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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04 중요기사

[동문]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되고파

재즈 음악은 즉흥성과 유연함이 매력이다. 보컬은 악보에 적힌 박자와 음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그루브와 감성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채워 나간다. 그래서 재즈에는 노래하는 이의 개성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 있는 재즈의 특성. 그러나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 97)은 그것을 재즈의 매력으로 손꼽는다. 따듯한 노랫말과 몽환적인 보이스로 풍성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재즈 보컬리스트 조정희 동문을 만났다. 늦깎이 음악인, 재즈를 만나다 조정희 동문은 재즈 보컬리스트다. 지난 2011년 재즈 프로젝트 밴드 ‘박근쌀롱’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며 국내 재즈씬(Scene)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녀는 ‘3월의 토끼’라는 밴드를 결성해 재즈 보컬로 본격 데뷔했다. 그 밖에도 다수의 개인 앨범을 발표했으며 ‘엔젤아이즈’, ‘굿와이프’ 등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며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그녀만의 입지를 굳혀왔다. 조 동문의 음악을 논할 때 밴드 '3월의 토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재즈 프로젝트 밴드 '3월의 토끼'로 데뷔 앨범을 발매했고, 이 때 작업한 세 편의 앨범은 재즈 음악계에 보컬 조정희를 알리는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3월의 토끼'라는 귀여운 이름에는 사실 그녀의 음악적 철학이 담겨 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잖아요. 이처럼 많은 분들이 저희를 통해 재즈 음악에 빠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아 지은 이름이에요. 아마 이 때부터 대중들과 재즈로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인 조정희 동문(국어국문학과 97) 재밌는 점은 그녀가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부 시절 조 동문은 그저 음악을 좋아하던 국문학도였다. 대학 생활은 즐거웠고, 학과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졸업을 목전에 두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불현듯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조 동문은 졸업 후 뒤늦은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개인 레슨을 받으며 기본기를 다졌고 맨몸으로 무대에 올랐다. 비교적 늦은 시작인만큼 더 많이 부딪히고 깨지며 실력을 쌓았다. “젊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 좋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잊혔으니까요.”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 보컬리스트로 데뷔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음악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황의 시간이었다. 대중가요부터 팝, 메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런 그녀의 방황을 끝낸 것이 바로 재즈였다. 재즈를 만난 후 그녀는 온전히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늘 존재했지만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녀의 음악을 찾는 이들도 점점 많아져 갔다. 재즈,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 되길 어느덧 15년 차 음악인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국어국문학과 출신답게 최근에는 윤동주 시인의 동시에 재즈 선율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지원한 창작 동요제에서는 결선 진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앨범 작업 역시 진행 중이다. 그녀는 이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들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음악적 계획도 덧붙였다. ▲지난 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정희 동문이 재즈 대중화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재즈와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래서 그녀는 설명이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재즈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재즈는 어렵고 낯선 장르인 것 같아 늘 안타까워요. 과거에는 나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하는 재즈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재즈가 됐으면 해요.” 음악 안에서 가슴 뛸 것 조 동문은 현재 우리대학 실용음악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그녀는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전하는데 주력한다. 오디션을 위한 테크닉보다는 노래하는 이의 감성이 담긴 진짜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는 그녀. "퍽퍽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인의 꿈을 잃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무척 대견하다"는 조 동문은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들을 향해 “소신을 잃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조정희 동문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소신껏 좋아하는 음악을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글/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8 28

[동문]성실함이 만든 특별한 바둑 인생

가로, 세로 19줄의 정방형 세계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두뇌 싸움, 바둑. 정수현 동문(영어영문학과 76)은 삶의 대부분을 바둑과 함께했다. 정 동문의 성실함은 그의 커리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1기 프로신왕전 우승,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 준우승'이란 수상 경력을 기본으로 바둑 관련 4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최초의 바둑학 교수’ 타이틀은 정 동문의 바둑인생을 대변한다. 바둑을 향한 꿈을 꾸다 정 동문은 고등학생 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껴 책을 보며 공부했고, 나중에 실력이 늘자 프로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일본에서 활약한 기성(棋聖) 우칭위안(吳淸源) 9단이었습니다. 창의적인 발상과 발군의 기량을 가진 우칭위안 9단의 기보를 많이 연구했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갔지만, 당시 제도가 중단되어 반년동안 정 동문 혼자 연구생을 하기도 했다. "저는 주로 책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타입이었고, 그래서 바둑도 좀 이론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정 동문은 주니어 기사들이 출전하는 타이틀전인 제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하면서 바둑계에 이름을 알렸다. “제게 힘든 상대인 강훈 6단과 결승에서 만났죠. 끈질긴 스타일의 강훈 6단에게는 상대 전적이 좋지 않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둬서 2대1로 승리를 거두고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선 잇달아 준우승을 차지했다. “제가 빨리 두는 바둑에 좀 능한 편입니다. 대학생 때 시합을 빨리 하고 강의에 참석하려다 보니 빨리 두는 습관이 생겼죠. KBS바둑왕전, SBS바둑최강전 모두 속기전인데, 결승에 올랐다가 이창호 9단에게 두 번 다 고배를 마셔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한양대 학부시절엔 프로기사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바빴다. 대학생 때 후배와 ‘한양기우회’라는 바둑모임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대학바둑모임의 이상적인 모델로 인정 받고있다. “시합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1년 평균 시합바둑을 30판에서 40판 정도를 뒀어요. 프로기사들은 연습으로 바둑을 두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둔 바둑을 연구,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바둑연구회를 몇 개 만들어 소집단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쓰곤 했죠." 후배와 바둑모임을 만들자고 상의를 한 후 벽보를 붙였다. 노천극장에서 학생들이 모여 기우회를 조직했고 바둑동아리 방에서 바둑을 두고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을 했다고. “나중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바둑특강도 열기도 했죠.“ ▲현재 정수현 동문은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의 해설자를 맡고 있다. (출처: 세계일보) 바둑이라면 뭐든지 OK 정 동문은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바둑 읽는 CEO’, ‘현대바둑의 이해’ 등 40여 권의 책을 쓸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왔다. “처음에 쓰게 된 계기는 미국의 바둑행사에 갔을 때 한 교포가 제발 영어로 된 바둑책을 하나라도 써서 보내달라고 한 것 때문이었죠." 일본에서 나온 책만 있으니 한국 교포로서 좀 아쉽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이 발동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 출판사에서 요청해 계속 저술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정 동문은 바둑학과가 생기기 전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7년에는 별명에 불과했던 바둑학 교수에 실제로 오른다. 프로기사 활동 중 최초로 바둑학과가 설립된 명지대 측으로부터 바둑학 교수직을 제의 받은 것. 최초의 바둑학 교수가 된 정 동문은 20년 가까이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프로기사회와 한국바둑학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다. “최초로 바둑학과 교수가 되어 국제바둑학 학술대회를 열고 바둑학회를 조직했어요.” 이밖에도 KBS일요바둑, 바둑왕전, 바둑TV 등의 해설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바둑방송에서는 한 판을 한 시간 정도 방영할 경우 바둑도 그 정도의 시간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다. 너무 일찍 끝나거나 너무 오래 가면 방송편집이나 해설 모두 힘이 든다고. “가끔 시합바둑이 30분만에 끝나버려 나머지 시간을 해설로 메우려고 땀을 흘리기도 합니다(웃음).” 바둑계에서 정 동문의 왕성한 활동은 유명하다. 프로기사를 거쳐 바둑 학계, 나아가 해설자까지 인생 전반을 바둑에 바친 셈이다. ▲정수현 동문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바둑경영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이투뉴스) 성실함이 만든 바둑 인생 정 동문의 꾸준한 바둑 경력의 원동력은 성실함이다. 그의 좌우명도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불성무물(不誠無物)'.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할 때 보람이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성을 다해 하다 보면 의미있는 결과를 얻게 되거든요.” 그에게 바둑은 만병통치약이다. "저는 좋아하는 바둑을 직업으로 가졌고, 바둑학을 연구하여 새로운 바둑의 세계를 발견했어요. 학생들에게 종종 ‘바둑은 만병통치약(panacea)인가?’라는 강의를 합니다. 바둑이 인간생활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죠.“ 정 동문은 바둑에 대해 '대단히 흥미진진하면서도 그 안에 삶의 교훈과 지혜가 담긴 문화적 이기'라고 표현했다. “근래에는 바둑이 글로벌 마인드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바둑을 알면 세계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으니 교양으로 바둑을 배우는 것도 추천해요.” ▲불성무물(不誠無物: 정성은 모든 사물의 근본이므로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음)의 좌우명처럼 정수현 동문에겐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 (출처: 이코노믹 리뷰)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2017-08 23

