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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 29

[리뷰][한양견문록 ③] 홀로 떠난 남해안 기차 여행기

내게도 좌우명이 있다. ‘경험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이 좌우명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지금도 나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휴학을 결심함과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시작했던, 첫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혼자서 떠났던 여행인지라 그때 겪었던 작은 일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일로’ 기차표 통해 7일간의 자유 꿈꾸다 여행을 마음먹게 된 것은 ‘내일로’ 기차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7일 간의 자유’를 준다니, 이 얼마나 꿈꿔왔던 일인가. 망설임 없이 꼼꼼히 알아본 후, 기차표를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에 나는 꿈꿔왔던 그것을 내 지갑 속에 고이 품고야 말았다. 내게 주어진 7일 간의 자유,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첫 목적지는 여수로 정했다. 여수는 내겐 너무나도 멀고 신비로운 땅 끝, 바다와 맞닿은 곳이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그곳의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데 위치한 모든 산사(山寺)에 가보겠다는 작은 목표를 세웠다. 생전 처음 해본 용산에서 여수로 향하는 6시간 동안의 긴 여정은 좌석이 지정되지 않는 입석표인 ‘내일로’의 특성상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 같은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쓸데없는 부끄러움과 낯가림 때문에 소중한 추억을 공유할 동반자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열차 안에서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하다니.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다시는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으리라 거듭 다짐했다. 나홀로 여행의 서투른 첫 발은 그렇게 내딛어졌다. 저녁 8시 30분쯤, 여수에 도착했다. 찜질방에서 만난 아름다운 ‘돌산대교’ 빨리 어두워지는 시골의 특성상, 벌써 문을 닫아버린 역 앞 가게들에 적잖이 당황하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곧 그 초조함을 즐기며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젊은 발상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비싼 모텔을 숙소로 정할 순 없다는 생각에 찜질방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얇은 이불까지 넣은 배낭이 날 짓누르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점점 더 커지는 불안감에 버스를 타고 말았다. 그 후 물어물어 찾아간 ‘천년여성사우나’. 낙후된 시설과 좁은 규모는 동네 찜질방을 생각했던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갔다. 그 날 그 곳에서 잔 사람이 나와 청소아줌마 둘뿐이었다. 이 곳을 첫 숙소로 삼았다. 먼 곳에서 여학생 혼자 여행 왔다고 걱정하시던 주인아주머니는 외출하려는 내게 거듭 주의를 주시고 여수에 대한 정보까지 한 아름 주셨다. 야경이 멋지다는 돌산대교를 찾았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단연 으뜸이었다. 멋진 야경을 보며 혼자 여행 떠나온 첫 날의 여린 감성을 정리하고 혼자라는 두려움을 떨쳐냈다. ‘그래, 내일부터 구석구석 혼자 누비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금풍생이’로 여수의 아침 맛보다.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여수에서 처음 맞는 아침식사는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게 됐다. 그 이름도 생소한 ‘금풍생이 구이’. 상에 갈치와 생전 처음 보는 생선이 올랐다. 갈치만 먹던 내게 아주머니는 ‘서울서도 맘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갈치를 왜 여수까지 내려와 먹냐’며 핀잔을 주셨다. 결국 금풍생이 구이를 먹게 됐다. 그 맛을 본 순간, 정말 천해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이름만큼 생소했던 그 맛은 여수의 진한 바다내음과 함께 강렬한 기억으로 내 추억속의 편린(片鱗)이 됐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내가 ‘나홀로 식사’를 부끄러워 할 새도 없이 아침을 뚝딱 먹어치웠다. 여수의 인심과 특산물로 든든해진 난 곧바로 오동도를 찾아갔다. 물론 걸어갔다. 꽤 먼 길이었고 매우 무거운 가방까지 더해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전혀 힘들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 자신’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날 둘러싼 자연환경에 모든 걸 내맡긴 채 한없는 여유를 누렸기 때문이 아닐까. 오동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동도 동백열차. 편도 500원에 어렸을 때 타던 청룡열차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준 고마운 열차다. 동백열차는 오동도 입구에서부터 섬 안으로 쉼 없이 달렸다. 길이 고르지 않아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하지만 고르지 않은 이 길 덕분에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 ‘향일함’에서 만난 ‘돌산 갓김치’와 ‘새끼보 해장국’ ‘향일암’에 가기 위해 파출소에 짐을 맡기자, 파출소장 아저씨가 여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셨다. 내 여행이 평생 기억에 남는 것은 이 고마운 분들 덕분이 아닐까. 알려주신 버스를 탔을 땐 여수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진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각 마을의 대표 정거장에서 누구만 탔다하면 그 사람은 마을의 이장이 됐다. 당사자의 안부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에서 버스의 모든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이웃은커녕 나의 가족, 친지의 안부조차 묻지 않는 우리네와 얼마나 다른가. 금오산 향일암에 도착해선 또 돌산 갓김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향일함에 다다른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싫어하든 좋아하든 무조건 입에 갓김치를 넣어준다. 그 시원한 맛이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향일암 가는 길이 험하고 먼 탓에 중간에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갓김치의 힘으로 끝까지 올랐다. 게다가 향일암은 여수에서 뜬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단다. 정상에서 바라본 ‘여수’의 모습은 어떨까 너무 궁금해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역시나, 향일암 정상에서 바라본 여수 돌산읍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친구들에게 ‘네가 찍은 사진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다. 그렇게 향일암에서 시간을 보낸 뒤, 내가 예전부터 동경하던 ‘보물섬’ 남해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남해로 가는 길에 경유했던 순천에서는 ‘새끼보 해장국’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먹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이름부터 거부반응이 생겼지만 한번 맛을 본 뒤 내 생애 최고의 해장국으로 임명하게 됐다. 서울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곱창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일명 ‘새끼보’의 쫄깃쫄깃한 맛은, 내게 순천에 대한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심어줬다. 기고 : 조윤주(경금대·경금 3) 양

