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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 15

[교수]조선의 인문학, 시대를 잇다

한중 지식인의 교류를 담은 책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삼천리 밖 사람과 마주하고, 선비의 만남을 반기며 그 모습을 적어보네. 그대의 멋스러움 무엇에 비할까, 알고보니 매화의 화신이시네(相對三千里外人 / 欣逢佳士寫來眞 / 愛君丰韻將何比 / 知是梅花化作身).” 청나라의 나빙이 조선의 박제가와 중국 반정균의 만남을 기념하며 쓴 한시의 일부다. 조선후기, 한중 문인들간의 교류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 속에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홍대용 , 박제가와 같은 실학자들이었다. 고등학교 고전문학과 한국사 수업에서 반갑게 접해봤을 이름들이다. 그러나 정작 조선 사회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들. 이들의 계보는 당시 해외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저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으로 제 40회 월봉 저작상을 수상한 정민 교수(인문대·국문)를 만나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중 지식인 교류의 장, 조선후기 문예공화국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경성제국대 교수 후지쓰카 치카시(藤塚隣)가 박제가를 연구한 자료를 추적해, 청나라 문인들과 조선 북학파(연암학파 - 홍대용,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가 교류했던 실상을 연구한 책이다. 따라서 저서는 입체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책에서는 당시 한국과 중국의 학자 간에 이루어진 지식적 교류를 구체화하고, 여기에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한·중 자료의 합을 맞춘 쌍방향적 연구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후지쓰카는 19세기 추사 김정희와 그의 스승인 조선사신 박제가를 연구한 사람이에요. 그는 초기 청조 고증학단을 연구하다, 조선의 헌책방에서 박제가를 다룬 중국자료를 접하며 청나라의 학술 문예가 조선에 전해진 과정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가 수집한 자료는 국내 연구가 놓쳤던 미시적이고 예각적인 접근을 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집만으로는 교류 대상이었던 중국 지식인들의 생각을 추적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결과 홍대용, 박제가와 같은 지식인들이 중국에서 이뤄낸 활약이 당시 조선사회에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해당 자료들에 담긴 문예 교류의 에피소드들 역시 담고 있다. 당대 지식인들은 직접 만나서는 필담을,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를 통해 양국의 문학을 교류하고 친분을 이어나갔다. 정 교수는 그들의 필적과 후일담 등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박제가의 중국 내 명성에 대해 언급했다. '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으로 꼽힐 사람은 박제가에요. 그는 당시 중국의 상위 5%이내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교류하는 학계의 최고 원로였습니다. 중국 측에서 박제가를 사신으로 보내달라고 정조에게 요청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춘 문인이었습니다. 서얼 신분으로는 참여할 수 없는 조정회의에까지 초청받았으니까요.” 정 교수는 이같은 지식 교류의 매개체는 ‘문자’였다고 말한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중국과 조선의 문자로 쓰인 한문은 오늘날 인터넷환경과 같이 국경을 넘은 ‘지식의 커뮤니티’를 매개했다. “문예공화국은 18세기 유럽에서 융성한 ‘Republic of Letters’에서 따온 말입니다. 독일어, 프랑스어 등 언어의 제약이 유럽 내에도 존재했지만 라틴어로 소통의 문제를 극복했어요. 조선과 중국 역시 한문이 있었기에 유럽과 같은 소통의 공화국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연구는 후지쓰카의 ‘망한려용전’을 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청나라와 조선 지식인들이 편지로 교류한 내용이 담긴 ‘연항시독’과 같은 책들을 필사하고 메모를 남겨둔 자료다. 정 교수의 책의 부제가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인 이유다. 후지쓰카의 메모가 담긴 장서 일부는 하버드의 옌칭 도서관에 있었다. 후지쓰카 장서 일부를 접하기 위해 정 교수는 옌칭연구소 연구교수에 지원했고, 2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선발과정에 뽑혀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이 완성되는 데는 꼬박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조선과 청나라를 다룬 자료를 모두 검토해야 했기에 연구기간 중 절반이 자료를 정리하는 데 오롯이 쓰였다. “처음에는 옌칭도서관의 사서들조차 후지쓰카의 자료를 찾지 못했어요. 도서관 측에서 ‘우리 도서관에 있는 보물을 몰라봤다.’고 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료들을 찾아나갔습니다. 책을 쓰던 1년은 전쟁 같은 시간이었고요. 고서의 양이 엄청나서 일주일 전의 자료가 꼭 전생의 일 같이 느껴졌어요.”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는 자료를 접할 수 없기에 집필을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는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어 책을 썼다고 했다. 네이버 카페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성한 것도 집필을 미루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 교수는 18세기 문예 교류를 중심으로 완성한 이번 연구에 이어 19세기 한국과 중국의 지식적 교류를 연구할 예정이다. 지식인의 역사에서 오늘의 국제화를 읽다 정 교수의 연구는 오늘날 세계화와도 맞닿아 있다. 월봉 문학상 수상소감에서도 그는 “18세기의 지적 환경에서 오늘의 인터넷 시대를 향한 답을 찾아본다”고 전한 바 있다. “국경을 넘은 소통은 18세기 조선과 중국간 교류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한자라는 언어를 통해 문예공화국 시대가 완성됐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시청각 자료가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같은 한류열풍이 유튜브 채널로 전세계에 전파된 것처럼요.” “문화의 교류는 국가간 이해관계를 뛰어넘습니다. 18세기에도 조선과 중국간의 국익은 첨예하게 대립했어요. 그럼에도 민간과 학문 차원의 소통은 꽃피던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사드 배치, AllB문제, 이어도 문제 등에서 한반도는 중국과 갈등관계에 있지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중국 국민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어요. 문화교류의 열기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에요.” 국익이 서로 대립하더라도,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인문학을 비롯한 지식교류의 역사와 현재의 한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조선후기의 문예적 교류를 통해 정 교수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인문학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우리가 주변국과 갈등하는 문제의 근본은 시선의 차이에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과의 갈등도 도덕 자체의 결함이기 보다 우리와 아예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견지해서입니다. 그 차이를 분석하고 풀어내는 것이 인문학이 할 일이죠.” ‘갑을관계’로 표상되는 약자에 대한 무시, 각계각층의 비리 등 우리 사회는 가치의 구심점을 잃고 있다. 돈과 취업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각박하다는 탄성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당장의 풍요보다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이유다. “취직이 삶의 기준이라면 은퇴 이후의 50년은 무엇으로 살아갈텐가요. 사유의 힘이 없이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중심을 잡는 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정 교수가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전한 당부다. 김유나 기자 caecilgreen@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박설비 사진기자 sbi444@hanyang.ac.kr

