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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05 중요기사

[학생]싱어송라이터에서 '최예근 밴드' 보컬로의 변신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시즌2 에서 천재 키보드소녀로 불렸던 최예근(실용음악학과 3) 씨. 출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최예근 씨는 어느새 만 20세의 대학생이 됐다. 싱어송라이터로 싱글 곡을 발매하다 지난 1월 '최예근 밴드'로 변신한 그의 꾸밈 없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밴드 싱글 ‘어른’으로 돌아오다 케이팝스타 시즌 2에서 최종 8인에 들었던 싱어송라이터 최예근(실용음악학과 3) 씨가 자신의 이름을 딴 5인조 밴드 '최예근 밴드'로 돌아왔다. 이들의 신곡은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모티브로 한 ‘어른’으로, 최예근 씨가 직접 작사∙작곡했다. 고등학생 때 짝사랑했던 오빠가 자신의 모습을 꿰뚫어 본다는 느낌에 영감을 받아 작사했다. '어른들만 가질 수 있는 차분한 그 말투'라거나 '의미심장한 말들로 내 맘을 조물딱 대'와 같은 가사에서 최예근 씨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싱어송라이터로 혼자 활동한 그가 밴드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일까. “학과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밴드를 결성했어요. 어떤 음악이 저에게 맞을지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크고 작은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밴드도 만들게 됐죠." 학교 생활과 가수 활동을 병행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으나, 특유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돌파했다.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교수님들의 조언도 얻을 수 있었고, 학과 수업에서 배운 것이 스며들어 제 음악에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 싱글 앨범 '어른'을 발표한 '최예근 밴드'. 왼쪽부터 김지인(베이스), 이현승(기타), 최예근(보컬), 이민철(드럼), 김국연(피아노) (출처: 최예근 밴드)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가 처음 가수 준비를 할 때만해도 주변에서 지금의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보컬 학원을 다녔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대요. 케이팝스타에 출연했을 때도 친구들은 '곧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어요(웃음)." 기대와 달리 좋은 결과를 얻어서 기뻤다는 그는 방송 이후 예고로 편입, 2015년 우리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마음 속 이야기를 달에게 털어놓는다는 의미의 'Super Moon', 영화 <도가니>를 모티브로 한 '까만 얘기' 등을 발표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학과 공부에도 소홀하지 않아 지난 학기에는 장학금을 받았다. 학과 생활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최예근 씨는 지난 학기 휴학을 했다가,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돌연 복학을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영감은 평소 영화를 보거나 독서를 하면서 얻는 편이다.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하는데, 제 자신이나 누군가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많은 않아요. 그래서 작사가 더 어렵더라고요." ▲ 케이팝스타 시즌 2에 출연한 최예근 씨의 모습. 뛰어난 키보드 실력과 파워풀한 보컬로 심사위원의 찬사를 받았다. (출처: SBS) 자신만의 색채 이어가고파 현재는 밴드의 막내로 활동 중인 최예근 씨는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밴드 활동을 미술로 표현하자면 ‘흰 도화지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저만의 다양한 색깔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전국 투어도 해보고 싶고, 다양한 공연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다가오는 봄에는 짝사랑에 대한 감정을 담은 ‘어른’을 포함한 신곡을 미니 앨범으로 발표할 예정. 가을에는 만 20살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내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언젠가는 학교를 빛낸 뮤지션이 되고 싶단 그의 이름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솔로에서 밴드로 돌아온 최예근 씨가 인터뷰를 마친 후 포즈를 취했다. 특유의 당당함과 여유가 돋보인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1 24 중요기사

[학생]"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이바지하는 공무원 될게요" (1)

