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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 24

[오피니언][소셜픽션-소감문] 집단지성이 춤추는 '한양의 우연한 만남'

1. 소셜(Social)+픽션(Fiction) 픽션의 사전적 정의는 지어낸 일, 꾸며낸 이야기, 허구이다. 즉,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꾸며내어 말하는 것을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허구의 생각이 사회와 관련이 있게 되면 그것을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회의 범위는 얼마 만큼으로 잡을 수 있을까? 유럽이라는 거대한 대륙 범위의 상상을 한 프랑스의 장 모네(Jean Monnet)처럼 대륙이나 범국가적인 큰 범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정책발의를 장려하는 스위스처럼 단일 국가, 카페를 통한 공론장을 모색했던 영국의 지역사회 역시도 소셜픽션의 대상인 사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시들로 비추어 볼 때, 그 사회의 크기가 어떠하건 간 일정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상상은 모두 소셜 픽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콜로라도 주 아스펜에서 해마다 열리는 아이디어 축제인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빅 아이디어’를 강조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을 상상하고 논의하자는 의미이다. 사회에 현존하는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고민한다. 한양 브랜드 서포터즈 또한 한양대학교라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학과에서 각기 다른 부분의 한양대를 느끼고 경험한 학생들이 한양대학교의 10년, 20년 더 나아가 100년 후를 위해 꾸준히 소셜픽션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나 또한 한양 브랜드 서포터즈의 일원으로써 100년 뒤의 한양대학교가 가졌으면 하는 키워드를 고민해 보았다. 2. 집단지성이 춤추는 '한양의 우연한 만남' 한양대학교를 우연한 만남이 끊기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양대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진 학우들의 우연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양대학교는 15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진 작지만 큰 사회이다. 한양대학교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공알림단, 대내외적으로 한양대학교를 목적의 사랑한대와 한양대학교 브랜드 서포터즈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학생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각 단과대학과 학부간의 교류나 소통을 촉진하는 단체나 행사의 존재는 찾기 힘들다. 소셜픽션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어떤 사람이든 무언가는 안다'는 전제와 그러한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 활발해 질 수 있다. <소셜픽션>에서 향후 100년간 세계를 이끌어갈 소셜픽션을 찾기 위해 스콜월드포럼,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샌프란시스코의 사회적 자본시장 컨퍼런스 등에 간 것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여러가지 상상이 한데 모이면 각각의 원래 아이디어보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학생들이 '우연'한 만남으로 잦은 접촉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싸군(주: 사자가 군것질할때 라는 이름의 편의점)과 그 옆의 카페와 같은 공간을 더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학교의 정책과 발전에 대해서 총학생회 임원단과 단과대 학생회 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공론화하여 대화하는 기회가 더 잦아지게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컨퍼런스 룸을 건물 내, 건물 사이사이에 만든다. 이 소규모의 컨퍼런스 룸에서는 끊임없이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의견을 공유하고, 상상을 말하며 토의하게 될 것이다. 음식과 영양을 전공하는 생과대 학생들은 학식을 개선하는 방안이나 메뉴에 대한 의견을 펼 것이고, 법과 정치를 공부하는 정책대 학생들은 학교가 처한 법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관광학부 학생들은 학교에서 중랑천과 살곶이 공원을 잇는 한양길을 만들자는 주장을 할 것이다. 이러한 크고 작은 다양한 의견들은 바로바로 학교 곳곳의 또 다른 컨퍼런스 룸에서 확인 가능하고 언제나 수정과 보완,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다른 학우들이 낸 의견을 추천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각 의견들은 학교의 안건이 되고 정책이 될 것이다. 학교는 토론이 일상화된 공간이 되고, 학생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일상화됨으로써 학교는 경쟁과 생존, 낙오의 공간이 아닌 협력과 융합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한다. 3. 보살피고 보살핌받는 ‘한양의 학생자치협동조합’ 오늘날의 대학들이 받고 있는 지적 중 한 가지는 대학교가 더 이상 진리의 상아탑이 아닌 학점과 스펙, 그리고 취업을 위한 학생 양성소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에전처럼 듣고싶은 강의, 배우고싶은 학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학점을 받기 쉽거나 수강하기에 편한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한다. 진정한 삶의 멘토가 되는 선배들은 사라지고 모두 토익과 자격증 공부에 열중한다. 대학은 매년 국가고시, 자격증, 혹은 취업결과를 홍보하며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학우들이 다양한 사회의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토 가운데서 학생들은 소외감과 열등감에 휩싸이기 쉽고 이러한 감정을 인정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소셜픽션>에서는 ‘언니 네트워크’에서 만난 ‘무영’과 ‘어라’가 만든 여성주의 의료생협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있다. 예비의사 무영은 의료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했고, 어라는 비혼여성을 위한 마을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그들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서로 소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 생협 ‘살림’을 만들었고, 그 조합은 공통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서로를 보살피는 자조적인 조직이다. ‘살림’은 공동체 내부에 보살핌의 관계망을 만드는 것을 그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공동체 위주의 삶을 꾸려나간다. 소외되는 학생들이 생기는 것을 막고 서로를 보살피는, 1차 집단의 성격을 가진 한양대학교 버전의 ‘살림’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작은 자발적으로 작은 소집단을 구성한다. 학교 차원의 개입은 없으며 학생들이 함께 학업 뿐만 아니라 서로의 학교생활, 일상생활까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집단으로 나아간다. 한 집단에 소속된 학우에게 생긴 좋은 일을 함께 할 수 있고, 불행한 일 또한 공감하고 더 나아가 해결책을 고민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도 이어지는 이러한 소집단은 학교라는 공통된 테두리로 만나게 된 학생들이 서로를 돕고 도움을 받는 긍정적인 공동체로써 학생들의 생활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스펙과 취업의 전 단계로 인식되는 학교에서 이렇듯 자발적으로 굴러가는 소집단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반론에 대해서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의 '인류사의 감추어진 역설'에 대한 예시로 설명하고 싶다. 세계대전 중 한 전장은 지루한 대치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 한 겨울의 추위로 양 측 군사들은 지쳐갔다. 하지만 어느 한 쪽 진영 귀퉁이에서 흘러나온 크리스마스 캐럴로 인해 양 측 군사들은 그 밤 전장의 한 복판에서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일은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의 힘인지 상부에서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 밤이 지나고 다음 날 해가 뜬 뒤 다시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그 날의 크리스마스 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제레미 리프킨의 말과 같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배경 속에서도 또한,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하며 서로에게 위로받고자 프로그램 된 존재"라는 것이다. 개인이 겪는 수많은 경쟁들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학생들을 여러 덩어리의 집단으로 구성하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학교 또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4. 상상함으로써 현실이 된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제주도 올레길을 기획한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에 길을 내고자 했을 때 주변 사람들, 관광 전문가 심지어는 그녀의 어머니까지 반대를 했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계획에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길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보듬고자 한 그녀의 상상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그 상상이 해외로 향하던 국민들의 발걸음을 제주로 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주도는 연평균 관광객 13.6퍼센트 증가를 기록했고, 2013년에는 제주도 입도 관광객 수가 최초로 1000만명이 넘었으며, 오늘까지도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레길은 하나의 관광상품에서 더 나아가 관광객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가치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올레길은 그것을 걷는 사람에게 도심에서는 얻지 못할 치유와 평화, 화해와 어울림을 선물한다. 그녀의 상상은 허무맹랑한 꿈같은 이야기로 여겨졌지만 그것이 실천됨으로써 많은 것을 바꾼 것이다. 이렇듯이 상상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상상을 단순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자세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일을 바꿀 힘은 오늘의 상상에서 나온다.

