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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 04

[오피니언][에리카 공간비평] 0. 서문 ; 새로운 포토 칼럼의 시작

본 글은 ERICA캠퍼스 관련 사진을 촬영 및 게시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의 관리자가 캠퍼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연재하고 있는 글을 옮긴 것입니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만의 특화된 글로서 좋은 취지가 잘 전달되기 바라며, 글의 저작권 등 모든 권한은 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편집자 주) *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ericaallphoto <서문> 공간은 공간 자체의 모습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왜 사용하는가, 이 요소들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각종 대학가 문화거리에서 공간은 그 거리를 소비하는 학생들과, 그 거리에 존재하는 문화들과, 그리고 그 거리에 '왜' 사람들이 오는가 하는 추동요소 등에 의해 이름붙여지고 규정지어진다. 공간의 정체성은 그렇게 시작된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 앞 대학가도 그 나름의 이름이 있다. 대학동 문화거리는 필연적으로 사용하는 대학생들에 의해 정체성을 빚지고 있으며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학기마다, 분기마다, 매 달마다, 그리고 매주, 매일, 매시간마다 변화한다. 자유와 예술의 상징이 된 홍대거리나 문화예술의 공연성을 가진 대학로와 같이 현재 안산 대학동 문화거리가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가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정체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를 통해 에리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그것을 소개하여 하나의 문화적인 행위로 발전되기를 바랐다. 2000개가 넘는 좋아요와, 작년 한 해 에리카 캠퍼스 내의 여러가지 장소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지 정도나 인식 수준이 증가한 것으로 그 시작은 분명히 짚은 것 같다. 이제는 이 지평을 조금 더 넓혀보고자 한다. <에리카 공간비평>이라는 이름의 이 포토 칼럼은 현재 에리카 캠퍼스 내외에서 '한양대 에리카'라는 이름을 단 많은 것들이 어떤 의미를 획득하고 외부로 보여지고 있는가. 내부에서 소비되는가를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과 문화는 우리를 외부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안단테 광장이 보여주는 버스킹 무대의 가능성과 호수공원에서 오후부터 밤까지 이루어지는 음식과 주류섭취 문화가 보여주는 현대의 낭만성, 창업과 문화 공간, 대화와 소통의 담론장 카페거리와 학교 앞 라이브 재즈 주점의 가능성과 공존성을 보여주는 술집 허구헌날, 상권과 학생의 문화공존을 위한 스폰의 현 실태까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학교 내외의 여러 상황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보다 에리카라는 공간에 대해서 필자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 각각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에리카'라는 곳의 특색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향후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는 에리카 공간비평의 연재를 통해 사진개재를 재개합니다. 사진과 함께 제가 바라보고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에리카 공간들에 대한 짧지 않은 단상들이 같이 연재될 듯합니다. 문이과를 넘어 단순히 지식자랑이나 어려운 용어들에 대한 나열이 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글이 어렵고, 독단적인 시선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지적해 주실 경우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에리카 공간비평>에서 다루었으면 좋은 특정한 가게, 근처의 공원, 에리카라는 학교 내에서 독특하게 자리잡은 문화들이 있다면 원글에 댓글 또는 메시지를 통해 언제든지 제보해주세요. 'ERICA 다 찍어드립니다'는 그렇게 공간적인 주제로 변화하여 '다 찍어드리기'위해 움직일 예정입니다. 연재는 매주 1~2회 이루어집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원글 보기 [에리카 공간비평 서문]공간은 공간 자체의 모습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왜 사용하는가, 이 요소들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각종 대학가 문화거리에서 공간은 그 거리를 소비하는 학생들과, 그... Posted by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on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에리카공간비평

2014-11 21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3. 논문이란...