지난해 12월, 2016년 국가공무원 5급 공채 합격자가 발표됐다. 우리대학은 기술직(이하 기술고시)에서 선전한 모양새다. 서울캠퍼스에서 17명, ERICA캠퍼스에서 2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며 기술고시 합격자 수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재학생 조민웅(기계공학부 4) 씨가 총점 92.76점을 받아 일반기계 직렬 수석의 영예를 안았다. 학부에서 배운 공학 지식을 활용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책을 펼치고 싶다는 조 씨를 만났다.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공무원 꿈꾼다 ▲ 조민웅(기계공학부 4) 씨 2016년 기술고시 일반기계 직렬에 응시한 사람은 총 268명. 이 중에서 단 9명만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약 3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이번 시험에서 조민웅 씨는 '수석 합격'으로 두 배의 기쁨을 맛봤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2012년과 2013년에 수석으로 합격하신 학과 선배들을 롤모델로 생각하고, 그 뒤를 잇겠다는 각오로 노력했어요. 실제로 수석인 것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을 했죠." 기술직과 행정직으로 구분되는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을 통과하면 '사무관'으로서 국가 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평가하는 일을 맡는다. 합격을 위해서는 매해 2-3월 치르는 1차 시험 공직적격성평가 '피셋(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과 2차 전공 시험, 3차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조 씨는 세 차례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대학생활 틈틈이 참여한 봉사활동의 영향이 컸다. "대학에 입학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에게 무료로 과외를 했어요. 연탄나눔이나 집 고치기, '밥퍼'(무료급식) 봉사활동 등에도 참여했죠."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을 보며 조 씨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공직자'를 꿈꿨다. 앞으로는 대학에서 배운 공학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 조민웅 씨(오른쪽에서 3번째)가 집 고치기 봉사활동에 참여해 도배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이다. (출처: 조민웅 씨) ▲ 조민웅 씨(뒷줄 왼쪽에서 5번째)는 재학생이 1시간 동안 캠퍼스 미화 작업에 참여, 미화원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십시일락'에도 참여했다. 주변의 도움과 응원으로 얻어낸 합격 조 씨가 고시 공부에 입문한 것은 2013년 가을 쯤이다. 그로부터 2년 동안은 학교 수업과 고시 준비를 병행하다 2015년 9월부터 1년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수험 생활에 매진했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 새벽 1시에 잠들었고 '생활 유지에 필요한 시간' 외에는 늘 공부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만 가끔 강변을 달리며 마음을 달랬다. "긴 수험 생활에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게 중요해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강변을 달리곤 했는데, 체력관리까지 되는 것 같아서 이 방법을 애용했죠." 담담하게 공부에 임했던 그에게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특히 심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을 때는 2015년 1차 시험에 낙방했을 때다. 2년 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단 상실감에 한동안 어수선한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당시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가 슬럼프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는 그다. "부모님, 할머니의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큰 힘이 됐어요." 가족이 마음의 버팀목이 됐다면, 실질적인 시험 준비에는 학교가 제공한 다방면의 교육과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고시반에서 지원하는 모의고사와 특강을 통해 실전 감각을 길렀고, 고시반 기숙사를 배정받은 덕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또 2차 전공시험을 대비해 평소 전공 수업과 고시 공부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고, 수업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 조 씨의 합격 비결이었다. ▲조민웅 씨가 직접 정리한 노트필기. (출처: 조민웅 씨) ▲ 조민웅 씨가 손으로 쓴 노트필기를 모은 파일이다. 열 권이 넘는 양이다. (출처: 조민웅 씨)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정책 필요해 조 씨는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연수를 받고, 다음해 1월에 부서 배치를 받는다. 긴 시간 꿈을 위해 달려온 그가 연수 전까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지난해 설에는 공부하느라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기숙사에 남아있었어요. 주변 식당이 며칠간 모두 문을 닫아 즉석 식품을 먹으며 '다음해 설에는 꼭 합격해서 가족들과 집에서 떡국을 먹으리' 다짐했던 기억이 나요. 드디어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웃음)." 그는 이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의 미래를 구상 중이었다. "우리나라는 3차 산업혁명에 잘 대응한 덕에 세계 경제 10위 권에 드는 국가가 됐어요.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대응해야 하죠. 이에 대한 대응 방식이 우리나라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조 씨는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기술직 공무원으로서 전문성을 갖추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힘찬 포부 만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길 기원한다. ▲ 조민웅 씨는 졸업을 앞두고 한 달 동안 전남테크노파크 레이저센터에서 기계공학부 전공현장실습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조민웅 씨)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2017-01 23 중요기사

[학생]한국 영화가 좋아서, 그 열정 하나로 (1)

2004년, 봉준호 감독의 흥행작 <살인의 추억>(2003)이 영국에서 개봉했다. 우연히 이 영화를 관람한 한 영국인은 탄탄한 줄거리에 매료돼 한국영화에 푹 빠졌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영화 공부를 시작한 것은 물론,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연극영화학과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영화 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Screen International)에서 평론가로 활동 중인 제이슨 베셔베이스(Jason Bechervaise, 연극영화학과 박사과정) 씨가 주인공. '한국영화광'을 자처하는 그를 만났다. <살인의 추억>으로 뒤바뀐 삶 제이슨 평론가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영국 영화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Screen International)’ 소속 한국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코리아 타임즈, 서울매거진 등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영화평을 기고하며, 아리랑TV와 EBS 라디오 등에 평론가로 출연한 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도 참석해 수많은 한국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영화를 사랑해 벌써 8년 동안 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이미 영화계 유명인사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고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이끌어가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영화를 몰랐던 저를 일깨워준 작품이었죠." 2004년, 제이슨 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영화 공부를 시작해 런던에서 영화분야 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으로 건너와 우리대학 연극영화학과 대학원에 입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단순히 한국영화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한국영화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 영화의 특징은 물론 배급구조에 대해서도 이해하고자 열심히 공부했죠. 아직은 부족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점차 익혀나갈 예정입니다." ▲ 지난 18일 고양시 한 카페에서 영화잡지 스크린(Screen) 소속 평론가 제이슨 베셔베이스(Jason Bechervaise, 연극영화학과 박사과정) 씨를 만났다. 영화를 쫓아 영국에서 한국으로 오다 그가 한국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한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때문에 한국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살인의 추억>을 재미있게 봤지만, 한국의 역사가 반영된 거라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죠. 이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한국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제이슨 평론가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80년대 한국의 상황과 역사,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에 더 깊이 매료됐고, 한국영화를 알리기 위한 사이트를 만드는 등 본격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2010년에는 더 많은 한국영화를 접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영화에 대해 공부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더 많은 영화를 만나고 싶었어요. 또 한국의 영화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죠."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한국에 왔지만, 이국 땅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그다. "영국과 달리 한국은 분위기가 항상 밝고 활기가 넘쳐요." ▲ 1980년대 한국의 어두운 분위기를 잘 담아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 500편 영화 감상이 올해 목표, 언젠간 한국어로 영화평 쓰고 싶어 한국 영화에 매력에 대해 묻자 제이슨 평론가는 “한국영화는 편집, 촬영, 영상, 음향 등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다"고 했다. "한국의 영화계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또 영국의 경우 미국과 공동 제작해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배급, 제작, 투자, 연출 등이 한국 안에서 이뤄지기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저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평론가들이 한국영화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제이슨 평론가가 흥미롭게 본 한국영화는 어떤 것일까. 단연 으뜸은 <살인의 추억>이다. "한국의 사회상을 반영한 훌륭한 영화예요. 1980년대 한국의 어두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이 밖에는 식은 땀이 흘러 영화 보는 내내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는 <곡성>과, 액션이 주가 되는 보통의 스파이 영화와 달리 대사로 승부하는 <밀정>, 한국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아이들>을 꼽았다. 한국어가 서툴러 영화로 영화평을 쓰는 그는 언젠가는 한국어로 영화평을 쓰고 싶단 포부를 전했다. “지금은 SNS에 가끔씩 한국어로 영화 소개를 쓰는 정도인데 앞으로는 한국어로 전체 리뷰를 쓰고 싶어요. 하나 쓰는 데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요(웃음)." 박사과정 논문을 쓰느라 바빴던 시기가 지난 지금, 그는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보통 1년에 한국영화는 120편, 전체로는 250편 정도 보는데 올해는 500편의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 제이슨 평론가가 인터뷰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글/ 최연재 기자 cyj0914@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1 17

