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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04

[동문]의료 정보 플랫폼의 새 판을 짜다

평소 당뇨를 앓고 있는 60대의 김한양 씨. 오늘도 새벽 6시에 기상한 그는 웨어러블 메디컬 디바이스(Wearable medical device)를 통해 현재 몸 상태를 체크한다. 잠시 후 그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최근 한 달간의 혈중 포도당 농도 그래프와, 중이염이 의심되니 이비인후과에 방문하라는 안내 메시지가 뜬다. 이윽고 찾아간 집 근처 병원. 전문의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김 씨의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 기록들을 확인하고, 이에 맞는 일대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진료 후 김 씨는 ‘메디토큰’으로 병원비를 결제하고 오늘 생성된 진료 기록은 고스란히 김 씨 휴대폰에 저장된다. ‘맞춤형 의료 서비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영상 의학 전문의로 인턴, 레지던트 수료 후 올해 초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친 이은솔 동문(의학과 03). 소위 잘 나가는 '엄친아'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그가 난데없이 올해 4월 한 의료계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다.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을 의료계에 접목해, ‘병원’ 중심의 폐쇄적인 의료 정보 시스템을 ‘환자’ 중심의 개방적인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것.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불완전한 면이 많아요. 환자 입장에서는 1차 병원에서 받았던 검사를 2,3차 병원에서 다시 받기도 하고, 자신이 지금껏 어떤 진료를 받아왔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죠. 자신의 개인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고요.” ▲이은솔 동문(의학과 03)의 말처럼 '메디블록'을 통해 환자는 불필요한 진료 비용을 감소할 수 있고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슈퍼 그레잇! 이 동문의 말처럼 현재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상당 부분 ‘병원’중심으로 구성돼있다. 환자의 진료 기록은 각기 다른 병원에 분산돼있고, 전문의와의 짧은 진료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병력(病歷)을 전달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동문은 ‘메디블록(Medibloc, 클릭 시 홈페이지로 이동)’을 통해 탈 중앙화된 의료 정보 시스템과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의료 서비스 및 기기로부터 생성된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저장하고 관리해요. 즉 세계 어디서든 통합된 의료 정보를 활용해 일대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죠. 그리고 저희 ‘메디블록’을 이용하는 참여자들은 ‘메디토큰(Medi Token: MED)’이라는 가상 화폐를 통해 서로 거래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료인은 환자의 의료 정보를 기록할 때 ‘메디토큰’을 지급받는다. 또 특정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연구자는 환자에게 ‘메디토큰’을 지급하면 되고, 반대로 환자는 ‘메디토큰’을 통해 유료 서비스 결제가 가능하다. 단, 의료인은 환자의 승인을 받아야만 메디블록 시스템에 의료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데, 현재 해당 사업은 중국계 블록체인 플랫폼인 ‘퀀텀(QTUM)’을 통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27일엔 ‘메디토큰’의 가상화폐공개(ITO: Initial Coin Offering)가 이루어졌으며, ‘메디토큰’ 총 발행량은 100억 개로, 1QTUM당 2000MED를 구입할 수 있다. (2017년 12월 초 기준: 1QTUM= 약 1만5000원) ▲'블록체인'은 공공 거래 장부라고도 불리며 가상 화폐로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기술이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주며,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해 데이터 위조를 막는 방식을 사용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의료와 IT의 결합을 시도하다 그렇다면 이 동문은 언제부터 이렇게 의료계에 IT 기술을 적용하려는 생각을 했을까?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프로그래밍 관련 알바를 많이 했고, 영상 의학을 이용해 AI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했었죠. 나중엔 아산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었는데, 그때도 프로그램 개발이나 의료 데이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동문은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매몰돼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즉 자신의 전문 분야를 어느정도 잘 해내는 상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 “제가 만약 의대 공부나 레지던트 생활을 소홀히 했다면, 저는 아마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됐을 거예요.” ▲(왼쪽 아래) 이은솔 동문과 메디블록의 여러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동문 반대편은 고등학교 동창인 고우균 공동 대표. (출처: 메디블록) 이렇게 지난 1년 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4월 창업에 성공한 이 동문. 그러나 IT 분야는 2-3년 주기로 특정 기업이 빠르게 뜨고 지는 만큼, 비교적 변화 속도가 느린 의료계에 이를 적용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현재 블록체인을 보면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은 있어요. 특히 금융 쪽은 투기가 심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강력히 규제하려고 하죠. 하지만, 이를 의료 분야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면 미래기술로서 큰 장래성이 있기에, 몇몇 관련 부처들은 계속해서 지원하려는 입장입니다.” ▲'메디블록(Medibloc) - 의료경험에 가치를 더하다' 홍보 영상(출처: Youtube) 보안성과 신뢰성,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잡을 것 그렇다면 메디블록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의료 정보 플랫폼이 상용화된 후,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취약점은 없을까. 만약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의료 정보를 유출하거나 조작한다면 이는 해당 시스템의 보안성과 신뢰성을 훼손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동문은 “환자가 원하면 자신의 데이터를 암호화 한 후 서명한 채로 다른 별도의 저장소에 보관할 수 있으며, 본인이 가진 데이터가 진본인지 또는 수정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플랫폼이 운영된다”고 말했다. 즉, 전자 문서로서의 기능과 역할은 차질 없이 수행된다는 것. “핸드폰 어플 출시 시점은 내년 말로 계획하고 있어요. 디자인과 편의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만큼 많은 분들이 애용하길 기대 중입니다.” ▲이은솔 동문은 "향후 5년이나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때를 대비한 공부를 지금부터 조금씩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

2017-11 30

[교수][시선집중] 배터리로부터 해방! 인공근육,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다

전기생체공학부 김선정 교수와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을 주축으로 한 3개국 8개 팀이 인공근육 에너지 하베스터(자연에 버려지는 에너지로 전기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것)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에 대한 성과는 지난 8월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사이언스>에 소개됐다. 김선정 교수는 한 번도 실리기 어려운 <사이언스>에 벌써 네 번째 논문을 게재하는 쾌거를 이뤘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전기생체공학부 김선정 교수 지난한 노고를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 수십 톤이 넘는 자동차를 가뿐히 들어 올리는 영화 속의 아이언맨. 모두 알고 있듯이 괴력의 비밀은 아이언맨 슈트에 있다. 꿈만 같은 일이지만 비단 영화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도 사람의 근육을 배가시키는 인공근육(Artificial Muscles)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적인 전력 공급. 인공근육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움직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구동하려면 배터리를 장착해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를 장착하면 활동 시간이나 동작에 제약이 따른다. 무거운 배터리를 메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로봇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론은 배터리 용량 때문에 30분 이상 비행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도 늘 배터리가 방전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우리는 언제 배터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지난 8월 전기생체공학부 김선정 교수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스스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근육 ‘트위스트론(Twistron) 실’을 개발한 것. 