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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 02

[동문]정치를 재미있게, 촌철살인 정치풍자의 달인

평일 오후 5시, "정치가 재미있어지는 시간". JTBC에서 정치부 회의가 시작한다. 이름처럼 정치 이슈를 여러 기자가 발제하는 회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미니언즈를 닮아 유명한, 재미있는 설명과 촌철살인 풍자로 더 유명한 기자. 국회 반장을 맡은 양원보 동문(정치외교학과 95)이다. 정치부 회의를 막 끝낸 양 동문과 만났다. 한양을 꿈꾸고 한양에서 이루다 “어렸을 때부터 한양대에 오고 싶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끌렸어요.” 양 동문은 성적과 상관없이 우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는 홀로 탐방까지 왔다. “교복 차림으로 와서 사람들이 힐끗 쳐다봤어요. 창피하기도 했지만 3년 뒤 이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벅찼죠.” 양 동문은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에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꿈은 현실이 됐다. 정치외교학과 95학번. 교복을 벗고 한양인이 됐다. ▲ 4월 25일 오후 7시. JTBC 사옥 1층 카페에서 양원보 동문(정치외교학과 95)과 인터뷰했다. 대학공부는 생각과 달랐다. 학문으로서 정치는 양 동문과 맞지 않았다. 이론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정치를 경험할 수 없었다.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길 원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 특별히 정치부 기자. 청와대에서 질문하는 모습, 국회의원을 따라다니며 추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 누가 붙고 누가 떨어질지 모르는 언론사 준비. 예측 불허의 상황이었지만 양 동문의 꿈은 현실이 됐다. "운이 좋았죠." 그렇게 시작한 기자 인생 벌써 13년 차. 양 동문은 기자 생활의 9할을 정치부에서 보냈다. 시작은 신문기자였다. 지난 2005년부터 세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당시 민주당에 출입하며 JTBC와 인연이 닿았다. 출입기자 사이에서 양 동문의 열정은 귀감이 됐다. 중앙일보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직장을 옮겨서도 정치부에 몸담았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때 안철수 후보를 전담 취재했다.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하며 사퇴했다. 양원보 반장이 되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2013년 2월, JTBC 개편과 함께 양 동문의 기자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6년이라는 신문기자 경험을 뒤로하고 JTBC에서 방송기자가 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신문기자와 방송기자의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방송기자에게는 방송PD 같은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장면과 장면 사이를 구성해야 하죠.” 동료들의 도움으로 낯설었던 방송기자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2014년 4월부터 <정치부 회의>에서 국회 반장을 맡고 있다. ▲ 평일 오후 5시에 방송하는 JTBC <정치부 회의> 양원보 동문은 국회반장을 맡고 있다. (출처: JTBC)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생히 전달한다. 양 동문이 발제할 때는 예능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어려운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풀어 설명한다. <정치부 회의>의 시청자가 늘고 있는 이유다. 재능을 살려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위즈덤하우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적인 대결을 한 편의 정치 드라마로 풀었다. "앞으로도 정치 관련 책을 쓸 생각이 있죠." 한편 기자 생활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가 있다. 취재원이 비판 대상으로 변하는 경우다. 취재원이란 기사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자와 취재원은 가까이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관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예전에 취재원이었던 모 전 의원의 문제를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알고 지냈기에 마음에 좀 걸렸죠. 하지만 기자는 연연하면 안됩니다. 저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품위 있는 기자의 조건 지난 2015년 3월 27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제정됐다. 청탁금지법의 대상에는 언론인이 포함돼 있다. 항간에는 기자들이 청탁금지법 도입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양 동문의 생각은 단호하다. “청탁금지법은 기자들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좋은 법입니다. 대접을 받으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쉽지 않습니다. 우호적인 기사는 또 다른 대접을 낳습니다. 과연 이렇게 쓰는 기사가 공정할 수 있을까요?” ▲ 양원보 동문은 품위있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출처: 양원보 동문) 양 동문은 저널리즘을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라 말한다. “2016년 10월 24일은 개헌 발의가 있었던 날입니다. 정치부 회의를 마치고 집에서 뉴스룸을 보고 있었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헌 보도가 짧게 끝났습니다. '왜 저걸 짧게 보도하지?' 했는데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입장이 나오지 않았죠. 가슴이 쿵쾅거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 기사가 있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일이 그렇게 시작했다. 기자가 보는 세계는 일반인이 보는 것과 다르다. 권력의 이면을 보며 보이지 않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일 자체가 쉽지는 않다.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자는 뜻깊은 직업이라고 양 동문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한양대 후배들이 언론사에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동문 모임이 있는데 수가 많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꼭 성공해서 기자로 만납시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24 중요기사

