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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 15

[교수][한양의 소금 3] 병무계 안정훈 직원

2천9백여명 달하는 학생 대상 병무업무 담당 "학생들에게 고객만족의 서비스 제공하고 싶다" 남학생들에게 있어 병역문제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남학생들은 언제 입대할 것인지를 비롯해서 어디에서 근무할 것인지 등을 놓고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것이다. 또한 매년 돌아오는 예비군 훈련은 귀찮지만 역시 피할 수 없는 의무중의 하나이다. 대학에서 이러한 병무관련 업무를 다루는 직원들은 그래서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요구를 충족시켜줘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병무관련 문의를 위해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모두 내 고객이다. 내 고객인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의 문의사항에 대해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는 게 나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주위의 호의적인 평가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학생들에게 무척이나 친절한 직원으로 알려져있는 안산캠퍼스 학생처 병무계 안정훈 직원에게 그 비결을 묻자 주변의 평가처럼 겸손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병무계 업무라고 하면 예비군 관련 업무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업무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방대한 업무량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정보 제공 위해 고민 그의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비군 교육훈련에서만 그가 관리하는 교육대상 학생이 2천9백여 명에 달한다. 그는 이제춘 직원과 단 두명이서 이들 학생들에 대한 신상변동사항 파악, 병력동원소집자 명부 작성, 교육참석 확인, 미참석자에 대한 보충교육 안내 등 예비군 교육훈련과 관련된 많은 양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이들이 맡고 있는 업무 중 일부에 불과하다.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예비군 교육훈련을 비롯해 수임 군부대와 병무청에서 열리는 회의참석, 이동병무상담소 운영, 국방부 및 병무청 정기감사, 재학생 입영원서 접수, 매달 실시되는 민방위 교육 등 그는 캠퍼스 내의 각종 병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병무계가 학생처 소속인 만큼 학생처에서 학생들을 위해 진행하는 각종 지원업무도 같이 하고 있다. 두명이 맡기에 다소 버거워보이는 업무를 처리하면서 매일 학생들과 부딪치다보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에게서는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정보를 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매번 예비군 훈련을 진행하다보면 훈련에 불참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들이 훈련불참으로 인해 법적 불이익을 당할 것이 걱정돼 불참자들의 연락처를 여기저기 수소문해 일일이 연락을 취한다"는 말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행정대학원 진학해 체계적인 행정업무 배울터 비정규직원으로 9년 전 본교와 인연을 맺은 그는 비정규직으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작년 큰아이가 병으로 앓아 누웠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고 이런 그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본교는 지난 해 병무청에서 실시한 정기검사에서 경기도지역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지금 한가지 꿈을 가지고 있다.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행정업무에 관해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꿈도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업무에 더욱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대 위의 주인공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본교가 명문사학으로서 자리매김한 것 역시 안정훈 직원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양'이라는 큰 조직 속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자신이 속한 부분에서 특유의 친절함과 서비스 정신으로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모두를 한양인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어주고 있는 그는 진정한 '한양의 소금'이다. 안정훈 직원은 매사에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직원들의 단합에 앞장서는 공학대 교학과 김승주 직원을 '한양의 소금'으로 추천했다. 교학과 업무뿐만 아니라 직원노동조합에서도 늘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김승주 직원이야말로 한양인들의 귀감이 될만하다는 말과 함께. 손형준 학생기자 boltagoo@ihanyang.ac.kr

