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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 31

[오피니언][건강한대] 건강한 잇몸, 올바른 치아 관리

충치와 풍치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칫솔질을 배워 깨끗한 구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프라그란 치아에 끈적끈적하게 붙어 있는 거의 무색의 얇은 막으로, 이 프라그가 충치와 잇몸병의 주원인이다. 글. 황경균 교수(한양대학교병원 치과) / 그림. 안우정 충치와 풍치 예방은 프라그 제거부터 칫솔질은 마구잡이로 닦아서 치아에 광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와 프라그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칫솔질은 앞뒤가 아닌 위아래로 구석구석 쓸어내듯이 닦아야 한다. 우선 칫솔을 빗자루처럼 잇몸에서 치아 쪽으로 쓸어내듯이 움직여 치아를 2~3개씩 닦는다. 또 한 부위를 10회 정도 쓸어내리고, 빠진 부위 없이 구석구석 순서를 정해 닦는다. 어금니 안쪽을 닦을 때는 칫솔 끝부분으로 1~2개씩 나눠서 닦는다. 이 방법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거울을 보고 부위를 확인하며 닦는다. 특히 잇몸이 나쁜 사람들은 칫솔이 치아 사이로 충분히 들어가도록 움직여 치아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음식을 먹은 후 3분이 지나면 치아 표면에 세균막인 프라그가 형성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식후 3분 이내에, 하루 세 번 이상, 3분 정도 칫솔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간식 먹는 버릇을 고쳐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음식을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 어린이 치아에 치명적인 음식은 먹은 후에 반드시 물로 헹구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칫솔은 자연모로 된 것보다 인공모로 이루어진 것이 좋으며, 모든 치아에 접근하기 편한 크기의 것을 선택한다. 칫솔질 외의 보조 수단으로 치아 사이의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해 줄 수 있는 치간칫솔이나 치실을 사용함으로써 세균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없앨 수 있다. 치아 건강 도우미 ‘불소’를 이용한 충치 예방 구강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잘 섭취하고 해가 되는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도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당분은 충치를 잘 생기게 한다. 따라서 당분이 다량 함유된 비스킷, 케이크, 초콜릿, 양갱, 도넛, 설탕, 빵, 밀가루 음식 등의 섭취를 줄인다. 이런 식품을 먹은 후에는 즉시 칫솔질을 하는 것이 좋다. 반면 호두, 잣, 땅콩과 같은 지방질이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및 어패류 등 단백질이 많은 음식은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으면 치아 면을 씻어주는 자정 작용으로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 충치 예방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산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주는 불소 이용법이 있다. 불소란 충치를 예방할 수 있는 원소로 치아 건강의 핵심적 요소다. 불소는 세균에 의해 생기는 산에 잘 견디어 치아를 보호하고 치아 표면에 불소막을 형성해 초기에 충치를 일으키는 세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치과에서 불소를 치아 면에 발라주는 불소도포법이 있는데, 약 40~70%의 충치 예방 효과가 있다. 치아의 틈새를 미리 메우는 치면열구전색법 충치 예방법으로 치아 틈새나 구멍을 미리 메워 주는 치면열구전색법이 있다. 어금니의 씹는 면은 음식물을 잘 부수고 갈 수 있게 거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깊고 가느다란 틈새와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곳에 음식물이나 프라그가 잘 낀다. 칫솔질로는 이 틈새에 낀 음식물이 제거되지 않아 충치가 생기기 쉽다. 이와 같은 틈새나 구멍을 플라스틱 계통의 레진으로 미리 메워 충치를 예방하는 방법이 치면열구전색법이다. 약 65~90%의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데, 치아를 인공적으로 갈아내지 않고 시행하는 것이 장점이다. 치면열구전색은 5세의 아동부터 영구치 어금니가 완전히 나오는 15세까지의 연령에서 시행된다. 충치의 발생률이 높거나 씹는 면의 틈새가 깊은 치아를 가진 이들에게 효과적이다.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구강 검사를 통해서 충치 및 풍치가 발생하기 전이나 초기에 치료해 병의 진행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구강 검사는 6개월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하는 것을 권장한다. ▶알쏭달쏭 치아 건강 상식◀ 1 사탕은 무조건 충치를 일으킨다? 음식의 성분과 음식을 먹는 습관은 충치 발생에 중요한 요인이다. 음식에 함유된 설탕은 치면세균막의 내부에서 산을 제조할 뿐만 아니라 매우 끈끈한 당단백질을 만들어 세균막이 치면에 단단히 부착되도록 도와주므로 단 음식을 자주 먹는 습관은 충치 발생을 증가시킨다. 2 임신 중에는 치과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 임신 시의 치과 치료는 안정기인 4~6개월에 받는 것이 좋다. 이를 제외한 임신 초기나 말기에는 심한 통증 완화에 필요한 치료나 스케일링 등의 치료 외에 약을 복용하는 치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무작정 통증을 참는 것보다 치과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임신 시 안전한 약을 복용하고 치료받는 것이 좋다. 3 전동칫솔이 잘 닦인다? 전동칫솔은 이를 닦는 동작을 적절히 조절할 수 없는 것이 단점이며, 과도한 압력으로 치경부 마모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충치 예방을 위해서는 칫솔 선택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잇솔질을 통한 구강 위생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4 구강세정제가 충치를 예방한다? 잇솔질 후 구강에 남아 있는 치면세균막의 제거와 일시적으로 구강 내 미생물의 양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잇솔질 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 5 소금으로 닦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 큰 소금 입자가 치아를 마모시켜 시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직접 소금으로 닦기보다는 잇솔질 후 소금물로 입 안을 헹구는 것이 좋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31