2014-07 23

[오피니언][소셜픽션-소감문] 글로벌 대학의 중심

본 글은 한양브랜드서포터즈 2기 학생들이 수행한 미션 중 하나로, 지정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소감문 입니다. 한양의 미래를 상상하는 모든 한양인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0살의 내가 꿈꿨던 20살과 내가 다니게 될 대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저 평범한 대학생을 꿈꿔왔을까? 소셜 픽션(Social Fiction). 이번 한양브랜드서포터즈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소셜픽션은 최근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상상(imagine)’이고 '염원(wish)'이었다. 제약 없이 상상하고 이뤄지길 간절히 염원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포터즈 2기의 ‘한양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슬로건을 지향하는 우리의 길을 터주는 지침서라는 생각이 든다. The World Made by Imagine and Wish. 이 책은 ‘오늘을 바꾼 어제의 상상’과 ‘내일을 바꿀 오늘의 상상’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나뉜다. 망상이라고 여겨졌던 누군가의 생각이 실현되어 사회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상상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2030년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충분한 자본이 축적되어 세계의 경제 문제가 모두 해소되고 경제 자체가 문제가 아닌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라는 1930년 케인스의 소셜 픽션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그의 염원이었다. 만약 2030년 세계의 모습이 그렇지 아니하다할지라도 조금씩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2050년에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내가 다니고 있는 한양대학교가 2039년에는 놀라운 실력과 교수법으로 세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것이다.”라는 나의 망상 같은 상상들이 바로 소셜 픽션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The Way Make Social Fiction. 상상의 시작은 이러하다. ‘꼭 필요하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망치와 전기드릴과 같은 공구들이 꼭 모든 집에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유휴자산의 손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곧 공유 경제라는 개념이 도래하기 시작했다. 상상은 그렇게 사소하고 별거 아닌 대화에서 시작되고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대중들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굳이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민망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이 책에서 배운 소셜 픽션은 변화되기를 희망하는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이원복 교수님의 ‘먼나라 이웃나라’였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편이 ‘스위스’편이다. 1998년에 쓰인 ‘먼나라 이웃나라 스위스 편’에서 스위스는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불과 40%에 불과한, 전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는 국가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소셜 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에서 묘사한 21세기 스위스는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의 정치제도인 아고라를 다시 부활시켜 집단 지성을 펼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투표장으로 향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진 대의민주주의대신, 직접민주주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비록 한 투표에 무려 3개월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점점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국가로 여겨지던 스위스는 어느덧 말도 안 되는 상상의 시작으로 변화하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고 더 놀라운 상상으로 변화할 것이다. The Future of Hanyang University 이제 한양대학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양대학교의 미래는 어떠할까? 수많은 학생 중 한 사람인 내가 바라보는 한양의 미래, 한양이 추구해야할 가치는 ‘열림(opening)'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양대의 남성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열림‘, 다양한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는 ’열림‘, 한양대학교 건물의 삭막함을 깨끗함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열림‘. 우리의 열린 마음이 한양대학교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양대의 미래를 상상해보자. 내가 한양의 모습 중 손꼽는 한 가지가 바로 글로벌 역량이다. 한양대학교의 국제화 프로젝트는 2년 연속 우수 평가를 받아왔고, 국제화 평가에서도 늘 우수한 순위를 자랑해왔다. 그래서 글로벌한 한양의 소셜픽션을 그려보기로 했다. 한양대학교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학이 되어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양대로 모인다. 중국, 일본, 미국을 넘어서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남미 국가들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 국가에서 모인 학생들로 한양대학교는 이태원보다도 외국인을 만나기 쉬운 장소의 아이콘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모여 각 언론사들의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 세계 대학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전 세계적 이슈와 문제에 대해 대학생들의 입장을 발표하는 대규모 포럼을 개최한다. 2039년, 100주년을 앞두고 최대 규모로 개최될 예정인 이번 포럼에는 UN 사무총장이 방문하여 대학생들과의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상상한 2039년의 한양대학교는 무궁무진했다. 터무니없는 망상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비웃음 받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은 그저 나의 멋진 염원이었고 친구들을 불러다놓고 웃으며 펼쳐놓을 수다거리이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화하기 위한 나의 노력과 우리의 노력이 존재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나의, 우리의 학교는 더 놀라워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양대학교를 꿈꾸던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었고, 내가 사랑하던 학교를 대표하는 서포터즈가 되고 싶었던 나의 소셜픽션이 현실이 되었듯이 말이다.

