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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 01

[오피니언]`봄을 기다리는 씨앗` 겨울농활체험기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캠퍼스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된 21명 학우들은 겨울 농민학생연대활동(이하 농활)을 다녀왔다.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전라북도 장수군. 그곳에서의 2박3일 짧은 기간동안 사회대 농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02년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은 사회대 농활대원들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자 시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6년 동안이나 방문했던 전북 정읍을 떠나 장수군 장수읍으로 그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 까닭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란 그것이 작건 크건 간에, 어떠한 바탕이 있건 없건 간에, 그리 녹록치 못한 일이다. 시작의 어려움은 장수읍에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기틀을 닦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던 농활대원들은 이에 대한 준비와 노력을 네 개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행하였고, 인내했지만, 아직 장수읍에서는 농민과 학생의 연대가 이루어지기엔 시기상조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난 1년을 회고, 정리하며,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하기 위해 2003년 새해 겨울농활을 나서게 되었다. 17일 금요일, 비가 내리는 와중에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장수군에 도착한 농활대원들은 마음 편히 여장을 풀지 못한 채 장수읍의 마을회관에서 머물며 대표자들과 농민회분들과의 긴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했다. 새로운 마을과의 연대가 기정사실화 된 상황에서 앞으로 들어가게 될 마을은 어디가 될지, 또 그에 앞서 농활대원들의 2박 3일간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두들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혹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회의가 끝나고 우리가 2003년 새로 들어갈 마을이 장수군 장계면으로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농활대원들은 다음날 사전답사형식의 방문이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전해듣고서야 비로소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농활의 첫째 날은 언제나 그렇듯, 그 날도 긴 여정의 여파로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 수 밖에 없었다. 18일 둘째 날, 오전에 마을회관을 나서 장계로 가기 전에 장수읍의 몇몇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한 농가에 들러 일손을 조금 거들게 되었다. 아무리 휴경기라지만 모종이 있을 봄을 위해, 겨울에도 일손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것이 농사일이 아니던가? 그 곳에서 점심을 신세지고 일손을 좀 거들고 나서야 대원들은 장계로 떠나게 되었다. 비록 일년에 겨우 몇 번 뵈었을 뿐이고, 그러한 까닭에 깊은 정까지는 남기지 못했다 해도 왠지 씁쓸한 기운이 대원들의 뇌리에 남았다. 해가 거의 질 무렵에 장수읍을 떠나서 그랬는지,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진 상태에서 도착한 장계마을에서 처음 뵌 농민회분들은 듣던 대로 타지역의 농민분들보다 연령층이 낮아 보였고, 그 젊음만큼이나 앞으로의 농활에 대한 그분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비례하여 우리 또한 무언가 모를 기대에 부풀어 있는 듯 싶었다.) 19일, 겨울의 계절 탓일까? 여름농활이라면 꿈에도 있을 수 없는 늦잠을 잔 농활대원들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개똥 치우기에 투입(?)되었다. 개똥 치우는 일이 농활에서도 그야말로 3D 업종의 하나임을 대원들은 새삼 깨닫는 분위기였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대가보다 농민분들의 인심이라 말하고 싶을 만큼 맛있는 식사와 터질 듯한(?) 정성에 정작 우리의 배가 터질 뻔했다. 비록 일을 하고 식사를 하느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늦어졌지만,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품게된 흐뭇한 시간이었다. 첫 날은 걱정스러움으로, 둘째 날은 안도감으로 그리고 셋째 날은 웃음으로 장식된 이번 농활은 나와 함께 했던 농활대원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몇 가지 남은 문제와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와 다짐,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였던 시간 속에 우리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짧은 겨울농활의 경험이 기나긴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단단하게 자리할 것이라 믿는다.