2008-01 22

[리뷰][한양견문록 ②] 경남 하동 역사문화탐방기

나는 평소 운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인지 무언가에 응모 하거나 복권을 사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응모를 해도 응모한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 일쑤다. 선택받지 못한 사실에 상처를 받기 싫거니와 혹 운이 좋아 당첨이 되면 기쁨이 두 배가 되기 때문에 차라리 잊고 지내는 게 속 편하다. 지난 해 5월, 샤프전자에서 주최하는 역사문화탐방단에 뽑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나서 나는 언제 무엇에 응모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야했다. 경남 하동으로 가는 역사문화탐방단에 응모를 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행운의 여신은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다른 이를 외면하고 덥석 내 손을 잡았다. 행운의 여신이 내민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손을 나 역시 꼭 쥐었다. 나름대로 완소남(완전 소심(小心)남)을 자부하는 내게 낯선 이들과의 여행은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허나 2박 3일 동안 밥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순수한 동기는 여행을 결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첫째 날 : 문화재를 다시 보다. 출발지에 도착했다. 비오는 압구정 거리에는 낯선 관광버스 한 대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이름표와 간식을 받고 자리에 올랐다. 수학여행 때 힘 있는 친구들이 앉는다는 뒷좌석은 이미 시끌벅적했고, 그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그 소리가 거슬리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하동으로 가면서 각자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찌나 다들 말을 잘하는지 ‘자기홍보 시대’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출발할 때 흐렸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을 비춰줬고, 어느새 답사단 일행은 구례 쌍계사에 도착했다. 절에는 여러 번 가봤던지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김병인(전남대) 교수님이 절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사실 내심 이곳까지 와서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깊이 있으면서 유쾌한 설명을 듣고 있으니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봐 왔다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저녁 무렵 김 교수는 문화재의 구분과 명칭에 관해 설명해줬다. 문화재 이름 하나 하나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재미있는 설명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어진 술자리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옆방에서 울려 퍼진 ‘쭉-쭉-쭉-쭉- 좌로 소주 우로 맥주’ 라는 구호와 소리는 아직까지 귓가에 맴돈다. 둘째 날 : <토지>의 고장 평사리로 향하다. 원래 낯선 장소에서 잠을 잘 못자는 탓에 잠을 청한지 두 시간 만에 일어났다. 여섯 시도 안됐는데 날은 무척이나 밝고 또 맑았다. 남은 시간 주위를 돌아다녔다. 공기도 맑고 계곡도 정말 맑았다. 다만,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내 정신뿐이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도착한 곳은 쌍계사 앞에 있는 용강 마을. 그곳에선 직접 차를 따고 제조하는 과정을 실습했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라 흥미로웠다. 은근히 주위사람들과 경쟁의식이 생겨 친구와 함께 열심히 소쿠리를 채웠다. 서로가 더 많이 땄다고 우겨댔지만 도토리 키 재기였다. ‘모두 기대치보다 적다’는 이장 어르신의 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어서 녹차를 가마솥에 익히고 멍석 위에 비비는 과정을 체험했다. 녹차 잎을 뜨겁게 달궈진 가마솥 위에서 익히는 것이다. 두 과정 모두 직접 해봤는데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체험을 마치고,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평사리로 자리를 옮겼다. 고등학교 문학 수업시간마다 토지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토지를 읽어보려 했으나 1권에서 포기한 기억이 났다. 30년에 거쳐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에 당도했다. 새삼 학창시절에 토지를 다 읽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과거 게으름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평사리 뒤편에 있는 고소 성(城)으로 이동했다. 군 시절 수도없이 산을 오르내린 기억 때문에 제대 후에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따가운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며 중력의 힘을 힘겹게 거슬러 오른 끝에 마침내 정상에 도착. 정상에서 바라본 벌판은 정상에 도착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이유가 아마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좌담회 시간. 김병인 교수님은 우리가 왜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사고(思考)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의 깊이 있고 진심어린 말씀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마지막 밤을 찢어버리자’라고 이야기한 교수님의 말대로 답사단 전체가 술과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찢어지는’ 밤을 뒤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셋째 날 : 짧은 여행, 소중한 추억을 남기다. 마지막 날 오전 7시 20분.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일어났는데 역시 깨어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잠이 충분치 않아 머리가 아팠지만 상쾌한 공기는 그 고통을 잊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지리산 청학동과 삼성 궁(宮). 청학동은 사람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텔레비전에 가끔 등장하던 댕기 땋은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청학동을 지나 삼성 궁(宮)에 이르렀다. 수많은 돌탑들이 참 이색적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났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이 인연을 만들어가기에 그리 짧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은 머리에 담는 것이고, 추억은 가슴에 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2박 3일 일정의 여행 내용은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지 않을 수 있지만, 가슴 속에선 소중한 추억으로 고이 남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기고 : 이장호(경영대·경영 3) 군

2008-01 15

[리뷰][한양견문록 ①] 어머니와 함께 한 섬 여행기

“가끔씩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살고 싶다. 도시의 냄새도 싫고 사람도 싫다. 어디로든 사람도, 차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다. 지난 해, 어머니 생신을 맞아 선물을 대신해 어머니와 함께 섬 여행을 다녀왔다. 자식 셋을 혼자서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특별히 생각해 낸 선물이었다. 섬은 해방의 공간이다. 공간적으로는 고립됐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섬이다. 전남 신안군은 800여개의 유인도와 무인도로 이루어져있다. 목포여객선터미널은 그 섬들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여객선들은 여러 섬을 경유해 사람들을 싣고 내린다. 우리의 목적지인 우이도는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외딴섬이다. 목포항에서 가까운 거리의 섬들은 육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섬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적은 편이다. 사람의 손때가 덜 묻은 곳을 찾아가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법이다. 서울에서 4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고 내려와 다시 4시간 동안 배를 타는 과정은 꽤 고달픈 일정이었다. 배 안에는 매캐한 기름 냄새와 비릿한 바다 냄새가 한데 섞여 묘한 냄새가 진동했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엔진소리는 소음을 넘어 굉음에 가까웠다. 거기에 높은 파도까지 더해지니 절로 뱃멀미가 몰려왔다. 이어폰으로 경운기 소리를 들으며 대형트럭 매연 속에서 4시간 동안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섬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집에서 싸온 떡을 나눠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셨다. 모처럼 밝은 표정의 어머니를 보니 멀미가 좀 가시는 듯 했다. 우이도에 도착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우이도의 절벽이었다. 배는 거친 파도 때문에 선착장으로 가지 못하고 섬 뒤편의 절벽 아래로 온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10명의 승객들은 위험천만한 하선절차를 마치고 조심조심 절벽을 올라 산길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우리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민박집에서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섬 탐방에 나섰다. 특이하게도 우이도의 산엔 사막이 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해안가 백사장의 모래를 산 위로 실어 올려 이뤄진 것이다. 예전에는 모래언덕에서 해수욕객들이 썰매를 타며 놀았다고 하지만 현재 모래언덕은 그 주위에 풀이 자라나 모래가 쌓이는 양이 줄어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때문에 썰매 대신 그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 눈으로만 모래언덕을 감상할 수 있다. 언덕 아래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언덕 위로 직접 올라가 가까이서 모래언덕을 바라보면 마치 사막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모래언덕 옆 돈목해수욕장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모래의 최종 종착지이다. 언덕 반대편의 해안가에서 올라온 모래가 언덕을 넘어 돈목해수욕장에도 쌓이는 것이다. 이 곳 백사장 또한 입자가 고운 모래로 이뤄져 있어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민박집에서 간단한 장비를 빌려 해수욕장에 널린 꽃조개를 잡거나 바위에 붙은 굴을 까서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이도의 숙박시설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모텔이나 펜션 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민박집만 10여 개 정도 있을 뿐이다. 그나마 비수기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섬엔 술집이나 식당이 없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때문에 섬을 찾는 이들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보통 식당이나 횟집은 민박집에서 같이 운영하는데 섬마을 사람들답게 인심이 두둑하다. 아쉽게도 우리가 찾은 때는 파도가 높아 회를 먹지 못했지만 평소에는 민박집에서 직접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손님에게 대접한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산 회를 싼 가격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회를 먹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지만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아쉬운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푸짐하고 맛이 좋았다. 어머니는 민박집 아주머니와 죽이 맞아 다음날 함께 전라도 사투리로 끄지뽕(‘산뽕’의 전라도 방언)이라는 열매를 따러 갈 계획까지 세우셨다. 나도 그 날 우리와 같이 우이도 여행을 온 두 쌍의 연인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시점이어서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에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들었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여행을 하며 우리가 만난 섬마을 사람들은 모두 붙임성이 좋고 친절했다. 배 안에서 만난 할머니는 직접 민박집을 안내해주며 육지에서 가져온 감귤 몇 개를 손에 쥐어주셨고 돈목해수욕장에서 마주친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냐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면서 추운데 빨리 구경하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걱정해주셨다. 민박집 주인 부부는 말할 것도 없이 친절하고 인심 좋은 분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여객선 선장 아저씨가 조타실 옆에서 일출을 보던 어머니와 나에게 “추우니 조타실로 들어오라”며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모두 삭막한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친절이었다. 외딴 섬에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수 없이 존재한다. 도시의 소리 대신 자연의 소리가 존재하고, 도시의 꽉 막힌 풍경 대신 사방이 탁 트인 풍경과 따뜻한 사람의 정이 존재한다. 올해는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로, 그리고 자신을 위한 선물로 섬 나들이를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고 : 서은영(사회대·신방 3) 군

