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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23

[학생][청춘열정] 김성준 학생, 청년정치의 자양분은 관심과 문제인식

청년정치의 자양분은 관심과 문제인식 김성준 학생(경영학과 2) 모든 발전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불편한지, 이상한지, 잘못됐는지를 파악하고 깨달은 다음에야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심각한 문제가 만연했다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김성준 학생은 세상을 배우고, 냉철한 안목을 키우는 방법으로 ‘신문’을 택했다. ▲김성준 학생(경영학과 2)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의 힘 지난 6월 한국일보와 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가 공동주최한 제8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대한민국 신문 논술대회’는 신문을 통해 읽기·쓰기 문화를 장려하고, 균형 있는 비판정신과 창의적 글쓰기를 겨루는 국내 유일의 신문논술대회다. 고등학생 이상의 청소년과 청년, 성인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대회 개최 이후 처음으로 온라인 공모 형태로 진행됐다. 이번 신문논술대회의 논제는 ‘청년층의 정치 참여 필요성과 확대 방법’. 지원자 400명이 각기 제출한 2000자 분량의 논설문을 놓고 얼마나 비판적 시각으로 자기 생각과 주장을 논술했는지를 겨뤘다. 그리고 선정된 수상자 18명에는 김성준 학생이 포함됐다. 생각하지 못한 우수상 입상이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자주 보는데 거기서 신문논술대회 정보를 알게 됐어요. 마침 글쓰기 교양 과목을 수강 중이라 도전해봤죠. 그냥 한번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한 거라 정말 입상할 줄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기쁩니다.”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인 만큼, 예의상, ‘평소 신문은 자주 읽느냐?’고 물었다. 그 역시 유튜브로 세상 만물을 깨우치는 ‘요즘 아이들’ 중 하나이니 별 기대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뜻 밖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경제신문을 구독하고 있으며 다양하게 읽으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신문 구독은 올해 1~2월부터 한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용감하게 주식에 투자했다가 빠르게 돈을 잃고 난 뒤였어요. 제가 실의에 빠져 있으니, 지인이 주식이나 경제를 파악하는 데 신문만 한 것이 없다고 조언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꾸준히 신문을 정독해오고 있습니다.” 종이 신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이견을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마다 신문을 구독하는 게 당연하던 때가 있었지만, 요즘은 종이 신문을 찾는 이가 많지 않다. 비용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힘들게 커다란 신문을 뒤적이는 대신 스마트폰에서 손끝 하나로 기사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준 학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가지는 강점은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혜안의 기본은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정확한 내용으로 파악하는 것. 김성준 학생은 신문이야말로 혜안을 키우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면, 댓글이 많이 달렸거나 조회 수가 높은 기사 위주로 보게 됩니다. 대부분 알맹이 없는 자극적인 기사에 치중돼 있죠. 하지만 종이 신문이나 신문사 사이트의 기사는 공인된 언론전문가가 내용의 중요도 순으로 정보를 구성하고, 정보습득이 용이한 형태로 편집한 알맹이들이에요.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천 리 길은 한 걸음부터, 청년정치는 관심부터 현재 20-30대는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를 기준으로 봤을 때 이들을 직접 대변할 수 있는 청년 국회의원은 단 1%에 불과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이란 기준도 40대 이하로 넓은 범위이다. “신문논술대회에서 ‘1%의 청년정치’로 우수상을 받았어요. 20대 국회의원 중 청년의 비율인 1%를 제목에 넣었죠. 청년정치가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청년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는 논지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청년정치인 왜 없는지, 어떻게하면 늘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요.” 김성준 학생은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으려 노력했다. 정치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국회의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등 지방의회의원도 정치인이다. 그는 어떤 이슈로 갑자기 영입되는 형태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차근히 정치경력을 쌓는 흐름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정당과 지방자치단체가 연계·협력하고 청년위원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단순히 나이 어린 의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력 많고 일 잘하는 젊은 의원’을 늘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제대로 된 청년정치를 실현하려면 청년의 입장과 생각을 대변하는 20-30대 청년들이 당당히 국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관심유발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모르는 것일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탓이다. 김성준 학생 역시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문제인식을 가질 때 청년정치의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라 말했다. “어렸을 때도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JTBC 시사/교양 프로인 ‘썰전(戰)’을 첫 편부터 쭉 챙겨 보기도 했죠. 고등학교 1~2학년때는 장래희망이 정치인이었어요. 현실적으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루트가 없어 마음을 접었지만요. 청년들의 관심을 북돋고 성장시키는 시스템적인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 보러가기

