론 벅차오르는 감정을 진솔하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삼겹살에 소주만 있어도 행복한데’라며 노래부르는 시인, 강 씨를 만났다. 시인, 혹은 글 쓰는 가수 강 씨는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의 창작 분야는 다양하다. 시, 산문, 에세이, 노래 등 글이 들어가는 많은 것이 강 씨의 창작 영역이다. 처음 사람들 앞에 드러낸 모습은 시인. 학부 시절인 2008년 ‘시와 세계’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여고축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꾐을 시작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해 2010년 ‘강백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강민구(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씨는 '강백수'라는 예명의 가수로 활동 중이다. (출처: 강민구 동문) ‘시인 강민구’가 ‘강백수’란 예명을 가진 건 약간의 부담감이 작용했다. “처음 노래를 낼 때만 해도 조금은 보수적인 문단에서 ‘음악한다’는 점을 어떻게 볼지 부담됐어요. 이젠 의미없는 걱정이지만요(웃음).”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은 ‘강백수’로, 시와 산문 등의 창작은 ‘강민구’라는 본명을 사용한다. 이름을 통해 두 자신을 분리시키는 셈. 그래서인지 강 씨는 시를 쓸 때 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가사를 쓸 때는 대중들의 반응을 보는 편이죠. 그렇지만 시는 오롯이 제가 기준이 돼서 씁니다.” 기준이 철저해서 일까, 강 씨는 등단한 이래 수많은 시를 써왔지만, 아직 시집은 내지 못했다. “써둔 시는 많아요. 문예지에도 계속 발표하고 엮기만 해도 몇 권은 나올 테지만, 아무래도 욕심이 나네요. 현재도 50~60편을 선정해둔 다음, 새로 괜찮은 시를 쓸 때마다 목록에 넣고 기존 것을 빼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죠.” 가수로서, ‘강백수’로서 현재 대중이 인식하는 강 씨는 ‘강백수’다. 강백수의 노래는 무척 매력적이다. 뭣보다 들었을 때 공감이 간다. 강 씨의 이야기인데, 듣다 보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그의 이야기 속에 ‘보편적인 우리네 이야기’도 담긴다. 다음은 1집 <서툰 말> 수록곡 ‘타임머신’(2013)의 가사. #강백수 - 타임머신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 나가던 삼십 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아버지 육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차라리 잠실쪽에 아파트나 판교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13년에 육십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너무 힘들어 하고 있죠 남들처럼 용돈 한 푼 못드리는 아들 놈은 힘 내시란 말도 못해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 학교 때 공부는 좀 잘하겠지만 전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거에요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삼십 대의 우리 엄마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 보낸 우리들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 학교 때 공부는 좀 잘하겠지만 전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거에요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 해야지 강 씨는 술 마신 날 들어간 집에서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고 가사를 썼다. 쓸쓸한 그 모습에서 ‘지난 날들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상상을 했다. “'타임머신'의 이야기는 저희 집 얘기지만, IMF 등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해요. 흘러간 기억들이 우리 집안, 우리 가정으로 녹아들었을 때 사람들에게 와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강 씨의 스토리텔링은 자신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보고 느낀 것도 노래가 된다. 작년 낸 앨범 <설은>의 수록곡 ‘오피스’(2016)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이 그립고 / 퇴근하자마자 출근이 두렵고 / 그렇다고 그만 둘 용기는 없는데 (오피스, 2016) 너무나도 익숙한 지명을 제목으로 한 ‘왕십리’(2016)에는 술 마시러 간 왕십리에서 신입생를 보며 과거의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의 젊음이 부럽다던 선배들 그들도 그땐 스물 한 두 살 / (중략) / 졸업한 선배들 말끔한 양복 입고 가끔 술 사주러 올때면 / 왜 그리 외로운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야 나도 알겠구나 /내가 그들 나이가 됐구나 / 저들도 나처럼 (왕십리, 2013) ▲강민구 씨의 창작 영역은 다양하다. <사축일기>(2015)는 강 씨가 직장인들을 취재해 그들의 애환을 담은 책이다. 계속 글 쓰고파 '쓰는 사람' 강 씨는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그의 쓰기는 어느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돌아올 때면 그날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요. 그 다음 날 일어나서 보는 거죠.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정리하면서요. 그러고 결정하죠. 이건 산문으로 써야겠다, 이건 시로, 이건 노래가사로.” 박사과정을 밟게 된 것도 쓰기에 대한 욕구가 컸다. “학부 시절 성실하지만은 않았어요.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정작 난 시를 잘 모르구나 싶었죠. 그래서 더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본인의 노래 ‘하헌재 때문이다’를 통해 현재 인생에서 예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을 원망도 하지만, 강 씨는 스스로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힘들때 들을 노래가 필요하면 ‘강백수’를, 삶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면 ‘강민구’를 찾자. 그의 얘기가 쏠쏠한 감동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른다. ▲현재는 '강백수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선보이는 강민구 씨(왼쪽에서 세번째). "환갑 때까지 창작과 공연을 지속하겠다"는 바람이 한결같기를 바란다. (출처: 강민구 씨)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08 28

[동문]성실함이 만든 특별한 바둑 인생

