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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16 중요기사

[동문]학생들과 가까운 멋쟁이 수학 선생님! (1)

한양대는 사범대학 및 교직 이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생들을 교직으로 배출하고 있다. 학창시절 하늘과 같은 존재였던 선생님이 알고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인 셈. 선생님들의 학창 시절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졸업 후 미래 걱정도 하고, 대책없이 놀기도 하고, 대학로 곳곳을 다니며 풋풋한 연애도 했을 것. EBS 고교 수학 강사이자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을 만나 교단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에서 EBS 인강을 맡기까지 남치열 동문은 중학교 5년, 고등학교 7년 근무의 12년차 수학 교사다. 지난해부터는 EBS인터넷강의를 통해 수리논술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내신 수학, 수능 수학영역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고등학교에 발령받고 수학 재능기부 동아리를 만들고, 1년 간의 수리논술 수업 연구 후 2년차부터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제가 근무하는 파주는 농어촌지역이라 논술 학원이 그 당시 한 군데도 없었어요. 제가 책임지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네이버 카페 ‘치열한 수리논술’을 만들어서 강의 자료도 핸드폰으로 찍어 올리고, 1년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교재와 인강으로 열심히 연구했죠.” 그러다 작년에 학교로 EBS 강사를 뽑는 공문이 내려왔다. ”제가 수리논술 가르치는 게 자신있으니까, 파주 외에도 저기 섬에 살고 있어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EBS 강사 면접은 1차로 서류전형 및 핸드폰으로 촬영한 10분 남짓의 강의 시연, 2차로 강남 매봉역 EBS 본사에서 카메라 테스트, 3차로 최종 면접을 통해 진행됐다. ‘치열한’ 면접 과정을 거쳐 지금의 EBS 인강 강사가 됐다. ▲ EBS 수학 강사이자 파주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 '학고'로 시작해 과 수석으로 졸업하기까지 학창시절 남 동문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홈쇼핑 호스트와 아나운서를 꿈꿨던 학생이다. 학부 시절에는 0.38의 학점으로 '학사 경고'를 받기도 했다. “스무 살엔 정말 개구쟁이였어요. 가방에 선글라스, 영자신문, 수건, 체육복을 넣고 11시에 농구장으로 등교했죠. 네다섯 시간동안 농구를 하고, 샤워한 뒤에 방과 후엔 동기들과 당구장도 가고, 미팅도 했어요. 한 과목 C 빼고 모든 과목이 F로 0.38 학점을 받았어요.” 처음엔 재밌었지만 1년을 그렇게 지내니 ‘내가 인생을 너무 망치는 건 아닌가’ 싶었던 남 동문. 군대에 다녀온 후 1년동안 휴학을 하는 동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동대문 시장 문구점에서 2달동안 12시간씩 최저임금으로 일해도 보고,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은행에서 가스총 차고 보안경찰도 6개월간 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살기엔 아깝지 않나’ 반문하게 됐어요. IMF가 터지면서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생각하게 됐기도 했고요.” 남 동문은 수학과로 전과해 임용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교사라는 꿈이 생기자 열정에 불이 붙었다. 2학년에 무턱대고 임용고시를 보고, 임용고시 수학 단과 학원에 들어갔다. “하루는 선생님이 과제를 주시고, 광화문 카페에서 보강을 하겠다고 했는데, 같이 수업 듣는 4학년 선배들은 아무도 없고 저만 온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대학 후배들을 가르치는 스터디에 불렀어요. 학원비 낼 필요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 봐주겠다면서요." 남 동문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 독서실에서 매일 11시간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고 임용에 성공했다. ▲ 남치열 동문은 현재 EBS에서 인기리에 활동 중인 수학 강사다.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 남 동문의 메신저 소개말에는 ‘세계 최고의 수학교사가 되자’는 목표가 있었다. 그런 그의 목표는 EBS 강의를 계속 진행하며 역량을 쌓는 일이다. “대학생 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설령 재수, 삼수로 1,2년 늦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하고싶어도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모험과 시도를 좋아한다는 남 동문에겐 인터넷 강의도 하나의 도전이다. "젊음이 유지되는 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서 정년에 가까워지면 교육 봉사를 하려고 해요.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아이들에게 무료 교육봉사를 하고 싶고, 수학 외에 다른 재능이 있다면 문화센터, 주민자치센터에서 무료봉사로 강연활동도 하고 싶어요.” ▲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가 좌우명인 남치열 동문은 끝까지 교육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글/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5 12

