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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 22

[교수]한국 오페라계 살아있는 역사 성악과 박수길 교수

환갑 넘어서도 오페라 연출 등 왕성한 활동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으로 이산의 아픔 달래 지난 2000년 7년간 맡아온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을 물러난 박수길(음대·성악) 교수는 한국 오페라계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8년 〈사랑의 묘약〉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박 교수는 그동안 7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지난 해 국립오페라단 창립 40주년 기념 갈라콘서트 〈오페라, 오페라!〉까지 10여편을 연출했다. 지난 12일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막을 내린 본교 개교 63주년 기념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를 연출하는 등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 교수를 만나 남다른 오페라 사랑을 들어보았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모든 공연, 모든 활동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만큼 국립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들마다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지난해 베르디 서거 100주년 기념공연이었던 〈라 트라비에타 La Traviata〉와 〈시몬 보카네그라 Simon Boccanegra〉를 꼽고 싶다. 특히 〈시몬 보카네그라〉의 경우 국내에서는 초연이었다. 이와 함께 기억에 남는 일은 비록 국립오페라단의 이름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국오페라 50년사〉를 출판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는 건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이제 막 50년을 넘긴 국내 오페라 역사를 사실상 처음으로 남기는 작업에 동참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 오페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페라의 매력은 너무나도 크고 많다. 간단히 말해 오페라는 모든 예술이 녹아있는 '종합예술'이다. 성악을 중심으로 음악의 모든 장르가 녹아있으며 연기, 미술, 문학 등도 오페라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는 결코 소수의 클래식 음악 동호인들만이 즐기는 예술이 절대 아니다.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도 문학이나 연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오페라를 이해할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다. 한국 오페라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은 현재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정부나 기업체의 지원도 미비하고,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적은 편이다. 정책적으로, 경제적으로 시장논리만 적용할 게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인내심이 바탕이 된 육성의지가 필요하다. 오페라계 내부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전문적으로 연출을 공부한 연출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오페라 연출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전문분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전문적인 연출가 양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최소한의 지원은 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계는 명확하다. 4월말에 금강산을 다녀왔는데 나는 함흥 출신으로 어머님을 비롯해 형제들이 모두 북한에 있다. 상봉신청을 몇 차례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금강산 방문은 적십자사 자문위원겸 진행요원 자격으로 이루어졌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만찬장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물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공연도 하지 못했다. 공연의 경우 계획이 분명히 있었지만 만찬장 분위기가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직접 북녘땅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예전과는 또 달랐다. 어서 빨리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남북한 정부 모두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이나 문화예술 교류 같은 것은 순수한 마음만으로 임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일단 공적인 일은 국립오페라단 단장직을 그만두면서 많은 부분 정리가 됐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예울음악무대'라는 단체에서 다른 학교의 음대 교수들과 함께 '소극장 오페라 운동', '젊은 성악인 양성운동', '성악 앙상블 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기초가 약한 국내의 오페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챙기자는 뜻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또한 아주 미흡하게나마 북한 어린이 돕기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단장일 때는 공연을 통해 홍보도 꽤 했다.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서 오페라 공연을 해보고도 싶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05 15