논문을 지도하다보면 가끔 학생들이 '논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무리 설명해도 논문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선입견, 즉,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골치아픈 '절차'라는 소극적인 관념이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형식적으로는 그 인식이 틀리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을까. 때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 마디로 논문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다. 자기 자신의 주장이 없는 논문은 논문이 아니다. 공부하는 것과 논문 쓰는 것은 동일한 행위가 아니다. 공부한 지식을 정리한다고 논문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세상에 대한 주장이 없으면 논문을 쓸 수 없다. 세상에 대해 주장을 하려면 먼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주장은 곧 해답인데, 어떻게 문제 없이 해답이 있겠는가. 논문을 작성하기 전에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어쩌다 대학이 '논문' 생산 공장처럼 되어가니 문제가 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논문이 양산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치있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한다는 논문 작성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학문에서 문제의식이란 강한 지적 호기심이다. 사회과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세상에 대한 실천적 측면에서의 문제의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쟁점과는 먼 순전히 학술적이거나 과학적인 문제의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연구방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찾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문제의식이 충만된 연구자에게는 항상 다음과 같은 의문이 찾아오곤 한다: 저 사회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 정책이 도입된다면 예견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저 사회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까? 그 현상을 꼭 그렇게 해석해야 하나? 도대체 어떤 학자의 주장이 맞는거야? 왜 선배 학자들은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 학자의 연구 결과가 정말 맞을까? 이 연구에 적용된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미국사회에서 검증된 그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도 통할까? 새로 개발된 방법을 적용해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등등. 문제가 확실히 잡히면 연구의 절반은 진행된 셈이다. 그 다음에는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깊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문헌 연구가 필요하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문제와 씨름했던 선배 학자들이나 다른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연구에서 제시된 주장과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나 사실을 제시한다. 주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주장만으로는 좋은 논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논리나 자료가 제시되어야 한다. 요즘은 데이터를 먼저보고 거꾸로 문제와 주장을 꾸미는 신묘한 학자들도 적지 않지만 그러한 묘법이 문제의식의 부재를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사실 데이터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세상의 비밀을 살짝 보여준다. 문제의식이 없는 연구 로봇들에게 '빅데이터'는 빈곤한 연구를 치장하는 화려한 눈속임일 뿐이다. 요즘 거짓 선지자들의 데이터와 현란한 그림에 유혹된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테크닉 배우는 데만 열중한다. 사회과학이 컴퓨터 앞에서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끝으로 겸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돌아보고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보탠 것이 무엇이고 어떤 한계를 안고 있는지를 고백한다. 연구자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보면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백년에 한 번쯤은 논문 한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겠지만 나는 전혀 그럴 능력이 없고 그런 학자를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논문이다. 이제 답답한 가슴이 좀 풀린다. 윤영민님의 글

2014-11 17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2. 대학과 취업

신입생이 들어오면 개인 면담을 하곤 합니다. 대개 꿈을 물어보지요. 꿈이 없는 학생들이 적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 무언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대학을 졸업할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아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기는 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낸 학부모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금년에는 학교당국이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데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단과대 학장이 책임지고 취업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학장은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취업 시키도록 학과장들을 계속 독려합니다. 과거 언젠가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졸업장만 받으면 제법 좋은 곳에 취직되었지요. 대기업들은 여유있게 신입사원을 뽑아서 직무 훈련을 시켰고, 취업은 학생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으며 실제 해결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런 전설적인 황금 시대가 아닙니다. 웬만한 직장에는 몇 십 혹은 몇 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졸업생을 내보면서 과거나 현재나 변치 않는 흐름을 봅니다. 기업이나 기관은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으며, 자신을 잘 성장시킨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일자리를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품성과 능력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경쟁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품성이란 것이 별거 아닙니다. 함께 있으면 기분좋은 사람, 그리고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 이익만 챙기고 요령에만 능한 빠꿈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귀하다고 합니다. 능력은 직무능력을 말하는데 사실 인문사회계열에 있어 직무능력이란 것이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다만 문제해결이나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창의력, 정보력, 리더십, 멤버십이 기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각 도메인이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특기를 갖추면 될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소속한 학과는 소셜미디어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데이터분석 능력을 중점적으로 키워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품성과 직무능력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대학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각 수업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과제를 하고, 조별 학습에서는 프리라이딩하지 말며,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명사 특강이나 취업 특강에도 참석해서 세상의 흐름도 읽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틈나는대로 사회봉사 활동에도 나서야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일기도 쓰고, 일기 쓰기 싫으면 페이스북에라도 포스팅을 열심히 하면서 글쓰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정말로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생활에 빈틈이 없는지 돌아보세요. 만약 그래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면 제게 오세요.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학생이라면 제가 장학금을 찾아주겠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와 대학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저는 미취업 졸업생들이 많은데도 구인 기업에 기꺼이 추천해 줄 학생을 찾기 어려운 모순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가는데, 학생들이 세상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때문은 아닐까요? 이 포스팅은 대학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자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윤영민님의 글

