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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 29

[학생]순수한 영혼 가진 예비 뮤지컬 스타 연영과 구원영 양

어린이 뮤지컬 <토토> 서 공주역 맡아 열연 중 "실력과 함께 인간미 겸비한 배우되고 싶어요" 지난 5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고 있는 극단 학전은 새 공연팀을 뽑기 위한 오디션을 실시했다. 11명을 뽑는 이 오디션에 무려 250명이 지원해 극단 측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평균 경쟁률이 20대 1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지원자중 절반이상이 성악을 전공했으며 연령 또한 25세 미만이 50%를 넘었다는 사실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뮤지컬 배우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기 직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전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이나 현재 공연중인 〈레 미제라블〉 그리고 곧 무대에 올려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대형 뮤지컬들이 잇달아 선보임으로써 뮤지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구원영(인문대·연영과 3년 휴학) 양도 크고 화려한 무대에서 춤과 노래,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배우이다. 이미 〈모스키토 2000〉과 〈의형제〉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구 양은 현재 어린이 뮤지컬 〈토토〉(동숭아트센터 동숭홀. 7월 19일 - 8월 11일)에서 미로공주 역을 맡아 어린이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대극장 보다는 관객과 에너지를 교감할 수 있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구 양은 공연을 막 끝내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쳐보였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에서 맡은 역할은 화성에 사는 여섯 살짜리 공주역이예요. 화성은 1년이 687일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12살이죠. 어린 나이에 지구인과 함께 화성을 보호하는 여리지만 강한 공주랍니다. 공주라서 좋겠다구요? 아니요. 전 공주 되고 싶은 생각 별로 없어요.(웃음) 뮤지컬을 시작한 계기와 뮤지컬의 매력은 중학교 때 성악을 하고 싶어서 6개월 정도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한 달에 2백 만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중도하차했어요. 고등학교 때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성악을 안 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뮤지컬에 매료됐어요. 전공을 연영과로 하겠다는 결심도 그때 굳어졌어요. 대학교 2학년 때 학전 오디션에 응시했다 떨어졌는데 극단 관계자가 다음에는 꼭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냥 위로삼아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스키토 2000〉무대에 섬으로써 그 약속이 지켜졌죠. 뮤지컬은 말이나 몸짓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노래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저는 관객과 감정을 교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극장 보다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끼죠. 같은 또래 인기 연예인들에 비해 자신만의 매력이 있다면 관객과 1대 1로 만나고 있다는 것이죠. 텔레비전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기술적인 것이 있겠지만 무대를 통해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연기를 해야합니다. 에너지도 많이 필요할뿐더러 얼굴표정 하나로는 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설경구 선배 같이 억지로 웃거나 울지 않는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설 선배의 연기는 말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를 닦듯이 차근차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예를 들어 창녀 역을 맡았으면 그 역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자주 접하고자 노력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그래서 늘 여행가는 옷차림으로 살고 있죠.(웃음) 한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있다면 무지하게 많지요. 다른 학교에 비교에 우리 학교는 연기생을 1년에 10명밖에 뽑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극이나 영화에서 유오성, 설경구 선배 같이 진짜 연기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한양대 출신 밖에 없습니다. 최불암, 권해효, 박광정 선배도 우리 학교 출신이지요.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진실된 연기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배두나 양과는 동기생인데 두나요? 작년에도 동강 레프팅을 함께 갈 만큼 친한 동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기인 중 한 명이죠. 같은 또래의 연기자에 비해 두나만큼 좋은 배우는 없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플란다즈의 개〉 등을 보면 두나의 작품과 배역 선택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물론 있지요. 이미 개봉됐던 영화에 단역으로 몇 번 나왔었습니다. 곧 개봉될 영화에도 잠깐 나오죠. 무슨 영화인지는 창피해서 말 못하겠네요.(웃음) 노래에 장기가 있고 처음 감동 받은 것이 뮤지컬이라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래, 연기, 춤 등을 모두 잘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나이가 서른쯤 되면 〈의형제〉의 간난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6.25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자식을 파는 등 한을 간직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전형적인 한국여성상이죠. 인간적으로 특히 존경하는 방주란 선배가 맡았던 역인데 연기와 노래 모두 정점에 올라야 소화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5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면 저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합니다. 늘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죠. 이 욕심이 저를 대학로로 빨리 끌고온 힘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배우보다는 '인간' 구원영이 되고 싶어요. 방주란 선배는 연기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분인데 그분처럼 영혼 자체가 순수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용석 학생기사 antacamp@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7 22

