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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 08

[학생]`궁과 전통을 지킨다` 경복궁 수문장 건축학과 김수한 군

영국에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이 있다. 작년 5월, 월드컵 개최를 맞이해 문화재청과 한국문화보호재단의 주관으로 시작된 수문장 교대식. 겨우내 중단됐던 교대식이 봄을 맞아 이달 초 다시 시작됐다. 이 행사에서 수문장 역할을 맡아 병사들을 호령하고 있는 자랑스런 경복궁 지킴이 김수한(공대·건축2) 군을 만나 보았다. - 수문장으로 지원한 계기가 있다면. 지난 1월에 의장대를 전역했는데, 군대에 있을 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 분의 말씀을 듣고 이런 행사에 관해 처음 알게 됐다. 의장대에서 진행했던 행사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 전역 후 공모에 지원하게 됐다. 실제로 비슷한 점이 좀 있어 빨리 익숙해 진 것 같다. 현재 나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도 대부분 의장대나 군악대 출신이다. - 수문장 교대식이 어떤 행사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현재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에서 수문장 교대행사가 이뤄지는데, 나는 경복궁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 정시부터 30분간 진행된다. 수문장 교대식 행사나 흥례문, 광화문 등 궁성 문 개폐 행사 등에 참가해 일종의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대식 행사에서 교대 병력의 수문장은 20명의 수문군을 데리고 나타나 앞서 근무하던 수문장과 서로 군호(군대 암호)를 확인하고, 수문장 패(통행증)와 열쇠를 교환한다. 마지막으로 등채(의장용 채찍)를 들어 서로 경례하고 각종 전달사항을 인수인계 한다. 또 수문장인 나는 마치 실제인 것처럼 다른 병사들의 복장이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이 교대식은 취타대의 국악 소리에 맞춰 진행된다. - 행사 도중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구경하는 사람의 60퍼센트 이상이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어린이들이다 보니,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키가 큰 수문군들이 수염을 붙이는 등 분장한 상태로, 움직임 없이 정렬해 있다보니 마네킹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확인해 보려고 다가와 몸을 눌러보거나 만져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화하거나 웃으면 안되기에 애써 참는다. 또 걸음걸이를 약간 팔자로 걸어야 하는데, 어린이들이 옆에서 흉내내며 따라 걷는 경우도 종종 있다. - 경복궁 행사만의 특이점이 있다면? 다른 궁에서 이뤄지는 행사들은 이벤트 회사가 주관하는 것이어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사들이다. 그러나 경복궁의 행사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직접 주관하는 행사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실제 조선시대에 이뤄진 행사가 그대로 재현되고 의상 역시 그 당시 입었던 옷과 거의 똑같다. 옛 문화를 그대로 복원한다는 점에서 다른 곳 행사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 수문장 역할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들이 있는가? 공모에 선발되면 교육을 받게 된다. 조선 시대 문화에 관한 교육인데, 교대식에 관한 자료가 사진 자료 몇 장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고증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 조선시대의 군대 행사를 그대로 재현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수문장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자랑스럽고, 행사를 잘 진행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갖게 됐다. -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5월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경복궁의 경우 문화재보호재단 측에서 병력을 늘려 좀더 웅장한 규모로 교대식을 진행하고, 중간에 전통 태껸과 검법시범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통의식 재현 행사를 보고,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2 08

