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등록
검색섹션
검색영역
기사등급
기사형태
검색영역
검색단어 또는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컨텐츠
검색된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컨텐츠
검색된 정보가 없습니다.
게시글 상세보기
정보

2017/07/24 인터뷰 > 학생

제목

준비된 아마추어 투수, 프로를 정조준하다

2018 KBO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최채흥 씨(생활스포츠학과 4)

채근백

URL복사/SNS공유

http://www.hanyang.ac.kr/surl/q5TM

내용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6월 26일, 10개 구단의 ‘2018 신인 1차 지명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대학의 좌완 투수 최채흥(생활스포츠학과 4) 씨는 대학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지명을 받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최채흥 씨를 지난 16일 ERICA캠퍼스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최고의 신인, 슈퍼루키
 
신장 186cm, 몸무게 96kg. 딱 봐도 건실한 체구의 소유자인 최재흥 씨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1차 지명의 소감을 밝혔다. “지명되는 순간 기뻤다기보다는 감사했어요. 그 날 고마운 분들에게 전화를 많이 돌렸죠.” 2018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구선수로서는 누구나 꿈꾸는 프로의 명찰을 달았음에도, 최 씨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받는 지명이다 보니, 기분이 좋아서 지명받은 그 주는 정말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는 프로가 지녀야 할 책임감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네요.”
 
고교 시절 팀의 4번 타자면서 1루수로 활약한 최 씨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돌연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2014년 대통령기 우승에 이어, 2015년 U-21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정되며 투수로서의 두각을 나타냈다. 대통령기 전국야구대회에서는 4안타만 허용하며 투수상을 타냈고  다음 해에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정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이처럼 최채흥 씨는 자신의 기량과 노력을 모두 보여주며 대학야구계를 흔들었다.
▲최채흥(생활스포츠학과 4) 씨는 2018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고 있는 슈퍼루키다.

물론 프로가 되는 것이 마냥 편한 일은 아니다. 프로는 ‘Professional’의 약자다. 전문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프로라는 것은 그 분야에 있어서 특출난 실력을 매 순간 증명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최채흥 씨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국제 대회를 포함해 여러 시합에 등판했고 수많은 이닝을 소화했어요. 그러면서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감각도 기를 수 있었죠.” 최 씨의 단호하지만, 확신에 찬 발언이 이어졌다. “경기를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제가 올해 드래프트 된 인원들 중에서 상위권이라고 생각해요. 구위도 좋고요.”
 
자신감 넘치는 그도 실패의 쓴맛을 본 기억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신인 드래프트에서 더 잘하는 또래 선수들에게 밀려났을 당시 최채흥 씨의 실망은 컸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드래프트가)안 되니 실망했어요. 아버지께서도 크게 실망하셨고요.”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고 싶었던 최 씨는 아버지를 설득해야만 했다. “‘대학 가서 더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 돈 더 많이 받겠다’라고 아버지를 설득했어요. 이야기하다가 너무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채흥 씨는 “실패하고 진학한 대학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으며 드래프트 되었다”라고 말했다. “대학 가서 잘할 거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된 거죠!”
 
보이 투 맨,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최고구속 147km대의 공을 던지는 강력한 좌완 투수이자 주목 받는 루키. 이런 최채흥 씨에게도 야구공을 처음 쥐어 볼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갔어요. 야구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연히 쉬운 길은 아니었다. “처음 들어가서 운동장을 도는 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계속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한 달 후에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했죠.” 어렸던 최채흥 씨가 야구를 계속하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에는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집 형편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도 반대하셨고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뭐든지 잘한다’고 생각하셔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최채흥 씨의 야구 사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그로부터 13년 동안 줄곧, 최채흥 씨의 야구 사랑은 마운드에서 이어지고 있다. (출처: 최채흥 씨)

마음을 다잡고 야구에 매진해 중학교 때까지는 투수를 맡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신체조건의 문제로 타자 포지션을 맡게 됐다. 투수 하나만 보고 야구에 뛰어든 최 씨에게는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에서는 타자와 1루수를 맡게 되었지만, 투수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순 없었다. “본업의 타자지만 투수 훈련도 했어요. 제가 왼손 투수에, 키도 크니, 구속만 조금 빠르면 투수로서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최채흥 씨는 야구 감독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왼손 투수는 지옥 끝까지 가서도 잡아 와야 된다’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감독님께 강하게 어필했어요. 투수가 정말 하고 싶다고 말이에요.” 천운인지, 그 당시 한양대학교 야구부의 감독이던 김한근 감독 역시 최 씨를 투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님하고 이야기하고 곧바로 투수로 포지션을 이동했죠.”
 
바라던 투수로 전업했지만, 이번엔 무슨 훈련을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운동하는 방식도 몰랐고,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이수민 선수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최 씨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수민 선수는 최 씨가 투수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수민이를 목표로 잡고 열심히 했어요. 잘하는 친구니까요. 지금은 둘 다 프로가 됐으니 서로 배우면서 돕고 사는 관계죠.” 오랜 동창을 회상하는 최 씨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최채흥 씨는 현재 올해 마지막 대학리그를 뛰고 있다. 시즌 초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는 그에게서 대학야구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어렵다, 하지만 도전한다
 
2018년, 프로 데뷔를 앞둔 최채흥 씨의 포부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길게 잡기보다는 1년 계획을 세우는 편이에요. 내년 목표는 1군에 있으면서 부상 없이 신인왕까지 하는 게 목표입니다.”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선발투수로서 자리 잡아야 하는 동시에, 신인 투수로서 평균 134경기 중에 10승 이상을 거둬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목표다. “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죠. 물론 프로를 얕보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해내야 신인왕이 될 수 있어요. 또, 목표는 크게 세울수록 좋으니까요.”
 
현재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을 야구에 던졌다는 최채흥 씨. 가장 재미 있는 것도 야구,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야구라고 최 씨는 말한다. “야구인으로서의 인생에 대해서는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더라도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든 야구를 하고 있을 것 같네요. 야구를 더 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이 야구를 하는 동안 누군가 자신을 보고 <제2의 최채흥>을 꿈꾸길 바란다는 최채흥 씨. 2018년, 프로의 마운드에 올라설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URL복사/SNS공유

기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