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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 21

[동문][주목! 한양인] 웰크론그룹 회장 이영규 동문, K방역 전도사로...끊임없는 도전

극세사 등 기능성 소재 분야에 기술력을 갖고 있는 중견기업 웰크론그룹 회장 이영규 동문은 승부사다. 남들이 어렵다고 했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둘 다 공격투자를 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그 결과 산업용 섬유업체로 시작한 웰크론은 현재 웰크론 헬스케어, 웰크론한텍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으며, 지난해 웰크론그룹 매출액은 3919억 원을 기록했다. ▲ 이영규 동문이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매일경제) 이 씨는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창업을 했다. 동양나이론에 이어 두 번째 직장이던 약진통상에서 일할 당시 일본 섬유제품전시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고급 섬유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극세사가 안경닦이로 출품된 것을 보고 "극세사로 걸레, 행주 등의 클리너를 만들면 부가가치가 크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씨는 창업 초기부터 상업용 극세사 분야의 부가가치에 주목하고, 극세사 후가공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일반 직물에 비해 흡수력과 세척력이 뛰어난 고흡수성 복합소재를 자체 개발했으며, 웰크론의 산업용 극세사 클리너는 유럽을 중심으로 환경친화적 제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IMF 외환위기가 덮쳐왔다. 이 씨는 외환위기 직전 은행에 찾아가 "독일과 스웨덴에 극세사 클리너를 납품하기로 했다"며 "고객의 주문을 모두 소화하고 싶어 그러니 공장을 짓고 기계를 사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회사 직원들조차 안될거라고 했지만, 은행 직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3억 5000만 원을 빌릴 수 있었다. 그 돈으로 공장을 사고 외국에서 밀려든 주문을 모두 소화한 덕분에 1997년 28억 원이었던 매출이 1998년에는 88억 원으로 3배가량 늘었다. 두 번째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수출 물량이 감소하자, 이 씨는 시선을 국내로 돌려 극세사를 활용한 침구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그는 5월 17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웰크론 매출 중 60%가량을 침구 등 리빙사업 부문에서 창출하고 있다"면서 "그때 당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았다면 중소기업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덧붙여 "우리 회사는 앞선 두 번의 위기 속에서도 성장해왔다"며 이번 코로나19에도 가능성은 보인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 말을 증명하듯 웰크론은 코로나19 여파로 리빙사업 부문이 주춤하고 있지만 마스크 필터로 사용되는 핵심 자재인 멜트블론 부직포와 마스크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 필터로 사용되는 핵심 자제인 멜트블론 부직포 생산량을 월평균 50t까지 끌어올렸다. 이전에도 웰크론은 2008년 멜트블론 복합방사 공법을 이용한 '헤파필터'를 개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KF94 등급' 마스크용 필터 제조에도 성공한 바 있다. 이 씨는 "부천에 위치한 마스크 공장 생산라인 1개에서 현재 월 120만장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달 말까지 생산라인 하나를 추가할 예정"이라면서 "기회가 된다면 마스크를 수출해 전 세계에 'K방역'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이 씨는 멜트블론 공법을 이용한 고효율 필터 사업과 복합소재를 이용한 방산사업 등 '소재 사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씨는 "방산 사업은 김해에 위치한 공장 규모를 5배가량 키우고 있다"며 "향후 복합소재 응용제품과 PTFE 인공혈관튜브 등 다양한 소재산업에 나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018-01 19