[오피니언][타임머신] 아름다운 시간 속 추억의 편린들

몇 해 전 일이다. 한양대학교병원을 찾게 된 것은 대학 동창이 내게 전한 부고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시인이셨던 교수님의 부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선약이 잡혀 있긴 했지만 약속을 취소하고 강변북로로 핸들을 꺾었다.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게 될 친구들과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은 학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이순임(소설가/㈜램프웨이 대표·국어국문학과 85) ▲1988년 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사은회 때의 모습(출처: 이순임 동문) 문득 떠오른 졸업식 날의 풍경 한양대역 근처에 이를 무렵, 문득 졸업식 날이 떠올랐다. 엄마는 새로 맞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고 은빛 스팽글이 달린 토트백을 드셨다. 그런데 전철 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인파에 밀려 엄마는 맨 아래 계단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갑이 없어진 걸 알게 된 것은 우왕좌왕 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은 다음이었다. 엄마 안색은 순식간에 달라지셨다. 그제야 엄마는 계단 내리막에서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부모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나란히 독사진을 찍으셨다. 그때 찍은 사진이 엄마의 영정사진이 됐고,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한복 입은 엄마를 보게 된다. 30년 전 소매치기를 당하고 마음이 상해 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역에서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학교까지 통로가 이어져 있다고 들었다. 그때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30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다 나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낮추면서 교문을 찾아보았다. 둘이었던 교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하나만 남아 있었다. 정확하게 ▲ 2학년 때 협궤열차 앞에서 국문과 친구들과 추억을 남 겼다. (출처: 이순임 동문) 어느 쪽에 있었는지 구분이 안 됐다. 뒤이어 내 눈을 의심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학교의 신축 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아예 차를 정차시키고 차창 문을 열어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옛날의 그 학교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 하는 기분이 들었다. 1985년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 2015년 미래에 대한 이야기. 불현듯 <백 투 더 퓨처 2>란 영화가 떠올랐다. 나 역시 85년도 새내기 대학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어언 30년의 시간을 영화처럼 거꾸로 돌리고 있었으니 맞추기라도 한 듯, 시간의 간극이 일치했다. 나는 이미 지난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촌스런 펌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을 만나면 어깨동무를 하고 겅중겅중 뛰어보다가 지치면 오래도록 포옹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심장이 뜨겁게 뛰는지 하하호호 웃고도 싶었다. 마음은 벌써 장례식장에 닿기도 전에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다.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끈 힘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걷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1985년 신입생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 나는 정문에서부터 힘겹게 언덕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합격자 명단이 대운동장에 붙여져 있었다. 어렵게 물어 찾아갔던 그 넓은 운동장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30여 년 전 겨울, 외투에 손을 넣은 채 운동장을 걷는 나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합격자 명 ▲ 학과 친구들과 함께 인천항에서 찰칵!(출처: 이순임 동문) 단 공고문 앞에서 수험번호를 발견하고 안도했던 나. 물론 나는 ERICA캠퍼스가 더 친숙했다. 바람이 많고 허허벌판이었던 안산은 지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옛날의 바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 친구들과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협궤열차를 탄 적도 있다.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인원이 열차를 타고 인천항에 가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엇이 과거의 한 순간으로 나를 이끌었을까. 벌써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셈이다. 묵은 짐을 정리하다가 아이들의 어릴 적 앨범을 펼쳐 보게 됐다. 그 가운데 사진 한 장이 유난히 내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진 속의 두 아들은 볼우물이 파일 만큼 헤벌쭉 웃고 있었다. 특히 눈이 좀 큰 편인 작은애의 까만 눈동자가 조명처럼 빛났다. 게다가 조막만한 양 주먹은 오므리고 두 팔은 가슴께까지 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작동시켜 사진을 옮겨두었다. 한동안 매일 아침 사진을 보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름다운 장면은 기억을 불러내는 한, 현재에도 미래에도 늘 살아있기 마련이다. 살아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그새 어둠이 내렸고 장례식장이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모르겠군. 천천히 차를 몰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문과였던 친구들이 많이 와 있는데 언제 도착하느냐는 물음이었다. 하긴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였다.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매우 신비로운 일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동안 나는 과거라 말하는 시간 속에서 추억의 편린들을 꺼냈었다. 모두 살아있는 기억들이었다. 3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학교 전경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깨닫게 해 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났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1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2017년, 내 인생의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길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1년이 지나 2017년을 마무리하며, 후회 없는 한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글. 이주비(한국언어문학과 14) / 그림. 안우정 인생 23년 차가 된 소감 스물세 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나이다. 스물세 살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나이다. 스물세 살은 미숙한 어른이다. 가끔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 스물세 살은 그런 나이다. 2017년, 난 스물세 살이 됐다. 대학에 들어온 지 4년째다. 학교에 입학해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1년이 지났고, 적응 좀 했다 싶으니 2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3년이 지나 있었다. 사회에서 스물세 살은 풋풋한 대학생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늙은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안팎의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니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학교를 떠나는 게 답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학년이 된 이상 이제 취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하게 살았지만 1년 뒤에는 냉랭한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도 늦었으니 당장 목표를 정해서 달려가라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바로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나이라면, 그 학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박하고 싶다. 과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느냐고. 벌써부터 주변의 지대한 관심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유익함 2016년의 나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니, 2016년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는 내내 옆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달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방학을 쉬기만 하면서 지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생 때는 제외하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대학교 들어와서는 아르바이트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방학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학교1학년 겨울방학을 꼽고 싶다. 그때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하는 게 없었다.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잤다. 그럼에도 왜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온갖 잡념들이 날 사로잡았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태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자기혐오의 감정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다시는 없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월을 계획 중이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선 가끔은 뒹굴며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번 겨울도 그때의 겨울처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난 같은 이유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재충전, 그리고 다시 시작 난 느리더라도 신중히 결정한 나만의 길을 가길 원한다. 성급히 내린 결정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올해는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선 제한된 경험만 가능했다. 대학 생활 3년은 이런 나에게 그전의 19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대학 생활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를 알아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기란 너무 벅찬 일이었고, 난 내가 원하는 것들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 누구보다 먼저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휴학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뜨끔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 이게 다였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 못 하시던 부모님도 나의 거듭된 주장에 결국 백기를 드셨다. 어찌 됐건 올해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평생 나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 구속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볼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인 것이다. 2017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건강한대] 겨울철 비단결 같은 피부 만들기

