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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11

[학생]시각 장애인도 자유로이 책 읽을 수 있도록

시각 장애인은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자를 읽는다. 이는 그들이 점자화 혹은 음성화 된 도서만 읽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필연적으로 도서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수 있는 비율은 겨우 5%를 웃도는 실정이다. 대다수의 시각 장애인들은 높은 독서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 셈이다. 신체의 불편이 곧 정보소외, 교육부재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네 명의 대학생들이 손 내밀었다. "모두가 자유롭게 책 읽는 세상을 꿈꾼다"는 휴즈(Hues) 팀의 이야기다. 책, 귀로 읽습니다 ▲사진은 마이리스를 착용한 모습 (출처: 키뉴스) ‘마이리스(Miris: Memorable Iirs)’는 책을 읽어주는 시각 장애인용 보조 기기다. 마이리스를 안면에 착용한 채 책을 읽으면 기기에 내장된 모듈이 문자를 즉각적으로 인식해 음성으로 송출한다. 문자를 귀로 읽게 되는 셈. 마이리스는 올해 초 개발에 돌입해 현재 프로토타입까지 제작됐으나, 완성품 출시까지는 아직 여러 단계가 남아있다. 하지만 마이리스가 상용화 될 경우 단순히 시각 장애인의 독서를 넘어, 그들의 인쇄정보 접근성과 문자정보 수용력 역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기술력과 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마이리스가 네 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개발됐다는 사실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마이리스는 지난 7월 개발팀 휴즈(Hues)가 ‘한양-SK 청년비상 창업경진대회’에서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베일을 벗었다. 위 대회는 SK그룹에서 시행하는 ‘청년비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SK그룹과 대학이 협력해 학생 창업의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한양대는 지난 2015년부터 주관기관으로 선정됨에 따라 경진대회를 개최해왔다. 나아가,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아이템 개발, 전문가 멘토링, 시제품 출시와 소셜벤처 사업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휴즈의 팀원들은 “마이리스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가의 조언 및 개발 비용 확보를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개최된 한양-SK청년비상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휴즈팀 (출처:키뉴스) 마이리스의 개발은 신정아(정보시스템학과 3)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점자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시각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신 씨는 그들의 열악한 독서 환경을 보며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하나의 감각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수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들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점자보다는 음성을 제공할 경우 시각 장애인들이 더욱 쉽게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신 씨는 마이리스 개발을 위해 이미 친분이 있던 학생 개발자 김기태(한국외대), 김보운(국민대) 씨와 의기투합했고, 기획 및 발표를 맡을 성영재(경영학과 4) 씨를 섭외했다. 그렇게 세 명의 개발자와 한 명의 기획자로 올해 초 휴즈가 결성됐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빛깔을 제시하고파 ‘문자를 읽어준다’는 것이 얼핏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은 무척 까다롭고 정교한 기술력을 요구한다. 실제로 마이리스는 세 가지 기술력의 집합으로 탄생했다. 문자를 인식하고(영상처리 기술), 분석해(OCR 기술), 음성화(TTS 기술)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 “무료 오픈 소스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고, 기술 개발 자체는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죠. 학생이기에 자본금이 넉넉하지도 않고, 수요 자체가 적은 제품이니까 투자도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경진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신정아(정보시스템학과 3) 씨와 성영재(경영학부 4) 씨가 마이리스의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술 개발 외에 팀원들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제품 테스트’ 과정이었다. 대상이 명확한 제품 특성상 마이리스의 테스트는 실제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테스터 모집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팀원들이 “혹시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웠다고. 하지만 팀원들은 우리대학에 공문 발송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으로 서울 시내 여러 시각장애 복지관을 정식 섭외할 수 있었다. 이후 휴즈 팀원들은 여러 차례 시각 장애인들과 만남을 갖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실질적인 조언을 구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이겨내고 팀원들이 힘을 합친 끝에 마이리스는 현재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휴즈 팀원들은 입을 모아 “마이리스가 상용화 된다 해도 이윤을 추구할 생각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팀명 휴즈의 뜻은 빛깔(hue)이에요. 시각 장애인분들께 작은 빛깔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신체적 결함으로 교육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이윤은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죠.”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를 꿈꿨던 신정아 씨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장래희망이 하나 더 늘었다. “무언가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는 확고합니다. 다만 이번 마이리스 개발을 통해 앱이 아니라 실제 제품 개발에도 흥미가 생겼어요.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 개발하든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편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공학도가 되고 싶습니다.” 마케팅 전문가를 희망하는 성영재 씨 역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기술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IT 혹은 통신 기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끝으로 두 사람은 “어떤 업(業)을 갖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전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손 내밀어 함께하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두 사람은 "어떤 업을 갖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9 04 중요기사

