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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 18

[교수]대기오염 ‘0’을 향한 끝없는 도전

이제는 계절도 가리지 않는 미세먼지에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된 대기오염은 인구급증으로 인한 산업화에서 크게 비롯됐다.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은 산업 현장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오염 물질과 유해 물질을 발생시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생활중심적, 실용적인 조사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김기현 교수(건설환경공학과)를 만났다. 대기오염 관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과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깨끗한 공기에 대한 수요와 욕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김기현 교수는 현 실태에 “미세먼지에 관해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지만, 사실상 먼지의 양은 현재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유해성을 띄고 있어 위험하다고. “자동차에서 나와 공기 중에 산화가 되는 유해가스는 입자의 사이즈가 작아 제거가 어렵고 치명적입니다.” ▲ ‘6월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김기현 교수(건설환경공학과)를 지난 13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꾸준한 연구성과 덕에 뉴스H와 여러 차례 만났다. 현재의 공기청정 기술은 미세먼지 및 유해물질을 80퍼센트 이상 제거 가능하지만 여전히 유해가스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가스 상태로 존재하는 벤젠이나 폼알데하이드 같은 휘발성 유해물질들은 실내에서 고농도로 존재할 경우 암을 일으킬 정도로 해롭다. 강한 휘발성과 낮은 반응성 때문에 일반적인 제거 기술로는 50% 이상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 교수와 연구진은 기존에 계속 해왔던 대기의 오염물질 감지 분야에 대한 연구에 이어,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존 소재가 지닌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소재 연구를 시작했다. 강한 휘발성의 유해한 대기오염물질(VOC)과 악취 성분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금속유기골격체(MOF)와 같은 응용기술을 개발했다. 완성하기까지 꼬박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을 거쳐 나온 이 첨단소재는 크기에 비해 구멍이 많고 표면적이 넓어서, 여러 가지 물질들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양한 휘발성 유해물질을 쉽고 정밀하게 감지, 흡착한다. 기존의 시스템보다 여러가지 변형을 통해 전통적 환경분석기술 등에 적용을 가능하게 해, 다양한 연구성과를 도출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 김기현 교수와 연구진은 공기 정화 및 악취 제거를 비롯한 연구를 진행한다. 이 연구는 의료, 핵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응용된다. 노력의 산물 본 관련 연구를 30년 전부터 꾸준히 해온 김 교수는 스스로 ‘일 중독’이라 말했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학생들이 더욱 열정을 갖고 공부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양대 교수 중 최다 수상자로 기록, 압도적인 연구성과 이력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지금의 성과들을 ‘가을 추수’에 비유했다. 연구에 대한 열정과 여태까지 꾸준한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묵묵히 걸어온 외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또, 사람들이 환경, 대기오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와 관련 진행중인 연구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분야에 대한 확실한 열정과 애정을 갖춘 김 교수. 대기 환경 연구에 한 획을 그을 또다른 소식을 기대해본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6 10 중요기사

[동문]누구나 스마트폰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창작은 이런 지루함에서 탈피하는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작곡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사진 아티스트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구나 스마트폰 사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진작가 방현수(기계공학부 08)씨를 지난 4일 만났다. “저희 전공 수업 중에 ‘열역학’이라는 과목이 있어요. 이 수업을 4번이나 재수강을 했는데, 그래도 F학점을 받았죠.” 방현수 씨(기계공학부 08)는 자신의 대학생활을 방황했던 침체기라 말했다. 전공 공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방씨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다. 과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던 방 씨는 첫 여윳돈으로 카메라를 샀다. ▲ 지난 4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공업센터에서 자신의 대학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점을 설명하고 있는 방현수(기계공학부 08) 씨. “그 당시 정체된 저와 달리 매일 성장하는 동기들의 소식을 들었죠.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 방 씨를 치유해 준 것은 카메라였다. 소소한 집안의 사물부터 집밖 풍경을 찍다 보니 자신에게도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으로 자신감을 얻은 방 씨는 복학을 결심했고, 당시 기계과 내 사진 동아리 '빛담'(현재는 공대 소속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했다. 다음해 11월에는 방송사 tvN에서 주최하는 ‘위시캠핑 포토스타’ 프로그램에 나가 2위를 차지했다. 사진작가로서 커리어를 쌓던 중 Frip(야외 엑티비티 플랫폼)에서 사진 강연 요청을 받았다. 카메라에서 위로를 받았던 방 씨이기에, 어떻게하면 이 감동을 청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 밤낮없이 고민했다. 방법은 '스마트폰 사진 강연'이었다. 고가의 사진 장비 대신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정하는 법을 알려주자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에도 계속해 강연 요청이 이어졌고, 방 씨는 이 분야에서 창업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스마트폰 사진에 대한 강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1인 기업을 설립하게 됐다. ▲ 방 씨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방현수 씨 본인 제공) ▲ 방 씨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방현수 씨 본인 제공) “사진을 찍으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덜하게 나올 때가 많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장비로,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방 씨는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전공 공부가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이 많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그 고민의 과정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민하고 방황했던 덕분에 안 맞는 일은 확실하게 찾았죠. 그렇게 계속 고민하다보면 결국에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 김가은 기자 kimgaeun98@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6 09

