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216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02-02 08

[동문]그라면 믿을 수 있다 환경연합 이철재 동문

"환경을 지키는 것은 '지역적'임과 동시에 '지구적' 운동" 환경운동연합 이철재(중문 90) NGO 1. 명)국제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국제연합에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설립된 각국의 민간단체를 일컫는 말 2. (속) 인생에 N.G.가 난 사람들의 조직 동) - 하다. 삶에 N.G.가 나다. (출처 : H신문 유머게시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결혼정보회사들이 선호하는 남성회원의 직업에서 '시민운동가'가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세간의 말에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군요.'라고 점잖게 응수했다간 망신을 당하기 쉽다. 1위가 확고부동한 '연변총각'이라는 부연설명을 먼저 끝까지 들어야 한다. 교통비와 식대에도 못 미치는 박봉에 업무의 절반은 거리와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펜보다 피켓을 자주 들고 관할 경찰서 유치장을 합숙소처럼 드나들던 기억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인생에 N.G.가 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NGO'라는 험악한 농담에도 박장대소로 일관하는 시민운동가들. 도대체 그들이 지닌 '내공'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시아 최대 규모의 NGO, 환경연합 지난 1998년 서울캠퍼스 중문과를 졸업한 뒤 경실련을 거쳐 현재 환경운동연합에 몸을 담고 있는 이철재 간사. 시민단체에도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신 모교의 선배님들이 여러분 계신데다 자신은 그야말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운동가'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하는 그를 '초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인터뷰라 간신히 설득하고 만났다. "삼사십분이요? 아이구, 안됩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일이 터져서 곧장 가봐야 해요.", "그렇다면 30분.", "10분에 합시다.", "20분." 에누리를 거듭해 다짜고짜 시작한 인터뷰. 한 달에 문자 400번을 보내지 않으면 '사랑'이 떠나가는 시대에 이렇게 바빠서야 어느 여성이 좋다고 하겠는가? 결혼정보회사에서 싫어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미혼일 것임을 내심 확신하며 시민단체 '입문'의 계기를 물었다. "93년도에 총학생회에서 일을 했었어요. 이후에 앞으로도 보다 범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고 실천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했지요. 폭넓게 생각하고 다양한 사고로 살아가자. 그러다가 환경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졸업하고 경실련에 있다가 이곳으로 왔어요. 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982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환경단체라 할 수 있는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모태로 하여 1993년 전국의 주요 8개 환경단체가 통합함으로써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산하에 각 지역연합을 두고 전국적으로 약 8만 5천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대 규모의 NGO다. 이 정도 규모라면 단체의 정규적인 수입도 적지 않을 터이니 연봉도 기타 시민단체보다야 훨씬 높지 않을까? "연봉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일년에 천 만원이 못되는 활동비를 받습니다. 경제적인 압박이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쁨도 있죠. 조금 벌고, 조금 쓰겠다. 뭐, 이런 원칙들 속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정부를 굴복시킨 작은 피켓의 힘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한국사회에 시민단체의 힘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사회운동'이라면 일종의 '알러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이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고 우리사회의 척박한 시민의식을 확연히 고취시킨, 그야말로 한국 시민운동사에 기념비적인 쾌거였던 것이다. 총선연대 가운데에서도 환경운동연합은 당시 낙선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임에도 국내의 대표적인 NGO임을 스스로 자임하지 않는다. 그저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실상, 시민운동에 보다 중요하고 보다 덜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환경운동이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또한 운동이라고 해서 일상의 삶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1회 용품의 사용을 자제한다거나 수도물 한 방울을 절약하는 일 등 작지만 소중한 모든 일들이 환경운동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환경운동이란 지역적 운동인 동시에 지구적 운동이라 설명하는 이 동문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실천'의 문제다. 생활 속의 환경운동을 지향하며 작은 실천이 모여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너무 교과서적이라면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가 교과서적이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라 답변하는 그다. 최근 그는 건설교통부가 기획하고 있는 12개 댐들의 신규 건설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가 기존에 건설된 댐들도 모두 없애는 판에 또다시 댐을 건설하는 것은 지극히 퇴보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하천에 건설된 일개의 댐은 인근의 모든 생태계를 순식간에 파괴해 버린다. 훼손된 환경이 복원되기까지는 예측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요, 그 폐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은 우리의 다음 세대다. 도무지 흐르는 하천을 수도꼭지 잠그듯이 '다스리겠다'는 개발일변도의 발상들이 인정을 받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정부의 굵직굵직한 국책사업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1994년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 1995년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 1998년 동강댐 건설 백지화 운동 그리고 같은 해 시작한 새만금간척사업 반대 운동 등 환경연합이 '훼방'을 놓은 정부사업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결과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사업은 이듬해 전면 백지화됐고 정부는 동강댐 건설 사업도 포기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 이슈가 되었던 대만핵폐기물의 북한 반입 추진을 무산시킨 것도 환경연합의 범국민운동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를 믿는 이유, '깐깐하니까' 이 동문은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사업들이 철저하게 환경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부족의 지적과 함께 모든 정책수립과 집행에 있어 확보되어야 할 투명성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수도물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리하며 그저 안전하니 마시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수질 관리에 대한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관련 정책의 입안에서부터 최종 시설의 운영에 있기까지 여론을 적극 수렴하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누가 왜 의심을 하겠습니까?" 맑은 국토, 투명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환경정책이 정작 투명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시민들의 불만을 이 동문은 조목조목 열거하기 시작한다. 그 논리가 치밀한 것은 물론이고 언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여간 집요하기 짝이 없다. 요즘 뭇여성들이 어디 '깐깐한' 남자를 선호하겠냐 싶지만은 내가 마실 '물'은 이런 사람에겐 맡겨도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며 발을 구르는 그에게 '내공'에 대해 물었다. 도대체 피켓 하나 달랑 들고 그 무시무시한 공권력을 이겨내고 정부를 굴복시키는 그들의 힘, 그것의 원천을 알고 싶었다. "직업적으로 시민운동을 하면서 늘 시민과 함께하고 있고 그들로부터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지요. 열의와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2002-02 08

