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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27

[동문]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화폐 재테크!

경기 불황이 지속되며 '금테크'가 안전한 투자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금테크와 은테크 수단으로 알려진 골드바, 실버바보다 화페인 금·은화의 가치상승률이 더 높다는 것. 바야흐로 '돈이 돈을 버는' 시대다. 그러나 국내 화폐 수집 인구는 2만명 정도로 아직 적은 편이다. 이웃나라 중국의 수집 인구는 2000만 명을 넘고 일본도 한국의 10배에 달한다. 국내 최대 화폐유통업체를 운영하는 김희성 동문(토목공학과 01)을 통해 화폐 수집의 세계에 관해 들었다. 어학연수에서 화폐 수집에 눈 뜨다 김 동문은 공신력 있는 화폐 감정 회사인 NGC, PCGS, PMG 인증 주화와 지폐 전문 쇼핑몰인 '파워코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최대 품목, 최대 수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저희 회사는 화폐유통업체예요. 화폐 유통과 매매 및 매입, 그리고 화폐감정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김 동문은 학부 시절 떠났던 어학연수에서 화폐 수집의 세계에 처음 눈 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9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갔어요. 주 단위로 열리는 화폐박람회에 갔다가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죠. 당시에는 가격이 비싸 직접 구매할 수는 없었지만요." 김 동문은 졸업 이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재테크 목적으로 화폐 수집을 시작했고, 수집량이 늘어나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전공 분야를 살려 일하고 있었다. “건설 회사에 3년 동안 근무했고, 부산에서 토목·건축기사 자격증 학원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죠.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학원을 옮기려고 했는데, 서울에는 학원이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하더라고요." 서울에 정착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취미로 삼았던 화폐 수집을 생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 화폐유통업체 '파워코인' 대표 김희성 동문(토목공학과 01) 더 값어치 있는 화폐를 찾아내는 법 화폐의 값어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이냐 묻자 김 동문은 '연도'와 '발행수량 또는 잔존수량', '인기도'라고 답했다. 세 가지 요소가 얽히고설킨다. "오래된 화폐도 발행량이 많으면 가격이 오르지 않아요. 예컨대 1988년 올림픽 기념 주화 중 은화 5종 세트가 당시 가격으로 8만 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7만원이에요. 발행량이 너무 많아서 가격이 금은 소재 가격과 같아진 거죠." 반대로 발행가에서 가치가 수직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인기가 높아진 화폐의 예는 2007년 몽고가 발행한 기념 주화인 '굴로굴로' 은화다. “발행 당시에는 개당 10만원 이하였는데, 몽고가 주요 국가가 아니라서 인기가 적었죠. 그런데 몇 년 후에 독일에서 '올해의 주화상'을 받았어요. 가치가 100만원 이상으로 올랐죠." 김 동문은 이처럼 화폐를 모으고 시장 시세를 파악하기 위해 중국과 홍콩 등지로 자주 출장을 떠난다. 약 2000만 명의 화폐 수집 인구가 있는 중국에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 500개 이상의 화폐 취급 업체를 보유한 백화점이 여럿 있다. 주식 시장처럼 주화별 가격 변동을 나타낸 차트가 걸려 있다. “한번은 가격 흥정을 하다가 생각보다 비싸서 장 막바지에 사려고 했는데, 가격이 갑자기 올랐어요. 화폐 가격도 주식처럼 매매 기준이 있는 거예요." 중국에 주화 차트가 있다면 국내에는 '화동양행' 화폐 경매가 있다. 일 년에 두 차례 열리며, 한국 주화와 한국 지폐를 위주로 한다. “화폐 수집을 처음 하는 분들이 한국 돈으로 많이 시작하는데요. 화동양행 경매 낙찰가를 기준으로 값어치를 따지면 됩니다." 한국 지폐 중에서는 환 단위의 환권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 일제 시대에 발행된 구 한국지폐와 조선은행권 등이 수집 목록에 오른다. ▲ 화폐 감정 회사의 감정을 거쳐 화폐의 가치가 결정된다. 사진 속 화폐는 지폐 고유번호가 동일한 숫자(111111 등)로 구성된 '솔리드' 화폐. 123456은 '어센딩', 100000은 '밀리언'이라 부른다. ▲ 한국 최초의 1000 원권(위)과 현행 1000 원권(아래). 1000 원권 지폐는 총 세 차례 바뀌었다. 김희성 동문의 '내 인생의 주화' 김 동문이 가장 수집하고 싶은 '인생 주화'는 무엇일까. "사실은 두 가지 있는데, 다 팔았어요. 저는 화폐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니 수집하기보다 팔아야 하죠.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할 화폐예요." 첫 번째 주화는 '한국근대전 닷량 프루프'다. "증정용으로 제작된 닷량이에요. 쉽게 구할 수 없어서 근대전 수집하는 분들에게는 꿈의 주화예요. 저도 여유가 되면 꼭 다시 구하고 싶어요." 닷량은 미국, 한국,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행한 무역 달러였다. "당시에는 환전이란 게 용이하지 않아서 전 세계에서 똑같은 무게의 은으로 닷량을 만들어 거래했어요. 각 나라별 무역 달러를 모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해외 경매에 나올 정도로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아요." 두 번째 주화는 한국 최초 기념 주화인 '영광사(史) 파리민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제작한 기념 주화예요. 금·은화가 각각 6종이죠." 한국의 역사적 인물 및 사건을 기록환 화폐로 세종대왕, 신라 금관, 거북선, 고려청자, 이순신, 유관순 등이 그려져 있다. "발캄비 사(社)에서 만들던 것을 파리민트 사에서도 한정 수량으로 제작했어요. 발캄비 버전은 구하기 쉬운데, 파리민트 버전은 잔존 수량을 10세트 미만으로 봐요. 2개월 전에 뉴욕 경매에 나왔는데 인기가 많아 낙찰에 실패했죠." ▲ 한국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영광사(史) 은화. 한국 최초의 기념 주화로 금화가 6종, 은화가 6종이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 바라보길 김 동문은 학부 시절에 학업 바깥으로 눈 돌릴 틈이 없던 공대생이었다. “토목공학과라서 전공 공부도 바빴고, 영어 공부하랴 자격증 따랴 여간해선 다른 분야를 둘러 볼 틈이 없었어요. 그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죠." 김 동문은 재학생에게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다양하고 폭 넓게 세상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 우연한 기회에 화폐 투자를 접하게 됐는데, 그보다 큰 미술 시장이나 도자기 시장도 있었어요. 여기서 파생된 직업도 많고요.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도 알면 좋겠습니다." ▲ 후배들이 다양하고 귀중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는 김희성 동문이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2 27