[동문]'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동문(체육 77)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중심에 한양인이 있었다. 바로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그 주인공. 박 동문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이하 U-23)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베트남은 올해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AFC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동남아시아 국가가 결승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 동문의 이야기를 담았다. 악바리의 드리블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세며 모진 사람. 박 동문의 별명은 ‘악바리’였다. 늦은 시작탓에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니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1학년 2학기 때부터 고등학교 축구팀에 들어갔죠. 운동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따라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노력했습니다.” 박 동문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한양대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 럭키 금성 선수 시절 박항서 동문(체육학과 77)이 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제공) 박 동문은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고(故) 최은택 교수(체육학과)님과 고(故) 배기면 교수(체육학과)님의 가르침으로 선수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박 동문은 한양대 졸업 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얼마 있지 않아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전역하고 럭키 금성 황소(현 FC 서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해 맹활약했다. 1985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86년에는 주장으로 선임됐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5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박 동문은 후배 선수를 키우고 싶었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은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일찍 선수 생활을 그만 두는 것도 아쉬웠죠. 하지만 빨리 지도자로 자리 잡을 수 있어 후회하지 않습니다.” 1989년부터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의 트레이너로 활동했다. LG 치타스의 코치를 거쳐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지난 기사 보기 - 월드컵 4강 신화 일군 `특급 참모`) ▲ 박항서 동문이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훈련하고 있다. (베트남 축구협회 제공) 시간이 흐르며 월드컵 열기가 식듯, 박 동문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2015년 12월에는 상주 상무 감독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7개월 전에는 3부 리그인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었다. 젊은 지도자들이 계속 배출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박 동문에게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선수와 지도자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지식과 철학을 쏟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축구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후배 감독들에게도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박 동문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AFC 주최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3급 노동 훈장을 받았다. 노동, 창의성, 국가건설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3급이 가장 높다. 불과 작년만 해도 밀려난 지도자였던 박 동문. 지금은 박항서 열풍을 일으키며 자신의 업적을 새로 쌓고 있다. ▲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박항서 동문이 ‘사부의 한마디’를 말하고 있다. (SBS 제공) 끝으로 박 동문은 한양인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전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베트남 선수들에게도 했던 말이다. 박 동문 역시 선수와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많이 넘어졌고, 힘든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 숙이지 않고 묵묵히 달린 결과 끝내 베트남의 별이 됐다. “한양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사세요. 최선을 다했으면 당당해도 됩니다. 결과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2018-06 04