[학생]자유게시판의 `스타 이야기꾼` 디대이쁘니·박정후

딱딱한 게시판에 '산소'같은 '디대이쁘니' 민감한 사안도 정면돌파하는 논객 '박정후' 18, 19세기 우리나라에는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주로 구비소설을 이야기 했는데, 그 말하는 것이 뛰어나 늘 구경꾼들이 가득 모였다. 이러한 이야기꾼들을 '전기수'라 불렀다. 전기수들은 한참 이야길 하다가 가장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뚝 그치고 읽지 않았다. 그 다음 대목을 들으려면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던져야만 했다. 오늘날 인터넷상에는 옛날 '전기수' 못지않은 이야기꾼들이 활약하고 있다. 비록 옛날의 전기수처럼 소설을 전하거나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옛날 못지않은 인기(?)를 대신 얻게 된다. 본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하 자게)에서 알아주는 '스타'로 통하는 '디대이쁘니' 윤지현(디자인대·금속디자인 3) 양과 박정후(경금대·경제학부 2) 군을 만나 게시판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의 필명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윤지현 내가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당시 디자인대 학생들은 자유게시판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디자인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선은 디자인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에 디대(디자인대의 줄임말)를 꼭 넣고자 했다. 박정후 내 필명은 실명과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실명을 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주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을 예상했나 박정후 우선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학생회 일도 해보고, 학교 안의 여러 현상들을 주의깊게 지켜 봐 왔다.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할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게시판 글 속에 한양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이 끌렸다. 그런 모습들을 보기 위해 글을 읽고 또 쓴다. 실명으로 조금은 과격한 글들을 썼기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윤지현 친한 학우들과 작은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데 일기처럼 끄적인 내 글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그것에 자신감을 얻고 자게로 진출(?)했다. 사소한 내 이야기들이 큰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무척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해왔다. 자게의 논객으로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후 사실 우리 학교 게시판은 너무 쉽게 가열되는 측면이 있다. 이념, 정치적 취향에 대한 의견이 맞서 게시판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고 건조해질 때도 있다. '디대이쁘니'는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소소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가볍지만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 그런 '디대이쁘니'의 글들이 게시판의 분위기를 정겹고 따뜻하게 바꿔주는 정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윤지현 정후는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고 때론 과격한 표현도 감행한다. 우선 논리와 표현상의 문제를 떠나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꺼려하는 부분의 이야기도 용감하게 꺼내는 정후야말로 자게의 진짜 '이야기꾼'이다. 자게의 문제점과 자게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윤지현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참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나누면 서로 다른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한다거나 무조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또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했다. 한낱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니 말이다.(웃음) 박정후 타인의 글을 보며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소속감, 동질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많은 여건상 오프라인의 모임은 힘들어도, 온라인상의 접촉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양 자게의 글을 보며 '우리는 모두 한양인'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한양대 자게사랑 카페(http://cafe.daum.net/hysud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페 소개를 한다면 윤지현 게시판 단골 이야기꾼들이 대부분 가입했다. 또 자게에서 글을 올리진 않지만 계속 지켜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다소 많은 고민이 따르긴 했지만 카페에서도 '디대이쁘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워낙 해프닝이 많아 '디대이쁘니'라는 이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박정후 두어번 정모를 했는데 게시판 글을 계속 읽어온터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자게보다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라 그런지 더 많은 분들이 편하게 글을 올리시는 것 같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내가 이 카페를 계기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과격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더 많은 한양인들이 가입해 함께 자유롭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6 15

