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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 15

[학생]청소년 국가대표팀 우승의 주역 임유환 선수

"한양을 빛내고 세계를 누비고 싶다"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임유환 선수 (체대 체육과1) 지난 6월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며 온 국민이 하나되어 '대한민국'을 외치게 했던 월드컵 축구대회가 끝난 지 어느덧 5개월. 빛나는 4강의 주역에는 온몸을 던져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냈던 김남일(체육과 00년졸) 동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지난 1일 카타르에서 벌어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민들에게 또다시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우승의 숨은 주역으로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의 주장을 맡으며 승리를 일구어낸 본교 임유환(체대·체육과 1) 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녹차의 깔끔한 맛과 향을 즐긴다는 임 군을 만나 우승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청소년대표팀 우승을 이끌었다. 소감은 어떤가. 지난 해 1월 말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강도 높은 서키트 훈련을 하는 등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우승을 하고 나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결승전 일본팀과의 경기에서 전반에 밀리다가 후반전 들어 체력전에서 승리한 것 같다. 선수들이 모두 합심해서 잘 뛰어준 덕분이다. - 우승 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전화로 울먹이면서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더욱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평소 자상하시면서 훈련에 임할 때는 엄격한 한문배 감독님과 축구계가 다 알 정도로 늘 무서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를 가르쳐 준 고등학교 은사 기영옥(광양제철고)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 - 축구를 처음 시작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가 마냥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많이 했다. 특히 초등학교 때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서정원 선수가 너무 멋있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지난 8월 대구 훈련 때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했지만 수술 없이 재활 훈련만 열심히 해서 부상에서 회복됐다. 병원에서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웃음) 대회를 마쳤으니 조만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할 예정이다. - 프로팀의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언제든지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한양대 유니폼을 입고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은 계속 학교에 남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기여를 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도 프로 진출을 제의 받았으나 대학에 꼭 가보고 싶어서 안 갔다. 대학에 와서는 학교 강의도 열심히 들어보고 무엇보다도 미팅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웃음) 그러나 빡빡한 훈련 일정으로 시간이 없어 아직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 한양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본교 출신 축구선배들이 찾아와서 좋은 이야기를 해줄 때 가장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카타르에 가기 전 축구계 대 선배인 이회택 감독이 찾아와서 격려해 줄 때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학교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서 한양대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아닌 축구의 본고장 유럽으로 진출해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싶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11 08

[학생]한국여자 프로골프 LPGA 입문한 박세미 양

"박지은 선수는 나의 이상적 모델" 지난달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 진출 박세미 양(생체대 생활스포츠학부) 이제 골프는 더 이상 소수의 부유층이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등은 이미 대중적인 스포츠 스타이며, 이들의 경기는 높은 시청률 속에 생방송으로 방영된다. 본교 생활체육대 생활스포츠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세미 양.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한 명의 '세계적인 골퍼'를 꿈꾸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2일,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에 진출한 박세미 양을 만나보았다. - 어린 나이에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에 진출한 소감은? 너무 기뻤다. 처음에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마지막 퍼팅을 성공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프로 진출 시기가 빨랐다는 점에서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가장 많은 성원과 격려를 해주신 부모님, 담당 교수님이신 최은택 교수님, 박범영 코치님, 유문종 코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 같이 운동하는 우리 골프부 선배님들과 동기들 모두에게도 항상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는 많이 했는가? 특별한 준비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연습량도 오히려 조금 줄었다. 그러나 골프 전공 프로그램을 통해 아침에는 스트레칭과 런닝, 저녁에는 헬스와 순발력 훈련에 집중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훈련을 통해 드라이브 거리도 늘었고, 정확도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훈련에 충실했고, 실전 훈련에는 집중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웃음)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단전호흡을 해본 적도 있다. - 가장 자신 있는 골프기술과 가장 자신 없는 골프기술은 어떤 것인가? 드라이브 샷은 자신이 있다. 그러나 숏 게임에 많이 약하다. 그런 만큼, 최근에는 숏 게임 능력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특히 강의가 없는 날이나 훈련이 끝난 후에는 숏 게임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다. - 좋아하는 골프선수는 있는가? 박지은 선수를 좋아한다. 박지은 선수는 골프 실력도 실력이지만, 학교 생활도 남달리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골프 외의 것들도 열심히 하고, 챙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 같은 '새내기 프로골퍼'에겐 훌륭한 역할 모델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나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학업과 골프 모두를 잘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 않는가?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서, 조금씩 목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일단 지금은 시합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목표는 시합 성적을 봐가며 결정할 예정이다. 또 최대한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10 15

