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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25

[동문][희망, 100℃]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교육입니다

창업지원단 발전기금과 총장전략기금으로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했지만, 그는 ‘남을 돕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기부를 ‘사회적 투자’로 정의하는 유현오 단장은 이번 기부는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고 한다. 창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자신과 같은 창업 성공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고, 제2, 제3의 젊은 유현오가 나와 다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기부는 그러한 선순환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장 유현오(97 섬유공학(院)) 동문 자신에게 정의를 외쳐라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다는 유현오 단장은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길 당부한다. 자신을 향한 정의는 무엇일까?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자신의 인생을 어른들이 결정해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흔한 모습이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었다면 이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실패를 빨리 경험하고 강한 젊음을 만드는 과정을 몸소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자리가 날 때가 있죠. 거기에 누가 앉느냐? 바로 노약자들이죠. 건강한 사람들은 보통 서서 갑니다.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만 찾는 세태는 위험합니다. 중소 벤처기업에 가서 회사를 키우고 나아가 자신의 회사를 일구는 도전의식이 없다면 나라도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건강한 창업 풍토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양대학교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외치지만, 그 혁명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을까? 한양대처럼 오픈된 플랫폼을 완비하고 있지 않다면 4차 산업혁명도 결국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 유현오 동문은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세요.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세요." 라고 말한다 교육은 가장 수익이 높은 투자 유현오 단장이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그 플랫폼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막상 창업지원단에 부임해 보니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기부를 해서라도 창업지원단을 구글 캠퍼스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오피스 인테리어부터 경직된 이미지를 버리고 구성원들이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창업지원단의 빅 픽처(Big Picture)는 유 단장의 비즈니스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 일명 ‘하유미팩’이라 불렸던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생산·판매하는 ‘제닉’을 창업하고 매각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비즈니스의 우여곡절은 그 자체로 성공 케이스이다.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5년 간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죠. 제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게 된 후, 교회 내의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멘토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전해서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포럼이 되었고, 이 포럼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2013년에는 창업자가 닮고 싶은 롤 모델 1위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이번에 한양대로 오게 된 것도 그때 느꼈던 보람과 류창완 전임 글로벌기업가센터장님의 ‘너 같은 사람 하나 더 만들어 보자’라는 독려가 컸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가치 있는 일 평균수명이 100세 이상이 되면서 퇴직 이후의 인생 2막이 그만큼 길어졌다. 퇴직 이후에도 이젠 창업은 필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미리 공부하자는 게 유 단장의 조언이다. 스스로가 한양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고, 졸업 후 창업을 했던 까닭에 학교에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의 공부가 실제 창업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실효성 있는 과정이 되려면, 커리큘럼과 인적자원, 하드웨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의 기부금이 쓰일 것이다. 유 단장은 본인이 ‘성공한 창업자’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린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자신의 성공을 알리지 않는 반면, 사업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들은 너무 흔하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창업을 두려워할 수밖에…. 그래서 더욱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널리 알려서, 사업을 하면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위인처럼 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유현오 단장은 ‘창업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그 가치 있는 일에 어렵게 번 돈을 쓰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한정화 경영대학 교수가 본인에게 학교로 올 것을 권유하며 했던 말처럼, ‘훗날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께 그냥 놀다 왔다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이 그가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17 중요기사