2014-07 23

[오피니언][소셜픽션-소감문] "한양의 벽을 깨자"

본 글은 한양브랜드서포터즈 2기 학생들이 수행한 미션 중 하나로, 지정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소감문 입니다. 한양의 미래를 상상하는 모든 한양인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소셜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과학의 날이면 항상 ‘과학상상그리기대회’가 열렸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그림은 항상 비슷했다. 로봇이 청소를 대신해주고, 화상 전화로 멀리 떨어진 친구와 소통하고, 기름이 필요가 없는 자동차가 생기는 등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야, 이게 어떻게 가능해. 이러다가 우주에 진짜 살겠다.’며 웃음을 짓곤 했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화상전화 기능을 넘어서 손 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고 로봇 청소기가 집 안을 누비고 있으며 전기 자동차가 상용화되고 있다. 각자의 상상 속에서 숨을 쉬던 기술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듯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 현재의 스마트 시대를 이룬 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회의 변화에 대한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소셜 픽션(Social Fiction)’이다. 소셜 픽션(Social Fiction)이란 사회에 대해 제약 조건 없이 상상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기획 방법이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염원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 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때, 발현되는 사회적 상상은 막연한 예측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간절한 의지가 담긴 염원이다. 비전과 목표를 중심으로 놓고 시작한다는 데에 있어 방향을 잃지 않고 오래갈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기획방법이다. 작은 불꽃이 어둠 속을 채우는 환한 빛이 되듯이, 한 개인의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은 놀라울만한 사회변화를 이룩했다. 총칼을 겨누고 전쟁을 하던 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이라는 이름 속에 통합되게 한 장 모네, 인종 차별이 당연시 되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라며 투쟁하던 만델라,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신용한 유누스, ‘비경제적이다. 불편하다. 촌스럽다’고 여겨진 올레길을 치유와 사색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서명숙 씨 등이 그러한 개인이다. 책을 덮은 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마치 러시아의 전통인형인 ‘마트로시카 인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로시카 인형은 가장 작은 인형 위에 원래 것보다 한 치수 큰 인형, 그 위에 더 큰 인형 등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현재 사회는 하나의 마트로시카 인형이다. 그 인형의 내부에 존재하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그 인형을 깨야 한다. ‘인형을 깨는 것’ 즉, 현실의 벽을 상상으로 하여금 깨는 것을 의미한다. 한양의 벽을 깨자. 현재 내가 속한 가장 작은 사회인 한양대학교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내가 원하는 한양의 키워드는 ‘열려있음’이다. 지금의 대학들은 상당히 폐쇄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그 문제는 ‘건물’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과별 건물을 비롯한 그 외 교내의 많은 건물 등 말이다. 학과별 건물, 나아가 학과의 존립여부에 대한 논의는 앞서 많은 미래학자들과 대학 총장들이 지적한 바가 있으므로 다른 교내 건물, 특히 도서관에 관한 미래를 그려볼까 한다. 미래 도서관 계획 연구자인 크리셀렌 맬로니(Krisellen Maloney)는 대학도서관이 학문 연구 및 업무와 창조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결국 교수활동을 촉진하는 ‘교수혁신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지성의 심장인 대학도서관은 교수의 생활공간으로 지식 뿐만 아니라 경험담도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대학 도서관은 학생 및 교직원들만이 독점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용자들에 있어 개방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등록금을 내는 대가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참여’와‘집단지성’이 중요시 되는 시점에서 비슷한 나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과연 창의적인 사고가 발현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 풍경 전적으로 한양대학교 학생인 입장에서, 학생들의 발전을 위해서 한양의 도서관은 ‘아고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특별한 개인들이 ‘사회’라는 이름의 마트로시카를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면 다수는 더 빠르게, 그리고 힘있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온갖 지식의 저장소인 도서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학생들의 지성에 연륜있는 어른들의 경험과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합하여 진다면 당장에 사회로 나아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준비를 하는 예비지도자로서의 성장을 돕는 특별한 역량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2014-04 26

