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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러시아

러시아인들은 책읽기를 좋아하고 개를 사랑하는 소박한 천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후, 악화된 경제 사정은 그들의 타고난 천성마저도 변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3년 전 서울에 온 야나(Gureeva Yana, 25) 씨는 아름다운 땅에서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원래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10년 후면 지금의 어려움과 각박함이 없어져 더 나은 러시아가 될 것이라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따뜻했다. 관광경영을 전공하고 싶다는 야나 씨는 본교 국제어학원에 다니며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더불어 한국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부대찌개를 즐겨먹는다는 그녀를 꽃샘추위가 한 풀 꺽인 20일, 러시아 문화원에서 만났다.

겨울 같지 않게 오늘 날이 참 따뜻하다. 러시아의 겨울은 무척 춥지 않나.

야나 : 내 고향인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12-15도 정도이다.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한국의 겨울 온도가 영하 4-5도인 것에 비하면 무척 춥다. 러시아에 돌아가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면….(웃음) 모스크바의 겨울은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일찍 시작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은 12월에서 1월까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각 3개월 동안이다. 7살 때까지는 할아버지가 계셨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랐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름에 백야(白夜) 현상이 나타난다. 밤에 자다가 중간에 깼는데 창밖이 밝아서 어머니께 ‘지금이 낮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소주를 즐기는 한국인과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러시아인들은 독한 술을 좋아한다는 데서 비슷하다. 또 한번 시작된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인들은 어떠한가.

야나 :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즐긴다.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른다. 나는 보드카보다는 칵테일이나 맥주를 좋아한다. 한번은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너무 많이 마셨다’고 했더니 친구가 ‘새해 첫 날이니까 괜찮다’고 했다. (웃음) 러시아인들은 술과 함께 차도 즐겨 마신다. 따뜻한 차와 함께 집에서 만든 쿠키를 먹는다. 한국 사람들은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이 궁금하다.

집에서 김치를 담글 때 꼭 한 번 초대 하겠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김치를 담근 후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에 가곤 한다.

야나 : 러시아에도 한국과 비슷한 ‘바냐(Banya)’라고 불리는 사우나가 있다. 개인적으로 ‘바냐’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 몸에 붓고 뜨거운 방에 들어간다. 자작나무 줄기로 땀에 젖은 전신을 두드려 몸의 모든 노폐물을 배출시킨 후 다시 샤워를 한다. 건강에 무척 좋다. 사우나를 즐긴 후에는 차와 함께 딸기와 같은 과일을 먹는다. 러시아에 가게 되면 꼭 한번 가 보길 권한다.

한국에서는 전철 안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책 읽는 문화가 발달됐다고 들었는데

야나 : 사실 그렇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책읽기를 좋아한다. 나는 러시아 인이지만 예외이다. (웃음) 특히 어머니가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신다. 한번은 잠자리에서 책을 읽는 어머니 때문에 부모님이 다투신 적도 있다. 아버지가 책을 못 읽게 하자 어머니가 화를 낸 것이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한 한국 학생이 러시아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그 집 강아지가 자꾸 침대 위에 올라와 털을 털어 ‘저리가’라며 발로 툭툭 찼더니 그 집 딸이 ‘우리 강아지는 발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동물이 아니야‘라고 했다는데.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많이 좋아하나?

러시아 인들은 개나 고양이, 새 등 온갖 종류의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덩치 큰 개를 키우기도 한다. 심지어 뱀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 어머니는 개를 키우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하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개를 밖에 데리고 나가 산책시키곤 하셨다. 어머니는 그 외에도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웠다. 나도 지금 물고기와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애완동물 키우기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많은 한국인들이 애완동물 키우기를 좋아하지만,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은 키우지 않지만 친구 중에는 개, 고양이나 햄스터 같이 다양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의 교육 과정은 11년제이며, 입학한 학생들이 11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다는데 사실인가?

야나 : 그렇다. 러시아는 만 일곱 살에 학교를 입학해서 10년 동안 같은 학교에 다닌다.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의 경우 처음 3년 동안은 쓰기와 같은 기본적인 것을, 그 후에는 더 수준 높은 것들을 가르쳤다. 영어, 러시아어, 지리 등의 과목은 3년이 지난 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10년 과정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과거 러시아에는 과학이나 음악, 체육 등 기초과학이나 예술 분야와 관련된 영재 학교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가?

야나 : 그렇다. 실제로 과학, 음악, 체육 뿐 만이 아니라, 외국어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 일곱 살에 입학해서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개방화 물결을 타게 됐을 당시 러시아는 총체적인 혼란에 휩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됐을 것 같은데

야나 :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생활하는 게 힘들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직업을 갖고 있었다. 돈을 벌어 식료품 등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일정수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자리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제 과거처럼 빵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야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고기나 우유를 얻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미국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좋은 물건들을 모스크바에서 사는 사람들은 살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는 그런 물건들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사는 것에 만족해야한다.

야나 : 또 소비에트연방 시절에는 대학을 포함한 학교 교육을 모두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정부에서 대학에 보조금을 지급하고는 있지만, 학생들 개개인에게 그 돈이 직접 전달되지는 않는다. 비싼 등록금을 내야 대학에 다닐 수 있다. 한달 수입이 500달러라고 했을 때, 대학 등록금이 300달러 정도라고 보면 된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그 즈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야나 :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일자리를 얻을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느끼는 한국과 러시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야나 : 가장 큰 차이는 경제적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한국에서처럼 건물 밖에 뭔가를 놔둔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중 반은 물건이 없어질 것이다. 필요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한데 그것을 살 수도 없다. 이것이 문제다. 경제적인 상황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는 식당들이 쭉 들어서 있는 거리가 많다. 러시아에는 식품이 풍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지낸 지 3년이 됐는데, 한국에 대해 특히 인상 깊은 것이 있다면

야나 : 한국에서는 길을 물으면 사람들이 웃으면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 직접 데려다주는 사람도 있었다. 넓은 롯데월드에 갔을 때 무척 놀랐다. 모스크바와 같은 큰 도시와 달리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그렇게 큰 놀이 공원이 없었다. 자이로드롭을 두 번이나 탔다. 심장이 뛰었지만, 재미있었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에서보다 더 많은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길에서 걷는 사람의 동작에서도 그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서 자유스럽게 웃는다.

야나 :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기 쉽다. 그것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내게 물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사람들에게 날씨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무슨 소리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2년 이후로 사회가 각박해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다. 원래 러시아인들은 친절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내 미래의 아이들이 자랄 10년 후에는 과거 러시아의 모습과 조금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대담 및 정리 : 신버들 학생기자 pleureur@ihanyang.ac.kr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