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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 01

[교수]`언어를 알아야 문화가 보인다`

'언어을 알아야 문화가 보인다' '갑골문자' 연구의 선구자 중어중문학과 손예철 교수 인문대 4층에 위치하고 있는 손예철 교수(인문대·중문과)의 연구실은 오래돼 보이는 한자 투성이의 각종 자료와 서적들로 어지럽고 부산해 보인다. 연구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중국풍의 찻잔과 장식 소품들에도 왠지 모를 '연륜'이 있다. 동양의 문화를 읽어내는 키워드, 중문학을 공부하는 학자의 연구실에 들어왔다는 '편견' 때문일까? 연기는 없어도, 부산한 그의 연구실에서 매우 오래된 향 냄새가 났다. 대륙의 역사를 읽는 암호, 갑골문자 손 교수는 중국 문자학, 구체적으로는 고대문자인 갑골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다. 국내 최초로 갑골문자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도 바로 손 교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골문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 중국 은나라 시대에 쓰여졌던 문자로서 현재까지 발견된 한자 중 가장 오래된 형태의 문자다. 가장 오래된 한자라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있지만, 갑골문자가 사용된 시기의 독특한 중국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갑골문자는 더욱 특별하다. "다른 고대문자와는 정말 다릅니다. 단순히 은나라 때 사용됐던 문자만은 아닌 까닭입니다. 당시는 제정이 분리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왕실의 질병, 인재 등용 등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를 진행할 때 왕은 항상 점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길', '흉'을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점과 관련된 의식을 진행하고, 점의 내용을 기록할 때 사용한 문자가 바로 갑골문자입니다. 은나라 왕실에서 '실록'의 개념으로 쓰인 거죠. 문자로서의 가치도 가치지만, 그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큰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 1898년 은나라가 위치했던 중국 하남성 안양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갑골문자는 거북의 복갑(거북이 껍데기의 배 부분)과 소의 견갑골(엉덩이 뼈)에 문자를 새긴 '갑골편'에 새겨져 있다. 발견 후 한동안 갑골편은 약재로 쓰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1900년대 초반 '유악'이란 중국 관리가 병 치료를 위해 약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갑골편의 내용들을 우연히 읽게 됐고, 이 때부터 '귀중한 문화재'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1920년대에 들어 중국의 '중앙연구원'을 통해 갑골문자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 후 지금까지 '갑골편'은 13차에 걸쳐 약 10만여 편이 발견됐고, 현재 갑골문자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대 중한사전 편찬하기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갑골문자를 연구한 학자답게, 손 교수는 지난 1996년 정인(은나라 왕실에서 '점'을 치던 종교인)을 시대별로 구분하고, 이들 집단의 성격 분석을 통해 갑골문자와 은시대를 고증한 『은대정복인물통고』를 번역하여 갑골문자와 은시대의 문물 제도를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손 교수가 한국 최대의 중한사전 편찬자라는 사실은 '갑골'의 두툼한 그늘에 가려있는 듯 하다. 지난 해 그가 편찬한 3천여 쪽의 중한사전은 한국 중문학 사상 최고, 최대의 사전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와는 달리 제대로 된 중한사전을 갖고 있지 못했다. 중국어의 경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발음을 포기한 2종의 사전이 있었으나, 수록된 표제자나 표제어의 수량이 전체 600페이지밖에 되지 않아서 소사전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손 교수는 14년 간의 작업을 진행한 끝에 인터넷 및 최신의 IT 용어까지 수록된 '제대로 된' 중한사전을 편찬하게 된 것이다.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흔히 하나의 언어를 '집대성'하는 대업에 비유된다. 무엇이 부족해서일까? <中國文字學>, <東亞 메이트 中韓辭典>, <說文解字譯註>, <甲骨卜辭 中의 祭祀 연구> 등과 같은 책들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하니, 그의 왕성한 집필력을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사전의 출판은 일반인들을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보람이 있는 작업이었죠. 사실 사전보다는 다른 연구서적들을 먼저 출판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사전의 출판이 먼저 됐습니다. 계속해서 전문 연구와 함께 일반인들이 중국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집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것입니다. 학자에게 있어서 책을 출판하는 작업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정리해 발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학문의 '열매'라는 거죠. 이런 결실이 맺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연구의 재미를 요즘 아주 톡톡히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중문학을 다시 생각한다 손 교수는 사실 처음부터 중국문자를 공부하려 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중국과 중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상당히 우연한 기회로 중문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한다. 또 솔직히 박사과정 이전까지는 별다른 학문적 성취나 흥미를 못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박사과정 때부터 파고들수록 진한 향이 느껴지는 중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오랜 과정과 시간을 통해 학문적 매력과 성취를 느낀 만큼, 손 교수는 중어중문학 교육 과정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임기 2년의 '한국중국학회장'에 선출되면서 그는 더더욱 중문학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학회장으로서 그는 한국 중문학 연구와 교육의 방향을 잡는 작업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저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확실한 교육의 방향이나 개념 정립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실용주의'를 아주 강조하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실용적인 가치관은 순수 학문인 인문학에서도 꼭 도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외치는 것은 기초를 등한시한 실용주의입니다. 문학과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제쳐두고 '말 만' 할 수 있는 중문학 교육을 하자는 주장도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중문학 연구와 교육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걸 최대한 바로 잡고 싶습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진정한 응용화와 실용화가 된다는 것을 역설하는 손 교수의 모습에서 자신의 학문세계에 대한 굳은 믿음과 원칙이 있는 인문학자의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또한 갑골문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손 교수의 얼굴 표정에 나타난 진지함을 통해 인간을 생각있는 존재로 만드는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 교수가 지금까지 이룩한 연구 성과의 가치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연구 성과들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손예철 교수는 서울대 중문과를 나와 국립대만대학교에서 문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손 교수는 지난 1982년부터 본교 인문과학대 중어중문학과에 재직 중이며,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하버드대학의 E.A.L.C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은대정복인물통고>(3권), <東亞 프라임 中韓辭典>, <새로엮은 大學中國語> 등이 있으며, 논문은 총 22편을 작성했다. 또한 최근에는 임기 2년의 '한국중국학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2002-10 01