2003-01 08

[오피니언][서평]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 연구

바야흐로 실존이 방황하는 시대다. 이미지가 현존을 대신하며 규범은 그 쓸모를 잃고 모든 것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이제 실재와 가상, 원본과 복사, 진짜와 가짜 사이의 구분은 점차 소멸해가고 있다. 이를 포스트모던 증후군이라 했던가. 이제 현대인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데 컴퓨터가 존재하지도 않던 이전 시기, 동일한 공간에서 '자기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현상이 있었다. 바로 '조선풍(朝鮮風)', 곧 '조선의 노래'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 수세기 전의 '조선풍'이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정체성 혼돈의 시대에 '조선풍' 속에 담긴 정신이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정선의 『조선후기 조선풍 한시 연구』(한양대학교 출판부, 2002. 9)는 딱딱한 논문체의 형식을 지녔음에도 매우 현실감 있는 제목으로 다가온다. '조선풍'은 비단 한시 방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선후기 예술사 전반에 걸쳐 나타난 현상이다. 그간 이 용어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하였으나 그 실상에 대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리 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채로 이루어져 온 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풍'이란 용어가 이론적 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잠재적 의식 속에서 면면히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후기 한시에 나타난 '조선풍'의 구체적 실체와 범주를 실제 작품의 양상을 통해 살펴보고 그 특질마저 종합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풍'이란 주체의 자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사고 틀을 벗어나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음미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조선후기 문화 현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조선풍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모화의식(慕華意識)의 탈피와 주체적 각성, 심미관의 변모를 들고 있다. 곧 나는 남과 다르다는 주체적 자각은 중화 중심의 사고를 수정하게 하여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곧 '나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시를 쓰겠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조선풍의 지향처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고금의 시대인식, 주체적 언어인식, 확장된 소재인식이라 말한다. 옛날이란 개념도 당시에는 지금이었다는 의식 전환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라는 우리 조선의 가치를 우리의 언어로 노래하려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풍은 결코 일과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주변적 가치가 중심적 가치로 변모하였고 문학사는 천편일률의 투식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획득하였음을 밝혀낸다. 그러면서도 조선풍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철저함보다는 시대적 소명과 의욕만 앞선 나머지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18 19세기 실학시대의 문예사적 흐름인 조선풍은 나는 조선인이라는 자각, 현재라는 시간, 내가 발딛고 있는 조선이라는 공간이 어우러진 사유체계이다. 비록 저자는 한시라는 특정 장르를 대상으로 조선풍의 양상을 종합하였지만 그 결과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조선풍 실체를 깨닫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체적 이론이 드러나지 않던 대상에서 그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들여야 했던 노고도 작게 평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체성과 새로움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풍의 정신은 정체성 혼돈이라는 현상에 직면한 오늘날 매우 유용하다고 본다.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질수록, 내가 타인의 시선에 지배될수록, 환상공간이 현실을 대치할수록 '지금-여기'에서 참된 나, 참된 우리 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매우 절실하다. 조선풍의 정신을 '저기-그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다시금 '지금-여기'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2-03 22

[오피니언]학교 교육의 재조명[윤선희]

윤선희 교수 (법대 법학과) 대학은 학문의 장이며, 학생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스스로의 진지한 고민과 그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대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할지, 자신이 어떠한 것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또한 재정의 악화 등으로 인해 학생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게 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주당 1-2시간 배우는 한문시간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어려운 한자를 많이 배우지만 막상 법과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기본적인 한자로 된 법조문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한다. 이는 우리 법대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 어느 법과 대학생들이나 마찬가지며, 이공계 대학은 더 심하다.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의 경우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경우에도 이러한 과목에는 비중을 두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전체적인 교과과정의 이해 부족과 더불어 수학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에 재능이 있는 학생의 경우 자연 도태되고, 계속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인재라도 너무 입시위주와 암기식의 수업방식이 시험때까지만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것 때문에 대학 진학과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언론은 이 책임을 모두 우리 대학들의 잘못된 지도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중·고등학교까지는 세계에서도 몇 번째인데, 세계 어느 나라 중고생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뒤쳐지고, 우리나라 대학은 세계 100위안에 들어가는 대학이 없다는 등의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새로운 지도방법과 특화된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들로 양성해낼 필요가 있다. 인간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에서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즉 각자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하고 그를 개발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학에서의 실질적으로 특화된 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학의 특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시된다. 특히 가정에서는 자기 자식의 능력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통해 자식의 삶의 목표수립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정형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정책에서 탈피하여 특화를 저해하는 요소를 없애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출생인구의 감소로 중고생들의 수가 감소하게 되고 또한 대학생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지만, 대학의 정원이 입학생수보다 많아 대학은 정원 채우기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이에 각 대학은 등록금만으로는 상대적 빈곤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대학은 학생들이 그들의 길을 찾아가는 환경조성에 조금은 소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학생들은 자체생존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대학교수의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수의 연구는 학회지와 학술대회에 발표하는 것만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연구를 통한 결실이 그 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사장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은 대학교수의 업적을 대외적으로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대학교수도 자신의 연구성과가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즉 연구성과물을 상품화시키는 것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결국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삶의 목표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만 될 것이고, 대학과 가정 그리고 정부는 그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 방법으로 가정과 학교의 경우 학생의 진로를 선택하기에 앞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 학생이 심사숙고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하며, 함께 논의해 결정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2002-03 15

