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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 20

[오피니언]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獻詞)

▲ 글_이재복문학평론가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1996년 등단 이후, 제9회 고석규 비평문학상, 제5회 젊은 평론가상, 제7회 애지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몸>, <비만한 이성>,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다소 빛바랜 책이 한 권 내 앞에 놓여 있다. <현대시학> 1998년 11월호다. 두 번째 장을 넘기면 왼쪽 맨 윗자리로 ‘내가 읽은 이달의 작품’이라는 자주색 글씨가 눈에 띈다. 지난 달 발표된 시 중에서 한 편을 선정해서 원고지 20~30매 정도로 쓰는 <현대시학>의 고정란이다. 나의 시 비평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내가 선정한 첫 작품이 김혜순의 <문신(文身)>이었고, 첫 시 비평이 ‘몸 혹은 존재의 견고함’이었다. 지금 읽어보면 부끄러움이 앞서는 아주 촌스러운 글이다. 마치 우연한 기회에 한 건 잡은 촌놈이 나름대로 폼을 잡고는 있지만 세련되고 은밀하게 숨기는 법을 몰라 그 욕망을 줄줄 흘리고 다닌다거나 낯설고 물 설은 세계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촌스러운 그 글이 내 시 비평의 첫 문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 글이 기반이 되어 나는 시 비평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그 나름의 입지를 마련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 비평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시를 읽고 쓰고 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시인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빈번하게 되었다. 이들과의 만남은 청탁을 불문했다. 어느 때 어느 곳을 가도 시인 한 두 명쯤은 늘 만나게 되었다. 이들과 인사동이나 혜화동 아니면 신촌의 어느 집에서 만나 나눈 말과 마신 술과 부른 노래 등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내 인생의 30〜40대를 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들에게 참으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고 또 상처를 주기도 했다. 때때로 이들은 가망 없는 희망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같기도 했고, 절해고도인 소도(蘇塗)의 나라에서 세상과의 불통을 즐기는 은둔주의자 같기도 했고, 온갖 자학과 피학 그리고 자기연민과 자기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위중한 에고이스트 같기도 했다. 나는 이들의 이러한 태도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또 가여워보였다. 이 냉정하고 음험한 세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정신 구조와 행동 양태를 보이는 이들을 주시하면서 나는 이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어떤 안도감 같을 것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차이가 내 속에서 묘한 우월감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우월감은 차츰 이 가여운 존재들에게서 어떤 이상한 혹은 견고한 힘 같은 것을 느끼게 되면서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내가 이들에게서 느꼈던 힘은 오래전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을 때 느꼈던 이상한 전율 같은 것이었다. 이 시에서 내가 특히 이상한 전율을 느낀 곳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라는 대목이다. 시인은 산골로 가는 것에 대해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버리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세상이 더럽기 때문에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인은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구속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자유 의지와 그 경지를 표상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곳에서 신생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의 울음’은 그 신생을 알리는 신성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백석이 그러했듯이 이미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우는 세계 속에서 신생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운 좋게도 때때로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하’는 시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제 나는 이들이 신산한 내 삶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는 너무 크고 높기 때문에 언제나 숭고의 대상이다. 이들은 내 속에서 고조곤히 와 이야기하지만 그 목소리는 강렬한 기운으로 나를 늘 긴장하게 하고 또 엄청난 매혹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들이 왜 세상을 구원할 선지자로 불리게 되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기꺼이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린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이끌리게 된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림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이 지독한 역설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이들의 말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만큼은 이해한다. 이들이 갈망하고 또 이들이 이루려는 세상에 기꺼이 발을 들이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시인들을 만나고 또 이들의 시를 읽는다. 1998년 겨울 이후 지금까지 내가 만나고 읽은 시인과 시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이 만남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무수한 만남 중에서 오늘 여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놓은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과 시’는 그 중에서도 각별한 것들이다. 나는 이들과 이들의 시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따뜻한 위안과 세상의 이면을 드려다 볼 많은 기회와 내 삶의 먼 곳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고 싶은 진정한 용기와 열정을 배웠다. 나는 이들과 이들의 시를 위해 미력하지만 내 마음을 가득 담아 43인의 시인과 이들의 시에 대한 헌사의 글을 올린다. 앞으로 이 헌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과 이들의 시에 대한 만남이 이어지는 한 계속될 것이다. 바라건대 새해에는 더 많은 시인들의 응앙응앙 우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