연구 결과는 과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Science)> 8월 25일자에 게재됐다. <사이언스>는 그 주에 게재된 논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논문 한 편을 선정해 홍보용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김 교수의 논문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그 주의 <사이언스> 웹사이트를 장식했다. “논문이 저널에 실리는 것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의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결실을 수확하는 기분이니까요.” 세계 최초 인공근육 에너지 하베스터 개발 김선정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생체근육의 움직임과 기능을 모방하는 인공근육을 연구해왔다. 인공근육은 인간의 근육보다 100배나 뛰어난 구동 성능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나 우주 개발처럼 인간이 작업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로봇이나 인간처럼 섬세한 표정을 짓는 휴머노이드 로봇 등에 적용할 수 있다. 김교수의 연구 주제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세계 수준의 연구자를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에 2006년, 2015년 연이어 선정됐다. 그 결과, 인공근육 신소재 및 인공근육을 구동시키는 연료전지를 개발, 2011년부터 이미 <사이언스>에 세 번이나 실린 바 있다. 네 번째 게재된 이번 논문 또한 그동안 진행해온 인공근육 연구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걷어 올린 우연한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공근육을 움직이려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김 교수는 오랫동안 인간과 같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해왔다. 만약 인공근육이 자체 에너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더 많은 분야 에 활용될 수 있을 터. 그렇게 연구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인공근육 실을 잡아당겼더니 전기 에너지 신호가 포착됐다. 그동안 애타게 찾아왔던 자체 에너지 생산의 단초를 발견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를 상용화하려면 전기 에너지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원리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결국 10년 이상 공동 연구를 진행해온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의 레이 바우만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원리 규명에만 소요한 시간이 2년. 전기화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SOS를 청하다 보니, 3개국 8개 팀이라는 대규모 연구팀으로 발전해 공동 연구를 수행하게 됐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주일간 연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8개 팀이 스카이프 미팅을 했는데 한 번에 3~4시간씩 진행됐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8시에 시작돼 저희 연구팀은 아침 일찍 나와 준비를 해야 했고, 미국 텍사스주와 버지니아주의 연구팀들은 저녁에 시작해 밤늦게까지 진행해야 했습니다. 다들 헌신적으로 연구에 매진했기 때문에 ‘대단히 고맙다(many thanks)’라는 말을 수없이 주고받았죠.” ▲ 김선정 교수는 "인공근육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습니다. 인체 속에 인공근육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의학과 공동 연구를 추진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휴대폰? ▲ 김선정 교수가 개발한 인공근육 트위스트론 실 이미지 많은 이들의 열정을 모아 2년 여의 연구 끝에 드디어 원리를 규명 하던 날, 22명의 연구원들은 기쁨으로 환호했다. 트위스트론 실은 탄소나노튜브를 꼬아서 만든 것인데, 탄소나노튜브는 여섯 개의 탄소로 이루어진 육각형들이 서로 연결돼 관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신소재를 말한다. 탄소나노튜브를 꼬면 가볍고 강한 실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한쪽 방향으로 더 꼬면 고무 밴드나 용수철 같이 탄성을 갖게 된다. 이는 인공근육의 소재로 쓰여 전해질 속에서 수축과 이완, 회전 운동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생산한다. 즉 트위스트론 실을 잡아당기면 전하가 방출(방전)되고, 다시 늘리면 이온이 들어가 충전되는 과정에서 전기가 생성된다. “인공근육 재료인 트위스트론 실을 그대로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번 연구의 핵심은 세계 최초로 전기·화학적 배터리 없이 전기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는 인공근육 실을 개발한 것입니다.” 트위스트론 실은 초당 30회 정도의 속도로 수축·이완할 때 1㎏당 250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태양광 패널 한 개와 맞먹는 전력이다. 실제 트위스트론 실로 꿰맨 티셔츠를 입고 실험한 결과, 호흡 시 가슴이 수축되고 이완됨에 따라 전기적 신호가 검출됐다. 이렇게 반영구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배터리 없이도 장시간 휴대폰이나 드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릉 경포해변에서 트위스트론 실에 풍선을 매달아 바닷물 속에서 실험한 결과, 파도가 칠 때마다 실이 수축·이완하면서 전기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을 입증했다. 앞으로 탄소나노튜브의 가격이 낮아지면 풍력이나 파력(파도의 상하운동 에너지)을 이용한 대량 전기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라 전기생체공학부 중 생체공학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선정 교수. 생체공학이란 어떤 학문일까? “생체공학의 뜻은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Biomedical Engineering)이라는 영문명을 들으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의학과 공학을 융합한 학문으로 인공뼈, 인공심장 같은 인공장기나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분야입니다.” 무병장수 및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인기가 높은 전공 분야다. 그렇기에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생체공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할 것을 당부한다. “먼저 흥미를 끄는 분야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성실하게 이어가 스타트업에 도전해보기를 권합니다.” 학생들을 위한 김선정 교수의 조언에는 평소 김 교수가 중시하는 연구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성실’과 ‘도전’이다. 연구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때문에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성실하게 연구에 임하는 것이 연구자의 기본 자세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인공근육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습니다. 인체 속에 인공근육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의학과 공동 연구를 추진해야 합니다.” 여전히 갈 길이 먼 인공근육 분야. 인공근육 실이 에너지를 생산하게 됐으니 이를 발전시켜 자체 생산된 에너지로 움직이는 일체형 인공근육을 개발하는 것이 김 교수의 다음 목표가 될 것이다. 성실함으로 자분자분 밟아온 지나온 시간이 후배 연구자들에게 모범이 되길 바란다는 김선정 교수는 인공근육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제시하며 도전 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두각 나타내는 한양대 교수들 세계적인 과학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이름을 올리는 한양대 교수들이 늘고 있다. 스스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근육 ‘트위스트론 실’을 개발한 전기생체공학부 김선정 교수의 연구 결과가 <사이언스> 8월호에 게재된 것을 비롯해 물리학과 김은규 교수가 세계 최고 효율을 가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 <사이언스> 6월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5월에는 의학과 공구 교수가 유방암의 유전체를 분석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또 4월에는 이영무 총장의 ‘고온저가습용 연료전지분리막 개발’ 논문이, 1월에는 에너지공학부 선양국·이윤정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 신개념 고효율 리튬공기전지를 개발해 <네이처>에 소개됐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2017-11 30

[학생][꿈꾸는 청춘] 끝없는 공부, 흔들림 없이 차근차근