[동문]21세기 신인재 기른다 안동대 권영건 총장

"훌륭한 전통과 도전적 창조정신 있으면 '위기'는 없다" 글 싣는 순서 ① 충북대 신방웅 총장 ② 강릉대 임승달 총장 ③ 안동대 권영건 총장 ④ 호원대 강희성 총장 ⑤ 동신대 이상섭 총장 ⑥ 삼척대 장태연 총장 경북 안동은 예로부터 '조선인재(朝鮮人才) 반다영남(半多嶺南), 영남인재(嶺南人才) 반다안동(半多安東)'이라 할 정도로 명현거유(名賢巨儒)가 많이 배출된 선비의 고장이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 안동이 배출한 시대의 석학과 그 제자들을 모두 열거하자면 조선 유학의 학문적 계보, 그 자체를 확인하는 작업이 된다. 이러한 학문적 전통을 바탕으로 안동대학교는 경북 남부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으로서 지식인 양성과 지역 개발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온 학문의 전당이라 자임한다. 전통에 기인한 것인가. 속세에 팽배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신열을 극복한 것은 비단 퇴계만이 아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고향, 안동에 내려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보니까 생리적으로 맞질 않아요. 그래서 수단으로서 택했던 학문을 천직으로 삼아 지금까지 왔습니다.』안동대학교 제3대 총장 권영건 동문(정외 64학번)의 말이다. 국내 유일무이한 국학의 전당 [인터뷰 동영상보기] 권영건 총장은 정외과 64학번이다. 이후 연세대와 고려대를 거쳐 다시 모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1983년 안동대 행정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향에서 묵묵히 학자의 길만을 걸어온 이른바 '선비'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그렇다고 그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전통적 가치만으로 동시대 학문적 요구와 시대적 수요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 안동은 조선유학과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학문의 고장입니다. 민속학과 한문학 등 안동대의 특화된 분야가 이를 반증합니다만. 『물론 지역·문화적으로 유교문화의 오랜 전통을 가진 고장이기 때문에 한국학, 동양철학, 한문학, 민속학 분야 등 국학이 발전했습니다. 특히 민속학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학과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70%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합니다. 이런 주민들의 경제적 입장을 생각해서 농학계열을 특성화했고 4년 전부터 국책대학으로 인정받아 매년 60억 정도를 지원 받고 있지요.』 - 너무도 당연한 까닭에 세계화, 정보화에 대한 요구가 벌써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만 전통을 계승하는 것 외에도 대학에 대해 현재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는 보다 다양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학이나 농학만이 안동대의 경쟁력은 아닙니다. BK21 사업에 본교 기계공학부가 참여해서 지난해 평가에서 전국 4위를 차지했습니다. 기계공학분야에도 저희 대학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앞으로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서 환경분야나 한의학 등 다양한 부분을 특성화시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화,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이 있는데 뭐 한국학 쪽의 고유분야는 당연히 특성화해야 하지만 중소도시에 있는 대학으로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정보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것이 생존력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선비'는 지금 비즈니스 중 그는 전통과 창조의 관계에 내재한 역동성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이른바 선비의 표상이던 권 총장이 국내 교육계 내에서 최고의 '비즈니스 총장'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설을 잘 반증한다. 안동대가 최근 3백 20억원의 국고지원 예산을 확보해 전국 국립대 최대 규모의 기숙사 신축과 제2도서관, 국제관 등 대규모 교육시설 확충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권 총장의 적극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기인한 성과라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권 총장이 지원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김덕중 전 교육부총리를 만나 '시골 출신 학생들에게 더욱 최고의 대우를 해 주고 싶다'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던 일은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일화다. 한정된 국고 예산으로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 지방 국립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점잖던 '선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 지방 국립대가 지닌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이 예산의 문제라는데 공통된 인식이 있습니다. 안동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재정문제는 이른바 다다익선이라고 하는데 지역이 중소도시이고 주민들의 경제적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저희대학은 발전기금을 모으는데 상당한 제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대학 자체가 수익사업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자체 사업으로 재정을 확충할 방법이 없습니다. 등록금도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한해서 마음대로 올릴 수 없지만 장학금은 전교생의 40% 이상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립대학이니까 정부에서 세웠으니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정부 관계 부처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현재 안동대가 건설 중인 12층 규모의 제 2기숙사는 골조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건물 내외부를 모두 대리석 자재로 마감하고 각 실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따로 갖춘 호텔급 기숙사가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학생들의 기숙사치고 너무 사치스런 면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권 총장의 답변이 명쾌하다. 교수들을 위한 시설을 이토록 화려하게 한다는 것은 비난의 여지가 있지만 학생들을 위한 시설을 최고로 만들겠다는데 무슨 논란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더욱이 안동대 소속 학생의 대부분이 농촌 출신임을 감안할 때 '농부의 자녀'들에게 도회보다 훌륭한 최고의 시설을 제공하고 싶다는 그의 취지를 듣고 나면 대개가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5개 대학 통합한 '대구경북국립대학교' 추진 21세기의 '선비'는 한학은 물론 양학과 컴퓨터에도 조예가 깊어야 하는 것인가? 안동대의 영어 관련 커리큘럼과 컴퓨터 교육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권 총장의 각별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 국학의 중심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안동대는 해외 인턴쉽 제도를 비롯한 국제화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어는 학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입니다. 본교에는 현재 19명의 외국인 교수가 있습니다. 전교생이 3년 동안 영어회화, 토플, 토익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수업도 1년 과정의 필수로 지정되어 있어서 학점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면에서 안동대 학생이라면 영어와 컴퓨터에 있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것으로 자부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재학생들의 해외 경험을 유도하기 위해 3년째 해외 인턴쉽 사원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기업에서 6개월 혹은 1년간 일을 하고 돌아와 학점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작년도에 일본의 자스넷 회사와 제휴하여 19명의 학생들을 그곳에 취업시킨 성과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4, 50명까지 확대할 생각입니다.』 지방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안동대의 노력은 비단 커리큘럼과 학사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안동대는 상주대, 금오공대, 경북대, 대구교대 등 대구·경북 지역의 5개 대학을 통합한 종합 국립대학 건설을 주도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러한 사업의 배경에는 국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 운영에 있어서도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갖춰야 한다는 권 총장의 생각이 깔려있다. 지방 국립대간 유사학과 통합과 시설 및 학제간 교류를 극대화하여 예산의 중복 지출을 막고 연구와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 대구·경북국립대학(TKNU) 건설 사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방대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의 위스컨신 주립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모델을 가지고 대학간 통합 기획안을 교육부에 제출했습니다. 대구·경북지역의 5개 대학간에 교수와 학생, 직원간의 교류 및 공동연구 그리고 도서관 등 학교 제반 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유사학과의 통폐합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년도까지 사업 기반을 조성하고 2005년까지는 기반 강화, 2010년도에 교명을 '대구경북국립대학교'로 통합하면서 캠퍼스는 5개로 나누어지는 모델입니다. 지금은 사업의 성공여부를 확신할 수 없지만 관건은 5개 대학 구성원들의 의지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여하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전국의 국립대학이 나아가야 할 확실한 지표라는 생각입니다.』 21세기적 선비정신은 '사랑의 실천'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도로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뜻을 접고 후학 양성의 길을 택한 권 총장에게 시국에 대한 세평을 물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을 후진적인 정치인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날카로운 일침이 곧장 되돌아온다. 이 시대에 필요한 '선비정신'이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한양대학교의 교시가 사랑의 실천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학교를 다닐 때나 젊어서 이 교훈을 깊이 음미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조금씩 살면서 나이도 들고, 경륜이 쌓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야 이 말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한양인의 도덕적 기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도덕적 기반이자 가치 있는 규범으로 생활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68 한양대 정치외교학과(학사) 1973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무행정(행정학석사) 1977 고려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교육학석사) 1986 한양대 대학원 정치학과(정치학박사) 1974-83 가톨릭상지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1983-91 안동대학교 행정학과 조교수·부교수 1986-88 미국 애쉬랜드대 교환교수 1991-99 안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995.1-95.12 한국정치학회 이사 1995-96 안동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현) 학교법인 경일학원 이사장 (현) 안동대학교 총장