[학생]조부의 나라 찾은 `애국가의 후예` 미구엘 익태 안 기옌

지난 달, 각종 일간지에는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의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Miguel Eaktai Ahn Guillen·25)군이 본교 국제대학원에 입학한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본교 외국인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 지난 달 최종 선발된 미구엘군은 오는 3월부터 2년 동안 본교 국제학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이수할 예정이다. 애국가를 핸드폰 벨소리로 사용하며,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뿌리를 찾아 왔다고 답하는 미구엘. 할아버지의 조국과 자신의 조국 모두 소중하기에, 두 나라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 입국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최근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스페인에서 생필품을 가지고 오지 않아 그것들을 사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그 외에는 2000년 한국어 강습을 와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외국생활을 많이 경험해 본 탓인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 이번이 첫 방한이 아닌 것으로 안다. 이번 방문 후 한국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가? 1980년, 서너 살 즈음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에 살았다. 어머니가 방송국에서 일을 하시게 되어 왔다. 그 당시 만나서 놀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한다. 그 당시 어머니께 백 원만 달라고 조르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웃음) 그 때만 하더라도 한국말을 꽤 했다. 그 이후에 3번 정도 한국을 더 방문했는데, 2000년 여름에 경희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왔었고, 그 해 10월 스페인 건축의 거장 가우디 작품 전시회와 관련해서 할머니와 같이 왔었다. 할머니는 2001년에 올림픽공원에 할아버지 동상이 세워진다고 해서 왔었지만, 나는 그때 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달라졌다는 느낌보다는 언제나 포근한 느낌이 든다. - 스페인에서 변호사의 신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된 직장을 두고 한국까지 공부하러 온 이유가 있다면. 내가 살던 마요르카에는 많은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수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스페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경쟁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오전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오후에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을 했다. 이러한 스페인 생활을 버리고 온 이유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싶어서이다. 나의 꿈은 국제 변호사가 되어 한국과 스페인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역할이라고 본다. - 마요르카에는 안익태 박물관 건립이 추진중이고 '안익태 거리'가 있다고 들었다. 현지에서 안익태 선생을 보는 시각은 어떤가? 스페인에서는 안익태 선생님을 MAESTRO AHN이라고 부른다. 마요르카에 안익태 박물관은 아직은 없다. 현재 한국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마요르카 지방정부와 협상을 진행중이다. 마요르카 지방에서도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워낙 좋기 때문에 박물관 건립에 있어서 적극적이다. 마요르카에서 할아버지의 명성은 대단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우선 마요르카에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인이 없었기 때문에 외모적으로 우선 눈에 띄셨다. 또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셨고, 마요르카에서 교향악단까지 만드셨기 때문에 마요르카에서 할아버지의 명성은 대단하다. 할아버지의 여권번호는 001번이었다. 한국정부에서 발급해준 첫 번째 여권이다. 이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웃음) 할아버지는 스페인에서도 집을 살 여유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첫 번째 집을 사고 싶다고 스페인에서 집을 사시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을 사랑하셨다. - 안익태 선생의 후손으로서 한국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 역시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한국사람들은 할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에 대해 너무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이 부분이 항상 아쉽다. 할아버지는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애국자였다고 할머니로부터 들었다. 조만간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한국에서 출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책을 통해서라도 할아버지의 애국심, 그 세세한 부분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 한국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할 것이라고 들었다. 학업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국제관계학 전공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국제관계학도 전공하여 국제 변호사로 한국과 스페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 공부를 하다가도 괜찮은 조건의 직업이나 제안이 들어온다면 한국에서 일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혹시 한국에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UN이나 국제단체 일원으로서 한국과 스페인, 더 넓게는 동아시아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통역 : 이민호, 사회대 정외과 3년

2002-12 22

[학생]경기산업디자인전서 최우수상 수상한 디자인대 김형욱 군

"시계는 손목에만 차는 것이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죠" 출품작 '첫 출근', 경기산업디자인전 최우수상 수상한 김형욱 군 (디자인대 금속공예 4)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경기디자인협회, 안산시가 주관하고 경기도 교육청, 수원상공회의소, 한국디자인진흥원, 삼성블루텍에서 후원한 '제7회 경기산업디자인전'에서 본교 김형욱(디자인대·금속공예 4) 군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경기도에서 주최한 본 대회에서 김 군은 산업공예 디자인 부문 가운데 금속, 도자, 유리, 목재를 이용한 생활용품 부문에 응모했으며 작품은 오는 26일, 안산시 단원전시관 3전시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출품작 남성장신구 "첫 출근"을 통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 군을 만나 공모전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았다. - 출품하게 된 계기와 수상 소감은? 우연치 않게 교수님으로부터 공모전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물론 상금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졸업하기 전 내 전공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 자기 발전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주저없이 결정했다. 떨어지더라도 작품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더욱 큰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아 기쁘다. - 출품작 남성장신구 "첫 출근"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시계는 손목에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작품에 몰입했다. 시계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열쇠고리나 브로지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명함집이나, 머니클립, 타이핀 등을 통해서는 작품 전체적인 컨셉인 직선을 많이 사용했다. 평소 깔끔하고 심플한 스타일을 많이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나만의 스타일이 그대로 배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특징 중에 하나는 시계에 부여된 독특성이다. 기성품을 쓰면 공예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 시계 속의 눈금을 하나하나 다 지우고 내 이름을 새겨 넣었다. 특히 시계는 금속으로 작업하는 데 힘들다는 이유로 남들이 많이 하지 않아 한번 시도해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 금속공예의 매력이라면? 우리 금속공예 전공이 다른 디자인 분야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직접 스케치한 디자인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다른 디자인 전공분야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결과물을 직접 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장점은 디자인을 하면 할 수록 깊이 빠져드는 금속공예의 매력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른 전공보다 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싫어해서 친구들과 여가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PC방에는 가지 않는데 이런 부분들까지 금속공예의 따뜻함과 연결되는 것 같다. - 남성디자이너로서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게 있다면 금속공예는 전반적으로 여자에게 유리한 분야다. 일단 남자들보다 접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악세사리 하나만 해도 여성 잡지나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 확실히 남자들보다 감각이 뛰어나다. 그만큼 나는 많이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도 많이 보고, 전시회도 많이 참여해 직접 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들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수상경험이 5번이나 된다고 들었다. 이번 수상의 감회는. 복도를 지나가다 만난 교수님으로부터 축하한다는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홈페이지에 나온 심사결과를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작품을 하다보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심혈을 기울여도 100% 마음에 들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상하게 된 것이 어쩌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내 작품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작품이었던 만큼 다른 작품보다 더 세밀한 부분까지 애착이 갔는데 과분한 이런 결과를 통해서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는 진리를 사뭇 깨닫게 된 시간이 된 것 같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항상 작품을 완성시키고 나면 딱딱한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겠지만, 뒤돌아보면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하나같이 무뚝뚝해 보인다. 이제는 조금 둥글둥글하면서 자연미와 인간미가 느껴질 수 있는 따뜻한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공예라는 것이 원래 일상생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 만큼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작품, 그렇다고 해서 흔하지 않고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12 08