[학생]"코리아 팀 파이팅" 월드컵 자원봉사자 이서진 양

조직위 미디어센터서 뉴스 취재 도와 "국민 의식 성숙해지는 계기 되었음 해요" "한국 '꿈의 8강' 해냈다" 한국 축구가 16강을 넘어 8강에 진출하면서 전국은 지금 온통 축구열기로 가득하다. 1승에 목말라하던 것이 이제는 4강까지 넘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수백만명의 거리 응원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놀라게하고 있는 가운데 흥분과 감동을 함께 하면서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개최 한달전부터 월드컵조직위원회 미디어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서진(언정대·언론 2) 양은 세계적인 축제에 함께 한다는 생각에 힘든줄도 모르겠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빨간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이 양을 만난 날은 16강 진출을 놓고 포르투갈과의 운명적 대결이 펼쳐졌던 지난 14일이었다. 미디어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미디어센터는 말 그대로 방송과 기타 매체를 위한 일을 하는 곳이에요. 뉴스팀에서는 인트라넷이 구축되어 있어서 월드컵 뉴스를 취재하고 편집하죠. 경기 전에 감독과 선수 인터뷰, 선발 출장 선수 명단, 휴식시간 때 경기 중간보고서 정리, 경기 종료 후 전체 경기 보고서 정리와 다시 감독과 선수들 인터뷰한 것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각국 유명 방송사와 신문사로 배포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여러 인터뷰나 기타 기사 등 문서를 정리하고 복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지 처음엔 시시하다는 생각에 다른 자원봉사자들이랑 고민도 조금 했어요. 겨우 이런 일을 하려고 자원했는가하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PD들이나 다른 계약직으로 계신 전문가들이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면 뉴스 안나간다'라고 격려해주셔서 힘이 절로 났어요.(웃음) 남들이 하찮게 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고 자부심도 생겼죠. 메인 프레스 센터는 오는 19일부터는 일본으로 옮겨져요. 일본에서 폐막식을 하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한국 프레스 센터에서 폐막식까지 일하게 되고요. 자원봉사에 참가한 계기와 힘든 점이 있다면 우선 이번 월드컵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행사이고, 또 제가 학생신분일 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하게되었어요. 다시 언제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치를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일이 다행히 오후조라(오후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활동) 학교수업을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다른 자원봉사자의 경우는 학교수업을 빼먹기가 다반사이거든요. 중도포기한 자원봉사자들이 많을 만큼 일이 고되고, 재학생 신분으로 학교 생활과 병행하는것도 여간 벅찬 일이 아닙니다. 저는 집(안산)과 미디어센터가 있는 COEX가 멀어 통근에 불편하지만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한국학생 자원봉사자 말고도 미국 또는 다른 외국에서 온 교포학생들이나 방송사 PD로 근무하셨다가 계약직으로 오신 분들, 월드컵 같은 큰 행사에서만 일을 얻어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직원들, 많은 통역가들, 각국 방송사에서 온 기자, PD 등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뉴스팀에 모여있어요. 제 전공이 신문방송학이니 자연히 미디어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아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진로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도 하구요. 다들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어 보여요.(웃음) 이번 월드컵을 자원봉사자로서 지켜본 입장에서 반성할 점이 있다면 저도 일본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반일감정도 이해하고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좋은 감정을 갖고있지 않죠. 하지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입장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돼요. 일본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경기할 때 지켜보면서 응원을 한다고 들었어요. 붉은 티셔츠까지 입고 말이에요. 공동개최국으로서 다 같이 16강에 들길 원하는 거죠. 배워야할 의식이라고 생각돼요. 또한 국제적인 행사이니만큼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외국인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가령 우리나라 경기중에 상대팀이 공을 가지면 심하게 야유하는 모습을 보게되는데 다른 외국인들과 같이 일하면 괜히 제가 뜨끔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인지 월드컵경기 시작하기 전에는 황선홍 선수 팬이였어요. 근데 지금은 김남일 선수와 이영표 선수도 너무 좋아해요. 저번 미국과의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잠시 흥분) 우리나라 경기가 있을 때는 모든 팀원들이 다 제쳐놓고 경기에만 집중하거든요. 다 붉은 색 티셔츠 맞춰입구요. 미국과 경기할때는 괜히 미국 방송사인 블룸버그(Bloomberg)사 기자들을 노려보기도 했어요.(웃음) 또 영국의 베컴선수도 너무 좋아요. 외모도 멋질뿐더러 축구도 너무 잘하잖아요. 여러 가지 질문에 때로는 논리 정연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선수들을 물을 때는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흥분하던 이 양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물론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Korea Team Fighting!"이라는 구호와 함께. 진혜원 학생기자 bluenn@ihanyang.ac.kr

