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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 23

[동문][사랑, 36.5°C] 소통과 공감으로 함께하는 감성을 나누는 기부

하헌영 인천 나은병원 원장은 최근 의과대학에서 건립을 추진 중인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 기금으로 5천만 원을 기부했다. 또한 한양대학교의료원에도 발전기금 5천만 원을 함께 기부하는 등 모교 의학 분야 발전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양대가 바이오메디컬 분야의 선도대학이 되는 데 동문으로서 힘을 모으겠다는 하헌영 원장을 만나 보았다. Q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 발전기금과 한양대학교의료원 발전기금으로 총 1억원을 기부하셨는데, 기부를 결심하시게 된 동기가 있나요? 졸업 후 모교 발전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하는 마음으로 각종 동문 모임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특히 의과대학 동문회에서 동문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문들이 의과대학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발전기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의대에서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의 기부를 통해 기부에 익숙지 않은 의대 동문들에게 간접적으로 참여를 권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 인천 나은병원 원장 하헌영(80 의학) 동문 Q 의료인으로서 바이오메디컬센터나 한양대학교의료원에 대한 특별한 기대나 바람이 있으신가요? 미국의 유명한 연구 중심 병원들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한양대학교의료원이 대학병원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더욱 경쟁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선진의료원의 사례와 같이, 한양대학교의료원과 바이오메디컬센터가 신약 개발, 의료기술 개발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연구 중심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주기를 바랍니다. 한양대학교의료원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Q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 가입, 해외의료봉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데, ‘나눔’에 대한 평소 생각과 소신을 말씀해 주세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주위와 함께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능력과 재능에 따라 주위에 도움을 주려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04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수료하면서, 그런 나눔에 대한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면서도 베풀고 나누는 여유를 보면서, 리더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나누는 작은 정성들이 모이면 작지만 소중한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0다고 생각합니다. Q 원장님께 ‘나눔’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2010년 스페인 산티아고로 여행을 갔을 때, 혼자 트레킹을 하면서 만난 인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트레킹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찾다가, 좁은 산티아고 골목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비도 오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지요. 그 때, 지나가던 중년의 현지인 마가레타가 기꺼이 함께 길을 찾아주었습니다. 40분을 걸어 도착한 숙소에서 마가레타는 간단한 요기까지 대접해 주었습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친절에 의아해 하던 제게, 자신은 건강상의 문제로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저의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그런 자신의 친절을 잊지 말고 한국에서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생면부지의 제게 남긴 마가레타의 친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작지만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지만 큰 감동’이 바로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전해지는 나눔의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하헌영 원장은 "한양대학교의료원과 바이오메디컬센터가 연구 중심 병원으로서 그 위상을 높이고 경쟁력을 더욱 키웠으면 합니다.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한양'의 이름이 빛날 수 있도록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고 말한다. Q 지금까지 여러 ‘나눔’을 실천해 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워서 기타를 멋들어지게 연주하던 키르기스스탄의 ‘국민영웅’ 아크바랄리 우울리 주숩백 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주숩백 씨는 지난 2010년 키르기스스탄 민족 간 유혈사태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다 척추손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지의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욕창, 소화기 계통, 순환기 계통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것으로 인연을 맺었던 키르기스스탄 주한대사에게서 주숩백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 기꺼이 의료지원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마음을 전하는 계기이자, 인천시와 중앙아시아권과의 교류에 시발점이 될 수 있었기에 무척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 하 원장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하고 환자를 돌보는, '감성이 통 하는 인생'에서 값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Q ‘한양’의 이름을 빛내고 계신 자랑스러운 선배님으로서 후배들에게 전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성공하는 의료인의 모습이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 왔습니다. 많은 경험과 고민 끝에, 병원을 확장하고 유명세를 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친 환자를 위해 인술을 베푸는 것이 더 큰 보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 인천 지역에 터를 잡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 속에서 힘든 시기를 버텨내야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돈이나 명예보다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가서면 결국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작게는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가진 것을 공유하고 환원하는 것부터 시작해 봐도 좋습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을 대하고 환자를 돌보는, ‘감성이 통하는 인생’에서 값진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기부를 망설이고 계신 다른 잠재적 기부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부는 습관입니다.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처음이 쑥스럽고 어려운 것이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먼저 시작해서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한양대의 건학정신이 나타내듯이, 주어진 것을 나누는 사랑, 그러한 마음을 실천하는 공감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2017-02 23

[동문][희망, 100℃] 동문의 응집된 힘으로 ‘한양’의 힘을 키우다

구자준 회장은 한양발전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하고 동문봉사단 <함께한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동문 사회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모교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모교의 재정 확충과 전략적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쾌척하여 기부자 명예의 전당 President's Honor Club(5억 원 이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양 동문의 응집된 힘으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구자준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유비전스 회장 구자준(전자공학 70) 동문 ‘꿈’으로 함께하는 한양 “모교는 제게 고향입니다.” 구자준 회장에게 모교는 사회에 나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성과 소양을 길러준 ‘고향과 같은 푸근함과 그리움’이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시작한 대학생활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은사님들과 선후배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기에 한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구자준 회장은 모교에 대한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양발전후원회, 동문봉사단 <함께한대>를 비롯한 각종 동문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동문의 힘을 모으는 데 주력해 왔다. 동문들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응집된 힘이 한양 발전의 디딤돌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30만 동문의 잠재력이 곧 ‘한양’의 미래라는 것이다. 구자준 회장의 ‘한양 사랑’은 모교의 강단에서도 이어졌다. 오늘의 한양에서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강연에서 그는 언제나 후배들이 자유롭게 꿈꾸는 청춘이 되기를 당부해왔다. “대학은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평생을 투자할 꿈을 찾는 데 있어서 본인의 전공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자준 회장은 ‘꿈’의 열린 가능성에 대해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단순히 지금의 전공에 따라 평생의 꿈을 결정하기보다,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평생을 다해도 열정이 마르지 않을 꿈을 찾아가는 후배들의 미래가 곧 한양의 미래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딛는 발자국에 담겨 있는 책임감 한양의 자랑스러운 동문, 구자준 회장의 성공에는 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원칙은 어떤 일을 하든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조깅과 구보의 차이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구보는 강압과 질책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달리기다. 