[동문][한양피플] 30년을 뛰어넘어 마주한 끝7학번 선후배

지난 5월 25일 생활과학대학에서는 학번의 마지막 숫자가 7로 끝나는 67, 77, 87, 97, 07학번 동문이 모이는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됐다. 말 그대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이 열린 것. 이 행사에 참석한 87학번 예명지 동문과 17학번 강태훈 학생을 만나 끝7학번 한양인의 생각과 고민, 학교에 대한 애정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생활과학대학 동문이 함께한 자리 입학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을 맞이하는 동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끝7학번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동문의 날’. 재미있는 기획만큼이나 각자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후배가 함께한 귀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생활과학대학의 역사 소개와 재학생 밴드의 축하 공연, 선후배가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 등이 마련됐다. 또 행사에 참석한 의류학과, 식품영양학과,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동문들이 17학번 재학생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약속하는 훈훈한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예명지(실내건축디자인학과 87) 동문은 “제가 졸업한 학과가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자랑스럽다”며 “보석 디자인이라는 생소한 분야로 가기 전에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계기가 학교에서 배운 인테리어 디자인이었다”며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의류학과 1학년 대표로 행사에 참여한 강태훈(의류학과 17) 학생은 “졸업 하신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뵐 수 있어서 좋았다”며 “한양인으로서 새삼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꼈고, 저 역시 앞으로 후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17학번 강태훈 학생(왼쪽)과 87학번 예명지 동문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양의 의미는 달라도 애교심은 같아 생활과학대학 선후배로 자리를 함께한 예명지 디자이너와 강태훈 학생은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나눴다. 입시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다가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의류학과로 진학했다는 강태훈 학생. 하지만 요즘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입학을 하고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 공부를 한 친구들이 많아서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불안하다는 것. 그런 후배의 모습을 보며 예명지 디자이너는 “지금은 한창 그런 고민을 할 때”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제가 우리나라 1세대 보석 디자이너인 셈인데, 당시만 해도 그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 역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을 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때 중도 포기했다면 보석 디자이너로서의 25년 인생은 없었겠죠.” 그가 보석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다. 하고싶은 것을 찾은 후에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활동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도전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그 결과, 명실상부 해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해요. 지금 당장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열심히 하세요. 하지만 1학년 때는 무엇보다 많이 놀아야 해요.(웃음)” 자신의 꿈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나아간다면 10년 뒤 강태훈 학생은 멋진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해 있으리라. 반면 한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예명지 디자이너는 또 어떤 근사한 꿈을 꾸고 있을까. “지금까지 국제적인 활동에 집중하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올해는 한 박자 쉬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쉼표가 필요한 시기거든요. 10년쯤 후에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강태훈 학생에게 한양대가 새로운 시작의 첫발을 내딛는 디딤돌이라면, 예명지 디자이너에게는 늘 그립고 고마운 뒷산 같은 존재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불끈 힘이 솟는 곳, 모교란 바로 그런 것이다. 30년이란 시간의 간격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한양대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학교에 대한 사랑만큼은 같은 크기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22

