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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 28

[동문]산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지난 3월 18일,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회식을 끝으로 대한민국 두 번째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가리왕산은 이번 동계 올림픽의 스키 활강 경기장으로 지정됐다. 스키 활강 경기장에서의 일정은 단 3일. 그 3일을 위해 가리왕산은 나무 12만 그루를 잃었다.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은 그 아픈 참상을 카메라 속에 담아 사진 영상전을 꾸렸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그의 세 번째 전시는 지난 3월 28일부터 약 넉 달 간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공학도 그리고 시작한 2회차 사진작가의 길 조 동문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 10년, 개인 사업 10년 내내 사진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 때 대학미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진가다. “대학교 시절에 사진 동아리 ‘하이포’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강의실보다 동아리 방에 있던 시간이 길었죠.” 그랬던 조 동문은 회사에 다니고 경영일을 하느라 사진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한동안은 잊고 지냈다. ▲지난 3월 21일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을 조 동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조 동문은 사진작가로의 전업을 지천명에 찾아온 인생의 반환점이라 말한다. 인생의 반환점은 04년, 50살이 되던 해 조 동문에게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백두산으로 여름휴가를 갔어요. 거기서 만난 지인께서 백두대간을 오르자고 했죠. 그렇게 백두대간 산악회를 시작하면서 일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오직 산만 생각났습니다. 인생이 바뀌어 버렸죠.” 사진을 업으로 삼은 건 그 후의 일이다. 산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결국 ‘지천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정리했다. 어느덧 사진 경력 14년, 조 동문은 자신이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공부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가요.” 퇴사 후 사진 보정 작업을 위해 포토샵을 독학했고 책을 내기 위해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도 만들었다. 그동안 산을 타면서 허리, 무릎을 다쳐 수술도 했고 오른쪽 인대도 늘어나는 등 몸도 많이 상했지만,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대로다. “산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산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야 산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요.” 그가 렌즈 속에 산을 담는 방식 '생것‘은 조 동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단어다. “백두대간을 오르는데, 처음엔 산길 폭이 좁았어요. 근데 매번 갈 때마다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길이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게 싫더라고요. 이전의 ’생것들을 그대로 남겨놓자‘해서, 그때부터 그 말을 쓰게 됐습니다.” 그의 사진에 사람이나 인공물은 없다. 이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생것’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다. ▲조명환 동문이 출판한 사진집 중 일부. 모두 그의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에서 발간했다. 그가 사진을 찍는 방식은 다른 사진작가들과 차이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산을 많이 찾는다. 그리고 대개 해가 잘 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조 동문은 다르다. 그 시간에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오히려 날씨가 쾌청하면 카메라를 접어요. 사람들이 찍는 것처럼 똑같이 찍는다면 건질 게 없습니다.” 그는 주로 비나 눈이 올 때, 새벽이나 밤에 산에 오른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진이란 창조적인 것입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매번 찍어봐야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곧 예술의 본질이죠.”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조 동문은 산과 자연환경을 주로 찍다 보니 환경운동단체와 같이 활동하곤 한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산과 자연이 자신과 동화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벌목을 하거나 환경을 해치면 내가 아픈 거죠.” 가리왕산도 같은 사례다. 그가 가리왕산을 처음 찾은 것은 2006년. 그 뒤로 평창 올림픽에 지정됐다고 해서 ‘욱’하는 마음에 다시 가게 됐다고. “가서 사진도 열심히 찍고 책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올림픽은 시작 됐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파괴된 산의 모습을 넣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 소식을 들은 신문사가 그에게 취재요청을 했고, 조 동문의 인터뷰 기사를 본 곳에서 전시할 수 있게 갤러리를 내줬다. 경제적 요건 때문에 전시를 망설이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산 본래의 모습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매 촬영 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 번 밖에서 200장에서 300장을 찍어오면 컴퓨터로 3일 정도 작업을 합니다. 그러다 보정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면 혼자 일어나서 하나 건졌다는 생각에 기뻐해요.” 조 동문은 우리나라 산에 한국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 한국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마지막 한 장.” 그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늘도 산에서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조명환 동문의 세 번째 전시가 3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슬라이드 영상 형식으로 구성된다. (출처: 조명환 동문)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