[동문][인터뷰]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김지현 동문

3대에 걸친 여들의 삶 그린 <사각거울>로 당선 "작가는 삶의 상처를 치유하다가도 들쳐보는 존재" 지난 달 29일에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렸다. 이 시상식에서 단편소설〈사각거울〉로 작가의 대열에 합류한 김지현(국문과 대학원졸) 동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아이가 있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그만큼 3대에 걸친 여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소설〈사각거울〉은 탁월한 완성도와 농익은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세 여자의 캐릭터가 생생할뿐만 아니라 반지하방으로 요약되어 생동감 있게 드러나고 있는 현실적 고통 그리고 '새'와 결말을 통해 은유되고 있는 희망의 징후 등은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다.'라는 평을 들은〈사각거울〉은 섬뜩한 카리스마로 지루한 소설에 지친 독자들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올 듯하다. 그녀의 소설은 순식간에 읽힌다. 어디 하나 부족한 곳이 없는가 하면 어디 하나 덧붙일 곳도 없다. 그러나 "문장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 앞과 뒤를 생각했다."라는 김 동문의 말처럼 문장에 심혈을 기울인 탓에 글은 단숨에 읽고서도 작가의 노력이 여실하게 느껴진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처로 인해 화장독에 피부가 썩어도 매일같이 귀신처럼 화장하는 치매의 시어머니는 너무나 지독하게 며느리의 속을 썩힌다. 그런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며느리는 더욱 더 강해진다. 하지만 그 강해짐은 곧 약해짐과 일맥상통한다. 그녀 역시 남편을 잃은 상처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외면한다. 결국은 그녀도 새하얀 화장으로 얼굴을 덮는 시어머니와 같은 상처받은 영혼인 것이다. 어린 손녀는 며느리와 달리 할머니를 이해한다. 그녀도 비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상처를 갖고 있지만 유일한 희망을 갖추고 있는 미래를 상징한다. 김 동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손녀는 삼대에 걸쳐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시어머니가 그토록 집착하는 거울은 상처를 알아보고, 한편으론 숨기게 하는 양면을 지니고 있지요."라고 설명한다. 각 캐릭터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면인 것이다. 하지만 김 동문의 말처럼 '삶이 상처투성이일 뿐'이라면 그 인생은 너무 가혹한게 아닐까. 김 동문은 여유 있게 미소짓는다. "상처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인생은 상처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할 때 소통합니다. 내 몸의 흉터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자신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며 다른 이의 상처를 보아줄 때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김 동문은 치매증세가 걸린 시어머니의 묘사에서 눈에 띄게 현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현실성 때문에 시어머니는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가 하면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치려고 하는 인물처럼 비추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시어머니의 묘사에는 김 동문의 할머니 덕이 크다. 그녀가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는 할머니의 유해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치매에 걸리셨던 할머니를 경험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 쓴답시고 잘 보살펴드리지도 못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김 동문은 "당선 소식은 할머니가 주신 귀중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어깨가 무겁고, 좋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요."라고 다짐했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탓에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김 동문은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철학도를 꿈꾸기도 했다. 그녀는 평상시 문학작품이나 영화 한 컷을 보더라도 늘 글로 남겼다. 그러한 느낌들이 차곡차곡 모여 어느새 두꺼운 노트로 여러 권이다. "자신의 느낌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해요. 생각은 스쳐지나가지만 그것을 기록한다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봐요."라며 조언한다. 옥탑방에 홀로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김 동문은 자신의 평소 모습에 대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정도로 게으르다'며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글을 위해서라면 의욕부터 앞선다. 다리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직접 회사에 찾아갔다가 잡상인 취급당하며 쫓겨난 기억도 있다. "사람들에게 신춘문예출신 작가로 알려지기 보다는 먼저 제 작품으로 다가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당찬 신세대 작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김 동문은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보이는 글보다는 몽환적인 글을 선호한다. 잡힐 듯 말 듯 하여 작가의 생각을 알리지 않고 독자들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을 쓰고싶다는 김 동문은 여러모로 독자들을 괴롭힐 심산이다. "상처로 끙끙대는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싶지만 안심하고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들추어내서 그들을 괴롭히고 싶기도 하지요." 서로의 상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그녀는 자신의 소설로 실천하는 셈이다.