겨울에는 날씨가 차고 건조해 각질이 일기 쉽다. 또한 아토피 피부염, 주부 습진 등이 악화될 수 있으며 노인은 건조 피부염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어느 계절보다 적절한 피부 관리와 보습이 필수적이다. 글. 노영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피부과) / 그림. 안우정 추운 계절에 자주 발생하는 피부병 겨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피부 질환으로 동창, 동상, 피부 건조증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증상은 무엇이고, 치료 및 예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동창은 5~10℃의 낮은 온도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생기는 비정상적인 국소적 염증 반응으로 손가락, 발가락, 코, 귀 등에 홍색 또는 자색의 종창이 발생하는데, 소양감과 통증을 동반하며 2~3주 내에 자연 소실된다. 동창을 피하려면 손발이 젖은 상태로 추운 데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따뜻한 의복 착용,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 비타민 복용 등이 도움이 된다. 동상은 영하 2~10℃의 심한 추위에 노출돼 조직이 얼어버려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하며 귀, 코, 뺨, 손가락, 발가락 등에 자주 발생한다. 언 부위는 창백하고 통증이 없지만 따뜻하게 해주면 홍반, 괴사, 물집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며,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투여하고 죽은 조직을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등 증상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피부 건조증은 피부 표면에 있는 지질 부족으로 수분을 공기 중으로 빼앗겨서 피부가 건조한 상태를 말하며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피부가 건조하면 거칠어지며 피부 표면에 비듬처럼 하얀 인설이 일어나게 된다. 심하면 피부가 갈라져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가려움증은 피부를 문지르거나 긁게 만들어 상처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피부 지질의 균형이 깨져서 피부 건조증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가려움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부드럽게 보송보송, 피부 관리 노하우 추운 계절에도 비단결처럼 고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샤워와 목욕의 횟수를 줄이고, 너무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씻는 것이 좋다. 목욕 횟수는 일주일에 2~3회가 적당하고, 거친 때밀이 수건으로 때를 미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순한 비누나 세정 제품을 사용하고, 목욕 후에는 세제가 피부에 남아 있지 않도록 충분히 여러 번 씻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에는 문지르지 말고 가볍게 두드려 닦고, 목욕 후 3분 이내에 보습제나 로션을 바르도록 한다. 또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도록 과도한 난방을 피하고,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자기 전에 실내에 젖은 빨래를 널어서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야외 노출을 피한다. 스키, 겨울 등산 등의 운동을 오랫동안 하는 경우 과도한 일광 노출로 인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피부색이 검게 변할 수 있으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피부를 보호한다. 셋째, 춥다고 전기난로 앞에 너무 가까이 있거나 피부에 오랜 시간 핫팩을 대고 있는 행동은 피한다. 이러한 경우 그물 모양의 적갈색 반점 및 색소 침착이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이 만성화되면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 동상과 동창, 생활 속 꼼꼼 예방법 ➊ 적당한 두께의 양말과 편안한 신발을 착용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말단 부위의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강추위가 아니더라도 꽉 끼는 장갑, 신발, 양말 등은 피한다. 종아리까지 덮는 부츠를 신거나 키높이 깔창, 너무 두꺼운 양말을 신으면 발을 조이거나 꽉 끼게 만들어 발의 혈액 순환을 방해한다. 여기에 땀까지 나면 신발 속의 습도가 높아져 동창 및 동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➋ 신발이나 속옷 등이 젖으면 신속하게 말린다 옷이나 속옷, 양말이 땀이나 물기로 젖으면 바로 마른 옷이나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래야 수분으로 인한 체온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 신발이나 장갑이 젖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빨리 젖은 신발과 장갑을 벗고 신속하게 손발을 말려야 한다. ➌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자주 움직인다 추운 곳에 장시간 노출될 때는 수시로 몸을 움직여서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손발이 얼었을 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동상이 의심되는 부위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한다. 특히 눈 부위가 얼었을 때는 비비거나 문지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타임머신] 프랑스에서 만난 안산 칼바람의 추억