[오피니언]'애도를 표하는 올바른 모습'이란 무엇일까

- 4월은 잔인합니다. 혹자는 숫자 4가 아닌, 죽을 死로 사월을 표현 하기도 합니다. 결국 2014년의 4월 역시 또 하나의 비수를 전 국민의 가슴에 꽂고 말았습니다. 이번 만큼은 여타 이야기들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잠시 분노를 누르고 슬픔과 아픔을 공유하며 짧게나마 글을 적습니다. ▲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모 학우의 학교 축제와 애도에 관한 글 - 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한양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옳은 행동. 슬픔에 공감. 웃고 떠드는. 학벌적인 시각. 잘못된 행동. 애도를 표하는 올바른 모습. 처음 이 글을 읽고 '아, 이렇게 생각하는 학우도 분명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 들었던 생각은 '그런데 과연 애도를 표하는 올바른 모습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애도라는 단어의 뜻 조차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표현이라고 합니다. ▲ 출처 : 네이버 한자 사전 - 슬플 애, 슬퍼할 도. 슬프고 또 슬퍼하며 사람의 죽음을 기리는 행위가 바로 애도입니다. 애도를 표하는 올바른 모습이라면, 장례식장의 풍경이 생각 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께서 귀천하셔서, 그 때를 생각 해 봅니다. 검은 양복과 검은 넥타이. 향불의 냄새. 근조라고 적힌 봉투를 연신 건네는 분들. 슬픔을 참고 어두운 마음으로, 찾아온 손님을 애써 반기는 상주와 가족들. 식장 밖에서 공장굴뚝마냥 담배를 연신 태워대던 아버지와 고모부들. 끊임없이 오고가는 손님들과, 술병과, 각종 안주와 음식들. 분주한 주방과 아주머니들. 그리고 화투를 치시는 어른들이 항상 계셨습니다. - 제가 겪은 장례식장에는 죽음과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일상에서의 느낌 이상의 짓눌리는 공기는 존재 합니다. 한 사람의 주검을 병풍 하나를 두고 목도하며, 생전의 모습을 영정으로 기리며 향불을 바치고 절을 하며 그 분의 죽음과 넋을 기리는 행위에 일련의 죽음이 들어 있다면 분주한 부엌과 그 만큼이나 바쁜 식탁. 타오르는 담뱃불과 시끄럽게 오고 가는 화투판에는 삶의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소에서도, 분명 삶은 오고 갑니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죽은 이를 위해 산 자들이 모여서 그를 기리는 행위가 애도라면 애도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 뷰티풀 민트 라이프는 2주 동안, 59팀이 공연 할 계획이었다. 출처 : 민트페이퍼(http://mintpaper.com/) - 한편, 26일부터 진행되기로 했었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 공연이 불과 행사 하루전인 25일 오후 5시경 일방적인 공연 취소 통보를 합니다. 공연의 주최 측인 고양문화재단에서 부터 각 아티스트별 소속사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하루 전인 24일만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5,000만원의 성금을 전달 하며 '음악과 공연이라는 것의 본질이 기쁘고 즐겁고 흥을 돋우는 유희적인 기능도 크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정화하며 희망을 줄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문화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민트페이퍼 이종현 PD의 글 역시 담담하게 애도를 표하며 '산 자는 산 자의 몫을 다 해내겠습니다.'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결국 25일 오후, 고양문화재단측의 취소 통보와 함께 결국 취소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 이번 대나무숲의 글과, 뷰티풀 민트 라이프 취소 과정을 바라보며 과연 올바른 애도란 무엇인가 생각 해 봤습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눈물 흘리며, 검은 옷을 입고 씁쓸한 침을 삼키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을겁니다. 분명, 그러한 애도야 말로 진정 슬픔을 함께 하며 아파하는 모습일겁니다. 허나 그러한 죽음이 살갗까지 다가오지 않는 이들이라면, 과연 같은 마음으로 비통하게 슬퍼할 수 있을까요. 아픔과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됩니다. 그러나 굳이, 억지로 슬픔과 아픔을 조장해서야 삶이 이어질 수 있을까요. 짊어질 슬픔의 무게가 클 수록,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그러한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날 만큼의 희망과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삶의 가치에서 옵니다. ▲ 임시 분향소가 차려진 안산시 올림픽기념관 체육관 - 사실 어제 안산에 다녀 왔습니다. 한 사람이 아닌, 수십명의. 무고한 죽음 앞에 그저 눈물 흘리며 헌화 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너무도 가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20대의 중턱을 조금 넘어서서, 곧 대학에서 볼 수도 있던 후배들이. 진실이 불편한 세상 아래에서 어른들이 망쳐놓은 시스템으로 인해 허망하게 가버렸다는 사실에. 그저, 숨 쉬는 공기. 새까만 근조 리본. 봉사자분이 차고 계시던 '단원고 학부모회' 명찰. 그 모든 것들이 슬퍼 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기에 눈물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짐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들의 슬픔을 지고갈 수 있을 만큼 지고 가겠다고. - 슬픔을 지고 가는 것 역시 산 자의 몫입니다. 진정한 애도는 산 자의 몫을 우리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내는것이 아닐까요. 그 만큼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 내어, 부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 하지 않도록. 그 슬픔을 안고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 합니다. 착잡합니다만, 산 자들의 행복과 희망마저 앗아가는 일방적인 슬픔에 대한 강요는 분명, 애도의 끝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참함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부디 나누되 강요하지 않으며, 슬퍼하되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양뉴스포털의 '오피니언' 코너는 한양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본인의 글을 게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자 등록이나 제보를 통해 기명 또는 익명 기고가 가능합니다. 단, 기고의 내용은 본 한양뉴스포털의 운영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코너가 자유로운 표현과 공유를 통해 소통하는 대학 문화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양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필자 소개] 백 가지 가능성을 가진 청년 靑年百手 방쿤. 한양대 공대생.

2014-03 26

[오피니언][제안] '이그나이트 한양'을 꿈꾸며

최근 수년간 강연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가 "TED"이다. 국내에서는 CBS에서 진행하는 '세바시'나 삼성의 '열정락서'가 유명하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강연100도씨' 같은 강연 프로그램을 앞다퉈 만든것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이런 강연 프로그램이 이렇게 급성장하고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 즉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사례와 이유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강연은 매력적인 콘텐츠다. 그런데 이런 강연 프로그램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그 형태와 주제를 바꿔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그나이트' 다. 여기에서는 이 이그나이트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보고, 한양대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런 행사, 아니 이러한 공유와 참여의 장(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길 제안해 보고자 한다. 1. "이그나이트(ignate) " 란? - 20장의 슬라이드(PPT)가 15초마다 자동으로 넘어가게 설정해서 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발표를 하는프레젠테이션 방법 또는 그런 행사(파티라고도 함)를 말한다. 시간과 진행 상황이 정해져 있는 만큼 스피치가 더욱 임팩트 있고 짜임새 있게 진행되며, 관객의 집중도도 높을 수 밖에 없다. - ignite 라는 단어를 이그나이트 또는 이그나잇 이라고 읽고 표기한다. - 사전적 의미로 이그나이트는 [1. (격식) 에 불을 붙이다. 태우다 2.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다 (격하게) 하다] 라는 뜻이 있다. - TED나 여타 유명한 강의가 유명인 또는 성공한 사람들 위주라면, 이그나잇은 평범한, 일상적인 그러면서도 경험을 토대로한 콘텐츠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작은 단위내 특정 조직 내에서 개최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대기업에서도 조직 활성화 및 인재 개발 차원에서 적극 권하고 있다. 2. 대외 현황 Ignite는 2006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2009년 11월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여의도 ,봉하등 각 지역과 단체 안에서 개별적으로 열리고 있다 ▶ ignite http://igniteshow.com/ ▶ 이그나이트 서울 http://igniteseoul.org ▶ 이그나이트 광주 http://ignitegwangju.org 3. 한양대 현황 - 2013년 한양브랜드서포터즈 내에서 비공식 1회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서포터즈 소속 학생 20여명이 모여 각자 준비한 PT 발표를 했으며 자유 주제로 다양한 개인사와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영상 촬영은 했으나 몇가지 문제로 대외 활용은 어려운 상황이다. ▲ 2013년도 한양브랜드서포터즈가 진행한 이그나이트 행사 ▲ 2013년도 한양브랜드서포터즈가 진행한 이그나이트 행사 - 실제 사례 영상 (http://youtu.be/VCpDPRn3qXI) 4. 한양대에서 이그나이트 행사 개최하기 1) 지원금 유무 - 단순하게 일반적인 형태로 운영하려면 별도의 금액은 발생하지 않는다. - 현장 참가자(관객)에게 간단한 기념품이나 간식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 - 붐업을 위해 약간의 상금을 걸고 콘테스트 형식이 가능하다. - 강연 이후 촬영된 영상을 통해 온라인 투표 등의 후속 작업이 가능하다. 2) 자원 봉사자 - 강연 자체와 별도로 기획부터 운영까지 진행할 일군의 조직이 필요하다 3) 기획과 홍보 - 대학이라는 특성에 맞게 주제를 제한하거나 큰 주제를 주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방향을 잡도록 하는 기획안이 필요하다 - 기획단계에서부터 어떤 교육적 목표와 목적이 세워져야하는지 비전을 수립해야한다. - 예상 관객을 타겟팅하여 프로모션을 진행해야한다. <참고글> 열린 경험을 나누는 Ignite 행사 준비 10단계 http://social.lge.co.kr/view/opinions/ignite_seoul/ 이그나이트 : 경계인들의 축제 http://jemr.net/이그나이트 : 경계인들의 축제/