2002-01 29

[교수]`다시 이 시대의 원칙을 묻는다`

"중요한 것은 조문의 개정 아니 법문화에 관한 것" 양 건 교수(법대) 작년 한해 한국영화를 부흥시킨 주역은 우수한 감독이 아니라 '조직폭력배'라는 세간의 희언(戱言)이 있다. 충무로가 조직폭력배들의 '나바리'로 전락할지라도 영화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그칠 줄 모른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가정통신문에 장래희망으로 '보스'를 적어내는 현실은 신문 귀퉁이를 장식한 가십처럼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각종 '게이트'를 보고 있노라면 정치인이란 '연장'만 들지 않는 또 하나의 조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절의 갈피에서 헌법학자 양 건 교수를 찾아 사라진 이 시대의 원칙을 물어보았다. '연고'와 '원칙'이 충돌하는 한국사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우리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 있어 보편적인 원칙과 충돌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 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간단해 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법률을 공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원칙'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 것만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던 말입니다." 양 교수의 전공은 헌법이다. 1970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면서 그는 실무법률가가 아닌 학자의 길을 택했다. 사실은 대학 입학 후 4년 동안 '법'에 대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두고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선택하게 되었고 법학이 아닌 다른 사회과학분야의 연구를 검토했으나 결국 헌법을 택했다. 이후 동대학원과 텍사스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다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혹자는 헌법을 두고 '주권국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라 말한다. 헌법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들을 보장하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의지를 포괄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학자인 양 교수가 정의하는 헌법이란 무엇일까? "헌법이란 가장 기본적인 사회계약 문서입니다. 사회에서 헌법과 무관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우 포괄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한 국가의 지도, 지향원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헌법을 공부하면서 법 자체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법이 규정하고 지배하는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현실과 학문을 분리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학문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양 교수가 헌법을 선택했던 것은 다른 여러 법들보다 헌법이 현실사회, 특히 정치현실과 매우 포괄적이면서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법학의 본령은 실정법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여 재판과 법 적용의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법이 현실사회를 규정하고 지배하는 합의체계임을 상기할 때, 조문 해석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현실사회 자체에 대한 관심과 탐구도 법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양 교수는 법학자로서 강의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범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현실과 학문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신뢰하는 원칙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재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고려대 배종대 교수, 서울대 권오승 교수 등 중진법학자들과 함께 '법과 사회 이론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조문 해석 일변도의 법학 연구 풍토를 경계하고 현실 문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각종 저널을 통해 왕성한 필력을 보이는 것도 양 교수의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법문화 탐구는 법치주의 실현의 전제 양 교수는 최근 '한국과 일본간의 법문화 비교론을 위한 서설'이란 논문으로 '한국법학논문상'을 수상했다. 그의 논문은 헌법이 아닌 법사회학의 분야에 속한 것으로 아시아의 법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에게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현실사회에 대한 양 교수의 관심이 법사회학으로 확장되어 다양한 연구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부터 법사회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지만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헌정사상 공포정치시대로 불리는 5공화국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헌법에 대한 해석을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규범적 접근 보다 현실로서의 법을 바라보고 싶었던 겁니다." 법사회학은 간단히 말해 법학의 사회과학적 접근을 실현시킨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정법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의 실제와 현실을 탐구하는 현대법학의 한 영역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법에 대한 전통적인 정서와 서구적 제도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법사회학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완전한 '법치주의' 실현을 국가적 과제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가 '법문화'에 관한 것이라는 양 교수의 주장이 힘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적인 법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서구적인 '법의 지배'에 가깝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양 교수의 관심은 이 둘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조망하고 그 관계를 이론화하는 것이다. "현 실정법들 가운데 여러 문제가 있고 현실에 조응하지 않아 점차적으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개정하는 일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 바탕에 있는 법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법문화가 전근대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다는 평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책임'에 대한 의식이 반대로 너무나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법문화를 탐구하지 않고 제도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개혁과 수정은 문제가 있습니다." 양 교수는 향후에도 법의 지배와 법문화의 관계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올바른 원칙과 건강한 상식의 부활이 아쉬운 사회에서 법문화에 대한 탐구는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건강한 양심을 측정하는 리트머스시험지와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과 거짓으로 우울한 시절, 다시 그에게 이 시대의 원칙을 묻는다.