[동문]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되고파

재즈 음악은 즉흥성과 유연함이 매력이다. 보컬은 악보에 적힌 박자와 음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그루브와 감성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채워 나간다. 그래서 재즈에는 노래하는 이의 개성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 있는 재즈의 특성. 그러나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 97)은 그것을 재즈의 매력으로 손꼽는다. 따듯한 노랫말과 몽환적인 보이스로 풍성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재즈 보컬리스트 조정희 동문을 만났다. 늦깎이 음악인, 재즈를 만나다 조정희 동문은 재즈 보컬리스트다. 지난 2011년 재즈 프로젝트 밴드 ‘박근쌀롱’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며 국내 재즈씬(Scene)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녀는 ‘3월의 토끼’라는 밴드를 결성해 재즈 보컬로 본격 데뷔했다. 그 밖에도 다수의 개인 앨범을 발표했으며 ‘엔젤아이즈’, ‘굿와이프’ 등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며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그녀만의 입지를 굳혀왔다. 조 동문의 음악을 논할 때 밴드 '3월의 토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재즈 프로젝트 밴드 '3월의 토끼'로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이 때 작업한 세 편의 앨범은 재즈 음악계에 보컬 조정희를 알리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3월의 토끼'라는 귀여운 이름에는 사실 그녀의 음악적 철학이 담겨 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잖아요. 이처럼 많은 분들이 저희를 통해 재즈 음악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 지은 이름이에요. 아마 이 때부터 대중들과 재즈로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인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과 97) 재밌는 점은 그녀가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부 시절 조 동문은 그저 음악을 좋아하던 국문학도였다. 대학 생활은 즐거웠고, 학과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졸업을 목전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불현듯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조 동문은 졸업 후 뒤늦은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개인 레슨을 받으며 기본기를 다졌고 맨몸으로 무대에 올랐다. 비교적 늦은 시작인만큼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며 실력을 쌓았다. “젊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 좋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잊혔으니까요.”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 보컬리스트로 데뷔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음악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황의 시간이었다. 대중가요부터 팝, 메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의 방황을 끝낸 것이 바로 재즈였다. 재즈를 만난 후 그녀는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늘 존재했지만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녀의 음악을 찾는 이들도 점점 많아져 갔다. 재즈,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 되길 어느덧 15년 차 음악인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국어국문학과 출신답게 최근에는 윤동주 시인의 동시에 재즈 선율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지원한 창작 동요제에서는 결선 진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앨범 작업 역시 진행 중이다. 그녀는 이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들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음악적 계획도 덧붙였다. ▲지난 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정희 동문이 재즈 대중화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래서 그녀는 설명이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재즈는 어렵고 낯선 장르인 것 같아 늘 안타까워요. 과거에는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하는 재즈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재즈가 됐으면 해요.” 음악 안에서 가슴 뛸 것 조 동문은 현재 우리대학 실용음악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그녀는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전하는데 주력한다. 오디션을 위한 테크닉보다는 노래하는 이의 감성이 담긴 진짜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는 그녀. "퍽퍽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인의 꿈을 잃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무척 대견하다"는 조 동문은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들을 향해 “소신을 잃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조정희 동문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소신껏 좋아하는 음악을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9 04 중요기사

[학생]타고난 스토리텔링으로 공감 이끄는 '강백수' (1)

두 개의 이름을 가진 아티스트가 있다. 강민구(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씨는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쓸 땐 본명 ‘강민구’,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낼 땐 가수 ‘강백수’가 된다. 시인과 가수를 넘나드는 강 씨의 노래는 가사가 일품이다. 때론 찌질함이나 쓸쓸함을, 때론 벅차오르는 감정을 진솔하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삼겹살에 소주만 있어도 행복한데’라며 노래부르는 시인, 강 씨를 만났다. 시인, 혹은 글 쓰는 가수 강 씨는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의 창작 분야는 다양하다. 시, 산문, 에세이, 노래 등 글이 들어가는 많은 것이 강 씨의 창작 영역이다. 처음 사람들 앞에 드러낸 모습은 시인. 학부 시절인 2008년 ‘시와 세계’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고등학교 때 ‘여고축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꾐을 시작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해 2010년 ‘강백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강민구(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씨는 '강백수'라는 예명의 가수로 활동 중이다. (출처: 강민구 동문) ‘시인 강민구’가 ‘강백수’란 예명을 가진 건 약간의 부담감이 작용했다. “처음 노래를 낼 때만 해도 조금은 보수적인 문단에서 ‘음악한다’는 점을 어떻게 볼지 부담됐어요. 이젠 의미없는 걱정이지만요(웃음).” 그럼에도 여전히 음악은 ‘강백수’로, 시와 산문 등의 창작은 ‘강민구’라는 본명을 사용한다. 이름을 통해 두 자신을 분리시키는 셈. 그래서인지 강 씨는 시를 쓸 때 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가사를 쓸 때는 대중들의 반응을 보는 편이죠. 그렇지만 시는 오롯이 제가 기준이 돼서 씁니다.” 기준이 철저해서 일까, 강 씨는 등단한 이래 수많은 시를 써왔지만, 아직 시집은 내지 못했다. “써둔 시는 많아요. 문예지에도 계속 발표하고 엮기만 해도 몇 권은 나올 테지만, 아무래도 욕심이 나네요. 현재도 50~60편을 선정해둔 다음, 새로 괜찮은 시를 쓸 때마다 목록에 넣고 기존 것을 빼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죠.” 가수로서, ‘강백수’로서 현재 대중이 인식하는 강 씨는 ‘강백수’다. 강백수의 노래는 무척 매력적이다. 뭣보다 들었을 때 공감이 간다. 강 씨의 이야기인데, 듣다 보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그의 이야기 속에 ‘보편적인 우리네 이야기’도 담긴다. 다음은 1집 <서툰 말> 수록곡 ‘타임머신’(2013)의 가사. #강백수 - 타임머신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 나가던 삼십 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아버지 육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차라리 잠실쪽에 아파트나 판교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13년에 육십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너무 힘들어 하고 있죠 남들처럼 용돈 한 푼 못드리는 아들 놈은 힘 내시란 말도 못해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 학교 때 공부는 좀 잘하겠지만 전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거에요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삼십 대의 우리 엄마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 보낸 우리들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 학교 때 공부는 좀 잘하겠지만 전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거에요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 해야지 강 씨는 술 마신 날 들어간 집에서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고 가사를 썼다. 쓸쓸한 그 모습에서 ‘지난 날들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상상을 했다. “'타임머신'의 이야기는 저희 집 얘기지만, IMF 등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해요. 흘러간 기억들이 우리 집안, 우리 가정으로 녹아들었을 때 사람들에게 와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강 씨의 스토리텔링은 자신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보고 느낀 것도 노래가 된다. 작년 낸 앨범 <설은>의 수록곡 ‘오피스’(2016)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마음이 잘 담겨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이 그립고 / 퇴근하자마자 출근이 두렵고 / 그렇다고 그만 둘 용기는 없는데 (오피스, 2016) 너무나도 익숙한 지명을 제목으로 한 ‘왕십리’(2016)에는 술 마시러 간 왕십리에서 신입생를 보며 과거의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의 젊음이 부럽다던 선배들 그들도 그땐 스물 한 두 살 / (중략) / 졸업한 선배들 말끔한 양복 입고 가끔 술 사주러 올때면 / 왜 그리 외로운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야 나도 알겠구나 /내가 그들 나이가 됐구나 / 저들도 나처럼 (왕십리, 2013) ▲강민구 씨의 창작 영역은 다양하다. <사축일기>(2015)는 강 씨가 직장인들을 취재해 그들의 애환을 담은 책이다. 계속 글 쓰고파 '쓰는 사람' 강 씨는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그의 쓰기는 어느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돌아올 때면 그날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요. 그 다음 날 일어나서 보는 거죠.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정리하면서요. 그러고 결정하죠. 이건 산문으로 써야겠다, 이건 시로, 이건 노래가사로.” 박사과정을 밟게 된 것도 쓰기에 대한 욕구가 컸다. “학부 시절 성실하지만은 않았어요.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정작 난 시를 잘 모르구나 싶었죠. 그래서 더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본인의 노래 ‘하헌재 때문이다’를 통해 현재 인생에서 예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을 원망도 하지만, 강 씨는 스스로 “어쨌든 글 쓰는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힘들때 들을 노래가 필요하면 ‘강백수’를, 삶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면 ‘강민구’를 찾자. 그의 얘기가 쏠쏠한 감동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른다. ▲현재는 '강백수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선보이는 강민구 씨(왼쪽에서 세번째). "환갑 때까지 창작과 공연을 지속하겠다"는 바람이 한결같기를 바란다. (출처: 강민구 씨)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08 28