[동문]센서로 일상을 트랙킹(tracking)하다

올해 초 의자 전문 브랜드 ‘듀오백’에서 신제품 ‘듀오백온’을 출시했다. 제품은 의자 좌판에 내장된 체압분포센서가 앉은 자세와 시간을 측정한다. 이 센서를 스타트업 기업 ㈜알고리고(algorigo)에서 개발했다. ‘삶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알고리고 대표 차길환(물리학과 99) 동문. 유난히 더웠던 지난 금요일, 신답역에 위치한 알고리고 사무실에서 차 동문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리고, 일상에 집중하다 사람은 많은 시간을 자고, 앉고, 걷는데 소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자고, 앉고, 걷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 알고 나면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차 동문의 질문은 여기서 출발했다. ▲ SK텔레콤 IoT스마트홈에 올라와 있는 스마트 체어 ‘듀오백온’(출처: SK텔레콤 IoT스마트홈 홈페이지 갈무리) 알고리고의 첫 제품은 스마트 체어 듀오백온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가지 활동 중 ‘앉는 것’에 맞춘 아이템이다. 알고리고는 올해 안으로 청소년용과 성인용 출시를 계획하고 있지만 우선 아동용부터 출시했다. 아동용 스마트 체어는 내장된 센서를 통해 어떤 자세로 얼마나 앉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정보는 무선통신 서버를 통해 ‘SK텔레콤 IoT스마트홈’에 전송된다. 가구로서는 최초로 SK플랫폼에 들어갔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로 이용 가능하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혼자 집에 잘 있는지 걱정이 많아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때 바른 자세로 앉는지 염려가 크죠. 잘못된 자세는 성장에 좋지 않으니.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스마트폰으로 자녀상태에 대해 알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스마트 체어와 연동되는 SK 스마트홈 어플리케이션. 앉은 자세와 시간을 분석해준다.(출처: 알고리고 홈페이지 갈무리) 알고리고는 다른 의자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위해 ‘스마트 쿠션’도 개발했다. 스마트 체어처럼 어플리케이션으로 알림을 받아볼 수 있으며 올해 하반기 출시예정이다. ‘앉는 것’ 이외에도 ‘자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침대 브랜드와 파트너쉽을 맺어 ‘스마트 슬립케어 시스템’을 제공할 계획도 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서 고가의 장비가 아닌 가구의 센서만으로 원인을 예측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 스마트 쿠션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연동되는 어플리케이션은 앉은 자세와 시간 분석, 그리고 자세에 따른 운동법도 알려준다.(출처: 알고리고 홈페이지 갈무리) 스무 살부터 그려온 스타트업 차 동문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창업의 꿈이 있었다. “창업을 하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지 않아서 저 나름대로 로드맵을 짰죠. 학부 졸업 뒤 대학원 공부, 대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결심덕이었을까,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과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으로 3학기 동안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그는 하와이에서 교환학생신분으로 공부하는 동안 기를 쓰고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대학원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 동문은 미국 UCLA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하고 코닝정밀소재에 입사했다. ▲ 스무 살 때부터 창업을 위한 로드맵을 그려온 차길환(물리학과 99)동문. 하지만 막상 창업시기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포기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당시 산업의 트렌드, 정부의 정책 등이 기술 창업을 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그에게는 창업의 뜻을 모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디자이너가 있었다. 좋은 아이템 때문이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어서 모인 3명은 지난 2015년 6월부터 아이템 발굴 준비를 했다. 두 달간의 준비 후 8월부터 정부창업지원 과제를 수행했고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해 그 해 10월에 법인을 설립했다. 알고리고의 시작이었다. 스무 살부터 이어져 온 경험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학창시절 공부들, 실험적으로 측정하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결과 분석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연구를 수행했던 경험은 창업 이후의 일과도 닮았다. 회사 근무 당시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경험을 쌓은 덕에 스마트 체어 시제품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직접 개발할 수 있었다고. “3년 반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신사업 아이템 발굴 및 기획과 제품을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회사 생활을 통해 창업을 위한 실무적 역량을 키울 수 있었죠.” 팀이 있기에 지금이 있다 지난해 4분기는 차 동문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한꺼번에 힘든 일이 찾아왔다.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은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죠. 사람과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알고리고는 듀오백과 협업으로 제품을 양산하고, SK 텔레콤과 함께 서비스 개발하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업무를 마치기에 인력이 부족했다. 외주 업체는 비협조적이었고 대기업과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마찰도 있었다. 차 동문은 당시 ‘이대로 끝인가’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팀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 기존 팀원들, 새로 합류한 CTO(최고기술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 개발자분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기면 홈페이지에 있는 팀원들 사진을 봐요. 팀원들과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알고리고가 가장 힘들었던 지난해 4분기. 차길환 동문은 회사 팀원들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알고리고는 2015년 설립된 이래 꾸준한 성과를 내왔다. 타기관에서 수상, 정부과제 이행, 제품 양산, 타기업과 파트너쉽 체결, 병역특례업체 등록 등 한걸음씩 계단을 밟고 있다. 알고리고는 성장할 수록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하고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업으로 나아간다. 차 동문은 머지 않은 미래에 각 가정에 적어도 1개 이상의 알고리고 제품과 서비스가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티’ 3회에서 고혜란 앵커(김남주 역)가 자신이 앵커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바로 ‘간절함, 절실함,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절박함’ 입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유, 목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차 동문은 창업이 아니면 안 되는 간절함, 절실함, 절박함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력 역시 중요하다. 스타트업을 할 때 자신이 한 분야에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부시절에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충분히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꿈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한양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23