2002-05 15

[교수]`지적재산권은 산업발전의 바로미터`

지식기반사회서 지적재산권 갈수로 중요해져 "발전 속도 따라잡으려면 한시도 쉴 수 없어" 친구중에 공대생이 있다. '잘나가는' 한양 공대 출신인데다 IT산업붐으로 인해 한창 '뜨고 있는' 전자통신을 전공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삼성, KT, SK 등 굴지의 전자·통신회사 취업은 '떼어논 당상'이었다. 하지만 졸업을 1년 앞둔 어느날 그는 고시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마도 기술고시를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변리사시험을 보겠다는 것이다. 변호사보다도 수입이 더 '짭짤하다'는 그 변리사다. 산업발달은 기술 발전과 동전의 양면이다. 기술 발전은 산업화를 앞당겼고 국가는 산업화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보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적재산권은 그래서 강조되었다. 그런데 특히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은 최근 들어서는 실용신안, 의장이나 상표, 디지털 컨텐츠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 예술작품의 저작권이나 기술 특허권 정도(?)를 다루던 변리사가 그래서 인기상종가를 치고 있다. 국내에서 지적재산권법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윤선희(법대·법학과) 교수를 만나러 가면서 변리사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을 친구가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산업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공부 "나는 매년 연구업적 우수교수가 되어야 합니다. 지적재산권법 분야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주 피곤한 학문입니다." 오전에 2001학년도 연구업적 우수교수상을 수상한 윤 교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러나 윤 교수는 그 '피곤한 학문'인 지적재산권법을 연구하면서도 오히려 재미있고,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자신이 좋아서 시작했고, 산업발전의 속도에 걸맞는 지적재산권법을 마련하는 것은 곧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평소의 철학과 소신 때문인 듯 했다. 윤 교수는 원래 법학도가 아니었다. 집안 누대로 공직자가 많았던 탓에 행정관료를 꿈꾸던 그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할 때까지만 해도 경제개발을 주도한 관료의 길을 생각했다. 하지만 행정관료도 전문적인 분야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산업과 연관시킬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다. 실무로서가 아니라 이론으로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찾던 그에게 눈에 띈 것이 바로 지적재산권이었다. "제가 공부를 시작하던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지적재산권에 관한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갔지요. 그런데 미국 법과대학원은 로스쿨 중심이어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장 보따리를 싸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요." 2차 세계대전후 경제부흥으로 기술선진국이 된 일본도 지적재산권에 관한 연구가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었다. 게이오(慶應)대학, 도쿄도립(東京都立)대학 등을 전전하며 윤 교수는 지적재산권법을 공부하려면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에 도시샤(同智社)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학부 공부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윤 교수는 하지만 '한국을 지적재산권이 강한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라는 초심을 생각하면 다시금 책을 잡을 힘이 생겨났었다고 회고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써먹지도 못할텐데 뭣하러 그걸 공부하느냐', '굶어죽기 딱 알맞다'는 주위의 비아냥거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다. 교수가 되겠다거나 이걸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으면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자신의 소신 때문이었다. 이렇게 학부 공부를 끝내고 다시 석사과정을 밟는데 시즈오카(靜岡)산업대학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윤 교수는 이때 '굶어죽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특유의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국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정부 돼야" "지적재산권법에서는 세계 누구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학자가 되어야겠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기술선진국, 강대국이 아니면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허탈했습니다. 국내에서 강의만 10년을 한 제가 외국 신참 학자의 논문을 인용해야할때는 더더욱 그렇죠. 우리나라가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의 지적재산권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다. '기술보다 법이 앞서간' 탓에 정작 우리 국민들보다는 정부를 위한 법을 만들고,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우리 실정과 이익을 따져보기 보다는 미국 등 외국 선진국의 눈치를 보느라 각종 협약에 불쑥 가입하는 바람에 입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도 논란이 분분하지만 WTO(국제무역기구)와 베른조약(문학 및 미술 저작물 보호에 관한 국제협정) 가입으로 더욱 엄격해진 저작권법은 영세한 출판사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물론 국제적인 추세와 흐름도 중요하지만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정부의 자세가 아쉽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먼저 특허출원한 사람을 우선한다'는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먼저 발명한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는 선발명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은 사후 5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됨에도 불구하고 최근 월트 디즈니(Walt Disney)사가 지나고 있는 미키 마우스 등의 저작권을 20년 연장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적인 관례를 깨는 것 쯤이야 우습게 아는 미국의 횡포야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자국민을 보호하는데 소홀한 우리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부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부처이기주의, 영역간 다툼이 너무 심합니다. 그리고 학자들도 정부가 요구하는대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주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각도 선진화돼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지적재산권 연구 필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그에 걸맞는 법, 제도의 발전을 요구하고 전혀 새로운 현상들도 나타나 이에 대한 해법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IT산업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프로그램 불법복제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정품사용 기업을 발굴, 인증하는 한국소프트웨어 저작권협회(SPC)의 자문기구인 인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는지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는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PWL)'에서 '감시대상국(WL)'으로 한단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얼마전 그는 특허법, 실용신안법, 의장법, 상표법 등을 망라한 〈산업재산권법원론〉(법문사)을 펴내기도 했다. 최근의 사회적 변화에 따른 지적재산권법이 주된 내용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헌법이 자주 바뀌면 그 나라는 문제가 있는 나라이지만 지적재산권법이 자주 바뀌는 나라는 나날이 발전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달라진다고 해도 나쁠 것 없지요." 그러면서 헌법학자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는 표정이다. 지적재산의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보의 공유도 마찬가지로 필요하지 않느냐며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이 된 MP3 음악공유 사이트 '소리바다'와 '냅스터'(Napster) 문제를 슬쩍 꺼내보았다. 지적재산권법을 전공하는 만큼 '당연히 폐쇄하는 것이 옳다'라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기본적으로 위법이지만 그렇다고 사이트에서 음악을 다운받고 공유한 국민들을 모두 범법자로 몰 수는 없지 않습니까? 초기 단계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것이 상업성을 띄게 된다면 문제가 됩니다. 산업발전에 역행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지금 시점에서는 마땅히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합니다." 일각에서 전개하고 있는 Copy Left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는 Copy Left운동도 Copy Right와 정신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본다. 균형과 형평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법을 위한 법, 운동을 위한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학가에 만연해 있는 불법복사와 복제에 대해서도 그는 매우 현실적이다. 자신이 공들여 쓴 교재를 사지 않고 복사·제본해서 사용하는 제자들에게 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이 내 책을 꼭 사서 볼 필요는 없다. 저술활동은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려고 책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여됐는지는 알아야한다. 그렇게 공부한 지식을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공부했으면 한다."는 것이 윤 교수가 제자들과 후학들에게 전하는 당부다. 인터뷰를 진행한 그의 연구실에는 마침 앳돼 보이는 여학생 두명이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적재산권을 전공한 학자답게 '지식이 곧 무기'라고 말하는 그에게 제자들은 무엇보다 소중한 '지적재산'이 아닐까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최 홍 기획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윤선희 교수 학력 및 경력 윤선희 교수는 88년 일본 도시사(同志社大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베(神戶) 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90년)와 박사학위(93)를 받았다. 도쿄(東京)대학 법학부, 일본지적재산연구소 등에서 연구했으며 특허행정정책자문위원회 정책자문위원,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총무이사, 한국비교사법학회 이사, 한국지적소유권학회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한일법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1학년도 연구업적 최우수교수로 선정된 윤 교수는 국내 40편, 국외 14편의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는 〈지적 재산권법〉(세창출판사), 〈국제계약법 이론과 실무〉(법률출판사), 〈영업비밀개설〉(법경출판사), 〈특허법 上〉(공역. 한빛 지적소유권센터), 〈무체 재산권법 개론〉(역서. 법경출판사), 〈산업재산권법원론〉(법문사. 2002) 등 7권이 있다.

