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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 22

[학생]`고객관리는 이렇게` SAS 마이닝 챔피언 경영대학원 임양수군

현대 경영에 있어 '고객관리'란 단순히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만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아니다. 고객 또는 잠재적 고객들의 신상정보와 수요, 소비 유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향후 고객 관리 및 마케팅 전략 수립에 기여하는 '고객집중관리(CRM)' 시스템은 이미 오늘날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임양수 군이 '주먹구구 시대의 종말'을 당당하고 선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근 (주)SAS코리아가 발표한 '2002 SAS 마이닝 챔피언십' 심사 결과, 1위를 차지한 그를 만나 현대 경영학의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 SAS 마이닝 챔피언십 대회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엔터프라이즈 마이너'라는 툴을 사용해 이루어졌던 이번 대회에는 추리력, 통찰력, 집중력이 변수로 작용했다. 내가 남들보다 감이 좋았다는 말이다. 결과를 뽑아놓고도 근거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뭘 잘해서 받았는지 모르겠다. -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특별한 동기는 없다. 지난해 '경영정보시스템통합'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으로부터 이번 대회 정보를 얻었다. 팀을 짜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그 수업의 기말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다른 몇 사람들과 같이 준비했지만, 이것저것 바쁘거나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중도에 몇 명이 그만두었다. 그래서 올해 초 1차 테스트에 통과하고 나서는 혼자서 준비했다. - '데이터마이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데이터마이닝은 고객접점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와 관련된 개념이다. 특히 여러 AI알고리즘을 활용한 CRM은 일반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관리에 필요한 변수를 생성하고 이를 이용해 모델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을 통해 고객관리에 필요한 여러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데이터마이닝이 사용되는 한 예로 신용불량고객 관리를 들 수 있다. 은행은 일반 고객의 성별, 나이, 결혼 여부, 소득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이가 몇 살인가 연봉이 얼마 이상이 되는가 등의 변수를 고려한 알고리즘을 통해 신용불량자를 판단한다. 어떤 사람이 은행에 대출을 하러 갔다고 하자. 그 사람이 카드연체를 몇 번 이상 했고, 연봉이 얼마 이상 되지 않는다면 은행은 그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은행이 가지고 있는 알고리즘에 그 고객의 카드연체 횟수, 연봉 등의 데이터를 입력했을 때, 신용불량자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 비전공자들에게 '고객집중관리(CRM)'를 설명한다면 고객접점관리(CRM)은 정보시스템과 관련되서 갑자기 나타난 개념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SAS 항공사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는 접점을 “Moment of truth(진실의 순간)”이라고 규정하여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켜 성공한것도 일종의 CRM이고 Internet 활성화 초기에 E-mail을 통해 고객들과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던 것도 CRM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여러 알고리즘의 개발, 다량의 데이터 확보가능, 컴퓨터 성능의 증가로 인해 이러한 과정들이 보다 쉽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이번 대회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 이번 공모과제는 '금융권(보험사) 고객 이탈방지를 위한 데이터마이닝'이었다. 4만개의 데이터와 46개의 변수를 주어주고 3개월 이내에 보험을 해지하고 나갈 사람을 찾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어진 변수 중 필요한 변수를 골라내고 다른 필수적인 변수를 생각해내 첨가했던 것이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이다. 이런 일은 아직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결혼을 한 사람일수록, 만기일이 가까워 올수록 보험을 해지할 가능성이 적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변수를 설정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정보통신경영에 관심이 있어 그쪽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싶다. 정보통신경영 응용분야에서 데이터마이닝이 다양하게 이용될 것 같다. 휴대폰 고객 관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유학 계획도 가지고 있다.

2003-04 15

[교수]대학종합평가 특집 대담 2 : 장주섭 교수

지난 주 위클리한양에서는 오재응 기획조정처장과의 대담을 통해 최근 진행된 일련의 대학평가와 관련한 준비상황 및 향후 계획을 점검해 보았다. 대학종합평가 특집 대담 그 두 번째로 이번 주는 2004년 대학종합평가를 준비하는 서울캠퍼스 대학종합평가 연구위원회 위원장 장주섭 교수(자연대·수학)를 만나 대학종합평가의 중요성과 본교의 준비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 지난 수년간 대교협 학문분야 평가에서 서울캠퍼스는 계속해서 '최우수'로 선정되는 쾌거를 낳았고, 특히 지난 2월 24일 발표된 서울캠퍼스의 토목공학 분야와 수학분야 역시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우리 한양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간 학교 발전을 위해 합심 단결해온 노력의 결과로 생각합니다. 모두 함께 기뻐할 일이지요.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되겠고, 내년에 있을 2004 대학종합평가에서 확실하게 최우수 대학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 학문분야평가와 종합평가는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내년에 시행될 2004 대학종합평가를 총괄적으로 준비하는 책임을 맡고 계신데, 이번 평가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1995년에 받았으니까 이번에 10년만에 다시 종합평가를 받게 됩니다. 대학종합평가는 말 그대로 대학 교육과 운영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평가입니다. 물론 이 평가에 따라 교육부를 비롯하여 타 대학의 관계자들과 학부모와 학생 등 바깥에서 우리 대학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부적으로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성과들을 자체 점검하여 문제점을 개선하고, 향후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가 결과는 우리 대학의 발전하는 위상을 교·내외에 알리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 1주기 종합평가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2주기 대학 종합평가는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172개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1주기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대학원 평가가 학부와 분리되어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모도 커졌고, 평가의 항목도 1주기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복잡해졌습니다. - 평가결과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학문분야 평가와 달리 대학종합평가는 우수학생 유치, 졸업생 취업, 교수의 산학연 연구비 수주 그리고 정부의 행·재정 지원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대학의 대외적 위상이나 영향력도 평가 결과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며칠 전 강남의 모 학원에서 발간한 '2004 대입 학부모 설명회' 책자를 보았더니, 서울캠퍼스 토목공학분야가 전국 1위, 수학분야가 전국 3위에 올랐다는 대교협 학문분야평가 결과가 담겨져 있더군요. 학문분야의 평가 결과가 이렇다고 한다면, 종합평가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 그러면 우리 대학에서 2주기 대학종합평가를 위해 현재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구체적인 준비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우리 대학은 2001년 11월에 이미 '대학종합평가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를 위한 기초적인 준비를 마쳤고, '대학종합평가연구위원회'는 2002년 9월에 구성되어 활동 중에 있습니다. 위원은 교수 18명, 직원 8명 모두 26명으로 학부 6개 분과와 대학원 6개 분과를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보고서 작성 및 자체 평가를 진행해 대안을 모색하는 등 평가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에는 대학원을 비롯한 본부 부서의 부서장 및 담당 직원선생들을 부서별로 모시고 평가준비에 필요한 여러 사항들을 점검하였습니다. 금년 7월까지 내년에 제출하게 될 최종보고서와 동일한 수준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 대학종합평가 준비를 하시다보면 우리 대학의 강점과 약점이 있을 텐데 그 내용은 무엇이며, 약점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 보고 계십니까? 종합평가에 임하는 열성적인 자세와 헌신적인 노력이야말로 우리 대학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평가는 6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자체점검 결과에 따르면 교육 및 사회봉사 영역과 교육여건 및 지원체제 영역이 좋은 반면 발전전략 및 비전 영역이 약한 것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대학원도 연구영역과 교육여건 및 지원체제 영역이 좋은 반면 발전전략 및 비전 영역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4년에 마련한 우리 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1994-2005)과 HY Dream 2010(2001-2010)사이의 연계와 통합에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안산캠퍼스 학부 및 대학원의 중장기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별도의 Task Force Team이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 최근 윤덕홍 신임 교육부총리는 '대학은 경쟁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은 자연스럽게 퇴출을 유도할 것'이라 천명한 바 있습니다. 향후 수년간 국내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교육 개방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대학이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구성원이 합심 협력하여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좋은 점은 더 북돋워주는 팀웍이 필요합니다. 대학종합평가가 단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현재의 우리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다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실제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위원회의 제안으로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지난 3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앞으로 강의하는 교수와 학습하는 학생들을 위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교수들의 연구여건 개선을 위한 기본 강의시간 수 감축, 연구년제도의 다양화 등의 제안과 교수충원, 강사료 인상, 기타 교육여건 개선 등의 건의가 신속하게 정책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구성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종합평가위원회는 평가에서 좋은 점수 받는 것 이상으로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부상하는 초석을 다지자는 각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합니다. - 이번 종합평가는 우리 대학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지요? 우선 학생 여러분이 설문 조사에서 행한 학교나 수업에 대한 만족도, 취업률 등도 평가에 포함되며 이 평가가 여러분의 대학생활이나 취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종합평가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길임을 자각하여 모든 것에 자발적,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를 계기로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긍지, 애교심을 가지고 모든 학교 생활에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열정과 참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모두가 모이면 아주 커다란 결과를 낳습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15

