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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 08

[교수]`온유한 것이 강함을 이긴다`

그로브 음악사전 등재된 작곡가 본교는 창작음악 위한 최고의 조건 갖춰 서경선 음악대학장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음악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대중음악도 아닌 순수음악을, 그것도 첼로리스트 장한나나 소프라노 조수미씨 같이 노래나 악기로서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악보로서 그 존재를 알리는 작곡가의 삶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작곡가 하면 비발디, 모차르트, 베토벤이 떠오르고 우리나라로 보면 안익태나 윤이상, 백병동 선생 정도가 생각나는 상황에서 현대 작곡가의 울타리에 들어가려 문을 두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직한 방음문을 열기가 저어스러워 한참을 망설이다 작곡가의 방에 들어서자 '2002 아시아현대음악제' 포스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이스라엘, 베트남 등 10여 개 나라의 당대 음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는 호평을 얻은 음악제였다. 개막음악회에서 첼로리스트 장한나가 윤이상의 대표작인 첼로협주곡을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아시아 초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음악제를 준비한 장본인이 바로 서경선 교수이다. 여성작곡가들의 목소리 대변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긍지를 가지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3번의 행사를 모두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한국회장으로, 집행위원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했죠. 다행스럽게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일생 중 가장 보람 있고 성공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어요.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서 교수가 작곡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50여 년의 삶은 여성작곡가들의 토대를 구축하는 활동과도 맥이 닿아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창단 멤버이기도 한 서 교수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할 당시에는 여성이 6명 중 2명밖에 없었고 발표를 할 기회나 직업을 가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20주년 기념음악제를 하기도 했던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서 교수는 남성 일색이던 작곡계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앞장서 왔다.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면 유럽의 백인 집안에서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여성들의 입지는 세계적으로 미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음악계의 '브리태니커' 즉, 최고의 권위로 꼽히는 '그로브 음악사전'에 당당하게 등재된 것은 서 교수의 작곡가적 능력과 세계 음악사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한국에는 전업 작곡가가 한 명도 없다? 서 교수의 작곡가에 대한 애정은 비단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 외에도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창악회 심의 위원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서 교수는 순수 창작으로 작품활동을 위한 경비를 충당하고 생계까지 이어가려면 음반 판매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현실에 대한 근심이 크다. 전업작곡가가 한국에 한 명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곡가들은 레슨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대기업 차원의 후원이 절실하다는 서 교수의 사자후는 구구절절하다 못해 비장함마저 서려있다.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같은 극장도 매표수입으로는 전혀 운영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왕족과 귀족이 후원자였듯이 산업사회에서는 재벌이 후원자가 돼 주어야 합니다. 폴란드가 공산국가일 때는 작곡가 동맹 멤버가 되면 국가에 기금을 요청해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국가차원에서 문예진흥원에서 작품 하나에 7,80만원 정도 지원을 해주긴 하지만 그것으론 어림도 없지요. 고급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몇몇 사람이 후원해줄 수도 있지만 한계가 많지요" 한양대를 창작음악의 산실로 만들겠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작곡가들이 창작생활을 안정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하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타전공자들에 비해 작곡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연구활동이 곧 작품을 쓰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악기 전공자들을 만날 수 있고 현대음악에 대해 마음이 맞는 사람과 모여서 일을 하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본교는 국악과가 있어 동양과 서양음악을 접목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 교수가 대학에 갖는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서 교수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뛰어든 것이 본교에 '공연예술대학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각종 동서양 악기를 전공하는 교수와 작곡 그리고 연극영화, 무용과까지 세 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본교는 우수한 공연을 창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계획이 잠시 보류됐지만 본교 음대가 발전할 수 있는 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중학교 때 음악에 깊이 심취해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굳히게 됐다는 서 교수에게는 교육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상주하는 현대음악 앙상블로 을 만드는 것. "미국의 뉴욕대는 매년 5월에 현대음악제를 세미나와 함께 개최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제이지요.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습니다. 매년 한 번 일주일 정도 현대음악제를 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양대 하면 창작음악의 중심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정년이 5년 반정도 남았는데 퇴임할 즈음에 사재를 털어서라도 이런 창작음악제를 지원하는 기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서 교수의 인생철학이 있다면 '온유한 것이 이긴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절대 화나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수많은 음악제를 성사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고 말하는 서 교수에게 은은한 난초꽃 향을 느끼며 취재수첩을 덮는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서경선 교수 학력 및 약력 서경선 교수는 1964년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2년 미국 Univ.of Massachusetts에서 음악석사를 받은 서 교수는 이화여중고, 서울예고 교사,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본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창악회 및 한국음협이사, 아시아작곡가연맹 본부이사, 한국여성작곡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서 교수는 현재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한국여성작곡가회 및 창악회 심의 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는 국내작품발표 18편, 국외작품발표 10회, 국내논문 3편, 국외논문 2편이 있으며 국내에 3권의 저서가 있다. 1991년 한국 음악상(창작 부문), 96년 백남학술상 (인문, 예술분야), 98년 대한민국 작곡상(실내악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8 08

[학생]'사랑만이 희망이다' 국토대장정 다녀온 한승호 군

'국토지기' 대원 92명과 한 달간 국토 종주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 몇해 전부터 모 제약회사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생 국토대장정'이 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불러모으면서 한반도 곳곳을 걸어서 종주하는 '국토순례자'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국토지기'(http://www.freechal.com/kukto) 역시 "우리 땅을 바로 알고 나를 알면 새 천년이 우리 손안에 있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자발적으로 결성된 국토 순례 모임이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국토지기' 대원들의 국토순례는 지난 달 8일부터 이 달 4일까지 27박 28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참가자들은 우리 국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자신의 발걸음을 통해 몸소 체험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국토지기' 4기 기장으로 이번 행사를 이끌었던 한승호(디경대·디지털경영 4) 군은 말했다. 한 군을 만나 국토대장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행사의 취지에 대해 말해달라 올해 국토지기 대장정은 '젊음에 대한 도전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모토로 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이 땅의 곳곳에 젊은이들의 의지를 심고 싶었다. 나아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생각하고 그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우리 국토의 흙냄새를 맡고, 우리 땅을 직접 밟아보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더불어 사는 세상을 느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국토지기' 회원이 되었나 언젠가 국토대장정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 후 학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 국토지기에 대한 소개와 함께 국토대장정 참가대원을 모집하는 글을 우연히 보고 나서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전국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할 때만 해도 서울지역 대표에 불과했었는데 각 지역 대표들의 추천에 의해 기장으로 선출되자 사진 생각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웃음) 이번 대장정의 규모와 행진 경로는 신청인원 150여 명 가운데 총 93명의 대원들이 이번 대장정을 함께 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해 장흥, 보성, 순천, 지리산을 거쳐 함양, 거창, 단양, 양양, 통일전망대까지 두 다리만으로 전국을 누볐다. 하루 평균 30km를 걸었던 것 같다. 하루종일 걷기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가끔씩은 15km만 행진하고 나머지 시간을 조별 장기자랑이나 체육대회, 마니또 게임 등의 오락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전체 오리엔테이션때 기장과 총무가 선출된 이후 두달동안 집행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대장정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답사팀, 인원관리팀, 기획팀, 스폰팀, 홍보팀으로 구성된 집행부는 온라인 상으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대여섯번의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행사를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주 만날 수 없다보니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게 가장 어려웠다. 행진 도중에는 쌀이 부족해 1-2일 동안은 음식을 사서 먹었다. 예산 착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행진을 하면서 여학생들에 대한 우려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비가 와도 열심히 잘 따라왔는데 한 1주일쯤 지날 무렵 한 여학생이 쓰러졌다. 의료팀 차량을 타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회복했다. 하루에 48km를 걸은 적이 있었는데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영지에 도착했다. 결국 탈진한 여학생이 발생했다. 하지만 '깡'으로 버텨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행진을 마칠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에 성공한 소감은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우리 국토를 걷는다는 것은 평생 한 번도 오지 못할 기회이다.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가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대학생 국토대장정이 더 활성화되길 바라고 우리 한양인들의 참여도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함께한 대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 더 소중히 하겠다'는 말을 머릿속에 되뇌이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단순히 완주했다는 기쁨보다 92명의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했다는 점이 더 기뻤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대원들이 우리 땅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사랑이 좀 더 커졌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대학 4년동안 학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얼마전 휴학을 결심했다. 1년동안 어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계획이다. 이번 국토 순례를 통해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배운 걸 바탕으로 학문과 한번 겨뤄보고 싶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8 08