2002-06 08

[동문]신흥 의료엘리트의 산실 을지의대 박준영 총장

소수정예 기치로 급부상한 신흥 의료엘리트의 산실 "부와 명예를 원하거든 차라리 벤처산업으로 가야겠지요"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삼척대 장태연 총장 ⑥ 을지대 박준영 총장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의과대학 졸업시 행해지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두고 의료인이 갖춰야할 양심과 자세를 가장 잘 함축한 말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이 의료인에 대해 거는 기대와 요구가 가장 잘 집약된 것이기도 하다. 열대의 오지에서 의료봉사에 전념했던 슈바이처는 모두가 소원하는 전형적인 의료인의 표상이었던 동시에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갈구한 훌륭한 사위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2000년 있었던 병의원 파업과 의료대란은 국내 의료체계 전반은 물론 의료인의 위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는 지적도 일면 타당하다. 이제 부와 명예는 더 이상 의사의 삶과 함께 가지 않는다. 을지의과대학의 박준영 총장(의대 84년졸)의 말이다. '소수정예' 신흥 의료엘리트 산실 꿈꾼다 박준영 총장은 84년 본교 의학과를 졸업한 이후 해부학으로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밟았다. 1997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산부인과로 박사학위를 다시 받았고 서울을지병원 산부인과 과장, 서울보건대 학장, 을지중앙의료원장을 거쳐 지난 해 을지의과대학의 제 2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1997년 설립된 을지의과대학은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환경과 더불어 소수정예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 내년 첫 졸업생 배출을 앞둔 신흥 의과대학으로서 그 성장과 발전의 가능성에 의료학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타 의과대학과 비교해서 을지대학이 지닌 나름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의과대학의 근간에 을지중앙의료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계의 의사로서 한 획을 그었다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43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구요. 공익의료법인으로 성장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사립병원들 중 3번째가 됩니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면서 좀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반면에 나름대로 소수 정예의 유연성을 갖고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의과대학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모든 의과대학이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서울에 있는 을지병원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 위치한 의료원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의과대학으로서 발전의 발판이 되는 충분한 메리트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을지의대의 발전을 위해 「3단계 발전계획」을 수립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획 입안의 취지와 함께 그 전략적 특징들이 궁금합니다. 『2005년 WTO의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의료업계가 국내만을 지향해서는 발전도 그러고 생산적 교류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 개방과 더불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중국이나 동남아로의 진출입니다. 실제 그 나라에 병원을 설립하고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더 쉬운 방법으로는 화상진료시스템 내지는 최근의 기술로 가능해진 원격수술의 추진입니다. 따라서 최근 이러한 부분에 좀더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의과대학에 3단계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습니다. 그 첫 단계가 졸업생이 나오는 내년까지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입니다. 대전에 1,053병상의 병원을 건립하는 것이나 오는 9월부터 재단 전체를 원격화상진료시스템으로 묶는 전산개발 작업에 착수한 것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격진료시스템이 구축되면 중국은 물론 가까운 북한에도 의료진의 파견 없이 손쉽게 의료지원이 가능해 질 것으로 봅니다.』 발전계획의 1단계가 마무리되는 내년 이후, 을지의과대학은 2008년까지를 제 2단계의 도약기로 보고 대학원 설립을 비롯하여 기초의학분야 연구와 산학협동 활성화를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의 교육 및 의료환경을 완비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되는 발전계획 제 3단계는 세계적 수준의 경쟁에 주목한다. 각종 첨단 연구소를 육성하는 것은 물론 학생 3인당 교수 1인 비율의 교원을 확보하고 국제 학술대회 개최와 학술지 발간을 통해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의 의학명문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산학협동을 통한 새로운 의약품 및 의료기술 개발의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의료원 발전의 키워드, '리더십'과 '전문화' 국내 의료시스템의 사회적 성격은 대형병원들이 성장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른바 미국은 「시장형」의료 시스템, 영국은「공영」시스템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은「중간형」의료 시스템인데 비해 국내 의료체계는 외형적으로는「중간형」이면서도 실내용은 매우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민간 의료기관이 전체의 90%를 넘는 압도적인 상황에서 「중간형」을 표방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정서적 괴리와 경제적 손실을 모두 민간병원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학병원을 비롯한 종합병원의 경우 방대한 규모에 비해 수입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음으로써 향후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위기설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박 총장은 모교 한양의대와 의료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 최근 모교 한양의대 출신으로 전국 의과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의 수가 전국 6위라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류머티즘 분야 등 나름의 특화된 전략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교인 한양의대 및 의료원의 위상과 향후 개선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지금도 병원을 경영하며 항상 귀감이 되는 학교 중에 한양의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에 한양의대가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는 대학으로 성장을 했구요. 의료원 수준 역시 선진국에 뒤처지지 않는 괄목할만한 수준에 왔고 제가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본 받고 싶고 그 내실있는 경영을 배웠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직이 크면 단순히 맨파워가 커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마찬가지로 그만큼 규모의 성과물이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병원들도 전문화, 특성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슈퍼마켓처럼 온갖 좌판을 다 펼쳐놓고 모든 것을 다루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만을 정해서 중점적으로 해 보겠다, 어찌보면 쓸데없는 것들을 다 정리하고 알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쪽으로 매진하겠다는 것이죠. 이러한 추세로 산부인과전문병원이니, 척주전문병원이니, 미용성형전문병원이니 이렇게 특화된 소형 병원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이런 병원들과의 경쟁에서 대형병원은 상당히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 한양의대를 비롯해서 대학병원이 지닌 규모의 조직이 오히려 발전의 저해가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그 대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맨파워는 대학병원이 더 많은데 이런 맨파워의 집중력은 오히려 소형병원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나오는 연구비도 이제는 상당히 전문화된 쪽으로 배정됩니다. 연구비나 지원금을 받게 되면 의과대학이나 대학병원은 너나 없이 모두 나눠줘야 합니다. 100원을 가지고 10분의 교수님들께 10원씩 나눠주게 되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소기의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어요. 그런데 맨파워가 집중된 소형병원은 100원을 어느 한 곳에 집중해서 투자할 수 있거든요. 이것이 이제 종합병원의 경영을 어떻게 해야하느냐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의과대학이 성장을 하는데는 좀더 강력한 리더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크게 보면 총장이 될 수도 있고 작게 보면 어느 학과의 학과장, 어느 디파트먼트의 한 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체를 조화롭게 이끌면서도 특화된 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이끌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부와 명예를 원하거든 벤처로 가라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최고의 처방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사는 것」이라 답하는 박 총장이 의료인의 삶을 선택하기까지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선친의 가업을 이어 의사의 길을 가고자 서울의대에 재학 중이던 맏형이 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이를 계기로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신이 다시 의학에 전념하게 됐다고 박 총장은 고백한다. 사람을 잃어본 자가 깨닫는 생명의 소중함일까? 부와 명예를 떠나 의료인의 자세에 대해 박 총장이 견지하는 생각은 매우 원칙적이다. - 의료인 양성은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반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것과 동일한 접근이 곤란합니다. 총장님께서 갖고 계신 교육철학이나 의료인의 자세에 대한 원칙 등이 궁금합니다. 『의료교육 자체가 분명히 기술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술이기 때문에 나름의 정신적인 무장,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라면 요즘 한창 유행인 벤처에 투자하는 것이 낳지 않겠느냐 싶구요. 흔히 일반인들이 의사는 돈을 많이 벌겠고 시집, 장가도 잘 간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나 저는 항상 신입생들에게 돈을 벌려고 의사가 되려거든 빨리 다른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의사는 항상 아픈 사람, 또 희생과 봉사를 기본에 두고 있지 않으면 참 수행하기 어려운 직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곡된 사회적 통념과 정책적 오류, 갖은 오해 속에서도 의료인의 길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통해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의료인을 양성하겠다는 박 총장의 언어가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다. 생각해보면 진리란 늘 지극히 평범한 상식 속에 존재하는 법이다. 글 :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 동신대학교 이상섭 총장은 지병 관계로 인터뷰 및 보도가 취소되었습니다. 이상섭 총장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 편집자주 학력 및 경력 1984 한양대 의과대 1990 한양대 대학원 해부학 석사 1993 한양대 대학원 해부학 박사 1997 일본 게이오대 의학부 대학원 산부인과 박사 1988 일본 게이오대 병원 산부인과 방문연구원 1989 서울 을지병원 수련의 과정 수료 1993 서울을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과정 수료 1993 서울을지병원 산부인과 과장 1993 을지학원, 서울보건대학, 을지병원 이사장 1995 노원을지병원 설립 1997 을지의과대학 설립 (현) 을지의과대학교 제2대 총장 (현) 한양대 의과대 외래교수 (현) 한양대 총동창회 상임이사 (현) 대한병원협회 상임이사 (현) 일본 산부인과학회 정회원 (현) 일본 불임학회 정회원 (현) 의료법인 을지병원 이사장