[동문]TAKE #삶, 부끄럽지 않을 인생을 연기하는 남자

“이제 더 이상 나쁜 마음 안 먹고 아빠 노릇 제대로 하겠다." “전하께는 수백 궁녀 중에 하나지만 나한테 너는 이 세상 전부라고!” “네가 그딴 짓을 했어도 넌 나에게 첫사랑이었어.” 한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 속에서 직접 읊은 대사들이다. 때로는 동네의 음험한 불량배로 변신했다가도 어느샌가 가족을 챙기는 훈훈한 가장이 돼 있다. 시청자들이 익숙해질 새도 없이 새로운 배역을 찾아 나선다. 연기자 최대철 동문(무용학과 97)의 이야기다. 장마가 잠깐 그친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최 동문을 만났다. 버티는 사람이 기회를 마주한다 비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얼굴을 내민 시간, 최대철 동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카페로 들어왔다. 2002년 무용가 첫 데뷔에 이어, 같은 해 연극배우로 데뷔한 최대철 동문은 2005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출발점으로 공연 15편, 드라마 23편, 영화 2편에 출연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은 최 동문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고 <우리 갑순이>는 수많은 시청자의 사랑 속에 ‘아줌마들의 박보검’이라는 별명을 선사해준 작품이다. 비단 두 작품만이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 진심을 담아 연기해온 그다. “그동안 부담되는 연기는 없었어요.” 최 동문은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대본을 받고, 분석하고, 연기하는 게 배우가 할 일이잖아요. ‘아, 내가 이걸 어떻게 자유롭게 표현해볼까’ 이런 고민은 해보죠. 그래도 저처럼 가리지 않고 해보는 배우한테는 고민할 게 있나요. 일단 하는 거죠.” 물론 출연이 잦아질수록 몸은 바빠진다. 배우가 생업이라지만, 같은 또래 배우보다 거의 두 배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웃음).” 최대철 동문은 “버티다 보니 기회도 오고, 시청자도 좋아해 주는 날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최대철(무용학과 97) 동문은 최근 드라마 업계에서 시청률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명품 배우다. (출처: 최대철 동문) 최 동문은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맡은 배역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이렇게 배우 생활 15년 동안, 한 해도 빼먹지 않고 작품활동에 몸을 던진 이유 중 하나는 1991년 영화 <가위손>에서 조니 뎁이 보여준 열연 때문이었다. “옛날 영화 중에 <가위손>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조니 뎁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게 사람인지, 인형인지 헷갈렸어요. ‘와,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느꼈죠. 그때부터 배우를 꿈꿨어요. 1991년, 그때부터였네요.” 물론 꿈 하나만 가지고 뛰어든 것은 아니다. 데뷔 이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느낀 책임감은 최 동문이 작품활동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계기가 됐다. “(무명시절의 어려움을) 모두 이야기하기엔 힘들죠. 쉽게 이야기하자면, 결혼하고 아이 둘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 연극하며 살기엔 대한민국은 어려운 나라예요.” 하지만 최대철 동문은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본인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명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무명 시절을 겪은 배우들이 가장 오래가는 배우들이에요.” ‘연기자’ 최대철의 탄생 주변 사람의 조언이건, 악당과의 만남이든 모든 영웅의 탄생에는 비화가 있기 마련이다. 2017년 현재, 드라마 시청률의 ’영웅’이 된 최대철 동문에게도 그만의 탄생 비화가 있다. 최 동문이 처음부터 연기에 몸을 담은 건 아니었다. 한때 그는 2002년 '대구 신인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따낼 만큼 전도유망한 무용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행한 사고가 터졌다. “무용과를 졸업했지만, 중간에 무용하다가 팔을 다쳤어요. 결국 콩쿠르에 입상하지 못했죠. 그 길로 ‘무용은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몸을 담았어요.” 무용이 아닌 다른 길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막막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뮤지컬에 맨몸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최대철 동문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무작정 뮤지컬 하러 가서 현장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매일 선배들 하는 거 보고 배웠고요. '목젖은 어떻게 내려요?, 연기는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며 막 배웠죠.” 그렇게 뮤지컬 8년, 연기 10년이란 세월 동안 악착같이 매달렸다는 최대철 동문이다. ▲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조금식 역을 맡아 중년의 그윽한 로맨스를 연기한 최대철 동문 (출처: 우리 갑순이, 2016) 조금씩이었지만, 진전이 있었다. 꾸준히 매달리다 보니 앙상블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주조연, 주조연에서 주연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무용을 배울 때 몸에 익혀 두었던 춤 역시 그가 뮤지컬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물어보는 게 창피하지 않았죠. 지금에서야 물어보는 건 조금 부끄러운데,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물어보는 사람이) 누가 됐든 간에 당연한 것 같아요.” 꾸준히 연기에 매진한 15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아온 최대철 동문. 혹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을까. “그럴 일은 없어요. 최대철이란 사람은 1명이에요.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따라 하거나 ‘연기 패턴을 그 사람 식으로 해야지’ 하면 헷갈리는데, 저 자신인 최대철이란 사람의 말투와 그 자체로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오히려 감독이나 연출 쪽에서 “야! 그 어느 배우 있잖아, 그 배우처럼 못해?” 그러면 그때부터 헷갈리는 거죠.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있는 그 자체로,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최대철 동문은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한계는 한계일 뿐,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진심으로 표현하는 게 진짜 연기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배우에게 한정된 역할은 없어요. 한정된 연기를 보여주는 순간 사람들은 ‘연기 다 됐다’고 하죠. 한계를 두지 않고 모든 역할에 진정성을 두고 열심히 하는 거죠.” ▲최대철 동문은 올해 개봉하는 <자전차왕 엄복동>에 출연할 예정이다. 자신이 찍는 영화에 또다시 한 씬을 더하는 최 동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출처: 영화 히야 中, 2016) 평점: 후회 없이, 부끄럽지 않게 최대철 동문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한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간의 경력을 쌓으며 마음속으로 새긴 답은 단순하지만 한 번쯤 곱씹어볼 수 있는 말이었다. “저는 지금 내 삶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같아요. 각자가 태어난 삶의 첫 컷이 어머니 뱃속에 태어날 때예요. 그게 필름의 첫 컷이죠. 카메라는 없지만, 자신이 주연도 감독도 하는 거예요. 테이크는 길고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내 인생, 영화 한 편 잘 찍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뒤돌아봤을 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최대철 동문. 그는 인생의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중에 본인이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만큼, 진실하고 거짓말 안 하고 약속 잘 지키고 배려하는 삶. 그렇게 살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그게 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일 거로 생각해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후회와 망설임 없이 다음 작품으로 몸을 던지는 최대철 동문.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채근백 기자 cormsqor12@hanyang.ac.kr