[오피니언]한과로 우리 입맛을 찾자[이효지]

양과에서 한과로 우리 입맛을 찾자 이효지 교수 (생과대 식품영양학과) 인류는 민족별, 국가별, 지역별로 각기 고유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왔다. 그 중에서도 음식문화는 다양하고 독특하며 모든 사람이 지대한 관심을 갖게된다. 우리 민족은 고유한 음식문화를 형성하여 계승 발전하여 오면서 외래의 음식문화와 동화되어 그 시대에 맞게 변해오고 있다. 우리대학의 교양 교과목에도 '식생활문화', '전통음식의 이해' 등이 개설되어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특히 남학생들의 관심이 많아 기쁘다. 우리 음식 중 특히 한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한과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 선조들이 명절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손수 가꾼 농산물을 이용하여 독특한 제조방법으로 정성껏 만들어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 가족, 친지, 이웃들과 함께 모여 덕담을 나누면서 즐겨먹던 전통음식이다. 한과는 양과자에 비해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고 저장성도 높다. 팽창제, 보존제 등의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식이자 건강식이다. 서양과자들이 오랫동안 조직감이나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은 원료배합에 다량의 설탕과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과자는 달고 고소하다. 그러나 열량이 높고 설탕농도가 높아 체중조절이나 심장병이 있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좋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단백, 고칼로리 식품에서 오는 비만과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저단백, 저칼로리 한과는 다이어트식품 또는 기능성식품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한과는 금방 만들어 놓은 것은 비할데 없이 맛이 있고 향긋하나 곧 굳어져 버리고 냄새가 변하여 맛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저장성을 향상시키는 일이 큰 숙제이다. 양과자는 장기유통에 필요한 첨가물인 산화방지제나 노화방지제 사용이 일반화되었고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과자에서 나는 기름 찌든 냄새인 산패취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적절한 포장재를 이용하여 목적에 맞는 기능을 가진 포장재를 선택하거나 낱개포장, 진공포장, 가스포장 등 다양한 포장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양과자가 전해지면서 한과는 그 기반을 빼앗겨 소비량도 매우 적어졌다. 요즈음 설날, 추석 등 명절에만 집중 소비되고 소비층도 중ㆍ장년층으로 편중되어 있다. 최근 청소년층에서 외국의 기념일인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이성친구에게 쵸코렛이나 캔디를 선물하는데 그 소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명절로는 설날, 정월보름, 삼월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8월 추석, 9월 중구, 10월 상달, 11월 동지 등 정감 있고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그밖에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생일, 결혼기념일 등 기념할 날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명절이나 기념일에 아름답고 개성 있는 선물이 마땅치않다. 10대, 20대는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낱개 선물세트를 선호한다. 특히 10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구매의욕도 높지만 소비능력은 낮아 값이 싸야한다. 한과의 맛도 전통만 고집하기보다는 쵸코렛이나 코코아맛을 첨가한 맛으로 모양도 새롭게 변형시키고 인삼 등을 가미한 기능성 한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한과의 상품화가 이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인의 사랑과 찬사를 받는 개성 있는 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과가 잔치음식과 선물용 등의 특수목적용 음식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까지 즐겨 찾을 수 있는 기호음식, 건강음식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좀 더 영역을 넓혀 편의식품으로까지 발전시켜서 세계인의 기호에 맞도록 상품화되어야 한다. 한과도 원료의 선택, 필요한 첨가물의 사용, 적절한 포장방법으로 한과의 상품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머지않아 한과가 슈퍼마켓의 과자 진열대에서 다른 과자와 나란히 놓여 판매되기를 기대하며 더 나아가 세계인의 다이어트 스낵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2002-03 08

[오피니언][유재원 교수] "공직자는 `국민의 하인` "