[동문]‘위기를 기회로 바꾼 승부사’ 이영규 웰크론그룹 회장

▲이영규 동문 (사진= 웰크론그룹) 이영규 웰크론그룹 회장(섬유공학 78)이 최근 한국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지난 12월 19일 자 기사로 소개됐다. 기사에 따르면, 이영규 동문은 평소 투자와 성장을 강조하는 ‘공격적인 사업가’로 알려졌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이사회 감사와 별도로 10여 명의 대기업 사장급 출신 인사들로 꾸린 경영자문위원회에 자문한다고 전했다. 이 동문은 “직원들이 계속 돈 버는 회사로 성장하려면 회장 혼자 맘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본인의 철칙이라며 “큰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건 나 역시도 처음이라 회장이 일을 너무 벌이는 게 아닌지, 다른 데 신경 쓰느라 챙기지 못하는 게 있는 건 아닌지 견제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회장도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마다 공격투자를 해온 이 동문은 산업용 섬유업체였던 웰크론을 현재 8개 계열사와 연 매출 4000억원의 웰크론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업계에서도 ‘승부사’로 불린다는 이 동문은 창업 시절부터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공격적인 사업을 해왔다. 약진통상에서 일할 당시 일본 섬유제품전시회에 참석한 이 동문은 고급 섬유로만 쓰이는 줄 알았던 극세사가 안경닦이로 출품된 것을 보고 극세사로 걸레, 행주 등의 클리너를 만들면 부가가치가 크겠다는 생각을 하고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 2000만원과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3000만원이 전부였던 이 동문은 1992년 후배 두 명과 강남 포이동에 6.6㎡(2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창업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퇴로를 만들지 않고 공격적으로 사업한다”는 말을 들어왔다는 그의 승부사 기질은 유럽과 일본 기업이 장악하던 극세사 클리너 시장에서 웰크론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빛을 발했다. 이 동문은 2022년까지 그룹 매출 2조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계열사의 신사업을 독려할 생각이라는 그는 “남들이 어렵다고 했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두 번 다 우리에겐 도약의 기회였다”라며 “‘10년 위기설’이 맞는다면 2018년에도 위기가 올 텐데 우리는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경제 기사 바로가기 (클릭)

