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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30

[교수]이리형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신임회원으로 선출

이리형 명예교수가 7월 29일 열린 대한민국학술원 총회에서 신임회원으로 선출됐다. 새로운 회원은 건축공학 분야 이 교수를 비롯해 정치학 분야 신명순 연세대 명예교수, 병리학 분야 박성회 서울대 명예교수, 역사·과학사 분야 김영식 서울대 명예교수, 분자생물학 분야 임정빈 순천향대 석좌교수, 의학 분야 이명식 연세대 교수로 총 6명이다. 학술원 회원은 분야별 학술단체가 저명하고 권위 있는 후보자를 복수로 추천하면 심사위원회 심사와 총회 승인을 거쳐 최종 선정된다. 회원은 '대한민국학술원법'에 따라 평생 회원의 지위를 누리고, 학술연구 활동과 관련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정원은 인문·사회과학부 75명, 자연과학부 75명이다. 회원증 수여식은 8월 7일 오후 2시 서초구 학술원 중회의실에서 열린다. 한편 이 교수는 1964년 한양대 건축공학을 졸업한 후 1977년 본교 교수로 임용, 30여 년동안 학생을 가르치며 연구개발담당 부총장과 서울캠퍼스 부총장을 역임했고 2005년에는 전국대학 부총장 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63빌딩 구조설계를 담당한 것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처정책 자문위원, 감사원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청운대학교 4대 총장을 지냈다.

2020-02 18

[동문]김근경 동문, 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부문장 선임

김근경 동문(건축공학 77)이 17일 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부문장에 선임됐다. 국제핵융합실험로는 핵융합에너지 대량 생산 가능성 실증을 위해 7개국이 공동으로 개발·건설·운영하는 실험로이다. 김 씨는 건설부문장으로 2025년 국제핵융합실험로 장치 완공을 위해 필요한 건설업무를 총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건설부문장에는 7개 회원국에서 총 77명의 전문가가 지원했다. 그중 약 40년 동안 국내외 다수의 원전 건설‧설계 경험, 프랑스‧중국‧미국 등 근무를 통해 쌓은 국제적 감각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김 씨가 최종 선임됐다. 김 씨는 "국내 원전 건설 참여로 쌓아 온 경험과 기술을 인류의 미래에너지 개발을 위한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국내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적기에 최고의 품질로 국제핵융합실험로가 완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19-04 25

[동문]신경재 동문, 한국강구조학회 제16대 회장 선출

▲신경재 동문 (사진= 건설경제) 신경재 동문이 한국강구조학회 제16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신 동문은 평의원(대의원) 선거에서 최다표를 얻어 신임 회장으로 뽑혔다. 임기는 2년. 신 동문은 한양대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건축공학전공 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경북대 건축공학전공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89년 설립된 강구조학회는 포스코 등 제강회사와 건설회사, 설계회사, 강구조물 제작회사 등 180여개사와 7000여명의 개인회원이 참여하는 전문학술단체다. 건설용 강재의 생산, 강구조물의 설계, 제작 및 시공, 유지관리에 필요한 강구조설계기준과 표준시방서를 제정, 관리하고 있으며 강구조 기술향상을 위한 연구 활동을 주도하고 강구조물의 확대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03 26

[동문]곽홍길 동문, 건설기술인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

▲곽홍길 동문 (사진= 건원엔지니어링) 곽홍길 동문이 ‘건설기술인의 날’을 맞아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건설기술인협회는 지난 3월 25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건설기술인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9 건설기술인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곽 동문은 40여 년간 건설사업관리(CM) 분야에 몸담으며 건설산업의 발전과 해외시장 진출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해 금탑훈장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건원엔지니어링은 곽 동문이 1984년 설립한 기업으로 CM 및 감리업무를 하고 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곽 동문은 1976년 대한주택공사(현 LH) 건축부를 거쳐 1984년 건원건축을 창업했다. 이후 그는 CM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해 건축설계를 담당하는 건원건축에서 건원엔지니어링을 분사했다. 2017년에는 국내 최초로 건축설계 부문에서 매출 1000억원(건원건축과 건원엔지니어링 매출 합계)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건원엔지니어링은 공공시설과 의료, 문화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왔다. 국내에서는 인천국제공항, 2002 월드컵경기장, 서울시청사, 미군기지 이전 사업같이 굵직한 건설사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 건설사업관리(PMC),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페라 극장 CM 용역 등 해외 시장에서도 활발한 수주 활동을 해왔다.

2018-07 16

[교원활동브리핑][세계일보] '건축 안전법 등의 제반장치 새롭게 논의되어야' 코멘트

7월 16일자 <세계일보>에서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고층아파트에서의 물건 투척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창식 한양대 교수는 "사고가 계속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전의식에 대한 교육이 최우선이지만 발코니 확장 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등 제반장치를 논의할 때가 왔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180715002285