2002-01 22

[학생]금융감독원 류한은 양

여학생으로 본교 최초 금감원 공채 발탁 끊임없이 공부하는 금융전문가 되고파 금융감독원 류한은(경영 97학번)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던 20세기에 은행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들은 통장과 도장도 없이 은행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출금'을 요구했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었다. 시커먼 복면을 하고 커다란 자루를 든 채, 창구로 뛰어들어 현금을 요구했던 그들은 '대기표'도 뽑지 않았다. 비록 성공사례는 드물다 해도 지금까지도 영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들의 활약상은 빈한한 낭만주의의 표상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이제 복면을 두른 사람들이 아니다. 비록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며 은행내에 비치된 통속잡지들을 읽지는 않지만 그들은 은행문을 점잖게 열고 들어와 '현금'이 아닌 '장부'를 요구한다. '경제검찰', '금융권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직원들이다. 금감원, 공정위와 함께 양대 '경제검찰'로 활약 지난 해 가을, 금감원 공채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류한은(경영 97) 양은 금감원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매우 겸손한 소개말을 던진다. "금융권의 경영에 대해 위법행위가 있는지 조사, 검사, 감독하는 일들이지만 이것은 금융소비자, 넓게는 모든 국민에 대한 봉사,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들은 공무원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지난 1997년 제정된 '금융감독기구의설치등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기존의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그리고 신용관리기금 등 4대 금융감독기관이 1999년 통합되면서 발족한 것이 지금의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금융감독위원회 또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지시나 위임에 의해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현황에 대한 각종 검사를 수행한다. 이는 금융시장의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IMF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증대하고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금감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업무의 성격상 철저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기에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것으로 압니다. 일종의 감사기관이므로 운영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기관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원칙을 갖고 있지요.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경제부패사건에서 관련 정부기관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지만 금감원의 경우 최종적으로 혐의가 인정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금감원의 청렴한 분위기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비록 연수 중이라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금감원 직원들은 주식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선배들이 그러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기업으로 가라, 그러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려거든 너의 직장은 아주 멋진 선택이다'라고 말입니다." 금감원 공채 실시 이후 여학생으로는 본교 최초 입사 지난 해 가을에 있었던 금감원의 제3기 공채에서 본교는 모두 6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류양 외에도 법학과의 김철영군, 김신영양, 최홍수군, 경제학과의 김미선양 그리고 경영학과의 권순표군이 류양과 함께 합격한 입사 동기들이다. 이들은 같은 과 학생들의 대다수가 사법고시나, 공인회계사 등 전통적인 진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전공에 대해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금감원이 공채를 실시한 이후, 그녀는 김미선, 김신영양과 함께 여학생으로는 본교 출신 최초로 금감원에 진출하는 영예도 안았다. 때문에 진로에 대한 조언을 바라는 여러 후배들의 '즐거운'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금감원을 생각하고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니에요. 대학원 진학을 꿈꾸다가 낙방의 쓴맛을 보고 나서 지금까지 했던 공부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저는 스스로 정말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제가 입사했으니 누구든지 도전하면 되지 않겠어요?" 참으로 겸허한 조언이다. 경제난 속에 극심한 취업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국내 최고의 금융감독기관에 입사한 류양이 실제로 취업을 위해 50여 곳에 원서를 넣고 단 두 번의 면접 기회를 가졌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한양인, 자부심으로 도전하라 금감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법학 중 한 가지의 전공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1차 서류전형을 통해 선발된 10배수의 응시자들이 2차 필기시험을 치를 자격을 받는다. 필기시험은 영어와 논술 그리고 전공시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면 까다로운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 류양이 털어놓는 비결이란 무엇일까? "점잖은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비교적 내성적일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매우 외향적입니다. 우연히 길에서 한국은행에 다니는 선배를 만났을 때, 그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조언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함도 있지요. 취업을 희망하는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조언을 얻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한양대요? 이 땅에 우리 선배들이 없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되요."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류양은 입사한 직장의 일들이 여성으로서 감내하기에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하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힘겨운 순간이 닥쳤을 때 여성들이 남성보다 쉽게 퇴사하는 경향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분노 반, 격려 반이다. "직장생활에 지쳤을 때, 제발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너무 제한된 사고를 갖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과 전망들을 생각했으면 해요. 또한 높은 점수와 좋은 학점만을 회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당신의 회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자신감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삶에 포기란 없다' 강조하는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일찍부터 유별났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봉사 수강이 불가능한 휴학 기간에도 실무자를 졸라 '세무서 부가가치세 신고업무'에 대한 사회봉사를 하기도 했고, 지난 97년의 대선 때에는 선거감시 봉사활동을 하는 등 한낱 점수와 학점보다 현장에 대한 경험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는, 참으로 고집스런 그녀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온 몸으로 사회 속에 뛰어든 그녀의 모습에서 '인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한다. '대기표'를 뽑아들고 누군가 자신의 번호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이, 그의 삶은 이미 청춘이 아니다.

