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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 08

[오피니언]다양한 주거 형식의 결합 추구와 최소 볼륨의 활용

과거 산업화 시대 한국 주거 문제의 모범답안은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며 편리할 뿐 아니라,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파트는 국가 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부동산 거품, 가계 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제적 효용성이 약해지자 획일성, 익명성, 층간소음, 콘크리트 속의 인공적 삶 등등 아파트가 지닌 태생적 단점들이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에디터 박선영 | 글 남성택 교수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건설 회사가 주도하던 아파트 열풍이 시들해지자, 수요자 중심의 개인 주택 건설이 뜻밖의 호기를 맞이했다. 서판교에 조성된 대규모 주택 단지가 이를 증명한다. 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개인 주택이 중산층의 관심을 끌게 된 배경에는 2011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땅콩집’의 역할이 컸다. 좁고 작은 두 채의 주택을 이어 붙인 땅콩집은 한 필지를 두 가구가 양분해 토지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였고, 단순한 볼륨과 평면을 반복하는 것으로 건설 비용을 경감시키는 전략을 선보였다. ‘토지 구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 원’이 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마당 있는 내 집’에 대한 현실화를 자극했다. 개개의 개인 주택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거대 아파트 단지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개인 주택의 활성화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주거 유형의 다양성이다. 이는 과거 아파트 건설에 치중했던 우리의 주거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 주택 열풍의 중심에 있는 땅콩집은 수평적 반복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만큼, 다양성 측면에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일찍이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주택은 당신의 인격을 거울처럼 비출 것이다. 따라서 당신만이 소유할 주택을 만들어야 한다.(1903)” 만일 공간이 삶을 제대로 담는다면, 저절로 그 삶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집은 집주인의 인품을 표명한다. 따라서 자신의 주택을 짓는 것은 스스로를 깊이 돌이켜보며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주택이 각 개인의 인격과 삶의 방식의 차이를 섬세히 반영할 때, 주거의 다양성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1923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완공시킨 라 로슈 잔네레 주택(Villa La Roche-Jeanneret)은 땅콩집과 흡사한 ‘2가구 1주택’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젊은 은행가이자 부르주아 예술 수집가인 라울 라 로슈(Raul La Roche)의 독신 주거와 건축가의 친형이자 당시 무명 음악가였던 알베르 잔네레(Albert Jeanneret)의 신혼집이 될 일반 가정용 주거가 이웃해 계획되었다. 땅콩집이 동일한 주택들을 색깔로 구분한 반면, 코르뷔지에는 두 주택을 하나의 작품인 양 흰색 외장의 동일한 색깔로 통합했다. 하지만 라 로슈 잔네레 주택에서 두 주거 간 형태는 명확한 차이를 보여준다. 잔네레 부부의 주택이 합리적이고 기능적이며 경제적 평면을 지닌 단순 상자 형태라면, 라 로슈 주택은 예술 갤러리 등 특별한 프로그램 공간을 추가하며 곡선의 자유로운 형태를 선보인다. 각기 독립적으로 형성된 두 주택은 마치 샴 쌍둥이인 것처럼 병합된 것이다. 위 역사적 사례가 잘 보여주는 주거의 다양성은, 오늘날 강조되는 다른 실질적 요건들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고밀도 도심의 상황과 비싼 땅값을 고려하면 점유하는 대지 면적이 최소화되는 건축 계획이 최선일 수 있고, 건물의 지속 가능성의 가치 아래 건물 시공비와 유지비를 고려한다면 건물 외형의 겉넓이가 최소화될 수 있는 형태의 건축물이 당연히 유리하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 우리가 더욱 추구해야 할 주거 건축은 각기 다양한 주거 형식의 결합은 추구하되, 그 결합을 작고 좁으며 단순한 볼륨 속에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97년 완공된 MVRDV의 더블하우스가 좋은 예시다. 두 가구가 하나의 상자 형태로 결합한 더블하우스의 설계 과정은 좁은 영토 속에서의 총성 없는 내전, 끝없는 협상 상황과 흡사하다. 단순한 형태의 건물 내부에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공간은 쟁취하고, 불필요한 공간은 포기해나 간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각자에 맞는 공간 방식을 개척해나갈 때 형성된 건축은 마치 3차원의 퍼즐과 같다. 최소 볼륨 속에서 최대의 미로가 발견된다.