2020-09 23

[동문][도전 #해시태그] 나의 열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

나의 열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2005년 국내 V리그 원년부터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 우리카드를 거치며 프로배구 베테랑 센터로 코트를 누벼온 윤봉우 선수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까닭이다. 지난 6월,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우리카드와의 계약 불발로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사실상 은퇴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는 극적으로 일본 프로리그 진출을 확정했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국내 V리그 남자선수 최초 일본 진출 V리그 통산 449경기 출전, 2645득점, 907개 블로킹 성공.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기록들은 윤봉우 선수가 걸어온 시간을 말해준다. 그는 지난 시즌 우리카드의 주장으로서 팀을 사상 첫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마운틴 블로커’로 불리며 베스트 7에도 선정된 노련한 센터로 블로킹 개수 역대 랭킹 2위에 올라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여러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82년생으로 불혹(不惑)의 마흔을 1년 앞둔 나이. 현재 그는 현대캐피탈의 리베로 여오현 선수(42세)에 이어 2번째로 나이 많은 현역이자 센터 포지션 최고령 선수다. 수많은 기록과 함께해온 배구 인생이었다. 하지만 윤봉우 선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타이틀을 추가했다. V프리미어리그 ‘나고야 울프독스’와 계약하며 국내 V리그 남자선수 중 일본에 진출한 첫 케이스가 된 것이다. 국내 리그 전체로 봐도 일본 ‘JT 마블러스’에서 활약한 김연경 선수에 이어 두 번째다. “새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이 안 돼 임의탈퇴 선수가 됐어요. 다른 팀으로의 이적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요. 정말 은퇴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예상치 못하게 일본 리그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우리카드에서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을 이루고픈 그의 마음과 구단의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은퇴’라는 단어가 전과 다른 깊이로 다가왔다. 담담히 받아들이려 해도 떠밀리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배구를 향한 그의 열정을 응원이라도 하듯 벼랑 끝에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늘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던 그에게는 해외 경험까지 더해 두 단계 더 성장할 기회였다. “입단 논의가 오갈 때부터 유튜브를 통해 일본 리그 경기를 쉴 새 없이 찾아봤습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지만, 우리나라 배구와 많은 부분이 달라요. 그래도 한 번 해보자 싶었죠. 아직 선수로서 배우고 이루고 싶은 게 많으니까요.” ‘나고야 울프독스’와 1년 계약을 맺은 윤봉우 선수는 오는 10월부터 내년 5월까지, 일본에서 2020-21시즌을 보낼 예정이다.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화상 미팅을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부상과 몸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에 “이 나이에 아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배구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프다”고 답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는 화면을 넘어 전해졌다. ▲배구선수 윤봉우 동문(체육학과 00)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 그리고 나의 배구 윤봉우 선수가 배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전국은 그야말로 농구 열풍이었고 어린 그 역시 친구들과 농구를 하며 놀았다. 중학교 때 이미 186cm 큰 키에 점프를 잘하는 그를 체육교사가 눈여겨봤고 그렇게 우연히, 하지만 운명처럼 배구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배구를 하기 위해 고향인 여수에서 목포로 유학길에 올라야 했어요. 처음엔 한 달만 하고 딱 그만둘 생각이었죠. 하지만 배구가 좋아졌습니다. 6명의 선수가 코트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멋졌어요. 한양대에 와서는 배구가 더 재밌어졌고요. 추억이 참 많아요.” 그렇게 배구를 시작한 지 어느새 26년, 프로선수로 뛴 지도 19년이 됐다. 그는 오랜 기간 코트에서 뛰었지만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고 귀띔했다. 배구는 그의 인생이나 다름없다. 배구는 선수의 신장에서 나오는 높이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시선과 순발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수 싸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각 구단에서 시스템을 마련하고 분석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다. 윤봉우 선수는 배구를 더 잘하고 싶어 15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분석 시스템을 구입해 활용해왔다. ‘내가 잘하려면 상대편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더불어 나이와 상관없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영양제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체중과 수면 관리, 훈련이나 경기 후 체력 회복에 힘을 쏟았다. 지금까지 그가 이뤄낸 성과는 그렇게 밤낮없이 부지런히 분석하고, 훈련하고, 자기관리에 매진한 결과다. 누구나 때가 되면 나이가 들고 노쇠해진다. ‘예전 같지 않다’는 유행어를 달고 살게 될 때쯤이면 대부분 낯선 설렘보다 익숙한 평온함에 안주하고자 한다. 하지만 도전도 열정도 결코 젊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국내 최고령 현역 센터 윤봉우 선수의 행보가 증명하듯 말이다. 또 다른 기록으로 채워질 내일, 그렇게 새로운 도전과 배움으로 더 깊고 넓어질 윤봉우 선수의 배구를 응원한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 보러가기