[교수][한양의 소금 11] 안산 관재과 김용채 계장

건물ㆍ토지 관리서 환경미화ㆍ소방 업무까지 묵묵한 성실함으로 쾌적한 환경 만들기 앞장 안산캠퍼스의 대지면적은 약 40만 평. 이 넓은 대지 위에 들어선 부대시설을 포함한 각종 건물 수는 총 38개이다. 이러한 시설 안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만도 헤아릴 수 없다. 언뜻 보기에도 방대해 보이는 이 업무들을 소화하는 부서는 바로 관재과. 그중에서도 안산캠퍼스 관재과의 김용채 계장은 항상 묵묵하지만 성실한 자세로 이러한 업무들을 이끄는 진정한 한양의 '소금' 중 한명이다. 근면·봉사 정신으로 학교 발전위해 헌신 "내가 한 게 뭐 있다고…"라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하던 김용채 계장을 찾아간 것은 오전 11시경. 방학 중이고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중에도 곳곳에서 조경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평온한 듯 보이는 사무실에서 반갑게 마주한 김 계장은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한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라며 먼저 사무실 분위기를 설명했다. 김 계장은 이어 "관재과는 건물, 토지 및 시설물, 비품 등 학교의 재산을 유지·관리하는 부서다."라며 "근무자, 환경미화원, 상용 일용인부 등 1백 50명의 인원이 교내 환경미화, 조경, 소방, 분리수거, 방역, 월동난방 및 각종 행사를 지원하는 등 학교발전을 위하여 근면 봉사로 헌신하고 있다."라고 바쁘게 돌아가는 관재과의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관재과 직원들은 상시 비상대기체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 김 계장은 "하루하루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업무가 많다. 학교 전체를 관리하다 보면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도 많이 발생한다."면서 순발력이 많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용채 계장이 관재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년 반 전. 20년의 교직원 생활을 겪어오면서 관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 그동안 김 계장이 몸담았던 부서는 기획예산과, 검수과, 회계과, 장학계 등 주로 숫자와 관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등록금 지로납부 시스템 구축이 가장 큰 보람 김 계장은 "많은 부서를 경험해봤지만 그 중에서도 회계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며 과거 지로용지 납부제도를 도입하던 시기를 떠올렸다. 당시의 등록금 납부는 전 금액을 모두 현찰로 납부하던 시절로 학교 접수처에 출장 나온 은행직원에게 직접 납부하는 방식. 그러나 회계과에서 수납을 담당하던 김 계장은 비효율적인 이 제도의 불합리함을 인식하고 지로용지를 도입, 은행에 납부하는 방식의 기획안을 제출했다. 김 계장은 "지금은 지로납부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획으로 많은 기대를 받기도 했다."며 "그러나 당시의 행정상의 문제로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라고 말하며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개강을 앞둔 지금의 시기는 관재과에 있어 가장 바쁜 때이다. 가을학기 개강 전인 여름에는 캠퍼스 단장을 위한 제초·조경 작업을 비롯한 각종 교내 환경작업이 이뤄지며 봄 학기를 앞둔 겨울철에는 각종 난방장비 점검을 포함한 보수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화재를 대비한 소방업무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등산을 좋아해 서울 근교의 산은 안 가본 곳이 없다는 김 계장이지만 관재과에 들어온 이후 산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그만큼 관재과의 업무가 그에게 작은 취미생활도 허락지 않을 만큼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내의 조경, 건물·사택 관리를 맡고 있는 그는 정작 "자기 취미시간을 가지는 것보다도 학교의 발전을 위해 뛰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관재과에 오기 전 몸담았던 장학계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운 농·어촌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장학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는 김용채 계장은 따뜻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나무 한 그루, 책상 한 개도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고 교수, 교직원, 학생들이 좀 더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애쓰는 김 계장의 업무는 사실 겉보기에 화려하거나 '티'나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빛나 보이는 이유는 묵묵하게 빛나는 그의 꼭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 때문일 것이다.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2002-08 01