[동문]`시청자 만족이 방송의 최대 목표` MBC 시사제작 4CP 백종문 동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방송은 매체의 속성상 무엇보다 공익성을 요구받게 된다. 텔레비전을 가진 가구가 극소수였던 과거와 달리 리모컨 단추 하나로 텔레비전과 쉽게 맞닿을 수 있는 오늘날, 방송의 공익성은 새롭게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최근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방송의 과도한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지만, 공익성 확보를 위한 방송사들의 노력은 안팎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공익성 확보의 주역은 바로 '시사·교양' 프로그램. 백종문(신방 85년졸) 동문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공익'이란 화두를 시청자들에게 좀 더 유익하고 재미있게 풀어가려 노력한다. '딴따라'의 피가 흐르지 않는 프로듀서 문화방송(이하 MBC) 시사제작국 4CP 부장인 백 동문이 방송계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지난 1985년. 군 제대 후 '놀만큼 놀았던' 과거를 청산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언론사를 선택한 것이 계기였다고. 이후 MBC의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그는 제작 프로듀서가 아닌 편성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편성 프로듀서란 제작된 프로그램의 방영 여부, 방영 시간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 그러나 입사 후 3년이 지날 때 즈음, 백 동문은 보직변경을 요청했다. 직접 프로그램 제작을 맡아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PD에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제작, 라디오 제작, 편성 PD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3년 정도 편성 PD를 하고 나니 제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에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 등의 분야가 있었는데, 결국 시사교양 제작을 택했습니다.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주는 매력이 컸고, 예능 분야엔 소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제 몸에는 '딴따라'의 피가 흐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웃음)" 백 동문의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직함은 'CP'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직함은 Chief Producer의 약자로 일반 기업체의 부장에 해당하는 직위. 단일 프로그램을 맡는 담당 PD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행정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책임 프로듀서의 위치다. 현재 백 동문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와! e멋진세상'과 '타임머신'.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MBC 시사교양 분야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PD수첩' 보람과 갈등 모두 안겨줘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아마도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고 필요해 하는 것, 즉 시청자 니즈(needs)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PD수첩', 자연다큐멘터리, 아침방송 등 그런 면에서 강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죠. 또한 저희 시사제작국 제작진들이 유독 사회적으로 덜 오염되고 순수합니다. 물론 사회화가 덜 됐다는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이 약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는 강점이 있지요." 백 동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바로 'PD수첩'. 백 동문에게 방송인으로서의 보람과 갈등을 모두 맛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92년부터 97년까지 약 70여 편을 제작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때로는 PD로서, 때로는 책임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한다. "PD수첩을 맡았을 때, 사회적 약자, 즉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방송하며 많은 시청자들이 박수를 쳐줄 때 제일 행복했습니다. 방송 후에도 '내가 진짜 방송을 했구나', '내가 그 사람들에게 눈곱만큼이라도 기여를 했구나' 하는 보람이 가장 컸죠. PD수첩의 주제가 억눌린 자들,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것의 원인을 찾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7년간 PD수첩을 맡으며 저만의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시사 프로그램, 사회 갈등 해소의 역할 해야 시사 프로그램 제작의 전문가로 꼽히는 백 동문. 그는 시사프로그램은 시류를 잘못 읽으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사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경우 다양성이 담보되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백 동문이 보기에 최근의 시사 프로그램은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개혁과 보수, 젊은층과 노년층 등의 대립적인 구도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편가르기가 심해졌다는 뜻이겠죠. 그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 또는 방송이 그런 시류만을 쫓아 갈등을 부추기거나 확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시사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방송과 언론 전체의 몫이기도 하죠." 최근 백 동문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 시청자들에게 좀 더 편안히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 달 전 MBC 내에서도 드라마 다음으로 시청률이 높다는 '타임머신'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게 된 그는 시청률에 대한 부담이 아닌 다른 걱정이 앞선다고 말한다. 선정성과 지나친 과장 등 시청자들의 지적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동문은 교양 프로그램답게 가족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저는 항상 시청자들에게 재밌고 유익한 프로그램 만들어 제공하는 것을 최선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너무 원론적이라고요? 하지만 그것이 공중파 방송 제작자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그 다음 것을 바라볼 수 있겠죠. 더불어 방송 프로그램은 제작자 자신이 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드는 일종의 제품과 같습니다. 교양 프로그램은 더욱 그렇죠. 즉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유익하고 재미있다면 그 프로그램은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뚜렷한 자기 목표, 성공의 지름길 백 동문은 프로듀서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가장 큰 직업이라 설명한다. 경치 좋은 관광지에서부터 이라크 전쟁 현장까지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재미만이 프로듀서의 생활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청자들이 만족하고 호응해 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것이 좋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을 때야 비로소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요즘 방송국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다양한 끼를 곧잘 발휘하곤 합니다. 단조로운 모범생 스타일도 아닌, 그렇다고 노는 것만 밝히는 친구들도 아닙니다. 상황과 환경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끼를 표출하곤 하죠.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뚜렷한 자기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양인 여러분들도 일단 뚜렷한 목적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방송이나 언론뿐만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목표를 분명히 잡고 정진하면, 처음 한두 번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성공에 이를 것으로 확신합니다." 학력 및 약력 백종문 동문은 1978년 본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1985년 졸업했다. MBC 입사 후 3년간 편성 PD로 활동했으며, 이후 제작 PD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MBC 간판 시사프로그램 'PD 수첩'의 제작 및 진행자로 활동했으며 언론인 해외 연수를 마친 2000년부터는 'PD 수첩'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이후 '피자의 아침'을 비롯한 다수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는 수요일 저녁 7시 20분에 방송되는 '와! e멋진세상'과 일요일 저녁 10시 35분에 방영되는 '타임머신'의 책임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15