2018-03 22

[동문]당신의 옷장에 ‘예쁨’을 채워드릴게요

‘내일 뭐 입지?’ 매일 아침 찾아오는 고민. 분명 옷을 샀는데 입을 옷이 없어 옷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예쁜 옷을 사기 위해 휴대폰으로 인터넷 쇼핑을 한다. 하지만 다양한 가격대 속 넘쳐나는 상품 때문에 이것저것 비교하며 구매하기도 귀찮은 상황. 많은 여성이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서정민 동문(경영학과 01)이 쇼핑 앱 ‘브랜디’를 만들었다. 출시한지 2년 만에 누적 판매상품 300만 개를 기록한 ‘브랜디’는 여성들의 편리한 쇼핑을 담당하는 대표 앱이다. ‘오직 예쁜 옷만 모으는’ 브랜디 ‘오직 예쁜 옷만 모으다’는 지난 2016년 7월에 출시된 쇼핑 앱 ‘브랜디’의 대표 슬로건이다. 대표 서 동문은 소위 말하는 동대문 ‘보세’, 즉 브랜드가 없는 옷들을 한곳에 모아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회사를 창업했다. 브랜디는 안드로이드와 iOS에서 모두 다운로드가 가능하며, 현재 3000여 개의 여성 쇼핑몰과 블로그로 옷 공동구매를 하는 ‘블로그 마켓’이 브랜디에 입점해 있다. 브랜디는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앱을 다운로드 받으면 사용자의 나이를 기재하는 창이 뜬다. 나이 선택 시 이용자의 연령대에 따라 자동으로 추천되는 옷은 앱 메인에 노출된다. 그 외 쇼핑몰과 블로그 마켓의 여러 상품들을 손쉽게 조회하고, 찜하고, 구입 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베스트’ 상품과 새로 입고된 상품들을 5% 할인해주는 ‘New 5%’의 기능은 브랜디 만의 이점. 쇼핑몰의 사이트를 따로 방문하지 않고도 구경부터 결제까지 모두 가능하기에 이용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브랜디를 실행하면 처음 뜨는 창. 선택한 연령대에 따라 메인에 노출되는 옷들이 달라진다. ▲브랜디의 메인 화면. 서 동문이 꼽은 브랜디의 강점은 모바일 최적화다. “브랜디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는 정리가 잘 돼있어요. 상품을 보기 편리하죠. 사용자들은 앱을 켜면 평균 9분 정도를 구경 해요. 쇼핑몰에 개별적으로 접속해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이 복잡한데, 브랜디를 이용하면 짧은 시간 내 쇼핑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여러 ‘브랜드’들과 소비자인 ‘나’ 자신이 최적화된 플랫폼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이유로 서 대표는 ‘브랜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찍부터 창업에 도전한 청년 브랜디가 서 동문의 첫 창업 기업은 아니다. 지난 2007년에 디자인과 패션을 접목한 자체제작 티셔츠 사업을 시작했던 서 대표의 나이는 그 당시 27살. 창업 후 7년동안 경영을 도맡고, 타 회사에 인수된 뒤 2년 가량 근무하다 브랜디를 창립했다. “첫 사업 때 저는 학생이었어요. 그 당시 도와줬던 친구들이 브랜디의 초기 멤버로 같이 들어왔고요.” 서 동문의 재학시절엔 지금처럼 창업이 큰 인기를 끌지 않았다. 그를 포함해 창업을 하고 싶어하던 학생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학생 때는 ‘벤처창업경진대회’에 도전해 대상을 받기도 하면서 창업에 일찍 눈을 떴죠. 제 회사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일찍 한 것 같아요.” 서 동문은 자영업을 하는 친척들을 보고 자라며 자연스레 경영이라는 학문과 가까워졌다. 서 동문은 입학 때부터 품어온 창업에 대한 꿈을 입대 후 구체화했다. ▲"저희 회사의 목표는 거래액을 통해 돈을 버는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고객님들께서 '스마트'한 소비자가 되게끔 안내해 주는거에요." “그 당시 ‘한양벤처동문회’라는 동문회 모임이 있었는데, 3학년 때 동문회에서 보조 역할을 했어요. 그 때는 창업을 보통 30대에 많이 했기 때문에 제일 젊은 선배님께서 37세셨어요. 저는 완전 막내였고. 창업하겠다고 선배님들 쫓아다니니까 저를 예쁘게 보셔서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과감하게, 무경험으로 시작한 창업. 서 동문은 직원 채용, 조직관리, 그리고 재무 등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나이였기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고 서 동문은 말한다. ‘패션테크’ 사업에 앞장서다 남들보다 일찍 창업을 했던 서 동문은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브랜디를 시작했다. “지금은 정직하게만 전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쁜 짓 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다 보면 뭐든 되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요.” 부서별 리더들이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끔 매일 소통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그다. “한국에는 특히나 패션과 기술을 접목한 ‘패션테크(Fashion-Technology)’ 사업이 없어요. 여기서 패션테크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콘텐츠와 첨단기술을 패션사업에 적용하는 것을 뜻해요. 한국은 제조업과 유통에 치우쳐져 있죠. 이탈리아의 ‘육스(Yoox)’, 그리고 영국의 ‘파페치(Farfetch)’와 같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더욱 키우는 것이 목표에요.” 고객들이 브랜디를 통해 더욱 예뻐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서 동문은 브랜디의 기능을 대폭 확장할 예정이다. 개인에게 특정 의류를 추천하고 채팅을 통해 상담하는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라고. 오는 4월에는 브랜드 의류를 모아둔 플랫폼인 ‘Hyper’어플을 출시한다. ▲확장을 주 목표로 두고 있는 브랜디. 유명 쇼핑몰의 추가 입점과 더욱 넓은 범위로 마케팅을 할 계획이다. 남은 삶도 ‘창업자’로 살고 싶다는 서 동문. 자신과 직원들이 구상해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둘 때 마다 그는 성취감을 느낀다. “창업은 결국 ‘존버정신(끝까지 버틴다는 속어)’이 중요해요. 저도 처음에 들었을 떈 무책임하다 생각했죠. 하지만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쉬워 보이지만, 그 과정은 정말 고되거든요. 창업을 시작하려는 한양인이라면 1~2년 안에 승부를 보겠다는 목표보다는 훌륭한 창업자로 성장하는 본질적인 방법을 찾아야 해요. 버티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

2018-03 21

[학생]최고의 언어를 가진 두 무용수

얼마 전 인터뷰에 응한 조영재 동문 말고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무대를 빛낸 한양인이 있다. 우리대학 무용학과 학생들이 한국의 도깨비로서 ‘타오르는 소망의 불꽃’을 표현했다. 유천예(刘天艺, LIUTIANYI, 무용학과 3), 진천소(陈天笑, CHENTIANXIAO, 무용학과 석사과정) 씨가 그 주인공, 개막 공연에 참여한 다섯 명의 외국인 중 둘이다. 성화의 불꽃이 타오를 때 개막식 중 평창홍보대사 김연아의 성화가 점화되자 12명의 도깨비가 등장했다. 한바탕 난장을 이뤄지는 동안 강원도 곳곳 23명의 도깨비가 모였다. 도깨비로 분한 건 우리대학 무용학과 학생 23명. 그 중 두 명의 중국인 유천예, 진천소 씨가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지도교수이신 손관중 교수님이 저희를 선발했어요.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좋은 기회이니 놓치지 말라고 하셨죠.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난 14일, 미래자동차공학관에서 유천예(刘天艺, LIUTIANYI, 무용학과 3), 진천소(陈天笑, CHENTIANXIAO, 무용학과 석사과정) 씨를 만났다. 수백 번 옆돌기를 하는 등 4개월 동안의 혹독한 연습을 거치고서야 이들은 무대에 섰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유천예 씨는 “평창에서 한 달 동안 연습했는데, 너무 추워서 속눈썹이 얼어붙었고, 장이 놀라 병원을 갔다 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유 씨에게 평창의 감동은 컸다. “중국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볼 수 있어 신기했고, 무대가 끝난 뒤 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어요. 사진도 찍고 손도 흔들고. (웃음) 연예인이 된 것 같았어요. 매 순간 재미를 느꼈습니다.” 중국 양저우(揚州) 출신인 진천소 씨는 지난 2008년 열린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공연무대에 올랐다. “올림픽 성화 주자가 동네로 와서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축하 공연에서 춤을 췄어요. 그렇기에 한국을 대표해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은 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진 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균 다섯 시간의 연습량을 소화했다. “개막식 연습 중 5살 꼬마가 연습하는 모습을 봤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저도 힘낼 수 있었죠. 또한,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리허설마다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공연영상 확인하기) 춤과 한국을 사랑하다. 유천예 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했다. 9살 때 유 씨는 중국 전통 무용을 시작했다. “사실 무용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조금 웃긴데, 제가 목이 아주 짧았어요. 목이 늘어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무용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적성에 맞았죠.” 올해로 무용 14년 차 유 씨는 14살 때 한국문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전 중국 청도(靑島) 출신인데, 고향에 한국 사람이 아주 많아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했습니다. 10년 동안 중국전통무용을 배운 뒤 우연히 한국현대무용을 접했는데,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유천예(刘天艺,무용학과 3) 씨의 어릴적 모습 (좌), 개막공연의 무대의상을 입은 모습 (우) 유 씨는 춤을 창작할 수 있는 한국현대무용에 큰 매력을 느꼈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돼가는데 이제는 중국이 조금 낯설어요. 한국현대무용이 너무 즐거워 수업을 한 번도 빠진 적도 없죠.” 한국을 사랑하는 유 씨는 한국어에도 큰 매력을 느꼈고, 통역사의 꿈을 꾸게 됐다. “안무도 재밌지만 한국어가 좋아요. 한국어 자격증은 딴 상태이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진천소 씨는 지난해 3월부터 한국에서 한국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던 진 씨는 난징예술대학 (京藝術學院)에서 무용을 전공한 후, 무용 교사와 전문 무용수로 활약하며 경험을 쌓았다. “지난 2015년 국제무용콩쿨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한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한국무용은 서양 무용과 비슷한 점이 좋았고, 좋은 환경에서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진천소(陈天笑, 무용학과 석사과정)씨를 검색한 화면(출처:웨이보 갈무리) 진천소 씨는 현지 매체에 평창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로 소개되고, 웨이보(微博)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며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는 유명인이다. 중국과 한국의 무용을 통해 안무를 창작하는 안무가를 꿈꾸는 진 씨는 연습시간을 쪼개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 중이다. 진 씨는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에 오래도록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춤은 최고의 언어 진천소 씨에게 무용은 ‘최고의 언어’다.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몸으로 소통을 하는 무용은 진 씨에게 가장 큰 매력이다. 유천예 씨 또한 춤은 “예술과 영혼의 만남”이라며 “춤을 출 때는 감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춤의 중요한 영역이다.”고 했다. 한국에 오래도록 남아 무용을 하고 싶은, 누구보다 한국과 춤에 대한 열망이 큰 이들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편견은 마음 한 켠에 아쉽다. “우리와 같이 성실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이들이 바라는 점이라면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얼룩진 인식을 지우는 것이다. 전 세계인이 하나 되어 즐겼던 평창동계올림픽처럼, 언젠가는 모두가 따듯한 시선으로 서로를 대하길 기대해 본다. 이들에 관한 더 많은 소식은 다음 SNS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천예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진천소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3 15