김태홍 학생에게 2016년은 의미 있는 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학생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출판사 ‘스프링거’에서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스프링거는 과학자 및 의학 관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출판사로, 이곳에서 책을 낸다는 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연히 접한 ‘셰일가스’에 매력을 느껴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 책까지 펴낸 그를 만났다. 글. 노윤영 / 사진. 안홍범 ▲ 김태홍(자원환경공학과 박사과정 14) 학생 셰일가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석탄과 석유 등 전통 화석연료는 오랜 기간 세계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매장된 곳이 한정적인 데다 매장량의 한계도 명백했다. 또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협을 높인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 그 대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0여 년 전부터 전통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떠오른 셰일가스는 모래와 진흙 등이 단단하게 굳어진 퇴적암 지층인 셰일층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말한다. 일반적인 전통 가스와는 다른 암반층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비전통 천연가스라 불린다. 셰일가스가 전통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원환경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태홍 학생은 세계 3대 과학서적 출판사로 불리는 ‘스프링거’에서 책 <셰일가스 저류층의 통합적 이해(Integrative Understanding of Shale Gas Reservoirs)>를 펴내 화제가 됐다. 학생 신분으로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는 건 극히 드문 일. 김태홍 학생은 언제부터 셰일가스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제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게 2012년입니다. 그때 마침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셰일가스 붐이 일었죠. 자원환경공학과 자체가 석유 및 가스 개발을 연구하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매력적인 자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점차 빠져들었어요. 일반적인 천연가스와 다르다는 점, 아직 미개척 분야라서 연구할 것이 많다는 점 등의 여러 요인이 있겠죠. 지금은 결국 제 전공 분야가 됐네요.” 셰일가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화석연료와는 달리 매장 범위가 광범위하다. 중동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중국, 러시아 등 31개국에 매장돼 있는 데다, 매장량도 약 187조 4,000억m³에 이른다. 이는 2011년 세계 천연가스 소비량 기준으로 향후 60년간 쓸 수 있는 막대한 양으로, 덕분에 가격도 대단히 저렴한 편이다. 더불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천연가스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김태홍 학생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돼요. 공부할 분야도, 밝혀내야 할 것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에요." 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까지 최초의 시작은 ‘셰일가스의 물성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 두 편이었다. 김태홍 학생의 논문들은 스프링거의 눈길을 끌었고, 곧 지도교수였던 이근상 교수와 논의 끝에 내용을 확장시켜 단행본을 내기로 결정했다. “교수님이 큰 힘이 됐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셰일가스는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참고할 자료가 마땅치 않았어요.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참고 자료가 많지 않다는 건 오히려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셰일가스 저류층에 대해 이해를 돕는 책으로 콘셉트를 정한 것이 특히 그랬다. 책은 김태홍 학생의 논문이 던진 질문에서 비롯됐다. 셰일가스의 물성은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셰일가스는 무엇일까? 그렇게 질문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책도 모양새를 갖춰갔다. 셰일가스의 메커니즘은 물론 시뮬레이션 모델링을 위한 지식들, 물성 분석 기법 등 다양한 내용을 담기로 결정했다. 연구자들을 위한 고차원의 개념서로 구체적인 방향을 잡고 책을 위한 자료를 찾아 집필에 들어갔다. 셰일가스는 장점만큼이나 우려점도 제기되고 있다. 채굴 방법이 까다로워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데다 채굴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사용돼 지하수 오염이 유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 밖에 여러 단점들이 지적되고 있는데도 셰일가스는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셰일가스가 완벽한 자원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셰일가스 외에 당장 석유와 석탄을 대체할 자원을 찾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근본적으로 더 청정하고 완벽한 신재생에너지가 개발돼 상용화된다면 좋겠지만, 아직 세계의 기술력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셰일가스는 가격도 저렴하고 다양한 곳에 엄청난 양이 매장돼 있어 매력적이죠. 기존의 석탄, 석유에 비해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 역시 그렇고요. 셰일가스에 대한 연구는 물론 이로 인한 우려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함께 병행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봅니다.” 셰일가스는 세계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지만, 연구 및 개발 현황은 미국과 캐나다 같은 나라들이 단연 앞서 있는 실정이다. 까다로운 셰일가스를 채굴하고 다루려면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태홍 학생은 한국이 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기술 선진국들의 기술력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셰일가스 매장량이 많은 북미나 중국 같은 나라에 진출해 사업을 확장시킨다면 국내 자원시장의 전망도 밝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김태홍 학생이 세계적인 출발사 '스프링거'에서 펴낸 책 완벽한 셰일가스 모델링을 꿈꾸며 김태홍 학생은 사실 출판 의뢰를 받기 전까지 스프링거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이근상 교수의 말을 듣고 그 위상을 짐작했을 뿐이다. 학부생 시절부터 그는 자원 개발과 연구에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기보다 학문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열망이 가득했다. 때문에 학과의 전망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않았다. “저희 학과는 특성상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제가 학부생 때는 유가가 10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50달러 정도니 확실히 낮아지긴 했죠. 때문에 걱정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주변 상황이나 유행에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하는 일이에요. 상황이 어찌됐든 꿋꿋하게 포기하지 않고 연구한다면, 언젠가 인정도 받고 스스로 만족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변의 말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한 길만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지난해 펴낸 책은 그 꿋꿋함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그의 목표는 셰일가스를 더 깊고 완벽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졸업을 하면 연구기관에 들어가서 좀 더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현장 데이터를 직접 받아서 실제 우리 세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 “최종 연구 목표는 완벽한 ‘셰일가스 모델’을 만드는 거예요. 셰일가스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메커니즘이 굉장히 많은데, 아직은 그걸 다 구현한 연구 사례가 없는 실정이에요. 완벽한 모델링을 구축한다면, 향후 연구자들이 셰일가스를 연구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생산은 물론 우려 지점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낼 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기술력이나 연구 현황은 아직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차근차근 돌을 쌓아올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돼요.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공부할 분야도, 밝혀내야 할 것 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에요.” 그는 주변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꾸준히 돌을 쌓아올린다. 언젠가는 그 돌이 높이 쌓여 벽을 넘을 것이다. 우리는 그 너머에서 미래를 밝힐 대체 자원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2017-11 30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열정, 아름다운 인생을 요리하는 레시피

인간의 일은 결국 먹고 사는 일이니, 손재주 중 제일 으뜸은 요리 솜씨가 아닐까. 음식을 만드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는 이종임 원장. 지난 43년간 열정을 다했기에 후회도 없다는 이종임 원장의 맛있는 인생 레시피를 들어보자. 글. 박영임 사진. 안홍범 ▲요리연구가·수도요리학원 원장 이종임(식품영양학과 71) 동문 대대로 이어지는 손맛과 입맛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요리연구가라는 한 길을 걸어 온 수도요리학원의 이종임 원장. 그동안 귀하고 값진 음식들을 얼마나 많이 먹어보았을까. 그야말로 안 먹어본 산해진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종임 원장이 제일로 꼽는 음식은 사시사철 한국인의 여염집 밥상 위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된장찌개다. “전 직접 담근 장에 갖은 채소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늘 먹는 음식이고, 속이 가장 편한 음식이니까요.” 열무김치에 쓱쓱 비벼 먹어도 맛있고, 금방 쪄낸 호박잎에 싸먹어도 맛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몸이 부담 없이 받아주는 음식이니, 과연 이종임 원장이 주저 없이 힐링푸드로 꼽을 만한 음식이다. 게다가 이종임 원장에게 된장찌개는 요리 솜씨를 물려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평생 콩밥과 된장찌개를 즐겨 드셨어요. 그래서 94세의 나이에도 병치레 없이 여전히 건강하시죠. 아마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많이 해주셔서 저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종임 원장은 어머니인 하숙정 수도요리학원 초대 원장에게 손맛뿐 아니라 입맛까지 대물림받은 듯하다. 