2015-03 31

[교수]“미래는 꿈꾸는 만큼 만들어진다” 가상현실연구실

최근에 스포츠 중계나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면 실제 영상에 3D(입체) 그래픽이 실시간으로 합성되어 설명이 곁들여지는 화면을 종종 만난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설던 이러한 증강현실은 현재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기술을 연구해온 컴퓨터공학부 박종일 교수와 함께 증강현실의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에디터 이명연 | 글 이은영 | 사진 김정훈 ▲ 한양대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박종일 교수 Q. 교수님 연구 분야가 ‘증강현실’인데요. ‘증강현실’이란 표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뜻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증강현실’을 알려면 먼저 ‘가상현실’부터 알려드려야겠네요.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에 가깝도록 만든 가상세계를 뜻합니다. 일례로 게임 세상이 그렇죠. 게임 안에서 집을 짓고 농장을 소유해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증강현실은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실세계에 3D(입체) 가상정보를 겹쳐 하나의 영상처럼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위치검색 앱을 실행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길거리를 비추면 큰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가게 이름이 화면에 뜨는 방식이죠. 이렇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중첩시켜 하나의 세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강현실입니다. Q. 그렇다면 증강현실은 어떤 원리로 구현되는 건가요?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기울여도 실제 그 위치와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빠르게 찍어내고, 그 위에 필요한 정보를 3D 영상으로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카메라가 1초에 30장 이상을 찍는 동안 가상정보를 자연스럽게 겹치면 우리 눈에 영상이 매끄럽게 보여요. 약간의 지연이나 오차만 생겨도 끊기거나 흔들려 보이는데요. 증강현실의 핵심은 현실세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동시에 3D 가상정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기술이죠. Q. SF영화를 보면 종종 주인공 눈앞에 가상화면이 펼쳐지는데, 곧 현실에서도 가능해질까요? 물론입니다.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닙니다.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착용하면 눈앞에 3D 가상정보가 뜨는 제품이 이미 나와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구글 글래스를 들 수 있죠. 현재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웨어러블(Wearable) 기기에 적용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고요. Q. 영화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 머지않았네요. 교수님이 개발한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된 사례도 있나요? 궁궐 속 장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경복궁 문화재 안내 서비스’가 좋은 예가 되겠네요. ‘경복궁 문화재 안내 서비스’는 렌즈에 근정전을 비추면 가상의 왕과 신하가 등장하고, 반대로 교태전을 비추면 가상의 왕비와 상궁들 이 등장해 그 공간에서 있었을 법한 장면을 3D로 보여줍니다. 이미 2009년에 시범 서비스를 마쳤으니 곧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Q. 교내 다른 학과 교수님들과도 기술 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일인가요?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하고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공동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름 하여 ‘차세대 지능형 수술 시스템 개발센터’죠. 수술로봇을 개발해 원격으로 수술을 하거나 수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합니다. 보통 MRI나 CT 촬영을 하면 정상 세포와 종양 세포가 구분이 되는데, 종종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종양 세포가 있습니다. 수술하려는 부위에 MRI 사진을 가상으로 겹쳐놓으면 정상 세포는 손상시키지 않고 종양 세포만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또 의사가 의료 정보를 편하게 조작하게 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손동작으로 정보가 표시된 화면을 확대·축소하거나 360도로 돌려보면서 확인하면 수술 성공률은 더욱 높아지겠죠. Q. 증강현실 기술의 발전은 무궁무진하네요. 교수님이 기술을 개발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철학이 궁금합니다. 미래는 꿈꾸는 만큼 만들어지고, 기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공학도들이 연구에 빠지면 기술 구현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증강현실 기술은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를 지나 예술가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할 단계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접목해 즐거움을 주는 기술이 증강 현실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11 19