[학생]대한민국 패션대전 산업자원부 장관상 의류학과 김정아양

'파리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대표로' 발견과 창조 위해 노력하는 디자이너 될 터 지난 9월 24일, 패션센터에서 개최됐던 제20회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본교 김정아(생활과학대·의류4) 양이 은상에 해당되는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한국 패션협회가 주최한 본 대회는 국내 대표적인 신인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김 양의 작품은 의류학과 졸업작품 패션쇼에도 선보임으로써 그 화려한 빛을 더했다. 이태리어로 거미의 성을 뜻하는 졸업작품패션쇼 '까쓰뗄로 델 라뇨(Castello del Ragno)'에서도 스탭으로 참가했다는 김 양을 만나 수상의 기쁨을 들어보았다. - 대한민국패션대전은 어떤 대회인가? 패션계열도 수많은 공모전이 있다. 그러나 본 대회는 많은 공모전들 중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수상되는 권위 있는 대회다. 대통령상이 대상, 국무총리상이 금상, 산업자원부 장관상이 은상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수상자에게는 세계적인 패션전문 학원인 이태리 마랑고니 패션학교와 일본 모드학원의 유학, 사가디자인 연수 및 파리 신인 디자이너 컨테스트 참가 등의 기회를 부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 출품작을 소개한다면? 졸업작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할 무렵, 한창 '펑크'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와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컨셉을 많이 인용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등을 지퍼로 연결해서 스텐드를 만든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옷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퍼를 많이 사용하는 펑크의 특징을 강조하고자 하였고, 레오펑크의 상징인 붉은 체크를 사용함으로써 스코틀랜드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죽점퍼나 왕관, 쇠장식 버클, 허리띠 하나까지도 터프한 느낌을 중심으로 드레시하게 표현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데 악세사리 하나까지도 펑크의 이미지에 맞게 연출해야 하는 데 많이 신경을 썼다. - 작품 배경인 펑크에 대해 얘기해 달라. 펑크룩 자체로만 펑크를 느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회와 이데올로기 측면의 펑크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회부정, 반항, 혁명 등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펑크는 그 자체로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성 사회안에서는 오히려 상업적인 면으로 기성사회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펑크를 가리켜 이율배반적인 장르라 한다. 이러한 특징을 이번 작품에서는 구속과 자유, 한계와 이상 등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 오랜 시간동안 한 작품에만 전력해 수상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처음에는 어차피 졸업전시회에 제출해야 되니 그냥 한번 지원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1차 디자인 맵 심사를 우연찮게 통과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컷 고생하고 떨어지면 더 속상하니까 나름대로 경험을 쌓았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2차 스타일화 및 패턴 실기심사를 통과하고 나니 점점 뭔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것으로서 그동안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인정을 받는 것 같고,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상까지는 해외 패션학원에 유학의 기회가 주어지는 데 눈 앞에서 유학의 기회를 놓친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영국디자이너가 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정형화된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작품 활동하는 모습이 부럽다. 나이가 들어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견과 창조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창작하고자 하는 내 의지를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 곧 파리로 떠난다고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은 12월에 치러질 파리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유학의 기회는 잃었지만 이번 대회는 대학생만을 출전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시절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전력을 다할 것이다. 수상한 작품으로 응모해도 되지만 다시 새로운 디자인으로 승부하고 싶다. 앞으로 1달 동안은 예전처럼 학교 실습실에서 살아야 될 것 같다.(웃음)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10 08