2007-08 15

[리뷰][유학원정기 ①] 한인학생회 송준석 부회장

우리 대학생들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20대의 선택은 인생의 무게와 가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데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대학생들은 항상 고민하고 각자의 진로를 모색한다. 해외유학도 그 중 하나이다. 해외유학은 분명 국내에서는 채울 수 없는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기에 아주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멋모르고 유학길에 오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위클리 한양에서는 현재 해외에서 유학중인 졸업생들의 유학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주는 그 첫 시간으로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전자공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한인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송준석(전자통신컴퓨터 04년 졸) 군을 만나 보았다. “Be prepared” 2000년, 대학에 입학하고 들뜬 마음으로 지낼 무렵, 인생에 전환점을 준 강의를 듣게 됐다. 삼성종합기술원 윤석열 님이 해 주신 실용공학 강의였다.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강의였지만 “당장 씨를 뿌려라”, “평범한 노력은 노력도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열변을 토하셨던 윤석열님의 강의는 노트와 펜을 바쁘게 만들었고, 그 때 메모했던 내용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파워포인트의 마지막 슬라이드, 딱 두 단어로 표현된 문장은 내 가슴 속에 깊게 새겨졌다. 그 문장은 바로 “Be prepared”였다. 가자! 미국으로 강의 후, 많은 시간을 투자해 내가 과연 가고 싶은 길이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이 때, 수많은 자서전을 읽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대조해보며 교수님, 선배님, 그리고 산업현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보면서 조언을 구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나의 계획이 조금씩 완성되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IT 분야의 전문가, 리더가 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앞장설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 나의 인생을 통하여 많은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국가의 발전에 일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두 가지 목표가 나의 나침반이 되어줬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학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는 것 외에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세계의 여러 인재들과 동고동락하며 경쟁하는 것은 나중에 리더로써 일하는 나에게 훌륭한 경험을 주리라 확신했다. 나는 새하얀 A4 종이에 나의 소중한 꿈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정성을 다해 적어나갔다. ROTC 후보생이 돼 육군 장교로서 조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06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짐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꼭 해내겠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ROTC 후보생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시간을 더 필요로 했고, 난 아침시간을 소중히 활용했다. 중앙도서관 1열람실 11번 자리는 나의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6시 전에 도서관에 도착해 신문을 읽고 공부를 시작하는 나의 습관은 졸업할 당시 내게 학업우수상과 교육사령관 상장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방공병과 전국 1등으로 임관한 나는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게 됐고, 또 다른 소중한 경험을 가지게 됐다. 군 생활은 세상을 가르쳐줬고, 소대원들은 겸손함을 가르쳐줬다. 여러 지휘관을 섬기며 다양한 리더쉽을 경험하고,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 것은 세상 어디서라도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중위시절에는 GRE 공부를 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힘들고 어려운 날들을 보냈지만 얼마 후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됐다. 새로운 도전 2006년 2월, 6년간 목표로 세웠던 미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입학해도 좋다는 꿈만 같은 연락을 받았다. 거짓말처럼 나의 계획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해 여름, 전역 후 한 달 만에 미국 땅을 밟았다.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UT) 전자공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었다. 학부수업내용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원을 들어갔으니 어느 정도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학업을 시작했다. 아, 예상은 훨씬 빗나갔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는 말씀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고, 더 힘들었던 것은 내용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퀴즈와 프로젝트, 그리고 시험으로 채워진 학사일정은 나를 보기 좋게 넘어뜨렸다. 이렇게 공부가 어렵고 힘들었던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학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무리 따라가려해도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눈물뿐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타지에서 이렇게 힘들어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갔다.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하는 마음속의 안타까움이 날 정말 힘들게 했다. 그 때, 다행히 나는 고마운 분들을 만났다. 나를 아껴준 UT 전자공학과 선배님들이 조금씩 지도를 해주었고, 나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선배님들의 격려와 관심은 나를 더 밝게 해주었고, 그리고 더 노력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지금도 한없이 부족한 나지만, 조금씩 따라가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고, 나아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국가의 발전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인생에서 정답은 없다. 정답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과연 유학을 가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얻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이는 후배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정답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달란트(talent, 타고난 재능)는 모두 다르다. 그 달란트를 가지고 주변 환경에 맞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진정한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길로 가던지 자신의 꿈과 목표가 확연하다면, 정상의 달콤함을 맛보리라 확신한다. 유학이 언제나 플러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학사졸업 후에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또는 국내대학원의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른 길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유학의 장점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과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인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며, 우정을 나누는 것은 국내에서 얻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미국에서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내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위해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것, 이것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나 역시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이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AIM HIGH” 전공과목 시간에 서병설 교수님께서 칠판에 또박또박 직접 써주신 말이다. 유학이든 또는 대학원 진학이든, 어느 길로 가던지 자신의 꿈을 높게 가지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도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음 가운데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하여 도전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나긴 인생에서 훌륭한 경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학은 꿈을 향해 가는 길 중의 하나다. 만약 유학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유학을 준비한다는 것은 많은 끈기와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전공은 물론이되, 영어공부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유학준비를 떠나서 영어와의 끈은 절대 놓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나 또한 지금까지도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대학 시절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못한 것이 언제나 후회가 될 뿐이다. 유학은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본인의 의지만 있고, 열정과 꿈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뤄낼 수 있다. 나는 그리 대단한 유학생이 아니다. 나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나는 후배들이 나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유학에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용기를 내 이 글을 쓴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교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정상에서 더 많은 동문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모두 같이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도록 하자. 우리 자신을 위하여, 모교를 위하여,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 "두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목표에 대한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있어야,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결국은 이기지 않나 싶습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 인터뷰 중에서- 기고 : 송준석(전자통신컴퓨터 04년 졸) 정리 : 김준연 학생기자 halloween@hanyang.ac.kr