2002-06 08

[학생]"16강? 우리는 우승" 축구동아리 `라이언` 주장 황희건 군

라이언, 10연승 '포효' … 아마 최강 전력 자랑 "승패 떠나 함께 땀흘리며 축구 묘미 즐긴다" 요즘 우리나라는 월드컵 개막과 함께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바로 축구로 한양의 이름을 또 한번 드높인 이들이 있다. 지난달 2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막을 내린 '제4회 험멜코리아배 전국대학생클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체육대학 체육학과 축구동아리 '라이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재일교포학생축구단을 1:0으로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한 '라이온'의 주장 황희건(체대·체육과 2) 군을 만나보았다. 우승을 축하한다. 우승소감이 있다면 작년 2개의 아마추어 축구대회를 우승한테 이어 이번 대회에서 다시 우승을 이뤄내 정말 기쁘고 선배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9연승의 신화를 10연승으로 이어가게 돼 정말 뿌듯하다. 아마추어 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수많은 지원과 격려를 해주신 오상덕 교수님, 최창국 교수님, 서진교 교수님, 그리고 여러 조교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위에서 잘 끌어주신 선배님과 부족한 주장인 나를 믿고 힘든 훈련과 경기에 최선을 다해준 후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에 우승한 대회를 소개한다면 제4회 전국대학생클럽축구선수권대회는 험멜코리아가 후원하고 연세대에서 주최한 전국 아마추어 대학축구대회로 개막전부터 결승전까지 약 5주간에 걸쳐 진행됐다. 아마추어 축구대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결승전을 동대문운동장에서 할 만큼 아마추어 축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각 대학에 소속된 아마추어 축구동아리 32개 팀이 출전해 그동안 혹독한 훈련으로 쌓아온 실력을 발휘, 서로간의 자웅을 가리고 대학 축구 동아리간의 친목을 다진 소중한 자리였다. 기억에 남는 시합을 꼽는다면 지난 해 준우승 팀이자 이번 대회들어 더욱더 강해진 전력으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상지대와의 준결승전이다. 아마추어 축구는 특징상 매년 전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년 대회 준우승팀인 상지대와 맞붙는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 상지대는 작년 건국대배 때 우리에게 1:0으로 져 우승을 놓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인지 더욱 거친 플레이로 우리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준결승전에서 상지대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또한 이 경기는 우리 회원들을 더욱 더 하나로 뭉쳐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결승전도 기억에 남는다. 당초 우리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명지대 용인캠퍼스 팀과 결승에서 붙을 것을 예상했었는데 명지대가 초반에 탈락하는 바람에 재일교포 팀과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다. 결승전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지만 또 하나의 한일전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 탄탄한 조직력과 세밀한 경기운영을 앞세운 재일교포팀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다들 다리에 쥐가 나고 쓰러지는 힘든 상황에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우리팀 포워드인 황재민 군이 결승골을 넣음으로써 경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라이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라이언'은 체육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축구동아리로 1995년 이종길(90), 김석희(91), 장정호, 권오갑(94), 이승훈(95) 다섯 선배들을 주축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아리 부원 모두 축구가 좋아서 가입했지만 모두 함께 뛰고 땀흘리면서 승패를 떠나 무언가 함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더 큰 매력이다. 운동량은 아마추어 축구인 인만큼 그리 많이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도 하지 않는다. 1주일에 한번 월요일 오후 5시부터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회가 있을 경우 1주일에 세번 정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지난 8일과 9일 다녀온 M.T로 1학기 활동은 끝이 났다. 이번 여름 방학에 해양훈련을 해군사관학교로 가 해사생들과 정기전을 가질 예정이다. 해사와는 지난 해와 올해 3번의 경기를 치러 2승 1무로 역대 전적에서 우리가 우세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지난 해에 우승한 건국대배와 국민대배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FC HANYANG과의 정기전이 남아 있다. 지난 해에는 우리가 승부차기 끝에 패했는데 이번에 꼭 패배를 설욕할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대학이 주최하는 한양대총장배도 개최할 계획이다. 월드컵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는 행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축구 관련 가장 큰 축제인 만큼 우리 '라이언'도 같이 그 축제를 즐기고 우리나라가 16강을 넘어 8강까지 오를 수 있도록 모든 한양인들과 함께 한마당에서 응원을 펼칠 계획이다. 손형준 학생기자 boltagoo@ihanyang.ac.kr

2002-06 08

[교수][한양의 소금 2] 인사팀 국중대 직원

대학 경쟁력 강화 위한 직원교육 전담 "사람 키우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요즘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거스 히딩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입니다. 꾸준히 일을 하지만 결실이 없어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희망을 준 사람이죠.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충분히 자기 가능성을 발견해서 맘껏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나라 사람은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 계기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ISO 9001인증을 준비하면서 직무 분류를 하는 등 업무 외의 일이 많아진 상황에서 관련 업무를 꼼꼼히 처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양주성 사서의 추천으로 국중대(인사과) 직원을 찾아갔을 때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월드컵 본선 경기를 1:1로 비기며 경기를 막 마쳤을 때였다. 퇴근 시간을 넘긴 때라 축구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곧바로 "주로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요구에 국 씨는 아직 축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불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이내 눈빛을 번득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직원 교육은 그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었으나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없는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기업이 인재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듯이 대학도 직원들의 역량 강화 없이는 발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본교에 맞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저의 주요 임무죠." 국 씨는 교육전담 직원으로서 요즘 본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하나다. 최근 대학 경쟁력 강화는 교육 역량 강화에서 시작된다는 모토 아래 실시하고 있는 직원교육의 기획에서부터 실무까지 그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요 기업과 대학의 벤치마킹을 시작으로 프로그램 개발, 강사 섭외, 평가까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교육부분에 첫 쟁기질을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동안 그는 부서별 워크아웃, 고객만족 서비스, 불만처리 기법 등을 통해 부서 내 문제점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발견하고 고쳐나가도록 하고 대인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안착시켰다. 또한 강사를 직원들이 직접 선정하도록 하는 맞춤형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 소감을 보고서로 제출하게 해서 그 결과물을 전 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ISO 9001의 직무분석을 담당하면서 업무의 적정 인원, 직무가치 부여 등의 계량적인 작업의 기틀을 잡은 것도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본교는 최근 전국총무과장회의 때 사례 발표를 할 정도로 타 대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목회 활동과 설교사, 사업가, 유능한 행정직원 등의 여러 가지 장래를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여의 인사 업무를 통해 사람을 키우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고등부 교사를 7년 동안 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23개월 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신앙인, 아버지, 직장인으로서의 세 가지 역할을 충실히 해오면서 '교육'이라는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게 됐다. 그는 인재양성과 관련된 유일한 국제자격증인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 자격증을 획득해 직원교육 관련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전문적인 식견으로 안정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해 유능한 인재들에게 재개발의 기회를 제공해주겠다는 것이다.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은 우수한 교수와 학생뿐만 아니라 풍부한 전문지식을 가진 직원들의 역할도 크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빛나지는 않지만 빠져서는 안될 한양의 소금이다. 국씨는 다음 릴레이 주자를 안산캠퍼스 병무계 안정훈 직원에게 넘겼다. 비정규직이지만 학생들을 철저한 봉사정신으로 대하고 저녁 늦게까지 맡은 일을 책임 있게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천의 말과 함께.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6 01