2015-05 04

[오피니언][에리카 공간비평] 1. 소리와 에리카

에리카 캠퍼스에는 빈 공간도 이름이 있다. 복지관 앞의 광장은 '민주광장'이고 도서관 옆 공터는 과거에 번개가 쳐서 비닐하우스가 불탔다고 해 '번개공원'이다. 공간은 이렇게 이름과 함께 그럴싸한 유래도 있다. 학교의 정문에 기울어진 건물 두 개를 비롯한 공간은 ‘아고라 광장’이라고 부른다. 이런 공간들보다 학생이 더 많이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이름은 잘 모르는 공간이 있다. 학교 정문, 횡단보도를 건너면 나오는 천막과 트릭아트의 공간, 바로 '안단테 광장'이다. 안단테 광장은 안산이 안산 대학동 문화거리를 조성할 때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공간이다. 대학동이라는 공간을 학교 앞 GS25시 맞은편의 석판으로 설정해 놓고 이곳에 천막을 치고 무대를 설치한 뒤 트릭아트를 그렸다. 이 공간에 갖추어놓은 것은 무척이나 많다. 배전반부터 각종 음악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것이다. 안산시는 이 공간을 '안산의 홍대 버스킹 거리'처럼 만들려고 했었다. 이러한 기치에서 공간을 좀 더 활용해보고자 욕심냈던 프로젝트가 현재 4회까지 진행되었던 '안단테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4회 안단테 프로젝트 준비 사진이고, 두 번째 사진은 2013년도에 있었던 1회 안단테 프로젝트의 모습이다.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자유와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안단테 광장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사실 버스킹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갖춰져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였고 이러한 문화를 '공간'적으로 갖춰진다고 이러한 변화가 바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계속되는 안단테 프로젝트의 행사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버스킹 문화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지점이다. 지금 이 공간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최근 에리카 대신 전해드립니다에서는 이 공간에서 이어지는 주거 거리까지, 고성과 고음, 주정 섞인 고함들에 대한 성토성 글이 몇 차례 올라왔다. ‘기존에 주거적인 공간으로 술집의 분위기가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술집 공간이 생기면서 내 주거권이 침해받아야 하는가’ 하는 논란. 그렇다. 지금 이곳은 소음으로 인한 문제적 공간이다. 안산시는 이러한 소음의 공간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곳이 진정 버스킹의 공간이 된다면 음악적인 것을 소음이라고 할 수 없을까? '음악'과 학교 앞 거리를 왜 연결하려고 했을까? 이것은 대학가에서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이 환상을 실현시켜주는 '호수공원'의 존재로 이어진다. 에리카는 타 학교와는 달리 호수공원이 두 곳 존재한다. 습지생태공원은 그 자체로 습지가 있는 자연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는 식의 공간이다. 수많은 야생 조류들이 그곳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가며 여름에는 연꽃이 만개한다. 그에 반해 호수공원은 인공적인 산물이다. 무대가 있고 건축물이 있고 분수가 쏘아진다.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는 연꽃의 모습과 쏘아지는 분수의 모습은 일견 비슷하고 대조적이다. 중앙의 호수공원에서는 날씨가 좋아지면 나와서 바람을 즐기고 햇살을 맞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술과 주전부리를 가져와서 분위기를 즐기는 학생도 많다. 이 같은 모습은 에리카에서는 일상이지만 다른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독특한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다. 버스킹을 할 수 있고 바깥에서 잔디밭에 앉아 모여앉아서 술을 한 잔 걸칠 수 있는 곳. 그러한 공간적인 이미지는 과거 ‘대학가의 낭만’이라고 부르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학교 건물들의 배치는 이 중앙의 복지관과 호수공원을 둘러싸고 있다. 양귀비 꽃밭이나 습지생태공원, 본관 뒤편의 잔디밭이나 민주광장 등 다른 조경적인 공간이 수업적인 동선 바깥에 위치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호수공원의 지리적 위치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버스킹이나 이렇게 머릿속에서 그리기만 해놓은 대학가의 낭만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건 의미가 깊다. 취업과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표상이자 대학가의 삶 자체는 결국 일상이다. 도서관과, 총학생회와, 학생식당과, 공학대학의 건물과, 체대의 체육관과, 동아리건물 사이에 있는 그 기묘한 배치는 일상과 낭만을 합치시킨다. 이곳에서 우리는 노래를 소비하고 음악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동시에 우리가 그려왔던 대학교 생활과 우리의 현실적 대학교 생활을 병렬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상에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여유와 음악은 에리카 전체의 문화로 진화하지는 못할지언정 ‘쉬는 시간’ 동안의 여유는 우리가 그렸던 대학교 시절의 여유, 그 머릿속에서 가득했던 낭만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대학교의 낭만’ 같은 추상적 이미지는 하나의 행위나 대상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통기타를 들고 언제나 즐겁게 즐기던 모습, 캠퍼스 커플로 학교를 거닐던 모습, 잔디밭에 누워서 낮잠 자는 모습, 그 여유와 문화적 공간이 따라온다. 호수공원이나 민주광장에서 이렇게 앰프를 들고 버스킹하는 사람들, 또는 어설픈 실력이나마 기타 하나를 들고 먹을 걸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런 문화적 속성 탓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분위기와 열망을 학교 바깥까지 끌고 나와서 대학동이라는 문화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아닐까. 상권과 학생, 그리고 대학동의 주민은 공간적으로 공유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삶의 스타일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한 분리를 이어주기 위해 교내의 ‘학생’들의 공간을 ‘주거민’들이 있는 곳까지 끌고 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었던 것이고. 그러면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다른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학동은 주민과 학생과 상권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저런 음악적 확대는 학생과 주민의 연결점을 찾는 행동에 더 가깝다. 상권까지 연결된 행동은 없을까? 다음 2번 칼럼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학교 앞에서 이러한 문화적 움직임을 계속 시도하는 술집 <감성포차 허구헌날> 에 대한 것이다. [1. 소리와 에리카]에리카 캠퍼스에는 빈 공간도 이름이 있다. 복지관 앞의 광장은 '민주광장'이고 도서관 옆 공터는 과거에 번개가 쳐서 비닐하우스가 불탔다고 해 '번개공원'이다. 공간은 이렇게 이름과 함께 그럴... Posted by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on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2015-05 04

