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78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5-07 08

[교수]법 연구자이자 인문학 도서 작가

"알고 싶고, 보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연구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쓰인 글귀가 눈에 띈다. “알고 싶고, 보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이는 14세기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의 시대정신이며 박찬운 교수(법대 법학)가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너는 고민이 있니? 무슨 일로 걱정하니? 알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라는 물음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박 교수. 그는 의문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르네상스맨이라 부른다. 3권의 인문학 서적을 출판했고 올해 6월 30일 빈센트 반 고흐(Gogh)에 대한 독특한 구성의 책을 출간한 박 교수를 만나봤다. 법조인, 교수,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 25년간 변호사로, 10년간 교수로, 동시에 이제는 집필가로서의 삶을 내딛고 있는 박찬운 교수(법대 법학). 법조인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컸던 그가 인문학 서적을 쓴다는 것은 얼핏 들었을 때 생소하게 느껴진다. 사실 박 교수는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인권법 분야의 개척자이며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서를 낸 학자이기도 하다. 두 모습이 서로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사실 법률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커졌다. 법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계기는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집안은 좌우대립적 한국사회 정치 양상의 희생양이었어요. 외가는 고향에서 아주 유명한 좌익이었고, 아버지는 전쟁 중 국군 장교였기 때문이죠.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마음 깊이 계속 내재돼 왔어요. 우리 사회를 결코 호의적으로 볼 수가 없었죠” 이후 박 교수는 부정적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의 원인에 대한 고민했고 그것은 지식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지식인들이 진실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막연하게 ‘사회에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법률가로 구체화 됐다. 법률가가 된다면 진실을 밝히고 세상의 정의를 세우는데 조금은 기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법대를 진학하게 되고 사법시험에 매진해 변호사의 꿈을 실현했다. 이후 25년간 법조인의 삶을 살면서 한국 법률가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한국의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세상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법률가가 돼요. 소위 고시공부를 하면서 사회와 단절된 채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죠. 저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는 법률가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에 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 등 깊은 고민과 통찰력이 토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국제인권법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의 유학생활 보낸 후, 한국사회에서 ‘인권법 개척자’로 많은 활동을 하고 10년 전 우리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교수가 된 후 변호사 시절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그는 책을 읽고, 인간, 역사, 예술에 대해 탐색하고 공부하며 과거 못다했던 인문학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어 자신이 아는 것들을 잊기 전에 정리를 한다는 차원에서 대중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평소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법학에 인문학적 정서를 연결시키는 데 깊은 관심을 가져 왔던 박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몇 권의 인문학 책을 저술해 왔다. 2011년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2013년 ‘문명과의 대화’(문광부 우수문학도서), 2014년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인문적 관심사가 이번에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석을 엮은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를 출간한 것. 반 고흐는 대중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박 교수는 평소 반 고흐의 작품과 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0여년 전부터 고흐와 관련된 책을 쓰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가을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하고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하게 됐죠.” 박 교수는 처음에는 그림을 설명하는 정도로 그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고, 좀 더 몰입해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반 고흐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주 2회 이상 꾸준히 게시 글을 올렸다. 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두시간 동안 200자 원고지 20~30매 분량의 글을 게시했다. ‘새벽을 깨우다’라는 책 제목도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주로 새벽에 글을 쓰니 그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에너지가 저의 영혼을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이렇게 정하게 된 것이고요.” 고흐를 주제로 한 칼럼은 3개월간 계속 됐고 총 49개의 글들에는 약 1200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 글들을 한데 엮어 800쪽 분량의 인문도서로 출간하게 됐다. 상상력을 엮어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 시중에 고흐에 대한 미학적 도서는 많다. 하지만 박 교수의 책은 그 구성이 독특하다. 이 책은 박교수가 반 고흐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과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총 39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이 책에는 고흐의 삶을 토대로 한 작품 해석과 함께 페이스북 포스팅에 달린 댓글의 일부를 함께 실었다. 책 자체에 독자의 반응을 반영한 쌍방향식 도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페이스북에 연재되었던 글이기 때문에 기존의 딱딱한 학술적인 방식을 탈피하고 읽기 쉬운 서술체의 장점을 살려 독자들이 미술감상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게끔 도왔다. “한국에 고흐에 관한 책들은 많지만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 것들을 기록한 책은 제 책이 유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 교수의 인문학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현재 여러 분야에서 인문학과 관련된 활동을 계획 중이다. 학생 전체를 상대로 인간의 ‘권리’라는 법적 개념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융합교양과목을 준비 중이고 관련된 교양 도서도 집필할 예정이다. 또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과 서양화의 작품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하는 책도 구상 중이다. 박 교수에게는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창작의 과정이었다. “제목은 어디에 넣을지 책 표지는 어떻게 할지, 내용은 또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 많은 고민과 선택의 과정이 필요했죠. 그 과정이 모두 창조의 과정이었습니다” 박 교수는 이런 창조력의 밑바탕은 독서와 여행이라고 설명했다. 즉 창조력을 키우기 위해선 평상시 독서를 많이 하고 때때로 여행을 통해 독서한 것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창조력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머리 속에 있던 생각이 증폭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선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여행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상상력이 엮어져 지식의 교합과 가공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의 원동력입니다.” 이수정 기자sj930212@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5-07 07