[동문][한양피플] 친구에서 부부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부부는 한양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여느 청춘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웃고 공부하고 사랑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가정을 꾸려 올해로 25년이 됐다. 어느덧 아이가 자라 부모의 추억이 담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청춘을 그려가고 있다. 부부이자 동문이고 선배이자 후배인 최종호·성주은 부부와 딸 최정윤 학생의 이야기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최종호·성주은(철학과 86) 동문 부부 30년의 시간을 건너 캠퍼스 커플이었던 최종호·성주은 부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었다. 30년 전, 재학 시절의 한양대는 부부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최종호 씨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교내 중창단 동아리 ‘징검다리’다. 동아리방이 없어 강의실을 전전하며 연습하던 그 시절이 그에겐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징검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한양대에 대한 자긍심도 상당하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징검다리가 일정 부분 학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도 누구보다 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죠.” 성주은 씨는 가파른 진사로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바로 이어지지만, 저희 때는 등교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가파른 진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뒤에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인문대가 나왔어요. 강의가 없거나 쉬는 시간이면 인문대 화단 앞에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놀았죠. 그곳이 만남의 장소였어요. 남편도 그 자리에서 자주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2대를 이어준 한양 1992년에 부부가 된 이들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아이 둘을 낳았다. 부모의 바람이었는지 혹은 영향이었는지 딸 최정윤 학생이 지난 2014년에 한양대에 입학했다. 딸의 합격 소식에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사실 부부가 딸의 입학을 이렇게 반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최정윤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수를 꿈꾸며 보컬과 재즈 피아노 등 음악을 공부했다. 그런데 3학년을 앞두고 슬럼프가 찾아와 음악 공부를 중단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1년 남짓 공부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힘들었지만 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양대를 선택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한때나마 엄마의 마음을 졸이던 딸은 이제 성주은 씨의 말을 빌면 ‘거침없이 멋지게’ 살고 있다. 최정윤 학생은 입학 후 단과대 회장, 유엔 대학생 홍보대사, 세이브더칠드런 해외 인턴, 아시아나 플라잉마케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최종호 씨는 “저희 부부가 학창 시절 하지 못한 것들을 딸이 지금 다 하고 있다”며 대견해 했다. 최정윤 학생은 현재 교환학생으로 영국 리즈대학교에 가 있다. 학기를 마치면 프랑스와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7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주시는 멋진 분들이에요. 도전을 즐기는 저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추억을 공유하다 ▲ 어머니 성주은 씨(왼쪽)와 딸 최정윤 학생 부부와 자녀가 모두 동문인 이들에게 한양대는 어떤 의미일까. 최종호 씨는 “예전에 학교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을 아이가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한양대에서 아내를 만났고, 딸도 이곳을 다니고 있으니 제 인생에서 한양대를 빼면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며 웃었다. 최정윤 학생에게 한양대는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추억이자 20대의 시작”이다. “부모님과 같은 대학교에 다녀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학교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 30년 전과 현재의 왕십리를 비교하면서 사라지거나 새로 생긴 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기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꽃다운 20대를 상상하면서 같은 곳에서 같은 나이의 제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요.” 딸이 자랑스러운 한양인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는 최종호·성주은 부부. 그리고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최정윤 학생. 한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들은 오늘도 행복한 꿈을 꾼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12

[학생][도전한대] 즐겨라 그리고 행동하라, 레티널처럼!

‘즐기고, 하자!’ 당장 하는 일이 어렵더라도 그 과정만큼은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긴 레티널(LetinAR)의 슬로건이다. 증강현실 안경을 제작하고 있는 레티널은 증강현실 시장의 표준이 되어 사람들에게더욱 편하고 쉬운 방식으로 더 많은 정보와 다양한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레티널 대표 김재혁 학생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 레티널 대표 김재혁(산업공학과 13) 학생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 덕에 저도 그 친구와 놀면서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고, 항상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 만든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이번에 만든 제품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창업 당시를 설명하는 김재혁 대표의 말투에서 확신이 느껴진다. 그러나 창업을 결정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간 학교에 다니며 해온 다양한 활동과 이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학교에 다니며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 및 교육에 대해 연구했고,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 활동을 하며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졸업 이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자연스레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것대로 좋은 점들이 많겠지만, 아직까지는 제가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렇다면 광학기술을 이용한 안경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대부분은 시각을 통해 이뤄진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도 여기에 부합하는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큰 화면에 비슷한 무게로 볼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것 같았어요.(웃음)” 끝없는 노력이 거둔 결실 자신만만하게 도전했지만 창업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재혁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학부생이라는 신분이 걸림돌이 될 때였다. 실제 투자 현장과 연구 과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도 많은데 학부생인 너희들이 더 나을 수 있겠느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학부생이라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투자자들과 연구 과제 심사자를 설득해서 투자를 받아야 프로토타입(본격적인 상품화에 앞서 성능을 검증·개선하기 위해 핵심 기능만 넣어 제작한 기본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데, 오히려 프로토타입을 보여주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굴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박사 학위자를 잠시 영입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지원금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이를 눈앞에 보여주며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투자받기 전까지의 기간이었다. 연구 개발에 쓸 자금도 빠듯했던 당시, 매일 친구와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했기에 보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며칠씩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이처럼 고된 시간을 묵묵히 견딘 덕분일까. 레티널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참가해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구글의 인터랙션리서치팀이 세부 업무 협력 논의를 제의했고, 화웨이에서는 향후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김재혁 대표는 레티널만의 차별화된 콘셉트와 이를 극대화해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을 이번 성과의 비결로 분석했다. “광학부에 대한 저희의 콘셉트는 심도를 넓히는, 즉 보이는 영역을 넓힌다는 개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심도를 넓힌다는 개념 자체를 잘 쓰지 않죠. 또 사람 눈과 같은 광학 솔루션과 구글 글래스와 같은 광학 솔루션, 이 두 가지를 디스플레이에 동시에 띄움으로써 저희의 제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 김재혁 학생은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것대로 좋은 점들이 많겠지만, 아직까지는 제가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또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의 눈, 그 이상을 만든다는 것 현재 레티널은 증강현실 안경을 스포츠 고글 형식으로 제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국가 연구 과제로 선정돼 현재 다른 기업과 함께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전거 운전을 예로 들면, 자전거의 속도와 이동 거리부터 심박 수까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기능 등이 스포츠 고글에 탑재된다. 레티널은 다음 프로젝트로 이 스포츠 고글의 오토바이 헬멧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재혁 대표가 레티널에서 일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시력이 무척 안 좋은 분이 저희 안경을 착용하고 잘 보인다며 감동하셨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희 제품이 하루빨리 출시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며 그간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 보람되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재혁 대표는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단순히 기술과 관련된 준비뿐만 아니라 콘셉트 아이디어를 비롯해 그 외의 사업적 측면에서 많이 고민하고 준비한 뒤 창업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레티널이 지금까지 쉽지 않은 길을 올곧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철학과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눈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레티널이 되길 응원한다. Q 학교 수업이 창업에 도움이 됐나요? A 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일례로, 한 수업에서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진행해 창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학생이 쓴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 만큼 잘 쓰게 되었고, 사업에 대한 접근법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수업 이외에 창업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받은 도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는 특허나 회사의 운영과 관련해 어렵고 모르는 점이 있을 때마다 상담을 받으러 종종 학교에 갑니다. 글로벌기업가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면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업 운영을 관리해주시는 분부터 교수님까지 계시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시각으로 조언을 해주셔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Q 학교 지원은 어떻게 받을 수 있었나요? A 학생 몇 명 이상이라는 기준이 충족되면 ‘창업동아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창업동아리를 만들면 활동에 따라 시제품 제작 비용이나 설립 업무와 관련된 비용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원한다면 멘토의 상담도 받을 수 있어요. Q 앞서 언급한 것 이외에 창업할 때 이용하면 좋은 교내 제도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교내에 ‘아이디어 팩토리’라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있다면 얼마든지 프로토타입을 직접 제작할 수 있습니다. 또 창업 관련 교육도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고요. 이를 충분히 이용한다면 시제품 제작도 개인적으로 진행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11