[동문]춤을 통해 그가 말하는 세상

무용은 추상적이고, 정형화되지 않는다.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에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너무 많은 느낌과 생각을 은유적으로 실체화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은은하면서 강력하기도 한 춤은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한다고 김성용 동문(무용학 박사과정)은 말한다. 1997년 만 20세 최연소로 제27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 수상. 이어서 2000년에 일본으로 넘어가 개인작으로 무대를 선보이더니, 2년 뒤 한국인 최초로 나고야 국제 현대무용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일본을 포함, 세계를 주목시켰다. 지난해 12월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안무자로 취임한 무용인 김성용 동문이다. ▲ 1976년생, 43세의 나이의 젊은 리더십을 갖춘 김성용 동문(무용학 박사과정) (김 동문 제공) 어린 시절 주변 친구들이 과학자, 선생님을 꿈으로 이야기 할 적에도 김성용 동문은 안무가를 꿈꿨다. 그것도 대구 무용단의 안무감독이라는 구체적인 꿈을 그렸다. 김 동문은 10대 시절부터 몸으로 활동하는 것을 곧잘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연기를 추천했다. 당시 대구에는 연기를 배울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북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남자 무용수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한양대 무용학과에 입학해 2000년에 학사 과정을 마친 김 동문은 무용학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어가고 있다. 부임 후 첫 데뷔작 ‘군중’과 그 이후 김 동문은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을 때에도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무용단 데뷔작으로는 <군중>을 기획했다. 김 동문이 대구시민들과 첫 조우한 작품이다. <군중>은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을 독창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인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모두에게 상처가 존재한다는 다소 어둡지만 희망적인 내용이다. 이 작품으로 김 동문은 지난 3월 13~14일 양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정기공연을 마무리지었다. ▲ 작품 <Moving Violence Episode 1&2>의 공연 모습. (김성용 동문 제공) 김 동문은 “순수 예술가들은 '작품의 깊이'와 '대중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그것을 극복하고 합의점을 찾아 표현을 멈추지 않는다. 관객이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고, 일상에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동문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길 희망한다. 관객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무대에 담아내 대중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용수로서의 삶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차세대 독보적인 현대무용가로서 김 동문은 8월 29일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받아 신작 발표를 준비중이다. 10여 명의 무용수들과 투어공연을 할 예정이다.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9월 베트남 호치민 오페라하우스 무대와 11월 미국 플로리다 던컨시어터 공연 등을 준비하며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 무대 위 김성용 동문의 모습. 흡인력 있는 눈빛과 연기로 몰입을 고조시킨다. (김 동문 제공) 무대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잠재돼 있는 무언가를 찾게 해주고 싶다는 김 동문.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과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그 안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 말로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무용 예술의 가치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2018-06 03 중요기사

[교수]큰 새가 먼 길을 가듯이

무역(貿易). 서로 바꾸다. 옛부터 많은 학자들은 국가간 거래를 고민했다. 절대우위에 따른 자유무역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Smith), 비교우위를 통해 양국 상호 이익이 가능하다고 말한 데이비드 리카르도(Ricardo), 상호수요이론을 제시한 존 스튜어트 밀(Mill)까지. 거래야말로 우리 생활에 없어선 안 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꿈을 수출하는 곳. 코트라 (이하 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올 2월까지 사장을 지낸 김재홍 특훈교수(정책과학대학)를 만났다. 관료의 길 김 교수는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한양대 행정학과를 다니며 관료의 꿈을 키웠다. “중고교 시절부터 법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행정학과가 법대에 있었죠. 법학보다는 행정학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영역을 배운다는 점이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다가왔다는 김재홍 교수. 그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대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4년 간의 준비 끝에 시험에 합격했다. ▲ 김재홍 특훈교수(정책과학대학)를 지난달 30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자신의 인생 경험을 이야기하는 김 교수. 김 교수는 2013년 3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지냈다. 1차관은 기획, 산업, 무역, 인사 업무 등을 관장한다. 김 교수는 원래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를 희망했다. “상공부는 국가의 상공정책을 수립하고 총괄하는 곳입니다. 경제지식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론보다는 실물경제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자리라 한 번에 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법제처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7년 후 부처교류로 상공부에 전입했다. KOTRA에서 3년 김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KOTRA 사장직에 지원했다. “마음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퇴직 후 공기업이나 관련 기관에 재취업하는 고위 공무원을 이르는 말) 방지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을 때였어요.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했죠. 자칫 여론의 질타를 맞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주변의 적극적인 권유로 김 교수는 코트라 사장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다른 기관과 협업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끝내 김 교수는 관피아 논란을 잠재우고 KOTRA 사장에 임명됐다. ▲ KOTRA 사장 시절의 김재홍 교수(앞줄 왼쪽 두 번째). 2017년 9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글로벌파트너링 사업(GP 아시아 2017)’ 국내 참가업체 쇼케이스를 둘러보고 있다. (코트라 제공) KOTRA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기관이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수출 주체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구조는 외부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한중FTA를 활용해 중국 자본유치에 힘쓰기도 했다. 대중국 투자가 2014년 11.8억 달러에서 2015년에 19.8억달러로 늘었다. 김 교수는 재직 중 수출 부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구를 22바퀴 돌았다. 3년 임기를 마쳤을 무렵, 무역 1조 달러를 회복했다. 더 크게 더 멀리 31년 반 동안의 공직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정부 정책은 불특정 다수가 이해관계자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넓은 만큼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쉽지않다.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원리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융통성 없는 집행이라 느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직자로서 국익을 위해 부끄럽지 않게 일한 것으로 위로합니다.” ▲ 인터뷰를 마친 김재홍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붕정만리 기불탁속(鵬程萬里 飢不啄粟)’. ‘큰 새는 먼 길을 날아가는 도중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좁쌀은 쪼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 교수의 인생철학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이 해 준 말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한양대 후배들이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을 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마세요. 멀리 보고 높은 뜻을 품고 크게 행동하세요. 당장은 손해가 되더라도 결국 성공하는 인생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5 23 중요기사