2002-01 22

[동문]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김재엽 동문

'사랑의 죽음' 등 실존문제 다룬 <페스소나> 로 당선 "시간과 공간은 온통 나의 것… 그래서 행복합니다" 삶의 행위를 관찰하고 그것을 극으로 만들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예술적 감각과 뛰어난 연출력 등에 앞서서 인간 본연에 대해서 진지한 고뇌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16일 발표된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분에서 〈페르소나〉라는 작품으로 당선한 김재엽(대학원 연영과 졸) 동문은 인간 모두가 겪어야 할 '죽음'에 대해 감히 고뇌한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죽음이라는 인간 보편의 주제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구성에 있어서도 '극중 극' 등 연극적 장치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고 평하며 김재엽 동문의 작가와 연출가로서의 발전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김재엽 동문은 현재 극단 '파크' 창단 준비로 분주하다. 첫 공연으로 자신이 쓰고, 연출하는 희곡 〈개그맨과 수상〉을 5월 중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그는 이미 한국극작가협회가 발행하는 잡지 〈한국 연극〉창작극 공모에 당선된 경력이 있다. "학교 다닐 적부터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워낙 글을 좋아했구요. 대학시절 학회 때부터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습니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인문대 앞 벤치에서 곧잘 상상의 나래에 빠지곤 하는 '전형적인' 문학도였다. 그가 연극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연극을 '만남의 장'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미소에 답이 있다. 그의 미소에는 사람들과 얽히고 설켜야만 완성되는 연극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감각과 애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 연극을 관통하는 연출가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인 〈페르소나〉(연극배우의 가면을 뜻함)에도 연출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죽음'이라는 문제와 연극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연출가의 모습에 본인이 투영된 것이 아닌지 호기심어린 질문을 던져보았다. "추상적인 죽음을 연출가는 실존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예술 그 사이에 있어야 하지요. 〈페르소나〉의 주인공 연출가는 추상과 실재 그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것은 제 고민거리이지요. 주인공은 저의 닮은꼴입니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주로 모든 인간의 내면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페르소나〉에서 드러난 '죽음'에 대해서도 그는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추상적인 문제를 연극과 결부시켜 끈질기게 파고들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 닥친 문제에만 급급하려고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우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지요." 그는 앞으로도 사랑, 죽음과 같이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그 속에는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으려는 것이 김재엽 동문의 연극관이다. 그는 연극의 역할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극의 화두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정치적인 것입니다. 저항해야할 목표가 뚜렷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교묘하게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지요. 그러한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포함한 모든 문화행위가 더 많은 고민을 해야합니다. 연극은 재미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그의 굳건한 생각 속에 우리 연극의 앞날을 짊어지고 갈 젊은 연극인의 결의가 보인다. 그의 눈부신 자신감에 슬몃 '행복하세요'라는 멋쩍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학시절 함께 문학을 논하고 연극을 함께 하던 친구들은 자신의 꿈과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 하나같이 묻는 질문이라며 그는 씁쓸하게 미소짓는다. "시간과 공간이 온통 나만의 것입니다. 예, 그래서 행복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순수한 문학청년의 모습과 열정있는 연극인과 사회를 주도해나갈 자신감에 가득찬 젊은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흩날리는 진눈깨비 속에서도 느껴지는 봄의 기운처럼 그의 자신감은 시샘날 정도로 당당하다.