[오피니언][에리카 공간비평] 0. 서문 ; 새로운 포토 칼럼의 시작

본 글은 ERICA캠퍼스 관련 사진을 촬영 및 게시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의 관리자가 캠퍼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연재하고 있는 글을 옮긴 것입니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만의 특화된 글로서 좋은 취지가 잘 전달되기 바라며, 글의 저작권 등 모든 권한은 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편집자 주) *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ericaallphoto <서문> 공간은 공간 자체의 모습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왜 사용하는가, 이 요소들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각종 대학가 문화거리에서 공간은 그 거리를 소비하는 학생들과, 그 거리에 존재하는 문화들과, 그리고 그 거리에 '왜' 사람들이 오는가 하는 추동요소 등에 의해 이름붙여지고 규정지어진다. 공간의 정체성은 그렇게 시작된다.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 앞 대학가도 그 나름의 이름이 있다. 대학동 문화거리는 필연적으로 사용하는 대학생들에 의해 정체성을 빚지고 있으며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학기마다, 분기마다, 매 달마다, 그리고 매주, 매일, 매시간마다 변화한다. 자유와 예술의 상징이 된 홍대거리나 문화예술의 공연성을 가진 대학로와 같이 현재 안산 대학동 문화거리가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가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정체성은 무엇일까. 필자는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를 통해 에리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그것을 소개하여 하나의 문화적인 행위로 발전되기를 바랐다. 2000개가 넘는 좋아요와, 작년 한 해 에리카 캠퍼스 내의 여러가지 장소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지 정도나 인식 수준이 증가한 것으로 그 시작은 분명히 짚은 것 같다. 이제는 이 지평을 조금 더 넓혀보고자 한다. <에리카 공간비평>이라는 이름의 이 포토 칼럼은 현재 에리카 캠퍼스 내외에서 '한양대 에리카'라는 이름을 단 많은 것들이 어떤 의미를 획득하고 외부로 보여지고 있는가. 내부에서 소비되는가를 고민할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과 문화는 우리를 외부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안단테 광장이 보여주는 버스킹 무대의 가능성과 호수공원에서 오후부터 밤까지 이루어지는 음식과 주류섭취 문화가 보여주는 현대의 낭만성, 창업과 문화 공간, 대화와 소통의 담론장 카페거리와 학교 앞 라이브 재즈 주점의 가능성과 공존성을 보여주는 술집 허구헌날, 상권과 학생의 문화공존을 위한 스폰의 현 실태까지.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학교 내외의 여러 상황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보다 에리카라는 공간에 대해서 필자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 각각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에리카'라는 곳의 특색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향후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는 에리카 공간비평의 연재를 통해 사진개재를 재개합니다. 사진과 함께 제가 바라보고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에리카 공간들에 대한 짧지 않은 단상들이 같이 연재될 듯합니다. 문이과를 넘어 단순히 지식자랑이나 어려운 용어들에 대한 나열이 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글이 어렵고, 독단적인 시선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지적해 주실 경우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에리카 공간비평>에서 다루었으면 좋은 특정한 가게, 근처의 공원, 에리카라는 학교 내에서 독특하게 자리잡은 문화들이 있다면 원글에 댓글 또는 메시지를 통해 언제든지 제보해주세요. 'ERICA 다 찍어드립니다'는 그렇게 공간적인 주제로 변화하여 '다 찍어드리기'위해 움직일 예정입니다. 연재는 매주 1~2회 이루어집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원글 보기 [에리카 공간비평 서문]공간은 공간 자체의 모습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왜 사용하는가, 이 요소들에 의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각종 대학가 문화거리에서 공간은 그 거리를 소비하는 학생들과, 그... Posted by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on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에리카공간비평

2014-11 21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3. 논문이란...