[학생][벤처한대] 푸드트럭으로 첫발 내딛은 생활협동조합 '하이쿱'

‘한양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왕십리? 사자상? 혹은 경사진 언덕? 생활협동조합 하이쿱(HY-COOP)의 노수영 대표는 앞으로 ‘한양대’ 하면 ‘하이쿱’이 떠오르길 희망한다. 지난해 한양대 학생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된 하이쿱은 푸드트럭 프로젝트로 그 첫발을 내딛었고, 현재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협동조합, 그게 뭔가요? 하이쿱은 생활협동조합을 표방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일반 회사의 경우 주식과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자본의 토대를 마련한다. 즉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회조직인 것이다. 이처럼 하이쿱은 한양대 학생부터 교직원까지 학교 구성원 모두의 더 나은 학내 생활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창업 플랫폼을 마련해주는 활동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노수영 대표는 왜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일까? “대부분의 해외 대학은 편리한 대학 생활을 위해 학생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협동조합이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한양대에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마침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노 대표는 여러 학과에서 친구들을 모아 하이쿱을 만들게 됐다. 협동조합의 명칭은 한양의 이니셜인 ‘HY’와 협동조합을 의미하는 ‘Cooperative’를 합친 하이쿱(HY-COOP)으로 정했다. 현재 하이쿱은 학생 복지 증진 조합으로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의 더 많은 의견을 듣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 하이쿱 노수영 대표(경영학부 14) 하이쿱의 첫 프로젝트, 푸드트럭 하이쿱은 지난해 4월 첫 총회를 갖고 약 한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설립됐다. 하이쿱이 선택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푸드트럭이다. 트럭을 개조해 조리시설을 갖추고 야외에서 음식을 파는 외식 사업의 한 형태인 푸드트럭 사업에는 노수영 대표의 대학생으로서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푸드트럭 이외에도 구상해 놓은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밥’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때가 많을 거예요. 여러 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특히 식생활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드트럭의 핵심인 트럭은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트럭을 확보하고 트럭 운영 방식을 정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쿱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노 대표는 고심 끝에 푸드트럭의 오픈 시기를 지난해 봄 대동제로 결정했다. “푸드트럭이 갑자기 캠퍼스에 등장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목받을 만한 큰 행사를 찾다가 학교 축제를 떠올렸습니다.” ▲ 노수영씨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 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라 말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하이쿱의 트럭 두 대와 외부 트럭 세 대를 합쳐 총 다섯 대의 트럭을 축제 기간에 운영할 수 있었다. 이후 하이쿱 푸드트럭은 지난해 6월부터 생활과학대학 앞에서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푸드트럭의 오픈은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그간의 준비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 대표는 푸드트럭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푸드트럭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과 마케팅, 그리고 조합원 모집을 꼽았다. “푸드트럭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지난 2학기에도 오픈 일주일 전에야 겨우 인력을 구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아직까지 저희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지난 2학기에는 조합원 가입이 채 20명이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한양인에 의한, 한양인을 위한 기업 노수영 대표는 식생활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로 통학 불편을 꼽는다. 캠퍼스 내에 언덕이 많아 한양대역에서 강의실까지 가는 데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내 셔틀버스 운영을 계획 중이다. 교내뿐만 아니라 왕십리역에서 한양대까지도 셔틀버스를 운영해 학교 구성원의 편안한 학내 생활을 도울 예정이다. 이르면 올 1학기부터 만날 수 있다. “하이쿱은 아직까지 그저 음식을 팔고 수익을 내기 위해 들어온 푸드트럭 운영자 정도로만 학생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다른 활동 없이 푸드트럭만 운영하다 보니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노 대표는 앞으로 하이쿱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길 기대할까? “외부에서 볼 때 한양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이쿱도 이러한 한양대의 이미지처럼 기존 대학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협동조합을 운영해서 학생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대학 생활에 필요한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하이쿱은 수익금의 일부를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노 대표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혹은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며 아직까지 푸드트럭 이미지가 강한 하이쿱이 생활협동조합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하이쿱의 활동이 보다 나은 한양인의 생활을 이끌어가길 기대해본다. '하이쿱' A to Z what 하이쿱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하이쿱은 학생들의 더 나은 대학 생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협동조합입니다. 대학 생활 증진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활동의 범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why 왜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나요?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학과 잠바의 경우, 5~6만 원 선에서 구입하게 되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가격입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을 고려해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 양이 부족하고 질도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학생들끼리 풀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저희가 직접 운영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인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How 어떻게 하이쿱을 이용할 수 있나요? 하이쿱이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참고하시거나, 이곳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For Whom 하이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하이쿱의 목표는 한양대 구성원의 복지 증진이고, 저희의 수익은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이쿱은 곧 한양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지요. Where 하이쿱에서 운영하는 푸드트럭은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생활과학대 앞에서 두 대의 푸드트럭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4,000원 대의 볶음밥 종류를 판매하고 있고, 카페 형식의 다른 한 곳에서는 샌드위치 2,500원, 음료 1,500~2,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Who 누가 하이쿱을 운영하고 있나요? 한양대 학생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하이쿱에 참여하고 싶거나 교내에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실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학생][동고동락] 로봇공학과 1기 활약 알리는 신호탄을 쏘다