하지만 조깅은 건강을 위해 스스로 하는 달리기이며, 끝나고 난 후에는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듯 같은 ‘달리기’를 하더라도, 구보로 생각하고 뛰느냐 조깅이라고 생각하고 뛰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화엄경에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현실이 될 수도, 그저 동경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구자준 회장이 말하는 조깅과 구보의 차이도 바로 이런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즐기는 자세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모든 판단을 함에 있어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가 말하는 것처럼, 눈 덮인 벌판에서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이들의 길이 된다. 그는 지금까지 기업의 경영자로서, 리더로서 자신의 모든 선택과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이 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신중을 기하려 노력해왔다고 한다. “하얀 눈밭 위에 제가 내딛는 발자국은 뒤를 따라오는 이에게 이정표가 됩니다. 새로운 길일수록 자신이 내린 결정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기부를 향해 열린 마음 “오랜 미국 생활을 하면서 미국 대학들의 기부문화에 대해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명문 대학들의 든든한 재정 뒤에는 대부분 동문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30만 동문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한양을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구자준 회장은 특히 한양발전후원회 초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한양의 재도약을 위해 동문들이 힘을 모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모교의 발전은 다시 동문에게 자부심으로 돌아가기에 한양의 도약을 지원할 수 있는 동문들의 관심을 당부하기도 했다. ▲ 구자준 회장은 “기부는 사회와 개인의 순환 작용이다. 한양대가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문들의 아름다운 순환의 힘이 필요하다. 30만 동문의 잠재력이 바로 '한양'의 미래가 된다.” 고 말한다. 기부는 사회와 개인의 순환 작용이다. 사회에서 성장한 개인이 다시 그 사회의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순환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구자준 회장은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그리고 기부의 순환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기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이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아름다운 순환의 힘은 바로 동문들에게 있음을 구자준 회장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2017-01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2017년, 내 인생의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길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열심히 보낸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1년이 지나 2017년을 마무리하며, 후회 없는 한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글. 이주비(한국언어문학과 14) / 그림. 안우정 인생 23년 차가 된 소감 스물세 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나이다. 스물세 살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를 나이다. 스물세 살은 미숙한 어른이다. 가끔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하는. 스물세 살은 그런 나이다. 2017년, 난 스물세 살이 됐다. 대학에 들어온 지 4년째다. 학교에 입학해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1년이 지났고, 적응 좀 했다 싶으니 2년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3년이 지나 있었다. 사회에서 스물세 살은 풋풋한 대학생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늙은이 취급받기 십상이다. 안팎의 온도차가 이렇게 심하니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학교를 떠나는 게 답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4학년이 된 이상 이제 취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따뜻하게 살았지만 1년 뒤에는 냉랭한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지금도 늦었으니 당장 목표를 정해서 달려가라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바로 그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 나이라면, 그 학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진로를 확실하게 정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반박하고 싶다. 과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느냐고. 벌써부터 주변의 지대한 관심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유익함 2016년의 나는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니, 2016년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는 내내 옆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달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방학을 쉬기만 하면서 지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생 때는 제외하더라도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대학교 들어와서는 아르바이트하고 학원에 다니느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방학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학교1학년 겨울방학을 꼽고 싶다. 그때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하는 게 없었다.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잠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잤다. 그럼에도 왜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는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온갖 잡념들이 날 사로잡았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태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자기혐오의 감정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다시는 없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다시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1월을 계획 중이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선 가끔은 뒹굴며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번 겨울도 그때의 겨울처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난 같은 이유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재충전, 그리고 다시 시작 난 느리더라도 신중히 결정한 나만의 길을 가길 원한다. 성급히 내린 결정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올해는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건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 틀에 박힌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선 제한된 경험만 가능했다. 대학 생활 3년은 이런 나에게 그전의 19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특히 대학 생활은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를 알아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기란 너무 벅찬 일이었고, 난 내가 원하는 것들만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 누구보다 먼저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다. 아니면 나 스스로 휴학하는 이유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뜨끔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 이게 다였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 못 하시던 부모님도 나의 거듭된 주장에 결국 백기를 드셨다. 어찌 됐건 올해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평생 나에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 구속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볼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인 것이다. 2017년을 어떻게 채워 나갈지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8

[기획][클릭&줌인] 과학교육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다

과학은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는 매우 큰 원동력 중 하나다. 빠른 미래 기술의 발전과 그에 대한 산업에 대한민국이 발맞추어 따라가려면 청소년들이 과학에 보다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암기 위주의 교과서 교육보다는 과학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데, 한양대학교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글. 윤지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국내 유일의 과학기술진흥센터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매년 개최하는 과학강연극은 과학연극과 과학강연, 실험 시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접목해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진행해온 크리스마스 과학강연극은 많은 청소년과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왔다. ▲ 2015년 한양대하교 백남음악관에서 열린 제 14회 크리스마스 과학강연극 한양대학교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지난 2002년 청소년을 위한 과학교실의 필요성을 느껴 살아 있는 과학실습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해 11월부터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장인 최정훈 교수가 디자인한 실험장비와 최첨단 영상장치 등을 갖춘 대형 트레일러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교육 트레일러 4대와 지원차량 3대 등 총 8대의 과학교실 관련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양대학교 부속기관으로 승격된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최고의 사회봉사단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과학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활동으로 청소년 과학교육에 앞장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다양한 활동으로 청소년의 과학교육에 기여하고 있다. ▲ 다양한 과학실습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교구들 이동과학교실 및 이동과학관 운영 | 전국의 과학교육 현장에 직접 방문해 생동감 있는 과학강연극 및 직접 체험해보는 과학실험실습, 전문가 과학강연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동과학교실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중·고교 현장에서 과학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 교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STEAM 개발 | 2010년 한양대학교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에서 디자인해 현재 전국 초중고에서 핵심적인 과학교육 개념으로 적용하고 있는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은 기존 과학교육에 기술, 공학 및 예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암기식 교육보다는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여 보다 실생활과 관련된 체험 실험과 창의적인 융합교육 중심으로 전환해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더 많은 흥미와 창의성을 갖도록 하고 있다. 