2014-11 17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1. 창의성을 높이는 손쉬운 방법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바뀌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창의성(creativity)'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일취월장에 다급해진 우리 기업들은 직원들을 쉴새 없이 볶아대고 대학에게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야단입니다. 정부는 아예 '창조경제'를 정책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는 기업들은 많은 외국인 전문가와 기술자를 모셔오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만 토끼몰이식으로 과연 원하는 창의성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창의성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두루뭉술하게 창의성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좀 따져보면 거기에는 구상(ideation)과 혁신(innovation)이라는 두 단계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기업들은 창의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구상의 실패 때문인지, 혁신의 실패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구상과 혁신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현 요건이 좀 다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구상은 자유로운 정신에 달려있고, 혁신은 모반(rebellion)을 기꺼이 허용하는 조직문화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은 창의성의 구상 측면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로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문제 풀이보다는 의문 제기에 많은 보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교사는 답을 잘 하는 학생보다 질문을 잘 하는 학생을 더 예뻐해주고 그에게 더 좋은 성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동안 거꾸로 해왔습니다. 답을 찾는 것보다 효과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질문자를 억누르고 답변자를 칭찬했습니다. "진도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매일매일 죽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대학에 온 학생들은 질문을 하라고 아무리 부추겨도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창의성은 반역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질문이 너무 많아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수업을 꿈꿉니다. 그 때 우리는 창의적 젊은이들로 가득 찬 시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윤영민님의 글

2014-08 13

[오피니언][기고] 대학이 등록금 카드 결제를 도입하지 않는 2가지 이유 (1)

최근 대학의 등록금 카드납부 불가에 대한 언론의 뭇매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개강이 다가오면 주기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예전 기사랑 달라진 내용은 크게 없다. 이는 언론 입장에서 비싼 등록금 받아 가정 경제를 위협(?)하는 대학을 소위 ‘때리기 좋게’ 다룰 수 있는 이슈라는 반증이다. 물론 등록금 납부도 엄연히 경제활동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적용하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이며,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학의 운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자극적인 이슈로 몰아가면서 일방적으로 '나쁜 대학'의 오명을 씌우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를 살펴보면 얼마나 치우친 보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일부 매체는 다음과 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마치 대학이 사회적인 정서에 반하거나 매정한 착취집단 쯤으로 보이도록 왜곡하고 있다. 단순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률을 높여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론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 이유 알고보니…‘황당하네’- 스타투데이 대학등록금 '3곳중 2곳' 신용카드 결제 거부.. 학부모 '등골' - 뉴스에듀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 피해는 오로지 학생 몫 - 데일리한국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학생 사정보다 수수료가 중요해?" - 서울경제 특히 <서울경제>의 사설은 다음과 같이 대학이 '배째라'식 특권의식임을 가지고 있고, 납부자 선택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용) 이런 마당에 대학의 카드 결제 거부는 '배 째라'식 특권의식일 뿐이다. 물론 등록금이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는 여론이 있는 만큼 정책보완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중점은 납부자 선택권 보호에 둬야 마땅하다. - 서울경제 사설 일부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학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대학의 입장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따져보는 언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방적이기만 하다. 특히 한양대는 카드결제 자체가 불가한 대표 대학으로 지적받으면서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럴까? 대학이 카드 결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는 과도한 카드 수수료 때문이다. 