2002-05 08

[동문]우리 문화 보급의 첨병 박형식 정동극장장

공익성ㆍ수익성 조화로 극장 내실 다져 "예술가이자 경영자인 삶도 조화시키고파" '최근 일요일을 맞아 서울 정동극장을 가족과 함께 찾았다. 매표소 입구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입장객들에게 정성을 쏟는 직원들에게서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산조 합주를 비롯해 부채춤, 사물놀이와 관현악 연주, 판굿 등 우리의 전통예술에 흠뻑 취했다. 한글과 영어·일어 자막서비스는 물론 출연자와 신명나는 뒤풀이 한마당과 출연자와의 기념촬영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상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는지 외국인들이 성황을 이루어 보기에 흐뭇했다. 왜 이런 곳을 진작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모 일간지 여론면에 실린 독자투고글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객석 4백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인 정동극장의 진면목을 알기에 이 글에서 빼고 더할 것이 없다. '고객편의주의'를 표방하는 극장의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와 전통예술공연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극장장의 경영철학이 관객의 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익성과 공익성을 조화시키는 게 경영목표 기자가 찾은 지난 4일에도 극장 내 쌈지마당에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아이와 함께 아동극〈강아지똥〉을 관람하러온 주부들은 물론 이제 막 회사를 마친 직장인 그리고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쌈지마당을 지나 찾아간 극장장실은 채 5평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한해 15억의 공연 수입을 올리는 '작지만 큰 극장' 정동극장의 경영전략과 공연기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형식 동문(성악 78년졸)이 지난 2000년 3월 신임 극장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문화계에서는 기대반 호기심반의 시선을 보낸바 있다. 95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연간 9천만원에 불과하던 극장 수입을 5년만에 17억원으로 끌어올려 '스타 극장장 시대'를 연 홍사종(현 숙명여대 문화관광과 교수) 전임 극장장이 워낙 매스컴의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취임 당시 박 동문은 "전임 극장장이 너무 잘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조금씩 변화와 새로운 색깔을 더해나가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바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박 동문은 과거의 부담감을 얼마나 떨쳐버렸을지 궁금했다. "극장이 수익성을 너무 따지면 공익성이 약해지고 또 공익성을 강조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최근 저희 극장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만 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극장이니만큼 공익성도 잘 살려나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과 공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저의 경영목표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동극장은 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체제로 문을 열었다가 97년 국가가 운영비를 일부만 지원하는 민간위탁방식으로 전환한 문광부 산하 공공법인이다. 박 동문은 정부가 좋은 위치에 극장을 지어 운영하도록 한 것은 공익성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익만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사무실을 지어 임대료를 받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그는 좋은 볼거리를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어루만져줌과 동시에 좋은 배우와 작품을 발굴,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확대된 전통예술공연, 외국 관광객에게 인기 비록 전임자의 성과이긴 하지만 정동극장은 민간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독특한 경영기법과 마케팅 전략으로 우리 극장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유리도 없이 훤하게 트인 곳에서 표를 살 수 있도록 한 열린 매표소, 주부와 가족 관람객을 배려한 어린이 탁아소, 관객들이 공연을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마련한 화랑 등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타 극장들이 쉽게 도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직장 여성을 위해 모포를 나눠주고 음악을 감상하게 한 낮잠상품과 겨울철 야외 공연시 군밤을 나눠준다거나 1천원짜리 커피를 제공하는 등의 '깜짝 이벤트'는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곳에 가면 뭔가 즐거운 것이 있다'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다 양질의 공연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되돌려줘야한다는 것이 박 동문의 생각이다. 이러한 박 동문의 생각은 전통예술공연의 확대를 통해 엿볼 수 있고 앞으로 운영할 문화센터를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99년까지 주 2회 운영해왔던 전통예술공연을 2000년 4월부터는 주 6회로 늘렸습니다. 이 상설국악공연에는 지금까지 3만명 이상이 관람했는데 전체 관람객의 80% 가량이 외국인이에요.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후 8시 극장앞에는 어김없이 관광버스가 서 있습니다.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자부합니다. 러시아의 볼쇼이극장과 같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극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문화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문화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매우 힘든게 사실이다. 특히 주5일제 근무제가 도입되어 여가시간이 크게 늘어나면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 또한 증가하기 마련이다. 물론 각 구청마다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각종 사설 문화센터가 속속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예술기관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한다는 것이 박 동문의 지론이다. 악기도 배워보고, 직접 연기를 해보는 등의 체험을 통해 길러진 문화적 소양이 결국 연극, 공연관람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극장측으로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음악은 나의 운명 …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극장의 경영자이기 이전에 박 동문은 성악가이다. '명태'라는 노래로 유명한 바리톤 오현명 전 음대 교수로부터 사사받은 그는 20여년간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약했고, 많지는 않지만 홀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악가의 길이 아닌 '예술경영'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왠만한 음대생이라면 다 간다는 외국 유학을 마흔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녀온 박 동문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나오지 말았어야 좋았을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 성악가로 살수는 없습니다. 무대, 조명, 음향 등을 성악과 출신이 하지 못하란 법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실력이 있건 없건간에 유학도 가고, 그것에만 매달립니다. 예술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성악가 출신이 이런 극장을 맡으면 부정적으로 보았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해 문의도 하고,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니까요."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꼭 노래를 불렀다는 점, 학창시절 음악선생님이 꼭 수업시간에 독창을 주문했다는 점을 회고해볼 때 음악을 하라는 운명을 타고났던 것 같다는 박형식 동문. 매 시기에 요구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고, 임기가 끝나면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일을 즐겁게 해 나갈 뿐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그는 앞으로도 돋보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존재, 화려하기보다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전임 극장장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동극장문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박형식 동문 학력 및 약력 바리톤 박형식 동문은 지난 78년 본교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서울시립합창단에 입단해 수석단원, 기획실장, 단장을 역임했다. 86년에는 단국대학교 대학원 성악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89년 중앙대 예술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95년부터 97년까지 이탈리아 리노로타 음악원에서 지휘와 성악을 공부했다. 국립오페라단 '원효대사', '세빌리아의 이발사, 김자경오페라단의 '카르멘' 등 다수의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했으며 두차례의 독창회를 열었다. 서울시장 표창과 중구문화예술상(2001년)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5 08

[교수]`의료법 수술 필요하다` 법대 정규원 교수

생명의료법 연구하는 국내 최초 의사 출신 변호사 "법적 규율 없이 이뤄지는 인간 복제 연구 문제" 최근 유럽에서 '안락사'를 둘러싸고 다시금 논쟁의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MND라는 희귀한 운동신경질환으로 전신이 마비된 영국의 한 여성이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자국법에 맞서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라'며 유럽 인권재판소에 안락사 허용을 요청하는 한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인권재판소 측은 만장일치로 '자살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해 일단 기존의 안락사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논란을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일부 병원에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돼 해당 정부부서에서 현행법 저촉여부 검토를 시사하는 등 의료윤리와 생명의료법 등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 최초 의사 출신 법학자인 법대 정규원(법학)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최근 안락사 등 의료윤리에 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데 얼마전 모 병원에서 생존 가능성 여부가 불투명한 환자를 환자 보호자의 동의 하에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에게 법원이 살인죄를 적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안락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의미한 치료에 대한 의료법이 정비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기한 사건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이러한 환자에 대한 치료 계속 여부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정비할 수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의료 관련 법규가 제정될 당시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짜깁기한 탓에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의약분업을 놓고 벌인 갈등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의료분쟁도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등 기본 원칙에서부터 정비가 시급하다. 인간 복제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는데 물론 인간 배아 복제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희귀 질환 치료에 가능성을 여는 등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법적 규율이 미비한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인간 복제 연구는 분명 문제가 있다. 생명공학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이것이 미칠 사회적 파장과 윤리적인 측면은 간과하는 편이다. 따라서 인간 배아의 법적 지위를 비롯해 유전정보 문제 등 생명공학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포괄하는 생명의료법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의료법(medical law)이 생명의료법(biomedical law)으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생명의료법은 어느 정도 단계까지 와 있는가 이미 의료법의 독립적인 학문분야로 발전한 미국에 비해 우리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의료법은 의학분야와 법학분야가 개별적인 수준에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다. 비록 미약하기는 하지만 일부 국내 대학에서 법무대학원내에 의료법 관련 커리큘럼을 포함시키거나 의대에 의료윤리학과 등을 개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론적 체계가 부족하고 방향성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인들의 윤리가 의학기술의 발전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의료인들의 윤리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본다. 전문인인 만큼 의료인 자신이 해결해야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사회의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료분쟁을 둘러싼 소송이 늘어나면 병원은 존립 자체가 힘들어진다. 대학에서 미리 의료인들에게 윤리교육을 강화해야한다. 이제는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과학기술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의료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도적인 지원도 뒤따라야한다. 선진국에서는 생명공학분야 프로젝트의 연구비에서 3∼5%는 인문사회부문에 재투자한다고 한다. 부러운 현실이다. 법대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지난 91년 인턴 시절, 수술 후 숨진 아이의 사망원인을 놓고 보호자와 의사간에 벌어진 의료분쟁을 경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법학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정 교수는 현재 법대에서 형법을 강의하고 있다. 흰 가운이 더 어울릴 듯한 가냘픈 체구의 정 교수가 정비가 시급한 의료법에 '메스'를 대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5 01
2002-05 01