[동문]`강원도의 힘` 삼척대 장태연 총장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쓰는 '강원도의 힘' "한 명의 훌륭한 소방관을 만든는 것은 서울대가 하지 못하는 일"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삼척대 장태연 총장 ⑥ 동신대 이상섭 총장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을 두고 세간의 평은 크게 엇갈린다. 일상을 가감 없이 냉철하게 그려낸 독특한 작가주의 작품으로 칭송을 받기도 하고, 이전 데뷔작의 진술을 단순 반복하는데 그친 진부한 작품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삶에 대한 냉소와 허무로 가득 찬 「반낭만주의」라는 진술은 상반된 평가의 중간 어디쯤을 차지한다. 삼척대학교 장태연 총장(토목 58학번)은 그런 면에서 홍 감독과 닮은 구석이 있다. 홍 감독이 일상에 대해 꾸밈없는 시선을 견지한다면 장 총장에게는 지역사회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이 있다. 그는 지역이 처한 척박한 현실을 애써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강원도를 굳이 「시골」이라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거나 지역사회가 가진 상처의 흔적들을 현란한 언어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냉소와 허무를 뛰어넘어 지역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것. 학문이란 사태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이전에 사태의 상처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그가 견지하는 또 하나의 연출 포인트다. 배움이 부족한 주민들을 위해 위탁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저개발 지역사회를 위한 기술인력 육성에 주력하는 등, 지역의 상처를 학문으로 치유하려는 그의 진솔한 교육철학을 들어보았다. 열린교육, 평생학습 장태연 총장은 토목공학과 58학번이다. 이후 인하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았다. 1964년 「화천실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그는 삼척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삼척공업전문대학」 그리고 「삼척산업대」를 거쳐,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삼척대의 제2대 총장으로 지난 98년 취임했다. 교편을 잡기 전 삼척군청에서 근무했던 시간까지 따지자면 30년의 세월을 강원도와 함께 한 영원한 「강원인」이다. 그래서인지 대학경영의 궤적을 설명하는 장 총장의 말 마디마디에도 지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난다. - 올해로 임기 4년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고 계십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된 일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시골 벽지의 학교에서 애로사항이 많은데 총장이 되고 나서 위탁교육 그리고 최고경영자 과정을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의 유명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초빙하고 또 그런 강사진을 모아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시작했는데 매년 150여명씩 다녀갑니다. 또한 지난 번 개교 6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KBS 「열린 음악회」를 주최했는데 지역이 좁다보니까 예산 확보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시에서 협조를 잘 해주고 동문들과 지역 주민들이 또한 적극 협조를 해서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의 예산이 없는데도 지역사회가 베풀어준 따뜻한 협조, 이런 것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삼척대가 지역사회로부터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른 바 '열린교육, 평생학습'을 모토로 실시하는 위탁교육은 지역사회를 위한 대학의 노력을 엿보게 합니다만. 『시골에 있으면서 이곳보다 더 오지, 즉 태백이나 정선 등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예전에 전문대학을 졸업했다든지 혹은 아예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위탁교육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이런 기회로 그 사람들은 학위를 받을 수 있지만 대학으로서는 큰 홍보 효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대다수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해 주었습니다. 비록 시골에 있는 대학이지만 지역사회에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요.』 지역사회 발전의 밑그림, '그린 프로젝트' 삼척대의 강원사랑은 비단 주민들의 학구열을 채워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그린 프로젝트'로 명명된 삼척대의 특성화 정책은 강원도의 저개발 혹은 훼손된 환경 복원을 통해 지역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매우 구체적인 노력으로 꼽힌다. 산불과 휴폐광, 시멘트 광산 등으로 파괴된 자연환경을 복원하면서 2차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한편, 체험관광을 활성화하는 환경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활성화된 산학협동 과정과 함께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삼척대의 노력을 잘 대변하는 사업들이다. - 삼척대에서 추진 중인 '그린 프로젝트'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많습니다. 사업 추진의 배경이나 주요 성과들이 궁금합니다. 『삼척대가 처음에는 주로 토목, 광산학에서 시작해서 성장, 발전을 해왔습니다. 주로 이 지역에서는 산업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려다 보니까 주로 공과계열 학과들이 많이 발전했지요. 지금도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과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작년의 경우 산불이 많이 나서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당시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불을 진화시키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이러한 지역 현실을 감안해서 우리가 서울 유수의 대학처럼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수험인력을 기르지 않고 지역의 실정에 맞는 기술인력을 양성해서 환경기술인으로서 취직을 잘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누가 소방관이 되려고 서울대를 가겠습니까?』 - 같은 맥락입니다만 삼척대의 산학협동전략은 특히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외에 삼척대의 경쟁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전국에서 우리 학교가 등록금이 가장 쌉니다. 한 학기에 100만원 정도 합니다. 사립대학 같은 경우는 300만원에 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100만원 미만으로 저렴한 등록금에다 아주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취직도 잘 되고 해서 시골에 있으면서도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산학협동의 성과에도 물론 자부심이 있지요. 본교의 자연공학과, 토목과 그리고 환경공학과 소속의 교수님들이 쌍용이나 동양시멘트 등 인근 기업의 기술자문을 하는데 많은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이 발전을 하려면 기업들이 먼저 성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연구, 개발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학협동에 대한 삼척대의 각별한 노력은 지난 해 있었던 강원도내 산학연 컨소시엄 사업 지원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강원도와 강원지방중소기업청이 산학연 공동기술개발 컨소시엄 사업에 선정된 도내 9개 대학을 평가한 결과, 삼척대가 규모 면에서 월등히 앞선 여타 대학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행정기관과 지역사회가 삼척대에 대해 갖는 기대를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재직교수의 출신 대학도 '한양'이 최다 장 총장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한양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1년 전인 1958년이다. 충북대 신방웅 총장과는 2년의 터울이 있는 선후배 사이가 된다. 모교에 대한 감회를 묻자 장 총장은 「돌산」에 대한 회고로 말문을 시작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 이야기를 좀 많이 거슬러 보겠습니다. 총장님께서 대학을 다니던 50년대 말, 60년대 초는 한양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모교의 발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때는 모교가 참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지요. 우리가 들어갔을 때만해도 아직 종합대학 승격 전인 한양공과대학이었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발전을 많이 해서 뿌듯한 마음이 있지요. 저희 삼척대의 교수님들도 학부 출신을 따지자면 한양대가 가장 많아요. 저희가 공과계열 학과가 많다보니까 그런 점도 있지요. 제가 강원도 교육위원을 두 번 역임하고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해서 최종 경선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영동지역의 인구가 좀 작다보니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그러한 선거의 과정에서도 보니까 어디를 가도 한양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부디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장 총장은 급격한 발전상에 뿌듯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한양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의 소임을 다할 것을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대학이 어떻게 손에 잡히지도 않는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되묻는 그다. 삼척대가 연출하는 '강원도의 힘', 그 진솔한 학문의 꿈에 다섯 개의 별을 드린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 동신대학교 이상섭 총장은 지병 관계로 인터뷰 및 보도가 연기되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 편집자주 학력 및 경력 1958 강릉상고 졸업 1963 한양대 토목공학 학사 1982 인하대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 1990 인하대 대학원 토목공학 박사 1964 화천공업고등학교 교사 1966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전임강사 1979 삼척공업전문대학 교수 1991 삼척산업대학교 교수 1991 강원도교육위원회 위원 1995 강원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 1995 강원도교육위원회 부의장 1998 삼척대학교 총장