[동문]여행 사진작가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

이정현 작가의 세계 여행 사진전 <ESSE>가 지난 4월 15일 막을 내렸다. 해방촌에서 첫 사진전을 가진 뒤 두 번째 전시다. 29살에 7만 원으로 세계여행을 나서 여행 작가로 돌아온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을 만났다. 지난 20일 일요일, 남대문 근처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모교에서 온 연락이라 더 반갑다며 밝게 웃는 이정현(영미언어문화학과 09) 동문. 이 씨는 23살에 중국에서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한국에 와 한양대 ERICA캠퍼스에 편입했다. 생활비 때문에 영어 강사 일을 시작한 그는 경제적인 여유를 경험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돈을 잃었고, 군 전역 후에는 고작 150만 원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5년 동안 일해서 번 돈을 갑자기 잃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영어강사로 번 돈을 잃은 거니 영어강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요.” 이 씨는 '도피처'로 여행을 생각했다. 이정현 동문의 세계여행 사진전 <ESSE>에 실린 작품들. (이정현 동문 제공) 첫 여행지였던 중국의 비자 발급비와 비행기 값을 빼니 이 씨에게 남은 것은 고작 7만원과 손에 쥔 카메라가 전부였다. 사실 이 씨는 군 생활 내내 사진병보다 자주 촬영 현장에 불릴 만큼 사진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제대 후에도 이 씨는 사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처음 1년은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 줬다. 돈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그의 각오 때문이다. 대신 사람들은 고마운 마음에 십시일반으로 그를 후원했다. 그렇게 여행 동안 받은 후원금만 1500만 원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유스호스텔 스태프로 일하면서 손님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해 주는 작업을 했다. 그가 찍어준 스냅사진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씨는 확신했다. “돈 때문에 영어 강사를 했는데 돈보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게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돈이 아닌 인생의 본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고요.” 고민 끝에 이 씨는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남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이 고민했던 인생의 본질을 찾은 것이다. 이정현 동문은 자신이 찍어준 사진에 기뻐하는 여행객들의 얼굴을 보고 다짐한다. (이정현 동문 제공) 그렇게 이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회까지 열었다. 그는 왜 전시 제목을 ‘ESSE’로 정했을까? ESSE는 영어 단어 Essence의 어원이다. 라틴어로 ‘존재’라는 뜻이다.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라는 뜻이 담겨있어요. 결국 무소유, 집착하지 않는 삶이죠.” 이 씨는 요즘 웨딩 저널리즘 사진을 찍고 있다. 저널리즘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사진이다. 사진가의 지시에 따라 찍는 콘셉트 사진과는 반대다. “저널리즘 사진은 피사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이에요. 전시회도 그렇지만,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여행 작가로서의 삶도 여전하다. 이 씨는 다음 프로젝트인 ‘한국을 걷다’를 계획 중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지역을 한 달에 한 번씩 출사하는 내용이다. “사진을 찍을 때 프레임 안에 꼭 넣어야 할 것만 담아요. 인생도 같은 맥락이에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죠.” 도피로 시작한 654일간의 여행은 그에게 삶의 목적을 알려줬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사진작가로서 그의 여행은 이제 막 반점을 찍었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5 21 중요기사