논문을 지도하다보면 가끔 학생들이 '논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무리 설명해도 논문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선입견, 즉, 석사나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골치아픈 '절차'라는 소극적인 관념이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형식적으로는 그 인식이 틀리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을까. 때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 마디로 논문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다. 자기 자신의 주장이 없는 논문은 논문이 아니다. 공부하는 것과 논문 쓰는 것은 동일한 행위가 아니다. 공부한 지식을 정리한다고 논문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세상에 대한 주장이 없으면 논문을 쓸 수 없다. 세상에 대해 주장을 하려면 먼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주장은 곧 해답인데, 어떻게 문제 없이 해답이 있겠는가. 논문을 작성하기 전에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어쩌다 대학이 '논문' 생산 공장처럼 되어가니 문제가 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논문이 양산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치있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한다는 논문 작성의 본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학문에서 문제의식이란 강한 지적 호기심이다. 사회과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꼭 세상에 대한 실천적 측면에서의 문제의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쟁점과는 먼 순전히 학술적이거나 과학적인 문제의식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연구방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찾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문제의식이 충만된 연구자에게는 항상 다음과 같은 의문이 찾아오곤 한다: 저 사회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 정책이 도입된다면 예견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저 사회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까? 그 현상을 꼭 그렇게 해석해야 하나? 도대체 어떤 학자의 주장이 맞는거야? 왜 선배 학자들은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 학자의 연구 결과가 정말 맞을까? 이 연구에 적용된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미국사회에서 검증된 그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도 통할까? 새로 개발된 방법을 적용해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등등. 문제가 확실히 잡히면 연구의 절반은 진행된 셈이다. 그 다음에는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깊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문헌 연구가 필요하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문제와 씨름했던 선배 학자들이나 다른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정리할 수 있고, 다른 연구에서 제시된 주장과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나 사실을 제시한다. 주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주장만으로는 좋은 논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논리나 자료가 제시되어야 한다. 요즘은 데이터를 먼저보고 거꾸로 문제와 주장을 꾸미는 신묘한 학자들도 적지 않지만 그러한 묘법이 문제의식의 부재를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사실 데이터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세상의 비밀을 살짝 보여준다. 문제의식이 없는 연구 로봇들에게 '빅데이터'는 빈곤한 연구를 치장하는 화려한 눈속임일 뿐이다. 요즘 거짓 선지자들의 데이터와 현란한 그림에 유혹된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테크닉 배우는 데만 열중한다. 사회과학이 컴퓨터 앞에서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끝으로 겸허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돌아보고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보탠 것이 무엇이고 어떤 한계를 안고 있는지를 고백한다. 연구자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보면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백년에 한 번쯤은 논문 한편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겠지만 나는 전혀 그럴 능력이 없고 그런 학자를 꿈에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논문이다. 이제 답답한 가슴이 좀 풀린다. 윤영민님의 글

2014-11 17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2. 대학과 취업

신입생이 들어오면 개인 면담을 하곤 합니다. 대개 꿈을 물어보지요. 꿈이 없는 학생들이 적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 무언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대학을 졸업할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아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기는 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낸 학부모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금년에는 학교당국이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데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습니다. 단과대 학장이 책임지고 취업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학장은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취업 시키도록 학과장들을 계속 독려합니다. 과거 언젠가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졸업장만 받으면 제법 좋은 곳에 취직되었지요. 대기업들은 여유있게 신입사원을 뽑아서 직무 훈련을 시켰고, 취업은 학생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으며 실제 해결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그런 전설적인 황금 시대가 아닙니다. 웬만한 직장에는 몇 십 혹은 몇 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졸업생을 내보면서 과거나 현재나 변치 않는 흐름을 봅니다. 기업이나 기관은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으며, 자신을 잘 성장시킨 학생들은 대부분 좋은 일자리를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품성과 능력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경쟁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품성이란 것이 별거 아닙니다. 함께 있으면 기분좋은 사람, 그리고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 이익만 챙기고 요령에만 능한 빠꿈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귀하다고 합니다. 능력은 직무능력을 말하는데 사실 인문사회계열에 있어 직무능력이란 것이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다만 문제해결이나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창의력, 정보력, 리더십, 멤버십이 기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각 도메인이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특기를 갖추면 될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소속한 학과는 소셜미디어를 다루는 능력 그리고 데이터분석 능력을 중점적으로 키워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품성과 직무능력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대학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각 수업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과제를 하고, 조별 학습에서는 프리라이딩하지 말며,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명사 특강이나 취업 특강에도 참석해서 세상의 흐름도 읽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틈나는대로 사회봉사 활동에도 나서야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일기도 쓰고, 일기 쓰기 싫으면 페이스북에라도 포스팅을 열심히 하면서 글쓰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정말로요?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생활에 빈틈이 없는지 돌아보세요. 만약 그래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면 제게 오세요.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학생이라면 제가 장학금을 찾아주겠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와 대학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저는 미취업 졸업생들이 많은데도 구인 기업에 기꺼이 추천해 줄 학생을 찾기 어려운 모순을 겪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가는데, 학생들이 세상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때문은 아닐까요? 이 포스팅은 대학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쓰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여건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자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윤영민님의 글