인생은 우연과 선택이 쌓이면서 계속된다. 94학번인 나는 수능 1세대로 시험을 두 번 쳤고,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실망했지만 재수는 싫었다. 딱히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학과는 없었지만, 하기 싫은 것은 분명했다. 법대와 상경대 계열은 몸서리치게 싫었다.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특이한 학과의 이름과 당시 국내에 두 곳밖에 없다는 희소성에 끌려 나는 한양대 안산캠퍼스(이하 ERICA캠퍼스)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다. 글. 이동섭(광고홍보학과 94) 동문 ERICA캠퍼스의 칼바람과 길카페 ▲ 이동섭 동문이 함께 자취하던 동기와 사진을 찍고 있다. 내 모교는 추위로 기억된다.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입학식을 했던 행당캠퍼스(서울캠퍼스)는 추웠고, 수업을 듣는 ERICA캠퍼스는 몹시 추웠다. 멀리 서해의 바람은 캠퍼스까지 곧장 불어와 3월에도 안산은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학교 건물은 낮고 흩어져 있어 바람을 막지 못했다. 바닷바람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차갑고 날카로워 외투를 비집고 몸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햇빛이 화창해도 몸은 으슬으슬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우리는 ‘칼바람’이라 불렀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왼편으로 추수가 끝난 논이 바닥을 휑하게 드러낸 채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해는 일찍 졌고,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석호상가 지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선배들은 어디서 신문과 종이 뭉치, 나뭇조각 등을 가져와 학교 밖 길거리에서 불을 피워주었다. ‘길카페’였다. 바닥에 앉으면 땅의 한기가 훅 올라오면서 취기를 몰아냈다.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마시면 몸이 다시 데워지며 추위가 물러갔다. 취기와 추위를 모두 끌어안고 우리는 작은 모닥불을 피운 채 이야기를 하고, 학과와 동아리 노래 등을 배웠다. 남자 후배에게 인기 많았던 몇몇 선배들은 기타를 치며 각종 요상한 노래를 쉴 새 없이 불렀다. 혼자 부르면 부끄러워도 같이 부르면 신나는 그런 노래들이었다. 온기와 웃음이 가득했던 그 길카페가, 나는 좋았다. 오렌지족의 시대와 도서관 ▲ 이동섭 동문이 자취하던 집 1988년부터 1997년까지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인 듯싶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던 10년이다.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청춘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혹은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X세대와 오렌지족의 시대였으니, 데모와 나라 걱정은 지나간 유행이었다. 이때의 시대적 명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였다. 대학에 오니, 다른 애들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히 있는 듯 보였다. 당시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나는 초조했다. 무언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친밀하게 굴지 못했던 성격 탓에 공강 시간은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을 읽고, 그 가운데 재밌게 본 책의 저자의 다른 책과 그 저자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찾아 읽었다. ▲ 이동섭 동문이 학년 MT로 가평을 갔을 때 '듀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연습하던 모습 독서 리스트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나는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즐거웠다. 도서관에 비치된 거의 모든 주간지와 월간지의 목차를 보고, 관심 있는 기사들은 복사해서 밑줄 치며 읽었다. 탐독은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들로 넓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반 고흐와 에곤 쉴레의 그림, 로버트 프랭크와 디안 아버스의 사진, 장정일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김현의 문학비평과 기형도의 시, 베토벤과 슈만의 음악 등을 알게 됐다. 문화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작품을 창작할 재능이 없다는 두려움에 선뜻 뛰어들지 못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광고회사가 아닌 미술관에 취직해서 1년 남짓 일했으나,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남들처럼 살았으나 남들처럼 살아지지 않았다. 월급의 쾌감도 무뎌졌고, 소주로도 고민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 5월 1일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 유학과 예술인문학 파리 유학 시절, 4년 동안 맞았던 안산의 습기 찬 칼바람이 그리우면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도시 르아브르(Le Havre)로 가곤 했다. 아이슬란드 너머 북해에서 영국을 거 ▲ '영화로 맺어진 인연(영맺인)'이라는 소모임에 서 영화 촬영 실습을 하고 있는 이동섭 동문 쳐 그곳으로 밀려오는 바람은 차갑고 눅눅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 바람을 맞으며 깨달았다. 지 금의 나는 ERICA캠퍼스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길러진 셈이구나!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나는 파리에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생겼던 듯하다. 그것이 내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추수물이었다. 덕분에 파리에서 10여 년 동안 사진과 현대 무용, 영화와 패션, 미술과 공연 등 여러 분야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시대와 사람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구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방송과 신문에서 예술 작품을 재료 삼아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한편, 대학에서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한대앞역에서 ▲ 학교 앞에서 동기, 후배와 사진을 찍는 이동섭 동문 얼마 전, 내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시고 연락하신 은사님께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부탁하셨다. 졸업하고 약 15년 만에 캠퍼스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상록수역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태화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한양대 학과 잠바를 입은 학생들이 아무도 그곳에서 내리지 않기에 의아했다. 그들을 따라 한대앞역에서 내렸다.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서 다른 도시 같았다. 학교 앞 드넓게 휑했던 논은 모두 건물로 가득했고, 길카페를 했었던 인도는 어딘지 흔적도 없었다. 우리 학과도 내가 다녔던 단과대 건물을 떠나 새로운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화가 낯설고 아쉬웠으나, 예전의 나처럼 변하지 않은 칼바람을 맞으며 후배들은 꿈을 키우고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6-12 06

[오피니언]"4차혁명, 대학 자율성이 답이다"