많은 언론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대학이 카드 수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하는데, 그걸 당연한 지출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는가. 결국 본질은 카드 수수료에 해당하는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학교에 여유 자금이 있고,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다면야 학생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 지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예산 상황도 안 되거니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는 이 재원을 마련할 방법도 요원해 보인다. 결국 카드사로 넘어가게 되는 수억 원의 돈은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낸 교비가 될 것이다. 이미 카드 납부를 도입한 대학은 어떤 재원으로 충당하고 있을까. 교육 지원을 위해 사용해야할 돈을 카드사에게 지급한다면 그건 또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일종의 낭비는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더욱이 이 카드 수수료 지원은 카드결제로 납부하는 학생과 현금으로 납부하는 학생 사이에 불평등을 발생 시키는 요소가 된다. 일종의 역차별이다. 동네 미장원에서도 카드결제 대신 현금결제를 하면 카드 수수료만큼 깎아주기도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맞는다면 현금으로 등록금을 낸 학생에겐 단 몇 만원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재의 카드수수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편의 제공을 위한, 말 그대로 ‘서비스’에 이렇게 큰 금액을 지불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정작 학생들은 본인이 낸 등록금의 일부가 본인의 납부 방법과 상관없이 카드사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카드납부보다 더 나은 납부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의 경우 3회에 걸쳐 한 학기의 등록금을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다. 이번 2학기에는 개강 전인 8월 20일에서 27일 사이에 '분할납부 신청'을 하면 9월부터 3개월간 나눠서 납부 할 수가 있다. 여기에는 별도의 수수료나 이자가 붙지 않는다. 카드 3개월 할부와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더 이로운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저금리 학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대학 등록금 납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제도가 엄연히 있음에도 카드 납부를 유도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만약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면 카드 납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차별화된 대출 제도가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카드는 만능이 아니다. 단순히 납부의 편리함을 내세우면서, 카드사의 이익 증대와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더욱이 카드로 우선 납부를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 목돈이 없는 저소득 가정이라고 본다면, 그들에게 할부 수수료의 부담이나 연체에 따른 불안을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설령 카드 결제를 도입했더라도, 카드사마다 수수료가 달라 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떠안게 된 대학도 있다하니 카드 결제 도입은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일 수 있다. 더불어 등록금 카드 납부는 소득 공제와도 전혀 무관하니 카드 결제의 필요성은 그 만큼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언론에서 지적했듯 현재 교육당국은 금융당국에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 적격 비용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하고, 금융당국은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공공성이 높은 곳이 많다’며 검토 계획이 없음을 밝힌 상황이다. 이런 떠넘기기 상황에서 다른 대안 없이 대학에게 카드 결제를 허하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과연 누구에게 이득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한 대학마다 한해 수십억 원씩을 카드사로 비용을 지급하고 학생들의 ‘납부자 선택권과 편의성’를 강화하는 것과, 그 비용만큼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교육 지원을 강화하는 것 중 선택해야한다면 대학은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걸까. 물론 대학도 막연히 수수료 문제만을 가지고 카드결제 요구를 무시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다만 무조건 적인 도입보다는 실제 카드 결제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요조사를 통해 ‘왜 카드로 납부하려 하는지’, ‘어떤 부분이 등록금 납부의 불편함인지’를 세세히 따지고 결정한다면 실질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에 떠밀려 대안 없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실제 등록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는 부서에는 이 즈음하여 카드 납부 관련 문의 전화가 적잖이 걸려온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민원과 비교해 월등히 많거나 카드 납부 불가에 항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분할 납부나 학자금 대출 제도를 안내하면 상황을 이해하고 당사자에게 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 지금 언론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학의 ‘카드 결제 미사용 실태’ 고발이 아니라 등록금 납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 제도’를 놓치지 않도록 챙겨주는 ‘알뜰함’일 것이다.