2002-06 01

[교수][한양의 소금 1] 도서관 양주성 사서

1년간 외부인사 1백여명 수행한 홍보전문 사서 학내 구성원 풍부한 교양 쌓는 토양 구축 목표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요리를 잘 한다 할지라도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는 법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수를 요리사라 한다면 직원은 그 요리를 더욱 맛깔스럽게 해주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꼭 있어야 하지만 평소 때는 그 존재가치를 잘 모르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이들. Weekly Hanyang에서는 한양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들을 찾아 이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획 '한양의 소금'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어두운 밤, 국철을 타고 응봉역에서 왕십리역으로 지나다 보면 유난히 환하게 빛을 토해내는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주축으로 변함 없이 본교의 심장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백남학술정보관(이하 학술정보관)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도시와도 같이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이곳을 조용히 움직이고 사람이 있다면 단연 사서들이다. 수위 다음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도서대출뿐만 아니라 도서 데이터 베이스 (DB) 구축, 홈페이지 구축, 홍보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일반 자료실에서 근무하는 사서들과 달리 양주성 사서는 학생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사서는 아니다. 학술정보관 정보지원팀에서 일하는 그는 본교를 찾는 외부인사를 대상으로 학술정보관을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서이면서 홍보를 전담하고 있는 그의 자부심은 단연 1년에 1백여 건이 넘는 외부 인사를 수행한 데서 나온다. 그는 타 대학 총장을 비롯해 본교를 찾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둘러보는 학술정보관을 단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무한한 힘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몫을 담당하고 있다. 교내외 기자들이 1주일에 서너 번 해오는 취재 요청에 응하는 것도 당연히 그의 몫이다. 양 사서는 홍보뿐만 아니라 일반 행정, 교육, 기획, 근로장학생 채용, 홈페이지 관리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용자 교육은 그가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업무이다. 그가 이 교육에 임하는 기본 태도는 "1회성 행사가 아닌 정보화 교육의 일환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체적인 스케줄을 조율한다."는 것이다. 2000년도만 해도 14%에 그쳤던 참여율이 올해는 73%로 껑충 뛰어 오른 것은 그의 숨은 노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끊임없는 자기 개발에 주력하는 것도 그의 매력이다. 교내에 유일한 홍보전문 사서로서 그는 외국인 안내를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제어학원 6단계 과정을 이미 수료한 그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 학술정보관의 생생한 모습을 전할 수 있는 진정한 프로를 꿈꾸고 있다. 또한 한양 사이버 커뮤니티에 동료 사서들의 모임인 'GILL(Get into the library legend)'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학술정보관의 질적 성장과 비전에 대해 탐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사서로서 그가 그리는 바람직한 학술정보관의 상은 학내 구성원이 풍부한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토양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IT교육은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여러 분야를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지식의 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충훈 사서는 "양 선생님은 오늘의 학술정보관이 있기까지 쌓여진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쉽고 편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을 열과 성을 다해 방문자들의 가슴에 도서관을 심어주려 하지요. 믿음이 가는 동료입니다."라며 그에게 '프로'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개발에 주력하는 양 사서. 일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를 통해 학술정보관뿐 아니라 본교의 밝은 미래를 점쳐 본다. 양 사서는 다음 '한양의 소금' 릴레이 인터뷰의 대상자로 서울캠퍼스 인사과 국중대 직원을 추천했다. 문의 전화를 많이 해서 고생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다는 개인적인 사과와 함께. ISO 9001인증을 준비하면서 직무 분류를 하는 등 업무 외의 일이 많아진 상황에서 관련 업무를 꼼꼼히 처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단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5 29

[교수]`지휘자는 무대위의 요리사`

조화가 중요한 오케스트라 지휘는 요리와 비슷 "한국서 가장 깨끗한 음 '수원사운드' 만들겠다" 오는 7월 마지막 연주회를 끝으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뉴욕필)의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의 자리를 물러나는 쿠르트 마주어(Kurt Masuer)가 지난 91년 세계적인 뉴욕필의 상임지휘를 맡게 됐을 때 뉴욕 시민들은 이 독일 태생의 지휘자가 자유분방한 뉴요커들의 음악적 취향을 과연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베를린과 빈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뉴욕필을 10년 넘게 이끌어오면서 간혹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마주어가 뉴욕필의 연주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이제 그는 뉴욕필을 거쳐간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 등 전임 지휘자들처럼 이미 '위대한 지휘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서 가장 깨끗한 음, '수원 사운드' 만든다 지난 해 2월 음대 관현악과 박은성 교수가 '스타 지휘자' 금난새 씨의 뒤를 이어 수원시립교향악단(이하 수원시향)의 상임지휘를 맡게 됐을 때 수원시민들은 마주어가 뉴욕필을 맡았을 때처럼 큰 관심을 가졌을까.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는 인구 1백만명의 지방 도시 오케스트라를 1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뉴욕필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지만 시민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박 교수가 수원시향에 가지는 애정은 각별하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수원시향 측의 상임지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단원들을 비롯한 수원시향 관계자들이 거의 협박조(?)로 강권하길래 그 진심에 감동해 맡게 됐습니다. 부임한 뒤 제가 단원들에게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음, 이름하여 '수원 사운드'를 만들어보자고 말입니다. 단원들이 잘 따라주고 있고 저 또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가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후 수원시향은 예전에 비해 연주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의 깨끗함에 있어서는 수원시향이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는 박 교수는 2년후 쯤이면 '수원 사운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로 발돋음하려면 연주력 등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 재정, 홍보, 전통 등 모든 제반 사항들이 충족되어야한다. 무엇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이야말로 오케스트라가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박 교수는 이를 '민도(民度)'라고 표현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곧 국민의 문화적 수준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유럽에서 가진 한 연주회를 떠올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박 교수는 어서 빨리 공연을 정리하고 단원들과 실컷 술잔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하지만 박 교수의 뒷풀이는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객석의 커튼콜이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커튼콜은 무려 10여분이나 계속됐다. 지휘자가 무대로 몇 번이나 불려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휘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객들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앞섰습니다. 대충 끝내지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감동적인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감동하고 말았지요.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연주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객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나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3대 교향악단중의 하나인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지휘자로서 독보적인 경력을 쌓은 박 교수가 지방 교향악단에 불과(?)한 수원시향을 맡자 주변에서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지방 도시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 문화발전에 교향악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임하지마자 골목길이나 종합병원 등 시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연주자들을 이끌고 찾아갔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정기연주회를 열면 이제 빈 객석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박 교수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교향악단이니만큼 시민들이 좀 더 양질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폭풍우가 치고, 칠흑같이 어두웠던' 유학시절 69년 음대를 졸업하자마자 국립 교향악단의 수석 단원으로 입단한 박 교수의 음악인생은 그때까지만해도 거칠게 없어보였다. 지휘자로서의 삶도 전도유망했다. 하지만 자신감 하나만을 가지고 한국인 최초로 입학한 비엔나 국립음악원에서의 유학시절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끝이 없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데 폭풍우가 치고, 칠흑같은 어둠으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오트마르 수위트너(Otmar Suitner) 교수에게 사사한 박 교수는 독일어 과목 하나 인정받은 것을 제외하고 음대의 모든 교과과정을 다시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솔직히 한국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던 터라 지나치게 자신만만했었습니다. 게다가 수위트너 교수님 같은 대가가 저를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겠죠.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도 힘듭니다. 오죽하면 졸업을 하는데도 기쁜 감정은 안 느껴지고 눈물만 나더군요."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낸 박 교수의 동료들은 현재 대부분이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음악감독이나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박 교수 역시 유럽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수위트너 교수도 유럽에서 활동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권유를 뿌리치고 귀국했다. 박 교수 개인의 음악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화가 중요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요리사' 박 교수는 처음부터 지휘를 하더라도 한국에서 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비록 자신은 당시의 낙후된 교육여건 때문에 외국에서 공부했지만 후배들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믿었고 그 역할을 자임했다. 지금의 국내 여건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박 교수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지방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다수 활약하고 있다며 정말 근사하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순수 'Made in Korea' 지휘자는 드물다며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말한다. 일본만 해도 순수 국내파 지휘자들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번스타인(Bernstein)이나 카랴얀(Carajan)이 무아지경에 빠진 듯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팔을 내젓는 모습에서 누구나 감히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느끼게 된다. 저마다 음악적 자존심이 강한 1백여명에 이르는 단원들을 이끌며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늘 새로운 느낌을 창조해야하는 지휘자에게 카리스마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요소인지 모른다. 매서운 눈매에서 '홀로 걷는' 사람만의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박 교수에게 지휘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단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김치찌개, 라면, 게장 등이 저의 주종목이지요.(웃음)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할 땐 유럽에서 가장 김치를 맛있게 만드는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재료로 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요리에서 양념의 양, 불의 온도, 재료의 크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도 연주자들간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지휘자는 말하자면 요리사인 셈입니다." 지휘자가 된 후 열흘에 한번 꼴로 지휘를 했다는 박 교수는 1주일에 4개의 다른 교향악단을 가지고 6번 지휘를 한적도 있다며 아마도 1주일 지휘횟수로는 세계기록일 것이라고 웃어 넘겼다. 박 교수의 수원시향은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아 정기연주회 12회, 특별공연 8회 등 20여회의 공연일정이 잡혀 있다. 게다가 KBS 교향악단의 객원지휘까지 맡고 있는 박 교수는 12월에 있을 수원시향의 헨델의 '메시아' 전곡 연주회까지 지휘봉을 손에서 놓을 날이 없을 듯 하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박은성 교수 학력 및 경력 박은성 교수는 196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198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로 디플롬(Diplom)을 받았다. 77년 잘츠부르크 썸머아카데미 파이널콘서트 지휘자, 81년 국립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84년 서울시립청소년교향악단 상임지휘자, 92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아틀랜타 올림픽(1996년) 문화축전,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 초청공연 등 30여편의 오페라와 발레 작품을 지휘했다. 2000년부터 KBS 교향악단 수석 객원지휘자, 2001년부터 수원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지휘자협회 회장, 국립오페라단 이사, 국제문화교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93년부터 음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박 교수는 대통령표창과 한국음악상(지휘부분)을 수상했으며 2001학년도 연구업적 최우수교수상(2002년)을 받았다.