[학생]`함재준씨 바꿔주세요` 사회체험 수기공모전 금상 함재준군

'함재준씨 바꿔주세요' 들을 때 자신감 불끈 사회체험 수기공모전서 금상 수상한 함재준 군 안산캠퍼스 여학생실에서 주관한 제1회 '우리들의 사회체험 수기 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여학생, 남학생의 경험쌓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학생들은 예비사회인으로서 각자가 경험한 다양한 활동과 현장의 소중한 추억들을 아낌없이 피력했다는 평가다. 위클리한양은 포털사이트업체 '네띠앙'에서의 아르바이트 수기로 금상을 수상한 함재준(공학대·전자컴퓨터3) 군을 만나보았다. - 네띠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설명해 달라. 네띠앙은 포털이라는 문자 그대로 인터넷의 문을 여는 첫 관문이라는 뜻이다. 이메일과 홈페이지 서비스는 물론 웹호스팅 부분, 기타 콘텐츠 부분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상담부에서 내 업무는 주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홈페이지 제작과정에서의 오류, 이메일 송수신시의 에러체크, 등 인터넷 기술에 대한 상담을 하는 일이었다. - 상담서비스 업무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전화상담이라 직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상담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상담하고 있는지 다 귀에 들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이곳의 일은 활기차고 목소리도 큰 외향적인 사람에게 맞는 것 같았다. 반면에 약간 소심한 성격인 나는 조금씩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감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표현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다. -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네띠앙에서는 한 달에 한번씩 독서발표회를 가지는데 부장님이 들어온 지 얼마되지도 않은 나에게 e-비즈니스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주시며 독서발표를 맡기셨다. 그때 처음으로 위기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와서 이런 발표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생각보다 무거웠던 업무부담이었다. 기술상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익숙하지 않은 파트에 대한 상담도 나에게로 돌아왔다. 고객상담부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면 모두 스스로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참으로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왔지만 이렇게 책임감을 갖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축적된 상담내역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노력했던 것들이 모두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네띠앙에서의 경험을 통해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개발자로서의 직무를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포털사이트 업계의 동향이나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었고, 새로운 제휴사업을 서로 테스트하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문점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통해 실무적으로 얻게 된 것이 많았다. 실력 위주의 회사다 보니 직원들을 통해서 배운 것도 많다. 대학 학사과정을 포기하고 중간에 입사한 분도 있었고, 문과 학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기술 개발력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들을 통해 실무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능력을 많이 배양해야겠다는 자극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그 곳에서의 워크숍이나 술자리를 통해 사람이라는 재산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성취였다. - 이번 공모전은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평소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너, 해봤니?'라는 제목으로 된 이번 공모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완전히 나를 위한 행사라 직감했다. 당시 네띠앙에서의 경험이 워낙 인상깊게 남아있었던 터라 수기를 쓰면서도 잠시라도 막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공모전에 응모하면서도 또 다시 내가 얻게 되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네띠앙에서의 경험이 나만의 추억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나에게 좀 더 많은 것들을 가져왔다는 생각에 응모 자체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 추후 정보기술 업계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 개발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가 끝나면 사회체험보다는 내 자신을 더욱 가꾸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취업준비에 더 심혈을 기울이려는 계획이다. '함재준씨 바꿔주세요'라며 나를 신뢰해주는, 소위 팬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앞으로도 나의 성과를 통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11 22