지난 2013년 신설된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프리라이더 팀 학생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글. 이주비 / 사진. 안홍범 끝까지 노력했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린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지능형 SoC 로봇워’ 분야 중 휴로 컴피티션(HURO-Competition) 종목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휴로 컴피티션 부문은 로봇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로봇이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을 입력받아 사람의 조종 없이 스스로 장애물 미션 경기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로봇공학과 1기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대회 수상을 목표로 지난해 3월 의기투합해 프리라이더를 결성했다. 프리라이더 팀의 김민지 학생은 “저희가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대회를 준비해왔지만 사실 우승할 수 있을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며 “대회 첫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 겨우 예선을 통과했기 때문에 수상 자체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다음 날 본선에서 기대보다 결과가 좋아 너무 기뻤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김효정 학생은 “이번 수상으로 로봇공학과에 진학해서 4년 동안 배운 것들에 대한 보답을 받은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프리라이더 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민준 학생은 “저 역시 첫째 날인 예선에서는 수상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예선에서 4등으로 겨우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본선이 열리는 다음 날까지 숙소에서 팀원들과 밤을 새가며 로봇에만 매달렸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려서 처음부터 많은 점수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때 우승을 확신했습니다.” ▲ 로봇공학과 13학번 '프리라이더' 팀원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하지수, 최민준, 김민지, 천회영, 김효정, 황순근 학생 이번 대회에서 프리라이더 팀이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보완’이다. 이에 대해 최민준 학생은 “10월 본 대회에 앞서 8월에 일종의 연습 대회가 있었는데, 이때 로봇이 느리지만 정확하게 갈 수 있는 데 집중했다”며 “본 대회에선 이를 좀 더 보완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갈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주효했다”고 전한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프리라이더’ 프리라이더 팀 구성원들은 모두 졸업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그들은 로봇공학도로서 어떤 것을 꿈꾸고 있을까? 하지수 학생은 “우리나라 로봇 연구가 좀 더 심도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황순근 학생은 “로봇이 사람을 도와주는 도구로서, 가능하면 몇몇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학생은 “지금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듯이 언젠가는 로봇이 스마트폰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앞으로 사람들의 일상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천회영 학생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로봇을 꿈꾸고 있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서처럼 자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고, 인간과 더불어 자연에도 이로운 로봇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민준 학생은 예전에 어디선가 봤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이 진정한 기술이다’라는 글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요. 이 문장처럼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는 물론 우리나라 로봇공학계의 앞날을 이끌어갈 ‘프리라이더’ 구성원들. 다양하고 희망 찬 포부만큼이나 그들이 앞으로 로봇공학계에서 펼치게 될 활약이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꿈꾸는 청춘]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지난해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정치외교학과 이한결 학생은 도전을 해야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을 만나 예비 공직자로서의 당찬 포부를 들어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이한결(정치외교학과 10)학생 예비 공직자로서의 다짐 공무원에 임용되면 공무원 선서문을 낭독하는데, 선서문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흔히 공무원은 국가와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에서 ‘공복(公僕)’이라 일컬어진다. 그 어떤 직업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사명감을 요구받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공복의 자세를 다져야 할 것이다. 2016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간명하게 발신하는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에게 돌아갔다. 그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은 구직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효율성과 원칙만을 내세우며 매뉴얼을 고수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의 부조리함은 보는 이들을 참담하게 만든다.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인간이 배제된 것이다. 이 영화는 대민 행정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무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직자가 되면 복지부동의 태도를 경계하겠습니다. 면접을 준비하며 선배 공직자분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앞으로 민원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소위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이한결 학생의 다짐이다.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도전 지난해 11월 9일은 제60회 국가직 5급 공채의 일반행정직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그 전날부터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한결 학생은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정확히 오전 9시 18분 전, 꿈에 그리던 합격 문자를 통지받았다. 가장 먼저 부산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는 이한결 학생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렸다.“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바라던 공직을 맡게 됐다는 기대감과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낸 저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었습니다.” 합격 문자를 다시 받은 듯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전하는 이한결 학생. 모든 시험이 그렇듯 국가시험을 준비한 지난 3년간의 시간은 그 누구도 대신 치러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람된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으로 공직자의 길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군 복무 중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심사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았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이한결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조언한다. 1차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복학에 앞서 소위 행정고시준비반이라 불리는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에 입반한 그는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급적 많은 문제를 풀어보라고 조언한다. “답안지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어떻게 구성해야 좋은 답안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즉 논쟁마다 상충되는 가치가 충돌하는데 각각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와 주장의 근거를 면밀히 살핀 뒤 현재 사회에 보다 타당한 가치와 저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한결 학생이 평소 자신의 주관과 가치를 축적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시험반 스터디 모임에 멘토로 참여해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점검해주고 있는데, 이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문제의 논쟁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주장의 근거를 분명히 제시했는지 조언해주고 있다. 지난 2014년 여름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한결 학생은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 장학금 제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워낙 학교의 지원이 탄탄해서 경제적 걱정은 한시름 놓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 평가 시험, 합격한 선배님들의 면접 특강과 모의 면접에서의 세심한 멘토링 등 물심양면으로 학교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 활기찼던 대학 생활 국가시험 수험생이라고 하면 잠잘 때를 빼고는 좌우가 막혀 있는 갑갑한 도서관 책상에서 꼼짝 않고 책만 파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한결 학생의 대학 생활은 그 어떤 학생보다 활기찼다. 1학년 때부터 학년 대표를 맡았던 그는 학과에서 진행하는 MT, 농촌 활동, 축구대회 등 각종 행사에 빠진 적이 없다. 이렇게 열심히 학과 생활에 참여한 이유는 부산에서 올라와 시작한 낯선 서울 생활에 선후배 및 동기들이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모의국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서울 지역 8개 대학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친목을 다지는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인권논문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국가시험반 동기와 KTV 국민방송의 <정책 퀴즈왕>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500만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한결 학생은 그동안 받은 장학금을 되갚는다는 의미에서 상금의 일부를 사회과학대학에 기부했다. 이렇게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열심히 즐긴 덕분에 손에 꼽는 추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중간에 친구들과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올린 인권논문대회 참가 경험과 모의국회 행사를 준비하며 14학번 후배들과 두 달간 동고동락했던 일 등 모두 성취감이 컸습니다. 다른 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교류를 트기 위해 축구대회를 개최한 일도 보람 있었고요.” 활발한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활력과 위안은 수험 생활 중간중간 용기를 앗아가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자칫 공부에만 치우쳐 학과 생활이나 교우 관계, 일상적 삶이 훼손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했다. 2월이면 정든 교정을 떠나는 그는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조언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시간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외로움을 참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시간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어울리고,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 효율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전환기에 보탬이 되는 공직자가 꿈 구조적으로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우리 사회의 성장 모멘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최근 이한결 학생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회적 화두다. “저출산이나 양극화, 사회적 갈등도 모두 저성장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미국, 일본의 혁신 사례 등을 참고해 구조 개혁을 이뤄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는 그는 국가적 위기에 당면했을 때야말로 공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려면 평소 선견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그는 이를 위해 늘 열린 자세로 새로운 사고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원의 목소리에 경청하면서 말이다. 우리와 약속한 이한결 학생의 초심이 앞으로 걷게될 공직자의 길에서 나침반으로 바르게 작동하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人사이드人터뷰] 즐겁게 노래하고 꿈꿀 수 있어 행복해요