"적성ㆍ가치관 고려없는 공문원 진출은 문제" 행정고시반ㆍ여학생 시험준비반 등 지원 확대 유재원 교수 (사회대 행정과) 대학가에 '공직열풍'이 불고 있다. 고시촌으로 불리는 신림동에는 행정고시를 중심으로 한 각종 공무원 시험생들로 붐비고, 본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도 행정고시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직열풍.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법정계열과 상경계열 전공의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중 하나는 행정고시 합격을 통한 고위 공직자였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는 최근 몇 년전부터 부쩍 커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이러한 열풍에 따라 '공무원이나 해야겠다'라는 식의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공직진출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공직진출을 원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이 공직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공직에 들어간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또한 효율적으로 공직진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정고시반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유재원(사회대·행정과) 교수로부터 바람직한 공직진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행정고시를 중심으로 '공직열풍'이 불고 있는데 공직이 가지는 매력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사회적으로 지위를 보장받고, 인정받는 직업 중 하나가 공무원이다. 특히 행정고시의 경우 합격할 경우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물론이고 다른 좋은 직업들이 제공해 주지 못하는 많은 혜택이 있다. 예를 들면 해외유학 같은 것을 파격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또한 국가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는 측면에서는 그 어떤 직업보다 매력이 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장급 공직자들이 1년에 천억 단위의 예산을 운영하는 권한이 있을 정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사회의 'Decision Maker'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여학생들도 공직에 관심이 많은데, 행시의 경우 전체 합격자의 20%를 여성으로 배정하는 할당제 때문에 여학생들이 유리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또 공직사회가 전반적으로 일반 기업체에 비해 여성들이 활동하는 데 수월하고 법적·복지적 혜택도 많은 편이다. 따라서 공직열풍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의 공직진출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것은 취업관련 설명회나 간담회 같은 자리에서도 공직에 관련된 설명을 많이 하고 있으며, 잘 알다시피 행정고시반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본교는 행정고시반을 통해 오래전부터 많은 수의 행시 합격자들을 꾸준히 배출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학교측에서 학생들의 공직진출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합격자의 배출을 통한 학교의 발전을 위해 행정고시반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고시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좋은 시스템과 교육여건을 갖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공직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행정고시반을 적극 이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행정고시반의 경우 입반시험에서 영어만을 평가한다. 영어능력과 공직에 대한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행정고시반의 커리큘럼을 통해 얼마든지 행시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 고민하며 공부하는 것보다는 체계적인 학교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합격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알다시피 행정고시는 개인의 힘만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지 않은가? 우리나라 공무원 선발제도인 고시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주입식문제 중심의 시험과목 등 고시제도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에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고시제도는 현실적으로 정말 우수한 인재들만이 통과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이를 통해 유능한 공무원들을 효과적으로 많이 양성한 게 사실이다. 그런만큼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하고, 공직으로 유도하는 데는 나름대로 좋은 제도가 고시제도라고 생각한다. 개방형, 특별채용 등과 같은 형태로 우수한 고급, 고위 공직자들을 선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고시를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도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시제도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지나치게 상대적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행정부와 공직자들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경우도 많다. 또 아직까지는 행시를 제외하고는 우수한 공직자를 선발하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공직자들과 고시제도를 평가하는 태도가 더 잘못된 것이다. 공직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이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우선 자신에게 '공익관'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직자를 영어로는 'Public Servant'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은 '국민의 하인'이라는 생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도 많아야 한다. 결국에는 정책을 통해 보다 좋은 방향으로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직에는 많은 분야가 있다. 행정고시의 경우 총 일반행정, 재경, 사회복지, 교육행정, 보호관찰, 법무행정 등 총 10개의 직렬이 있으며, 지방행정고시, 법원행정고시 등과 같은 형태의 고시도 있다. 자신의 적성과 전공이 어느 분야에 적합한지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참고로 일부 학생들은 행정고시가 법정계나 상경계 전공 학생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행시 사회복지직 같은 경우는 사회학과 학생, 교육행정은 교육학과 학생이 유리하다. 이런 정보들을 정확히 그리고 많이 알아야 한다. 공직에 관심이 있거나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공직진출에 보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 의미있고, 영향력 있는, 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공직만큼 좋은 분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 그리고 목표들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이런 사전준비가 부족할 경우에는 공직진출을 준비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02 22

[오피니언]우리는 인간의 춤을 추고 있는가 [김운미]