[학생]`꿈을 세일합니다` 광고대상 수상한 광홍과 `광고쟁이`들

광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재학 중 꼭 하고 싶어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대기업의 광고공모전에서 입상하는 것.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 받을 수 있고 장학금과 서류전형, 면접시 특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참여 과정에서 광고에 관한 실무능력을 갈고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24회 제일기획 대학생 광고대상 기획부분에서 안산캠퍼스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은 이런 소망을 이뤘다. 주인공은 대상을 차지한 한상호(4), 신의철(4), 신혁(4), 김선아(3) 팀과 은상을 수상한 김혜림(4), 이복희(3), 빈나영(3) 팀. 수상소식에 봄 햇살 같은 함박미소가 가득한 그들을 만나보았다. - 광고공모전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은. (Grand Prix팀, 이하 G) 처음에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가족들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잔치를 벌이자는 소리도 한다. 함께 작업한 친구들과 가족에게 감사하고 있다. 학과에서 매년 시행하는 광고제가 많은 도움이 됐다.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준비하는 동안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던 완벽한 팀웍에서 나온 것 같다. ( Silver Award팀, 이하 S) 수상소식을 전화를 접하고 목소리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복희 양이 제일기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작품을 선정작들 중에 찾을 수 없어 팀원들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달 뒤 연락이 왔을 땐 정말 꿈만 같았다. -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G) 1월 한 달 내내 준비를 했다. 2주 동안은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은 태반이고 제출 일주일 전부터는 밤을 계속 새며 공동작업을 했다. 여자친구에게 차일 뻔한 친구도 있고, 상호형은 유부남인데, 준비하는 동안 형수님을 거의 생과부로 만들어 우리가 더 미안했다.(웃음) 기획서 내용에 관해서는 우리가 선정했던 삼성카드의 광고이미지가 워낙 기존에 잘 되어 있던 광고라서 부담이 컸다. 하지만 점차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사회적 문제인식을 가지고 컨셉을 정하니 결론이 너무 쉽게 나버려 준비과정에서 3번 부도가 났다. 세 번 다시 시작했다는 말이다. 결국 다시 처음의 컨셉으로 돌아가 제출 하루 전까지 완성을 못 시켰던 상태였다. 사실 기획서 3개를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S) 준비과정에서 일주일이 넘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포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함께 본 일간지의 '오늘의 운세'에 '셋이 합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날부터는 이상하게 일이 잘 풀렸던 것 같다. 마감이 임박했을 때는 기획안을 고속 출력해 우체국 직원에게 그 날 소인을 찍어달라고 애원해 겨우 보냈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즐겁게 작업했다. 3명이 온갖 음식을 잘 해먹고 자료조사를 열심히 한다고 G팀이 우리 팀에게 '맛따라 길따라팀'이라는 애칭을 달아주기도 했다. - 아이디어를 주로 어떻게 얻었나? (G) 우리 팀의 장점은 모든 팀원들이 열심히 한다는 점이다. 한 명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아이디어를 낸다. 친근한 분위기라서 아이디어가 잘 나온 것 같다. 또 설문조사를 시행하느라 설문지 200부를 들고 1월 가장 추운 날에 터미널에서 고생했지만 직접 자료수집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S) 우리는 청호나이스 정수기를 광고주제로 잡으면서 경쟁사인 웅진코웨이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소비자심층인터뷰인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하러 찜질방에서 아줌마들의 정수기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던 것이 좋았다. 정수기에 대한 주부들의 자세한 이야기까지 듣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결국 우리 팀이 정한 고급스런 이미지의 '블루클래스'라는 컨셉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 준비과정을 통해 광고에서 중요한 점이 무엇이라고 느꼈나? (G) 광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다. 광고에 대해 환상과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지닌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훌륭한 광고를 만들 수 없다. 평상시에 광고를 볼 때에도 열정을 가지고 예리한 눈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자료수집과 설문조사, 타겟 소비자에 대한 조사를 직접 한 것이 많은 뒷받침이 됐다. 광고제작에는 매우 객관적인 작업들이 필요하다. (S) 광고는 팀웍이다. 혼자 여러 번 공모전에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힘들었다. 이번에는 3명이 모여 큰 효과를 본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과학적인 조사방법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 수상 외에 얻은 것이 있나? (G) 우리들의 깊어진 우정이다. 그리고 장학금을 노리고 한 턱 쏘라고 졸라대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S) 늘어난 몸무게다. 만나면 밥부터 해먹고, 또 스트레스 받아서 먹고 나중에는 쌀이 떨어져 수제비나 라면이라도 꼭 챙겨먹었다. 그런 다음날은 온 몸이 붓는다. 하지만 팀원들끼리 같이 늘었으니 살을 나눈 친구가 됐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G) 해주고 싶은 말은 한가지다. 광고는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공부한다고, 혼자서 한 우물을 판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개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광고는 서로 논의하면서 창조적 상승작용이 커지는 매체다. 개인주의보다는 적극적인 태도와 참여정신이 있어야 한다. 광고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이런 태도가 저절로 나온다고 본다. (S) 학생 때에는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훨씬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본다. 또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아이디어 수첩에 사진과 글을 적고 잡지, TV도 유심하게 보며 광고 전략을 구상해 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체력이었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G) 우선 학생이니 졸업이 가까운 목표다. 전반적인 진로는 모두 광고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으로의 광고공모전에도 계속 도전할 예정이다. (S) 인도 여행도 가고싶고 제일기획 아르바이트다, 토익준비다 정신이 없을 것 같다. 꿈은 카피라이터-이복희, AE(Account Executive)-김혜림, SP(Sales Promotion)-빈나영이다. 셋이 모여 광고 회사 하나를 차려도 잘 할 것 같다. 곧바로 있을 애드컴 광고제에 출품할 계획도 있다.