[동문]성실함이 만든 특별한 바둑 인생

가로, 세로 19줄의 정방형 세계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두뇌 싸움, 바둑. 정수현 동문(영어영문학과 76)은 삶의 대부분을 바둑과 함께했다. 정 동문의 성실함은 그의 커리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1기 프로신왕전 우승,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 준우승'이란 수상 경력을 기본으로 바둑 관련 4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최초의 바둑학 교수’ 타이틀은 정 동문의 바둑인생을 대변한다. 바둑을 향한 꿈을 꾸다 정 동문은 고등학생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껴 책을 보며 공부했고, 나중에 실력이 늘자 프로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일본에서 활약한 기성(棋聖) 우칭위안(吳淸源) 9단이었습니다. 창의적인 발상과 발군의 기량을 가진 우칭위안 9단의 기보를 많이 연구했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지만, 당시 제도가 중단되어 반년동안 정 동문 혼자 연구생을 하기도 했다. "저는 주로 책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고, 그래서 바둑도 좀 이론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정 동문은 주니어 기사들이 출전하는 타이틀전인 제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하면서 바둑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게 힘든 상대인 강훈 6단과 결승에서 만났죠. 끈질긴 스타일의 강훈 6단에게는 상대 전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둬서 2대1로 승리를 거두고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선 잇달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제가 빨리 두는 바둑에 좀 능한 편입니다. 대학생 때 시합을 빨리 하고 강의에 참석하려다 보니 빨리 두는 습관이 생겼죠. KBS바둑왕전, SBS바둑최강전 모두 속기전인데, 결승에 올랐다가 이창호 9단에게 두 번 다 고배를 마셔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한양대 학부시절엔 프로기사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바빴다. 대학생 때 후배와 ‘한양기우회’라는 바둑모임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대학바둑모임의 이상적인 모델로 인정 받고있다. “시합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1년 평균 시합바둑을 30판에서 40판 정도를 뒀어요. 프로기사들은 연습으로 바둑을 두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둔 바둑을 연구,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바둑연구회를 몇 개 만들어 소집단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쓰곤 했죠." 후배와 바둑모임을 만들자고 상의를 한 후 벽보를 붙였다. 노천극장에서 학생들이 모여 기우회를 조직했고 바둑동아리 방에서 바둑을 두고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을 했다고. “나중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바둑특강도 열기도 했죠.“ ▲현재 정수현 동문은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의 해설자를 맡고 있다. (출처: 세계일보) 바둑이라면 뭐든지 OK 정 동문은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바둑 읽는 CEO’, ‘현대바둑의 이해’ 등 40여 권의 책을 쓸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처음에 쓰게 된 계기는 미국의 바둑행사에 갔을 때 한 교포가 제발 영어로 된 바둑책을 하나라도 써서 보내달라고 한 것 때문이었죠." 일본에서 나온 책만 있으니 한국 교포로서 좀 아쉽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이 발동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 출판사에서 요청해 계속 저술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정 동문은 바둑학과가 생기기 전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7년에는 별명에 불과했던 바둑학 교수에 실제로 오른다. 프로기사 활동 중 최초로 바둑학과가 설립된 명지대 측으로부터 바둑학 교수직을 제의 받은 것. 최초의 바둑학 교수가 된 정 동문은 20년 가까이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프로기사회와 한국바둑학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다. “최초로 바둑학과 교수가 되어 국제바둑학 학술대회를 열고 바둑학회를 조직했어요.” 이밖에도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 등의 해설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바둑방송에서는 한 판을 한 시간 정도 방영할 경우 바둑도 그 정도의 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다. 너무 일찍 끝나거나 너무 오래 가면 방송편집이나 해설 모두 힘이 든다고. “가끔 시합바둑이 30분만에 끝나버려 나머지 시간을 해설로 메우려고 땀을 흘리기도 합니다(웃음).” 바둑계에서 정 동문의 왕성한 활동은 유명하다. 프로기사를 거쳐 바둑 학계, 나아가 해설자까지 인생 전반을 바둑에 바친 셈이다. ▲정수현 동문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바둑경영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이투뉴스) 성실함이 만든 바둑 인생 정 동문의 꾸준한 바둑 경력의 원동력은 성실함이다. 그의 좌우명도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불성무물(不誠無物)'.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할 때 보람이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성을 다해 하다 보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게 되거든요.” 그에게 바둑은 만병통치약이다. "저는 좋아하는 바둑을 직업으로 가졌고, 바둑학을 연구하여 새로운 바둑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학생들에게 종종 ‘바둑은 만병통치약(panacea)인가?’라는 강의를 합니다. 바둑이 인간생활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죠.“ 정 동문은 바둑에 대해 '대단히 흥미진진하면서도 그 안에 삶의 교훈과 지혜가 담긴 문화적 이기'라고 표현했다. “근래에는 바둑이 글로벌 마인드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바둑을 알면 세계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으니 교양으로 바둑을 배우는 것도 추천해요.” ▲불성무물(不誠無物: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음)의 좌우명처럼 정수현 동문에겐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 (출처: 이코노믹 리뷰)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2017-08 23