김운미 교수 (체대 무용과) 오랜 옛날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춤은 생활 그 자체였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나오듯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몇 날 며칠을 노래와 춤으로 지샜다. 노동과 놀이가 일체화되어 일하면서 노래하고 노래에 맞춰 춤추는 가운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삶의 기쁨을 누렸다. 이같이 우리 전래의 춤은 흥겨운 신과 멋(신명)을 숙련된 몸짓으로 표출함으로써 춤을 추는 자나 춤을 구경하는 자 모두 신명이 넘치는 굿판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우리도 과연 춤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는가? 대학에서 춤을 가르치는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 하에서 춤은 대학의 무용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무용학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춤의 테크닉 면에서는 숙달되었는지 모르나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꾸며낸 것을 즐기고 노는 것이 춤의 진정한 속성이라는 것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춤이란 어린 시절 부모 앞에서 재롱으로 보여줬던 그 때의 즐거움이 마지막 추억처럼 남겨져 있을 뿐, 따라하기 힘든 몸의 움직임 정도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음악이나 미술은 일찍부터 독립된 학과목으로 인정되고 있었지만, 무용은 체육의 한 단원으로 명맥을 이어왔기에 춤이 신명나도록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은 춤추는 것과 꿈꾸는 것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춤이란 인간의 욕망을 풀어내는 춤뿐만 아니라 인간의 특권인 창조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춤, 살아있는 춤을 가리킨다. 이러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우선 호흡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명상음악가인 김도향의 "항문을 조이고 우주를 마시자"는 노래가사를 따라하는 것도 좋은 훈련방법이다. 그는 하루에 500번씩 항문을 조이면 영혼의 숙변을 없앨 수 있어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진다고 노래한다. 인간문화재 박병천 선생님도 춤을 출 때 숨의 저장을 위해서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는 자세를 권했고, 연출가인 이윤택 역시 항문호흡이 연기호흡의 첫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항문호흡은 무용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춤추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잊혀졌던 원초적인 호흡(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에너지, 속도, 유연성과 민첩성을 유지하기 위한 호흡)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자기만의 춤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힘이 드는 법이다. 호흡이 익혀지면 이제 함께 생각하는 춤을 추어야 한다. 아니 함께 꿈을 꾸며 춤을 출 수 있는 마당을 무용가들이 마련해내야 한다. 사실 그 동안 관객과 함께 하는 춤을 지향해오긴 하였지만 실제로는 보여지는 춤에 그친 점이 없지 않다. 무용수들의 몸짓과 그들이 내뿜는 숨소리가 웅대한 무대장치와 화려한 조명에 가려지는 바람에 관객들은 그야말로 무용작품의 구경꾼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나마 구경꾼조차도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너무나 적은 것이 현실이다. 무용공연을 통해 반드시 무언가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잘 훈련된 무용수들의 열정적인 몸짓을 보고 관객들이 함께 흥겨워하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도대체 정치·사회적으로 짜증나는 일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신명을 불어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한 춤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의 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무용교육현실도 개선되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재능을 발견하여 키워주는 선생님, 일상생활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함으로써 삶을 즐길 줄 알도록 격려해주는 선생님을 많이 배출하는 풍토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나는 춤의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사랑의 실천을 위해 행당 언덕을 오르내리는 한양인들과 진정한 인간의 춤을 추고 싶다.

2002-02 15

[오피니언]반쪽 섬나라 기질 고쳐야 산다[조진수]