[교수]싹틔운 `풀뿌리 민주주의`

행정은 통치식 'goverment'아닌 대화 통한 'governance'로 전환 필요 행정과 최병대 교수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이고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청심편'(淸心篇)의 한 대목이다. 다산은 지방 수령이 몸소 실천해야 할 사항으로 '청렴'을 강조하면서 4백여 년 조선조에서 관복을 입고 벼슬한 사람이 몇천 명, 몇만 명인데 그중에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겨우 110명에 불과하다며 이를 '사대부의 수치'라고 한탄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6월 임기가 끝난 민선 2기 지방자치단체장 250여명 가운데 비리와 독직 사건으로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목민관'이 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쯤되면 '지방자치 무용론'이 나올만도 하다. 일각에서는 단체장들의 비리와 지역이기주의 심화, 난개발 등의 부작용을 거론하며 지방자치단체장을 다시 임명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최병대(사회대·행정과) 교수는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방자치'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며 적절한 감시와 견제 수단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지방자치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단체장들의 각종 비리와 무리한 개발행위로 인한 주민과의 마찰 등이 주요 원인이지요. 하지만 관선 시대에 비해 비리가 더 많아졌다는 시각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관선 시대때 비리가 더 많았으나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정책 연구로 서울시 행정 개혁 뒷받침 최 교수는 지방자치제와 관련한 '백가쟁명'식 주장들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낙관한다. 준비부족으로 인한 민선 1기의 시행착오를 2기때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이번 3기에서는 상당 부분 제도 보완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민소환제 도입도 한 방법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단체장을 견제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는 현 상황에서 주민소환제를 도입한다면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 단체장의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3월 본교 행정학과에 부임한 최 교수는 2년차 햇병아리(?) 교수에 불과하지만 연구경력은 그 어떤 교수못지 않다. 92년 미국 Akron 대학에서 도시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 해 2월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지방자치와 지방행정 그리고 도시행정과 관련한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30여 회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한 서울시 기획예산실과 정책기획실에서 근무하는 등 공직생활도 경험해 실무와 이론을 겸비했다. 특히 최 교수는 지난 99년 설립된 국무총리실 산하 지방이양추진실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방자치제 확립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지난 3월,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서울시는 한때 '복마전'이라고 일컫어질만큼 행정 난맥상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서울시가 '세계 5대 지하철 도시'로 부상하고, 생명의 나무 1천만그루 심기와 난지도 평화공원 조성 등을 통해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난 데에는 공무원들의 노력과 함께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최 교수는 시정개혁연구지원단장과 시민평가지원단장을 역임하면서 서울시의 행정개혁에 일조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올 1월, 서울시로부터 '서울정책인대상'을 받음으로써 9년여에 가까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의 생활을 '화려하게' 갈무리했다. 개발연대식 사고방식 지양해야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 정책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하기도 한 최 교수는 현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매년 1천억원씩 들어가는 막대한 유지·보수비용만 보더라도 고가도로를 헐고 청계천을 복원시켜야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변 상인들과 건물주, 지주 등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인데 당장 임대 상인들의 생계문제가 걸려있다보니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청계천 복원문제도 그렇지만 과거 세운상가 재개발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0년대 세운상가 재개발로 인해 북한산과 비원 그리고 남산으로 이어지는 생태통로가 단절되었습니다. 남산은 완전히 고립된 '섬'이 되어버렸지요. 남산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버렸습니다. 6, 70년대 개발연대에는 생태·환경문제는 뒷전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그 후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최 교수는 최근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 과정에서 북한산 관통 터널 문제로 불거진 정부·시공회사와 불교·환경단체간의 마찰도 개발연대식 권위주의 사고가 낳은 것이라며 공직사회의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어느 정도 마찰이 예상되는데도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 보다는 무조건 일을 '저질러놓고 보자'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과거 통치적 개념의 '거번먼트'(government) 대신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을 추진하더라도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하는 절차를 거친 뒤에 추진해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입니다. 당연히 충돌과 분란이 뒤따를 수 밖에 없지요." 싹틔운 '풀뿌리' 지방자치 성장 이끈다 지난 해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 건립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님비현상'은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간의 조정기능이 미흡한 현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 교수는 이러한 님비시설을 건설할 때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해 경제적으로나 공공적인 보상이 뒤따라야한다며 광역단체의 기능을 강조한다. 또 획일화된 제도를 개선해 지역 특성에 맞는 신축성있는 지방자치제의 발전이 시급하며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적 걸림돌을 하루빨리 제거해야한다고 말한다. "지방 재정이 너무 취약합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턱없이 낮습니다. 그리고 자치단체의 자율적인 행정권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요. 교육, 치안 등의 자치기능은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민선 3기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나가야할 것으로 봅니다." 주민소환제 도입, 지방재정 감시강화, 지방의회 의원 유급제 도입 등 산적한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민선 3기가 출발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제도가 주민들속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제 씨앗을 뿌려졌고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이 새싹들에게 필요한 '물과 거름'을 주기 위해 최 교수는 이래저래 바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글 :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최병대 교수 학력 및 약력 최병대 교수는 77년 한양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82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87년 미국 Akron 대학에서 행정학 석사를, 92년 같은 대학에서 도시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2년부터 85년까지 서울시 기획예산실에서 근무했으며 92년 한양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92년 10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도시경영연구부장, 기획조정실장, 부원장 직무대리, 시정개혁연구지원단장, 시민평가지원단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97년에는 서울시 정책기획관으로 잠깐 근무했으며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연구조사위원과 지방이양추진실무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한국지방자치학회 상임이사와 대학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60여 편의 논문과 연구보고서가 있으며 올해 대통령 표창과 서울정책인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8 01

[교수][한양의 소금 10] 정통원 김영준 직원

수강신청ㆍ강의평가 등 전산업무 담당 자신의 분야서 최선다하는 진정한 '프로' 방학은 학생과 교수 그리고 직원 모두에게 평상시보다 조금은 더 여유있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서울캠퍼스 정보통신원 학사정보팀의 프로그래머 김영준 직원은 예외이다. 조만간 있을 수강신청과 관련된 전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준 직원에게 방학은 되려 업무와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만나러 간 날에도 그는 무척 바빠 보였다. "죄송하지만 잠깐만 기다리실래요."라는 말을 서너번 정도 들으며 10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일은 수업과 사회교육원 관련 전산 업무들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수강신청, 강의시간표, 강의평가 등과 관련된 전산 업무들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는 게 저의 업무입니다. 모두 다 중요한 일들이지만 역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수강신청입니다." 잊을 수 없는 2001년 1학기 수강신청 지난 2000학년도 2학기부터 수강신청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영준 직원에게 지난 해 1학기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수강신청 프로그램의 문제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의 어려움을 겪은 '수강신청 대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육두문자로 된 항의 메일도 꽤 많이 받았다는 그 당시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죠. 학생들이 화가 난 것만큼 저도 죄송했다는 말씀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때 불편을 겪은 학생들께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해 1학기에 큰 문제를 일으켰던 본교의 수강신청 프로그램은 같은 해 2학기에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서버와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시스템 통합작업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은 별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런 만큼 현재 김영준 직원이 수강신청 업무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프로그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각종 준비작업들이다. '모의 수강신청'이나 '가상 수강신청 프로그램'의 테스트 같은 것을 통해 프로그램의 운영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현재 그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업무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수강신청 프로그램을 수강신청 기간에 맞추어서 그냥 돌리는 게 아닙니다. 수강신청을 할 학생들의 숫자와 동시접속 비율 등을 고려해서 서버의 튜닝 포인트 같은 것을 세팅해야 하고, 기술적인 결함이 있는지 여부도 계속 주기적으로 꼼꼼하게 체크해야 합니다. 약간의 문제도 있어서는 안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수강신청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 긴장해야 합니다." '현상유지는 곧 도태' 늘 공부하는 자세로 근무 이처럼 긴장의 연속인 업무지만 김영준 직원이 수강신청 프로그램에 가지고 있는 애착은 남다르다. 그는 수강신청 프로그램 더 나아가서는 학사업무 관련 전산시스템에서 본교만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대학이 드물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학생들도 작은 불편에 너무 실망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이해를 당부했다. 현재 본교의 수강신청 프로그램은 서울대, 연세대 등 총 10여개 대학에서 관심을 보이고 직접 찾아와서 견학했을 정도로 잘 구성돼 있다는 자부심섞인 자랑과 함께. 그러나 모든 전산 프로그램의 특성상 현상유지는 곧 '도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는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일한다. 학생들이 수강신청 프로그램에 불만이 없는지 주기적으로 학교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확인하고, 학교의 학사정보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을 전공과목 프로젝트로 하는 산업공학과 학생들의 리포트도 얻어서 읽는다. 이러한 노력들을 가능케 한 배경 중 하나는 공학대 전자공학과 90학번으로 대학원 석사까지 본교에서 마친 그가 가지고 있는 학생들, 아니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다. "제가 바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웃음) 그러나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저를 바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 저도 학교 다니던 시절 수강신청으로 인해 불편한 점도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그런 만큼 김영준 직원은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도 많다. 그는 수강신청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모의 수강신청'을 실시해도 참여율이 너무 저조하다며 학생들의 부족한 관심을 안타까워했다. 인터뷰 내내 수강신청 프로그램과 학생들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 김영준 직원은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수강신청 프로그램이나 학사정보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어떤 불편사항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래의 수강신청 프로그램에는 어떠한 기능들이 들어가길 바라느냐는 질문까지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프로' 기질이 느껴졌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7 29