2003-04 08

[교수]대학종합평가 특집 대담 1: 오재응 교수

지난 2월 24일 발표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으로 약칭) 학문분야평가에서 본교가 토목공학분야와 수학분야에서 모두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대교협의 대학평가는 '대학의 질적 수준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사회에 공표함으로써, 그에 관한 사회적 인정을 얻게 하는 제도'로써 1992년부터 학문분야평가를, 1996년부터는 대학종합평가를 시행해 오고 있다. 이번 '토목공학분야'와 '수학분야'에서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된 본교는 올해 경제학 및 물리학 학문분야평가와 2004년 대학 전체를 평가대상으로 하는 대학종합평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검증된 기관인 대교협에서 공인된 절차에 의해 진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타 평가와 차별성을 갖는 대학종합평가. 전국 모든 4년제 대학이 점검을 받는 '대학종합평가'를 행정 최일선에서 준비, 지휘하고 있는 오재응 기획조정처장을 만나 '대학종합평가'의 중요성과 대응방안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향후 계획을 들어보았다. - 이번 평가에서도 요구되었던 부분이지만, 이제 더 이상 대학이 외적인 규모나 명성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교육개방에 대한 압력, 대학의 행정 및 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 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요즘, 본교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어떤 식으로 준비해 나가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은 밖으로는 국제화에 따른 개방 압력 속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를 요구받는 동시에 안으로는 교육의 질 제고 및 지속적인 개혁의 과제 속에 생존의 문제에 직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교는 고등교육의 국제화, 대학교육의 질 제고와 사회적 책무성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에 매진해 왔다. 물론 지속적인 투자와 시설확충을 통해 교육 여건 개선에도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번 평가도 그렇고, 지금가지 각종 대학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하는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재정지원 사업에서 6년 연속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된 바 있고, 대교협 학문분야 평가, 중앙일보 평가, 국가고객만족도 조사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작년에는 대학행정에서 ISO 9001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우리의 대학행정이 세계적 표준임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평가는 세계 10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준비해나가고 있는 일련의 사업들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틀 안에서 고쳐야 될 문제점들을 파악, 시정해 나가겠다. - 작년 학문분야 평가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그것은 전체가 아닌 수학분야와 토목분야에 대한 것이었다. 대교협에서 매년 다른 학문분야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 이루어지는 분야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외부 평가가 있다면 설명해달라. 본교는 대교협에서 실시하는 대학종합평가와 학문분야평가를 앞두고 있다. 학문분야 평가는 올해 경제학 및 물리학 분야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2004년에는 기계, 화공, 생물, 경영 분야를 대상으로 평가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중앙일보의 종합평가와 학과평가, 국가 고객만족도조사, 기타 단체들의 평가들이 기관사정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2004년도 제 2주기 대학종합평가가 중요하다. 학부와 대학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대학 종합평가는 대학경영 및 재정, 발전전략 및 비전, 교육 및 사회봉사, 연구 및 산학연 협동, 학생 및 교수·직원, 교육여건 및 지원체제 등 6개 평가영역에 걸쳐 21개 평가부문, 45개 평가항목에 대해 다면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다. 평가 항목 중 구성원의 참여도와 만족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는 등 어느 기관의 대학평가보다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인 평가이다. - 그토록 중요한 평가라면 학교측에서도 별도의 준비를 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구성원들의 관심과 참여촉구가 아니라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할텐데,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효과적인 평가를 받기 위한 학교측의 구체적인 노력이나 복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물론 학교측에서도 구성원의 참여와 효과적인 평가를 위해 준비해 오고 있다. 우리 기획조정처에서는 2001년부터 종합평가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를 통해 자체점검을 진행하면서 본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대교협 평가뿐만 아니라 각종 대학평가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가칭「평가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평가기획위원회」는 교수 및 직원 선생님으로 구성되며 각종 대학평가에 대한 기획 및 평가연람, 기준에 대한 연구, 평가에 대한 조언, 모의평가 활동, 평가결과의 분석 등 다양한 지원 활동으로 우리대학이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학교와 구성원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종합평가위원회 홈페이지를 준비중에 있다. 조만간 완성될 이 홈페이지는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각종 설문조사와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한양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학교발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가 되도록 만들어갈 계획이다. - 대교협 평가뿐 아니라 각종 대학평가에 주안을 둔 준비활동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대학이 외부에서 평가만을 잘 받는다고 해서 꼭 좋은 대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외부적 평가에만 치중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평가라는 것이 평가로써 끝난다면 그런 비판이 타당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준비하는 평가는 대학발전을 위해 분야별 또는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진단을 통해 내부에서 잘 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지적 받고 고쳐 나갈 수 있다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타 기관으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교수, 교직원, 학생, 동문, 학부모까지 모든 한양인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발전계획에 의거하여 학교를 발전시키면서 그 사이사이에 평가라는 내·외부의 점검을 통해 보완해 나간다면 2009년 70주년, 더 나아가 2039년 100주년의 최종목표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평가는 끝이 아닌 중간과정으로 이해해 달라. - 계속해서 한양가족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평가라는 부분과 구성원의 협조 사이에 상관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재학생의 경우 외부 장학금 수혜여부를 과에서도 단대에서도 모른다.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다. 이는 정확한 장학금 수혜율을 집계하는 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최근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을 해도 학교에서는 그 학생들을 미취업으로 파악, 전체 취업률이 낮게 집계된다. 교직원 선생님들은 각자 부서의 업무가 바쁘다 보니 평가를 위한 협조작업이 잘 안 이루어진다. 평가에 필요한 문서들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것들이 하나하나는 작은 부분들이지만 모두 평가의 구성요소이다. 이런 작은 부분부터 구성원들이 자기 일처럼 신경 써 처리해 준다면 당장이라도 우리학교에 대한 외부평가 결과가 개선될 것이다. 한양대학교를 구성하는 주체들간의 이런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활한 협조를 위해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홈페이지 역시 구성원의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속 빈 강정이 될 위험이 있다. - 마지막으로 한양가족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대학본부에서 여러 제도적 행정적 노력을 한다해도 이 모든 것들은 한양 구성원 여러분의 협조 없이는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아무쪼록 우리대학이 교육의 질 향상과 교육여건의 개선, 사회봉사의 역할증대 노력 등을 잘 반영하여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양가족 여러분의 참여와 협조를 부탁한다. 우리가 없는 것을 꾸며서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제대로 평가받자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곳, 우리의 일터가 제대로 평가받는 날까지 나를 포함한 대학본부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대담후기> 오 처장은 대학종합평가의 중요성에 대해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 결론은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것이었다. 구성원들의 관심과 협조, 이것이 핵심이었다. 대담을 준비하기 위해 서너 차례 전화를 걸때마다 그는 회의나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간 처장실에는 학교 관련 각종 회의일정이 빼곡이 들어찬 월간 일정표가 있었다. 기획조정처를 맡은 후 이번 등록금 합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오 처장. 이것은 대학이 누구 한 주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대학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같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궈낸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기사도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달라고.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08