조진수 교수(공대 기계공학부)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든 중국을 대륙, 일본과 대만은 섬나라 그리고 한국은 반도라고 말한다. 또한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대륙적 기질로 '만만디'하며 여유 있고 대범한 듯 좋게 표현해 왔고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섬나라 쪽발이' 기질로, 급하고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색을 밝힌다는 등 비하적 표현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에 대해서는 '동방예의지국의 참을성 많은 민족'이라는 자화자찬격인 찬사 외 '반도기질'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반세기 전 한반도는 남, 북으로 분리되었으며 가만히 보면 현재 북쪽이 막혀 있는 남한은 사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지리적 여건이 불리한 '반쪽 섬나라'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남한에는 약 10만 km2에 4천여만 명이, 대만에는 4만 km2도 안 되는 면적에 2천만 명 이상이, 일본에는 약 38만 km2에 1억 2천만 명이 살고 있다. 면적이나 인구로 봐도 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대만은 세계 경제무대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다. 그나마 IMF 전까지 많은 나라들이 남한을 경이롭게 여겼던 것은 6.25동란 후 최악 여건의 반쪽 섬나라가 보여준 고속 경제 성장이었다. 4개의 주(主)섬을 교량과 터널로 연결한 일본은 남한에 비하면 면적은 약 네 배요, 인구는 세 배이며 기술력은 세계 제2위인 대국이다. 게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질서의식을 갖고있는 그들에게서 요즘 '섬나라 기질'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고유가 태풍에 우리 정부가 에너지 값 인상이니 10부제니 하며 법석을 떨고 있을 때 30년간 대비해온 일본은 전기요금을 내리는 여유를 보일 정도였다. 도리어 소위 '섬나라 기질'은 우리의 체질이 돼 가고 있다. '반쪽 섬나라' 반세기 결과인지는 몰라도 질서와 예의는 물론 난무하는 거짓말속에 사회 신뢰도도 해가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다. 각종 파렴치 범죄가 증가일로에 있고 국가 사범들은 해외로 도망가면 속수무책이다. 특히 '빨리빨리' 고질병은 우리에게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폐해를 안겨주고 있다. 조급성과 무계획성에 의한 피해 사례는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각종 대형 사고 외에도 많다. 400여 km 남짓한 서울-부산간이 멀다며 수많은 돈을 들여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TGV는 아직도 시험운행중이다. 고유 원천 기술 없이 급히 시작한 이동전화 시스템은 미국 퀠컴사에 매년 수억 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언론들은 경제개혁 기치아래 너무 서둔 나머지 국내기업을 해외에 헐값 매각한 사례를 지적하기도 한다. 삼척동자에게 물어봐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되고 잘 사는 것이다. 통일은 반쪽섬나라 남한을 나머지 반쪽과 연결해서 다시 반도로 만드는 엄청난 일이다. 빨리빨리 기질로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절대로 안된다. 통일한국 건설비용을 줄이고 통일후 대외 경쟁력을 높여야 잘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 필요한 시스템은 고유 기술로 차근차근 완성할 수 있는 슬기를 지금부터라도 터득해야 한다. 우리가 무시하고 싫어하는 이웃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된다. 일본은 1988년 세계 최장 54km의 '세이칸' 해저 터널을 순수 기술로 42년 만에 완공해서 본(本)섬격인 혼슈와 북쪽 섬인 홋카이도를 연결했다. 또한 초고속 교통축인 '신칸센'은 1964년 도쿄-오사카선 개통후 현재는 남쪽 규슈의 하카다와 혼슈의 모리오카 사이 총연장 약 2,200km를 운행하고 있다. 1956년 기본 계획 수립후 44년이 지난 지금도 모리오카 북부에서는 신간선 개설 공사가 한창이다.

2002-02 08

[오피니언]신나게 놀아라, 놀자! [이진수]