[동문]정장도 퍼즐 한 조각 꼭 끼워 맞추듯이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와 갓 닦은 듯 반짝이는 구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은 익숙했던 사복을 벗어던지고 정장을 입는다. 하지만 만만찮은 맞춤정장의 가격과 빠듯한 예약제 시스템 때문에 정장 하나 맞추기도 힘든 것이 현실. 이러한 사회 초년생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안지수, 신요섭 동문(이상 중문과 06)은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2030 세대를 위한 맞춤 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Suitable’의 뜻처럼 맵시 나는 옷을 추구하다 “처음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수트라는 단어를 온종일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영어의 ‘suitable’이라는 용어가 떠올랐죠. ‘수트’와 ‘에이블’의 합성어로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이렇게 ‘수트에이블’은 지난 2015년 3월 정식 출시를 거쳐 2030 세대를 위한 정장과 기성복 판매를 시작했다.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고 있던 안지수, 신요섭 동문은 자연스레 공동 대표가 됐다. 현재는 ‘Better design, better fit’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개인의 체형에 맞는 정장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기존 맞춤정장의 불편함을 보완해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장을 맞추려면 강남, 광화문 일대의 숍을 2~3차례 방문해야 해요. 예약도 꼭 해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비용도 그렇게 싸지 않죠. 이런 점들에서 불편함을 겪는 고객들이 많아서, 저희는 고객분들이 편한 시간에 회사로 찾아가서 원단 선택부터 치수 측정까지 다 해드리고 있어요.” ▲자신이 디자인한 ‘수트에이블’의 옷들 앞에서 자세를 취하는 안지수 동문. 그가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 또한 직접 만든 옷이다. 수트에이블은 '모든 고객들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철칙을 지킨다. 그리고 이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지인의 소개로 몸이 불편하신 분의 옷을 맞추게 됐어요. 다른 매장 몇 군데를 방문하셨는데, 정장을 맞추지 못한다는 대답을 듣다가 저한테까지 연락이 닿은 거예요. 그분의 정장을 맞춰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간과 공을 들였죠. 옷이 완성된 후, 그 옷을 입고 절 다시 찾아오셨는데, 정말 행복해 보이고 멋있으셨어요.” 안 동문은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계기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 꼭 맞는 옷을 맞춰드리려고 노력한다.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서일까. 수트에이블의 재구매율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계속해서 단골을 유지하기 위해 안 동문과 신 동문은 수트에이블의 야심작인 ‘테일러 카’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카는 트럭을 이용해 직접 찾아가는 맞춤정장 서비스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객님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계점을 느꼈어요. 카페는 주위 시선 때문에 불편하고 회의실은 예약이 차 있을 때도 있어서 푸드트럭의 개념처럼 테일러 카를 고안해냈어요. 고객님들이 차 안에서 편하게 옷을 입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성을 추구한 아이디어예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1년 10개월 동안 마케팅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안 동문은 패션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패션과는 거리가 먼일을 하다 보니 만족도가 굉장히 낮았다는 그다. “평생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제가 밤낮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패션 분야였어요. 그 생각이 회사를 나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죠.” 마침 신 동문도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나오고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학부 시절 때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진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다 이직이 아닌 패션 분야로의 창업을 택했다. ▲안지수 동문은 인터뷰 내내 패션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현재의 직업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중어중문학과 출신인 두 사람이 패션 업계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학부 시절 때부터 옷과 패션에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은 안 동문의 설명.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매우 많았어요. 꾸미는 걸 좋아해서 1학년 때 하얗게 염색한 폭탄 머리를 하고 학교를 들어왔죠. 그때 당시 제일 튀었고, 항상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입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줬고, 제가 일러준 옷을 사서 입고 오면 기분이 좋았어요.” 안 동문은 지금도 고객들에게 정장을 맞춰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별로 어울리는 옷 색깔과 헤어스타일도 제안해준다. 패션 제안을 해주는 것에 있어 보람을 느끼는 그다. 일을 시작할 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선생님에게 옷 만드는 것을 배울 수 있던 것도 창업에 큰 힘이 됐다. 25년가량 맞춤정장을 전문으로 하셨던 분을 은사님으로 모시면서 정장 관련 분야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하지만 비전공자인 안 동문이 단숨에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저는 옷을 좋아하고 사서 입기만 했지, 만든다는 생각은 정말 못 했었어요. 그래도 매일 같이 선생님을 찾아가 배운 덕에 창업을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죠.” 옷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 전파하고 싶어 아직은 창업에 있어 유년기를 거쳐 가는 기업이지만, 벌써 ‘수트에이블’의 옷들은 중국 백화점의 편집숍에도 소량 입고 되고 있다. 안 동문은 "앞으로 더 넓은 시장으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고 했다. “중어중문학문과를 전공했다 보니, 언어적인 부분에서는 유리할 것 같아요. 벌써 중국에서 작게 하고 있지만, 더 큰 인정을 받고 싶고, 저희 옷을 많은 사람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수트에이블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바로 고객들이 옷을 입음으로써 느끼는 만족감과 높은 자존감이다. “남자분들 출근 하기 전, 거울을 봤을 때 유독 마음에 드는 날이 있잖아요. 전 여자친구 만나도 꿀릴 게 없을 것 같고(웃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수트에이블’의 옷을 입고 문 밖으로 나갈 때, 발걸음 하나하나가 희망에 차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옷을 입고, 겉으로만 멋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멋있어졌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이 날의 ‘패션피플’ 안지수 동문. ‘수트에이블’ 상의와, 롱 슬랙스, 그리고 츄바스코 샌들로 ‘데일리룩’ 을 선보였다.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gmail.com

