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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5 인터뷰 > 교수

제목

`한양레퍼토리` 창단 통해 개성파 배우 양성한다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32

이세형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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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gjUcB

내용

 '한양레퍼토리' 창단,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 양성

 희곡작가 양성ㆍ연기파 위한 지침서 집필 계획

 

최형인 교수 (인문대 연영과) 

 

 흔히들 인생을 곧잘 연극에 비유한다. 이는 아마도 수많은 '상황(무대)'속에서 무수한 '사람(배우와 관객)'들을 만나 '말(대사)'을 소비하고, '행동(연기)'을 연출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 연극이라는 장르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연극이 곧 인간의 삶을 무대라는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설명이 오히려 정확할 듯 싶다. 현대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 가운데 연극처럼 인류의 삶과 오랜 세월을 같이한 것도 드물다. 고대 희랍의 여러 희곡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연극은 현대 대중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기실 연극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오락성과 대중성을 지닌 매체가 등장하면서 연극은 관객에게는 '재미없고', 연기자들에는 '배고픈' 장르로 인식된지 오래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인문대 연극영화과(이하 연영과) 최형인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명이다.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겠지만 연극은 단순히 무슨 문화정책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서 클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고, 일반인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서 스스로 연극 공연장을 찾아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뿌리가 너무 약합니다."

 

 

 '한양레파토리' 창단해 연기파 배우 양성

 

 최 교수는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 연영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한다. 연극에 애정과 자질이 있는 연기자와 연출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물론 돈이 안 되는 비상업적인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연영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 교수가 대표로 활동중인 극단 '한양레파토리'는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한양레파토리'는 대학의 연영과에서 만든 최초의 극단이며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교수가 동시에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 숨쉬는 '교육무대'이기 때문이다.

 

 '한양레파토리'는 최 교수가 미국 뉴욕대에서 유학하던 중 보았던 'Yale Repatory Company'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예일대 연극인 출신들로 이루어진 이 극단은 많은 연극인들을 배출했으며, 다양한 공연을 통해 미국내에서 상당한 명성과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예일레파토리'에 깊은 인상을 받은 최 교수는 본교로 부임한 후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한양레파토리'를 탄생시켰다.

 

 최 교수에게서 엄격한 연기지도와 뜨거운 연극사랑을 사사받은 제자들은 연극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설경구, 유오성, 박광정, 권해효, 전수경 등과 같이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배우들이 모두 최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개성이 뚜렷한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파 배우'들이다.

 

 무대 떠난 삶 상상할 수 없어 … 희곡작가 양성 계획도

 

   
 

 최 교수는 '한양레파토리'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연출은 물론 직접 배우로 참여하기도 한다. 제자들과 직접 호흡을 맞추며 연기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자연스레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1년에 한번씩은 꼭 무대에 서고 있다. 지난해 9월 공연한〈러브레터〉에서는 주인공역을 맡았다. 무대를 떠난 최 교수는 상상할 수 없다.

 

 "저는 결국 현장에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또 교수이기 이전에 연극인입니다. 대학 교수의 당연한 의무인 논문을 쓰는 것보다는 저는 무대 위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무대 위에서 어느 위치에 있던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제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연극 여건은 앉아서 논문만 써도 괜찮을 정도로 좋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도 연구지만 직접 참여해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태도가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고 봅니다."

 

 연극 교육과 관련해서 최 교수는 아직 한 가지 못 이룬 꿈이 있다. 바로 희곡작가이다. 최 교수는 자신이 연기인과 연출인을 양성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희곡작가는 길러내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희곡작가를 길러내는 작업에는 아직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릴 것으로 최 교수는 예상하고 있다. 물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세계명작들을 공연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

 

 브레히트 대한 그릇된 인식 바로잡은 일 보람

 

   
 

 최 교수는 본교에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지난 1990년 학과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연극〈사천의 착한 여자〉를 연출한 것을 뽑는다. 학생들과 어울려 연극에 참여한 것도 좋은 추억이지만 최 교수 개인적으로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를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알린 계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브레히트의 작품들은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지적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시됐었다. 또 브레히트가 극작가보다는 사상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사천의 착한 여자〉를 통해 최 교수는 브레히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브레히트의 작품을 재미있고, 즐겁게 또 예술미가 넘치는 연극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연극에는 휴머니티가 살아있어야 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념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휴머니즘적인 요소들을 연극에 반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사천의 착한 여자〉를 연출했습니다. 또 관객들을 재미있고,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연극의, 연극에 의한, 연극을 위한 삶

 

   
 

 현재 최 교수가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연기자를 위한 지침서 개념의 교과서를 쓰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최 교수는 원래 연기란 직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연기와 관련된 책을 보는 걸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연기와 관련된 사항들을 모두 담은 교과서의 필요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왕이면 자신이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올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자꾸 늦어지고 있다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최 교수의 얼굴에서 연극과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묻어났다.

 

 "돌아가신 배우 이낙훈씨가 제 외삼촌이예요. 어려서부터 저와 굉장히 친했고, 외삼촌 덕에 연극을 비롯한 공연을 볼 기회가 굉장히 많았죠. 또 안목도 키웠고요. 대학에서도 처음에는 다른 전공을 공부하다 연극이 너무 좋아 결국은 연극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떤 일이든 계기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간애가 넘치는 성품을 가진 학생 그리고 연극인들을 계속 길러내고 싶습니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약력 및 경력

1972 St. Joseph's College 문학사(불문학 전공)
1974 American University 무대공연 학사
1979 New York University 예술전문 석사
인문대 연영과 교수. 극단 한양레파토리 대표

 

주요 출연작
연극〈나비처럼 자유롭게〉,〈 봉숭아 꽃물〉,〈수족관 유령〉,〈러브레터〉,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

주요 연출작
연극〈사천의 착한 여자〉,〈한 여름밤의 꿈〉,〈핏줄〉,〈다이닝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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