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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25

[동문][희망, 100℃] 부족한 세대의 기억이 나눔의 시작이 되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아낸 황인수 회장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생각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내가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시작한다는 황 회장의 의지는 모교 건축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었고, 최근 총장전략기금 1억 원 기부까지 이어졌다. 부족함을 기억하는 세대도 자신의 세대가 마지막일 거라며, 그렇기에 더욱 나눔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 성일건설 회장 황인수(58 건축공학) 동문 현장과 강의실을 오가며 몸에 밴 공부 사실 한양대 입학은 황인수 회장의 선택이 아니었다. 타 대학 낙방 후 교육자인 형님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건축이 필요하다며 한양대 건축학과를 추천하였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장학금도 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학교 공부만 해서는 현장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학과공부에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바로 체득하고, 현장에서 알고 싶었던 것을 강의실에서 배우며 공부가 몸에 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현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4학년이 되면서 설계도를 그리게 되었고, 현장감독을 하면서 나이에 비해 빠른 경력을 쌓았다. 이 경력으로 군 입대 후에는 공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군 생활 중 신일토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정말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신일토건에 다니면서 굵직굵직한 공사를 많이 했지요. 한창 일에 재미가 붙고 건설시장 체계를 알 즈음 창업을 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셋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들과 내가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들이 남들보다 빠르고 성공적인 출발선이 되어 주었죠.” 행동이 가장 강한 설득력 삼십대, 남들은 직장을 얻고 일을 알아갈 때쯤 사회적으로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황 회장은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안정을 선(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때 삶의 지표로 세운 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는 생활, 봉사하는 생활’이라는 쉽지 않은 좌우명이다. 당시 서울지구 JC특우회 회장이었던 그는 새벽에는 현장을 돌고 오후에는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충북 단양의 한 시골에 일본 JC에서 지원해 온 치과의사들과 협력해 무의촌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또한 소득증대사업으로 발을 짜 판매하는 방식으로 낙후부락이었던 마을을 자립부락으로 만들며 놀라운 기적을 함께 이루어내기도 했다.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부족함은 불편한 일이지만, 제 경우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이 저는 기부와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인색함이란 있을 수 없죠.” 정신없이 현장을 오가면서도 그의 봉사하는 삶은 중단되는 일이 없었다. 서울남산로터리클럽 회장을 하며 중국 연변에 의료봉사활동을 추진하였고, 재작년엔 네팔에 도서관을 건립하여 현재 도서기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10년 동안 한양대 동문 부회장을 하며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에도 솔선수범하였다. 늘 남을 독려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행해야 설득력을 가진다는 황 회장은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현장에서에서 5,000만 원을 기부하였다. 동문회장이 먼저 시작하니 줄줄이 기부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만 10억 원을 모금한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 황인수 동문은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제게 부족함은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은 기부와 봉사입니다." 라고 말한다. 가까운 곳의 어려움을 챙기는 성일장학재단 기부나 봉사를 시작하는 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는 황인수 회장은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도와줄 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때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일건설의 경우 2007년부터 사단법인 성일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건설시장이 위축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진 현장 소장이나 하급직원의 자녀들을 추천받아 1년에 10명 안팎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세월이 10년 흐르다 보니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들도 이젠 꽤 많아졌다. 그 수가 많아진 만큼 잘 된 학생들의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한 번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며 한 학생이 인사를 온 적이 있었다며, 일찍이 많은 것을 이루었던 자신에게 인생의 즐거움이란 이렇게 곳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황인수 회장은 결혼을 하면서 아내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책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아껴 쓰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집을 샀고, 아이들을 교육했고, 후일엔 후배들을 위해 쓰면서 한양대 발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현재의 후배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시작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한다면 더 좋지 않겠냐며, 황인수 회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25

[동문][희망, 100℃]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교육입니다

창업지원단 발전기금과 총장전략기금으로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했지만, 그는 ‘남을 돕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기부를 ‘사회적 투자’로 정의하는 유현오 단장은 이번 기부는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고 한다. 창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자신과 같은 창업 성공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고, 제2, 제3의 젊은 유현오가 나와 다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기부는 그러한 선순환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장 유현오(97 섬유공학(院)) 동문 자신에게 정의를 외쳐라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다는 유현오 단장은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길 당부한다. 자신을 향한 정의는 무엇일까?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자신의 인생을 어른들이 결정해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흔한 모습이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었다면 이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실패를 빨리 경험하고 강한 젊음을 만드는 과정을 몸소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자리가 날 때가 있죠. 거기에 누가 앉느냐? 바로 노약자들이죠. 건강한 사람들은 보통 서서 갑니다.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만 찾는 세태는 위험합니다. 중소 벤처기업에 가서 회사를 키우고 나아가 자신의 회사를 일구는 도전의식이 없다면 나라도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건강한 창업 풍토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양대학교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외치지만, 그 혁명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을까? 한양대처럼 오픈된 플랫폼을 완비하고 있지 않다면 4차 산업혁명도 결국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 유현오 동문은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세요.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세요." 라고 말한다 교육은 가장 수익이 높은 투자 유현오 단장이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그 플랫폼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막상 창업지원단에 부임해 보니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기부를 해서라도 창업지원단을 구글 캠퍼스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오피스 인테리어부터 경직된 이미지를 버리고 구성원들이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창업지원단의 빅 픽처(Big Picture)는 유 단장의 비즈니스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 일명 ‘하유미팩’이라 불렸던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생산·판매하는 ‘제닉’을 창업하고 매각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비즈니스의 우여곡절은 그 자체로 성공 케이스이다.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5년 간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죠. 제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게 된 후, 교회 내의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멘토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전해서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포럼이 되었고, 이 포럼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2013년에는 창업자가 닮고 싶은 롤 모델 1위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이번에 한양대로 오게 된 것도 그때 느꼈던 보람과 류창완 전임 글로벌기업가센터장님의 ‘너 같은 사람 하나 더 만들어 보자’라는 독려가 컸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가치 있는 일 평균수명이 100세 이상이 되면서 퇴직 이후의 인생 2막이 그만큼 길어졌다. 퇴직 이후에도 이젠 창업은 필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미리 공부하자는 게 유 단장의 조언이다. 스스로가 한양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고, 졸업 후 창업을 했던 까닭에 학교에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의 공부가 실제 창업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실효성 있는 과정이 되려면, 커리큘럼과 인적자원, 하드웨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의 기부금이 쓰일 것이다. 유 단장은 본인이 ‘성공한 창업자’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린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자신의 성공을 알리지 않는 반면, 사업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들은 너무 흔하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창업을 두려워할 수밖에…. 그래서 더욱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널리 알려서, 사업을 하면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위인처럼 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유현오 단장은 ‘창업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그 가치 있는 일에 어렵게 번 돈을 쓰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한정화 경영대학 교수가 본인에게 학교로 올 것을 권유하며 했던 말처럼, ‘훗날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께 그냥 놀다 왔다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이 그가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24