[동문]마니아에서 성공한 '덕후'로 끊임없는 그의 SF 사랑

'덕후'는 한 분야에 마니아 이상으로 열중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 분야에 관련된 물건 등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는 '덕질'이라 한다. 많은 덕후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덕업일치'를 꿈꾸지만, 이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상준 동문(해양융합과학과 85)는 그런 점에서 흔치 않은 '성공한 덕후'다. 유년 시절부터 SF(Science Fiction)를 즐기기 시작해 지금까지 동고동락한다. 평생을 함께한 SF 국내에서 박상준 동문의 이름을 빼고는 SF를 논할 수 없다. 수식어도 다양하다. SF 마니아부터 번역가, 비평가 등. 아서 클라크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직접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국내에 번역된 SF 작품에는 박 동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밖에도 박 동문은 SF 관련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SF 영화가 개봉하면 GV(관객과의 대화) 해설자로도 종종 초청된다. 그와 SF의 인연은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이 용으로 나온 <해저 2만리>, <타임머신> 등을 읽으면서부터다. “그때만 해도 재미있는 오락거리였죠. 사춘기 때 아서 클라크가 쓴 <유년기의 끝>으로 완역본을 처음 접했는데 '단순히 괴물이 나와서 치고 박는 것만이 SF가 아니구나'란 충격을 받았어요. 시야가 확 넓어졌죠." 박 동문이 읽었다는 <유년기의 끝>은 1953년 출판된 장편 소설로, 외계 문명의 접촉부터 인간의 종말을 그린다. 여기서 느낀 충격이 박 동문이 본격적으로 SF를 탐독한 계기가 됐다. ▲ 지난 2월 22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박상준 동문(해양융합과학과 85)을 만났다. 다른 차원을 상상하는 매력 SF는 어떤 장르보다 '상상력'이 중요한 세계다. SF에서의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누릴 수 없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지도 모르는 기술을 상상하는 것이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 여행과 <타임머신>에서의 시간 여행이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쓰였어요. 혹은 또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는 겁니다. 한국 소설 중에는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와 같은 대체 역사 소설이 있겠네요." SF 소설을 읽다 보면 미래의 기술 발전에 대한 고민도 가능하단 것이 박 동문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이 SF를 대하는 태도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박 동문이 느낀 것은 두 가지다. 완역된 SF 소설이 국내 시장에 거의 전무했고, 아동용 도서에는 완역본에서 생략된 부분이 많았다. “문학계 내에도 장르 문학을 무시했던 경향이 있어요. 각박한 현실을 두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죠. 그래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SF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없었어요. 통속적인 작품이 주를 이뤘죠." 박 동문은 결국 원서를 찾아 읽고, 후일 직접 번역까지 하게 된다. 박 동문은 SF도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제가 대학에 갔을 때만 해도 군부 정권이었어요. 지금보다 더 억압적인 분위기였죠. 그 즈음에 읽은 SF에는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어요." 그는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을 예로 들었다. 최근에는 SF를 뛰어 넘는 현실 때문에 굳이 SF를 읽어야 하냐는 농담 섞인 목소리도 있다. “출판계에선 이런 말이 있어요. 현실이 너무 판타스틱해서 소설을 볼 필요가 있느냐고. 요즘 들어 더 그래요(웃음).”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공지능과 우주여행 등을 상상해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느 덕후의 보물 창고 '서울SF아카이브' 다행히도 SF에 대한 문단의 시선은 점점 누그러지고 있다. “문학계에도 젊은 피가 늘어나면서 선배 세대보다 장르 문학에 관대한 사람이 늘었어요. 최근에 활동하는 작가 중에는 일반 문학과 SF를 함께 쓰는 사람도 있고요." 박 동문은 이런 변화에 맞게 국내 SF 자료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90년대 초부터 SF와 관련된 자료를 모은 그였다. “헌책방 같은 곳을 무작정 다녔어요.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헌책방 자료를 검색하거나, 문화예술 경매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하죠." 박 동문의 사무실은 이렇게 수집한 자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책장과 책상은 무수히 많은 도서와 DVD,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에 점령당한지 오래다. 박 동문은 이 사무실을 '서울SF아카이브'라 이름 붙였다. “사실... 지금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정리할 엄두가 안 나요. (사람을 부르는 건 어떻냐고 하자) 어떻게 치워야 할지는 어지른 사람이 제일 잘 아는 법이잖아요. 지금 제 사무실이 그래요. 비디오는 또 언제 정리하지(웃음)." 박 동문은 자신의 보물 창고가 SF를 연구할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박상준 동문의 '서울SF아카이브' 내부. 직접 뛰며 모은 작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출처: 박상준 동문) “SF 따라잡는 과학기술 보면 흥미롭다” 박 동문은 SF 덕후로서 최근 과학 기술의 발전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아서 클라크가 오래 전 예상한 기술을 만나면 반갑고, 이렇게 일찍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기술이 나와 놀랄 때도 있다. “지난해엔 알파고를 보면서 '인공지능이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하며 감탄했죠.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했듯 정말 SF가 과학 기술에 추월당하는 때가 곧 올지도 모르겠어요(웃음).” 그러면서도 과학기술이 번영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면서, 디스토피아 소설을 예로 들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제가 번역한 책 중에 <화씨 451>이란 책이 있어요. 책을 못 읽게 태운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데, 역으로 '과연 이런 것이 유토피아가 맞을까'라고 묻죠. 우리도 발전하는 과학 기술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박 동문은 앞으로도 새로운 SF 속에서 행복한 유영을 계속할 생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요즘에도 SF 속에는 생각하지 못한 세계가 끊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모습의 SF를 만나는건 어떨까. ▲ 박상준 동문을 빼고는 국내에서 SF를 논할 수 없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SF가 함께할 것이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2 23