2002-06 08

[학생]"16강? 우리는 우승" 축구동아리 `라이언` 주장 황희건 군

라이언, 10연승 '포효' … 아마 최강 전력 자랑 "승패 떠나 함께 땀흘리며 축구 묘미 즐긴다" 요즘 우리나라는 월드컵 개막과 함께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바로 축구로 한양의 이름을 또 한번 드높인 이들이 있다. 지난달 2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막을 내린 '제4회 험멜코리아배 전국대학생클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체육대학 체육학과 축구동아리 '라이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재일교포학생축구단을 1:0으로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한 '라이온'의 주장 황희건(체대·체육과 2) 군을 만나보았다. 우승을 축하한다. 우승소감이 있다면 작년 2개의 아마추어 축구대회를 우승한테 이어 이번 대회에서 다시 우승을 이뤄내 정말 기쁘고 선배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9연승의 신화를 10연승으로 이어가게 돼 정말 뿌듯하다. 아마추어 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물심양면으로 수많은 지원과 격려를 해주신 오상덕 교수님, 최창국 교수님, 서진교 교수님, 그리고 여러 조교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위에서 잘 끌어주신 선배님과 부족한 주장인 나를 믿고 힘든 훈련과 경기에 최선을 다해준 후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에 우승한 대회를 소개한다면 제4회 전국대학생클럽축구선수권대회는 험멜코리아가 후원하고 연세대에서 주최한 전국 아마추어 대학축구대회로 개막전부터 결승전까지 약 5주간에 걸쳐 진행됐다. 아마추어 축구대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결승전을 동대문운동장에서 할 만큼 아마추어 축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로 여겨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각 대학에 소속된 아마추어 축구동아리 32개 팀이 출전해 그동안 혹독한 훈련으로 쌓아온 실력을 발휘, 서로간의 자웅을 가리고 대학 축구 동아리간의 친목을 다진 소중한 자리였다. 기억에 남는 시합을 꼽는다면 지난 해 준우승 팀이자 이번 대회들어 더욱더 강해진 전력으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상지대와의 준결승전이다. 아마추어 축구는 특징상 매년 전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년 대회 준우승팀인 상지대와 맞붙는다는 게 큰 부담이었다. 상지대는 작년 건국대배 때 우리에게 1:0으로 져 우승을 놓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인지 더욱 거친 플레이로 우리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우리는 준결승전에서 상지대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또한 이 경기는 우리 회원들을 더욱 더 하나로 뭉쳐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결승전도 기억에 남는다. 당초 우리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명지대 용인캠퍼스 팀과 결승에서 붙을 것을 예상했었는데 명지대가 초반에 탈락하는 바람에 재일교포 팀과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다. 결승전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지만 또 하나의 한일전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 탄탄한 조직력과 세밀한 경기운영을 앞세운 재일교포팀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다들 다리에 쥐가 나고 쓰러지는 힘든 상황에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우리팀 포워드인 황재민 군이 결승골을 넣음으로써 경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라이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라이언'은 체육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축구동아리로 1995년 이종길(90), 김석희(91), 장정호, 권오갑(94), 이승훈(95) 다섯 선배들을 주축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아리 부원 모두 축구가 좋아서 가입했지만 모두 함께 뛰고 땀흘리면서 승패를 떠나 무언가 함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더 큰 매력이다. 운동량은 아마추어 축구인 인만큼 그리 많이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도 하지 않는다. 1주일에 한번 월요일 오후 5시부터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회가 있을 경우 1주일에 세번 정도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지난 8일과 9일 다녀온 M.T로 1학기 활동은 끝이 났다. 이번 여름 방학에 해양훈련을 해군사관학교로 가 해사생들과 정기전을 가질 예정이다. 해사와는 지난 해와 올해 3번의 경기를 치러 2승 1무로 역대 전적에서 우리가 우세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지난 해에 우승한 건국대배와 국민대배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FC HANYANG과의 정기전이 남아 있다. 지난 해에는 우리가 승부차기 끝에 패했는데 이번에 꼭 패배를 설욕할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대학이 주최하는 한양대총장배도 개최할 계획이다. 월드컵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는 행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축구 관련 가장 큰 축제인 만큼 우리 '라이언'도 같이 그 축제를 즐기고 우리나라가 16강을 넘어 8강까지 오를 수 있도록 모든 한양인들과 함께 한마당에서 응원을 펼칠 계획이다. 손형준 학생기자 boltagoo@ihanyang.ac.kr