2014-03 10

[오피니언][기고] 취업하기 전에 기업을 꼭 경험 해봐야하는 이유

사회초년생이 전하는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글쓴이 : 채호석 동문(공대 신소재공학부, 2008학번) ● 본 글은 채호석 동문이 SNS를 통해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한 글을 허락하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취업을 준비했고, 막상 취업이 된 이후 돌아보니 그때 못봤던 많은 부분이 보이고, 어떤 마음과 고민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느낌 그대로 후배들을 위해 적어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인턴이든 뭐든 취업 전에 어떤 방법으로도 기업이라는 곳을 한번쯤은 꼭 겪어보길 권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느 회사가 좋고 나쁜 것을 떠나 말로만 듣던 '회사'가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아 남자셋 여자셋(TV시트콤)에 나오던 대학교랑 다르구나' 라고 느끼듯이 말이다. 둘째, 그로 인해 내가 직업선택에 있어서 어떤 것에 가치관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만약 못하고 넘어갔다면 평생 후회를 할 수도 있었던 그런 소중한 것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대학생으로서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주고 남은 대학생활의 가치가 2배 3배 올라가게 해준다. 그로인해 더 소중하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더불어, 회사선택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부서결정이다. 군대 다녀온 애들은 알겠지만 같은 부대 내에서도 내가 어느 대대에 들어가는지, 그 대대에서 어느 보직을 받는지에 따라 머리를 맞대고 옆자리에 누워있는 동기와도 서로 극과극의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수없이 많은 부서가 있고 그 안에 또 수없이 많은 파트가 있고, 수없이 많은 부서장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내 회사생활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공채시즌이 오기 전에 세부적인 부분에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준비를 하고,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던 혹은 원하던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회사 들어갔더니 복사만 시키더라’ 수준의 얘기가 아니며, 실제로 잘 그러지도 않다. ‘나는 R&D의 꿈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막상 부서배치를 받으니 인사팀에서 날 데려가는 경우‘도 있고, R&D라 하더라도 '아 이런 연구개발도 있구나'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전혀 생소한 업무를 맡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어느 직무에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카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는 주위 사람의 이야기는 그냥 참고로만 들어야 할 것이다. 그 회사 다녀보지도 않고 취업정보카페 같은 곳에서 본 내용으로 '야 그 회사는 연봉이 얼마라더라. 업무가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더러 있다. 실제로 '그 회사 초봉이 얼마더라' 라는 소문이, 그게 기본급인지, PS 포함 금액인지 조차도 모르고 그냥 '아 그렇구나 거기 짱이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의 정보가 일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업에서 직접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세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고3이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가지고 '야 한양대학교는 수업 출석체크를 전자출결로 한대~ 최첨단이네'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실제 재학생들은 '실제 그렇게 하는 수업 몇 개 없는데?' 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카더라 통신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아 정말!? 난 거기 지원해야지!' 라고 내 평생직장을 선택하기엔 너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반드시 직장을 선택하고 지원할 때는 확실한 정보를 통해 인맥을 동원해서 진짜 그 기업에 다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단 1%라도 더 정확한 이야기이니 그렇게 할 것을 권한다. 끝으로, 실제 직장생활을 해보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직장인들은 치열하고, 여러 가지 참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쉴 틈도 없이 힘들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너무 편한 것만을 찾고 살지는 않았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잠시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소중한 교훈이 될 거라 생각한다.