[교수][시선 집중] 땀구멍 지도 우연한 발견에서 길어 올린 과학적 성취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 분석법’을 개발한 김종만 교수가 우수한 연구 실적을 인정받아 ‘2017 한양대학교 학술상’의 영광을 안았다. 김종만 교수는 2014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과 2015년 ‘삼성고분자학술상’을 받은 바 있지만, 이번 학술상은 한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게 돼 더욱 특별하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화학공학과 김종만 교수 땀구멍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땀구멍 지도(sweet pore map)’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땀구멍 지도란 손가락 끝의 땀샘에서 나오는 수분을 감지해 이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아무리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라도 각자 다른 지문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문과 같이 땀구멍 패턴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사람마다 땀구멍의 위치, 크기, 모양이 다 다릅니다. 40여 개의 땀구멍만 있으면 신원을 밝힐 수 있지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우리는 이미 주민등록증을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출입문 등의 각종 지문인식시스템을 통해 신원을 증명하고 있다. 범죄 현장에서도 지문은 범인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김 교수는 왜 땀구멍 지도를 활용해 새로운 지문 분석법을 개발한 것일까. “지난 100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융선(지문 곡선)을 이용한 지문 분석법은 지문의 많은 부분이 찍혀 있어야 대조할 수 있습니다. 즉 대량의 잠재 지문이 필요합니다. 또한 종이, 지폐와 같은 다공성(내부 또는 표면에 작은 빈틈을 많이 가진 상태) 고체 표면에는 융선이 아니라 점 모양으로 많이 남기 때문에 융선 패턴과 대조하기 어렵습니다.”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 분석법은 일부의 지문이나 다공성 고체 표면에 찍힌 지문으로도 신원을 파악할 수 있어 융선을 이용한 지문 분석법의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다. 우연이 선물한 ‘유레카’ 우리의 손가락 끝에 있는 땀구멍에서는 피부를 촉촉이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소량의 땀(수분)이 배출된다. 수변색(hydrochromic, 수분과 반응해 물질이 지니고 있는 색이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 공액(다중 결합이 단결합을 사이에 하나 끼워 존재하고 상호 작용을 나타내는 것) 고분자인 ‘폴리다이아세틸렌(Polydiacetylene, PDA)’은 수분을 감지하면 청색에서 적색으로 바뀌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손가락 끝을 폴리다이아세틸렌 필름에 날인하면 미량의 수분을 감지해 적색의 땀구멍 패턴을 얻을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김종만 교수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이 수분 접촉에 의해 색이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온도, 압력, 유기용매에 의해 색이 변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수분에도 감응 한다는 사실은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우연의 산물이었다. “어느 날 저희 연구팀의 한 연구원이 폴리다이아세틸렌에 입김을 불었더니 색이 바뀌더군요. 입김 속의 수분에 감응한 것이지요.” 알렉산더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생성된 푸른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탄생시켰듯이, 김 교수는 사소한 발견을 놓치지 않고 연구자의 예리한 통찰을 발휘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혹시 손가락 끝의 땀에도 감응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반신반의하며 실험을 진행했더니 붉은색으로 변하더군요. 이를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땀구멍 패턴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땀구멍 패턴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정밀한 검증 작업이 필요했다. 고해상도 스캐너를 이용해 인체에서 땀구멍을 추출한 뒤, 별도의 이미지 매칭 프로그램을 개발해 폴리다이아세틸렌으로 얻은 이미지를 대조한 결과, 이 둘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의 땀구멍 지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한 후 김 교수가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면 잠재 지문의 땀구멍과 대조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발급 시 융선과 함께 땀구멍 데이터를 구축하면 향후 범죄 수사나 신원 파악 시 효율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융선과 달리 위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화장품 회사에서도 관심이 높은데 활성 땀구멍과 비활성 땀구멍의 분포를 파악, 여름철에 땀을 억제해주는 데오드란트 제품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다한증을 비롯한 땀 분비 관련 질환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지문 분석법은 2014년 4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려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같은 해 5월에는 과학 전문 주간지인 <네이처 (Nature)>의 연구 하이라이트(research highlight)에도 게재됐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10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로 선정됐다. ▲ 땀구멍 패턴들. 왼쪽부터 융선 지문 패턴, 잠재 지문, 패턴 매칭, 종이 위에 찍힌 실제 지문. 운명의 고분자 ‘폴리다이아세틸렌’ 김종만 교수가 이끌고 있는 유기나노소재연구실은 주로 외부의 화학적, 물리적 자극에 감응해 색이 변하는 센서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센서는 질병의 조기 진단, 환경 오염 물질 검출, 식품의 안전성 테스트, 생화학 테러 물질 검출 및 위조 방지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주 소재로, 지문 분석 외에도 가짜 휘발유 감별, 위조 방지 센서 등을 개발했다. 현재는 나노 튜브 구조의 센서 및 신호 증폭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3D 센서를 개발 중이다. 김 교수가 이렇게 폴리다이아세틸렌에 심취하게 된 것도 벌써 20년이 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절, 한 세미나에서 외부 자극에 색이 변하는 고분자 소재를 알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폴리다이아세틸렌이었다. 기존의 센서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가의 분석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폴리다이아세틸렌은 육안으로도 청색이 적색으로 변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단번에 매료됐다. 그렇게 김 교수 연구 인생의 운명적 파트너라 할 수 있는 폴리아다이아세틸렌과 조우한 후 ‘왜 색이 변하는 것일까?’, ‘다시 본래의 색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등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연구 초기에는 폴리다이아세틸렌의 분자 설계법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짜 휘발유 식별 등 실용적인 주제 로 확대했습니다.” 공과대학 교수로서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연구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공액 고분자를 이용한 가짜 휘발유 식별 센서칩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등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한 센서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김 교수는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돼야 고등학교 시절부터 벤젠의 고리 구조에 흥미를 가졌다는 김종만 교수. 실제 김 교수 연구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육각형 모양의 벤젠 고리가 한가득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케쿨레가 꿈에서 발견했다는 벤젠의 독특한 분자 구조가 한 고등학생을 화학의 세계로 안내한 것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테크니션이 되지 말고 사이언티스트가 돼라’고 강조하는 김 교수는 과학자에게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어진 업무만 수행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엉뚱한 아이디어도 좋으니 생각을 많이 하고, 인문학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김종만 교수의 다음 연구 목표는 무엇일까.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해 폐암 진단 센서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폐암 환자의 날숨에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일종인 톨루인이 정상인보다 세 배나 많이 검출되는데, 이를 센서로 인식하면 폐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습니다.”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은 조기에 자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간단하게 조기 진단할 수 있다면 완치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폴리다이아세틸렌을 이용한 그의 연구 영역은 이렇게 점점 깊고도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욱 사이언티스트 김종만 교수의 연구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10

