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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 21 중요기사

[동문]세계 무대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성악은 마라톤보다 더 마라톤처럼 길게 봐야 해요.”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은 지침 없이 긴 '마라톤'을 달려왔다. 국내 국립오페라단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최근 뉴욕으로까지 진출한 신 동문은 국제 무대를 자유롭게 누볐다. 그리고 지난 달 23일, 신 동문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뉴욕 메트)에 정식 데뷔했다.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데뷔한 신 동문은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주역인 로미오역을 맡게 됐다. 무겁지만 영광스러운 자리 지난달 23일 뉴욕 메트에서 신 동문은 4000여명의 관객 앞에서 열창했다.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끝낸 영광스러운 무대였습니다.” 베이스 연광철 씨, 베이스바리톤 차정철 씨도 신 동문과 함께 한인 성악가로 무대에 올랐다. 동양인으로서 처음 로미오역을 맡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전례에 없던 일일 뿐더러 메트 무대가 동양인에게 인색하기 때문이다. “열명 중에 동양인이 둘만 돼도 ‘왜 이렇게 많냐’는 얘기가 나와요. 아직까지 동양인이 무대에 올라가는 비율은 많지 않아요.” 뉴욕 메트 또한 처음에는 비슷한 반응을 내보였다. 뉴욕 메트의 스태프들은 모두 신 동문을 추천했지만, 극장장은 조금 더 유명한 백인 테너를 캐스팅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역 자리에 당당히 오른 신 동문을 향한 객석과 현지 언론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지난 달 23일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를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에서 주인공 로미오 역을 맡았다. 사진은 에일린 페리즈(줄리엣 역) 과의 호흡을 맞추는 모습. (신상근 동문 제공) 국제 무대의 베테랑 뉴욕 메트의 서기까지의 과정은 길었다. 신 동문은 한양대를 졸업한 뒤 밀라노 라스칼라 아카데미(Accademia della Scala),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Mozarteum), 그리고 빈의 콘서바토리에서 공부를 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무대에 섰고, 독일로 바로 넘어갔다. 독일에서는 도르트문트국립극장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데뷔를 했고, 뮌스터오페라하우스와 칼스루에 극장, 그리고 슈트트가르트국립극장에서 ‘리골레토’, ‘가면 무도회’, 그리고 ‘라트라비아타’ 등에 출연했다.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가 독일 칼스루에 극장에서 활동 할 때 나왔던 '가면 무도회' 작품 포스터. (신상근 동문 제공) 주 무대가 유럽이었던 만큼 신 동문은 가족, 선배, 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국에서 혼자 무대를 하게 되면 많이 외로워요. 이번 뉴욕 메트에서는 운이 좋게도 한국인 성악가가 3명이나 있어서 같이 밥을 먹거나 얘기했지만, 유럽에서는 아니었어요. 한국에서 공연 후 먹던 치맥이 그리웠어요.” 외로움을 달래준 것은 관객들의 힘찬 박수세례였다. 주로 주역을 맡았던 신 동문은 커튼콜 때 항상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앞 차례보다 열정적으로 박수를 친 관객들에게 ‘뭔가를 주었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독일 칼스루에 극장에서 하노버 극장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공연을 했을 때, 극장장이 저를 향해 삼폐인과 함께 박수를 보냈어요. 그 때 관객들이 가지 말라고 했던 게 기억이 많이 남네요.”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오른쪽)이 '까르멘'을 공연하는 모습. (신상근 동문 제공) 완성도에서 갈리는 성악 성악은 한끝 차이로 실력이 나뉜다고 한다. 신 동문에 의하면, 많은 한국인 성악가들의 기술은 완벽에 가깝지만, 국제 무대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이 부족하다. “언어의 뉘앙스를 본인이 느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언어 공부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합니다. 문법이 맞느냐 보다는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나라 언어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신 동문은 현지 사람보다 더 현지 사람처럼 얘기할 줄 알아야 국제 무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무대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신 동문. 더욱 큰 무대를 꿈꾸기 보다, 질 높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텍스트의 정확한 전달과 디테일에 신경을 쓰겠다는 말이다. 신 동문에게 성악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악의 대가 프랑코 코렐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니까 계속 찾아봐야겠죠?” ▲테너 신상근 동문(성악과 94) 의 프로필 사진. (신상근 동문 제공) 글/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2018-05 14