[동문]세계 무대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성악은 마라톤보다 더 마라톤처럼 길게 봐야 해요.”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은 지침 없이 긴 '마라톤'을 달려왔다. 국내 국립오페라단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최근 뉴욕으로까지 진출한 신 동문은 국제 무대를 자유롭게 누볐다. 그리고 지난 달 23일, 신 동문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뉴욕 메트)에 정식 데뷔했다.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데뷔한 신 동문은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주역인 로미오역을 맡게 됐다. 무겁지만 영광스러운 자리 지난달 23일 뉴욕 메트에서 신 동문은 40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열창했다.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끝낸 영광스러운 무대였습니다.” 베이스 연광철 씨, 베이스바리톤 차정철 씨도 신 동문과 함께 한인 성악가로 무대에 올랐다. 동양인으로서 처음 로미오역을 맡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전례에 없던 일일 뿐더러 메트 무대가 동양인에게 인색하기 때문이다. “열명 중에 동양인이 둘만 돼도 ‘왜 이렇게 많냐’는 얘기가 나와요. 아직까지 동양인이 무대에 올라가는 비율은 많지 않아요.” 뉴욕 메트 또한 처음에는 비슷한 반응을 내보였다. 뉴욕 메트의 스태프들은 모두 신 동문을 추천했지만, 극장장은 조금 더 유명한 백인 테너를 캐스팅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 자리에 당당히 오른 신 동문을 향한 객석과 현지 언론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지난 달 23일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를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에서 주인공 로미오 역을 맡았다. 사진은 에일린 페리즈(줄리엣 역) 과의 호흡을 맞추는 모습. (신상근 동문 제공) 국제 무대의 베테랑 뉴욕 메트의 서기까지의 과정은 길었다. 신 동문은 한양대를 졸업한 뒤 밀라노 라스칼라 아카데미(Accademia della Scala),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Mozarteum), 그리고 빈의 콘서바토리에서 공부를 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무대에 섰고, 독일로 바로 넘어갔다. 독일에서는 도르트문트국립극장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데뷔를 했고, 뮌스터오페라하우스와 칼스루에 극장, 그리고 슈트트가르트국립극장에서 ‘리골레토’, ‘가면 무도회’, 그리고 ‘라트라비아타’ 등에 출연했다.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가 독일 칼스루에 극장에서 활동 할 때 나왔던 '가면 무도회' 작품 포스터. (신상근 동문 제공) 주 무대가 유럽이었던 만큼 신 동문은 가족, 선배, 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국에서 혼자 무대를 하게 되면 많이 외로워요. 이번 뉴욕 메트에서는 운이 좋게도 한국인 성악가가 3명이나 있어서 같이 밥을 먹거나 얘기했지만, 유럽에서는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공연 후 먹던 치맥이 그리웠어요.”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관객들의 힘찬 박수세례였다. 주로 주역을 맡았던 신 동문은 커튼콜 때 항상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앞 차례보다 열정적으로 박수를 친 관객들에게 ‘뭔가를 주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독일 칼스루에 극장에서 하노버 극장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공연을 했을 때, 극장장이 저를 향해 삼폐인과 함께 박수를 보냈어요. 그 때 관객들이 가지 말라고 했던 게 기억이 많이 남네요.”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오른쪽)이 '까르멘'을 공연하는 모습. (신상근 동문 제공) 완성도에서 갈리는 성악 성악은 한끝 차이로 실력이 나뉜다고 한다. 신 동문에 의하면, 많은 한국인 성악가들의 기술은 완벽에 가깝지만, 국제 무대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이 부족하다. “언어의 뉘앙스를 본인이 느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언어 공부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합니다. 문법이 맞느냐 보다는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나라 언어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신 동문은 현지 사람보다 더 현지 사람처럼 얘기할 줄 알아야 국제 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무대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신 동문. 더욱 큰 무대를 꿈꾸기 보다, 질 높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텍스트의 정확한 전달과 디테일에 신경을 쓰겠다는 말이다. 신 동문에게 성악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악의 대가 프랑코 코렐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니까 계속 찾아봐야겠죠?”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의 프로필 사진. (신상근 동문 제공) 글/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2018-05 14