성악가 조찬희 씨가 지난해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열린 제67회 비오티 국제 콩쿠르 성악 부분에서 최연소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우승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내기 성악가의 꿈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홍승진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쾌거 ‘비오티(Viotti) 국제 콩쿠르’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반니 비오티를 기리는 대회다. 유엔에서 지정한 콩쿠르로, 음악가라면 누구나 알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미렐라 프레니를 비롯해 소프라노 조수미와 송광선, 테너 홍성훈이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 조찬희 씨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더욱이 출전 당시 23세(한국 나이 25세)로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더욱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DVD와 이력서로 사전 심사를 거쳐 지원자 400명 중 70명이 선발됐습니다. 지난해 7월, 사전 심사 합격을 통보받은 후 약 석 달간 본격적으로 콩쿠르를 준비했어요.” 1·2차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그는 결선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베르디의 ‘돈 카를로’를 불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조찬희 씨는 콩쿠르 우승 비결에 대해 “꾸준히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자신의 영역대와 캐릭터에 맞는 곡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귀띔한다. “심사 결과를 발표할 때 화면에 참가자의 이름과 점수가 뜨는데 그때 무척 짜릿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내가 정말 입상한 게 맞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기쁘고 꿈인가 싶어요.” ▲ 조찬희 (성악과 12)씨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라는 극찬을 받다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는 각 분야의 상에 이름이 붙는데, 조찬희 씨가 수상한 1등상은 ‘Joseph Robbone’이다.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고, 상금과 함께 제노바의 카를로펠리체극장에서 데뷔할 자격이 주어진다. 공연 날짜를 묻자 “2016~2017년 시즌 일정이 나오지 않아 아직 정확한 날짜를 받지 못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흔히 테너와 바리톤에 비해 베이스는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음은 노력과 발성으로 낼 수 있지만 저음은 한계가 있어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것. 특히 한국인의 특성상 베이스가 많지 않은데, 이번 콩쿠르에서 크리스 메이트 심사위원장은 그에 대해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하지 않게 곡을 표현해서 ‘타고난 소리인가?’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역시 한 음 한 음 소리를 공부하면서 작곡가의 표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기성 성악가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고 저만의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오페라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양부모의 사랑과 지원 아래 성악가로 성장 성악가에게 콩쿠르 수상 경력은 큰 이력이 된다. 특히 국제 콩쿠르는 18세부터 32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어 실력 있는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조찬희 씨가 처음으로 준비한 국제 콩쿠르는 툴루즈 국제 콩쿠르였다. 2차 예선에서 떨어진 그는 심기일전해서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 출전, 두 번째 도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의 국제 콩쿠르 출전은 성악을 전공한 부모님의 권유가 컸다. “재학 중에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많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대개 졸업을 앞두고 또는 졸업 후에 많이 도전합니다. 저 역시 지난해 2월에 졸업하면서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조찬희 씨의 성악 입문은 부모님과의 남다른 인연에서 비롯됐다. 사실 그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다. 그는 중 3때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고, 현재 생활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부친과 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 중인 모친이 그에게 예고 진학을 권유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성악을 공부했고, 2~3개월간의 집중 훈련 끝에 고양예고에 수석 입학하는 기쁨을 누렸다. 대학교 입시 때까지 바리톤이었던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베이스로 전향했다. 나이가 들고 목소리가 성숙해지자 부모님이 베이스를 추천한 것이다. 그러니 그가 베이스를 한 지는 이제 겨우 3년여 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베이스가 제 성격과 잘 맞아요. 진지하고 묵직한 느낌이 좋고, 노래로 곡을 표현할 때도 제 마음에 더욱 잘 와 닿습니다. 배역이나 역할에 대한 이해도 더 쉽게 되고요.” 대학 진학 후에는 학업에 매진, 지난해 평점 4.0으로 총장상을 받으며 졸업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삶은 지금의 부모님을 만나 송두리째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과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양부모님을 만난 건 제게 정말 큰 행운이에요. 좋은 환경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니까요.” ▲ 조찬희씨는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 대에서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한다. 노래는 곧 삶이고, 평생 즐겁게 함께할 동반자 성악가에게는 자기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조찬희 씨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늘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꾸준히 운동하시고, 겨울에는 항상 스카프나 목도리로 목을 보호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잘 먹고 잘 자는 등 몸 관리에 철저하세요. 그리고 공연 전날에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하시고요.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라.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도전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롤모델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어머니’를 꼽는다.“존경하는 분들이 많지만, 제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분은 지금의 어머니입니다. 친자식이 아닌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으니 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성악가로서 학생을 지도하실 때도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방법을 바꿔서 그 학생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치시죠. 엄마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항상 격려해주세요.” 아직은 햇병아리 예술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조찬희 씨. 그는 당분간 국제 콩쿠르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세계적인 베이스 성악가가 되어 모두가 인정하는 무대에서 한국 성악가로 서고 싶다는 조찬희 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항상 노래를 생각한다는 그는 이렇게 즐겁게 노래하며 자신의 삶과 꿈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그의 꿈이 하루 빨리 실현되길 바라며, 아침마다 늘 그를 격려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빌려 응원의 말을 전한다. “멋있게 하고 오세요. 당신이 주인공이니까요.”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6-12 27 중요기사