그렇게 우리의 맛은 어머니에게서 어머니, 그리고 또 어머니에게로 이어져 내려왔다. 요리연구가의 숙명과 보람 이종임 원장은 지난 2000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노르웨이의 축하만찬장에서 한식 요리를 선보인 바 있다. 스웨덴에서 시상하는 다른 노벨상과 달리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이 열리는데, 수상 국가를 대표하는 셰프를 초청해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노벨평화상 축하만찬장의 전통이다. 이 귀한 자리에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로 초대받은 이종임 원장은 그동안 갈고닦은 손맛을 유감없이 발휘해 갈채를 받았다. “요리연구가로 일한 지난 40여 년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죠.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어머니 하숙정 요리연구가를 비롯해 ‘요리계의 대모’로 유명한 고 하선정 요리연구가를 이모로 둔 이종임 원장은 요리명가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요리를 접했다. 어머니는 철마다 각종 젓갈과 장, 장아찌를 손수 담갔고, 그때마다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솜씨를 익혔다. 집에서 종종 일본 요리계 인사들을 접대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가 손님상 치르는 것을 거들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게 됐다. 사실 어릴 때는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스튜어디스나 기자를 꿈꿨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당시 척박했던 우리의 식문화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어머니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결국 어머니의 뒤를 잇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가 1965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학원인 수도요리학원을 설립하셨는데, 당시는 먹고 살기도 힘든 때라 돈을 내고 요리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번번한 조리도구는 물론 식재료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죠. 그래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요리강습을 다니셨어요.” 그렇게 요리연구가의 길로 접어든 이종임 원장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81년 MBC <오늘의 요리>라는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되면서부터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컬러TV가 막 도입됐을 때인데, 50%에 육박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의 주부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푸드 스타일링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이종임 원장은 테이블러너, 접시 하나도 직접 골라 음식이 더욱 돋보이도록 연출했다. “컬러 방송이니까 음식이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비주얼을 강조했죠. 그래야 시청자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의 요리>가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 이종임 동문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것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죠.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마음으로 먹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열정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다 그동안 방송, 교육, 출판,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이종임 원장. 그는 현재 (사)대한식문화연구원장과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무슨 일을 하던 열정과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바로 이종임 원장을 요리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한 원천이다. “주어진 일은 철저히 준비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야 희열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기회도 주어지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준비 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는 법이죠.” 처음 요리연구가의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정보를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일본 요리잡지를 구해 하나하나 따라해보며 메뉴를 개발했다. 현재도 건강, 식재료, 영양 등 요리와 관련된 기사라면 스크랩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한 외식을 즐기지는 않지만 외식을 할 때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음식 사진을 수십 장씩 찍고 플레이팅과 식재료 배합을 연구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배우고, 일본에서 푸드 스타일링을 공부했다. 파티 프로듀싱과 와인 소믈리에 전문과정을 밟고, 음식에 맞는 그릇을 직접 빗기 위해 도예도 배웠다. “과거에는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스타일링, 플레이팅 같은 음식의 부가적 가치도 중요해요. 음식 한 접시에 정성과 감동, 힐링과 같은 다양한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요리의 매력이죠.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종임 원장은 45세의 나이에도 서슴지 않고 식품공학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한 교수가 지나는 말로 한 “요리하는 사람 중엔 박사가 없어”라는 말을 듣고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20대 어린 학생들 틈에 끼어 영어학원을 다니고, 입학한 후에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강의를 듣고 실험을 하며 7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예순이 넘어 조리기능장 자격도 취득했다. 요리에 있어서는 최고의 자리에 서길 원하는 이종임 원장의 열정이 맺은 결실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요리 10여 년 전부터 이종임 원장은 단지 혀가 원하는 음식이 아니라, 몸에 좋은 건강한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음식으로 영양을 섭취하잖아요.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죠.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마음으로 먹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종임 원장의 냉장고에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요네즈, 케첩, 굴소스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없다. 가공된 식재료나 화학조미료를 치우고 천연재료를 우려내 맛을 내고 있다. 설탕 대신 매실청이나 유자청을, 인스턴트 간장 대신 직접 간장을 담그는 일은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본래 요리라는 것이 시간과 정성에 다름 아니다. 정성을 다해야 먹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전해져 감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외식이나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인 현대인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요리연구가로서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다. “가공식품에는 식품첨가물이 20~30가지가 들어 있어요. 이것이 우리 몸에 쌓이면 질병을 유발하죠.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입에 당기는 음식만 찾지 말고 한두 가지라도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거나, 외식을 할 때 가급적 건강한 음식을 선택해 먹으면 좋겠어요.” 내년 봄 출간을 목표로 최근 시니어를 위한 건강식 요리책을 준비하고 있는 이종임 원장.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는 요리연구가 이종임 원장의 다음 목표는 우리 몸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2017-11 27

[학생]세상을 바꾸기 위해 쏘아 올린 공(功) (1)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 그 중심에는 대학생들이 있다. 29살에 전신마비가 온 탁용준 화백을 ‘탁화백’으로 지칭해 플랫폼을 구축하고, 20대의 우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마음세탁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회혁신랩 팀원들이 그들이다. 첫 눈이 내리며 유난히 추워지던 날, 열정으로 따듯했던 한양 비즈랩실에서 이유진(경영학부 3) 씨와 윤정아(중어중문학과 4) 씨를 만났다. 꿈이 이끌었던 선택 올해 2학기, 이유진 씨와 윤정아 씨는 경영관 3층에 위치한 한양비즈랩실에서 처음 만났다. 경영대학에서 학기제로 운영 중인 한양비즈랩은 총 7개의 랩으로 구성돼 15학점을 인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소속 인원은 주 5일동안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각자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7개의 랩 중 두 사람이 속한 사회혁신랩은 지도 교수인 신현상 교수(경영학부) 와 네 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팀이다. 현재 2기인 이 씨와 윤 씨는 사회적 기업 CEO의 꿈을 안고 각각 탁화백과 마음세탁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탁용준에서 탁화백까지 29세 신혼여행 도중 사고로 전신마비가 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탁 화백은 같은 병실에 있던 전신마비의 구필(口筆)화가를 만났다. 