[동문]<`한양동문이 뛴다` 특집 3> 언론분야

일간지 편집국장ㆍ공중파 메인뉴스 앵커로 활약 중 언론준비반 지원 확대 통해 우수 언론인 양성 기대 기자와 프로듀서(PD) 등 언론인은 법조인들과 행정관료 등과 더불어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로 꼽힌다. 사회의 중심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여론을 선도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언론계는 예전부터 사회 현상과 사회적 영향력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언론계에서 본교 동문들이 최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계, 법조계, 행정계 등과 같이 전통적으로 본교가 강세를 보여온 분야에 비해 진출 역사가 다소 짧은 감이 없지 않지만 언론계 동문들은 신문기자의 '꿈'이라는 중앙지 편집국장으로 3명, 방송기자의 '꽃'이라는 3대 공중파 메인 뉴스의 앵커로 2명이 활동하고 있어 본교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 종합 일간지·경제지 편집국장으로 3명 활동 현재 10개의 중앙 일간지와 4개의 중앙 경제지에서 편집국장으로 활동중인 동문으로는 최홍운(신방 70학번) 〈대한매일〉편집국장과 김기웅(신방 71학번) 〈한국경제신문〉편집국장, 이용규 (신방 73학번) 〈내외경제신문〉편집국장이 있다. 본교는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 편집국장 배출 수에서 서울대 (4명)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일 학과 기준으로는 1위이다. 동문 언론인들이 언론계의 핵심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최홍운 〈대한매일〉편집국장은 지난 2000년 10월 우리나라 신문사 사상 최초로 편집국 직선투표를 거쳐 편집국장에 선출됐다. 최 동문이 편집국장으로 선출된 후 〈대한매일〉은 중앙 일간지로는 유일하게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의 징수 내역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이에 대한 사과문을 신문지상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 4월 〈한국경제신문〉편집국장에 취임한 김기웅 동문은 정치부 차장과 산업부장, 편집국 부국장 그리고 광고국장 등과 같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국장은 편집국장에 취임한 후 최근 언론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한국경제신문〉의 특종행진을 주도했다. 또한 올해 1월 편집국장에 취임한 이용규 동문은 〈내외경제신문〉 공채 1기 출신으로 출발해 편집국장까지 오른 '내외맨'이다. 이 동문은 증권부장, 정경부장, 논설위원 등과 같은 요직을 거쳤으며 편집국장이 된 후에는 과감한 데스크급 인사를 단행해 〈내외경제신문〉의 재도약을 이끌고 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수의 동문 언론인들이 신문사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문사의 중견간부급 중 대표적인 동문으로는 최철주(화공 60학번) 〈중앙일보〉 논설위원 실장, 임경록(신방 77학번) 연합뉴스 출판국장, 이상우(신방 65학번) 〈문화일보〉 논설위원, 이영일(신방 72) 〈한겨레〉편집국 부국장 등이 있다. 특히 최철주 동문은 동문 최초의 종합 일간지 편집국장 출신으로 한양언론인동문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기자나 데스크급 그리고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들도 많다. 대표적인 동문들로는 유영구(정외 78학번) 〈중앙일보〉북한문제 전문위원, 한상춘(경제 84학번) 〈한국경제〉국제금융 담당 전문위원, 손현덕(경제 79학번) 〈매일경제〉워싱턴특파원, 김용수(신방 78학번) 연합뉴스 동경지사장, 이해영(신방 72학번) 연합뉴스 국제뉴스국 기획의원, 조순래(정외 72학번) 연합뉴스 북한부장, 송재조(신방 78학번) 〈한국경제〉증권부장, 김낙훈(경영 77학번) 〈한국경제〉벤처중소기업팀장, 이성춘(신방 80학번) 〈스포츠서울〉야구팀장 등이 있다. 공중파 뉴스 앵커 등 방송서도 두각 방송사에도 신문사 못지 않게 많은 본교 출신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내 공중파 방송의 메인뉴스 앵커 3명 중 2명이 본교 동문이다. 홍기섭(경제 80학번) KBS 9시뉴스 앵커와 이영춘 (경제 79학번) SBS 8시뉴스 앵커 외에도 MBC '4시뉴스'의 앵커인 김상호 (독문 88학번) 아나운서와 YTN '뉴스출발'의 김명우(철학 92학번) 앵커가 활동 중이다. 또한 KBS '연예가중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재홍(관광 91학번) 아나운서도 본교 출신이다. 홍기섭 앵커는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다 지난 99년 KBS '뉴스광장'에서 앵커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에 KBS 앵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3월 5일부터 KBS '9시뉴스'의 앵커로 활동 중이다. 지난 96년 10월 강릉 무장공비 수색작전 당시 특종 보도로 잘 알려진 이영춘 앵커는 2000년 8월부터 현재까지 SBS 8시뉴스의 메인앵커로 활약 중이다. 그는 보기 드물게 30대에 메인뉴스를 맡아 앵커가 직접 취재를 담당하는 '앵커 리포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사의 중견간부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으로는 김선옥(신방 68학번) KBS 라디오센터장, 한안성(경영 67학번) KBS 경영본부장, 김민기(영문 68학번) KBS 라디오3국장, 김성묵(사학 69학번) KBS 제주방송총국장, 이승원(사학 75학번) KBS 강릉방송국장, 신견옥(영문 73학번) MBC 경영관리국장, 홍은주(식영 77학번) MBC 해설위원, 박동주(신방 68학번) SBS 라디오본부 편성사업팀장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제작 현장에서 책임 프로듀서급으로도 많은 동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성완(신방 67학번) KBS 보도제작국 선거방송기획 주간, 최영근(경제 76학번) MBC 예능국 2CP, 이종현(영문 78학번) MBC 시사제작국 4CP, 백종문(신방 78학번) MBC 시사제작국 6CP, 홍동식(신방 77학번) MBC 라디오 1CP, 김상일(신방 75학번) SBS 라디오 2CP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각 방송사의 유명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동문 프로듀서들로는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박인식(신방 87학번) PD, MBC '음악캠프'의 고재형(신방 81학번) PD,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아줌마'의 이태곤(신방 86학번) PD, 역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시트콤 '뉴논스톱'의 김민식(자원 87학번) PD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늘어나고 있어 언론계에 진출하고 있는 본교 출신들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학교 측에서도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언론고시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고시반이나 행정고시반 등에 비해 지원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이다. 따라서 언론준비반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학교 측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기자정신과 창의성을 지닌 동문 언론인들의 활약과 더불어 소명의식과 윤리성을 갖춘 새로운 언론인들이 배출되어 한양의 위상제고는 물론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07 29