2020-09 22

[교수][NOW 꿈꾸는 사람들] 권성준 교수, 한양의 이름으로 그리는 더 멋진 세상

한양의 이름으로 그리는 더 멋진 세상 권성준 교수(의학과) 누구에게나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른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을 걸어 나아간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만드는 인생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대한위암학회장, 한양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한 위암 분야의 대표 명의 권성준 교수. 이번 8월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맞는 그는 남다른 행보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리는 중이다. ▲권성준 교수(의학과) 수술 3000건에 빛나는 위암 수술 권위자 위암은 국내 발병 1위의 암이다. 그만큼 위암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많다는 의미다. 권성준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 위암 치료 분야를 이끌어온 명의다. 위암 수술의 권위자로서 지난 30여 년간 한양대학교병원에서 3000건이 넘는 위암 수술을 집도한 바 있다. “국민학교 때는 블록 장난감에 빠져 건축설계사가 되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는 법관이 돼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고요. 고등학교에 가서야 문득 사람을 살리고 봉사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가장 많은 환자가 고생하는 분야를 전공하고자 했고, 그래서 위암 분야를 선택했죠. 위암 수술 집도 3000건 달성은 제가 이룬 것이 아니라 그저 긴 세월이 쌓아준 수치입니다.”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없는 기록을 겸손하게 말하는 권성준 교수.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경험과 함께했던 환자들이라고 덧붙였다. 3000건이 넘는 수술을 집도하며 우여곡절 또한 많았다. 호전되는 환자에 보람을 느꼈고, 예기치 못한 합병증으로 떠나는 환자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감사하다며 칭송을 받았고, 돌팔이라며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한번 수술에 들어가면 3시간은 기본이고 위중할 때는 7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수술 장비가 발전하지 못한 과거에는 그 2배가 걸렸고요. 고도로 집중하기 때문에 수술 후 1시간까지도 긴장이 유지됩니다. 그러다 나중에서야 녹다운되죠." 한양대학교병원은 전국에서도 유난히 위암 초기 환자보다 3, 4기 중증 환자가 많은 병원으로 꼽힌다.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이 많을 수밖에 없다. 권성준 교수는 묵묵히 그 힘든 수술장을 누벼온 백전노장이다. 수술뿐 아니라 관련 연구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괄목할만한 연구성과를 발표해왔다. 덕분에 권성준 교수는 ‘한국로슈종양학술상’과 ‘존슨앤존스 최다논문게재상’, ‘사노피 아벤티스 우수논문 발표상’을 비롯해 수많은 수상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위암 치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암관리 유공자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권성준 교수(의학과) 봉사의 삶을 꿈꾸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외과의사의 길.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대한위암학회장, 한양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번 8월 말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맞았다. 시원섭섭하냐는 물음에 권성준 교수는 ‘섭섭시원하다’며 웃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반까지 출근하고 7시부터 회진을 돌았습니다. 30년간 반복해온 일상이죠. 늘 병원에 소속돼 규칙적인 삶을 살다가 이제 불규칙적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니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일반적으로 정년퇴임은 편안한 노후의 시작이거나 경력의 마침표다. 하지만 그에게 정년퇴임은 또 다른 도전의 걸음이다. 권성준 교수는 오래전부터 제2의 삶을 계획해왔다. 위암 분야의 손꼽히는 권위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큰 이익과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솔깃한 제안을 모두 뿌리친 것은 뜻한 바가 있어서였다. 그는 내년 1월 1일 자로 강원도 양양군의 보건소장이 된다. 양양보건소 역사상 제1호 의사 소장님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오래 고민했습니다. 답은 의료봉사였어요. 그래서 퇴임 이후에 상대적으로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곳에서 사람들을 돕자고 결심했죠. 양양군에 거주하는 지인을 통해 지역의 열악한 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양양보건소에는 현재 의사가 단 1명도 없어요. 보건지소의 공중보건의들만이 환자를 돌보고 있지요.” 양양군은 전체 인구 2만 8천여 명의 평균연령이 50세가 넘는 고령화 지역이다. 연령대가 높다 보니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의 대사성질환과 치매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열악한 인프라로 대형병원은 물론이고 의료진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앞으로 외과의사로서 수술은 더 못하겠지만, 제 역량을 다른 방향으로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건소는 ‘치료’가 아닌 ‘예방’을 큰 화두로 삼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이 뒷받침 돼야죠. 병원장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80명 양양보건소 직원들과 잘 협동해야겠지요.” 방문보건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에 맞춤교육을 실시해 더욱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이끌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양질의 건강 강좌를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사람 권성준 교수. 그는 벌써부터 설악산과 남대천 수변공원이 아름다운 곳이라며 양양군 자랑에 나섰다. ▲권성준 교수(의학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길 권성준 교수는 1988년 8월에 처음 발령을 받아 지난 32년 동안 한양대학교병원에서 근무했다. 한양대 73학번 동문이기도 하니, 학창 시절까지 치자면 무려 50년 가까이 한양대에서 머문 셈이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련된 마지막 강의에서 그는 스승이자 동료, 동문 선배로서 담담히 자신의 삶과 깨달음을 공유했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7시 일정한 시간에 회진을 돌고, 아무리 힘들어도 수술 후 꼭 환자의 얼굴을 보고 퇴근을 했어요. 병실에서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환자와 눈높이를 맞춘채 이야기를 나눴고요. 늘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신뢰를 구축하려 노력해왔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믿고 신뢰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치료가 잘 될 수 있으니까요.” 편하게 모든 것을 누리며 큰 꿈까지 이룰 수는 없다. 권성준 교수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자기희생이 전제돼야 한다고 귀띔했다. 사랑의 실천에도 마음의 준비와 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자신만의 탈출구를 만들어 리프레시 하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자신이 이미 가진 것에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학교나 직장에 소속돼 있을 때는 모르다가 떠난 뒤에야 그 고마움을 알게 되는 거죠. 자신의 위치에서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정들고 익숙한 수술실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며 기대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듭니다. 의사이자 학자로서 한양대에서 배운 지식과 받은 사랑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똑똑한 이는 독선적이기 쉽고, 성공한 이는 자만하기 쉬우며, 권력을 쥔 이는 거만하기 쉽다. 하지만 권성준 교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끗하게 빗겨 간 사람이다. ‘산을 좋아하는 외과의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실제로 산을 닮았다.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모든 것을 품는 푸근함을 지녔다. 한양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만들어갈 인생 2막. 올곧은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갈 그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 보러가기

2020-07 28

[동문][ERICA's Power] 제34대 ERICA 총학생회장 전용기,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다