2007-08 15

[리뷰]이상경(생명) 교수의 해외 교환 연구기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두 달여 간의 방학동안 각자의 계획을 세워 바쁘게 지냈을 것이다. 외국어 공부를 한 학생도 있을 것이고, 학점을 취득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무더위를 피해 여행을 가거나,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나긴 방학동안 교수들은 무엇을 할까? 교수들도 학생들처럼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방학을 알차게 보낸다. 강의 준비도 하고, 논문 작성을 위한 연구도 한다. 특히 이공계열 교수진에게 방학은 실험에 전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다. 방학을 맞아 하버드대학에서 공동 연구 활동을 진행한 이상경(공과대·생명) 교수가 위클리한양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제 성적정리도 끝났다. 나만의 2달간의 방학이다. 매년 여름이면 방학과 동시에 나는 미국 보스턴에 간다. 아파트는 인터넷을 통해 한 달 전에 하버드의과대학 근처로 구해놓았다. 방학이면 강의교수가 아닌 실험에 직접 참여하는 연구자가 된다. 매 학기 내가 운영하는 실험실인 “RNA간섭을 이용한 유전자치료 연구실”에서는 우리가 만든 재료를 이용하여 유전자 치료 가능성을 연구한다. 그 재료들 중 동물실험의 가능성이 있는 약품이나 재료를 가지고 하버드 의과대학 샹카 연구실과 공동으로 동물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한 실험은 본교에서 정제한 항체를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 치료 효과를 동물실험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쥐는 완전한 면역결핍 쥐로 한 마리당 약 30만원을 호가하고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쥐에 사람의 혈액세포를 주입하면 약 2개월간 인간의 혈액세포가 쥐의 혈액에서 생존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쥐를 우리는 “인간화된 쥐”라고 부른다. 인간화된 쥐에 우리가 만든 신약이나 재료를 주입하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인간의 혈액세포가 감염 되는지 확인해 우리가 만든 신약, 재료의 효능을 평가해 봤다. 또한 에이즈 환자의 혈액을 쥐에게 이식 한 후 신약, 재료를 처리해 에이즈 환자의 혈액세포에서 바이러스가 감소했는지를 조사해 에이즈 병에 대한 치료약으로서의 가능성도 이번 방학 동안 알아봤다. 실험 시작 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면역결핍 쥐를 주문, 준비했고 내가 도착한 다음날 샹카(하버드·의대) 교수 실험실에 있는 전임강사 쿠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사람의 혈액세포를 쥐에 이식했다. 에이즈 균은 오직 사람의 백혈구에서만 감염되므로 동물실험에서도 인간의 혈액세포를 주입해 “인간화된 쥐” 모델을 사용해야 된다. 동물실험은 주로 4마리를 한 케이지에 넣어 한 그룹을 이루고 대조 그룹까지 포함하여 5 케이지에 20마리를 분산시켰다. 이들 쥐에 혈액세포를 주입하고, 다시 우리가 준비한 항체신약을 주입한 지 3일 후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했다. 바이러스 주입 후 3, 7, 10, 15일에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정도를 쥐의 혈액 내에 존재하는 인간세포의 감염 정도로 관찰했다. 또한 치료효과를 알아 보기 위해 이번에는 먼저 에이즈 바이러스를 쥐에 주입하고 우리가 개발한 항체의약을 바이러스 주입 2일 후 쥐에 주입해 바이러스의 치료 정도를 2주 동안 관찰했다. 첫 번째 동물실험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효과의 연구가 되겠고 두 번째 동물실험은 치료제의 효능평가가 되겠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의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험 결과가 좋았다. 우리는 글로벌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실험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가 직접 “인간화된 동물”을 만들고 직접 연구를 한다면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느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같이 공동연구를 하면 시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무엇보다 연구의 질이 높아지기에 나는 신약, 재료를 개발해서 재료의 효능을 미국의 샹카 실험실과 같이 한다. 또한 에이즈 바이러스를 이용한 동물실험은 생물안정성 레벨3 (Biosafety level 3)를 요구하며 이러한 BL3와 동물실험실을 하버드 의과대학은 갖추고 있어서 공동연구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공동연구의 결실로서 지난 7월에 네이처에 일본뇌염에 대한 유전자 치료가 발표됐고, 이번 여름방학 동안 끝낸 에이즈 백신과 치료약도 좋은 성과를 이루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8월 첫째 주까지 실험을 하고 둘째 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교수로 돌아오니 왜 그리 많은 서류와 업무가 많은지. 수강신청 상담에서 교과목 안내도 인터넷에 올려야 되고, 쉬고 싶지만 시간에 쫓겨 힘이 좀 든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연구 자유가 있기에 즐겁다. 교수는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충실해야 되기에 빨리 마음을 정리해서 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 학생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터 정리와 논문작성을 하면서 개학 전 마지막 1주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마음을 먹는다. 다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정리 : 장기진 취재팀장 jyklover@hanyang.ac.kr