[동문]그림과 노래로 마음을 치유합니다

마음이 쉽게 병드는 사회. 온정을 말하기엔 모두에게 차갑고 정신 없는 현실. 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떨까. 최근 성인과 마찬가지로 소아 청소년에게도 우울증을 동반한 정서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동 청소년기에는 반드시 정상적인 환경과 심리적 지원이 있어야한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치료 역시 동반돼야 한다. 통상적으로 심리치료는 지면과 상담사와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힐링을 선사하는 이가 있다. 따뜻한 미소를 지닌 김지인(아동심리치료 박사과정) 씨를 만났다. 예술로 다루는 심리 상담장소에서 비트박스가 들린다. 그림을 그리고, 색깔 모레로 성을 쌓는다. 이 모든 것은 아이의 심리를 치료하는 과정의 일부다. 매뉴얼이 있지만 우선순위는 내담자기에, 치료 매체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치료는 상담이론을 기반으로 언어치료와 CBT(인지행동치료)를 포함한 다각적인 기법을 이용한다. 음악, 그림, 영상, 클레이와 같이, 보고 느끼며 직접 창조할 수 있는 매체를 적극 사용한다. 내담자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치료자는 이를 분석해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현재 굿네이버스(NGO)에서 아동을 상대로 심리치료에 힘쓰고 있는 김지인 동문은 ‘예술’치료사라고 불린다. 예술치료는 자신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아동에게 효과적이다. 또한 예술이라는 매체는 아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관심과 감성을 함께 끌어낼 수 있다. ‘내담자 중심’, ‘해결중심치료’는 상담이론 중 그가 치료 시 중시하는 두 가지 이론이다. 비슷한 아이여도 치료자의 역량과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단과 치료방법은 그에따라 달라진다. 이 때문에 내담자의 성향과 양육환경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언어, 미술과 음악, 혹은 약물이 필요로 하는 경우가 각각 다르기에 내담자에 맞춰,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중점적으로 진행한다. ▲김지인(아동심리치료 박사과정) 씨를 지난 11일 오후 서울캠퍼스 HIT관 양민용라운지에서 만났다. 예술치료사로 새로운 시작 심리학의 길에 들어서기 전, 김 씨는 예술과 관련이 깊었다. 음악이 좋아 악기를 다뤄 공연을 하고 작곡을 배웠다. 음악을 하는 와중에도 항상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심리학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관련 정보도, 자신도 없었던 그녀는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9년, 남편과 함께 네팔에 교육봉사를 갔다. “현지 한인들과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제 자신에게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죠.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환경이 열악했죠.” 네팔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본격적으로 심리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2012년도에 귀국한 뒤, 심리치료교육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전공을 살려 음악치료를 시작했다. 우리대학의 석사 과정을 통해 미술을 집중적으로 배우며 폭을 넓혔다. 작품을 통해 화가나 작가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공부하며 직접 미술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부딪혀 음악에 이어 미술을 또 한번 심리에 연결시켰다. 타인의 마음을 여는 일과 그 가치 그렇게 시작한 치료자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상담할 때 마음이 너무 안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기도 해요. 잘 때까지 해결이 안되는 감정도 생깁니다.” 공과사를 구분해도 다른 직업에 비해 소모되는 감정이 엄청났다. 단순히 전문적인 훈련에 의한 반복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도해서 가르치는 선생님과 상담자는 다릅니다. 먼저 들어주는게 우선이 되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에 바로 수정하기보다, 행동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녀는 내담자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리고 인내심과 공감능력을 상담사의 자질로 꼽았다.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돌아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극적이어서 말을 못하던 아이가 먼저 그녀에게 대화를 청하고, 분리불안장애가 있던 엄마의 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다. “센터에서 이제 치료를 종결을 해도 된다 할 때 초반부터의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가요. 아이 뿐 아니라 부모님도 함께 변화합니다. 그렇게 좋아져서 나갈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 한국예술치료사협회에서 주최한 예술심리치료 강의 중인 김지인 씨의 모습이다. (김지인 씨 제공) 이어서 심리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말했다.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자신과 아이들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나라에서 심리치료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예전에는 자격이 극소수였지만,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우처(정부에서 지원하는 비용)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방문을 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움, 그리고 ‘사랑의 실천’ 그녀의 삶은 예술처럼 다채로웠다. 음악, 작곡, 공연 기획, 해외봉사, 그리고 심리학.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움직이게 하고 치료자의 길까지 이끌었을까. “배워서 남주자는 말이 있잖아요. 제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계속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게 이왕이면 잘 배워서 더 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현재 활동하는 굿네이버스 이전에 여러 상담소와 공공기관, 학교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 베풂을 실천한 그녀는 배움이 자신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대학의 이념이 나눔의 실천, 사랑의 실천이잖아요, 혼자만 잘사는 거보다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사랑의 실천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김 동문의 다음 꿈은 NGO를 설립해, 마음이 맞는 전문인들과 함께 세계 어디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쉽게 접근하는 것이다. 또, 개인 연구실을 만들어 계속 심리학 연구를 하고싶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거동이 불편해져도 앉아서, 또 누워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그녀는 희망적이고 따뜻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 김지인 씨는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꿈을 쫓으라"고 강조하여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5 09 중요기사

[동문]런웨이를 한국으로 물들이다

몇 년간 무채색이 주를 이룬 런웨이에선 보기 힘들었던, 다채로운 색감의 향연. 한때 비주류에 속했던 여겨졌던 키치룩(패턴이 독특하고 개성있는 스타일링, 믹스매치룩)으로 20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디자이너가 있다. “패션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의상에 녹여야 해요.” 누구보다 개성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는 setsetset의 대표 장윤경 동문(주얼리 패션디자인학과12)을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밴쿠버의 무대에 서다 지난해 9월 18~24일 열렸던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VANCOUVER FASHION WEEK S/S 2017). 그곳에 한국적인 영상과 음악이 흐르고, 잠시 후 파스텔톤의 의상을 입고 양쪽으로 머리를 땋은 동양모델이 나타났다. 런칭 한지 단 1년만에 밴쿠버 무대에 선 여성복 브랜드 setsetset의 모델이다. 한정된 디자인의 여성복들과 자국 브랜드 사이에서, 동양 문화를 모티브로 한 신진 브랜드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언젠간 인정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장 동문은 현 트렌드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방향성이 뚜렷했고, 자신 있었다. ▲ 지난 6일 디자이너 브랜드 setsetset의 대표 장윤경 동문(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 12)을 장지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맨 처음에 연락 받고 사기인 줄 알았어요.(웃음) 곧바로 두 달간 쇼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장윤경 동문이 당시 상황을 잠시 회상했다. “자금과 인맥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브랜드를 계속 키우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시점에 초청 연락이 왔고, 브랜드를 크게 알릴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하루가 다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디자이너 브랜드들. 그 대부분이 들쑥날쑥한 매출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는 패션시장의 현실. 그 속에서 돌파구를 고민하던 장 동문에게 초청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2017s/s 밴쿠버 패션위크에서 성공적으로 쇼를 펼쳤고, 이후 2017s/s, 2018f/w 컬렉션까지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브랜드는 위기를 넘어 더 성장할 수 있었다. ▲2018f/w 밴쿠버 패션위크 무대 위. 모델들이 줄지어 피날레 워킹 중이다. (출처: 장윤경 동문 페이스북 갈무리) 한국문화를 뻔하지 않게 담은 디자인 그녀의 브랜드가 해외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원단과 독특한 실루엣이다. 독특할 수 밖에 없는 건 의상만이 아니라 원단의 패턴까지 직접 디자인하기 때문. 장 동문은 학과 개편 전, 섬유디자인과로 입학해 텍스타일 디자인(원단의 문양 및 자수 디자인, 직물설계 포함)을 먼저 배웠다. 이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모든 컬렉션 의상을 직접 디자인한 브랜드 고유의 패턴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패턴으로 선정하는 아이템은 다양하다. 복주머니, 사물놀이, 쪽지 같은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 이 모든 것을 실루엣(옷의 전체적인 윤곽)에 담았다. “setsetset은 다른 시각으로 본 한국문화를 옷으로 디자인 합니다. ‘한국문화’하면 사람들 인식엔 어딘가 떨쳐버릴 수 없는 촌스러운 느낌과 고유색감이 있어요. 그 느낌을 텍스타일 디자인으로 희석시키고, 실루엣에 쉽고 재치 있게 담아냅니다.” 그녀의 디자인은 어느 브랜드보다 솔직하고 가감없이 표현한다. “주제를 크게 잡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느끼고 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해요. 때문에 재미있게 디자인 합니다.” 현재 그녀는 8월에 있을 다음 컬렉션 아이템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디자이너들과 함께 한글 캘리그라피(글자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기술)를 연구하고 있다. 이전에 한글을 아이템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글자 형태와 디자인에 새로운 변화를 줄 계획이다. “한국문화를 누가 제일 잘 표현하냐는 질문에 제 이름이나 브랜드의 이름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서울 패션위크를 지나, 도쿄와 런던의 패션위크까지 2년 안에 모두 마치는게 목표입니다.” ▲(왼쪽부터) 2017s/s에서 복주머니 모양을 한 의상의 실루엣, 사물놀이를 모티브로 한 패턴의 치마다.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점이 눈에 띈다. 브랜드가 완성되기까지 시작 당시의 setsetset은 지금처럼 뚜렷한 정체성을 갖추지 못했다. 생소한 콘셉트와 디자인에 대한 외면이 걱정됐기 때문. 초반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디자인을 섞어 시도했고, 가격도 조절했다. 점차 고객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수익이 생겼지만, 원치 않은 타협 속에서 아쉬움은 항상 있었다. 장 동문은 밴쿠버 컬렉션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계기로 현재는 setsetset 고유의 브랜드를 고집하려 한다.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도 결국엔 개인사업자일 뿐, 처음의 신념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브랜드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만일 그 돈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운영하려고 하면 결국 돈을 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죠. 그렇지만, 내 속에 있는 정체성과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를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야 해요. 흔들리면 안됩니다.” 대중이 원하는 디자인대신 본인의 선택으로 성과를 내기는 쉽지않다. 그렇지만 setsetset은 획일화된 패션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보란듯이 커가고 있다. “먼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난 뒤,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빨리 현실에 타협하지 마세요. 아무것이 없어도 부딪혀보고, 그 속에서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든 기회 속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장 동문의 말이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5 02