ERICA 총학생회장 전용기,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다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21대 국회에 입성한초선의원은 151명이다. ‘일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큰 만큼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 특히 2030 국회의원에게는 기성정치와는 다른 변화를 주문한다. 전용기 의원은 이번에 당선된 20대 국회의원 두 명중 한 명이다. ERICA 총학생회장에서 21대 국회의원으로 거듭난 그에게 새로운 정치, 청년 정치에 관해 물었다.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청년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20대 젊은 의원 21대 국회에 당당하게 입성한 전용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생인그는 더불어민주당 역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최연소 남성 국회의원이다. "당선이 확정됐을 때 실감이 안났습니다. 막상 국회에 들어간다고 생각히니 책임감이 너무나 크고 무겁게 다가왔어요.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으로 3~ 4년간 일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는데, 선배들이 지난 10여 년간 2030 국회의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당선은 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혹독한 비례대표 경선을 뚫고 6번을 받으며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기적이다, 정당 활동 4년 차의 젊은이에게 누가 표를 준것이냐며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들은 다름 아닌 전국의 청년 당원들이었다. 80만 선거인단의 1자 경선과 중앙위원 투표에 의한 2차 경선 동안 청년 당원들은 그의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힘이었다. 그 결과, 국회의원후 보를 비롯해 시장, 도지사 등 단체장으로 구성된 중앙위원 투표에서 당당하게 3등을차지했다. 청년 당원들의 바람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한 중앙위원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았냐며 무척 놀라셨습니다. 시실 그분도 저를 선택하셨지만, 100% 사표로 생각히셨다고 합니다. 저를 찍어달라는 청넌들의 전화를 여러 번 받으셨다고 해요. 제가 정치 경력이 짧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히는 젊은이인지 잘 모르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청넌 당원들의 전화가 계속해서 오더래요. 분명 이유가 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선택하셨지만, 그런 결괴를 예상하지는 못한 거지요." 선거 도중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순번도 16번으로 밀리는 위기를 겪었지만, 많은 국민의 선택으로 결국 21대 국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그의 당선은 2030 국회의원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꾸준히 공을 들인 선배들의 노력, 그리고 자신들과 공감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만들고자하는 청년들의 엽원이 모인 결과물인 셈이다. ▲전용기의원은ERICA 총학생회장으로서 학과 통폐합문제로 반대 여론이 거셌던 '프라임사업 21'의 성공적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더 넓은세상! 한양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생활스포츠학부 10학번인전용기 동문은 학창 시절,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바른 생활 청년'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볼링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체육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했다. 한양대를 선택한 이유는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스스로와 했던 약속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은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무리 전날 술을 많이 마셔도 출석은 꼭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성실하게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높은 학점을 받았고, 차석으로 졸업할 수 었었다. 학생회 활동은 전역 후 시작했다. 처음부터 학생회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배의 제안에 공부 핑계를 대며 일주일 동안 도망다녔다. 하지만 공부와 병행할 수 있다는 말에 더는 핑곘거리를 찾을 수 없어 동참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성격이 급해서 일처리가안되면 못 견디는 타입이라 워커홀릭처럼 일했다. 임원으로 시작한 활동이 어느새 체육과부회장, 예체능대학 학생희장, ERICA 총학생회장까지 이어졌다. ▲'프라임 사업21' 학생총회 모습 2016년 제34대 ERICA총학생회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프라임 사업과 축제 문화의 개혁이다. 당시 프라임 사업은 학과 통폐합의 문제로 반대 여론이 거셌다. 그런 만큼 학생들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학생총회를 통해 1,300 명의 학생이 직접 투표했고, 찬성률 7,8.7%라는 결과를 얻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최고 의결기구를 만들어 대의민주주의를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ERICA는 유일하게 성공적인 합의를 끌어낸 대학으로. 구성원과의 합의 부문에서 만점을 받고 심사를 통과했다. 30년동안 민주광장에서 개최하던 축제를 대운동장으로 변경한 것도 파격적인 행보였다. "민주광장의 규모가 작다 보니 안전사고의 문제가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제 장소를 대운동장으로 변경했습니다. 여러 반대에 부딪혔지만 하나하나 설득해나갔습니다." 축제 첫날 폭우가 내려 임원들과 함께 삽을 들고 대운동장 바딕에 물길을 파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부터 축제 때 비가 오면 수로를 파는 것이 전통이 됐다. "제게한양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입니다. 대학에 와서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됐습니다. 각계각층의 친구들과 함께 많은 것을 만들어나갔고,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습니다. 아마 그때 학생회 활동을하지 않고사 회에 대한 목소리를내지 않았다면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전용기(생할스포츠학부 10)동문 세대 대표성 띤 청년 정치인의 활약 기대 전용기 의원은 2017년 졸업 후 대학원(경영컨설팅학과 17)에 진학했고,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청넌위원회 미래세대공동본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첫빌을 내디뎠다. 이어 청년정책위원회 연구위원, 전국대학생위원희 부위원장을 거쳐 위원장으로 훨동했다.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그는 청년 정치, 새로운 정치를 말한다. 이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길지 않은 그의 정치 경력을 보고 경험 부족을 우려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다르면 생각도 다르기 마련이다. "기성세대의 시각만으로 청년 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제를 풀 때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크게 보면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세대 대표성을 띤 청넌년정치인으로서 저희 세대가 직면해 있는 어려운 상황들을 풀어보고싶습니다." 그는 정치를 '생할'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누군가를 대변히는 생활이 바로 정치라는것이다. "정치에 내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를 통해 토론과 설득히는 방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그렇게 시각을 바꾸면 북유럽처럼 건강한 생활정치가 정착할 수 있을 거예요." 새내기 국회의원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직은 모든 것이 조심스럽지만, 때로는 과김하고 개혁적으로 의정 활동을 펼처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전용기 의원. 그가 바라는 대로 "젊은 친구 시키니까 일 잘한다"는 말올들으며 약자를 대변하는 청년 정치인으로, 또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한껏 성장하길 기대한다. 글 오인숙 사진 하지권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전용기' 자세히 알아보기