[학생]국경넘은 사랑의 실천 필리핀 산모 감동시킨 간호학과 윤인아 양

국경 넘은 따뜻한 간호에 필리핀 산모 감동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간호사는 사람을 간호한다" 국경을 넘은 따뜻한 봉사와 이를 잊지 못한 답례의 편지가 훈훈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근 본교 병원에서 출산한 필리핀 산모 Marites씨는 입원 기간 중 받았던 잊지 못할 간병과 친절을 잊지 못해 본교 간호학과장 앞으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윤인아 양.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주위를 훈훈하게 만든 나이팅게일을 만나보았다. - 필리핀 산모가 편지가 무척 감동적이다. 산모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그 산모는 실습 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사실 그 분은 산과 환자였고 나는 부인과 실습 중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젖몸살이라고 해서 가슴이 붓고 매우 아프게 되는데, 환자는 첫 출산이라 젖몸살이 심했다. 마사지와 유축기 사용을 병행할 수 있도록 알려드렸다. 그러면서 차차 친해지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외국인으로서 불편을 먼저 말하는 편이 아니라 뭔가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 없을까 먼저 고민을 했다. 수유 관리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모유의 보관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없는 동안 외로움을 나누고자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작은 친절인데 그토록 고마웠다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 국내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았을 경우, 환자나 병원 모두에게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선할 점들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은 많은 병원들에서 외국인 환자를 맞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잘 하지 못하거나 영어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무보험인 상황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지지체계를 찾는 것도 간호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감안해서 설명을 자세하게 여러 번 세심하게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인 화장실 위치 안내, 수유 시간이나 아기 면회 시간에 대한 것들은 결코 한 두번의 설명으로 가능하지 않다. 설명을 잘 이해하셨는지, 행동으로 옮기시기에 무리가 없는지 등을 직접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따뜻한 대화와 정성이 외국인들에게 각별히 필요하다. -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간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실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외국어를 잘해서가 아니고, 산모가 우리말을 잘 하는 편이었다. 영어라는 공통적인 언어도 도움이 많이 된 것은 물론이다.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설명해 드렸을 때 확실히 이해했는지 언어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도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슴 마사지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안하고 계신다면 설명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려움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영어 공부나, 학과 공부에 대한 진정한 필요성도 느꼈다. 간호라는 것이 이처럼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 며칠 전 간호학과의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있었다. 봉사의 삶으로써, 이 길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어릴 적에는 꿈이 정말 많았다. 고3 때 대학 진로를 결정할 때에도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나가 가진 꿈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는데, 모두 남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병원을 많이 다녔고, 주변에 아픈 분들이 많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항상 곁에 있었기에 힘든 때에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찍부터 느꼈다. 그래서 내 삶을 통해서 나도 뭔가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의 치료는 병원이라는 환경에서만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병원 밖에서도 아픈 마음까지 살필 수 있는 것은 간호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진로 결정을 하기까지는 제 곁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었다. - 필리핀 산모는 물론, 남편 역시 윤인아 학생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는 전하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사실 아직 말하지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편지를 받게 된 시기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참 힘이 들었을 때다. 산모의 편지는 그런 중에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물론 내겐 많은 힘이 되었고, 삶에 힘을 낼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고나 하는 것이 옳다. 아기가 건강하게 잘 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은 한국 생활이겠지만 힘을 내기를 기원한다. - 진정 훌륭한 '간호'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또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간호인의 삶을 살아갈 계획인가? 교수님들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한다'는 말이다. 나이팅게일이 했던 말로 기억한다. 간호란 전문성을 지니면서도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 정말 멋진 간호사가 되려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간호 분야뿐만 아니라, 영어와 같은 외국어 실력이나 병원 시스템 전산화와 관련된 컴퓨터 실력은 물론, 사회 전반적인 이슈들과 문화에 대해서도 말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호학이라는 학문이 임상 간호사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길들을 열어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확한 진로 결정은 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생각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나간다면 제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2-09 22

[교수]`사람을 보고 사회를 읽는다`

"인구문제는 멀리 내다보고 미리 대비해야" 학문의 정도 지키는 인구학자 사회과학대학장 사회학과 김두섭 교수 매일 아침 학생들이 등교하기 2시간 전에 그는 출근을 한다. 그리고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정확히 2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다시 퇴근채비를 한다. 수업의 끝과 시작에도 단 몇 분의 에누리가 없다. '딱히 할 줄 아는 취미도 없어 오직 공부만 한다'는 그의 무미건조한 고백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교수는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며, 도톰한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주시하는 그의 강의에는 학문, 그 이상의 숙연함이 있다. 학문에 대한 성실함으로 20여년 가까이 묵묵히 자신의 연구실을 지켜온 한양의 칸트, 사회학과 김두섭 교수를 만났다. '통계'의 바다, 진실 찾는 숨은 그림 찾기 김두섭 교수는 인구학자다. 인구학은 출생과 결혼 및 사망에 관한 자료 수집과 그것들의 통계·수리적인 분석 방법 그리고 그 적용을 연구하는 협의의 형식인구학과, 인구 변동의 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 법적, 역사적 결정요인 등 인구 연구의 영역을 실체적이고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사회인구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사회문명의 발달로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지금까지의 학문 분야의 범위를 뛰어넘은 학제적 시점이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 중심에 인구학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 통계적, 수리적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한 학문이다 보니, 김 교수 또한 방법론에 있어 주된 관심을 놓지 않는다. "통계라는 것은 한 나라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인구와 경제에 관한 정보의 집합체, 나아가서는 그런 숫자들을 다루는 비법을 통칭합니다. 하루하루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진단하여, 앞으로의 전망을 내리기 위해 통계는 정확한 현황 파악을 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에 인구의 크기를 숫자로 만들어 놓은 정보가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당장 국세청은 어떻게 세금을 걷고, 국방부는 어떻게 국방의 의무를 젊은이에게 지우겠습니까?" 김 교수는 이제 위로는 정책입안자에서부터, 아래로 개인에 이르기까지 통계란 모든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라고 말한다. 즉, 어떤 조직체든지 통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을 유지하거나 존립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그는 부연한다. 연일 언론 지상을 오르내리는 각종 통계를 보며 요즘 우리는 그의 말대로 '통계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쉽게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통계가 사회를 정확히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가 경계하는 부분은 정확성을 표방하는 모든 사회조사에 내재한 '의도성'에 있다. "일부 사회문제라든지 정치적인 측면에 관한 조사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사를 일정 방향으로 의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여론몰이'를 말하는 겁니다. 단정하기 어려운 조사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일정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사는 신뢰성, 정확성, 대표성 이런 것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훼손된 상태에서 조사의 결과가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되고. 여과 없이 전달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편 김 교수는 통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통계라는 것이 인간과 사회가 지닌 모든 경험의 축적계를 작성하는 매우 전문적인 작업임에도 우리나라는 통계에 관한 전문인력을 육성하는데 매우 척박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선진국가들의 경우, 정부기관의 통계 전문가가 20년 이상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너무도 쉽게 사람과 업무가 교체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통계를 딱딱하거나 어렵게만 생각하는 범사회적 풍토에도 김 교수의 우려가 자리한다. 이른바 '유저 프랜들리(user friendly)'. 보통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하며,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상상해 보라. 군중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 직접 사회를 분석하는 시대, 정치가 대중을 속이지 못하는 그 무서운 미래를. '누가 노인을 부양할 것인가?' 한국 인구의 위기를 말하다 현재 김 교수가 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한국인구학회와 한국주택학회는 지난 11일'한국의 인구 및 주택' 보고서를 공동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정부의 인구 정책을 유럽 선진국과 같은 '출산장려'정책으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20년 후에는 우리나라 역시 인구감소의 추세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에 김 교수는 그 시점이 더 당겨질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의 인구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 부부가 평생동안 출산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력'이 1960년대 초, 6명에서 2000년 조사에서는 1.47명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2001년 조사에서는 더 낮은 수치로 나왔습니다. '합계출산력'이 2,1명으로 유지되어야 나라의 인구가 안정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이것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몇 년 전 인구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의 상황에서 출산력까지 저하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은 부족해지고 늘어난 노인 인구로 인해 부양 부담은 엄청난 압박으로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노인인구의 부양부담을 10명이 1명을 부담하는 시스템에서 10명이 3, 4명을 부담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된다면 그 부양비용도 3배, 4배로 증가될 수 밖에 없다고 부연한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연금제도, 의료보험제도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자기 소득의 10%가 노인 부양을 위해 사용되다가 그 부분이 30%로 늘어난다면 그에 따른 부양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구라는 것은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 때, 정책을 만들어 하루 아침에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 따라서 멀리 내다보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김 교수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남북통합, 미리 준비해야 인구문제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김 교수의 생각은 북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서독의 통일과정에서 자유주의 서독의 인구가 동독의 그것에 비해 거의 4배의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동서독은 이질감 극복을 위해 10여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었던 전례가 있다. 잠정적인 집계로 남한의 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에 달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동서독의 경우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또한 단편적인 지식들만 가지고 북한에 대해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오류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김 교수는 덧붙인다. "북한에 대해 알려고 하기 전에 북한이란 그릇 안에 사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입니다. 그 안에 사람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겉으로 내보이는 모습들보다 중요합니다. 일부 탈북자들의 말이나 외신의 보도에만 의존하여 북한에 대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똑같은 상황을 연출할 것입니다. 동서독의 통합과정을 지켜본 장점을 이용해서 통일 후에 나타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북한 구조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야 할 것입니다." 김 교수는 지난 1994년 1월 초, 집계된 북한인구 센서스 자료에서 지역적 인구 집계와 연령적 인구 집계가 70만명 이상 차이가 났던 사례를 들며 우리가 가진 정보의 낙후성을 지적한다. 통합에 대비하여 북한의 내용을 이루는 사람들의 구조와 골격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켜 북한 전체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전 준비가 필수적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영호남의 지역 감정보다 더욱 심각할 남북한의 이질적인 지역정서 문제는 결코 짧은 기간에 해결될 성격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사람에 대한 탐구,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1975년 서울대 사회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77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1983년 인구학의 메카라 일컬어지는 미 브라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를 놓고 이른바 최고의 '엘리트'라 칭하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인구문제와 관련하여 모든 언론 보도마다 그의 클립이 빠지지 않을 만큼 명실공히 최고의 인구학자가 된 데에는 우수한 교육환경보다 김 교수 스스로가 견지한 학문에 대한 성실함을 우리는 먼저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인구, 즉 사람 그 자체가 학문적 테마인 김 교수가 스스로의 성취와 기쁨을 다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어찌보면 더욱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제가 사회학을 선택한 것도 그 중에서도 인구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모두 휼륭한 스승님들이 다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진정 부모님과 스승에게서 그리고 동료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변분들에게 받은 것만큼 저 역시 사회에 꼭 돌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을 공부하는 만큼, 그 공부의 결과가 부끄럽지 않아야겠죠. 진정으로 내가 받아온 것 만큼만이라도 내 주변사람들에게 베풀고 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김두섭 교수는 서울대에서 1975년 문학사를, 197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3년 미 브라운대학(Brown Univ.)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본교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현재 사회과학대학장을 맡고 있다. 한국 인구학회와 한국사회학회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국내 대표적인 사회학회지 '한국사회학'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21세기 남북문화 연구원 이사,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종합분석 연구위원회 연구위원, 본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외 70여편의 논문이 있으며,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2002-09 22