[교수]관광, 즐거운 일탈의 장을 연다

‘2015 의정부음악극축제’ 총감독이자 한양대학교 관광연구소장인 이훈 교수. 그는 여가와 축제에 관한 폭넓은 연구와 문화예술축제 평가, 관광정책, 관광사업 컨설팅 등 다방면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훈 교수에게 여가와 관광이 가져야 할 참 의미를 물었다. 글 임상범 | 사진 김정훈 ▲ 한양대 이훈 교수(사회과학대학 관광학부, 관광연구소장) Q. 교수님의 주된 연구 분야와 활동 내용은 무엇인가요? 여가와 대안 관광, 두 가지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합니다. 대안 관광은 생태 관광, 문화예술 관광, 축제 등을 의미합니다. 대량 관광이 지닌 ‘환경 파괴’나 ‘만족도 저하’ 같은 문제 해결이 대두되고 있는데 저는 이와 관련한 학술 연구와 발표,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또 1년에 25가지 정도의 축제에 관여해 자문하거나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Q. 연구 활동을 통해 이룬 성과를 소개해주세요. 우선 수학여행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많은 학생이 제주도나 경주 등 여행지가 제한적이고 프로그램 구성이 뻔한 수학여행에 불만족스러워했습니다. 수학여행을 통해 학생들은 여행지를 제대로 느끼고 경험하거나 여행에 대한 참재미를 느끼기는커녕 ‘여행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품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관광공사나 관련 기관과 연계해 수학여행에 대해 연구한 후 소규모 테마 여행을 제안했어요. 서울시 각 학교 교장, 교감을 대상으로 수학여행의 변화를 제안하는 과정들을 거치며 현재는 전국적으로 수학여행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자 세계문화유산인 궁궐 연구도 뿌듯한 성과를 냈습니다. 궁궐은 사람들이 재미없어하고, 재방문율이 낮습니다. 중장기발전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한 결과 ‘창덕궁 달빛 기행’이나 ‘궁중문화축전’ 등을 통해 궁이 재미있는 장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Q. 수학여행의 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은 습관입니다. 어릴 때 경험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도 좋은 여행을 하기 어렵습니다. 수학여행은 그 경험의 시작을 제도적으로 주도할 수 있어서 중요하죠. 삼각산 고등학교는 소규모 테마 여행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사라지면서 적극적으로 학교를 지원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단순히 여행의 질이 좋아진 게 아니라 관계를 재형성하게 되었지요. 또 학습 능력 위주로 교육하고 평가하는 학교를 벗어나면 아이들이 갖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의적 기획을 잘하는 아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아이 등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신감도 심어줄 수 있죠. 여가란 단어에는 리셋(Reset) 외에 스쿨(School)의 의미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정서적으로 풍부해지는 것, 즉 잘 노는 게 중요합니다. 놀이 속에 공부도, 관계도 있는 것이지요. Q. 여가와 여행에 대한 개인 혹은 우리 사회의 시각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확실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여가를 공간적·시간적 확장 개념으로 본 게 투어리즘( Tourism)입니다. 한양대 관광학부의 경우는 종합과학적인 측면에서 여가를 바라봅니다. 경영학 측면에서 보는 타 대학의 관련 학과와의 차이점입니다. 관광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놀이자’로 먼저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관광객은 놀러 가는 것이고, 놀다 보니 소비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객이 진심으로 바라는 욕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Q. 그렇다면 교수님이 관광이나 축제를 연구할 때 지키고자 하는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의 큰 방향은 ‘어른들을 아이처럼 즐겁게 놀게 만들자’입니다. 놀이성(Playfulness)은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지만 갑옷으로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여행이나 음주 시 노래방처럼 밀폐된 공간 등에서 놀이적 특질이 발산되죠. 여행이나 축제는 일상성을 벗어나 놀이적 성향을 발휘하는 일탈의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Q. 현재 우리나라 관광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관광객은 1400만 명이 넘습니다. 인구 5000만 국가에 이만큼 여행을 많이 가고 오는 나라는 드뭅니다. 전국에 관광 관련 학과도 199개나 되어 훌륭한 인력이 양성되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축제 역사는 고작 20년이에요. 내국인이 먼저 즐기면서 천천히 뿌리를 내려야 확산되고 글로벌화된다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와 발표한 논문을 정리해서 책을 쓰고 싶습니다. 책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니까 여유를 갖고 준비하려고 합니다.

2015-06 24

[교수]돌봄의 공간을 짓다

진정한 병원이란, 돌봄의 공간이 되는 것 여름의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이하 메르스)이다. 메르스는 지금까지 전염성이 약한 질병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짧은 시간에 급격한 확산이 일어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확산의 원인은 무척 다양하나, 그 중 하나로 '병원의 구조'가 꼽혔다. 아픈 곳을 치료해 건강하게 퇴원해야 할 병원에서 오히려 병을 얻어가고 있는 실정에, ‘병원의 구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양내원 교수(공대 건축)의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회장 당선에 더욱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일 것이다.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축가, 양 교수를 만나봤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흐름 양내원 교수(공대 건축)가 제5대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에 회장에 선출됐다.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는 병원 건축과 복지시설 관련 분야의 전문인들이 모여 만든 학술단체로, 의료복지건축 수준 향상을 위해 1980년대 '병원 건축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생겨났다. 양 교수는 병원건축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번 회장 선출 역시 양 교수의 뛰어난 실력과 그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양 교수는 '강북삼성병원', '진주의료원' '서울시립보라매병원', '서울시립어린이병원' 등 국내 유명 대형병원의 건축이나 증축을 진두지휘 해왔다. 특히, 서울시립어린이병원은 공공건축 분야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 ERICA캠퍼스에는 양 교수가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번 회장 당선에 대해 양 교수는 "모든 이들이 병원 건축에 함께 힘쓴 결과이며, 더 훌륭한 이들이 많다"고 겸손해 했다. 병원 건축의 일인자인 양 교수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돌봄의 공간'을 짓는 것이다. 의료 건축에서는 그 어떤 기술력보다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양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건축과 의학의 만남은, 기술적으로 훌륭한 병원이 아니라 따뜻한 돌봄의 공간이라는 결과물을 낳아야만 한다"는 가치관을 밝혔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학문인 공학과 건축학에서, '돌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흐름'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흐름의 장을 짓는 것이 진정한 건축"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돌봄과 흐름의 가치관에서 탄생한 양 교수의 건축물은 생동감 넘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흐름의 장이 되곤 한다. 선배이자, 스승이 되어 양 교수는 우리대학의 건축학부 교수인 동시에 우리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한 동문이기도 하다. 양 교수가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다소 특이하다. 학창시절 양 교수는 지망했던 여러 대학에 떨어지자, 당시 2차 대학이었던 우리대학에 지원했다. 그러나 딱히 원하는 학과가 없어 전공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가 역술가를 찾아갔고, '흙과 나무를 만지면 대성한다'는 역술가의 말에 따라 토목공학과를 지원했다. 그 후 학교를 다니면서 건축공학과로 학과를 최종 선택했다. 양 교수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전공에 대해 고뇌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는 대학생이었음을 회상하면서 지금 대학생들이 느낄 어려움에 함께 공감했다. "어느 전공이나 다 그렇겠지만, 건축은 어느 정도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건축가를 꿈꿔 건축학과에 진학한 다른 재능 있고 꿈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런 고민들은 양 교수를 더욱 노력하게 만들었고, 의료 건축에 발을 내딛게 만들었다. "의료 건축은 여러 건축 분야 중 가장 논리적이고 계산적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저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계산적인 분야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병원 건축을 하게 됐네요." 학번이 20년도 넘게 차이 나는 후배이자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학생들은 가르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양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무언가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독일 유학 시절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제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교과서적 지식은 많았으나 거기에 제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생각이 없는 지식은 결코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단순 지식의 습득이 배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저 역시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항상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창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건축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루이스 칸은 "학교란, 한 그루의 나무 밑에 자신이 교사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과 자신이 학생이라고 느끼지 않는 청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러한 건축가가 되기를 언제나 소망한다. 그 누가 보아도 학교, 교사, 학생으로 분리되고 규정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허물없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그런 공간을 꿈꾼다. 지금까지 그렇게 학교와 병원을 지어왔다. 그래서 앞으로도 양 교수는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이어주는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좋은 건축물 주위에서는 항상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잘 지어진 건축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부터, 지금 우리대학 ERICA캠퍼스의 호수 공원에도 항상 학생들이 모여듭니다.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간과 건축만이 살아남지요. 앞으로도 사람과 관계를 생각하는 그런 건물과 공간을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2015-05 08