그를 거울삼아 어렸을 적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고, 그의 신체 중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어깨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00점이 넘는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화가의 입지를 다졌다. 이 씨는 신현상 교수의 추천으로 탁 화백을 만났다. ▲이유진씨를 지난 11월 21일, 한양비즈랩실에서 만났다. 들고 있는 엽서는 탁 화백의 그림으로 직접 제작한 카드다. “탁용준 화백 프로젝트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라는 전제에서 시작했어요. 그 분의 삶과 가치관에 담긴 이야기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탁용준 화백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알리고 관련 제품을 구입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을 브랜딩하는 것이 굉장히 막막했어요. 기업은 이미 브랜드화되어 있고, 즉 인지도가 있잖아요.” 작품은 많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수익성도 좋지 않았던 상황. 그렇게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중 어느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새라 핸드런(Sara Hendren)이라는 뉴욕의 예술가가 정적이었던 장애인 심볼을 역동적으로 바꿨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도 탁화백을 로고화해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 어떨까 생각을 했죠.” ▲알파벳 A를 휠체어에 앉아있는 탁화백으로 형상화했다. 탁화백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탁화백 홈페이지’(사진 클릭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이유진 씨) 그렇게 제작된 로고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활용했고 본교에서 진행된 17 Hearts Festival 행사 때 (관련 기사 보기) 제작 판매한 카드 엽서에도 사용했다. 행사에서는 많은 관심 속에 32만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성과를 이뤘다. 수익 중 일부는 탁 화백의 뜻에 따라 ‘넥슨 푸르메 어린이 재활병원’에 후원했다. “탁용준 화백님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에 빛의 소중함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밝음과 희망을 전달해 주고 싶다고 하셨죠.그 뜻에 따라 화백님의 그림 판매수익금 중 일부를 후원하고 있어요.” “현재는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탁 화백님이 직접 관리하게끔 바탕을 만드는 일이죠. 저는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라서 디자인 수업과 일러스트 수업도 듣고 있어요.” 이들의 최종 목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설립이며, 순수 수익창출보다는 사회적 영향력 창출이 우선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탁! 하면 탁 화백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인, 특히 장애인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해요.” ▲지난 6일 열린 ‘Seventeen Hearts Festival 2017’에서 판매한 카드 엽서 (출처: 이유진 씨) 당신의 마음을 세탁해드립니다 윤정아 씨가 총괄하고 있는 ‘마음세탁소’는 본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20대 초반에 우울증을 겪었어요. 상담센터도 가보고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자꾸 재발해서 문제였죠. 생각을 제어할 수 없으니 치료 후에도 반복되더라고요.” 중어중문학과에 재학하면서 꾸준히 창업에 대한 관심을 뒀던 윤 씨는 부전공인 경영학부 수업에서 신현상 교수를 만났다. 이후 교수의 추천으로 프로젝트 학기제에 참여해 마음세탁소를 시작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구성했어요. 사실 우울증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공감하기 힘들죠. 그래서 일단 혼자 시작했고, 제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됐던 스탠포드 대학 데이비드(David Burns) 교수님의 논문 및 저서에서 착안 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신개념 정신건강 테라피를 제공하는 것이 마음세탁소의 역할이다. 마음 세탁소는 총 세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우울증 치료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비디오 큐레이션이다. 접근성이 용이한 비디오를 만들거나, 테드 강연 등 양질의 영상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마음세탁소의 첫 번째 기능인 '비디오 큐레이션' 갈무리 (출처: 마음세탁소 페이스북 페이지) 이를 발판 삼아 두 번째는 사람들이 자가로 인지 치료를 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제공하는 ‘멘탈 인바디’다. “저는 과학적인 것이 좋아요. 상담 후에도 치료가 되지 않아 우울증이 극심할 때 저는 어떻게든 과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죠. 이때 데이비드 교수님이 쓰신 ‘Feeling Good:: The New Mood Therapy’이라는 책을 봤어요. 인지치료법? 아 이거다 싶었죠.” 마지막은 ‘고민을 공유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우울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대화에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감과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죠.” 윤정아 씨의 따듯한 아이디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SVCA 아시아 소셜벤처 경진대회’에서 아이디어 부문으로 50만원 상당의 상금과 함께 ‘Bright Award’를 수상했다. “지금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천해보는 단계에 있어요. 사업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다면 전문 기술 인력이 필요하겠죠. 이를 위해 영상제작교육, 디지털 마케팅 교육 등 여러 교육을 받고 있어요.” ▲윤정아 씨의 목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우울증을 진단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의 손짓처럼 마음세탁소가 널리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마음세탁소 홈페이지’(사진 클릭하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체인지 메이커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을 널리 알리고 응원할 수 있는 세상, ‘괜찮아’라는 말에 가려진 아픔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나깨나 노력하는 사회혁신랩 팀원들이 원하는 세상이다. 공감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행동에 옮긴 이유진, 윤정아 씨,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변화한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7-11 20

[동문]경찰의 위상과 품격을 높입니다 (1)

각종 영화나 드라마 소재에 빠지지 않는 직업군으로 ‘경찰’을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이 그렇고, 지난해 수사물 드라마로 흥행한 tvN의 ‘시그널’이 그랬다. 일상을 둘러봐도 심심찮게 우리 주변에서 경찰을 접할 수 있다. 보통 경찰하면 각종 범죄와 치안∙수사 업무를 떠올리기 쉽지만, 경찰 조직 내에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서울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 경찰악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박남용 동문(관현악과 96)이 있다. ‘외강내유(外剛內柔): 경찰과 악기의 닮은 꼴’ 한 때 체대생을 꿈꾸며 열심히 운동을 하던 박남용 동문은 평소에 음악도 좋아해 고교 시절 처음으로 트럼펫을 배웠다. 하다 보니 적성에도 잘 맞았고 교내 ‘윈드오케스트라’(현악기를 뺀 관악기와 타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트럼펫은 겉으로 보기엔 강렬해 보여요. 하지만 그 안엔 부드러움과 따뜻한 선율이 녹아 있죠. 그런 점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박남용 동문(관현악과 96)을 지난 17일 성수동에 위치한 동부경찰관 기동대 신관에서 만났다. 마침 박 동문은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매년 11월 19일)' 기념 공연을 끝마치고 돌아왔다. 그 후 한양대 관현악과에 입학한 박 동문에게 의경 입대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가 됐다. 구(舊) 부평 경찰종합학교에서 악대로 군 생활을 하며, 서울에는 직원으로 구성된 ‘경찰악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 시점을 계기로 박 동문은 졸업 후 2004년 경찰의 길을 걷게 됐다. “주변에선 경찰을 한다고 하니 다들 말리는 분위기였어요. 당시는 경찰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도 있었고 졸업 후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게 일반적이었니까요.” 이렇게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현재는 경찰관 19명과 의무경찰 35명으로 구성된 54인조 경찰악대에 속한 박 동문. 홍보담당관실 소속답게 주 업무는 여러 공식 행사에 참가해 경찰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지만, 사회 곳곳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힐링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경찰악대’라고 말하면 아직도 ‘군악대’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만큼 아직 홍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멋있다’고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호응이 좋을 걸 예상해 앙코르곡은 항상 준비해 간답니다(웃음)”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이는 금관 앙상블 현재 박 동문은 경찰악대 내 ‘금관 앙상블’의 리더를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브라스 퀸텟(Brass quintet: 금관 5중주)'을 이뤄 나갈 때가 많지만 행사 규모가 크거나, 공연장 사전 답사 후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도 있기에 '퀸텟'보다는 '앙상블'이라고 소개하는 편이다. "다 같이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손발이 잘 맞는 편이에요. 