2020-07 27

[교수][ERICA's Power] 학생에서 교수로! 모교로 온 교통전문가, 교통·물류공학과 이건우 교수

학생에서 교수로! 모교로 온 교통전문가 교통·물류공학과 이건우 교수(교통공학과 96) 올해 초 공학대학 교통·물류공학과교수로 부임한 이건우 교수가 모교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재학 시절, 동아리와 학생회 활동을 하며 열심히 누렸던 캠퍼스를 이제는 교수가 되어 다시 찾은 것이다. 모교라는 공감대로 학생들과 소통을 이어가며 교육과 연구에 충실하겠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본다. ▲교통·물류공학과 이건우 교수(교통공학과 96)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과의 만남 기대 지난 3월 부임한 이건우 교수는 ERICA 교통공학과 96학번 동문이다. 졸업 후 미국 MIT와 갤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서 5년간 해운·항만 및 국제물류 분야 연구를 담당했다. 지난 2017년 중앙대학교 국제물류학과 교수로 강단에 셨고, 올해 ERICA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로 다시 모교의 캠퍼스를 밟았다. "국제물류학과는 경영경제대학 소속으로 경영학 기반의 학문입니다. 제 학문적 배경이 공학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공부한 것을 100%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마침 모교인한양대의 제안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모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첫해인만큼 각오도 남다르다. 모교라는 편안함도 였지만.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욱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강으로 아직까지 학생들과 대면 수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온라인이기는 하지만, 첫 수업을 진행했을 때는 편안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밀려오기도 했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따리올수 있을지 가늠이 안됐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이라 막연하기도 했고요. 가장 아쉬운 건 학생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직접만나서 소통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피드백을 받고 다시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이메일이나 전화로는 학생들의 생각을 듣는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온라인 강의로 인한 수업 준비도 만만찮다. 자료를 준비해서 강의를 녹음하고 편집해서 울리기까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가끔은 마이크가 잘못돼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이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차 적응해가고 있다. ▲이건우 교수는 '지속가능교통물류연구실'을 통해 교통환경과 녹색물류 분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교통환경과 녹색물류 연구에 집중 한양대 교통공학괴는 1988년 국내 최초로 개설됐다. 그만큼 동문들의 긍지와 자부심은 대단하다. 지난 2012년 물류 기능을 강조하며 현재의 교통·물류공학과로 개편됐다. 이건우 교수가 강의하는 과목은 물류 분야다. 교통과 마찬가지로 물류도 다학제적 성격이 크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관점이 조금 달라지는데 인문에서는 무역학을 기반으로 물류가 확장되고, 공학에서는 산업공학과 교통공학에서 확장된다. 이교수는 현재 학부에서 '교통물류경제', 대학원에서 '지속가능 교통 및 녹색물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2학기부터는 '물류운영공학', '물류체계설계', '물류특론' 강의가 추가될 예정이다. 그가 운영 중인 '지속가능 교통물류연구실'에서는 주로 교통환경과 녹색물류 분야의 연구를 진행한다. 승용차, 트럭, 선박 등 이동수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배출량 추정 연구, 대기 확산분석 연구, 대기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공공보건 연구와 함께 교통운영관리기법, 교통물류 친환경 정책에 따른 사회적 편익과 파급효과 등을 연구한다. 또한,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운송수단과 자율주행차 등 교통 및 물류 부문 내 신기술도입에 맞춰 영향분석연구도 수행 중이다. 이 교수의 말을 빌리면 "국민들은 좋아하고 정부와 담당자, 기업은 그다지 선호하지않는 연구"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 저감 등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어 이 분야에 관한 관심과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교수가 그간의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로 꼽는 것은 미국교통학회(TRB)의 5대 학술상 중 교통계획 및 환경 분야에 수여되는‘파이크 존슨 상(Pyke-Johnson Award)' 수상이다. 지난 2010넌 박시과정이 끝나갈 무렵자신의 첫 SCI 논문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박사과정을 지도해주신 스더브리치(Stephen G. Ritchie) 교수님과 학과교수님들의 탁월한 연구지도. 과제에 침여한박사과정 동료들의노력이 함께 이룬 결실”이라고 밝혔다. 피이크 존슨 상온‘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교통 분야에서는 가장오래되고권위 였는학술상이다. 당시 공부하던학괴에서도 30여 년 만의수상으로 큰 화제가됐다. ▲올해 ERICA에서 새로운 첫발을 내디딘 이건우 교수는 학과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남다른 각오를 다졌다. 기술과 인성 갖춘 올바른 전문가 양성 24년 전 그가 입학했을 때와 비교하면 ERICA 캠퍼스의변회는 실로 엄청나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완전히 바뀌었다. 이 교수는 "캠퍼스 조경도 잘 되어있고. 새로운 건물도 많이 생겼다”며 "학교의 엄청난 발전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며 놀라워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을 되돌이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길카페'를 꼽았다. 모교 교수로 간다는 소식에 동기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추억이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학교 주변이 개발되기 전이라 정문 앞 보도블록에 중간중간 움푹 파인 곳이 많았어요. 거기에 나무를 모아서 불을 때고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그 앞에서 동기, 선배들과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토론을 했죠." 그가 겪고, 옆에서 지켜본 한양인의 장점은 성실함이다.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피하지 않고 헤쳐나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세계 각지,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수많은 동문이횔약하고 있다. 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그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인성이다. 이 교수는 "좋은 인성을 갖춘 올바른 전문가를 키우고 싶다"며 "인품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디에서도 자기 역할을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학생들이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이메일을 작성하는 법과 같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에티켓과 매너를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간혹 문자 메시지 보내듯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두 줄짜리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몰라서 그런 것일 텐데 사회에서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예전에는 수업시간에 이메일 에티켓을 예제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힉생들의 이메일이 달라지더군요. 이렇게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틈나는 대로 알려주려고 합니다." 진로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눌생각이다. 그 역시 학창 시절 교수님들의 말씀이 진로 결정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키웠으면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 꿈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신임 교수로서 앞으로 교육과 연구에 더욱 총실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이건우 교수. 틈틈이 교통과 물류분야에서 전문가 자문이나 의견이 필요할 때 사희에 기여할 기회도 만들 생각이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며 그의 모교에서의 새로운출발을 웅원한다. 글 오인숙 사진 하지권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자세히 알아보기