특히 기존 실험과 다르게 청소년들이 최종 제품까지 직접 제작해보도록 이끌어 과학기술공학에 대한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연극 및 과학강연극 운영 | 지난해 15회째를 맞은 과학강연극은 유아원들을 위한 사회복지관 산타 공연으로 시작해 현재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범위를 넓혀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 활동의 꽃으로 불리며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진행한다. 영화에서 연출된 다양한 장면의 원리를 설명하며 이를 무대에서 재현해 실현 가능한 과학을 관객들에게 실제로 보여준다. 해외 과학문화 교육 활동 | 여러 나라를 방문해 이동과학교실 프로그램을 지원해왔으며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의 노하우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해 최정훈 센터장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강연을 하면서 교육봉사의 목표의식을 되새길 수 있었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야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직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해외 여러 나라에서 많은 초청이 들어오고 있으며, 강연 및 교육 후에는 매번 극찬이 쏟아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미래 과학자 양성 위해 끊임없이 노력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2010년에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과학 분야 창의 인성 프로그램 개발단을 운영했다. 또 STEAM 교육에 대한 수업 모델 개발을 통해 국내 STEAM 교육을 선도해왔다. 특히 센터의 자랑인 이동과학차를 이용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질 좋은 교육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정훈 센터장은 “여러 학교 등의 과학교육 현장에서 체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동안 한양사회봉사단을 통해 많은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왔다”며 “특히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대학생들이 단순히 학점을 채우는 것을 넘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직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한다. ▲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운영하는 이동과학차 최근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기업체 지원 교육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일례로, 여러 기업과 연계해 기업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돕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매년 2월과 8월에 공학한림원과 함께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주니어공학교실 실험 수업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57개 대표적인 기업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에서 개발한 실험 키트를 직접 조립해보고, 수업 내용과 이론을 교육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기업과 함께하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많은 어린이들이 과학자에 대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쿠웨이트의 영재센터인 ‘Sabah Al-Ahmad Center for Giftedness & Creativity’의 센터장이 직접 영재교육 벤치마킹을 위해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를 방문해 쿠웨이트 현지에서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에는 카타르 교육 관계자들이 방문해 카타르 과학교육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는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의 사업이 글로벌 과학교육 사업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또 다양한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청소년들이 과학공학기술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 화학, 환경오염의 영향, 환경을 살리는 화학기술에 대한 대중 강연을 통해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큰 인정을 받고 있는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이끌어갈 미래 과학자 양성을 위해 쉼 없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 직원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기획][사랑의 릴레이] 한양 100년의 꿈을 향해...뜻 모아 힘 모아

2015년 회계연도(2014년 7월~2015년 6월) 기준으로 미국 스탠포드대학교는 1조 9,731억 원, 하버드대학교는 1조 2,710억 원의 기부를 받았다. 기부금을 통해 이들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양대학교 또한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이라는 한양 100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지의 뜻을 모으고 있다. 글. 박영임 / 사진. 대외협력처, 하지권 기부, 세계 명문 대학 도약을 위한 밑거름 ▲ 한양발전후원회 모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건물 신축 및 세미나실 등 교육 환경을 개선하며, 각종 학술대회 개최 및 연구 자금을 위해 2015년(2015년 3월~2016년 2월 기준, 산학협력단 회계 포함) 165억 원의 한양대학교 발전기금이 모아졌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기부자들의 성원은 온기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유수 대학들의 기부금 규모와 비교하면 1% 내외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 육성해 대학의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국내 대학들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에 기대고 있는데,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세계 명문 대학들은 기부금을 중심으로 탄탄한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재학생의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고 풍부한 발전기금 구축을 위해 동문들의 기부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다. ▲ 한양발전후원회 모임 ▲ 한양발전후원회 감사의 밤 한양대학교는 세계 명문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 2005년 8월 기부금 조성 및 관리를 전담하는 대외협력팀을 확대, 개편했다. 대외협력팀은 기부금 모금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동문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국내 기관 및 총동문회와의 협력 사업, 캠페인을 기획해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집중거액모금 캠페인’에서 ‘동행한대’까지 발전기금은 교육 환경 개선 기금, 국제화 기금, 장학 기금, 연구 활성화 기금, 건축 기금 등 다양한 형태로 모금, 운용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발전기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는 목적에 맞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기부자의 뜻을 받들어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다. 따라서 기부를 원하는 경우 기부 목적, 규모, 방법에 따라 적합한 성격의 기금을 선택할 수 있다.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집중거액모금 캠페인’은 세계 명문 대학이라는 한양 100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개교 이래 처음 실시됐다. 총 2,000억 원을 목표액으로 설정한 뒤 2013년 6월 동문 기업인을 중심으로 한양발전후원회를 출범, 목표액의 50%를 마련했다. 그 후 2015년 10월 ‘한양, 힘이 되는 밤’을 열어 대내외 캠페인을 공표하고 대중 모금을 전개하는 중이다. 집중거액모금 캠페인은 우수 인재 육성 장학 기금, 한양 노벨 렉처 운영 기금, 차세대 청년 기업가 육성 기금, 바이오메디컬센터 신축 기금, 글로벌 융복합 연구지원 기금 등 10가지 기금 중에서 선택하거나 특정 학과를 지정해 기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한양 노벨 렉처 운영 기금은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해 강연과 세미나, 한양대 교수와의 협업을 추진하는 데 쓰인다. 이는 한양대학교에서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부금 활용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대학 발전을 위한 기부에 반드시 거액으로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5년 부담 없이 기부 활동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소액 기부 프로그램인 ‘클럽 동행한대’를 시작했다. 클럽 동행한대는 월 2만 원의 후원으로 재학생의 생활비와 학비, 문화생활비, 해외 인턴십 비용 등을 지원한다. 특히 동문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희망하는 재학생이 직접 동문에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많은 동문이 참여하고 있다. 기부금 모집 외에도 동문에게 학교 소식을 전하고 재학생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한양을 키우는 명예에 함께하다 각종 발전기금이나 동행한대에 참여하는 방법은 온라인, 문자, 팩스, 우편 등으로 약정서를 작성해 참여의 뜻을 밝히면 된다. 기부자에게는 세제 혜택뿐 아니라 기부 증서와 감사 카드 및 선물, 뉴스레터 등 정기 간행물이 제공된다. 금액에 따라서 의료 및 교육 혜택과 명예의 전당 등재 등의 예우도 받을 수 있다. 대외협력팀은 정기적으로 발전기금 모금 및 사용 현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기부자들에게 연간 보고서를 배포하고 있다. ‘2016 발전기금 조성 보고서’에 의하면 총 5,073명이 기부에 참여했는데, 그중 동문이 62.6%를 이루고 있어 동문의 참여가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교원(13.8%)과 재학생(8.8%)도 동참하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는 기업이 57.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인 발전기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발전기금은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뜻 깊게 쓰였을 뿐 아니라, 지난해 3월 개설된 아트테크놀로지학과의 연구 기금으로도 사용됐다. 그 밖에 제1공학관의 ‘노영백 학생 라운지’, 신소재공학관의 ‘김무연 세미나실’을 개관했으며, 기부자의 이름을 새긴 도서관의 개방형 열람실로 ‘강대창 스터디룸’과 ‘한금태 스터디룸’을 최근에 오픈했다. 또 여학생 화장실의 파우더룸 신설 등 재학생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 환경 개선에도 쓰였다. ▲ 노영백 학생 라운지 ▲ 한금태 스터디룸 ▲ 강대창 스터디룸 최근 한양대학교가 국내외 각종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발전기금을 밑거름으로 교육 역량 및 연구력을 강화한 결과다. 