[동문]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마세요

지난 4월 24일 서울캠퍼스 HIT 앞 한양스타트업타운에서 열린 한 창업 특강. 따뜻해진 날씨에 어울리는 베이지색 슈트를 입고 전준희 동문(수학과 90)이 강연에 나섰다. 대학생 때 창업을 시작해, 다양한 회사 거쳐 구글 상무까지. 인생 꾸준히 달려온 그다. 전 동문은 자신 또한 한계를 정한 적 없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호탕한 웃음소리의 전 동문은 때론 인생 선배로서, 때론 친한 형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워드프로세서 ‘21세기’를 개발하다 전준희 동문은 우리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입학한 지 2년 만인 지난 1991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친했던 동기, 현재는 이스트소프트 사장인 김장중 동문(수학과 90)과 함께 워드프로세서 '21세기'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유일한 한글용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 1.0'은 멀티태스킹 불가능, 폰트 조절 불가능 등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전 동문과 친구인 김장중 동문은 새로운 한글용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꿈꿨다. 한 번에 다섯 개의 문서까지 켜놓을 수 있게 하려 했다. 하지만 막 시작해 부족했던 코딩 실력과 메모리가 부족한 낮은 컴퓨터 사양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밤낮 독학하며 이들은 끝내 '21세기'라는 이름으로 워드프로세서를 세상에 냈다. 다중 화면, 크기 조절이 용이한 벡터 폰트 등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다. ▲ 지난달 24일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전준희 동문(수학과 90)이 모교 한양대를 방문했다. 강연 전 시간을 내 뉴스H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당시 선두주자였던 아래아한글과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학생일때 창업했지만 전 동문이 창업에 뛰어들었을 땐 이미 건실한 기업이 돼있었다. 게다가 21세기 출시 즈음 나온 아래아한글 2.0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21세기 이상의 기술력을 보였다. 돌파구를 찾던 전 동문과 친구들은 학원가로 눈을 돌렸다. “당시에는 컴퓨터 학원이 급격히 늘어났어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따로 없고 워드프로세서를 썼는데 아래아한글의 가격은 상당했죠. 학원 할인 같은 것도 없었고. 이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전 동문과 그 팀은 저렴한 가격대를 책정해 학원가에 공급하는 방법으로 생존을 꾀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스트소프트(EST 소프트)’,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을 이용해 경제적(Economic) 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라는 의미다. 두번째 창업, 그리고 경영대학원 진학 이후 이스트소프트는 아래아한글과의 경쟁에서 조금씩 밀렸다. 이즈음 이스트소프트 창업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전 동문은 군 문제가 겹쳐 이스트소프트와 헤어졌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1995년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회사를 창업했다. 온라인으로 시험지를 만들고 저장할 수 있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다울소프트’를 만들었다. 이때 나쁘지 않은 성과가 있었지만 전 동문은 “스스로 마케팅, 재무 부분에 있어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전 동문이 경영학을 배우려는 계기가 됐고 우리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동기의 제안으로 게임회사 ‘판타그램’에 합류해 네트워크를 담당했다. 하지만 판타그램은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에 밀렸다. 전 동문은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 눈을 돌렸다. 때마침 투자자를 만났고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말그대로 ‘맨 땅에 헤딩’ “미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요. 투자하기로 하셨던 분께서 돌아가셨죠”.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전 동문은 돌아가는 대신 현지에서 취업을 시도했다. "한국에 있던 아내에게 사정을 말했는데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고 오라'고 했죠. 그때까지 취업을 준비한 적 없었지만 주위에 물어가며 이력서를 쓰고 취업을 준비했어요." 창업은 해봤어도 면접은 본 적 없었다.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부터 큰 회사까지 연락이 오면 가서 면접을 봤지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어요. 면접에서 흰 칠판에 코드를 써보라는데 그래본 적도 없었고. 하지만 준비하다 보니 방향은 잡히더라고요.” 전 동문은 기존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는 노력 끝에 ‘IBEAM Broadcasting’에 입사했고, 그곳에서 인공위성 이용한 ‘분산 인터넷 서비스 설계’분야를 맡아 TV 분야에서의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폴 앨런이 이끄는 ‘Digeo’로 이직해 TV 셋톱박스와 관련된 실험적인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전 동문은 구글 본사로부터 TV 분야의 전문가를 찾는다는 제안이 왔고, 그 기회를 잡았다. 현재 전 동문은 한국 유튜브 플랫폼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엔지니어링 디렉터’ 자리에 있다. ▲ 한양대 스타트업타운에서 지난달 24일 전준희 동문의 강연이 열렸다. 전 동문은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했다. 원동력: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짓지 않기 전 동문은 말한다. “회사에 유명한 임원이 와서 강연할 때, 어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나라면 못할 것 같아’.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안하려고 해요. 처음부터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은 될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생각해버리면 기회조차 오지않아요. 자신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자신이 바랐던 모습의 집합체입니다. 처음부터 바라지 않으면, 처음부터 한계를 정해버리면 절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 전준희 동문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경험을 쌓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라고 말한다. 글/ 김가은 기자 kimgaeun98@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8-05 02