[학생]준비된 아마추어 투수, 프로를 정조준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6월 26일, 10개 구단의 ‘2018 신인 1차 지명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대학의 좌완 투수 최채흥(생활스포츠학과 4) 씨는 대학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받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최채흥 씨를 지난 16일 ERICA캠퍼스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최고의 신인, 슈퍼루키 신장 186cm, 몸무게 96kg. 딱 봐도 건실한 체구의 소유자인 최재흥 씨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1차 지명의 소감을 밝혔다. “지명되는 순간 기뻤다기보다는 감사했어요. 그 날 고마운 분들에게 전화를 많이 돌렸죠.”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구선수로서는 누구나 꿈꾸는 프로의 명찰을 달았음에도, 최 씨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받는 지명이다 보니, 기분이 좋아서 지명받은 그 주는 정말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는 프로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네요.” 고교 시절 팀의 4번 타자면서 1루수로 활약한 최 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돌연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2014년 대통령기 우승에 이어, 2015년 U-21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정되며 투수로서의 두각을 나타냈다. 대통령기 전국야구대회에서는 4안타만 허용하며 투수상을 타냈고 다음 해에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정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이처럼 최채흥 씨는 자신의 기량과 노력을 모두 보여주며 대학야구계를 흔들었다. ▲최채흥(생활스포츠학과 4) 씨는 2018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고 있는 슈퍼루키다. 물론 프로가 되는 것이 마냥 편한 일은 아니다. 프로는 ‘Professional’의 약자다. 전문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프로라는 것은 그 분야에 있어서 특출난 실력을 매 순간 증명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최채흥 씨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국제 대회를 포함해 여러 시합에 등판했고 수많은 이닝을 소화했어요. 그러면서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감각도 기를 수 있었죠.” 최 씨의 단호하지만, 확신에 찬 발언이 이어졌다. “경기를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제가 올해 드래프트 된 인원들 중에서 상위권이라고 생각해요. 구위도 좋고요.” 자신감 넘치는 그도 실패의 쓴맛을 본 기억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신인 드래프트에서 더 잘하는 또래 선수들에게 밀려났을 당시 최채흥 씨의 실망은 컸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드래프트가)안 되니 실망했어요. 아버지께서도 크게 실망하셨고요.”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최 씨는 아버지를 설득해야만 했다. “‘대학 가서 더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 돈 더 많이 받겠다’라고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이야기하다가 너무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채흥 씨는 “실패하고 진학한 대학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으며 드래프트 되었다”라고 말했다. “대학 가서 잘할 거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된 거죠!” 보이 투 맨,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최고구속 147km대의 공을 던지는 강력한 좌완 투수이자 주목 받는 루키. 이런 최채흥 씨에게도 야구공을 처음 쥐어 볼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갔어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연히 쉬운 길은 아니었다. “처음 들어가서 운동장을 도는 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계속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한 달 후에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했죠.” 어렸던 최채흥 씨가 야구를 계속하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에는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집 형편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도 반대하셨고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뭐든지 잘한다’고 생각하셔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최채흥 씨의 야구 사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로부터 13년 동안 줄곧, 최채흥 씨의 야구 사랑은 마운드에서 이어지고 있다. (출처: 최채흥 씨) 마음을 다잡고 야구에 매진해 중학교 때까지는 투수를 맡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신체조건의 문제로 타자 포지션을 맡게 됐다. 투수 하나만 보고 야구에 뛰어든 최 씨에게는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에서는 타자와 1루수를 맡게 되었지만, 투수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순 없었다. “본업의 타자지만 투수 훈련도 했어요. 제가 왼손 투수에, 키도 크니, 구속만 조금 빠르면 투수로서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최채흥 씨는 야구 감독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왼손 투수는 지옥 끝까지 가서도 잡아 와야 된다’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감독님께 강하게 어필했어요. 투수가 정말 하고 싶다고 말이에요.” 천운인지, 그 당시 한양대학교 야구부의 감독이던 김한근 감독 역시 최 씨를 투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님하고 이야기하고 곧바로 투수로 포지션을 이동했죠.” 바라던 투수로 전업했지만, 이번엔 무슨 훈련을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운동하는 방식도 몰랐고,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이수민 선수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최 씨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수민 선수는 최 씨가 투수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수민이를 목표로 잡고 열심히 했어요. 잘하는 친구니까요. 지금은 둘 다 프로가 됐으니 서로 배우면서 돕고 사는 관계죠.” 오랜 동창을 회상하는 최 씨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최채흥 씨는 현재 올해 마지막 대학리그를 뛰고 있다. 시즌 초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는 그에게서 대학야구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어렵다, 하지만 도전한다 2018년, 프로 데뷔를 앞둔 최채흥 씨의 포부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길게 잡기보다는 1년 계획을 세우는 편이에요. 내년 목표는 1군에 있으면서 부상 없이 신인왕까지 하는 게 목표입니다.”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선발투수로서 자리 잡아야 하는 동시에, 신인 투수로서 평균 134경기 중에 10승 이상을 거둬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목표다. “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죠. 물론 프로를 얕보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해내야 신인왕이 될 수 있어요. 또, 목표는 크게 세울수록 좋으니까요.” 현재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을 야구에 던졌다는 최채흥 씨. 가장 재미 있는 것도 야구,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야구라고 최 씨는 말한다. “야구인으로서의 인생에 대해서는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더라도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든 야구를 하고 있을 것 같네요. 야구를 더 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이 야구를 하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보고 <제2의 최채흥>을 꿈꾸길 바란다는 최채흥 씨. 2018년, 프로의 마운드에 올라설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7 17 중요기사