하지만 한양 100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경주해야 한다. 기부자들의 후원은 한양대학교가 세계 명문 대학으로 거듭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MINI Interview '기부, 나눔의 실천으로 승화해야' 정성훈 대외협력처장 인터뷰 ▲ 정성훈 대외협력처장 Q 2017년 대외협력처의 사업 계획 및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기금 모금을 보다 다양하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먼저 집중거액모금 캠페인은 대중 모금을 강화하기 위해 한양발전후원회를 현재 116명에서 150명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5년차에 접어든 집중거액모금 캠페인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2017년에는 특히 소액모금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전개할 예정입니다. Q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사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지난해까지 캠페인 기획 및 잠재 기부자와 관계 형성 작업을 진행했던 중·고액 모금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400명을 목표로 후원회 모임도 조직할 것입니다. 또한 198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교비유학생제도나 소위 고시반으로 불리는 국가시험반 장학금 등의 수혜자를 대상으로 ‘장학금 돌려주기 운동’ 같은 모금 활동을 다양하게 진행하겠습니다. 한편, 동문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한 입학 30주년 홈커밍데이 외에 입학 2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입학 후 30년 만에 모교를 방문하니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다는 동문이 많습니다. 그래서 20주년으로 단축하고 동문과의 교류를 보다 활성화하겠습니다. Q 기부 문화의 확산 및 정착의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현재 우리 사회는 큰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만큼 기부 문화도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청탁방지법 시행으로 기부가 위축될 것이라 우려하지만 오히려 기업은 사회 공익적 차원에서 기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졸업생들의 기부가 큰 힘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적인 명문 사립대학들의 발전은 동문들의 기부에 힘입어 실현된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미국 대학은 동문의 12%가 기부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아직 국내에는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한양대학교의 경우 동문의 참여율은 4% 수준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기부 문화를 조성해야 하는데, 단순히 기부를 한다는 인식보다는 어려운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한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동문 및 한양 가족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30만 명의 동문이 한양대학교의 졸업생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의미 있는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학교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동문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에 대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건강한대] 겨울철 비단결 같은 피부 만들기

겨울에는 날씨가 차고 건조해 각질이 일기 쉽다. 또한 아토피 피부염, 주부 습진 등이 악화될 수 있으며 노인은 건조 피부염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어느 계절보다 적절한 피부 관리와 보습이 필수적이다. 글. 노영석 교수(한양대학교병원 피부과) / 그림. 안우정 추운 계절에 자주 발생하는 피부병 겨울에 흔히 접할 수 있는 피부 질환으로 동창, 동상, 피부 건조증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증상은 무엇이고, 치료 및 예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동창은 5~10℃의 낮은 온도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생기는 비정상적인 국소적 염증 반응으로 손가락, 발가락, 코, 귀 등에 홍색 또는 자색의 종창이 발생하는데, 소양감과 통증을 동반하며 2~3주 내에 자연 소실된다. 동창을 피하려면 손발이 젖은 상태로 추운 데 오래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따뜻한 의복 착용,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 비타민 복용 등이 도움이 된다. 동상은 영하 2~10℃의 심한 추위에 노출돼 조직이 얼어버려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하며 귀, 코, 뺨, 손가락, 발가락 등에 자주 발생한다. 언 부위는 창백하고 통증이 없지만 따뜻하게 해주면 홍반, 괴사, 물집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며,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투여하고 죽은 조직을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등 증상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피부 건조증은 피부 표면에 있는 지질 부족으로 수분을 공기 중으로 빼앗겨서 피부가 건조한 상태를 말하며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피부가 건조하면 거칠어지며 피부 표면에 비듬처럼 하얀 인설이 일어나게 된다. 심하면 피부가 갈라져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가려움증은 피부를 문지르거나 긁게 만들어 상처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피부 지질의 균형이 깨져서 피부 건조증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가려움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부드럽게 보송보송, 피부 관리 노하우 추운 계절에도 비단결처럼 고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샤워와 목욕의 횟수를 줄이고, 너무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씻는 것이 좋다. 목욕 횟수는 일주일에 2~3회가 적당하고, 거친 때밀이 수건으로 때를 미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순한 비누나 세정 제품을 사용하고, 목욕 후에는 세제가 피부에 남아 있지 않도록 충분히 여러 번 씻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에는 문지르지 말고 가볍게 두드려 닦고, 목욕 후 3분 이내에 보습제나 로션을 바르도록 한다. 또 실내 온도가 지나치게 높지 않도록 과도한 난방을 피하고, 가습기를 사용하거나 자기 전에 실내에 젖은 빨래를 널어서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야외 노출을 피한다. 스키, 겨울 등산 등의 운동을 오랫동안 하는 경우 과도한 일광 노출로 인해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피부색이 검게 변할 수 있으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피부를 보호한다. 셋째, 춥다고 전기난로 앞에 너무 가까이 있거나 피부에 오랜 시간 핫팩을 대고 있는 행동은 피한다. 이러한 경우 그물 모양의 적갈색 반점 및 색소 침착이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이 만성화되면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다. 동상과 동창, 생활 속 꼼꼼 예방법 ➊ 적당한 두께의 양말과 편안한 신발을 착용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말단 부위의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강추위가 아니더라도 꽉 끼는 장갑, 신발, 양말 등은 피한다. 종아리까지 덮는 부츠를 신거나 키높이 깔창, 너무 두꺼운 양말을 신으면 발을 조이거나 꽉 끼게 만들어 발의 혈액 순환을 방해한다. 여기에 땀까지 나면 신발 속의 습도가 높아져 동창 및 동상의 위험이 높아진다. ➋ 신발이나 속옷 등이 젖으면 신속하게 말린다 옷이나 속옷, 양말이 땀이나 물기로 젖으면 바로 마른 옷이나 속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래야 수분으로 인한 체온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 신발이나 장갑이 젖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빨리 젖은 신발과 장갑을 벗고 신속하게 손발을 말려야 한다. ➌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자주 움직인다 추운 곳에 장시간 노출될 때는 수시로 몸을 움직여서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손발이 얼었을 때는 가능한 한 빨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동상이 의심되는 부위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한다. 특히 눈 부위가 얼었을 때는 비비거나 문지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오피니언][타임머신] 프랑스에서 만난 안산 칼바람의 추억

인생은 우연과 선택이 쌓이면서 계속된다. 94학번인 나는 수능 1세대로 시험을 두 번 쳤고,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실망했지만 재수는 싫었다. 딱히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학과는 없었지만, 하기 싫은 것은 분명했다. 법대와 상경대 계열은 몸서리치게 싫었다.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고, 특이한 학과의 이름과 당시 국내에 두 곳밖에 없다는 희소성에 끌려 나는 한양대 안산캠퍼스(이하 ERICA캠퍼스)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했다. 글. 이동섭(광고홍보학과 94) 동문 ERICA캠퍼스의 칼바람과 길카페 ▲ 이동섭 동문이 함께 자취하던 동기와 사진을 찍고 있다. 내 모교는 추위로 기억된다.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입학식을 했던 행당캠퍼스(서울캠퍼스)는 추웠고, 수업을 듣는 ERICA캠퍼스는 몹시 추웠다. 멀리 서해의 바람은 캠퍼스까지 곧장 불어와 3월에도 안산은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학교 건물은 낮고 흩어져 있어 바람을 막지 못했다. 바닷바람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차갑고 날카로워 외투를 비집고 몸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햇빛이 화창해도 몸은 으슬으슬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우리는 ‘칼바람’이라 불렀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왼편으로 추수가 끝난 논이 바닥을 휑하게 드러낸 채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해는 일찍 졌고,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석호상가 지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선배들은 어디서 신문과 종이 뭉치, 나뭇조각 등을 가져와 학교 밖 길거리에서 불을 피워주었다. ‘길카페’였다. 바닥에 앉으면 땅의 한기가 훅 올라오면서 취기를 몰아냈다.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급하게 소주 몇 잔을 마시면 몸이 다시 데워지며 추위가 물러갔다. 취기와 추위를 모두 끌어안고 우리는 작은 모닥불을 피운 채 이야기를 하고, 학과와 동아리 노래 등을 배웠다. 남자 후배에게 인기 많았던 몇몇 선배들은 기타를 치며 각종 요상한 노래를 쉴 새 없이 불렀다. 혼자 부르면 부끄러워도 같이 부르면 신나는 그런 노래들이었다. 온기와 웃음이 가득했던 그 길카페가, 나는 좋았다. 오렌지족의 시대와 도서관 ▲ 이동섭 동문이 자취하던 집 1988년부터 1997년까지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인 듯싶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경제적으로 번영했던 10년이다.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청춘들에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혹은 죄책감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X세대와 오렌지족의 시대였으니, 데모와 나라 걱정은 지나간 유행이었다. 