[교수]마이크로 `캡슐`에게 물어봐

LCD 모니터에서 기능성 화장품까지 고분자 이용한 '마이크로 캡슐'에 세상을 담는다 응용화학공학부 서경도 교수 미인이 되기 위해 전문가가 제언하는 두 가지 노하우가 있다. 첫째는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두 번째는 강한 햇볕에 피부를 너무 노출시키지 말 것. 피로하면 화장이 잘 '받지' 않고, 강한 햇볕은 애써 꾸민 화장도 소용없게 만든다. 문제는 각종 기능성 화장품에 포함된 비타민A. 레틴올이라 불리는 이 기능성 약재는 햇빛이나 열에 노출되면 금방 파괴되는 성질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개발된 것이 소위 생체 기능성 화장품을 위한 '고분자 캡슐'이다. 각종 기능성 약재를 지름, 수 마이크로미터 내외의 캡슐에 넣고 피부 깊숙한 곳까지 침투시켜 햇볕을 쪼여도 오랫동안 유지토록 한 것. 이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가 바로 응용화학공학부 서경도 교수다. 첨단 기술이 세상의 '지름'을 줄인다 "기능성 입자를 캡슐 안에 집어넣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이미 상품화에 성공해 매출을 많이 올려주고 있죠. 지금까지는 기업이 연구비를 피부의학과 관련된 의대에 많이 줬는데 미백이나 주름살 제거 등 최근에는 다양한 기능성 물질을 캡슐에 담는 기술 개발에 굉장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연구하는 표면 및 계면학의 역할이죠." 고분자 마이크로 캡슐이 비단 '비타민'만을 담는 것은 아니다. 고분자 캡슐은 최근 전자정보소재용으로도 개발되어 그 무한한 가능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전자종이'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종이와 같은 모양과 촉감을 가진 얇은 면에 데이터 혹은 글씨를 기재할 수 있는 전자종이가 새로운 디스플레이 재료로 쓰이게 된 것. 전자종이는 자료를 다운받아 수 백만 번 지웠다, 썼다를 반복할 수 있으며 적은 에너지로도 구동이 가능해 책과 신문은 물론 기존의 인쇄매체를 대체할 혁신적인 재료로 기대된다. "플라스틱 사이에 검은 볼, 흰 볼을 각각 넣은 마이크로 캡슐을 넣고 +, -를 띄게 해서 전기를 어떻게 통하느냐에 따라 글씨가 보이게 되는데 검은 볼이 위로 나오면 글자, 흰 것이 위로 나오면 여백이 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전자종이의 핵심이죠. 가시광선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두께를 한없이 얇게 할 수 있어요. 또한 전류를 끊어도 데이터가 살아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있죠.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우리가 독창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 교수의 설명과 같이 전자종이의 핵심기술이 바로 각각의 화소로 사용되는 단분산성 입자인데, 이 입자는 반쪽이 서로 다른 양쪽성 입자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외부 전자 기장에 의해 조절될 수 있어 흑백 대비를 통한 표시소자로서 작동한다. 하지만, 개발된 기술은 수십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의 입자를 사용하는 탓에 그 해상도가 기존의 디스플레이에 비해 매우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서 교수가 개발에 성공한 10 마이크로미터 전후의 고분자 마이크로 입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일시에 해소시켰다. 기존의 디스플레이 소재에 맞먹는 고해상도를 지닌 전자종이 생산을 가능케 한 것이다. 대학은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고기능성 화장품이나 전자종이 외에 '작은 것'에 대한 서 교수의 탐구는 일상의 곳곳에서 그 '큰' 성과를 찾아내고 있다. LCD 모니터의 국산 개발 가능성은 서 교수가 일궈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업적이기도 하다. LCD는 5마이크로미터 정도의 공간을 비워놓고 전도성 유리(ITO Glass)를 겹치게 하여 제작되는데 그 미세한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술이 서 교수에 의해 개발된 것. 전도성 유리 사이에 주입시킬 지름 5마이크로미터의 크기가 똑같은 입자(Spacer) 생산이 가능해 짐으로써 LCD의 완전한 국내 생산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LCD 기술 개발도 그렇고, 기업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선도적인 연구가 기업에서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겁니다. 기업은 원천기술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내고 상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기업은 상품 개발과 운영에 능하지만 기초기술에 대하서는 독자적인 연구 능력이 없어요. 대학이 맡은 역할은 바로 이 원천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서 교수는 어떠한 기술이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응용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신념이 있다. 연구자들은 어떠한 아이템이 있더라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초기술에 대한 견고한 지식과 함께 이를 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역설한다. 그는 연구실의 학생들과 함께 매주 두 번의 보고회를 갖고 연구 내용에 대해 서로의 토론을 독려하는 것도 이러한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기 위함이라 설명한다. 교수와 학생간의 일방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젊은 학생들이 지닌 무한한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와 전공을 연결하는 방법을 조율해 주는 것 뿐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학생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스스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입니다. 동기 부여를 스스로 해서 일을 만들어 내는 학생이 곧 창의적인 학생입니다. 교수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를 하고 싶게끔 도와주는 것일 뿐 이거해라, 저거해라 따위의 기업의 방식을 써서는 안됩니다. 단지 어떤 테마에 대해 학생이 물어올 때, 그것의 핵심, 핵심이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캡슐에 담는 진짜 재료는 '인재' 서 교수가 맡고 있는 '고분자 표면 및 계면 연구실'에는 현재 2명의 박사과정과 9명의 석사과정 학생들이 있다. 박사과정이 많을 때는 7명까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회에 배출했다는 설명이다. 보통 학위를 마치기까지 10여 편의 논문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력'있는 인재들이다 보니 사회에서 서로 데려가기 위해 애를 쓴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연구소에서는 '이런 학생이 3명만 있으면 다 운영이 될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는 서 교수의 '증언'도 심상치 않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를 소중히 여기며, 모든 성과를 그들의 몫으로 돌리는 서 교수의 겸손함은 그 지름이 얼마나 될까? "우리 연구실에서만 연 평균 15편 정도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하고 있습니다. 독창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항상 학생들에게 독창적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우리 학생들도 사실 독창적인 사고를 기르는 과정에서 매우 힘들어 하지만 결국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이러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연구실에 많은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과가 저 개인보다 학생들, 그들이 노력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사진: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77. 2 한양대학교 고분자공학과 졸업 1984. 3 일본 동북대학교 화학 제 1전공 석사 1987. 3 일본 동북대학교 화학 제 1전공 박사 1987. 4 일본 동북대학교 조수 1989. 1 동양나일론 책임연구원 1991. 3 한양대학교 공업화학과 조교수 1995. 3 한양대학교 공업화학과 부교수 2000. 3 한양대학교 응용화학공학부 교수 1991. 3 - 한국공업화학회 종신회원, 평의원 및 재무이사 1991. 3 - 한국고분자학회 종신회원, 평의원 1991. 1 - 한국고무학회 종신회원, 학술위원 1991. 1 - 한국유변학회 종신회원