이진수 교수(체대 체육과) 노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나는 아들놈에게 항상 말한다. 많이 놀아라. 나는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신(神)나게 놀아라! 몰두(沒頭)하라! 몰두란 형이상(形而上)적인 관념이 아니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근 모습이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그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물 속에 머리를 담근 시간이 길면 길수록 숨이 가쁘다. 더 참으면 죽을 것 같다. 더 참다가 더 참으면 아주 죽을 수도 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쉬고 싶어 죽겠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절박한 것 한 가지, 이것을 몸으로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몰두이다. 학생들이여 몰두하라! 아니 내가 아무리 몰두하라고 강조해도 깨닫지 못하겠거든 바로 오늘이라도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실제로 몰두를 체험하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지금 당장 머리를 물 속에 박는 몰두를 행하라! 그러나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몰두를 행해도 그 일체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한국 민중문화의 특성을 '신들림'으로 파악한 사람은 우리 한양대에서 나와 한솥밥을 먹는 조흥윤 교수이다. 내가〈한국체육사상사〉를 쓰는 데에 조 교수의〈巫와 민족문화〉는 큰 참고가 되었다. 옛날에 촌사람들이 석전(石戰)을 하는 과정에서 돌에 맞아 골이 깨어져 나오면서도 '괜찮다, 괜찮아' 라고 했다던 이유를 여기에서 확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깨어져 골이 밖으로 흘러나온 사람은 십중팔구 죽을 것인데도 죽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돌 던지며 노는 일이었던 것이다. 신이 오른 무당은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에서 춤을 추어도 발가락이 잘리지 않는다.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신(神)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신은 God가 아니다. 이 신은 정신(精神)의 신이다. 정신은 창조적인 능력, 생산해 내는 에너지를 말한다. 정신은 허 준의〈동의보감>에 보이는 '정기신론'(精氣神論)의 정신이다. 정은 남성의 정액을 가르킨다. 남성에게 정액이 가득해야 원기(元氣)가 왕성해지고 창조력이 배가된다는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정액이 가득한 남자는 눈이 반짝이고 행동이 민첩하며 여자를 보면 친절하게 접근한다. 피로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운동을 해 땀을 흘린다. 정액을 낭비하는 사람은 쉽게 피로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나는 '정신 차려'라고 외친다. 신(神)은 신(腎)과 음이 같다. 腎은 콩팥을 이름이나 사실은 사람의 성기(性器)를 의미하기도 한다. 외신(外腎)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절정체험(peak experience) 가운데에 성교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인간의 섹스를 놀이의 한 가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기사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에서 행해지는 섹스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는 거룩한 일을 성사시킨다. 정액을 아끼는 것을 허 준은 '보정'(寶精)이라 하였다. 앞에서 나는 원기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사람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에도 물에도 있고 국가에도 이것은 있다. 지나친 자연훼손은 자연의 원기를 없애는 것이 된다. 국가의 원기를 사기(士氣)라고 한다. 국가의 정치를 담당하는 위정자, 고급관리가 썩으면 낭비가 많아져 그 국가의 위력은 사라지고 만다. 신선하여 썩지 않은 정치인을 뽑는 것은 우리들의 큰 일이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안목이 없어 사이비 정치인에게 손쉽게 넘어간다. 사람으로 하여금 놀게 하고, 그 노는 모습을 보아 그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여 인재를 등용한 것이 신라의 화랑제도였다. 신나게 놀아 본 사람은 사람을 안다. 놀이에 몰두해 본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판단함에 착오가 적다. 사람의 수명을 80세로 본다면 대략 70만 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중에서 35만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30년 일한다고 계산하면 고작 7만 시간 정도이다. 일생의 십분의 일이란 짧은 시간을 위해 우리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꼴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8만 시간은 무슨 시간일까? 노는 시간이다. 낮잠을 자건, 농구를 하건,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든 외국으로 유학을 가든 이 모든 것이 모두 노는 시간이다. 나는 7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22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2년, 다시 외국의 대학원에서 5년 이렇게 도합 21년을 공부하였는데 이 시간도 물론 28만 시간 안에 들어간다. 공부와 노는 것과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쉽다. 그러나 남들이 본 나의 공부는 나에게는 놀이였다. 나는 지금도 나의 연구실에서 정통도장(正統道藏)을 가지고 논다. 내가 가지고 노는 이것은 화투패도 컴퓨터게임도 아니다. 정통도장은 중국에서 간행된 도교 경전의 집대성이다. 나는 이 책들 속에 머리를 푹 쳐 박고 몰두하고 있다. 남들은 내가 연구실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곤 훌륭한 교수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진실은 내가 연구실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놀고 있으니 다른 이에게도 놀라고 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놀고먹는 사람이 상팔자'란 말이 맞는다면 나야말로 팔자가 트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놀아라! 네가 좋아하는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놀아라!

2002-01 29

[오피니언]보혁 논쟁과 대학생의 토론문화 [홍용표]