2007-07 22

[리뷰][배낭여행을 가다 ④아프리카 편] 에티오피아

커피나무의 자생지를 뜻하는 아랍어 카파(Caffa).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Coffee)는 이 나라의 주명(州名)인 ‘카파’에서 유래됐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을 한 나라, 기아와 질병으로 시달리는 가난의 땅. 이름마저 생소한 이곳은 바로 검은 대륙에 있는 에티오피아다. 2년 전 어느 구호단체를 통해 이곳 어린이들과 후원을 맺게 되면서 시작된 인연이 에티오피아 방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속해있는 교회에서 단기선교 활동을 위해 에티오피아를 찾게 된 것이다. 서늘한 온도와 탁한 공기, 황인종은 모두 중국 혹은 일본인? 지난 2일, 인천공항을 떠나 9시간 남짓 비행한 후 도착한 곳은 두바이. 다시 환승을 하고 4시간을 비행하니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볼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2,000m 가 넘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아디스아바바에 내리니 온도는 서늘했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는 탁했다. 매연규제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고 한다. 거리에 자동차는 대부분 일제 브랜드였고, 간혹 레간자, 마티즈 같은 우리나라 차를 볼 수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 역시 우리나라 승용차를 보니 뿌듯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됐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베이스캠프 겸 숙소로 쓰일 명성기독병원(이하 캠프). 이동 중 차가 멈춰있을 때면 어김없이 현지인이 하나 둘 관심을 보였다. “You, China or Japan?” 에티오피아에 머물렀던 보름간 가장 많이들은 말 중 하나다. 일종의 인사가 돼 버렸다.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서양인보다 동양인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양인 중 한국인은 소수라 인지도가 낮단다. 짐을 풀고 곧장 봉사활동 장소로 떠났다. 해맑은 아이 vs 거친 아이, 고된 의료봉사에도 행복해 아디스아바바 시 교외에 위치한 베레쯔게. 처음 활동을 시작한데다 의사소통 문제까지 걱정됐지만 우리 일행을 맞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자 이내 긴장이 풀렸다. 2일 동안 공연, 율동, 제기차기를 가르쳐주고 함께 놀면서 그곳 어린이들과 교감을 나눴고, 마음속에 막연하게 남아있던 선입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인구의 40%가 20대 이하라 ‘젊은 나라’로 분류되는 에티오피아. 미래의 주역들과 함께하면서 어렴풋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마타하라 지역.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5시간 달리면 도착한다. 공용어보다 오로모어라는 토속 언어를 많이 쓰는데다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여러모로 불편했다. 푸른 초원보다 마른 흙이 많은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도 다른 지역보다 조금 더 거칠었다. 어린 아이들끼리 서로 싸우고, 덩치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폭행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곳에선 주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과 의료봉사를 동시에 펼쳤다. 캠프에서 나온 한인, 현지인으로 구성된 의사 2명과 함께 치료보조나 처방전에 따른 약 조제, 안내 등을 맡았다. 내륙지역이라 해산물을 먹지 못해 요오드 부족으로 백내장이나 임파선 환자가 특히 많았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몰려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일손도 달리고,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치료 후 약을 받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고, 무척 행복했다. 비쩍 말라버린 어린 마부와 말(馬)을 보며 가슴 아파 마타하라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데브라젯. 수도에서 서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다. 그곳 베들레헴 학교에서 봉사를 계속했다. 여느 지역과는 달리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무척 질서정연했다. 다른 지역에서처럼 통제할 필요 없이 잘 따라주어 오히려 우리 팀이 당황할 정도였다. 봉사 마지막 날 문화체험의 일환으로 봉사단이 2명을 짝을 지어 마차를 타게 됐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비쩍 마른 말을 보며 기아에 허덕이는 현지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웠다. 마부역시 10세 남짓의 어린아이가 많았다. 깔리띠 지역의 아이들은 거칠었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위해 방문했던 지역의 아이들과는 달리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아이들은 돈이나 음식, 모자, 시계 등을 달라고 소리치며 조르는 턱에 봉사활동에 나선 단원들이 적잖게 당황했다. 선교·봉사 활동은 긴찌에서 우물을 판 곳 주변에 말뚝을 박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잘 알려졌듯이 아프리카 대다수 나라는 물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 가운데 지하수 전문가들이 전문 장비를 이용해 지하수를 찾아내고 수원을 확보했다. 우리는 우물을 만드는 곳에서 100㎡ 둘레에 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만들었다. 오염방지를 위해서다. 말뚝을 박는 동안 보았던 ‘긴찌’의 아름다운 풍경은 잊을 수 없다. 구름은 손에 닿을 듯 했고, 태양은 강렬했다. 산꼭대기에는 분지처럼 움푹 파인 곳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숨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서있던 곳은 해발 3,000m로 백두산보다 더 높지 않은가. 비행기 안을 제외하면 내가 올라가본 곳 중 가장 높은 고도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에티오피아 사람들 그리고 ‘희망’ 20일간 계속된 봉사활동 중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했다. 흔히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는 가난하고, 그곳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무시하기 일쑤다. 그러나 내가 만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국 문화와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는 에티오피아에서 희망을 보았다. 비록 우리와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분명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더 행복해보였다. 기고 : 조필규(경영대·경영 4) 정리 : 정 현 학생기자 opentaiji@hanyang.ac.kr