2014-02 25

[오피니언][인한양 데스크] 떠나는 당신께, 심심한 애도와 축하를

졸업이다. 또 많은 학우들이 한양을 떠났다. 문득 내 졸업이 생각났다. 나는 여름에 졸업했다. 한여름에 두꺼운 학사가운을 걸치고 있으니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2014년 전기 졸업식. 적당한 2월의 기온과 졸업식은 꽤 잘 어울렸다. 축하하러 온 이들에게도 고생스럽지 않은 날씨였다. 날이라도 덜 추워 다행이지 싶었다. 이 기뻐야 할 졸업을 마냥 축하할 수가 없어서다. 마지막 방패막을 치운 이들에게, 일종의 '애도'를 하고싶은 마음이 더 크다. 대학 졸업이 더 이상 '벼슬'이 아니라서 일까. 실제로 졸업식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 교수님은 "졸업하는 학생보다 교수들이 더 많이 온 것 같아 서운하다"고 했다. 꽃다발을 판매하는 상인은 "확실히 졸업식 참석자도 줄었고, 꽃 판매도 줄었다"고 했다. 한 재학생은 "선배 축하하러는 왔지만 내 졸업식은 오지 않아야겠다"고 '벌써' 말하기도 했다. 나도 그랬다. '안 가야겠다'는 의지까진 아니었지만, '꼭 가야하나' 하는 생각은 했다. 대개 고민 끝에 '참석'을 선택하긴 하지만, 고민만으로도 슬픈게 사실이다.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인터넷한양 뉴스에는 '금주의 한양인'이라는 코너가 있다. 괄목할 성과를 거둔 재학생들을 인터뷰하는 코너다. 주로 대회 수상자나 창업자들이 주된 취재원이다. 그런데 공모전 수상 조차도 꽤 '흔한' 스펙이 된 요즘, '이야기 될' 취재원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만큼 비슷해서다. 종목만 다르고, 동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가끔 팀원들과 다퉜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극복해 수상한 내용은 누구나 같다. 열에 아홉은 비슷하다. 기사가 뻔한게 아니라 취재원이 뻔한건데, 아이템이 기사의 절반 이상이라는 점에서 기자들에게도 말 못할 부담이 생긴 셈이다. 어쩌면 이 지점이 우리의 '공허한 졸업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같은 대학 졸업, 모두가 적당히 맞춰 갖춘 학점, 영어 점수, 봉사활동, 수상 경력, 인턴십. 이 평균적 엘리트들이 학벌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이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해줄 무언가가 없어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 공허함이다. 꽤 괜찮은 대학을 다녔고 졸업하면서도, 그렇게 사회 전체의 경쟁에서는 적당한 우위를 선점했음에도 희망이 적어서다. 누구나 취재원이 될 만 하지만, '이야기 될' 취재원에서는 밀리는 이치다. 어쩌면 내일 아침은, 누군가에겐 좀 더 추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당신 탓은 아니다. 대학 졸업이 기쁘려면 대학 졸업만으로도 '무언가'가 돼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못내 마음 아플 뿐이다. 그런 아픈 마음이 졸업식을 향해야 할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건 아닐까. 더 이상 '졸업은 새로운 출발'이라 제목 붙일 수 없는 씁쓸함이 식이 끝난 캠퍼스에 남았다.

2013-06 12

[오피니언]마음의 여행이요 일탈이 되는 축제는 나에게 ‘뜨거운 소란 속의 차가운 고요’였다

떠들썩한 축제 마당 한편에 시화가 걸려 있다. 국문학과의 시인 지망생은 소란이 소란으로 들리지 않았다. 소란 속의 고요, 두 가지 매력이 담겨 있는 것이 축제의 시화전 아니었던가. 아우성 속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주었던 액자. 단 한 사람이 알아보고, 꽃 한 송이 걸어주기를 기다리던 신록의 교정 한 모퉁이가 이제는 푸르러졌다. ▲ 글 고운기 (시인,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 80·국어국문) 졸업하고 4반세기가 흘러 모교의 교수로 돌아와 다시 보는 후배들의 축제는 훨씬 조직적이고 윤택해졌다. 축제는 일탈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의 대표가 여행이라면 축제는 마음의 여행이요, 그래서 또 하나의 일탈이다. 일탈은 곧 모험을 동반한다. 마음의 모험 흠뻑 젖어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 또한 어느새 슬며시 끼어들곤 한다. 주점에서 털리는 지갑의 돈이 솔찬하지만 말이다. 축제 때면 내가 다니던 국문학과는 시화전을 열었다. 글깨나 쓴다는 친구들에게는 기다려지는 행사였다. 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니, 시화전을 통해 재주가 있고 없음이 두루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강의실 하나가 방과 후면 화실로 변했다. 거기에는 재학생뿐 아니라 동문 선배도 함께해 이미 등단한 선배 시인을 만난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나는 언제쯤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쳐 시인이 될까, 시인의 자격으로 옛 강의실을 찾아와 시화를 만들 수 있을까, 내 시가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실 작품이 되기는 할까. 어느 때보다 축제의 가슴 설렘은 시화전을 준비하는 한 달 남짓 나의 미래와 결부되어 고양되었다. 열정으로 만든 시 한 편 그리고 고요한 기다림 시화전을 오픈하는 날 아침이면 분주했다. 액자에 담긴 완성된 시화를 찾아오고, 공대 건축학과의 협조를 받아 그들이 쓰는 이젤을 빌려오고, 학생회관 앞 공터를 전시장으로 확보해 진열했다. 학과의 교수와 학생이 모여 엄숙히 치르는 테이프 커팅, 축제 동안 시화는 자랑과 부끄러움을 함께 안고 모두에게 선보여졌다. 그리고 고요한 기다림. 전시장은 당번을 정한 순서대로 지키지만 당번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기 일쑤였다. 누가 찾아올지, 누군가 내 시를 읽고 한마디 하지 않을지, 정말 누군가 예쁜 꽃이라도 한 송이 시화 끝에 걸어주지나 않을지. 마음에 둔 여자 후배가 “형, 이번 시도 참 좋아요!”라고 말 걸어오면 뭐라고 답할까. 그때 여학생들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 불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기억 속 시화전에는 꽃도, 여자 후배도 없었다. 아주 의례적으로 달아주는 후배의 꽃송이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술 마시러 가자고 이끄는 선배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건 내 시가 결코 못나서가 아니요, 나를 좋아하는 후배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학교 안에는 두세 개 문학 동아리가 있어 그들과 묘한 경쟁심이 발동되기도 했다. 같은 시화전을 여는데 적어도 대학 안의 ‘문학 본산’인 국문학과가 뒤처져서야 쓰겠는가. 내가 후배였을 때 선배들은 은근히 그 같은 중압감을 우리에게 주었다. 내가 선배가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더욱 열심히 시를 쓰게 했고, 뭔가 더 기발하게 그림을 그리게 한 원동력이었을 터다. 문학이 무슨 경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3학년 마치던 겨울, 나는 운 좋게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4학년 축제 때는 그 시를,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시했었다. 후배들 앞에서 어깨 한번 들썩였던 기억이다. 4월의 개나리가 피고 지고, 교정에는 새순 돋는 신록의 나무가 싱그러워질 때쯤이면 강의실이 화실로 변하는 한 달 남짓의 축제 시화전 준비 기간을, 세상의 어떤 일보다 아름다웠던 일로 추억한다. 우리는 그런 신록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축제 기간에 휴강하지 않는다. 엄격해진 학사관리 때문인지, 수업 결손 없는 축제를 열라고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좀 어설프다. 밤새 놀이와 술판에 취했던 학생들이 아침이면 강의실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이 와중에 결석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가상하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인 수업이 될 리 없다. 꼭 이래야 하나 싶다. 내가 유학했던 일본의 게이오慶應 대학은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축제를 열었다. 월요일은 보수일補修日이다. 그러니까 금요일과 월요일만 휴강하면 되었다. 주말을 끼기 때문에 동문 선배와 지역 주민이 많이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동문 간, 지역사회 간 유대를 도모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학교를 매개로 모두가 함께 모여 까무러치도록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축제의 일탈만큼은 철저히 보장해주는 쪽이 낫지 않을까. 국문학과가 지금도 시화전을 하는지 모르겠다. 초대해주지 않더라도 올해는 슬쩍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꽃 한 송이도 준비하겠다. 열심히 쓴 시화 한 편에 달아주고, 마침 주인공이 거기 있거든 그 길로 주점에 데려가 술 한잔 사겠다. 에디터 양효선|사진 최재인