2014-11 17

[오피니언][윤영민 교수의 소셜 칼럼] 1. 창의성을 높이는 손쉬운 방법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바뀌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창의성(creativity)'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의 일취월장에 다급해진 우리 기업들은 직원들을 쉴새 없이 볶아대고 대학에게 창의적인 인재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야단입니다. 정부는 아예 '창조경제'를 정책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는 기업들은 많은 외국인 전문가와 기술자를 모셔오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만 토끼몰이식으로 과연 원하는 창의성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창의성에 관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두루뭉술하게 창의성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좀 따져보면 거기에는 구상(ideation)과 혁신(innovation)이라는 두 단계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기업들은 창의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구상의 실패 때문인지, 혁신의 실패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구상과 혁신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현 요건이 좀 다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구상은 자유로운 정신에 달려있고, 혁신은 모반(rebellion)을 기꺼이 허용하는 조직문화에 달려있습니다. 오늘은 창의성의 구상 측면에 대해서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로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 아이들,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문제 풀이보다는 의문 제기에 많은 보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교사는 답을 잘 하는 학생보다 질문을 잘 하는 학생을 더 예뻐해주고 그에게 더 좋은 성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동안 거꾸로 해왔습니다. 답을 찾는 것보다 효과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질문자를 억누르고 답변자를 칭찬했습니다. "진도 나가야 한다"는 강박이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매일매일 죽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대학에 온 학생들은 질문을 하라고 아무리 부추겨도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창의성은 반역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질문이 너무 많아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수업을 꿈꿉니다. 그 때 우리는 창의적 젊은이들로 가득 찬 시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윤영민님의 글

2014-08 13

[오피니언][기고] 대학이 등록금 카드 결제를 도입하지 않는 2가지 이유 (1)

최근 대학의 등록금 카드납부 불가에 대한 언론의 뭇매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개강이 다가오면 주기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예전 기사랑 달라진 내용은 크게 없다. 이는 언론 입장에서 비싼 등록금 받아 가정 경제를 위협(?)하는 대학을 소위 ‘때리기 좋게’ 다룰 수 있는 이슈라는 반증이다. 물론 등록금 납부도 엄연히 경제활동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적용하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이며,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학의 운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자극적인 이슈로 몰아가면서 일방적으로 '나쁜 대학'의 오명을 씌우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를 살펴보면 얼마나 치우친 보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일부 매체는 다음과 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마치 대학이 사회적인 정서에 반하거나 매정한 착취집단 쯤으로 보이도록 왜곡하고 있다. 단순히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률을 높여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론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 이유 알고보니…‘황당하네’- 스타투데이 대학등록금 '3곳중 2곳' 신용카드 결제 거부.. 학부모 '등골' - 뉴스에듀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 피해는 오로지 학생 몫 - 데일리한국 등록금 카드결제 거부…"학생 사정보다 수수료가 중요해?" - 서울경제 특히 <서울경제>의 사설은 다음과 같이 대학이 '배째라'식 특권의식임을 가지고 있고, 납부자 선택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용) 이런 마당에 대학의 카드 결제 거부는 '배 째라'식 특권의식일 뿐이다. 물론 등록금이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는 여론이 있는 만큼 정책보완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중점은 납부자 선택권 보호에 둬야 마땅하다. - 서울경제 사설 일부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학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대학의 입장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따져보는 언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방적이기만 하다. 특히 한양대는 카드결제 자체가 불가한 대표 대학으로 지적받으면서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럴까? 대학이 카드 결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는 과도한 카드 수수료 때문이다. 