[학생]보석디자인 공모전 금상 수상한 디대 임은주 양

총 출품작 683점, 국내 최대 규모 보석디자인전 동양적 이미지를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 이태리 보석디자이너협회와 국제보석디자이너학술협회가 후원하고 LG홈쇼핑이 주관한 '제 1회 LG홈쇼핑 국제보석디자인 공모전'에서 본교 임은주(디자인대·금속공예4) 양이 금상을 수상했다. 에스닉을 주제로 특별한 날을 위한 보석디자인을 요구한 본 대회에는 무려 683점이나 되는 출품작이 접수되 국내 최대 규모의 보석 디자인전이란 평을 받았다. 이번 공모전에서 출품작 '영혼의 소리'를 통해 금상을 수상한 임 양을 만나 공모전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았다. -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디자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은 아주 많은 편이다. 특히 우리 디자인대 내에서는 교수님이나, 선배들을 통해 이런 공모전에 관련된 정보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이번 공모전은 교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알게 되었다. 국제대회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고, 졸업하기 전에 한번 더 소중한 경험을 남기고 싶어서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수상은 처음이라고 하던데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기분은 어떠했나? 교수님께서 처음 말씀해 주셨을때는 믿기지 않았다. 내 작품이 수 백개의 작품들과 경쟁해서 1차 심사와 2차 심사를 통해 올라갔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줄 만 알았는데 선후배들을 만날 때면 다들 축하해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이렇게나마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뿌듯하다. - 수상작 '영혼의 소리'는 어떤 작품인가 이번 공모전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단계인 '렌더링'으로 출품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컨셉 또한 다양하게 주어져 있었지만, '영혼의 소리'는 오리엔탈리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도 친구들로부터 디자인 스타일이 특이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금은 이국적이고 독특한 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원을 사용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나만의 스타일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 - 작품의 어떤 점이 수상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나 동양적 이미지인 금빛, 자색, 녹색, 적색의 보석과 금속을 사용한 것이 화려함을 극대화했던 것 같다. 팬던트 부분의 유통적 이미지와 목걸이 줄 부분의 직선적 이미지가 동양적 미를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하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주도록 했다. 보석물림은 자연이 인간을 포용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편안하게 감싸안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 4년동안 금속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느낀점은 디자인대 내에서도 다른 과들은 대부분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작품을 구성한다. 하지만 금속공예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스케치 한 후 직접 손으로 작품을 창출해 낸다. 내 손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 질 때의 뿌듯함은 엄마가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전공은 편한 복장으로 작업할 때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치마도 잘 못 입고, 다른 과처럼 멋부리기도 어렵다.(웃음) - 도움주신 분들에게 한마디 우선 어릴 적부터 미술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주신 어머니와 묵묵히 지켜봐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받은 얼마 안 되는 상금이나마 부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해 드릴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시로 많은 정보를 주시고 제 디자인의 성숙도를 높여주신 추원교, 이형규, 이광선, 백경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9 15