[교수]과학교육의 틀을 깨다

과학교육을 위한 갈릴레오의 유산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당시 진리로 여겨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의 과학적 전제, 천동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과학적 사고의 틀을 구성하여 지동설을 입증해 냈다. 돌이켜보면, 인류사에 길이 남은 과학적 연구들은 기존의 가정이나 전제를 부정하며 탄생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은 기존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갇힌 사고에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리 없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를 통해, 과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오준영 조교수(기초융합교육원)를 만나봤다.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사고 전환 과학사(史)를 살펴볼 때,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상식적인 수준의 고대 과학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현대 과학의 중간지점에 존재한다. 고대과학과 현대과학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됐던 갈릴레오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목성의 4대 위성을 발견한 것은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이는 단순히 위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위성의 존재는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일반적이던 지구 중심적 사고, 즉 천동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성 주위의 별을 유심히 탐색한 거죠.”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에 대해 관찰함으로써 어떻게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천동설이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중세에, 지동설에 대한 강력한 반론 중 하나는 “만약 지구가 공전하고 있다면, 달 또한 지구가 아닌 태양에 의해 공전하고 있을 것이다.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에 달이 태양에 이끌리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관찰함으로써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또한 달과 같은 위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고, 이는 결국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가 됐다.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는 교육을 위해 오 교수의 약력은 다소 특이하다. 과학교육 학사, 천문학 석사, 과학기술협동과정 이학박사, 물리교육 박사 등 다양한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학문을 과학교육방법연구와 직관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오 교수는 사실 연구보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사범대에 진학했고, 한때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국립사범대를 졸업한 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과학교육방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과학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보다 본질적인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천문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단순히 정형화된 틀 안에서 연습문제를 풀도록 하는 교육보다는,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교육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 교수는 과감한 가정에 의해 기존의 틀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의 습득을 주장한다. 최근 창의적인 과학교육방법론 개발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그의 연구는 과학철학, 과학사와 과학교육 그리고 자연과학에 이르기 까지 포괄적인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국제학술지에 게재되고 있으며, 진행하는 연구마다 외국 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많은 연구들이 진행 중이지만 오 교수가 중점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탐구모형에 관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자신의 가설에 대해 이론적 믿음을 갖고 관찰에 임했고, 결국 다수의 증거를 확보하여 자신의 논리를 증명해냈다. 이 같은 탐구 방식을 ‘이론 의존적 관찰방법’이라 한다. 이 방법은 현대 과학자들도 사용하고 있지만, 갈릴레오가 사용했던 방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갈릴레오는 진리로 여겨지던 기존 이론(천동설)을 부정하고, 자신의 믿음(지동설)에 따라 관찰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경우 너무나 전문화, 고도화 됐기 때문에 사실상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 또는 학생들이 그러한 이론적 전제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오처럼 틀 자체를 전환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틀 속에서 모형을 정교하게 다듬으려는 노력만 가하고 있죠.” 오 교수는 이런 한계에 주목하여, 갈릴레오의 탐구모형을 실제 학생들의 교육에 적용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김유신 교수와 함께 연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탐구모형에 관한 논문(Galileo's Discovery of the Moons Orbiting Jupiter Based on Abductive Inference Strategies)은 세계적인 과학·기술·의약 분야 전문 출판사인 [springer]의 인기 있는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이 연구는 최근 4년간 [ssci]저널에 4편, [scopus]에 4편, [springer]의 'book chapter'에 3편이 등재됐다. 과학교육을 위한 갈릴레오의 유산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 이론들과 전제들을 모두 부정하고 새로운 틀을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구축돼있는 틀 안에서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학 이론의 발달을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과거의 이론적인 틀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확고한 진리로 여겨지는 전제라 할지라도, 시대에 맞게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사고의 틀을 제약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과학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은 고정된 사고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틀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도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 교육은 기존의 틀에 대한 연습, 즉 문제를 많이 풀게 할 뿐 실제로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방식의 교육은 없죠. 이런 방식의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를 한정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오 교수는 보다 진보된 과학 교육을 위해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강조했다. “현존하는 과학연구의 틀을 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존의 틀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과학 이론과학 철학이 변화해온 과정을 알아야 현재의 틀에 국한되지 않은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과학사와 과학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력 및 약력 오준영 한양대 교수는 공주사범대학 과학교육과(지구과학교육) 이학사, 연세대학교 (현)천문우주학과 천문학 이학석사, 부산대학교 (현)과학기술학협동과정 이학박사, 단국대학교 물리교육 교육학박사학위를 취득해 자연과학, 과학철학, 과학교육 등 여러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왔다. 현재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 조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4회 세계과학관심포지엄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우진 기자 wjdnwls@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15