매년 레퍼토리도 바꾸고 계절에 따라, 연령층에 따라 편곡을 하다 보니 저희만의 특색 있는 곡도 많죠." ▲(정중앙) 박남용 동문(관현악과 96) 이 구로아트밸리에서 서울경찰악대 오케스트라와 '하이든협주곡'을 협연중인 모습이다 (출처: 박남용 동문) 예를 들어 ‘캐러비안의 해적’ OST의 경우 신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세트 드럼’을 한 명 추가하기도 하고, 낙엽 떨어지는 청량한 가을에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하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은 ‘노인복지 회관’에 가면 인기 트로트인 ‘어머나’, ‘네 박자’,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을 편곡해 장내 분위기를 한층 띄우기도 한다고. “초임 때는 잘 몰랐는데 연륜이 쌓이고 리더가 되면서 선곡 순서에도 신경을 쓰게 돼요. 처음에는 분위기 있는 클래식으로 깔다가 중간쯤 분위기를 업 시키고 마무리는 다시 잔잔한 노래로 정리하죠.” ▲지난 7월11일 서울 성심여중에서 서울경찰악대가 진행한 학교폭력예방 음악회. (출처: Youtube) 음악으로 더 가깝고 친근하게 이처럼 박 동문은 ‘경찰악대’를 통해 많은 국민이 경찰에 대해 더 좋은 이미지와 인식을 형성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직까지는 ‘경찰’과 ‘음악’이라는 조합이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실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박 동문은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 경찰 악대’를 운영하며 ‘트럼펫 재능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이전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길거리 공연 같은 경우, 외국인들을 위해 팝송을 편곡하거나 어린이들을 위해 ‘도레미송’ 같은 동요를 준비해 가기도 했다고.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앞으로도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이 같은 박 동문의 꾸준한 노력이라면 ‘걸음새 뜬 소가 천 리를 간다’는 말처럼 더 많은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지 않을지 기대해 본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7-11 19

[동문]마지막 사법시험 합격자 박종현 동문(법학과 92) (2)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를 시작으로 70년간 대한민국의 법조인을 배출했던 사시제도는 59회 사법시험을 끝으로 폐지됐다. 배경에 관계없이 오직 시험 결과만으로 선발하는 희망의 사다리였고, 또 수많은 고시낭인을 양산해 고급 인력을 낭비하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제도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이번 사법시험에서 한양인 7명이 당당히 합격을 거머쥐었다. 그중 최고령 합격자 박종현 동문(법학과 92)을 만났다. 15년의 공부, 포기는 없었다 박종현 동문이 지난 11월 7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59회 사법시험 3차 합격자 명단 55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박 동문은 마지막 사법시험의 최고령 합격자가 됐다. 합격하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20대 끝자락에 뛰어들어, 30대 전부를 보내고, 4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법조인의 꿈을 이뤘다. 우직하게 사법시험 하나만을 목표로 달려온 시간이었다. “우선 꿈을 이뤄서 기쁘죠. 끝내 좋은 결과를 얻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최고령 합격자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어 감사하고요. 요즘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종현 동문(법학과 92)이 "부끄럽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대학 시절에는 뚜렷한 꿈이 없어 사법시험에 큰 뜻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온 20대 후반에서야 ‘전문성’을 갖춘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학과를 나왔으니 법조계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박 동문은 결혼과 함께 2002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에 뛰어 들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와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했다. 식사 시간과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에 몰두했다. 적어도 30분은 매일 운동했다. 사회와 단절되어 학원과 독서실만 오가는 생활이기에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분명 초조할 때도 있었지만 박 동문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이러다 영원히 사회에 못 나가는 건 아닐까 불안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하늘도 언젠가 제 뜻을 이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타고난 긍정적인 마인드 덕에 긴 시간 잘 이겨냈죠.” 또 박 동문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든든한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5년간 한결같이 박 동문을 응원해 준 아내의 공이 컸다. “한 번도 제 공부에 대해 불만이나 비난을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공부에 소홀하면 제 할 일은 공부라며 저를 이끌어 줬습니다. 가족 덕분에 저도 목표를 이룰 수 있었네요.” 길었던 20대의 방황, 끝내 꿈을 찾다 박 동문은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스스로의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남들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미팅도 하고 학회도 하는 딱 평범한 학생. 그런데 공부보다는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 때부터 마음을 잡고 법을 공부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박 동문은 ”종종 장학금도 받았고 주어진 일은 열정적으로 해냈다”며 “단지 스스로 원하는 일이 뭔지 몰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뚜렷한 목표나 꿈을 찾지 못한 채 대학 생활 4년을 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동문의 시작이 남들보다 조금 늦어진 까닭이다. 하지만 한 번 전문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뒤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박종현 동문은 "특유의 유쾌한 성격 덕에 힘든 순간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법시험의 경우 1차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다음 해 1차 시험을 면제 받는다. 2차 시험을 여섯 번 보고나니 12년이 훌쩍 흘렀다. “돌아보니 15년이네요. 처음부터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1차에 합격하면 2년의 기회가 주어지니 포기가 쉽지 않았다.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날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특유의 유쾌함과 확고한 소신이 그를 일으켰다. 박 동문은 오히려 함께 스터디하는 어린 친구들을 독려했다. 탈락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펜을 들었다.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내는 성격 덕분에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 박 동문은 꿈에 그리던 사법연수원 입소만을 앞두고 있다. 다음 해 3월 연수원 입소 전까지 박 동문은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생각해보니, 배낭 여행 한 번을 못 갔어요. 공부하면서 그게 큰 한이 되더라고요. 유럽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예비 법조인으로서 마음가짐을 전했다. "연수원에 입소하면 또 열심히 공부해야죠. 한양의 구성원으로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어요. 지금 이 마음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박종현 동문은 "사랑의 실천을 행하는 법조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사회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7-11 15