[교수]엔지니어의 '도덕 재무장' 주창하는 김수삼 교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40여일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하철을 비롯한 많은 사회간접자본에 대해 근본적인 안전체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대구 참사의 발생 원인 중 90퍼센트가 인재였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에 건설교통부는 최근 건설교통 관련 시설·차량·업체 종사자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를 전면 점검하고 총체적인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건설교통안전기획단(이하 안전기획단)'을 발족했다. 새롭게 발족한 안전기획단의 총괄단장으로 피선된 공학대학 토목환경공학과 김수삼 교수는 이 같은 참사는 상당 부분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임을 지적한다. 건설교통안전기획단 총괄단장 피선 "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국가 안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다시 보자'라는 입장에서 정책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건설교통안전기획단'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발족했다고 봅니다. 건설교통안전기획단은 건설교통부가 가지고 있는 시설, 도로, 철도, 공항, 건축, 물류체계 등의 부분에 대해, 시설 안전에 관련된 각종 법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입니다. 대구 참사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한 후속조치인 셈입니다. 분야별 산학연 민간 전문가만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약 3, 4개월간의 공동 연구를 거친 후 안전에 대한 총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한국교통건설안전기획단장 김수삼.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직함들에 또 새로운 직함이 첨부됐다. 건설과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직함을 지닌 김 교수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책임이 부여된 셈이다. 국가의 전반적인 안전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측면에서 안전기획단의 임무는 대단히 막중해 보인다. 더욱이 참사 이후 크고 작은 지하철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면서 많은 시민들은 대중교통 이용에 있어 전에 없는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런 작은 사고의 발생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 지하철 사고가 많이 나타나는 첫 번째 이유는 지하철 규모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지방의 경우 지하철 운영 경험이 짧습니다. 실제로 대구 참사에도 운전기사와 역무원들이 좀 더 침착하게 응급처치를 했더라면 사고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는 노후 부분이 문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 2, 3호선 같은 경우 건설된 지가 이미 10년 이상 지났습니다. 작은 사고들이 빈발함으로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보수, 보강이 강화된다면 오히려 문제점들이 빨리 노출되는 것은 대형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지 않겠습니까?" 엔지니어 '도덕적 재무장' 필요해 대구 참사는 처음 있는 대형사고가 아니다. 지난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는 전 세계의 이목을 우리나라로 집중시켰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건설은 사고가 많은 기술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각인시켰다. 지난 10년 간의 대형 사고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사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린다. 다른 대형 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32명의 인명 피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성수대교 붕괴는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모습이다. 김 교수는 이것이 교량이 갖는 기대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변명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지난 50년 간 3천여 건에 달하는 교량사고가 있었습니다. 사회간접자본은 그 발전 단계에 있어 시행착오적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수대교 사고를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의 교량에 대한 믿음이 높다는 것입니다. 기대가 높았기에 실망과 불만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토목공학자들은 국민들의 그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따라서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도덕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독자성 그리고 사회에 대한 봉사의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국민들의 기대를 지키려고 합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이면에는 과거 사회에 팽배했던 '공기단축, 공비단축'의 제도적 압력이 있었노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그러나 설령 그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책임과 직업의식을 망각했던 것은 변명할 수 없는 부분임을 그는 인정하고 있다. 범사회적 요구가 압력으로 작용했다 할지라도 엔지니어는 전문성을 가지고 꿋꿋하게 고집을 지켜나가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간접자본에 관여하는 인력들은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꾸준한 시설관리에 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앞서 김 교수가 언급한 엔지니어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 덕목 중에서도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도덕성'이다. 이것은 그가 평생을 통해 견지하는 학문의 자세이기도 하다. "기술자들, 특히 토목공학 기술자에게 있어서 도덕성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시설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시설은 영리목적이 아닌 공공이익을 위해서 사용되는 시설입니다. 만약 우리가 도덕적으로 무장이 되지 않아 부정이 개입되거나 부실공사를 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이윤의 감소가 아닌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전국 1위가 부럽지 않은 4위 토목공학자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공학대학 중 가장 도덕성이 강조되는 학과가 토목환경공학과라고 말한다. 그 동안 기술 개발에만 집착해왔던 많은 토목공학 관련 학과들이 최근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김 교수가 몸 담고 있는 토목환경공학과 역시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영화·연극·음악·환경 동아리와 같은 특수 동아리를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런 학과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일까. 토목환경공학과는 이번 대교협 평가에서 전국 4위로 '최우수대학'에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준비위원장으로 이번 평가 준비의 최일선에 있었던 김 교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그는 오히려 '불만'스런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는 전국 1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프로그램 베이스나 그 동안의 연구들, 학생들의 노력은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우리가 가진 각종 교육시스템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행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three less room(3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트도 없고(paper less), 칠판도 없고(board less), 국경도 없는(boader less) 강의실입니다. 또한 학생들은 우리나라 어디에 있든지 핸드폰으로 학과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육시설입니다." 학생 한 명당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지는 '3無' 강의실에서는 교수도 컴퓨터를 통해 강의를 진행한다. 또한 일부 컴퓨터는 강의 중에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외국대학과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중에 있다. 교육시설뿐 아니라 인성교육에 있어서도 토목환경공학과가 최고라 자부하는 김 교수는 일부 계량적 지표 때문에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며 은근히 서운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번 평가결과는 공학 교육의 위상을 다시금 인식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음을 인정한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토목공학의 가치와 전망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토목공학은 국가의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기초 기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볼 때, 우리나라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매우 비극적입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닌 돈을 벌게 하는 공학기술은 학생들에게 천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배고픔이 사라지고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부의 가치에 매료됐지만, 언젠가 자아실현이 무엇보다 인정받는 시대가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 자기 직업분야에서 창의적으로 인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청년의 '희노애락'은 캠퍼스에서 김 교수는 아버지의 권유와 취업이 잘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처음 토목공학을 선택했노라 고백한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에게 토목공학은 더없는 천직이었단다. 대부분의 공학기술이 일차적으로 개인 혹은 기업의 이윤에 기여하는 반면 토목공학은 국가와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학문이라 그는 일축한다. 이것이 그가 느끼는 토목공학의 가장 큰 매력이다. 모든 한양대 학생들에게 그가 당부하는 것 또한 각자가 몸담은 학문이 사회를 위해 큰 쓰임을 가질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전문인을 키우는 곳입니다. 대학에서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피와 땀으로 가득찬 자기 극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도 투자해야겠지요. 나는 캠퍼스가 단순히 학생들이 강의를 수강하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청춘이 투영된 공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학교 어딘가에서 새우잠을 자더라도, 학교 안에서 생각하고,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고 이른바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학력 및 약력 김수삼 교수는 1969년 본교 토목공학과에서 공학사를, 1974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4년 중앙대에서 지반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수자원공사, 선경건설 등을 거쳐 중앙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토지개발공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시설안전기술공단, 한국공항공단 공항건설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토목학회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한국지반공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공학기술문화진흥정책』, 『공학기술로 나라 살리자』등이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08

[학생]`궁과 전통을 지킨다` 경복궁 수문장 건축학과 김수한 군

영국에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이 있다. 작년 5월, 월드컵 개최를 맞이해 문화재청과 한국문화보호재단의 주관으로 시작된 수문장 교대식. 겨우내 중단됐던 교대식이 봄을 맞아 이달 초 다시 시작됐다. 이 행사에서 수문장 역할을 맡아 병사들을 호령하고 있는 자랑스런 경복궁 지킴이 김수한(공대·건축2) 군을 만나 보았다. - 수문장으로 지원한 계기가 있다면. 지난 1월에 의장대를 전역했는데, 군대에 있을 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 분의 말씀을 듣고 이런 행사에 관해 처음 알게 됐다. 의장대에서 진행했던 행사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 전역 후 공모에 지원하게 됐다. 실제로 비슷한 점이 좀 있어 빨리 익숙해 진 것 같다. 현재 나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도 대부분 의장대나 군악대 출신이다. - 수문장 교대식이 어떤 행사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현재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에서 수문장 교대행사가 이뤄지는데, 나는 경복궁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 정시부터 30분간 진행된다. 수문장 교대식 행사나 흥례문, 광화문 등 궁성 문 개폐 행사 등에 참가해 일종의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대식 행사에서 교대 병력의 수문장은 20명의 수문군을 데리고 나타나 앞서 근무하던 수문장과 서로 군호(군대 암호)를 확인하고, 수문장 패(통행증)와 열쇠를 교환한다. 마지막으로 등채(의장용 채찍)를 들어 서로 경례하고 각종 전달사항을 인수인계 한다. 또 수문장인 나는 마치 실제인 것처럼 다른 병사들의 복장이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이 교대식은 취타대의 국악 소리에 맞춰 진행된다. - 행사 도중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구경하는 사람의 60퍼센트 이상이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어린이들이다 보니,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키가 큰 수문군들이 수염을 붙이는 등 분장한 상태로, 움직임 없이 정렬해 있다보니 마네킹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확인해 보려고 다가와 몸을 눌러보거나 만져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화하거나 웃으면 안되기에 애써 참는다. 또 걸음걸이를 약간 팔자로 걸어야 하는데, 어린이들이 옆에서 흉내내며 따라 걷는 경우도 종종 있다. - 경복궁 행사만의 특이점이 있다면? 다른 궁에서 이뤄지는 행사들은 이벤트 회사가 주관하는 것이어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사들이다. 그러나 경복궁의 행사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직접 주관하는 행사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실제 조선시대에 이뤄진 행사가 그대로 재현되고 의상 역시 그 당시 입었던 옷과 거의 똑같다. 옛 문화를 그대로 복원한다는 점에서 다른 곳 행사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 수문장 역할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들이 있는가? 공모에 선발되면 교육을 받게 된다. 조선 시대 문화에 관한 교육인데, 교대식에 관한 자료가 사진 자료 몇 장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고증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 조선시대의 군대 행사를 그대로 재현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수문장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자랑스럽고, 행사를 잘 진행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갖게 됐다. -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5월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경복궁의 경우 문화재보호재단 측에서 병력을 늘려 좀더 웅장한 규모로 교대식을 진행하고, 중간에 전통 태껸과 검법시범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통의식 재현 행사를 보고,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01