[동문]`21세기 한국 해양정책의 집행관`

"해양정책은 '개발'과 '보존' 동시에 잡아야" 최초 중국 항로 개설에서 미래 해양정책까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 서정호 동문 (법학 73) "해양수산부는 풍요로운 바다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해양수산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모토다. 굳이 이러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바다가 풍부한 '자원의 보고'임을 재삼 강조하는 것은 이제 상투적인 느낌마저 든다. 식량자원에서부터 광물자원 그리고 생명산업에서부터 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지닌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런 측면에서, 바다로 먼저 진출한 국가들이 전성기를 누린 19세기처럼, 21세기는 바다의 자원을 먼저 개척하는 나라들이 번성할 것이란 예측을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개발'과 '보존',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호(법학 73) 동문. 그는 현재 해양수산부 내에서도 각종 해양정책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핵심 관료다. 구체적으로는, 해양 환경 보전 그리고 해양 자원 개발과 관련된 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서 국장의 중심 업무이다. '개발'과 '보전'이란 다소 상충된 영역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냥 보면 대립적인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차세대 해양정책들은 바다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동시에 최대한 개발하자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식기술 같은 것을 개발하면서도 양식장의 인근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관리도 철저히 하는 것이죠. 해양 환경의 보존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많은 양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자는 것이 해양수산부의 방침입니다." 서 국장은 이제 단순히 바다를 어업의 현장으로서만 인식해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라 지적한다. 첨단 과학기술과 장기적인 안목을 이제 해양 정책에도 적용시켜야만 한다는 것이 서 국장의 지론이다. 가령 어업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거와 달리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기술 개발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하고 있으며, 어류 자원의 고갈 현상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재의 WTO 체제에서는 외국산 수산물이 싼값에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도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바이오 기술의 개발을 바탕으로 한 양식산업, 어촌과 갯벌을 활용한 관광산업, 그리고 해저 지하자원을 발굴하는 광물산업 등을 중심으로 해양산업의 전반적인 틀이 옮겨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서 국장은 강조한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서 국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도 태평양에서 구리, 망간, 니켈, 크롬 등과 같은 심해 광물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수심 200미터에서 흐르는 심층수 개발과 해양 바이오 산업 육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해양 전문통 해양정책과 관련된 서 국장의 거시적인 시각은 해양수산부 관료로서의 전문성을 잘 증명해 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 국장의 전문성은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해양 행정관료로서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에 배경을 두고 있기도 하다. 대학 3학년 때인, 지난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관계에 입문한 서 국장은 해운항만청(舊 해양수산부) 진흥과장, 주중 대사관 초대 해양수산관, 기획예산담당관, 공보관, 안전관리관 등과 같은 부처 내 핵심 보직들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현정부 내 100대 요직(월간조선 2001년 2월자 참고) 중 하나로 꼽히는 해운물류국장으로 근무했다. 다양한 보직을 거친 만큼, 서 국장이 이룩한 성과들도 다양하다. 해운항만청 진흥과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1990년, 서 국장은 당시 미수교 국가이던 중국과의 과감한 협상을 통해 카페리 항로를 최초로 개설했다. 또한 주중 대사관 해양수산관으로 재임 중이던 1993년에는 '한중 해운협의회'를 정례화 시키기도 했다. 서 국장이 해양수산부 내 '중국통'으로서 인정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해운물류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항만 운영과 관련된 업무의 일부를 민간 부문에 위탁토록 하는 작업인 '항만공사' 설립과 선박회사들의 선박활동을 쉽게 하는 '선박투자회사법'과 같은 큼직큼직한 사안들을 기획하기도 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부처 배치를 받을 때 해운항만청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부처라서 저희 기수에서 20여명이 해운항만청으로 발령을 받았죠. 당시만 해도 아무런 관련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 분야의 일이 규모가 크고, 변화가 많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업무가 제 적성에도 맡는 것 같아 재미도 있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웃음). 어촌 출신은 아니지만 바다에 갈 때마다 아주 기분이 좋고, 친근함을 느낄 정도죠. 배 타는 것에도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편이고요." 많은 후배들이 공직자의 길 걸었으면 대학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 국장은 자신의 대학 생활이 너무 '드라이'했던 것 같다며 웃는다. 당시는 사회적으로도 어두웠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캠퍼스의 분위기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노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행정고시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 선·후배들과의 추억을 꺼내놓으며 환한 표정이다. "행정고시반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동기, 선·후배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납니다. 박혁진(경제 73) 서울지방조달청장, 이종정(경제 73) 국가보훈처 기획관리관, 신현욱(법학 73)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수석 전문위원 등과 같은 행정고시반 73학번들과는 지금도 매달 한 번씩 등산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서 국장은 좀더 많은 후배들이 공직자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특히 그는 해양수산부의 경우 업무의 성격이나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특수하기 때문에 아직 개척의 여지도 많다며, 공직에 관심 있는 후배들이 해양수산부에도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가 공직에 있어서이겠지만, 더욱 많은 후배들이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 출신의 행정고시 합격자들은 양적으로도 많고, 전 부처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합격자들이 소속 부서의 중심적인 국장급으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행정계에 들어올 후배들은 선배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웃음). 그런데 갈수록 행정고시보다는 사법고시를 훨씬 더 많이 준비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군요." 그는 이번 여름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다고 했다. 태풍으로 인해 우리나라 인근 연안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떠내려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적조 현상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국무총리 서리 인사가 있었고, 국정감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래서 서 국장은 이번 가을에도 또 한 번의 '큰 전쟁'을 치뤄야 할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의 웃음 속에서 아주 맑은 한국 해양의 기상도를 발견한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서정호 해양수산부 해양정책 국장은 1973년 본교 법학과에 입학해, 3학년이던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관계에 입문했다. 해운항만청(舊 해양수산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지난 1986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해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지방해운항만청 항무과장, 해운항만청 진흥과장, 행정관리담당관, 주중 대사관 해양수산관 등으로 근무했다. 해양수산부 발족 후에는 기획예산담당관, 공보관, 안전관리관, 해운물류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 현재, 해양정책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2-09 15

[교수]`즐거운 춤이 가장 훌륭한 춤이다`

몸의 언어로 빚어낸 한글 사랑 생활체육과학대학장 이숙재 교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란 것이 있다. '막간 여흥' 혹은 ‘기분 전환'을 지칭하는 이 말은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에 있어 유희를 위한 일련의 무용을 말하는 것으로, 작품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볼꺼리를 위해 삽입하는 화려한 춤이다. 무용에서 디베르티스망이 적절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춤이란 '이해'에 앞서 '보는' 예술인 까닭이다. 안산캠퍼스 생활무용예술학과의 이숙재 교수 역시 '춤이란 고귀하고 우아하기 이전에 즐거워야 하는 것'이라 단정하고 나선다. '본다'라는 행위는 언제나 말보다 선행한다. 나는 춤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교수는 오는 9월 26일 아시안 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어, 10월 9일과 10일 이틀 간 국립대극장에서 있을 한글날 기념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밀물현대무용단의 이사장을 비롯한 각종 직함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최근 생활체육대학 학장에도 임명된 바 있다. 분주한 일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장으로서도 정도를 따라, 정의롭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업무에 임할 테지만 결코 무용인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모 광고의 문구가 머리 속을 스치는 순간, 공연에 대한 이 교수의 분주한 언어가 계속된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의 대 전제는 '통일로, 세계로, 미래로'입니다. 특히 이번 아시안 게임에 북한 선수들이 우리와 함께 경기에 출전하게 됩니다.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한 까닭은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 염원을 앞에 두고, 북한과 우리의 공통점을 찾다보면 언어가 제 1순위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가장 극명한 상징입니다. 이번 개막식 공연의 춤을 통해서 북한 선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포들이 그것을 꼭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은 10월의 공연은 문화관광부 주최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준비된 한글날 행사의 일환이다. 매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려 온 공연에 대해 이 교수의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올해의 공연을 위해서도 일 년여 시간 동안 준비를 해왔노라 설명하는 이 교수는 학예회를 앞둔 소녀처럼 상기된 표정이다. 춤으로 승화된 한글, '읽지 말고 느껴라' "미국 유학시절에 다민족이 모여서 수업을 듣는데, 과제가 그 민족이 가진 고유한 소재를 통해 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와집, 덕수궁, 장구 등의 사진을 가져갔는데, 중국 동료와 일본 동료가 가져 온 사진들이 저의 것과 너무 흡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영향 아래 이루어 진 탓이었죠. 너무나 낙심하여 한국문화원에 가서 조사했더니 한민족만이 가진 독자적인 문화유산은 오로지 한글과 금속활자뿐이었습니다" 20여 년의 세월동안 이숙재 교수를 한글에 매달리게 만들었던 '한글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때부터 한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한글을 무용에 끌어 들였다. 춤 역시 무언(無言)의 언어임에 자꾸만 '말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이 결국 '언어'에 귀착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이런 '한글 사랑'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홀소리와 닿소리를 주제로 처음 무용을 만들었더니, 한글학회 분들이나 다른 무용하는 분들이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그 동안 무용이라고 하면 서정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적인 소재로 무용을 만들어낸 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처음에는 이런 분들의 냉대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한 작품이 수상을 하면서 점차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한글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무용제 수상 이후 한글의 홀소리와 닿소리 뿐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天)·지(地)·인(人)' 사상과 음양오행의 '화수목토(火水木土)'사상 모두를 무용의 소재로 개발해 오고 있다고 이 교수는 부연한다. 게다가 이 교수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해서 현대 무용계에서는 드물게 수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무대에서 공연되어 왔다. 전국의 한글사랑 동아리들과 한글을 사랑하는 학자들의 지극한 애정 때문에라도 공연을 쉴 수 없다는 이 교수의 말에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움직이는 한글' 입니다. 많은 부분 사회 고발 형식을 가지고 있죠.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에 돌입하면서 한글이 점차 왜곡되고 변형되어 가고 있습니다. 외래어가 접목된 단어들이 너무도 빈번히 사용되고, 이미지들이 언어를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글의 변화주기가 50년, 10년으로 줄어들다가 근래에는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글이 변모해 갔을 때 우리의 민족성과 자주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춤이 '훌륭한' 춤이다 공연 예술이란 관객과의 호흡과 감동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문화다.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무대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예술인에게 공통된 바램이다. 특히 현대무용은 타 예술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 지지기반이 미약하기에 이 교수가 지닌 바램은 더욱 크다. 안산캠퍼스에 건립중인 무용관을 두고 마치 새 집에 이사를 앞둔 신혼부부처럼 이 교수는 설레이는 마음을 비춘다. 학교 당국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양의 문화의식이 발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인다.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 무용이 즐거워야 합니다.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시간에 공연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연이 즐거워야 합니다. 둘째는 그 작품을 연구해서는 안됩니다. '저것이 무엇일까?'라는 것을 가지고 보면 그 작품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듯이 무용에 있어서도 먼저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밀한 호평보다 '즐거웠다'라는 관객의 반응이 작품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이 교수는 현대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 무용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기존에는 무용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키가 크고, 수려한 외모와 함께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점차 미인에 대한 기준들이 무너지고, 무용도 개성에 맞는 스타일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데로, 키가 작은 사람은 작은 데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춤이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 우리는 있다고 덧붙인다. 욕망의 피날레, '갈 길이 멀다' 한 시간 여 동안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작품들과 수상작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단호한 표정 속에 '없습니다'라는 짧은 대답이 뒤를 잇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끝없는 욕망이 짧은 언어에 담겨있다. "20대부터 인간의 세포가 노화되기 시작하여, 30대가 되면 늙기 시작하고 40대가 되면 기능이 저하되고, 50대가 되면 갱년기가, 60대가 되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집니다. 어떤 면에서 저도 이미 무용수로서의 기량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무가가 되어 내가 가진 철학과 사유를 무용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나의 작품이 200년, 300년 그리고 영원히 남기를 희망합니다. 평생을 바쳐서라도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숙재 교수는 이화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밀물현대무용단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이사,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부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989년 제6회 코파나스상을 비롯해서, 1991년 한국예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상(홀소리·닿소리), 1993년 서울무용제 대상 및 안무상, 1997년 이사도라 무용예술가상, 2000년 제1회 PAF 예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9 15