[동문]정치를 재미있게, 촌철살인 정치풍자의 달인

평일 오후 5시, "정치가 재미있어지는 시간". JTBC에서 정치부 회의가 시작한다. 이름처럼 정치 이슈를 여러 기자가 발제하는 회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미니언즈를 닮아 유명한, 재미있는 설명과 촌철살인 풍자로 더 유명한 기자. 국회 반장을 맡은 양원보 동문(정치외교학과 95)이다. 정치부 회의를 막 끝낸 양 동문과 만났다. 한양을 꿈꾸고 한양에서 이루다 “어렸을 때부터 한양대에 오고 싶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끌렸어요.” 양 동문은 성적과 상관없이 우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는 홀로 탐방까지 왔다. “교복 차림으로 와서 사람들이 힐끗 쳐다봤어요. 창피하기도 했지만 3년 뒤 이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벅찼죠.” 양 동문은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에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꿈은 현실이 됐다. 정치외교학과 95학번. 교복을 벗고 한양인이 됐다. ▲ 4월 25일 오후 7시. JTBC 사옥 1층 카페에서 양원보 동문(정치외교학과 95)과 인터뷰했다. 대학공부는 생각과 달랐다. 학문으로서 정치는 양 동문과 맞지 않았다. 이론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정치를 경험할 수 없었다.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길 원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 특별히 정치부 기자. 청와대에서 질문하는 모습, 국회의원을 따라다니며 추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 누가 붙고 누가 떨어질지 모르는 언론사 준비. 예측 불허의 상황이었지만 양 동문의 꿈은 현실이 됐다. "운이 좋았죠." 그렇게 시작한 기자 인생 벌써 13년 차. 양 동문은 기자 생활의 9할을 정치부에서 보냈다. 시작은 신문기자였다. 지난 2005년부터 세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당시 민주당에 출입하며 JTBC와 인연이 닿았다. 출입기자 사이에서 양 동문의 열정은 귀감이 됐다. 중앙일보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직장을 옮겨서도 정치부에 몸담았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때 안철수 후보를 전담 취재했다.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하며 사퇴했다. 양원보 반장이 되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2013년 2월, JTBC 개편과 함께 양 동문의 기자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6년이라는 신문기자 경험을 뒤로하고 JTBC에서 방송기자가 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신문기자와 방송기자의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방송기자에게는 방송PD 같은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장면과 장면 사이를 구성해야 하죠.” 동료들의 도움으로 낯설었던 방송기자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2014년 4월부터 <정치부 회의>에서 국회 반장을 맡고 있다. ▲ 평일 오후 5시에 방송하는 JTBC <정치부 회의> 양원보 동문은 국회반장을 맡고 있다. (출처: JTBC)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생히 전달한다. 양 동문이 발제할 때는 예능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어려운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풀어 설명한다. <정치부 회의>의 시청자가 늘고 있는 이유다. 재능을 살려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위즈덤하우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적인 대결을 한 편의 정치 드라마로 풀었다. "앞으로도 정치 관련 책을 쓸 생각이 있죠." 한편 기자 생활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가 있다. 취재원이 비판 대상으로 변하는 경우다. 취재원이란 기사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자와 취재원은 가까이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관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예전에 취재원이었던 모 전 의원의 문제를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알고 지냈기에 마음에 좀 걸렸죠. 하지만 기자는 연연하면 안됩니다. 저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품위 있는 기자의 조건 지난 2015년 3월 27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제정됐다. 청탁금지법의 대상에는 언론인이 포함돼 있다. 항간에는 기자들이 청탁금지법 도입을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양 동문의 생각은 단호하다. “청탁금지법은 기자들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좋은 법입니다. 대접을 받으면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쉽지 않습니다. 우호적인 기사는 또 다른 대접을 낳습니다. 과연 이렇게 쓰는 기사가 공정할 수 있을까요?” ▲ 양원보 동문은 품위있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출처: 양원보 동문) 양 동문은 저널리즘을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라 말한다. “2016년 10월 24일은 개헌 발의가 있었던 날입니다. 정치부 회의를 마치고 집에서 뉴스룸을 보고 있었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헌 보도가 짧게 끝났습니다. '왜 저걸 짧게 보도하지?' 했는데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입장이 나오지 않았죠. 가슴이 쿵쾅거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습니다.” 다음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 기사가 있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일이 그렇게 시작했다. 기자가 보는 세계는 일반인이 보는 것과 다르다. 권력의 이면을 보며 보이지 않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일 자체가 쉽지는 않다.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자는 뜻깊은 직업이라고 양 동문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한양대 후배들이 언론사에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동문 모임이 있는데 수가 많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꼭 성공해서 기자로 만납시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24 중요기사