2002-04 15

[학생]`꼴찌에게 희망을` 교육과 문승호 군

미국 교육제도 장단점 파악 위해 교환학생 지원 교육과정개발ㆍ평가개선 등 '희망의 교육학' 할 터 지난 해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 중 하나가 '엽기'였다는 한 신문사의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지난 몇 년간 가장 빈번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화, 국제화, 정보화가 아닐까 싶다. '지구촌'이라는 말은 이미 촌스러운 표현일 됐을 정도로 세계화, 국제화는 하나의 당위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학에서도 국제적 감각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세계 유수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25명 정도의 교환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있다. "미국 땅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땀방울이 하나의 결정체로 맺어져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한양대는 제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해 주는 밑거름입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시는 총장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얼마 전 총장실에 우리 대학 교환학생이 파견 대학에서 최우수학생으로 선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Pittsburg State University(이하 PSU)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문승호(사범대·교육 4) 군이 PSU 설립자의 건학정신을 기리고 이를 모범적으로 이어가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주는 표창에서 영예의 최우수학생(Golden Gorilla Award)으로 뽑힌 것이다. 문 군은 자신에게 보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학교 측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김종량 총장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교육현장 경험으로 미국 교육제도 이해 현지 학생들도 받기 힘든 이 상을 받은 데는 문 군의 학교 생활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금방 수긍이 간다. 문 군이 교환학생으로서 미국에 발을 디뎠을 때 공부 다음으로 중점을 두었던 것이 공교육기관을 이용한 미국 교육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동아리와 학회활동을 통한 풍부한 경험 쌓기였다. 그는 Pittsburg 중학교 실습을 시작으로 인근 고등학교에서 주당 8시간 씩 특수교육 보육교사를 맡아 미국 교육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민 온 특수교육 대상 고등학생을 위한 학습지도 등을 통해 전공인 교육학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미국 공교육 시스템을 입체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문 군은 양로원 방문, 빈민 돕기 자금마련 바자회 등의 봉사활동과 한인 학생회 활동, 각종 학회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문 군이 교환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은 것은 그의 교육학에 대한 애정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나라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교육현실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는 것이 문 군의 인식이다. 또한 최신 이론을 우리 현실에 맞게 토착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재목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그를 미국 땅으로 이끌게 했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학 개론, 교육과정 및 평가 연구, 다중지능 세미나, 특수교육 개론, 가족치료, 영어작문 등을 공부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 대해 받은 인상 중 하나는 학문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입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많은 교수진이 분포되어 있어서 서로의 이론에 대해 논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요. 이러한 가운데 학문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또한 방대한 간행물과 전자 도서관을 통해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또한 지도교수가 학기초에 학생들의 강의 시간표 작성에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취업상담소에서 학생신상 기록부를 작성하고 많은 취업박람회를 제공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적극적 동아리·학회 활동으로 높은 평가 받아 문 군이 말하는 미국 대학교육의 장점에 대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풍부한 학습자료나 적극적인 취업상담소 운영은 우리 대학에서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렇다고 미국 학생들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환경이 주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유학생들이 미국 학생들 보다 성적이 좋다고 지적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방해야만 낯선 이국 땅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교환학생에게 열려있지 않은 교생실습 과목을 개설해 달라고 학과장을 찾아가고 수업 중에 발표를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애썼다. 또 한국인 유학생이 전혀 없는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제가 최우수학생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도서관에만 생활하거나 외국인과의 접촉을 단절한 채 한국인들하고만 어울리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환학생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은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쓰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꼴찌·학습 부진아에게 희망 주는 교육자 되겠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곳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 공간의 현실이 객관적으로 잘 보이기 마련이다. 그가 바라본 우리 대학의 현실은 세계 무대에 더욱 더 잘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환경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정확하고 상세한 학교소개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우리 대학이 세계의 새로운 조류에 뒤쳐지지 않고 열심히 전진해나가는 것을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는 문 군은 영문홈페이지가 보다 탄탄하게 구축되고, 우리 대학 교수와 학생의 영문번역 논문이 더욱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개선해야할 부분도 많이 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 분야가 교육분야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어있는 만큼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다고 봅니다. 한국 교육 현실의 문제점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저로서는 교육과정개발과 교육평가개선을 통해 교육 문제 해결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생들이 지닌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교육평가법 개발에 앞장설 것입니다. 아울러 꼴찌, 학습 부진아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학을 하고 싶습니다." 문 군이 밝히는 교육학도로서의 포부이다. 미국 교육제도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직접 미국 교육을 파헤치고 그러한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교육상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그가 받은 최우수학생 표창보다 훨씬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비록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곳에서 온몸으로 배우고 익힌 지식이 척박한 우리나라 교육의 토양을 비옥하게 할 거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3 22