이때의 시대적 명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였다. 대학에 오니, 다른 애들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히 있는 듯 보였다. 당시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나는 초조했다. 무언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친밀하게 굴지 못했던 성격 탓에 공강 시간은 주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을 읽고, 그 가운데 재밌게 본 책의 저자의 다른 책과 그 저자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찾아 읽었다. ▲ 이동섭 동문이 학년 MT로 가평을 갔을 때 '듀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연습하던 모습 독서 리스트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고, 나는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즐거웠다. 도서관에 비치된 거의 모든 주간지와 월간지의 목차를 보고, 관심 있는 기사들은 복사해서 밑줄 치며 읽었다. 탐독은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들로 넓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반 고흐와 에곤 쉴레의 그림, 로버트 프랭크와 디안 아버스의 사진, 장정일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김현의 문학비평과 기형도의 시, 베토벤과 슈만의 음악 등을 알게 됐다. 문화와 예술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작품을 창작할 재능이 없다는 두려움에 선뜻 뛰어들지 못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광고회사가 아닌 미술관에 취직해서 1년 남짓 일했으나,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남들처럼 살았으나 남들처럼 살아지지 않았다. 월급의 쾌감도 무뎌졌고, 소주로도 고민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 5월 1일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 유학과 예술인문학 파리 유학 시절, 4년 동안 맞았던 안산의 습기 찬 칼바람이 그리우면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도시 르아브르(Le Havre)로 가곤 했다. 아이슬란드 너머 북해에서 영국을 거 ▲ '영화로 맺어진 인연(영맺인)'이라는 소모임에 서 영화 촬영 실습을 하고 있는 이동섭 동문 쳐 그곳으로 밀려오는 바람은 차갑고 눅눅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 바람을 맞으며 깨달았다. 지 금의 나는 ERICA캠퍼스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길러진 셈이구나!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나는 파리에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생겼던 듯하다. 그것이 내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추수물이었다. 덕분에 파리에서 10여 년 동안 사진과 현대 무용, 영화와 패션, 미술과 공연 등 여러 분야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시대와 사람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예술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구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방송과 신문에서 예술 작품을 재료 삼아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한편, 대학에서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를 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한대앞역에서 ▲ 학교 앞에서 동기, 후배와 사진을 찍는 이동섭 동문 얼마 전, 내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시고 연락하신 은사님께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부탁하셨다. 졸업하고 약 15년 만에 캠퍼스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상록수역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거나 태화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한양대 학과 잠바를 입은 학생들이 아무도 그곳에서 내리지 않기에 의아했다. 그들을 따라 한대앞역에서 내렸다.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서 다른 도시 같았다. 학교 앞 드넓게 휑했던 논은 모두 건물로 가득했고, 길카페를 했었던 인도는 어딘지 흔적도 없었다. 우리 학과도 내가 다녔던 단과대 건물을 떠나 새로운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변화가 낯설고 아쉬웠으나, 예전의 나처럼 변하지 않은 칼바람을 맞으며 후배들은 꿈을 키우고 있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학생][벤처한대] 푸드트럭으로 첫발 내딛은 생활협동조합 '하이쿱'

‘한양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왕십리? 사자상? 혹은 경사진 언덕? 생활협동조합 하이쿱(HY-COOP)의 노수영 대표는 앞으로 ‘한양대’ 하면 ‘하이쿱’이 떠오르길 희망한다. 지난해 한양대 학생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된 하이쿱은 푸드트럭 프로젝트로 그 첫발을 내딛었고, 현재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협동조합, 그게 뭔가요? 하이쿱은 생활협동조합을 표방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일반 회사의 경우 주식과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자본의 토대를 마련한다. 즉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회조직인 것이다. 이처럼 하이쿱은 한양대 학생부터 교직원까지 학교 구성원 모두의 더 나은 학내 생활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창업 플랫폼을 마련해주는 활동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노수영 대표는 왜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일까? “대부분의 해외 대학은 편리한 대학 생활을 위해 학생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협동조합이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한양대에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마침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노 대표는 여러 학과에서 친구들을 모아 하이쿱을 만들게 됐다. 협동조합의 명칭은 한양의 이니셜인 ‘HY’와 협동조합을 의미하는 ‘Cooperative’를 합친 하이쿱(HY-COOP)으로 정했다. 현재 하이쿱은 학생 복지 증진 조합으로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의 더 많은 의견을 듣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 하이쿱 노수영 대표(경영학부 14) 하이쿱의 첫 프로젝트, 푸드트럭 하이쿱은 지난해 4월 첫 총회를 갖고 약 한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설립됐다. 하이쿱이 선택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푸드트럭이다. 트럭을 개조해 조리시설을 갖추고 야외에서 음식을 파는 외식 사업의 한 형태인 푸드트럭 사업에는 노수영 대표의 대학생으로서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푸드트럭 이외에도 구상해 놓은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밥’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때가 많을 거예요. 여러 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특히 식생활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드트럭의 핵심인 트럭은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트럭을 확보하고 트럭 운영 방식을 정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쿱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노 대표는 고심 끝에 푸드트럭의 오픈 시기를 지난해 봄 대동제로 결정했다. “푸드트럭이 갑자기 캠퍼스에 등장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목받을 만한 큰 행사를 찾다가 학교 축제를 떠올렸습니다.” ▲ 노수영씨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 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라 말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하이쿱의 트럭 두 대와 외부 트럭 세 대를 합쳐 총 다섯 대의 트럭을 축제 기간에 운영할 수 있었다. 이후 하이쿱 푸드트럭은 지난해 6월부터 생활과학대학 앞에서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푸드트럭의 오픈은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그간의 준비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 대표는 푸드트럭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푸드트럭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과 마케팅, 그리고 조합원 모집을 꼽았다. “푸드트럭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지난 2학기에도 오픈 일주일 전에야 겨우 인력을 구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아직까지 저희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지난 2학기에는 조합원 가입이 채 20명이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한양인에 의한, 한양인을 위한 기업 노수영 대표는 식생활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로 통학 불편을 꼽는다. 캠퍼스 내에 언덕이 많아 한양대역에서 강의실까지 가는 데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내 셔틀버스 운영을 계획 중이다. 교내뿐만 아니라 왕십리역에서 한양대까지도 셔틀버스를 운영해 학교 구성원의 편안한 학내 생활을 도울 예정이다. 이르면 올 1학기부터 만날 수 있다. “하이쿱은 아직까지 그저 음식을 팔고 수익을 내기 위해 들어온 푸드트럭 운영자 정도로만 학생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다른 활동 없이 푸드트럭만 운영하다 보니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노 대표는 앞으로 하이쿱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길 기대할까? “외부에서 볼 때 한양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이쿱도 이러한 한양대의 이미지처럼 기존 대학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협동조합을 운영해서 학생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대학 생활에 필요한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하이쿱은 수익금의 일부를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노 대표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혹은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며 아직까지 푸드트럭 이미지가 강한 하이쿱이 생활협동조합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하이쿱의 활동이 보다 나은 한양인의 생활을 이끌어가길 기대해본다. '하이쿱' A to Z what 하이쿱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하이쿱은 학생들의 더 나은 대학 생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협동조합입니다. 대학 생활 증진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활동의 범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why 왜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나요?