2007-07 15

[리뷰][한양인,배낭여행을 가다 ③오세아니아] 뉴질랜드

흔히 ‘뉴질랜드’ 하면 초원 위의 양떼와 아름다운 자연, 엄격한 환경보호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백문불여일견’이라 했다. 나는 지난 해 EBS 교육방송 프로그램 ‘지도를 바꿔라’를 통해 보름간 뉴질랜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뉴질랜드 학생이 한국을 방문해 문화체험을 하고, 반대로 나는 뉴질랜드를 경험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나라, 양고기를 삼겹살 먹는 것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나라, 뉴질랜드를 소개한다. 로토루아의 자연온천, 타우포 계곡의 번지점프, 오픈 마켓 ‘온천’하면 흔히 일본을 떠올린다. 뉴질랜드에 가면 일본보다 더 훌륭한 온천을 만날 수 있다. 북(北) 섬 최고 관광도시로 꼽히는 로토루아에 도착하는 순간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행한 현지인은 이곳 로토루아 지역이 오세아니아 주에서 얼마 남지 않은 활화산 지대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 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폴리네시안 스파다. 하지만 인공적인 스파보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폴리네시안 인근 파라웨어 호수에 있는 자연온천을 찾아갔다. 파라웨어 호수 근처 곳곳에 있는 워터 택시(Water Taxi) 운전기사에게 “아늑한 자연온천을 보고 싶다”며 잘 이야기했더니 일반 관광객은 알지 못하는 자연온천으로 데려다줬다. 탁 트인 호수에서 홀로 온천욕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EBS 취재 카메라가 동행해 ‘약간’ 어색했지만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이병헌, 이은주가 함께 뛰어내리던 곳이 바로 타우포 계곡이다. 점프대에 올라서니 관리원이 몸무게를 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으나 ‘실제 무게와 차이가 많이 나면 연결선이 끊어질 수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나 사실대로 답했다. 알고 보니 농담이었는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후회했다. 혹시 번지점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학우가 있다면 꼭 해볼 것을 권한다. 45m 높이의 점프대에서 몸을 던지는 짜릿함과 타우포 계곡의 아름다운 절경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는 평생 흔치 않다. 한편 타우포 번지점프 측에서는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안전사고가 없었다’고 자랑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지점프가 활성화 된 외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안전사고가 나기도 한단다.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다. 점프 후 ‘번지점프 증명서’를 받았다. 용감하게 점프를 잘 마쳤다는 의미에서 주는 거라 한다. 마치 자격증을 딴 것처럼 뿌듯했다. 뉴질랜드에선 번지점프 외에도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스카이다이빙, 제트보트, 카약 등은 스포츠를 즐기는 학우들에겐 안성맞춤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고 싶었다. ‘어디가 좋을까?’ 뭔가 특별한 선물을 사고 싶었다. 평범한 기념품 가게가 식상하다면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오픈 마켓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현지인에게 소개받은 시장에 들렀다.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에만 문을 여는 오클랜드 근처 오타라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비롯해 옷, 액서사리 등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당시 길거리에서 먹은 간식을 생각하면 아직도 군침이 돈다. 환상의 커플, 양고기 스테이크와 뉴질랜드産 와인 한잔 뉴질랜드에 내리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양떼. 처음엔 마냥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다. 그도 잠시, 어느 새 수많은 양떼는 내 동반자가 됐다. 뉴질랜드의 '구성원'인 셈이다. 양이 많은 만큼 양고기 가격도 저렴하다.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 뉴질랜드에서 양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행 중 먹었던 음식 가운데 홈스테이 가정에서 대접받았던 양고기 스테이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양고기는 뉴질랜드 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아직 맛보지 못했다면 뉴질랜드에 들렀을 때 꼭 한 번먹길 권하고 싶다. 지금껏 몰랐던 양고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프랑스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 뉴질랜드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는 와인 맛을 아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뉴질랜드 곳곳에 퍼져있는 포도농장을 찾아가면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다. 또한 와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일러준다. 물론 영어로 설명해준다. 농장을 찾으면 그 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굳이 포도 농장을 방문하지 못했더라도 뉴질랜드 곳곳에서 우리나라보다 싼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배낭족들과의 의사소통, 깊이 있는 여행 만들기 뉴질랜드에선 배낭여행을 즐기는 여행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0대 대학생부터 홀로 여행하는 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접할 수 있다. 현지인 역시 배낭족을 대하는데 매우 익숙하다. 웃음을 잃지 않고 어디를 가나 친절하게 대해준다. 기억에 남을 뉴질랜드 여행을 위해 팁(tip) 하나 알려주고 싶다. 바로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여행하라’는 것이다. 평범한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막상 배낭여행을 떠나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장소를 확인하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일정에 쫓기지 말고 여행 자체를 즐기자.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면 2% 부족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 나는 크루즈 여행을 하다 만난 어느 노인과 가볍게 인사를 하다 말이 통해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중엔 그 분이 아예 내가 있는 지역으로 건너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때론 허기지고 고될지라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배낭족’들과 통할 수 있다면 값비싼 패키지 관광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고: 정밝음(국제학부 4) 정리: 정 현 학생기자 opentaiji@hanyang.ac.k

2007-07 08

[리뷰][한양인,배낭여행을 가다 ②정열의 나라,멕시코]

해외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학우들을 위한 두 번째 순서. 지난주에 이어 아메리카 지역을 소개한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에 비해 비교적 정보가 적은 중남미 지역. 최근 세계인의 관심 속에 발표된 신(新)세계 7대 불가사의가 중 세 곳이나 중남미에 위치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마야 유적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가 있는 멕시코. 정열의 나라 멕시코로 떠나보자.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와 아카폴코 죽음의 절벽에서의 다이빙 이집트의 상징으로 통하던 피라미드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지난 7일 멕시코 마야 유적지인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새롭게 선정 됐기 때문. 유카탄 반도에 남은 마야 유적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는 마야문명 중심지 치첸이트사의 유적 가운데 하나다. 피라미드 정상에는 신전이 있다. 올 여름 중남미로 배낭여행을 꿈꾼다면 한번쯤 들러볼만 하다. 기차에 편히 앉아 절경을 감상하자. 치와와 알 빠시피코 철도(Chihuahua al Pac fico Railway)를 이용하면 로스 모치스(Los Mochis)에서 치와와(Chihuahua)까지 이어지는 멕시코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다. 철도는 88개나 되는 터널과 38개의 다리를 지나 시에라 따라우마라(Sierra Tarahumara)의 작은 협곡을 가로질러 통과한다. 이 철도는 공사를 시작한지 90년 만에 완성돼 화제를 모았다. 또한 철도 여행 중 코퍼 협곡(Copper Canyon)을 만날 수 있다. 그랜드캐니언 보다 더 웅장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대담한 등산가들은 크레엘(Creel)이나 디비사데로(Divisadero)에서 내려 가이드와 함께 2300m 깊이의 협곡을 걸어 내려오기도 한다. 여행 중 바다를 찾고 싶다면 아까뿔꼬(Acapulco) 해변을 추천한다. 특히 이곳 죽음의 절벽에서 펼쳐지는 다이빙은 장관이다. 45m 높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버들의 멋진 다이빙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이빙은 엘 미라도르(El Mirador) 호텔의 바(bar)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타코 요리와 엔칠라다, 그리고 데낄라 시음 멕시코 요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과 비슷하기 때문. 멕시코에 갔다면 타코(Taco)요리를 먹어보자. 한국에서 먹은 타코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치즈를 좋아하면 께사디야(Quesadilla)를 추천한다. 또한 콩을 으깨서 만든 프리홀레스(fijoles)도 맛있다. 엔칠라다(Enchilada)는 토르티야 사이에 고기, 해산물, 야채, 치즈 등을 넣고 동그랗게 막대 모양으로 말아 만든다. 그 후 소스를 뿌리고 오븐에 구우면 완성된다. 그 맛이 일품이다. 멕시코 음식은 토마토소스나 매운 고추(Jalapeno)소스를 첨가해 먹으면 더욱 맛있다. 한편, 기름지고 자극적인 살사소스와 치즈까지 넣은 음식을 즐기다보면 살찔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데낄라 시음도 빼놓을 수 없다.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15번 국도를 따라 버스로 한 시간 떨어진 마을에 가면 데낄라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인장 줄기를 주원료로 하는 데낄라는 도수가 38도나 되는 멕시코의 대표 술이다. 이곳에선 데낄라를 시음할 수 있다. 뒷문이 없는 녹색 딱정벌레 택시는 주의해야 멕시코 현지인은 대개 동양인을 ‘돈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부유한 나라라고 알고 있으며 일본인과 한국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대다수 한국 관광객을 일본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드러내어놓고 과소비 하는 행태는 삼가는 게 좋다. 늦은 시각 밤거리를 홀로 배회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특히 수도인 멕시코시티는 치안이 좋지 않다. 이는 멕시코 뿐 아니라 남미 어느 지역을 가나 주의해야 할 내용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일명 딱정벌레라고 불리는 녹색택시는 타지 않길 권한다. 뒷문이 없기 때문에 택시강도나 소매치기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면 노란색 택시(Sitio)는 비교적 안전하니 이용해도 좋다. 비교적 친절하나 팁을 주지 않으면 문을 잠그기도 서양에서는 팁을 주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관광객은 비교적 팁에 인색한 편이다. 멕시코를 여행할 때 왜곡된 팁 문화를 겪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 학우가 멕시코시티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을 때 일이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줘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아, 여긴 기사가 문도 열어주는구나…’ 라는 생각과 그들의 친절함에 흐뭇했다. 그도 잠시, 자리에 앉았는데도 출발하지 않고 문을 잡고 있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팁을 주지 않아서’라고 말했단다. 팁을 달라는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개의 경우 멕시코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하다. 한편 수레나 차에서 파는 노상 음식은 눈으로만 구경하자. 가급적 먹지 않길 권한다. 위생상태가 불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떠나기 전 공부는 필수다. 정 현 학생기자 opentaiji@hanyang.ac.kr