2017-07 11 중요기사

[동문]발레, 그리고 대중화를 꿈꾸다

지난 6월 2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널찍한 차도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에서 독특한 버스킹 공연이 펼쳐졌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십여 명의 무용수가 파란불이 켜질 때마다 달려 나와 발레를 선보인 것. 뮤지컬 <캣츠>의 노래에 맞춘 공연부터 스윙 댄스까지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다음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이 아름다웠던 공연은 우리대학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의 기획으로 진행됐다. 무용수부터 발레단 단장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을 발레와 함께한 김 동문을 만났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다 김길용 동문은 우리대학 무용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 조승미발레단에서 상임 안무가를 지낸 바 있다. 이후 몇 년간 강단에만 서다 와이즈발레단을 창단해 십 년 넘게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로 이뤄진 스완스발레단을 창단했다. 김 동문이 와이즈발레단을 만들 때 세운 원칙은 '초대권을 배포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레와 같은 클래식 공연은 평론가나 교수 등 예술계 사람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남는 좌석이 없기 위해서인데, 이를 과감히 포기했다. “객석이 차는 게 겉보기엔 더 좋아요. 하지만 돈을 주고 보는 관객들이 늘려면 초대권을 뿌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일반 관객에게 초점을 맞추겠다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현재도 정기후원자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초대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은 국립발레단, 조승미발레단을 거쳐 와이즈발레단과 스완스발레단의 단장을 지내고 있다. (출처: 와이즈 발레단)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김 동문은 일반 관객들이 발레를 보러 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와이즈발레단을 처음 만들었을 땐 ‘우리’ 발레단의 인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리뿐만 아니라 발레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핵심이란 걸 깨달았죠.” 그렇게 기획한 것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버스킹 공연이었다. 2011년 홍대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구경한 관객들과 공연한 무용수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무용수들이 낯설어하긴 했어요. ‘발레는 공연장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지 어떻게 길에서 하냐’고 했죠. 하지만 버스킹 특유의 빠른 피드백을 경험하고 나니까 나중엔 서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웃음).” 공연 레퍼토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준비했다. 일반적으로 선보이는 클래식 발레부터 해석이 있는 발레 시리즈, 모던 발레, 콜라보 발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기획했다. 콜라보 발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장르의 춤과 함께하는 발레 무대다. 비보이 크루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 탭댄스 팀 ‘탭꾼 탭댄스 컴퍼니’ 등 그 분야에서 유명한 팀들과 함께 무대를 꾸렸다. “어떤 분야든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즐기는 데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발레도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처음 보는 분들께는 ‘그게 그거 같다’는 선입견이 있죠. 중간중간 다른 장르의 춤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했습니다.” 발레와 뮤지컬을 합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Once upon a time in ballet)부터 클래식 발레 <호두까기 인형>를 재해석한 콜라보 발레까지 김 동문이 만든 레퍼토리는 발레가 낯선 이들에게 진정한 발레의 매력을 선사한다. ▲ 발레에 뮤지컬을 접목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의 한 장면. (출처: 와이즈 발레단) 조승미 교수와의 값진 인연 다양한 시도와 고민 속에 독특한 행보를 보인 김길용 동문. 그가 걸어온 길에는 스승이었던 고(故) 조승미 교수(무용학과)와의 인연이 자리 잡고 있다. 조 교수는 김 동문이 우리대학으로 온 이유이자, 김 동문의 발레 철학을 만들어준 은사다. 김 동문이 기획한 각종 레퍼토리 공연도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조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번은 이런 경험이 있어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제가 멋대로 안무를 수정해서 스승님께 보여드렸죠.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무척 구겨지는 일인데, 스승님은 ‘좋아 네가 만든 안무를 쓰자꾸나!’면서 크레딧에도 ‘안무: 조승미, 김길용’을 나란히 적어주셨어요.” 발레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때 다시 전념할 수 있게 붙잡은 것도 조 교수다. “예술을 하다 보면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내가 천재라기보단 그저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을 때 매우 허망하죠. 국립발레단에 있을 때였는데 무대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때 스승님을 찾아갔죠.” 조 교수는 김 동문에게 조승미 발레단에 오는 것을 권유했다. 국립발레단 3년 차였을 때였습니다. 다음 해인 1996년에 조승미 발레단이 전문 발레단이 될 때부터 8년간 참여했어요.” 발레 본연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선교 발레라는 사명을 띤 조승미 발레단에서 김 동문은 지금의 길을 걸어갈 원동력을 얻었다. “조승미 발레단에서 잊지 못할 무대가 있어요. 저녁 공연이 있던 날이었는데, 스승님께서 3시에 공연을 한 번 더 하자고 하셨어요. 발레 한 번 하면 3kg이 빠질 정도로 힘든데, 두 번 뛰라 하시니 속으로 많이 투덜댔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연이 장애인분들을 위한 초청 공연이었던 거예요. 평생 못 움직여서 공연에도 도움받고 겨우 오셨다는 분이 있었어요. 커튼콜 올라갈 때 객석을 봤는데 손뼉은 못 치셔도 그 눈빛은 볼 수 있잖아요. 그걸 보고 많이 울었어요. 그땐 왜 울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춤을 추는지 느꼈던 순간 같아요.” 단장이 된 현재도 김 동문은 그때처럼 교도소나 장애인 복지 시설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며 보람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스승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이 공연은 어떻게 하셨을까. 이럴 땐 뭐라 조언하셨을까.” 김 동문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조승미 교수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쓸 것 앞으로의 김 동문은 발레 단장으로서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 쓰는 게 목표다. 여태 해왔던 일들을 유지하면서 후배 무용가, 안무가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단원에게 급여를 주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민간발레단은 단원들에게 공연 수당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단원이 발레에 전념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단원의 절반 정도에게만 월급을 주지만, 김 동문은 발레단 수입이 늘 때마다 이를 단원의 월급으로 바꾸고 있다. ▲ 지난 1월 21일 스완스 발레단의 창단식에 와이즈 발레단 단원도 함께 참여해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앞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김길용 동문. (출처: 와이즈 발레단) 또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을 위한 발레단인 ‘스완스 발레단’을 창단했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분들도 무대에 서고 싶으신데, 준비과정이 만만찮아서 엄두를 못 내시죠. 저희는 경험도 많으니까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창단한 스완스 발레단은 지난 1일 창단공연을 무사히 마친 상태다. “이제는 창작보다는 관리자로서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더 힘쓰려 해요. 젊은 안무가들을 찾아 발굴하고 기회를 주는 게 더 좋은 일인 거 같네요. 저보다 실력 좋은 분들이 많아요(웃음).”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07 03 중요기사

[동문]뮤지컬 ‘팬텀’의 디바 김순영, “오페라와 뮤지컬에 성역 두고 싶지 않아요”