[동문][사랑의 릴레이] 끝없는 배움과 나눔의 길, 삶을 꽃피우다

미국 회계법인 ‘리어카운턴시그룹(The Lee Accountancy Group)’의 이종혁 대표에게 지난해 11월 20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이 대표는 한양대 건축공학부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올해로 입학한 지 꼭 60년이 된 그에게 이 졸업장의 무게와 의미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리어카운턴시그룹 대표 이종혁(건축공학과 58) 동문 건축공학부 졸업장 받은 공인회계사 “제가 입학했을 당시 건축공학과 입학 정원이 50여 명이었어요. 건축공학과에서 3년 공부하고 공업경영학과로 전과해 졸업했으니 정작 공업경영학과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이 대표는 당시 건축공학과 친구들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번에도 도착하자마자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졸업장을 받은 이 대표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나도 이제 건축공학과 졸업생”이라고 말하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학위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학위만도 다섯 손가락이 꽉 찰 정도니 말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받은 공업경영학과 학사와 경영학과 학사, 미국에서 세법과 회계학으로 받은 두 개의 석사에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그에게 건축공학부 명예 졸업장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열아홉, 스무 살에 만난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을 아직까지 만나는데, 졸업장이 없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늘 허전함이 있더라고요. 뭔가 위축된 기분도 들었고요. 이제야 제대로 된 졸업장을 받았으니 좋을 수밖에요. 하하.” 그런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을까. 이 대표는 졸업증서 명예 수여식 자리에서 한양대에 발전기금 4만 달러 기부를 약정했다. 1년에 1만 달러씩, 4년에 걸쳐 총 4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귀소본능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는 한국의 모교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저를 키운 곳이잖아요. 한양대에 다니는 탈북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후배들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 ▲ 가지고 있는 걸 나누면 자신의 생각과 사랑이 더 크게 빛을 발한다고 말하는 이종혁 대표 소외 계층을 위한 다양한 나눔 활동 이종혁 대표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다양한 봉사 활동과 기부를 펼쳤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으로 미국 오클랜드시 정부와 함께 개최하는 ‘오클랜드 추수감사절 만찬’을 꼽을 수 있다. 저소득층 주민들과 노숙자 등을 포함해 2,500명가량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공연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는 26년간 이 행사를 진행하며, 만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부터 봉사 인력을 채용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도맡았다. “2016년까지 회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후임자에게 넘겨줬습니다. 북캘리포니아에서 그렇게 크게 행사를 연 건 처음일 거예요. 한국인을 주축으로 한 유일한 행사이기도 하고요. 덕분에 한국인들의 단합에도 큰 역할을 했지요. 워낙 오래된 행사라 꾸준히 참여하는 봉사자와 기부자가 많습니다.” 이 행사에는 한국인 외에도 백인, 흑인, 멕시칸, 중국인, 베트남인 등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이 함께한다. 그들과 한데 힘을 합쳐 행사를 완성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04년 제리 브라운 당시 오클랜드 시장(현 캘리포니아 주지사)은 3월 5일을 ‘이종혁의 날(Jong H. Lee Day)’로 공표한 바 있다. 소외 계층을 위해 꾸준히 만찬을 개최하고, 여러 인종을 화합시키는 가교 역할을 한 것에 대해 인정받은 것이다. 이 대표의 사랑의 실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만찬 행사 외에도 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조성에 힘쓰고 있다. 미국의 모교에 매년 15,000달러씩 기부하고 있는데, 장학금 기부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부금도 커져 학생당 500달러씩 지급하던 장학금이 2016년에는 2,000달러까지 늘었다. 이종혁 대표가 기부와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제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어요. 다섯 살이던 1945년에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6・25 전쟁 때 가족을 다 잃고 혼자서 자랐어요. 제가 배고파 봤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주변의 어려운 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어렵고 고됐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걸까. 그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면 기분이 참 좋아요.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꼭 내 것만은 아니거든요. 혼자 가지고 있으면 작게 쓰여지지만, 그걸 나누면 자신의 생각과 사랑이 더 크게 빛을 발하죠. 기부는 가진 게 많아야 하는 게 아니에요. 재벌이 큰돈을 내는 것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기부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그때 시작해야 합니다.” ▲ 지난해 11월 한양대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성공의 원동력은 끝없는 배움 1958년 한양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3학년을 마치고 군대(해병대)에 갔다. 전역 후 공업경영학과로 전과해 졸업했고, 이후 1~2년간 사회생활을 하다 1966년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그는 더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떠났다. 하지만 막상 낯선 땅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막막하고 힘들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간 그는 어느 교수의 추천대로 회계학을 공부해 공인회계사가 됐다. 그렇게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인회계사로 활동하면서 지난 1977년부터 회계법인 ‘리어카운턴시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며 특임교수로도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학생과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학교 공부를 마쳤다고 멈추지 말고 계속 공부하라는 뜻이다. 그가 평생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배움이다. 이 대표 역시 60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쉼 없는 배움으로 성공을 이뤄낸 그가 하는 말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해요. 언제까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계획하고, 몇 년 후에 내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단계별로 그려봐야 합니다. 미래를 그리지 않고 막연하게 공부하면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이 대표 역시 그렇게 공부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 끝없는 배움의 결과를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 이종혁 대표(왼쪽)가 명예 졸업장을 받은 후 이영무 총장과 기념 촬영을 했다 가정과 지역사회를 돌보는 리더 이종혁 대표를 만난 날은 그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한양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탓일까. 그는 앞으로 더 자주 한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또 미국에 있는 동문들의 단합을 위해 한양재단을 기획 중이라고도 했다. “재단을 통해 동문들이 친교를 맺고 자신감과 소속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사랑도 커질 거예요. 또 기금 마련으로 모교에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는 올해 78세가 됐다. 입학한 지 꼭 60년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그의 생각과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생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공인회계사 일 외에 납세자를 위해 국세청과 협상(Tax Resolution)하는 일에 좀 더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변호사만큼 법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죠.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또 사업적으로도 가능성이 큰 일이에요. 사업을 좀 더 확장하고, 봉사와 기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 전에 권투를 시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이토록 멈출 줄 모른다. 이종혁 대표는 후배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면서 열심히 생활하세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돌본다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지난한 세월을 스스로의 정신과 마음가짐, 철학으로 무장해 고난을 이겨낸 이종혁 대표. 끝없는 배움과 사랑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4