[학생]전국신인무용대회 특상 수상한 무용과 김성화 군

국내 최대의 신인 등용문서 최고상 수상 "병역면제 기회 살려 진정한 춤꾼 되고파"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한 제39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에서 본교 4학년 김성화(체대·무용4) 군이 최고상인 특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는 신인무용인 등용을 위한 국내 대표적인 대회로 김 군은 이번 수상을 통해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됐다. 춤꾼들의 향연에 한양의 이름을 걸고 나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김 군을 만나 그 소감을 들어봤다. - 수상 소감을 말한다면 내가 한국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 특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처음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1,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말할 수 없이 기쁘다. -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춤에 관심이 있었지만,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내가 무용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본격적으로 무용을 전공하고자 마음먹었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겨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처음 2년 간은 발레를, 3학년 때에는 현대무용을 배웠다. -남자 무용수로서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사실, 남자 무용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아직도 존재한다. 처음에는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부심을 갖고 자신있게 사람들 앞에 선다. 5년 전만 해도 무용과 남학생 수가 참 적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과는 남학생이 20명 정도이고 다른 학교 무용학과에도 남학생의 진학률이 매우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매일 수업을 마치고 따로 연습시간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여가 시간이 생기지는 않지만, 가끔씩 친한 선·후배가 모여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격려한다. 선, 후배 모두 춤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떤 소재를 대해도 안무와 관련지어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들을 모아 새로운 안무를 구상하기도 한다. - 이번 수상으로 병역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아는데 무용을 하는 남학생에게 군대란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심지어 전에는 군대 문제만 해결된다면 만사가 다 잘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군대에 다녀와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힘든 일이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정말 기쁘다. 기회가 주어진 만큼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을 텐데 우선 지도 교수이신 김복희, 손각중(체대·무용)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두 분 모두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시고 가정에도 충실하느라 참 바쁘시다. 그런 와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엔 언제나 학생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뛰시고, 더 열심히 구상하신다. 인간적인 면으로나 예술적인 면으로나 두 분 교수님을 가장 존경한다. 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며 독려해주신 부모님과, '끼'로 똘똘 뭉친 선, 후배들께도 감사 드린다. - 현재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12월 8, 9일에 두 지도 교수님께서 준비하신 '달과 까마귀'라는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나 역시 무용단원으로서 출연하는데 지금 한창 연습 중이다. 앞으로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 내가 빠져있는 무용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렇게만 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 믿는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2002-10 01

[학생]국경넘은 사랑의 실천 필리핀 산모 감동시킨 간호학과 윤인아 양

국경 넘은 따뜻한 간호에 필리핀 산모 감동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간호사는 사람을 간호한다" 국경을 넘은 따뜻한 봉사와 이를 잊지 못한 답례의 편지가 훈훈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본교 병원에서 출산한 필리핀 산모 Marites씨는 입원 기간 중 받았던 잊지 못할 간병과 친절을 잊지 못해 본교 간호학과장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윤인아 양.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주위를 훈훈하게 만든 나이팅게일을 만나보았다. - 필리핀 산모가 편지가 무척 감동적이다. 산모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그 산모는 실습 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사실 그 분은 산과 환자였고 나는 부인과 실습 중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젖몸살이라고 해서 가슴이 붓고 매우 아프게 되는데, 환자는 첫 출산이라 젖몸살이 심했다. 마사지와 유축기 사용을 병행할 수 있도록 알려드렸다. 그러면서 차차 친해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외국인으로서 불편을 먼저 말하는 편이 아니라 뭔가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 없을까 먼저 고민을 했다. 수유 관리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모유의 보관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없는 동안 외로움을 나누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작은 친절인데 그토록 고마웠다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 국내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았을 경우, 환자나 병원 모두에게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선할 점들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은 많은 병원들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영어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무보험인 상황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지지체계를 찾는 것도 간호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감안해서 설명을 자세하게 여러 번 세심하게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인 화장실 위치 안내, 수유 시간이나 아기 면회 시간에 대한 것들은 결코 한 두번의 설명으로 가능하지 않다. 설명을 잘 이해하셨는지, 행동으로 옮기시기에 무리가 없는지 등을 직접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따뜻한 대화와 정성이 외국인들에게 각별히 필요하다. -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간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외국어를 잘해서가 아니고, 산모가 우리말을 잘 하는 편이었다. 영어라는 공통적인 언어도 도움이 많이 된 것은 물론이다.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설명해 드렸을 때 확실히 이해했는지 언어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슴 마사지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안하고 계신다면 설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려움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영어 공부나, 학과 공부에 대한 진정한 필요성도 느꼈다. 간호라는 것이 이처럼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 며칠 전 간호학과의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있었다. 봉사의 삶으로써, 이 길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어릴 적에는 꿈이 정말 많았다. 고3 때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에도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나가 가진 꿈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는데, 모두 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병원을 많이 다녔고,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항상 곁에 있었기에 힘든 때에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찍부터 느꼈다. 그래서 내 삶을 통해서 나도 뭔가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의 치료는 병원이라는 환경에서만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병원 밖에서도 아픈 마음까지 살필 수 있는 것은 간호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진로 결정을 하기까지는 제 곁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었다. - 필리핀 산모는 물론, 남편 역시 윤인아 학생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는 전하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사실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편지를 받게 된 시기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참 힘이 들었을 때다. 산모의 편지는 그런 중에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물론 내겐 많은 힘이 되었고, 삶에 힘을 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고나 하는 것이 옳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은 한국 생활이겠지만 힘을 내기를 기원한다. - 진정 훌륭한 '간호'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또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간호인의 삶을 살아갈 계획인가? 교수님들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한다'는 말이다. 나이팅게일이 했던 말로 기억한다. 간호란 전문성을 지니면서도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 정말 멋진 간호사가 되려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간호 분야뿐만 아니라, 영어와 같은 외국어 실력이나 병원 시스템 전산화와 관련된 컴퓨터 실력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이슈들과 문화에 대해서도 말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학이라는 학문이 임상 간호사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길들을 열어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확한 진로 결정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생각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나간다면 제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9 22