[교수]`제3섹터` NGO 연구의 권위자 주성수 교수

사회봉사단ㆍ제3섹터연구소 창설해 NGO 연구 '발화' "공익보호하는 NGO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은 당연" 주성수 교수 (행정대학원) 정부와 기업. 이 둘이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집단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엄청난 권력과 재력은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이 두 집단은 사회와 국가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압축적인 근대화과정을 거친 우리나라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실로 지대했다. 정부는 개발 프로젝트를 '반강제적으로' 수행했으며 기업들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거대 '재벌'로 성장했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들이 이루어낸 성과 못지않게 그 폐해도 컸음은 물론이다. 견제와 비판, 감시의 영역이 자리잡을 틈도 없이 진행된 개발 프로젝트는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으며 문어발식 확장과 총수 중심의 일사불란한 경영으로 산업화에 일조한 기업들의 경영행태는 역설적이게도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판받게 되었다. 정부·기업활동 감시하는 NGO 연구 주도 이러한 정부와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더욱 활성화되고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다름아닌 민주화와 함께 신장된 시민사회 영역, 바로 비정부기구(Non Government Organization. 이하 NGO)의 활발한 활동에서 기인한다. 본교 행정대학원의 주성수 교수는 국내 NGO 연구에 있어 몇 안되는 이론가로 손꼽힌다. 주 교수는 NGO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지난 1994년, 본교에 '사회봉사단' 창설을 주도하면서 NGO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1997년 12월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내 NGO 전문 연구기관인 '제3섹터연구소'를 창설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제부터 NGO 연구에 관심을 가졌냐고요? 제가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있을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 환경보호, 인권보호 등과 같은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던 저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사회의 사회봉사운동과 NGO들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됐죠. 그리고 '사회봉사단'과 '제3섹터연구소'의 창설을 계기로 아주 전문적으로 이쪽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3섹터연구소 통해 국내 NGO 활동 평가 NGO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주 교수의 중심적인 연구주제는 국내 NGO들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NGO들이 정부와 기업의 잘잘못을 평가하듯, 주 교수는 제3섹터연구소를 통해 지난 1999년부터 정기적으로 NGO들을 평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정홍보처와 서울시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전국규모의 NGO들의 운영실태와 각종 사업계획 및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정홍보처와 서울시는 이러한 평가결과를 토대로 각 NGO에 대한 자금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NGO들에게 제3섹터연구소는 '시민운동장의 심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NGO를 평가하는 것이 중심 연구과제인 만큼 주 교수는 NGO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NGO 역사는 이제 겨우 10년을 조금 넘은 단계라며, 짧은 역사에 비해 사회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러모로 볼 때 아직은 미숙한 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주 교수는 국내 NGO들의 경우 조직 경영이나 관리 그리고 인력운영 면에서 1960년대 신사회운동때부터 있어온 미국이나 유럽의 전통있는 NGO들과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 교수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보호운동 그리고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언론개혁운동 등과 같이 한때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NGO들의 움직임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NGO들도 이제 확실한 정체성을 마련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발맞춰 운영방식과 관련된 사항들도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NGO 대한 정부 재정 지원 당연하다" 주 교수의 전망처럼 많은 국내의 NGO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운영의 틀을 잡아가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NGO로 일컬어지는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경우에는 이미 정부의 지원금도 받고 있지 않을 정도이다. 비록 아직까지는 재정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완벽한 재정독립을 이루었다고도 말하기 힘들지만 이 두 NGO는 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NGO의 재정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이다. NGO들의 비판대상이 되는 기업이나 언론사들이 정부와 각종 단체들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NGO의 공정성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낙선운동, 소액주주 보호운동, 언론개혁운동 등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비판 당사자들과 일부에서 관련 NGO들에 대한 현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문제삼으며 강렬히 비난했다. 심지어는 '홍위병'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NGO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꼬집는 사람들은 NGO에 대한 이해 내지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시다시피 NGO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NGO의 역할은 환경과 소비자, 인권과 여성 등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들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가 책임져야만 하는 공익적 성격의 일들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정부가 일일이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NGO는 정부 대신에 이러한 일들을 해주는 역할을 하는 단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건 잘못된 게 전혀 아닙니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다국적 NGO들의 경우도 그린피스(Green Peace)정도를 제외하고는 재정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NGO들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세계적인 인권보호 NGO인 엠네스티(Amnesty)와 YMCA, YWCA 같은 거대 NGO들도 UN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많은 재정을 지원받고 있는 실정이다. 주 교수에 따르면 심지어 외국에서는 기업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NGO들에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례로 나이키의 경우 몇 해전 동남아에 있는 일부 공장에서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고용돼 혹사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유럽의 인권관련 NGO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나이키는 동남아를 비롯한 후진국에 위치하고 있는 생산시설의 노동인력과 노동환경에 대대적인 점검을 실시했을뿐만 아니라 이런 사태의 차후 방지를 위해 아동 불법고용 및 학대 방지 활동을 펼치는 NGO들에게 재정적인 지원까지 약속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부가 아무 NGO에게나 지원금을 주는 게 아니고, 공식적인 평가를 통해 선정된 NGO들에게만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는 주장을 하는 NGO들을 의도적으로 선정하는 건 여러모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주 교수는 "농담반, 진담반 NGO에 있는 사람들처럼 말도 잘하고, 비판도 잘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며 "이런 특성 때문에라도 불공정한 평가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평가방식이나 평가결과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는 건 물론이라며, NGO들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고 덧붙혔다. NGO분야 연구 특성화 바램 피력 주 교수는 본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적인 NGO연구를 시작한 학교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전통과 성과를 바탕으로 NGO 연구를 사회과학계열의 특성화 분야로 관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육성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NGO 연구만큼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가 응용되고 실용적인 것도 드뭅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이미 연구가 궤도에 오른 상태이기도 하고요. 현재 학교측에서도 이쪽 분야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방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저를 포함해서 4명의 사회대 교수들이 'NGO 연구와 지식인의 역할'이란 주제로 학술진흥재단에 집중지원 연구신청도 해 놓은 상태입니다. 관심과 투자만 지속된다면 좋은 결과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NGO에 관심있는 본교 학생들을 고급 NGO 연구인력과 전문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어서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주성수 교수 약력 및 경력 주성수 교수는 1981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83년과 85년에 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각각 공공정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89년 3월부터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제3섹터연구소의 소장직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현재 행정자치부 정책자문위원, 국저홍보처 자문위원, 시민사회포럼 운영위원, 한국비영리학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글로벌 가버넌스와 NGO〉, 〈시민사회의 NGO 논쟁〉, 〈생산적 사회복지정책〉, 〈자원봉사와 시민사회〉등이 있으며 국내 19편, 국외 2편이 논문이 있다.