[동문]모든 사람이 농부가 되는 세상을 꿈꾸다

"물이 부족합니다." 내가 기르는 채소가 나에게 말을 건다면 어떨까. 4차 산업혁명에서 주목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사람과 사물 또는 사물과 사물이 인터넷으로 통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물들이 인간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IoT)을 농업 분야로 가져온 스타트업이 있다. 스타트업 ‘엔씽’은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텃밭을 구축해 스마트폰으로 40피트의 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팜(Smart Farm) 시대를 열었다. 잘나가는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가 되기까지 엔씽(n.thing)은 사물인터넷(IoT)기술을 기반으로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2014년에 시작해 현재 국내외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엔씽의 대표 김혜연(전자통신공학 04) 동문은 학창시절부터 막연하게 창업을 꿈꿔왔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 가게 홈페이지를 제작하며 용돈 벌이를 했을 정도로 그의 학창시절은 남달랐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밴드동아리, 연예인 매니저, 트렌드 리포트 작성, 영국 어학연수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SK텔레콤에서 트렌드 보고서를 작성을 도우면서 미래 트렌드에 관한 전반적인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미래를 주도할지 미리 볼 수 있었어요. 2008년도 당시에 이미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논의하고 있었죠.” 이후 농자재 회사를 운영하시는 외삼촌의 사업을 돕기도 했다. 김 동문은 그곳에서 ‘스마트 농장’이라는 사업아이템을 얻게 됐다. 창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외삼촌의 회사를 나온 김 동문은 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농장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 연락이 닿아 위촉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사물인터넷(IoT)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연구원이 보유한 각종 기술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었다. 김 동문은 이곳에서 사물인터넷(IoT)에 대한 경험을 쌓고 발전시켜 지금의 엔씽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 엔씽의 대표 김혜연(전자통신공학부 04) 동문을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엔씽(n.thing); 수많은 분야(n개)에 도전한다 엔씽은 모든 사람이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IT기술을 이용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러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처음은 작은 스마트 화분 ‘플랜티’로 시작을 했다. 플랜티는 통신 모듈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화분을 제어할 수 있다. 식물의 주변 환경을 센서가 인지하고, 원격으로 급수가 가능해 사람이 직접 손댈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작은 화분에서 조금씩 크기를 늘리기 시작했다. 재배형 화분인 ‘플랜티스퀘어’를 거쳐 현재 컨테이너형 스마트 농장 ‘플랜티큐브’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농장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엔씽은 궁극적으로 농업 시스템 구조를 바꾸고자 한다. 한국은 여름에 덥고 습해 병충해가 많아 대부분의 농가에서 농약 사용은 불가피했다. 또한 농작물선택부터 판매까지 농부 한 사람이 관리하기에 벅찬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스마트 팜(Smart Farm)을 통해 식물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농장이 스스로 조절하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스마트폰 하나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생태계. 앤씽이 나아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 엔씽에서 판매 중인 스마트 화분 ‘플랜티스퀘어’. 주방에서 손쉽게 친환경 바질을 키워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출처: 엔씽 홈페이지) 김 동문은 엔씽을 미디어 회사라 칭한다. “상추를 키우는 것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과 관련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농업이 일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갈수록 감소하는 농업인력과 앞으로의 식량난 문제에 엔씽이 만드는 새로운 농업생태계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실제로 현재 국내외에서 전폭적인 투자와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최종목표는 화성에 농장을 짓는 겁니다.”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에게 김 동문은 절대 섣불리 창업하지 말라 한다. “대학생들에게 함부로 창업하라 하고 싶지 않죠. 모든 위험을 안고 기업의 앞길을 선택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김 동문도 사업 초기에 막중한 책임감과 불안감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창업을 바라본다. 김 동문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창업에서는 이러한 불안감을 이겨내고 첫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또한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동문은 이를 위해 대학에서 전공수업 외에 조별과제가 많은 교양수업을 일부러 듣기도 했다고. 경영, 디자인, 광고, 컴퓨터 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과제를 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현재 기업을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 동문은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인생은 골프와도 같아요. 일단 샷을 날려 공을 그린 위에 올려 둬야 홀을 향해 방향과 전략을 잡을 수 있죠. 일단 공을 세게 쳐봐야 아는 거예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라는 말 속에 다양한 도전이 만든 김 동문의 현재가 담겨있었다. ▲ “새로운 분야를 시도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가지지 마세요” 김혜연 동문은 대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이겨내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18 중요기사

[학생]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비핵확산을 논하다

국제 평화에서 핵과 관련된 이슈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비핵화를 평화의 길로 바라보는 시각과 그렇지 않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와 관련해 비핵화의 흐름을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밝은 에너지로 국제 비핵확산을 연구하고 있는 정유진(정치외교학 석사과정)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핵비확산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되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배운 국제정치학 부문을 핵정책에 연결하고 싶었어요.” 올해로 석사과정 3년 차에 접어드는 정유진 씨는 최근 카이스트 핵비확산연구센터(NEREC, Nuclear Nonproliferation Education and Research Center)에서 진행하는 ‘핵비확산 연구장학생프로그램’(NEREC Research Fellowship Program)에 선발됐다. 핵비확산 연구장학생프로그램에 우리 대학 석·박사생이 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이스트 핵비확산교육연구센터는 핵비확산에 대한 교육과 정책연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자 설립됐다. 매년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원과 석·박사생들을 대상으로 ‘핵비확산 연구장학생프로그램’의 리서치 펠로를 선발한다. 정 씨를 비롯해 올해 선발된 3기 리서치펠로들은 앞으로 1년간 핵비확산 정책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200만 원의 연구 장학금과 함께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와 국내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연구지도를 받는 혜택이 주어진다. ▲ 지난 12일, 한양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정유진(정치외교학 석사과정)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씨는 교내 학회에서 활발하게 참가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앞으로 자신의 연구방향을 정하고 있다. 국제 핵 정책과 평화문제에 국제정치학 이론을 접목해 자신의 연구 방향을 설정 중이다. 10월에 있을 최종 논문 발표까지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고 구체화시킬 계획이다. “국제 핵 정치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국제정치학 이론들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워싱턴에서 국제정치를 몸소 느끼다 정 씨가 국제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정책학을 공부하던 학부 3학년 때다. 2012년 한국에서 열린 제2회 핵 안보 정상회의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해 국제정치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국제 안보문제 프로세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까이서 국제 정치 흐름을 느낀 정 씨는 그 뒤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외교학과를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이후, 정 씨는 국제정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워싱턴(Washington DC)에서 미국 대사관 인턴과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ice of America, 미국의 소리)' 방송국 경험을 쌓았다. 곳곳에서 국제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국제정치의 흐름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가는 길에 소수자 우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목격하고 취재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게 석사 공부를 할 때 교과서에 나오더라고요.” 학교에서 이론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공부였다. 사회 이슈와 직접 부딪히며 국제정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게 됐다. 정 씨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이 논문 주제였다고 회상한다. “워싱턴에서 국제정치 현장을 직접 경험했던 건 저에게 큰 자산이에요. 제가 논문을 작성할 때 항상 귀감이 되어주죠.” “앞으로 ‘한양인 최초’ 타이틀을 가지는 후배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한양대학교 전공알림단(HUMM) 1기로 활동했던 정 씨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막연하게 중고등학생부터 정치외교를 꿈꾸고 있었기에 정책학과에 들어와서도 고민이 계속됐다. ”계속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구체화시켜야 해요. “정 씨는 재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더 큰 학회나 무대에서 한양인들이 이름을 알렸으면 한다고. “더 많은 한양인들이 최초 타이틀을 가져왔으면 좋겠어요.” 올해 졸업을 앞둔 정 씨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국제정치에 대해 더 공부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비핵화와 관련해 공학적인 부분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핵화와 관련해서 국제사회에 평화적으로 도달하는 방안은 우리가 찾아야죠.” 정 씨는 국제평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더 많은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 정유진 씨는 앞으로 한양을 대표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양의 위상을 높일 연구실적을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