[교수]세계 산부인과학회 최우수논문상 수상 박문일 교수

한양 태아감시시스템 개발로 정상발육여부 감별 "부드러운 출산환경 만들기에 앞장설 터" 위클리한양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서른 다섯 번째 주인공이었던 박문일(의대·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세계 산부인과 학회(IJGO)가 주는 전년도 최우수 임상연구논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교수는 지난 2000년 1월 서울방송에서 방영된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의 수중분만을 지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해 본교에서 최우수교수상을 받은 박 교수에게 1년여만에 또 다시 찾아든 수상의 기쁨을 들어보았다. - 세계 산부인과 학회 최우수 논문상 수상 소감은 사실 세계적인 학회에 논문을 제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 제출마다 매번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이번 수상 논문은 10여 년 이상 끊임없이 매달려 연구한 결과를 완성한 것이므로 기쁨이 더욱 크다. - 이번 수상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산모가 태아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때 주로 초음파 검사를 이용하고, 임신 중기 이후에는 심박동검사를 병행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사실 심박동수가 정상이라고 해서 태아가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며, 심박동검사는 의사가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신개발 소프트웨어를 통해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 감별 기법을 연구한 것이 이번 논문의 주 내용이다. -자체 개발한 한양 태아감시시스템은 어떤 역할을 하나 한양 태아감시시스템은 심박동 자동분석 소프트웨어이다. 우리 연구팀은 10여 년 동안 임산부 6천 4백 55명을 대상으로 태아 심박동 주요 변수를 분석하고,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를 감별할 수 있는 기법을 연구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그간의 연구 과정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해내고 통계치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개발 소프트웨어는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를 더욱 정확하게 진단해낼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이다. - 신개발 소프트웨어의 명칭에 '한양'이라는 본교 명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모교 사랑의 마음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한양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또 지금은 한양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어 우리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이번 논문은 실용학풍이라는 한양대학의 슬로건과도 맞물려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한양인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 2000년 첫 날 방영된 수중분만 TV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우리의 출산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나 TV 방영 이후 수중분만 뿐만 아니라 좌식분만, 그네분만 등 좀 더 편안한 출산 환경을 찾는 산모들이 크게 증가했다. 사실 의사의 관리는 일부 위험한 임산부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모든 임산부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임산부들이 편안한 출산 환경에서 아기를 낳도록 해왔고, 그러한 방식이 수(水)치료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중분만 등 수(水)치료 개념이 널리 알려지면서 제왕절개 시술비율이 6%나 감소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대한 태교 연구회를 만든 것이 올해로 삼 년째이다. 앞으로 전공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또 한번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도록 노력하겠다. 또 부드러운 출산환경 운동(gentle birth movement)을 계속 펼쳐 우리 임산부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힘쓰겠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2002-09 08