2020-07 23

[교수][ERICA's Innovation] 바다가 키운 꿈, 미국음향학회 석학회원으로!

바다가 키운 꿈, 미국음향학회 석학회원으로! 해양융합공학과 최지웅 교수 해양융합공학과 최지웅교수가 미국음향학회의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권위 있는 국제학회의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연구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에서 자라난 최 교수는 수중음향학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근간 기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양융합공학과 최지웅 교수 연구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 지난 5월, 최지웅 교수는 미국음향학회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 받았다. 바로 미국음향학회 회원의 최고등급인 석학회원으로 선정된 것. 미국음향학회는 최 교수가 몸담은 수중음향학을 비롯해 건축음향학, 의학음향학, 구조(진동)음향학, 음성인식 등을 총망라하는 대형학회다. 음향학을 선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7,500여 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음향학회 석학회원은 1929년 학회 설립 이래 지난 90년간 550여 명밖에 누리지 못한 영예다. 한국에서는 최 교수가 5번째 선정이다. "그동안 음향학의 발전을 위해 애써운 결과를 인정받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석학이라는 무게가 무겁기도 하고요. 앞으로 석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양질의 논문을 쓰려면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도 막중하다고 말하는 최지웅 교수. 사실 석학회원이 되려면 개인 업적, 기술성취 실적 등 자격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석학이라는 지위는 단순히 연구 실적이나 논문 발표 수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학자의 면면을 갖춰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명예다. 최 교수의 경우 음향학 발전을 위한 국제적 활동과 사회 기여도 등을 두루 인정받아 석학회원으로 선정됐다. 최지웅 교수는 2011년 태평양지역 수중음향학술대회를 국내에 유치해 제주도에서 개최한 바 있으며, 서태평양지역 음향학회의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리고 방위사업청 방산기술보호 자문위원, 해양수산부 해양이용영향검토 자문위원, 해군발전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교육, 강연과 같은 재능기부 활동도 활발히 펼치는 중이다. 연구활동도 사회적 기여도를 중시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최 교수의 해양음향공학연구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의 첫 문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구실 홈페이지 맨 앞에 '국가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목표로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국가 재정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허투루 국민 혈세를 낭비하면 안 되죠.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늘 우리의 연구비는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산업체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양음향공학연구실 연구팀은 1년에 2달 이상 바다 위에 머물며 실험을 진행한다. 음파, 미지의 영역 해저를 탐새하다 최지웅 교수의 연구 분야인 수중음향학은 수중에서 음파를 이용해 해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예를들어 국방 분야에서는 수중무기 유도, 원격탐지 및 식별 수중통신, 산업 분야에서는 해양환경 모니터링, 해저지형탐사, 해양생물 모니터링, 수중 소음 조사등에 활용될 수 있다. “21세기에도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히는 유일한 두 곳이 있는데 바로 우주와 바닷속이죠. 앞으로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우주와 바다를 연구해야 합니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바닷속 해양자원을 잘 횔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주나 해저 모두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우주나 육상에서는 전파를 이용하여 물체를 탐지하고 정보를 송수신한다면, 바닷속은 음파를이용한다. 수중음항학은 물속에서 소리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산란. 반사. 속도 등 음파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것으로, 그러한 특성을이용해 국방이나 각종 산업 분야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제시한다. 대학 연구실로서는 최고 수준의 대형 수조실험실을 보유한 최 교수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방과학연구소 지원으로, ‘수중네트워크를 위한 수중 센서 최적 배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사실 수중음향학은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의 유보트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발전했다. 본 연구는 군에서 해역을 감시하기 위해 서로 연동되는 다수의 센서를 바닷속에 배치할 때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인가를 연구하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사물인터넷을 바닷속에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중 하나인 풍력이 입지 및 소음 문제로 육상게서 해상풍력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해상풍력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중소음 역시 해양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소음이 어느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고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히는 중이다. ▲해양음향공학연구실 연구팀의 실험 진행 모습 ▲최지웅 교수가 이끄는 해양음향공학연구실에서는 대형수조가 갖춰져 있어 실제와 비슷한 환경에서 수중음향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바다처럼 무한한 수중음향학의 영역 진해에서 나고 자란 최지웅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워왔다. 어린 시절 한때 해군장교를 꿈꾸기도 했지만, 한양대학교 해양학괴를 선택해 수중음향학을 공부하면서 여전히 바다리는 넓은 품에서 꿈을 키우는중이다. 실제 최 교수의 해양음향공학연구실 연구팀은 1년에 2달 이상을 바다에서 지낸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한 달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대서양 한가운데 떠 있는 연구선에서 실험만 하며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바다를 사랑한다고 해도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속에서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지켜보려면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해야합니다. 배만 타도 멀미를 하는데 컴퓨터 모니터까지 바라봐야 하니 속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죠. 그리고 장기간 배 위에서 지낸 뒤 육지에 내리면 이번엔 땅이 흔들거려 육지 멀미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멀미로 고생하면서도 바다에 나가 실험하는 재미를 포기할수 없다는 최 교수. 기끔은 돌고래 떼들의 응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비, 바람 등변수가 많은 해양 연구는 목표한 연구의 50%만 수행해도 대성공이라 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교수는 수중음향학의 전도유망한 미래를 자신있게 확신했다.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해양 연구는 장비나 센서들끼리 연동해서 작동하는 수중 사물인터넷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수중음향학은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죠. 그 밖의 해양안보, 해양자원 연구에서도 수중음향학이 기초입니다. 수중음향학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근간 기술이 될 것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석학의 반열에 오른 최 교수는 연구에 대한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물인터넷과의 융합처럼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수중음향학의 영역을 확장시킬지 누가 알겠는가. 수중음향학의 발전은 무궁무진하기에 감히 최종 연구 목표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하는 최 교수. 대해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기 때문일까. 최지웅 교수의 꿈은 무한대로 확장되는 중이다. ▲미국음향학회 석학회원 최지웅교수가선정된 ‘미국음향학회' 석학회원이란? 전 세계 7,50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미국음향학회’는 음향학을 선도하는 가장 권위 있는 학회다. 회원 중 최고등급인 석학회원의 자리에는 지난 90여 년간 전 세계에서 550여 명밖에 오르지 못했다. 바꿔 말해, 석학회원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임을 상징하는 영예다. 글 박영임 사진 하지권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자세히 알아보기