가로, 세로 19줄의 정방형 세계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두뇌 싸움, 바둑. 정수현 동문(영어영문학과 76)은 삶의 대부분을 바둑과 함께했다. 정 동문의 성실함은 그의 커리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1기 프로신왕전 우승,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 준우승'이란 수상 경력을 기본으로 바둑 관련 4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최초의 바둑학 교수’ 타이틀은 정 동문의 바둑인생을 대변한다. 바둑을 향한 꿈을 꾸다 정 동문은 고등학생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껴 책을 보며 공부했고, 나중에 실력이 늘자 프로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일본에서 활약한 기성(棋聖) 우칭위안(吳淸源) 9단이었습니다. 창의적인 발상과 발군의 기량을 가진 우칭위안 9단의 기보를 많이 연구했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지만, 당시 제도가 중단되어 반년동안 정 동문 혼자 연구생을 하기도 했다. "저는 주로 책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고, 그래서 바둑도 좀 이론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정 동문은 주니어 기사들이 출전하는 타이틀전인 제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하면서 바둑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게 힘든 상대인 강훈 6단과 결승에서 만났죠. 끈질긴 스타일의 강훈 6단에게는 상대 전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둬서 2대1로 승리를 거두고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선 잇달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제가 빨리 두는 바둑에 좀 능한 편입니다. 대학생 때 시합을 빨리 하고 강의에 참석하려다 보니 빨리 두는 습관이 생겼죠. KBS바둑왕전, SBS바둑최강전 모두 속기전인데, 결승에 올랐다가 이창호 9단에게 두 번 다 고배를 마셔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한양대 학부시절엔 프로기사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바빴다. 대학생 때 후배와 ‘한양기우회’라는 바둑모임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대학바둑모임의 이상적인 모델로 인정 받고있다. “시합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1년 평균 시합바둑을 30판에서 40판 정도를 뒀어요. 프로기사들은 연습으로 바둑을 두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둔 바둑을 연구,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바둑연구회를 몇 개 만들어 소집단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쓰곤 했죠." 후배와 바둑모임을 만들자고 상의를 한 후 벽보를 붙였다. 노천극장에서 학생들이 모여 기우회를 조직했고 바둑동아리 방에서 바둑을 두고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을 했다고. “나중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바둑특강도 열기도 했죠.“ ▲현재 정수현 동문은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의 해설자를 맡고 있다. (출처: 세계일보) 바둑이라면 뭐든지 OK 정 동문은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바둑 읽는 CEO’, ‘현대바둑의 이해’ 등 40여 권의 책을 쓸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처음에 쓰게 된 계기는 미국의 바둑행사에 갔을 때 한 교포가 제발 영어로 된 바둑책을 하나라도 써서 보내달라고 한 것 때문이었죠." 일본에서 나온 책만 있으니 한국 교포로서 좀 아쉽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이 발동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 출판사에서 요청해 계속 저술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정 동문은 바둑학과가 생기기 전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7년에는 별명에 불과했던 바둑학 교수에 실제로 오른다. 프로기사 활동 중 최초로 바둑학과가 설립된 명지대 측으로부터 바둑학 교수직을 제의 받은 것. 최초의 바둑학 교수가 된 정 동문은 20년 가까이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프로기사회와 한국바둑학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다. “최초로 바둑학과 교수가 되어 국제바둑학 학술대회를 열고 바둑학회를 조직했어요.” 이밖에도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 등의 해설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바둑방송에서는 한 판을 한 시간 정도 방영할 경우 바둑도 그 정도의 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다. 너무 일찍 끝나거나 너무 오래 가면 방송편집이나 해설 모두 힘이 든다고. “가끔 시합바둑이 30분만에 끝나버려 나머지 시간을 해설로 메우려고 땀을 흘리기도 합니다(웃음).” 바둑계에서 정 동문의 왕성한 활동은 유명하다. 프로기사를 거쳐 바둑 학계, 나아가 해설자까지 인생 전반을 바둑에 바친 셈이다. ▲정수현 동문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바둑경영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이투뉴스) 성실함이 만든 바둑 인생 정 동문의 꾸준한 바둑 경력의 원동력은 성실함이다. 그의 좌우명도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불성무물(不誠無物)'.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할 때 보람이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성을 다해 하다 보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게 되거든요.” 그에게 바둑은 만병통치약이다. "저는 좋아하는 바둑을 직업으로 가졌고, 바둑학을 연구하여 새로운 바둑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학생들에게 종종 ‘바둑은 만병통치약(panacea)인가?’라는 강의를 합니다. 바둑이 인간생활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죠.“ 정 동문은 바둑에 대해 '대단히 흥미진진하면서도 그 안에 삶의 교훈과 지혜가 담긴 문화적 이기'라고 표현했다. “근래에는 바둑이 글로벌 마인드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바둑을 알면 세계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으니 교양으로 바둑을 배우는 것도 추천해요.” ▲불성무물(不誠無物: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음)의 좌우명처럼 정수현 동문에겐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 (출처: 이코노믹 리뷰)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2017-08 23

[동문][한양피플] 30년을 뛰어넘어 마주한 끝7학번 선후배