2017-08 21

[동문]“셧다운제? 연구해보니 효과 없더라”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이라면 대부분 아는 제도가 있다. 매일 밤 특정 시간이 되면 많은 이용자가 신데렐라처럼 사라지는 제도, 셧다운제.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로그아웃 해 적용자가 아니더라도 낯설지 않은 제도다. 지난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된 법으로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행 취지다. 하지만 실효성과 정당성 등 여러 측면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성협 동문(경제금융학과 석사)은 게임 매니아다. 어렸을 적 부모님 몰래 게임 대회에도 나가 우승할 만큼 게임을 좋아하고, 열정이 있었다. 이를 이어 학부 졸업 후엔 게임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던 중 전공 분야인 경제학을 게임 산업과 융합해 보고자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게임시간, 수면, 여가활동 등에 미치는 효과 분석’으로 석사 학위 논문을 냈다. 시행 전후 비교: 유의미한 영향 없다 셧다운제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이유로 만들어졌다. 셧다운제에 의하면 만 16세 미만은 밤 12시~오전 6시 사이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만일 이를 어기는 경우가 생기면 담배, 술 판매와 비슷하게 온라인 게임을 제공한 업체에게 처벌이 가해진다. 때문에 넥슨, 블리자드 등의 온라인 게임 업체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만 16세 미만 이용자의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지난 18일 홍성협 동문(경제금융학과 석사)을 만나 셧다운제의 실효성을 연구한 내용에 대해 들었다. 홍 동문는 셧다운제 시행 직전과 직후의 청소년들을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비교에 쓰인 방법은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s)이에요. 한 정책이 적용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방법이죠.” 홍 동문은 셧다운제 적용을 받지않은 2011년 기준 만15세와 셧다운제를 적용받은 적 있는 만14세를 비교했다. 자료는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미디어패널조사’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패널 자료를 사용했다. 그 결과 셧다운제 시행의 실효성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셧다운제 시행 이후 게임 이용시간, 수면시간, TV시청 시간 등 여러 활동의 시간을 분석했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찾을 수 없었어요.” 홍 동문의 논문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이 약 8.5분 증가하고, 여가시간이 0.6분 감소하는 등 오차 범위 내의 차이를 나타냈다. 그 외에도 수면시간, 독서, TV시청, SNS이용 등 생활 전반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해서 연구도 더 재밌었다” 홍성협 동문이 셧다운제를 연구 주제로 잡은건 본래 게임을 좋아하던 영향이 컸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할 때부터 홍 동문은 게임과 관련한 논문을 쓰고자 했다. 석사 과정을 밟은 건 게임 회사에서 든 생각 때문. “다니던 회사에서는 수출 쪽을 맡고 있었어요. 개발자가 아니다 보니 직접적으로 게임에 관한 일을 하기는 어려웠죠. 그러던 중 경제학적 분석을 게임 회사에서 써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게임을 목표로 잡고, 경제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았다. 그러다 셧다운제의 실효성 연구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다. “교수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경제학에서 잘 안다루던 분야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을 좋아하셨죠.” 홍 동문은 이번 석사 논문을 학회지에도 투고하려고 한다. 게임 관련 정책을 경제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이기에, 응용경제학회나 게임학회 등에 투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홍 동문은 “이번 연구가 향후 셧다운제 논의에도 시사점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실효성이 없다면 제한이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마침 대통령의 아들도 게임 개발자인데, 좀 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해요.(웃음)” 보통 논문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논문 작성 자체도 어렵지만 논문에 들어갈 연구를 수행하는 일도 어렵고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홍 동문은 좋아하던 연구라 상대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번 논문을 쓰고자 석 달을 넘게 연구했어요. 주로 공개된 자료들을 정제해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들어 썼는데, 좋아하는 게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몰두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겨울에 학위를 취득한 홍성협 동문이 졸업 증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8 16

[동문][꿈꾸는 청춘] 빅데이터로 여성들의 속사정을 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는 고객별로 원하는 제품을 주문할 수 있는 하이퍼 퍼스널라이징(초개인화)이다. 하지만 국내 속옷 시장은 여전히 고객이 정해진 사이즈에 맞춰야 한다. 이에 럭스벨의 김민경 대표는 맞춤 브래지어로 속옷 시장의 변혁을 선도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과감하게 속옷 시장에 도전한 김민경 대표를 만나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럭스벨 대표 김민경(건설환경공학과 03) 동문 속옷 시장에 출사표 던진 엔지니어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고객들에게 ‘진짜 편하다’, ‘몰랐던 나를 알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거든요.”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사업이기에 지난 2015년 10월 법인 설립 후 사업 방향을 잡는 데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쏟아야 했던 김민경 대표. 시범 사업을 통해 데이터 및 생산 인프라 구축 후 본격적으로 ‘사라스핏’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그는 누구보다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내 기성 속옷 브랜드의 브래지어 사이즈는 기껏해야 열 개 남짓입니다. 하지만 고객마다 체형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이에 맞출 수는 없어요. 사라스핏은 1대1 컨설팅으로 고객의 가슴 모양, 흉곽의 크기와 형태, 지방 분포 등을 정확하게 측정한 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이즈, 날개 각도, 어깨끈 위치 등 최적의 브래지어를 제작해드립니다.” 아무리 예뻐도 어딘지 모르게 착용감이 불편하면 손이 가지 않는 법. 천편일률적으로 디자인과 볼륨감만 강조하는 국내 이너웨어 시장에서 자신만의 사이즈와 핏에 맞는 속옷을 만날 수 있다니, 그동안 하소연도 못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많은 여성들이 두 손 들어 반길만한 희소식이다. 게다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니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더해진다. “제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 정확한 수치를 중시합니다. 이를 통해 편안함을 찾아주는 공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와도 접목하고 싶었고요.” 흡사 디자이너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김민경 대표는 의외로 건설환경공학과에서 교통시스템공학을 전공했다. 사업 아이디어도 독특한데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라니, 도대체 속옷 시장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유학 시절 스타트업 열기 경험 대학 졸업 후 김민경 대표는 삼성SDS에서 교통시스템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공을 충실히 살리고 있던 터라, 장차 속옷 시장은 물론 창업에 뛰어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엔지니어 기반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사업 방향은 경영기획부서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경영학 공부에 갈증을 느꼈다. “엔지니어로서 펼치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화되기까지 많은 벽에 부딪히면서 경영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전략이나 마케팅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 미시간대학의 MBA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업은 그의 선택지에 없었다. 당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태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당당히 회사를 차리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젊은이들을 통해 창업의 열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 그러면서 귀국 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대기업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회사의 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은 감히 키우지 못했다. 워낙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성격 탓이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신규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해보고 싶다는 열망의 싹이 그때부터 시나브로 자라고 있었다. MBA 취득 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시카고 무역관으로 일하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귀국 후에는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걸스인텍(Girls in Tech)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기술 분야의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을 많이 만났다. 창업하기 직전까지는 반도체 관련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어깨너머로 스타트업 경영 노하우를 배웠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창업에 대한 용기를 키워나갔다. 차근차근 창업 기반 다지며 도전 도전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유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김민경 대표. 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이력을 보면 누구보다 창업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착실히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이면에는 새로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 대신 무작정 창업에 뛰어들기보다 차근차근 사업 기반을 다지며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때가 됐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일찍이 사업 아이템으로 점찍어 놓았던 여성 속옷 시장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미국 유학 시절, 거리낌 없이 속옷을 패션의 하나로 드러내고 여성 중심의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그곳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제안해주는 서비스도 이미 시작된 상태였죠. 무엇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속옷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국내와는 달리 다양한 브랜드들이 여심을 얻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한 것이다. 김 대표는 속옷 전문 디자이너에게 패턴과 디자인 수업을 받으며 관련 전문 지식을 쌓고, 온라인 설문 및 오프라인 피팅룸을 운영하며 고객 데이터를 차곡차곡 구축했다. 이를 통해 30여 개의 수치 데이터를 입력하면 추천 사이즈가 나오는 알고리즘을 만들어가고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고객에게 최적의 사이즈를 제안할 수 있는 오프라인 피팅룸을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즌별로 유행 색상, 레이스 등에 맞춰 트렌디한 디자인을 개발해 생산 라인을 활발히 가동시킬 계획이다. 현재는 백화점 및 편집숍 등의 숍인숍 입점을 추진 중이다.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을 받은 고객의 90%가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동안 말 못할 불편을 참아야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여성의 80%가 자신의 사이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보호해야 할 가슴을 불편하게 했던 거죠. 여성들이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 김민경 동문은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라고 말한다. 최종 목표는 ‘물음표’ 김민경 대표는 컨설팅에서 알고리즘 개발, 디자인 및 생산, 판매 시스템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막 도움닫기를 마친 상태다. 일찍이 대학 시절부터 창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지만 당시는 전공 공부에만 열중했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김 대표. 그렇기에 후배들은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야를 넓혀가길 바란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도 좋지만 창업도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멋진 일입니다. 회사원보다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신의 성향을 고려해 신중히 도전해야 합니다. 아이템과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경영, 파트너십 등 매니지먼트 능력을 타고났다면 바로 도전해도 좋지만, 저처럼 회사 생활을 통해 기업의 생리를 배운 후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마련이 관건이다. 그동안 김 대표는 정부 지원금이나 엔젤투자를 통해 피팅룸을 마련하고 디자인을 개발했다. 현재는 다음 시즌 생산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앞으로 중국과 대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아시아가 이제 막 속옷 시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거든요. 시스템만 구축하면 얼마든지 해외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아직은 미정이라고 답하는 김민경 대표. 한 평 남짓의 피팅룸에서 시작된 그의 도전이 무한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16