본 글은 12월 6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이영무 총장의 기고문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편집자 주> "4차혁명, 대학 자율성이 답이다" 이영무 한양대 총장  올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21세기 핵심 어젠다 중 하나로 ‘교육’이 제시됐다. 특히 자료 기반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창의력, 의사소통, 협업 능력, 융합 능력 등의 핵심 역량을 갖춘 융복합 인재 양성의 중요성이 화두였다.  우리도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기 위한 교육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21세기를 선도할 핵심 인력 양성 기관인 대학의 혁신이 필수적이 됐다. 혁신의 키워드는 대학의 학사제도 운영에 있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규제의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는 뭘 해야 할까.  첫째, 대학의 학과 간, 전공 간 칸막이를 없애고 경계를 허물어 융합 전공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학사제도에는 융복합 교육을 시행하는 데 있어 물리적·제도적 제약이 상당수 존재한다. 다양한 전공 분야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또 별도의 학과 개편 없이 주(主)전공 이외의 다전공만 이수해 학위를 받는 것도 허용돼야 한다.  둘째, 수업 운영에서 학생들이 시간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보편적으로 운영되는 2학기제는 학기당 15주 내내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다. 이처럼 획일화된 수업 방식은 단계적 학습이나 산업현장과 대학 간의 이론·실습의 병행을 어렵게 한다. 학점당 15시간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교과목의 특성이나 학생의 역량 수준을 반영하여 수업을 집중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전공 분야의 특성에 따라 석사 과정 졸업 요건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고등교육법령상 우리나라 석사 과정의 수업 연한은 대학원 수업은 최소 1년 6개월로 정해져 있다.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석사학위를 1년 이내에 취득할 수 있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그 과정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며 이를 현실로 옮기는 능력을 지닌 인재,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다. 이런 인재를 키우기 위해 탄력적인 대학의 학사 운영이 요구되지만, 우리 제도는 여전히 경직돼 있다. 이를 탈피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완화와 운영 자율화가 절실하다. 자율화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규제 완화를 망설인다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 사회와 한국의 대학들은 도태될 게 뻔하다.  정부도 대학의 엄중한 책무가 실현 가능해지도록 대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율화를 위한 인식 전환을 심사숙고할 때다. 이영무 한양대 총장

2016-12 01

[오피니언]"85드림장학금 만든 이유요? 선정된 학생들을 보시죠"

본 글은 85동기회에서 '85드림장학금' 제도를 만들고 처음으로 수혜자를 선정 발표하면서 전한 총평과 함께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편집자 주> 출제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는 85드림장학금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요? 80만원의 장학금을 신청했지만, 심사위원회가 1회 상한액인 400만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연극영화과 2학년 이** 후배의 경우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단 연극영화과 후배들은 신청 팀이 많았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차린 것 없는 밥상이라도 뚝딱 밥 그릇 비워주는 자식이 사랑스럽듯이, 장학금의 규모로 보면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85 드림장학금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선배들에겐 더 없이 예쁜 후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 후배의 문제의식은 좀 달랐습니다. 대부분 팀이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영화 제작이 어려우니 지원해달다”는 호소였던데 비해, 이** 후배는 “다들 어렵게 만든 영화를 1년에 한번 다 모아 학과 차원의 시사회라도 좀 폼 나게 갖고 싶다”는 영연과 전체의 이해와 처지를 반영한 고민을 제출했습니다. 이** 후배의 경우가 다른 팀들보다 더 뛰어나다거나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다른 것이지요. 틀린 게 아닌. 적어도 85동기회 드림장학금 선정위원회의 눈은 가원 후배의 고민을 한번 더 보게 되는 그런 쪽에 가있다는 점 후배님들이 같이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400건이 넘는 신청서 어느 하나도 대충 넘길 수 없었습니다. 후배 한명 한명의 절절한 사정과 소중한 꿈이 담긴 서류들이라. 그러다보니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강경원(법대) 85동기회장과 김 희(수학과) 장학위원장을 포함한 10명의 심사위원들 모두가 “돈 내고 치우는 게 제일 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며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다들 직장에서 한 자리(?)씩 하는 심사위원들 처지에선 일할 시간을 쪼개 서류를 검토하고 약속을 미루며 저녁 회의 시간을 만든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동문회 활동도 ‘일상’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방으로 갈아엎는 혁명보다 하나하나 개선해나가는 개혁이 더 어렵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범접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둔 동문 한명의 엄청난 ‘기부’는 물론 장려되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밥 한 그릇 정도는 살 정도의 여유는 있는 평범한 생활인 동문’의 작지만 아름다운 소소한 기부와 활동 역시 그에 비해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한양대학교 85학번 동기회인 ‘공감 85’가 바라보는 곳은 평범한 생활인 동기들이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일상을 가진 동문회입니다. 후배님들도 같은 곳을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마다 대학 평가 순위를 끌어 올리고 있는 대학 본부의 활동, 좀 더 창의적이고 일상적으로 후배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동문들의 노력, 그리고 행당과 안산캠퍼스에서 진취적으로 생활하고 공부하는 후배들.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통속적인 ‘서열’에 개의치 않는, 한국사회에 유의미한 공헌을 하는 진짜 아름다운 한양대학교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 지리라 믿습니다. 올 해 85드림장학금 선정과정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정된 11개 팀과 팀원들, 본선에서 아깝게 탈락한 9개 팀 후배들, 그리고 이번 프리스타일 장학금이라는 생소한 시도에 열렬히 호응해준 336개 팀과 1,000여 명의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벌어서 기금도 키우고, 시행착오를 잘 살펴서 좀 더 합리적인 선정 과정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즐겁게 노력합시다! - 85드림장학금 2016년도 심사위원회 올림 위원장 김 희(수학과), 위원 강경원(법대), 하영판(자원공학과), 이나주(식품영양학과), 표희수(산업공학과), 김민형(국문과), 김태연(토목학과), 김동철(토목학과), 권태형(의과대), 위계찬(법대)