2002-07 29

[학생]순수한 영혼 가진 예비 뮤지컬 스타 연영과 구원영 양

어린이 뮤지컬 <토토> 서 공주역 맡아 열연 중 "실력과 함께 인간미 겸비한 배우되고 싶어요" 지난 5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고 있는 극단 학전은 새 공연팀을 뽑기 위한 오디션을 실시했다. 11명을 뽑는 이 오디션에 무려 250명이 지원해 극단 측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평균 경쟁률이 20대 1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지원자중 절반이상이 성악을 전공했으며 연령 또한 25세 미만이 50%를 넘었다는 사실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뮤지컬 배우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기 직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얼마전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이나 현재 공연중인 〈레 미제라블〉 그리고 곧 무대에 올려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대형 뮤지컬들이 잇달아 선보임으로써 뮤지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구원영(인문대·연영과 3년 휴학) 양도 크고 화려한 무대에서 춤과 노래,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배우이다. 이미 〈모스키토 2000〉과 〈의형제〉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구 양은 현재 어린이 뮤지컬 〈토토〉(동숭아트센터 동숭홀. 7월 19일 - 8월 11일)에서 미로공주 역을 맡아 어린이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대극장 보다는 관객과 에너지를 교감할 수 있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구 양은 공연을 막 끝내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꿈'을 펼쳐보였다.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에서 맡은 역할은 화성에 사는 여섯 살짜리 공주역이예요. 화성은 1년이 687일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12살이죠. 어린 나이에 지구인과 함께 화성을 보호하는 여리지만 강한 공주랍니다. 공주라서 좋겠다구요? 아니요. 전 공주 되고 싶은 생각 별로 없어요.(웃음) 뮤지컬을 시작한 계기와 뮤지컬의 매력은 중학교 때 성악을 하고 싶어서 6개월 정도 개인 레슨을 받았는데 한 달에 2백 만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중도하차했어요. 고등학교 때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성악을 안 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뮤지컬에 매료됐어요. 전공을 연영과로 하겠다는 결심도 그때 굳어졌어요. 대학교 2학년 때 학전 오디션에 응시했다 떨어졌는데 극단 관계자가 다음에는 꼭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냥 위로삼아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스키토 2000〉무대에 섬으로써 그 약속이 지켜졌죠. 뮤지컬은 말이나 몸짓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노래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저는 관객과 감정을 교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극장 보다는 소극장에 더 큰 매력을 느끼죠. 같은 또래 인기 연예인들에 비해 자신만의 매력이 있다면 관객과 1대 1로 만나고 있다는 것이죠. 텔레비전 화면이나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기술적인 것이 있겠지만 무대를 통해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연기를 해야합니다. 에너지도 많이 필요할뿐더러 얼굴표정 하나로는 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설경구 선배 같이 억지로 웃거나 울지 않는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설 선배의 연기는 말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를 닦듯이 차근차근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예를 들어 창녀 역을 맡았으면 그 역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다가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자주 접하고자 노력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그래서 늘 여행가는 옷차림으로 살고 있죠.(웃음) 한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있다면 무지하게 많지요. 다른 학교에 비교에 우리 학교는 연기생을 1년에 10명밖에 뽑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극이나 영화에서 유오성, 설경구 선배 같이 진짜 연기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한양대 출신 밖에 없습니다. 최불암, 권해효, 박광정 선배도 우리 학교 출신이지요.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진실된 연기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배두나 양과는 동기생인데 두나요? 작년에도 동강 레프팅을 함께 갈 만큼 친한 동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연기인 중 한 명이죠. 같은 또래의 연기자에 비해 두나만큼 좋은 배우는 없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플란다즈의 개〉 등을 보면 두나의 작품과 배역 선택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물론 있지요. 이미 개봉됐던 영화에 단역으로 몇 번 나왔었습니다. 곧 개봉될 영화에도 잠깐 나오죠. 무슨 영화인지는 창피해서 말 못하겠네요.(웃음) 노래에 장기가 있고 처음 감동 받은 것이 뮤지컬이라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래, 연기, 춤 등을 모두 잘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나이가 서른쯤 되면 〈의형제〉의 간난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6.25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자식을 파는 등 한을 간직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전형적인 한국여성상이죠. 인간적으로 특히 존경하는 방주란 선배가 맡았던 역인데 연기와 노래 모두 정점에 올라야 소화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5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면 저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합니다. 늘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죠. 이 욕심이 저를 대학로로 빨리 끌고온 힘입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배우보다는 '인간' 구원영이 되고 싶어요. 방주란 선배는 연기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분인데 그분처럼 영혼 자체가 순수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용석 학생기사 antacamp@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7 29