2013-03 25

[오피니언]사랑을 팔아, 굼과 추억 그리고 희망을 사다

▲ 김준혁 _ 법학과 08 한양대의 건학이념은 그저 말로 끝나지 않고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등 모든 한양인의 배움과 실천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사랑의 실천과 근명, 정직, 겸손, 봉사의 핵심가치를 만들어가는 생생한 한양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 보세요. * 본 글은 2010 제10회 사회봉사 체험수기 공모전 - 서울캠퍼스 최우수상 수상작 원문임 ‘나누리’와의 만남 나는 비록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눈물겨운 하루가 있을 수 없다고. 어린 시절 나는 꿈과 패기가 넘치는 소년이었다. 부모님은 철부지 꼬마의 자신감을 존중해주었으며, 나 역시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마음깊이 존경하였다. 나는 영업부에 근무하셔서 해외에 계셨던 아버지가 멋있어 보여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을 꿈꿔왔다. 당시에는 50평의 넓은 집과 강아지가 뛰놀 만큼의 정원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유복했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화목하게 지냈다. 그때의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주인공과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가 반전을 맞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아버지가 법을 잘 모르셔서 사기를 당했고, 우리 가족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 18평의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원래 살던 집의 반도 안 되는 평수에 가구도 다 들어가지 않아 피아노나 고가구들은 모두 처분해야 했고, 몇 년 간 키워오던 강아지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으니 다른 집에 보내야만 했다. 한창 사춘기였던 때에, 나는 아버지의 무능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고,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법을 증오하게 되었다. 왜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가? 정의란 법이 둘러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회의를 가진 나는, 꿈을 외교관에서 법관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이때에 내가 법관이 되겠다는 동기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복수심과 비뚤어진 가치관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던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봉사동아리인 ‘나누리’ 활동을 통해서이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필수 봉사시간을 이수하기 위해 시작한 봉사였다. 하지만 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점차 바뀌어가는 스로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나누리’는 고아들이나 혹은 이혼이나 한쪽의 사망으로 한 부모 가정이 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활동을 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가진 것의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과거에 비해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내 팔다리가 모두 멀쩡하며, 더구나 집도 있지 않은가? 이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은 내 마음속의 파랑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종종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의 감옥 속으로 집어넣는다. 항상 위를 바라보고, 스스로 남보다 못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그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스로가 마음속에 이미 감옥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딸아이 넷 가진 아빠 많은 아이들이 나를 통해 차츰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양육원은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더구나 주말 저녁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하지만 일요일 밤에 아이들의 농담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잠드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묘하게도 행복이란 마치 바이러스와 같아서 작은 기쁨이 큰 기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한다. ‘나누리’의 활동이 3년차가 되어갈 즈음, 나는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나와 비슷하게 부모가 법을 잘 몰라서 사기를 당한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것이 아이들과 내가 접점이 많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비슷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이때 사람들의 이러한 법률의 무지가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법관이 된다면 일정한 영역에서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만남으로 법관이 되겠다는 나의 결심의 동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과 나의 동병상련이 사회를 향해 날카롭게 갈아두었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던 것이다. 5분만 늦어도 애타게 나를 찾는 아이들로 인하여 나는 어느 순간 키라에서 슈바이처가 되어있었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응봉지역아동센터 사회봉사팀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3년째 계속하고 있다. 아마도 ‘나누리’에서의 습관이 관성이 붙은 것일 게다. 처음에는 나를 너무 어려워하여 수업할 때 눈도 못 마주치던 아이들이라 사실 수업을 하면서도 굉장히 서먹했다. 이러한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러가고 공연도 보러가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갔더니, 이제는 공공장소에서도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곤 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친구와 싸워 속상하다고 수업도중에 펑펑 울기도 하고, 누구 남자친구가 어떠니 저떠니하는 이야기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내가 마냥 아빠가 된 기분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했더니, 그 다음부터 사적인 자리에서는 아예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나이 스물넷에 딸아이 넷 가진 아빠가 되어 버렸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에게 정성스런 편지를 받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치한 포장지에는 아이들다운 귀여움이 물씬 담겨 있었는데, 내용은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를 때 정말 아빠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들을 위해주는 것에 항상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특히 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고 자기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선생님과의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싶다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했다. 늘 말썽 많고 장난기가 많은 녀석들이었지만 아이들의 편지로 인해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나누리’에서의 고아들과 지역아동센터의 저소득층 아이들은 늘 사랑을 갈구한다. 부모가 없어서 아예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한쪽이 있다고 하여도 밖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도덕이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을 위해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선생님은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곤 하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사랑을 베풀 줄도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지마’라는 제재만 받은 아이들은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고, 사회에 대한 공격성이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 나이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늘 활기차고 패기가 있던 어린 소년을 떠올린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무엇을 하겠냐는 교장 선생님의 질문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당당히 소리치던 아이를. 전교생 앞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하던 똑똑한 우등생을. 절도사건으로 단체기합을 주겠다는 담임선생님께 이것은 부당하다고 소리쳤던 건방진 반장을. 나의 머릿속의 소년을 떠올릴 때면 나는 좌절된 현실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그래, 그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왜 지금에 와서 불가능하겠는가? 봉사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엄밀히 따지면 나는 ‘봉사’라는 의미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봉사’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마치 자신을 희생하며 나누어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어에서는 봉사를 하는 사람(volunteer)은 있어도 봉사를 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는 없다. 참된 의미에서 봉사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봉사라는 단어보다 나눔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을 팔아, 아이들에게서 꿈과 추억 그리고 희망을 산다. 내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그리고 사랑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의미 있는 꿈을 되찾아 주었고, 그 꿈이 실현시킬 수 있도록 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준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아빠를 보고,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셈이다. 나는 비록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눈물겨운 하루가 있을 수 없다고.