2014-07 29

[오피니언][소셜픽션-소감문] 한양대에는 □□□가 있다?!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란 사회에 대해 제약 조건 없이 상상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기획 방법이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염원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 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한 예측이 아닌,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의지가 담긴 염원을 해야 한다. 비전과 목표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 것에서 일이 방향을 잃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효과적인 기획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재무설계에서도 소셜픽션이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와 비슷한 개념이 적용된다. ‘55세에 은퇴한 이후 연금으로 500만원(현재가치)이상을 받으며 평생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어쩌면 과해 보일 수 있지만 상상을 통해 확고한 방향을 정립한다면, 일반 월급쟁이라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이다. 누구에게는 코웃음 나오는 픽션일수도 있지만 훗날 이 목표를 위해 꾸준히 수 십 년간 모아나간 사람에게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소셜픽션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나열해 보자. 첫 번째로 본질을 정하고 그 것이 해소된 상태의 미래를 그린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상상이라면 즐기고 사색하며 일상 생활이 큰 노력 없이 영위되는 삶이 그 미래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그 미래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찾아본다.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겠지! 세 번째로 이 자본의 축적을 위한 과정에 필요한 것(지혜와 유쾌함)과 방법(철학, 문화, 예술)을 정립하고 브레인 스토밍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물적 생산 인프라를 더 많이 구축해야 한다는 해답이 나온다. 지혜와 유쾌함을 위해서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케인즈의 역방향 기획이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 광고제작 전문업체인 빅앤트 인터네셔널 박서원 대표의 강연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상품의 본질부터 찾아봐라.’. 하얀 바나나우유를 광고하기 위해서 타 제품과 차별화되는 ‘흰색’을 강조하고, 바리스타 커피를 광고하기 위해서 ‘바리스타’라는 표기를 ‘BARISTA’로 바꾼 후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둔 사례가 상상의 시작에서 고려해야 할 본질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오늘을 바꾼 어제의 상상? 유럽을 통합한 장 모네의 정치사상, 인종차별 없는 민주주의 국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복지국가의 꿈을 그린 스웨덴, 빈곤을 시장 원리로 해결하려 한 그라민 은행과 무함마드 유누스의 다른 금융 그리고 시대에 뒤처지는 상상에서 제주도의 상징이 된 올레길. 이 사례들은 하나같이 감탄사가 나오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던 나에게 가장 관심이 가던 사례는 그라민 은행의 사업 방식. 부유층 대상의 대출이 아닌 저소득층을 주 타깃으로 투자를 늘리고 경제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선순환 경제를 유도한 기존의 틀을 깬 예대마진 장사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 못할 계층’으로 치부하던 시대에서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27달러(저소득층이 자생하기 위한 금액)로 시작한 그라민 은행은 2011년 말 기준 지점 2567개와 1만 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서도 IBK 기업은행처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대출을 장려하며 국가 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려는 움직임은 끈임 없이 강조되고 있다.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 하나가 시장을 한 순간에 뒤바꿔놓았고 지금은 Microcredit가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일을 바꿀 오늘의 상상? 지금 이 세계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잘 정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위한 4가지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참여 : 탑-다운 방식이 아닌 모두가 참여해서 담아내는 상상과 실험. 2) 자립 : 참여의 전제는 자립이다. 모두가 자립하는 사회를 상상하고 실험. 3) 정부 : 시민들의 의지를 반영한 혁신의 시발점. 열린 실험실이 되기를 상상 4) 알고리즘 사회 : 일률적인 알고리즘에 고착된 사회. 미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생각 가장 나의 흥미를 끌면서도 한양브랜드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는 ‘참여’가 아닐까 싶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모여 정보와 지식을 나누고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수준 높은 지식을 형성하며 상상이 온전히 구현되는 사회의 모습이 되리라는 것이다. 지원서를 쓰면서도 유쾌한 참여형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로 했으니만큼, 대학생으로서 엄청난 혁명보다는 한양인이 함께 즐기며 응집될 수 있는 컨텐츠처럼 단순하면서도 작은 동요를 일으킬 무언가를 원한다. 책 속에서 담긴 사례 중 ‘Wikipedia’는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직접 수정하는 2001년 등장한 자유 백과사전이다. 소수의 천재들이 주도했던 지금까지의 지식 생산 구조를 집단지성 중심으로 바꾸게 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권위있는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즐겨 찾는 Wikipedia는 신뢰도 이전에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질적으로 발전하는 집단지성의 광장에 더 매료된 것이 아닐까? IT강국인 우리 나라에서는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등장한다. 선뜻 기억에 떠오르는 성공사례로는 ‘Job Planet’이라는 직장인들의 회사평가 SNS이다. 소셜 앱 스타트업인 ㈜브레인커머스는 단지 각자 취업을 원하는 혹은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한 ‘썰(이야기)’을 풀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놨을 뿐이지만, 현재 수만 명이 참여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냈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며 그 신뢰성은 더욱 높아지고 예비 직장인인 나 또한 페이스북 만큼이나 자주 접속하며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이렇듯 1+1=2가 아닌 10, 100 더 나아가 +∞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만한 공통의 관심사가 중요해 보인다. 한양브랜드서포터즈가 상상해볼 것들 또한 이런 위키피디아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무언가를 알 것이며, 이것을 한 곳에 모은다면 한양을 홍보할만한 괜찮은 웹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간단히 떠오른 아이디어로는 ‘한양Wiki’. 한양대학교에는 [ ]가 있다. 라는 주제를 던져놓고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다면, 각 분야의 쎌렙, 교내 혜택, 미남미녀, 독특한 수업 등 교내외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당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분야와 정치 성향을 뛰어넘는 지적 교류의 장인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발’의 사례에서 보듯, “세상을 바꾸는 빅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나온다.”라고 한다. 현재 일부분을 당장 고치는 게 아닌 근본적으로 바꿀 거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가장 이 페스티벌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한양브랜드서포터즈에서도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멋진 상상의 시너지를 만들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4-07 29