[교수]`더디가도 사람생각 하지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아닌 '누구를' 교육의 '효율'에 함몰된 '대상' 생각해야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을 굳이 '재난영화'로 분류하는 데에는 어딘지 모르는 어색함이 있다. 미모의 배우들이 선상에서 벌였던 로맨스의 여운에 거대한 빙하가 자리할 곳을 찾기가 딱히 어려운 까닭이다. 푸른 심해로 사라진 남주인공의 '아름다운 죽음' 앞에 조연들이 맞이한 '경건한 죽음'이 빛을 바래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판 더빙의 끝자락에서 '그 안에 인간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노라' 회고하는 탐사대장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교육에 '인간의 부재'를 경고하는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의 지적이 값질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교육개발원(KDEI)이 밝힌 올해 사이버교육 시장의 규모는 5천억원대. 뿐만 아니라 2005년 무렵에는 15조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급격히 성장하는 사이버교육 시장을 지켜보면서 '정작 우리는 교육이라는 배 안에 인간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영만 교수의 말이다. 디지털…그 우울한 기술의 체온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면서 교육 시장에도 사이버교육(e-learning)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 중 하나는 아무리 디지털화되어도 여전히 교육의 상당 부분은 오프라인에서 가능한 '휴먼터치(human touch)', 즉 인간적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치 담그는 '매뉴얼'을 찾아 전국에 있는 모든 딸들이 김치를 담구었다 합시다. 그것이 어머니가 담구어 준 김치 맛과 같은 수 있을까요? 디지털이 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디지털이 해낼 수 없는 것이 '손맛의 차이'라고 강조하는 유 교수는 교육에 있어서도 온라인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부연한다. 김치 담그는 매뉴얼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면 이는 정보 공유의 차원에서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김치맛을 낼 수는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 비효과적이라고 유 교수는 설명한다. 그렇다고 그가 사이버교육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교육을 통해 전달하기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술의 영역은 따로 존재합니다. 그런 것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고, 이는 온라인이 인류에 기여하는 '속도'와 '효율'로서의 장점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간의 접촉이 요구되는 것까지도 모두 온라인에서 해결하려는 발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사이버 시대가 오면 종이책이 없어진다고 했죠? 그러나 통계는 종이 수요가 더욱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편리함' 그 자체가 곧 교육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는 사이버교육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현재 고용보험을 통해 기업의 노동자들이 사이버교육을 수행하는 일련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이 있는 만큼 교육의 커리큘럼과 과정에 정부측의 요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유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아날로그에서 운영되는 오프라인 교육을 통제, 조정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온라인 교육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발상에 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보화 정책과 관련된 관료들을 가장 먼저 정보화시켜야 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의 단호한 입장을 읽는다. 인간은 피험자가 아니다 교육공학이란 학습 그 자체를 위한, 그리고 학습자의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 실행, 평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교육학이 엄밀히 따져서 교육이라는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교육공학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과학적 연구성과가 실제 효용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교육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테크놀로지는 실천지향적인 동시에 응용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순수과학과 다른 학문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교육공학이 그 어느 분야보다 실용적 쓰임과 목적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 교수의 근심은 그 목적에 묻혀버린 '대상'에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곤충을 삼등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학생들이 '머리·가슴·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곤충을 삼등분 한 순간 이미 그 곤충은 죽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교육현장에서 그 요인을 떼어놓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육현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육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한 현상을 탐구하는 것인데 실험실에서 식물이나 곤충을 연구하는 것처럼 동일한 접근을 갖는 것은 곤란합니다. 실험자가 연구대상을 아무리 피험자라 부른다 해도 그가 인간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유 교수가 현실에 있어 교육은 분화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통합적인 안목을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도 교육의 '대상'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실제 교육에 있어서, 창의력과 기획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의사결정론 등 독립된 프로그램과 기술에 의해 교육의 방법이 결정되고 분화되지만, 정작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상기의 배움을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공이 무엇이냐 물을 때, 교육공학이다 말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습니다. '교육공학 중에서도 기업교육입니다'라고 다시 답합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인가를 물으면 '프로그램 개발'이라고 답합니다. 이처럼 사회든 학문이든 무척 세분화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현실의 교육현장에서도 가르쳐야 할 것들은 모두 세분화시켜서 나누어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를 나누어 구현하지 않고 한꺼번에 발현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육에 있어서도 이런 통합적인 안목을 가르쳐야 합니다. 비빔밥을 먹을 때 편의적으로 밥과, 나물을 따로따로 먹지는 않지 않습니까?" 구호처럼 폭력적인 경쟁력, '지식' 21세기 디지털 시대와 함께 다가온 시대적 요구는 이른바 '지식사회'에 관한 것이다. 우수한 기술과 인프라를 통해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지식사회의 관건이자 디지털 시대에 통용되는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교육'을 단순히 많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 습득에 봉사하는 기술과 학문으로 간주하기 쉽다. 이처럼 형편없는 계량주의적 인식이 우리의 교육현장에 팽배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우울한 사실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식견을 함양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알면 알수록 또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 교육의 효과는 그 사람이 실제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느냐, 또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배우기 전과 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식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일련의 경쟁력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소위 '경쟁력'의 실체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남을 누르고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유 교수의 지적은 짧은 인터뷰를 잘 요약하고 있다. 발달된 기술이 인간의 체온과 함께 현장에 어우러지기를 바란다는 공학인의 바램이 참으로 따스하기 그지없다. 지식정보사회의 삭막한 구호에 치어 우리는 우리만의 '보물'을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세기의 보석을 바다에 던져버린 극중 여주인공은 말한다. '당신은 엉뚱한 곳에서 보물을 찾고 있었어요. 하루하루를 중요하게 만드는, 오직 우리의 삶만이 가치로운 것이죠.'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유영만 교수는 1989년 우리 대학 사범대학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1993년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Learning Systems Institute 연구원을 역임하고, 삼성 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을 거쳐, 2001년부터 현재까지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한국교육공학회 이사와 한국산업교육학회 편집위원겸 연구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죽은 기업교육, 살아있는 디지털 학습》,《지식 경영과 지식관리시스템》,《지식 경제 시대의 학습조직》, 《e세상 e러닝》, 《아날로그여 디지털에 저항하라》등 이 있고, 역서로는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열린 조직 열린 경영》외 다수가 있다.

2002-09 08

[교수]강릉 수해지역 봉사활동 진행한 의대 손주현 교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를 깨달은 값진 시간 도로 끊겨 왕진가방 들고 2시간 산길 걷기도 지난 5일에서 7일까지 2박 3일간 본교 구리병원의 손주현(의대·소화기내과) 교수를 비롯한 16명의 의료진들이 수마가 할퀴고 간 강릉 일원으로 의료 봉사활동을 다녀와 화제다. 이들이 펼친 사랑의 인술은 수해의 휴유증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며, 의료진 각자에게는 본교의 교육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피해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손 교수를 만나 이번 의료봉사활동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해당지역의 피해상황은 어떠했나? 우리가 간 곳은 강릉시 옥계면의 작은 마을이었다. 면사무소 부근은 피해가 적었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도로가 끊겨 구호물품들조차 걸어서 운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정도 매몰된 집들은 진흙으로 덮여있고 전기와 통신은 물론 수도공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개울 근처의 집 세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누군가가 얘기를 안 해주면 그곳에 집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 주민이 말해주었다. 불은 재라도 남기지만 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가 버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 진료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도착하자마자 옥계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 진료실을 개소했다. 첫째 날은 주민들에게 홍보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환자가 많지 않았다. 다음날은 왕진가방을 들고 2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 들어가 산계 2리와 산계 3리의 100여 가구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진료했다. 그러나 가지고 갔던 약이 부족하거나 예상치 못한 환자를 만났을 경우는 처방전을 본부로 가지고 와서 다시 산길을 걸어 올라가기도 했다. - 힘든 봉사 후 감회가 있을 것 같다. 직접 환자를 보다보니 여러 가지로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국민들 각자가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이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위로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준다면 수재민들 역시 용기를 얻고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위기를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와야 한다는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할 때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가진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닫고 왔다. - 학창시절에도 봉사에 관심이 많았는지. 전혀 아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주 많아 이제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공부해 왔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학교와 병원에만 충실하다보니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에도 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물론 환자를 볼 때는 성의껏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은 봉사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기독교를 좀 더 가까이 접하면서 이제껏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미국에는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한데 지금의 나는 그곳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 봉사 기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심장병 환자가 한 분 있었는데 진작 자신은 몰랐다고 한다. 평소에 조금만 걸어도 조금 숨이 찼지만 병원에 가서 진료할 만한 경제적 사정이 안되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자신이 무슨 병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분께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로가 연결되면 꼭 병원에 가보라는 말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죄송스럽고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 - 함께 한 동료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출발하기전 함께 참여한 분들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며 활동을 시작한 이상, 수해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다들 힘든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해 주었다. 활동에 대해 어떠한 작은 찬사가 있다면 이는 모두 그들의 몫이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8 22