[동문][사랑, 36.5°C] 소통과 공감으로 함께하는 감성을 나누는 기부

하헌영 인천 나은병원 원장은 최근 의과대학에서 건립을 추진 중인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 기금으로 5천만 원을 기부했다. 또한 한양대학교의료원에도 발전기금 5천만 원을 함께 기부하는 등 모교 의학 분야 발전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양대가 바이오메디컬 분야의 선도대학이 되는 데 동문으로서 힘을 모으겠다는 하헌영 원장을 만나 보았다. Q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 발전기금과 한양대학교의료원 발전기금으로 총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 기부를 결심하시게 된 동기가 있나요? 졸업 후 모교 발전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하는 마음으로 각종 동문 모임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특히 의과대학 동문회에서 동문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문들이 의과대학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발전기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의대에서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의 기부를 통해 기부에 익숙지 않은 의대 동문들에게 간접적으로 참여를 권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 인천 나은병원 원장 하헌영(80 의학) 동문 Q 의료인으로서 바이오메디컬센터나 한양대학교의료원에 대한 특별한 기대나 바람이 있으신가요? 미국의 유명한 연구 중심 병원들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한양대학교의료원이 대학병원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더욱 경쟁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선진의료원의 사례와 같이, 한양대학교의료원과 바이오메디컬센터가 신약 개발, 의료기술 개발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연구 중심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바랍니다. 한양대학교의료원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Q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 가입, 해외의료봉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데, ‘나눔’에 대한 평소 생각과 소신을 말씀해 주세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주위와 함께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능력과 재능에 따라 주위에 도움을 주려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04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하면서, 그런 나눔에 대한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면서도 베풀고 나누는 여유를 보면서, 리더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나누는 작은 정성들이 모이면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0다고 생각합니다. Q 원장님께 ‘나눔’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2010년 스페인 산티아고로 여행을 갔을 때, 혼자 트레킹을 하면서 만난 인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트레킹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찾다가, 좁은 산티아고 골목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비도 오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지요. 그 때, 지나가던 중년의 현지인 마가레타가 기꺼이 함께 길을 찾아주었습니다. 40분을 걸어 도착한 숙소에서 마가레타는 간단한 요기까지 대접해 주었습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친절에 의아해 하던 제게, 자신은 건강상의 문제로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저의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그런 자신의 친절을 잊지 말고 한국에서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생면부지의 제게 남긴 마가레타의 친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작지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큰 감동’이 바로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전해지는 나눔의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하헌영 원장은 "한양대학교의료원과 바이오메디컬센터가 연구 중심 병원으로서 그 위상을 높이고 경쟁력을 더욱 키웠으면 합니다.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한양'의 이름이 빛날 수 있도록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고 말한다. Q 지금까지 여러 ‘나눔’을 실천해 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워서 기타를 멋들어지게 연주하던 키르기스스탄의 ‘국민영웅’ 아크바랄리 우울리 주숩백 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주숩백 씨는 지난 2010년 키르기스스탄 민족 간 유혈사태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다 척추손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욕창, 소화기 계통, 순환기 계통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것으로 인연을 맺었던 키르기스스탄 주한대사에게서 주숩백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 기꺼이 의료지원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마음을 전하는 계기이자, 인천시와 중앙아시아권과의 교류에 시발점이 될 수 있었기에 무척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 하 원장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하고 환자를 돌보는, '감성이 통 하는 인생'에서 값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Q ‘한양’의 이름을 빛내고 계신 자랑스러운 선배님으로서 후배들에게 전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성공하는 의료인의 모습이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 왔습니다. 많은 경험과 고민 끝에, 병원을 확장하고 유명세를 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친 환자를 위해 인술을 베푸는 것이 더 큰 보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 인천 지역에 터를 잡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 힘든 시기를 버텨내야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돈이나 명예보다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가서면 결국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작게는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가진 것을 공유하고 환원하는 것부터 시작해 봐도 좋습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하고 환자를 돌보는, ‘감성이 통하는 인생’에서 값진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기부를 망설이고 계신 다른 잠재적 기부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부는 습관입니다.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처음이 쑥스럽고 어려운 것이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먼저 시작해서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한양대의 건학정신이 나타내듯이, 주어진 것을 나누는 사랑, 그러한 마음을 실천하는 공감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2017-02 23