[오피니언][기고] 캠퍼스에서 ‘쉼표’를 찾다

캠퍼스 내의 학생들은 분주하다. 정해진 수업시간, 밀린 과제들, 빡빡한 팀플 일정 속에서 그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급박한 세상사에 치인 현대인들의 모습의 단편을 학생들에게서 엿 보는 것만 같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물을 수 도 있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고, 스스로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인생은 마라톤으로 종종 비유된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선수들이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는 이유는 페이스 조절을 하며 달리기 때문이다. 페이스 조절 없이 처음부터 전력질주 하는 선수가 있다면, 결승선을 지나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우리 대학생 역시, 페이스 조절 없이 너무 달려 나가기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준비했다. 쉴 새 없이 달려 나가고 있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하루에 잠깐의 휴식을 제공하고자, 교내의 매력적인 쉼터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바쁜 일과 중에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대학교 4년이라는 긴 마라톤을 보다 수월하게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 HIT 2층 휴게실 ▲ HIT 2층 휴게실내 풍경 ▲ HIT 2층 휴게실내 창가 풍경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HIT건물 2층에 위치해있는 휴식 공간이다. 2층의 중앙 로비의 양 날개에 위치해 있어 승강기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바로 보인다. 이곳에서 편히 쉬면되니 한 층 정도는 가뿐히 계단으로 올라가주자. 모든 의자들이 푹신한 재질이라 딱딱한 등받이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집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늑한 소파들이 구비 돼 있어 집에서 쉬는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푹 쉴 수 있다. 얼마나 편한지 소파에 누워 잠자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또 옆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마주보며 위치한 의자가 있다. 이리 봐도 저러 봐도 커플을 위한 공간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저리 가까운 거리에 친구끼리 마주보며 앉아 있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연인과 손잡고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면, 이곳에 흥미가 생길 것이다. 눈치 보지 말고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된다. 창 밖 풍경은 덤이다. 2. 사회과학대 1층 로비 ▲ 사회과학대학 1층 로비 두 번째로 사회과학대 1층 로비를 소개하려 한다. 일단 사회과학대는 학교 내의 다른 건물로 가기 위해선 통과해야하는 88계단이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즉, 접근성이 좋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그리고 인근에 한양플라자, 사랑방, 학생식당이 있어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커피 한잔 사들고 쉬러 오기에 적당하다. 아, 굳이 커피를 사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 자판기가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음료수를 먹을 수 있다. 전면부가 유리창으로 트여 있어서 빛이 잘 들어온다. 카페를 가 봐도 구석지고 그늘진 곳보단 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이 인기가 더 많다. 햇살을 맞으며, 밖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지켜보며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면 이곳, 사회과학대 1층으로 오면 된다. 3. 정책대학원과 인문대 사이 길목에 있는 벤치 ▲ 인문대 가는길의 벤치 마지막으로 앞의 두 곳과는 다르게 실외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과학대 4층에서 인문대로 가는 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여러 개의 벤치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중간에 하나의 흔들의자가 있다. 현재는 줄이 끊어져서 벤치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게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다. 벽에 둘러싸인 곳에서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자연이 주는 산소가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곳으로 오면 된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밑에서 잠깐의 휴식을 갖는다면 그간의 답답함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한양대학교에 매력적인 쉼터는 어디 있을까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있었다. 예상한 것 보다 학생들 쉴 수 있는 장소가 굉장히 많았다. 대부분의 학교 건물 앞에 벤치가 있었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길목에도 잠시 멈춰, 쉬어갈 곳은 여러 군데 있었다. 다시 말해서, 바삐 살아가는 우리가 쉬고 싶을 때 쉴 곳은 어디든지 있었고, 언제든지 가능했다. 우리가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외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 하고 있지 않은가? 옛말에 ‘바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삶이 매우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진다면, 눈앞의 결과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면, 이제는 한번 쯤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2014-07 25

[오피니언][기고] 캠퍼스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한양대 서울캠퍼스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한양대학교’ 하면 공대, Engine of Korea, 남자, 파란색, 사자.. 대부분이 떠올리는 한양대의 이미지는 남성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 이미지는 캠퍼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딱딱한 건물과 길, 그에 어울리지 않는 조경과의 부조화 등 젊음의 공간이자 대학문화의 꽃인 캠퍼스의 모습이 다소 삭막할 뿐만 아니라 단과대 건축물들은 공통성 없이 제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찾기 힘들다. 학교 캠퍼스가 단순히 대학을 위한 대학공간이 아니라 보다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캠퍼스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방법과 스토리텔링이 있는 즐거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일단 높은 지대의 지형과 이미 지어진 건물들 사이 사이로 시각적인 행복을 주면 어떨까? 교내의 조경을 양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나무와 꽃은 양적으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자연적인 부분을 넣으려고 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분위기의 캠퍼스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당이나 인문/자연대 앞 공터와 같이 공간이 확보되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에 올림픽 공원의 장미정원이나 순천만 정원의 사례를 본받아 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벽화’ 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림은 삭막한 도시나 마을에 색감을 주면서 생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지저분한 벽체나 등교 길 바닥 등에 재미있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림으로써 보는 즐거움과 걷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 곳곳에 있는 표지판과 지도를 아름답게 바꾸어 보는 것을 제안해본다. 고학년들조차도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과 건물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는데 재학생들이 학교의 길과 위치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현재의 틀에 박힌 표지판을 버리고 가독성이 강하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표지판과 지도를 제대로 구비할 필요성을 느낀다. 두 번째 방안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한양의 과거와 현재를 앞으로 이어질 미래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금도 88계단의 우측계단을 이용하면 F학점을 받게 된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있는데, 이처럼 학생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만으로 평범한 길에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학교의 심볼을 동상이나 표지판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조형물과 공간으로 표현하여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닿을 수 있게 해주어도 좋을 것이고 제주의 올레길처럼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공부하고, 걷고, 먹고, 이야기하고 추억하는 한양의 공간들이 심미적, 정서적 만족을 통해 많은 한양인들의 즐겁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될 날을 꿈꾸어 본다.