[학생][동고동락] 국악 따라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은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다. 그녀의 전공은 국악. 한국인도 잘 모르는 국악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다. 그녀에겐 국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 야마모토 히카리(국악과 15) 학생 한눈에 알아본 국악의 매력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는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국악 공연이 종종 개최된다. 중학교 1학년 때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은 우연히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 공연을 보고 그 멋에 반해버렸다. “무대 위의 선생님이 빛나 보였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무대 위에서 빛나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국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유학 준비는 녹록치 않았다. 국악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낯선 한국어로 이론을 외워야 했고, 레슨도 꼬박고박 받았다. 입학 조건과 상관없이 경기민요, 한국무용, 가야금도 배웠다.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국악을 배우게 된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육 방식의 차이였다. “일본에서 민요와 같은 국악을 배울 때는 옛날식으로 구전 전수를 했어요. 악보 없이 선생님께서 하시는 걸 듣고 그대로 외웠죠. 그런데 한국에 오니 모두 오선보로 표기되어 있는 거예요. 서양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저로서는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경기민요에 빠지다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은 현재 국악이론을 전공하고 있지만, 그녀를 처음 국악의 세계로 인도한 경기민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다양한 공연을 직접 기획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에는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만남’ 공연을 기획했고, 오는 7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제1회 뮤티풀 코리안 클래식 재팬’에서도 기획을 맡아 현재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녀가 오사카에서 첫 번째 공연을 여는 이유는 뭘까. “제가 경기민요 공연을 보고 반해서 국악을 시작했던 것처럼 누군가가 제 공연을 보고 국악에 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또 일본에서 한국 민요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이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곡 선정이다. 국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일본인이 대부분이고, 특히 경기민요의 경우에는 가사가 있어 이를 알아듣지 못하면 더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과 일반인이 즐기기 쉬운 곡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신중하게 곡을 골랐다. 그렇다면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이 생각하는 경기민요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국 민요는 대체로 슬픈 느낌을 지녔어요. 그런데 경기민요는 다른 지방의 민요에 비해 밝고 맑은 느낌이라 매력적이죠.” 국악 연구자의 길 야마모토 히카리 학생은 음악인으로서 일본에 한국 전통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 국악을 알리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또 대학 교수가 되어 꾸준히 국악을 연구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과 음악학전공으로 대학원 진학을 고려 중이다. “국악은 한국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음악이기 때문에 최근에 생긴 대중가요보다 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오랜 기간 전승돼 온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검증받아 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대중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확신이 묻어나는 그녀의 말에서 우리 음악, 국악의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10