[학생]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청년 (1)

지난 11월 19일 4차 촛불집회, 광화문 광장에 늘어선 경찰 버스는 '차벽' 대신 '꽃벽'으로 변했다. 시민들이 꽃 모양의 스티커를 경찰 버스에 붙이면서다. 이른바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는 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소셜 계정에 제안한 것이었다. 집회를 가로막는 '불법' 차벽에 저항하자는 의미로, 시민들이 스티커를 붙이며 차벽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제안에 응답한 것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세븐픽처스'의 대표 전희재(파이낸스경영학과 4) 씨다. '예술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향'하는 그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모금을 즉시 실시했다. 예술인의 날개가 되다 세븐픽처스(7pictures)는 예술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법. 대표 전희재 씨는 “예술가들이 경제적인 요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길 바랐다”고 했다. 세븐픽처스는 두 가지 후원 방식을 운영한다. 하나는 기존의 크라우드 펀딩과 같다. 각 개인이 지지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후원하고,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형태다. 다른 하나는 세븐픽처스만의 새로운 후원 방식으로, SNS를 이용하는 것.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만 해도 1000원이 후원된다. 시민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후원에 참여할 수 있고, 후원금을 대신 지불하는 후원사는 마케팅 효과를 얻는다. 세븐픽처스가 제안자와 후원사를 잇는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셈이다. ▲ 지난 12월 21일 세븐픽쳐스 사무실에서 대표 전희재(파이낸스경영학과 4) 씨를 만났다. 사업 초기 세븐픽처스는 서울 시내의 빈 공간이나 카페들을 갤러리로 만들고, 예술가들과 협력해 전시를 여는 등 일종의 '공유경제' 사업에 주력했다. ‘일주일에 7개의 예술 작품을 소개하자’는 세븐픽처스도 이때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사업을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작가들의 전시회나 프로젝트를 더 효과적으로 알릴 방안과 더불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어요.” 예술가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을 지향하는 만큼, 세븐픽처스가 먼저 자생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했던 것. 전 대표는 예술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회사를 탈바꿈시켰다.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한지 반 년이 채 되지 않았으나, 세븐픽처스는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하며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렸다. "SNS를 보다가 '꽃이나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차벽과 방패 등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는 건 어떨까'란 이강훈 디자이너의 제안을 봤어요. 바로 연락을 드렸고, 화요일 현장 조사 후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 동안 모금했죠." 집회까지 닷새 정도가 남은 빠듯한 일정이었음에도 목표 금액을 웃도는 후원금이 모였다. 덕분에 촛불 집회 당일 26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2만 9000장의 스티커가 배부됐고, 프로젝트는 최근 집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한 아이가 경찰의 차벽에 꽃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출처: 세븐픽처스) 평범한 학생이 가진 '열정'이란 무기 전희재 씨는 4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현재 휴학 중이다. 그는 장학금을 받으려 열심히 공부하고, 농구동아리에서 운동을 즐기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에는 남부럽지 않은 열정을 쏟았다. “테드엑스한양(TEDxHanyangU)에서 디렉터로 활동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을 초청하는 강연 형식의 이벤트예요. 학생 입장에서 그렇게 큰 행사를 기획하고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그는 예술에 관심을 갖고부터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가분들께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러면서 작가의 삶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롯해 예술계 상황을 폭넓게 알게 됐죠." 특히 사진 작가 장호성 씨와의 만남은 사업 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호성 작가는 유기견의 사진을 찍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을 유기견 보호센터에 기부하는 분이에요. 그런데 전시회를 열고 싶어도 공간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됐죠."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좇다가 마음 맞는 사람도 만나고, 사업 기회도 얻었다는 그다.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활동 이어가고파 전희재 씨는 “현재 세븐픽쳐스는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장기적으론 SNS 공유를 통한 편리한 후원 방식, 번역이 필요한 텍스트에 비해 사진이나 회화는 해외 진출의 벽이 낮다는 점을 살려 해외까지 영향력을 넓힐 계획이다. 예술가들이 걱정 없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당장은 디자인 상품 판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구상 중이다. “예쁘지만 쓸모없는 예술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능을 넘어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키치한 디자인 제품이죠.” 이 밖에도 소규모 공연이나 연극, 무용, 시각 예술 등 다양한 장르로도 발을 넓히고자 한다. 관심사와 전공 분야를 잘 살려 많지 않은 나이에 '대표'가 된 전희재 씨. 앞으론 더 많은 곳에서 그의 이름을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세븐픽처스 대표 전희재 씨는 "예술가들이 걱정 없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며 해외 진출이란 목표를 내비쳤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6-12 19 중요기사