[동문]형벌제도 구조조정 진두지휘하는 법무부 보호국장 정동기 동문

일반인들이 '형벌'이란 단어를 접할 때 흔히들 잔뜩 웅크린 채 창살 아래 들어앉은 재소자를 떠올리며 사회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범죄자가 사회화가 덜 된 청소년이거나 정신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이 같은 '격리 조치'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에는 이미 폭넓은 사회적 인식이 있다. 이런 경우 내려지는 조치가 바로 '보호관찰제도'이다. 교도소 수감이 오히려 부적절한 범죄자들을 '부작용' 없이 교화하는 방법으로서 운용되는 '보호관찰제도'는 최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보안관찰제도'와는 언뜻 유사한 듯 하면서도 그 대상과 효과가 전혀 다르다는 측면에서 엄밀한 구분을 필요로 한다.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보호관찰제도'를 관장하는 곳은 법무부 보호국. 그리고 이 법무부 보호국의 중심에는 본교 출신 최초 검사로 한양 법조계의 수장급으로 인정받는 정동기(법학 76년졸) 동문이 있다. 보호국장 임명된 '보호관찰제 박사' "보호관찰제도는 범죄인을 교도소 등에 보내지 않고 가정과 사회로 돌려보내 보호관찰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일정 시간 무보수 봉사활동을 하게 하는 사회봉사명령, 약물남용치료와 교통사범 준법교육 등을 받게 하는 수강명령을 통해 교화·선도하는 최신 형사정책 수단 중의 하나죠. 보호관찰이라는 용어는 협의로는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는 자체 또는 그 활동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들을 포함한 광의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정 동문은 지난 12일, 본교 출신으로는 최초로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법무부 보호국장에 임명됐다. 모 일간지에서 보호관찰제도에 관한 박사학위 소지자인 정 동문이 보호국장에 임명되어 보호국 업무는 더욱 전문성을 띄게 됐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능력은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987년 보호국 검사로 보호관찰 업무와 첫 인연을 맺은 뒤 15년이 지난 지금, 정 동문이 자신의 뜻을 펼칠 진정한 기회가 온 것이다. "보호관찰은 범죄인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재범을 효과적으로 방지함과 함께 범죄예방에 소요되는 국가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가장 선진적인 형사정책입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이 모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죠. 치료감호는 정신이상자와 같은 범죄자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 보호감호는 상습범을 대상으로 실시됩니다. 특히 보호관찰은 범죄자들이 교도소, 소년원 같은 곳에서 범죄 수법을 배우거나 출소 후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형벌제 구조조정의 본부 '법무부 보호국' 보호관찰제도는 1869년 미국 메사츄세츠 주에서 최초로 입법화된 이후 영국, 스웨덴, 일본,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되며 그 효과가 널리 입증돼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호·치료감호가 지난 82년부터 실시됐고, 보호관찰은 지난 89년 7월 1일 전국 12개 보호관찰소와 6개 지소가 개청되며 소년범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정 동문은 보호관찰의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넘어야할 산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사회인식 부족이 제일 아쉽습니다. 일반인들은 범죄자는 꼭 교도소에 가서 죄값을 치르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교도소 수감 자체는 국가비용만 증가시킬 뿐 범죄자와 피범죄자 사이에 이득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히 마약, 공공질서 문란 같은 사회적 범죄는 사회봉사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보호국은 형벌제도의 구조조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교도소 이외의 공간에서도 범죄자를 충분히 교화할 수 있다는 사회인식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정 동문은 유독 '형벌의 양극화'를 강조한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로 인한 개인 또는 사회가 입은 피해를 보상해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은 가급적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재범 가능성을 방지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더 밝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보호국의 '존재이유'라고 정 동문은 역설한다. "제대로 된 보호관찰을 시행하기 위해서 계속적인 인력 충원과 시설 확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호관찰관 1인당 300명 정도의 보호관찰대상자를 담당하고 있는 것을 1인당 75명 수준으로 줄일 것입니다. 또한 최근 소년원에서 영어, 인터넷 교육 등을 실시하는 것과 같이 보호행정의 전반에 있어서도 개선을 추진할 생각입니다. 소년원 들어가서 '사람 버렸다'라는 말이 아닌 '사람 됐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해야죠." '최초'의 수식은 '부담' 아닌 '원동력' 지난 81년, 본교 출신 첫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한지 23년. 그러나 정 동문은 '최초'라는 말이 부담이 되기보다는 본교에 대한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후배들이 많이 노력해 준 덕에 어디에서든 자신 있게 '한양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정 동문은 지금의 '한양인'이라면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준 학교 당국과 후배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본교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훌륭하게 제 몫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공학, 법, 언론, 행정, 경제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면 매우 흐뭇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의 재능에 노력이 배가된다면 세계 제일의 대학이 되는 것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제가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돕고 싶습니다. 열심히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력 및 약력 정동기 동문은 1976년 본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과 1998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지난 1981년 서울지방검찰정 북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를 비롯해 부산, 대구, 창원지방 검찰청에서 부장검사를 역임했으며, 지난 12일 검사장급인 법무부 보호국장으로 승진했다. 「사회봉사명령제도의 연구」 외 13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캠브리지 대학에서 방문학자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 『보안처분제도론』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01

[교수]'반도체 산업, 돈 안 되는 기초연구에도 관심 필요'