[동문][희망, 100℃] 동문의 응집된 힘으로 ‘한양’의 힘을 키우다

구자준 회장은 한양발전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하고 동문봉사단 <함께한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동문 사회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모교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모교의 재정 확충과 전략적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쾌척하여 기부자 명예의 전당 President's Honor Club(5억 원 이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양 동문의 응집된 힘으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구자준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유비전스 회장 구자준(전자공학 70) 동문 ‘꿈’으로 함께하는 한양 “모교는 제게 고향입니다.” 구자준 회장에게 모교는 사회에 나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성과 소양을 길러준 ‘고향과 같은 푸근함과 그리움’이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시작한 대학생활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은사님들과 선후배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기에 한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구자준 회장은 모교에 대한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양발전후원회, 동문봉사단 <함께한대>를 비롯한 각종 동문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동문의 힘을 모으는 데 주력해 왔다. 동문들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응집된 힘이 한양 발전의 디딤돌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30만 동문의 잠재력이 곧 ‘한양’의 미래라는 것이다. 구자준 회장의 ‘한양 사랑’은 모교의 강단에서도 이어졌다. 오늘의 한양에서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강연에서 그는 언제나 후배들이 자유롭게 꿈꾸는 청춘이 되기를 당부해왔다. “대학은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평생을 투자할 꿈을 찾는 데 있어서 본인의 전공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자준 회장은 ‘꿈’의 열린 가능성에 대해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단순히 지금의 전공에 따라 평생의 꿈을 결정하기보다,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생을 다해도 열정이 마르지 않을 꿈을 찾아가는 후배들의 미래가 곧 한양의 미래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딛는 발자국에 담겨 있는 책임감 한양의 자랑스러운 동문, 구자준 회장의 성공에는 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원칙은 어떤 일을 하든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조깅과 구보의 차이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구보는 강압과 질책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달리기다. 하지만 조깅은 건강을 위해 스스로 하는 달리기이며, 끝나고 난 후에는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듯 같은 ‘달리기’를 하더라도, 구보로 생각하고 뛰느냐 조깅이라고 생각하고 뛰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현실이 될 수도, 그저 동경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구자준 회장이 말하는 조깅과 구보의 차이도 바로 이런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즐기는 자세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모든 판단을 함에 있어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가 말하는 것처럼, 눈 덮인 벌판에서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이들의 길이 된다. 그는 지금까지 기업의 경영자로서, 리더로서 자신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이 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신중을 기하려 노력해왔다고 한다. “하얀 눈밭 위에 제가 내딛는 발자국은 뒤를 따라오는 이에게 이정표가 됩니다. 새로운 길일수록 자신이 내린 결정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기부를 향해 열린 마음 “오랜 미국 생활을 하면서 미국 대학들의 기부문화에 대해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명문 대학들의 든든한 재정 뒤에는 대부분 동문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30만 동문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한양을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구자준 회장은 특히 한양발전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양의 재도약을 위해 동문들이 힘을 모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모교의 발전은 다시 동문에게 자부심으로 돌아가기에 한양의 도약을 지원할 수 있는 동문들의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 구자준 회장은 “기부는 사회와 개인의 순환 작용이다. 한양대가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문들의 아름다운 순환의 힘이 필요하다. 30만 동문의 잠재력이 바로 '한양'의 미래가 된다.” 고 말한다. 기부는 사회와 개인의 순환 작용이다. 사회에서 성장한 개인이 다시 그 사회의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순환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구자준 회장은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그리고 기부의 순환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이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아름다운 순환의 힘은 바로 동문들에게 있음을 구자준 회장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17-02 13

[동문]피아노 반주에 맞춰 판소리를? 젊은 소리꾼의 이색 도전

'앵두를 주랴 포도를 주랴 귤병사탕의 혜화당을 주랴. 아마도 내 사랑아'.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구절이다. 소리꾼 고영열 동문(국악과 12)은 지난해 KBS <국악한마당>에 출연해 '사랑가'를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선보였다. 국악 예능 프로그램 <판스틸러>에서는 대중가요와 국악을 아우르는 무대로 '국악의 역습'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색적인 행보로 국악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고영열 동문을 만났다. 판소리의 놀라운 변신, 젊은 세대와 호흡하고 싶었죠 수영 선수를 꿈꿨던 아이가 소리꾼이 됐다. 고영열 동문은 수영 선수로 활동할 때 폐활량을 늘리고 싶어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첫 스승은 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교사인 어머니였다. 이후로 판소리에 매력을 느껴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변성기 때문에 목소리가 바뀌어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변성기가 와서 힘들었어요. 소리낼 수 있는 음의 높이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는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폭포 수련'을 마다하지 않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고 동문은 젊은 나이에도 손 꼽히는 실력을 갖고 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매력이 그의 특징. KBS <국악한마당>에서는 춘향가의 '사랑가'를 피아노와 함께 선보이는가 하면, Mnet <판스틸러>에서는 가요 '보랏빛 향기'와 '사랑가'를 섞은 무대를 꾸몄다. 피아노와 대중 가요, 판소리가 함께 있는 이색적인 무대는 젊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SNS 상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젊은 세대는 전통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를 고등학교 때부터 걱정했어요. 전통 음악이 좋다는 걸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기로 했죠." 고 동문은 한 번의 무대를 위해서도 끊임 없이 연습을 한다고 했다. "혼자서 무대에 올랐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큰 박수 소리를 들으면 '아, 내가 잘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고영열 동문(국악과 12)은 국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무대를 선보이는 젊은 소리꾼이다. ▲고영열 동문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른 춘향가의 한 대목 '사랑가' 재학시절부터 빛난 재능, 밴드에서 보컬 맡기도 고 동문은 스물 다섯의 젊은 청년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내공을 갖고 있다. 감정과 발성 면에서 모두 뛰어나단 평가를 받는다. 학부 시절에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고. 2015년 개봉한 영화 <도리화가>에 동시녹음으로 참여했고, <운현궁 로맨스>와 <안네의 일기>, <판소리하다> 등의 창극에도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년 전에 주연을 맡았던 <대한민국 명탐정 홍설록>이에요. 해금, 아쟁 등의 국악기가 아니라 베이스와 기타, 드럼 등을 사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선보였죠. 창작곡들도 좋아서 작품성이 느껴졌어요."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는 학부 시절 밴드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와 드럼, 기타를 치는 두 사람이 함께 밴드 '이스턴 모스트'를 시작한 것이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이름처럼 동양 음악의 최고가 되겠다는 뜻이다. 밴드는 이제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 피아노, 트럼펫, 색소폰, 플루트 등이 합류한 21인조의 오케스트라 밴드가 됐다. "밴드에는 국악을 전공한 사람도, 재즈를 전공한 사람도 있어요. 다른 장르와 접점을 찾아서 편곡을 해내면 만족감이 그만큼 크죠. 피아노 연주에도 관심이 많아서, 양쪽 음악을 다 공부하며 편곡했어요." ▲ 고영열 동문은 창극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보르는 고 동문. ▲ 고영열 동문(소파에서 오른쪽)이 학부 시절 두 명의 멤버와 시작한 밴드 '이스턴 모스트'는 21인조의 오케스트라 밴드로 발전했다. 즐기면서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고 동문의 목소리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아노를 치니까 코드를 알고 접근해서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기도 하고, 전통 음악을 자유롭게 노래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전통 음악의 매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가까운 미래에는 제 이름으로 된 앨범을 내고 싶어요. 앞으로도 즐기면서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글/ 추화정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2 06