2002-05 29

[동문]실용학풍의 전당 호원대 강희성 총장

전원에 건설하는 실용학풍의 전당 "2010년, 전북 최고의 사립명문으로 도약하겠다"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동신대 이상섭 총장 ⑥ 삼척대 장태연 총장 전북 군산 인근에 위치한 호원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세 번은 놀라게 된다. 국도를 타고 야트막한 언덕을 넘을 때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전원 캠퍼스의 아름다움에 처음 놀라고, 막상 교정에 들어서면 본관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5년 전 지금의 옥구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강의와 연구시설 건립을 최우선으로 추진했던 탓이다.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모든 환경이 구비된 후에 본관이 완공될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이 무척 인상적이다. 중앙도서관 건물의 1층 화장실 옆, 구석의 공간을 빌어 위치한 총장실에서 비서팀장이 귀띔한다. 『총장님을 처음 뵙는 많은 분들이 곧잘 놀라시곤 합니다.』 앞 뒤 설명 없는 말의 의중을 헤아리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와 대뜸 악수를 청하는 신사가 있다. 40의 나이를 갓 넘겼을까 싶은 젊은 인상과 세련된 외모의 그가 환한 미소로 자리를 권한다. 호원대 강희성 총장(경제 75학번)이다. 「서해안 시대」 주도할 젊은 지성의 전당 강희성 총장은 경제학과 75학번이다. 젊은 인상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유려한 언변이 그의 연륜에 대한 「오해」를 종종 낳지만 굳이 나이를 따지자면 40대 후반인 셈이다. 강 총장은 학부를 마친 이후 미국 뉴욕의 Pace University에서 MBA를, 다시 모교인 한양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호원대의 전신인 전북산업대에서 교직을 시작한 이래 사무처장과 기획실장을 거쳐 지난 해 제 4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해안 개발의 붐을 타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이 요구되는 지역정서와 대학의 요구가 그의 젊음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 호원대는 25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성장이 돋보입니다. 새롭게 도래한「서해안 시대」라는 지정학적 발전 가능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만. 『1978년에 군산공업전문학교로 개교한 이래 지금의 호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급속히 성장한 대학이라 자부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학부나 전공들이 실용적 학문으로 구성되어 실생활이나 산업계의 요구에 직결되어 있었고, 이는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에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과 새만금간척사업의 재개, 군산자유무역지대 지정 등으로 인해 환황해권 중심도시로서 군산시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에 가득 찬 이러한 활력을 바탕으로 젊은 우리 대학도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질문일 듯 싶습니다. 지난 해, 취임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소명」을 강조하셨습니다. 산학협력 혹은 지역 연계사업의 구체적 모습들이 궁금합니다. 『제가 총장에 취임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소명을 강조한 것도 앞서 말한 군산시의 발전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호원테크노경영원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산업체와의 지속적인 산학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내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와 함께 각종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그렇고 지역사회 정보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근의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전산교육과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지요. 재학생들의 사회봉사 학점제는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헌신임과 동시에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얻지 못하는 중요한 체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도 매우 우수합니다. 실제로 본교의 학생들이 사회봉사분야에 있어 도지사 표창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각종 협력과 실용주의 전략은 호원대의 가장 큰 원칙입니다.』 취업률 100%, 실용학풍이 경쟁력이다 호원대는 백화점식 커리큘럼을 갖춘 종합대학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용학풍에 기초한 특성화 전략을 고집한다. 젊은 총장의 리더십이 지닌 활력을 증명하듯이 그는 서구에서 체험한 독특한 합리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호원대는 호원대만의 전략이 유효하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 세분화된 전공과정과 대폭 강화된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언제든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준비된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 호원대의 커리큘럼을 이른바 '맞춤교육'이라고 평가한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이론과 실무의 적정 배율을 어느 정도로 고려하고 계십니까? 『물론 지방 중소대학이 나름의 특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만 본교의 교육은 산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전문직업엘리트」를 양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론교육 이상으로 실습, 실험과 같은 실무교육에 타 대학보다 월등히 많은 투자와 시간이 들어갑니다. 모든 전공에서 최소 30% 이상, 많게는 50%까지 실무교육과목을 개설하도록 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수진도 전임교수 외에 산업계의 임원급을 겸임교수로 대폭 채용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 특화된 교육과정의 내용만큼이나 그 성과도 궁금합니다. 최근 호원대의 취업현황은 어떻습니까? 『일개 특정학과를 선별해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학과가 고루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취업률을 중심으로 본다면 컴퓨터 학부, 관광학부, 유아교육과, 사회체육학과 그리고 산업디자인학과 등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100%의 취업률입니다. 학생들이 각 전공별로 독자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동시에 전자상거래나 e-비즈니스와 같이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주요 학문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창업실무 및 전공심화학습과정」을 3,4학년을 대상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했던 것이 더욱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 총장은 호원대의 실용학풍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곳으로 관광학부를 꼽는다. 강의의 내용과 방식을 호텔 및 여행업계 대표, 관련 공무원들이 포함된 산학협력위원회서 구성하고 현장에 투입해 즉시 활용 가능한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또한 특급호텔의 지배인, 여행사 간부 등이 겸임교수로 출강하여 현장실무를 교육한다. 외국어 역시 이러한 커리큘럼에서 빠지지 않는다. 토익과 토플 등 단순한 어학점수 취득에서 탈피하여 영어, 중국어, 일어 등 다국적 회화능력 향상에 중점을 둔 강의가 진행된다. 강의로도 부족하여 관광학부 내에서만 매년 20여명의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떠날 만큼 실용회화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성적표로 대변되는 이른바 '죽은 지식'은 호원대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내 집 같은 학교, 「첨단 주거형 캠퍼스」 도심에서 떨어져 호젓한 전원에 위치한 캠퍼스의 교육환경은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나지막한 산세를 등에 엎고 자리한 교정의 맑은 공기와 쾌적한 자연환경은 학생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강의실이다. 교내에 조성된 호수와 산책로는 신축된 건물들과 함께 하나의 리조트를 방불케 한다. 인터뷰에 이어 강 총장이 직접 캠퍼스를 안내하며 소개한 기숙사와 학생식당 그리고 샤워장과 헬스시설에 이르기까지 교내 곳곳에 갖추어진 각종 복지시설도 수준 급이다. - 캠퍼스 구성 자체가 매우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이전하면서 특히 역점을 두셨던 부분이 있습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 대학은 5년 전에 새로 이사를 온 캠퍼스입니다. 대학을 이전하면서 건설비용은 더 들었지만 캠퍼스를 가장 아늑하고 편리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지역 출신의 학생들도 많지만 서울, 경기를 비롯해서 수도권 출신의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집에서 다니는 것처럼 학교를 「첨단 주거형 캠퍼스」의 개념에 부합되도록 조성하고자 했지요. 그 동안의 노력 덕택에 모든 방문객과 학부모님들이 캠퍼스에 대해 매우 좋은 평가를 주고 계십니다.』 강 총장은 지난 97년 캠퍼스 이전 직후 호원대가 추진한 첫 번째 사업은 대학을 「종합생활문화공간」으로 육성하여 우수한 교육여건과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호원대는 교육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호원비전 2010」이라는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다. 2010년께는 전북 최고의 사립명문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는다. 강 총장이 일축한「작지만 강한 대학」은 호원대를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정의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1975 대광고등학교 졸업 1979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6 미국 New York Pace Univ., MBA 1996 한양대학교 경제학박사 1988-99 전북산업대 사무처장·기획실장 1996 전북산업대 특임대우교수 1998 호원대 부교수 1999 호원대 부총장 2001-현 호원대 총장