[교수]이상적 건축, 현실적 건축

"도시와 자연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공모전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한 재학생 최민성(국제학부 3)씨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 교수도 수상해 겹경사다. (관련 기사 보기) 김재경 교수(공학대·건축)는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DOBONGSAN CAR PARK)'으로 '감투상(Honorable Mention)'을 수상했다. 본 대회에서 감투상을 수상하면 국제적으로 알려진 전문가로부터 제품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환승주차장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 955. 도봉산역 관역환승주차장이 위치한 곳이다. 개화역 광역환승센터, 구파발역 복합환승센터 등 지난 몇 년 사이 서울시 외곽에 환승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이는 신도시 주민들의 교통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서울시가 내놓은 방안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미적 디자인까지 고려한 환승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특출한 건축가들을 섭외하고 있다. 미적 특징과 경제적 합리성 여부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의도다.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은 김재경 교수와 나모아건축사무소 이준복 씨와 함께 설계했다. 서울시의 의뢰로 건물 내외부 디자인을 도맡았다.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은 서울 동북부의 의정부, 연천, 양주 방면에서 오는 자동차 교통을 흡수한다. 이어 자동차, 간선급행버스(BRT), 지선버스를 지하철과 다른 버스로 갈아타게 돕는다. 1층의 환승 로비와 승강장을 제외하고는 지하와 지상의 5개 층이 모두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4개 버스 노선의 기점인 공영 차고지가 있다. 경기도 주민들은 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을 이용해 광역환승주차장으로 온다. 본 시설을 통해 다른 버스로 환승하거나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을 이용할 수 있다. 심야버스도 운행돼 건물이 24시간 개방된다. 여러 종류의 교통을 원활하게 수용하는 것이 본 건물의 목적이다.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은 불투명 유리와 타공판(철판에 구멍이 뚫린 판)이 주로 사용됐다. 건물에 빛이 통과하거나 공기가 흐를 수 있는 특성을 중시 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주차장은 자칫 미관상 흉물스러운 건물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단면을 어느 정도 가리면서 동시에 내부 환기와 조명을 위해서 반투명적 성격의 재료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건축으로 '변화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건축'을 꼽은 김 교수. 자신이 지은 건물이 사회 구성원 전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신선함을 전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단다. 김 교수는 "환승주차장이 가정과 회사를 잇는 기능적 역할에 국한되지 않길 바랐다"며 "대중들에게 다른 경험을 전하는 기능을 수행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가 초점을 둔 곳은 옥상 조경과 도봉산의 조화와 굉장히 크게 제작된 1층 로비다. 옥상의 녹지는 환승주차장의 배경이 되는 도봉산과 자연스레 어울려 있다. 그리고 별다른 시설이 없이 탁 트인 로비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찰나의 여유를 선사한다. 김 교수는 "도시 환경과 자연의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Honorable Mention' 김 교수는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 디자인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현재 건축가로서의 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었다"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동경이 있어 참가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 교수가 수상한 부문은 'Honorable Mention'. 따라서 김 교수는 건축계의 유명 인사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정일 씨와 유아이에이건축사무소 위진복 씨가 김 교수의 멘토로 나섰다. 서정일 씨는 이 프로젝트를 특히 주목해야 할 만한 이유로 전국적 차원에서 환승센터 건립 붐을 꼽았다. 예전처럼 지자체 간의 경쟁적 사업을 통해 불합리한 공공시설을 대거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까지의 환승센터들로부터 교훈을 충실히 얻어야 한다는 것. 이는 건축디자인의 세련된 미적 성과가 건물의 기본적 기능에 묶여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합리적인 분석과 풍부한 상상력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귀중한 시간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위진복 씨는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이 지역사회의 '센터' 역할을 하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요소들을 말했다. 실제로 도봉산역 환승주차장에서는 입점 예정이던 시설인 우체국, 어린이집, 편의점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위 씨는 이런 이유로 건물의 위치가 도봉산 등산객의 주동선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주 중에 방문자 수가 적은 점을 꼽았다. 이에 이용객과 지역주민을 위해 편의복리시설의 잠재적 운영주체와 주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이 필요할 것이란 제언이다. 김 교수는 "부정적인 부분을 많이 지적해 줘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참가한 의도와 부합하는 상을 받게 돼 더 기쁘다"며 "건축계의 조언을 바탕으로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나는 건축가이며 동시에 교수다 김 교수는 자신이 망상가 기질이 다분한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김 교수의 건축, 도시연구소 사이트 코드에이유(http://www.co-de.com/) 내 'UNBUILT' 항목에서는 김 교수가 만든 가상 설계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비록 비현실적일지라도 '주변에 이런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본다는 김 교수. 하지만 실제로 지어지는 건축물들은 창의적인 부분에 제약을 많이 받는단다. 실제 건축에서 디자인의 최종 결정은 건축가 홀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협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미를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은 건축가의 디자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경향에 대해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은 듯이 보였다. 이상적 건축과 현실적 건축을 확실히 구분 지은 것이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이상적 미래를 'UNBUILT'에 담고있다"며 "이제는 이상적인 것들을 만드는 것이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대학에서 세 번째 학기를 맞았다. 이제는 건축가의 업무와 교수로서의 직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학교에 오기 전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힘썼다면 이제는 학생들의 입장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건축 디자인에 있어서 미적인 측면과 기본적 기능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80년대, 90년대는 디자인의 기능적 부분이 더 중요했다"며 "소수의 정치적 목적의 건물이나 올림픽주경기장 같은 상징성이 강한 건물만이 미적 개념을 신경썼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대의 건축 디자인은 건물의 기능과 미의 경중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며 "또는 상호 보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교수의 생각은 콘셉트 디자인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지양하려는 의도는 없다. 반대로 이상주의자가 늘어나길 바랐다. 김 교수는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은 이상주의자들이다"며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잃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슬옹 학생기자 kjkj3468@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15

[교수]치매, 이젠 앱(App)으로 예방하세요

"치매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확신을 주고 싶어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9월 22일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60만 4000여 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노망' 등 노화현상이라고 인식했던 반면 최근 들어 치매가 뇌질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치료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대학 김희진 교수(의대·의학)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 가바플러스와 치매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브레인닥터'의 개발자문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돌이킬 수 없는 병 아니야 치매는 노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기억력, 언어 능력 등의 인지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장애가 발생한다. 김 교수는 "치매는 뇌세포가 사라지면서 해당 뇌의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뇌세포는 죽더라도 세포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끊임없이 자라기 때문에 시냅스를 강화하면 해당 기능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고 그림카드도 맞추면서 뇌 기능을 증강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겁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혈관성 치매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원인에 맞는 질환별 치료가 효과적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질환별 처방이란 의미가 없으며, 원인은 각각이더라도 환자가 보이는 증상별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는 가역적 치매와 불가역적치매로 나뉩니다. 가역적치매는 갑상선질환, 비타민부족, 저나트륨혈증 등 원인이 있는데 이런 병들은 원인만 교정하면 즉시 치매를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파킨슨 치매, 혈관성 치매 등은 뇌세포가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퇴행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법은 똑같습니다." 김 교수는 노인들이 브레인닥터가 제공하는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뇌 기능을 측정하고, 꾸준히 관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레인닥터는 나이, 학력 등 환자의 다양한 상태에 따라 맞춤형 문제를 내요. 예를 들면 75세에 학력이 3년인 여자라고 입력을 하면 그에 맞는 레벨테스트를 합니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에 맞게 뇌의 7가지 영역이 적절하게 섞인 프로그램이 제공되죠. 문제 풀이를 끝내면 날짜와 시간이 저장되고 일기를 쓰도록 해요. 그 데이터 베이스가 축적되면 주치의와 상담하기도 편하고, 원격진료에도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브레인닥터의 성공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여러 대학병원 교수들과 재활치료 전공자, 대한치매학회까지 많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김 교수는 실제 환자들에게 브레인닥터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임상데이터를 축적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을 맡았다. 김 교수는 비약물적 치료 개발에 직접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의사들의 요구는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실현이 안 되고 있었죠. 가바플러스 측에서 제가 몸담은 대한치매학회에 직접 연락이 왔어요. 좋은 취지이고 환자들의 치료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학회의 이사장님께서 핵심 멤버 10명을 모아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치매, 국가적 관리 필요해 브레인닥터는 궁극적으로 의사와 연계하여 치료를 돕기 위해 고안됐다. 치매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이 확립된 상태로 이미 국가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요양등급을 인정하여 매달 3만원의 지원금과 간병인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중증 치매 환자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요양인 지원이 생활 보조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급증하는 치매환자를 막기 위해서는 치매가 오기 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정부는 차후 경도 치매 환자까지 포괄하는 치매 5등급을 신설하여 치매 예방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브레인닥터는 이러한 정책 기조에 발맞춰 치매 예방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의사가 웹을 통해 환자를 인지 할 수 있고, 매일 혈압, 혈당 등의 환자 리포트를 실시간으로 전송 받고 그에 대해 피드백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브레인닥터의 활용 기록이 데이터로 저장되기 때문에 특정 기능이 떨어지면 그에 대한 학습을 늘릴 것을 조언하거나, 이후 약물을 집중 처방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치매 환자 자체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치매 연구에도 활발히 기여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얼마든지 치매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바이오마커(단백질이나 DNA, R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통해 치매가 걸릴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브레인닥터 같은 치매 예방 어플 설치를 권유하고, 관리하면 치매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면 치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과 다름없죠." 브레인닥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사용교육 문제다. 김 교수는 "스마트 기기에 친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 어플과, 요양사를 대상으로 한 치료용 어플을 별도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스크린 터치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분들이 집중력을 갖고 어플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더 고안해야 합니다. 피처폰과 달리 스크린터치 형태의 스마트 기기는 누르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집중을 못하시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쉽고 지루하지 않은 어플 개발이 당면한 목표라고 할 수 있죠." 김 교수는 브레인닥터에 대해 신의료기술 인정을 신청했다. 신의료기술로 선정되면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환자들이 브레인닥터 설치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고 차후 연구를 위한 재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지난 심사에서는 임상 자료가 많지 않아 탈락했지만 임상 데이터를 더 모으며 신의료기술이나 의료보조기구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인환자만이 줄 수 있는 끈끈한 매력에 이끌려 김 교수는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 치매환자를 접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치매는 노환의 일종으로 취급 받아서 병원의 치료보다는 가정에서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 그 후 지도교수의 권유로 치매학회에 참석하면서 노인 환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치매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신경과로 진로를 정하니 노인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돼요. 제 전공에서 다루는 것이 뇌졸중이나 치매 같은 질병이니까요. 노인환자들에게는 젊은 환자들은 줄 수 없는 끈끈한 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치긴 하지만 힘들진 않아요. 노인들은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데 그분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친구가 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 교수는 타 대학 의대에 진학하기 전 우리대학 생물학과에서 학부를 마쳤다. "신경학과에 진학 이후 학부 때 배운 기초과학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시기가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신경학과는 고령화 사회의 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이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원리원칙을 지키는 연구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임상 데이터를 모으면서 데이터 조작에 대한 유혹도 많이 들었어요. 논문도 계속 써야 하는데 자신의 연구성과를 더 예쁘게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연구자가 돼 우리나라 연구 환경 개선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선희 학생기자 pdg10@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01