2018-03 15

[동문][사랑의 릴레이] 끝없는 배움과 나눔의 길, 삶을 꽃피우다

미국 회계법인 ‘리어카운턴시그룹(The Lee Accountancy Group)’의 이종혁 대표에게 지난해 11월 20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뜻 깊은 날이었다. 이날 이 대표는 한양대 건축공학부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올해로 입학한 지 꼭 60년이 된 그에게 이 졸업장의 무게와 의미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리어카운턴시그룹 대표 이종혁(건축공학과 58) 동문 건축공학부 졸업장 받은 공인회계사 “제가 입학했을 당시 건축공학과 입학 정원이 50여 명이었어요. 건축공학과에서 3년 공부하고 공업경영학과로 전과해 졸업했으니 정작 공업경영학과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이 대표는 당시 건축공학과 친구들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번에도 도착하자마자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졸업장을 받은 이 대표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나도 이제 건축공학과 졸업생”이라고 말하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학위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학위만도 다섯 손가락이 꽉 찰 정도니 말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받은 공업경영학과 학사와 경영학과 학사, 미국에서 세법과 회계학으로 받은 두 개의 석사에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그에게 건축공학부 명예 졸업장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열아홉, 스무 살에 만난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을 아직까지 만나는데, 졸업장이 없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늘 허전함이 있더라고요. 뭔가 위축된 기분도 들었고요. 이제야 제대로 된 졸업장을 받았으니 좋을 수밖에요. 하하.” 그런 기쁨과 고마움의 표현이었을까. 이 대표는 졸업증서 명예 수여식 자리에서 한양대에 발전기금 4만 달러 기부를 약정했다. 1년에 1만 달러씩, 4년에 걸쳐 총 4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귀소본능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는 한국의 모교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저를 키운 곳이잖아요. 한양대에 다니는 탈북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후배들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 ▲ 가지고 있는 걸 나누면 자신의 생각과 사랑이 더 크게 빛을 발한다고 말하는 이종혁 대표 소외 계층을 위한 다양한 나눔 활동 이종혁 대표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다양한 봉사 활동과 기부를 펼쳤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으로 미국 오클랜드시 정부와 함께 개최하는 ‘오클랜드 추수감사절 만찬’을 꼽을 수 있다. 저소득층 주민들과 노숙자 등을 포함해 2,500명가량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공연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는 26년간 이 행사를 진행하며, 만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부터 봉사 인력을 채용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도맡았다. “2016년까지 회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후임자에게 넘겨줬습니다. 북캘리포니아에서 그렇게 크게 행사를 연 건 처음일 거예요. 한국인을 주축으로 한 유일한 행사이기도 하고요. 덕분에 한국인들의 단합에도 큰 역할을 했지요. 워낙 오래된 행사라 꾸준히 참여하는 봉사자와 기부자가 많습니다.” 이 행사에는 한국인 외에도 백인, 흑인, 멕시칸, 중국인, 베트남인 등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이 함께한다. 그들과 한데 힘을 합쳐 행사를 완성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04년 제리 브라운 당시 오클랜드 시장(현 캘리포니아 주지사)은 3월 5일을 ‘이종혁의 날(Jong H. Lee Day)’로 공표한 바 있다. 소외 계층을 위해 꾸준히 만찬을 개최하고, 여러 인종을 화합시키는 가교 역할을 한 것에 대해 인정받은 것이다. 이 대표의 사랑의 실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만찬 행사 외에도 기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조성에 힘쓰고 있다. 미국의 모교에 매년 15,000달러씩 기부하고 있는데, 장학금 기부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부금도 커져 학생당 500달러씩 지급하던 장학금이 2016년에는 2,000달러까지 늘었다. 이종혁 대표가 기부와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제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어요. 다섯 살이던 1945년에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6・25 전쟁 때 가족을 다 잃고 혼자서 자랐어요. 제가 배고파 봤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주변의 어려운 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어렵고 고됐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걸까. 그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면 기분이 참 좋아요.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꼭 내 것만은 아니거든요. 혼자 가지고 있으면 작게 쓰여지지만, 그걸 나누면 자신의 생각과 사랑이 더 크게 빛을 발하죠. 기부는 가진 게 많아야 하는 게 아니에요. 재벌이 큰돈을 내는 것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기부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로 그때 시작해야 합니다.” ▲ 지난해 11월 한양대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성공의 원동력은 끝없는 배움 1958년 한양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3학년을 마치고 군대(해병대)에 갔다. 전역 후 공업경영학과로 전과해 졸업했고, 이후 1~2년간 사회생활을 하다 1966년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그는 더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떠났다. 하지만 막상 낯선 땅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막막하고 힘들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간 그는 어느 교수의 추천대로 회계학을 공부해 공인회계사가 됐다. 그렇게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인회계사로 활동하면서 지난 1977년부터 회계법인 ‘리어카운턴시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며 특임교수로도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학생과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학교 공부를 마쳤다고 멈추지 말고 계속 공부하라는 뜻이다. 그가 평생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배움이다. 이 대표 역시 60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쉼 없는 배움으로 성공을 이뤄낸 그가 하는 말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해요. 언제까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계획하고, 몇 년 후에 내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단계별로 그려봐야 합니다. 미래를 그리지 않고 막연하게 공부하면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이 대표 역시 그렇게 공부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 끝없는 배움의 결과를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 이종혁 대표(왼쪽)가 명예 졸업장을 받은 후 이영무 총장과 기념 촬영을 했다 가정과 지역사회를 돌보는 리더 이종혁 대표를 만난 날은 그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한양대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탓일까. 그는 앞으로 더 자주 한국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또 미국에 있는 동문들의 단합을 위해 한양재단을 기획 중이라고도 했다. “재단을 통해 동문들이 친교를 맺고 자신감과 소속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학교에 대한 사랑도 커질 거예요. 또 기금 마련으로 모교에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는 올해 78세가 됐다. 입학한 지 꼭 60년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그의 생각과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생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공인회계사 일 외에 납세자를 위해 국세청과 협상(Tax Resolution)하는 일에 좀 더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변호사만큼 법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죠.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또 사업적으로도 가능성이 큰 일이에요. 사업을 좀 더 확장하고, 봉사와 기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얼마 전에 권투를 시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이토록 멈출 줄 모른다. 이종혁 대표는 후배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면서 열심히 생활하세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가정과 지역사회를 돌본다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지난한 세월을 스스로의 정신과 마음가짐, 철학으로 무장해 고난을 이겨낸 이종혁 대표. 끝없는 배움과 사랑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있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2 13 중요기사