70년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중화학 공업이었다. 무겁고 거대한 '규모의 미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 '반도체'란 그 용어마저도 낯선 미지의 산업이자 학문이었다. 서울캠퍼스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의 곽계달 교수는 모두가 '커다란' 것을 동경하던 시절에 '작은 세상'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 유별난 학자다.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서 곽 교수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반도체 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왔을 때 한국은 여전히 '도체'와 '비도체'만을 구분할 줄 아는 단순한 세상이었다. 이후 국내 반도체 연구의 1세대 주자로서,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묵묵히 연구실을 지켜온 그다. 하지만 곽 교수는 이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린다. 한국 반도체 연구의 산증인 "프랑스의 전통은 매 학기 초에 모든 연구소에서 여러 가지의 과제를 줍니다. 그리고 과제 선택권은 개인에게 주어집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욕심에 다양한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그 중 한 과제가 '반도체 특성 연구'였습니다. 70년대에는 반도체라는 용어마저 생소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반도체 연구 쪽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은 당연했죠.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던 겁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에 의해 최초로 IC칩이 계발되자 반도체 산업은 점차 첨단산업으로서 그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학자들이 앞다투어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고, 많은 연구소들이 새롭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90년, 곽 교수 역시 본교에 첨단반도체센터를 건립했다. 비로소 사람들은 '작은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작은 국토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반도체와 같이 작지만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이 전략적으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우리민족의 유별난 고집과 창의성이 이러한 산업의 성장에 더없이 훌륭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어느 날 작고하신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일본 유수의 반도체업체 사장을 만났답니다. 그리고 우리도 반도체 산업을 하면 어떨지를 물었더니 그 일본 사장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이 회장은 오기로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탁월하게 우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창조적이고 신념에 따르는 열정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또 일본과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국가와 함께 동행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현재 반도체 산업의 바탕이 됐습니다." 중국의 급부상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학계의 뒷받침 속에 기적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 반도체 산업은 자동차 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략산업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시장에서 D램 가격 하나가 오르내리는 것에 국내 경기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과속 성장 탓일까. 매년 승승장구를 달려오던 반도체 수출 규모가 점차 하락하고, 급부상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경쟁자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놀라운 반도체 산업 성장속도는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기초 연구보다는 말초적인 연구, 소위 돈이 되는 방향으로만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력낭비가 생기고,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도 중복 투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핵심기술 개발에 있어서 집중 투자를 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발생했습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 빠른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반도체에 있어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훨씬 쉽게 어려움을 대처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빠른 성장에 국내 모든 산업들은 바짝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넓은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저가의 중국 반도체들이 해외시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곽 교수는 그런 우려들을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의 성장에 대해 소극적으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는 능동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잘 봐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라는 것은 외국인의 투자에 의해 설립된 반도체 공장입니다. 그것은 중국 고유의 기술이라기보다는 국제 자본과 국제 기술이 혼합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우리나라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앞서 있지만, 중국이 앞서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어떤 이들은 기술을 선택적으로 줘야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논의 이전에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중국 안에 들어가서 우리 반도체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그들의 성장을 오히려 우리가 주도하면서, 그 부가가치 역시 우리가 점유하자는 것이죠." 새로운 기회를 강조하는 곽 교수는 그 구체적인 대안의 땅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꼽는다. 곽 교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의 성장을 예상하고 중국 유수의 대학들과 폭넓은 학술 교류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지난 해 9월에는 중국 상해의 푸단대학과 합작으로 '푸단-한양반도체연구소'가 설립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문화원의 자문위원으로서 러시아의 과학과 기술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최근 부인과 함께 러시아 울리야노프스 국립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기도 했다. 공부보다 '성찰적 삶'이 중요해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곽 교수에게 대학 시절을 물었다. 모범생이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커다란 웃음으로 답하는 그는 이른바 '불량 학생'이었단다. 곽 교수는 대학에 들어와서 2학년 때까지 학교 공부대신 '인생 공부'를 했다고. '어떻게 하면 이 험악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를 시작으로 그는 일상을 사로잡는 삶의 의문들에 대해서 한참이나 진지한 고민을 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하다 보니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단다. 3학년이 돼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해 결국에는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 그는 고백한다. 난데없이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이후에는 공부 잘 하셨겠죠, 교수님?' "나는 공부 잘한다는 말을 참 싫어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부족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어떤 면에서 좀더 인간적인 면으로 성숙할 수 있는 대학생활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내 목표였고, 따라서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나는 그만큼 정신적으로 부자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교수는 비록 경제적 성취가 없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유를 가지는 것. 그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인생에 대한 많은 사색을 할 것을 권고한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며, 스스로를 분주한 일상 속에 구속하고 새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에 곽 교수는 너무 슬프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그의 눈에는 참 귀한 많은 인생들이 제 가치를 다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우리 삶을 즐기면 또 다른 우리 인생을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잃게 됩니다. 늘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대신,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아야 합니다. 그런 삶의 여유를 가질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세상은 내 뜻이 통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처럼 말입니다." 학력 및 약력 곽계달 교수는 본교에서 1974년에 공학사를, 1976년에 동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 초청 국비유학생으로 Institute National Polytechnique de Toulouse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 전공은 반도체 공학이다. 현재 전자공학회 국회 분과위원, 특허청 특허 심사 자문위원회 위원, 러시아 첨단과학센터 전문위원장 등으로 활동중이다. 본교 첨단반도체센타장과 반도체협력사설계지원센타장을 맡고 있으며 1981년부터 본교 전자전기컴퓨터 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01

[교수]`정열과 사랑의 병원` 신임 구리병원장 함준수 교수

구리병원은 개원 이후 9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열과 사랑이 넘치는 젊은 병원으로 구리와 남양주시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안식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쾌적한 환경이 훌륭한 의료서비스의 출발이라는 신념으로 타 병원과 차별화된 환경 구축을 계속하고 있는 구리병원에 본교 출신 첫 병원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개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실천'을 이루어 갈 것이라는 신임병원장 함준수(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나 부임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본교 출신 첫 병원장으로서 취임소감이 무엇보다 궁금하다. 한양의료원이 개원한지 올해로 31주년을 맞이한다. 30년이면 사람으로 따지면 성숙한 성인으로 거듭난다고 볼 수 있는데 이즈음에 구리병원으로서는 본교 출신 최초의 병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서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 심정으로 '내가 잘 돼야 후배들도 잘 된다'라는 자세로 병원을 이끌어 나가겠다. - 구리병원만의 장점을 말한다면. 구리병원은 지난 94년에 개원해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젊고 활기가 넘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구리병원은 전국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구리시와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5백 병상 정도의 큰 병원이다. 하루 빨리 지역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이룩하고 재벌병원이 들어서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병원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것이다. - 병원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큰 문제점이 진료 공간이 좁다는 것이다. 병원 내 진료 공간을 점차적으로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병원 주위의 5백여 평에 달하는 부지를 확보해 행정업무 파트를 그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주차타워를 설치함으로써 효율적인 공간 활용도 꽤하고 있다. - 특화된 지역병원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과제라 생각되는데. 구리와 남양주시의 지역의 정서에 맞는 특화된 병원으로 만들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술과 관련한 췌장, 위장 등의 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 본 병원은 이와 같은 소화기 계통의 진료에 뛰어나다. 서울병원의 분원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탈피해 구리병원만의 특징 즉, 술과 관련한 질병 치료를 특화하는 등의 노력을 할 것이다. 5백 병상을 구비하고 있어 구조상 2차 병원으로 분류돼 있지만 기술은 3차 병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이에 3차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대외환경의 변화에도 대처해 나갈 것이다. 곧 닥치게 될 병원개방에도 지혜롭게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서울병원과의 긴밀한 협력도 중요할 것 같다. 실시간으로 수술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학문이나 교육적인 협력을 진행할 것이다(본교 의료원은 질병을 진단한 영상을 디지털 상태로 획득, 저장하고, 판독결과와 진료기록을 함께 단말기로 전송, 검색하는 통합 의료영상시스템을 구축해 기존의 필름대신 영상정보를 디지털화함으로써 서울의료원과 구리의료원간의 영상정보 호환을 계획하고 있다. Weekly Hanyang 2월 2주차 기사 참조). 일본, 미국 등과의 국제적인 화상 회의도 계획 중이다. 또한 특수성을 가진 질병에 대해서는 개별 병원에서 행하던 과 단위의 진료가 아닌 양 병원간의 팀 단위로 진료를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 병원 운영 철학을 말한다면. 열 사람이 힘을 합치면 그 힘은 열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 배가 될 수 있다. 병원 가족들이 한 데 힘을 모으면 이러한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는 신념 하에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정신을 기본 철학으로 병원을 운영해 갈 것이다. 최근 재벌 병원들이 등장함에 따라 영리 위주의 경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병원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진료'가 돼야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 후배 의학도들에게 남기고 픈 말이 있다면.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에는 자기희생과 인내력이 필수적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사랑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늘 마음에 품고 학교를 더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한다.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3 22