2020-07 21

[교수][ERICA's InnovatIon]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에서, 광고홍보학과 이병관 교수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에서, 광고홍보학과 이병관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는 유례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정확한 대국민 소통이 중요하다. 국내 헬스 커뮤니케이션 1세대 연구자라 할 수있는 이병관 교수는 감염병 위기 상황 시 국민들과의 빠르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힘듦을 경고했다. ▲광고홍보학과 이병관 교수 코로나19 발생,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의 일관된 솔직함,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석, 그리고 침착함이 한국 국민에게 강력한 진정제가 되였다며 본부장의 활약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이병관 교수는헬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또 다른 관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역학이나 의학 전공자는 질병의 위협성을 과학적, 객관적으로만 전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나와 가족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주관적인 관점에서 관심을 갖죠. 이전 감염병 사태와 달리 이번에는 이러한 국민 정서를 잘 이해한 상태에서 국민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점을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브리핑을 한 방역당국의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을 높이 평가했다.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공중은 위협한 거짓 정보, 즉 가짜뉴스에 편향되기 쉽다. 이를 ‘네거티브 도미넌스 모델(NegativeDominance Model)'이라고한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정부는 두 가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방역에 힘쓰는 한편, 국민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실제 위협보다 더 심각하게 여겨 불안에 떨거나. 반대로 위험한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위험성보다 더 크게 인식해 사회적 패닉이 야기됐던 사례로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를 들었다. 김염병 발생 시 과도한 공포와 불안을 유포하는 가짜뉴스는 퇴치해야 할 또 다른 바이러스가 되는 셈이다. ▲이병관 교수는 진성한 사회과학도를 키우기 위해 학생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내헬스 커뮤니케이션 논의의 장 주도 이병관 교수의 연구 분야는 헬스 커뮤니케이션. 우리 사회 전반의 건강을 항상시키기 위한 커뮤니게이션 전략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즉,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도모하기 위해 ‘정보를제공하고‘, '영향력을행사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때로는 ‘태도나 행동을 비꾸고’, 더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건강과 관련해 ‘역량을 강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분야이다. 예를 들면 에이즈(AIDS)·비만 등 질병관리와 예방, 음주운전·데이트 폭력 등상해와 폭력 예방, 식품안전·재해 등 건강 관련 위기에 대한 대처와 반응, 홉연·폭음 동공중보건과 같이 개인이나 사회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주제들이 많다. 그 밖에 정책, 의료 및 제약산업도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연구주제예 속한다. 이렇게 연구분야는 다양하지만 모두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0년간 신종플루, 메르스 같은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였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국내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병관 교수도 미국 유학 시절 헬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는데 생소한 분야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교수와 아프리카의 에이즈 및 가족계획 캠페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는 당시 지도교수에게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를 정도라고. ▲'헬스 커뮤니케이션'이란?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매력은 연구 대상과 목표가 추상적이지 않다는점. 즉 실재적이고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건강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소박한 자부심도 느끼고요.” 귀국 후 몇몇 뜻이 맞는 연구지들과 헬스커뮤니케이션연구회를 창단한 이교수는 2009년 정식 학회로 발전한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희의 초대회장을 맡았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결핵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예이즈 예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기도했다. 특히 이병관교수의 관심 분야는 다양한 질병 관련 캠페인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 캠페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평가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금연 다음으로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결핵 캠페인의 효과를 보다 정확하게 평가할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캠페인의 효과를 평가하려면 캠페인에 노출되기 전과 후의 태도 및 행동 변화를 측정해야하는데 통제되지 않은 일상 환경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확하게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론적 한계를 통계적 알고리즘을통해 극복히여 보다 엄밀한 효과 평가를 수행해야 합니다. 최근에 수행된 연구들은 이러한 관심을 반영한것이죠.” 이와관련하여 지난해 이 교수는 국내 결핵 캠페인의 효과 평가를 의학저널 중 하나인 ‘국제 결핵 및 폐질환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Tuberculosis and Lung Diseases)’에 발표했다. 현재는 베이지안 구조 시계열 모델(Bayesian structural time series mode) 알고리즘을 활용해 지난 5년간 금연 캠페인 효과를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초대회장을 지낸 이병관 교수는 국내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을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보람을 찾다 지난 2015년 메르스 발발 당시 국가감엽병위기관리 전문위원회에서 횔동했던 이병관교수는 국민들의 여론을 실시간으로 살피기 위해 SNS 메시지에 주목했다. 당시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히여 SNS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하던 중 공교롭게도 메르스가 발생해, 관련된 실제 SNS 여론을 수집 분석하며 메르스 차단 노력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19 발생 때도 질병관리본부에 SNS 데이터를 꾸준히 모니터링할 것을 조언했다. 이렇게 이 교수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머신러닝이나 AI를 활용한 데이터 사이언스에도관심이많다. “일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스스로를 '과학도’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사회과학 또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접근방법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추상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지양하고 이론을바탕으로한 근거 중심의 사고를 늘 강조합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의료 서비스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이 교수는 지난해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IC-PBL(Industry-Coupled Problem-Based Learning)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조합과 커뮤니티 헬스 커뮤니케이션 협력 수업을 진행한 결과, 학생들로부터 학생자원봉사자 플랫폼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일조하는 길을 찾고 싶다는 이 교수는 조만간 안산시 내 지역별 조합원들의 건강지표를 알수 있는 ‘안산시 건강지도’ 도 만들 계획이다. 글 박영임 사진 하지권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자세히 알아보기