[교수]여행을 사랑한 인권학자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저자 박찬운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독재권력에 저항했던 인권 변호사, 우리 사회 저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실무 행정가, 그리고 잘 나온 박물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추운 겨울 한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는 대학 교수. 법의 길을 걸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역사의 길에 도착한 우리대학 박찬운 교수(법학전문대학원)를 만났다. 역사교사를 꿈꾸던 꼬마, 변호사가 되다. 인권 변호사로 유명한 박 교수는 삶을 얘기하면서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사실 역사 교사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역사 선생님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역사를 좋아했어요. 교과서에나 나오는 유물 사진들이 말을 하는 것 같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고민하면 그 유물의 의미가 밝혀지는 것 같았죠. 그런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역사교사나 법률가 중 고민했어요. 당시 시대상황상 법대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법학을 공부하게 된 거죠. 대학을 다닐 때부터 변호사 생활, 실무가를 할 때까지 역사는 한편으로 아쉬움이었습니다.” 아쉬움은 학창시절에도,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아쉬움으로만 남아있어야만 했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취미로’ 역사를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했었죠. 뒤를 돌아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반 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에 함께 하지 못했어요. 우리세대의 학창시절은 장밋빛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던 그는 결국 스물 두살, 198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민주화 운동이나 우리사회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죠.”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와 인권옹호자의 길을 걷는다. 20대부터 30대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과 난민법률지원위원장 등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높였다. 한편으로는 시국사건 연루 양심범과 수용자, 사형수 인권변호에도 나섰다. 박 교수는 ‘변호사가 되고 첫 십 년 동안은 정말 일만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되고 10년동안 내 분야에서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인권분야가 워낙 사건도 많았던 것도 있지만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역사나 문명에 관련된 책을 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국제 인권법’에서 ‘역사’로 난 오솔길 인권분야에서 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인권신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 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얻어내도록 한 재심(2008년)의 1차공판 변호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인권 관련 정책 입안에 앞장섰다. 이렇게 국제인권법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가던 박 교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온다. 박 교수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역사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이 조금은 가셨다고 말했다. “귀국 이후에 다른 일을 할 때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역사책을 보고, 문화 예술책도 꾸준히 봤어요. 각종 국제회의와 초청으로 외국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어서 회의에 가게 되면 비는 시간에 박물관도 가능하면 찾아보고 이곳저곳 찾아다녀봤죠. 그 때부터 조금 갈증이 풀리더군요,” 길이 길을 만든 셈이다. 꿈꿔왔지만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 선택한 길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구년은 박 교수가 ‘늦깎이 공부’를 하기엔 금상첨화였다. 연구년을 맞이해 스웨덴의 룬드 소재 라울 발렌베리 인권 연구소에 간 것. “그 기간 동안에 주어진 한도 내에서는 많은 여행을 했어요. 논문을 마감하거나 원고를 끝내면 틈나는대로 여행을 많이 가보려고 했죠.” 낮에는 논문을 쓰고, 밤에는 문명과 역사를 공부했으니 주경야독인 셈. 박 교수는 당시의 스웨덴의 긴 밤을 이야기했다. “스웨덴의 밤은 정말 길었어요. 북유럽이다 보니 겨울 밤은 거의 16시간이 넘었거든요. 유럽에선 정말 많은 곳을 갔죠. 서유럽 이곳 저곳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까지요. 유럽 저가항공을 통해서 정말 싸게 돌아다니면서 박물관과 많은 유적들을 관람했어요.” 이렇게 관람한 유적과 독서를 통해 생각한 점들을 모아 박 교수는 연재를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박찬운의 세계문명기행’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문명유적지를 중심으로 글을 썼고, 다음으론 로마문명에 관한 글을 썼어요.” . 시오노 나나미가 르네상스 문명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글을 썼는데 그것이 쌓여서 ‘로마 문명, 한국에 오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비판적 해석 올해 5월에 출판된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라는 책은 박 교수만의 문명 해석 방식이 가미된 독창적인 책이다. 우선 로마문명을 통해서 한국을 바라본다. “로마의 카이사르를 보면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이야기해요. 혹은 판테온 신전을 보면서 석굴암을 함께 비교해보고 저만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요. 가장 쉬운 예로 길을 봐요. 로마는 돌 포장길을 만들었는데 폼페이에 가서 로마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살펴보는 거죠. 기원 전에 만들어진 도로가 아직도 남아있잖아요. 그러다가 한국의 출근길을 떠올려봅니다. 내가 출근길에 보는 보도블록을 보면 깨져있고 주저 앉고 내려가고 흔들리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지적하고 비교해보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원 전 사람들보다 과연 얼마나 더 발전했나 말이죠.”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이야기가 나오자 박 교수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약 130장 정도가 책에 들어갔어요. 비싸고 고가장비인 DSLR이나 좋은 촬영장비로 찍은 게 아닙니다. 믿을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은 거에요.. 비록 최고의 사진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찍은 것 의미가 있지 않아요? 이 정도면 스마트폰 사진이라도 볼 만 하지 않아요? 특히 이 과정에서 제가 독특하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어요, 제 1장인데 로마황제의 조각상을 보면서 그게 그 시대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았어요. 돌로 만든 초상화 말입니다. 이 황제의 조각상은 우리시대의 사진 같은 것이고 백성들한테 이 사람이 황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금화에 넣은 황제의 얼굴도 따지고 보면 초상화에요.” 인터뷰가 끝나가면서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강조하면서 해석이라는 문제를 말했다. “우선 발견과 해석을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1류인간, 2류인간이란 말이 있지요, 1류인간을 원한다면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얻는 게 아니라 좋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중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가치관에 따라 여행하는 것도 달라져요. 술 먹고 담배피우고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모아 내 인생을 위해 여행을 떠나세요. 해외도 좋고, 국내도 좋습니다. 그리고 독서가 중요해요. 우리가 아무리 경험을 넓히고 싶어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 한계를 독서로 돌파해야 해요. 항상 여러분들도 여행과 독서를 통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느끼고 도전하세요. 여러분들의 꿈을 찾으시길 바라요.” “내 인생을 사로잡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은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탐구, 그리고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동정이다.”라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세 가지 열정’이 삶의 경구라는 박 교수. 박 교수가 보내온 삶의 궤적은 그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문장과 그 방향을 같이 했다. 정상운 학생기자 lovecool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09 18