[동문]TAKE #삶, 부끄럽지 않을 인생을 연기하는 남자

“이제 더 이상 나쁜 마음 안 먹고 아빠 노릇 제대로 하겠다." “전하께는 수백 궁녀 중에 하나지만 나한테 너는 이 세상 전부라고!” “네가 그딴 짓을 했어도 넌 나에게 첫사랑이었어.” 한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 속에서 직접 읊은 대사들이다. 때로는 동네의 음험한 불량배로 변신했다가도 어느샌가 가족을 챙기는 훈훈한 가장이 돼 있다. 시청자들이 익숙해질 새도 없이 새로운 배역을 찾아 나선다. 연기자 최대철 동문(무용학과 97)의 이야기다. 장마가 잠깐 그친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최 동문을 만났다. 버티는 사람이 기회를 마주한다 비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얼굴을 내민 시간, 최대철 동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카페로 들어왔다. 2002년 무용가 첫 데뷔에 이어, 같은 해 연극배우로 데뷔한 최대철 동문은 2005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출발점으로 공연 15편, 드라마 23편, 영화 2편에 출연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은 최 동문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고 <우리 갑순이>는 수많은 시청자의 사랑 속에 ‘아줌마들의 박보검’이라는 별명을 선사해준 작품이다. 비단 두 작품만이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 진심을 담아 연기해온 그다. “그동안 부담되는 연기는 없었어요.” 최 동문은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대본을 받고, 분석하고, 연기하는 게 배우가 할 일이잖아요. ‘아, 내가 이걸 어떻게 자유롭게 표현해볼까’ 이런 고민은 해보죠. 그래도 저처럼 가리지 않고 해보는 배우한테는 고민할 게 있나요. 일단 하는 거죠.” 물론 출연이 잦아질수록 몸은 바빠진다. 배우가 생업이라지만, 같은 또래 배우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웃음).” 최대철 동문은 “버티다 보니 기회도 오고, 시청자도 좋아해 주는 날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최대철(무용학과 97) 동문은 최근 드라마 업계에서 시청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명품 배우다. (출처: 최대철 동문) 최 동문은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맡은 배역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이렇게 배우 생활 15년 동안, 한 해도 빼먹지 않고 작품활동에 몸을 던진 이유 중 하나는 1991년 영화 <가위손>에서 조니 뎁이 보여준 열연 때문이었다. “옛날 영화 중에 <가위손>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조니 뎁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게 사람인지, 인형인지 헷갈렸어요. ‘와,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느꼈죠. 그때부터 배우를 꿈꿨어요. 1991년, 그때부터였네요.” 물론 꿈 하나만 가지고 뛰어든 것은 아니다. 데뷔 이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느낀 책임감은 최 동문이 작품활동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계기가 됐다. “(무명시절의 어려움을) 모두 이야기하기엔 힘들죠. 쉽게 이야기하자면, 결혼하고 아이 둘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 연극하며 살기엔 대한민국은 어려운 나라예요.” 하지만 최대철 동문은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본인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무명 시절을 겪은 배우들이 가장 오래가는 배우들이에요.” ‘연기자’ 최대철의 탄생 주변 사람의 조언이건, 악당과의 만남이든 모든 영웅의 탄생에는 비화가 있기 마련이다. 2017년 현재, 드라마 시청률의 ’영웅’이 된 최대철 동문에게도 그만의 탄생 비화가 있다. 최 동문이 처음부터 연기에 몸을 담은 건 아니었다. 한때 그는 2002년 '대구 신인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따낼 만큼 전도유망한 무용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행한 사고가 터졌다. “무용과를 졸업했지만, 중간에 무용하다가 팔을 다쳤어요. 결국 콩쿠르에 입상하지 못했죠. 그 길로 ‘무용은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몸을 담았어요.” 무용이 아닌 다른 길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막막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뮤지컬에 맨몸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최대철 동문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무작정 뮤지컬 하러 가서 현장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매일 선배들 하는 거 보고 배웠고요. '목젖은 어떻게 내려요?, 연기는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며 막 배웠죠.” 그렇게 뮤지컬 8년, 연기 10년이란 세월 동안 악착같이 매달렸다는 최대철 동문이다. ▲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조금식 역을 맡아 중년의 그윽한 로맨스를 연기한 최대철 동문 (출처: 우리 갑순이, 2016) 조금씩이었지만, 진전이 있었다. 꾸준히 매달리다 보니 앙상블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주조연, 주조연에서 주연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무용을 배울 때 몸에 익혀 두었던 춤 역시 그가 뮤지컬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물어보는 게 창피하지 않았죠. 지금에서야 물어보는 건 조금 부끄러운데,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물어보는 사람이) 누가 됐든 간에 당연한 것 같아요.” 꾸준히 연기에 매진한 15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아온 최대철 동문. 혹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을까. “그럴 일은 없어요. 최대철이란 사람은 1명이에요.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따라 하거나 ‘연기 패턴을 그 사람 식으로 해야지’ 하면 헷갈리는데, 저 자신인 최대철이란 사람의 말투와 그 자체로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오히려 감독이나 연출 쪽에서 “야! 그 어느 배우 있잖아, 그 배우처럼 못해?” 그러면 그때부터 헷갈리는 거죠.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있는 그 자체로,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최대철 동문은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한계는 한계일 뿐,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진심으로 표현하는 게 진짜 연기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배우에게 한정된 역할은 없어요. 한정된 연기를 보여주는 순간 사람들은 ‘연기 다 됐다’고 하죠. 한계를 두지 않고 모든 역할에 진정성을 두고 열심히 하는 거죠.” ▲최대철 동문은 올해 개봉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에 출연할 예정이다. 자신이 찍는 영화에 또다시 한 씬을 더하는 최 동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출처: 영화 히야 中, 2016) 평점: 후회 없이, 부끄럽지 않게 최대철 동문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한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간의 경력을 쌓으며 마음속으로 새긴 답은 단순하지만 한 번쯤 곱씹어볼 수 있는 말이었다. “저는 지금 내 삶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같아요. 각자가 태어난 삶의 첫 컷이 어머니 뱃속에 태어날 때예요. 그게 필름의 첫 컷이죠. 카메라는 없지만, 자신이 주연도 감독도 하는 거예요. 테이크는 길고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내 인생, 영화 한 편 잘 찍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뒤돌아봤을 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최대철 동문. 그는 인생의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중에 본인이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만큼, 진실하고 거짓말 안 하고 약속 잘 지키고 배려하는 삶. 그렇게 살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그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일 거로 생각해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후회와 망설임 없이 다음 작품으로 몸을 던지는 최대철 동문.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2017-07 16 중요기사