[직원][사랑, 36.5°C]기부는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깊은 진심과 같은 것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체육특기생이었고, 그 덕에 3년 동안 학비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그때 받은 혜택은 그녀에게 빚이라기보다는 삶을 나아가게 하는 감사의 동력이었다. 내가 받은 도움의 손길을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건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회인이 되었던 한은순 씨는 그 약속을 실천하며 가족을 이루었고,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금까지 모교이자 직장인 한양대학교에 1,800만 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기부해 왔다. 한은순 씨와 그녀의 뜻을 깊은 동지의식으로 함께해 온 가족들을 함께 만나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한은순(90 경기지도학) 사회과학대학 행정팀 직원 Q. 남편 은희범 씨도 한양대 동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나셨는지요? A. 남편은 학부에서 박사까지 한양대를 다녔습니다. 제가 1학년 때 남편이 3학년으로 복학을 해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내다, 어느 날 제가 할머니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인연이 깊어졌어요. 중학교 다닐 때 할머니가 눈이 잘 안 보이셔서 매일 요강 치우는 일을 했어요. 다른 형제들은 서로 안하려고 한 일인데… 그것 말고도 할머니 세수며 목욕까지 다 제 차지였죠.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남편이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아요. Q. 2007년부터 꾸준히 모교이자 직장인 한양대를 위해 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A. 제가 고등학교 때 육상부 체육특기생이었어요. 한양대에 원서를 내고 꼭 가고 싶어 ‘한양대 입학하고 나중에 직장을 다니면 이 은혜를 꼭 학교에 보답하겠다’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혜택을 받고 다녔는데, 그때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었죠. 1994년 입사하여 교직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2007년부터는 작은 금액부터 기부를 시작해, 해마다 기부액을 조금씩 늘렸습니다. 급여가 오르지 않은 해에도 기부금은 꼭 증액했어요. 그리고 계좌이체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기부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강제성을 만들었죠. Q. 부모의 기부활동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기부를 할 때마다 아이에게도 이야기를 해주시는지요? A. 저희 집 가훈이 ‘감사’, ‘인사’, ‘봉사’입니다. 딸아이에게도 늘 약한 자를 도와주고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무학여고 1학년 때부터 3년 간 제가 감사기도와 함께 아이의 이름으로 한양대에 기부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이를 한양대에 입학시켜 한양대 출신 가족을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지금은 다른 대학 레저스포츠학과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Q. 두 분이 오랫동안 한양대에 기부를 하셨고 다양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셔서 따님에게 자연스럽게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딸아이 얘기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모님이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일부러 봉사활동에 데리고 다녔는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영향 덕인지 대학에 들어가면서 전공하는 체육을 통해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하더군요. 재활치료사가 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 한은순(90 경기지도학) 사회과학대학 행정팀 직원 가족 Q. 기부를 하셨던 방식이 일시납, 정기납, 수시납 등 여러 형태입니다.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함께한대’는 일시납이었는데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일시납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가장 쉽게 기부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정기납인 것 같아요.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특정일에 이체하는 방식이죠. 기부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작은 금액부터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수시납은 한양교회에 감사헌금 형태로 내고 있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학교 홈페이지나 메일에서 기부 관련 캠페인을 보면 입시수당 때 받았던 금액을 모았다가 그때그때 나눠서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Q. 한양대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하시는 다른 기부나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A. 2011년 7월부터는 월드비전을 통해 월 3만 원씩 우간다에 있는 ‘타램오 디오’라는 초등학생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니세프 성동구 성모보호작업장 시설을 매월 정기후원하고 있고요, (사)따뜻한한반도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에서 겨울철에 하는 연탄봉사와 성동구청 주관의 벽화봉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관련해서는 사회과학대학 유학생들과 함께 2016년 11월에 인천 장봉도 혜림원에서 장애인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A. 저는 고액기부자가 아닌 소액기부자입니다.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라 커피값 등을 아껴 여기저기 기부를 하고 있죠. 어떤 형태로든 우리 가족의 도움을 통해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한양인들이 있다면 그것만한 보람이 있을까요? 일단 1만 원이라도 정기납을 통해 시작해 보세요. 기부를 한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우리 딸, 우리 남편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공덕으로 시작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사랑, 36.5°C]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글로벌 한양의 주춧돌이 되길 바라며

젊었을 때 현실보다는 관념과 이상에 치우쳤다는 강봉구 교수는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 자신의 무력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공부에 몰입한 것도 아니었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앞장 서 피켓을 든 기억도 없이 살아온 것이 부채로 남아 언제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고자 백만 원, 이백만 원 시작한 기부가 어느 새 천만 원을 채우는 사이 사회적 채무의식은 보람으로, 한양인의 자부심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강봉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Q. 처음 발전기금을 기부하신 것이 2011년이던데요, 교원으로 재직하시던 시점인지요? A.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연구위원으로 2000년 3월 부임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비정년트랙교원, 2011년 정년트랙교원이 되었으니 어느새 7년째 교수로서 한양대에 몸을 담고 있네요. 신분을 떠나서 한양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얻었으니, 제 기부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Q. 학생 때와 교원이 되었을 때 학교를 보는 시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요? A. 학생은 교육서비스의 수혜자로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교원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학교는 노동과 자기실현의 장이기도 하죠. 그래서 교원이 된 후에는 타대학과의 경쟁이나 글로벌 한양을 실현하기 위한 학교의 위상에 더욱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Q. 교원으로서 그런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의 기부가 정말 절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A. 제 기부내역을 보시면 많은 부분이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한 것입니다. 교원으로서 한양대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반성하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2008년도에 설립자 김연준 박사님께서 작고하셨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제 나이 그때 오십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물 여섯 약관의 나이에 기술공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립을 고민하고 학교를 세우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나이에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이 앞섰을 뿐, 개선을 위한 비전과 실천이 따르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10만 원, 20만 원 작은 금액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큰 금액을 목표로 하면 영영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 작은금액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늦으면 안될 것 같다는 조급함도 한몫했지요. Q. 작은 금액이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흐르니 제법 큰 금액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A. 가족들에게 상의를 하거나 알리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외협력팀에서 보내는 감사편지를 본 아내가 알게 되었죠. 핀잔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당신도 그런 일을 할 줄 아느냐며,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더 크게 기부하라고 한술 더 떠 응원해 주더군요. Q.현재도 매월 급여에서 일정금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계십니다. 일시납이 아닌 정기납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저 역시 봉급생활자입니다.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내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소액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세월의 힘을 입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목표액을 정하고, 그것을 기부할 수 있는 시간안에서 나눠 내는 거죠.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은 기부든 봉사든 습관화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체화되면 그때는 기부가 생활이 될 수 있거든요. Q.