[동문]“클래식과 가곡, 더 많은 사람이 접했으면"

서울시 강남구의 국악고등학교 앞에는 특별한 공연장이 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등 유명 극장에서 공연을 앞둔 클래식 음악가의 무대를 무료로 선보인다. 평소에 클래식을 접하지 못했던 관객도 그들의 연주를 듣고 클래식에 빠진다. 바리톤 성악가 장은훈 동문(성악과 83)이 세운 한국가곡예술마을 '나음아트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수준급 클래식 무대 코 앞에서 즐긴다 '미리하는 음악회' 나음아트홀에서는 매달 15-20차례의 공연이 열린다. 국내 최고의 무대에 오르는 음악가의 공연이라 그 수준도 매우 높다. 장 동문은 클래식을 통한 좋은 문화 가꿔가기의 일환으로 일명 '미리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유명 극장에서 공연을 앞둔 음악가의 공연을 무료로 올린다. 공연장 규모는 120석 정도. 관객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나음아트홀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장 동문의 선언과도 같은 공간이다. 우리대학을 졸업한 후 베네치아에서 유학한 장 동문은 바리톤 성악가로 오페라 등에서 활약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강연이나 공연 수입도 넉넉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환경을 버리고 '자신만의 공연장을 열겠다'는 꿈을 택했다. 시작은 순천에 세운 한국가곡예술마을 '가곡기념관'이다. "예술의전당이나 오페라극장은 꾸준히 공연을 올리잖아요. 한국 가곡에도 그런 기반이 되는 공연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가곡기념관에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나음아트홀을 서울에 열었다. 나음아트홀에 서는 음악가들은 공연 전 관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고, 클래식 보급이란 취지에도 동참할 수 있어 무대에 오른다. "처음에는 공연을 앞둔 분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서 초청하곤 했는데, 지금은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 장은훈 동문(성악과 83)은 서울시 강남구에 '나음아트홀'을 열었다. 유명 극장에서 공연을 앞둔 음악가를 초청해 '미리하는 음악회'를 개최한다. ▲ 나음아트홀 내부 모습. 120석 규모의 관객석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출처: 장은훈 동문) 가곡 사랑에서 시작한 길 이처럼 장 동문이 공연장을 열게 된 계기는 '한국 가곡'이다. 장 동문이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은 가곡을 즐겨 들었다. 그 영향으로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장 동문.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입니다. 당시 음악 선생님께서 제 노래를 듣고 '넌 성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성악이란 분야를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학교에는 풍금 밖에 없던 시절이니까(웃음)." 그렇게 성악을 시작해 대학을 졸업, 오페라 성악가로 활약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한국 가곡이 있었다. “가곡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가곡이 그렇지만, 특히 한국 가곡에만 있는 '승화된' 가사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해요." 그런 생각으로 순천에 먼저 가곡기념관을 지었다. 가곡기념관에서는 매달 무료로 입장 가능한 '순천국제가곡제'를 연다. 독일이나 러시아 등 한 국가를 테마로 정해 성악가를 초청한다. 가곡이란 장르가 널리 보급돼야, 한국 가곡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장은훈 동문은 가곡에 대한 애정으로 순천에 '가곡기념관'을 열었다. 지금도 직접 작사, 작곡한 가곡을 부른다. ▲ 장은훈 동문이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순천에 세운 '가곡기념관'의 전경. “더 많은 곳에 무료 공연 열고 싶어” 장 동문은 현재 순천과 서울에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곳에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다 보니 비용 문제가 아쉬울 때가 많아요. 또 이곳저곳에서 무료 공연을 열고 싶지만, 주요 공연이 서울에 있어서 연주자가 멀리 오지 않으려는 문제도 큽니다." 장 동문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고 했으나, 그 덕분에 보다 많은 이들이 음악이 주는 감동을 느끼고 있다. ▲ 나음아트홀에서 피아노 앞에 선 장은훈 동문. 그의 바람은 더 많은 곳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늘어나는 것이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7-01 15 중요기사

[동문]나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찾는 '이미지 컨설팅'