2002-01 15

[학생]한국무용계 긴장시킨 `물 오른 춤꾼`

한국무용가 김신아(무용학과 95) 양 지난해 여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을 지켜본 평론가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다. 평론가들이 우수한 신예 무용가들을 선정, 초청하여 무대에 올리는 위 공연에서 스물 다섯 살, 최연소 나이의 어린 춤꾼이 보여준 열정과 에너지가 모든 관객과 평론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신아를 두고 '이번 공연이 찾아낸 보석 같은 존재'라 호평하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다. 안무작 포함 출연작만 30여편 "당신 신인 맞아?" 가녀린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 반듯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박또박 말을 잇는 그녀를 두고 풋풋함이 감도는 '신예무용수'라 호칭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1995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흰 옷'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편이 넘는 작품들에 출연했던 경력은 물론,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5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한 바 있는 그녀다. 그렇다고 경력상의 이유를 들어 '중견'의 대접을 받기에는 스물 여섯의 나이가 좀 억울하다. "다소 어린 나이에 일찍 안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지도해주신 김운미 교수님의 큰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신아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레슨을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한국무용계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운미 교수의 지도와 함께 남다른 근면함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서울캠퍼스 무용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가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보수적이던 집안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잠시 무용을 접었다가 고교 2년에 춤에 대한 넘치는 '끼'를 결국 이기지 못해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음악만 들으면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추었대요. TV를 봐도 노래하는 가수보다 그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 관심이 있었다니까요." 무릇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누워 있다가도 몸이 욱신거려 벌떡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를 누가 말리랴. 타고난 열정 탓에 결국 춤꾼의 길로 접어든 그녀가 일찍부터 '한양대'로 자신의 입지를 정하고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한국무용의 대가 김운미 교수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던 탓이다. 김신아는 원대로 합격 후부터 지금까지 김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남다른 예술적 광기와 기개 무용계가 김신아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사)한국무용연구회에서 주최한 '신인 안무가전'에서 작품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하며 연기상을 받았다. 그녀는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된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존경하는 선배인 지제욱 동문이 안무한 이 작품에서 김신아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지난 2000년 같은 '신인 안무가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안무한 〈얼음 위의 영혼Ⅰ〉을 내놓으며 안무상을 수상해 안무를 맡기에 다소 어린 나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김신아는 1999년 이후에만 5편의 작품을 창작,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지난 해 있었던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출품작인 〈내가 깊은 곳에서〉는 한국무용계에 '김신아'라는 이름 석 자를 새롭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론가 성기숙은 "폭발하는 끼와 예민한 감각, 도발적 실험을 서슴치 않는 용기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안무의 저력 등 김신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밝히며 그녀를 '한국창착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기대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김신아의 저력은 그녀가 지닌 예술적 광기에 있다. 그녀는 기존의 고답적인 한국무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존의 문법에 적응하기보다는 왜곡과 해체, 굴절을 일삼아 새로운 코드와 기법을 창출해 낸다. 지난해 직접 안무하여 '젊은 무용가전'에 출품한 〈내가 깊은 곳에서〉를 지켜본 성기숙은 이를 두고 "한국춤의 기본원리와 호흡체계가 단단히 녹아있다.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무당적 기질에 몽환적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춤만 추겠습니다" 김신아는 자신의 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성실함을 두번째는 체력을 그리고 세번째는 스승이다. 춤이란 화가처럼 앉아서 어깨품을 팔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적 범주의 예술이 아니다. 몸을 부려 하루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처럼 춤이란 움직이고 뛰어야 '밥값'을 하는 가장 고된 예술의 부류다. 공연이 닥치면 하루 12시간 이상 강행되는 연습과 훈련을 이겨내야 하고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만들어진 몸을 잃지 않기 위해 4시간 이상 꾸준한 연습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 별을 보며 등교해서 저녁 별을 보고 귀가하는 나날이 많았어요. 하루는 밤 늦게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에 언뜻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혀가 축 처져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거에요. 순간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일이라 버틸 수 있었어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수발을 해야했던 시간만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레슨에 빠져 본 적이 없다는 김신아의 근면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녀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김신아가 스스로 토로하는 자신의 또다른 저력은 강인한 체력이다. 그토록 힘겨운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역한 의지와 각오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체력이 좋아 보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 역시 김신아의 체력과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평론가 성기숙은 말한다. "솔로로 20여분 이상을 무대에서 견뎌낸다는 것은 중견무용가로서도 그리 쉽지 않다. 김신아는 20여분 이상을 홀로 춤추고도 언제나 거뜬한 모습이다. 광기서린 그녀의 춤의 에너지가 넘쳐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김신아가 인터뷰 내내 빠뜨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은 스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는 김신아가 밝히는 세 번째 저력이기도 하다. 김신아는 올해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김운미 무용단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사사한 김운미 교수에 대해서는 "어머님 같으신 분이세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엄하시지만 늘 자상하시고 저를 가장 예뻐하세요. 교수님 제자들은 모두 교수님이 자신을 가장 아끼시는 것으로 믿어요."라고 농담 어린 애교를 던진다.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수님의 지도와 주위 동료들의 덕분이라 밝히는 겸손함도 예사롭지 않다. '죽는 그 순간까지 춤만 추겠다' 말하는 그녀의 각오가 섬뜩하다.