교수님의 그런 마음이 한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A. 우리 대학의 가장 큰 지향점이 ‘글로벌 한양’입니다. 글로벌 한양의 주체는 학생들이죠. 학생들의 글로벌 시야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글로벌봉사단이나 해외 연구학습 인프라 조성 등 학생들이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지적으로 성장한 학생들로부터 즉, 새로운 세대로부터의 변화가 글로벌 한양의 실현을 더 앞당길 테니까요. Q.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A. 나이가 들면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 안에는 가진 것, 향유하는 것을 나누고 정리하여 이루어내는 단촐한 삶도 포함되어 있죠. 미국의 경우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자유경쟁의 보장과 법치라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성취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공동체에 대한 감사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거부들은 교육과 대학에 기부합니다. 가장 보람 있는 기부는 모교에 대한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교의 발전을 통해 우리사회의 성숙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소액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한양대를 세계 100대 명문대학에 진입시키는 밑받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문들의 기부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장기모금 캠페인도 있었으면 합니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희망, 100℃] 한양대 의대의 글로벌 비상, 내 원대한 꿈이 되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는 하충식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그러나 그는 그 오랜 꿈을 접었다. 2011년 한양대학교와 의료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학 설립을 위해 마련한 돈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발전에 기부하면서 그의 꿈은 한양대 의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2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약정한후 지금껏 누적 기부액 26억 원을 꾸준히 기부하며, 이제 하충식 이사장의 꿈은 한양대 의과대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새로운 꿈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하충식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한양대 의과대학이 내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다 하충식 이사장은 ‘지방대 의대’ 출신이라는 뿌리 깊은 학력 차별의 꼬리표를 끊기 위해 평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한양대 동문이 아님에도 한양대의 발전을 위해 2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약정했다. 이 돈은 평생의 꿈이었던 의과대학 설립 자금이었다. 요즘은 ‘한양대 의대의 발전이 곧 나의 꿈’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하충식 이사장이 한양대 의과대학을 이처럼 각별하게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향인 경남에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어요. 경남은 의료환경과 교육환경이 제일 열악한 지역으로 손꼽히는데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140억 원을 들여 한 지방대학을 인수해 의과대학 설립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전국에 41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그가 또 설립한다면 42번째 의대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42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충식 이사장은 농담처럼 ‘어느 세월에 최고의 의대로 키우겠느냐’며 차라리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을 발굴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법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 한양대학교 협력병원으로 지정되고,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결심을 굳혔다. 2015년에는 한양대와 의료임상, 교육, 연구협력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병원 이름도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앞으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교수 30여 명을 비롯한 우수한 인력들이 배치될 예정이다. 또한 아시아의 의료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한양대학교 한마음국제의료원’을 신축 중이다. 완공되면 200여 명의 의사가 상주하게 되는데 이는 의과대학 1개가 만들어지는 것과 맞먹는 효과라고 한다. 그러니 한양대 의과대학이 하충식 이사장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가 글로벌 대학으로 비상하는 데 우리 의과대학이 든든한 날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의 기부가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부금과 별도로 매년 2천만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창원사랑 한마음병원 장학기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장학기금은 경남 출신의 한양대 재학생들을 위해 사용된다. 현재 한마음창원병원에는에는 한양대 출신 교수가 여럿 재직 중인데, 이분들 역시 후배들을 위해서 매달 5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여기에 병원에서 좀 더 보태 매년 약정된 금액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충식 이사장은 한양대에만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그가 졸업한 모교에도 매년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있어 이를 모두 포함하면 연평균 20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 ‘부러운’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필요한 사회 “거기 이사장님이 억수로 훌륭하신 분이라예. 창원 사람치고 그 양반 도움 안 받은 사람이 없을낍니더.”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 택시기사가 한 말이었다.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2011년에는 국민이 추천하고 정부가 포상하는 제1회 국민추천포상에 선정되어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는 공로였다. “60~70년대엔 거지가 아니더라도 춘궁기에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 집에 들어오는 사람 빈 그릇으로 보내지 마라, 사람 괄시하면 못 쓴다’고 가르치셨어요.” 이런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턴 시절에도 명절이면 사비를 털어 병원 미화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94년 개원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1년째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과 함께 병원과 주변 거리를 청소하며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장시간 자원봉사 인증을 받은 이력도 있다. 경남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복구입비, 수학여행비 지원금을 매년 4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파도 파도 미담 투성이니 요즘말로 ‘파파미’가 따로 없다. ▲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희망과 감동을 주고 있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 자린고비 하충식 이사장은 자린고비로도 유명하다. 십 수 년 간 조심조심 타던 자동차가 수명을 다해 몇 해 전에는 차를 바꿨다. 이 차도 2,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더 이상은 과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골프는 아예 배우지도 않았고 배드민턴을 좋아한다. 진료를 보는 병원동과 달리 행정동 복도에는 형광등을 반만 켜두어 늘 어두컴컴하다. 이사장실은 물론, 회의실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 2대로 여름을 났다. 뽁뽁이를 유리창에 붙여 냉난방비를 아끼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자린고비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단다. 남을 도울 때는 돈을 물 쓰듯 쓸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기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이 다소 진부하다 생각을 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온 얼굴에 하회탈 같은 웃음주름살이 퍼진 표정으로 기부를 할 때의 행복함이 어떤 건지 대신 말해주었다. “기부나 남을 돕는 행위가 ‘내 주머니 털어서 비우는 것’ 같지만 궁극에는 10배로 채우는 행위입니다. 그간 기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입니다. 사실, 우리 병원의 성장도 기부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한마음창원병원이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병원이기도 하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하충식 이사장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13대를 이어간 경주 최 부잣집 같은 부자를 꿈꾼다. 이웃과 나누고 절제할 줄 아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면 대를 잇는 ‘하 부잣집’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