2018-04 16 중요기사

[교수]정신장애인들의 지주가 되어드릴게요

사회적 약자들도 공평한 대우를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권리가 완벽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 제도의 허점,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 대표적인 이유다. 제철웅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정신장애인들의 인권과 권익향상을 위해 쉼 없이 연구하고 봉사한 공로를 지난 6일,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2018년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인정받았다. 민주주의의 핵심, 인권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아직 부정적이에요. 이 분들께 좋은 환경에서 받는 진료와 요양이 필요한데, 환경 조차 차별적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에요.” 제 교수의 홍조근정훈장 수상소감은 겸손으로 가득했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의 날을 맞이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18년도 보건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보건의료 분야에 공헌한 239명의 보건의료인과 공무원들이 훈장과 표창을 수상한 이 자리에 제 교수도 함께했다. 법을 전공한 교수가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표창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제 교수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증진해 치료과정과 진료결과를 좋게 바꿨기에 수상할 수 있었다. 민법을 전공한 제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차별과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손을 뻗기로 결심했던 그다.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에요. 저는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 제철웅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요양시설에서도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만큼, 정신장애인들의 권익이 증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정신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후견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후견인이란, 친권자가 부재하거나 법률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법적 대리권을 갖는 사람을 일컫는다. 특히 가족이 없는 정신장애인들이 후견인을 필요로 한다. 부족한 사회적 경험 탓에 지적 능력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이 약을 먹어야 할지, 이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지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계속 마주하게 돼요. 하지만 지적 능력이 부족한 탓에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굉장히 힘들죠. 그럴 땐 법원에서 후견인을 선임해주고, 후견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끔 도와줘요.” 제 교수는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사회과학연구(SSK)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는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에서 정책과 제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버팀목이 돼주는 후견인들 후견인은 가정법원에서 선발된다. 85% 정도는 가족들이 후견인이 된다. 가족이 부재한 경우 정신장애인은 공공후견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진행되는 사업이기에, 정부에서는 가족이 없는 정신장애인들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그 중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이들에게 후견인을 신청하면 어떻겠냐고 의뢰가 들어온다. 정신장애인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청 여부를 알려주면 된다. 수 많은 의료 및 법적 의사결정을 마주해야 하는 정신장애인이다. 후견인은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후견인들이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 않아요. 본인 스스로가 충분히 생각하고 결론으로 도달할 수 있게끔 지지해주는 역할을 해주죠. 그래야만 정신장애인분들의 자존감을 서서히 회복시킬 수 있어요.” 정신장애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지 고려한 뒤 그에 맞게끔 행동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후견인의 일이다. 제 교수는 후견인들이 후견활동을 시작하며 많은 정신요양시설들이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원래는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폐쇄된 시설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장애인분들이 자유롭게 시설을 누비고, 후견인들이 오면 반갑게 맞이하며 얘기하시죠. 이분들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지난 2014년 세상에 알려진 ‘신안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들 지원도 제 교수가 도왔다. 10년 가량 월급 한 푼 못 받고 노예로 일했던 피해자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정신장애인들이었다. “저희가 공공후견인들을 선임하게끔 도와드렸어요. 그 후 그 분들은 염전 주인들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지역사회에 나가서 생계를 꾸려나가셨어요. 후견인이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고, 경제적 착취나 학대를 받으시는 장애인 분들이 앞으로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편견을 타파하는 그날까지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복지가로서의 세 삶을 살고 있는 제 교수는 만연해 있는 사회적 편견을 뿌리뽑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능력자 중심이에요. 공부 잘하고, 돈 많고, 잘생기고,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하죠. 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무시 받게 되고요. 정신장애인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같은 자존심과 장점을 지닌 사람들이에요. 편견을 없애서 정신장애인들이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정신질환으로 연간 300만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제 교수는 그 모두가 자존감을 되찾고, 편견 없는 사회 속에서 조기 치료를 받아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사회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정신장애인들. 후견인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붙이고, 이야기를 함으로써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제 교수는 앞으로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에서 정신장애인들과의 더욱 나은 의사소통을 위한 연구를 이어갈 것이다. 글/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12 중요기사