[학생]서울캠퍼스 2003 총학생회 후보별 공약

11월 26-27일 이틀 간 투표 진행 서울캠퍼스 2003학년도 총학생회 후보별 공약 및 정책 요지 2003학년도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15일 정책공청회를 갖은 각 후보진영은 투표일이 다가옴에 따라 학내 득표 활동에 더욱 분주한 모습이다. 위클리한양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교육환경', '문화예술' 분야를 비롯한 4개 분야에 걸쳐 각 후보별 정책 및 공약 요지를 게재한다. 게재 순서 및 모든 내용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침에 따른 것임을 아울러 밝혀둔다. - 편집자주 교육환경개선 1. 대학복지의 i 찾기 : 복지개선 방향등 2. 전 강의실 냉·난방기 설치 3. 제1공학관, 제2공학관 증축 및 리모델링 4. 학생복지관, 까치골(학군단앞) 동아리방 환경개선 5. 1, 2학년을 위한 군생활 택리지 발간 6. 일원화된 복사, 프린터 카드 발급 개선 7. 운동공간과 기구 개보수 8. 고시반 주변의 쪽문 및 계단 개보수 9. 전 단과대학 화장실 온수 공급 10. 각 강의실 노후 블라인드 교체 11. 애지문 내부 학내 조감도 설치 12. 학교 암흑지역(위험지역) 제거 13. 전 건물 옥상 휴게실 조성 14. 제1공학관과 '사자가 군것질 할 때' 연결 구름다리 신설 15. 학내 미화사업 강화 1) 무분별한 플랫카드 정리 2) 상업광고 남발 억제 3) 불법 주차차량 단속 4) 보행자 통행 많은 곳에 쓰레기통 설치 16. 백남학술정보관 CCTV 설치 17. 백남학술정보관 장서 전자책 시스템 도입 18. 강의정보문자서비스(SMS) & 전자대자보(LCD) 설치 19. 까치골(학군단앞) 회의실 개설 20. 수강신청제도 개선 1) 2002년도 수강신청제도 개선의 노력 2) 학생선호도 우선주의 3) 과목 검색 서비스 제도의 개선 4) 선수강제도에 대한 적극적 검토 5) 수강신청 택리지(종합 자료집)의 완성 21. PC실 24시간 개방 22. 수강신청제도 개선 23. 장애 학우들을 위한 복지 정책 1) 학교, 학생회, 장애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학생 교육위원회' 건설 2) 장애학우를 위한 시설개선 3) 장애학우에 대한 인권침해적 면접에 대한 규제 철폐 4) 장애학생 지원센터, 장애인 휴게실 등 시설 증설 등록금 문제해결 1. 등록금 문제 - 무조건 본관 점거가 아닌 '대화와 협상'의 원칙 우선 - 대화와 협상으로 관철되지 않을시 본관점거 투쟁 - 일시적인 등록금 투쟁보다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측면 고려 문화예술 1. 대학문화의 i 찾기 1) 문화의 다양성을 통한 정체성 회복 2) 만들어 가는 문화 창달 3) 한양사랑을 통한 문화창출로 한양의 위상 고취 4) 새터와 축제문화의 변화를 통한 학우들의 참여 강화 5) 다양한 축제문화 지원 2. 동아리 기획안에 따른 예산자치제 실행 1) 동아리 행사에 학생회비 일부 지원 3. 한양연극제와 한양문학제 개최 1) 한양연극제 개최 2) 한양문학제 개최 4. 2003 애한제를 위한 칼집 1) 각 학과별로 진행되는 학술제를 애한제 기간에 집중 2) 5월 '행당제'와 '한양가요제' 연계 진행 3) 10월 '애한제'와 '응원대함성' 연계 진행 5. ONE CINEMA, ONE HANYANG 1) 정기적으로 노천극장에서 영화 상영 6. 하나된 새내기 새로 배움터 1) 새내기가 참여하는 새터를 통해 한양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행사 마련 - 대학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상식 - 모교에 대한 애교심 - 한양대만을 위한 응원문화 7. 재미있는 자원봉사 1) 다채로운 자원봉사 참여 2) 자원봉사 활동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 8. 유학박람회 개최 - 각국 대사관과 한양대학교 국제어학원과 협력하여 개최 9. 사자 캐릭터 공모전 후보별 정책 대외 활동 1. 자원봉사 활동 강화 2. 해외교류 추진 3. 한총련, 전학협등 기존 학생운동진영과의 이해와 포용정책 추진 교육환경개선 1. 운동공간 전면 개보수, 스포츠 컴플렉스 건립 1) 종합운동장 우레탄 설치 2) 학내 곳곳의 운동시설 개보수 2. 학내 보행 위험지역 전면 정비 1) 경사로 정비(고시반 가는길외) 2) 정문공사와 함께 진사로 정비 3. 학교 조감도 설치 1) 애지문내에 조감도 설치 4. 전 단과대학 화장실 온수 공급 5. 흡연공간 확충 1) 각 건물 옥상등 자투리 공간 활용 6. 교내 주차문제 개선 1) 주차 문제 해결 2) 주차 단속 캠페인 및 단속 활동 7. 위험한 곳에 가로등 추가 설치 8. 각 건물 전면 개보수 1) 동아리 : 학생복지관(직녀관) 건물 전면 개보수 2) 사범대 : 도서관 시설 확충 3) 경영대 : 제2경영관 건립 9. 백남학술정보관 개선 1) 장서확충 및 교체 2) 전자책 시스템 도입 10. 신축건물 '학우중심'으로 1) 노천극장 : 학내소음 문제 해결과 문예동아리 연습공간으로 확보 2) 정문 강의동 - 신설후 종합강의동으로 사용 - 행정대학원, 기획조정처 이전 등록금 문제해결 1. 등록금인상 저지 2. 교육시장 개방 반대 3. 학원자주화 추진 위원회 건설·강화 4. 대학발전위원회 자문기구가 아닌 의결기구로 위상 격상 요구 5. 예산 편성에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쓰일 수 있는 예산안 편성 6. 교육의 질 향상 1) 형식적 강의 평가가 아닌 실질적 강의평가 2) 선 수강신청제 강화 3) 교양 수업의 질 향상 7. 