[동문][한양피플] 30년을 뛰어넘어 마주한 끝7학번 선후배

지난 5월 25일 생활과학대학에서는 학번의 마지막 숫자가 7로 끝나는 67, 77, 87, 97, 07학번 동문이 모이는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말 그대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이 열린 것. 이 행사에 참석한 87학번 예명지 동문과 17학번 강태훈 학생을 만나 끝7학번 한양인의 생각과 고민,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생활과학대학 동문이 함께한 자리 입학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을 맞이하는 동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 재미있는 기획만큼이나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후배가 함께한 귀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생활과학대학의 역사 소개와 재학생 밴드의 축하 공연, 선후배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등이 마련됐다. 또 행사에 참석한 의류학과, 식품영양학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동문들이 17학번 재학생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는 훈훈한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예명지(실내건축디자인학과 87) 동문은 “제가 졸업한 학과가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자랑스럽다”며 “보석 디자인이라는 생소한 분야로 가기 전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가 학교에서 배운 인테리어 디자인이었다”며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의류학과 1학년 대표로 행사에 참여한 강태훈(의류학과 17) 학생은 “졸업 하신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뵐 수 있어서 좋았다”며 “한양인으로서 새삼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꼈고, 저 역시 앞으로 후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17학번 강태훈 학생(왼쪽)과 87학번 예명지 동문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양의 의미는 달라도 애교심은 같아 생활과학대학 선후배로 자리를 함께한 예명지 디자이너와 강태훈 학생은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눴다. 입시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다가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의류학과로 진학했다는 강태훈 학생. 하지만 요즘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입학을 하고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 공부를 한 친구들이 많아서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 그런 후배의 모습을 보며 예명지 디자이너는 “지금은 한창 그런 고민을 할 때”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제가 우리나라 1세대 보석 디자이너인 셈인데, 당시만 해도 그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 역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을 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때 중도 포기했다면 보석 디자이너로서의 25년 인생은 없었겠죠.” 그가 보석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다. 하고싶은 것을 찾은 후에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활동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도전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 결과, 명실상부 해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해요. 지금 당장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열심히 하세요. 하지만 1학년 때는 무엇보다 많이 놀아야 해요.(웃음)” 자신의 꿈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면 10년 뒤 강태훈 학생은 멋진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해 있으리라. 반면 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예명지 디자이너는 또 어떤 근사한 꿈을 꾸고 있을까. “지금까지 국제적인 활동에 집중하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올해는 한 박자 쉬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쉼표가 필요한 시기거든요. 10년쯤 후에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강태훈 학생에게 한양대가 새로운 시작의 첫발을 내딛는 디딤돌이라면, 예명지 디자이너에게는 늘 그립고 고마운 뒷산 같은 존재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불끈 힘이 솟는 곳, 모교란 바로 그런 것이다. 30년이란 시간의 간격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한양대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학교에 대한 사랑만큼은 같은 크기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23