[학생][꿈꾸는 청춘] 새롭고 다채로운 세상과 부딪쳐라

지난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으로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다녀온 윤재성 학생은 자신만의 긍정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산하며 당시의 체험담을 생생히 전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설렘과 벅차오르는 열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윤재성(국제학부 11) 학생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외교 사절단으로 활동 “흔히 장충체육관이 필리핀의 도움으로 지어진 것으로 아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장충체육관은 엄연히 우리 건축가가 우리 기술로 세운 건축물입니다.” 지난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으로 6개월간 현장실습을 다녀온 윤재성 학생은 50여 명의 재외공관 현장실습원 중 우수 사례로 뽑힌 학생답게 필리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아주었다. 실습이 끝난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공공외교 사절단으로서의 사명감이 여전히 투철하다. “현장실습 기간 중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관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때 장충체육관에 대해 조사하며 우리 기술로 지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됐죠. 그 일로 대사님께 칭찬을 받아 뿌듯했습니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건축 관련 기관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정보를 요청했다는 윤재성 학생. 필리핀의 건축부에 문의했을 때는 컴퓨터 DB 구축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문서 보존도 안 돼 있어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필리핀의 외교관이었던 까를로스 로물로의 기념관에서 ‘장충체육관 건설에 필리핀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관련 자료를 확인해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고대하던 첫 해외 체류 경험 윤재성 학생은 지난해 6월, 22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외교부의 재외공관 공공외교 현장실습원에 발탁됐다. 국제학부에 진학했지만 여행을 제외하곤 해외 체류 경험이 없어 늘 해외 생활에 대한 열망이 컸던 차였다. “국제학부에는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들이 많아 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외교 사절단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이니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한 달간 면접시험을 준비했지만 워낙 경쟁률이 높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실습원에 선발되는 행운을 안았고, 그렇게 필리핀에서 꿈에 그리던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수많은 나라 중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가야 보다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필리핀을 선택했습니다. 영어권 국가이기도 하고요.” 공항에 도착한 직후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의 코코넛 열매를 보고서야 필리핀에 발을 딛게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기후와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다름을 몸소 겪어보기 위해 그동안 해외 생활을 동경했던 게 아닌가.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윤재성 학생은 모든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정무과에 배정받은 후에는 주로 필리핀의 정치 동향을 파악해 주요 기사를 번역하거나 대사관 공식 홈페이지 및 SNS 관리, 필리핀 교과서 검토, 문화 행사 보조 등 제법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다. 인턴이라고 복사만 시키는 게 아닐지 걱정이 컸다는 윤재성 학생. 사실 처음에는 주재국에 대한 기본 지식을 숙지하라며 마땅한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아무나 붙잡고 도와줄 일이 없는지 일을 청했다. “제가 직원들을 귀찮게 한 편이에요.(웃음) 어렵게 얻은 기회라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정신이 없었죠.” ▲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찰칵! 윤재성 학생은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문화의 위력을 실감한 한류 체험 ▲ 문화행사 때 만난 필리핀 자원봉사자와 한 컷 한번은 필리핀의 주요 교과서에 한국 관련 내용이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 조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단군왕검을 고려의 태조 왕건과 혼동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 여러 건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못 기술된 내용은 즉시 필리핀 교과서 측에 수정을 요청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다. 윤재성 학생은 한류 문화 교실, 한식 요리 콘테스트, K팝 스타 및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대사관뿐 아니라 주필리핀 한국문화원의 각종 문화 행사를 도우며 많은 필리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말로만 듣던 한류 열풍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요. 한국 관련 문화 상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요.”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나 K팝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한국어와 한국사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사극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행사 시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필리핀인들은 한국어로 소통해도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필리핀인들에게 보다 다양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공공외교 활동이라고 생각한 그는 조선시대 궁궐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 전시회 때 초중학생들에게 직접 작품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윤재성 학생은 한류 문화를 통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을 보고 문화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문화 콘텐츠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국력 행사는 강제적인 것이지만, 문화를 통하면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어 더욱 강력한 것 같아요.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던 문화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벌 탐험 시즌2 개막 필리핀에서 돌아온 윤재성 학생은 지난 3월, 새로 선발된 재외공관 현장실습원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멘토로 서는 영광을 안았다. 후배 현장실습원들에게 그는 어떤 말을 전했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어야 편한 것입니다. 시키는 일이 없어도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해야 자신에게 남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없는 일도 만들어 했던 윤재성 학생이 대표적으로 주도한 것은 외교부의 공공외교 홈페이지에 재외공관 현장실습원으로서의 체험을 정리해서 올린 일이다. 현장실습 기간 동안의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그가 담당 외교관에게 제안한 것이다. 수기를 통해 그는 필리핀에서 비로소 우리나라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렇게 고대했던 생애 첫 해외 생활의 수확은 기대 이상이었다. “필리핀에서 6개월간 살아보니 확실히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지인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가톨릭 전통에서 비롯된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됐어요. 또 모계사회 전통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편인데, 그로 인한 양성평등 문화를 체험하며 배운 것도 많고요.”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고와 감성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였을지 짐작이 된다.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그의 글로벌 도전은 이제 막 물꼬를 텄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UN 대학생대표단에 선발돼 올 8월에는 뉴욕 UN본부에 다녀올 예정이며, 하반기에는 LA 주재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매년 콘셉트를 정해 경험을 넓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경험들을 해보겠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저의 콘셉트도 글로벌 체험입니다.” 열혈 청춘 윤재성 학생의 글로벌 탐험 시즌2가 찬란하게 펼쳐지길 기원한다.