[교수]끝인 듯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앞에 서다

최형인 교수의 삶을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 위를 움직이고 대사를 읊어대는 매우 분주한 주인공일 것이다. 그녀는 지난 30년 동안 교수 외에도 배우, 연출가, 극단 대표까지 수많은 역할을 해내느라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2014년 정년퇴직 교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퇴직 후에도 한양과 이어진 끈은 여전하기에 그녀에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에디터 송유진 | 사진 성균 ▲ 한양대 연극영화과 최형인 교수 걸어온 길 최형인 교수는 1984년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로 취임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녀에게 ‘배우 출신 1호 교수’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이후로도 수많은 타이틀을 단 그녀의 지난 30년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은 역시 ‘연기파 배우들의 대모’이거나 ‘수많은 톱스타의 연기 스승’일 것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 배우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연기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학해서 저한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나간 제자들은 저를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배우가 되도록 입문시켜줬으니까. 저는 저에게 연기 수업을 받은 제자들이 자기 실력이 탄탄해서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잘해낼 수 있는 배우,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면서 성장하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제자들이 인기에 연연하는 연예인이 아닌 연기 잘하는 배우, 생명력이 긴 배우가 되길 바라는 그녀는 수업할 땐 카리스마 넘치는 엄격한 선생님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밥 아줌마’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따뜻하고 푸근한 선생이기도 하다. “연극배우는 흔히들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배우들한테 밥 한 끼라도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서 연습실에서건 어디서건 밥을 잘 해줬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떨 땐 크게 화를 내서 아이들이 ‘선생님 불쇼 한다’고 표현하기도 해요. 하지만 평상시에는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학생들하고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걸어갈 길 최형인 교수는 제자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연기에서 아쉬운 점을 발견하면 전화나 문자로 연기를 지적해주고, 제자가 새로운 배역을 맡게 되었다며 대본을 들고 찾아오면 대본을 꼼꼼히 검토하며 연기를 지도해주는 천생 선생이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 중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가 가장 짜릿하다고 말하는 천생 배우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너무 바쁘게 보낸 것 같아요.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동안 공연한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 리타 역을 맡았고, 지난 4월에 공연한 <거울 속의 은하수>에서는 비운의 황족 의친왕비로 출연했어요.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실컷 연기했죠.” <거울 속의 은하수>의 경우 제35회서울연극제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았는데, 최 교수는 여자 연기상을 받으며 그녀의 실력이 여전함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한양레퍼토리 극단이 오랜만에 선보인 두 작품 모두 평단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보면 그녀가 바쁜 와중에도 극단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년퇴직을 한다고 해서 저에게 특별한 변화는 없어요. 연영과 석좌교수로 계속해서 학교에 남으니까요. 수업도 지금과 똑같이 일주일에 8시간 진행할 거예요. 사람들이 퇴임식이다 퇴임교수 만찬이다 하면서 퇴임 얘기를 할 때만 조금 실감이 날 뿐이에요. 사실 퇴직하면 여유로워질 줄 알고 맹인들을 위해 책 낭독 봉사도 하고 새로운 일들을 해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퇴직을 해서도 제자들한테서 벗어날 수가 없네요.” 최형인 교수는 앞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 석좌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다. 타이틀만 바뀌었을 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생활은 여전하다. 본인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는 학생에게서 배움을 얻기도 한다는, 그러면서 본인 자신도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그녀가 배우로서, 연출자로서, 또 극단 대표로서 다음 행보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기대가 된다.