2007-07 01

[리뷰][기획르포] 한양인 여름 농활, 그 현장의 기록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농촌학생연대활동(이하 농활) 현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용산에서 평택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안중을 찾았다. 안중터미널에서 수원행 버스로 갈아타고 청북면에서 내려 농활단이 머무는 고잔 3리 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닌다는 마을버스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하늘은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보슬보슬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일하는 모습을 취재해야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마을주민이 트럭을 타고 마중을 나왔다. 트럭 뒤에는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한 노각(늙은 오이)이 한 아름 담겨 있었다. 매 계절마다 학교 게시판과 대자보를 통해 농활을 모집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짧게는 2박 3일에서 길게는 9박 10일까지 농활은 계속된다. 학우들은 농촌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안타깝게도 농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기자 역시 무슨 일을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청북면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자 더 이상 전화 안내만으로 농활단을 찾기 어려워졌다. 고잔리의 상징인 ‘삼덕초등학교’에 마중 나온 주민의 트럭을 타고 10분을 더 들어가자 드디어 현장에 도착. 노각을 수확하는 밭에는 여러 그룹으로 나뉜 언론정보대 학우들이 부지런히 노각을 실어다 트럭으로 날랐다. 취재진 일행을 마중하느라 트럭을 사용하지 못해 논바닥에는 갓 수확한 노각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바퀴가 하나 달린 수레에 가득 실은 노각을 운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금세 익숙해진 듯하다. 평택 특산품 노각, 우리 손에 있소이다 고잔 3리 농민들과 농활단은 노각을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6월 하순부터 8월 중순 무렵까지 수확되는 노각은 대표적인 평택의 특산물이다. 수확되면 곧장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출하된다. 노란 우비를 입은 학우들이 수레를 연신 움직이며 노각을 날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톤 트럭에 노각이 가득 찼다. 고잔리 곳곳에서 활약하는 농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손이 달린다. 따라서 자연히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농민 신평호(남·51) 씨는 “남의 귀한 자식들이 농촌까지 내려와서 참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나도 대학생 딸이 있지만 자식 같은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 말했다. 이어 “주민에게 피해 주지 않겠다고 마을회관에서 손수 밥해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가짐이 어른스럽다”며 대견스러워 했다. 다른 가구를 찾았다. 노란셔츠와 밀짚모자, 예비군복이 잘 어울리는 다른 무리의 학우들이 트럭에서 노각을 내리며 씻고,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한편에서는 박소연 (언정대·신문방송정보사회 1) 양이 노각을 포장할 박스를 조립하고 있었다. 주변 학우들은 그녀가 “박스 조립에 도가 트인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박 양은 “자주하다보니 박스를 빨리 접을 수 있게 돼 분업 차원에서 박스만 접게 됐다”면서 “여름농활은 봄에 비해 일감이 적어 수월한 편이다. 일주일 남짓 다녀가는 거라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같은 학생들의 열정에 농민들은 고마움을 나타냈다. 노각 농사를 짓는 김 씨 할머니(여·61)는 “이젠 학생들이 단골손님이 된지 오래라 해마다 기다려진다. 일손이 달려 아들 녀석이 와서 도와줘도 바쁜데 학생들까지 와서 거들어 한결 편하다”며 뿌듯해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A급 노각을 들고선 “잘생긴 이 노각처럼 학생들도 멋있게 늙어가지 않겠냐”며 활짝 웃었다. 다채로운 분반 활동 통해 농민들과 하나된다 농활에 참여한 학우들은 노각을 수확해 포장하는 일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장마철을 맞아 배수로를 정비하거나 비닐하우스 안에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농활단의 몫이다. 한 학우는 “잡초를 뽑을 때는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으나, 막상 노각 따기와 포장하는 일을 해보니 그나마 잡초 뽑는 게 가장 쉬운 거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해가 저물고 난 뒤에도 농활은 계속됐다. 언론정보대 학생회장 정윤조(광고홍보 4) 군은 은 “농활의 목적이 농촌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라 식사를 마치고 나면 공부를 한다”면서 “농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든가 분반활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 가정에 찾아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특히 분반활동이 이채로웠다. 여성 반, 아동 반, 청장년 반으로 나눠 이른바 각개전투를 벌인다. 여성 반의 경우 어르신, 특히 아주머니나 할머니를 찾아 얼굴에 마사지 팩을 해드리면서 함께 저녁시간을 보낸다. 김 씨 할머니는 “생전 해보지 못한 피부미용을 받아 학생들이 만날 왔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 아동 반은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을 찾아 미술을 가르쳐주거나 공부를 돕는다. 청장년 반이 가장 편하다. 이른바 어느 정도 농활 경력이 되는 고학년 학우들이 어르신들을 찾아가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게 청장년반의 임무다. 마을 주민들 역시 농활단의 활약에 물량공세로 화답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농민들이 마을회관을 찾아와 부침개, 오이, 감자, 막걸리, 김치를 한 아름 두고 갔다. 농활이 농촌주민에게 피해만 준다는 일부 지적을 개선코자 최근 농활단은 먹을거리를 직접 챙겨가 마을회관에서 해결한다. 마을대장을 맡고 있는 손중혁(언정대·광고홍보 3) 군은 “농민들에게 피해를 안주려고 식재료를 포함해 대부분의 생필품을 학교에서 가져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주민들이 어김없이 회관을 찾아와 음식을 가져다주고 막걸리를 함께 나누면서 정을 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달 30일에는 주민들을 마을회관으로 초청해 잔치를 열었다. 이를 위해 농활문예선봉대에서 오랜 기간 노래와 춤 등 공연을 준비해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농촌 현실과 대학생 농활 활기차고 정겨운 현장 분위기와는 달리 농활에 참여하는 학우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특히 여름농활의 경우 계절학기와 일정이 겹친 데다 일주일 이란 짧지 않은 활동기간에 참여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취업난으로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는 최근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대학 입학 후, 4년 째 농활에 참가하고 있다는 정 군은 “4년 전과 비교해 참가자가 줄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농활 참여를 높이기 위해 학우들과의 접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를 유도할 구체적 방안으로 “농활에 4박 5일 혹은 30시간 이상 참여하면 사회봉사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실을 홍보할 생각이다. 또한 농활기간을 약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서로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취재 후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였다. 모두 합쳐 대여섯 정도 돼보였다. 요즘 농촌에서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다고 한다. 젊음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농촌이 텅 빈지 오래다. 한 때 젊은 층의 귀농이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신 씨는 “나 같은 50대는 여기서 완전 젊은이로 대접 받는다”며 “가뜩이나 일손도 모자란데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이 개방되면서 이젠 농사짓는 게 도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정 군 역시 “지난 4년 간 농활을 하다가 마을이 없어진 경우도 봤다. 농촌이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농촌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잠시 어두워졌던 농활단의 표정은 단체사진을 찍으며 다시 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자 일행을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농활단 사이에서 도시에선 듣기 힘든 개구리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글 : 정 현 학생기자 opentaiji@hanyang.ac.kr 사진 : 전상준 학생기자 ycallme@hanyang.ac.kr