[교수]`대륙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대륙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0조 위앤(약 1조 2천억 달러)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세계적 생산기지로서의 위상이 날로 상승되면서 이제 중국은 세계 제 6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 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투자 대상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연일 다국적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자본과 경제발전 경험을 받아들이기에 열중하던 중국이 이제는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 기회의 땅이 되리라 꿈꿔오던 중국이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경쟁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러한 대륙을 이기는 가장 최선의 길은 '그들을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학과 임계순 교수의 말이다. 대륙을 알아야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용이 비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상하는 용의 생명선을 알아내서 그 생명선을 부여잡고 함께 비상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잘못 알고 용의 꼬리를 잡는다면 우리는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전부터 많은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에게 중국의 급성장을 예고하고 우리의 대처방안을 부르짖던 이가 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앞선 예견은 경제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닌 사학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가 바로 임계순 교수다. 평생을 중국 역사 연구에 받쳐 온 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중국통'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 역사 연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본 임 교수는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역사의 교훈을 온 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가 바라본 중국 급성장 배경은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발전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중국은 1860년 이후 꾸준히 근대화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당시 중국 연안지역은 서구열강에 의해 개발되고 있었고 특히 상해는 그러한 힘에 의해 1930년대에 이미 세계 제7위의 대도시로 발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1949년부터 1978년까지의 공산혁명을 거친 전 국민들이 가난에 지쳐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먼저 잘살고 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천안문 사태를 거치면서도 민주화는 차치하고 경제에만 매달리게 된 것이죠." 대중국 교육부 파견 '1호' 교수 임 교수는 최근 중국과 미국간에 조성되는 우호적인 국제관계가 조만간 새로운 세계경제의 틀을 형성할 것이라 말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미국의 생산기지가 될 때 현재 대미수출 의존도가 심각한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는 추측 역시 매우 설득력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도약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임 교수는 중국의 '생명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해낼 수 없는 분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분야의 사업과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극복하고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중국에는 우리나라 인구 규모에 달하는 상류층이 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인식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많은 중국인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점은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보다 더욱 현대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겉모습만 보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다릅니다. 늘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또 권위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와 달리 평등에 대한 인식이 공산화 혁명을 통해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사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아직 중국과 우리나라간에 정식수교가 없었던 1991년, 임 교수는 교육부 제 1호 파견교수로 북경대학에 진출한다. 그녀는 1991년 당시 수교가 없던 중국에서 한국인으로 지내야 했던 일상이 경계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노라 고백한다. '한국인은 모두 부유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던 중국인들에게 몇몇 한국인들이 '변'을 당하는 사례를 직접 목격하면서 임 교수가 택한 생존전략은 '동질감 형성'이었다.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에 중국인들은 결국 마음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중국인 양부모도 생겼다. 중국 공략을 꿈꾸는 많은 기업들에게 임 교수는 제안하는 첫 번째 노하우 역시 '그들의 마인드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하려면 먼저 중국인이 되야 합니다. 물론 중국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관련 연구들이 많이 진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중국의 표피적 모습만을 알고 있습니다. 광활한 대륙 중국은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세대마다 가치관도 매우 다릅니다. 이 차이들을 알기 위해서 중국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 연구를 통해 '대륙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사업적 성공도 보장될 것입니다." 청시대 연구의 바이블 '청사(淸史)' 임 교수는 중국역사 중에서도 청대사(淸代史) 부문의 손꼽히는 권위자다. 그녀가 저술한 '청조팔기주방흥쇠사'는 세계의 저명한 역사학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중국에서 재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저서로 인해 삼련서적의 편집인은 그 해 '우수편집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중국에 대한 임 교수의 연구는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지난 1994년 출판한 『한국인의 짝사랑, 중국』은 당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2000년에 처음 출판된 '청사'는 청나라 흥기에서부터 청나라 몰락까지를 한 권에 담고 있어요. 중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대개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 근·현대 연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혹 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청나라의 부분 부분에 치중한 역사를 연구하죠. 개인적으로 박사논문으로 청의 '팔기주방'을 쓰면서 청의 전기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청나라 전체의 역사를 써보자는 자신감이 생겼죠." 중국 청시대 전체를 균형있게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청조의 변방정책 및 개혁 등 심도깊게 추적한 '청사(淸史)'는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현재 북경대학에 의해 중국어로 번역중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제가 중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우리 문화의 대부분이 대륙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그 대륙으로부터 어떤 문화가 우리에게 와서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어떤 형태로 변화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만 대륙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점 속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독특한 정체성이 발견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점차 획일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우리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는 이 말은 어쩐지 임 교수의 학문적 신념과 많이 닮아있는 듯 하다. 그녀는 우리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만을 강조하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역사 연구는 지양해야 하며, 대륙진출을 위해서는 그들의 시장만을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시간이 흘러 정년 퇴직을 하고 나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를 연결해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 싶다는 그녀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와 해야할 공부가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노 교수 앞에서 문득 나태한 젊음이 부끄러워졌다. 학력 및 약력 임 교수는 1967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사 문학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1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북경대학 역사학과에서 한국 교육부의 파견교수로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하남성 낙양대학에 출강한 경력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경제연구원장을 역임했고 저소득층 맹인을 위한 사회사업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대표 저서로 『청조팔기주방흥쇠사』, 『한국인의 짝사랑, 중국』, 『중국의 여의주, 홍콩』, 『淸史, 만주족이 통치한 중국』, 『중국인이 바라본 韓國』등이 있고 역서로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등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3 22

[교수]신임 서울병원장 취임한 우영남 교수

2003년 3월, 신학기의 설렘과 부푼 기대들이 가득한 교정처럼 본교 의료원도 신임 병원장의 부임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병원 신임 병원장은 본교 의과대학장과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우영남(의대·비뇨기과)교수. 교수와 의사로서의 1인 2역에도 불구하고 병원장의 임무까지 맡은 우 교수를 만나 그의 새로운 각오를 들어보았다. - 우선 취임을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떠신지. 우선 막중한 부담감이 느껴지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한양대 병원이 1972년 설립된 이후 벌써 3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초창기 때처럼 병원이 성장하는 시기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막막하고 착잡한 것이 사실이다. 처음 병원장 부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쳐갔던 생각이 '아차, 큰일났구나'였을 정도였다. -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지금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의과대학장이었을때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일들이 이젠 병원장으로서 병원간의 경쟁체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엔 교수로서 연구와 강의에 비중을 두고 살았지만 이제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갑자기 바빠졌다. 업무는 업무대로, 강의는 강의대로 또 진료는 진료대로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익숙지 않은 빡빡한 일정의 연속이다. 이 와중에도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더 잘 해야겠다고 하는 다짐이 오히려 중압감으로 바뀌고 있어 걱정이다. - 현재 병원발전에 가장 먼저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흔히 대학병원의 목표는 교육, 봉사, 진료 이 세 가지로 함축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잘 어우러 질 수 있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생적으로 설립된 사립학교의 특성상 지금의 경영상태를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가에 대해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다. - 서울병원장으로서 자신만의 전략이 있다면. 의사는 의사대로 사무직은 사무직대로 흩어져 있는 각 부서의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환자 진료라는 최종의 하모니를 연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병원내의 각 부서들을 어떻게 잘 추스려서 하나로 응집시킬 수 있느냐가 지금으로서는 최대의 관건이다. 2천여 식구들의 흩어져 있던 힘을 이제 하나로 모을 것이다. -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똑같은 병을 가진 환자가 있을 때 그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일수도, 나의 친척일수도, 나의 부모일 수도 있다. 의사도 의사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을 때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자가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를 떠나 냉정하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의사에게 요구된다. 어떤 환자를 대하더라도 그를 긍휼히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하나 같아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히포크라테스도 슈바이처 박사도 한결같이 강조한 사항이다. - 의사로서 지향하는 모델이 있다면. 의사가 된 동기를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성산(聖山) 장기려 선생님이 대학시절 은사님이다.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전를 수석 졸업한 후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를 지내기도 한 그는 국내 최초로 초기 간암환자를 대량 간절제술로 완치시킨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다. 또한 보험제도가 없던 시절 부산에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해 국내 의료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등 생을 마치기까지 소외된 이웃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봉사의 삶을 살다 간 그야말로 '참의사'라고 생각한다. 모든 수술에 앞서 반드시 기도를 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환자를 위하는 그 마음은 모든 의사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 앞으로의 다짐과 향후 계획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우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다. 개개인 구성원들의 마음을 단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류마티스 분야 등 본교만의 강점을 더 살릴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 잘 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인지 벌써 마음이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