[동문][人사이드 人터뷰] 한양대 최초의 항공사 CEO, 도전과 성취의 날개를 달다

지난 4월 3일 최종구 동문이 이스타항공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최 대표는 2008년 케이아이씨 전무를 역임했으며, 2013년 2월 이스타항공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사내에서 영업통으로 불리며 실적 도약을 이끌었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이스타항공 대표 최종구(정치외교학과 84) 동문 창립 10주년, 제2의 도약 꿈꾼다 국내 LCC(Low Cost Carrier, 저비용항공사) 이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내선은 60%, 국제선은 30%를 넘어섰다. LCC에 소비자의 시선이 쏠리면서 이스타항공 역시 국민 모두에게 익숙한 항공사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저비용항공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영역은 동북아시아 노선. 그중에서도 국내 LCC가 취항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 중국이다. 하지만 최근 한・중 외교 문제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줄면서 항공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종구 대표는 “대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대표이사라는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하지만 기존의 업무 경험과 다양한 대외 업무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립 10주년인 올해를 ‘제2의 도약’ 원년의 해로 만들어 최고의 글로벌 항공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항공 사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이스타항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LCC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모든 LCC가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매출 3,797억 원, 영업이익 64억 원을 달성하며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면서 올해는 매출액 5,000억 원 이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이는 이스타항공의 모든 임직원이 최고의 항공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하나 되어 매진한 결과다. 중거리 노선 확장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이스타항공은 2007년 10월 기존 대형 항공사 위주의 항공 시장 독과점을 깨고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항공 여행을 대중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동남아, 일본, 중국 등 24곳의 국제노선과 5곳의 국내노선을 운항하고 있으며, 베트남 다낭과 일본 삿포로에도 취항을 앞두고 있다. 또 현재 운영 중인 17대의 항공기 외에 올해 추가로 2대의 항공기를 들여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동아시아를 넘어 중거리로 노선을 확장하고 있는 적극적인 행보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7월 홍콩과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LCC 동맹 연합체인 ‘유플라이 얼라이언스(U-FLY Alliance)’에 합류하며 국내 LCC 최초로 인천-홍콩-치앙마이를 잇는 인터라인(노선 제휴) 사업을 시작한 것. 이어 인천-홍콩-쿤밍, 인천-홍콩-나트랑, 인천-나리타-홍콩, 인천-오사카-홍콩, 인천-후쿠오카-홍콩의 5개 노선을 추가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해 가고 있다. 다양한 노선을 운항하고 있지만, 최종구 대표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지난 2015년 8월 이희호 여사의 평양 방북 특별 전세기를 운항한 것이다. “LCC 최초로 평양 특별 전세기를 운항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남북 노동자 통일 축구대회 방북 전세기를 운항하면서 통일 민간 행사에도 앞장섰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국내 최초 ‘비행기 끌기 대회’에 항공기를 지원, 국민 항공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 국내와 해외지점을 직접 돌아보며 현장 경영을 펼치는 최종구 대표 중국 노선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 최종구 대표는 부사장 재직 시절부터 직원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지금도 국내와 해외지점을 직접 돌아보며 적극적인 현장 경영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타항공의 사훈이 정직, 질서, 배려입니다. 이 세 가지 사훈을 토대로 직원들과 언제 어디서나 소통하려 합니다.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와 안전한 비행을 제공하기 위해, 또 직원과 고객 모두가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취항 초기부터 중국 노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스타항공의 중국 지역 정기 노선은 인천-제남과 제주-취앤저우를 비롯해 청주에서 닝보, 심양, 연길, 대련, 하얼빈, 상해로 이어지는 총 8곳으로 국내 LCC 중 가장 많은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현재는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제한으로 인해 대부분의 노선이 운휴 중으로, 청주-연길 노선만 운항하고 있다. 하지만 8~9월 중 대부분의 노선이 재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항공사와 관광 산업은 물론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정부 출범에 맞춰 한・중 관계가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분위기입니다.” 양 국가 간의 원만한 해결책을 통해 다시 중국 시장이 활발해질 것을 대비해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운항을 중단했던 노선들의 재운항과 다양한 부정기 노선의 확대 운영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중국 노선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강점을 살려 방한 중국인 수송에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동남아 지역과 일본 노선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다양한 부대 수익을 통한 매출 증대도 꾀하고 있다. LCC의 경쟁력은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에 있다. 이는 대형 항공사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던 기내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기에 가능했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좌석이 넓은 앞좌석과 비상구 좌석, 수화물 등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으며, 기내식 식사와 음료, 주류, 담배 등의 상품을 유료로 판매해 이를 부대 수익으로 연결하고 있다. ▲ 소통을 중시하는 최종구 대표가 승무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폭넓은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 최종구 대표가 한양대를 졸업한 지도 30여 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양대 졸업생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그의 모습은 어땠을까. “동기를 포함해 선후배들과의 폭넓은 관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동문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친구로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 모든 것이 새롭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 대표 역시 사회 초년생 시절 남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배움의 자세로 모든 일에 임했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솔하고 솔직하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며 학창 시절에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 나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은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직장의 원칙이 우선일 때가 있고, 상사 및 후배와의 관계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욱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맺은 인간관계와 네트워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든든한 재산이 되지요.” 올해 이스타항공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고객의 성원과 사랑에 보답하고 이스타항공의 설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다양한 노선을 취항하고 항공 여행의 대중화에 힘쓸 것이다. “회사의 성장은 곧 일자리와 이어집니다. 어렵게 공부한 우리 청년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이스타항공이 동북아시아 최고의 LCC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역량과 경험을 쏟아붓겠다는 그의 말이 더없이 든든하다. 사랑한대 2017년 7-8월호 이북 보기