지난 5월 25일 생활과학대학에서는 학번의 마지막 숫자가 7로 끝나는 67, 77, 87, 97, 07학번 동문이 모이는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말 그대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이 열린 것. 이 행사에 참석한 87학번 예명지 동문과 17학번 강태훈 학생을 만나 끝7학번 한양인의 생각과 고민,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생활과학대학 동문이 함께한 자리 입학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을 맞이하는 동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 재미있는 기획만큼이나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후배가 함께한 귀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생활과학대학의 역사 소개와 재학생 밴드의 축하 공연, 선후배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등이 마련됐다. 또 행사에 참석한 의류학과, 식품영양학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동문들이 17학번 재학생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는 훈훈한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예명지(실내건축디자인학과 87) 동문은 “제가 졸업한 학과가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자랑스럽다”며 “보석 디자인이라는 생소한 분야로 가기 전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가 학교에서 배운 인테리어 디자인이었다”며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의류학과 1학년 대표로 행사에 참여한 강태훈(의류학과 17) 학생은 “졸업 하신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뵐 수 있어서 좋았다”며 “한양인으로서 새삼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꼈고, 저 역시 앞으로 후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17학번 강태훈 학생(왼쪽)과 87학번 예명지 동문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양의 의미는 달라도 애교심은 같아 생활과학대학 선후배로 자리를 함께한 예명지 디자이너와 강태훈 학생은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눴다. 입시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다가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의류학과로 진학했다는 강태훈 학생. 하지만 요즘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입학을 하고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 공부를 한 친구들이 많아서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 그런 후배의 모습을 보며 예명지 디자이너는 “지금은 한창 그런 고민을 할 때”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제가 우리나라 1세대 보석 디자이너인 셈인데, 당시만 해도 그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 역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을 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때 중도 포기했다면 보석 디자이너로서의 25년 인생은 없었겠죠.” 그가 보석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다. 하고싶은 것을 찾은 후에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활동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도전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 결과, 명실상부 해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해요. 지금 당장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열심히 하세요. 하지만 1학년 때는 무엇보다 많이 놀아야 해요.(웃음)” 자신의 꿈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면 10년 뒤 강태훈 학생은 멋진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해 있으리라. 반면 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예명지 디자이너는 또 어떤 근사한 꿈을 꾸고 있을까. “지금까지 국제적인 활동에 집중하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올해는 한 박자 쉬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쉼표가 필요한 시기거든요. 10년쯤 후에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강태훈 학생에게 한양대가 새로운 시작의 첫발을 내딛는 디딤돌이라면, 예명지 디자이너에게는 늘 그립고 고마운 뒷산 같은 존재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불끈 힘이 솟는 곳, 모교란 바로 그런 것이다. 30년이란 시간의 간격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한양대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학교에 대한 사랑만큼은 같은 크기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23

[학생][도전한대] 몰던, 중국염성에 빛을 더하다

3D 프린터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몰던’의 대표 황부윤(경영학부 11), 김여명(기계공학부 14), 김경진(중어중문학과 16) 학생. 이 세 사람은 지난해 말 ‘2016 한양 동계 글로벌 창업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만나 지난 2월 중국법인을 설립해 중국 염성에 자리 잡았다. 해외 창업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몰던 대표 중 한 명인 황부윤 학생을 만나 들어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몰던 3D 프린터로 뭉쳤다! 몰던의 세 대표가 처음부터 3D 프린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던 것은 아니다. 이들이 처음 ‘2016 한양 동계 글로벌 창업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만났을 때 황부윤 대표의 창업 아이템은 자판기였고, 김여명 대표와 김경진 대표는 3D 프린터를 아이템으로 갖고 있었다. 중국 시장조사 결과, 자판기보다는 3D 프린터가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당시 중국을 방문한 여덟 명의 학생 중 마음이 맞는 세 명의 학생이 뭉쳤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몰던이다. 그렇다면 넓고 넓은 중국에서 왜 염성을 선택한 것일까.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시장조사를 했던 지역이 염성이기도 했고, 창업을 하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될 사무실과 숙소를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저희가 참가한 인턴십 프로그램이 염성에서 새로 오픈한 ‘르호봇’이라는 인큐베이터센터와 연계돼 있었는데, 그곳 담당자께서 저희가 창업을 하면 사무실과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해서 급하게 준비하게 됐습니다. 준비 기간을 좀 더 가져도 좋았겠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어요. 게다가 염성은 시장조사에서도 가능성이 보인 지역이었어요.” 