[교수]“국경없이 어디로든, 과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가는거죠.”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시골 마을. 이 마을에 사는 소년들은 생존을 위한 물을 긷느라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이 마을에 필요한 기술은 과연 현대사회의 스마트 기술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최근 국제개발과 구호의 화두다. 현지에서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기술이라는 뜻 위에 '사람을 위한 가치'가 더해졌다. 국내에서 적정기술 개발과 보급에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가 힘쓰고 있다. 우리대학 김용수 교수(원자력공학과)가 신임 회장으로 함께한다. 세상을 바꾸는 적정기술 지난 2009년 설립된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는 가난한 지역사회에 방문해 과학기술로 문제해결을 돕는 국제교류단체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가 집중하고 있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다. 개발도상국의 현지 인프라 수준을 고려한‘적정기술’을 개발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봉사를 수행한다. 적정기술은 해당 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환경적 상황을 고려해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이다. ▲ 지난 10일 교내 카페에서 김용수 교수(원자력공학과)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6일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달 6일 우리대학 김용수 교수(원자력공학과)가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제4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에너지가 부족한 지역에 풍력발전기를 개발해 세워주거나, 수급이 좋지 않은 지역에 정수기술을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 김 교수가 생각하는 세상을 바꾸는 적정기술이다. 그는 고도의 과학이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각 지역의 수준에 따라 적정한 기술을 알려주고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개개인의 삶의 현장에 맞춰야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현지인들이 개개인의 삶의 질을 스스로 개선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김 교수는 신임 회장으로 큰 포부를 밝혔다. "기존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자 합니다.” 현장중심의 봉사활동으로 직영을 더욱 넓히고, 각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더 큰 세상에 공헌하고자 한다. 우리대학에서 개최할 제9회 적정기술 국제 컨퍼런스에는 전 UN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을 초청해 기조 발언을 부탁했다. 또 앞으로 조직 개편을 통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있다. ▲ 적정기술 제품 중 잘 알려진 큐드럼(Q-drum). 큐드럼은 물을 긷기 위해 먼길을 다니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고달픔을 해소했다. 이처럼 현지인에 맞춰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적정기술의 목표다. (출처: 큐드럼 홈페이지) 교내에서 캄보디아까지 그의 손길이 닿다 김 교수는 우리 대학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과대학장까지 지낸 국내에서 명망 높은 원전해체 전문가다. 10년 전 자신이 가진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김 교수는 적정기술을 접했다. 이에 매료된 김 교수는 전공을 살려 에너지 시스템구축 개발에 힘을 쏟았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던 과학기술자들이 모여서 힘을 합쳤죠. 필요에 따라 전공 이외의 공부까지 추가로 해야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나눔의 길. 그는 교내에 있던 사회봉사단을 '함께한대'로 분리해 운영하며 교내에 사랑의 실천을 알렸다. 지난 2015년, 김 교수와 함께한대는 캄보디아에서 공학교육 기반구축사업을 수행했다. 이번 7월에도 캄보디아에 갈 예정이다. “캄보디아 봉사를 함께한 학생들이 돌아와서 자체적으로 적정기술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우리 대학에 교수부터 학생까지 적정기술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적정기술 문화를 유지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실천 "우리 대학 학생들이 가진 얼이 있어요. 사랑의 실천을 이해하고 행하는 사람은 삶의 질이 다르다는 걸 꼭 알아뒀음 해요.” 김 교수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사랑의 실천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이 된 것도 모두 사랑의 실천 덕분이라며 인터뷰 내내 모든 공헌을 학교에 돌렸다. 자신에게 집중되기보다 우리 대학이 이런 일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면 한다며 겸손을 잊지 않았다. ▲ 김용수 교수가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에서 보여줄 ‘사랑의 실천’ 행보를 기대한다. 김 교수는 실제 교내에서 ‘사랑의 실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틈만 나면 주변 교수들에게 함께 적정기술을 연구하자고 권유한다. 원전 해체 연구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연구라며 시작했다. 늘 바쁘게 움직이는 김 교수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봉사 한번과 기술 하나에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온 세상이 바보라고 놀려도 저는 제가 줄 영향력을 믿습니다.” 그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그의 정신에, 전한 손길 하나에 움직이고 있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듯하다.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5 14