2017-08 14 중요기사

[동문]이 시대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2)

살다 보면 우리에겐 점점 더 많은 사회적인 역할이 부여된다. 가정에선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며, 직장에선 누군가의 상사이자 부하직원이다. 이 때 종종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우리는 수많은 '역할 갈등'에 직면한다. 특히, 사회생활 시작 후 결혼·임신·출산이라는 생애 주기를 겪는 커리어 우먼의 경우, 그 갈등의 골은 깊을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육아 전쟁’ 속에서 직장 생활이라는 이중고를 견뎌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은 ‘경력단절 여성(이하 ‘경단녀’)'이란 꼬리표를 달게 된다.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이런 현실, 혹은 지금 당장 본인의 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마주치거나 주변에서 겪게 될 삶에 대해 공감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의 리즈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여자라이프스쿨의 대표로 활동 중인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최근 몇 년간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삶을 보냈다. 한 초등학생 딸아이의 엄마로 육아를 하는 동시에, 각종 강연회에 출연하고 타 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작가로서 끊임없이 커리어를 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우리대학 교육공학과 박사과정에서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동문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를 보고 영감을 얻어 여자라이프스쿨을 세웠다. “당시 저도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삶에 관한 폭넓은 질문을 던지는 인생학교의 지향점에서 좀 더 좁고, 깊게 파고들어 여성의 삶에 대해 다루고 싶었죠.” 그 후 이 동문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들의 커리어와, 사랑과 관계 등에 대해 상담과 코칭을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과 지난 13일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사과정을 밟고 본인의 경험과 여러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최근엔 경단녀와 복직 준비 여성에까지 관심이 확대됐다. 특히 지난 5월엔 ‘다시 일이 그리워질 때’라는 책을 발매하며 경단녀의 사회 재진출을 위한 발판 마련을 도왔다. “현재 사회는 전업맘은 일하지 않는 여성, 워킹맘은 일하는 여성으로 이분화하는데 이는 전혀 건강하지 않다고 봐요. 생애경력과 직업경력 중 무게중심이 어디 있느냐의 차이지 사실 이 둘은 공존할 수 있거든요. 즉, 누구든 생애 주기에 따라 언제든 전업맘이나 워킹맘이 될 수 있어요.” 이는 평소 자신만의 꿈과 목표를 갖고 있던 여성들이 출산 후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분열을 반영한다. 20대 때는 본인만의 일에 대한 온전한 꿈이 있었다면, 출산 후에는 모성애를 느끼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소중한 또 다른 가치가 등장한다. 바로 이때가 일에 중심적인 가치를 뒀던 여성들이 많이 깨지고 흔들리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이 동문은 위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자아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주인공은 항상 자기 자신이고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이죠. 그리고 현재는 생애 주기에 따라 본인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좀 더 집중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경단녀’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대체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단절’이라는 말이 ‘끊어졌다’는 부정적 어감을 주기에 ‘경력 쉼 여성’, ‘경력 전환 여성’ 등 경력이 생애 주기에 따라 순환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지난 5월 발매된 '다시, 일이 그리워질 때'는 우리 사회의 경단녀들에게 전하는 가슴 따뜻한 조언을 통해 구직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출처: 이재은 동문 페이스북) 언제 어디서든 ‘자기 자신을 잃지 마세요’ 이렇듯 현재 많은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멘토이자 롤모델로 활동하는 이 동문은 언제부터 여성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을까? “제가 딸만 셋인 집안의 맏이였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막냇동생이 아들이길 바랐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는 제가 장녀로서 아들 부럽지 않게 성장해야 한다는 원죄(原罪) 의식이 있었어요.” 그 후 대학 4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이 동문에겐 삶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수동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또 평소에 글짓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 부분을 살려 책도 많이 읽고 취재 기자로도 활동했죠” 그 후로 이 동문은 상담이나 코칭 관련 수업을 듣고 석사학위를 따는 동시에 ‘여자 Life 스쿨’, ‘여자 Life 사전’, ‘서른 Life 사전’등을 집필하며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 3명과 함께 현재의 여성라이프 스쿨을 설립했다. “처음엔 주변 남성들의 보수적 시각에 상처를 받았어요. 또 남·여에 따라 일과 경력을 보는 시야가 많이 다르다는 점도 느꼈죠. 남성들은 대체로 직업을 수직적으로 바라보고 어렸을 때부터 강하고 독립된 존재로 커오기 때문에 자신이 ‘제1의 생계부양자’라는 인식이 강해요. 반면에 여성들은 수평적 관계에 익숙하고 결혼 후에도 자신은 ‘생계를 돕는다’는 인식이 크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성들이 경쟁구조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무시한 채 남성스러움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남성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모습도 요구되지만 여성 특유의 풍부한 감수성과 다채로운 에너지를 통해 스스로를 더 가치 있게 꽃피우는 것 중요하다. ▲ 이재은 동문(독어독문학과 98)은 "여성 스스스로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측불가능속의 성장 어느 순간부터 이 동문은 구조화된 계획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삶은 굴곡이 심하고 본인이 인식하고 지향하는 바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동문은 큰 틀만을 설정해 두고 그 내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편이다. “우선은 여자라이프스쿨에서 더 대안적이고 여성주의적 시각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교육을 하고 싶어요. 또 대학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동문은 ‘우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즉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것. 상대적으로 직업과 사랑에 밀리는 것이 우정인데, 현재의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관계는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힘들거나 지칠 때 그 내부에서 받는 위로와 지지의 유무에 따른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에 이 동문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사람과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힘을 주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연대를 꼭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7-08 14 중요기사