2015년 초연부터 2016~2017년 4월의 재연까지,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 있다. 바로 뮤지컬 <팬텀>이다. 연일 1500석의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전국 투어공연까지 성황리에 마무리한 이 작품엔 빼놓을 수 없는 여주인공이 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디바로 성장하는 ‘크리스틴 다에’ 역의 김순영 동문(성악 02)이다. 김 동문은 유일하게 초연부터 재연까지 주역으로서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정통 클래식 외길을 걸어오던 그에게 <팬텀>은 첫 뮤지컬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다. 뮤지컬, 어렵지만 달콤했던 첫발 김순영 동문은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정통 소프라노다. 우리대학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유학 후 귀국해 오페라 <리골레토>,<카르멘>,<루살카>,<라보엠> 등 유수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올해 말엔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그레브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계획돼 있다. 평생 클래식 외길 만을 걸어온 그에게 2015년 <팬텀>의 제작진으로부터 온 러브콜은 소프라노 김순영의 인생 속 전환점이 됐다. “클래식만을 해온 제가 '뮤지컬의 빠른 극 전환과 다양한 연기, 섬세한 감정표현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또 '오페라 무대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고민이 많았죠.” 당시 음악계엔 클래식 가수가 뮤지컬을 하는 것에 대해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계의 오랜 선입견은 김 동문의 <팬텀>출연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건 뮤지컬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에요. <팬텀>을 통해 저를 더 많은 분에게 보여줄 수 있었고, 뮤지컬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니 오페라에서도 더 많은 작품 제안이 들어왔죠. 어려웠던 뮤지컬계의 첫 발은 더 큰 보람이 돼 돌아왔어요(웃음).” ▲ 소프라노 김순영 동문(성악 02)은 인터뷰 전날까지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을 했음에도 지친 기색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리스틴’으로 오른 98번의 무대 김 동문의 예상대로 첫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연 녹록지 않았다.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른 발성을 사용해야 하는 것뿐 아니라 연기와 동작전환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배로 늘었기 때문. “오페라는 연기의 비중이 적고 동작이 정적인 편이라 노래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에 비해 뮤지컬은 노래뿐 아닌 연기 실력도 극의 완성에 큰 영향을 끼치더라고요.” 매일 10시간 이상씩 진행되는 연습 중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날도 많았던 그는, 함께 작품을 준비하는 동료들의 응원과 배려를 통해 ‘크리스틴’의 옷을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초연 50회와 재연 48회의 공연까지 총 98번의 무대에 오른 김 동문은 때론 배역의 슬픈 상황에 깊이 몰입해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야 할 때도 많았다고.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10번쯤 오른 후부턴 ‘내가 진짜 크리스틴이 됐구나’ 생각했어요. 상대역인 ‘팬텀’의 슬픈 마음이 진정으로 이해가 되고 그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고요. 극의 절정에서 그를 다독이는 ‘내 사랑’이란 노래를 부를 땐, 눈물이 정말 많이 났어요.” 한 작품으로 두세번의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오페라와 달리, 수십번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뮤지컬은 그에게 ‘진정으로 배역에 몰입하는 법’을 알게 했다. ▲ 뮤지컬 <팬텀>의 공연 장면. 오페라의 유령 '에릭'이 '크리스틴(김순영 동문)'의 음악선생이 돼 성악교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김순영 동문) 다양한 장르 소화하는 성악가이고 싶어 뮤지컬계에서도 저력을 인정받은 김동문은 오페라와 뮤지컬 두 활동에 성역을 두고 싶지 않다 말한다. 두 장르는 양자택일 할 수 없는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저를 통해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성악가가 많아졌으면 해요. 점점 정통 클래식과 발레, 재즈, 뮤지컬 등이 어우러지는 공연이 많아지고도 있고요. 저도 이에 맞게 내 것만 할 줄 아는 게 아닌 여러 장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 김순영 동문은 내년 중 새로운 뮤지컬로 ‘크리스틴’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색을 더해가는 성악가 김 동문의 앞날을 응원한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6 21

[동문]노래하는 영어교사, 수험생 제자 위한 노래 만들다

“너희 오늘 혼날 일이 있으니 수업 후 강당으로 모여.” 인천 소재의 하늘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김경훈 동문(교육학과 94)의 불호령에 6월 모의평가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이 겁에 질려 강당에 모였다. 선생님이 나타나고 이내 학생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혼나서가 아니었다. 김 동문이 지난 2년 반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낀 감정을 담은 위로곡 '하늘로'를 불러줬기 때문이다. ▲ 하늘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인 김경훈 동문(교육학과 94). 수험생 제자를 위한 자작곡으로 화제가 된 김 동문을 만났다. 이젠 날아라, 하늘로! 지난 5월 19일, 대한민국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곡 하나가 음원 사이트에 발표됐다. 김경훈 동문이 작사, 작곡한 ‘하늘로’다. 이 곡에는 ‘미래를 알 수 없이 그저 달려만 가는 매일이 두렵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네가 넘어진 날들은 결코 헛된 것이 없다’며 답하는 김 동문의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다. “올해 처음 고3 담임을 맡고, 입시 상담도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우는데 너무 안쓰러웠죠. 수험 생활에 작은 즐거움을 주고 싶어 틈틈이 곡을 만들었어요."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 너만의 가치가 있지 너의 한계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조차 없으니 네가 꿈꿔왔던 날들은 수없이 넘어진 날들은 결코 헛된 것이 없단다 이젠 날아라 저 하늘로 - 김경훈 동문의 자작곡 '하늘로' 가사 중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동문을 찾아서 "가사에 공감이 많이 되서 울었다"는 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다. 제자들을 향한 마음이 알려진 덕에 '노래하는 영어 교사'로 언론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쓴 곡인데, 학생들이 곡에서 큰 의미를 찾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 하늘고등학교 영어교사 김경훈 동문이 수험생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 '하늘로' 노래하는 영어교사, 김경훈 김 동문은 12년차 영어교사이자 데뷔 10년차인 가수이다. 2008년부터 직접 만든 CCM 15곡을 발표했고, 2016년부터는 솔로 프로젝트 그룹 ‘어쿠스틱 프로젝트’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 앨범 3장을 발표했다. 작사와 작곡, 보컬까지 혼자서 맡는 그는 가끔 마음이 맞는 아티스트나 노래를 좋아하는 제자들과 함께 녹음하기도 한다. 지난해 발표한 ‘햇살 속의 너’는 여행스케치 출신의 김수현 씨와 불렀고, 현재는 랩에 뛰어난 제자 두 명과 신곡을 준비 중이라고. “어쿠스틱 프로젝트란 이름엔 ‘청각'(Acoustic)과 관련된 모든 시도를 해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단순히 전자 음악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만은 아닌 거죠." 그는 고교 시절 음악 학원을 다니며 처음 작곡을 했을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가수의 꿈을 꾸던 어느 날, <죽은 시인의 사회>란 작품을 접하고 교사의 꿈을 갖게 됐다. 여기에는 여행 작가 겸 국어 교사로 활동했던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그 선생님처럼, 본업으로 교사를 하면서 취미로 음악을 계속하기로 결심했어요." . ▲어쿠스틱 프로젝트란 활동명을 갖고 있는 김경훈 동문이 녹음 중인 모습. (출처: 김경훈 동문) 미래는 두려운 것 아닌 설레는 것 교육 철학을 묻자 김 동문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인생의 종착역은 멀기에 지치지 않고 활기차게 살기를 바란다고. 그런 제자의 곁에서,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하겠다는 김 동문.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기 좋아해요. 세련된 인테리어, 멋진 옷처럼요. 하지만 청각적인 요소를 아름답게 꾸밀 생각은 많이 못 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행복을 주겠다는 그가 있어 제자들은 오늘 한번 더 웃는다. ▲ “원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두려운 것이 아닌 설레는 일이 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글/ 신혜빈 기자 shb2033@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6 12 중요기사