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학과 잠바의 경우, 5~6만 원 선에서 구입하게 되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가격입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을 고려해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 양이 부족하고 질도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학생들끼리 풀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저희가 직접 운영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인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How 어떻게 하이쿱을 이용할 수 있나요? 하이쿱이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참고하시거나, 이곳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For Whom 하이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하이쿱의 목표는 한양대 구성원의 복지 증진이고, 저희의 수익은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이쿱은 곧 한양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지요. Where 하이쿱에서 운영하는 푸드트럭은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생활과학대 앞에서 두 대의 푸드트럭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4,000원 대의 볶음밥 종류를 판매하고 있고, 카페 형식의 다른 한 곳에서는 샌드위치 2,500원, 음료 1,500~2,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Who 누가 하이쿱을 운영하고 있나요? 한양대 학생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하이쿱에 참여하고 싶거나 교내에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실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학생][동고동락] 로봇공학과 1기 활약 알리는 신호탄을 쏘다

지난 2013년 신설된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프리라이더 팀 학생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글. 이주비 / 사진. 안홍범 끝까지 노력했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린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지능형 SoC 로봇워’ 분야 중 휴로 컴피티션(HURO-Competition) 종목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휴로 컴피티션 부문은 로봇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로봇이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을 입력받아 사람의 조종 없이 스스로 장애물 미션 경기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로봇공학과 1기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대회 수상을 목표로 지난해 3월 의기투합해 프리라이더를 결성했다. 프리라이더 팀의 김민지 학생은 “저희가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대회를 준비해왔지만 사실 우승할 수 있을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며 “대회 첫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 겨우 예선을 통과했기 때문에 수상 자체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다음 날 본선에서 기대보다 결과가 좋아 너무 기뻤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김효정 학생은 “이번 수상으로 로봇공학과에 진학해서 4년 동안 배운 것들에 대한 보답을 받은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프리라이더 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민준 학생은 “저 역시 첫째 날인 예선에서는 수상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예선에서 4등으로 겨우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본선이 열리는 다음 날까지 숙소에서 팀원들과 밤을 새가며 로봇에만 매달렸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려서 처음부터 많은 점수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때 우승을 확신했습니다.” ▲ 로봇공학과 13학번 '프리라이더' 팀원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하지수, 최민준, 김민지, 천회영, 김효정, 황순근 학생 이번 대회에서 프리라이더 팀이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보완’이다. 이에 대해 최민준 학생은 “10월 본 대회에 앞서 8월에 일종의 연습 대회가 있었는데, 이때 로봇이 느리지만 정확하게 갈 수 있는 데 집중했다”며 “본 대회에선 이를 좀 더 보완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갈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주효했다”고 전한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프리라이더’ 프리라이더 팀 구성원들은 모두 졸업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그들은 로봇공학도로서 어떤 것을 꿈꾸고 있을까? 하지수 학생은 “우리나라 로봇 연구가 좀 더 심도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황순근 학생은 “로봇이 사람을 도와주는 도구로서, 가능하면 몇몇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학생은 “지금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듯이 언젠가는 로봇이 스마트폰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앞으로 사람들의 일상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천회영 학생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로봇을 꿈꾸고 있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서처럼 자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고, 인간과 더불어 자연에도 이로운 로봇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민준 학생은 예전에 어디선가 봤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이 진정한 기술이다’라는 글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요. 이 문장처럼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는 물론 우리나라 로봇공학계의 앞날을 이끌어갈 ‘프리라이더’ 구성원들. 다양하고 희망 찬 포부만큼이나 그들이 앞으로 로봇공학계에서 펼치게 될 활약이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교수][시선집중] 세계적인 담론의 장에 한 목소리를 당당히 울리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은용수 교수의 저서 <국제관계학에서의 다원주의와 이론적 관여>가 영국 팔그레이브 맥밀란과 독일 스프링거에서 공동 발간됐다. 두 출판사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학술 출판사로, 저서 발간은 학자로서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 것이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의 학자들이 이들 출판사에서 저서가 출판되면 특별 승진이 되기도 하고 석좌교수직을 보장받기도 한다. 글. 박영일 / 사진. 안홍범 저명 출판사에 새로운 시각 제시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 학술적 논의를 펼치는 담론의 장에 저도 동참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두 출판사 모두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출간을 원하는 곳인데, 이렇게 발간하게 돼 뿌듯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70년 전통의 ‘팔그레이브 맥밀란(Palgrave Macmillan)’은 인문사회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들이 저서를 출판하는 곳으로, 20개가 넘는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사회과학 논문인용 색인) 인문사회과학 저널도 보유하고 있다. 영미 학자들은 팔그레이브 맥밀란에 자신의 저서가 출판되는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명한 출판사에서 영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변부인 아시아, 그중에서도 작은 나라 한국의 학자가 단독으로 저서를 출간하게 됐으니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은용수 교수가 이러한 영광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3년 전부터 팔그레이브 맥밀란에 출판기획안을 보내 문을 두드린 은 교수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과 경쟁하며, 까다롭기로 유명한 팔그레이브 맥밀란의 심사를 당당히 통과했다. 연구를 시작한 처음 단계에서부터 은 교수의 주장이 여러 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저술 작업에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논리를 더욱 가다듬고 깊은 철학적 논의를 만들어내 결국 최종 심사 단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출판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심사에 참여한 학자로는 세계 3대 국제정치 이론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웬트(Alexander Wendt) 교수, 국제정치 페미니즘이론의 대가인 앤 티크너(Ann Tickner)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완성된 은 교수의 저서는 2016년 10월 <국제관계학에서의 다원주의와 이론적 관여(Pluralism and Engagement in 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표제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미국국제정치학회 티비 폴(T.V. Paul) 회장은 서양과 비서양, 실증주의와 비실증주의의 가교 역할을 하며 국제정치학의 진정한 국제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저서라고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이어 은 교수의 원고를 보고 독일의 ‘스프링거(Springer)’에서 공동 출간을 제안했다. 스프링거는 물리, 화학, 의학, 경제학 노벨상 수상자 200여 명의 저서와 논문을 출판하는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 출판사인데, 과학적 지식 발전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은 교수의 저서를 높이 평가했다. ▲ 은용수 교수(정치외교학과) 진정한 다원성을 위한 작은 도전 이렇게 세계적인 출판사들이 은용수 교수의 저서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대부로 불리는 미셀 푸코는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으로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이며, 제도와 장치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주장했다. 미셀 푸코의 주장을 이론적 기반으로 디디고 있는 은 교수의 이번 저서는 영미 중심의 소수 주류 학자들에 의해 패권화된 국제정치학계에 의미 있는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진정한 다원화를 촉구하며 지성적 성찰을 요구했기에 저명한 출판사의 공동 발간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미 냉전 이후 학계에는 다양성이 확보됐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이론과 연구방법론이 등장하고, 학제적 연구 풍토에 의해 양적으로 다원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은 교수는 본질적으로 다원화됐다고 할 수 있는지 집요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다양한 이론과 방법론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어떠한 이론과 방법이 과학적인가에 대한 규정은 과거와 동일한 실증주의 인식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과학철학에서는 정당성이 무너진 인식론입니다. 