[동문]꼭 맞는 맵시로운 속옷을 선물하다

한국 여성 중 80퍼센트 정도가 맞지 않는 속옷을 입고 있다는 말이 있다. 맞지 않는 속옷을 입으면 불편하고 모양도 흐트러진다. 시중에 나와 있는 속옷은 불편하게 느껴지면 맞춤 속옷을 입어보자. 사라스핏(Sara’s fit)은 럭스벨 대표 김민경 동문(교통시스템공학부 03)이 만든 속옷 프리미엄 브랜드로,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 체형 데이터를 분석하고 맵시로운 속옷을 제작한다. 법인을 세운지는 1년 반, 서비스 오픈한지는 두 달 째인 신생 브랜드다. 1:1 컨설팅 통해 맵시있는 속옷 찾기 브랜드 명 사라스핏(Sara’s fit)은 고객 ‘사라’의 꼭 맞는 속옷을 찾아준다는 뜻으로, 라인이 ‘살아’있다 등의 언어적 유희도 담겼다. “해외 진출을 위해 영어 이름을 쓰고 싶어서 ‘Sara’라고 지었죠. 보통 Sarah를 쓰지만, 아시아권에 친근한 이름을 쓰기 위해 h를 없앴어요.” 주 고객은 20대 후반에서 50대까지의 여성이다. "어릴 때는 맞는 속옷을 왜 입어야 하는지 몰라도, 20대 후반만 되면 불편하고, 모양이 흐트러지는 게 느껴지죠. 근데 해결 방법을 못 찾는 거예요. 분명 속옷 매장은 엄청 많고, 어릴 때부터 측정해 왔는데도요." 수많은 손님들에게 시도해본 결과 생각보다 맞춤속옷 수요가 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김 동문이다. ▲사라스핏(Sara’s fit) 대표 김민경 동문(교통시스템공학부 03)을 지난 9일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손님 한 명당 40분 정도의 사전 대화를 통해 불편한 점을 점검하고 원인을 분석한다. 오프라인 1:1 컨설팅에서 24가지 방법으로 사이즈를 측정하고, 측정값 솔루션을 입력하면 빅데이터를 통해 자동으로 체형에 맞는 속옷 유형과 사이즈를 추천해준다. 피팅 후 입는 방법을 설명하고, 손님이 디자인을 고르면 최종적으로 주문제작에 들어간다. 세심한 관리 덕에 재구매율도 높다. "특히 처음 오신 분은 관리를 세세하게 하고 있어요. 재구매의 경우는 앞으로 온라인으로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샘플 제품은 40~50개 정도 구비돼 있고, 고객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유형의 속옷을 추천한다. 만족도는 90퍼센트 이상. 사라스핏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감동적인 사례도 많다. “속옷이 불편해서 러닝 톱만 입는 손님이 계셨죠. 불편해하는 점을 찾아 조절했더니 편하고 라인도 예쁘다며 맨날 입는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다른 손님은 특이한 경우로, 가슴살이 물처럼 고정이 안되는 분이라 땀이 많이 차셨어요. 몇 가지 틀을 사용했는데 모두 안 맞아서 모양을 조정한 결과 딱 맞는 속옷을 드릴 수 있었죠.” “전국에 맞춤속옷 브랜드가 몇 군데 없는데 그마저도 빅 사이즈 위주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은 사이즈도 고민이 많거든요. 모든 사이즈를 아우르는 것이 사라스핏의 장점이죠.” 디자인은 레이스에 귀여운 스타일보다는 캐주얼, 모던함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속옷도 패션이라고 보기 때문에 디자인도 놓치지 않았다. 틀을 잡아주는 몰드 종류도 많다. 기성 속옷 사이즈가 9개라면 사라스핏의 사이즈는 30가지다. ▲해외 톱스타들과 체형을 비교하며 본인의 체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처: 사라스핏) 공부만 하던 모범생, 넓은 세상을 보다 김 동문이 속옷에 애초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안정적인 미래를 예측해서 골라준 학과에 입학했고, 공부만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고. 김 동문이 인생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첫 선택은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었다. “원래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어서 학과 공부만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3학년 때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미국은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구나’,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걸 중요시해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었죠.” 속옷에 대한 관심도 이 때 생겼다. “우리나라는 속옷은 감춰야 하는 것인데 미국은 속옷 사이즈도 다양하고 인식도 개방적이더라고요.” 졸업 후 동기들 중 유일하게 대기업에 들어가 IT를 배우고, 지금 회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부서 이직을 위해 다녀온 미국 MBA에서는 스타트업을 접했다. “2011년 당시에는 창업이 활발하지 않았을 땐데, 미국은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말 잘하는 학생들이 모두 창업에 도전하는 창업 붐이었어요. 관심이 생겨서 중소기업 이어주는 코트라 시카고 무역관에 가게 됐죠.” 그러던 중 코트라 업무가 아쉬워서 국내 대기업에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했다. “속옷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데이터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빅데이터와 접목시켜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현재 김 동문은 회사의 대표와 디자이너를 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옷은 패턴사와 디자이너를 따로 두는데, 란제리는 두 개 다 동시에 해야 해요. 그래서 디자이너 선생님께 1년 반 동안 디자인을 배워서 이제는 선생님이 큰 틀을 만들면 그걸로 세부적인 디자인을 하는 정도까지 가능해요.” 현재 디자이너는 메인 디자이너 선생님과 김 동문을 비롯해 총 4명이다. 디자인은 보통 겉 레이스를 달고, 가슴 원형에 맞는 몰드 컵 모양에 맞게 디자인해서 패턴까지 마무리하는 식이다. “란제리 산업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잘 알려주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고, 위계 질서도 견고해서인지 디자인 원리를 아는 분이 전국에 다섯 명도 없어요. 그 중 한 분을 어렵게 모셔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죠.” ▲김민경 동문은 현재 디자이너와 대표를 겸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속옷 브랜드를 향해 “목표는 아시아의 맞춤 빅토리아 시크릿! (웃음) 이미 유럽, 미국엔 맞춤형 속옷 시장이 커요. 메이저도 많고, 스타트업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시아는 아직 시작단계예요. 빨리 시장을 확장시키는게 목표예요. 동시에 자금도 확보해야죠.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국내에서 해외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사업을 하면서 힘들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는 김 동문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봉사도 진행할 예정. “어린 친구들이 처음에 속옷을 어떤 걸 입어야 하는지, 올바른 속옷을 입을 때 좋은 영향과 악영향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육 봉사를 하려고 해요. 주니어 브라를 내년에 오픈하는데 중·고등학교에 직접 가서 강연할 예정이네요.” ▲김민경 동문의 사업 목표는 사라스핏을 '아시아의 맞춤 빅토리아 시크릿'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처: 김민경 동문)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7-08 08