[학생]보석디자인 공모전 금상 수상한 디대 임은주 양

총 출품작 683점, 국내 최대 규모 보석디자인전 동양적 이미지를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 이태리 보석디자이너협회와 국제보석디자이너학술협회가 후원하고 LG홈쇼핑이 주관한 '제 1회 LG홈쇼핑 국제보석디자인 공모전'에서 본교 임은주(디자인대·금속공예4) 양이 금상을 수상했다. 에스닉을 주제로 특별한 날을 위한 보석디자인을 요구한 본 대회에는 무려 683점이나 되는 출품작이 접수되 국내 최대 규모의 보석 디자인전이란 평을 받았다. 이번 공모전에서 출품작 '영혼의 소리'를 통해 금상을 수상한 임 양을 만나 공모전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았다. -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디자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은 아주 많은 편이다. 특히 우리 디자인대 내에서는 교수님이나, 선배들을 통해 이런 공모전에 관련된 정보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이번 공모전은 교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알게 되었다. 국제대회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고, 졸업하기 전에 한번 더 소중한 경험을 남기고 싶어서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수상은 처음이라고 하던데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은 어떠했나? 교수님께서 처음 말씀해 주셨을때는 믿기지 않았다. 내 작품이 수 백개의 작품들과 경쟁해서 1차 심사와 2차 심사를 통해 올라갔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줄 만 알았는데 선후배들을 만날 때면 다들 축하해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이렇게나마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뿌듯하다. - 수상작 '영혼의 소리'는 어떤 작품인가 이번 공모전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단계인 '렌더링'으로 출품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컨셉 또한 다양하게 주어져 있었지만, '영혼의 소리'는 오리엔탈리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도 친구들로부터 디자인 스타일이 특이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금은 이국적이고 독특한 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원을 사용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나만의 스타일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 - 작품의 어떤 점이 수상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나 동양적 이미지인 금빛, 자색, 녹색, 적색의 보석과 금속을 사용한 것이 화려함을 극대화했던 것 같다. 팬던트 부분의 유통적 이미지와 목걸이 줄 부분의 직선적 이미지가 동양적 미를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하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주도록 했다. 보석물림은 자연이 인간을 포용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편안하게 감싸안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 4년동안 금속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느낀점은 디자인대 내에서도 다른 과들은 대부분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작품을 구성한다. 하지만 금속공예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스케치 한 후 직접 손으로 작품을 창출해 낸다. 내 손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 질 때의 뿌듯함은 엄마가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전공은 편한 복장으로 작업할 때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치마도 잘 못 입고, 다른 과처럼 멋부리기도 어렵다.(웃음) - 도움주신 분들에게 한마디 우선 어릴 적부터 미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주신 어머니와 묵묵히 지켜봐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받은 얼마 안 되는 상금이나마 부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해 드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시로 많은 정보를 주시고 제 디자인의 성숙도를 높여주신 추원교, 이형규, 이광선, 백경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8 08