[동문][한양피플] 네 안에 숨어 있는 ‘너’를 깨워라

취업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도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무조건 우수한 인재를 찾기보다는 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찾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신세계 인터내셔날 인사팀에 재직 중인 문세환 씨는 자신감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면 취업의 문을 여는 것은 한양대 출신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글. 박도근 / 사진. 안홍범 ▲ 신세계 인터내셔날 인사팀 문세환(법학과 08) 동문 자기소개서를 통해 ‘너’를 보여줘 지난해 9월 교내 올림픽체육관에서 150여 개의 기업이 참여한 ‘2017 한양 잡 디스커버리 페스티벌’이 열렸다. 소속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 참가한 문세환 씨에게 이번 행사는 매우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 학교 후배들을 대상으로 취업 상담을 해주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문세환 씨는 그날 만난 후배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각별해 보였다고 한다. 그는 “채용 정보만 얻기 위해 온 학생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 회사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아 믿음직하고 뿌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취업의 출발은 자기 자신의 개성과 특성 등이 진솔하게 녹아 있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성장 배경, 성격의 장·단점 등의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에도 요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들과 차별화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제목은 면접관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제목에 걸 맞는 내실 있는 콘텐츠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문세환 씨가 지금 몸담고 있는 패션 회사를 지망할 때 썼던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평가가 좋았던 부분 역시 법학과를 2학년까지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1년 동안 고시촌에서 ‘패션왕’처럼 보냈다고 쓴 대목이었다. 과장이 조금 섞이기는 했지만, 독창성 부분에서 면접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이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시기를 덮어버리거나 감추기보다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입사하려는 회사와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문 동문은 '남들과 차별화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제목은 면접관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제목에 걸 맞는 내실 있는 콘텐츠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해군 장교로 전역 6개월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했다. 군 복무를 병행하느라 다른 지원자들보다 준비한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밝고 건강해 보이는 면접 태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라는 덕목은 취업 준비에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지원자가 그렇지 않은 지원자보다 수월하게 취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심하게 정답을 말하는 것과 조금 부족하더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누구나 틀리거나 모를 수 있어요.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회사나 기업도 좋은 인재를 뽑아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조건 학점이나 어학 실력 또는 인턴 경력만 믿고 쉽게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 신입 사원은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자기가 속한 부서나 팀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자신감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이유 또한 지원자가 기업에 몸담게 됐을 때를 고려해서다. 패션과 의상을 전공한 지원자가 대부분인 곳에서 법학과 출신의 해군 장교였던 그가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면접관이 어떠한 면에 가장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지를 예측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세환 씨는 “요즘 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재에 부합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며 “한양대 출신이라 좋게 본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우리 대학은 기업들이 무척 선호하는 학교 중 하나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스펙이 되는 만큼 후배들도 자신감을 갖고 취업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묻지 마 지원’을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적합한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순서라는 걸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내일은 오늘보다 취업에 성공할 확률이 0.1%라도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내면에 차곡차곡 경험이 쌓이다보면 언젠가 100%에 도달할 것이다. 그날이 한 달 뒤가 될지 일 년 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내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4