[학생]세계 3대 과학서적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다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CO2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세계적으로 다양한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대학 연구팀이 낸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에 대한 논문이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저명한 출판사인 스프링거(springer)의 제의를 받아 책까지 내게 됐다. 김태홍(자원환경공학과 박사과정) 씨는 이근상 교수(자원환경공학과)와 함께 '셰일 가스 저류층의 통합적 이해(Integrative Understanding of Shale Gas Reservoirs)'를 펴냈다. 뉴스H가 김태홍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계 3대 과학서적 스프링거에서 온 러브콜 신간 서적이 출판된 곳은 세계 3대 의학, 과학서적 전문 출판사인 스프링거(springer). 김태홍 씨는 자원환경공학과의 '학생' 중에서 최초로 계약을 맺었다. “제가 당시에 미국 쪽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셰일 가스 관련 연구 논문을 2편 정도 썼는데, 그걸 보고 스프링거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출판사의 제안은 이례적이었다. 전문 교수의 성과도 아닌 학생의 성과인데다가 아직 과정중에 있는 연구였기 때문. 애초에 논문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근상 교수님께서 그 논문을 좀 더 일반적인 내용으로 확장해서 책으로 써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기왕 한 거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에 교수님과 함께 몇 달 동안 밤낮으로 썼어요.” 그렇게 낸 책은 총 2300부가 팔렸고 전자책으로도 출간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김태홍(자원환경공학과 박사과정) 씨가 책 '셰일 가스 저류층의 통합적 이해(Integrative Understanding of Shale Gas Reservoirs)'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셰일 가스는 뽑고, CO2는 줄여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책 출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해 최근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5.7의 'Applied Energy'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근상 교수와 함께 저술한 이 논문은 셰일 가스를 추출하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격리하는 방법으로, 매우 단단한 퇴적층인 셰일에 CO2를 주입해 격리하는 것에 관한 연구다. (지난 기사 보기 - Production of Green Energy) 이들이 연구한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은 가스로부터 CO2를 분리해내고 흩어지기 전에 채집해 고농축 상태로 지하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기존 방식대로 CO2를 지하로 주입하는 것은 큰 비용이 든다. 김 씨와 이 교수는 기체상의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저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효용을 창출하는 점에 착안해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이산화탄소가 지하로 주입되면 셰일층에 저장돼 있던 천연가스인 셰일 가스를 밀어내면서 천연가스를 쉽게 추출하는 특성을 이용한 것.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CCS)의 기본 모형. (출처: Global CCS Institute) “세계 3대 과학 저널인 네이처가 임팩트 팩터 40 정도니까, 국내에서 5 정도면 상당히 높은 공신력인 셈입니다. 저희 과 대학원생 평균 임팩트 팩터는 평균 1~2 정도거든요. 논문이 게재되고 몇 달 안 돼서 인용이 됐다고 메일이 와서, 잘 썼구나 싶기도 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논문 쓰고 나서도 이 정도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고. “세계적으로도 워낙 새로운 분야고, 국내에서는 거의 연구하지 않던 분야라서, 많이 좋아해 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책도 쓰고 기분이 좋아요.” 물론 아직은 세계적으로 미개척된 분야다 보니, 논문 완성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계약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미국에 가서도 자료를 얻고, 연구 지원받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미국에서도 주목받던 주제라서 여러 과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관련 분야의 인기가 사그라들어서 연구가 어려워질 뻔했죠. 이때 이근상 교수님께서 큰 도움이 되어 주셨어요." 김 씨와 이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연구 과제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셰일 저류층에 CO2를 주입해서 경제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점 과제다. 또한, 기존에 연구하던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도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학과의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연구 김태홍 씨는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줄곧 자원환경공학과를 다니며 현재 박사 4년 차를 지내고 있다. 그만큼 자원환경공학과와의 인연도 깊다. “1학년 때 산업공학과, 원자력공학과, 지구시스템공학과 3개 과의 개론 수업을 하나씩 들어봤는데, 당시에는 국내에서 지하자원 쪽에 투자를 많이 할 시점이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지하자원 개발하는 그 자체가 멋있어 보였고 에너지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하단 생각에 전공을 결정하게 됐죠.” 끝으로 김 씨는 미래의 연구자를 꿈꾸는 후배들을 향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해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대학원에 들어갈 당시, 저희 과의 전망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걱정이었어요. 그래도 꿋꿋하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렇게 잘 풀려서 책도 쓰게 됐네요. 전망이 좋은 쪽을 선호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어찌됐든 본인이 꿈꾸는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태홍(자원환경공학과 박사과정) 씨는 "앞으로도 자원 개발 연구에 계속 매진해 우리나라의 활발한 자원 개발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7 11 중요기사