몇 년 전부터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신체색상) ' 열풍이 불고 있다. 사람마다 잘 어울리는 색상이 다르고, 그에 따라 스타일링해야 최적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퍼스널 컬러의 취지다. '웜톤이냐, 쿨톤이냐' 정도의 구분은 옛말. 같은 톤이라도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퍼스널 컬러를 가질 수 있다. 이미지 컨설턴트 천예슬 동문(국어국문학과 07)은 정확한 퍼스널 컬러 진단은 물론, 개인의 고유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스타일링 비법까지 알려주는 전문가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이미지가 있다 취업 면접이나 소개팅, 상견례 등 특별히 잘 보이고 싶은 날이 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 이미지 컨설턴트 천예슬 동문은 베스트 컬러와 체형, 얼굴 비율 등을 고려해 개개인의 고유한 이미지와 스타일링 방법을 알려주는 전문가다. "겉모습이 괜찮게 보이는 날에는 괜히 기분도 좋고 자신감도 생기지 않나요? 외적 이미지가 좋아질 때 내적 이미지도 좋아지기 때문에,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 이미지 컨설턴트 천예슬 동문(국어국문학과 07)은 개인의 고유한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링 방법을 소개한다. 천 동문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예슬 이미지'에는 온갖 종류의 안경과 의상, 다양한 색상의 화장품 등이 구비되어 있다. 스튜디오를 찾는 고객들에게 맞춤형 스타일링 팁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스튜디오는 사방이 하얀 벽인 데다 빛이 잘 들어와 자연광에서 어떤 색이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기 좋다. 스튜디오를 찾는 주 고객층은 20대 여성이다. "화장을 하기는 하는데 어떤 색상의 립스틱을 사야할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고, 내 이미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꾸미고 싶다는 분들도 많아요." 중요한 날에 입을 의상을 사야할 땐 천 동문이 직접 백화점에 가서 고객들을 위한 옷을 구매해 만족도가 높단다. "최근에 오셨던 손님은 30년 가까이 자신의 이미지를 모르고 사셨대요. 스튜디오에 오셔서 '드디어 나에 대해 알아간다'며 좋았다고 하셨어요. 이미지에 잘 맞는 화장법을 추천해드렸을 때 너무 좋아하시면서 셀카 수백 장을 찍어셨던 기억이 나요(웃음)." ▲ 기자가 이미지 컨설팅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베스트 컬러를 차아내기 위해 얼굴 아래 다양한 색상의 천을 대어본다. 어렵게 찾은 나의 길, 주머니 탈탈 털어 영국 유학까지 천 동문은 학부 시절부터 홍보대사, 마케터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사람을 대하는 일'이 자신의 적성이라 느꼈다. 어학연수, 배낭여행을 다녀오며 외항사 승무원으로 꿈을 굳힌 그는 카타르항공 승무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승무원 생활은 늘 새롭고 즐거웠어요. 하지만 몸이 계속 안 좋아져서 오래할 수는 없는 일이란 걸 알았죠. 또 비행과 잠이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머리가 굳는 느낌이 싫었어요. 더 늦으면 버는 돈의 달콤함 때문에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아서, 일찍 회사에서 나왔어요." 승무원을 그만둔 후에는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잠깐 일을 했고, 승무원 출신이 많이 종사하는 CS(고객만족)분야 강사로 눈길을 돌렸다.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지금의 일은 CS강사 교육 과정에 있는 '이미지 메이킹' 일일 강의를 들으며 알았다. "강의를 들으며 '어, 이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돌아보니 이미지 컨설팅 분야를 제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천 동문은 CS강사 교육 후에 컬러 강의를 듣고, 색상과 형태 등을 전체적으로 보고자 이미지 컨설팅 과정을 본격적으로 밟았다. 새로운 길에 푹 빠진 천 동문은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차별화된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영국에 발을 디딘 그는 세계적인 이미지 컨설턴트 린 마크스(Lynne Marks) 아래서 수강했다. 해외 자료를 국내에 적용할 수 있게 해석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이론보다는 색 분류 연습을 하고, 영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진단 연습을 했어요. 얼굴 비율과 몸 비율을 재고 스타일을 나눴죠. 신기한 건 어떤 사람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단 거예요. 개인이 가진 장점을 끌어내서 진단하니까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죠." ▲ 런던 유학생활은 영국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 컨설팅 실습 위주로 진행됐다. (출처: 천예슬 동문) 긍정적인 영감 주는 이미지 컨설턴트 되고 싶어 천 동문은 언젠가 연예인 이미지 컨설팅을 맡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돌 그룹을 보면서 각 멤버들의 특징을 살피고 '이렇게 입으면 더 예쁠 텐데'라며 코디 방법을 상상하곤 해요. 연예인 메이킹 기획 단계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톡톡 튀는 비전을 가진 천 동문의 최종 목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처럼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이미지 컨설턴트가 되는 것. 고객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그는 이미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 이미지 컨설턴트 천예슬 동문은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1 15 중요기사

[동문]“돈키호테처럼 끊임없이 모험하며 소설을 쓰고파”