보혁 논쟁과 대학생의 토론문화 홍용표 교수(사회대 정외과) 지난 한해 우리 사회는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보혁논쟁의 열병을 앓았다. 특히 통일과 북한문제에 관한 논의가 그러했다. 대북지원의 유용성, 주적 개념의 폐지, 한국전쟁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 북한 방문단의 돌출행동,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론분열'이니 '위기의 한국사회'니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따라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 '갈등', '분열'과 같은 부정적 측면만 강조한다면 자칫 획일성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히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의 다름은 토론을 통해 조율하는 것이 다원화된 민주사회의 올바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세력간 논쟁은 이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논의의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는 무조건 배척하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상대방을 '수구세력', '반동', '빨갱이', '매국노' 등 감정적 언어로 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조차 자기와 입장이 같은 측은 선(善)이요, 다른 측은 악(惡)이라는 독선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국론분열에 대한 걱정도 바로 이와 같은 태도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건전한 토론문화는 요원한 것인가? 다행히 요즘 대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도 보다 성숙한 토론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필자는 지난해 몇몇 수업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주요 쟁점들(특히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에 대해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켜보았다. 이를 통해 느낀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각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밝히는 한편, 상대방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를 지녔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 토론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혹시 대부분 의견이 비슷하여(주로 진보 성향으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하였다. 이는 필자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캠퍼스를 휩쓸고 있었으며, 그 외에 다른 목소리는 용납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한 수업의 발표시간에 어떤 학우가 "현정부(제5공화국)가 비록 독재정권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있다."라고 '용감하게' 주장하였다가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획일적인 토론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이미 민주화를 통해 다원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2000년대 대학생들의 사고는 획일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진보.중도.보수 의견이 분명히 나왔으며, 자신이 '골보수'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피력하였다. 물론 관심 부족, 정보 부족 등으로 논쟁의 핵심을 비켜 가거나 주제와 동떨어진 논지를 펼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강의와 토론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무엇보다도 대학생들은 일부 기성세대와는 달리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며, 그 중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성숙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간혹 논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흥분하기도 하고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였으나, 최소한 그들의 토론에서는 기성세대가 보여준 것과 같은 언어의 폭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지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다원화된 교육환경에서 자라났고 또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신세대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필자가 수업에서 접한 학생들 이외의 다른 학생들도 상당히 성숙한 토론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미숙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현재는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는 학생들도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성세대의 그릇된 토론문화에 물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며 그들이 계속 건전한 토론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는 분명히 개선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교육자들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2-01 22

[오피니언]디지털시대 가족 문화와 온고지신 [탁영란]

디지털시대 가족 문화와 온고지신 탁영란 교수(의대 간호과) 2002년 벽두에 연일 회자되는 여러 가지 핵심어 중에 새삼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우리의 가족 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하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슈의 관련설이다. 서울 강남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세 폭등과 유명 대입 준비 학원의 밀집의 관련이다. 이는 지치지 않고 우리 가족들이 갖는 두가지의 독특한 표상인 극단적 자녀 교육 중심과 입시 위주의 일탈된 가족 문화의 한 단면이 줄줄이 사탕처럼 사회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엮여 끝도 없는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 조기 유학, 교육을 위해 이어지는 이민 행렬,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초등학생들이 우리 가족을 대변한다. 과연 우리는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의 실존적 정체성은 외면한 채 모든 가족이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된다고 희망찬 팡파레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화려하게 울린 것이 어언 2년, IT강국으로의 자부심으로 지내온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우리 가족 문화는 과연 디지털 시대에 '잘 살고 잘 교육하고 있는가'는 자문해 볼일이다. 가족의 절대 가치는 자녀 교육에 있다. 여기서의 교육은 진정한 교육을 말한다. 한국인에게 있어 가정은 '나'로부터 '천하'에 이르는 모든 것의 뿌리가 된다고 우리의 옛 선조들은 가르쳐왔다. 즉 가정은 삶의 각 부분을 꿰뚫어 묶는 통합체로서 '나'와 '우리'를 연결시키고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연결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우리 선조들의 자녀 교육은 공자가 제시한 인간상인 군자를 지향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공손, 관용, 신의는 타인을 대하는 자세, 민첩함과 은혜는 개인적 특성으로 구성된 인(仁)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입지(立志)와 성(誠)을 주요 교육 목적이자 교육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입지는 자율적 인간으로 자신의 의지로 학문과 세상에 뜻을 세우는 것을, 성은 하늘의 실리이며 마음의 본체라고 하여 학문이든 일이든 성실함으로 임하는 마음의 자세를 언급했다. 인간은 누구나 발달 가능성을 가지고 노력하여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이므로 타인이나 외부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뜻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는 자율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지식 정보와 더불어 인간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의 발달은 지식과 감성의 발달의 형식적 의미보다는 근본적인 정신 즉 마음의 교육이 강조되고 있음이다. 이로써 창조력과 창의성, 다양성의 자양분이 가족 문화와 가치에 의해 배양되어 디지털 시대의 인간상을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서 자녀 교육은 사랑이라는 가족적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부부간의, 부모 자녀간의, 자녀들간의 사랑의 공동체가 가족인 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명백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가족 문화는 살며(living), 사랑하며(loving), 학습(learning)되는 것이고, 다양함과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훈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의 가족이 이러한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그러면서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에 얼마 만큼의 관심과 주안점을 두고있는가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견지에서 새삼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