[교수]“지금도 건축하는 게 정말 기쁘고 보람차다”

청와대 영빈관. 귀한 손님을 맞는 곳이란 뜻처럼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방문했을 때 맞이하는 장소다.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공연과 만찬을 베푸는 공식행사장인 영빈관은 그 화려한 내부로도 유명하다. 이 내부 공간은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유희준 명예교수(건축공학과)의 손을 거쳤다. 최근까지도 활발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유 교수는 최근 제21회 가톨릭 미술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지난 7일 한강이 보이는 유희준 명예교수(건축공학과)의 개인사무실에서 유 교수를 만났다. 정년퇴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 교수는 여전히 건축가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건축계에선 세번째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 지난 1954년 한양대 건축과에 입학한 유희준 교수는 지난 1958년 졸업 이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건축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후 미국 LA의 설계회사 럭맨그룹(Luckman Group)에서 근무하던 중 고(故) 이해성 교수(건축과)의 권유로 지난 1965년 우리대학 건축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34년간 교수로 지내며 유 교수는 다수의 성당을 포함해 여러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중 상징적인 일이라면 청와대 영빈관 내부를 설계한 바 있고,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또한 역임했다. 그 외에도 <건축기능+지각심리→형태미>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지난 1978년에는 건축부문에서는 최초로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정년퇴임 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도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유 교수가 받은 가톨릭 미술상은 한국천주교주교회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는 상이다. 교회 미술 발전과 토착화를 위해 제정한 이 상은 ‘한국 교회의 성미술 발전에 공헌도가 높은 작가’를 선정해 수여한다. 특별상은 여러 부문에 관계없이 가장 의미가 있는 이에게 시상한다. 유 교수 또한 일찍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다. 이번 수상은 가톨릭계에 대한 평생의 공헌에 가톨릭계가 답하는 감사이기도 하다. 심사를 맡은 건축가 김창수 씨는 “1970, 80년대 척박한 환경에서도 서구의 교회건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 창작을 추구해 한국 교회 현대적 종교건축의 방향 제시해 주셨다”며 “비록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특별상을 모실 수 있게 돼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막간 Q&A Q. 제21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을 수상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여태 건축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은 분이 두 분이에요. 제17회 때 제가 너무 존경하고 사랑하는 故 김수근 선생님께서 특별상을 받으셨는데 그때부터 ‘받으면 무척 영광이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 이전엔 고(故) 이희태 선생께서 최초로 특별상을 받으셨고. 그분들과 같은 상을 받게 돼서 많이 기쁘네요. Q.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님과 교동초등학교 3년지기 선후배이시고, 생전 김 선생님과 자주 교류했다고 하신 바 있는데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한 번은 저를 불러놓고 도면을 펼쳐 놓으신 적이 있어요. 아마 선생님께서 40대 전후였을 때인데 펼친 도면을 보며 물으셨죠. ‘내 여태 설계한 건 다 헛거고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유 교수가 한 번 봐줘.’ 감히 선생님 작품에 손을 댈 상상을 못해서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두서너 군데를 ‘저 같으면 여긴 이렇게 했을 거 같아요’하고 정중히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응 그렇지?’하면서 흡족해 하셨는데, 그러고선 故 장세양 소장님을 불러 저를 옆에 두고 아까 말씀드린 부분들을 수정하라 하셨죠. 그때 너무 감사하고 지금도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죠.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어떤 활약을 보여주셨을지'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건축, 그리고 미술 유희준 교수의 사무실은 온갖 액자로 가득하다. 가족 사진 몇몇을 빼면 대부분 그의 작업물이 담긴 액자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중 일부는 회화미술 작품이다. 건축가로서는 독특하게 유 교수는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지난 2015년 말에는 <열정>이란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때 전시된 작품 중 몇 점은 이전에 국제미술현상에서 결승출전자(Finalist winner) 상을 받았다. ▲지난 2015년 열린 유희준 교수의 개인전 <열정>에 실린 작품 <혼돈의 측량>. (출처: 유희준 교수) 유 교수의 회화작품은 구성이 치밀하다. 오히려 흐트러지게 그리는 게 잘 안된다. “중학교 때도 사생화를 그리고 미술선생님께 혼났죠. ‘이건 그림이 아니고 제도야!’ 빨간 벽돌과 흰색 돌 장식들을 꼼꼼히 그렸더니 그런 꾸지람을 들을 만도 했죠. 당시엔 무척 창피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건축가 기질이 있던 거 같네요.” 정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유 교수 곁에는 미술도 함께했다. 12년 동안 서울미대로 실내인테리어 디자인 관련 출강을 나간 바도 있고, 도서관에서는 언제나 건축책과 함께 미술책을 봤다. “당시 일 년에 한두 건씩 큼직한 설계 의뢰가 들어왔죠. 그 돈으로 미국에 가면 꼭 예일대에 있는 서점을 들렀는데, 거기서 앉아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했죠. 건축책을 산 만큼 미술책을 샀던 거 같아요. 그만큼 건축이 좋았고, 미술도 좋았죠.” 유 교수는 “내 평생 건축하는게 정말 기쁘고, 지금 85살이지만 건축을 하면 마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유 교수가 3년전 열었던 개인전 ‘열정’ 당시 밝혔듯, 건축은 그에게 있어 ‘인생이자 평생의 열정 그 자체’다. 그리고 함께해온 회화는, 유 교수 스스로를 건축과 함께 이끌어온 또 다른 열정의 징표다. ▲유희준 교수에게 건축은 곧 열정이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2016-05 11