2007-07 01

[리뷰][한양인,배낭여행을 가다①유럽] 이것만은 꼭!!

방학이 되면 누구나 한 번씩 꿈꿔보는 해외 배낭여행. 누구나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떠나지만 처음이라면 두려움이 좀 더 큰 게 사실이다. 위클리 한양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학생들을 위한 코너를 마련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매한가지이겠지만 무거운 첫 발걸음을 약간은 덜어주고 싶은 의도에서다. 기사에는 이미 유럽의 땅을 밟아 본 학생들의 의견이 주로 반영됐다. 이번 주는 그 첫 순서로 유럽 배낭여행을 소개한다. 다시 간다면 또 가고 싶은 곳 -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바르셀로나 분수 쇼, 그리고 스위스에서 즐기는 시원한 레포츠 어릴 적 만화책이나 소설에 늘 등장하던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에 들렀다면 파리 남서쪽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에 가보길 권한다. 프랑스식 정원의 진수를 볼 수 있다. 도착했다면 반드시 거울의 방과, 왕비의 촌락을 거쳐 갈 것. 루이 14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워낙 넓어 오래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시간을 아끼려면 순환버스나 자전거를 빌려도 좋다. 한편, 베르사유 궁전을 가려면 파리에서 시외고속철도(RER)를 1시간 정도 타야 한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찾았다면 바르셀로나에 들러 분수 쇼를 보자. 스페인광장에 위치한 분수대에서 펼쳐지는 분수 쇼는 클래식 선율과 조명이 어우러져 멋을 뽐낸다. 가히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보고 있으면 더위와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 허나 너무 몰입해 있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분수 쇼는 여름철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관람할 수 있다. 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시기는 여름이다. 무더운 여름에 유럽에서 시원한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레포츠의 천국 스위스를 들러보자. 취리히, 루체른 등의 대도시보다 인터라켄과 같은 소도시에 들러 래프팅과 패러글라이딩, 스카이점프 등을 즐겨보자. 특히 에메랄드 빛을 띤 스위스에서 즐기는 래프팅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색다름을 맛볼 수 있다. 유럽까지 왔다면 이 음식은 꼭! - 프랑스 홍합요리와 이태리 피자, 그리고 젤라또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낭여행 특성상 많이 걷게 되고, 배도 금방 고프다. 뭘 먹어야 기억에 남을까? 프랑스에 들렀다면 홍합요리를 먹어보자. 파리 샹젤리제 왼쪽거리로 5분 정도 걷다보면 홍합요리 체인점 레온(Leon)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메뉴판도 영어로 병행표기 돼 주문도 쉽다. 흔히 알고 있는 홍합국과는 다른 하얀 국물이 일품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이탈리아식 피자를 먹어보자. 네모난 모양의 피자(Pizza al talglia)는 손님이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판다. 미국식 피자에 익숙해진 입맛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젤라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젤라또는 그 맛이 단연 일품이다. 수많은 젤라또 매장 가운데 특히, 바티칸시국 입구 주변에 위치한 매장이 유명하다. 구멍가게 수준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젤라또를 맛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관광객 행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일이 찾기 힘들다면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배낭여행 두 배로 즐기기 - 이것만은 반드시 알아둬야 이미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로부터 소매치기에 대한 에피소드만큼 많이들은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조심, 또 조심하자. 큰 액수의 돈과 유레일패스 등 주요품목을 복대에 지니고 다니되, 복대만 맹신하는 것은 금물. 요즘은 복대만 노리는 소매치기들도 많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 더불어 눈뜨고도 당할 수 있으니 갑자기 다가와 이것저것 물으며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외국인도 주의해야 한다. 국제학생증을 챙기자. 뮤지컬 등 공연을 관람하거나 박물관을 찾았을 때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이중물가도 유의해야 한다. 어딜 가나 ‘바가지요금’은 존재한다. 특히, 외국 관광객에게 물건을 팔 때는 자국민보다 비싸게 받기 일쑤다. 역 주변 대형마트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끝으로 고추장이나 햇반, 컵라면 내용물을 챙겨가는 것도 유용하다. 유럽음식만 먹다보면 한국음식이 생각나기 마련. 튜브형 고추장이나 햇반을 가져가 먹으면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미룬 채 여행에 집중할 수 있다. 최남영 학생기자 hynews01@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