[학생][도전한대] 몰던, 중국염성에 빛을 더하다

3D 프린터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몰던’의 대표 황부윤(경영학부 11), 김여명(기계공학부 14), 김경진(중어중문학과 16) 학생. 이 세 사람은 지난해 말 ‘2016 한양 동계 글로벌 창업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만나 지난 2월 중국법인을 설립해 중국 염성에 자리 잡았다. 해외 창업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몰던 대표 중 한 명인 황부윤 학생을 만나 들어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몰던 3D 프린터로 뭉쳤다! 몰던의 세 대표가 처음부터 3D 프린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던 것은 아니다. 이들이 처음 ‘2016 한양 동계 글로벌 창업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만났을 때 황부윤 대표의 창업 아이템은 자판기였고, 김여명 대표와 김경진 대표는 3D 프린터를 아이템으로 갖고 있었다. 중국 시장조사 결과, 자판기보다는 3D 프린터가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당시 중국을 방문한 여덟 명의 학생 중 마음이 맞는 세 명의 학생이 뭉쳤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몰던이다. 그렇다면 넓고 넓은 중국에서 왜 염성을 선택한 것일까.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시장조사를 했던 지역이 염성이기도 했고, 창업을 하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될 사무실과 숙소를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저희가 참가한 인턴십 프로그램이 염성에서 새로 오픈한 ‘르호봇’이라는 인큐베이터센터와 연계돼 있었는데, 그곳 담당자께서 저희가 창업을 하면 사무실과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해서 급하게 준비하게 됐습니다. 준비 기간을 좀 더 가져도 좋았겠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어요. 게다가 염성은 시장조사에서도 가능성이 보인 지역이었어요.” 황부윤 대표는 중국 현지에도 3D 프린터로 활동하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할 수 있는 심천과 상해에는 염성보다 더 많은 3D 프린터 기업들이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3D 프린터 시장의 규모가 작고, 경쟁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내 다른 기업의 경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몰던에게 다소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몰던은 지금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3D 프린터 시장의 성장에 철저히 대비할 계획이다. “향후 3D 프린터 시장이 커졌을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때 회사가 얼마만큼 잘 자리 잡았느냐가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씩 회사의 인지도를 넓혀가면서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다른 기업과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 충분히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야에만 특화된 다른 기업에 비해 저희는 3D 프린터로 전반적인 모든 아이템을 다루면서도 다른 기업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몰던은 얼마 전 초중고 학생들이 쉽게 접하고 다룰수 있는 과학 상자를 이용한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이로써 누구나 쉽게 3D 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3D 프린터로 만든 무드등. 불이 꺼진 모습(왼쪽)과 켜진 모습 ▲ 테이블 위애 3D 프린터로 만든 무드등과 화분, 비누몰드, 건물 모형 등이 놓여있다. 쉽지 않은 도전, 해외 창업 ▲ '몰던' 대표 황부윤(경영학부 11) 학생. 황 대표는"제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그냥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면 될것 같아 요." 라고 말한다. 3D 프린터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는 산업이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시제품 생산이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저렴한 가격에 실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공장에서 직접 주문 제작하게 되면 몇 십만원에서부터 몇 백만 원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3D 프린터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실현화시킬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희는 잠재력이 큰 3D 프린터를 이용해 3D 프린터의 판매부터 이를 이용한 제품 생산, 3D 프린터 교육과 같은 것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교육의 경우,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3D 프린터 시장을 잡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진행하고 있죠. 즉 생산, 교육, 판매라는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3D 프린터 시장은 분명 유망하지만, 해외에서 창업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부윤 대표는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바로 창업을 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일을 진행할 때마다 주위에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하나하나 모두 물어가며 시도해야 했다. 중국에서의 활동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조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물어볼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한국에서 창업한 이들에게 물어봐도 중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황부윤 대표는 “아직 제대로 된 매뉴얼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여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부딪혀봐야 한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창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한양대 학우들에게도 조언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창업을 해본 분들을 만나면 ‘직장에서 경험을 쌓고 창업해라’,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아이템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등 많은 조언을 듣게 되는데, 간혹 어떤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밀고 나가면 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맞는 방향을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는 창업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깊은 경험이 담겨있었다. 사명인 몰던(moredawn)은 빛을 더한다는 뜻으로, 빛을 더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지은 이름이다. 몰던의 슬로건인 ‘Make and achieve your vision!’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만든 만큼(make) 성취하자(achieve)는 뜻으로, 노력한 만큼 보상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슬로건처럼 몰던이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여명, 김경진, 황부윤 대표가 3D 프린터 앞에서 파이팅을 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22

[동문]정장도 퍼즐 한 조각 꼭 끼워 맞추듯이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와 갓 닦은 듯 반짝이는 구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은 익숙했던 사복을 벗어던지고 정장을 입는다. 하지만 만만찮은 맞춤정장의 가격과 빠듯한 예약제 시스템 때문에 정장 하나 맞추기도 힘든 것이 현실. 이러한 사회 초년생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안지수, 신요섭 동문(이상 중문과 06)은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2030 세대를 위한 맞춤 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Suitable’의 뜻처럼 맵시 나는 옷을 추구하다 “처음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수트라는 단어를 온종일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영어의 ‘suitable’이라는 용어가 떠올랐죠. ‘수트’와 ‘에이블’의 합성어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이렇게 ‘수트에이블’은 지난 2015년 3월 정식 출시를 거쳐 2030 세대를 위한 정장과 기성복 판매를 시작했다.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던 안지수, 신요섭 동문은 자연스레 공동 대표가 됐다. 현재는 ‘Better design, better fit’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개인의 체형에 맞는 정장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기존 맞춤정장의 불편함을 보완해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장을 맞추려면 강남, 광화문 일대의 숍을 2~3차례 방문해야 해요. 예약도 꼭 해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비용도 그렇게 싸지 않죠. 이런 점들에서 불편함을 겪는 고객들이 많아서, 저희는 고객분들이 편한 시간에 회사로 찾아가서 원단 선택부터 치수 측정까지 다 해드리고 있어요.” ▲자신이 디자인한 ‘수트에이블’의 옷들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안지수 동문. 그가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 또한 직접 만든 옷이다. 수트에이블은 '모든 고객들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철칙을 지킨다. 그리고 이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지인의 소개로 몸이 불편하신 분의 옷을 맞추게 됐어요. 다른 매장 몇 군데를 방문하셨는데, 정장을 맞추지 못한다는 대답을 듣다가 저한테까지 연락이 닿은 거예요. 그분의 정장을 맞춰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간과 공을 들였죠. 옷이 완성된 후, 그 옷을 입고 절 다시 찾아오셨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고 멋있으셨어요.” 안 동문은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계기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 꼭 맞는 옷을 맞춰드리려고 노력한다.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서일까. 수트에이블의 재구매율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계속해서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 안 동문과 신 동문은 수트에이블의 야심작인 ‘테일러 카’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카는 트럭을 이용해 직접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객님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계점을 느꼈어요. 카페는 주위 시선 때문에 불편하고 회의실은 예약이 차 있을 때도 있어서 푸드트럭의 개념처럼 테일러 카를 고안해냈어요. 고객님들이 차 안에서 편하게 옷을 입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성을 추구한 아이디어예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1년 10개월 동안 마케팅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안 동문은 패션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패션과는 거리가 먼일을 하다 보니 만족도가 굉장히 낮았다는 그다. “평생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제가 밤낮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패션 분야였어요. 그 생각이 회사를 나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죠.” 마침 신 동문도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오고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부 시절 때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진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 이직이 아닌 패션 분야로의 창업을 택했다. ▲안지수 동문은 인터뷰 내내 패션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현재의 직업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중어중문학과 출신인 두 사람이 패션 업계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학부 시절 때부터 옷과 패션에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은 안 동문의 설명.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매우 많았어요. 꾸미는 걸 좋아해서 1학년 때 하얗게 염색한 폭탄 머리를 하고 학교를 들어왔죠. 그때 당시 제일 튀었고, 항상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입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줬고, 제가 일러준 옷을 사서 입고 오면 기분이 좋았어요.” 안 동문은 지금도 고객들에게 정장을 맞춰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별로 어울리는 옷 색깔과 헤어스타일도 제안해준다. 패션 제안을 해주는 것에 있어 보람을 느끼는 그다. 일을 시작할 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선생님에게 옷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던 것도 창업에 큰 힘이 됐다. 25년가량 맞춤정장을 전문으로 하셨던 분을 은사님으로 모시면서 정장 관련 분야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하지만 비전공자인 안 동문이 단숨에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저는 옷을 좋아하고 사서 입기만 했지, 만든다는 생각은 정말 못 했었어요. 그래도 매일 같이 선생님을 찾아가 배운 덕에 창업을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죠.” 옷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 전파하고 싶어 아직은 창업에 있어 유년기를 거쳐 가는 기업이지만, 벌써 ‘수트에이블’의 옷들은 중국 백화점의 편집숍에도 소량 입고 되고 있다. 안 동문은 "앞으로 더 넓은 시장으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중어중문학문과를 전공했다 보니,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유리할 것 같아요. 벌써 중국에서 작게 하고 있지만, 더 큰 인정을 받고 싶고, 저희 옷을 많은 사람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수트에이블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바로 고객들이 옷을 입음으로써 느끼는 만족감과 높은 자존감이다. “남자분들 출근 하기 전, 거울을 봤을 때 유독 마음에 드는 날이 있잖아요. 전 여자친구 만나도 꿀릴 게 없을 것 같고(웃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수트에이블’의 옷을 입고 문 밖으로 나갈 때, 발걸음 하나하나가 희망에 차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옷을 입고, 겉으로만 멋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멋있어졌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이 날의 ‘패션피플’ 안지수 동문. ‘수트에이블’ 상의와, 롱 슬랙스, 그리고 츄바스코 샌들로 ‘데일리룩’ 을 선보였다.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gmail.com