[동문]네덜란드의 무사가 되어 한국에 알리다

박물관은 영어로 ‘Museum’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고, 여신 뮤즈(Muse)의 신전을 뜻한다. 시, 음악 등 아홉 가지의 학예에 능한 예술의 여신, 한양대에도 이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이 그 주인공.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낸 그는, 박물관과 사랑에 빠져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쌓은 피아노의 추억 김수현 동문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은 어린 시절을 피아노와 함께 보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한 살 터울이었던 여동생은 금세 따라치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늘 곁에 두고 놀았습니다.” 이후 동생과 김 동문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때론 친구가, 때론 경쟁자가 되곤 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제겐 피아노 콩쿨이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 영향이 입시에도 미쳐 동생보다 늦게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어요.” ▲ 2013년 백남음악관에서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이 함께한 피아노 듀오 연주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김 동문은 한양대학교에서 꿈꿔왔던 대학 생활을 이뤘다. “한양대학교는 당시 타 대학과는 다르게, 공연 기회의 확대, 편의시설 확충 등 음악대학에 대한 투자가 남달랐어요. 덕분에 한양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를 열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수업을 듣고, 고향에서 첫 공연을 여는 등 김 동문의 생활은 활기찼다. 특히 김 동문은 이대욱 교수(피아노과)와 함께했던 음악 공부를 가장 뜻깊은 시간으로 꼽았다. “지속적인 연주 활동을 하셨던 교수님을 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음악이 주는 무한한 감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떠나다 김수현 동문은 학부생 때 ‘서양 음악사’, ‘낭만주의음악 연구’ 등 학문적인 분야의 수업을 듣고 학문 쪽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보다 연필을 잡고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좋았습니다. 때마침 찾아온 교직 이수를 병행하면서 교육학을 공부했어요.” 교사로서의 경험이 김 동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 그는 교단에 올라섰다. 하지만 졸업 후 유럽여행의 여운은 김 동문에게 네덜란드를 추억하게 했고, 결국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됐다. ▲ 2017년 6월 네덜란드 출국 전,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의 학교 마지막 근무 날.(출처: 김수현 동문) “홀로 갔던 3주간의 유럽여행은 꿈만 같았어요. ‘모나리자’를 비롯해 ‘키스’ 같은 명화를 직접 보고,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저 또한 넋을 놓았죠. 그때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김 동문은 국민의 80%가 영어를 사용하고, 지리적으로 여행하기 편리한 나라 네덜란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해 네덜란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작품에 대한 공부 후 언제든 박물관을 찾는다는 김 동문의 삶은 어느새 미술로 바뀌어 있었다. 미술과 네덜란드에 사랑을 느끼다 김 동문은 “미술 작품은 힘이 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미술도, 역사도 공부하지 않은 제가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생애를 알아본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죠.” 그는 작품의 힘과 음악을 접목했다. “음악 작품은 귀로, 미술작품은 눈을 통해 감상하죠. 이 상반되는 특성을 하나로 합쳐 작품을 감상할 때 더욱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를 조사하다 보면, 비슷한 시대의 음악가들과 연관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모두 예술을 즐기는 나라에서 김 동문은 많은 사람에게 네덜란드를 알리고 싶었다. 이는 경남일보에 박물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게 이끌었고, 수차례의 노력 끝에 나온 원고는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현재 김 동문은 외교부 해외정보센터 네덜란드 통신원으로서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박물관에 쏟았던 저의 큰 노력과 지식을 쉽게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공부는 제 삶을 더욱 풍요롭고 빛나게 하지만, 나눌수록 더 빛나기 때문이죠.” (경남일보 기사 확인하기 / 네덜란드 정보 확인하기) ▲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방문 후 김수현 동문의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따듯한 마음, 오래 간직하시길 김수현 동문의 최종 목표는 예술과 대중이 한층 가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음악과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구상 중입니다. 또, 네덜란드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반고흐 미술관, 레이크스 박물관에 대한 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내년 박물관학과 진학을 목표하는 김 동문은 “글을 계속 써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 키워온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김 동문, 예술에 대한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8-04 11