[동문]그림과 노래로 마음을 치유합니다

마음이 쉽게 병드는 사회. 온정을 말하기엔 모두에게 차갑고 정신 없는 현실.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떨까. 최근 성인과 마찬가지로 소아 청소년에게도 우울증을 동반한 정서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동 청소년기에는 반드시 정상적인 환경과 심리적 지원이 있어야한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치료 역시 동반돼야 한다. 통상적으로 심리치료는 지면과 상담사와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힐링을 선사하는 이가 있다. 따뜻한 미소를 지닌 김지인(아동심리치료 박사과정) 씨를 만났다. 예술로 다루는 심리 상담장소에서 비트박스가 들린다. 그림을 그리고, 색깔 모레로 성을 쌓는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심리를 치료하는 과정의 일부다. 매뉴얼이 있지만 우선순위는 내담자기에, 치료 매체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치료는 상담이론을 기반으로 언어치료와 CBT(인지행동치료)를 포함한 다각적인 기법을 이용한다. 음악, 그림, 영상, 클레이와 같이, 보고 느끼며 직접 창조할 수 있는 매체를 적극 사용한다.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치료자는 이를 분석해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현재 굿네이버스(NGO)에서 아동을 상대로 심리치료에 힘쓰고 있는 김지인 동문은 ‘예술’치료사라고 불린다. 예술치료는 자신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아동에게 효과적이다. 또한 예술이라는 매체는 아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과 감성을 함께 끌어낼 수 있다. ‘내담자 중심’, ‘해결중심치료’는 상담이론 중 그가 치료 시 중시하는 두 가지 이론이다. 비슷한 아이여도 치료자의 역량과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단과 치료방법은 그에따라 달라진다. 이 때문에 내담자의 성향과 양육환경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어, 미술과 음악, 혹은 약물이 필요로 하는 경우가 각각 다르기에 내담자에 맞춰,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중점적으로 진행한다. ▲김지인(아동심리치료 박사과정) 씨를 지난 11일 오후 서울캠퍼스 HIT관 양민용라운지에서 만났다. 예술치료사로 새로운 시작 심리학의 길에 들어서기 전, 김 씨는 예술과 관련이 깊었다. 음악이 좋아 악기를 다뤄 공연을 하고 작곡을 배웠다. 음악을 하는 와중에도 항상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심리학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관련 정보도, 자신도 없었던 그녀는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9년, 남편과 함께 네팔에 교육봉사를 갔다. “현지 한인들과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죠.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환경이 열악했죠.” 네팔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본격적으로 심리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2012년도에 귀국한 뒤, 심리치료교육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전공을 살려 음악치료를 시작했다. 우리대학의 석사 과정을 통해 미술을 집중적으로 배우며 폭을 넓혔다. 작품을 통해 화가나 작가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공부하며 직접 미술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부딪혀 음악에 이어 미술을 또 한번 심리에 연결시켰다. 타인의 마음을 여는 일과 그 가치 그렇게 시작한 치료자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상담할 때 마음이 너무 안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기도 해요. 잘 때까지 해결이 안되는 감정도 생깁니다.” 공과사를 구분해도 다른 직업에 비해 소모되는 감정이 엄청났다. 단순히 전문적인 훈련에 의한 반복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도해서 가르치는 선생님과 상담자는 다릅니다. 먼저 들어주는게 우선이 되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에 바로 수정하기보다, 행동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녀는 내담자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리고 인내심과 공감능력을 상담사의 자질로 꼽았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돌아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극적이어서 말을 못하던 아이가 먼저 그녀에게 대화를 청하고, 분리불안장애가 있던 엄마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다. “센터에서 이제 치료를 종결을 해도 된다 할 때 초반부터의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가요. 아이 뿐 아니라 부모님도 함께 변화합니다. 그렇게 좋아져서 나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 한국예술치료사협회에서 주최한 예술심리치료 강의 중인 김지인 씨의 모습이다. (김지인 씨 제공) 이어서 심리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말했다.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자신과 아이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나라에서 심리치료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예전에는 자격이 극소수였지만,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우처(정부에서 지원하는 비용)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방문을 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움, 그리고 ‘사랑의 실천’ 그녀의 삶은 예술처럼 다채로웠다. 음악, 작곡, 공연 기획, 해외봉사, 그리고 심리학.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움직이게 하고 치료자의 길까지 이끌었을까. “배워서 남주자는 말이 있잖아요. 제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계속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게 이왕이면 잘 배워서 더 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현재 활동하는 굿네이버스 이전에 여러 상담소와 공공기관, 학교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 베풂을 실천한 그녀는 배움이 자신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대학의 이념이 나눔의 실천, 사랑의 실천이잖아요, 혼자만 잘사는 거보다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사랑의 실천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김 동문의 다음 꿈은 NGO를 설립해, 마음이 맞는 전문인들과 함께 세계 어디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쉽게 접근하는 것이다. 또, 개인 연구실을 만들어 계속 심리학 연구를 하고싶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거동이 불편해져도 앉아서, 또 누워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그녀는 희망적이고 따뜻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 김지인 씨는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쫓으라"고 강조하여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5 09 중요기사