[학생]`소신과 열정 가진 검사 꿈꾼다` 박왕규군

소신과 열정 가진 검사 꿈꾼다 사법연수원생 박왕규 군

2002-03 01

[학생]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필드의 정복자 꿈꾸는 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2002-01 22

[학생]금융감독원 류한은 양

여학생으로 본교 최초 금감원 공채 발탁 끊임없이 공부하는 금융전문가 되고파 금융감독원 류한은(경영 97학번)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던 20세기에 은행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들은 통장과 도장도 없이 은행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출금'을 요구했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었다. 시커먼 복면을 하고 커다란 자루를 든 채, 창구로 뛰어들어 현금을 요구했던 그들은 '대기표'도 뽑지 않았다. 비록 성공사례는 드물다 해도 지금까지도 영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그들의 활약상은 빈한한 낭만주의의 표상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이제 복면을 두른 사람들이 아니다. 비록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며 은행내에 비치된 통속잡지들을 읽지는 않지만 그들은 은행문을 점잖게 열고 들어와 '현금'이 아닌 '장부'를 요구한다. '경제검찰', '금융권의 암행어사'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직원들이다. 금감원, 공정위와 함께 양대 '경제검찰'로 활약 지난 해 가을, 금감원 공채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류한은(경영 97) 양은 금감원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매우 겸손한 소개말을 던진다. "금융권의 경영에 대해 위법행위가 있는지 조사, 검사, 감독하는 일들이지만 이것은 금융소비자, 넓게는 모든 국민에 대한 봉사,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들은 공무원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닌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지난 1997년 제정된 '금융감독기구의설치등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기존의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그리고 신용관리기금 등 4대 금융감독기관이 1999년 통합되면서 발족한 것이 지금의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금융감독위원회 또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지시나 위임에 의해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현황에 대한 각종 검사를 수행한다. 이는 금융시장의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수요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IMF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증대하고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금감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업무의 성격상 철저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기에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것으로 압니다. 일종의 감사기관이므로 운영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기관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원칙을 갖고 있지요. 지금까지 밝혀진 각종 경제부패사건에서 관련 정부기관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지만 금감원의 경우 최종적으로 혐의가 인정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금감원의 청렴한 분위기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비록 연수 중이라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금감원 직원들은 주식투자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선배들이 그러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기업으로 가라, 그러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려거든 너의 직장은 아주 멋진 선택이다'라고 말입니다." 금감원 공채 실시 이후 여학생으로는 본교 최초 입사 지난 해 가을에 있었던 금감원의 제3기 공채에서 본교는 모두 6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류양 외에도 법학과의 김철영군, 김신영양, 최홍수군, 경제학과의 김미선양 그리고 경영학과의 권순표군이 류양과 함께 합격한 입사 동기들이다. 이들은 같은 과 학생들의 대다수가 사법고시나, 공인회계사 등 전통적인 진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전공에 대해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금감원이 공채를 실시한 이후, 그녀는 김미선, 김신영양과 함께 여학생으로는 본교 출신 최초로 금감원에 진출하는 영예도 안았다. 때문에 진로에 대한 조언을 바라는 여러 후배들의 '즐거운'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금감원을 생각하고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니에요. 대학원 진학을 꿈꾸다가 낙방의 쓴맛을 보고 나서 지금까지 했던 공부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저는 스스로 정말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제가 입사했으니 누구든지 도전하면 되지 않겠어요?" 참으로 겸허한 조언이다. 경제난 속에 극심한 취업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국내 최고의 금융감독기관에 입사한 류양이 실제로 취업을 위해 50여 곳에 원서를 넣고 단 두 번의 면접 기회를 가졌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한양인, 자부심으로 도전하라 금감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법학 중 한 가지의 전공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1차 서류전형을 통해 선발된 10배수의 응시자들이 2차 필기시험을 치를 자격을 받는다. 필기시험은 영어와 논술 그리고 전공시험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렇다면 까다로운 전형에 합격하기 위해 류양이 털어놓는 비결이란 무엇일까? "점잖은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비교적 내성적일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매우 외향적입니다. 우연히 길에서 한국은행에 다니는 선배를 만났을 때, 그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조언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함도 있지요. 취업을 희망하는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선배들을 통해 많은 조언을 얻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한양대요? 이 땅에 우리 선배들이 없는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되요." 오는 2월 졸업을 앞둔 류양은 입사한 직장의 일들이 여성으로서 감내하기에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하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힘겨운 순간이 닥쳤을 때 여성들이 남성보다 쉽게 퇴사하는 경향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분노 반, 격려 반이다. "직장생활에 지쳤을 때, 제발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너무 제한된 사고를 갖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과 전망들을 생각했으면 해요. 또한 높은 점수와 좋은 학점만을 회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당신의 회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자신감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삶에 포기란 없다' 강조하는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일찍부터 유별났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봉사 수강이 불가능한 휴학 기간에도 실무자를 졸라 '세무서 부가가치세 신고업무'에 대한 사회봉사를 하기도 했고, 지난 97년의 대선 때에는 선거감시 봉사활동을 하는 등 한낱 점수와 학점보다 현장에 대한 경험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는, 참으로 고집스런 그녀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온 몸으로 사회 속에 뛰어든 그녀의 모습에서 '인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한다. '대기표'를 뽑아들고 누군가 자신의 번호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이, 그의 삶은 이미 청춘이 아니다.