[동문]‘진보’라는 단어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요

본명보다 예명 진보(JINBO)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있다. 방 한켠에 ‘진보주의’, ‘미래주의’, ‘낙관주의’, ‘낭만주의’,’ 국제주의’를 걸어놓은 한주현 동문(경제금융학부 01)이 그 주인공. 흑인음악부터 K-POP까지 폭넓게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교내에선 문화 비즈니스 각계의 인사가 매주 나오는 옴니버스 강의 ‘문화비즈니스리더십’ 강연자로도 활동한다. 2015년 2학기부터 강연자로 나오고 있다. 한 동문을 만나 그의 독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하는 집에서 키운 꿈 “어렸을 때 베란다에 살았어요. 제 방은 없었지만 음악 방은 있었죠.” 한 동문은 음악이 끊이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께서는 지휘, 오르간, 성악 등을 하시는 만능 음악인이셨다. 위로는 형이 2명 있었다. 형들은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밴드를 했었다. 음악 방에서는 다양한 노래를 접할 수 있었다. “큰 형은 엘비스 프레슬리(Presley)와 비틀스(The Beatles)와 같은 고전적인 음악을, 작은 형은 너바나(Nirvanan)와 지미 헨드릭스(Hendrix)와 같은 자유로운 음악을 틀어줬습니다.” ▲ 한주현 동문(경제금융학부 01)에게 음악이란 잘 구사할 수 있는 언어다. (출처 : 한주현 동문) 음악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됐다. 큰 형이 틀어준 바비 브라운(Brown)의 노래들, 특히 엠씨 해머(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를 들으며 음악적 방향을 잡았다. 음악 방에서는 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의 노래를 들으며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주 장르로 삼았다. 집에서 탄생한 음악적 감각을 학교에서도 크게 발휘했다. “수학여행에 갔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로 공연을 했어요. 그때 제가 안무를 직접 하기도 했어요. 공연하는 것이 저에게 잘 맞더라고요.” 한 동문은 음악가로 한 걸음 다가갔다. 한편 멋지기로는 과학자가 제일이라 생각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잘하기는 쉽지 않았다. “과학자가 되지 못할 바에 제가 가진 장점을 살리며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아티스트였습니다. 우아하기도 하고요.” 한 동문은 퍼렐 윌리엄스(Williams)를 보며 꿈을 키웠다.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악기를 귀신처럼 다루는 사람도 아니고, 랩을 엄청 잘하는 사람도 아녔지만 아티스트로서 겁 없이 일하는 것을 보며 저도 저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보적인 음악가 한 동문의 방. ‘진보주의’, ‘미래주의’, ‘낙관주의’, ‘낭만주의’,’ 국제주의’ 벽에 적혀있는 단어들이다. 삶에 대한 신념이다. 음악가로서의 신념과도 일치한다. “항상 지향하며 살고 있어요. 아직은 음악에 이 중 한두 가지밖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녹여낸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동문의 신념은 음악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한 동문은 서로 다른 장르를 어떻게 더 창의적으로 조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장르를 찾으려고 했어요. 국경이 무의미해진 지금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르들을 조합해 저만의 장르를 창조해야죠.” 지금도 한 동문은 다른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하며 장르 간 융합을 꾀하고 있다. 일전에는 일본의 유명 레이블인 재지 스포트(Jazzy Sport)에 소속되어 있는 개이글(GAGLE)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 한주현 동문은 퀀시 존스(Jones)처럼 죽기 전까지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출처 : 한주현 동문) 한 동문은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을 작업했다. 빈지노의 ‘Aqua Man’에서 작곡, 편곡으로 참여했다. 흑인음악에 국한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BTS)의 ‘여기봐’에 작사, 작곡, 편곡으로, ‘Pied Piper’에는 작사, 작곡으로 참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작곡, 작사로 레드벨벳의 ‘봐 (Look)’에 참여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협업하고 싶다고 한다. 특히 10대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원한다. “세대마다 향유하는 문화가 다릅니다. 10대는 저에게 미지의 세대이죠. 어린 친구들과 작업을 하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간다’. 진보의 사전적 정의다. 많은 사람은 진보를 정치적인 단어로 떠올린다. 주변에서 예명을 진보(Jinbo)로 지은 이유를 물어본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상단에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적으로 노력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진보’라는 단어를 등에 업고 음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죠. ‘진보’라는 단어를 듣고 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아이콘이 되고 싶습니다.” "실전으로 빠르게 나오세요" ▲ 한주현 동문은 새로운 곡을 작업하고 있다. 5월 전시회를 통해 결과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 한주현 동문) 한 동문은 경제금융학부 출신이다. 현재 직업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전공 선택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고, 대학에서도 음악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견문을 넓히길 바라셨는지 반대하셨죠.” 흡수가 굉장히 빨라서 공부에 흥미를 쉽게 붙였다. “뭐든지 즐겁게 합니다. 시도할 때 항상 재미있게 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여러 가지를 폭넓은 경험을 했고 경험들은 그에게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공부만 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 아닙니다. 후배들을 보면 정말 똑똑합니다.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자신과 비슷한 비전을 가진 사람을 찾아봤으면 해요. 지식 습득도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동문은 빠르게 실전 경험을 쌓아봤으면 한다. 배운 지식을 통해 실전서 쌓은 경험물이 크다고 생각해서다. "음악이 아녀도 제 세계관이나 뜻과 맞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같이 경험을 쌓아봅시다." 글/ 유승현 기자 dbmdgus9543@hanyang.ac.kr