[동문]센서로 일상을 트랙킹(tracking)하다

올해 초 의자 전문 브랜드 ‘듀오백’에서 신제품 ‘듀오백온’을 출시했다. 제품은 의자 좌판에 내장된 체압분포센서가 앉은 자세와 시간을 측정한다. 이 센서를 스타트업 기업 ㈜알고리고(algorigo)에서 개발했다. ‘삶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알고리고 대표 차길환(물리학과 99) 동문. 유난히 더웠던 지난 금요일, 신답역에 위치한 알고리고 사무실에서 차 동문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리고, 일상에 집중하다 사람은 많은 시간을 자고, 앉고, 걷는데 소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자고, 앉고, 걷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 알고 나면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차 동문의 질문은 여기서 출발했다. ▲ SK텔레콤 IoT스마트홈에 올라와 있는 스마트 체어 ‘듀오백온’(출처: SK텔레콤 IoT스마트홈 홈페이지 갈무리) 알고리고의 첫 제품은 스마트 체어 듀오백온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가지 활동 중 ‘앉는 것’에 맞춘 아이템이다. 알고리고는 올해 안으로 청소년용과 성인용 출시를 계획하고 있지만 우선 아동용부터 출시했다. 아동용 스마트 체어는 내장된 센서를 통해 어떤 자세로 얼마나 앉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정보는 무선통신 서버를 통해 ‘SK텔레콤 IoT스마트홈’에 전송된다. 가구로서는 최초로 SK플랫폼에 들어갔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로 이용 가능하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혼자 집에 잘 있는지 걱정이 많아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할 때 바른 자세로 앉는지 염려가 크죠. 잘못된 자세는 성장에 좋지 않으니.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스마트폰으로 자녀상태에 대해 알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스마트 체어와 연동되는 SK 스마트홈 어플리케이션. 앉은 자세와 시간을 분석해준다.(출처: 알고리고 홈페이지 갈무리) 알고리고는 다른 의자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위해 ‘스마트 쿠션’도 개발했다. 스마트 체어처럼 어플리케이션으로 알림을 받아볼 수 있으며 올해 하반기 출시예정이다. ‘앉는 것’ 이외에도 ‘자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침대 브랜드와 파트너쉽을 맺어 ‘스마트 슬립케어 시스템’을 제공할 계획도 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서 고가의 장비가 아닌 가구의 센서만으로 원인을 예측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 스마트 쿠션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연동되는 어플리케이션은 앉은 자세와 시간 분석, 그리고 자세에 따른 운동법도 알려준다.(출처: 알고리고 홈페이지 갈무리) 스무 살부터 그려온 스타트업 차 동문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창업의 꿈이 있었다. “창업을 하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지 않아서 저 나름대로 로드맵을 짰죠. 학부 졸업 뒤 대학원 공부, 대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결심덕이었을까,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과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으로 3학기 동안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그는 하와이에서 교환학생신분으로 공부하는 동안 기를 쓰고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대학원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 동문은 미국 UCLA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하고 코닝정밀소재에 입사했다. ▲ 스무 살 때부터 창업을 위한 로드맵을 그려온 차길환(물리학과 99)동문. 하지만 막상 창업시기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포기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당시 산업의 트렌드, 정부의 정책 등이 기술 창업을 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그에게는 창업의 뜻을 모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디자이너가 있었다. 좋은 아이템 때문이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어서 모인 3명은 지난 2015년 6월부터 아이템 발굴 준비를 했다. 두 달간의 준비 후 8월부터 정부창업지원 과제를 수행했고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해 그 해 10월에 법인을 설립했다. 알고리고의 시작이었다. 스무 살부터 이어져 온 경험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학창시절 공부들, 실험적으로 측정하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결과 분석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연구를 수행했던 경험은 창업 이후의 일과도 닮았다. 회사 근무 당시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경험을 쌓은 덕에 스마트 체어 시제품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직접 개발할 수 있었다고. “3년 반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신사업 아이템 발굴 및 기획과 제품을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회사 생활을 통해 창업을 위한 실무적 역량을 키울 수 있었죠.” 팀이 있기에 지금이 있다 지난해 4분기는 차 동문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한꺼번에 힘든 일이 찾아왔다.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은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죠. 사람과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알고리고는 듀오백과 협업으로 제품을 양산하고, SK 텔레콤과 함께 서비스 개발하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업무를 마치기에 인력이 부족했다. 외주 업체는 비협조적이었고 대기업과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마찰도 있었다. 차 동문은 당시 ‘이대로 끝인가’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팀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 기존 팀원들, 새로 합류한 CTO(최고기술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 개발자분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기면 홈페이지에 있는 팀원들 사진을 봐요. 팀원들과 함께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알고리고가 가장 힘들었던 지난해 4분기. 차길환 동문은 회사 팀원들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알고리고는 2015년 설립된 이래 꾸준한 성과를 내왔다. 타기관에서 수상, 정부과제 이행, 제품 양산, 타기업과 파트너쉽 체결, 병역특례업체 등록 등 한걸음씩 계단을 밟고 있다. 알고리고는 성장할 수록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하고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업으로 나아간다. 차 동문은 머지 않은 미래에 각 가정에 적어도 1개 이상의 알고리고 제품과 서비스가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티’ 3회에서 고혜란 앵커(김남주 역)가 자신이 앵커자리에 집착하는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바로 ‘간절함, 절실함, 이게 아니면 안 되는 절박함’ 입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유, 목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차 동문은 창업이 아니면 안 되는 간절함, 절실함, 절박함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력 역시 중요하다. 스타트업을 할 때 자신이 한 분야에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부시절에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충분히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꿈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한양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23