2017-08 21

[동문]“셧다운제? 연구해보니 효과 없더라”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이라면 대부분 아는 제도가 있다. 매일 밤 특정 시간이 되면 많은 이용자가 신데렐라처럼 사라지는 제도, 셧다운제.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로그아웃 해 적용자가 아니더라도 낯설지 않은 제도다. 지난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된 법으로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행 취지다. 하지만 실효성과 정당성 등 여러 측면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성협 동문(경제금융학과 석사)은 게임 매니아다. 어렸을 적 부모님 몰래 게임 대회에도 나가 우승할 만큼 게임을 좋아하고, 열정이 있었다. 이를 이어 학부 졸업 후엔 게임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던 중 전공 분야인 경제학을 게임 산업과 융합해 보고자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게임시간, 수면, 여가활동 등에 미치는 효과 분석’으로 석사 학위 논문을 냈다. 시행 전후 비교: 유의미한 영향 없다 셧다운제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이유로 만들어졌다. 셧다운제에 의하면 만 16세 미만은 밤 12시~오전 6시 사이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만일 이를 어기는 경우가 생기면 담배, 술 판매와 비슷하게 온라인 게임을 제공한 업체에게 처벌이 가해진다. 때문에 넥슨, 블리자드 등의 온라인 게임 업체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만 16세 미만 이용자의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지난 18일 홍성협 동문(경제금융학과 석사)을 만나 셧다운제의 실효성을 연구한 내용에 대해 들었다. 홍 동문는 셧다운제 시행 직전과 직후의 청소년들을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비교에 쓰인 방법은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s)이에요. 한 정책이 적용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방법이죠.” 홍 동문은 셧다운제 적용을 받지않은 2011년 기준 만15세와 셧다운제를 적용받은 적 있는 만14세를 비교했다. 자료는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미디어패널조사’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패널 자료를 사용했다. 그 결과 셧다운제 시행의 실효성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셧다운제 시행 이후 게임 이용시간, 수면시간, TV시청 시간 등 여러 활동의 시간을 분석했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찾을 수 없었어요.” 홍 동문의 논문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이 약 8.5분 증가하고, 여가시간이 0.6분 감소하는 등 오차 범위 내의 차이를 나타냈다. 그 외에도 수면시간, 독서, TV시청, SNS이용 등 생활 전반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해서 연구도 더 재밌었다” 홍성협 동문이 셧다운제를 연구 주제로 잡은건 본래 게임을 좋아하던 영향이 컸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부터 홍 동문은 게임과 관련한 논문을 쓰고자 했다. 석사 과정을 밟은 건 게임 회사에서 든 생각 때문. “다니던 회사에서는 수출 쪽을 맡고 있었어요. 개발자가 아니다 보니 직접적으로 게임에 관한 일을 하기는 어려웠죠. 그러던 중 경제학적 분석을 게임 회사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게임을 목표로 잡고, 경제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았다. 그러다 셧다운제의 실효성 연구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 “교수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경제학에서 잘 안다루던 분야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을 좋아하셨죠.” 홍 동문은 이번 석사 논문을 학회지에도 투고하려고 한다. 게임 관련 정책을 경제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이기에, 응용경제학회나 게임학회 등에 투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홍 동문은 “이번 연구가 향후 셧다운제 논의에도 시사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실효성이 없다면 제한이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마침 대통령의 아들도 게임 개발자인데, 좀 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해요.(웃음)” 보통 논문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논문 작성 자체도 어렵지만 논문에 들어갈 연구를 수행하는 일도 어렵고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홍 동문은 좋아하던 연구라 상대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논문을 쓰고자 석 달을 넘게 연구했어요. 주로 공개된 자료들을 정제해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 썼는데, 좋아하는 게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몰두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겨울에 학위를 취득한 홍성협 동문이 졸업 증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8 16