2002-05 01

[교수]`영화와 함께 열린 대화를` 이인숙 교수

'프랑스 영화의 이해' 수업 일환으로 영화관람 실시 교수ㆍ학생 벽 넘어 오누이처럼 진솔한 대화 나눠 햇볕이 뜨겁게 머리 위로 내리쬐던 지난 달 27일 토요일 오후 1시. 이인숙(국제문화대·프랑스언어문화전공) 교수는 '프랑스영화의 이해'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열린 대화방'이라는 소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 '열린 대화방'에는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선정된 학생과 명동 중앙시네마극장에서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를 관람하고, 식사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초 6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2명의 여학생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해 연규봉(국제문화대·불문 4), 최정재(디경대·디지털경영 2), 김경근(디자인대·영상디자인 2), 오아람(디자인대·영상디자인 2)군 등 4명의 남학생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안산캠퍼스 여학생실장을 맡아 여학생들의 대학생활과 취업에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 교수와 참가학생들을 만나 열린 대화방과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열린 대화방'은 어떤 프로그램이죠? 이인숙 교수(이하 이 교수) '열린 대화방'은 '프랑스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의 일환으로, 캠퍼스라는 공간과는 다른 곳에서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은 개인적 욕심에서 작년 1학기부터 매학기 실시하고 있다. 매학기 한번씩 하는데 '프랑스영화의 이해' 인터넷카페(http://cafe.daum.net/hyfrance)를 통해 공지를 한 후 6명을 선착순으로 신청받아 실시하고 있다.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 교수 학교 밖에서 교수와 영화도 보고, 이런저런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도 얘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생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 처음 10명이 넘는 인원으로 시작했는데 인원이 많으니까 몇 명씩 따로 얘기하는 문제점이 있어 지난 학기부터는 6명만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상담교수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 수업의 연장선에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같이 영화를 보고 교수와 학생이라는 벽을 넘어 공통의 과제를 가지고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 속에서 얘기를 나누며 학생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즐겁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영화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의를 통해 프랑스 영화를 배우면서 어떤가요? 연규봉 강의가 프랑스 영화를 보고 비평을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보는 건 그런대로 괜찮은데 비평을 하는 게 이해를 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어렵다. 최정재 강의시간에 본 영화 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이해하고 비평하는데 굉장히 어려웠다.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이해하기 힘든 점이 정말 많다. 이 교수 프랑스 영화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보듯이 상징성이 많고 정서적으로 우리와 다른 점이 많아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지난 강의 때 본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 앤 짐〉이라는 영화처럼 조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음미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 많다.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룬 〈쥴 앤 짐〉이라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애학 개론으로 흐르게돼 이 교수와 학생들은 각자의 연애경험을 바탕으로 남녀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마음을 터놓고 각자의 얘기를 서로 나누는 동안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진행됐다. 이날 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띄며 서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이 교수와 학생들의 모습은 사제지간이 아니라 무척이나 다정한 오누이처럼 보였으며. 80학번 교수와 80년생 제자의 대화는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친구 사이의 대화인양 매우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 군은 "교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리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처음 자리에 나올 때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참석했다."며 "밖에서 수업과 관련된 일 없이 교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간의 터울을 없애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며 교수님이 아닌 누님으로 편안하게 느껴볼 수 있는 자리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형준 학생기자 boltagoo@ihanyang.ac.kr