2002-01 15

[학생]한국무용계 긴장시킨 `물 오른 춤꾼`

한국무용가 김신아(무용학과 95) 양 지난해 여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을 지켜본 평론가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다. 평론가들이 우수한 신예 무용가들을 선정, 초청하여 무대에 올리는 위 공연에서 스물 다섯 살, 최연소 나이의 어린 춤꾼이 보여준 열정과 에너지가 모든 관객과 평론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신아를 두고 '이번 공연이 찾아낸 보석 같은 존재'라 호평하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다. 안무작 포함 출연작만 30여편 "당신 신인 맞아?" 가녀린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 반듯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박또박 말을 잇는 그녀를 두고 풋풋함이 감도는 '신예무용수'라 호칭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1995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흰 옷'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편이 넘는 작품들에 출연했던 경력은 물론,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5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한 바 있는 그녀다. 그렇다고 경력상의 이유를 들어 '중견'의 대접을 받기에는 스물 여섯의 나이가 좀 억울하다. "다소 어린 나이에 일찍 안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지도해주신 김운미 교수님의 큰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신아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레슨을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한국무용계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운미 교수의 지도와 함께 남다른 근면함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서울캠퍼스 무용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가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보수적이던 집안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잠시 무용을 접었다가 고교 2년에 춤에 대한 넘치는 '끼'를 결국 이기지 못해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음악만 들으면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추었대요. TV를 봐도 노래하는 가수보다 그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 관심이 있었다니까요." 무릇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누워 있다가도 몸이 욱신거려 벌떡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를 누가 말리랴. 타고난 열정 탓에 결국 춤꾼의 길로 접어든 그녀가 일찍부터 '한양대'로 자신의 입지를 정하고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한국무용의 대가 김운미 교수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던 탓이다. 김신아는 원대로 합격 후부터 지금까지 김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남다른 예술적 광기와 기개 무용계가 김신아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사)한국무용연구회에서 주최한 '신인 안무가전'에서 작품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하며 연기상을 받았다. 그녀는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된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존경하는 선배인 지제욱 동문이 안무한 이 작품에서 김신아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지난 2000년 같은 '신인 안무가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안무한 〈얼음 위의 영혼Ⅰ〉을 내놓으며 안무상을 수상해 안무를 맡기에 다소 어린 나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김신아는 1999년 이후에만 5편의 작품을 창작,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지난 해 있었던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출품작인 〈내가 깊은 곳에서〉는 한국무용계에 '김신아'라는 이름 석 자를 새롭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론가 성기숙은 "폭발하는 끼와 예민한 감각, 도발적 실험을 서슴치 않는 용기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안무의 저력 등 김신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밝히며 그녀를 '한국창착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기대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김신아의 저력은 그녀가 지닌 예술적 광기에 있다. 그녀는 기존의 고답적인 한국무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존의 문법에 적응하기보다는 왜곡과 해체, 굴절을 일삼아 새로운 코드와 기법을 창출해 낸다. 지난해 직접 안무하여 '젊은 무용가전'에 출품한 〈내가 깊은 곳에서〉를 지켜본 성기숙은 이를 두고 "한국춤의 기본원리와 호흡체계가 단단히 녹아있다.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무당적 기질에 몽환적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춤만 추겠습니다" 김신아는 자신의 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성실함을 두번째는 체력을 그리고 세번째는 스승이다. 춤이란 화가처럼 앉아서 어깨품을 팔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적 범주의 예술이 아니다. 몸을 부려 하루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처럼 춤이란 움직이고 뛰어야 '밥값'을 하는 가장 고된 예술의 부류다. 공연이 닥치면 하루 12시간 이상 강행되는 연습과 훈련을 이겨내야 하고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만들어진 몸을 잃지 않기 위해 4시간 이상 꾸준한 연습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 별을 보며 등교해서 저녁 별을 보고 귀가하는 나날이 많았어요. 하루는 밤 늦게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에 언뜻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혀가 축 처져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거에요. 순간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일이라 버틸 수 있었어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수발을 해야했던 시간만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레슨에 빠져 본 적이 없다는 김신아의 근면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녀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김신아가 스스로 토로하는 자신의 또다른 저력은 강인한 체력이다. 그토록 힘겨운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역한 의지와 각오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체력이 좋아 보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 역시 김신아의 체력과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평론가 성기숙은 말한다. "솔로로 20여분 이상을 무대에서 견뎌낸다는 것은 중견무용가로서도 그리 쉽지 않다. 김신아는 20여분 이상을 홀로 춤추고도 언제나 거뜬한 모습이다. 광기서린 그녀의 춤의 에너지가 넘쳐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김신아가 인터뷰 내내 빠뜨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은 스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는 김신아가 밝히는 세 번째 저력이기도 하다. 김신아는 올해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김운미 무용단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사사한 김운미 교수에 대해서는 "어머님 같으신 분이세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엄하시지만 늘 자상하시고 저를 가장 예뻐하세요. 교수님 제자들은 모두 교수님이 자신을 가장 아끼시는 것으로 믿어요."라고 농담 어린 애교를 던진다.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수님의 지도와 주위 동료들의 덕분이라 밝히는 겸손함도 예사롭지 않다. '죽는 그 순간까지 춤만 추겠다' 말하는 그녀의 각오가 섬뜩하다.