[교수][시선집중] 연구자의 길은 자신만의 나무를 가꾸는 여정

제5회 백남석학상을 수상한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연구 주제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그 결과 촉진수송 분리막과 고체상 염료감응 태양전지 개발이라는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 정년 앞두고 뜻 깊은 백남석학상 수상 “그동안 함께 고생한 학생들 덕분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양대학교에 재직한 지 12년이 됐는데, 길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해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지난 5월 15일 열린 개교기념식에서 제5회 백남석학상을 수상한 에너지공학과 강용수 교수의 수상 소감이다. 백남석학상은 한양학원 설립자인 백남 김연준 박사의 건학 정신을 기리고자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교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강용수 교수는 이러한 큰 상의 공을 주저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돌리며 개인적인 감회를 덧붙였다. 그가 지난 2005년 20여 년간 몸담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한양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강단에 서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과학자는 새로운 현상을 접했을 때 이를 어떻게 응용할까 고민하는 유형과 원리를 탐구하는 유형으로 나뉘는데, 저는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학자 타입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죠. 강의하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서슴지 않고 학생들이 삶의 원동력이라고까지 말하는 강용수 교수는 천생 타고난 학자임에 틀림없다. 촉진수송현상의 수학적 모델 수립 강용수 교수가 백남석학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고체상에서의 촉진수송현상’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분리막 및 태양전지에 응용한 공로 덕분이다. 촉진수송현상은 운반체라는 물질을 이용해 분리하고자 하는 두 물질 간의 이동속도 차이를 야기하는 것으로, 강 교수는 이 개념을 화학물질을 분리하는 분리막에 적용했다. 즉 고체상에서의 촉진수송현상과 운반체로 고분자 전해질 소재를 이용해 에틸렌, 프로필렌과 같은 올레핀 기체를 선택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촉진수송 분리막을 제조한 것이다. 촉진수송 분리막을 이용하면 분리막에 특정 물질에만 반응하는 운반체를 넣어 간단하게 화합물을 분리할 수 있다. 따라서 끓이고 식히고 또 끓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야 하는 기존의 저온증류법과 비교하면 매우 효율적이다. 공정을 단축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순도의 원료를 얻을 수 있으니 석유화학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관련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강용수 교수는 1996년 촉진수송현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처음으로 수립해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1998년에는 혁신성을 높이 평가받아 대규모 연구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에 선정돼 2005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촉진수송 분리막 연구단을 이끌었다. 이는 강용수 교수의 30년 연구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원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시기로, 우리 기술과 우리 소재를 이용해 촉진수송 분리막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촉진수송 분리막에 대한 이해와 성능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연구팀보다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현재 상업화를 위한 연구가 세계 최초로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실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태양전지 개발에 응용 촉진수송현상은 석유화학 공정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강용수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신재생 에너지에 접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분리막에 사용한 고분자 전해질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니 소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사회적 관심이 높은 분야에 적용할 수 없을까 고심하게 됐습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공학자다운 고민 끝에 강용수 교수는 고분자 전해질을 응용해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그 후 태양전지에 대한 연구가 성황을 이루면서 한때 그는 태양전지 전문가로 불리기도 했다.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태양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태양전지 기술 중 하나입니다. 식물의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광합성하는 원리를 응용했는데, 태양 빛을 받아 전자를 생성하는 특별한 염료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합니다.” 이는 기존 반도체를 이용한 태양전지보다 제조단가가 낮은 데다 가볍고 투명한 특성을 갖고 있다. 특히 다양한 색과 형태로 만들 수 있어 건물 유리에 알록달록한 색상을 가미하면 디자인 감각까지 높일 수 있고, 각종 휴대용 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 및 내구성이 떨어져 이를 보완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강용수 교수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이공학분야(ERC)’에 선정돼 차세대 염료감응 태양전지기술센터의 센터장을 역임했다. ERC 사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덕분에 학교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염료감응 태양전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연구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연구 지원을 받아 30년 동안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 저는 연구자로서 운이 아주 좋았던 편입니다. 꾸준히 연구를 지속한 덕분에 전문성과 자신감을 갖게 됐으니까요. 그 결과 새로운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개성’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연구를 이어온 강용수 교수는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만의 개성이라고 말한다. “남의 나무의 가지를 더 크게 하는 일보다는 비록 나약할지라도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에게 개성은 독자성과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융합을 강조하는 시대라 해도 우선은 전문성을 탄탄히 다진 후에 열린 마음으로 협업하고 융합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울러 30년간 한 가지 주제에만 매진한 연구자로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동안 촉진수송현상을 연구해왔지만 제가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많이 묻고 배우고 있습니다.” 앎을 확신하는 사람은 의심하거나 성찰하지 않는다. 이는 연구자가 지양해야 하는 태도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하지 않는가. 강용수 교수와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30년 연구 인생에서 터득한 소중한 지혜를 공으로 얻게 된다. 더불어 그는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지식을 탄탄히 갖춰야 응용력을 키울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적응력도 키울 수 있고요.”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그동안의 연구가 기술이전으로 결실을 맺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현재 상용화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지만 내년까지 완성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제 기술이 실용화되면 정말 신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저만의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했다고 자부합니다.” 평생 촉진수송현상이라는 한 개의 연구 나무를 겸허한 자세로 가꾸어온 강용수 교수. 한 분야에 깊이 심취해온 그의 연구 인생에 경애의 마음을 보낸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16