[동문]튜터링, 모바일 영어 학습의 새 지평을 열다

모바일 영어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든 스타트업 ‘튜터링’이 주목 받고 있다. 전화 영어와 유사해 보이나 해외콜센터를 없애 가격을 낮췄고, 온라인으로 어디서든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생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인 튜터링은 우리대학 선후배가 뭉쳐 만든 스타트업이다. 공동대표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과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부 01)이다. 이들 중 최경희 동문을 만나 튜터링의 창업 과정과 계획에 관해 들었다. 대기업 회사원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과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부 01)은 언론정보대학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로, 튜터링의 창업자이자 공동 대표다. 최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줄곧 영어 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스타트업과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창업을 권유한 것이 김미희 동문이다. 김 동문은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창업을 준비했다. KAIST 경영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며 경영 지식을 쌓았고, 퇴사 전 5년 동안 틈틈히 사업 계획을 세웠다. 최 동문은 꼼꼼하기로 소문난 그의 성격을 알기에 창업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백업 플랜을 두지 않고 모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훌륭한 창업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직장인이라면 갖춰야 할 소양이나 위기 관리 능력은 스타트업에도 필요하고요." 한편 UX기획 전문가인 김 동문은 교육 분야의 전문가인 최 동문의 역량이 필요했다. 이처럼 두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살려 만든 것이 모바일 영어 교육 플랫폼 튜터링이다. "10년 이상 오프라인 교육 시장에 있었지만, 모바일에 대한 이해 없이 교육 사업을 했다면 망했을 거예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런 점에서 저희 둘이 만나 창업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교육과 기술 분야의 지식이 시너지 효과를 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는 최 동문. 튜터링을 시작하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말하는 그다. ▲ 튜터링의 대표 최경희 동문(신문방송학과 99). 그는 김미희 동문(광고홍보학고 01)과 함께 지난해 모바일 영어교육 플랫폼 '튜터링'을 세웠다. 수강생의 필요에 맞춘 최적의 서비스 튜터링은 지난해 법인을 설립, 6개월 후에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네이버, SBS 등을 포함해 12개 기업과 제휴를 맺으며 주목 받고 있는 튜터링은 지난 가을 출시 이후 5만 5천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다. 사용자는 외국인 튜터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원하는 튜터와 주제, 시간 등을 자유롭게 선택 가능하다. 튜터링은 교육 방식과 노하우가 포화 상태를 이루는 영어 교육 시장에서 해외 지사를 없애고 온라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튜터링의 광고.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주제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어학 공부가 가능하단 것이 튜터링의 장점이다. (출터: 튜터링) 두 대표는 튜터링을 통해 기존 영어 교육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다. 학원의 경우 정해진 수강 시간에 학습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전화 영어의 경우 일상적인 대화 이상으로 깊이 있는 공부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대학 입학 후 직장 생활을 하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해봤죠. 소비자로서 느낀 교육 방식의 장단점을 보완하고자 했어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게요."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튜터링은 학습 의지만 있다면 시간과 공간에 상관 없이 심도 있는 학습이 가능하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 비즈니스 상황이나 면접 등 다양한 상황을 골라 연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 동문은 영어가 아닌 언어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중국어, 한국어를 비롯하여 더 넓은 어학시장에 튜터링을 접목시킬 생각입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한양인에게 최 동문은 창업을 말리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창업만 하면 기업이 알아서 굴러갈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학생들이 창업의 위험성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이 뛰어나면 창업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창업은 조직 관리, 세무, 법률, 인사 등을 다 관리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회초년생의 경우 그럴 만한 경험이 부족하니, 먼저 창업 기업에서 일해보기를 권해요." 최 대표는 도전에 따르는 책임을 알아야 도전이 더 가치를 지닌다고 조언했다. ▲ 튜터링 대표 최경희 동문은 한양인에게 "무턱대고 창업하기 보다 기업에서 먼저 일해보라"고 조언했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5 16 중요기사

[동문]학생들과 가까운 멋쟁이 수학 선생님! (1)