[동문]'고정관념 타파'는 흔들리지 않는 설계의 주춧돌

많은 이들이 디자인을 겉치장으로만 생각한다. 인테리어 장식이나 커튼 천의 무늬처럼, 어떤 물건을 보기 좋게 꾸미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하만 단순히 물건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만이 디자인은 아니다. 때론 제품을 만들고 개발하는 계획을 뜻하기도 하며, 때론 작동 방식과 같은 더 포괄적인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공간 디자이너 임성빈 동문(건축공학과 04)은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철학과 작품 의도의 결합’이라 말한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임성빈 동문을 만나봤다. 도전하는 디자이너 ▲ 공간 디자이너 임성빈 동문(건축공 학과 04)을 지난 4월 30일 이태원에 위 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임성빈 동문은 공간 디자인에 대해 "건물 설계 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그 폭이 굉장히 넓은 분야" 라고 말했다.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된 디자인(Design). 순수 미술에서 떨어져 나온 분야로만 인식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생활에 없어선 안 되는 개념이 됐다. 그 중에서도 공간 디자인은 공간의 효과적이고 시각적인 활용에 특화된 디자인이다. 조경이나 인테리어에서 크게는 건축까지 포괄하는 개념. 건물의 중축이나 개조부터 조경 및 조명 설계 등 그 폭이 굉장히 넓다. 임 동문은 공간 디자인에 대해 “공간을 가지고 하는 디자인 중에선 가장 폭이 넓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공간 디자인이란 말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 범주가 넓기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랑 부합하는 분야였어요.” 실제로 임 동문은 건축, 인테리어, 각종 브랜드 행사에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건축과 인테리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면을 펼쳐놓고 설계를 하는 경우도 있고, 커튼이나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해서 내부를 꾸미기도 한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다만, 건축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건물부터 소품 배치에 대한 공학적 설계가 뒷받침 되죠.” 작업할 때 주로 어떤 부분을 고려하냐는 질문에 임 동문은 “의뢰자가 원하는 걸 깊이 있게 탐구하고 그걸 우리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답했다. “브랜드의 이미지나 고유한 가치, 레스토랑 사장님의 음식철학, 거주자의 버릇이나 인생이 실제 공간에서 충분히 느껴질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죠. 그렇게 깊이 있게 탐미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임성빈 동문은 현재 건축사무소 '빌트바이'의 대표다. '빌트바이'는 브랜드 마케팅 프로모션부터 파티 플래닝, 내부 가게 인테리어와 건물 시공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다. (출처: 빌트바이, 클릭하시면 빌트바이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공간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 임성빈 동문은 어릴 때부터 건축에 흥미를 보였다. “아 버지가 화가였어요. 아버지를 닮아 미술을 좋아했고, 동시 에 수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건축’을 선택하게 됐 죠.” 어릴 때부터 임 동문은 건축에 흥미를 보였다. “아버지가 화가였어요. 아버지를 닮아 미술을 좋아했고, 동시에 수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건축’을 선택하게 됐죠.” 임 동문은 학부 시절 자신에 대해 ‘아웃사이더’라고 표현했다. “같은 과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른 과 학생들과 더 친했어요. 수업도 패션이나 언론 쪽 수업을 더 많이 들었죠.” 다양한 경험을 좋아했던 그는 축제 때 친구들과 주점이란 명목 하에 클럽을 운영했고, 방학 때는 반드시 여행을 가야 직성이 풀렸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목표가 스펙을 쌓거나 경력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활동적인 대학 시절을 보낸 임 동문. 졸업을 앞두고 학부 시절 내내 준비하던 유학 대신 건축회사에 급하게 취업을 했다. 하지만 기업 생활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IT 계열 회사를 차렸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임 동문은 첫 회사를 실패한 후 “내가 잘하는 걸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이고 건축을 좋아하니까, 관련 분야에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겠다고 봤어요. 결국 공간 디자인 회사를 차리게 됐던 거죠.” 결국 임 동문은 건축사무소 ‘빌트바이’의 대표가 됐다. 브랜드 마케팅 프로모션부터 파티 플래닝, 내부 가게 인테리어 등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다. 디자이너 하나하나의 역량을 살리고 그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Built by’라 이름 붙였다. “디자이너 개개인의 작업물이 브랜드에 묻혀버리는 게 싫었어요. 디자이너의 개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명칭을 고려하다가 지금의 회사명으로 정했죠.” 빌트바이는 최근 ‘월간 옥탑방’이라는 이름의 옥탑방 개조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의뢰인과 함께 옥탑방을 개조, 증축해 그가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다. 방송에서 보던 셀프 인테리어를 도와주는 작업. 임 동문은 “항상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회사의 철학이에요. 이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해야 흔들리지 않고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색깔을 갖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임 동문은 최근 tvN의 <내 방의 품격>과 JTBC의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에도 출연 중이다. 방송을 통해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전달하고 있다. 공간 디자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임 동문은 최종적인 목표에 대해 “지금의 회사를 여태까지 없었던 공간을 연구하는 회사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큰 회사보다는 오래가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연구해 우리 회사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임성빈 동문은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많이 만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경험하라"고 조언했다. 글/ 이재오 기자 bigpie19@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2016-03 17