2014-08 27

[교수]실패는 두렵지 않다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 창의적 사고가 필요해" 생명과학 분야의 가장 큰 이슈라면 단연코 '줄기세포(stem cell)' 다. '줄기세포'란 신체 내 다른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分化)될 수 있는 세포로 불치병 치료와 장기 재생 등 인간의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 시킬 것이라 각광받는다. 이런 줄기세포가 체내의 신호가 아닌 '외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밝혀내 2014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자 펠로십을 수상한 심지원 교수(자연대·생명과학)를 만났다. 기존 연구와는 다른 생각 지난 6월 25일 심 교수가 수상한 '2014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자 펠로쉽상'은 40세 이하 여성 신진 생명과학자를 발굴하기 위한 상이다. 올해로 열세 번째 수상자를 선정한 이 상은 과학 여성생명과학기술 포럼이 수상자의 선정 및 시상을 주관했다. 수상한 논문 '후각신경에 의한 조혈모세포의 조절'은 생명과학분야에 권위 있는 학술지로 알려진 'Cell'의 표지에 실리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심 교수는 펠로쉽상 선정의 이유로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꼽았다. ''기존의 연구결과들은 줄기세포의 분화가 체내의 신호에 의해서 시작된다는 의견이었어요. 저는 줄기세포의 분화가 외부환경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눈이 없는 구더기를 실험대상으로 선정해서 구더기의 후각신경이 외부 환경을 인지하여 줄기세포 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죠. 기존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이 수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심 교수는 지난 2월 미국 UCLA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올해 초 우리대학 생명과학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새내기 교수로서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던 심 교수는 이번 수상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겠다"고 했다. 자유로운 연구, 창의적인 연구 기존 연구와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심 교수. "처음 줄기세포가 생체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셨어요. 전통적 주류의 사고를 깨는 것이 쉽지 않았죠. 결국 실험을 통해 보여드리니 저의 이론을 인정해주시고 연구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남다른 사고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심 교수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학생 때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학생이었어요. 학부 때 우연한 계기로 실험실에 들어갔고 그 때부터 연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대학원에 진학하고서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됐어요. 지도교수님께서 정말 좋으셔서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주말에는 취미생활도 하고 실험실 사람들과도 잘 지냈어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죠." 심 교수는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창의적 사고의 조건이라 말했다. "제가 주류에서 벗어난 실험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 덕분이었어요. '일단 밀고 나가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수 많은 실패를 했겠지만 잘 기억나지 않아요.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의 유전구조와 70~80% 비슷하다고 알려진 초파리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에 흥미를 느껴 시작한 심 교수의 연구는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재는 기존에 연구해온 외부환경에 의한 줄기세포의 변화뿐 만 아니라, 장내세균으로부터 시작되는 줄기세포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는 세포 수준의 연구에서 개체수준의 연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은 줄기세포를 잘 조작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넣어주는 것이에요. 현재 세포수준에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막상 개체를 생체에 넣으면 면역 체계 등의 방해로 예상치 못한 반응이 많이 일어나죠. 앞으로는 개체수준에서 연구가 필요해요." 과거 우리대학 자연대에는 여성교수가 거의 없었다. 진언선 교수(자연대·생명과학)가 자연대 최초 여성교수가 됐고 현재는 십 여명의 여성 교수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성 생명과학자로서 애로사항은 없었을까. "다른 분야에 비해 생명과학 분야는 업적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크지 않아요. 여자로서 연구자로 일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하지만 육아와 가정, 그리고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아직도 가장 큰 숙제에요. 생명과학 분야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연구 성과가 나오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현재 저희 과 학생들의 남녀비율은 거의 비슷하죠. 석·박사 과정까지도 남녀비율이 비슷해요.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은 남학생이 훨씬 높아요. 보통 박사를 받는 시기가 30대 초반인데 많은 여성들이 그 시기에 결혼과 육아로 인해 외부의 도움 없이는 공부를 계속하기가 쉽지 않죠. 앞으로 이런 점을 보완하는 방법이 마련돼 여성 박사들의 사회진출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된 창의적 사고 새내기 교수 생활은 어땠을까. "학생들이 상상이상으로 성실하고 똑똑해서 많이 놀랐어요.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공부하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더라고요. 대학원 다닐 때 까지만 해도 학부생들을 그저 후배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저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사랑 받을 가치가 있고 중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교수이기 보다는 엄마같이 친근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심 교수.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과학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해요. 번뜩이는 질문을 위해서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죠. 하지만 유효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 돼야 해요. 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등한시 하지 않고, 많이 알수록 넓게 생각 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박종관 학생기자 pjkko@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04 16 중요기사