[교수][한양의 소금 9] 회계과 이인균 직원

재정지원 업무 통해 대학운영 '윤활유' 자임 자신의 자리서 묵묵히 일하는 '근면성실파' "한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조직이 흘러가기 위한 자금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모든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그 중 한 부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교내 각 부서에서 재정지원을 부탁하는 파일이 컴퓨터로 넘어오면 그 순간부터 재무처 회계과 이인균 씨의 몸놀림은 분주해진다. 건물 개보수 예산안, 장학금 등 교내업무뿐만 아니라 교외의 각종 기자재, 강의실의 칠판 지우개며 사무실에서 사용되는 자잘한 물품 하나까지 학교에서 필요한 모든 재정적인 지원은 매일매일 이인균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래시계 윗부분의 흙이 중간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빠져나가듯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인균 씨다. 모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 보람느껴 지난 2000년 9월부터 학교의 모든 행정시스템이 전산화되면서 업무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이 씨는 이전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이나 밀려드는 서류를 처리하기가 많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또 회계과에 막 발령받았을 당시에는 업무에 대한 사전 지식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작업으로 그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지금은 업무가 손에 익어 '누워서 떡 먹기'(?)지만 그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학교의 운영방침상 한 부서에서 3년을 근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3년 반이 훌쩍 지났다. 회계과로 오기전 안산 학생과에서 근무할 때도 4년을 넘겼는데 이제 옮길 때가 된 것같다고 말하는 그는 처음 자신이 이곳으로 와서 겪었던 불편을 다른 사람이 또다시 되풀이하길 원치 않는다며 자신의 업무를 차근차근 정리해 두고 있다. 후임자를 배려하는 그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회대 신방과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도 학교에 대한 정이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회사를 잠깐 다닌 그는 4년간의 추억이 배어있는 모교에 다시 몸을 담게 되었다. "여우도 죽을때면 고향으로 머리를 향한다는데 모교에서 일한다는게 이처럼 편안하고 보람이 있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자신의 모교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그의 말 속에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난다.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가짐 필요" 업무의 특성상 사람들과의 대면이 적은 것이 아쉬울 만큼 이 씨는 사람을 좋아한다.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모든 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되면서 누가 어떤 서류를 처리했는지, 결재는 잘 이루어졌는지 이름만 확인하고 전화상으로만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서로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없는게 안타깝다. 더욱이 매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만 듣다보니 자신이 마치 '빚쟁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때로는 전혀 모르는 교수나 직원들로부터 마음 상하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서로를 존중해 주고 신뢰하는 마음을 키울 필요성이 있다고 이 씨는 말한다. 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교수, 직원, 학생의 세 꼭지점이 맞물려 완성된 정삼각형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제가 학교에서 일한다고 하면 방학에는 쉬는 줄 알아요.(웃음) 여느 직장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제 일에 만족하는 건 오직 학교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학교가 발전하고 또 우리 가정이 행복해 진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지요."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평범한' 직원이라 말하는 이인균 씨를 보면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통해 보람을 찾는 이의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씨는 대학 행정 업무도 나날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지 않으면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즘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는 이인균 직원. 그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7 22

[교수]`류마티스` 불치의 멍에 벗긴다

임상역학ㆍ경제학 등 학제간 연구에 관심 "훌륭한 진료는 철저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내과 배상철 교수 류마티스는 나이가 들면 으레 앓게 마련이고 텔레비전의 광고처럼 파스 한장으로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병쯤으로 생각하기 싶다. 그러나 류마티스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고루 앓고 있으며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으로 분류돼 있다. 또한 관절 근육뿐 아니라 피부, 신경, 장기까지 아픈 '루푸스' 질환의 경우 심한 경우 생명도 잃을 수 있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들과 더불어 난치병과 싸우며 오늘도 1백 여명의 류마티스 환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류마티스내과 배상철 교수를 찾았을 때는 장마가 한창 기승을 부려 류마티스 환자들을 더욱 괴롭게 할 때였다. "우리 류마티스 병원을 흔히 '4차 병원'이라고 합니다. 1차 개인병원, 2차 준종합병원, 3차 대학·종합병원을 거쳐도 낳지 않을 때 이 곳으로 오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죠.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병을 연구하며 치료하는 것으로 대학병원의 역할을 찾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진료는 철저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배 교수의 학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진료하는 의사와 연구하는 교수로서의 이중 역할이 결코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진료는 끊임없는 연구를 병행한 진료로서만 가능하다는 평소의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신은 개업의에 대한 욕심이 없냐는 질문에 '솔직히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놓으면서도 대학에 꿋꿋이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루푸스 환자들에게 희망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제적인 교류에도 대학은 적격이라고 말한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SLICC(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 정회원이기도 한 배 교수는 1년에 2번 정도의 정기 모임을 통해 치료방법 공유와 평가를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학사에서 박사까지 전 과정을 본교에서 마친 배 교수는 91년 교수로 부임한 후 96년 미국 하버드(Harvard) 의대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회고한다. "미국에 있으면서 주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주로 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우리나라 교수들은 임상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와 직접 대하면서 병행하는 연구가 상당히 도외시되고 있던 시절이었죠. 제 은사가 Liang 교수인데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환자를 잘 볼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학문 방향을 많이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미 박사과정을 다 마친 상태였지만 다시 대학원을 들어가라는 권유에 임상역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죠." 만성질환 치료는 일종의 '예술행위' 배 교수의 주 전공은 류마티스학이지만 연구분야는 유전역학, 임상역학 및 경제학 등으로 다양하다. 3대 질환으로까지 불리는 류마티스는 45세 이상 성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고 명확한 치료법을 현재로서는 알려진 것이 없는 만성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DNA 변화를 분석해서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개별화된 맞춤치료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치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정해진 예산으로 효율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임상 경제학 연구도 겸하고 있다. 같은 병에 역시 똑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개인의 의지나 주변 환경을 조절해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도 배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만성질환 치료는 일종의 '아트', 예술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치료법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환자와 따뜻한 마음이 통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때 개별화된 치료는 필수적인데 이는 기초과학에 기반한 부단한 연구가 필수적이죠. 다각적인 측면에서 환자의 상황을 분석한 후에 비로소 예술적인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영양학, 생화학, 경제학, 의료관리학, 간호학 등의 학문과의 접목을 꾀하고 있습니다. " 옷으로 치면 기성복 보다 체형의 정확한 측정과 좋은 소재의 선택 그리고 재단사의 맵시있는 가공이 뒷받침된 맞춤복이 좋듯이 환자들에게 '맞춤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배 교수의 행동 반경에는 늘 통계와 유전학, 간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있다. 꼼꼼히 작성된 진료 리스트를 분석하는 통계 전문 간호사, 유전역학 연구를 위한 DNA 연구원, 상담 교육을 받은 간호사 등이 상호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맞춤치료를 가능케 하고 있다. 무위심으로 의학 한계에 도전한다 '맞벌이 부부 의사의 통장에 잔액이 많은 것은 들어오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가는 돈이 적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낮 동안에는 학생들과 1백여 명의 환자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사례연구와 새로운 치료방법을 연구하는데 매진하는 배 교수에게 개인적인 지출은 밥값이 대부분이다. 밥 먹는 시간조차 쉽사리 낼 수가 없어 주문하면 가장 빨리 도착하는 음식인 자장면으로 끼니를 대신한 적도 많다는 그는 요즘 건강을 위해 일 주일에 한번 정도 선(禪) 체조를 하고 있다. "제가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더욱 환자를 잘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체력을 위해 상당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위해서 음주도 자제하지요. 음주운전이 그렇듯 음주진료도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리를 하면 그 피해는 그대로 한 번의 진료를 위해 2, 3개월을 기다린 환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류마티스 환자를 앞에 두고 배 교수는 늘 무위심(無爲心)을 떠올린다. 태아까지 위험에 처한 임산부 루프스 환자를 살렸을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는 그에게 있어 가장 초조한 시간 역시 처방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일 것이다. 어떤 것을 이루려는 마음보다는 의학의 한계에 도전하며 의사와 학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꾸리면서 매순간 최선을 하려는 배 교수를 통해 '의술은 인술'이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배상철 교수 학력 및 경력 배상철 교수는 1984년 본교 의과대를 졸업하고 87, 93년 각각 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98년에는 미국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임상역학 및 경제학 MPH과정을 마쳤다. 배 교수는 96년부터 99년까지 미국 Harvard Medical School 교환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본교 류마티스 병원 루푸스 클리닉 실장, 임상역학 경제 연구실 실장, 류마티스 내과 과장, 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위원장, 임상약리학회 회장, SLICC(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 정회원과 아시아 대표, PRINTO(유럽 소아 류마티스 치료 연구회) 한국 대표로 있으면서 본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업적으로는 국내 125, 국외 24편의 논문이 있으며 국외 2편, 국내 1편의 저서가 있다. 배 교수는 2001년 최우수연구업적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7 22