2017-05 08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아름다운 노래 맑은 영혼 의 연주

지난 4월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세경 씨가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오페라 애호가들의 귀를 호강시켰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의 전성기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여전히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성악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글. 박영임 / 사진. 임세경·안홍범 ▲ 성악가 임세경(성악과 94) 동문 1년 만에 찾은 한국 무대 소프라노 임세경 씨를 만난 건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수개월간 연습한 열정과 천부의 재능을 여한 없이 무대에서 불사른 예술가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여전히 달뜬 표정일까, 아니면 모든 에너지를 연소해 심연의 바닥에 침착한 모습일까. 의외로 임세경 씨의 얼굴에는 지난밤 화려한 무대의 프리마돈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일상성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는 임세경 씨. 유럽 첫 무대가 2004년이니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무대에 대해 겸허한 마음이다. “원래 공연을 마친 후에는 무대에서 어떻게 노래했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불러보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다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되뇌다 밤을 새곤 합니다.”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선 임세경 씨는 사실주의 오페라 3대 걸작으로 꼽히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푸치니의 ‘외투’를 엮은 ‘팔리아치&외투’에서 화려한 유랑극단의 배우와 가난한 청소부 여인이라는, 성격이 다른 1인 2역을 소화해 발성이 견고하고 감정 표현이 압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평소 비극적인 역할을 많이 맡다가 ‘팔리아치’의 발랄한 넷다를 연기하며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으로 영역을 넓혔으니 유럽이나 미국 무대에서도 새로운 제안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한국인 최초 주역으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 서다 임세경 씨에게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의 주역을 맡았다는 영광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매년 6~8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을 기념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많은 성악가들이 이곳에서 명성을 쌓았다. 특히 고대 로마시대의 야외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 역을 맡아 열연했다. “1만 6,000석의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를 보니 앞이 깜깜하더군요. 저 거대한 무대에서 작은 체구의 제가 보일까, 제 목소리가 들릴까 걱정했어요. 10년 이상 무대에 선 동료가 눈을 딱 감고 첫 소절을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너무 긴장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으니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그래서 안정감을 찾고 무대를 즐겼습니다. 꿈의 무대에 데뷔하는 소프라노의 흥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공연을 시작으로 그 후 매년 페스티벌에 초대받았다. 지난해는 먼저 제안받은 스위스 아방쉬 페스티벌에 출연하느라 고사했지만, 올해는 ‘아이다’, ‘나비부인’에 이어 ‘토스카’, ‘나부코’까지 제의를 받아 최종 출연 작품을 조율 중이다. “최초라는 수식어보다는 저의 발전한 모습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노래를 할 만하니 무대가 끝나 아쉬웠어요. 이번에는 여러 회 출연하기 때문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제가 가진 가장 좋은 빛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뒤늦게 도전한 성악가의 꿈 ▲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에서 호연한 ‘나비부인’의 한 장면 임세경 씨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외에도 지난 2015년과 2016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빈국립극장)에서 ‘나비부인’을 호연했는데, 이 극장에서 한국인 소프라노가 주역으로 선 것은 조수미, 홍혜경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1월에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토스카’에 출연하는 등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의 존재감은 의외로 미미했다. “성량은 좋았지만, 노래를 그리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뭐든 좀 늦은 편이거든요.” 게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1년 넘게 중환자실을 지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를 잃고 졸업을 한 후에는 성악가의 꿈보다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우선했다. 그렇게 졸업 후 3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은 돈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버니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분연히 일어섰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제 노래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테크닉은 부족해도 마음을 전하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나의 소리가 어떻게 발전할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딱 3년만 공부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오페라의 변방 한국에서 온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성지 이탈리아에 모인 세계 각국의 소프라노들 틈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빛낼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조바심도 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우연히 개인적으로 사사받은 한 마에스트로에게 ‘남들보다 잘 하려고 하지 마라. 남들과 다르면 된다’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세상에 저와 똑같은 목소리는 없잖아요. 외국인이라고, 약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개성을 살리면 되는 거죠. 그때부터 무대가 두렵지 않았어요. 후배들도 대학 시절에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성악과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 서길 바랍니다.” ▲ 국립오페라단 작품 ‘메피스토펠레’에서 열연하고 있는 모습 임 동문은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 서양의 소프라노들보다 늦게 데뷔한 임세경 씨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유럽의 유명 무대에 서며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그는 늦깎이 성악가로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저는 지금 시기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에 큰 무대에 섰다면 발성의 완성도나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오래 서지 못했을 거예요. 모든 영역대의 소리를 소화하며 성대가 가장 건강할 때라는 점에서 전성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직 전성기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더 발전해야죠. 베르디, 푸치니, 벨리니, 도니제티 등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도 너무 많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소위 5대 오페라 극장을 섭렵해야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소리가 무르익을수록 인생도 원숙해지는 법.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살아보니 삶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임세경 씨. 대신 어디에 서든 자신이 선 무대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천상의 소리란 인간의 의지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성대를 빌어 울리는 아름다운 영혼의 연주라는 의미이리라. 5월 미국 워싱턴 케네디홀에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과 핀란드, 스페인, 독일, 일본 등 차례차례 임세경 씨를 기다리는 무대들. 마음을 맑게 닦은 그에게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에 브라바(여성 독창자에 대한 찬사)를 외치는 기립 박수가 화답할 것이다.