[동문]평창동계올림픽의 첫 번째 난관을 극복한 해결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테스트 이벤트인 스키활강 세계월드컵대회는 정선경기장 곤돌라 건설의 차질로 인해 위기 상태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스키연맹(FIS)은 물론 국내 언론이 내다보는 전망은 흐릴 수밖에 없었다. 조직위원회 내부에서조차 마찬가지. 그런데 이 위기를 극복해내고 평창동계올림픽의 첫 테스트 이벤트를 정상 궤도에 되돌려놓은 이가 있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지난해 11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부임한 여형구 사무총장이다. 글. 노윤영 사진. 안홍범 평창올림픽을 구하라! ▲ 여형구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건축공학과·77)에게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평창은 면적 1,464.16km⊃2;의 작은 도시다. 해발 700m 고원에 위치해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며 4만 3,50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2년 후면 이 작은 도시를 비롯해 정선 등 강원도 지역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이 열린다. 이제 2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최초의 뜨거웠던 반응에 비해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 김연아와 쇼트트랙이 유명할 뿐 동계올림픽 자체를 낯설어 하는 이들도 많다. 평창올림픽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소를 찾아 여형구 사무총장을 만났다. “평창올림픽은 2018년 2월에 패럴림픽(신체적·감각적 장애가 있는 운동선수들이 참가하여 펼치는 올림픽경기대회)과 함께 열립니다. 지금은 대회를 준비하고 점검하는 테스트 이벤트가 열리고 있어요.” 테스트 이벤트는 올림픽을 사전에 점검하는 대회로, 세계월드컵대회 또는 세계선수권대회로 이루어진다. 평창올림픽 준비 과정을 점검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시행착오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평창올림픽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을까?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전망은 밝지 않았다. 경기장 건설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 IOC와 국제스키연맹은 물론 국내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했다. 여형구 사무총장이 지난해 11월 처음 부임했을 때 마주했던 상황이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평창올림픽을 구하라’였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지역은 기상 이변이 심하고 고산 지형이라 경기장 건설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조건이 열악한 데다 동계올림픽이 처음이다 보니 더 쉽지 않았지요.” ▲ 여 동문은 ‘정선경기장의 곤돌라 건설 지연’이라는 첫 번째 난관을 전체가 아닌 문제가 있는 부분들만 재시공하고 구조적으로 보강하는 대안을 제시해 극복했다. 그의 대안은 긍정적인 극적 반전을 일으켰다. 가장 큰 문제는 정선경기장의 곤돌라 건설 지연이었다. 그간 여러 이유로 공정이 늦어진 데다 공사 현장이 연약 지반이라 레미콘 차량 등 장비 투입이 불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콘크리트 시공 문제도 발생했다.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상황. “곤돌라 기둥이 일부 변형돼 있었어요. 건설에 참여한 외국 업체에서는 전체를 재시공하자고 했지만, 그러면 2월 초 세계월드컵대회에 맞출 수 없으니 다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여형구 사무총장이 제시한 대안은 전체가 아닌 문제가 있는 부분들만 재시공하고 구조적으로 보강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반대하던 외국업체도 이 대안에 대해 동의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말과 연초, 명절 분위기는 느낄 틈도 없었다. 하지만 현장 직원 모두 ‘하나 되어’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곤돌라 운영상 기술적으로 안전하다는 최종 검증을 받을 수 있었다. 곤돌라 문제에 이어 눈 만드는 작업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제설 기능을 극대화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검증과 테스트에 나선 IOC와 국제스키연맹은 경기장 코스뿐 아니라 눈의 양과 질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극찬을 보냈다. “언빌리버블!” 어두웠던 전망에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성공적인 검증을 마치고 나니 주변 반응이 달라지더군요. IOC와 국제스키연맹은 물론 국내외 언론 모두 호의적으로 바뀐 거지요.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줄 평창올림픽 ▲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 동문은 ‘국민의 관심’을 꼽았다. 큰 위기를 넘긴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여형구 사무총장은 인프라와 운영 능력, 국민의 관심을 꼽는다. “인프라는 경기장과 도로, 철도, 숙박 및 편의시설이 모두 포함돼요. 경기장 12개는 올해 말에서 내년 초면 완공될 예정이에요. 또한 제2영동고속도로가 내년에 개통될 예정이고, 총 120.7km 길이의 원주-강릉 간 고속 철도도 내년 말 완공될 계획입니다. 그 밖의 시설들도 내년이면 완공될 거고요.” 여형구 사무총장이 두 번째로 꼽은 운영 능력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처음 열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조직위원회는 국제 연맹 기준에 맞춰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관심입니다. 그게 없으면 결국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니까요. 이를 위해 언론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지하철과 공항 및 도로 광고, 유튜브와 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동계올림픽 경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조형물과 체험관, 홍보관도 계속 조성할 계획이에요.” 여형구 사무총장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글로벌 리더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리그 최고의 해결사가 되기까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여형구 사무총장은 기술직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35년 동안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김포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 건설, 국내 최초의 SOC 민자 유치이자 외자 유치사업인 인천공항 고속도로와 인천대교, 공항 신도시, 호남고속철도 개통, 수서발 KTX 개통을 위한 철도 경쟁체제 완성 등 굵직한 메가 프로젝트가 그의 손을 거쳤다. 사람들은 그를 위기 극복에 능한 ‘해결사’라 부른다. 그의 이런 능력은 어떻게 길러진 것일까? ▲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여형구 사무총장은 기술직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35년 동안 건설교통부 등 정부 부처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여 동문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스스로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려면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정책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게 무엇이고, 정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직접 현장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여형구 사무총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신뢰한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언제나 현장을 찾아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판단하고 결정해왔다. 확신이 있었기에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했고, 언제나 현재를 주시하기에 변화와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다. 여형구 사무총장은 한양대 후배들에게 도전의식과 열정,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피하지 말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열정은 필수고요.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건 융통성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융복합적 지식과 사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양한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여형구 사무총장은 이어 청년 취업난을 언급하며, 취업의 눈을 세계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UN 산하 기구나 국제기구 같은 곳에도 한국 학생들이 취업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출신 학교는 못 바꾼다는 말이 있지요.” 여형구 사무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선배, 동문들과 함께 토목관 5층 빈 교실에서 숙식하며 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학교의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웃는다.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나서고 싶다며 애교심을 드러내는 여형구 사무총장. 해결사가 된 그의 밑바탕에는 학창 시절 쌓아놓은 지식과 마음가짐이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2015-11 04