그럼에도 정치외교학 등 사화과학에서는 여전히 과학적 연구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수의 영미권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판단 기준을 다수의 전 세계 지식행위자들이 출판, 강의, 논문 지도 및 심사 등의 지식사회적 활동을 통해 재생산하면서 실증주의 자체가 일종의 권력이 됐기 때문입니다.” 은 교수는 저서에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얼마나 많은 이론과 방법들이 학계에 ‘등장’했는지가 아니라 그것들이 실제로 ‘실천’되고 있는지, 나아가 그것들의 기반을 이루는 인식과 존재론은 얼마나 다양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 학계가 매우 편협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식생산체제를 만드는 행위자들이 성찰적 다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을 생산, 소비, 공유하는 자가 아니라 지식의 ‘규범적’ 패권이나 패러다임을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기적인 행위자입니다. 이를 깨달으면 지금의 편협한 지식생산구조의 생성 및 유지에 스스로 얼마나 기여해왔는지를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지식인은 다른 사회행위자들보다 정치경제적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자율적 행위자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말로만 외쳤던 다원성을 실천할 수 있는 동기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은용수 교수는 "앎의 기회를 확장해주면 학생들 의 사고가 더욱 창의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연구하게 됩니 다."라고 말한다. 주류 언어로 지속적인 말 걸기 물론 다원화는 이론과 이론, 시각과 시각의 충돌로 결국 학문적 파편화를 야기해 지식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 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류 언어로 말 걸기’다. 주류의 언어와 개념을 사용해야 주류에 속해 있는 이론가들의 관심을 끌고, 다르게 보기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의 언어를 사용하면 주류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주류의 정체성을 흔들기 위한 전략적 사용입니다. 라이팅백(되받아쓰기)을 통해 그들의 언어, 개념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은 교수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출판사나 학술지에 꾸준히 원고를 투고하는 것도 주류 언어로 말 걸기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은 교수는 팔그레이브 맥밀란과 함께 사회과학 출판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루틀리지(Routledge)’에서 ‘아시아에서의 국제정치 이론과 실제’라는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 중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의 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취지를 설명, 기획에 동참시키고 1년 넘게 루틀리지를 설득한 끝에 시리즈의 편집장을 맡았다. 지난해 출간된 첫 번째 책을 필두로 10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발행할 계획이다. “아시아 시리즈라고 해서 서양과 비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 영어권 학자들의 이론, 사상만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서양, 즉 주변으로 내밀려 있는 이론과 사상, 역사적 경험을 체계적으로 담아내는 게 시리즈의 목적입니다.” 실천하는 유기적 지식인 지난해 은용수 교수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팔그레이브 맥밀란 및 스프링거의 공동 출간과 루틀리지의 아시아 시리즈 출판 외에도 국제학술대회를 기획하고, 세계정치학회의 SSCI 학술지 <IPSR(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Review)>에 연구 논문도 발표했다. 세계 4대 무크(MOOC, 온라인 공개 수업) 제공업체인 영국의 ‘퓨처런(Future Learn)’에 참여해 영어 강의도 진행했다. 게다가 학과장까지 수행하고 있어 하루 24시간이 빠듯한 나날이었다. 그래서 은 교수에게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연구 시간이자 연구실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편입니다. 지하철을 애용하는데, 특히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처럼 은 교수의 왕성한 연구 활동의 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학생들에게서 열정을 얻는다고 답한다. “앎의 기회를 확장해주면 학생들의 사고가 더욱 창의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연구하게 됩니다. 기존 담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독자들이 제 글을 재미있게 읽기를 바랍니다.” 출판을 통해, 그리고 교육 현장인 강의실에서 스스로 유기적 지식인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은용수 교수.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비주류 목소리들이 중심부에서 제 소리를 울릴 수 있도록 지식 담론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꿈꾸는 청춘]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지난해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정치외교학과 이한결 학생은 도전을 해야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을 만나 예비 공직자로서의 당찬 포부를 들어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이한결(정치외교학과 10)학생 예비 공직자로서의 다짐 공무원에 임용되면 공무원 선서문을 낭독하는데, 선서문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흔히 공무원은 국가와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에서 ‘공복(公僕)’이라 일컬어진다. 그 어떤 직업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사명감을 요구받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공복의 자세를 다져야 할 것이다. 2016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간명하게 발신하는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에게 돌아갔다. 그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은 구직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효율성과 원칙만을 내세우며 매뉴얼을 고수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의 부조리함은 보는 이들을 참담하게 만든다.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인간이 배제된 것이다. 이 영화는 대민 행정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무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직자가 되면 복지부동의 태도를 경계하겠습니다. 면접을 준비하며 선배 공직자분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앞으로 민원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소위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이한결 학생의 다짐이다.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도전 지난해 11월 9일은 제60회 국가직 5급 공채의 일반행정직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그 전날부터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한결 학생은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정확히 오전 9시 18분 전, 꿈에 그리던 합격 문자를 통지받았다. 가장 먼저 부산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는 이한결 학생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렸다.“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바라던 공직을 맡게 됐다는 기대감과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낸 저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었습니다.” 합격 문자를 다시 받은 듯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전하는 이한결 학생. 모든 시험이 그렇듯 국가시험을 준비한 지난 3년간의 시간은 그 누구도 대신 치러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람된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으로 공직자의 길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군 복무 중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심사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았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이한결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조언한다. 1차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복학에 앞서 소위 행정고시준비반이라 불리는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에 입반한 그는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급적 많은 문제를 풀어보라고 조언한다. “답안지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어떻게 구성해야 좋은 답안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즉 논쟁마다 상충되는 가치가 충돌하는데 각각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와 주장의 근거를 면밀히 살핀 뒤 현재 사회에 보다 타당한 가치와 저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한결 학생이 평소 자신의 주관과 가치를 축적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시험반 스터디 모임에 멘토로 참여해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점검해주고 있는데, 이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문제의 논쟁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주장의 근거를 분명히 제시했는지 조언해주고 있다. 지난 2014년 여름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한결 학생은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 장학금 제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워낙 학교의 지원이 탄탄해서 경제적 걱정은 한시름 놓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 평가 시험, 합격한 선배님들의 면접 특강과 모의 면접에서의 세심한 멘토링 등 물심양면으로 학교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 활기찼던 대학 생활 국가시험 수험생이라고 하면 잠잘 때를 빼고는 좌우가 막혀 있는 갑갑한 도서관 책상에서 꼼짝 않고 책만 파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한결 학생의 대학 생활은 그 어떤 학생보다 활기찼다. 1학년 때부터 학년 대표를 맡았던 그는 학과에서 진행하는 MT, 농촌 활동, 축구대회 등 각종 행사에 빠진 적이 없다. 