[교수]‘혁신’을 담은 공간,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생각을 열다

장순각 교수를 만나기 전 그가 선보인 여러 공간들을 먼저 만났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 그를 표현하는 말에 왜 ‘혁신’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지 그 공간들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국내 3대 메이저 건설사의 주택문화관을 설계하며 가까운 미래 더 나은 삶을 위한 주거문화를 제안하기도 한 장순각 교수. 그를 만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질 주거 형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에디터 박선영 | 사진 박순애 ▲ 한양대 생활과학대학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장순각 교수 Q.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시도, 시들지 않는 변화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주거, 집이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시도는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집이라는 것은 가족을 온전히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주거 공간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요. 행복하게도 그간 만난 건축주의 폭이 넓은 덕분에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 기존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하고자 하는 제 의지를 이해하고 그에 동의해주는 건축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새로운 시도란 겉으로 보기에는 디자이너의 감성에 의한 것으로 비쳐지기 쉽지만 철저한 분석과 이성적인 판단으로 만들어집니다. Q. 이성적인 판단에 감성이 더해져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공간은 되돌림이 없습니다. 한번 만들어지면 쉬 바꿀 수도 원점으로 돌릴 수도 없죠.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반품하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되지만 공간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합니다. 저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공간을 작업할 때 그 공간을 사용할 사람에 대한 이성적 분석을 먼저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식사를 하며, 언제 집을 나서서 언제 돌아오고, 저녁에는 집에서 무엇을 할지… 그런 세세한 것들을 모두 시나리오에 포함한 후 ‘여기서는 이런 감동을’ ‘이쯤에서는 이렇게 화목한 기억을’ 등등 디자이너로서의 감성을 더합니다. Q. 공간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서 가까운 미래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하시나요? 현재 사물인터넷이 건축에서 무척 중요한 상황인데 이 기술이 주거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순간 우리의 주거 형태도 엄청난 변화를 보일 것입니다. 기계공학적인 측면도 앞으로 공간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될 거고요. 한번 놓이면 그 공간에 고정되는 것으로 여기던 가구들도 웰메이드 기계장치와 결합하면서 트랜스포밍이 가능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층 스마트하고 콤팩트한 공간이 만들어지겠지요.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릴 때 내가 자라던, 내가 기억하는 옛 향수를 떠올리며 오히려 정보화라는 측면과 거리가 있는 아날로그가 부각되는 레트로(Retro)적인 공간도 공존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Q. 결국 주거 형태의 변화는 그 나라의 사회현상 및 문화와 변화의 축을 함께 하는 것인가요? 프랑스 유학 당시 그곳에서는 베트남 난민들을 위한 난민 주거, 이민자들을 위한 이민자 주거, 저소득층을 위한 소셜 하우징 등이 굉장히 발전해 있었습니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처한 사회현상이 그 나라의 주거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 특수한데 주거의 질적인 부분보다는 ‘부동산과 교육’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교통이 편리한지, 투자 대비 가치가 어떠한지, 자녀가 있는 경우 이른바 학군이라는 것에 따라 주거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이 때문에 주거 공간의 질적 측면은 많이 발달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질적 향 상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Q. 공간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교육기관을 디자인할 때 그런 바람을 가졌습니다. 정형화된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서 학원과 학교만 오갔을 학생들에게 ‘공간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건물을 딱 보는 순간 ‘어? 이거 뭐야?’ 이런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교육 공간은 이러이러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영위하는 학생들이 공간이 지닌 느낌을 온전히 체험하며 ‘여기서는 뭐든 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는 친구들은 공간을 통해 생각을 많이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장순각 교수 프로필 1994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1998년 파리 제 1 대학교(Pantheon-Sorbonne) 석사, 박사 수료 1999년 파리 국립빌망건축학교 C.E.A.A 학위취득 現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부교수 現 한양대학교 부설공간과 디자인 종합연구소 소장 *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독일 IF, 독일 RED-DOT, 미국 IDEA)모두 수상