2002-01 08

[학생]`지성이면 감천` 장애우 삼수끝 법대 합격

시각장애 이유로 교대 입학 거부당한 김훈태 군 사회 편견 바로잡는 판사되고자 법대로 진로 선회 "신체적 불이익은 노력 여하에 따라 나를 발전시키는 자극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오른쪽 눈만으로는 한 시간 이상 책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책을 놓아야 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회마저 박탈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고자 판사의 꿈을 위해 절치부심의 자세로 노력했습니다." '양쪽 눈 교정시력 0.4 미만인 자는 불합격 처리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지난 2000년 대입특차모집에 합격하고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S교대 입학을 거부당했던 장애 학생이 2002년 정시모집에서 본교 법대에 높은 점수로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이와 같은 휴먼스토리의 주인공은 후천성 시각장애 6급인 김훈태 군. 김 군과 가족은 지난 99년말 합격을 취소한 S교대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 2000년도 입학 자격을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한번 입은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 법. 학교에 정을 두지 못한 김 군은 바로 휴학 신청을 한 뒤 "장애인 입장에서 법정 소송을 벌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며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대 진학을 결심했다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인해 2001학년도 수능시험은 포기한 김 군은 2년 동안 대학입시에 매진하며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데 '대입 삼수'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 군은 어릴 때 백내장 수술이 잘못돼 중학교 시절부터 왼쪽 눈이 서서히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소망해 오던 초등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0년 S교대 특차지원에서 합격의 영광을 손에 쥐었었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의 아픔을 겪은 그는 "시력을 잃은 것보다 초등교사의 꿈을 잃어버린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며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장애우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앞으로 음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다짐했다. 그는 졸업후 사회적 편견을 바로 잡는 판사가 되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어린 새싹들의 꿈을 키우고자 했던 초등교사에서 법조인으로 삶의 목표를 수정한 김 군은 불우한 사람들의 꿈을 근거없이 꺾어버리는 세상을 바로 잡는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김 군이 법학을 공부해 우리 현실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지켜내는 '파수꾼'이 되려는 것이다. "눈이 안 좋아 법학 공부가 쉽지 않겠지만 또 한번 장애인의 인간승리를 이뤄내고 싶다."는 당찬 아들에게 아버지 김종원 씨는 "혼신을 다하는 자세로 늘 배우고 익히려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과거의 어둠이 올 해에는 빛이 되어 더욱 기쁘다. 앞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뜻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