2017-04 25

[동문]성실한 건축학도, 대학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다 (3)

우리대학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이 인천도시공사가 주최한 ‘제2회 대학생 설계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참가신청은 771팀에 달하고 최종적으로 72개 대학 170팀이 작품을 접수한 가운데, 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민 지 동문은 최종심사를 거쳐 지난 3월 30일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 생활 마지막 도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 기쁘다는 지 동문.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그를 만났다. 해방촌에 공유를 입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대학생 설계 공모전은 새로운 주거유형을 모색하고 대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목표로 한다. 이번 대회는 ‘공유와 거주’를 주제로 열렸다. 지수연 동문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을 건축 대지로 잡아 ‘Next step for urban steps’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지 동문은 근 30년간의 개발이 대형화, 획일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작은 규모의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전 소규모 단독주택에서 70년대 이후 5층 이하의 다세대 주택, 그리고 8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 왔어요. 저는 급박하게 변화한 주거환경 속에서 작은 조직으로 남아있는 마을에 대한 미래 주거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과 지난 2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방촌은 지 동문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었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인 데다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주를 이뤘다. “해방촌 입구에는 108계단이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면서 만든 계단이에요. 해방 후 신사는 없어지고 계단만 남았는데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주변 건물은 노후 된 채 발전하지 못한 상태죠.” 이러한 상황에서 맞물려 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해방촌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비율이었다. “해방촌에는 '빈집 프로젝트'라고 1인 가구들이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뤄져요. 이렇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주거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파악했어요.” 지수연 동문은 정교한 설계 작업을 통해 108계단과 접하는 1층에는 소강당이나 도서관, 갤러리와 같이 공용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상층부인 2, 3, 4층에는 1인가구를 위한 소형 주거를 배치했다. “1인 거주자들은 ‘빈집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원룸 형태의 독립된 집을 갖지만, 집 사이사이에 공용부엌과 화장실, 옥상 테라스 등 다양한 틈새 공간들을 공유하도록 설계했어요.” 1인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을 마련한 동시에 공유의 가치를 더한 것. 작업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가파른 지형에 무계획적으로 지어진 해방촌의 특성상, 초반 설계 작업에서 형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 동문은 직접 모형을 만들면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나갔고 주변의 조언을 토대로 보완 작업을 했다. “가능한 한 간결하게 주거공간을 구상했어요. (해방촌이) 여유 있는 공간이 아니거든요. 최대한 실용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죠.” 이에 더해, 채광 및 조망, 환기에 대한 측면을 비롯해 경사지의 풍경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지수연 동문이 완성한 ‘Next step for urban steps’의 모습. 각각의 동이 체계적이면서 경사지 마을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출처: 지수연 동문) 건축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같아 지수연 동문은 어릴 적부터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 이왕이면 좀 더 크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건축학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이후 지 동문은 재수 끝에 우리대학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건축학과생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프로젝트와 밤샘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건축학과 학생은 교양 듣기도 힘들어요. 1학년 때부터 필수 과목들을 신청하면 학점이 다 차거든요.” 학과 내 학회인 ‘Art space’에서의 활동도 바쁜 삶에 한몫했다. 방학 때면 강의실과 설계실을 빌려 2주 내지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학과는 보통 지도 교수님 한 분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해요. 매시간 본인의 작품에 대해 발표하고, 피드백을 듣죠.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완성해가도 교수님들의 크리틱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다시 작업해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빽빽한 생활에 힘이 부칠 때도 잦았지만, 지 동문에게 후회란 없었다.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해요. 구상했던 작업이 논리적으로, 설계적으로 전부 조건에 부합했을 때 희열을 느끼죠. 그럴 때면 ‘그동안 들였던 시간이 의미없진 않구나’란 생각을 해요.” 올해 졸업한 지수연 동문은 현재 네덜란드와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지만, 지 동문은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사실 제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했어요. 저 혼자 이 길을 가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하게 됐어요. 저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이번 공모전 입상으로 받을 상금은 유학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예정이라고. 긍정적 영향 미치는 건축가가 될 것 지수연 동문이 꿈꾸는 건축가의 모습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축가’다. 자신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을 짓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아니었지만, 지 동문의 뚜렷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는 평생을 건물 안팎을 드나들며 살아가요. 이때 건물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도시 계획 쪽으로도 관심이 많아요. 계획이 잘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수연 동문은 실용적인 건축가를 꿈꾸며,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3

[동문]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정신으로, 디자인의 길을 찾다!