2014-07 25

[오피니언][기고] 캠퍼스커플에 관한 어느 솔로의 고찰

CC (Campus Couple ; 캠퍼스 커플)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나? 대학생활의 낭만 그것은 바로 캠퍼스 커플 쉽게 말해 CC이다. 사실 본인도 하고 싶기도 하고 그들의 연애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실제로 올해의 목표라며 세운 목표들 (무모한 목표들이 많았다) 중 CC되기만 못 이루고 있다. 그래서 CC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결혼까지 이루어 내신 교수님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헤어지고 난 커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나름대로 연애의 시작, 발전기, 끝 으로 정리해 보았다. 1. 연애의 시작 CC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그 상대가 항상 가까이에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게 같은 과의 상대일 수도 같은 동아리 내의 상대일 수도 있다. 소개팅, 미팅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는 짧은 만남기간을 통해 어떠한 임팩트가 있어서 이를 통한 매력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나, 반대로 CC의 경우는 오랫동안 그 사람을 보고 은근한 매력이나 친근함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 연애의 도중 CC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동기는 의도치 않게 이성친구가 딴 짓을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지가 감시가 잘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고 답해 주었다. 또한 밖에 나가서 카페에 있느라 돈을 쓰지 않고 교내에서 이쁜 공원이나 라운지 같은 곳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어서 데이트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점도 있다. 일단 일부 이간질 하는 친구가 있을 경우에는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만약 해어지게 되었을 경우에는 상대방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3. 끝 혹은 최종적 성공? CC의 가장 나쁜 점은 무엇일까? 만약 끝이 안 좋게 끝나게 되면, 상대를 보고 싶지 않더라도 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헤어지게 되는 경우를 이야기 들어보면, 여러가지 유형이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남자들의 군입대 이다. 흔히 군대에서 쓰는 용어로 일말상초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일병 말이나 상병초에 대부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생긴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CC의 경우 친구들이 겹치는 경우가 꽤 많은데 , 이 경우에 친구랑 싸우게 된 것이 커플간의 싸움으로 번져서 이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여자 친구가 먼저 사회에 진출하면서 상대에 대한 눈이 높아져서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연애 후 결혼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는 매우 좋을 수 있다. 실제로 본인의 부모님들은 CC였는데, 덕분에 추억들도 많이 겹치고, 이야기할 거리도 많아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4. 그렇다면 어떻게 그린라이트로 나아갈 것인가? 마음에 드는 동기가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 또는 그녀의 마음을 얻어 볼 것인가? 물론 본인도 CC에 성공해본 적은 없지만, 유명 결혼컨설턴트 중에는 미혼도 있지 않은가? 감히 솔로들을 위한 제언을 해본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은가? 외모도 물론 어느정도는 꾸며야 겠지만, 서서히 그 사람과 가까워 지라. 세세한 것 부터 챙겨주고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자연스레 사랑을 얻을 것이니....