많은 언론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대학이 카드 수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비용이 추가 발생하는데, 그걸 당연한 지출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는가. 결국 본질은 카드 수수료에 해당하는 재원을 어디서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학교에 여유 자금이 있고,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다면야 학생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 지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예산 상황도 안 되거니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는 이 재원을 마련할 방법도 요원해 보인다. 결국 카드사로 넘어가게 되는 수억 원의 돈은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낸 교비가 될 것이다. 이미 카드 납부를 도입한 대학은 어떤 재원으로 충당하고 있을까. 교육 지원을 위해 사용해야할 돈을 카드사에게 지급한다면 그건 또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일종의 낭비는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더욱이 이 카드 수수료 지원은 카드결제로 납부하는 학생과 현금으로 납부하는 학생 사이에 불평등을 발생 시키는 요소가 된다. 일종의 역차별이다. 동네 미장원에서도 카드결제 대신 현금결제를 하면 카드 수수료만큼 깎아주기도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맞는다면 현금으로 등록금을 낸 학생에겐 단 몇 만원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재의 카드수수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편의 제공을 위한, 말 그대로 ‘서비스’에 이렇게 큰 금액을 지불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정작 학생들은 본인이 낸 등록금의 일부가 본인의 납부 방법과 상관없이 카드사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카드납부보다 더 나은 납부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의 경우 3회에 걸쳐 한 학기의 등록금을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다. 이번 2학기에는 개강 전인 8월 20일에서 27일 사이에 '분할납부 신청'을 하면 9월부터 3개월간 나눠서 납부 할 수가 있다. 여기에는 별도의 수수료나 이자가 붙지 않는다. 카드 3개월 할부와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더 이로운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저금리 학자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대학 등록금 납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제도가 엄연히 있음에도 카드 납부를 유도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만약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면 카드 납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차별화된 대출 제도가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카드는 만능이 아니다. 단순히 납부의 편리함을 내세우면서, 카드사의 이익 증대와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더욱이 카드로 우선 납부를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 목돈이 없는 저소득 가정이라고 본다면, 그들에게 할부 수수료의 부담이나 연체에 따른 불안을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설령 카드 결제를 도입했더라도, 카드사마다 수수료가 달라 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떠안게 된 대학도 있다하니 카드 결제 도입은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일 수 있다. 더불어 등록금 카드 납부는 소득 공제와도 전혀 무관하니 카드 결제의 필요성은 그 만큼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언론에서 지적했듯 현재 교육당국은 금융당국에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 적격 비용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하고, 금융당국은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공공성이 높은 곳이 많다’며 검토 계획이 없음을 밝힌 상황이다. 이런 떠넘기기 상황에서 다른 대안 없이 대학에게 카드 결제를 허하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과연 누구에게 이득인지 생각해 봐야한다. 한 대학마다 한해 수십억 원씩을 카드사로 비용을 지급하고 학생들의 ‘납부자 선택권과 편의성’를 강화하는 것과, 그 비용만큼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교육 지원을 강화하는 것 중 선택해야한다면 대학은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걸까. 물론 대학도 막연히 수수료 문제만을 가지고 카드결제 요구를 무시하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다만 무조건 적인 도입보다는 실제 카드 결제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요조사를 통해 ‘왜 카드로 납부하려 하는지’, ‘어떤 부분이 등록금 납부의 불편함인지’를 세세히 따지고 결정한다면 실질적인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에 떠밀려 대안 없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실제 등록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는 부서에는 이 즈음하여 카드 납부 관련 문의 전화가 적잖이 걸려온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민원과 비교해 월등히 많거나 카드 납부 불가에 항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분할 납부나 학자금 대출 제도를 안내하면 상황을 이해하고 당사자에게 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 지금 언론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학의 ‘카드 결제 미사용 실태’ 고발이 아니라 등록금 납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 제도’를 놓치지 않도록 챙겨주는 ‘알뜰함’일 것이다.