2002-04 22
2002-04 22

[교수]`공대 발전 위해 우수 교수 초빙 필요` 어영선 교수

세계적 권위 IEEE Senior Member 선정 "공대 발전 위해 우수 교수 초빙 필요" 어영선 교수 (공학대 전자컴퓨터공학부) 지난 1/4분기에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영업 실적은 곧바로 종합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출규모는 우리나라 수출의 20%에 달할 정도라고 하니 그 비중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반도체, 정보통신, 디지털가전, 컴퓨터 등 전자산업은 비록 서구 선진국에 비해 출발은 늦었으나 불과 2, 30년만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급성장한 분야이다. 전자산업이 이렇듯 급성장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인적자원이 풍부하는 것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D램 개발 경쟁에서 미국과 일본 등 경쟁사들을 한발 앞설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뛰어난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지닌 젊고 유능한 공학인, 엔지니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반도체와 정보통신분야에서 이룬 성과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만큼 이 분야의 기술개발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 반도체와 정보통신분야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고성능 고집적 칩을 개발하는 어영선(공학대·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역시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IEEE Senior Member 선정 정보통신 산업의 중추가 되는 고성능 고주파 혼합시스템의 시스템 레벨 통합 설계와 응용기술개발을 목표로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샌 어 교수에게 최근 그간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단박에 씻겨주는 소식이 찾아 들었다. 전기전자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에서 어 교수를 Senior Member로 회원 자격을 격상시켰다는 통보가 그것. IEEE는 전세계 150여개국에 377,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회원들은 student member, member, senior member, fellow로 나뉘어 지는데 이중 세계적 석학인 fellow를 제외한 senior member는 7%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에는 fellow나 senior member를 정치적인 이유나 지역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선정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러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순전히 학문적인 성과와 연구업적을 토대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고 들었습니다. senior member가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학자의 '자존심'이라는 점에서 제겐 의미가 있습니다." 2명의 교수가 운영하는 독특한 연구실 체제 어 교수는 현재 'Giga Electronic System Lab'(이하 Giga Lab)을 이끌고 있다. '고속회로연구실'을 전신으로 하는 Giga Lab은 국내 공학계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2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 교수의 동료는 심종인 교수. '동거'를 시작한지 벌써 3년째다. '같은 형제라도 동업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해관계가 걸린 분야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수 억원짜리 프로젝트가 왔다갔다하고, 연구성과를 공유한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공학분야에서 두 젊은 교수가 '동업'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훌륭한 인프라와 뛰어난 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KAIST와 서울대, 포항공대와 경쟁해야합니다. 이들 대학들은 보통 교수 1명에 박사 10명, 석사 10명이 기본입니다. 석박사 합쳐봐야 너댓명에 불과한 우리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리한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교수 2명이 힘을 합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차피 연구를 끌고 나가는 것은 교수이기 때문에 심 교수와 제가 수적으로 불리한 부분을 커버하는 거지요. 마침 심 교수가 부품(component)쪽이고, 제가 시스템쪽이라서 상호보완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연구실을 합치니까 2대이던 복사기를 1대로 줄이고, 팩스를 1대 들여놓는 식이다. 공간도 넓어지고 학생들의 연구환경도 그만큼 나아졌다. 말 그대로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학번도 같고, 성장배경도 비슷해 쉽게 의기투합했다는 두 교수에 대해 주위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6개월도 힘들 것이라던 Giga Lab이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별탈없이 3년째 순항해온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학문적 성취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년간 고속 고주파 시스템 설계 전념 그동안 외도 한번 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는 두 교수의 열정과 노력은 Giga Lab이 '국가지정연구실'(NRL)에 선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가지정연구실로서 Giga Lab이 수행하고 있는 과제는 '고속 MCM 시스템 설계 기술 개발'이다. 2004년까지 총 5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과제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집적한 MCM(Multi-Chip-Module) 시스템을 보다 고속화, 고성능화하는 설계 기술을 개발해 이를 시스템 레벨에서 통합·응용 설계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서는 성격도 파악하고, 양가의 부모님과도 만나야합니다. 종합적 환경이 충족되어야만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것처럼 MCM 시스템도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여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상호관계속에서 충돌은 없는지 등을 치밀하게 고려해서 설계해야합니다. 인텔(Intel)사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설계하는데만도 수백명의 연구원들이 투입되는 것도 바로 고성능 칩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성 때문이지요." "공대 발전 위해 우수 교수 확보 필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어 교수는 당시 대학의 연구시설과 환경도 요즘과 비교할 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었다고 회고한다. 실험실습 기자재는 물론 교재도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교육환경은 '눈을 비비고 쳐다봐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 발전이 곧 대학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 교수의 생각이다. 어 교수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 공학분야에서 최상위 수준을 자랑하던 우리 대학 공대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으며 획기적인 의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대교협 등 각종 학문평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안고 있는 '함정'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만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지금도 객관적으로 볼 때 KAIST, 포항공대, 서울대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고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과도 절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교수이기 이전에 동문 선배로서 어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대학원을 진학하려할 때 굳이 우리 대학에 남으라고 권유하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과연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더 많은 학문적 성취를 담보해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안식년 제도나 SCI급 논문게재 장려금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어 교수의 표정에서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대학의 경쟁력은 곧 교수의 경쟁력'이라고 믿고 있는 어 교수는 지금이라도 우리 대학이 우수한 교수를 더 많은 연봉을 줘서라도 데려와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간 바로 경쟁에서 도태되어 2류로 전락한다'는 전자산업의 불문율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미적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졸업시키는 현재의 공학교육은 또다른 의미에서 '문맹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며 씁쓸해하는 어 교수는 설혹 학점이 '짠' 자신의 수업이 폐강된다고 할지라도 원칙을 꺾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프로젝트 등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한 우물을 파 회로설계분야에서 학계와 업계 모두의 인정을 받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는 어 교수는 senior member 승격의 기쁨도 잠시 이제 member가 아닌 senior member로 기재될 논문을 쓰기 위해 늦은 밤까지 연구실을 밝혀야할지도 모른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어영선 교수 약력 및 경력 어영선 교수는 1983년 우리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85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93년 University of Florid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통신 R&D 센터(86-88), Applied Micro Circuits Corporation(93-94), LSI Logic R&D Center(94-95)에서 근무한바 있으며 95년부터 안산캠퍼스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IEEE 학회지 등 국외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국내 30여편의 논문이 있다.

2002-04 22

[교수]`공학, 이제 부분에서 전체로` 조효남 교수

통합패러다임 통해 '부분과 전체' 조화ㆍ통일 강조 과거 안주하는 대학 공학교육 혁신적 변화 필요 체르노빌 원전 가스유출, 챌린저호 공중폭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수많은 인명피해를 내며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대형 참사들이다. 인간이 원자력 발전소와 우주왕복선, 교량과 백화점을 만든 것은 모두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조효남(공학대·건설교통공학) 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 〈과학사상〉2002년 봄호에 게재된 '공학에서 부분과 전체 : 윌버의 통합패러다임에 따라'에서 이러한 사고들이 발생한데 대해 "현대의 공학기술이 20세기 산업사회의 무한경쟁속에 급격하게 발전했지만 기술발전에 비해 인간의 의식과 윤리가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공학인들이 '부분'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공학인들의 의식 변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조 교수를 만나 현대 공학기술과 공학인, 대학 공학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 개선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대 공학기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단순히 기술철학이나 기술윤리적인 측면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문제 해결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는데 저는 아직 공학인들이 뉴턴과 데카르트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원자론적, 기계론적, 환원론적 사고가 팽배합니다. "'부분'이 모이면 '전체'가 된다"는 식의 환원론은 20세기 신물리학에 의해 극복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공학인들은 도로를 하나 놓더라도 단순히 자신이 맡은 부분만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환경과 안전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마련이지요. 비행기 사고가 왜 자주 일어납니까? 각각의 항공기술은 발전했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빚어내는 안전문제 즉 안전공학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부분'과 '전체'가 통합되지 않는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의 공학기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윤리적인 측면과 함께 보다 근본적으로 '부분과 전체'의 조화와 통일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업주와 관료의 도덕성, 윤리·책임의식의 해이가 공학인, 기술자들에게도 파급되어 부조리와 부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시면서 기술주체와 국민의 의식 변용을 강조하셨는데 우리나라의 공학기술자들은 기술윤리나 도덕적 책임의식이 매우 희박하고, 환경·생태, 인명·인권, 사회문화적 파장을 고려할 수 있는 '전체'적 신기술의 노하우나 사회학, 철학, 윤리학, 문화예술에 대한 기본의식조차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분과 전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통합비전을 제시하는 사상가 켄 윌버는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인간 의식 발달의 역동적 나선도를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모두 9단계의 의식수준이 있는데 윌버는 현재 우리 인간의 90%가 인간적 유대를 통해 내면의 자기와 타인을 동등시하는 수준인 6단계 녹색 단계의 이하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공학인들의 실존의식은 이러한 녹색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3단계 적색 또는 5단계 오렌지색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러한 의식 수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과 제도의 보완 그리고 종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교육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정보화시대에 변화하는 환경속에서도 공학교육만은 일부 첨단 분야를 제외하고는 수십년전이나 지금이나 교과과정의 변화가 없다고 비판하셨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공학교육이 시대적 흐름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는 근본원인 중 하나는 대다수 교수들의 인식문제 때문입니다. 교수들이 자기의 전문분야 '밥그릇'에 집착하고, 자신에게 친숙한 고전적, 재래적인 공학기술만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분야인 신기술에 대해서는 교수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적 과목을 대폭 축소하고, 새로운 흐름에 맞는 신기술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변화해야합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들이 먼저 변해야합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현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공학교육을 모색해야합니다. 과거에 안주해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이러한 교수들의 변화는 학교 당국에서 제도적·물리적으로 유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현장의 실무 전문가들이 포함된 교과과정 혁신위원회를 구성, 엄격한 심사와 평가를 통해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들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이러한 대학 공학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교수님이 속한 학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시는지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올바른 인식없이는 '전체'적인 시스템의 계획과 설계·분석, 제작가설, 유지·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기술환경으로 변했는데도 아직도 학생들에게 인문사회분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우선 학생들에게 교양서적을 추천, 독후감을 써내게도 하고, 사회학·경영관리·철학 등을 필수과목화하는 것도 검토중입니다. 또한 학생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부 학생들만 이러한 흐름에 관심을 보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양강의식으로 진행해온 프로그램을 보다 구체적이고, 정례화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최근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조 교수는 "의식 부족 등 기술자 스스로 자초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술자를 경시하는 사회환경과 시스템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면서 "21세기는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하이테크 노하우를 가진 과학자, 공학기술인,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므로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 구조공학자.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은 조 교수가 말하는 철학(사상)과 기술의 만남, 부분과 전체의 조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4 15