한양대는 사범대학 및 교직 이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학생들을 교직으로 배출하고 있다. 학창시절 하늘과 같은 존재였던 선생님이 알고보면 주변의 선배, 동기, 후배인 셈. 선생님들의 학창 시절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졸업 후 미래 걱정도 하고, 대책없이 놀기도 하고, 대학로 곳곳을 다니며 풋풋한 연애도 했을 것. EBS 고교 수학 강사이자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을 만나 교단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에서 EBS 인강을 맡기까지 남치열 동문은 중학교 5년, 고등학교 7년 근무의 12년차 수학 교사다. 지난해부터는 EBS인터넷강의를 통해 수리논술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내신 수학, 수능 수학영역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고등학교에 발령받고 수학 재능기부 동아리를 만들고, 1년 간의 수리논술 수업 연구 후 2년차부터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제가 근무하는 파주는 농어촌지역이라 논술 학원이 그 당시 한 군데도 없었어요. 제가 책임지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네이버 카페 ‘치열한 수리논술’을 만들어서 강의 자료도 핸드폰으로 찍어 올리고, 1년동안 시중에 나와있는 교재와 인강으로 열심히 연구했죠.” 그러다 작년에 학교로 EBS 강사를 뽑는 공문이 내려왔다. ”제가 수리논술 가르치는 게 자신있으니까, 파주 외에도 저기 섬에 살고 있어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EBS 강사 면접은 1차로 서류전형 및 핸드폰으로 촬영한 10분 남짓의 강의 시연, 2차로 강남 매봉역 EBS 본사에서 카메라 테스트, 3차로 최종 면접을 통해 진행됐다. ‘치열한’ 면접 과정을 거쳐 지금의 EBS 인강 강사가 됐다. ▲ EBS 수학 강사이자 파주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남치열 동문(수학과 98) '학고'로 시작해 과 수석으로 졸업하기까지 학창시절 남 동문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고 홈쇼핑 호스트와 아나운서를 꿈꿨던 학생이다. 학부 시절에는 0.38의 학점으로 '학사 경고'를 받기도 했다. “스무 살엔 정말 개구쟁이였어요. 가방에 선글라스, 영자신문, 수건, 체육복을 넣고 11시에 농구장으로 등교했죠. 네다섯 시간동안 농구를 하고, 샤워한 뒤에 방과 후엔 동기들과 당구장도 가고, 미팅도 했어요. 한 과목 C 빼고 모든 과목이 F로 0.38 학점을 받았어요.” 처음엔 재밌었지만 1년을 그렇게 지내니 ‘내가 인생을 너무 망치는 건 아닌가’ 싶었던 남 동문. 군대에 다녀온 후 1년동안 휴학을 하는 동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고.“동대문 시장 문구점에서 2달동안 12시간씩 최저임금으로 일해도 보고, 편의점 알바도 해보고, 은행에서 가스총 차고 보안경찰도 6개월간 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살기엔 아깝지 않나’ 반문하게 됐어요. IMF가 터지면서 좀더 안정적인 직업을 생각하게 됐기도 했고요.” 남 동문은 수학과로 전과해 임용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교사라는 꿈이 생기자 열정에 불이 붙었다. 2학년에 무턱대고 임용고시를 보고, 임용고시 수학 단과 학원에 들어갔다. “하루는 선생님이 과제를 주시고, 광화문 카페에서 보강을 하겠다고 했는데, 같이 수업 듣는 4학년 선배들은 아무도 없고 저만 온 거예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대학 후배들을 가르치는 스터디에 불렀어요. 학원비 낼 필요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 봐주겠다면서요." 남 동문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 독서실에서 매일 11시간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7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고 임용에 성공했다. ▲ 남치열 동문은 현재 EBS에서 인기리에 활동 중인 수학 강사다.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 남 동문의 메신저 소개말에는 ‘세계 최고의 수학교사가 되자’는 목표가 있었다. 그런 그의 목표는 EBS 강의를 계속 진행하며 역량을 쌓는 일이다. “대학생 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다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설령 재수, 삼수로 1,2년 늦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하고싶어도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모험과 시도를 좋아한다는 남 동문에겐 인터넷 강의도 하나의 도전이다. "젊음이 유지되는 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서 정년에 가까워지면 교육 봉사를 하려고 해요.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아이들에게 무료 교육봉사를 하고 싶고, 수학 외에 다른 재능이 있다면 문화센터, 주민자치센터에서 무료봉사로 강연활동도 하고 싶어요.” ▲ '세계 최고의 수학 선생님이 되자'가 좌우명인 남치열 동문은 끝까지 교육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글/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5 12

[동문][한양피플] 친구에서 부부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부부는 한양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여느 청춘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웃고 공부하고 사랑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가정을 꾸려 올해로 25년이 됐다. 어느덧 아이가 자라 부모의 추억이 담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청춘을 그려가고 있다. 부부이자 동문이고 선배이자 후배인 최종호·성주은 부부와 딸 최정윤 학생의 이야기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최종호·성주은(철학과 86) 동문 부부 30년의 시간을 건너 캠퍼스 커플이었던 최종호·성주은 부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었다. 30년 전, 재학 시절의 한양대는 부부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최종호 씨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교내 중창단 동아리 ‘징검다리’다. 동아리방이 없어 강의실을 전전하며 연습하던 그 시절이 그에겐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징검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한양대에 대한 자긍심도 상당하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징검다리가 일정 부분 학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도 누구보다 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죠.” 성주은 씨는 가파른 진사로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바로 이어지지만, 저희 때는 등교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가파른 진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뒤에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인문대가 나왔어요. 강의가 없거나 쉬는 시간이면 인문대 화단 앞에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놀았죠. 그곳이 만남의 장소였어요. 남편도 그 자리에서 자주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2대를 이어준 한양 1992년에 부부가 된 이들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아이 둘을 낳았다. 부모의 바람이었는지 혹은 영향이었는지 딸 최정윤 학생이 지난 2014년에 한양대에 입학했다. 딸의 합격 소식에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사실 부부가 딸의 입학을 이렇게 반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최정윤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수를 꿈꾸며 보컬과 재즈 피아노 등 음악을 공부했다. 그런데 3학년을 앞두고 슬럼프가 찾아와 음악 공부를 중단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1년 남짓 공부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힘들었지만 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양대를 선택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한때나마 엄마의 마음을 졸이던 딸은 이제 성주은 씨의 말을 빌면 ‘거침없이 멋지게’ 살고 있다. 최정윤 학생은 입학 후 단과대 회장, 유엔 대학생 홍보대사, 세이브더칠드런 해외 인턴, 아시아나 플라잉마케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최종호 씨는 “저희 부부가 학창 시절 하지 못한 것들을 딸이 지금 다 하고 있다”며 대견해 했다. 최정윤 학생은 현재 교환학생으로 영국 리즈대학교에 가 있다. 학기를 마치면 프랑스와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7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주시는 멋진 분들이에요. 도전을 즐기는 저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추억을 공유하다 ▲ 어머니 성주은 씨(왼쪽)와 딸 최정윤 학생 부부와 자녀가 모두 동문인 이들에게 한양대는 어떤 의미일까. 최종호 씨는 “예전에 학교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을 아이가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한양대에서 아내를 만났고, 딸도 이곳을 다니고 있으니 제 인생에서 한양대를 빼면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며 웃었다. 최정윤 학생에게 한양대는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추억이자 20대의 시작”이다. “부모님과 같은 대학교에 다녀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학교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 30년 전과 현재의 왕십리를 비교하면서 사라지거나 새로 생긴 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기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꽃다운 20대를 상상하면서 같은 곳에서 같은 나이의 제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요.” 딸이 자랑스러운 한양인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는 최종호·성주은 부부. 그리고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최정윤 학생. 한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들은 오늘도 행복한 꿈을 꾼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7-05 08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아름다운 노래 맑은 영혼 의 연주