리포트 컨테스트 실시 문화예술 1. AMATEURISM - 동아리, 소모임등 다양한 공연, 강연, 연구활동 지원 2. 나의 사랑, 나의 자랑, 한양 - 공동체와 연대의식 강화를 위한 문화행사 유치 3. '전태일의 꿈' 행사를 매년 개최 4. 총여학생회 건설 및 지원 - 총여학생회 건설, 여학생 취업 지원 - 성폭력 예방 교육 및 공유, 성교육 강좌 개설 - 여학생 휴게실 단대별 설치 후보별 정책 학생회 민주화 사업 1. 2003 학생회, 학생운동의 비젼 1) 우리 학생회 실현 - 홈페이지, 사이버활동을 통한 참여민주주의 실현 2) 각종 회의 개최 - 매주 정기적 중앙운영회의 개최 등 3) 학생회 홍보 강화 4) 총학사업에 대한 학우들의 평가 사업 진행 2. 대의체계와 학생회칙 리모델링 1) 대의체계 개선 및 학생회칙 개정 2) 학생회내의 민주주의 실현 3. 애국한양내 운동세력들과의 단결 도모 4. 정기적인 일꾼 모임, 일꾼대회 개최 5. 3기 과/반 학생회 발전 특별위원회 강화 1) 과학생회 강화 사업 진행 2) 학회, 소모임 지원사업 진행 6.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Cyber 총학생회 건설 1) 총학 홈페이지를 전국적 규모의 대학생 포털사이트화 2) 사이버 참정단 "but" 운영 3) 게릴라 콘서트 진행 : 격주로 총,부총학생회장 등 간부들이 진행 4) 밥 퍼주는 학생회, 사랑받은 총학생회 운영 - '우리 학생회' 실천영역 대폭 확장 7. 총여학생회, 인권위원회 건설 8. 지역을 향한 교육, 환경활동 추진 9. 정치위원회 건설 대외할동 1. 남북학술문화 교류 2. 교수, 교직원, 학생이 참여하는 6·15 공동선언 3주년기념사업회 건설 3. 군 인권개선 운동 4. 미국반대 5. 국가보안범 철폐 6. 대선 부재자 투표소 설치 7. 이회창 대선 반대 투쟁 교육환경개선 1. 각 단과대학별 환경개선 요구 2. 위탁업체에서 나오는 수익금 일부 장학기금 조성 3. 학교 예결산과 이월적립금 내역 공개 4. 계절학기 수업료 인하 5. 개나리 장학금 확충 6. 이월적립금을 활용 무이자 등록금 대출제도 도입 7. 실험실습비 사용내역 공개 8. 전 강의실 책걸상 교체 9. 전 강의실 냉난방 시설 설치 10. 자판기 증설 11. 사물함 보수 및 증설 12. 현금 출금기 증설 13. 각 단대마다 여학생 휴게실 설치 14. 생활협동조합 건설 15. 병역센터 설립 - 병역과 관련된 행정업무 일괄 처리 : 예비군 상담, 군입대 상담, 입영안내, 민방위 업무등 - 학사과, 학생상담소와 함께 매학기 복학생을 위한 상담 및 교육 프로그램 실시 16. 장애학우를 위한정책 1) 장애인의 학내 이동권 확보 - 장애인용 계단 리프트 및 엘리베이터 설치 및 보수 - 점자 안내도 설치, 인도에 유도블럭 설치 - 장애인용 화장실 설치 2) 장애인 학습권 확보 -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필시스템 - 강의실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공간 확보 3) 소외없는 학생자치 활동 지원 - 31대 총학생회 산하 장애인권위원회를 통해 지속적 활동 지원외 등록금 문제해결 1. 합리적 등록금 책정 - 11월 등록금 책정을 위한 학생/교수/대학본부 3자가 함께하는 등록금 공청회 개최 2. 실험실습비 계정 세분화와 사용 내역 공개 3. 등록금 산출내역, 재정운영 내역 '공개 의무화' 4. 수강신청 제도 개선 1) 수강신청 '가신청 제도' 도입 2) 실질적인 강좌개설, 강의평가 시행 3) 수강신청을 위한 독자적 서버 구축 문화예술 1. 수요 뜨락 - 문예동아리와 소모임을 중심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작은 공연 준비 2. 대동제 참여기획 포럼, 준비위원회 모집 3. 새내기 문화제 개최 후보별 정책 학생회 민주화 사업 1. 잃어버린 4,000표의 권리찾기(선거 정책 재투표) -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낙선한 선본의 정책을 반영 2. 공개 중앙위원회의 개최 3. 총학생회 감시기구 '맑은 학생회' 구성 - 학생회비 사용내역 공개 - 낙선 후보, 학내언론사, 공개모집을 통해 총학생회 감사 기구 구성 및 감사위원 선출 4. 예산 자치제 실행 - 전체 학생회 예산의 10%을 기금으로 하는 예산자치협의회 구성 - 누구나 학생회비를 쓸 수 있도록 자치활동을 논의하고 예산 및 기타 지원 논의 5. 한양대 자치단위 연석회의 건설 - 과/반 학생회, 학회, 소모임의 자치단위 활동 강화 및 연석회의 개최 - 소식지, 자치단위 운동에 필요한 노하우 공유 여성 정책 1. 교수 성폭력 근절 - 동일 교수에 의해 다수의 피해 학생이 있을 경우 집단행동 2. 여성주의적 교수 평가제 도입 - 성폭력 상담소와 협의하여 강의평가에 여성주위 항목 추가 및 평가내용 공개 3. 여교수 할당제 도입 4. 여성주의적 실척전략 - 반성폭력 운동의 전면화와 여성단체들과 함께 성폭력 근절을 위한 투쟁 - 성매매 근절을 위한 투쟁 전면화 - 호주제 폐지 투쟁 - 생리대 특소세, 부가세 면제를 위한 투쟁 -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 군대, 징병제 반대 및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지지 5. 여성주의 사업 - 반성폭력 문화만들기 사업 진행 - 반성폭력 문화제 개최 - 반성폭력 자치규약 제정 운동 - 학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주체교양학교 개최 6. 생리대 무료비치 자료제공 : 31대 총학생회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기획취재팀 weeklyhanyang@ihanyang.ac.kr