[동문]발레, 그리고 대중화를 꿈꾸다

지난 6월 2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널찍한 차도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에서 독특한 버스킹 공연이 펼쳐졌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십여 명의 무용수가 파란불이 켜질 때마다 달려 나와 발레를 선보인 것. 뮤지컬 <캣츠>의 노래에 맞춘 공연부터 스윙 댄스까지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다음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이 아름다웠던 공연은 우리대학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의 기획으로 진행됐다. 무용수부터 발레단 단장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을 발레와 함께한 김 동문을 만났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다 김길용 동문은 우리대학 무용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 조승미발레단에서 상임 안무가를 지낸 바 있다. 이후 몇 년간 강단에만 서다 와이즈발레단을 창단해 십 년 넘게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로 이뤄진 스완스발레단을 창단했다. 김 동문이 와이즈발레단을 만들 때 세운 원칙은 '초대권을 배포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레와 같은 클래식 공연은 평론가나 교수 등 예술계 사람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남는 좌석이 없기 위해서인데, 이를 과감히 포기했다. “객석이 차는 게 겉보기엔 더 좋아요. 하지만 돈을 주고 보는 관객들이 늘려면 초대권을 뿌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일반 관객에게 초점을 맞추겠다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현재도 정기후원자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초대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은 국립발레단, 조승미발레단을 거쳐 와이즈발레단과 스완스발레단의 단장을 지내고 있다. (출처: 와이즈 발레단)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김 동문은 일반 관객들이 발레를 보러 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와이즈발레단을 처음 만들었을 땐 ‘우리’ 발레단의 인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리뿐만 아니라 발레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핵심이란 걸 깨달았죠.” 그렇게 기획한 것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버스킹 공연이었다. 2011년 홍대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구경한 관객들과 공연한 무용수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무용수들이 낯설어하긴 했어요. ‘발레는 공연장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지 어떻게 길에서 하냐’고 했죠. 하지만 버스킹 특유의 빠른 피드백을 경험하고 나니까 나중엔 서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웃음).” 공연 레퍼토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준비했다. 일반적으로 선보이는 클래식 발레부터 해석이 있는 발레 시리즈, 모던 발레, 콜라보 발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기획했다. 콜라보 발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장르의 춤과 함께하는 발레 무대다. 비보이 크루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 탭댄스 팀 ‘탭꾼 탭댄스 컴퍼니’ 등 그 분야에서 유명한 팀들과 함께 무대를 꾸렸다. “어떤 분야든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즐기는 데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발레도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처음 보는 분들께는 ‘그게 그거 같다’는 선입견이 있죠. 중간중간 다른 장르의 춤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했습니다.” 발레와 뮤지컬을 합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Once upon a time in ballet)부터 클래식 발레 <호두까기 인형>를 재해석한 콜라보 발레까지 김 동문이 만든 레퍼토리는 발레가 낯선 이들에게 진정한 발레의 매력을 선사한다. ▲ 발레에 뮤지컬을 접목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의 한 장면. (출처: 와이즈 발레단) 조승미 교수와의 값진 인연 다양한 시도와 고민 속에 독특한 행보를 보인 김길용 동문. 그가 걸어온 길에는 스승이었던 고(故) 조승미 교수(무용학과)와의 인연이 자리 잡고 있다. 조 교수는 김 동문이 우리대학으로 온 이유이자, 김 동문의 발레 철학을 만들어준 은사다. 김 동문이 기획한 각종 레퍼토리 공연도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조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번은 이런 경험이 있어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제가 멋대로 안무를 수정해서 스승님께 보여드렸죠.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무척 구겨지는 일인데, 스승님은 ‘좋아 네가 만든 안무를 쓰자꾸나!’면서 크레딧에도 ‘안무: 조승미, 김길용’을 나란히 적어주셨어요.” 발레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때 다시 전념할 수 있게 붙잡은 것도 조 교수다. “예술을 하다 보면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내가 천재라기보단 그저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을 때 매우 허망하죠. 국립발레단에 있을 때였는데 무대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때 스승님을 찾아갔죠.” 조 교수는 김 동문에게 조승미 발레단에 오는 것을 권유했다. 국립발레단 3년 차였을 때였습니다. 다음 해인 1996년에 조승미 발레단이 전문 발레단이 될 때부터 8년간 참여했어요.” 발레 본연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선교 발레라는 사명을 띤 조승미 발레단에서 김 동문은 지금의 길을 걸어갈 원동력을 얻었다. “조승미 발레단에서 잊지 못할 무대가 있어요. 저녁 공연이 있던 날이었는데, 스승님께서 3시에 공연을 한 번 더 하자고 하셨어요. 발레 한 번 하면 3kg이 빠질 정도로 힘든데, 두 번 뛰라 하시니 속으로 많이 투덜댔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연이 장애인분들을 위한 초청 공연이었던 거예요. 평생 못 움직여서 공연에도 도움받고 겨우 오셨다는 분이 있었어요. 커튼콜 올라갈 때 객석을 봤는데 손뼉은 못 치셔도 그 눈빛은 볼 수 있잖아요. 그걸 보고 많이 울었어요. 그땐 왜 울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춤을 추는지 느꼈던 순간 같아요.” 단장이 된 현재도 김 동문은 그때처럼 교도소나 장애인 복지 시설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며 보람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스승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이 공연은 어떻게 하셨을까. 이럴 땐 뭐라 조언하셨을까.” 김 동문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조승미 교수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쓸 것 앞으로의 김 동문은 발레 단장으로서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 쓰는 게 목표다. 여태 해왔던 일들을 유지하면서 후배 무용가, 안무가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단원에게 급여를 주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민간발레단은 단원들에게 공연 수당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단원이 발레에 전념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단원의 절반 정도에게만 월급을 주지만, 김 동문은 발레단 수입이 늘 때마다 이를 단원의 월급으로 바꾸고 있다. ▲ 지난 1월 21일 스완스 발레단의 창단식에 와이즈 발레단 단원도 함께 참여해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앞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김길용 동문. (출처: 와이즈 발레단) 또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을 위한 발레단인 ‘스완스 발레단’을 창단했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분들도 무대에 서고 싶으신데, 준비과정이 만만찮아서 엄두를 못 내시죠. 저희는 경험도 많으니까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창단한 스완스 발레단은 지난 1일 창단공연을 무사히 마친 상태다. “이제는 창작보다는 관리자로서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더 힘쓰려 해요. 젊은 안무가들을 찾아 발굴하고 기회를 주는 게 더 좋은 일인 거 같네요. 저보다 실력 좋은 분들이 많아요(웃음).”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07 11 중요기사