2016-11 17

[오피니언][나눔칼럼] 기부를 넘어 대학발전의 촉진자로

졸업과 동시에 모교인 한국외대에서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모금을 처음 경험했고, 약 18년간 (재)서울대학교발전기금, 건국대학교, 국제개발구호기구 월드비전 등을 거치면서 동문직원, 전문 모금가, I-NGO 직원, 그리고 컨설턴트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모금을 경험했다. 모교에서 국립대학으로, 다시 사립대학을 거쳐 국제 NGO를 거치면서 서로 다른 모금현장의 특색과 면모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본연의 역할 강화를 중심으로 모금 원리와 환경의 이해가 대학모금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환경의 변화와 위기의식 2012년 「파이낸셜타임즈」지 선정 올해 최고의 책이자 아마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도 뽑힌 책 ‘플루토크라트(Plutocrats; The Rise of the New Global Super-Rich and the Fall of Everyone Else)’에서 저자 크리스티아 프릴랜드(톰슨 로이터스 편집장)는 산업혁명 이후 거센 속도로 몰아치듯 성장하는 세계경제에서 경제주체들이 겪게 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위기의 측면에서 분석하였고 그 주된 원인으로 기술경쟁, 세계화, 워싱턴컨센서스(효율성 중심의 정책결정, 더 가진 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함)를 꼽았다. 사회에서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영역에 속하는 대학도 최근 고조되는 위기감에 당혹스럽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2006년 자신의 이임사에서 ‘현재 한국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위기는 우리나라 대학뿐만 아니라 세계 대학들이 동일하게 대하는 위기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의 확산에 따라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실에 있다’고 했다. 한편 비영리 섹터도 세계화, 정보화, 효율성 평가에서 오는 위기감을 경험하고 있다. 6.25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국제 NGO들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더 이상 수혜국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철수하거나 또는 일부 국제원조를 위한 지원활동으로 전환하였다. 이후 1990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모금’ 활동을 허용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는데 모금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2000년도 이후이다. 이 짧은 모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 지금 수많은 해외원조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상륙하고 있다. 이미 모금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국내의 대학과 병원, 문화예술단체와 복지기관, 국제NGO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다양한 기관들이 모금에서의 기술과 정보 격차를 느끼고 있다. 한편 비영리 워치독(감독기관)으로부터 모금 정보 공시와 효율적 관리를 강요받고 있다. 개인후원의 폭발적 성장 이후 나타난 성장의 정체, 단순후원에서 전략적 사회투자로 변하는 기업사회공헌, 고액후원자 클럽의 성장, 청년 중심의 사회적기업 등장, 정부 및 입법자들의 정책적 개입 등 계속해서 모금 생태계는 급격하게 복잡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대학의 발전과 모금의 관계 세계화, 정보화, 효율성 평가, 그리고 모금생태계의 복잡한 변화 외에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을 더욱 긴장시킨다. 많은 대학들이 예측되는 미래 부담을 떠안고 단기적인 재정 다변화를 목표로 모금을 추진하고 있지만 막상 모금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모금의 성공과 그 안에 숨은 대학 경쟁력 향상이라는 파워풀한 경험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금에서 성공의 경험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의 모금성공이 내포하는 의미를 쪼개어 보면 1)명확한 대학발전계획 수립과 내부소통(alignment)의 성공, 2)대학 브랜드 및 동문 자부심의 제고, 3)대내외 커뮤니케이션 성공, 4)동문의 사회적 영향력 확장, 5)모금 (전문)역할자의 확보에 모두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서 대학이 얻게 되는 것은 기부금 모금의 직접성과뿐만 아니라 대학 경쟁력과 영향력을 높이는 간접 성과도 있다. 이 5가지 요소 중 가장 핵심은 모금에 대한 대학(리더십)의 의지와 명확한 모금명분(메시지)이라 할 수 있다. 왜 우리 대학에 모금이 필요한지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과 동문들이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의견수렴과 공감형성의 과정, 즉 대화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대학 본연의 역할에 대해서 재천명하고 최선을 다해 그 사명을 다할 것에 대해서 선언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것은 공허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발전계획(청사진)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진정성 있게 사업을 추진하는 실행을 더해 대학의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통이다. 대학이 실제 모금에 성공하면 캠퍼스 및 동문사회에 생기가 넘쳐나게 된다. 상호 간에 기분 좋은 만남과 대화의 근거가 생겨나고 이러한 분위기는 다시 대학에 활력을 주어서 경쟁력을 높이게 되며, 그 결과 동문의 사회적 진출 기회가 확장되고 학교의 브랜드가 높아져서 대학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 원리는 미국 대학들이 모금을 위해 잘 실현하고 있는 것인데 최근 영국대학들도 이러한 모금구조를 모방하고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Fundraising: how to get alumni to cough up", 2009, An Article from Times Higher Education world Universities Rankings by Hannah Fearn). 대학의 모금은 단기적인 모금액 달성보다는 대학 기부문화의 확산(캠페인 등)이 성과목표가 되어야 한다. 단기 모금성과를 추구하는 것은 내부의 구조적 결함은 건드리지 않은 채 단기처방을 하는, 일종의 ‘수혈과 같은 응급처치’와도 같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인 성과도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역량강화나 기부자와의 관계 개선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편, 기부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접근은 대학의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고 소통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혈액순환개선 또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라 할 수 있다. 이 접근이 잘 시도될 경우, 1~2년 후에는 다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체질개선은 대학의 최고 리더십의 의지와 구성원들의 합치가 전제되어야 하며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부합된 형식으로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는데 대학의 특징을 잘 알고 기부자를 이해하는 것은 성공적인 모금을 위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자선은 development, 인재양성은 advancement?!! 대학 모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선영역의 모금과 비교해 보겠다. 일반적으로 자선, 즉 취약계층과 저개발국가를 위한 후원에서는 development(개발)라는 표현을 쓰는데, 대학 후원을 이야기할 때는 advancement(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두 개념을 비교해보자면 전자는 뒤떨어진 상태를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드는 의미라면, 후자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미래지향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국제 NGO나 사회복지단체들이 다루는 자선(charity)은 구제와 개발사업, 대학의 연구와 교육 사업은 미래발전사업으로 볼 수 있다. 두 영역 모두 변화(change-making)를 목표로 하지만 자선은 수혜대상에게 직접 혜택이 가는 반면 대학발전지원은 미래사회를 위한 간접 투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제의 기부자와 미래발전사업의 기부자는 서로 다른 성향과 이유로 기부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의 기부자들은 자선의 기부자들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관계와 네트워크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로서 대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학의 기부자들은 기부를 일종의 사회적 투자로 생각한다. 좀 더 큰 차원의 대학 기부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고 사회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리더 성향인 경우가 많다. 