'요리사가 되기를 포기하지 못한 나는 때때로 북창동 거리를 서성이며 사각형의 커다란 칼을 훔쳐보곤 한다. 이제 나는 칼빛 목소리를 꿈꾼다. 활어의 곁을 예리하게 떠내는 회칼이 아니어도, 위엄에 찬 무사의 창검이 아니어도 좋다. (중략) 내가 쓰는 소설이 이 견고한 세계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질 수 있기를, 섬뜩하게 베어져 나온 삶의 단면들이 그 속내를 드러내고 도마 위에 펼쳐지기를 꿈꾼다.' 2000년 동아신춘문예에서 <바늘>로 등단한 작가 천운영 동문(신문방송학과 90)의 수상 소감이다. 여전히 요리사의 꿈을 잃지 않은 천 동문이 지난해 12월마포구에 자신의 스페인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차렸다. 돈키호테의 우직함과 정직함 닮은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이란 식당 이름은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땄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보면서, 두 사람의 정직함과 우직함을 보면서 제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도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도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라는 의미가 담겨 있죠." 천 동문이 식당을 연 데에는 스페인에서 살았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2013년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 간 스페인 말라가에 머물렀던 천 동문은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요리를 배웠다. "현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다짜고짜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죠. 그렇게 어울려 생활하며 스페인이 좋아졌고요." 한국으로 돌아온 천 동문은 식당을 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다른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게 좋아서 식당을 열고 싶었어요. 스페인에서 김밥집을 열까, 한국에서 스페인 식당을 열까 고민했죠.” 고민 끝에 천 동문은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다시 날아갔다. 낮에는 요리를 배우고 저녁엔 글을 썼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식당을 열었다. "왜 스페인이었냐고 물으면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스페인에서 자유롭게 꿈꾸는 시기를 보냈고, 그 시간 동안 먹은 음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바늘>로 등당한 작가 천운영 동문(신문방송학과 90)은 최근 '돈키호테의 식탁'이란 스페인 식당을 차리는 새 도전을 감행했다. 식당에서의 경험도 언젠가 소설이 되겠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혼자서 식당을 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저렴한 비용에 이끌려 리모델링 중인 건물을 골랐는데, 때문에 상수도 배치와 같은 문제까지 처음부터 신경써야 했다고. "맥주만 해도 그래요. 다른 식당에서 마실 때는 몰랐는데, 제 식당에 놓으려니 맥주 종류를 고르는 것부터 기계 설치, 배달, 사용 방법 익히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그저 밥해주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웃음) 사업은 적응이 잘 안 되네요." 하지만 식당을 차리고 운영하는 이 과정들이 천 동문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가온다. “식당을 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예요. 일상적으로 존재한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분야의 사람들은 어떤지를요. 이 경험들을 모아 새 소설을 쓰고 싶어요. 어떤 소설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천 동문은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녹이는 작가다. 소설은 '스며들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천 동문의 생각이다. “등단작인 <바늘>도 오래 사귄 친구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어요. 소설 속에는 마산 대표가 되고 싶어 문신을 새긴 인물이 나오는데, 제 친구 중에 부산 대표가 하고 싶어 자음 비읍(ㅂ)과 용 문신을 새긴 친구가 있거든요. ‘왜 부산대표가 하고 싶지', '왜 문신을 새겼지' 등을 궁금해했던 게 소설에 도움을 줬어요." ▲천운영 동문의 식당 한쪽 벽에는 천 동문이 그동안 수집한 물건들이 놓여있다. 돈키호테와 관련된 물건들이 눈에 띈다. 마지막까지 좋은 작가로 남고 싶다 스페인 식당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들고 감행한 천 동문. 그러나 천 동문은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천생 작가다.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려면 제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해요. 요즘 말로 '꼰대'되지 않게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고 모험해야 하죠. 그 과정에 요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故) 박완서 선생님처럼 마지막까지 좋은 작가로 남고 싶어요." 천 동문의 데뷔작을 심사했던 박완서 작가는 "우리는 한 예외적인 작가의 탄생을 예감한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요리가 좋아 식당을 차리고, 이를 다시 소설로 구상할 계획을 세우는 천 동문. 박완서 선생이 생각한 의미와는 다를지라도 이미 '예외적인 작가'가 됐다. ▲천운영 동문은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사진/ 김승준 기자 nzdave94@hanyang.ac.kr

2017-01 08

[동문]이론과 실무경험 고루 갖춘 광고학 연구자

김봉철 동문(신문방송학과 81)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을 거쳐 지난 2004년부터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십 편의 논문과 학술 발표, 각종 저서를 집필하면서도 한국광고학회 부회장과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이사를 지내는 등 광고 및 언론 분야에서 연구자와 실무자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김 동문이 올해 가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한국광고PR실학회 7대 회장에 선출됐다. 한국광고PR실학회 7대 회장 선출 "어깨 무겁다" ▲ 김봉철 동문(신문방송학과 81) 한국광고PR실학회는 광고 및 PR을 전공하는 연구자와 실무자로 구성된 전국 규모의 학회다. 광고 이론과 실무를 겸하는 산학협력 중심의 학회로, 해마다 두 차례 정기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인 '광고PR실학연구'도 1년에 4번 발행한다. 김 동문은 "전국 규모 학회의 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며 "학자로서 자기 분야의 학회장을 맡는 것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임기가 오는 가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회장으로서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 그는 "정식 취임 전까지 역대 회장들이 이룬 업적을 살피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김 동문은 2004년부터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광고의 이론화와 과학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단 점이나 현업에 있다가 교수직에 올랐다는 점에서 핸디캡을 느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논문 집필과 학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덕분에 교수가 된지 3년 만에 조선대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쓴 교수로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2011년 한국PR협회 최우수 논문상, 2013년 한국광고학회 제일기획 학술상 등을 수상한 김 동문은 현재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일련의 활동에 대해 그는 “보도로 인해 침해를 입은 사람이 언론을 상대로 피해구제를 요청할 때, 이들의 고충을 듣고 원만한 합의를 모색하는 역할"이라며 "중재가 끝난 후 양쪽의 당사자가 모두 만족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실무 경험이 광고학 연구에 큰 도움돼 광고학 분야에서 뼈가 굵은 김 동문이지만, 대학에 들어올 때만 해도 광고계로 나설 계획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책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졸업 후가 어려울 거란 생각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신문방송학과에서 광고를 배우는 지도 몰랐다는 그. 우연한 기회는 대학교 4학년 때 찾아왔다. "제일기획에서 주최한 대학생 광고논문 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광고 쪽으로 진출하게 됐습니다." 김 동문은 졸업 후 IMF로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약 11년 동안 광고 회사에서 일했다. 1997년도에 회사를 나와 공부를 시작해 우리대학에서 1996년 광고홍보학 석사학위를, 2002년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해부터 김 동문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으로 2년간 재직했고,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2004년에 부임했다. 광고학은 실용 학문이며, 때문에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김 동문은 "광고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연구위원 경력이 교수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한국광고PR실학회가 2016년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한 모습이다. (출처: 한국광고PR실학회) 방송 광고의 위기, 어떻게 타개할까 김 동문의 생각에 지금은 한국 방송 및 광고의 위기다. "지상파 방송들의 주 수익원은 광고인데, 지상파 광고가 줄어들고 있어요. SNS 등 다른 광고 매체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서 기업들이 광고비를 많이 안 쓰고 있어요." 때문에 김 동문은 방송사가 광고 외의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외부적으로는 경기가 활성화 돼 기업의 광고비 지출이 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학 수준에서는 이론과 기술을 접목한 신문방송학 교육이 필요하단 것이 그의 생각. 김 동문은 "인간이 있는 한 커뮤니케이션은 사라질 수 없고, 때문에 신문방송학도 인간이 있는 한 꼭 필요한 분야"라면서도 "과거의 신문방송학이 저널리즘 위주의 학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기술과 이론을 접목한 '융복합 학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연구자와 실무자의 영역을 넘나드는 김 동문은 교수 생활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자신의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직업이 성직처럼 느껴진다"는 그. 마지막으로 언론, 방송, 광고 분야 등으로 진출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무슨 일이든 즐기면서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방송이나 광고 등은 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취업이 어려워 낙담하는 후배들이 많겠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길 바랍니다." 글/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2017-01 03 중요기사