[동문]지휘봉 하나로 피어나는 오색의 화음 (1)

매주 고양아람누리 연습실에서는 무더운 날씨를 잊게 해주는 맑고 청량한 화음이 울려 퍼진다. 한창 연습 중인 고양혼성합창단 단원들은 모두 음악이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우리대학 이은석 동문(성악과 88)은 이곳에서 지휘자를 맡고 있다. 창단의 순간부터 정기공연에 오르기까지 오랜 기간 지휘봉을 잡은 그의 손짓 아래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이 조화를 이룬다. 지난 5일 아마추어 합창단을 즐거운 마음으로 이끌고 있는 이 동문을 만났다. ‘마을 합창제’에서 시작된 인연 이은석 동문은 지난 95년 우리대학 성악과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에서 9년의 유학 생활을 했다. 유학 중 로마에서 성악가로서 첫 데뷔 무대를 올린 이 동문은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04년에 갑작스러운 귀국을 하고 난 후, 힘든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보다 상대적으로 무대 기회가 적은 한국에서는 음악가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양한 오페라단을 돌아다녔는데 공연을 1년에 1~2번밖에 못했어요. 음악을 전공한 고학력자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이런 부담감을 10년 동안 겪었죠.” 이 동문의 고민은 고양시로 이사를 하면서 풀렸다. 지인 덕분에 고양시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마을 합창제’의 지휘자로 참여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고양시 서구 합창단을 맡게 된 그는 단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교회 성가대원과 제자들에게 부탁해 총 28명의 인원을 모았고 무사히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 동문이 합창제 기간에 이끈 서구 합창단은 마을 합창제가 끝나서도 인연을 이어나갔다. “나머지 2개의 구 합창단들은 합창제가 끝난 후 공중분해 됐는데, 지인들로 이루어진 서구 합창단은 단원들이 계속 활동하길 원했어요. 이렇게 ‘고양혼성합창단’이 탄생했죠.” 28명으로 시작한 고양혼성합창단은 입소문을 타며 인원이 늘었고 합창을 취미로 삼은 60여 명의 단원이 모였다. 단원들이 온전히 합창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단 한 번. 길지 않은 연습 시간 동안 60명의 비전공자는 합창에 열정을 쏟았다. 그렇게 고양혼성합창단은 총 2회의 정기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 동문이 지휘하는 또 다른 단체인 하나오케스트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고양혼성합창단이 꾸준히 활동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이 동문의 남다른 책임감이 빛났다. “아마추어분들이다 보니까 동기부여와 목적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연습시간은 즐거워야 하고, 한 분 한 분 천천히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했죠.” 이 동문은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비전공자를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호흡을 위한 근육도 없고, 생목소리로 부르는 분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그분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그렇게 막상 연습한 걸 해내시면 굉장한 희열을 느껴요.” ▲고양혼성합창단의 1회, 2회 정기공연의 짜릿한 추억이 담겨있는 공연 팸플릿. 이은석 동문이 또 다른 지휘자로 있는 하나오케스트라와 합작을 이뤘다. 다사다난했던 음악 인생 이 동문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입시 미술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창단 동아리에 가입했고 동아리 선배를 따라 국립오페라단에서 주최하는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 “아마 본 무대를 봤으면 성악에 관심이 안 생겼을 거예요. 제가 따라간 곳은 리허설 무대였는데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쉬고, 잡담하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어요.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관심을 가졌죠.” 중창단 동아리 가입 후 그는 노래 한 번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진지하게 레슨을 받아보라는 동아리 선배들의 권유를 받은 이 동문은 미술을 그만두고 성악가의 길을 택했다. 우리대학 재학 중에도 진로를 두고 여러 갈림길에 섰다는 이 동문. 음악 선생님을 목표로 교직 이수를 공부하던 그는 3학년이 되던 해에 음악적인 비전을 더 폭넓게 가져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그 당시 새로 임용된 고성현 교수(성악과)가 이 동문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2년 동안 고성현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름난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고요.” ▲이은석 동문을 지난 5일 고양시 아람누리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성악과 지휘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줬다. 이 동문은 졸업 후 이탈리아행을 택했다. 로마에서 첫 데뷔 무대를 올린 뒤 산타 체칠리아 음악학교(Santa Cecilia Conservatory of Music)에서 스카우트할 만큼 이 동문은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산타 체칠리아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무대를 포기해야만 했다. 학교 교장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 “거기서 취직을 해서 무대를 넓혀가야 하는데, 학위 하나를 위해 묶여있어야 하는 시간을 참지 못했어요. 결국, 졸업하는 해에 학교를 그만뒀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동문은 학교 중퇴 후 개인 사정 때문에 꿈을 뒤로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열창했던 무대를 포기한 한 남성이 풀어내는 추억담에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동양인으로서 무대를 서는 것이 힘들었죠. 그래도 당시에는 운 좋게 계속 대회를 나갈 때마다 수상을 했어요. 무대에 계속 서니, 도전정신도 생겼고요. 다양한 국적의 성악가들과 경쟁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길이 열리는 것에 즐거움이 매우 컸죠. 유학생활의 짜릿함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성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기도 하죠.” ▲아마추어를 가르칠 때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이은석 동문. 그는 인내심과 이해심을 갖는 것이 지휘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성악과 지휘, 둘 다 놓치지 않을 것 음악 인생에서 다양한 굴곡이 있었지만, 이 동문은 성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성악을 사랑한다. 오는 8월 20일에도 연주를 앞두고 있고, 동료 성악가들과 연주회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젠 음악을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살펴본다는 것에 있다. “박 터지게 경쟁하는 건 외국에서 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즐기는 거죠.” 지휘자로서의 삶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 동문은 현재 고양혼성합창단 외에도 고양챔버오케스트라, 하나오케스트라, 행복한산책합창단 등 다양한 음악단의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로서의 길도 꾸준히 개척해나가고 있다. 음악을 지위 상승을 위해서가 아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지휘에 임한다는 그다. “음악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의 기술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커요.” 글/ 유혜정 기자 haejy95@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