[학생][도전한대] 농촌과 농부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팜토리(Farmtory)는 농장(Farm)과 이야기(Story)를 합친 이름이다. 사명에서부터 팜토리가 지향하는 바가 잘 드러난다. 농장으로 상징되는 농촌과 농부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의미다. 김강산 대표가 농촌과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 팜토리 대표 김강산(기계공학부 09) 학생 먹거리에 담긴 가치와 신뢰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은 지난해 8월 발생한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극대화됐다. 1,239곳의 산란계 농장 중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는 52곳이었는데, 친환경 농가가 31개였고 일반 농가가 21개였다. 이에 친환경 인증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닭 사육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단가를 최대한 낮추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기존 유통라인은 대량소비 체제에 맞는 대량생산 방식으로 운영됐고, 품질보다는 가격으로 경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품질이 계속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반면 소량생산을 하면 좀 더 안전하고 높은 품질의 농산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계속 바뀌어갈 거라고 봐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와 다품종 소량생산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소비자와 농부 간의 신뢰를 토대로 직거래를 운영하는 팜토리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고 있다. 팜토리는 농촌과 농부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함으로써 소비자와 농부 간의 신뢰를 쌓아 농산물 직거래를 활성화한다. 농부의 이야기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농부와 소비자 간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 중 하나다. 또 농부가 직접 서울에 올라와 플리마켓 형태로 운영하는 농부시장을 개최해 고객과 직접 만나는 자리도 마련한다. 이는 경쟁업체와는 차별화된 팜토리만의 특징이다. “저희는 이제 시작 단계예요.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농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저희 팜토리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농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한정적인 마트 시식 코너와 달리 저희 농부시장에선 누구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자연스레 농부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되고요.” 첫 창업, 시행착오의 연속 김강산 대표는 지난 2015년 창업 공모전을 준비하며 스타트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공모전의 주제는 농촌 관광에 대한 것이었다. 우승을 하며 서비스를 론칭하고, 자연스레 창업을 했다. 덜컥 시작하게 된 창업이었던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했다. “지금 팜토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이전에 ‘트링’이라는 서비스가 있었어요. ‘트링’에선 농부가 직접 카드뉴스를 제작하는 등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저희가 미처 살피지 못하고 간과한 것이 있어요. 바로 농부들의 연령대였죠. 정작 사용자인 농부들이 이런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았던 거예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용자들이 저희가 제공한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팜토리는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갔다. 그러던 중 직거래 장터인 농부시장을 알게 됐다. 김강산 대표가 직접 생산자로 참여해 청년 운영진으로 활동하면서 농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농부시장을 알리는 한편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 상시 구매채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얼장(www.eoljang.com)’이 탄생했다. “트링의 경우 좋은 서비스였지만 사람들이 쓸 수 없었던 것처럼, 실질적으로 농부들께 필요한 것을 찾아서 이를 서비스화, 제품화하는 게 제 창업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그 과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고요.” 농부와 소비자의 행복한 동행 이제 시작 단계인 팜토리가 앞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객 분석이 가장 시급하다. 팜토리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과 생산자를 제대로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단 의미다. 팜토리가 주요 서비스로 내세우는 농부시장은 개최 장소에 따라 소비자의 성향이 뚜렷이 구분되고, 연령대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고객 분석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사무실에서 타깃 고객을 설정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했을 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장 데이터를 계속 축적해 이를 고객 서비스에 반영해 나갈 예정입니다.” 농산물 직거래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시스템도 좀 더 보강해나갈 계획이다. 팜토리와 함께할 농부를 꾸준히 발굴하고, 농부시장의 수도 늘려야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팜토리가 농부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시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농업 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일본보다 시스템적으로 낙후된 부분이 많아요. 게다가 농업은 우리 생활에 무척 밀접해 있는 분야지만, 그에 비해 관심은 덜한 편이죠. 저희가 나서서 그런 점들을 개선해 농업의 든든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창업 이후 쉼 없이 달려온 김강산 대표. 오는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아직 준비가 부족해요. 졸업을 앞둔 친구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예요. 모두가 완벽히 준비해서 사회에 나가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이 있으니까 잘해내리라 믿습니다. 학교 안에서 많은 수혜를 받은 만큼 졸업 후에도 한양대학교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흔히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의식주’를 꼽는다. 더러는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먹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위험한 먹거리에 늘 불안하다. 이런 시대에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끈끈한 신뢰를 구축하고, 바른 먹거리를 추구하는 팜토리의 움직임은 더욱 뜻 깊어 보인다. Q. 창업을 하면서 학교 프로그램을 이용한 게 있나요? A. 저는 교내 창업보육센터에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멘토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양대와 SK가 협력해 진행한 ‘SK 청년비상 프로그램’(청년 기업가를 위해 기술사업화, 소셜벤처, 투자 유치, 글로벌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었고, 덕분에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SK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할 수 있었죠. 특히 이 프로젝트에서 2016년 하반기에 진행된 인큐베이팅 기간 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당시 인연을 맺은 멘토께서 지금도 계속 멘토링을 해주고 계세요. 한양대는 창업 쪽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한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먼저 창업을 해본 경험자로서 창업을 꿈꾸는 한양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제가 수도권 대학생이 연합한 개발 연합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어서 지금도 동아리 회원들과 재미 삼아 창업대회에 나가곤 해요. 가보면 대부분 똑같은 아이템이에요. 사람들의 생각이 다 비슷한 거죠. 대개의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남들도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창업을 하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해요. 단순히 아이템만 가지고 무작정 시작하기보다는 그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하죠. 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어요. 자기 분야를 정하고 깊이 파고들어 차별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4