[학생]초콜릿에서 시작한 꿈, 뉴욕에 우뚝서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집을진 아무도 몰라)." -영화 <포레스트 검프> 中 많은 이들이 대학 진학 후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러다 가끔은, 우연히 마주친 기회를 통해 자신의 꿈과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올해 뉴욕 페스티벌에서 ‘Cover By Artists’와 ‘Missing Models’라는 작품으로 각각 2개의 ‘Third Prize’를 수상한 이동훈(교육공학과 4) 씨가 그랬다. 전공 수업 중 무심코 보게 된 초콜릿 광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이 씨는 광고계 입문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영향력 있는 국제 광고제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세계 3대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수상 올해 이 씨가 참가한 ‘뉴욕 페스티벌’은 ‘칸 국제광고제’, ‘클리오 국제광고제’와 더불어 세계 3대 광고제로 손꼽힌다. 이 씨는 학생부에 참가해 5개의 광고 기획 영상을 출품했고 그중 2개의 작품으로 3등 상을 받았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점은 ‘광고 기획 영상’과 실제 방영되는 ‘광고’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제가 출품한 ‘광고 기획 영상’의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광고 모델을 제시한 거예요. 해당 영상이 실제로 방영되진 않죠.” 작품은 이 씨와 디자이너 3명이 한 팀을 이뤄 제작했다. 이 씨는 아이디어 발의와 스크립트 작성 등을 맡았고 다른 팀원들은 각각 영상 및 이미지 편집에 집중했다. 같은 팀원 중 영상 디자이너로 참여한 박태성(광고홍보학과 4) 씨도 이번에 수상의 영광을 함께 했다. ▲ (왼쪽부터) 뉴욕페스티벌에서 'Third Prize'를 수상한 이동훈(교육공학과 4) 씨와 박태성(광고홍보학과 4) 씨의 모습. 가운데 들고 있는 뉴욕 마천루 모양의 프로젝터가 트로피다. (출처: 이동훈 씨) 그렇다면 이번 대회의 수상작인 ‘Cover By Artists’와 ‘Missing Models’는 각각 어떤 작품일까. 먼저 ‘Cover By Artists’의 경우 미국 내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의 음악 재생 화면 중 앨범 커버 부분을 라이브 공연 영상으로 바꿔 손쉽게 콘서트를 홍보하는 아이디어다. 특히 영상 말미엔 콘서트 일정을 추가해 예매율을 높이는 효과를 노렸다. "지금까지 대부분 아티스트들은 ‘포스터’나 ‘Youtube’를 통해 콘서트를 홍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이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콘서트를 광고할 수 있게 되죠." ▲ 뉴욕 페스티벌에서 'Third Prize'를 수상한 ‘Cover By Artists' 영상 (출처: 이동훈 씨) ‘Missing Models’는 ‘실종자 찾기 광고’와 ‘온라인 쇼핑몰’을 결합한 신선한 아이디어다. 이 씨는 실종자 찾기 광고와 쇼핑몰 광고 사이의 반대되는 특성을 잘 잡아냈다. "대부분 실종자 찾기 광고는 여러 사람의 얼굴이 지면 하나에 인쇄돼 있어 사람들의 집중적인 이목을 끌기 어려워요. 반면에 쇼핑몰 광고의 경우, 사람들이 유심히 살펴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델의 이미지를 각인하기에 유용하죠." 이 씨는 이런 차이점에 기반을 둔 광고 기획 영상을 제작했다. ‘우커머스(Woocommerce)’라는 업계 1위 쇼핑몰 플러그인을 통해 기본 모델의 얼굴을 실종자의 얼굴로 대체하며 '실종자를 찾는 데' 효과적인 광고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 “예상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시상식 후 갈라 쇼(Gala Show)에서 미국 내 광고 업계나 학교 관계자분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셨어요.” ▲ 뉴욕 페스티벌에서 'Third Prize'를 수상한 ‘Missing Models’ 영상 (출처: 이동훈 씨) 일상 속의 경험, 아이디어로 승화되다! 이동훈 씨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평소 브랜드를 접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메모해놓고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런 후에 자료 조사나 일상 속의 많은 경험을 통해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특히나 요즘은 광고가 사회 곳곳에서 방영되는데 그 과정에서 브랜드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도 동시에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저는 앞으로 이러한 과도기에 맞는 새로운 광고 모델을 더 찾아보고 싶어요” 남들이 손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도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 씨였다. “사실 얼마 전이 광고에 입문한 지 딱 1년 되는 날이었어요. 지난해 6월에 한 전공 수업에서 1분짜리 초콜릿 광고를 본 게 컸죠.” 전공 수업의 특성상 보통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가 많은데, 당시 이 씨는 광고를 보고 순간적으로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광고구나 했죠. 때마침 이노션(Innocean)이라는 광고대행사에서 대외활동 모집 공고가 났어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어요. 또, 이곳에서 활동하며 만들었던 '천 기저귀' 광고 작품으로 우승까지 차지했어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광고가 자신의 일상이 됐을 때부터 이 씨는 "매 순간이 즐겁고 값지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당장의 경험이 나중에 어떤 아이디어로 떠오를지 모르기 때문. 특히 본인만의 창작물이 기록으로 남고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그가 뽑은 광고의 묘미였다. ▲ 지난해 이노션 '멘토링 코스 시즌 6' 우승팀이 제작한 '천사맘-나는 이기적이다' 광고 기획안. 이 씨를 포함한 5명이 참여했다. '나는 이기적이다'와 '나는 이 기저귀다'라는 표현이 이목을 끈다. (출처: 이노션 월드와이드 ) 디지털 광고로 한국 빛내고파 광고를 파고들면서 그만큼 이 씨가 공부해야 할 양도 늘어났다. 아이디어를 내면 그와 관련된 분야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Spotify)를 통해 광고하려면 해당 어플에 대해서도 충분히 연구해야 하죠. 가끔 공부할 양이 많아서 막막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 역시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이 씨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년에 대학원을 진학할지 아니면 미국의 ‘포트폴리오 스쿨(Portfolio school)’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할지 고민이에요. 또 다음 해 6월에 있을 ‘칸 국제광고제’에 입상하는 것이 현재 목표예요. 결론적으론 최대한 많이 배우고 돌아와서 한국도 멋진 디지털 광고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싶습니다” ▲ 미래에 한국을 빛낼 광고인으로 성장하길 원하는 이 씨는,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7 05 중요기사