[동문]펀드 매니저, 그 화려한 삶의 음영

'부를 위해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진정 꿈꾸는 것은 참된 '라이프 매니저' 현대투신 부본부장 백승삼 동문(경제 79) "자본주의의 꽃, 억대 연봉을 받는 금융 전문가." 펀드매니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급격히 재편되면서 펀드매니저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가 됐다. 막대한 자본의 행방을 결정하는 사람으로서 명실공히 현대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양지의 찬란함 뒤엔 늘 가려진 그늘이 있는 법.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며 피를 말리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펀드매니저들의 하루하루는 흡사 치열한 전장(戰場)을 누비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 벌써 '늙다리' 취급을 받는 것이 또한 펀드매니저의 세계다. 지난 8월 19일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보고는 국내 펀드매니저의 89%가 40세 이하임에 주목하며 이른바 '화려한 시절'의 씁쓸한 음영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한다 그 치열한 싸움터에서 늘 승리를 놓치지 않는 백전노장이 있다. 올해로 펀드 운영경력 17년째를 맞은 마흔 두 살의 백승삼(경제 79) 동문이 바로 그 주인공. 현재 현대투자신탁운용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백 동문의 화려한 '승률'은 동업종의 펀드매니저들에게조차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94과 95년, 연속 3투신사 최우수 펀드매니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그가 근무하는 현대투신이 주식혼합형 최우수 운용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한 지난 6월, 국내 펀드평가사인 '한국 펀드평가'가 선정한 수익률 상위 10위에 포함되면서 '검증된' 펀드매니저로서 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주식투자라 하면 운이 70퍼센트를 좌우하고,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30퍼센트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성이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총체적인 요인들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수익을 얻겠다고 하여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운이라 하는 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30%의 노력이 전부라고 할 수 있지요" 백 동문의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말하는 70퍼센트의 운이 그에게는 700퍼센트쯤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결과를 30퍼센트만큼만 좌우한다는 노력이 그에게는 300퍼센트로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플레잉 코치"라고 하는 백 동문의 말은 그가 타고난 노력가임을 짐작하게 한다. 펀드매니저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일반관리직으로 업무를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 동문은 부본부장으로서 4개 팀의 펀드매니저들을 관리하는 동시에 지금도 직접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원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펀드매니저라는 업무를 길게 가져가겠다는 그의 포부에는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하는 노장의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화려한 포장 뒤, 치열한 생존게임 펀드매니저의 하루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는 정보의 활용이 곧바로 생존 능력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이른 새벽이면 전날의 미국 주식시장을 체크하고, 장중이나 그 후에도 계속 국내외의 모든 정보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온통 긴장으로 점철된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백 동문은 단호하게 "견뎌내는 것도 능력"이라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에 대한 보상은 얼마나 될까? "선정적인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보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일반 평범한 회사원들보다는 약 2,30퍼센트 정도는 많다고 할 수 있죠. 작은 증권 부티크 같은 곳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펀드매니저들은 수 억대의 연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만큼이나 권위와 명예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국내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비록 프리랜서들보다는 작은 연봉을 받더라도 제가 얻을 수 있는 명예의 교환가치는 별개의 것입니다. 몇 억을 운용하는 그들이 누리는 성취감 보다 수 조를 운용하는 저의 성취감은 비교할 수 없죠." 백 동문은 단순히 돈을 위해 펀드매니저가 되겠다는 욕망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금융계의 대표적 직무군인 브로커와 애널리스트 그리고 펀드매니저 중에서 가장 작은 연봉을 받는 것이 펀드매니저라는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장 큰 명예와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역시 펀드매니저라고 덧붙인다. 문제는 펀드매니저로서 성취된 명예와 만족감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금융시장에서 성과가 없이 무한한 생존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든지 과거의 경력이나 업적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다른 직업과 달리 펀드매니저는 신규 편입자와 십 년, 혹은 이 십 년의 경력자가 모두 동일한 경쟁선상에서 출발하는 '써든데스(sudden death)'의 게임이라고. "우리는 항상 전쟁터에 서 있다. 장수가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상사(兵家常事)다. 다만 이기는 확률을 조금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자. 다만 한 번이라도 긴 관점으로 봤을 때, 승리의 확률을 높이는 작업을 하자." 팀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그가 자주 하는 말이다. 지난 월드컵 때, 승리를 거듭하면서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말했던 거스 히딩크의 모습을 그에게서도 발견한다. 어쩌면 성취감을 향한 백 동문의 '허기'는 히딩크 감독의 그것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꿈★은 이루어진다, 참된 '라이프 매니저'를 향하여 5·17과 12·12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그 복판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한 그에게 학창시절을 물었다. 백 동문은 연일 계속되는 휴교와 사회적 혼란 속에 일반적인 수업 자체가 어려웠다는 회고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솔직히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백 동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학점매니저'로서 그의 성취감은 어떤 것일까? "인생을 충실히 살았다는 것이 학창 시절의 결과물인 학점으로 평가될 수 있기에 학업이 중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인생을 반드시 충실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펀드매니저는 단순한 학점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펀드매니저의 경우, 경제 분야의 협소한 지식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전체를 보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편협한 사고를 지양하고 종합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사고력은 인생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소양입니다" 그는 펀드매니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한양인들에게도 종합적인 사고력과 안목을 갖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 이후에 FM검증 시험을 통해 공인된 자격을 갖추기를 권고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다 빨리 이해하고, 해외 투자자들의 동향과 생각을 예측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학 공부에도 성실히 매진할 것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저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도, 대단한 학력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학연, 지연에서도 내세울 게 없었죠. 게다가 아버님도 안 계셨고, 가정이 넉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미래를 향한 꿈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다소 허황해 보일지라도, 항상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꿈을 가지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요. 우리 젊은이들이 그것을 결코 잃어버리면 말았으면 합니다." 후학들에 대한 조바심이 어린 자녀들에 대한 생각으로 미친 것일까. 일곱 살과 다섯 살 박이 두 자녀를 두고서도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백 동문은 냉철한 펀드매니저에서 어느새 가슴이 따뜻한 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 인터뷰의 시작하면서부터 묻고 싶었던, 국내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추천하는 투자 1순위의 종목이 다름 아닌 '가족'임을 알기까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79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6 국민투자신탁 입사 1987 운용부 주식운용과 발령 1994·1995 3투신 최우수 펀드매니저상 수상 2001 주식혼합형 최우수운용사 선정 2002 '한국펀드평가' 선정 수익률 상위 10위 내 펀드매니저