2002-01 08

[동문]감동의 '밑그림 그린다`

'출근길 남편의 남루한 양복을 바라보며 한숨짓던 아내, 새 양복을 꼭 사주리라 아침마다 중얼거리던 것을 그만 어린 아들이 듣고 말았다. 아버지의 생일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어린 아들은 막상 아버지의 생일날, 3천 8백원의 동전이 든 봉투를 들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양복 한 벌 4천원'이라는 세탁소의 광고문구를 보고 용돈을 모았으나 2백원이 부족했던 탓이다.' 프라임타임대 3분40초 애니메이션, 공중파의 체온을 느껴 봐!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7시 45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TV동화 행복한 세상'(이하 'TV동화')의 지난 방영분 내용이다. 'TV동화'는 소시민의 가슴 시린 사연과 일상의 모습들을 잔잔한 나레이션과 그림으로 옮겨 놓은 3분 40초짜리 애니메이션이다. 프라임타임의 웬만한 광고 송출 시간보다 짧은 프로그램이기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휙 하니 놓치기 일쑤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미리 시계를 맞춰 놓고 TV 앞에 대기하는 '매니아'들도 적지 않다. 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박인식 동문의 말이다. "시청률이 6, 7퍼센트 또는 8퍼센트까지를 왔다 갔다 해요. 프라임타임에 이런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이 놀랍지만 워낙 방송이 짧아서 시청자들이 놓치기 쉽죠. 그래도 인터넷에서 기존 방송된 프로그램을 재시청한 클릭수가 만 회를 넘기도 할 만큼 열렬한 애청자들도 있어요. 사실, 저녁 8시 45분에 방송되던 것이 한 시간 앞당겨졌는데 느낀 점이 뭐냐하면, '아줌마들은 이길 수 없다'(일일드라마의 주시청층) 이거죠." 경제위기,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위로를 주고 싶었다 대학시절에 대해 박 감독은 영화에 대해 신열을 앓던 시간으로 회상한다. 전공과 무관하게 연극영화학과에서 살다시피 하며 충무로를 꿈꾸었고, 실제로 영화판에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지독한 현장 스탭의 시절도 있었다. 지난 1993년, KBS에 입사할 때까지만도 자신은 '큐싸인'에 움직이고 '큐싸인'에 죽을 것으로 알았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연극영화학과에 가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뭔가. "당연히 가고 싶었죠.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그래서 영화와 가장 근접한 단어들을 찾다보니 '방송'이란 말이 들어 있는 신방과가 있잖아요.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들어왔는데 주로 연영과의 수업들을 많이 들었죠. 지금도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영화 공부를 위해 훌훌 떠나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나가도 해요." 박 동문은 '디지털 미술관'을 연출하다 지난해 4월부터 본 프로그램의 제작을 맡았다. 'TV동화'는 그가 직접 구상하고 기획하여 KBS 사내 공모전에 제출했던 아이디어다. 보통 1천여편이 넘는 공모안이 제출되고 그 중, 20여 남짓한 안이 채택되지만 실제 최종 방송되는 것은 10여개 미만. 1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TV동화 행복한 세상'이 전파를 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경제 위기다 뭐다 해서,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한 줄기 휴식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기획의도지요.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을 틀을 생각해 보니 애니메이션이 가장 적절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화적 베이스에 수채화 스틸로 다분히 실험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게다가 5분물이면 최소 제작비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생각했지요. 한 마디로 '감동은 비싸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이런 겁니다." 공중파를 정화하는 5분의 시간 시청자들의 호응뿐만 아니라 실제로 'TV동화'에 대한 시민단체와 방송가의 반응은 뜨겁다. 'TV동화'는 지난해 'KBS 봄 개편 프로그램평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경실련과 한국 시청자연대회의에 의해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해 상반기 'PSI지수 1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각종 신문과 방송 비평가들도 'TV'동화'에 대해 일관된 호평이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영상의 홍수 속에서 큰 반향 일으킨 소박한 그림', '작열하는 태양아래 듣는 파도소리 같은 프로그램' 등 본 프로그램에 던져진 많은 찬사는 좋은 방송이란 한낱 '퍼센티지'로 계량되지 않는 성질의 것임을 잘 입증한다. "모두가 좋은 프로그램이라 인정하지만, 역시 어려운 점은 '제작비'의 문제입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30분물 1회분 제작비가 억대를 호가할 만큼 만화는 고비용의 프로그램입니다. 경영진은 'TV동화'가 일반 5분물 프로그램보다 10배의 예산을 쓰고 있다 말합니다. 그러나 동일분량 대비, 'TV동화'는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비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사실 방송사도 어려우니까, 예산이 늘기는 차지하고 앞으로 줄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TV동화'가 지닌 독특한 풋풋함은 전문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아닌 아마추어 화가들에 의해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탓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젊은 화가들이 한 명 혹은 두 명씩 팀을 이루어 한 편, 한 편을 제작한다. 현재 40여 팀들이 3분 40초짜리 감동을 위해 작업 중이다. 박 동문은 'TV동화'의 제작 기술을 '포인트 애니메이션'(point animation)이라 설명한다. 회화적 배경에 움직이는 피사체를 중심으로 천천히 컷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최근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어떻게 하면 실사와 같은 매끄러움과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를 꿈꿀 때, 박 동문은 '그림'이 스스로가 '그림'임을 숨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욱 따뜻해질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TV동화' 인터넷 사이트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눈물겨운 소감과 새로운 사연의 제보가 줄을 잇는다. 짧은 프로그램인 탓에 기존 방영분을 인터넷으로 다시 시청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청자들에 의해 제보된 사연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채화적 배경에다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미지, 여기에 이금희 아나운서의 나레이션이 더빙되어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 4개월. 작은 예산으로 40여개의 아마추어 팀을 관리하며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는 박 동문의 비명은 그래도 즐겁다. "앞으로는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모르죠, 영화공부를 위해 또 훌쩍 떠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벌써 방송에 몸 담은지 10년이 다 되었고, 이제는 방송이 지닌 장점과 나름의 매력도 이해합니다. 취업을 앞둔 후배들이 어렵다구요? '시련은 있으되 실패는 없다'는 상투적인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 쉬우면 재미가 없잖습니까? 박인식은 누구 1987년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후 줄곧 영화에만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부터 충무로를 전전하며 영화판의 허드렛일을 자청했다. 1993년, 모 영화감독의 권유로 KBS 공채에 응시, 카메라맨으로 입사한다. KBS 2TV '디지털 미술관'을 제작하다 사내 프로그램 공모전에 기획을 출안, 당선되어 지난해 4월부터 자신이 직접 구상한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남의 것을 평할 줄만 알고 창작할 줄 모르는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에게 불만이 많다. 일을 좋아해서 아직 미혼이다.