2013-03 20

[오피니언]그 시절의 '쪽지통신' 지금의 너는 상상할 수 있니?

가끔 상상한다. 그때 그 시절, 지금처럼 휴대전화나 아니 적어도 삐삐라도 있었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 시절의 이야기. 쉽게 닿지 않아 그만큼 애달팠지만 그 누가 부정하랴. 도서관 게시판에 빼곡하게 붙어 있던 수많은 쪽지가 만들어낸 공간들이 꼭 그만큼의 낭만이 되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대학 2학년 시절 맞이한 봄은 유독 바람의 서슬이 아파서 늘 웅크리고 다녔다. 3월 말이 되어서야 내 여자친구는 “이제야 봄이 왔네. 내일 토요일인데 우리 대공원에 놀러 가자!”고 말했다. 우리는 오전 11시에 한양대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처럼 나도 봄풀과 봄 나무들이랑 한 타령으로 몸을 흔들어대며 다소 들뜬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동차가 한양대역에 정차하지 않고 지나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 1970년대 한양대 중앙도서관의 전경. 수많은 젊은이의 꿈과 사랑 그리고 미래가 공존했던 추억의 장소다. 문자로도 전화로도 쉬이 닿을 수 없던 시절 휴대전화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럴 때 무전기라도 있으면 그녀에게 연락을 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건대 입구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양대역 근처로 돌아왔다. 10여 대의 소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으나 소방 호스도 제대로 겨냥하지 않고 있는 걸로 보아 화재가 심각하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곧 소방차들이 하나둘씩 철수했고 역사로 사람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이미 약속 시간은 2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나는 그렇게 역사에서 다시 1시간을 묵히다가 문득 학교 도서관을 떠올렸다. 평소 도서관의 작은 게시판을 통신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다거나 갑자기 일이 생겨 집에 가야 한다거나 하면, ‘인진아, 나 시골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급하게 집에 가야 해. 미안. 내일 3시에 여기서 보자.’ 그렇게 쪽지에다 적어 게시판에 꽂아두었다. 내 쪽지를 본 그녀는 ‘어머니가 맛있는 거 해주겠네. 낼 보자’ 하는 답글을 내 글 위에다 꽂아두었다. 그 생각이 나자 빛의 속도로 도서관을 향해 뛰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게시판을 뒤졌으나 그녀가 남긴 쪽지는 없었다. ‘인진아, 나 도서관 4층에 있어. 그리로 와.’ 일부러 눈에 잘 띄도록 붓펜으로 쓴 쪽지를 붙여놓고 도서관 4층에서 기다렸다. 1시간쯤 기다렸을까. 과 친구가 “야, 너 토요일에도 나와서 공부하네. 당구나 치러가자” 하고 거의 강제로 손을 잡아끌었다. 당구가 끝나자 6시가 넘어버렸지만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게시판에 그녀의 쪽지가 보였다. ‘시우야, 4층 가봤더니 없네. 나, 카페 꽃다에 있을게. 4시 2분.’ 빛의 속도로 언덕길을 뛰어서 내려갔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카페 문 앞에는 ‘금일은 쉽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돌아서려다가 푯말 아래에 붙은 작은 쪽지가 보였다. ‘시우야, 카페 이솝으로 와.’ 나는 다시 빛의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카페 안을 뒤져도 그녀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인진이가 남긴 쪽지는 없었다. ‘인진아, 나 간다. 저녁 7시 15분.’ 그러고 보니 종일 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고파도 밥은 먹고 싶지 않았다. ▲ 현재 한양대의 지성들이 모이는 백남학술정보관. 깔끔하게 정돈된 서가를 비롯해 최첨단 시설과 휴식 공간을 갖춘 학교 도서관이다. 여백 없는 단순함이 때론 필요할 테지 월요일에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너 그제 무지무지 배고팠지? 나도 그랬어” 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무척 좋았어. 비록 옆에 있지는 않았지만 만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얼마 나 많이 뛰어다녔니? 상상만 해도 즐겁고 웃음이 나와. 꼭 옆에 붙어 있어야만 데이트하는 거 아니잖아? 나한테는 그런 시간들이, 그런 네 눈빛이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워. 재밌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못 하잖아!” 하고 웃었다. 그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올해 대학에 가는 딸에게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주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그 여친과는 왜 헤어졌냐고 물었다. “3학년 때 그놈이 갑자기 휴학해버렸어.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게 화가 나서 잠시 헤어져 있자고 한 게…. 하지만 보고 싶을 때가 있었어. 그런데 그때마다 연락이 안 됐어. 그놈이 시골 할머니 댁에 가 있어서. 그때 휴대전화만 있었어도…. 그래, 비록 휴대전화는 옛날 쪽지만큼 여백은 없어도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더라. 그래서 아빠는 다시 대학 가면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연애 한번 하고 싶어. 가끔은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여백이 없이 사는 너희가 2 부러울 때도 있거든. 그냥….” 글 이상권(아동문학가, 국어국문학과 84학번)|에디터 최미현|사진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