젊음의 거리 홍대를 지나, 연남동 골목길에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의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가게들 사이, 짙은 청록색 외관의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갖고 1층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각종 피규어와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가 눈에 띈다. 바로 달걀 껍데기를 머리에 쓰고 있는 병아리 ‘꼬모’다. 바로 이 곳이 지나가는 아이들도 ‘꼬모’를 보고 발길을 멈춘다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의 제작사 디자인 에그’다. 화창한 봄 날씨가 한창이던 지난 21일 회사 근처 한 카페에서 ‘디자인 에그’의 대표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을 만났다. 꿈을 향해 달려온 10년 어린 시절부터 만화나 영화에 빠져 살던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신만의 꿈을 좇기 위해 치열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처음엔 화가였던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공대에 진학했지만, 2학기 땐 아버지 몰래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교 입학 후 돈을 벌어 그 떄 학원비를 낸다는 조건으로, 학원을 다녔어요.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일도 많이 했구요.” 이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정 동문은 언젠가 자신의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밟아 나갔다. “원래 졸업 후 최대한 빨리 창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 전에 사회 경험도 쌓을 겸 영화사에서 잠깐 일을 하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눈 여겨 봤었죠” 당시 업계의 열악한 처우와 감독들의 하대하는 분위기는 정 동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 땐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가곤 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를 차리면 기존 디자인 업계의 관습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정 동문은 2007년에 마음 맞는 다른 동기와 함께 현재의 디자인 에그를 설립하게 됐다. 회사명은 ‘달걀 껍데기를 남이 깨면 후라이가 되고, 본인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는 점에 착안해 지었다. 그리고 벌써 창업 10주년을 맞은 올해, 디자인 에그는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점차 관습을 바꿔나가고 있어요. 연봉이나 복지도 늘려주고, 야근도 줄이는 식으로요” ▲ 정제원 동문(영상디자인학과 00)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를 지향한다며, "회사 내에선 누구든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마음껏 편하게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토닥토닥 꼬모’를 통해 빛을 발하다 현재 디자인 에그는 크게 ‘커머셜’ 파트와 ‘콘텐츠’ 파트로 나누어 일을 하고 있다. ‘커머셜’ 파트의 경우 공공기관이나 방송사 등에서 외주를 받아 영상 등을 기획, 진행한다. 반면에, ‘콘텐츠’ 파트는 직접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어플리케이션 등을 기획, 개발하는 방식이다. 정 동문은 장기적으로 디자인 업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커머셜 파트보다 콘텐츠 파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파트를 진행하려면 큰 돈이 필요해서 초기엔 커머셜 파트에 집중했어요. ‘토닥토닥 꼬모’를 제작할 당시에도 잠시 회사가 휘청했죠(웃음)” 겁 많은 아기 병아리 ‘꼬모’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는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자체 콘텐츠로 제작했다가 유행을 타 지상파 SBS에도 방영되고, 작년엔 중국 상하이 방송까지 진출했다. 일반 영상 에이전시에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한 것도 대단하지만, 지상파에 방영된다는 것은 더욱 드문 일이다. 정 동문은 이처럼 ‘토닥토닥 꼬모’가 큰 인기를 끈 비결로 애니메이션이 전하는 메시지를 꼽았다. “’토닥토닥’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길 바랐어요. 요즘 같은 경쟁 사회에서 ‘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정제원 동문이 추천하는 에피소드. 꼬모와 친구들이 열매를 먹으려고 돌을 던져 나무에 상처를 냈고, 그날 밤 꼬모 꿈에 나무가 나타난다. 꼬모가 울고 있는 나무를 위로하며 상처를 이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존에 제작하던 커머셜 영상은 1분 30초 내외의 짧은 편이었지만, 애니메이션 영상은 한 편에 7분 정도로 긴 편이었기 때문에 작업에 익숙지 않았다. 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어린이 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데모버전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에서 웃고 어떤 부분에서 딴 짓을 하는지 체크했어요. 또, 아이를 키우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눴구요.” 결국, 이와 같은 몇 년의 기다림과 인고의 과정 끝에 디자인 에그는 꼬모를 통해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됐다. ▲ 아이들이 '토닥토닥 꼬모' 캐릭터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머리에 달걀 껍데기를 쓴 캐릭터가 주인공 '꼬모'다. (출처: 정제원 동문) 앞으로도 꾸준히 일 하고파 정 동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기에 몇 번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컴퓨터 2대로 시작했고, 6개월 가까이 통장 잔고가 늘 바닥이었어요.” 다만, 절대 남에게 빚은 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빚을 지면 재기할 기회가 줄어들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회사가 자리를 잡았기에, 정 동문은 다 같이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한국은 디자이너가 평균 근속 연수가 짧은 편이에요. 저는 늙어서도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 정제원 동문은 창업을 고려중인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라"고 조언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4 20

[동문][사랑, 36.5°C] 당신의 정 묻은 손이 누군가에게 삶을 지탱해 주는 동력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혹은 종교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가 가는 길에 긍정적인 발자국을 남기게 한다면 그 발자국은 뒤에 오는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본인이 몸 담았던 모교 운동부를 위해 발전기금 3,000만 원을 쾌척한 박민수 동문은 자신의 시작에 거창한 의미가 담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익힌 자신의 신념대로 그저 행했을 뿐이다. ▲박민수 (13 스포츠산업학과) 동문 Q 졸업과 동시에 모교 운동부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시합에 나가 한양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양대 선수들만의 단합된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꼭 한양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운동부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좋은 성적을 많이 거뒀는데, 그런 추억들이 모교에 대한 애정으로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실업팀과 계약하자마자 함께 뛰던 후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들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계약금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Q 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돈이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제가 한양대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실업팀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셨고, 제게도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권하신 분들이라 이번 일에도 이견은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만 아파하는 동정심도 가진 사람이 부리는 오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오셨네요? 네, 거창한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통해 선교나 고아원 등의 봉사활동을 일찍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장학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더 좋은 기회들이 저절로 찾아왔던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기부는 다른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기부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박민수 동문이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완벽하지 않잖아요. 저 역시 개인으로서나 운동선수로서나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가슴 깊이 찌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이라고 표한하기 어려운… 그 경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질이 주는 행복감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Q 박민수 선수의 기부금이 운동부실의 발전에 어떻게 사용되었으면 합니까? 사실 운동을 하려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면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되었으면 하고, 일부는 후배들이 단체복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선수들의 소속감이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시각적인 수단이니까요.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가 모두에게 필수는 아닙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미루다가 나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마시고, 일단 저지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기부 약정을 통해 조금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독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사는 게 조금은 짐을 더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민수 동문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기부는 힘든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짐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 말한다. Q 앞으로의 포부와 후배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4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됩니다. 하루 7시간 이상 훈련을 하느라 많이 힘들지만, 꿈이 있기에 이 모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후배들도 큰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디어 냈으면 합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좋은 결과로 되돌아오니까요.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