2015-04 15

[교수]조선의 인문학, 시대를 잇다

한중 지식인의 교류를 담은 책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삼천리 밖 사람과 마주하고, 선비의 만남을 반기며 그 모습을 적어보네. 그대의 멋스러움 무엇에 비할까, 알고보니 매화의 화신이시네(相對三千里外人 / 欣逢佳士寫來眞 / 愛君丰韻將何比 / 知是梅花化作身).” 청나라의 나빙이 조선의 박제가와 중국 반정균의 만남을 기념하며 쓴 한시의 일부다. 조선후기, 한중 문인들간의 교류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 속에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홍대용 , 박제가와 같은 실학자들이었다. 고등학교 고전문학과 한국사 수업에서 반갑게 접해봤을 이름들이다. 그러나 정작 조선 사회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들. 이들의 계보는 당시 해외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저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으로 제 40회 월봉 저작상을 수상한 정민 교수(인문대·국문)를 만나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중 지식인 교류의 장, 조선후기 문예공화국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경성제국대 교수 후지쓰카 치카시(藤塚隣)가 박제가를 연구한 자료를 추적해, 청나라 문인들과 조선 북학파(연암학파 - 홍대용,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가 교류했던 실상을 연구한 책이다. 따라서 저서는 입체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책에서는 당시 한국과 중국의 학자 간에 이루어진 지식적 교류를 구체화하고, 여기에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한·중 자료의 합을 맞춘 쌍방향적 연구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후지쓰카는 19세기 추사 김정희와 그의 스승인 조선사신 박제가를 연구한 사람이에요. 그는 초기 청조 고증학단을 연구하다, 조선의 헌책방에서 박제가를 다룬 중국자료를 접하며 청나라의 학술 문예가 조선에 전해진 과정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가 수집한 자료는 국내 연구가 놓쳤던 미시적이고 예각적인 접근을 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집만으로는 교류 대상이었던 중국 지식인들의 생각을 추적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결과 홍대용, 박제가와 같은 지식인들이 중국에서 이뤄낸 활약이 당시 조선사회에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해당 자료들에 담긴 문예 교류의 에피소드들 역시 담고 있다. 당대 지식인들은 직접 만나서는 필담을,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를 통해 양국의 문학을 교류하고 친분을 이어나갔다. 정 교수는 그들의 필적과 후일담 등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박제가의 중국 내 명성에 대해 언급했다. '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으로 꼽힐 사람은 박제가에요. 그는 당시 중국의 상위 5%이내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교류하는 학계의 최고 원로였습니다. 중국 측에서 박제가를 사신으로 보내달라고 정조에게 요청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춘 문인이었습니다. 서얼 신분으로는 참여할 수 없는 조정회의에까지 초청받았으니까요.” 정 교수는 이같은 지식 교류의 매개체는 ‘문자’였다고 말한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중국과 조선의 문자로 쓰인 한문은 오늘날 인터넷환경과 같이 국경을 넘은 ‘지식의 커뮤니티’를 매개했다. “문예공화국은 18세기 유럽에서 융성한 ‘Republic of Letters’에서 따온 말입니다. 독일어, 프랑스어 등 언어의 제약이 유럽 내에도 존재했지만 라틴어로 소통의 문제를 극복했어요. 조선과 중국 역시 한문이 있었기에 유럽과 같은 소통의 공화국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연구는 후지쓰카의 ‘망한려용전’을 얻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청나라와 조선 지식인들이 편지로 교류한 내용이 담긴 ‘연항시독’과 같은 책들을 필사하고 메모를 남겨둔 자료다. 정 교수의 책의 부제가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인 이유다. 후지쓰카의 메모가 담긴 장서 일부는 하버드의 옌칭 도서관에 있었다. 후지쓰카 장서 일부를 접하기 위해 정 교수는 옌칭연구소 연구교수에 지원했고, 2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선발과정에 뽑혀 연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이 완성되는 데는 꼬박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조선과 청나라를 다룬 자료를 모두 검토해야 했기에 연구기간 중 절반이 자료를 정리하는 데 오롯이 쓰였다. “처음에는 옌칭도서관의 사서들조차 후지쓰카의 자료를 찾지 못했어요. 도서관 측에서 ‘우리 도서관에 있는 보물을 몰라봤다.’고 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료들을 찾아나갔습니다. 책을 쓰던 1년은 전쟁 같은 시간이었고요. 고서의 양이 엄청나서 일주일 전의 자료가 꼭 전생의 일 같이 느껴졌어요.”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는 자료를 접할 수 없기에 집필을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교수는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어 책을 썼다고 했다. 네이버 카페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성한 것도 집필을 미루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 교수는 18세기 문예 교류를 중심으로 완성한 이번 연구에 이어 19세기 한국과 중국의 지식적 교류를 연구할 예정이다. 지식인의 역사에서 오늘의 국제화를 읽다 정 교수의 연구는 오늘날 세계화와도 맞닿아 있다. 월봉 문학상 수상소감에서도 그는 “18세기의 지적 환경에서 오늘의 인터넷 시대를 향한 답을 찾아본다”고 전한 바 있다. “국경을 넘은 소통은 18세기 조선과 중국간 교류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한자라는 언어를 통해 문예공화국 시대가 완성됐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시청각 자료가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같은 한류열풍이 유튜브 채널로 전세계에 전파된 것처럼요.” “문화의 교류는 국가간 이해관계를 뛰어넘습니다. 18세기에도 조선과 중국간의 국익은 첨예하게 대립했어요. 그럼에도 민간과 학문 차원의 소통은 꽃피던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사드 배치, AllB문제, 이어도 문제 등에서 한반도는 중국과 갈등관계에 있지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중국 국민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어요. 문화교류의 열기가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에요.” 국익이 서로 대립하더라도,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진리는 인문학을 비롯한 지식교류의 역사와 현재의 한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조선후기의 문예적 교류를 통해 정 교수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인문학의 역할 또한 강조했다. “우리가 주변국과 갈등하는 문제의 근본은 시선의 차이에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본과의 갈등도 도덕 자체의 결함이기 보다 우리와 아예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견지해서입니다. 그 차이를 분석하고 풀어내는 것이 인문학이 할 일이죠.” ‘갑을관계’로 표상되는 약자에 대한 무시, 각계각층의 비리 등 우리 사회는 가치의 구심점을 잃고 있다. 돈과 취업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각박하다는 탄성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당장의 풍요보다 삶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이유다. “취직이 삶의 기준이라면 은퇴 이후의 50년은 무엇으로 살아갈텐가요. 사유의 힘이 없이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중심을 잡는 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정 교수가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전한 당부다. 김유나 기자 caecilgreen@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박설비 사진기자 sbi444@hanyang.ac.kr