[동문]모든 사람이 농부가 되는 세상을 꿈꾸다

"물이 부족합니다." 내가 기르는 채소가 나에게 말을 건다면 어떨까. 4차 산업혁명에서 주목하고 있는 기술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사람과 사물 또는 사물과 사물이 인터넷으로 통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물들이 인간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IoT)을 농업 분야로 가져온 스타트업이 있다. 스타트업 ‘엔씽’은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텃밭을 구축해 스마트폰으로 40피트의 농장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팜(Smart Farm) 시대를 열었다. 잘나가는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가 되기까지 엔씽(n.thing)은 사물인터넷(IoT)기술을 기반으로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2014년에 시작해 현재 국내외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엔씽의 대표 김혜연(전자통신공학 04) 동문은 학창시절부터 막연하게 창업을 꿈꿔왔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 가게 홈페이지를 제작하며 용돈 벌이를 했을 정도로 그의 학창시절은 남달랐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밴드동아리, 연예인 매니저, 트렌드 리포트 작성, 영국 어학연수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특히 SK텔레콤에서 트렌드 보고서를 작성을 도우면서 미래 트렌드에 관한 전반적인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미래를 주도할지 미리 볼 수 있었어요. 2008년도 당시에 이미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논의하고 있었죠.” 이후 농자재 회사를 운영하시는 외삼촌의 사업을 돕기도 했다. 김 동문은 그곳에서 ‘스마트 농장’이라는 사업아이템을 얻게 됐다. 창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외삼촌의 회사를 나온 김 동문은 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농장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 연락이 닿아 위촉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사물인터넷(IoT) 관련 플랫폼을 만들고 연구원이 보유한 각종 기술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었다. 김 동문은 이곳에서 사물인터넷(IoT)에 대한 경험을 쌓고 발전시켜 지금의 엔씽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 엔씽의 대표 김혜연(전자통신공학부 04) 동문을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엔씽(n.thing); 수많은 분야(n개)에 도전한다 엔씽은 모든 사람이 농부가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IT기술을 이용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러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처음은 작은 스마트 화분 ‘플랜티’로 시작을 했다. 플랜티는 통신 모듈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화분을 제어할 수 있다. 식물의 주변 환경을 센서가 인지하고, 원격으로 급수가 가능해 사람이 직접 손댈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작은 화분에서 조금씩 크기를 늘리기 시작했다. 재배형 화분인 ‘플랜티스퀘어’를 거쳐 현재 컨테이너형 스마트 농장 ‘플랜티큐브’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농장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엔씽은 궁극적으로 농업 시스템 구조를 바꾸고자 한다. 한국은 여름에 덥고 습해 병충해가 많아 대부분의 농가에서 농약 사용은 불가피했다. 또한 농작물선택부터 판매까지 농부 한 사람이 관리하기에 벅찬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스마트 팜(Smart Farm)을 통해 식물 성장에 필요한 환경을 농장이 스스로 조절하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스마트폰 하나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생태계. 앤씽이 나아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 엔씽에서 판매 중인 스마트 화분 ‘플랜티스퀘어’. 주방에서 손쉽게 친환경 바질을 키워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출처: 엔씽 홈페이지) 김 동문은 엔씽을 미디어 회사라 칭한다. “상추를 키우는 것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과 관련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농업이 일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갈수록 감소하는 농업인력과 앞으로의 식량난 문제에 엔씽이 만드는 새로운 농업생태계는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실제로 현재 국내외에서 전폭적인 투자와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최종목표는 화성에 농장을 짓는 겁니다.”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에게 김 동문은 절대 섣불리 창업하지 말라 한다. “대학생들에게 함부로 창업하라 하고 싶지 않죠. 모든 위험을 안고 기업의 앞길을 선택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김 동문도 사업 초기에 막중한 책임감과 불안감을 겪었기에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창업을 바라본다. 김 동문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창업에서는 이러한 불안감을 이겨내고 첫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또한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동문은 이를 위해 대학에서 전공수업 외에 조별과제가 많은 교양수업을 일부러 듣기도 했다고. 경영, 디자인, 광고, 컴퓨터 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과제를 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현재 기업을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 동문은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인생은 골프와도 같아요. 일단 샷을 날려 공을 그린 위에 올려 둬야 홀을 향해 방향과 전략을 잡을 수 있죠. 일단 공을 세게 쳐봐야 아는 거예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라는 말 속에 다양한 도전이 만든 김 동문의 현재가 담겨있었다. ▲ “새로운 분야를 시도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가지지 마세요” 김혜연 동문은 대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이겨내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글/ 황유진 기자 lizbeth12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4 12 중요기사