2016-07 01

[동문][선배를 만나다]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한다

이영규 회장이 웰크론(구 은성코퍼레이션)을 설립한 건 1992년 5월이다. 웰크론은 극세사 클리너로 이름을 알린 이래, 2016년 현재 7개 분야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웰크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이영규 회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 봤다. (글. 노윤영 / 사진. 안홍범)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 이영규 (주)웰크론 회장(섬유공학과·78) 웰크론은 생활용품, 산업용소재, 첨단 나노섬유, 물 건강, 환경, 신재생 에너지, 헬스케어 등 7개 분야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웰크론의 대표적인 침구 브랜드 ‘세사리빙’의 모델은 요즘 가장 ‘핫하다’는 배우 유아인이다. 극세사 클리너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극세사 분야에서 22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웰크론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한 셈이다. 물론 지금의 웰크론이 되기까지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설립 초기에는 개인 소유 자동차를 봉고차로 바꿔서 원단 들고 전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러던 웰크론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IMF 외환 위기였다고 이영규 회장은 말한다. 기술 노하우를 다른 곳에 뺏기지 않으려면 자체 공장과 설비가 필요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받았고, 결국 코스닥에도 상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기업 인지도가 올라갔고 우수한 인재들의 지원이 늘면서 중견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 극세사 섬유 기업으로 시작한 웰크론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주력사업을 확대했다. 지금의 외형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의 웰크론이 되기까지 ▲ 1992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25년 가까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달려 온 이영규 회장의 경영 철학은 초심. 처음 기업을 설립했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웰크론그룹은 현재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웰크론과 웰크론헬스케어를 한 축,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웰크론강원과 웰크론한텍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웰크론이 이름을 처음 알린 건 극세사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웰크론’을 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도 극세사 제품들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극세사 클리너는 2001년부터 15년 연속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고 있으며,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는 효자 품목이다. 그럼 극세사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머리카락 100분의 1 굵기의 섬유를 극세사라고 하는데, 웰크론은 이러한 섬유를 가공해서 고흡수성 직물이나 고밀도 직물을 개발했습니다. 특히 웰크론은 직접 개발한 극세사 원단인 ‘웰로쉬’를 사용하고 있어요. 일반 섬유조직에 비해 밀도가 높고, 보온성 유지 기능이 탁월하지요. 집먼지진드기의 서식과 이동을 차단하기도 하고요.” 웰크론의 웰로쉬 원단은 실제 영국알레르기협회(BAF)에서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먼지 발생량이 적어 위생적이며 환자나 유아 및 아동에게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웰크론은 이 극세사 원단을 이용해 침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다. “섬유는 한때 사양 산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기능성 섬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어요. 그런 와중에도 웰크론이 극세사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기술력과 브랜드 덕분입니다. 웰크론 고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극세사 제품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했어요.” 이영규 회장은 앞으로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중국, 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더불어 극세사 제품을 ‘원스톱’ 쇼핑할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세사 에디션’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 웰크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한 기능성 극세사 클리너. 극세사는 웰크론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극세사에서 축적된 가공기술을 바탕으로 나노섬유 원천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방탄소재, 필터여재 등 산업용 소재사업으로도 영역을 확대했으며, 에너지 플랜트 사업과 산업용 보일러, 환경설비 등 다양한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이영규 회장은 이 모든 게 연관성이 있다며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극세사 섬유에서 시작해 산업용 소재, 에너지 플랜트, 보일러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 건 이들이 모두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연관된 사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려다 보니 여러 개의 계열사로 이뤄진 지금의 ‘웰크론’이 됐습니다.” 웰크론은 매주 임원회의를 비롯해 기술 교류회와 각종 워크숍 등을 통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영규 회장의 말을 통해 느낀 웰크론은 여러 개의 계열사가 하나의 큰 덩어리로 뭉쳐 움직이는 그룹이었다. “웰크론은 모든 계열사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움직입니다.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기도 하지요. 웰크론과 웰크론헬스케어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웰크론한텍과 웰크론강원도 서로 연결되는 기술이 많아 공동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영업 정보를 서로 교환하기도 합니다. 우린 같이 일하는 한 팀이니까요.” 이영규 회장은 이 밖에 공동 수주가 가능하고, 구매도 통합구매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꾸준히 체육대회와 행사 등을 통해 팀워크를 다지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웰크론’이란 이름 아래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웰크론 본사 1층에 자리 잡은 플래그십 스토어 ‘세사 에디션’은 극세사 관련 제품들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는 매장이다. 웰크론은 인류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모토 아래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이어서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 봉사와 수몰 지역 복구 활동, 불우 여성 생리대 지원 사업 등 다양한 봉사활동 및 지원을 펼치고 있다. “웰크론의 키워드는 물과 에너지, 환경 그리고 건강입니다. 이 키워드를 바탕으로 웰크론그룹은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함께’와 ‘같이’를 강조하는 이영규 회장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그의 대학 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의 대학 생활은 어땠을까? 섬유공학과 78학번인 이영규 회장은 대학 시절 스킨스쿠버 동아리 활동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군 입대 전에는 학점을 많이 못 땄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대신 선후배 간 우애를 다질 수 있었고, 여행과 동아리 일을 계획하며 기획력도 키울 수 있었다는 것. 또한 혹독한 바다 환경에 적응하려면 입수 전에 독한 훈련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자연을 극복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 웰크론은 극세사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효율 필터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 소재로 적용 분야를 확대해 나갔다. “군 입대 이후 부족한 학점을 메꾸기 위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했습니다. 전공 서적들은 대개 두껍고 내용이 어려워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들이죠. 스터디 그룹을 통해 각자 담당 분야를 정해 공부한 뒤, 이를 공유하니 훨씬 쉽고 간단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장학금을 받았고, 그 장학금을 좋은 곳에 쓰기 위해 기부도 했다. 이영규 회장의 대학 시절 키워드 역시 ‘함께’였다. 그가 현재 한양대학교를 다니는 후배들에게 강조한 사항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 보세요. 공부도 혼자서 하기보다는 함께하는 게 중요해요. 사회에 나가 보면 알겠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요. 단체 생활 능력을 미리 키워 두는 것이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데자뷔(기시감)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영규 회장의 대학 시절 이야기는 지금 그가 이끌고 있는 웰크론그룹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우린 남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영규 회장의 말을 통해 웰크론이 중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엿볼 수 있었다. 탁월한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 상승도 중요한 이유지만, 무엇보다 ‘하나가 되어’ 뭉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이영규 회장과 웰크론 사람들은 지금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