[동문][꿈꾸는 청춘] 빅데이터로 여성들의 속사정을 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는 고객별로 원하는 제품을 주문할 수 있는 하이퍼 퍼스널라이징(초개인화)이다. 하지만 국내 속옷 시장은 여전히 고객이 정해진 사이즈에 맞춰야 한다. 이에 럭스벨의 김민경 대표는 맞춤 브래지어로 속옷 시장의 변혁을 선도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과감하게 속옷 시장에 도전한 김민경 대표를 만나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럭스벨 대표 김민경(건설환경공학과 03) 동문 속옷 시장에 출사표 던진 엔지니어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고객들에게 ‘진짜 편하다’, ‘몰랐던 나를 알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거든요.”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사업이기에 지난 2015년 10월 법인 설립 후 사업 방향을 잡는 데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아야 했던 김민경 대표. 시범 사업을 통해 데이터 및 생산 인프라 구축 후 본격적으로 ‘사라스핏’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그는 누구보다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기성 속옷 브랜드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기껏해야 열 개 남짓입니다. 하지만 고객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이에 맞출 수는 없어요. 사라스핏은 1대1 컨설팅으로 고객의 가슴 모양, 흉곽의 크기와 형태, 지방 분포 등을 정확하게 측정한 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이즈, 날개 각도, 어깨끈 위치 등 최적의 브래지어를 제작해드립니다.” 아무리 예뻐도 어딘지 모르게 착용감이 불편하면 손이 가지 않는 법. 천편일률적으로 디자인과 볼륨감만 강조하는 국내 이너웨어 시장에서 자신만의 사이즈와 핏에 맞는 속옷을 만날 수 있다니, 그동안 하소연도 못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많은 여성들이 두 손 들어 반길만한 희소식이다. 게다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니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더해진다. “제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 정확한 수치를 중시합니다. 이를 통해 편안함을 찾아주는 공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와도 접목하고 싶었고요.” 흡사 디자이너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김민경 대표는 의외로 건설환경공학과에서 교통시스템공학을 전공했다. 사업 아이디어도 독특한데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니, 도대체 속옷 시장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유학 시절 스타트업 열기 경험 대학 졸업 후 김민경 대표는 삼성SDS에서 교통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공을 충실히 살리고 있던 터라, 장차 속옷 시장은 물론 창업에 뛰어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엔지니어 기반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사업 방향은 경영기획부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영학 공부에 갈증을 느꼈다. “엔지니어로서 펼치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화되기까지 많은 벽에 부딪히면서 경영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전략이나 마케팅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 미시간대학의 MBA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업은 그의 선택지에 없었다. 당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태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당당히 회사를 차리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젊은이들을 통해 창업의 열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 그러면서 귀국 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대기업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은 감히 키우지 못했다. 워낙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성격 탓이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신규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해보고 싶다는 열망의 싹이 그때부터 시나브로 자라고 있었다. MBA 취득 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시카고 무역관으로 일하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귀국 후에는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걸스인텍(Girls in Tech)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기술 분야의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을 많이 만났다. 창업하기 직전까지는 반도체 관련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스타트업 경영 노하우를 배웠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창업에 대한 용기를 키워나갔다. 차근차근 창업 기반 다지며 도전 도전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유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김민경 대표. 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이력을 보면 누구보다 창업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착실히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새로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 대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기보다 차근차근 사업 기반을 다지며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때가 됐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일찍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어 놓았던 여성 속옷 시장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미국 유학 시절, 거리낌 없이 속옷을 패션의 하나로 드러내고 여성 중심의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그곳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제안해주는 서비스도 이미 시작된 상태였죠. 무엇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속옷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국내와는 달리 다양한 브랜드들이 여심을 얻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한 것이다. 김 대표는 속옷 전문 디자이너에게 패턴과 디자인 수업을 받으며 관련 전문 지식을 쌓고, 온라인 설문 및 오프라인 피팅룸을 운영하며 고객 데이터를 차곡차곡 구축했다. 이를 통해 30여 개의 수치 데이터를 입력하면 추천 사이즈가 나오는 알고리즘을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고객에게 최적의 사이즈를 제안할 수 있는 오프라인 피팅룸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즌별로 유행 색상, 레이스 등에 맞춰 트렌디한 디자인을 개발해 생산 라인을 활발히 가동시킬 계획이다. 현재는 백화점 및 편집숍 등의 숍인숍 입점을 추진 중이다.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을 받은 고객의 90%가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 말 못할 불편을 참아야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여성의 80%가 자신의 사이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보호해야 할 가슴을 불편하게 했던 거죠.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 김민경 동문은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라고 말한다. 최종 목표는 ‘물음표’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에서 알고리즘 개발, 디자인 및 생산, 판매 시스템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막 도움닫기를 마친 상태다.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지만 당시는 전공 공부에만 열중했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김 대표. 그렇기에 후배들은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야를 넓혀가길 바란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신의 성향을 고려해 신중히 도전해야 합니다. 아이템과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경영, 파트너십 등 매니지먼트 능력을 타고났다면 바로 도전해도 좋지만, 저처럼 회사 생활을 통해 기업의 생리를 배운 후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마련이 관건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정부 지원금이나 엔젤투자를 통해 피팅룸을 마련하고 디자인을 개발했다. 현재는 다음 시즌 생산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앞으로 중국과 대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아시아가 이제 막 속옷 시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거든요. 시스템만 구축하면 얼마든지 해외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아직은 미정이라고 답하는 김민경 대표. 한 평 남짓의 피팅룸에서 시작된 그의 도전이 무한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