[학생]'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이너를 꿈꾸다

흔히 상상력이라고 하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상상력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 특별한 사람들만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상력은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관찰하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일상 속에서 상상력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구현시키는 한기윤(공과대 건축5) 씨를 만나봤다. 더욱 편리한 콘센트 디자인 한 씨는 디자이너 포털사이트 ‘디자인소리’에서 주최하는 ‘K디자인어워드’(이하 ‘대회’)에 플러그 가이드 아웃렛(Plug Guide Outlet) 디자인을 출품해 위너로 선정됐다. 한 씨는 전기 제품의 플러그를 더욱 편하게 꽂을 수 있도록 콘센트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기제품을 콘센트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콘센트의 구멍에 맞는 방향으로 플러그를 넣어야 한다. 하지만 콘센트가 보이지 않거나 깊숙한 곳에 있다면 플러그를 꽂기 쉽지 않다. 한 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콘센트 안쪽에 경사면을 덧대, 어느 방향으로 플러그를 꽂아도 자연스럽게 구멍에 꽂히도록 유도했다. 한 씨는 “꽂혀있는 플러그를 빼기 쉽게 디자인한 콘센트는 많지만, 반대로 꽂기 쉽게 디자인 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작품을 디자인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 한기윤(공과대 건축5) 씨의 콘센트 디자인. 경사면을 따라 플러그를 쉽게 꽂을 수 있고, 버튼을 누르면 바로 빠져나온다. (사진 제공: 한기윤 씨) 한 씨의 디자인은 현재 특허출원이 돼 특허등록을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한 씨는 우리대학 교양 과목인 ‘특허법의이해’를 듣고 특허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미적 가치보다도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부분에 집중했다는 한 씨. “특허를 낼 생각을 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것들을 고려해서 디자인했어요. 특허를 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것을 넘어서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상용화가 가능하면서, 지금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됐어요.” 건축학도, 디자이너가 되다 우리 생활 속에서 쓰이는 여러 물건을 디자인 하는 분야를 ‘산업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언뜻 보면 건축학이라는 자신의 전공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산업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한 씨는 ‘건축도 디자인의 일부’라며, 대상은 다르지만 디자인이라는 본질은 건축과 산업디자인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 동안 건축이라는 큰 대상을 디자인했어요. 제가 디자인 한 공간들을 채울 물건들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었죠. 가우디도 건축가이지만 실내 디자인을 하기도 했고, 건축가들이 역사적으로 산업디자인 쪽에서도 많이 활동했거든요. 산업디자인은 특히 다른 여러 분야와 융합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요.” 한 씨가 처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는 디자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한 씨의 첫 작품은 전기밥솥 디자인. ‘밥이 약이다’라는 콘셉트로 알약 모양으로 밥솥을 디자인했지만, 원통형 모양의 밥솥이 구를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저 아이디어일 뿐이니까 구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엔지니어들의 영역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다른 작품을 보니, 기능적인 측면들까지도 고려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현실적인 디자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한 씨는 디자인 작업에서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 깨닫게 됐다고 한다. “다른 공모전에 나갔을 때는 디자인한 물건을 실제로 제작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모니터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들어 봤을 때 굉장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우산을 한 번 디자인해봤는데 실제로 만들어보니까 손에 잘 잡히지 않기도 하고요. 디자인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 꽤 노력했습니다.” ▲ 한기윤 씨가 디자인한 조명 장식. 잠수교에서 물결치는 한강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사진 제공: 한기윤 씨) 좋은 디자인이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한 씨에게 물었다. 한 씨는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쓰기 편하면서도 예쁜 것이 제일 좋은 디자인 아닐까요. 사실 디자인에는 정해진 답이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아이디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밖에 있는 풀잎 하나, 물결치는 강물에서도 디자인을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디자인이 탄생하는 거고요.” 앞으로도 계속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한 씨는 이야기한다. “저는 특정 분야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저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제 작품만 봐도 다른 작품들이 연상되는 그런 디자인이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그 특유한 곡선으로 유명한 것처럼 유명한 건축가들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요. 저도 그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디자인, 새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디자인이 앞으로도 한 씨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할 것이다. ▲ 한기윤 씨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지나치는 것들에서 디자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3-11 26