대학의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를 통해서 큰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계기를 만들기를 원하며, 기꺼이 대학 발전을 함께 논의할 파트너가 되고자 하고 나아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지인들에게도 자신의 뜻을 알리기도 한다. 자신의 논리적인 의사결정이 확실하기 때문에 스스로 기부에 대해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한편, 자선의 기부자들은 어려운 이들의 상황을 가슴 아파하며 감정적으로 동기 부여된 기부결정을 한다.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서 한편의 위로를 얻는 동시에 적은 금액이라도 돕고자’ 기부한다. 절실한 상황을 당장 해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적은 금액을 기부하기 때문에 단체에 불만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노력하는 자선단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자선 기부자들은 지금 후원하는 단체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더 좋은 사업을 하는 믿을만한 단체를 만나게 되면 단체를 바꾸기도 한다. 즉, 단체에 귀속되기보다 자선사업의 내용(사회적 이슈)에 마음을 두는 경우가 많다. 기부라는 행위는 같지만 기부의 동기, 의사결정요인, 결과에 대한 기대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선의 기부자와 대학발전의 기부자는 다르기 때문에 대학이 기부자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기부자의 의도와 뜻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모금에 있어서 대학의 태도 변화는 기부문화의 변화를 이끈다. 기부자들은 대학의 메시지를 조용히 귀담아듣고 있다가 적절하게 반응한다. 잘 준비된 대학의 모금은 정중한 초대로 이어질 수 있다. 품격 있는 교류와 상호 간의 신뢰를 통해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으로 나아가는 기부자는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좋은 사업(Good business)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부의 촉진자로서 영향력(Influencer)을 갖게 된다. 대학의 좋은 기부문화는 대학의 동문을 최고의 기부자로 만들어 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은 동문과 기부자들을 최고 수준의 필란트로피스트(philanthropist)로 성장시키는 장(場)이 되고 그 효과는 부메랑이 되어서 대학에 발전의 기회로 되돌아 올 것이다. ▲황신애 · (사)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황신애 (사)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한국외대, (재)서울대발전기금, 건국대학교,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등에서 약 18년간 모금현장을 경험했다. 캐피털캠페인, 부동산 및 유산기부, 기부신탁 등의 전문 분야를 다루며 기관에 맞는 맞춤모금설계 등을 컨설팅하고 있다. 2014년에 대학, 병원, 국제 NGO, 문화예술, 보건의료, 시민사회 등 전반적인 비영리 영역의 모금가들의 전문성, 윤리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국모금가협회를 설립하였고, 현재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6-11 01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백패커의 하루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 종족이 지구를 침범했다. 그 종족의 이름은 바로 백패커(Backpackers). 21세기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배낭족이다. 그들은 큰 배낭을메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글과 사진. 최정윤(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백패커 종족의 수명은 개인차에 따라 며칠부터 몇 년까지 그 기간이 다양하다. 이들은 홀로 다니기도, 짝을 지어 친구들 혹은 연인끼리 다니기도 한다. 피부색도 다양하며 언어도 수백 가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백패커 종족을 형언할 하나의 단어는 없으며, 구성원도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천차만별이다. 지난겨울 나는 백패커의 주 구성원인 20대 청년이었다. 나의 정복 장소는 유럽 발칸반도 남반에 위치한 그리스와 유럽과 아시아를 사이에 낀 이색적인 나라 터키였다. 백패커가 되기 위해 특별히 요구되는 능력은 없다. 쌓인 일들을 옆으로 잠시 미뤄둘 시간과 최소한의 비용만 있다면 누구나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여기에 열정과 호기심만 있으면 완벽한 백패커 한 명이 탄생한다. 지식과 여행을 계획하는 준비성, 빠른 적응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은 출발하지 않은 사람의 걱정일 뿐이다. 백패커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싼 비행기 표를 찾는다. 나는 인천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아테네에 도착하는 표를 샀다. 싼 티켓을 구하다 보니 모스크바 공항에서 14시간을 경유해야 했고, 노숙을 했다. 배낭의 모든 고리에는 자물쇠를 채워 발밑에 두고 잠을 청했다. 어렵게 탄 비행기 너머로 펼쳐진 그리스 아테네의 하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풍경과도 같았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는 여러 신들이 모여 나의 입국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아테네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메트로를 탔다. 경치를 구경하는 내게 여행을 같이하는 친구가 “야!”라고 속삭였다. 고개를 돌리자 내 가방을 보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내 가방을 쳐다봤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려고 배 앞으로 맸던 가방은 열려 있었다. 내 앞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홱 고개를 돌렸다. 빨간 손톱을 한 그녀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창문을 쳐다봤다. 당황한 나는 소리를 질러야 할지, 여자의 머리카락을 낚아채 싸워야 할지 0.1초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문이 열렸고 여자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만 보면 가방을 움켜잡기에 바빴고, 새로운 도시가 무서웠다. 10분 거리라고 했던 숙소는 길을 헤매 4시간이 걸려 도착했고, 그날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나의 로망이었던 배낭여행의 첫날이 화려하지만 냄새나게 그 막을 내렸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 때문에 행선지를 바꿀 때도 있다. 터키에선 카파도키아에서의 벌룬 투어(열기구) 탑승을 위해 계획했던 세 개의 지역을 취소하고 달려가야만 했다. 아테네에선 날씨가 좋지 않아 항구에서 배가 뜨지 않았고, 산토리니에서 이스탄불로 넘어가야 했던 우리는 30만 원 이상을 손해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불가항력인 날씨에 당할 때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좌상) 12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 간 카파도키아에서 경험한 벌룬투어 (우상) 사프란볼루라는 작은 마을. 고요하고 조용한, 그리고 꽃내음이 잔잔하게 흐르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좌하) 바위 동굴로 만들어진 생활 공간. 카파도키아의 바위 동굴에서 아늑한 잠을 청한 후, 기쁜 마음에 점프~ (우하) 석양을 등지고 처음으로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찰칵~ 20대의 열정과 청춘을 만끽한 시간 ‘해냈다’라는 뿌듯함이다. 고생했던 경험은 오래간다. 아테네 전경이 다 보이는 리카비투스 언덕을 올라갔을 때다. 케이블카를 찾지 못해 3시간의 강제 하이킹을 했고, 비와 눈이 섞인 강풍 속을 뚫으며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뛰어올라 갔다. 열악한 날씨 덕분에 언덕 정상엔 아무도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야경을 향해 우리는 애국가를 목이 터지도록 열창했다.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정신 나간 무리에 불과했지만 땀과 비가 섞여 뜨거운 몸을 식히며 우린, 20대의 열정을 그리고 청춘을 만끽했다. 미친 듯이 여행하며 시간의 흔적과 역사적 순간에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짜릿할 정도로 흥분됐다. 하지만 항상 놀 수는 없는 법.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터키인들과 웃고 함께 얼굴을 붉혔으며, 밤에는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백패커들과 이상한 노래에 맞춰 이상한 춤을 췄다. 맥주를 마시며 동이 틀 때까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프란볼루 흐드를륵 언덕에선 절벽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적어보곤 했다. 여유로웠다. 한국에서의 여행은 많은 계획과 준비가 요구되는 이벤트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백패커들의 여행은 다르다. 한 도시에서만 열흘을 머물고 백패커로서의 삶을 끝내거나 언제 끝날지 모를 삶을 살며 이곳저곳에 발걸음을 남기는 백패커도 있다. 여행을 성대하고 원대한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 한 번의 자유여행으로 난 ‘여행쟁이’가 되고 싶다. 백패커로서의 삶에 온전히 충실하진 못하지만 대신 얇고 긴 삶을 꿈꾼다.