지난 4월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세경 씨가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오페라 애호가들의 귀를 호강시켰다.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의 전성기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여전히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성악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글. 박영임 / 사진. 임세경·안홍범 ▲ 성악가 임세경(성악과 94) 동문 1년 만에 찾은 한국 무대 소프라노 임세경 씨를 만난 건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수개월간 연습한 열정과 천부의 재능을 여한 없이 무대에서 불사른 예술가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여전히 달뜬 표정일까, 아니면 모든 에너지를 연소해 심연의 바닥에 침착한 모습일까. 의외로 임세경 씨의 얼굴에는 지난밤 화려한 무대의 프리마돈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일상성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는 임세경 씨. 유럽 첫 무대가 2004년이니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무대에 대해 겸허한 마음이다. “원래 공연을 마친 후에는 무대에서 어떻게 노래했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불러보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다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되뇌다 밤을 새곤 합니다.”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선 임세경 씨는 사실주의 오페라 3대 걸작으로 꼽히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푸치니의 ‘외투’를 엮은 ‘팔리아치&외투’에서 화려한 유랑극단의 배우와 가난한 청소부 여인이라는, 성격이 다른 1인 2역을 소화해 발성이 견고하고 감정 표현이 압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평소 비극적인 역할을 많이 맡다가 ‘팔리아치’의 발랄한 넷다를 연기하며 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으로 영역을 넓혔으니 유럽이나 미국 무대에서도 새로운 제안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한국인 최초 주역으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 서다 임세경 씨에게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의 주역을 맡았다는 영광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매년 6~8월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을 기념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많은 성악가들이 이곳에서 명성을 쌓았다. 특히 고대 로마시대의 야외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다 역을 맡아 열연했다. “1만 6,000석의 아레나 디 베로나 무대를 보니 앞이 깜깜하더군요. 저 거대한 무대에서 작은 체구의 제가 보일까, 제 목소리가 들릴까 걱정했어요. 10년 이상 무대에 선 동료가 눈을 딱 감고 첫 소절을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너무 긴장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으니 고요한 적막감이 감돌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거짓말처럼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그래서 안정감을 찾고 무대를 즐겼습니다. 꿈의 무대에 데뷔하는 소프라노의 흥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임세경 씨는 2015년 공연을 시작으로 그 후 매년 페스티벌에 초대받았다. 지난해는 먼저 제안받은 스위스 아방쉬 페스티벌에 출연하느라 고사했지만, 올해는 ‘아이다’, ‘나비부인’에 이어 ‘토스카’, ‘나부코’까지 제의를 받아 최종 출연 작품을 조율 중이다. “최초라는 수식어보다는 저의 발전한 모습을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노래를 할 만하니 무대가 끝나 아쉬웠어요. 이번에는 여러 회 출연하기 때문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제가 가진 가장 좋은 빛깔을 보여주고 싶어요.” 뒤늦게 도전한 성악가의 꿈 ▲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에서 호연한 ‘나비부인’의 한 장면 임세경 씨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외에도 지난 2015년과 2016년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슈타트오퍼(빈국립극장)에서 ‘나비부인’을 호연했는데, 이 극장에서 한국인 소프라노가 주역으로 선 것은 조수미, 홍혜경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1월에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한 ‘토스카’에 출연하는 등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대학 시절 그의 존재감은 의외로 미미했다. “성량은 좋았지만, 노래를 그리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뭐든 좀 늦은 편이거든요.” 게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1년 넘게 중환자실을 지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를 잃고 졸업을 한 후에는 성악가의 꿈보다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우선했다. 그렇게 졸업 후 3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은 돈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버니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분연히 일어섰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제 노래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테크닉은 부족해도 마음을 전하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나의 소리가 어떻게 발전할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딱 3년만 공부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오페라의 변방 한국에서 온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성지 이탈리아에 모인 세계 각국의 소프라노들 틈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빛낼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조바심도 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우연히 개인적으로 사사받은 한 마에스트로에게 ‘남들보다 잘 하려고 하지 마라. 남들과 다르면 된다’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세상에 저와 똑같은 목소리는 없잖아요. 외국인이라고, 약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개성을 살리면 되는 거죠. 그때부터 무대가 두렵지 않았어요. 후배들도 대학 시절에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성악과 후배들이 세계 무대에 서길 바랍니다.” ▲ 국립오페라단 작품 ‘메피스토펠레’에서 열연하고 있는 모습 임 동문은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 서양의 소프라노들보다 늦게 데뷔한 임세경 씨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유럽의 유명 무대에 서며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그는 늦깎이 성악가로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저는 지금 시기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에 큰 무대에 섰다면 발성의 완성도나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오래 서지 못했을 거예요. 모든 영역대의 소리를 소화하며 성대가 가장 건강할 때라는 점에서 전성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직 전성기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더 발전해야죠. 베르디, 푸치니, 벨리니, 도니제티 등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도 너무 많습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소위 5대 오페라 극장을 섭렵해야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소리가 무르익을수록 인생도 원숙해지는 법.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살아보니 삶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임세경 씨. 대신 어디에 서든 자신이 선 무대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무대를 이겨야겠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이 노래에 스며들면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에 부정적인 에너지를 실으면 안 돼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천상의 소리란 인간의 의지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성대를 빌어 울리는 아름다운 영혼의 연주라는 의미이리라. 5월 미국 워싱턴 케네디홀에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과 핀란드, 스페인, 독일, 일본 등 차례차례 임세경 씨를 기다리는 무대들. 마음을 맑게 닦은 그에게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에 브라바(여성 독창자에 대한 찬사)를 외치는 기립 박수가 화답할 것이다.