황부윤 대표는 중국 현지에도 3D 프린터로 활동하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할 수 있는 심천과 상해에는 염성보다 더 많은 3D 프린터 기업들이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3D 프린터 시장의 규모가 작고, 경쟁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내 다른 기업의 경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몰던에게 다소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몰던은 지금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3D 프린터 시장의 성장에 철저히 대비할 계획이다. “향후 3D 프린터 시장이 커졌을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때 회사가 얼마만큼 잘 자리 잡았느냐가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씩 회사의 인지도를 넓혀가면서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다른 기업과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 충분히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야에만 특화된 다른 기업에 비해 저희는 3D 프린터로 전반적인 모든 아이템을 다루면서도 다른 기업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몰던은 얼마 전 초중고 학생들이 쉽게 접하고 다룰수 있는 과학 상자를 이용한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이로써 누구나 쉽게 3D 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3D 프린터로 만든 무드등. 불이 꺼진 모습(왼쪽)과 켜진 모습 ▲ 테이블 위애 3D 프린터로 만든 무드등과 화분, 비누몰드, 건물 모형 등이 놓여있다. 쉽지 않은 도전, 해외 창업 ▲ '몰던' 대표 황부윤(경영학부 11) 학생. 황 대표는"제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그냥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면 될것 같아 요." 라고 말한다. 3D 프린터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는 산업이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시제품 생산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저렴한 가격에 실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직접 주문 제작하게 되면 몇 십만원에서부터 몇 백만 원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3D 프린터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실현화시킬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희는 잠재력이 큰 3D 프린터를 이용해 3D 프린터의 판매부터 이를 이용한 제품 생산, 3D 프린터 교육과 같은 것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교육의 경우,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3D 프린터 시장을 잡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진행하고 있죠. 즉 생산, 교육, 판매라는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3D 프린터 시장은 분명 유망하지만, 해외에서 창업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부윤 대표는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바로 창업을 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일을 진행할 때마다 주위에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하나하나 모두 물어가며 시도해야 했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조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물어볼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한국에서 창업한 이들에게 물어봐도 중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황부윤 대표는 “아직 제대로 된 매뉴얼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여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부딪혀봐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창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한양대 학우들에게도 조언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창업을 해본 분들을 만나면 ‘직장에서 경험을 쌓고 창업해라’,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아이템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등 많은 조언을 듣게 되는데, 간혹 어떤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면 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맞는 방향을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는 창업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깊은 경험이 담겨있었다. 사명인 몰던(moredawn)은 빛을 더한다는 뜻으로, 빛을 더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지은 이름이다. 몰던의 슬로건인 ‘Make and achieve your vision!’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만든 만큼(make) 성취하자(achieve)는 뜻으로, 노력한 만큼 보상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슬로건처럼 몰던이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여명, 김경진, 황부윤 대표가 3D 프린터 앞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22

[동문]정장도 퍼즐 한 조각 꼭 끼워 맞추듯이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와 갓 닦은 듯 반짝이는 구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은 익숙했던 사복을 벗어던지고 정장을 입는다. 하지만 만만찮은 맞춤정장의 가격과 빠듯한 예약제 시스템 때문에 정장 하나 맞추기도 힘든 것이 현실. 이러한 사회 초년생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안지수, 신요섭 동문(이상 중문과 06)은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2030 세대를 위한 맞춤 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Suitable’의 뜻처럼 맵시 나는 옷을 추구하다 “처음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수트라는 단어를 온종일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영어의 ‘suitable’이라는 용어가 떠올랐죠. ‘수트’와 ‘에이블’의 합성어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이렇게 ‘수트에이블’은 지난 2015년 3월 정식 출시를 거쳐 2030 세대를 위한 정장과 기성복 판매를 시작했다.