[동문]런웨이를 한국으로 물들이다

몇 년간 무채색이 주를 이룬 런웨이에선 보기 힘들었던, 다채로운 색감의 향연. 한때 비주류에 속했던 여겨졌던 키치룩(패턴이 독특하고 개성있는 스타일링, 믹스매치룩)으로 20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디자이너가 있다. “패션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의상에 녹여야 해요.” 누구보다 개성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는 setsetset의 대표 장윤경 동문(주얼리 패션디자인학과12)을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밴쿠버의 무대에 서다 지난해 9월 18~24일 열렸던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VANCOUVER FASHION WEEK S/S 2017). 그곳에 한국적인 영상과 음악이 흐르고, 잠시 후 파스텔톤의 의상을 입고 양쪽으로 머리를 땋은 동양모델이 나타났다. 런칭 한지 단 1년만에 밴쿠버 무대에 선 여성복 브랜드 setsetset의 모델이다. 한정된 디자인의 여성복들과 자국 브랜드 사이에서, 동양 문화를 모티브로 한 신진 브랜드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언젠간 인정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 동문은 현 트렌드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방향성이 뚜렷했고, 자신 있었다. ▲ 지난 6일 디자이너 브랜드 setsetset의 대표 장윤경 동문(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 12)을 장지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맨 처음에 연락 받고 사기인 줄 알았어요.(웃음) 곧바로 두 달간 쇼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장윤경 동문이 당시 상황을 잠시 회상했다. “자금과 인맥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브랜드를 계속 키우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시점에 초청 연락이 왔고, 브랜드를 크게 알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하루가 다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디자이너 브랜드들. 그 대부분이 들쑥날쑥한 매출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패션시장의 현실. 그 속에서 돌파구를 고민하던 장 동문에게 초청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2017s/s 밴쿠버 패션위크에서 성공적으로 쇼를 펼쳤고, 이후 2017s/s, 2018f/w 컬렉션까지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브랜드는 위기를 넘어 더 성장할 수 있었다. ▲2018f/w 밴쿠버 패션위크 무대 위. 모델들이 줄지어 피날레 워킹 중이다. (출처: 장윤경 동문 페이스북 갈무리) 한국문화를 뻔하지 않게 담은 디자인 그녀의 브랜드가 해외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원단과 독특한 실루엣이다. 독특할 수 밖에 없는 건 의상만이 아니라 원단의 패턴까지 직접 디자인하기 때문. 장 동문은 학과 개편 전, 섬유디자인과로 입학해 텍스타일 디자인(원단의 문양 및 자수 디자인, 직물설계 포함)을 먼저 배웠다. 이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모든 컬렉션 의상을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 고유의 패턴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패턴으로 선정하는 아이템은 다양하다. 복주머니, 사물놀이, 쪽지 같은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 이 모든 것을 실루엣(옷의 전체적인 윤곽)에 담았다. “setsetset은 다른 시각으로 본 한국문화를 옷으로 디자인 합니다. ‘한국문화’하면 사람들 인식엔 어딘가 떨쳐버릴 수 없는 촌스러운 느낌과 고유색감이 있어요. 그 느낌을 텍스타일 디자인으로 희석시키고, 실루엣에 쉽고 재치 있게 담아냅니다.” 그녀의 디자인은 어느 브랜드보다 솔직하고 가감없이 표현한다. “주제를 크게 잡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느끼고 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요. 때문에 재미있게 디자인 합니다.” 현재 그녀는 8월에 있을 다음 컬렉션 아이템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디자이너들과 함께 한글 캘리그라피(글자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기술)를 연구하고 있다. 이전에 한글을 아이템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글자 형태와 디자인에 새로운 변화를 줄 계획이다. “한국문화를 누가 제일 잘 표현하냐는 질문에 제 이름이나 브랜드의 이름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서울 패션위크를 지나, 도쿄와 런던의 패션위크까지 2년 안에 모두 마치는게 목표입니다.” ▲(왼쪽부터) 2017s/s에서 복주머니 모양을 한 의상의 실루엣, 사물놀이를 모티브로 한 패턴의 치마다.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점이 눈에 띈다. 브랜드가 완성되기까지 시작 당시의 setsetset은 지금처럼 뚜렷한 정체성을 갖추지 못했다. 생소한 콘셉트와 디자인에 대한 외면이 걱정됐기 때문. 초반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디자인을 섞어 시도했고, 가격도 조절했다. 점차 고객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수익이 생겼지만, 원치 않은 타협 속에서 아쉬움은 항상 있었다. 장 동문은 밴쿠버 컬렉션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계기로 현재는 setsetset 고유의 브랜드를 고집하려 한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도 결국엔 개인사업자일 뿐, 처음의 신념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브랜드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만일 그 돈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운영하려고 하면 결국 돈을 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죠. 그렇지만, 내 속에 있는 정체성과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를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야 해요. 흔들리면 안됩니다.” 대중이 원하는 디자인대신 본인의 선택으로 성과를 내기는 쉽지않다. 그렇지만 setsetset은 획일화된 패션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보란듯이 커가고 있다. “먼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난 뒤,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빨리 현실에 타협하지 마세요. 아무것이 없어도 부딪혀보고, 그 속에서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든 기회 속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장 동문의 말이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