2017-04 25

[동문]성실한 건축학도, 대학생활 유종의 미를 거두다 (3)

우리대학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이 인천도시공사가 주최한 ‘제2회 대학생 설계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참가신청은 771팀에 달하고 최종적으로 72개 대학 170팀이 작품을 접수한 가운데, 단신으로 도전장을 내민 지 동문은 최종심사를 거쳐 지난 3월 30일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 생활 마지막 도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 기쁘다는 지 동문. 미래의 건축가를 꿈꾸는 그를 만났다. 해방촌에 공유를 입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대학생 설계 공모전은 새로운 주거유형을 모색하고 대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목표로 한다. 이번 대회는 ‘공유와 거주’를 주제로 열렸다. 지수연 동문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해방촌을 건축 대지로 잡아 ‘Next step for urban steps’라는 작품을 구상했다. 지 동문은 근 30년간의 개발이 대형화, 획일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작은 규모의 도시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전 소규모 단독주택에서 70년대 이후 5층 이하의 다세대 주택, 그리고 8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여 왔어요. 저는 급박하게 변화한 주거환경 속에서 작은 조직으로 남아있는 마을에 대한 미래 주거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지수연 동문(건축학과 12)과 지난 20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방촌은 지 동문의 구상에 딱 들어맞는 지역이었다.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인 데다가,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주를 이뤘다. “해방촌 입구에는 108계단이 있는데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면서 만든 계단이에요. 해방 후 신사는 없어지고 계단만 남았는데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주변 건물은 노후 된 채 발전하지 못한 상태죠.” 이러한 상황에서 맞물려 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해방촌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의 비율이었다. “해방촌에는 '빈집 프로젝트'라고 1인 가구들이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뤄져요. 이렇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주거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는 점을 파악했어요.” 지수연 동문은 정교한 설계 작업을 통해 108계단과 접하는 1층에는 소강당이나 도서관, 갤러리와 같이 공용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상층부인 2, 3, 4층에는 1인가구를 위한 소형 주거를 배치했다. “1인 거주자들은 ‘빈집 프로젝트’와 비슷하게 원룸 형태의 독립된 집을 갖지만, 집 사이사이에 공용부엌과 화장실, 옥상 테라스 등 다양한 틈새 공간들을 공유하도록 설계했어요.” 1인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을 마련한 동시에 공유의 가치를 더한 것. 작업 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도 많았다. 가파른 지형에 무계획적으로 지어진 해방촌의 특성상, 초반 설계 작업에서 형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 동문은 직접 모형을 만들면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나갔고 주변의 조언을 토대로 보완 작업을 했다. “가능한 한 간결하게 주거공간을 구상했어요. (해방촌이) 여유 있는 공간이 아니거든요. 최대한 실용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죠.” 이에 더해, 채광 및 조망, 환기에 대한 측면을 비롯해 경사지의 풍경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지수연 동문이 완성한 ‘Next step for urban steps’의 모습. 각각의 동이 체계적이면서 경사지 마을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출처: 지수연 동문) 건축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같아 지수연 동문은 어릴 적부터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 이왕이면 좀 더 크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건축학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이후 지 동문은 재수 끝에 우리대학 건축학과로 진학했다. 건축학과생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숱한 프로젝트와 밤샘 작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건축학과 학생은 교양 듣기도 힘들어요. 1학년 때부터 필수 과목들을 신청하면 학점이 다 차거든요.” 학과 내 학회인 ‘Art space’에서의 활동도 바쁜 삶에 한몫했다. 방학 때면 강의실과 설계실을 빌려 2주 내지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학과는 보통 지도 교수님 한 분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해요. 매시간 본인의 작품에 대해 발표하고, 피드백을 듣죠.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완성해가도 교수님들의 크리틱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다시 작업해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요.” 빽빽한 생활에 힘이 부칠 때도 잦았지만, 지 동문에게 후회란 없었다. “시행착오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설계 작업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해요. 구상했던 작업이 논리적으로, 설계적으로 전부 조건에 부합했을 때 희열을 느끼죠. 그럴 때면 ‘그동안 들였던 시간이 의미없진 않구나’란 생각을 해요.” 올해 졸업한 지수연 동문은 현재 네덜란드와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고민도 많아지는 시기지만, 지 동문은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사실 제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했어요. 저 혼자 이 길을 가는 것 같아서 약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배우고 경험하고 싶어서 유학을 택하게 됐어요. 저만의 생각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이번 공모전 입상으로 받을 상금은 유학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예정이라고. 긍정적 영향 미치는 건축가가 될 것 지수연 동문이 꿈꾸는 건축가의 모습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축가’다. 자신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을 짓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아니었지만, 지 동문의 뚜렷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는 평생을 건물 안팎을 드나들며 살아가요. 이때 건물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도시 계획 쪽으로도 관심이 많아요. 계획이 잘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지수연 동문은 실용적인 건축가를 꿈꾸며,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하기 위한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