이렇게 열심히 학과 생활에 참여한 이유는 부산에서 올라와 시작한 낯선 서울 생활에 선후배 및 동기들이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모의국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서울 지역 8개 대학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친목을 다지는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인권논문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국가시험반 동기와 KTV 국민방송의 <정책 퀴즈왕>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500만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한결 학생은 그동안 받은 장학금을 되갚는다는 의미에서 상금의 일부를 사회과학대학에 기부했다. 이렇게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열심히 즐긴 덕분에 손에 꼽는 추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중간에 친구들과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올린 인권논문대회 참가 경험과 모의국회 행사를 준비하며 14학번 후배들과 두 달간 동고동락했던 일 등 모두 성취감이 컸습니다. 다른 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교류를 트기 위해 축구대회를 개최한 일도 보람 있었고요.” 활발한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활력과 위안은 수험 생활 중간중간 용기를 앗아가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자칫 공부에만 치우쳐 학과 생활이나 교우 관계, 일상적 삶이 훼손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했다. 2월이면 정든 교정을 떠나는 그는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조언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시간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외로움을 참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시간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어울리고,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 효율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전환기에 보탬이 되는 공직자가 꿈 구조적으로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우리 사회의 성장 모멘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최근 이한결 학생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회적 화두다. “저출산이나 양극화, 사회적 갈등도 모두 저성장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미국, 일본의 혁신 사례 등을 참고해 구조 개혁을 이뤄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는 그는 국가적 위기에 당면했을 때야말로 공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려면 평소 선견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그는 이를 위해 늘 열린 자세로 새로운 사고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원의 목소리에 경청하면서 말이다. 우리와 약속한 이한결 학생의 초심이 앞으로 걷게될 공직자의 길에서 나침반으로 바르게 작동하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人사이드人터뷰] 즐겁게 노래하고 꿈꿀 수 있어 행복해요

성악가 조찬희 씨가 지난해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열린 제67회 비오티 국제 콩쿠르 성악 부분에서 최연소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우승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내기 성악가의 꿈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홍승진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쾌거 ‘비오티(Viotti) 국제 콩쿠르’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반니 비오티를 기리는 대회다. 유엔에서 지정한 콩쿠르로, 음악가라면 누구나 알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미렐라 프레니를 비롯해 소프라노 조수미와 송광선, 테너 홍성훈이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 조찬희 씨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더욱이 출전 당시 23세(한국 나이 25세)로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더욱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DVD와 이력서로 사전 심사를 거쳐 지원자 400명 중 70명이 선발됐습니다. 지난해 7월, 사전 심사 합격을 통보받은 후 약 석 달간 본격적으로 콩쿠르를 준비했어요.” 1·2차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그는 결선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베르디의 ‘돈 카를로’를 불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조찬희 씨는 콩쿠르 우승 비결에 대해 “꾸준히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자신의 영역대와 캐릭터에 맞는 곡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귀띔한다. “심사 결과를 발표할 때 화면에 참가자의 이름과 점수가 뜨는데 그때 무척 짜릿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내가 정말 입상한 게 맞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기쁘고 꿈인가 싶어요.” ▲ 조찬희 (성악과 12)씨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라는 극찬을 받다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는 각 분야의 상에 이름이 붙는데, 조찬희 씨가 수상한 1등상은 ‘Joseph Robbone’이다.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고, 상금과 함께 제노바의 카를로펠리체극장에서 데뷔할 자격이 주어진다. 공연 날짜를 묻자 “2016~2017년 시즌 일정이 나오지 않아 아직 정확한 날짜를 받지 못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흔히 테너와 바리톤에 비해 베이스는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음은 노력과 발성으로 낼 수 있지만 저음은 한계가 있어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것. 특히 한국인의 특성상 베이스가 많지 않은데, 이번 콩쿠르에서 크리스 메이트 심사위원장은 그에 대해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하지 않게 곡을 표현해서 ‘타고난 소리인가?’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역시 한 음 한 음 소리를 공부하면서 작곡가의 표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기성 성악가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고 저만의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오페라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양부모의 사랑과 지원 아래 성악가로 성장 성악가에게 콩쿠르 수상 경력은 큰 이력이 된다. 특히 국제 콩쿠르는 18세부터 32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어 실력 있는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조찬희 씨가 처음으로 준비한 국제 콩쿠르는 툴루즈 국제 콩쿠르였다. 2차 예선에서 떨어진 그는 심기일전해서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 출전, 두 번째 도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의 국제 콩쿠르 출전은 성악을 전공한 부모님의 권유가 컸다. “재학 중에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많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대개 졸업을 앞두고 또는 졸업 후에 많이 도전합니다. 저 역시 지난해 2월에 졸업하면서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조찬희 씨의 성악 입문은 부모님과의 남다른 인연에서 비롯됐다. 사실 그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다. 그는 중 3때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고, 현재 생활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부친과 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 중인 모친이 그에게 예고 진학을 권유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성악을 공부했고, 2~3개월간의 집중 훈련 끝에 고양예고에 수석 입학하는 기쁨을 누렸다. 대학교 입시 때까지 바리톤이었던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베이스로 전향했다. 나이가 들고 목소리가 성숙해지자 부모님이 베이스를 추천한 것이다. 그러니 그가 베이스를 한 지는 이제 겨우 3년여 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베이스가 제 성격과 잘 맞아요. 진지하고 묵직한 느낌이 좋고, 노래로 곡을 표현할 때도 제 마음에 더욱 잘 와 닿습니다. 배역이나 역할에 대한 이해도 더 쉽게 되고요.” 대학 진학 후에는 학업에 매진, 지난해 평점 4.0으로 총장상을 받으며 졸업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삶은 지금의 부모님을 만나 송두리째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과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양부모님을 만난 건 제게 정말 큰 행운이에요. 좋은 환경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니까요.” ▲ 조찬희씨는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 대에서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한다. 노래는 곧 삶이고, 평생 즐겁게 함께할 동반자 성악가에게는 자기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조찬희 씨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늘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꾸준히 운동하시고, 겨울에는 항상 스카프나 목도리로 목을 보호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잘 먹고 잘 자는 등 몸 관리에 철저하세요. 그리고 공연 전날에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하시고요.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라.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도전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롤모델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어머니’를 꼽는다.“존경하는 분들이 많지만, 제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분은 지금의 어머니입니다. 친자식이 아닌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으니 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성악가로서 학생을 지도하실 때도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방법을 바꿔서 그 학생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치시죠. 엄마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항상 격려해주세요.” 아직은 햇병아리 예술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조찬희 씨. 그는 당분간 국제 콩쿠르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세계적인 베이스 성악가가 되어 모두가 인정하는 무대에서 한국 성악가로 서고 싶다는 조찬희 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항상 노래를 생각한다는 그는 이렇게 즐겁게 노래하며 자신의 삶과 꿈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그의 꿈이 하루 빨리 실현되길 바라며, 아침마다 늘 그를 격려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빌려 응원의 말을 전한다. “멋있게 하고 오세요. 당신이 주인공이니까요.”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