[동문]남성 프로배구 '여성 주심 1호' 전영아 심판의 10년

2006년 뉴스H(구 인터넷한양)에는 프로배구 ‘2호 여성 주심’으로 데뷔한 전영아 동문(경기지도학과 94)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초등학교 때 배구에 입문해 선수 생활을 거쳐 프로배구 V리그의 심판으로 당당히 변신에 성공한 그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전 동문은 남성 프로배구에 진출한 '1호 여성 주심'이란 새 타이틀을 달았다. 지난 만남 이후 1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기 위해 전 동문을 찾았다. 남성 배구리그 ‘1호 여성주심’ 새로운 역사를 쓰다 지난해 12월 18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OK저축은행의 프로배구 남자부 V리그 경기. 심판석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등장했다. 심판석에 앉은 이는 여자부 경기에서 심판을 보던 전영아 동문이었다. 남자부 경기에 여성 주심이 투입된 것은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처음있는 일. 차분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한 전 동문은 매끄러운 경기운영을 보여주며 무리 없이 경기를 마쳤다. 이로써 전 동문은 2006년 프로배구 ‘2호 여성 주심’에 이어 10년 후인 지난해 남자부 ‘1호 여성 주심’에 오르며 대한민국 프로배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12년 경력의 고참이 된 전 동문은 “프로배구 사상 최초라는 사실에 특별함을 느낀다”며 “역사적인 날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남성 주심이 주로 섰던 남자 프로배구 리그에서 전 동문이 경기에 나선 데는 서태원 심판위원장의 영향이 컸다. “서태원 위원장님은 파격적인 심판 배정을 서슴지 않는 분이에요. 덕분에 제가 관행을 깨고 주심으로 나설 수 있었죠." 물론 하루 아침에 파격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다. 전 동문은 ‘검증의 시간’을 잘 견뎠다고 했다. 지난해 7-8월 한·중·일 친선배구대회가 특히 중요했다. 당시 부심으로 두 차례 심판 기회를 얻은 전 동문은 경기를 잘 소화해내면서 여성도 남자 경기에서 심판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영아 동문(경기지도학과 94)이 지난해 12월 18일 열린 우리카드와 OK저축은행의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에서 심판을 보고 있다. (출처: 전영아 동문) 인터뷰 이후 10년을 묻다 전영아 동문이 본지와 인터뷰를 한지도 10년이 지났다. 전 동문은 10년 동안 있었던 일들 중 ‘빅(BIG) 3’를 꼽았다. 첫째는 역시 '1호 여성 주심'이 된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것, 그리고 심판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프로 심판이 되며 목표로 삼았던 국제심판이 됐단 사실이 가장 중요해요." 전 동문은 2010년 국내 시험을 통과, 1년 동안 지원자 예비 코스를 밟은 후 2012년에 당당히 국제심판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국제심판 자격증 취득 후 겹경사가 이어졌다. 최고의 심판에게 주어진다는 ‘심판상’을 수상한 것. 8년 만에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 시상식에서 심판상을 받으며 베테랑으로 인정받았다. ▲전영아 동문과 지난 2일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하고 최고의 심판 자리에 오르기까지 탄탄대로를 걸은 것만은 아니다. 전 동문은 프로 심판으로 섰던 초기, 오심이나 미흡한 경기 운영에 대한 악플로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불특정다수에게 비난받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연예인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또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는 두 차례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힘든 순간마다 전 동문이 마음을 다잡고 속으로 외친 한 마디는 ‘할 수 있다’였다. “처음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좌절도 많이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가족들과 부모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됐죠.” 전 동문은 굳은 다짐 끝에 응시 가능 연령 안에 들어가는 마지막 해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전 동문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등 여러 국제 경기에 참여하며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V리그에서도 든든한 12년차 베테랑이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묻는 말에 전 동문은 “과거엔 원칙대로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커서 감독이나 선수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며 “이제는 운용의 묘를 살려 부드러운 경기 진행을 하도록 신경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판석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전 동문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오심이다. “경기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오심이 났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요. 오심은 인간이라면 피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모호한 상황에선 부심, 선심과 이견을 조율해요. 시각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청각도 최대한 활용하고요." 덕목 지키는 심판 되고 싶어 전영아 동문은 자신의 심판 생활의 원동력이 된 덕목으로 정확한 규칙과 규정 숙지, 철저한 자리관리 및 평정심 유지를 뽑았다. “심판이라면 규칙과 규정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게 제일 중요해요. 다음은 컨디션이나 건강 유지 차원에서의 자기관리죠. 심판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평정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준비된 심판으로서 양팀 감독과 선수, 관객 등 모두가 만족하는 경기를 마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전 동문이다. 그에게 남은 목표는 이제 과거보다 많지는 않지만, 조심스레 다음 목표를 말하는 목소리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프로 심판으로서 건강을 유지하면서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국제배구연맹(FIVB)의 지명심판으로 올림픽 경기에 나서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도움이 컸어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전영아 동문이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말이다.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사진/ 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