2002-11 15

[학생]청소년 국가대표팀 우승의 주역 임유환 선수

"한양을 빛내고 세계를 누비고 싶다"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임유환 선수 (체대 체육과1) 지난 6월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며 온 국민이 하나되어 '대한민국'을 외치게 했던 월드컵 축구대회가 끝난 지 어느덧 5개월. 빛나는 4강의 주역에는 온몸을 던져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냈던 김남일(체육과 00년졸) 동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지난 1일 카타르에서 벌어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민들에게 또다시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우승의 숨은 주역으로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의 주장을 맡으며 승리를 일구어낸 본교 임유환(체대·체육과 1) 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녹차의 깔끔한 맛과 향을 즐긴다는 임 군을 만나 우승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청소년대표팀 우승을 이끌었다. 소감은 어떤가. 지난 해 1월 말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강도 높은 서키트 훈련을 하는 등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우승을 하고 나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결승전 일본팀과의 경기에서 전반에 밀리다가 후반전 들어 체력전에서 승리한 것 같다. 선수들이 모두 합심해서 잘 뛰어준 덕분이다. - 우승 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전화로 울먹이면서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더욱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평소 자상하시면서 훈련에 임할 때는 엄격한 한문배 감독님과 축구계가 다 알 정도로 늘 무서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 있는 인내를 가르쳐 준 고등학교 은사 기영옥(광양제철고)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 - 축구를 처음 시작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가 마냥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많이 했다. 특히 초등학교 때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서정원 선수가 너무 멋있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지난 8월 대구 훈련 때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했지만 수술 없이 재활 훈련만 열심히 해서 부상에서 회복됐다. 병원에서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웃음) 대회를 마쳤으니 조만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할 예정이다. - 프로팀의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언제든지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한양대 유니폼을 입고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은 계속 학교에 남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기여를 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도 프로 진출을 제의 받았으나 대학에 꼭 가보고 싶어서 안 갔다. 대학에 와서는 학교 강의도 열심히 들어보고 무엇보다도 미팅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웃음) 그러나 빡빡한 훈련 일정으로 시간이 없어 아직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 한양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본교 출신 축구선배들이 찾아와서 좋은 이야기를 해줄 때 가장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카타르에 가기 전 축구계 대 선배인 이회택 감독이 찾아와서 격려해 줄 때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학교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해서 한양대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아닌 축구의 본고장 유럽으로 진출해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싶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11 08

[학생]한국여자 프로골프 LPGA 입문한 박세미 양

"박지은 선수는 나의 이상적 모델" 지난달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 진출 박세미 양(생체대 생활스포츠학부) 이제 골프는 더 이상 소수의 부유층이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등은 이미 대중적인 스포츠 스타이며, 이들의 경기는 높은 시청률 속에 생방송으로 방영된다. 본교 생활체육대 생활스포츠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세미 양.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한 명의 '세계적인 골퍼'를 꿈꾸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2일,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에 진출한 박세미 양을 만나보았다. - 어린 나이에 한국 여자 프로골프 LPGA에 진출한 소감은? 너무 기뻤다. 처음에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마지막 퍼팅을 성공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프로 진출 시기가 빨랐다는 점에서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가장 많은 성원과 격려를 해주신 부모님, 담당 교수님이신 최은택 교수님, 박범영 코치님, 유문종 코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 같이 운동하는 우리 골프부 선배님들과 동기들 모두에게도 항상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는 많이 했는가? 특별한 준비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연습량도 오히려 조금 줄었다. 그러나 골프 전공 프로그램을 통해 아침에는 스트레칭과 런닝, 저녁에는 헬스와 순발력 훈련에 집중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훈련을 통해 드라이브 거리도 늘었고, 정확도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훈련에 충실했고, 실전 훈련에는 집중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웃음)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단전호흡을 해본 적도 있다. - 가장 자신 있는 골프기술과 가장 자신 없는 골프기술은 어떤 것인가? 드라이브 샷은 자신이 있다. 그러나 숏 게임에 많이 약하다. 그런 만큼, 최근에는 숏 게임 능력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특히 강의가 없는 날이나 훈련이 끝난 후에는 숏 게임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다. - 좋아하는 골프선수는 있는가? 박지은 선수를 좋아한다. 박지은 선수는 골프 실력도 실력이지만, 학교 생활도 남달리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골프 외의 것들도 열심히 하고, 챙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 같은 '새내기 프로골퍼'에겐 훌륭한 역할 모델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나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학업과 골프 모두를 잘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 않는가?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서, 조금씩 목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일단 지금은 시합 경험을 많이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목표는 시합 성적을 봐가며 결정할 예정이다. 또 최대한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10 15