[동문]네덜란드의 무사가 되어 한국에 알리다

박물관은 영어로 ‘Museum’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고, 여신 뮤즈(Muse)의 신전을 뜻한다. 시, 음악 등 아홉 가지의 학예에 능한 예술의 여신, 한양대에도 이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이 그 주인공.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낸 그는, 박물관과 사랑에 빠져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쌓은 피아노의 추억 김수현 동문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은 어린 시절을 피아노와 함께 보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한 살 터울이었던 여동생은 금세 따라치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늘 곁에 두고 놀았습니다.” 이후 동생과 김 동문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때론 친구가, 때론 경쟁자가 되곤 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제겐 피아노 콩쿨이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 영향이 입시에도 미쳐 동생보다 늦게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어요.” ▲ 2013년 백남음악관에서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이 함께한 피아노 듀오 연주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김 동문은 한양대학교에서 꿈꿔왔던 대학 생활을 이뤘다. “한양대학교는 당시 타 대학과는 다르게, 공연 기회의 확대, 편의시설 확충 등 음악대학에 대한 투자가 남달랐어요. 덕분에 한양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를 열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수업을 듣고, 고향에서 첫 공연을 여는 등 김 동문의 생활은 활기찼다. 특히 김 동문은 이대욱 교수(피아노과)와 함께했던 음악 공부를 가장 뜻깊은 시간으로 꼽았다. “지속적인 연주 활동을 하셨던 교수님을 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음악이 주는 무한한 감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떠나다 김수현 동문은 학부생 때 ‘서양 음악사’, ‘낭만주의음악 연구’ 등 학문적인 분야의 수업을 듣고 학문 쪽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보다 연필을 잡고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좋았습니다. 때마침 찾아온 교직 이수를 병행하면서 교육학을 공부했어요.” 교사로서의 경험이 김 동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 그는 교단에 올라섰다. 하지만 졸업 후 유럽여행의 여운은 김 동문에게 네덜란드를 추억하게 했고, 결국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됐다. ▲ 2017년 6월 네덜란드 출국 전,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의 학교 마지막 근무 날.(출처: 김수현 동문) “홀로 갔던 3주간의 유럽여행은 꿈만 같았어요. ‘모나리자’를 비롯해 ‘키스’ 같은 명화를 직접 보고,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저 또한 넋을 놓았죠. 그때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김 동문은 국민의 80%가 영어를 사용하고, 지리적으로 여행하기 편리한 나라 네덜란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해 네덜란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작품에 대한 공부 후 언제든 박물관을 찾는다는 김 동문의 삶은 어느새 미술로 바뀌어 있었다. 미술과 네덜란드에 사랑을 느끼다 김 동문은 “미술 작품은 힘이 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미술도, 역사도 공부하지 않은 제가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생애를 알아본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죠.” 그는 작품의 힘과 음악을 접목했다. “음악 작품은 귀로, 미술작품은 눈을 통해 감상하죠. 이 상반되는 특성을 하나로 합쳐 작품을 감상할 때 더욱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를 조사하다 보면, 비슷한 시대의 음악가들과 연관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모두 예술을 즐기는 나라에서 김 동문은 많은 사람에게 네덜란드를 알리고 싶었다. 이는 경남일보에 박물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게 이끌었고, 수차례의 노력 끝에 나온 원고는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현재 김 동문은 외교부 해외정보센터 네덜란드 통신원으로서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박물관에 쏟았던 저의 큰 노력과 지식을 쉽게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공부는 제 삶을 더욱 풍요롭고 빛나게 하지만, 나눌수록 더 빛나기 때문이죠.” (경남일보 기사 확인하기 / 네덜란드 정보 확인하기) ▲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방문 후 김수현 동문의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따듯한 마음, 오래 간직하시길 김수현 동문의 최종 목표는 예술과 대중이 한층 가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음악과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구상 중입니다. 또, 네덜란드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반고흐 미술관, 레이크스 박물관에 대한 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내년 박물관학과 진학을 목표하는 김 동문은 “글을 계속 써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 키워온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김 동문, 예술에 대한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8-04 11

[동문]‘진보’라는 단어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요

본명보다 예명 진보(JINBO)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있다. 방 한켠에 ‘진보주의’, ‘미래주의’, ‘낙관주의’, ‘낭만주의’,’ 국제주의’를 걸어놓은 한주현 동문(경제금융학부 01)이 그 주인공. 흑인음악부터 K-POP까지 폭넓게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교내에선 문화 비즈니스 각계의 인사가 매주 나오는 옴니버스 강의 ‘문화비즈니스리더십’ 강연자로도 활동한다. 2015년 2학기부터 강연자로 나오고 있다. 한 동문을 만나 그의 독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하는 집에서 키운 꿈 “어렸을 때 베란다에 살았어요. 제 방은 없었지만 음악 방은 있었죠.” 한 동문은 음악이 끊이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께서는 지휘, 오르간, 성악 등을 하시는 만능 음악인이셨다. 위로는 형이 2명 있었다. 형들은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밴드를 했었다. 음악 방에서는 다양한 노래를 접할 수 있었다. “큰 형은 엘비스 프레슬리(Presley)와 비틀스(The Beatles)와 같은 고전적인 음악을, 작은 형은 너바나(Nirvanan)와 지미 헨드릭스(Hendrix)와 같은 자유로운 음악을 틀어줬습니다.” ▲ 한주현 동문(경제금융학부 01)에게 음악이란 잘 구사할 수 있는 언어다. (출처 : 한주현 동문) 음악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됐다. 큰 형이 틀어준 바비 브라운(Brown)의 노래들, 특히 엠씨 해머(MC Hammer)의 ‘U can’t touch this’를 들으며 음악적 방향을 잡았다. 음악 방에서는 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의 노래를 들으며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주 장르로 삼았다. 집에서 탄생한 음악적 감각을 학교에서도 크게 발휘했다. “수학여행에 갔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로 공연을 했어요. 그때 제가 안무를 직접 하기도 했어요. 공연하는 것이 저에게 잘 맞더라고요.” 한 동문은 음악가로 한 걸음 다가갔다. 한편 멋지기로는 과학자가 제일이라 생각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잘하기는 쉽지 않았다. “과학자가 되지 못할 바에 제가 가진 장점을 살리며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아티스트였습니다. 우아하기도 하고요.” 한 동문은 퍼렐 윌리엄스(Williams)를 보며 꿈을 키웠다.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악기를 귀신처럼 다루는 사람도 아니고, 랩을 엄청 잘하는 사람도 아녔지만 아티스트로서 겁 없이 일하는 것을 보며 저도 저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보적인 음악가 한 동문의 방. ‘진보주의’, ‘미래주의’, ‘낙관주의’, ‘낭만주의’,’ 국제주의’ 벽에 적혀있는 단어들이다. 삶에 대한 신념이다. 음악가로서의 신념과도 일치한다. “항상 지향하며 살고 있어요. 아직은 음악에 이 중 한두 가지밖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 녹여낸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동문의 신념은 음악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한 동문은 서로 다른 장르를 어떻게 더 창의적으로 조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장르를 찾으려고 했어요. 국경이 무의미해진 지금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르들을 조합해 저만의 장르를 창조해야죠.” 지금도 한 동문은 다른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하며 장르 간 융합을 꾀하고 있다. 일전에는 일본의 유명 레이블인 재지 스포트(Jazzy Sport)에 소속되어 있는 개이글(GAGLE)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 한주현 동문은 퀀시 존스(Jones)처럼 죽기 전까지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출처 : 한주현 동문) 한 동문은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을 작업했다. 빈지노의 ‘Aqua Man’에서 작곡, 편곡으로 참여했다. 흑인음악에 국한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BTS)의 ‘여기봐’에 작사, 작곡, 편곡으로, ‘Pied Piper’에는 작사, 작곡으로 참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작곡, 작사로 레드벨벳의 ‘봐 (Look)’에 참여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협업하고 싶다고 한다. 특히 10대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원한다. “세대마다 향유하는 문화가 다릅니다. 10대는 저에게 미지의 세대이죠. 어린 친구들과 작업을 하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간다’. 진보의 사전적 정의다. 많은 사람은 진보를 정치적인 단어로 떠올린다. 주변에서 예명을 진보(Jinbo)로 지은 이유를 물어본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도 상단에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적으로 노력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진보’라는 단어를 등에 업고 음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죠. ‘진보’라는 단어를 듣고 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큰 아이콘이 되고 싶습니다.” "실전으로 빠르게 나오세요" ▲ 한주현 동문은 새로운 곡을 작업하고 있다. 5월 전시회를 통해 결과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 한주현 동문) 한 동문은 경제금융학부 출신이다. 현재 직업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전공 선택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고, 대학에서도 음악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견문을 넓히길 바라셨는지 반대하셨죠.” 흡수가 굉장히 빨라서 공부에 흥미를 쉽게 붙였다. “뭐든지 즐겁게 합니다. 시도할 때 항상 재미있게 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여러 가지를 폭넓은 경험을 했고 경험들은 그에게 음악적 자양분이 됐다. “공부만 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 아닙니다. 후배들을 보면 정말 똑똑합니다.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자신과 비슷한 비전을 가진 사람을 찾아봤으면 해요. 지식 습득도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동문은 빠르게 실전 경험을 쌓아봤으면 한다. 배운 지식을 통해 실전서 쌓은 경험물이 크다고 생각해서다. "음악이 아녀도 제 세계관이나 뜻과 맞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같이 경험을 쌓아봅시다." 글/ 유승현 기자 dbmdgus9543@hanyang.ac.kr