2002-08 22

[교수]`디지털 강국의 청사진 그린다`

"디지털이여, 이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 삶의 질 향상, 산업생산 유발 위한 디지털 경영 필요 경영학부 장석권 교수 19세기 중반,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한 목수가 금맥을 발견한 사건이 있었다. 서부 개척 시대였던 당시 이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를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1백 50년 뒤, 역시 같은 장소인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러시'가 나타난다. 반도체 생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이끈 '디지털 러시(digital rush)'가 바로 그것이다. 이 디지털 러시는 매우 짧은 시간에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이른바 지구의 온라인화를 촉진시켰다. 새로운 '금맥'을 향한 경쟁적 '질주'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장석권(경영대·경영학부) 교수는 이러한 한국의 '디지털 러시'를 이끈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경영정보시스템(Management Information Technology, MIS)을 주 연구분야로 삼고 있는 장 교수는 20년 전 통신 산업과 관련된 학위논문을 집필한 이래, 현재에도 통신 분야에 있어 유일무이한 전문학자로 꼽힌다. 시외전화번호 광역화, 개인휴대통신 번호부여,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 등은 그가 참여한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또한 통신업계의 구조개편과 관련하여, 각종 공청회 등을 통해 정부에 직·간접적인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세계 1위의 온라인 인프라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있어서 세계 1위입니다. 2위인 캐나다보다 보급률에 있어서 2배 이상의 차이가 나죠. 우리의 인프라 구축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외국에서는 '기적'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빠른 속도의 인프라 구축에도 불구하고 현재 통신업계는 이 인프라를 활용하는데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답을 찾기 위해선 두 가지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죠. 하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산업생산을 유발하는데 있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라는 겁니다." 장 교수는 이미 구축된 우수한 인프라를 통해 어떻게 일반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와 그것이 실물 경제에서 생산을 유발하는 쪽으로 얼마나 빨리 개발·보급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유선인프라와 더불어 세계 수준의 무선인프라(이동통신)를 이용,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는 연쇄적으로 관련 산업의 생산 파급효과를 촉발시켜 해외시장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 교수의 IMT2000(광대역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크다. 우리보다 앞서 시작했던 유럽은 UMTS라는 개념으로 IMT2000 사업을 시작했으나 과도한 주파수 경매 대금으로 인해 사업의 진척이 막혀버린 상황이고, 미국의 경우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새로운 시장이 개발되는 탓에 아직 부진한 상태인 것. 따라서 2천 7백 만의 무선가입자 기반과 세계 1위의 유선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의 지극히 경쟁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사업자와 역동적인 소비성향의 소비자들은 빌 게이츠가 국내 통신기업과의 제휴의사를 피력할 만큼 매력적이고 가능성 넘치는 시장 요소라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대체' 아닌 '보완' 관계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요즘 세상에서 경영학 역시 정보기술(IT)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경영학'에 대해 장 교수는 IT 발전을 통해 마케팅, 인사, 조직 등의 기능적 측면의 변화를 연구·고찰하는 학문이라고 밝힌다. 즉 디지털 경영은 기존의 전통적인 경영생산활동에서 IT 도입으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함으로써 미시적인 변화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춰 경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다. "90년 대 중반에 인터넷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는 디지털 경영이 모든 전통적인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90년 대 중반에서 2000년대까지 5년 정도의 시간동안 인터넷 거품을 겪으면서 재고됩니다. 결국은 온라인 사회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 사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보완하는 측면이 많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예를 들면 디지털 도서관이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더 강화시키고 편리하게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90년대의 시행착오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경영활동은 오프라인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향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전체적인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디지털 경영의 남은 과제라고 역설한다. 인프라의 강점이 신규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함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말라 장 교수는 작년 한해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회고한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스탠포드 대학의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실리콘 밸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교의 창업보육센터 소장이기도 한 그가 느낀 실리콘 밸리의 벤처 생태계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견고한 것이었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실리콘 밸리만의 특징에는 분명 우리의 벤처기업인들이 배워야할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2000년 4월, 닷컴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무너지며 연속 5주 동안 주가가 폭락한 후 실리콘 밸리는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사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사이클을 보면 실리콘 밸리보다는 늦게 시작했고, 늦게 꺼졌죠. 뒤늦게 출발했다는 의미는 세상의 변화를 적어도 리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고, 늦게 꺼진 것은 정부의 간섭이 있었다는 것이죠. 시장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미국과 정부가 보조하고 지원해주는 한국의 벤처 시스템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 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 자체는 서로 같으므로 실리콘 밸리가 거친 구조조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유효한 학습이 될 것입니다." 장 교수의 언급대로 미국의 벤처 환경 생태계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벤처 역사가 기껏해야 수년을 넘지 못하는 것에 반해 미국은 40여 년으로 여덟 배나 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두 생태계의 차이는 법제적 기반에 있어서 같을 수 없고 경쟁 규칙과 감시 기능, 시장 진입 및 퇴출의 제도적 기반 등에도 차이가 있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법률과 광고 그리고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문가 수급이 힘든 만큼 제도 인프라가 미약했던 한국은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벤처산업이 태동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장 교수는 IMF 이후 그나마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며 성실한 경영인의 자세와 윤리의식을 갖고 시장과 정면 승부할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이러한 승부에서 성공적인 사례가 나온다면 한국의 벤처 생태계도 올바른 모습으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접속=행복', 디지털 강국의 청사진 그린다 'e-코리아'는 본래 전자정부를 추구하는 개념으로서 대 국민 서비스와 행정부처간 업무의 전산화로 추진된 것이지만 장 교수는 그 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청사진을 구상 중이다. 오프라인에 '코리아'가 있다면, 온라인에도 '코리아'가 있는 형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오프라인의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 지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온라인 코리아가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이나 시너지 효과는 막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테면 대학로나 '예술의 전당'의 공연이 컨텐츠로 서비스되어 지방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면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결국 'e-코리아'의 목표는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산업생산 유발입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죠. 물론 아직은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이고 구체화할 부분도 많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보편적 개념이 되어 있지 않고, 아직까지는 인식도 높진 않지만 기업과 학교,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강국'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진 않았습니다."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장석권 교수는 197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에서 81년과 84년에 각각 산업공학 석사와 경영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4년부터 본교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0년과 2000년, 미국 반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과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한국경영과학회 총무이사, 정보통신부 정보화사업 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정보통신정책학회 이사, 본교 창업보육센터 소장, 본교 정보통신원 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0년에는 'Fullbright Senior Research Grant'를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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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국제인명센터 선정 `1천명 학자` 오른 공학대 이영해 교수

IBC 선정 '세계 1천명의 위대한 학자' 반열에 "그저 매사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 다가올 21세기는 정보 및 지식과 창조성이 고도로 중요시되는 지식기반 사회가 될 것이라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을 배양함은 물론, 보다 포괄적인 정보 및 지식의 획득과 균형이 잡힌 식견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3일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한 '세계 1천명의 위대한 학자(One thousand of Great Scholars)'에 오른 이영해(공학대·정보경영) 교수. 현재 SCM(공급사슬경영)학회 회장과 '21세기 분당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미국 BWW 출판사의‘500인의 탁월한 인사들(500 Profiles in Excellence)'과 세계 인명사전인 '마키즈 후즈후'의 2003년 판 수록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류와 산업공학 분야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연구 및 사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세계 인명사전 등재와 함께 위대한 학자로 선정된 소감은. 갑자기 된 것을 아니고 99년 차세기 지도자 500인에도 선정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감은 똑같다. 특별한 소감은 없다. 다만 앞으로 하는 일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 특별히 교수님의 어떤 부분이 선정에 작용한 것 같나? 매년 영국의 단체 인명센터에서 나름대로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지고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선정한다. 국제적인 단체이므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선정된다고 알고 있다. 아무래도 물류 산업 공학 분야에 대한 많은 국제적인 논문발표와 외국 사람들과의 교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공분야를 28년째 하면서 외국 학술대회나 저널이나 잡지에 많이 나갔다. 그래서 국제 인명센터에서 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선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선정 인물 중에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인명 센터에서 레터식으로 통보만 오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명센터에서는 선정된 천 명의 명단을 보여주지 않는다. 99년에는 레터에 빌케이츠도 선정되었다고 쓰여진 레터가 도착했었다. 우연히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 해외에서의 활동은 얼마나 활발히 진행 중인가? 거의 대부분이 학술대회 참가나 논문 발표를 위해 많이 나가게 된다. 그 외는 특별히 없다. 지난 호주 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를 하기 위해 갔을 때의 일이다. 월드컵이 끝나서인지 거기서도 온통 월드컵 이야기였다. 26개국에서 온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리나라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는 것도 실감하고 왔다. - 1인 3역의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웃음) 어쩌다 보니 일을 좀 많이 하게 되었다. 현재 지식인 및 전문가들이 모여서, 분당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관한 전반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분당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SCM(공급사슬경영) 학회에서 차세대 물류 시스템과 관련하여 연구를 진행 중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솔직히 하는 일이 많다보니 조금은 바쁘고 힘들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 현재 본교의 정보경영공학과 교수로써 하는 일과 분당 포럼과 SCM에도 신경을 많이 쓸 계획이다. 그리고 전공분야의 연구와 논문 발표에 최선을 다 하겠다. 김혜신 학생기자 onesecond@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