2016-11 01

[오피니언][건강한대] 체중 조절 나만의 성공 비법

겨울이라고 살 빼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잘 생각해보면 겨울이 오히려 체중 조절을 하기에 절호의 찬스다. 겨울철의 체중 증가를 잘 극복한다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늘어나는 뱃살을 줄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글. 이창범 교수(한양대학교구리병원 내분비내과) / 그림. 박하영] 생활 리듬 깨지기 쉬운 계절 체중 관리에 민감한 젊은 여대생의 경우 겨울 방학은 생활의 리듬을 잃어버리기 쉬운 기간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굳이 외국계 기업이 아니더라도 외국계 기업과 함께 일하는 많은 한국 기업도 겨울 휴가가 상당히 길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만 환자들의 계절별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다. 그러나 미국인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겨울철 비만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겨울철 휴가 기간에 매년 약 평균 0.5kg의 체중 증가가 있으며, 이러한 증가가 장래 비만에 이르는 과도한 체중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겨울철 체중 증가의 이유로 바깥 온도 변화에 따른 생리적 열 발산 의 변화를 꼽을 수 있지만, 요즘처럼 실내 온도가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의 변화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겨울철 체중 증가는 운동량 부족과 식사 문제가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겨울철 식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잦은 모임에서의 음주다. 맥주 서너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약 밥 한 공기의 칼로리를 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비만 환자는 맥주가 칼로리가 높아 소주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큰 오해다. 맥주 서너 잔이나 소주 서너 잔은 똑같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알코올에 더해 각종 모임에서 자주 접하는 삼겹살과 같은 지방식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날 저녁 하루만의 칼로리로 일주일간의 다이어트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살 빼는 데 좋은 운동과 식습관 겨울철에는 일상생활에서 운동량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의 원칙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비만을 위한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겨울철의 운동량 감소를 생각하면 매일 하는 것이 좋다. 매일 운동을 하려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날씨 때문에 밖에서 운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비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훌라후프, 자전거, 보행기, 트레드밀(러닝머신)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기구가 없더라도 윗몸 일으키기, 스트레칭, 제자리 뛰기 등으로 땀을 흘릴 수 있을 정도의 운동을 해야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식습관도 중요하다. 푸른 채소류는 운동량 감소에 따른 변비에 도움을 주며 포만감을 제공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칼로리를 줄여준다. 또 겨울이라고 수분 섭취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호흡기계 점막의 수분이 부족하면 공해 물질의 자연 배출에 지장을 가져오며 감기나 호흡기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철에 큰 감기를 몇 차례 앓고 나면 그해 겨울의 체중 조절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하루가 짧기 때문에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많이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금물이며 세끼를 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