[학생]'사랑만이 희망이다' 국토대장정 다녀온 한승호 군

'국토지기' 대원 92명과 한 달간 국토 종주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 몇해 전부터 모 제약회사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생 국토대장정'이 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불러모으면서 한반도 곳곳을 걸어서 종주하는 '국토순례자'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국토지기'(http://www.freechal.com/kukto) 역시 "우리 땅을 바로 알고 나를 알면 새 천년이 우리 손안에 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자발적으로 결성된 국토 순례 모임이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국토지기' 대원들의 국토순례는 지난 달 8일부터 이 달 4일까지 27박 28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참가자들은 우리 국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자신의 발걸음을 통해 몸소 체험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국토지기' 4기 기장으로 이번 행사를 이끌었던 한승호(디경대·디지털경영 4) 군은 말했다. 한 군을 만나 국토대장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행사의 취지에 대해 말해달라 올해 국토지기 대장정은 '젊음에 대한 도전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모토로 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이 땅의 곳곳에 젊은이들의 의지를 심고 싶었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생각하고 그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우리 국토의 흙냄새를 맡고, 우리 땅을 직접 밟아보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더불어 사는 세상을 느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국토지기' 회원이 되었나 언젠가 국토대장정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 후 학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국토지기에 대한 소개와 함께 국토대장정 참가대원을 모집하는 글을 우연히 보고 나서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전국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할 때만 해도 서울지역 대표에 불과했었는데 각 지역 대표들의 추천에 의해 기장으로 선출되자 사진 생각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웃음) 이번 대장정의 규모와 행진 경로는 신청인원 150여 명 가운데 총 93명의 대원들이 이번 대장정을 함께 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장흥, 보성, 순천, 지리산을 거쳐 함양, 거창, 단양, 양양, 통일전망대까지 두 다리만으로 전국을 누볐다. 하루 평균 30km를 걸었던 것 같다. 하루종일 걷기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가끔씩은 15km만 행진하고 나머지 시간을 조별 장기자랑이나 체육대회, 마니또 게임 등의 오락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전체 오리엔테이션때 기장과 총무가 선출된 이후 두달동안 집행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대장정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답사팀, 인원관리팀, 기획팀, 스폰팀, 홍보팀으로 구성된 집행부는 온라인 상으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대여섯번의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행사를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주 만날 수 없다보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게 가장 어려웠다. 행진 도중에는 쌀이 부족해 1-2일 동안은 음식을 사서 먹었다. 예산 착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행진을 하면서 여학생들에 대한 우려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비가 와도 열심히 잘 따라왔는데 한 1주일쯤 지날 무렵 한 여학생이 쓰러졌다. 의료팀 차량을 타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회복했다. 하루에 48km를 걸은 적이 있었는데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영지에 도착했다. 결국 탈진한 여학생이 발생했다. 하지만 '깡'으로 버텨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행진을 마칠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에 성공한 소감은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우리 국토를 걷는다는 것은 평생 한 번도 오지 못할 기회이다.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가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대학생 국토대장정이 더 활성화되길 바라고 우리 한양인들의 참여도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함께한 대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더 소중히 하겠다'는 말을 머릿속에 되뇌이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단순히 완주했다는 기쁨보다 92명의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했다는 점이 더 기뻤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대원들이 우리 땅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사랑이 좀 더 커졌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대학 4년동안 학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얼마전 휴학을 결심했다. 1년동안 어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이번 국토 순례를 통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배운 걸 바탕으로 학문과 한번 겨뤄보고 싶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7 29