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던 안지수, 신요섭 동문은 자연스레 공동 대표가 됐다. 현재는 ‘Better design, better fit’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개인의 체형에 맞는 정장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기존 맞춤정장의 불편함을 보완해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장을 맞추려면 강남, 광화문 일대의 숍을 2~3차례 방문해야 해요. 예약도 꼭 해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비용도 그렇게 싸지 않죠. 이런 점들에서 불편함을 겪는 고객들이 많아서, 저희는 고객분들이 편한 시간에 회사로 찾아가서 원단 선택부터 치수 측정까지 다 해드리고 있어요.” ▲자신이 디자인한 ‘수트에이블’의 옷들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안지수 동문. 그가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 또한 직접 만든 옷이다. 수트에이블은 '모든 고객들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철칙을 지킨다. 그리고 이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지인의 소개로 몸이 불편하신 분의 옷을 맞추게 됐어요. 다른 매장 몇 군데를 방문하셨는데, 정장을 맞추지 못한다는 대답을 듣다가 저한테까지 연락이 닿은 거예요. 그분의 정장을 맞춰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간과 공을 들였죠. 옷이 완성된 후, 그 옷을 입고 절 다시 찾아오셨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고 멋있으셨어요.” 안 동문은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계기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 꼭 맞는 옷을 맞춰드리려고 노력한다.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서일까. 수트에이블의 재구매율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계속해서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 안 동문과 신 동문은 수트에이블의 야심작인 ‘테일러 카’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카는 트럭을 이용해 직접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객님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계점을 느꼈어요. 카페는 주위 시선 때문에 불편하고 회의실은 예약이 차 있을 때도 있어서 푸드트럭의 개념처럼 테일러 카를 고안해냈어요. 고객님들이 차 안에서 편하게 옷을 입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성을 추구한 아이디어예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1년 10개월 동안 마케팅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안 동문은 패션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패션과는 거리가 먼일을 하다 보니 만족도가 굉장히 낮았다는 그다. “평생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제가 밤낮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패션 분야였어요. 그 생각이 회사를 나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죠.” 마침 신 동문도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오고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부 시절 때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진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 이직이 아닌 패션 분야로의 창업을 택했다. ▲안지수 동문은 인터뷰 내내 패션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현재의 직업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중어중문학과 출신인 두 사람이 패션 업계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학부 시절 때부터 옷과 패션에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은 안 동문의 설명.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매우 많았어요. 꾸미는 걸 좋아해서 1학년 때 하얗게 염색한 폭탄 머리를 하고 학교를 들어왔죠. 그때 당시 제일 튀었고, 항상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입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줬고, 제가 일러준 옷을 사서 입고 오면 기분이 좋았어요.” 안 동문은 지금도 고객들에게 정장을 맞춰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별로 어울리는 옷 색깔과 헤어스타일도 제안해준다. 패션 제안을 해주는 것에 있어 보람을 느끼는 그다. 일을 시작할 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선생님에게 옷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던 것도 창업에 큰 힘이 됐다. 25년가량 맞춤정장을 전문으로 하셨던 분을 은사님으로 모시면서 정장 관련 분야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하지만 비전공자인 안 동문이 단숨에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저는 옷을 좋아하고 사서 입기만 했지, 만든다는 생각은 정말 못 했었어요. 그래도 매일 같이 선생님을 찾아가 배운 덕에 창업을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죠.” 옷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 전파하고 싶어 아직은 창업에 있어 유년기를 거쳐 가는 기업이지만, 벌써 ‘수트에이블’의 옷들은 중국 백화점의 편집숍에도 소량 입고 되고 있다. 안 동문은 "앞으로 더 넓은 시장으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중어중문학문과를 전공했다 보니,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유리할 것 같아요. 벌써 중국에서 작게 하고 있지만, 더 큰 인정을 받고 싶고, 저희 옷을 많은 사람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수트에이블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바로 고객들이 옷을 입음으로써 느끼는 만족감과 높은 자존감이다. “남자분들 출근 하기 전, 거울을 봤을 때 유독 마음에 드는 날이 있잖아요. 전 여자친구 만나도 꿀릴 게 없을 것 같고(웃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수트에이블’의 옷을 입고 문 밖으로 나갈 때, 발걸음 하나하나가 희망에 차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옷을 입고, 겉으로만 멋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멋있어졌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이 날의 ‘패션피플’ 안지수 동문. ‘수트에이블’ 상의와, 롱 슬랙스, 그리고 츄바스코 샌들로 ‘데일리룩’ 을 선보였다.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