[동문]저는 공학도 잘하는 의학자입니다

'21세기의 석유'로 불릴 만큼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가 지닌 가치는 크다. 빅데이터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얕게 배우거나 상업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이도 많다. 이런 때일수록 묵묵히 연구를 진행해온 사람이 중요하다. 한현욱 동문(전자전기공학부 94)은 컴퓨터공학과 의학을 전공해 데이터로 의학을 연구한다. 그를 판교에 위치한 차의과학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공학과 의학의 만남 한현욱 동문이 걸어온 길은 공학과 의학 두 가지가 함께한다. 한양대 전자전기공학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이후 SAP에서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HANA'의 초기 개발자로 참여했고 LG전자기술원에서 근무한 바 있다. 이후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사면허와 의료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의료정보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주대 의과대학 의료정보학교실 조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차의과학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은 크게 두 가지를 하고 있어요. 의료정보학, 그리고 블록체인.” ▲최근 차의과학대로 자리를 옮긴 한현욱 동문(전자전기공학부 94)을 지난 12일 한 동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의료정보학은 단어 그대로 의료 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분야다. 환자의 질병, 치료 등에 대한 임상 데이터와 유전체와 의약품의 분자서열 등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한다. 한 동문의 강점은 공학석사까지 데이터베이스를 연구했다는 점. “각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다 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어요. 질병 간의 관계나, 특정 분자가 어떤 질병을 만들어내는지 파악하죠. 빅데이터로 제공되는 자료를 이용하거나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상호관계를 도출해냅니다.” 이렇게 도출한 관계는 기초의학의 세부 분야에서 필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기존 결과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기술 도입으로 데이터 수집 향상시키고파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도 궁극적으로 의료정보를 위한 일이다. 기존 체계에서 의료정보학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엔 한계가 있다. “임상 데이터가 많이 파편화 돼있어요. 의료법상 병원 내에서 이뤄진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자료는 외부서 볼 수 없어 여러 병원의 자료를 취합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한 환자가 한 곳에서만 진료 받는 경우는 적다. “암이 의심되는 환자가, 4~5곳 병원에서 진단 받은 후 치료는 한 곳에서만 받을 수도 있죠. 이런 경우에도 각 병원에 진단 데이터는 있지만 치료 데이터가 없어 결국 연구에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외에 환자 측면에선 내 임상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하죠. 이를 블록체인이 해결해줄 수 있을지 연구 중입니다.” 한 동문은 메디블록의 어드바이저다. 메디블록은 이은솔 동문(의학과 03)이 공동창립자로 있는 회사로 의학에 블록체인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공학석사이자 의료정보학 박사인 한 동문은 아직 초창기지만 블록체인이 의료정보학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는 블록체인을 통해 환자로부터 임상 데이터를 취합할 수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죠.” 임상 데이터를 제공할 때 마다 환자는 블록체인 속 토큰을 받는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는 데이터를 보관할 유인이 생긴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내는 셈.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에 불과해요. 그럼에도 블록체인이 정보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은솔 동문 참고기사 - '의료 정보 플랫폼의 새 판을 짜다') 관심이 이끈 길 데이터베이스로 공학석사까지 취득하고도 의전원을 간 건 주위의 추천이 컸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 접한 생물 관련 세미나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학교에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가 열렸어요.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하면서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에 한 세미나에서 생물 쪽의 데이터 관련 연구가 절실해질 거란 말을 들었죠. 그때가 게놈 프로젝트 얘기가 있던 때였습니다.” 생물 쪽으로 방향을 정한 한 동문은 끊임없이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대부분 ‘생물 관련 전공 지식이 크게 필요할 것이다’라며 관련 분야 대학원을 추천했다. 중간에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HANA의 개발자로 참여하는 등 잠깐 다른 길도 걸었지만 박사 과정에 대한 의향도 컸던 한 동문. 이내 차의과학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고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모두 밟아 의료정보학 박사가 됐다. “공학과 의학의 공부 방법은 너무나 달랐어요. 공학은 논리적 이해가 우선이었는데 의학은 암기가 우선이었죠. 저는 30대였는데 옆의 23살 동기는 젊어서 머리도 쌩쌩 돌아가고.(웃음) 그래도 박사 과정에서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이해도 덕에 관련 논문을 읽을 때 부담이 훨씬 덜했죠. 나중에는 공부 효율이 높았던 거 같네요.” 한편으로 한 동문은 끝내 원하던 의료정보학의 길을 왔다는 자부심도 있다. “의전원 특성상 임상 위주로 수업이 많아요. 그쪽으로 돌아서는 이들도 많은데 끝내 여기까지 왔네요.” ▲<이것이 헬스케어 빅데이터이다>의 저자 한현욱 동문은 책에 헬스케어 빅데이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실었다. 거품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히 한 동문은 최근 <이것이 헬스케어 빅데이터이다>라는 책도 냈다. 급증하는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 속 업계 전문가의 의견을 담은 책이다. “4차산업혁명 얘기가 나오면서 빅데이터에 대한 자료도 범람하고 있어요. 아쉬움이라면 대부분 상업적 측면에서 접근해서 의료쪽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지죠. 그간 기고한 칼럼이나 블로그 등에 쓴 글을 모아 펴냈습니다.” 한 동문이 펴낸 책에는 의료정보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실려있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헬스케어 빅데이터’란 단어 속에 의료정보학이 뭐고, 왜 의료와 정보를 별개로 할 수 없는지 소개한다. “가끔 주변사람들이 말해요. ‘너는 취미생활을 너무 오래하고 있다’고. 좋아하고 재밌으니까 남들이 잘 안오는 길도 오게 됐네요.” 취미생활이라고 농담하지만 그만큼 한 동문이 연구분야에 갖는 애정 또한 크다. 지금은 각광받지만 언제 또 사그라들지 모르는 빅데이터 열풍. 그 안에서 묵묵히 연구중인 한 동문이 새삼 눈에 띄는 이유다. ▲한현욱 동문의 주력은 결국 의료정보학이다. 블록체인 연구는 더 나은 연구를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셈이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3 13

[학생][동고동락] ‘레알밥도둑’ X ‘간장게장’의 대활약

지난해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국제로봇콘테스트&R-BIZ 챌린지에서 한양대의 ‘레알밥도둑’ 팀이 로봇 ‘간장게장’으로 대통령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재치 있는 팀명과 로봇 이름에서 그들이 이 대회를 얼마나 즐겼는지 엿볼 수 있다. ‘간장게장’의 우승을 이끈 ‘레알밥도둑’ 팀의 이도규·정현철·조민수(로봇공학과 13) 학생을 만나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사진. 안홍범 ▲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민수·이도규·정현철 학생 열정과 노력의 값진 결실 “금상! 레알밥도둑!” 호명이 되는 순간까지 긴장했다. 팀원들 모두 2등일 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자 마음을 접기도 했다. 완주 시간이 짧아 유리했지만, 미션 수행 과정에서 받은 감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우승이었다. 자율주행이 콘셉트였던 대회에선 간장게장이 어떻게 움직이든 팀원들이 손을 쓸 수 없었다. 그저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간장게장에게 바통이 넘어가는 것이다. 팀원들은 그렇게 간장게장이 펼치는 경기를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완주할 때까지 누구 하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저희가 열심히 노력해온 결과물이니까 제발 이탈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면서 경기를 지켜봤어요. 저희도 많이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에요.”(이도규) 점수는 소프트웨어 오픈 소스 평가와 대회 당일 경주 성적을 합산해 산출됐다. 레알밥도둑 팀이 대회 당일 미션 수행에서 감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소프트웨어 점수에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장게장은 빠른 시간 내에 완주했지만 감점을 받았어요. 반면 모든 미션을 통과해서 감점을 받지 않고 완주한 팀이 있었어요. 결국 저희가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소프트웨어 점수를 잘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픈 소스를 올리는 페이지를 마감 직전까지 붙들고 정성을 쏟았던 게 최종 점수에서 차이를 만든 거죠.”(조민수) ▲ 레알밥도둑’ 팀원들이 금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민수ㆍ정현철ㆍ이도규ㆍ정민재 학생 ▲ ‘레알밥도둑’ 팀은 우승 로봇 ‘간장게장’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학교 밖 또 다른 배움의 장 대회 출전 경험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알려준다. 많은 이들이 대외 활동을 권장하는 이유다. 레알밥도둑 팀도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강의실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접했다. 특히 간장게장을 움직이게 하려면 ROS라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는 팀원들에게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ROS는 Robot Operating System의 약자예요. 흔히 OS라고 하면 윈도우와 같은 운영체제를 떠올리는데, ROS는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로봇을 제어하기 위한, 로봇만을 위한 제어도구로 보면 될 거예요.”(조민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프로그래밍의 오류를 잡아내는 일이었다. 처음엔 분명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행시켰을 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시 확인을 해봐도 오류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오류들은 나중에야 아주 사소한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이런 식으로 한 군데가 막혀서 시간을 소모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레알밥도둑 팀이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들의 도움 없이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찾는 법을 익혔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며 제가 알고 있던 지식보다는 새롭게 접하는 지식을 활용해야 할 때가 많아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작업 환경과 같은 부분은 교수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정현철) “학교 강의실 안에서 배우는 지식 이외에도 실제로 지식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론이 통하지 않는 예외 사항도 많았는데, 그럴 때는 구글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야말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이도규) 대회 주최 측에서는 상금 대신 로봇을 상품으로 지급했다. 이는 참여자들이 결과에 안주하지 말고, 수상을 발판 삼아 더욱 성장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레알밥도둑 팀원들은 앞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일상생활에서도 친숙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사랑 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3