[교수]개인의 취향, 컴퓨터는 알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창의적 사고의 정수, 고된 일이라는 편견 버려야 인터넷 세계를 활보하는 개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데이터를 생산, 소비한다. 블로그에 자신의 일과를 포스팅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고, 전자책을 구매하며, 운동량을 측정한다. 개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데이터의 형태로 저장되는 것.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관찰하면 개인의 생활 패턴에 근거한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 김상욱 교수(공과대·컴퓨터) 연구팀은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사용자의 상황에 적합한 음악을 추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운동 중엔 경쾌하게, 수면 중엔 잔잔하게 김상욱 교수 연구팀이 국제컴퓨터학회(ACM,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제29회 응용컴퓨팅심포지엄(SAC, Symposium on Applied Computing)에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에서 916편의 연구 논문이 제출됐고, 그 중 221편만이 발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수상은 논문 자체의 질과 발표의 우수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연구팀은 '모바일 스마트 기기에서의 상황인지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 추천' 기술을 발표했다. 기기의 각종 센서를 이용해 사용자의 상황을 파악, 그 상황에서 가장 감상하기 좋은 음악을 추천한다. 김 교수는 연구실에 소속된 대학원생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홍지원, 황원석(컴퓨터소프트웨어학 박사과정)씨다. 김 교수는 “박사과정 학생들의 실력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모바일 스마트 기기는 다양한 기능을 통해 사용자의 상황을 인지한다. GPS를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고, 인터넷과 연결해 체류지역의 날씨를 확인한다. 가속도 센서를 통해 격렬한 움직임과 정적인 움직임을 구분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사용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한다. 각 상황에 적합한 음악은 그간의 선호도를 통해 선별한다. 특정 상황에서 소비자가 선호했던 음악 사이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 김 교수는 "사용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분석하면, 유사한 상황에서 사용자가 들을 확률이 높은 음악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축적된 데이터가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음악 추천이 가능할까. 연구팀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보완책을 꼼꼼히 마련했다. 새로운 상황과 유사한 기존의 상황에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하는 것. 사용자의 지루함을 줄이는 데도 신경 썼다. 같은 음악이 반복 추천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것. 곡마다 재생 빈도를 기록, 재생 빈도가 높을수록 해당 곡이 추천 목록에 오를 확률은 낮아진다. 또한, 새로운 음악이 출시됐을 경우 사용자가 선호하는 음악과 장르나 분위기가 유사한 것을 재생목록에 포함한다. 김 교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탄탄하게 준비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이러한 기술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기기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제너럴리스트'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애플 사가 스마트폰 시장을 강타한 이후, 세계 시장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고급 인재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인식은 마냥 좋지 않은 상황. 밤을 꼬박 세우는 고된 업무, 이에 반해 처우가 좋지 않다는 편견 때문이다. 김 교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세간의 오해에 일침을 가했다. 김 교수는 “과거의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이 단순한 코딩 위주의 개발에 치중됐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라며 “소프트웨어 분야의 고급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유수 기업에서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프트웨어는 창의적 사고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대학원 진학을 당부했다. 취업 시장만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안타깝단다. 김 교수는 "학부를 졸업한 이들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 없이 취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원에서 실력을 쌓으면 하고 싶은 일에 오랫동안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했다. 대학원은 '제너럴리스트'가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길. 학부 시절 기본 지식을 쌓은 뒤, 대학원에 진학해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우리대학 교수진의 실력을 자부했다. 김 교수는 “우리대학 컴퓨터 공학부에는 세계적인 업적을 이룬 교수진이 포진해있다”며 “자신의 미래를 이들과 함께 설계해 나가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학자의 길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연구의 주체성’을 말했다. “기업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합류를 제안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면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연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지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는 학자의 길에 머물며, 제자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려 한다. 어수룩하던 학생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기쁨은 그의 원동력. 김 교수는 오늘도 무성한 데이터의 정글에 이정표를 세운다. 학력 및 약력 김상욱 교수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우리대학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탠포드대학교 방문 연구원, IBM 왓슨 연구소 박사 후 과정(Post doc.), 카네기멜론대학교 방문 교수 등을 지냈다. 우리대학 데이터 및 지식공학 연구실을 지휘하며,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 아시아연구소, 카네기멜론대학교, 펜스테이트대학교와 빅 데이터 분야의 국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제 학술지 인포메이션 사이언스(Information Sciences)의 부편집인이며, ACM/IEEE 등 다수의 국제 컨퍼런스에서 의장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한다. 곽민해 취재팀장 cosmos3rd@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권요진 사진기자 loadingman@hanyang.ac.kr

2014-04 02

[교수]“무대 위에서 마음껏 끼를 발산하세요”

졸업생들에게 다양한 무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2년 문을 연 한양레퍼토리 극단의 대표이자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 쏟고 있는 최형인 교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디터 송유진 | 글 곽민해(학생기자) | 사진 성균 ▲ 한양레퍼토리 극단 대표 /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 공연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대사도 많고 두 달 동안 공연해서 무척 힘들었어요. 공연은 언제나 그래요. 2시간 남짓 무대에 오르지만 내 안의 모든 세포를 집중해야 하죠. 드디어 끝이 났다니 후련한 마음이 가장 크지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이 벌써 그립습니다.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는 한양레퍼토리 극단이 2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재미와 문제의식을 함께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 그를 버리지 못하는 부인과 가족을 그려낸 블랙코미디예요. 가족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 가장 심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이잖아요. 하지만 가족이기에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를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죠. <징글징글, 오 마이 패밀리>는 상처가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용서는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지난 1992년에 문을 연 한양레퍼토리 극단은 현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신인 배우들은 무대에 오를 기회가 너무 적습니다. 연극 무대가 늘어나야 좋은 배우가 많아지는 법인데 말이죠. 한양레퍼토리 극단은 후배 배우들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다양한 무대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이 전문 배우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권해효(85·연극영화), 유오성(85·연극영화), 설경구(86·연극영화), 이문식(87·연극영화) 등이 모두 한양레퍼토리 극단 출신이에요. 배우뿐만 아니라 신인 연출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신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올 상반기에 공연 예정이 있나요? 오는 4월 19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신은수 작가의 <거울 속의 은하수>라는 연극을 공연할 계획입니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비운의 황족 의친왕의 아들 이야기를 다뤄요. 의친왕과 그의 장남 이건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해요. 연극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이라는 극적인 풍경을 바탕으로 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는 의친왕비로 출연해요. 극단 대표이자 교수로서 어떤 연기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한 연기를 강조하는 편이에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꾸미지 않는 연기를 좋아하고요. 좋은 역할이 생기면 언제든지 무대에 서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