2015-03 31

[교수]“미래는 꿈꾸는 만큼 만들어진다” 가상현실연구실

최근에 스포츠 중계나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면 실제 영상에 3D(입체) 그래픽이 실시간으로 합성되어 설명이 곁들여지는 화면을 종종 만난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설던 이러한 증강현실은 현재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기술을 연구해온 컴퓨터공학부 박종일 교수와 함께 증강현실의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에디터 이명연 | 글 이은영 | 사진 김정훈 ▲ 한양대 공과대학 컴퓨터공학부 박종일 교수 Q. 교수님 연구 분야가 ‘증강현실’인데요. ‘증강현실’이란 표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뜻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증강현실’을 알려면 먼저 ‘가상현실’부터 알려드려야겠네요.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에 가깝도록 만든 가상세계를 뜻합니다. 일례로 게임 세상이 그렇죠. 게임 안에서 집을 짓고 농장을 소유해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증강현실은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실세계에 3D(입체) 가상정보를 겹쳐 하나의 영상처럼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위치검색 앱을 실행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길거리를 비추면 큰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가게 이름이 화면에 뜨는 방식이죠. 이렇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중첩시켜 하나의 세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강현실입니다. Q. 그렇다면 증강현실은 어떤 원리로 구현되는 건가요?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기울여도 실제 그 위치와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빠르게 찍어내고, 그 위에 필요한 정보를 3D 영상으로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카메라가 1초에 30장 이상을 찍는 동안 가상정보를 자연스럽게 겹치면 우리 눈에 영상이 매끄럽게 보여요. 약간의 지연이나 오차만 생겨도 끊기거나 흔들려 보이는데요. 증강현실의 핵심은 현실세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동시에 3D 가상정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기술이죠. Q. SF영화를 보면 종종 주인공 눈앞에 가상화면이 펼쳐지는데, 곧 현실에서도 가능해질까요? 물론입니다.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닙니다.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착용하면 눈앞에 3D 가상정보가 뜨는 제품이 이미 나와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구글 글래스를 들 수 있죠. 현재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웨어러블(Wearable) 기기에 적용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고요. Q. 영화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 머지않았네요. 교수님이 개발한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된 사례도 있나요? 궁궐 속 장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경복궁 문화재 안내 서비스’가 좋은 예가 되겠네요. ‘경복궁 문화재 안내 서비스’는 렌즈에 근정전을 비추면 가상의 왕과 신하가 등장하고, 반대로 교태전을 비추면 가상의 왕비와 상궁들 이 등장해 그 공간에서 있었을 법한 장면을 3D로 보여줍니다. 이미 2009년에 시범 서비스를 마쳤으니 곧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Q. 교내 다른 학과 교수님들과도 기술 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일인가요?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하고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공동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름 하여 ‘차세대 지능형 수술 시스템 개발센터’죠. 수술로봇을 개발해 원격으로 수술을 하거나 수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합니다. 보통 MRI나 CT 촬영을 하면 정상 세포와 종양 세포가 구분이 되는데, 종종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종양 세포가 있습니다. 수술하려는 부위에 MRI 사진을 가상으로 겹쳐놓으면 정상 세포는 손상시키지 않고 종양 세포만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또 의사가 의료 정보를 편하게 조작하게 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손동작으로 정보가 표시된 화면을 확대·축소하거나 360도로 돌려보면서 확인하면 수술 성공률은 더욱 높아지겠죠. Q. 증강현실 기술의 발전은 무궁무진하네요. 교수님이 기술을 개발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은 무엇인가요? 연구철학이 궁금합니다. 미래는 꿈꾸는 만큼 만들어지고, 기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공학도들이 연구에 빠지면 기술 구현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증강현실 기술은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를 지나 예술가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할 단계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접목해 즐거움을 주는 기술이 증강 현실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4-11 19

[교수]과학교육의 틀을 깨다

과학교육을 위한 갈릴레오의 유산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당시 진리로 여겨지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의 과학적 전제, 천동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과학적 사고의 틀을 구성하여 지동설을 입증해 냈다. 돌이켜보면, 인류사에 길이 남은 과학적 연구들은 기존의 가정이나 전제를 부정하며 탄생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은 기존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갇힌 사고에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리 없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를 통해, 과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오준영 조교수(기초융합교육원)를 만나봤다.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사고 전환 과학사(史)를 살펴볼 때,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상식적인 수준의 고대 과학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현대 과학의 중간지점에 존재한다. 고대과학과 현대과학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됐던 갈릴레오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목성의 4대 위성을 발견한 것은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이는 단순히 위성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위성의 존재는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갈릴레오가 목성의 위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일반적이던 지구 중심적 사고, 즉 천동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성 주위의 별을 유심히 탐색한 거죠.”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에 대해 관찰함으로써 어떻게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천동설이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중세에, 지동설에 대한 강력한 반론 중 하나는 “만약 지구가 공전하고 있다면, 달 또한 지구가 아닌 태양에 의해 공전하고 있을 것이다.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에 달이 태양에 이끌리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관찰함으로써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또한 달과 같은 위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고, 이는 결국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가 됐다.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는 교육을 위해 오 교수의 약력은 다소 특이하다. 과학교육 학사, 천문학 석사, 과학기술협동과정 이학박사, 물리교육 박사 등 다양한 학문을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학문을 과학교육방법연구와 직관적으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오 교수는 사실 연구보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사범대에 진학했고, 한때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국립사범대를 졸업한 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과학교육방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과학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보다 본질적인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천문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단순히 정형화된 틀 안에서 연습문제를 풀도록 하는 교육보다는,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교육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 교수는 과감한 가정에 의해 기존의 틀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의 습득을 주장한다. 최근 창의적인 과학교육방법론 개발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그의 연구는 과학철학, 과학사와 과학교육 그리고 자연과학에 이르기 까지 포괄적인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국제학술지에 게재되고 있으며, 진행하는 연구마다 외국 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많은 연구들이 진행 중이지만 오 교수가 중점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탐구모형에 관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자신의 가설에 대해 이론적 믿음을 갖고 관찰에 임했고, 결국 다수의 증거를 확보하여 자신의 논리를 증명해냈다. 이 같은 탐구 방식을 ‘이론 의존적 관찰방법’이라 한다. 이 방법은 현대 과학자들도 사용하고 있지만, 갈릴레오가 사용했던 방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갈릴레오는 진리로 여겨지던 기존 이론(천동설)을 부정하고, 자신의 믿음(지동설)에 따라 관찰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경우 너무나 전문화, 고도화 됐기 때문에 사실상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 또는 학생들이 그러한 이론적 전제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릴레오처럼 틀 자체를 전환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틀 속에서 모형을 정교하게 다듬으려는 노력만 가하고 있죠.” 오 교수는 이런 한계에 주목하여, 갈릴레오의 탐구모형을 실제 학생들의 교육에 적용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김유신 교수와 함께 연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탐구모형에 관한 논문(Galileo's Discovery of the Moons Orbiting Jupiter Based on Abductive Inference Strategies)은 세계적인 과학·기술·의약 분야 전문 출판사인 [springer]의 인기 있는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이 연구는 최근 4년간 [ssci]저널에 4편, [scopus]에 4편, [springer]의 'book chapter'에 3편이 등재됐다. 과학교육을 위한 갈릴레오의 유산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 이론들과 전제들을 모두 부정하고 새로운 틀을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구축돼있는 틀 안에서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학 이론의 발달을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과거의 이론적인 틀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그 당시에는 확고한 진리로 여겨지는 전제라 할지라도, 시대에 맞게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사고의 틀을 제약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과학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은 고정된 사고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존의 틀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틀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도 필요해요. 하지만 우리 교육은 기존의 틀에 대한 연습, 즉 문제를 많이 풀게 할 뿐 실제로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방식의 교육은 없죠. 이런 방식의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를 한정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오 교수는 보다 진보된 과학 교육을 위해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강조했다. “현존하는 과학연구의 틀을 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존의 틀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과학 이론과학 철학이 변화해온 과정을 알아야 현재의 틀에 국한되지 않은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과학사와 과학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력 및 약력 오준영 한양대 교수는 공주사범대학 과학교육과(지구과학교육) 이학사, 연세대학교 (현)천문우주학과 천문학 이학석사, 부산대학교 (현)과학기술학협동과정 이학박사, 단국대학교 물리교육 교육학박사학위를 취득해 자연과학, 과학철학, 과학교육 등 여러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왔다. 현재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 조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4회 세계과학관심포지엄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우진 기자 wjdnwls@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15