[학생]2016 한대신문 문예상 대상 수상자 “글쓰기는 평생 친구”

누구나 한번은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야기를 글로 표출하고 싶은 욕구를 느껴봤을 것이다.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분주한 요즘, 아직까지 펜을 쥐고 빈 종이에 사유를 채워가는 두 청년이 있다. 제49회 한대신문 문예상에서 비평과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한 김준성(국어국문학과 4), 이동원(경제학부 3) 씨다. 지난 12월 16일 두 사람을 만났다. 자신만의 진정성이 드러난 작품 한대신문 문예상은 ‘새 기틀을 수립함과 아울러 유능한 문학도와 연구하는 학생을 발굴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1967년부터 매해 개최되는 문예 공모전이다. 올해엔 시, 소설, 비평 분야에 출품된 총 50개의 작품 중 5개의 작품이 최종 당선됐다. 비평 부문에서는 <정신분석과 여성-‘욕망’은 어떻게 여성을 타자화했는가>를 쓴 김준성(국어국문학과 4) 씨가, 시 부문에서는 <소금 만드는 노인>을 출품한 이동원(경제학부 3) 씨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비평 부문 심사를 맡은 이재복 교수(한국언어문학과)는 대상작인 <정신분석과 여성>에 대해 “‘여성’혹은 ‘여성성’에 대한 하나의 일관된 논리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평적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며 “특히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자신만의 논리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높이 샀다”는 심사평을 전했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유성호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시 대상작인 <소금 만드는 노인>에 대해 “형상화와 주제 의식에서 남다른 성취를 보이고 있다”며 “‘소금벌레’와 ‘노인’의 상호적 이미지들이 느리고도 아득하게 삶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왼쪽부터 제49회 한대신문 문예상 대상을 수상한 김준성(국어국문학과 4), 이동원(경제학부 3) 씨. 두 사람을 지난 12월 16일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상작에 담긴 이야기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상을 받은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준성(이하 준성): 정신분석과 여성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1학기에 들었던 ‘미디어로 읽는 여성사’ 강의를 통해 이 글을 쓰게 됐어요.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문수현 교수님과 학우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동원(이하 동원):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작가’라는 꿈 위에 뚜렷한 발자국을 하나 새긴 것 같아 기뻤습니다. 혼자만의 즐거움에 빠져서 쓴 글이었는데, 대상으로 선정돼 감사한 마음이 커요. Q. 작품에 어떤 내용을 담고자 했나요. 준성: 국어국문학과에서 정신분석학자들의 철학을 많이 배우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정신분석학에 여성차별적 시각이 많더라고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고, 여성주의적인 면에는 무엇이 있을지 찾아서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동원: 염전에서 소금을 만드는 한 남자의 삶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뙤약볕에서 고무래 같은 것을 끌고 다니는 노인의 반복적인 행동이 늙어가는 노인의 삶 자체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 내용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Q. 본인의 작품에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준성: 정신분석학은 결국 자본주의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결말 부분에 그 내용을 서술해 내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고,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기도 해요. (김준성 씨의 수상작 <정신분석과 여성-‘욕망’은 어떻게 여성을 타자화했는가> 읽기) 동원: 첫 번째 연의 1행 '오늘도 소금벌레는 염전을 파먹는다'란 부분이요. 소금 만드는 노인을 소금벌레로 묘사했는데, 그 비유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해요(웃음). 연약한 노인이 힘겹게 일하는 모습이 얇은 팔다리로 물 위에 떠있는 소금벌레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동원(경제학부 3) 씨의 작품. Q.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준성: 고등학생 때부터였어요. 학교, 학원에 치이며 억압을 받고 있단 느낌을 늘 받았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소설을 쓰게 됐고, 결국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학과에서는 창작보다 비평을 주로 배우고 있어서, 비평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동원: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면 선생님께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많이 참가했는데, 1년 정도 낙선만 하다가 우연히 작은 상을 하나 받은 적이 있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일상 속에서 시를 계속 쓰고 있어요. Q. 글의 영감은 어디서 얻고, 어떻게 구체화 시키나요. 준성: 주로 다른 책을 읽다가 '여기에 이런 생각을 덧붙여서 비평을 쓰고 싶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세 달에 한 번 정도?(웃음). 그때부터 친구들과 토론을 하거나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글을 완성시키고요. 글 쓰는 과정에서 이론 공부를 더 하니까, 저만의 주장도 자연스럽게 나와요. 평소에 글을 많이 읽고 쓰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글쓰기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동원: 아침에 갑자기 눈이 내릴 때나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에 홀로 있을 때처럼, 잔잔한 일상 속에서 받은 느낌을 짧은 메모나 일기로 적어둬요. 그것들이 모여서 나중에 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재가 되거든요. 시집을 자주 읽고 순우리말 사전을 틈틈이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 내는 것에 도움을 받기도 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준성: 글쓰기는 삶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4학년이라 고민이 참 많은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아요. 자기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동원: 사람들은 마음에 치유가 필요하거나 공감이 필요할 때 문학을 찾게 돼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 중에서 효과가 가장 좋은 장르가 시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준성: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해 정신분석학을 더 깊게 공부하고 글을 쓰고 싶어요. 라캉이나 지젝과 같은 철학자들의 담론을 더 공부할 계획이에요. 졸업 후 어느 길을 걷게 될 진 모르겠지만, 열심히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것은 평생 할 계획이에요. 동원: 지금까지는 일상 속 잔잔한 소재를 찾아 써왔는데, 앞으로는 사상을 기반으로 시를 쓰거나 사회의 문제점을 비유한 시도 쓰고 싶어요. 더 깊고 넓은 시 세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는 않겠지만, 도전은 계속 할 거예요. 글쓰기는 그만 두지 않고 꾸준히 계속 갖고 갈 '친구' 같은 존재예요. ▲(왼쪽부터) 김준성 씨와 이동원 씨는 앞으로도 문학작품을 꾸준히 써 나아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6-12 19