[학생]대한민국 패션대전 산업자원부 장관상 의류학과 김정아양

'파리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대표로' 발견과 창조 위해 노력하는 디자이너 될 터 지난 9월 24일, 패션센터에서 개최됐던 제20회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본교 김정아(생활과학대·의류4) 양이 은상에 해당되는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한국 패션협회가 주최한 본 대회는 국내 대표적인 신인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김 양의 작품은 의류학과 졸업작품 패션쇼에도 선보임으로써 그 화려한 빛을 더했다. 이태리어로 거미의 성을 뜻하는 졸업작품패션쇼 '까쓰뗄로 델 라뇨(Castello del Ragno)'에서도 스탭으로 참가했다는 김 양을 만나 수상의 기쁨을 들어보았다. - 대한민국패션대전은 어떤 대회인가? 패션계열도 수많은 공모전이 있다. 그러나 본 대회는 많은 공모전들 중 유일하게 대통령상이 수상되는 권위 있는 대회다. 대통령상이 대상, 국무총리상이 금상, 산업자원부 장관상이 은상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수상자에게는 세계적인 패션전문 학원인 이태리 마랑고니 패션학교와 일본 모드학원의 유학, 사가디자인 연수 및 파리 신인 디자이너 컨테스트 참가 등의 기회를 부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 출품작을 소개한다면? 졸업작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할 무렵, 한창 '펑크'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문화와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컨셉을 많이 인용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전등을 지퍼로 연결해서 스텐드를 만든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옷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퍼를 많이 사용하는 펑크의 특징을 강조하고자 하였고, 레오펑크의 상징인 붉은 체크를 사용함으로써 스코틀랜드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죽점퍼나 왕관, 쇠장식 버클, 허리띠 하나까지도 터프한 느낌을 중심으로 드레시하게 표현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데 악세사리 하나까지도 펑크의 이미지에 맞게 연출해야 하는 데 많이 신경을 썼다. - 작품 배경인 펑크에 대해 얘기해 달라. 펑크룩 자체로만 펑크를 느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회와 이데올로기 측면의 펑크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회부정, 반항, 혁명 등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펑크는 그 자체로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성 사회안에서는 오히려 상업적인 면으로 기성사회를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펑크를 가리켜 이율배반적인 장르라 한다. 이러한 특징을 이번 작품에서는 구속과 자유, 한계와 이상 등의 추상적인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 오랜 시간동안 한 작품에만 전력해 수상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처음에는 어차피 졸업전시회에 제출해야 되니 그냥 한번 지원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1차 디자인 맵 심사를 우연찮게 통과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컷 고생하고 떨어지면 더 속상하니까 나름대로 경험을 쌓았다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2차 스타일화 및 패턴 실기심사를 통과하고 나니 점점 뭔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것으로서 그동안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인정을 받는 것 같고,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상까지는 해외 패션학원에 유학의 기회가 주어지는 데 눈 앞에서 유학의 기회를 놓친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영국디자이너가 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정형화된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작품 활동하는 모습이 부럽다. 나이가 들어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견과 창조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창작하고자 하는 내 의지를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 곧 파리로 떠난다고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은 12월에 치러질 파리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유학의 기회는 잃었지만 이번 대회는 대학생만을 출전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학시절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전력을 다할 것이다. 수상한 작품으로 응모해도 되지만 다시 새로운 디자인으로 승부하고 싶다. 앞으로 1달 동안은 예전처럼 학교 실습실에서 살아야 될 것 같다.(웃음)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10 08