2014-07 29

[오피니언][소셜픽션-소감문] 한양대에는 □□□가 있다?!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란 사회에 대해 제약 조건 없이 상상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기획 방법이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염원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 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사회적 상상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한 예측이 아닌,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의지가 담긴 염원을 해야 한다. 비전과 목표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 것에서 일이 방향을 잃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효과적인 기획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재무설계에서도 소셜픽션이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와 비슷한 개념이 적용된다. ‘55세에 은퇴한 이후 연금으로 500만원(현재가치)이상을 받으며 평생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어쩌면 과해 보일 수 있지만 상상을 통해 확고한 방향을 정립한다면, 일반 월급쟁이라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이다. 누구에게는 코웃음 나오는 픽션일수도 있지만 훗날 이 목표를 위해 꾸준히 수 십 년간 모아나간 사람에게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소셜픽션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나열해 보자. 첫 번째로 본질을 정하고 그 것이 해소된 상태의 미래를 그린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상상이라면 즐기고 사색하며 일상 생활이 큰 노력 없이 영위되는 삶이 그 미래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그 미래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찾아본다.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겠지! 세 번째로 이 자본의 축적을 위한 과정에 필요한 것(지혜와 유쾌함)과 방법(철학, 문화, 예술)을 정립하고 브레인 스토밍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물적 생산 인프라를 더 많이 구축해야 한다는 해답이 나온다. 지혜와 유쾌함을 위해서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케인즈의 역방향 기획이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 광고제작 전문업체인 빅앤트 인터네셔널 박서원 대표의 강연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상품의 본질부터 찾아봐라.’. 하얀 바나나우유를 광고하기 위해서 타 제품과 차별화되는 ‘흰색’을 강조하고, 바리스타 커피를 광고하기 위해서 ‘바리스타’라는 표기를 ‘BARISTA’로 바꾼 후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둔 사례가 상상의 시작에서 고려해야 할 본질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오늘을 바꾼 어제의 상상? 유럽을 통합한 장 모네의 정치사상, 인종차별 없는 민주주의 국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복지국가의 꿈을 그린 스웨덴, 빈곤을 시장 원리로 해결하려 한 그라민 은행과 무함마드 유누스의 다른 금융 그리고 시대에 뒤처지는 상상에서 제주도의 상징이 된 올레길. 이 사례들은 하나같이 감탄사가 나오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던 나에게 가장 관심이 가던 사례는 그라민 은행의 사업 방식. 부유층 대상의 대출이 아닌 저소득층을 주 타깃으로 투자를 늘리고 경제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선순환 경제를 유도한 기존의 틀을 깬 예대마진 장사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 못할 계층’으로 치부하던 시대에서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27달러(저소득층이 자생하기 위한 금액)로 시작한 그라민 은행은 2011년 말 기준 지점 2567개와 1만 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서도 IBK 기업은행처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대출을 장려하며 국가 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려는 움직임은 끈임 없이 강조되고 있다.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 하나가 시장을 한 순간에 뒤바꿔놓았고 지금은 Microcredit가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일을 바꿀 오늘의 상상? 지금 이 세계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잘 정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위한 4가지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참여 : 탑-다운 방식이 아닌 모두가 참여해서 담아내는 상상과 실험. 2) 자립 : 참여의 전제는 자립이다. 모두가 자립하는 사회를 상상하고 실험. 3) 정부 : 시민들의 의지를 반영한 혁신의 시발점. 열린 실험실이 되기를 상상 4) 알고리즘 사회 : 일률적인 알고리즘에 고착된 사회. 미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생각 가장 나의 흥미를 끌면서도 한양브랜드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는 ‘참여’가 아닐까 싶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모여 정보와 지식을 나누고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수준 높은 지식을 형성하며 상상이 온전히 구현되는 사회의 모습이 되리라는 것이다. 지원서를 쓰면서도 유쾌한 참여형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로 했으니만큼, 대학생으로서 엄청난 혁명보다는 한양인이 함께 즐기며 응집될 수 있는 컨텐츠처럼 단순하면서도 작은 동요를 일으킬 무언가를 원한다. 책 속에서 담긴 사례 중 ‘Wikipedia’는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직접 수정하는 2001년 등장한 자유 백과사전이다. 소수의 천재들이 주도했던 지금까지의 지식 생산 구조를 집단지성 중심으로 바꾸게 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권위있는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즐겨 찾는 Wikipedia는 신뢰도 이전에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질적으로 발전하는 집단지성의 광장에 더 매료된 것이 아닐까? IT강국인 우리 나라에서는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등장한다. 선뜻 기억에 떠오르는 성공사례로는 ‘Job Planet’이라는 직장인들의 회사평가 SNS이다. 소셜 앱 스타트업인 ㈜브레인커머스는 단지 각자 취업을 원하는 혹은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한 ‘썰(이야기)’을 풀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놨을 뿐이지만, 현재 수만 명이 참여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냈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며 그 신뢰성은 더욱 높아지고 예비 직장인인 나 또한 페이스북 만큼이나 자주 접속하며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이렇듯 1+1=2가 아닌 10, 100 더 나아가 +∞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자발적 참여를 이끌만한 공통의 관심사가 중요해 보인다. 한양브랜드서포터즈가 상상해볼 것들 또한 이런 위키피디아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무언가를 알 것이며, 이것을 한 곳에 모은다면 한양을 홍보할만한 괜찮은 웹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간단히 떠오른 아이디어로는 ‘한양Wiki’. 한양대학교에는 [ ]가 있다. 라는 주제를 던져놓고 누구나 참여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다면, 각 분야의 쎌렙, 교내 혜택, 미남미녀, 독특한 수업 등 교내외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당길 수 있는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분야와 정치 성향을 뛰어넘는 지적 교류의 장인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발’의 사례에서 보듯, “세상을 바꾸는 빅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나온다.”라고 한다. 현재 일부분을 당장 고치는 게 아닌 근본적으로 바꿀 거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가장 이 페스티벌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한양브랜드서포터즈에서도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인 만큼 멋진 상상의 시너지를 만들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4-07 29