[동문]건축관 건립, 희망의 첫 삽을 뜨다

▲ 이리형 건축총동문회 회장(건축공학‧60) 결국 이뤄냈다. 후배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선배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김재준 건축공학부 교수는 말한다. 지난 9년 간 건축과 동문, 교수, 재학생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건축관 건립 기금 모금에 동참했다. 건축관 건립은 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양대 건축과를 명실상부 세계 일류 건축과로 거듭나게 할 출발점과도 같기 때문이다. 11월 e-뉴스레터에서는 지난 30일, 건축관 건립 기금 기증식 현장에서 이리형 건축총동문회 회장을 만나 건축관 건립 9년의 과정을 담아보았다. 건축관 건립 기금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에 의해서 조성된 것입니까? 건축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는 2004년부터 이미 동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습니다. 토목관 건립과 함께 추진하고자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진행에 차질이 좀 생겼죠. 그러다 2009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김덕일,이의구, 김지덕, 박용환, 손장열, 정진국 등 건축동문님들의 공로가 상당히 컸다고 봅니다 . 건축관 건립의 계기라고 한다면, 건축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은 많은데 비해 주어진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협소했기 때문입니다. 건축과 학생들은 설계 작업 때문에 따로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내부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한양대 건축과를 평가 받는 데 장애 요소가 되다 보니 공간 확보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제기되었습니다. 오늘 기부해주신 20억 원은 9년 동안 많은 동문께서 함께 모아주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대략 몇 분 정도가 기금 마련에 동참해 주신 것입니까? 만 오천 여명의 동문 중 아직 삼백여명 정도만 참여해주셨지만 기금 모금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 명쯤은 거뜬히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웃음), 실은 어제만 해도 50여명의 동문이 약정서를 작성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학과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시는 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 총동문회 회장으로서 우리 동문들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럼, 기금 마련에 동참해 주신 동문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건설 경기가 매우 어려워요. 이런 어려운 와중에서도 모교 건축과를 위해서 기부해 주신 거죠. 기금 모금에 동참해 주신 동문 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리고 그분들의 업무가 잘 되도록 건축과 교수님을 포함해 저희가 더욱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투명성 제고를 높이고 감사의 마음을 길이 남기고자 건축관에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그분들의 기부 내역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후배들이 선배의 모습을 본받아 기부 문화를 확산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9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중간에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것을 보면 건축관 건립이 건축과에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어떤 의미를 갖는 것입니까? 재학생들의 설계실과 작업실, 공학계열의 관련 실험실을 늘리는 것이 건축관 건립의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그 뿐만 아니라 동문들이 필요한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하고 또 논의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자 합니다. 또한 석‧박사를 포함한 재학생들과의 동문 교류도 늘려 한양대 건축과의 명성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계기의 장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건축관 설계 작업이 이미 완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건물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건축관 설계부터 우리 동문의 힘을 빌렸습니다. 후배를 생각하는 선배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긴 것부터 차별화된 점이겠지요? 외관은 물론이고 앞서 말씀 드렸듯이 동문들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를 통해 재학생과 동문간의 교류 횟수를 늘려 산학 협동을 리드하는 장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건축관을 사용하게 될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양대 건축과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건축과로 거듭나려는 도약기에 있습니다. 이미 사회에 진출한 동문들과 후학을 양성 하는 교수님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후배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때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후배들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뚜렷한 목표와 꾸준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전해주고 싶군요. 한양대학교 대외협력팀 이혜민(gpals8901@hanyang.ac.kr) 위 기사는 한양대학교 대외협력팀 발전기금 블로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바로 가기 ▶ ▶ Vol.42 기부자인터뷰_이리형 건축총동문회 회장

2013-11 15

[동문]쉼 없는 도전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국내 물류&운송 산업의 세계화를 이끌다