[교수]이상적 건축, 현실적 건축

"도시와 자연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인 공모전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본상을 수상한 재학생 최민성(국제학부 3)씨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 교수도 수상해 겹경사다. (관련 기사 보기) 김재경 교수(공학대·건축)는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DOBONGSAN CAR PARK)'으로 '감투상(Honorable Mention)'을 수상했다. 본 대회에서 감투상을 수상하면 국제적으로 알려진 전문가로부터 제품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환승주차장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 955. 도봉산역 관역환승주차장이 위치한 곳이다. 개화역 광역환승센터, 구파발역 복합환승센터 등 지난 몇 년 사이 서울시 외곽에 환승센터가 들어서고 있다. 이는 신도시 주민들의 교통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서울시가 내놓은 방안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미적 디자인까지 고려한 환승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특출한 건축가들을 섭외하고 있다. 미적 특징과 경제적 합리성 여부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의도다.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은 김재경 교수와 나모아건축사무소 이준복 씨와 함께 설계했다. 서울시의 의뢰로 건물 내외부 디자인을 도맡았다.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은 서울 동북부의 의정부, 연천, 양주 방면에서 오는 자동차 교통을 흡수한다. 이어 자동차, 간선급행버스(BRT), 지선버스를 지하철과 다른 버스로 갈아타게 돕는다. 1층의 환승 로비와 승강장을 제외하고는 지하와 지상의 5개 층이 모두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4개 버스 노선의 기점인 공영 차고지가 있다. 경기도 주민들은 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을 이용해 광역환승주차장으로 온다. 본 시설을 통해 다른 버스로 환승하거나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을 이용할 수 있다. 심야버스도 운행돼 건물이 24시간 개방된다. 여러 종류의 교통을 원활하게 수용하는 것이 본 건물의 목적이다.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은 불투명 유리와 타공판(철판에 구멍이 뚫린 판)이 주로 사용됐다. 건물에 빛이 통과하거나 공기가 흐를 수 있는 특성을 중시 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주차장은 자칫 미관상 흉물스러운 건물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단면을 어느 정도 가리면서 동시에 내부 환기와 조명을 위해서 반투명적 성격의 재료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건축으로 '변화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건축'을 꼽은 김 교수. 자신이 지은 건물이 사회 구성원 전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신선함을 전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단다. 김 교수는 "환승주차장이 가정과 회사를 잇는 기능적 역할에 국한되지 않길 바랐다"며 "대중들에게 다른 경험을 전하는 기능을 수행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가 초점을 둔 곳은 옥상 조경과 도봉산의 조화와 굉장히 크게 제작된 1층 로비다. 옥상의 녹지는 환승주차장의 배경이 되는 도봉산과 자연스레 어울려 있다. 그리고 별다른 시설이 없이 탁 트인 로비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찰나의 여유를 선사한다. 김 교수는 "도시 환경과 자연의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Honorable Mention' 김 교수는 도봉산 광역환승주차장 디자인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현재 건축가로서의 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었다"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 동경이 있어 참가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 교수가 수상한 부문은 'Honorable Mention'. 따라서 김 교수는 건축계의 유명 인사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정일 씨와 유아이에이건축사무소 위진복 씨가 김 교수의 멘토로 나섰다. 서정일 씨는 이 프로젝트를 특히 주목해야 할 만한 이유로 전국적 차원에서 환승센터 건립 붐을 꼽았다. 예전처럼 지자체 간의 경쟁적 사업을 통해 불합리한 공공시설을 대거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까지의 환승센터들로부터 교훈을 충실히 얻어야 한다는 것. 이는 건축디자인의 세련된 미적 성과가 건물의 기본적 기능에 묶여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합리적인 분석과 풍부한 상상력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귀중한 시간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위진복 씨는 도봉산역 광역환승주차장이 지역사회의 '센터' 역할을 하기 위해서 보완해야 할 요소들을 말했다. 실제로 도봉산역 환승주차장에서는 입점 예정이던 시설인 우체국, 어린이집, 편의점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위 씨는 이런 이유로 건물의 위치가 도봉산 등산객의 주동선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주 중에 방문자 수가 적은 점을 꼽았다. 이에 이용객과 지역주민을 위해 편의복리시설의 잠재적 운영주체와 주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이 필요할 것이란 제언이다. 김 교수는 "부정적인 부분을 많이 지적해 줘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참가한 의도와 부합하는 상을 받게 돼 더 기쁘다"며 "건축계의 조언을 바탕으로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나는 건축가이며 동시에 교수다 김 교수는 자신이 망상가 기질이 다분한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김 교수의 건축, 도시연구소 사이트 코드에이유(http://www.co-de.com/) 내 'UNBUILT' 항목에서는 김 교수가 만든 가상 설계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비록 비현실적일지라도 '주변에 이런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본다는 김 교수. 하지만 실제로 지어지는 건축물들은 창의적인 부분에 제약을 많이 받는단다. 실제 건축에서 디자인의 최종 결정은 건축가 홀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협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미를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디자인은 건축가의 디자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경향에 대해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은 듯이 보였다. 이상적 건축과 현실적 건축을 확실히 구분 지은 것이다.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이상적 미래를 'UNBUILT'에 담고있다"며 "이제는 이상적인 것들을 만드는 것이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출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대학에서 세 번째 학기를 맞았다. 이제는 건축가의 업무와 교수로서의 직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학교에 오기 전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힘썼다면 이제는 학생들의 입장도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건축 디자인에 있어서 미적인 측면과 기본적 기능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80년대, 90년대는 디자인의 기능적 부분이 더 중요했다"며 "소수의 정치적 목적의 건물이나 올림픽주경기장 같은 상징성이 강한 건물만이 미적 개념을 신경썼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대의 건축 디자인은 건물의 기능과 미의 경중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된다"며 "또는 상호 보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교수의 생각은 콘셉트 디자인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지양하려는 의도는 없다. 반대로 이상주의자가 늘어나길 바랐다. 김 교수는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은 이상주의자들이다"며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잃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슬옹 학생기자 kjkj3468@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15