[학생]순수한 영혼 가진 예비 뮤지컬 스타 연영과 구원영 양

어린이 뮤지컬 <토토> 서 공주역 맡아 열연 중 "실력과 함께 인간미 겸비한 배우되고 싶어요" 지난 5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고 있는 극단 학전은 새 공연팀을 뽑기 위한 오디션을 실시했다. 11명을 뽑는 이 오디션에 무려 250명이 지원해 극단 측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평균 경쟁률이 20대 1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지원자중 절반이상이 성악을 전공했으며 연령 또한 25세 미만이 50%를 넘었다는 사실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뮤지컬 배우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기 직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전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이나 현재 공연중인 〈레 미제라블〉 그리고 곧 무대에 올려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대형 뮤지컬들이 잇달아 선보임으로써 뮤지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구원영(인문대·연영과 3년 휴학) 양도 크고 화려한 무대에서 춤과 노래,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배우이다. 이미 〈모스키토 2000〉과 〈의형제〉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구 양은 현재 어린이 뮤지컬 〈토토〉(동숭아트센터 동숭홀. 7월 19일 - 8월 11일)에서 미로공주 역을 맡아 어린이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대극장 보다는 관객과 에너지를 교감할 수 있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구 양은 공연을 막 끝내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쳐보였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에서 맡은 역할은 화성에 사는 여섯 살짜리 공주역이예요. 화성은 1년이 687일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12살이죠. 어린 나이에 지구인과 함께 화성을 보호하는 여리지만 강한 공주랍니다. 공주라서 좋겠다구요? 아니요. 전 공주 되고 싶은 생각 별로 없어요.(웃음) 뮤지컬을 시작한 계기와 뮤지컬의 매력은 중학교 때 성악을 하고 싶어서 6개월 정도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한 달에 2백 만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중도하차했어요. 고등학교 때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성악을 안 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뮤지컬에 매료됐어요. 전공을 연영과로 하겠다는 결심도 그때 굳어졌어요. 대학교 2학년 때 학전 오디션에 응시했다 떨어졌는데 극단 관계자가 다음에는 꼭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냥 위로삼아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스키토 2000〉무대에 섬으로써 그 약속이 지켜졌죠. 뮤지컬은 말이나 몸짓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노래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저는 관객과 감정을 교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극장 보다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끼죠. 같은 또래 인기 연예인들에 비해 자신만의 매력이 있다면 관객과 1대 1로 만나고 있다는 것이죠. 텔레비전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기술적인 것이 있겠지만 무대를 통해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연기를 해야합니다. 에너지도 많이 필요할뿐더러 얼굴표정 하나로는 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설경구 선배 같이 억지로 웃거나 울지 않는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설 선배의 연기는 말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를 닦듯이 차근차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예를 들어 창녀 역을 맡았으면 그 역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자주 접하고자 노력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그래서 늘 여행가는 옷차림으로 살고 있죠.(웃음) 한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있다면 무지하게 많지요. 다른 학교에 비교에 우리 학교는 연기생을 1년에 10명밖에 뽑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극이나 영화에서 유오성, 설경구 선배 같이 진짜 연기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한양대 출신 밖에 없습니다. 최불암, 권해효, 박광정 선배도 우리 학교 출신이지요.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진실된 연기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배두나 양과는 동기생인데 두나요? 작년에도 동강 레프팅을 함께 갈 만큼 친한 동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기인 중 한 명이죠. 같은 또래의 연기자에 비해 두나만큼 좋은 배우는 없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플란다즈의 개〉 등을 보면 두나의 작품과 배역 선택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물론 있지요. 이미 개봉됐던 영화에 단역으로 몇 번 나왔었습니다. 곧 개봉될 영화에도 잠깐 나오죠. 무슨 영화인지는 창피해서 말 못하겠네요.(웃음) 노래에 장기가 있고 처음 감동 받은 것이 뮤지컬이라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래, 연기, 춤 등을 모두 잘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나이가 서른쯤 되면 〈의형제〉의 간난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6.25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자식을 파는 등 한을 간직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전형적인 한국여성상이죠. 인간적으로 특히 존경하는 방주란 선배가 맡았던 역인데 연기와 노래 모두 정점에 올라야 소화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5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면 저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합니다. 늘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죠. 이 욕심이 저를 대학로로 빨리 끌고온 힘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배우보다는 '인간' 구원영이 되고 싶어요. 방주란 선배는 연기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분인데 그분처럼 영혼 자체가 순수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용석 학생기사 antacamp@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7 22