[학생]자유게시판의 `스타 이야기꾼` 디대이쁘니·박정후

딱딱한 게시판에 '산소'같은 '디대이쁘니' 민감한 사안도 정면돌파하는 논객 '박정후' 18, 19세기 우리나라에는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주로 구비소설을 이야기 했는데, 그 말하는 것이 뛰어나 늘 구경꾼들이 가득 모였다. 이러한 이야기꾼들을 '전기수'라 불렀다. 전기수들은 한참 이야길 하다가 가장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뚝 그치고 읽지 않았다. 그 다음 대목을 들으려면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던져야만 했다. 오늘날 인터넷상에는 옛날 '전기수' 못지않은 이야기꾼들이 활약하고 있다. 비록 옛날의 전기수처럼 소설을 전하거나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옛날 못지않은 인기(?)를 대신 얻게 된다. 본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하 자게)에서 알아주는 '스타'로 통하는 '디대이쁘니' 윤지현(디자인대·금속디자인 3) 양과 박정후(경금대·경제학부 2) 군을 만나 게시판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의 필명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윤지현 내가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당시 디자인대 학생들은 자유게시판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디자인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선은 디자인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에 디대(디자인대의 줄임말)를 꼭 넣고자 했다. 박정후 내 필명은 실명과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실명을 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주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을 예상했나 박정후 우선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학생회 일도 해보고, 학교 안의 여러 현상들을 주의깊게 지켜 봐 왔다.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할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게시판 글 속에 한양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는 점이 끌렸다. 그런 모습들을 보기 위해 글을 읽고 또 쓴다. 실명으로 조금은 과격한 글들을 썼기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윤지현 친한 학우들과 작은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데 일기처럼 끄적인 내 글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그것에 자신감을 얻고 자게로 진출(?)했다. 사소한 내 이야기들이 큰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무척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해왔다. 자게의 논객으로서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후 사실 우리 학교 게시판은 너무 쉽게 가열되는 측면이 있다. 이념, 정치적 취향에 대한 의견이 맞서 게시판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고 건조해질 때도 있다. '디대이쁘니'는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풀어나간다. 소소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가볍지만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 그런 '디대이쁘니'의 글들이 게시판의 분위기를 정겹고 따뜻하게 바꿔주는 정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윤지현 정후는 자신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고 때론 과격한 표현도 감행한다. 우선 논리와 표현상의 문제를 떠나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꺼려하는 부분의 이야기도 용감하게 꺼내는 정후야말로 자게의 진짜 '이야기꾼'이다. 자게의 문제점과 자게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윤지현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참 중요한 것이라고 느낀다.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나누면 서로 다른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한다거나 무조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또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했다. 한낱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니 말이다.(웃음) 박정후 타인의 글을 보며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소속감, 동질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많은 여건상 오프라인의 모임은 힘들어도, 온라인상의 접촉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양 자게의 글을 보며 '우리는 모두 한양인'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한양대 자게사랑 카페(http://cafe.daum.net/hysuda)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카페 소개를 한다면 윤지현 게시판 단골 이야기꾼들이 대부분 가입했다. 또 자게에서 글을 올리진 않지만 계속 지켜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다소 많은 고민이 따르긴 했지만 카페에서도 '디대이쁘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워낙 해프닝이 많아 '디대이쁘니'라는 이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박정후 두어번 정모를 했는데 게시판 글을 계속 읽어온터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자게보다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라 그런지 더 많은 분들이 편하게 글을 올리시는 것 같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내가 이 카페를 계기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과격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더 많은 한양인들이 가입해 함께 자유롭게 활동했으면 좋겠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7 22

[교수][한양의 소금 8] 음대 오용석 교학계장

학생 연주회 준비서 마무리까지 궂은 일 도맡아 음악회 기획 등 배워 학생들에게 도움주고 싶어 음대는 학과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연주활동과 무대경험을 통한 실기교육 강화를 위해 각종 실습시설이 많다. 이러한 학생들의 학습여건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리 또한 매우 중요하다. 방학을 맞아 교학과는 다소 여유로워졌지만 곧 진행되는 '2002년 한양 음악 콩쿠르' 준비에 바쁘다. 오용석 계장을 만났을 때 다른 직원들이 업무 관계로 외근을 나가 교학과는 비교적 한산했다.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혼자서 처리하느라 오 계장의 양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올해로 24년째 본교에서 재직 중인 오 계장은 서울 학사과, 안산 학생과 그리고 경영대 교학과를 거쳐 지난 99년부터 지금의 음대 교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 계장은 "처음에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이 당황하기도 했다."라며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연주회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가 가장 보람있어 오용석 계장은 음대에서 개최하는 각종 연주회의 준비에서부터 홍보, 뒷 마무리까지 꼼꼼히 챙기는 한편 학생들의 수업지원업무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항상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오 계장이 학생들에게 이처럼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민주화열기로 뜨거웠던 지난 87년 안산 학생과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학생지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오 계장은 학생들과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면서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때 그는 학생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지내는 학생회 간부 학생들도 꽤 있다. 결혼 시즌에는 연락이 더 많다."라며 살며시 미소를 띈다. 오 계장에게 있어 입시는 매년 치러야하는 '홍역'이다. 입시때는 20~30일을 초긴장상태로 지낸다.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실기고사에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교학과로 문의가 쇄도한다. 오 계장은 이들 문의에 성실하게 응하면서도 보다 엄정한 입시관리를 위해 입시철에는 아예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입시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냉정하게 대할 수 밖에 없다."라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른 단대에서 느끼지 못하는 보람이라면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도 많이 있지만 성공적으로 치뤄냈을 때이다. 특히 지방연주회 때는 학과별로 힘들게 준비한 만큼 그 성과가 있을 때는 매우 뿌듯하다고. 아쉬움이라면 교내에서 열리는 연주회에 학생들이 많이 관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 계장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훌륭한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관심을 당부한다. 연주회 기획·홍보에 관한 공부 해보고 싶어 오용석 계장은 현재 교직원 축구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건강 관리를 위해서 시작한 축구가 지금은 직원들과의 친목도모에 도움이 된다. 1년에 한번 정도는 타 대학의 직원들과 친선경기를 가지고 다른 경기를 보면서 전술연구를 할 정도로 축구 매니아이다. "항상 남을 도와 주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힘든지 모른다."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연주회의 기획과 홍보에 대해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음대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며 예의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는다. "디자인 공부도 해서 연주회 포스터 디자인도 해보고 싶다."는 오 계장이 제작한 포스터가 음대에 나붙을 날을 기대해본다. 김혜신 학생기자 onesecond@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