[학생]로봇이란 출구 없는 매력에 빠지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로봇이란 존재는 이미 많은 영화의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트랜스포머’가 5번째 시리즈를 개봉하기도 했다. 영화 속의 로봇이 실체화되기 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그 상상 속의 로봇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한양인들이 있다. 국제 로봇대회 ‘로보페스트(Robofest)’에서 우승을 거머쥔 배종학, 유호연(이상 로봇공학과 3) 씨다. 배종학 씨를 만나 그 준비과정과 소감을 들었다. 로봇에 빠진 두 청년, 플로리다로 가다 로보페스트 대회는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로런스 공과대학(Lawrence Technological University)이 주최하는 국제 로봇 경진대회다. 지난 2000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국, 중국 등 총 14개국에서 2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매년 다른 규칙으로 진행되는 이 대회는 미국에서는 6월, 한국에서는 10월에 개최된다. 배종학, 유호연 씨는 지난 6월 1일부터 3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시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두 한양인은 지난해 6월에 한국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해 장관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대회의 규칙과 그에 따른 준비과정도 달랐다. 배 씨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해에는 배열된 용지의 숫자 모양을 인식해서 그 숫자를 맞추는 게임이었지만, 올해는 용지에 있는 숫자를 각각 인식해서 수식을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저희가 작년에는 로봇을 받아서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설계부터 제작까지 저희 손으로 다 했어요. 교수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로봇을 저희가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 배종학, 유호연(이상 로봇공학과 3) 씨와 한재권 교수(융합시스템학과)가 2017 로보페스트 국제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한양대학교) 로봇이 수식을 계산해준다? 배 씨와 유 씨가 함께 한 팀의 이름은 링커(Linker)다. 기구학 과목에서 배운 링크(Link)의 개념에서 착안해 팀명을 짓게 됐다. “로봇 자체가 파일이라고 생각하면 링크와 링크가 로봇의 구성이 돼요. 저희 둘이 잘 해보자는 의미로 링커라는 이름을 팀명으로 짓게 됐습니다.” 링커 팀이 출전한 부문은 사물을 인지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자율 주행 로봇 대회 ‘VCC(Vision Centri Challenge)’다. 로봇에 장착된 카메라로 숫자를 인식 하고, 식에 적힌 숫자들을 계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식 트리를 실행하여 계산한 것이 최종적으로 로봇에 입력되는 게 최종 산출물이라 할 수 있다. 로봇은 바퀴 2개와 앞에 달린 작은 바퀴 1개, 카메라 센서로 구성돼있으며, 이번 대회를 위해서 외적인 부분보다는 소프트웨어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 배 씨의 설명이다. “로봇이 가다가 숫자 인식이 안 되면 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보완했어요. 이 부분으로 수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 씨는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부분을 찾게 됐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소프트웨어적인 영상 인식 부분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미래에는 가정마다 로봇 한 대씩은 배치 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용 비서 느낌의 가정용 로봇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배종학(로봇공학과 3) 씨. 로봇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로봇과 함께한 밤샘연구 이 대회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대회로 로봇에 관심 있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전통 있는 대회다. 배 씨는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약 4~5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시험기간, 축제기간에도 밤샘 연구는 계속됐다. “방학 때부터 대회에 필요한 코딩에 대한 공부를 계속했고, 학기 중에 설계 과목을 수강함과 동시에 교수님과 연구원분들의 도움으로 하드웨어를 완성했어요. 코딩 부분은 각자 맡을 부분을 정해 구현하고, 마지막에 합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 로봇에 대해 깊게 알기 위해서는 대회 준비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배 씨.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실전으로 익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뭔가 배우는 것도 많고, 남는 것도 많은 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로봇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분이라면 로봇공학과에 들어와서 대회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앞으로도 로봇에 관한 많은 부분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배종학(로봇공학과 3) 씨. 그의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계속될 전망이다. 글/ 최원희 기자 orangecwh@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7 03 중요기사

[동문]뮤지컬 ‘팬텀’의 디바 김순영, “오페라와 뮤지컬에 성역 두고 싶지 않아요”