[교수]`화학은 NT 비롯한 차세대 첨단기술의 기반`

화학물질 이용한 최첨단 정보소재 개발 "화학은 NT 비롯한 차세대 첨담기술의 기반" 화학과 김낙중 교수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 명 서있다. 커다란 실험용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액체와 가루들이 들어있는 비커와 시험관들이 가득히 놓여 있고, 연구원들의 손에는 깨알같은 크기로 각종 기호와 공식 그리고 숫자가 잔득 적혀있는 보고서가 들려져 있다. '화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위의 장면과 비슷하게 답할 것이다. 화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화학은 위의 실험실 모습처럼 막연한 이미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화학이란 학문에 대해 일반인들은 외워야 할 기호와 공식이 많아서 어렵고, 복잡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보산업의 기본인 유기광전자재료 연구 자연대 화학과의 김낙중 교수는 이러한 '전통적인' 개념의 화학과는 상당히 다른 '유기광전자재료'라는 '최첨단' 화학 분야를 연구하는 화학자이다. 새로운 개념의 분야인 만큼 김 교수의 실험실은 앞에서 설명한 모습의 '전통적인' 모습의 실험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김 교수의 실험실의 주인공은 비커와 시험관이 아닌, 정보처리 및 정보전송에 쓰이는 각종 소재와 이것의 처리 형태와 속도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실험기구들이다. 실험실의 모습만을 생각한다면 김 교수의 실험실은 화학보다는 물리학이나 전자공학 혹은 재료공학 쪽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유기광전자재료는 정보산업의 기본이 되는 정보소재들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하는 분야이다. 구체적으로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정보처리 양, 속도, 정확성 등이 뛰어난 소재들을 개발해 정보처리 방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분야이다. "일반적인 화학 분야들과는 상당히 다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론적립과 현상규명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낸다는 데 특징이 있는 분야가 유기광전자재료 분야입니다. 아시다시피 정보화 사회의 발전에 있어 핵심 중 하나는 얼마나 우수한 정보처리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유기광전자재료는 바로 이러한 정보처리 기술의 진보를 선도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20세기의 정보화는 반도체 물질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지만, 21세기의 정보화는 유기화학 물질을 중심으로 정보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자를 이용한 정보처리량과 정보처리 속도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유기화학, 구체적으로는 빛과 같은 것을 이용해서 정보처리량이나 정보처리 속도를 개선하려고 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 역시 과학기술부가 주관하고 있는 국책과제인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을 통해 이와 관련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래 첨단 과학기술의 기반이 될 '화학' 김 교수는 화학을 자연과학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화학은 모든 자연과학 및 공학의 기반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평소 지론이다.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학문이 바로 화학이며 화학을 이해하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학은 기초와 응용 둘 모두를 넘나들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만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확신감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현재의 과학기술 경향을 볼 때 김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차세대 첨단 과학기술 산업이 화학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NT(Nano Technology)의 경우도 그 기초는 화학에 있다. 또한 NT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첨단 기술이지만, IT, BT, ET 등과 같은 다른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 중 화학을 배제하고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화학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학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오래된 학문이고 워낙 넓은 영역을 갖춘 학문이다 보니 공부할 게 엄청나게 많죠. 하지만, 중심이 되는 학문의 위상에 걸맞게 매력도 있고, 자신이 개척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분야가 바로 화학입니다. 좋은 면을 봐야 합니다." "연구하는 것만큼 가르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2000년 3월 본교 교수로 임용되기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책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KIST에서 활동했다. KIST는 그 명성에 걸맞게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의 연구여건을 갖추고 있는 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따라서 최첨단 분야와 관련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김 교수에게 KIST만큼 이상적인 곳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김 교수가 KIST 생활을 포기하고 본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연구에서도 큰 기쁨과 보람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지만 제가 아는 것을 후학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학자에게는 자신의 지식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연구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의 차별화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교수마다 연구와 교육 중 중심분야를 선정해 하나에 보다 주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외국 대학의 교수들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 모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하는 경향이 많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김 교수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각 대학별 SCI 논문 게재수 같은 것을 토대로 연구력을 측정하고,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방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한 총 게재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각 세부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발표됐으며 인용됐는지를 알아보는 게 가장 바람직한 연구력 증진 방법이라고 덧붙혔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 김 교수가 화학, 더 나아가서는 과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 중 하나는 '좋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무슨 기술을 개발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과 연구 그 자체에서 흥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김 교수가 바라는 것 중 하나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환경이다. 그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우수 인력들이 기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바로 김 교수가 그리는 이상적인, 그러나 꼭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할 세상이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김낙중 교수는 누구? 김낙중 교수는 1973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3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KIS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2000년 3월부터 본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대한화학회 상임편집위원, 한국고분자학회 분자전자부문위원회 회장, 한일공동포럼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내 17편, 국외 5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