[학생]ERICA캠퍼스 디자인대학,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약진 (1)

ERICA캠퍼스 디자인대학 재학생들이 최근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가 주최한 제28회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에서 다수 수상했다. ▲대상 팀에 김주석(테크노프로덕트학과 4), 김혜원, 조은별(이상 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3) 씨 ▲ 우수상에 황규진, 손혜정(이상 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2), 김휘선(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2) 씨 팀과 박소별(테크노프로덕트학과 3), 임재학(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4) 씨 팀이다. 이들의 성과를 돌아보고자 대상을 수상한 김혜원, 조은별 씨를 만났다. 김주석 씨는 사정상 인터뷰에 나오지 못했다. Q1.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대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이 궁금합니다. 조은별(이하 은별): 감사합니다. 열심히 준비한 것에 좋은 결과를 받아서 정말 기쁩니다. 인테리어 건축 분야 중제일 큰 공모전에서 수상하다니 기분이 좋아요. 김혜원(이하 혜원): 좋은 작품들 사이에서 저희가 큰 상을 수상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네요. 교수님과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 주셔서 대상을 탔다고 생각해요. Q2. 이번 대회에는 어떤 작품을 출품하셨나요. 은별: 실내건축대전은 특별히 주제를 두지 않고, 각자가 컨셉을 잡아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공모전이에요. 저희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란 브랜드를 선정했어요. 이 브랜드는 독창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은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그 브랜드만의 특색과 정신이 나타나는 디자인은 아니었어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자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특색이 드러나는 갤러리를 구축하기로 했어요. Q3. 구상하신 갤러리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혜원: 말미잘 종류 중 하나인 리트리 말미잘에서 컨셉을 찾았어요. 공간은 '유동성'과 '착생', '공생'을 키워드 삼아서 구상했습니다.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말미잘 촉수에서 유동성을 떠올렸고, 이를 공간 표면에 드러내고자 했어요. 그리고 리트리 말미잘이 다른 동물이나 바위에 착생하는 성질에 착안에 다른 성질의 매스가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 받는 형태를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공생이란 키워드는 흰동가리와 리트리 말미잘의 공생 관계에서 떠올린 것인데요. 저희가 구상한 갤러리 하단이 한강과 연결돼 한강의 쉼터이자 공간 역할을 하게 돼요. 한강을 오가는 사람들이 갤러리를 이용하고, 갤러리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강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공생 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왼쪽부터 김혜원, 조은별(이상 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3) 씨가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Q4. 세 사람이 함께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알게 됐고, 준비를 같이 하게 됐나요. 은별: 서피스·인테리어 디자인과의 2학년 수업인 ‘비주얼머천다이징(VMD)’ 수업에서 같은 조로 만났습니다. 그 인연이 이어져 1년 뒤 공모전까지 함께하게 됐죠. 혜원: VMD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함께 ‘브랜드’를 정하며 브랜드에 맞는 플래그 숍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프로젝트가 생각 이상의 결과가 나와서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은별이의 주도로 이번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어요. Q5. 공모전은 얼마 동안 준비하셨나요. 준비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요. 은별: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2학년 2학기, 그리고 3학년 2학기에 2개월 정도를 준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발전시키고, 목업(Mock-up)을 만든 것은 올해 2개월이었어요. 혜원: 공모전 제출 당일 밤에 출전한 팀들이 함께 모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정기태 교수님께서 오셔서 함께 밤을 샜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참 힘들었는데 교수님이 몸소 응원해주셨던 게 많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Q6. 특히 보람을 느낀 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은별: 공모전을 통해서 교수님이나 학과 선배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필요한 부분은 도움을 받아서 채울 수 있었던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혜원: 수상 당일 작품에 대한 PT를 해야해서 연습을 했는데, 연습하면서 점점 느는 것이 보여서 기분이 좋았어요. 마지막 일주일 정도 밤을 꼬박 샜단 점이 좀 힘들었고요. 중간고사까지 겹쳐서 심적으로 부담이 상당했어요. ▲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수상작 '내셔널지오그래픽 갤러리'(NATIONAL GEOGRAPHIC / GALLERY)'. (출처: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Q7.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혜원: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교수님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함께 출전하는 같은 학교 다른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저희가 첫 대회였는데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선배님들께서 많이 이끌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김혜원, 조은별(이하 서피스·인테리어디자인학과 3) 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글/ 추화정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기자 rladbstn625@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