[학생]자유게시판의 `스타 이야기꾼` 디대이쁘니·박정후

딱딱한 게시판에 '산소'같은 '디대이쁘니' 민감한 사안도 정면돌파하는 논객 '박정후' 18, 19세기 우리나라에는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주로 구비소설을 이야기 했는데, 그 말하는 것이 뛰어나 늘 구경꾼들이 가득 모였다. 이러한 이야기꾼들을 '전기수'라 불렀다. 전기수들은 한참 이야길 하다가 가장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뚝 그치고 읽지 않았다. 그 다음 대목을 들으려면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던져야만 했다. 오늘날 인터넷상에는 옛날 '전기수' 못지않은 이야기꾼들이 활약하고 있다. 비록 옛날의 전기수처럼 소설을 전하거나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옛날 못지않은 인기(?)를 대신 얻게 된다. 본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하 자게)에서 알아주는 '스타'로 통하는 '디대이쁘니' 윤지현(디자인대·금속디자인 3) 양과 박정후(경금대·경제학부 2) 군을 만나 게시판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의 필명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윤지현 내가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당시 디자인대 학생들은 자유게시판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디자인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선은 디자인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에 디대(디자인대의 줄임말)를 꼭 넣고자 했다. 박정후 내 필명은 실명과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실명을 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주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을 예상했나 박정후 우선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학생회 일도 해보고, 학교 안의 여러 현상들을 주의깊게 지켜 봐 왔다.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할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게시판 글 속에 한양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이 끌렸다. 그런 모습들을 보기 위해 글을 읽고 또 쓴다. 실명으로 조금은 과격한 글들을 썼기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윤지현 친한 학우들과 작은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데 일기처럼 끄적인 내 글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그것에 자신감을 얻고 자게로 진출(?)했다. 사소한 내 이야기들이 큰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무척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해왔다. 자게의 논객으로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후 사실 우리 학교 게시판은 너무 쉽게 가열되는 측면이 있다. 이념, 정치적 취향에 대한 의견이 맞서 게시판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고 건조해질 때도 있다. '디대이쁘니'는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소소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가볍지만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 그런 '디대이쁘니'의 글들이 게시판의 분위기를 정겹고 따뜻하게 바꿔주는 정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윤지현 정후는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고 때론 과격한 표현도 감행한다. 우선 논리와 표현상의 문제를 떠나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꺼려하는 부분의 이야기도 용감하게 꺼내는 정후야말로 자게의 진짜 '이야기꾼'이다. 자게의 문제점과 자게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윤지현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참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나누면 서로 다른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한다거나 무조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또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했다. 한낱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니 말이다.(웃음) 박정후 타인의 글을 보며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소속감, 동질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많은 여건상 오프라인의 모임은 힘들어도, 온라인상의 접촉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양 자게의 글을 보며 '우리는 모두 한양인'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한양대 자게사랑 카페(http://cafe.daum.net/hysud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페 소개를 한다면 윤지현 게시판 단골 이야기꾼들이 대부분 가입했다. 또 자게에서 글을 올리진 않지만 계속 지켜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다소 많은 고민이 따르긴 했지만 카페에서도 '디대이쁘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워낙 해프닝이 많아 '디대이쁘니'라는 이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박정후 두어번 정모를 했는데 게시판 글을 계속 읽어온터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자게보다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라 그런지 더 많은 분들이 편하게 글을 올리시는 것 같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내가 이 카페를 계기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과격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더 많은 한양인들이 가입해 함께 자유롭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6 15