2018-03 28

[동문]산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지난 3월 18일,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회식을 끝으로 대한민국 두 번째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가리왕산은 이번 동계 올림픽의 스키 활강 경기장으로 지정됐다. 스키 활강 경기장에서의 일정은 단 3일. 그 3일을 위해 가리왕산은 나무 12만 그루를 잃었다.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은 그 아픈 참상을 카메라 속에 담아 사진 영상전을 꾸렸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그의 세 번째 전시는 지난 3월 28일부터 약 넉 달 간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공학도 그리고 시작한 2회차 사진작가의 길 조 동문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 10년, 개인 사업 10년 내내 사진과 관련된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 때 대학미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진가다. “대학교 시절에 사진 동아리 ‘하이포’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강의실보다 동아리 방에 있던 시간이 길었죠.” 그랬던 조 동문은 회사에 다니고 경영일을 하느라 사진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한동안은 잊고 지냈다. ▲지난 3월 21일 조명환 동문(전자공학과 75)을 조 동문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조 동문은 사진작가로의 전업을 지천명에 찾아온 인생의 반환점이라 말한다. 인생의 반환점은 04년, 50살이 되던 해 조 동문에게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백두산으로 여름휴가를 갔어요. 거기서 만난 지인께서 백두대간을 오르자고 했죠. 그렇게 백두대간 산악회를 시작하면서 일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오직 산만 생각났습니다. 인생이 바뀌어 버렸죠.” 사진을 업으로 삼은 건 그 후의 일이다. 산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결국 ‘지천명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정리했다. 어느덧 사진 경력 14년, 조 동문은 자신이 노력형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공부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가요.” 퇴사 후 사진 보정 작업을 위해 포토샵을 독학했고 책을 내기 위해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도 만들었다. 그동안 산을 타면서 허리, 무릎을 다쳐 수술도 했고 오른쪽 인대도 늘어나는 등 몸도 많이 상했지만,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대로다. “산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산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야 산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요.” 그가 렌즈 속에 산을 담는 방식 '생것‘은 조 동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단어다. “백두대간을 오르는데, 처음엔 산길 폭이 좁았어요. 근데 매번 갈 때마다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길이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게 싫더라고요. 이전의 ’생것들을 그대로 남겨놓자‘해서, 그때부터 그 말을 쓰게 됐습니다.” 그의 사진에 사람이나 인공물은 없다. 이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 ‘생것’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다. ▲조명환 동문이 출판한 사진집 중 일부. 모두 그의 1인 출판사 ‘생것미디어’에서 발간했다. 그가 사진을 찍는 방식은 다른 사진작가들과 차이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산을 많이 찾는다. 그리고 대개 해가 잘 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조 동문은 다르다. 그 시간에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오히려 날씨가 쾌청하면 카메라를 접어요. 사람들이 찍는 것처럼 똑같이 찍는다면 건질 게 없습니다.” 그는 주로 비나 눈이 올 때, 새벽이나 밤에 산에 오른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진이란 창조적인 것입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매번 찍어봐야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곧 예술의 본질이죠.” 한국의 정체성을 찍고 싶어요 조 동문은 산과 자연환경을 주로 찍다 보니 환경운동단체와 같이 활동하곤 한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산과 자연이 자신과 동화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벌목을 하거나 환경을 해치면 내가 아픈 거죠.” 가리왕산도 같은 사례다. 그가 가리왕산을 처음 찾은 것은 2006년. 그 뒤로 평창 올림픽에 지정됐다고 해서 ‘욱’하는 마음에 다시 가게 됐다고. “가서 사진도 열심히 찍고 책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올림픽은 시작 됐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파괴된 산의 모습을 넣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 소식을 들은 신문사가 그에게 취재요청을 했고, 조 동문의 인터뷰 기사를 본 곳에서 전시할 수 있게 갤러리를 내줬다. 경제적 요건 때문에 전시를 망설이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산 본래의 모습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매 촬영 산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 번 밖에서 200장에서 300장을 찍어오면 컴퓨터로 3일 정도 작업을 합니다. 그러다 보정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면 혼자 일어나서 하나 건졌다는 생각에 기뻐해요.” 조 동문은 우리나라 산에 한국의 정체성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 한국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마지막 한 장.” 그는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늘도 산에서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리왕산을 주제로 한 조명환 동문의 세 번째 전시가 3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특별시청 소리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슬라이드 영상 형식으로 구성된다. (출처: 조명환 동문)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3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