2018-04 04

[교수]무용의 꿈, 무용가로 태어나 교육자로 완성되다

“한국무용은 보자기 같아요. 어떤 정신이든 잘 담아낼 수 있죠.” 예술·체육대학장 김운미 교수(무용학과)의 말이다. 김 교수가 지난 1월 한국무용협회에서 발표한 ‘2017 예술대상’ 한국무용 부문에 선정됐다. 예술대상은 매년 한국무용협회에서 수여한다. 대한민국 무용계 활성화와 예술 발전을 위해 힘쓴 이들에게 주는 상이다. 한국무용·전통무용·현대무용·발레 각 분야별로 한 명씩 선정한다. 김 교수는 ‘우리춤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춤 연구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론과 실기는 무용의 날개 무용에서 이론과 실기는 바늘과 실이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다. 이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실기는 튼튼하지 않다. 언제나 흐트러질 수 있다. 김운미 교수는 이를 보자기에 비유한다. 이론은 보자기 제작과 같고 실기는 포장과 유사하다. 보자기는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고 포장할 땐 상황에 맞는 방법이 필요하다. 무용도 마찬가지. 조직화된 이론과 상황에 맞는 실기가 따라와야 한다. 김 교수의 지론이다. ▲ 김운미 교수(무용학과)가 이번에 수상한 한국무용협회 2017 예술대상 상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교수가 만든 ‘우리춤연구소’는 2005년 3월에 발족했다. 한국 최초의 대학 부설 춤 연구 기관이다. “사람들이 우리춤을 보고 더 신났으면 하는 마음과 춤이라는 정성적인 내용을 정량화하기 위해 우리춤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론을 정립히면 흥미를 갖기 쉬우리라 생각했죠.” 연구소에서는 우리춤, 곧 한국무용 연구를 위해 학제간 통합연구를 꾀한다. 연구를 바탕으로 관련 연수와 발표를 진행하며, 매년 4회씩 논문을 등재하고 있다. 김 교수의 비유에 따르면, 이론은 곧 보자기 만들기며 다양한 이론은 다양한 제작방법이다. 꾸준히 연구하는 이유다. 학술적인 연구만큼이나 공연이 중요하다. 이는 보자기 포장법과 마찬가지. 공연 역시 매번 연출이 달라진다. 김 교수가 1993년에 설립한 ‘김운미 쿰댄스컴퍼니’(이하 쿰댄스컴퍼니)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실기 교육에 집중하고자 만든 쿰댄스컴퍼니는 학생들이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표현의 장이다. 이후 무경력을 이유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쿰댄스컴퍼니에서 '묵간'이라는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매년 ‘새로움이 공존하는 자유로운 무대’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묵간은 최근 제19회 공연을 마쳤다. 지난해에는 '연극과 무용', '스트릿댄서와의 무용' 등 다양한 장르 속 듀엣파트라는 주제를 시도하는 등 항상 새로운 주제를 선보인다. 새 예술가를 선보이기 위한 자리가 평론가들도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기획공연으로 거듭난 이유다. ▲ 쿰댄스컴퍼니는 김운미 교수가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해 과거의 꿈, 현재의 꿈, 미래의 꿈을 다양한 작품세계로 선보인다. (출처 : 쿰댄스컴퍼니) 숨 쉬듯 춤추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무용은 김 교수와 함께했다. 당시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어머니께서 무용인 고(故) 최승희 선생에게 감명을 받고 직접 무용을 배우셨다. 김 교수는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레 무용을 접했다. 원해서 시작했던 것은 아녔지만 적성에 맞았다. 주변에서는 격려와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무용을 계속 한 가장 큰 이유는 무대에 섰을 때의 희열이다. 무대에 올라가면 몇 초 안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연히 배운 무용은 운명처럼 김 교수에게 다가왔다. 일찍이 무용을 시작했지만 김 교수는 예술고등학교 대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생 때부터 공부와 실기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으려 했다. “공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했어요.” 이런 습관은 대학생활에서 빛을 발했다. 체육대학(현 예술·체육대학)에서 김 교수는 수석으로 졸업했다. 김 교수에게 수석의 의미는 남다르다. “1등을 한다는 것은 가혹한 것입니다. 항상 쫓깁니다. 그러나 한 번쯤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죠.” 그래서였을까, 무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김 교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춤에만 매달리려 이론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실기에 치우치지 않고 이론과 균형을 이루는 무용을 가르치기로 했다. 이론과 실기가 조화를 이룰 때 창의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김 교수의 철학이다. “지금도 한 평 남짓한 방이 있으면 춤을 춰요.” 제자를 육성하는 바쁜 와중에도 김 교수는 자신의 춤을 춘다. 교육자 김운미, 한양인 김운미의 ‘사랑의 실천’ 김 교수가 머무는 학장실에는 제자들에게 받은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자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비결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춤 추는 것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해서 왜 춤을 추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춤 추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할 때 비로소 신나는 무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김 교수는 제자들이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 김운미 교수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출처 : 김운미 교수) 한편 김 교수가 세운 우리춤연구소는 올해 초 고전(古典) 무용을 통해 아동들의 인성교육을 실시하고자 성동구청과 함께 겨울무용교실을 진행했다. 지난해 여름에도 열렸던 무용교실은 우리대학 무용학과 출신들이 수업을 맡았으며 무료로 이뤄졌다.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정기적인 사업화를 꾀하고 있다고. “’사랑의 실천’은 한양대학교의 건학 정신입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를 가슴에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은 사회에 기여할 때 살아 숨쉬게 됩니다.” 김 교수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한양이 더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글/ 유승현 기자 dbmdgus954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

2018-03 30

[교수]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중소와 벤처기업을 위한 시장으로 불리는 코스닥 시장은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코스닥 시장은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기 어려운 소규모 신생 기업이나 유망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 분 혁신 바람과 함께 길재욱 교수(경영학부)가 코스닥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코스닥 혁신과 새로운 인사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통한 자본시장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코스닥 시장을 혁신해 창업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가의 코스닥 참여 제고 ▲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 제고 ▲상장요건의 개편 이 세 가지를 방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시장의 자율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기존 한국거래소 코스닥 위원회에서 본부장이 위원장을 겸임하던 체제, 분리하는 형태로 개선했다. 위원장과 본부장을 분리 선출하여 시장의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길재욱 교수(오른쪽)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기자실에서 코스닥 시장 활성화에 대한 포부를 말하고 있다. (출처: 파이낸셜뉴스) 이러한 혁신 흐름에 따라 길재욱(경영학부) 교수가 지난 3월 13일 신임 코스닥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3일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길재욱 교수를 신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길 교수는 이번 선임에 대해 “아직 업무를 익혀가고 있다”며 “코스닥 시장이 중소 및 벤처 위주인만큼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이 창업가들이 활발하게 자금을 조달 받아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길 교수는 현재 2년간의 임기 중 코스닥 시장의 방향성과 위원장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 기업인들이 두려움 없이 창업에 도전하고, 열심히 사업을 운영할 때 글로벌 시장에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창업과 벤처기업인들에게 적극적 투자를 가능케 해 젊은 기업이들에게 코스닥이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더욱 자세하고 세부적인 방향은 향후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예정이에요.” 일생을 바쳐온 파이낸스의 길 길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미네소타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양대에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교육과 연구에도 최선을 다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 심의위원,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 공시위원회 위원장, 코스닥시장 공시위원회 위원장 및 규율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일생을 파이낸스 연구에 쏟으며 자본시장 전문가로서 활약해왔다. ▲길재욱 교수가 지난 2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교수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95년도에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로 처음 부임한 길 교수는 어느덧 23년째 한양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경제학을 공부하며 교단을 꿈꿨기에, 교육자로 살아온 시간에 대해 큰 보람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많은 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교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 밖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실무 감각을 익혀야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진정학 학연산의 가치죠.” 전문가의 자세로 해낼 것 ▲ 길 교수는 “위원장직 수행을 위한 이해상충 해결에 관한 장치가 잘 마련돼 있고, 저 역시 전문가로서 스스로 분명하게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길재욱 교수는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길 교수는 코스닥위원장직 수행과 함께 현대글로비스 사외이사직, 교수직을 모두 소화하게 된다. 이를 두고 쏟아지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길 교수는 “위원장직 수행을 위한 이해상충 해결에 관한 장치가 잘 마련돼 있고, 저 역시 전문가로서 스스로 분명하게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길 교수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향한 조언을 덧붙였다. “지적 호기심, 열정, 프로페셔널 인테그리티, 팀스피릿이 네 가지 태도를 갖고 조화를 이룬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3 28