[교수][시선 집중] 융합적 사고로 학문의 장벽을 허물다

ICT융합학부 박은일 교수가 한국연구재단과 엘스비어가 공동 주최한 ‘2017 올해의 신진 연구자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잠재력은 물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연구자로 인정받았다. 특히 박 교수는 공학적 연구 방법과 인문사회학적 연구 방법을 접목시켜 신진 연구자로서의 도전적인 탐구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ICT융합학부 박은일 교수 ERICA의 ‘막내 교수’에서 ‘올해의 신진 연구자’로 한양대학교 ICT융합학부는 젊은 교수진들이 대거 포진한 신생 학부다. 그중에서도 가장 젊은 박은일 교수(31세)가 지난해 ‘올해의 신진 연구자’ 7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올해의 신진 연구자는 한국연구재단과 세계적인 학술연구 출판사인 엘스비어(Elsevier)가 학술적 성과가 우수한 연구자를 조기 발굴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2017년 처음 제정한 상이다. 대상은 국내 연구자 중 최근 10년 이내 국제 학술지(엘스비어의 우수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SCOPUS 기준)에 처음 논문을 발표한 39세 이하 젊은 연구자들로, 학술 연구논문 피인용 실적을 다각도로 분석해 선정한다. 첫 시상식이 열린 지난해에는 이공 분야 5명, 인문사회 분야 2명이 올해의 신진 연구자로 뽑혔다. 이 중 박 교수는 인문사회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자로 선정됐다. 사용자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상호작용 및 혁신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현재까지 국제 학술 논문 77편을 게재하고, 512회의 피인용 실적을 기록해 연구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공학박사인 자신이 인문사회 분야 수상자로 선정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은일 교수. “제 전공 분야가 전통적인 인문사회 분야가 아닌데 제가 받아도 되는 상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분야별 장벽이 높았는데, 최근에는 공학과 사회과학 방법론을 융합한 제 연구를 인문사회 분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교수의 논문은 특히 다른 연구자들에게 피인용되는 건수가 높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국제 학술지 발표 건수가 많아 국내뿐만 아니라 최근 급속한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 동남아 연구자들에게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는 박은일 교수의 연구가 국내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정보통신기술) 사용자들의 특별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ICT 트렌드를 선도하는 우리나라가 시험 무대 역할을 하다 보니 국내 현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려는 글로벌 연구자들이 많은 것이다. 연구의 핵심 키워드는 ‘사용자’와 ‘데이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몇 해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바일 소셜 게임 ‘애니팡’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연구다. 그의 박사과정 시절 지도교수인 엄재용(Jay Ohm) 교수와 공동으로 수행한 이 연구는 2014년 논문이 게재된 후부터 지금까지 110회가 넘는 피인용 횟수를 보일 정도로 그의 연구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연구로 여겨진다. 단순히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소셜 게임이라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주효했을까. 분석 결과 사회적 관계의 유용성, 즉 지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적극 표출하고 인간관계를 증대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던 것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내 학자로는 최초로 영국 에메랄드사에서 출판하는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급 국제 저명 학술지인 <프로그램 저널(Program Journal)>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이때 발표한 논문의 내용은 교육용 로봇의 활용도 및 선택에 있어 사용자들의 심리적인 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 분석한 것이다. 교육용 로봇을 단순히 공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사회과학 통계와 경영학 및 심리학적 연구 방법을 두루 접목시켜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모바일 게임과 교육용 로봇을 연구한 두 편의 논문만 봐도 관심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7월 지식경영학회에서 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논문은 기업의 혁신 활동이 고용 창출 등 경제적 성과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 연구한 것이었다. 그 밖에 다소 의외의 분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 평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한 바 있다. 그만큼 박은일 교수는 연구 대상을 경계 짓지 않는다. 일상생활 중 궁금하거나 불편한 점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연구 대상이 된다. 이렇게 박 교수의 연구는 어느 한 분야로 한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의 키워드로 귀결시킬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용자’와 그로 인한 ‘데이터’다. 모바일 게임이든, 로봇이든 이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일 터. 박 교수는 사용자의 경험과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관심을 끄는 분야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공학과 인문사회학적 방법론을 아우르며 연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결국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을 통해 도출되는 사용자 데이터를 해석해 그 의미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공학적 소양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학문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 박 교수는 '이제는 선제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사용자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미리 제시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다양한 대외 활동으로 융합적 사고 배양 예술과 과학을 넘나들던 융합형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박은일 교수도 처음부터 융합적 사고의 소유자였을까. 뜻밖에도 대학 시절에는 프로그래밍밖에 모르는 이른바 ‘컴돌이(컴퓨터공학도를 줄여 부르는 말)’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학과 인문사회학적 방법론을 융합하는 연구자가 됐을까. “석사 시절, 공동 지도교수였던 안헬 포빌(Angel Pascual del Pobil) 교수께서 다양한 외부 활동을 강조하셨어요. 1년에 해외 학술대회를 12회나 참가한 적도 있죠. 그때 디자인 등 전공이 아닌 분야에도 참가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왜 비전공 분야의 학술대회까지 참가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 방법을 접하며, 해결할 수 없으리라 지레 단념했던 문제들의 실마리를 예상 밖의 분야에 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연구 분야도 폭넓어졌다. “예전에는 ‘저 주제는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다른 분야의 연구 방법론을 접목시키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현재도 박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심포지엄이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유연한 사고로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계가 신진 연구자에게 기대하는 자세가 바로 그러한 것일 테다. ICT융합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게임, 음악 등 문화 콘텐츠에 접목시키는 컬쳐테크 전공을 가르치고 있는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대외 활동을 강조한다. “공모전, 학회 활동, 교환학생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성을 찾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 꿈을 이루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셀링 포인트를 만들어야죠.” 박 교수는 ICT융합학부 학생들이 입학 후 처음 접하는 전공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엄하게 기강을 잡는 편이다. 하지만 신생 학부라 선배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 때로는 선배를 대신해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하는 연구자 될 터 최근 박은일 교수는 사물인터넷과 스마트 시티(21세기의 새로운 도시 유형으로,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도시 구성원들 간 네트워크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효율적으로 짜여진 것이 특징이다) 내에서 예측되는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분야로 관심의 촉수가 뻗은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시티는 이제 막 추진되고 있는 사업인데, 어떻게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기존에는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이나 산업의 개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제는 선제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사용자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미리 제시해야 합니다.” 사용자 행동 분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용자 혁신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이를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회적·산업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연구는 상아탑에 갇힌 연구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박 교수의 연구 목표는 사용자 경험과 행동을 분석해 사회적·산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사랑 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3