[오피니언][기고] 캠퍼스에서 ‘쉼표’를 찾다

캠퍼스 내의 학생들은 분주하다. 정해진 수업시간, 밀린 과제들, 빡빡한 팀플 일정 속에서 그들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급박한 세상사에 치인 현대인들의 모습의 단편을 학생들에게서 엿 보는 것만 같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물을 수 도 있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고, 스스로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인생은 마라톤으로 종종 비유된다. 42.195km라는 긴 거리를 선수들이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는 이유는 페이스 조절을 하며 달리기 때문이다. 페이스 조절 없이 처음부터 전력질주 하는 선수가 있다면, 결승선을 지나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우리 대학생 역시, 페이스 조절 없이 너무 달려 나가기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준비했다. 쉴 새 없이 달려 나가고 있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하루에 잠깐의 휴식을 제공하고자, 교내의 매력적인 쉼터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바쁜 일과 중에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대학교 4년이라는 긴 마라톤을 보다 수월하게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 HIT 2층 휴게실 ▲ HIT 2층 휴게실내 풍경 ▲ HIT 2층 휴게실내 창가 풍경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HIT건물 2층에 위치해있는 휴식 공간이다. 2층의 중앙 로비의 양 날개에 위치해 있어 승강기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바로 보인다. 이곳에서 편히 쉬면되니 한 층 정도는 가뿐히 계단으로 올라가주자. 모든 의자들이 푹신한 재질이라 딱딱한 등받이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집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늑한 소파들이 구비 돼 있어 집에서 쉬는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푹 쉴 수 있다. 얼마나 편한지 소파에 누워 잠자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또 옆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마주보며 위치한 의자가 있다. 이리 봐도 저러 봐도 커플을 위한 공간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저리 가까운 거리에 친구끼리 마주보며 앉아 있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연인과 손잡고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면, 이곳에 흥미가 생길 것이다. 눈치 보지 말고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된다. 창 밖 풍경은 덤이다. 2. 사회과학대 1층 로비 ▲ 사회과학대학 1층 로비 두 번째로 사회과학대 1층 로비를 소개하려 한다. 일단 사회과학대는 학교 내의 다른 건물로 가기 위해선 통과해야하는 88계단이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즉, 접근성이 좋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그리고 인근에 한양플라자, 사랑방, 학생식당이 있어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커피 한잔 사들고 쉬러 오기에 적당하다. 아, 굳이 커피를 사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 자판기가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음료수를 먹을 수 있다. 전면부가 유리창으로 트여 있어서 빛이 잘 들어온다. 카페를 가 봐도 구석지고 그늘진 곳보단 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이 인기가 더 많다. 햇살을 맞으며, 밖의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지켜보며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면 이곳, 사회과학대 1층으로 오면 된다. 3. 정책대학원과 인문대 사이 길목에 있는 벤치 ▲ 인문대 가는길의 벤치 마지막으로 앞의 두 곳과는 다르게 실외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과학대 4층에서 인문대로 가는 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여러 개의 벤치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중간에 하나의 흔들의자가 있다. 현재는 줄이 끊어져서 벤치의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게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다. 벽에 둘러싸인 곳에서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보다 자연이 주는 산소가 그리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곳으로 오면 된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밑에서 잠깐의 휴식을 갖는다면 그간의 답답함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한양대학교에 매력적인 쉼터는 어디 있을까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드는 생각이 한 가지 있었다. 예상한 것 보다 학생들 쉴 수 있는 장소가 굉장히 많았다. 대부분의 학교 건물 앞에 벤치가 있었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길목에도 잠시 멈춰, 쉬어갈 곳은 여러 군데 있었다. 다시 말해서, 바삐 살아가는 우리가 쉬고 싶을 때 쉴 곳은 어디든지 있었고, 언제든지 가능했다. 우리가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외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갖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 하고 있지 않은가? 옛말에 ‘바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삶이 매우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진다면, 눈앞의 결과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면, 이제는 한번 쯤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2014-07 25

[오피니언][기고] 캠퍼스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한양대 서울캠퍼스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 ‘한양대학교’ 하면 공대, Engine of Korea, 남자, 파란색, 사자.. 대부분이 떠올리는 한양대의 이미지는 남성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 이미지는 캠퍼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딱딱한 건물과 길, 그에 어울리지 않는 조경과의 부조화 등 젊음의 공간이자 대학문화의 꽃인 캠퍼스의 모습이 다소 삭막할 뿐만 아니라 단과대 건축물들은 공통성 없이 제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찾기 힘들다. 학교 캠퍼스가 단순히 대학을 위한 대학공간이 아니라 보다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캠퍼스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방법과 스토리텔링이 있는 즐거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일단 높은 지대의 지형과 이미 지어진 건물들 사이 사이로 시각적인 행복을 주면 어떨까? 교내의 조경을 양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나무와 꽃은 양적으로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자연적인 부분을 넣으려고 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분위기의 캠퍼스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당이나 인문/자연대 앞 공터와 같이 공간이 확보되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에 올림픽 공원의 장미정원이나 순천만 정원의 사례를 본받아 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벽화’ 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림은 삭막한 도시나 마을에 색감을 주면서 생기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지저분한 벽체나 등교 길 바닥 등에 재미있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림으로써 보는 즐거움과 걷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 곳곳에 있는 표지판과 지도를 아름답게 바꾸어 보는 것을 제안해본다. 고학년들조차도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과 건물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는데 재학생들이 학교의 길과 위치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현재의 틀에 박힌 표지판을 버리고 가독성이 강하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표지판과 지도를 제대로 구비할 필요성을 느낀다. 두 번째 방안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한양의 과거와 현재를 앞으로 이어질 미래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금도 88계단의 우측계단을 이용하면 F학점을 받게 된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있는데, 이처럼 학생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만으로 평범한 길에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학교의 심볼을 동상이나 표지판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조형물과 공간으로 표현하여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닿을 수 있게 해주어도 좋을 것이고 제주의 올레길처럼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공부하고, 걷고, 먹고, 이야기하고 추억하는 한양의 공간들이 심미적, 정서적 만족을 통해 많은 한양인들의 즐겁고 편안한 보금자리가 될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