2015년 초연부터 2016~2017년 4월의 재연까지,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 있다. 바로 뮤지컬 <팬텀>이다. 연일 1500석의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전국 투어공연까지 성황리에 마무리한 이 작품엔 빼놓을 수 없는 여주인공이 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디바로 성장하는 ‘크리스틴 다에’ 역의 김순영 동문(성악 02)이다. 김 동문은 유일하게 초연부터 재연까지 주역으로서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정통 클래식 외길을 걸어오던 그에게 <팬텀>은 첫 뮤지컬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다. 뮤지컬, 어렵지만 달콤했던 첫발 김순영 동문은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정통 소프라노다. 우리대학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유학 후 귀국해 오페라 <리골레토>,<카르멘>,<루살카>,<라보엠> 등 유수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올해 말엔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그레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계획돼 있다. 평생 클래식 외길 만을 걸어온 그에게 2015년 <팬텀>의 제작진으로부터 온 러브콜은 소프라노 김순영의 인생 속 전환점이 됐다. “클래식만을 해온 제가 '뮤지컬의 빠른 극 전환과 다양한 연기, 섬세한 감정표현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또 '오페라 무대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고민이 많았죠.” 당시 음악계엔 클래식 가수가 뮤지컬을 하는 것에 대해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계의 오랜 선입견은 김 동문의 <팬텀>출연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건 뮤지컬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에요. <팬텀>을 통해 저를 더 많은 분에게 보여줄 수 있었고, 뮤지컬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니 오페라에서도 더 많은 작품 제안이 들어왔죠. 어려웠던 뮤지컬계의 첫 발은 더 큰 보람이 돼 돌아왔어요(웃음).” ▲ 소프라노 김순영 동문(성악 02)은 인터뷰 전날까지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을 했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스틴’으로 오른 98번의 무대 김 동문의 예상대로 첫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연 녹록지 않았다.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른 발성을 사용해야 하는 것뿐 아니라 연기와 동작전환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배로 늘었기 때문. “오페라는 연기의 비중이 적고 동작이 정적인 편이라 노래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에 비해 뮤지컬은 노래뿐 아닌 연기 실력도 극의 완성에 큰 영향을 끼치더라고요.” 매일 10시간 이상씩 진행되는 연습 중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날도 많았던 그는, 함께 작품을 준비하는 동료들의 응원과 배려를 통해 ‘크리스틴’의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초연 50회와 재연 48회의 공연까지 총 98번의 무대에 오른 김 동문은 때론 배역의 슬픈 상황에 깊이 몰입해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야 할 때도 많았다고.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10번쯤 오른 후부턴 ‘내가 진짜 크리스틴이 됐구나’ 생각했어요. 상대역인 ‘팬텀’의 슬픈 마음이 진정으로 이해가 되고 그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고요. 극의 절정에서 그를 다독이는 ‘내 사랑’이란 노래를 부를 땐, 눈물이 정말 많이 났어요.” 한 작품으로 두세번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오페라와 달리, 수십번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뮤지컬은 그에게 ‘진정으로 배역에 몰입하는 법’을 알게 했다. ▲ 뮤지컬 <팬텀>의 공연 장면. 오페라의 유령 '에릭'이 '크리스틴(김순영 동문)'의 음악선생이 돼 성악교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김순영 동문) 다양한 장르 소화하는 성악가이고 싶어 뮤지컬계에서도 저력을 인정받은 김동문은 오페라와 뮤지컬 두 활동에 성역을 두고 싶지 않다 말한다. 두 장르는 양자택일 할 수 없는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저를 통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성악가가 많아졌으면 해요. 점점 정통 클래식과 발레, 재즈, 뮤지컬 등이 어우러지는 공연이 많아지고도 있고요. 저도 이에 맞게 내 것만 할 줄 아는 게 아닌 여러 장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 김순영 동문은 내년 중 새로운 뮤지컬로 ‘크리스틴’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색을 더해가는 성악가 김 동문의 앞날을 응원한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6 29 중요기사

[학생]교육학 박사과정생들, 고용패널 논문공모전 최우수상 (1)

‘문송합니다’, ‘5포세대’.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한 신조어다.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취업을 하기 위해 졸업유예를 해야만 하는 우리 현실을 연구해보고자 한양인 3인방이 모여 공모전에 지원했다. 결과는 최우수상,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연구를 시작하고 논문 작성부터 최우수상 수상까지...약 6개월에 걸친 이야기를 듣고자 강영민, 유지현씨를 뉴스 H가 직접 만났다. 졸업유예,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영민, 유지현, 이전이(이상 교육학 박사과정) 씨는 졸업유예에 초점을 맞춰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졸업유예 효과> 논문을 썼고, 한국고용정보원이 주최하는 ‘2017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 학생논문 공모전’ 에 제출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고용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하는 등 고용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 직업 동향이나 직업지도 등을 연구하는 고용정보원은 2002년부터 고용패널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국의 대학원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학생논문 공모전을 개최해왔다. 세 한양인이 제출한 논문은 대졸 청년층의 졸업유예가 학생들의 취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이득과 어떤 관계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졸업유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학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학생들의 재학기간 중 취업준비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논문의 기본 주장이다. 강 씨는 졸업유예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학생들과 학교, 각각의 문제점에 대해 “학생들은 졸업유예를 해서 대학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이 가진 불안감을 떨쳐내려고 한다” 며 “하지만 학교는 취업률이나 학생 수당 전임교원수 때문에 졸업유예 하는 학생들이 달가울 수만은 없다“고 했다. 따라서 학부에 있을 때 취업지원센터 같은 여러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는 사실 자소서 쓰기나 인턴 준비 등 여러 프로그램을 많이 지원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여러 이유로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 졸업유예에 관한 논문과 취업현실에 대해 강영민(교육학 박사과정), 유지현(교육학 박사과정)씨를 지난 24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보다 빠르고 보다 정교하게 강 씨와 이 씨는 수상의 비결에 대해 “주제의 시기적절성”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조사(GOMS, Graduates Occupational Mobility Survey)의 2014년 데이터를 활용했는데 마침 2014년부터 졸업유예에 대해 따로 분류해서 조사하는 시기였어요. 그 전까지는 졸업유예를 휴학으로만 보고 있다가 졸업유예가 증가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주요한 현상으로 보면서 이것에 따로 분류한 것 같아요” 이 논문이 수상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명확성이었다. 연구를 하다 보니 졸업유예가 취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선행연구를 참고해 논문을 쓸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세 동문은 졸업유예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러 요인으로 세세히 분류해 정확히 연구했다. '정확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한 교수님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박주호 교수(교육학과)에 대해 말하며 활짝 미소지었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수상하지 못했을 거에요. 안식년이라 미국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희가 논문을 보내드리면 정말 빠르게 하나하나 메모를 달아서 수정해주셨어요. 아마 교수님이 최종적으로 검토해주지 않았더라면 수상하지 못했을 거에요” 연구는 계속된다, 끊임없는 도전 강 씨와 이 씨는 현재 전공 스터디를 운영하고 있다. 석사과정 학생들도 함께 하고 있으며, 이 스터디원들과 함께 후속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요즘에 취업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학원에 진행하는 학생들도 점차 늘고 있어요. 학부에서 취업이 힘들기 때문에 대학원에 우선 진학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과연 이 학생들이 취업에서 진정 유리하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어요” 취업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두 분은 웃으며 졸업유예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 이 논문의 결론이라 밝혔다.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을 쌓고, 복수전공제도나 다전공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전공 이외의 여러 전공을 섭렵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두 한양인. 이들이 함께한 시간만큼 깊은 연구도 계속될 예정이다. 글/ 최원희 기자 orangecwh@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