2002-01 08

[학생]`지성이면 감천` 장애우 삼수끝 법대 합격

시각장애 이유로 교대 입학 거부당한 김훈태 군 사회 편견 바로잡는 판사되고자 법대로 진로 선회 "신체적 불이익은 노력 여하에 따라 나를 발전시키는 자극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오른쪽 눈만으로는 한 시간 이상 책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책을 놓아야 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회마저 박탈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고자 판사의 꿈을 위해 절치부심의 자세로 노력했습니다." '양쪽 눈 교정시력 0.4 미만인 자는 불합격 처리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지난 2000년 대입특차모집에 합격하고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S교대 입학을 거부당했던 장애 학생이 2002년 정시모집에서 본교 법대에 높은 점수로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이와 같은 휴먼스토리의 주인공은 후천성 시각장애 6급인 김훈태 군. 김 군과 가족은 지난 99년말 합격을 취소한 S교대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 2000년도 입학 자격을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한번 입은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 법. 학교에 정을 두지 못한 김 군은 바로 휴학 신청을 한 뒤 "장애인 입장에서 법정 소송을 벌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며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인해 2001학년도 수능시험은 포기한 김 군은 2년 동안 대학입시에 매진하며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데 '대입 삼수'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 군은 어릴 때 백내장 수술이 잘못돼 중학교 시절부터 왼쪽 눈이 서서히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소망해 오던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0년 S교대 특차지원에서 합격의 영광을 손에 쥐었었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의 아픔을 겪은 그는 "시력을 잃은 것보다 초등교사의 꿈을 잃어버린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며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장애우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앞으로 음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다짐했다. 그는 졸업후 사회적 편견을 바로 잡는 판사가 되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어린 새싹들의 꿈을 키우고자 했던 초등교사에서 법조인으로 삶의 목표를 수정한 김 군은 불우한 사람들의 꿈을 근거없이 꺾어버리는 세상을 바로 잡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김 군이 법학을 공부해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지켜내는 '파수꾼'이 되려는 것이다. "눈이 안 좋아 법학 공부가 쉽지 않겠지만 또 한번 장애인의 인간승리를 이뤄내고 싶다."는 당찬 아들에게 아버지 김종원 씨는 "혼신을 다하는 자세로 늘 배우고 익히려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과거의 어둠이 올 해에는 빛이 되어 더욱 기쁘다. 앞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뜻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격려했다.

2001-12 22
2001-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