[학생]"코리아 팀 파이팅" 월드컵 자원봉사자 이서진 양

조직위 미디어센터서 뉴스 취재 도와 "국민 의식 성숙해지는 계기 되었음 해요" "한국 '꿈의 8강' 해냈다" 한국 축구가 16강을 넘어 8강에 진출하면서 전국은 지금 온통 축구열기로 가득하다. 1승에 목말라하던 것이 이제는 4강까지 넘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수백만명의 거리 응원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놀라게하고 있는 가운데 흥분과 감동을 함께 하면서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개최 한달전부터 월드컵조직위원회 미디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서진(언정대·언론 2) 양은 세계적인 축제에 함께 한다는 생각에 힘든줄도 모르겠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빨간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이 양을 만난 날은 16강 진출을 놓고 포르투갈과의 운명적 대결이 펼쳐졌던 지난 14일이었다. 미디어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미디어센터는 말 그대로 방송과 기타 매체를 위한 일을 하는 곳이에요. 뉴스팀에서는 인트라넷이 구축되어 있어서 월드컵 뉴스를 취재하고 편집하죠. 경기 전에 감독과 선수 인터뷰, 선발 출장 선수 명단, 휴식시간 때 경기 중간보고서 정리, 경기 종료 후 전체 경기 보고서 정리와 다시 감독과 선수들 인터뷰한 것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각국 유명 방송사와 신문사로 배포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여러 인터뷰나 기타 기사 등 문서를 정리하고 복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지 처음엔 시시하다는 생각에 다른 자원봉사자들이랑 고민도 조금 했어요. 겨우 이런 일을 하려고 자원했는가하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PD들이나 다른 계약직으로 계신 전문가들이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면 뉴스 안나간다'라고 격려해주셔서 힘이 절로 났어요.(웃음) 남들이 하찮게 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고 자부심도 생겼죠. 메인 프레스 센터는 오는 19일부터는 일본으로 옮겨져요. 일본에서 폐막식을 하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한국 프레스 센터에서 폐막식까지 일하게 되고요. 자원봉사에 참가한 계기와 힘든 점이 있다면 우선 이번 월드컵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행사이고, 또 제가 학생신분일 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하게되었어요. 다시 언제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치를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일이 다행히 오후조라(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활동) 학교수업을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다른 자원봉사자의 경우는 학교수업을 빼먹기가 다반사이거든요. 중도포기한 자원봉사자들이 많을 만큼 일이 고되고, 재학생 신분으로 학교 생활과 병행하는것도 여간 벅찬 일이 아닙니다. 저는 집(안산)과 미디어센터가 있는 COEX가 멀어 통근에 불편하지만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한국학생 자원봉사자 말고도 미국 또는 다른 외국에서 온 교포학생들이나 방송사 PD로 근무하셨다가 계약직으로 오신 분들, 월드컵 같은 큰 행사에서만 일을 얻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직원들, 많은 통역가들, 각국 방송사에서 온 기자, PD 등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뉴스팀에 모여있어요. 제 전공이 신문방송학이니 자연히 미디어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아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진로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도 하구요. 다들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어 보여요.(웃음) 이번 월드컵을 자원봉사자로서 지켜본 입장에서 반성할 점이 있다면 저도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반일감정도 이해하고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좋은 감정을 갖고있지 않죠. 하지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입장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돼요. 일본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경기할 때 지켜보면서 응원을 한다고 들었어요. 붉은 티셔츠까지 입고 말이에요. 공동개최국으로서 다 같이 16강에 들길 원하는 거죠. 배워야할 의식이라고 생각돼요. 또한 국제적인 행사이니만큼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외국인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가령 우리나라 경기중에 상대팀이 공을 가지면 심하게 야유하는 모습을 보게되는데 다른 외국인들과 같이 일하면 괜히 제가 뜨끔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지 월드컵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황선홍 선수 팬이였어요. 근데 지금은 김남일 선수와 이영표 선수도 너무 좋아해요. 저번 미국과의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잠시 흥분) 우리나라 경기가 있을 때는 모든 팀원들이 다 제쳐놓고 경기에만 집중하거든요. 다 붉은 색 티셔츠 맞춰입구요. 미국과 경기할때는 괜히 미국 방송사인 블룸버그(Bloomberg)사 기자들을 노려보기도 했어요.(웃음) 또 영국의 베컴선수도 너무 좋아요. 외모도 멋질뿐더러 축구도 너무 잘하잖아요. 여러 가지 질문에 때로는 논리 정연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선수들을 물을 때는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흥분하던 이 양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물론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Korea Team Fighting!"이라는 구호와 함께. 진혜원 학생기자 bluenn@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