[학생]전국신인무용대회 특상 수상한 무용과 김성화 군

국내 최대의 신인 등용문서 최고상 수상 "병역면제 기회 살려 진정한 춤꾼 되고파"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한 제39회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에서 본교 4학년 김성화(체대·무용4) 군이 최고상인 특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는 신인무용인 등용을 위한 국내 대표적인 대회로 김 군은 이번 수상을 통해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됐다. 춤꾼들의 향연에 한양의 이름을 걸고 나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김 군을 만나 그 소감을 들어봤다. - 수상 소감을 말한다면 내가 한국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 특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처음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1,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말할 수 없이 기쁘다. -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춤에 관심이 있었지만,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내가 무용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본격적으로 무용을 전공하고자 마음먹었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겨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처음 2년 간은 발레를, 3학년 때에는 현대무용을 배웠다. -남자 무용수로서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사실, 남자 무용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아직도 존재한다. 처음에는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부심을 갖고 자신있게 사람들 앞에 선다. 5년 전만 해도 무용과 남학생 수가 참 적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과는 남학생이 20명 정도이고 다른 학교 무용학과에도 남학생의 진학률이 매우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매일 수업을 마치고 따로 연습시간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여가 시간이 생기지는 않지만, 가끔씩 친한 선·후배가 모여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격려한다. 선, 후배 모두 춤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떤 소재를 대해도 안무와 관련지어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들을 모아 새로운 안무를 구상하기도 한다. - 이번 수상으로 병역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아는데 무용을 하는 남학생에게 군대란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심지어 전에는 군대 문제만 해결된다면 만사가 다 잘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군대에 다녀와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힘든 일이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정말 기쁘다. 기회가 주어진 만큼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을 텐데 우선 지도 교수이신 김복희, 손각중(체대·무용)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두 분 모두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시고 가정에도 충실하느라 참 바쁘시다. 그런 와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엔 언제나 학생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뛰시고, 더 열심히 구상하신다. 인간적인 면으로나 예술적인 면으로나 두 분 교수님을 가장 존경한다. 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며 독려해주신 부모님과, '끼'로 똘똘 뭉친 선, 후배들께도 감사 드린다. - 현재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12월 8, 9일에 두 지도 교수님께서 준비하신 '달과 까마귀'라는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나 역시 무용단원으로서 출연하는데 지금 한창 연습 중이다. 앞으로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 내가 빠져있는 무용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렇게만 한다면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 믿는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2002-10 01

[학생]국경넘은 사랑의 실천 필리핀 산모 감동시킨 간호학과 윤인아 양

국경 넘은 따뜻한 간호에 필리핀 산모 감동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간호사는 사람을 간호한다" 국경을 넘은 따뜻한 봉사와 이를 잊지 못한 답례의 편지가 훈훈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본교 병원에서 출산한 필리핀 산모 Marites씨는 입원 기간 중 받았던 잊지 못할 간병과 친절을 잊지 못해 본교 간호학과장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윤인아 양.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주위를 훈훈하게 만든 나이팅게일을 만나보았다. - 필리핀 산모가 편지가 무척 감동적이다. 산모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그 산모는 실습 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사실 그 분은 산과 환자였고 나는 부인과 실습 중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젖몸살이라고 해서 가슴이 붓고 매우 아프게 되는데, 환자는 첫 출산이라 젖몸살이 심했다. 마사지와 유축기 사용을 병행할 수 있도록 알려드렸다. 그러면서 차차 친해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외국인으로서 불편을 먼저 말하는 편이 아니라 뭔가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 없을까 먼저 고민을 했다. 수유 관리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모유의 보관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없는 동안 외로움을 나누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작은 친절인데 그토록 고마웠다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 국내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았을 경우, 환자나 병원 모두에게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선할 점들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은 많은 병원들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영어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무보험인 상황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지지체계를 찾는 것도 간호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감안해서 설명을 자세하게 여러 번 세심하게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인 화장실 위치 안내, 수유 시간이나 아기 면회 시간에 대한 것들은 결코 한 두번의 설명으로 가능하지 않다. 설명을 잘 이해하셨는지, 행동으로 옮기시기에 무리가 없는지 등을 직접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따뜻한 대화와 정성이 외국인들에게 각별히 필요하다. -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간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외국어를 잘해서가 아니고, 산모가 우리말을 잘 하는 편이었다. 영어라는 공통적인 언어도 도움이 많이 된 것은 물론이다.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설명해 드렸을 때 확실히 이해했는지 언어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슴 마사지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안하고 계신다면 설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려움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영어 공부나, 학과 공부에 대한 진정한 필요성도 느꼈다. 간호라는 것이 이처럼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 며칠 전 간호학과의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있었다. 봉사의 삶으로써, 이 길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어릴 적에는 꿈이 정말 많았다. 고3 때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에도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나가 가진 꿈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는데, 모두 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병원을 많이 다녔고,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항상 곁에 있었기에 힘든 때에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찍부터 느꼈다. 그래서 내 삶을 통해서 나도 뭔가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의 치료는 병원이라는 환경에서만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병원 밖에서도 아픈 마음까지 살필 수 있는 것은 간호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진로 결정을 하기까지는 제 곁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었다. - 필리핀 산모는 물론, 남편 역시 윤인아 학생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는 전하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사실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편지를 받게 된 시기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참 힘이 들었을 때다. 산모의 편지는 그런 중에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물론 내겐 많은 힘이 되었고, 삶에 힘을 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고나 하는 것이 옳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은 한국 생활이겠지만 힘을 내기를 기원한다. - 진정 훌륭한 '간호'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또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간호인의 삶을 살아갈 계획인가? 교수님들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한다'는 말이다. 나이팅게일이 했던 말로 기억한다. 간호란 전문성을 지니면서도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 정말 멋진 간호사가 되려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간호 분야뿐만 아니라, 영어와 같은 외국어 실력이나 병원 시스템 전산화와 관련된 컴퓨터 실력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이슈들과 문화에 대해서도 말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학이라는 학문이 임상 간호사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길들을 열어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확한 진로 결정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생각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나간다면 제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