2002-05 29

[교수]"삶을 완주하라" 동호회 `달리는 한양` 이희관 계장

지난 해 9월 결성해 현재 18명 가입해 교직원ㆍ학생 함께 하는 장 마련 목표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두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는데 좋은 운동인 마라톤 열풍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아무런 장비나 운동기구 없이 건강한 몸을 다지는데 마라톤만큼 효과적인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열기 탓인지 대한육상경기연맹에 따르면 현재 마라톤 동호회 수만 해도 5백 개를 웃돌고 동호인은 1백 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올해 국내에서 벌어지는 마라톤 대회만 해도 모두 120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본교에서도 지난해 9월부터 교직원을 중심으로 건강한 심신을 다지기 위한 마라톤 동호회 '달리는 한양'이 결성되었다. 지난 12일 회원들을 이끌고 경향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동호회 회장 법대 이희관 교학계장을 통해 마라톤 애찬론을 들어보았다. - 동호회 결성을 하게된 동기는 매일 바쁜 업무에 치여 살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의 과제에만 얽매여 건강에 소홀해졌고 피로가 누적되어 점차 업무효율도 떨어져 갔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마라톤 연습을 하던 중에 총무과 유백열 계장과 뜻을 같이 하는 여러 교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9월에 처음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교내에서 일하는 직원끼리 피로한 심신을 달래고 함께 고충을 토로하며 화합을 장을 만들고자 했다. - 동호회 활동은 어떻게 하나 현재 유 계장을 비롯해 김신일 대학원 교육부장, 여성이면서 최고연장자인 백남학술정보관 정애자 계장 등 18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회원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시간을 맞춰 서울 잠실 석촌호수 주변을 달리고 있다. 그날 자신이 완주할 거리를 정하고 동료들과 함께 뛰는 것이다. 전문강사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훈련은 없지만 서로 격려해가며 구슬땀을 흘린다. 잘 뛰는 것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건강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페이스를 오버하며 뛰지는 않는다. 지난 해 11월에 열린 중앙일보 하프마라톤 대회에는 모임 발족 후 각자의 업무가 바빠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나와 유백열 계장만이 참가했다. 하지만 올해 5월에 열린 경향마라톤대회에는 그동안의 연습을 바탕으로 14명이 참가했다. 5명은 하프코스를, 9명은 10km를 뛰어 전원 완주했고 학술정보관 정애자 계장은 최고연장자상을 받기도 했다. - 마라톤이 운동으로서 좋은 점은 마라톤을 시작한지 1년 9개월쯤 되어간다.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리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효과를 보았다. 피로감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도 줄어들고 자심감도 많이 향상됐다. 그것은 마라톤이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한발 한발 내딛을 수록 그만큼 나 자신도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목표한 거리를 완주했을 때는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자신감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특히 요즘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과중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위궤양, 불면증, 소화불량 등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라톤만큼 효과적인 운동이 없다고 본다. 운동화 한 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독일 외무장관은 한국을 방문해서까지 아침 일찍 남산을 달렸겠는가. - 마라톤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지난 3월 열린 제5회 서울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42.195km를 완주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 뛰었지만 마침내 결승선을 들어서는 순간 강한 희열을 느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학생시절 때에 5명중에 3, 4등을 할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형편없던 내가 해냈다는 자신감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중간에 힘들어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들고 쉬엄쉬엄 걷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이겨내고 결승선을 밟아 더욱 감회가 새롭다. 가장 두려운 적인 나를 이겨냈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앞으로 더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해 열린 중앙일보 하프마라톤대회에서 경희대에서는 조정원 총장을 비롯해 1,500여명의 교직원과 학생, 교수들이 참가해 함께 달렸다. 경희대뿐만 아니라 가톨릭의대, 연세대, 광운대 등 많은 대학에서는 이미 마라톤 동호회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교수,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뛰는 것을 보고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현재 '달리는 한양'에는 18명의 교직원만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교직원만이 아니라 '달리는 한양'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단지 뛴다는 것이 건강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흘리는 땀방울을 통해 서로간의 이해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회원들을 많이 모집하고자 한다. 학생들의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사이버 커뮤니티 '달리는 한양'도 만들었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많은 참여를 통해 건강한 한양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허봉회 학생기자 huh61@ihanyang.ac.kr