[교수]치매, 이젠 앱(App)으로 예방하세요

"치매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확신을 주고 싶어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9월 22일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60만 4000여 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노망' 등 노화현상이라고 인식했던 반면 최근 들어 치매가 뇌질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치료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대학 김희진 교수(의대·의학)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 가바플러스와 치매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브레인닥터'의 개발자문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돌이킬 수 없는 병 아니야 치매는 노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기억력, 언어 능력 등의 인지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장애가 발생한다. 김 교수는 "치매는 뇌세포가 사라지면서 해당 뇌의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뇌세포는 죽더라도 세포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끊임없이 자라기 때문에 시냅스를 강화하면 해당 기능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고 그림카드도 맞추면서 뇌 기능을 증강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겁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혈관성 치매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원인에 맞는 질환별 치료가 효과적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질환별 처방이란 의미가 없으며, 원인은 각각이더라도 환자가 보이는 증상별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는 가역적 치매와 불가역적치매로 나뉩니다. 가역적치매는 갑상선질환, 비타민부족, 저나트륨혈증 등 원인이 있는데 이런 병들은 원인만 교정하면 즉시 치매를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파킨슨 치매, 혈관성 치매 등은 뇌세포가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퇴행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법은 똑같습니다." 김 교수는 노인들이 브레인닥터가 제공하는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뇌 기능을 측정하고, 꾸준히 관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레인닥터는 나이, 학력 등 환자의 다양한 상태에 따라 맞춤형 문제를 내요. 예를 들면 75세에 학력이 3년인 여자라고 입력을 하면 그에 맞는 레벨테스트를 합니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에 맞게 뇌의 7가지 영역이 적절하게 섞인 프로그램이 제공되죠. 문제 풀이를 끝내면 날짜와 시간이 저장되고 일기를 쓰도록 해요. 그 데이터 베이스가 축적되면 주치의와 상담하기도 편하고, 원격진료에도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브레인닥터의 성공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여러 대학병원 교수들과 재활치료 전공자, 대한치매학회까지 많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김 교수는 실제 환자들에게 브레인닥터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임상데이터를 축적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을 맡았다. 김 교수는 비약물적 치료 개발에 직접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의사들의 요구는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실현이 안 되고 있었죠. 가바플러스 측에서 제가 몸담은 대한치매학회에 직접 연락이 왔어요. 좋은 취지이고 환자들의 치료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학회의 이사장님께서 핵심 멤버 10명을 모아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치매, 국가적 관리 필요해 브레인닥터는 궁극적으로 의사와 연계하여 치료를 돕기 위해 고안됐다. 치매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이 확립된 상태로 이미 국가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요양등급을 인정하여 매달 3만원의 지원금과 간병인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중증 치매 환자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요양인 지원이 생활 보조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급증하는 치매환자를 막기 위해서는 치매가 오기 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정부는 차후 경도 치매 환자까지 포괄하는 치매 5등급을 신설하여 치매 예방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브레인닥터는 이러한 정책 기조에 발맞춰 치매 예방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의사가 웹을 통해 환자를 인지 할 수 있고, 매일 혈압, 혈당 등의 환자 리포트를 실시간으로 전송 받고 그에 대해 피드백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브레인닥터의 활용 기록이 데이터로 저장되기 때문에 특정 기능이 떨어지면 그에 대한 학습을 늘릴 것을 조언하거나, 이후 약물을 집중 처방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치매 환자 자체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치매 연구에도 활발히 기여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얼마든지 치매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바이오마커(단백질이나 DNA, R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통해 치매가 걸릴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브레인닥터 같은 치매 예방 어플 설치를 권유하고, 관리하면 치매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면 치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과 다름없죠." 브레인닥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사용교육 문제다. 김 교수는 "스마트 기기에 친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 어플과, 요양사를 대상으로 한 치료용 어플을 별도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스크린 터치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분들이 집중력을 갖고 어플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더 고안해야 합니다. 피처폰과 달리 스크린터치 형태의 스마트 기기는 누르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집중을 못하시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쉽고 지루하지 않은 어플 개발이 당면한 목표라고 할 수 있죠." 김 교수는 브레인닥터에 대해 신의료기술 인정을 신청했다. 신의료기술로 선정되면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환자들이 브레인닥터 설치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고 차후 연구를 위한 재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지난 심사에서는 임상 자료가 많지 않아 탈락했지만 임상 데이터를 더 모으며 신의료기술이나 의료보조기구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인환자만이 줄 수 있는 끈끈한 매력에 이끌려 김 교수는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 치매환자를 접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치매는 노환의 일종으로 취급 받아서 병원의 치료보다는 가정에서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 그 후 지도교수의 권유로 치매학회에 참석하면서 노인 환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치매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신경과로 진로를 정하니 노인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돼요. 제 전공에서 다루는 것이 뇌졸중이나 치매 같은 질병이니까요. 노인환자들에게는 젊은 환자들은 줄 수 없는 끈끈한 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치긴 하지만 힘들진 않아요. 노인들은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데 그분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친구가 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 교수는 타 대학 의대에 진학하기 전 우리대학 생물학과에서 학부를 마쳤다. "신경학과에 진학 이후 학부 때 배운 기초과학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시기가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신경학과는 고령화 사회의 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이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원리원칙을 지키는 연구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임상 데이터를 모으면서 데이터 조작에 대한 유혹도 많이 들었어요. 논문도 계속 써야 하는데 자신의 연구성과를 더 예쁘게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연구자가 돼 우리나라 연구 환경 개선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선희 학생기자 pdg10@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10 01