2014-07 25

[오피니언][기고] 캠퍼스 쓰레기 문제를 대하는 한양인의 자세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서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가장 근본적인 화두로 제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현대인들이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여러 필수 조건을 하나씩 줄여나가며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출연진들의 생활 패턴 혹은 의식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나트륨 없이 살기’, ‘책 읽으며 살기’ 등 매 방송에서 새로운 테마를 제시할 때마다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고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캠페인화(化)되고 패러디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기억되는 테마는 ‘쓰레기 없이 살기’ 특집이었다. 당시 한 명의 시청자로써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배출하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머물렀다.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위 ‘쓰레기’라고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의 종류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무분별하게 너무도 많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무조건적으로 버린다는 것이다. 출연진들이 해당 특집을 촬영해나가면서 제작진들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조건’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조건’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 가차 없이 제재를 가한다. 이것마저 쓰레기냐며 출연진들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고 그 장면은 웃음으로 승화된다. 하지만 그들이 내던지는 당황 섞인 질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 질문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문제의식에 이르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문명의 이기(利器)는 문자 그 자체로 ‘이롭게 쓰이기 위한 도구’다. 이기를 만들어낸 뒤에는 마모되고 부서지는 것들, 즉 쓸모없는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들의 운명은 ‘버려지는 것’이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이른바 발달하는 단계가 계속해서 급진화하면서 문명의 이기의 종류도, 개체수도 굉장히 많아졌다. 그만큼 쓸모없는 것들의 존재들도 다양해졌다. 문명의 이기는 분명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금세 버려져야 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정말 필요에 의해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중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음’이라는 운명에 처해져야 하는 것인지, 또한 우리는 진짜로 그런 구분과 분별을 제대로 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지 등 다양한 생각들이 버스 정류장처럼 늘어서 있다. 즉 우리 현대사회에 있어 ‘쓰레기’가 갖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포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들의 일상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나,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에게나 이른 아침의 길거리는 깨끗함 혹은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좌우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공기가 맑고 길거리가 깨끗하면 괜스레 기분이 잠깐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누가 밤새 치우고 지나갔을 것을 생각하기보다 내 기분이 좋아짐에 우선 만족한다. 행여 지나가다 전봇대나 미처 치우지 못하고 넘쳐버린 쓰레기통이나 토사물 등을 보게 되면 아침부터 불결한 것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상을 쓰고는 한다. 마치 누군가는 내가 보지 않은 사이에 저것들을 치워야 했다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미처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조건이라면 공간적 측면만 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를 배경으로 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수업을 듣느라 지친 내 몸을 위해서 에너지 드링크를 한 잔 마신다. 잠시 쉬는 시간에 몇몇 학우들은 담배를 태우러 무리지어 나간다. 꼭 무리를 지어 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가보면 어느새 무리가 형성돼 있다. 점심을 사먹고 햇살이 좋아 노천카페에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커피는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문한다. 그나마도 양이 너무 많으면 마시다 만 상태로 버린다. ‘분리수거’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일회용 컵들이 뒤섞여 어디가 플라스틱이고 일반쓰레기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그냥 귀퉁이에 슬쩍 올려둔다. 그리고는 하루 학교생활을 반복한다. 이처럼 바쁘게 다니는 와중에 마주치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우리는 잘 보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내다버린 쓸모없는 것들을 치워주는 사람들이다. 아침에는 학생들 공부하기 좋으라고 거리를 깨끗하게 닦아 놓는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상태가 좋지도 않은 파란 옷을 입은 자기 몸보다 무겁고 많은 쓰레기들을 학생들의 눈에 되도록 띠지 않게 치워준다.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시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누구나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주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기분 좋은 상태를 맞이하고 싶어 하면서 한 번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봐준 적이 없다. 나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서 누군가는 그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위해서 치워준다.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자 그 사회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디딜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학교’에서 쓰레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은 단순히 쓰레기의 양과 무분별한 투척(投擲)의 문제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문제로까지 인식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깨끗한 환경을 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우리가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버리는 행위는 쓸모없는 것들 속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없는 곳이 쾌적한 공간이고,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있어야 나에게 해가 되지 않으며, 내가 손 뻗는 곳에는 쓸모 있는 것들, 즉 이기가 있어주었으면 한다. 그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우리 한양대학교에만 수천 명이고 수만 명이다. 그들 중에 이와 같은 욕구가 과연 실현가능 한 것인지, 혹은 감히 방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깨끗한 환경에 대한 욕구는 기본적인 욕구이자 본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권리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요청되는 공간으로써의 대학 내부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권리와 욕구는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깨끗한 곳에 살고 있지 않다. 너무도 많은 쓰레기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이른바 ‘쓰레기 문제’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참 많이 그렸고 써봤던 문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를 줄입시다.”, “버리지 맙시다.” 등.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자. 그와 같은 표지판이나 캠페인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나? 딱딱한 글과 단순한 색상의 그림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이웃들 간에 CCTV를 설치해가며 막겠다는 제도의 시행은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이 문제 해결에 단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교 내에서도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그 양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다른 대안들은 과연 없느냐는 것이다. 사회에서 우리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딱딱한 제도보다 조금 더 젊고 순수해보일 수 있는 대안들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 문제는 이성적인 제도만을 강요하고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서 착안한 생각인데, ‘더러운 쓰레기통 안에 꽃이 피어있다면 어떨까?’ 한 송이에 1000원 정도 하는 장미를 사서 컵에 꽂은 채로 쓰레기통에 둔다면 아름다운 꽃을 지키는 화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꽉 막혀있는 대학교 내의 모든 쓰레기통들을 속이 보이는 투명한 통으로 교체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쓰레기는 과연 보이지 않아야 하는가?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있으면 그게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눈에 밟히면 사람들이 더 보기 싫어서라도 줄일 수 있다. 지금 이 생각은 갑자기 멀리 나간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당장에 그 양이 줄어들기를 바랄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있는 생각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학 내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은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이미 시행 중이며 앞으로 확대되길 기대하는 방안으로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에 텀블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미 많은 학우들이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학교 차원에서 학교 마크가 박힌 텀블러를 학생들에게 지원해주는 방안 등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대안들 외에도 어떤 제도적인 대안과 대책은 계속해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만들어 놓고 쌓아온 축적물들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갈구하듯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을 줄여보자는 캠페인과 운동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자 나아가 나와 당신, 그리고 그동안 이른 아침부터 자기의 권리는 버리고 포기해가면서 우리의 권리를 더 생각해준 많은 분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도 이어지는 광범위한 변화를 위한 캠페인이자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