[동문]산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지난 3월 18일,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회식을 끝으로 대한민국 두 번째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가리왕산은 이번 동계 올림픽의 스키 활강 경기장으로 지정됐다. 스키 활강 경기장에서의 일정은 단 3일. 그 3일을 위해 가리왕산은 나무 12만 그루를 잃었다.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은 그 아픈 참상을 카메라 속에 담아 사진 영상전을 꾸렸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그의 세 번째 전시는 지난 3월 28일부터 약 넉 달 간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공학도 그리고 시작한 2회차 사진작가의 길 조 동문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 10년, 개인 사업 10년 내내 사진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 때 대학미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진가다. “대학교 시절에 사진 동아리 ‘하이포’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강의실보다 동아리 방에 있던 시간이 길었죠.” 그랬던 조 동문은 회사에 다니고 경영일을 하느라 사진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한동안은 잊고 지냈다. ▲지난 3월 21일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을 조 동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조 동문은 사진작가로의 전업을 지천명에 찾아온 인생의 반환점이라 말한다. 인생의 반환점은 04년, 50살이 되던 해 조 동문에게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백두산으로 여름휴가를 갔어요. 거기서 만난 지인께서 백두대간을 오르자고 했죠. 그렇게 백두대간 산악회를 시작하면서 일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오직 산만 생각났습니다. 인생이 바뀌어 버렸죠.” 사진을 업으로 삼은 건 그 후의 일이다. 산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결국 ‘지천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정리했다. 어느덧 사진 경력 14년, 조 동문은 자신이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공부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가요.” 퇴사 후 사진 보정 작업을 위해 포토샵을 독학했고 책을 내기 위해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도 만들었다. 그동안 산을 타면서 허리, 무릎을 다쳐 수술도 했고 오른쪽 인대도 늘어나는 등 몸도 많이 상했지만,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대로다. “산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산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야 산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요.” 그가 렌즈 속에 산을 담는 방식 '생것‘은 조 동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단어다. “백두대간을 오르는데, 처음엔 산길 폭이 좁았어요. 근데 매번 갈 때마다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길이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게 싫더라고요. 이전의 ’생것들을 그대로 남겨놓자‘해서, 그때부터 그 말을 쓰게 됐습니다.” 그의 사진에 사람이나 인공물은 없다. 이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생것’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다. ▲조명환 동문이 출판한 사진집 중 일부. 모두 그의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에서 발간했다. 그가 사진을 찍는 방식은 다른 사진작가들과 차이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산을 많이 찾는다. 그리고 대개 해가 잘 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조 동문은 다르다. 그 시간에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오히려 날씨가 쾌청하면 카메라를 접어요. 사람들이 찍는 것처럼 똑같이 찍는다면 건질 게 없습니다.” 그는 주로 비나 눈이 올 때, 새벽이나 밤에 산에 오른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진이란 창조적인 것입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매번 찍어봐야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곧 예술의 본질이죠.”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조 동문은 산과 자연환경을 주로 찍다 보니 환경운동단체와 같이 활동하곤 한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산과 자연이 자신과 동화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벌목을 하거나 환경을 해치면 내가 아픈 거죠.” 가리왕산도 같은 사례다. 그가 가리왕산을 처음 찾은 것은 2006년. 그 뒤로 평창 올림픽에 지정됐다고 해서 ‘욱’하는 마음에 다시 가게 됐다고. “가서 사진도 열심히 찍고 책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올림픽은 시작 됐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파괴된 산의 모습을 넣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 소식을 들은 신문사가 그에게 취재요청을 했고, 조 동문의 인터뷰 기사를 본 곳에서 전시할 수 있게 갤러리를 내줬다. 경제적 요건 때문에 전시를 망설이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산 본래의 모습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매 촬영 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 번 밖에서 200장에서 300장을 찍어오면 컴퓨터로 3일 정도 작업을 합니다. 그러다 보정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면 혼자 일어나서 하나 건졌다는 생각에 기뻐해요.” 조 동문은 우리나라 산에 한국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 한국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마지막 한 장.” 그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늘도 산에서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조명환 동문의 세 번째 전시가 3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슬라이드 영상 형식으로 구성된다. (출처: 조명환 동문)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