[동문][꿈꾸는 청춘] 나의 청춘은 칠전팔기의 도전기

임진왜란의 3대 승전 중 하나로 꼽히는 행주대첩을 지휘한 권율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나이는 45세. 지난해 마지막 사법시험의 최고령 합격자로 주목받은 박종현 씨 또한 같은 나이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도전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진정한 청춘의 자세를 배운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제59회 사법시험 합격자 박종현(법학과 92) 동문 마지막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 신림동 고시촌에서만 꼬박 15년. 웬만하면 고시촌을 벗어나고 싶을 법도 하건만, 그는 만남의 장소를 굳이 신림동 인근으로 잡았다. 인터뷰를 마친 후 민사법 관련 스터디 모임이 있기도 하지만, 인생의 3분의 1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냈기에 가장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리라. “저는 여전히 진행형 인간입니다. 실패와 성공의 경계에서 다행히 한 번의 기회를 얻었을 뿐이죠.” 마지막 사법시험의 최고령 합격자 박종현 씨의 말이다. 지난해 11월 7일은 법무부의 제59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이다. 이날 발표는 많은 이들이 몇 곱절로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이번을 끝으로 지난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로 시작한 사법시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응시자와 가족들은 발표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발표 며칠 전부터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긴 박종현 씨는 차마 합격자 명단을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곁을 지켜준 아내가 그를 대신해 명단을 확인했다. 합격자 명단에서 그렇게 기다리던 박종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발견한 순간, 부부는 끌어안고 한참이나 기쁨과 회환의 눈물을 흘렸다. “가장 먼저 ‘다행’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15년 동안 노력한 시간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박종현 씨는 내심 이번에는 합격하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고 고백한다.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정신력을 곧추세우고, 그 누구보다 성실히 준비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 상태나 가정사 모두 원만했다. 모든 상황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최고령 합격자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마흔다섯 살이면 최고령 합격자치고는 어린 편입니다. 오십이 넘어 합격하는 분들도 있었으니까요. 최고령 합격자로 주목받으니 부담이 되기도, 쑥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징성이 있으니까 이 또한 고마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도전 또 도전 결혼 후 서른에서야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니 남들보다 도전부터 늦었다. 그리고 지난 15년 동안 사법시험 1차 시험만 10여 차례, 2차 시험은 6번이나 치렀다. 10년이 넘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가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버팀목은 무엇일까. “제가 좀 긍정적인 편입니다. 분명히 제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을 요즘 유행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정도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자신에 대한 충만한 신뢰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들보다 늦었다는 중압감이 없었겠는가. 한 해 한 해 수험 생활이 더해갈수록 심신이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깊이 응시했다. “20대 때는 망연한 좌절감에 빠져 자신감을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제 자신과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사실 마흔다섯 살이면 사회에서는 은퇴를 준비할 시기죠. 그렇다고 제가 마냥 좌절하고 있으면 하늘도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자신감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는 특히 어려운 역경을 헤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고전문학 속 불굴의 주인공들을 보며 힘을 얻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전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패에서 얻은 값진 깨달음 ▲ 박 동문은 '저는 여전히 진행형 인간입니다. 실패와 성공의 경계에서 다행히 한 번의 기회를 얻었을 뿐이죠.' 라고 말한다. 박종현 씨의 합격을 이야기하면서 아내와 가족들의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이다. 하루는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에 아내 몰래 사법시험 교재 편찬 일을 해 생활비를 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내는 너무나도 매몰차게 돈 봉투를 거절했다. 그리고 공부에만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때 정신이 바짝 나더라고요. 가족들과 아내가 끝까지 믿어줬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을 아쉬움에 되뇌게 된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재단하지 말고, 명확한 목표를 세워 정진할 것을 조언한다. “대학 때는 스스로 저의 한계를 제한했던 것 같아요. 그때 마음을 잡고 공부했어야 했는데, 돌아보면 후회도 됩니다. 학교에서 지원도 많이 해주는데 말이죠. 하지만 깨닫는 때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나이, 학벌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많은데 열심히 노력하면 기회는 분명히 있습니다. 빨리 깨달을수록 기회도 빨리 얻을 수 있겠죠. 또 근시안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보세요.” 자신처럼 그 깨달음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후배들에게 챙겨주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꿈을 향한 도전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그 과정을 걷는 이들에게는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는 것처럼 막막하기만 할 때가 있다. “그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꿈을 접고 포기하는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접었으니 더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후회도 많을 테고요. 산 정상에 올라가서 보면 힘든 길이 오히려 지름길일 수도 있어요.” 실패를 많이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제 무대에 오를 시간 오는 3월이면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2년간 수련의 과정을 걸어야 한다. 그에 앞서 연수원 동기들과 스터디에 여념이 없는 중이지만, 틈틈이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 친지들과 만나 10여 년 만의 회포를 풀고 있다. 또 여행이나 악기 배우기 등 합격 이후로 미루고 하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들을 하나하나 실천 중이다. 유럽 여행을 앞두고 새벽마다 영어 회화 학원도 다니고 있다. 사법연수원에서의 생활도 기대가 크다. 최고령자가 자치회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본의 아니게 자치회장 내정자가 된 그는 대학 시절 고등학교 동문회장을 지낸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치회장은 그렇다 치고 최대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동기들과 생활해야 하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을까. “고시촌에서도 저보다 한참 어린 수험생들과 잘 지냈습니다. 불편해하지 않도록 먼저 다가가야죠. 잘 어울릴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게 얻은 기회이니 더욱 치열하게 살 계획입니다.” 비로소 법조인의 관문을 통과했으니 앞으로 전문성을 쌓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박종현 씨.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그렇기에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쓰일 것이다. 오랫동안 고치 속에서 때를 기다리던 꿈이 드디어 날개를 펼칠 시간이다. 사랑 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