[교수]여행을 사랑한 인권학자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저자 박찬운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독재권력에 저항했던 인권 변호사, 우리 사회 저변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실무 행정가, 그리고 잘 나온 박물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 추운 겨울 한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는 대학 교수. 법의 길을 걸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역사의 길에 도착한 우리대학 박찬운 교수(법학전문대학원)를 만났다. 역사교사를 꿈꾸던 꼬마, 변호사가 되다. 인권 변호사로 유명한 박 교수는 삶을 얘기하면서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사실 역사 교사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역사 선생님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역사를 좋아했어요. 교과서에나 나오는 유물 사진들이 말을 하는 것 같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고민하면 그 유물의 의미가 밝혀지는 것 같았죠. 그런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역사교사나 법률가 중 고민했어요. 당시 시대상황상 법대가 좋겠다고 생각해서 법학을 공부하게 된 거죠. 대학을 다닐 때부터 변호사 생활, 실무가를 할 때까지 역사는 한편으로 아쉬움이었습니다.” 아쉬움은 학창시절에도,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아쉬움으로만 남아있어야만 했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취미로’ 역사를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했었죠. 뒤를 돌아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반 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에 함께 하지 못했어요. 우리세대의 학창시절은 장밋빛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던 그는 결국 스물 두살, 198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민주화 운동이나 우리사회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죠.”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 변호사와 인권옹호자의 길을 걷는다. 20대부터 30대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과 난민법률지원위원장 등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높였다. 한편으로는 시국사건 연루 양심범과 수용자, 사형수 인권변호에도 나섰다. 박 교수는 ‘변호사가 되고 첫 십 년 동안은 정말 일만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되고 10년동안 내 분야에서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인권분야가 워낙 사건도 많았던 것도 있지만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역사나 문명에 관련된 책을 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국제 인권법’에서 ‘역사’로 난 오솔길 인권분야에서 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인권신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 간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얻어내도록 한 재심(2008년)의 1차공판 변호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인권 관련 정책 입안에 앞장섰다. 이렇게 국제인권법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해가던 박 교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온다. 박 교수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역사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이 조금은 가셨다고 말했다. “귀국 이후에 다른 일을 할 때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역사책을 보고, 문화 예술책도 꾸준히 봤어요. 각종 국제회의와 초청으로 외국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어서 회의에 가게 되면 비는 시간에 박물관도 가능하면 찾아보고 이곳저곳 찾아다녀봤죠. 그 때부터 조금 갈증이 풀리더군요,” 길이 길을 만든 셈이다. 꿈꿔왔지만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 선택한 길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구년은 박 교수가 ‘늦깎이 공부’를 하기엔 금상첨화였다. 연구년을 맞이해 스웨덴의 룬드 소재 라울 발렌베리 인권 연구소에 간 것. “그 기간 동안에 주어진 한도 내에서는 많은 여행을 했어요. 논문을 마감하거나 원고를 끝내면 틈나는대로 여행을 많이 가보려고 했죠.” 낮에는 논문을 쓰고, 밤에는 문명과 역사를 공부했으니 주경야독인 셈. 박 교수는 당시의 스웨덴의 긴 밤을 이야기했다. “스웨덴의 밤은 정말 길었어요. 북유럽이다 보니 겨울 밤은 거의 16시간이 넘었거든요. 유럽에선 정말 많은 곳을 갔죠. 서유럽 이곳 저곳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까지요. 유럽 저가항공을 통해서 정말 싸게 돌아다니면서 박물관과 많은 유적들을 관람했어요.” 이렇게 관람한 유적과 독서를 통해 생각한 점들을 모아 박 교수는 연재를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박찬운의 세계문명기행’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문명유적지를 중심으로 글을 썼고, 다음으론 로마문명에 관한 글을 썼어요.” . 시오노 나나미가 르네상스 문명에 대해 말한 것처럼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글을 썼는데 그것이 쌓여서 ‘로마 문명, 한국에 오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비판적 해석 올해 5월에 출판된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라는 책은 박 교수만의 문명 해석 방식이 가미된 독창적인 책이다. 우선 로마문명을 통해서 한국을 바라본다. “로마의 카이사르를 보면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이야기해요. 혹은 판테온 신전을 보면서 석굴암을 함께 비교해보고 저만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요. 가장 쉬운 예로 길을 봐요. 로마는 돌 포장길을 만들었는데 폼페이에 가서 로마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살펴보는 거죠. 기원 전에 만들어진 도로가 아직도 남아있잖아요. 그러다가 한국의 출근길을 떠올려봅니다. 내가 출근길에 보는 보도블록을 보면 깨져있고 주저 앉고 내려가고 흔들리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지적하고 비교해보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원 전 사람들보다 과연 얼마나 더 발전했나 말이죠.”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 이야기가 나오자 박 교수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약 130장 정도가 책에 들어갔어요. 비싸고 고가장비인 DSLR이나 좋은 촬영장비로 찍은 게 아닙니다. 믿을지 모르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은 거에요.. 비록 최고의 사진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찍은 것 의미가 있지 않아요? 이 정도면 스마트폰 사진이라도 볼 만 하지 않아요? 특히 이 과정에서 제가 독특하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어요, 제 1장인데 로마황제의 조각상을 보면서 그게 그 시대의 초상화라는 것을 알았어요. 돌로 만든 초상화 말입니다. 이 황제의 조각상은 우리시대의 사진 같은 것이고 백성들한테 이 사람이 황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금화에 넣은 황제의 얼굴도 따지고 보면 초상화에요.” 인터뷰가 끝나가면서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강조하면서 해석이라는 문제를 말했다. “우선 발견과 해석을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아요. 1류인간, 2류인간이란 말이 있지요, 1류인간을 원한다면 돈을 많이 벌고 권력을 얻는 게 아니라 좋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중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가치관에 따라 여행하는 것도 달라져요. 술 먹고 담배피우고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모아 내 인생을 위해 여행을 떠나세요. 해외도 좋고, 국내도 좋습니다. 그리고 독서가 중요해요. 우리가 아무리 경험을 넓히고 싶어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 한계를 독서로 돌파해야 해요. 항상 여러분들도 여행과 독서를 통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느끼고 도전하세요. 여러분들의 꿈을 찾으시길 바라요.” “내 인생을 사로잡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은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 대한 탐구, 그리고 고통 받는 인류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동정이다.”라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세 가지 열정’이 삶의 경구라는 박 교수. 박 교수가 보내온 삶의 궤적은 그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문장과 그 방향을 같이 했다. 정상운 학생기자 lovecool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