2002-05 22

[동문]`공익 우선하는 삶, 평생을 떳떳하게 사는 길`

공익 우선하는 삶, 평생을 떳떳하게 사는 길 "돈 많이 벌고 싶으면 공직생활 피해가라" "젊은 사무관부터 청와대까지 사고가 굳어져 있다. 정부의 관료체계가 군(軍) 관료체계와 똑같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무원 인사와 인사제도의 개혁을 위하여 국민의 정부 들어 처음 신설된 중앙인사위원회 김광웅 초대 위원장의 이임사 한 대목이다. '공무원 조직의 상상력과 창의력 실종'을 개탄한 그의 이임사는 공직자들이 듣기에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만 하다. "공직 인사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혈액의 흐름을 막는 혈전(血栓)처럼 끼어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성과마저도 한순간에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임해종 동문(법학과 81년졸)을 만나러가는 날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공무원 정원을 6백여명 늘리는 것을 의결했다. 언론에서는 대번 국민의 정부가 약속한 '작은 정부'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비판했다. 중앙인사위원장의 이임사도 그렇고, 공무원 증원 계획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생각하니 '작지만 효율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신설된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개혁업무에 주력하고 있는 임 동문을 만나러가는 길은 이래저래 심난했다. 공공부문 개혁은 행정 효율이 핵심 정부개혁실에 들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40대 중반의 푸근한 인상의 사나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정부개혁실 행정1팀장 임해종 동문이었다. 임 동문은 평소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딱딱하고, 고압적이며 엘리트적인 '관료'의 인상보다는 퇴근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에 더 가까웠다. IMF 구제금융의 부담을 떠 안고 출범한 현 정부가 노동과 금융, 기업 그리고 공공부문의 4대 개혁을 천명한지 4년이 넘었다. 그 작업의 성과를 결산하는 시점에서 공공부문의 개혁이 가장 부진하다는 비판이 언론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계속적으로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임 동문은 공공부문 개혁의 범위를 좀더 명확히 해야함을 역설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을 일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선진국에서도 정부개혁이라 함은 자체 정비와 일하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민들은 조직관리에 한정하지 않고 의료, 사법, 정치, 부패 등의 문제와 같이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크게 보면 정부 공공개혁 범주에 들어가지만 솔직히 기획예산처 소관이 못됩니다. 정치개혁은 정치인, 사법개혁은 법원이나 검찰이 해야하고 교육, 의료개혁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하는 일이지요." 임 동문은 국가경영에 대한 평가기관인 스위스의 IMD(Institution of Management Development)가 우리나라의 국가경영 수준을 97년의 세계 30위에서 27위로, 행정효율은 38위에서 25위로 올렸다면서 이는 대대적 개혁의 성과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비판에 마냥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임 동문은 "좀 억울하기 하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다"라고 실토한다. 비록 거대한 정부에서 세부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크게 봐서 '국민'의 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공의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멸사봉공' 정신으로 쉴 새 없이 내달린 20년 임 동문은 법대 77학번으로 민주당 최고위원인 추미애 동문과는 동기동창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들이 많았지만 그는 행정고시를 선택해 3학년때 1차, 4학년때 2차에 합격해 81년 총무처 수습행정관으로 처음 공직에 몸담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재직 중에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90년대 경제분야의 주요한 이슈였던 부동산, 선물거래제도, 준조세제도 등 우리 나라 경제기획의 주요 사안은 모두 임 동문의 손길이 배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습'딱지를 떼고 '엘리트' 공무원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경제기획원을 지원하게 된 동기를 묻자 임 동문은 '왠지 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타 부서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의욕으로 작용했을까. 임 동문은 그의 20여년 공직생활을 다른 것을 별로 생각할 겨를 없이 '쉴 새 없이 달려왔다'라고 표현한다. 재정경제원과 기획예산위원회를 거쳐 현재의 기획예산처에 이르기까지 각종 재정관련정책과 제도개선, 재정운영 계획수립과 집행관리 그리고 공공부문의 재정개혁과 행정개혁에 관한 사무를 책임지는 업무는 일하는 보람도 많겠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법이다. "인원이 250명 정도로 공무원 수로 보면 아주 적은데 할 일은 아주 많은 조직이 기획예산처입니다. 야근도 많고 예산이라는 게 국회 승인이 나야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힘든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정부개혁실도 '떡 하나 더 주기 보다는 더 많이 먹는다고 뺏는 일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겉보기와는 달리 화려하지도 않고, 별로 환영받는 조직도 아닙니다. 일을 처리할 때 불편부당하지 않도록 조절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어떤 위치까지 왔냐구요? 아직 졸병이죠 뭐" 임 동문이 생각하는 공직 생활은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압축된다. 모든 일에 대한 판단 기준을 공익성에 두다 보면 가장 보람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은 공직생활이 절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부자체 개혁의 일환으로 학자금 무상 지원을 폐지하고 퇴직금도 줄었습니다. 월급도 초봉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크게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일하는 것도 공공성을 앞세우다 보니 효율성보다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많이 따지게 되죠. 10년 정도 공직에서 일하다 보면 민간 부문 종사자와는 일에 접근하는 방법이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어떤 일을 해서 자기 조직에 얼마나 많은 이익이 들어오느냐 보다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때문에 평생 떳떳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도 있지요. 능력을 발휘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삶, 공직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뚜렷한 공직관을 지닌 젊은 관료에게 인생관이랄까 뭐 거창하지는 않지만 인생철학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임 동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선 할 이야기 없는 사람인데요. 이건 생략합시다. 자식에게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라는 이야기를 못하는데요 뭘. 그런 거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생활 20년이면 이제 중고참이다. 고시를 통하지 않은 공무원들이라면 평생동안 근무해도 오르기 힘든 4급 서기관이다. 하지만 임 동문은 스스로를 여전히 '졸병'이라고 말한다. 정권말기가 가까워오면서 벌써부터 '복지부동'이니 '줄서기'니 하는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재연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지금, '공무원 조직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만난 임 동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충실한 '공복(公僕)'의 모습 그것이었다. '졸병' 서기관 임해종 동문의 정부개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임해종 동문은 누구? 임해종 동문은 77년 본교 법학과에 입학해 80년 24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87년부터 94년까지 경제기획원(행정사무관), 94년부터 96년까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서기관)에서 근무했다. 이후 충남도청 경제협력관, 재정경제부 경제홍보기획단 국내홍보과장,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를 거쳐 지난 2001년부터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재직하고 있다. 재정1팀장을 거쳐 현재 행정1팀장을 맡고 있는 임 동문은 92년 영국 서섹스대학에서 국제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통령표창(93년)을 수상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