공직자에게 ‘청백리 淸白吏’만큼 중요한 덕목은 없다. 그와 더불어 공무에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 국민생활에 기여하는 것도 마땅한 본분일 것이다. 여형구(77·건축공학)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청렴’과 ‘실력’이라는 공직자의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빛나는 업적을 탄탄히 쌓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몸과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지금껏 이뤄낸 성과를 동력 삼아 더 큰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강원영 | 에디터 최미현 | 사진 박순애 ▲ 국토교통부 제2차관 여형구(77·건축공학)동문 공직 32년, 소통에 능한 실력파 공직자 여형구 차관은 지난 3월,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에서 국토교통부 제2차관으로 임명받았다. 1980년 제16회 기술고시에 합격한 후 공직생활 32년 만이다. 긴 공직생활을 이어오며 국토부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어떤 업무든 완벽하게 처리하는 실력자로 인정받은 것이 주효했다. 공무가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묵묵히 밀고 나가는 뚝심과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해결사로 나서며 꾸준한 성과를 일군 덕분이다. “공직생활 동안 10여 년을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우문현답’ 우스갯소리로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뜻이지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힘은 언제나 현장의 최말단과의 소통에서 찾아지더군요.”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현장은 바로 인천국제공항이다. 여 차관은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중추 공항의 허브로서 건설, 개항, 운영하는 데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는 정책 실무를 총괄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10여 년이라는 긴 업무수행 기간에 만만치 않은 사투가 벌어졌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입지 타당성 문제, 해양 환경 피해, 부실 시공, 개항 가능성 논란 등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온몸으로 막아서야 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 8년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으로 우뚝 섰다.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랑스러운 공항이 되었고, 여 차관에게는 인천국제공항을 세운 주역으로서 가슴 뿌듯한 인생 최고의 공적으로 남았다. 자신감, 열정, 도전은 성공의 바로미터 여형구 차관에게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자주 따라붙는다. 기술(건축)직 출신 최초의 건교부 재정기획관, 홍보관리관, 종합교통정책관 등을 거쳤으며, 특히 국토부에서는 부처가 생긴 이래 3개의 핵심 실장(항공정책 실장, 교통정책실 실장, 기획조정실 실장)을 역임한 것도 그가 유일하다. 기술직출신이 차관으로 임명된 것도 이번이 최초다. 여차관은 엘리트 행정 관료의 메인 코스를 한 단계씩 밟고 있는 참이다. 엔지니어 출신 공직자라는 편견을 깨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평소 ‘자신감, 열정, 도전 의식’이라는 세 단어를 좋아한다고 밝힌 여형구 차관은 “공직에서 공대 출신은 수적으로 마이너리티 그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 해보자’라는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행정, 금융, 경제, 법 등 다양한 분야에 쉼 없이 도전하면서 저 자신의 부족한 영역을 채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공직자로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 항상 자기 관리에 철두철미했던 것도 그의 성공에 힘을 보탰다. 이해관계가 얽히기 쉬운 골프 모임 등을 배제하고 등산이나 산책 등을 하며 청렴해야 하는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어느덧 차관 임명 8개월째를 맞은 여형구 차관. 요즘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화두는 무엇일까. “지난정부에서부터 국민적 관심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됐던 주요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택시, 철도 경쟁 체제, 신공항 등등이 주요 국정 과제인데요. 이 현안들이 원만하게 해결되어 국민들이 피부로 성과를 체감하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국내 물류·운송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정책 수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길을 향해 가는 사람들. 이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길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지름길도 아니다. 그간의 다양한 경험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진득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스스로 나온길이다. 바로 여형구 차관처럼 말이다. [Q&A] 한양대인들의 무기(장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먼저 우리 동문들의 근면함과 성실성을 꼽고 싶습니다. 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 모든 직장 상사가 선호하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대놓고 의사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손해를 볼 때가 있어요. 그러나 시대가 변한 만큼 조금 더 다이내믹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과하면 적이 생길 수도 있으니 수위 조절을 적당히 하면서 자신을 PR하는 능력을 키워보시길 바랍니다. 한양대의 무기를 하나 더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우리 동문의 맨 파워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한 수많은 한대 동문과의 끈끈한 네트워크는 사회생활의 큰힘이자 자랑입니다.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는 좌우명이 있다면? ‘내 인생에 대역은 없다’입니다. 제가 공직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좋아하는 글귀인데요. 평범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주변의 도움과 협조에 기대지 말고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대처해 나갔으면 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임을 잊지 마세요. 어떠한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변할것입니다. 마치 잡초와 같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을 마주하다 보면 남들이 기피하는 분야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여러분께 장담합니다.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 아시지요? 저는 후배 여러분에게 대학 1, 2학년 동안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서 끝나는 여행이 아닌, 진정한 견문을 넓히는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내가 경제 학도라면 미국 워싱턴에 가서 백악관만 보고 올 것이 아니라, 가기 전부터 목적의식을 가지고 IMF, 월드뱅크 등 여러 국제기구의 자료를 가지고 떠나보세요. 4년 후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어쩌면 수십 년 후 자신의 인생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동아리 활동, 스펙 쌓기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고 외국으로 눈을 크게 돌려보세요. 일찍 준비하는 사람이 먼저 얻게 되겠지요? 제 주변을 보면 의외로 많은 분이 그런 방법으로 기회를 잡고, 더 나은 인생을 일궈 가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