2020-07 21

[교수][ERICA's Keyword] 해양생의학분야 세계전문가 6위, 해양융합공학과 김세권 석좌교수

해양생의학분야 세계전문가 6위, 지지치않는 열정의 발걸음 해양융합공학과 김세권 석좌교수 "세상에는고통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공부와 연구, 업무 등 무언가에 답을 얻기까지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열정을 가지고 집중한다면 언젠가 좋은 결실을 보게 될 겁니다." 김세권 교수는 올해 전세계 과학기술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33회 국제 크와리즈미(khwarizmi) 시상식에서 ‘국제과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미국 의학 분야 논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해양생의학 연구 분야 세계전문가 6위에선정됐다. 전 세계로부터 전문성과 영향력을 인정받는 김세권 교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열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한양대 ERICA 해양융합공학과 김세권 석좌교수 Q1. 한양대 ERICA 해양융합공학과 석좌교수이십니다. 학생들과 어떤 수업으로 만나시나요? A1. 해양융합공학과는 향후 지구환경 변화의 이해와 보존, 그리고 국가 해양개발 관련 기술의 고도화계 대비해 급변하 는 해양환경의 특성을 연구히는 학과입니다. 올해 학과 신입생들에게 2회특깅을 하기로 했습니다. 1차는 ‘바다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4차 산업혁명으로 돈이 되는 해양생 물자원’을 주제로, 2차는 ‘해양생물자원을 이용한 헬스케어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예요.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해양생물자원으로부터 생리기능성 물질의 탐색 및 개발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론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Q2. 교수님께서는 지난 10년간SCI급 국제학술지에 해양생물관련 200여 편의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해양생물과관련해 어떤 것을 연구해오셨나요? A2. 중국에는 우리나라의 동의보감과 유사한『중화본초中(華本草, 13권으로구성』)라는 의약 고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예부터 중국에서 한약재로 사용된 생물자원 원료, 성상 및 작용을 다루고 있으며 이미 500년 전부터 약 200여 종의 해쨩생물이 한약재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해줍니다. 그러나 약용식물 재배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해양생물 활 용도가 저조해지면서 현재 해앙생물은 단지 10여 종 미만이 이용될 뿐이에요. 저는 『중화본초』에 한약재로 기재됐던 해양생물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양생물과 한약』 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한약 재료의 대부분을 중국에서수입하는데, 이들의 농약 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해양에 존재하는 미이용 자원인 해양 물로부터 한약 소재(바이오 신약)를 개발하고자 관련 연구를 수행하게 됐습니다. 주로 해양생물에서 새로운 천연 물질을분리해 활성을 검토하고, 그 구조를 밝히며, 작용 메커니즘을 피악해 활용방안을 모색해왔습니다. 그 결과 항암, 항노화. 항알레르기, 항에이즈, 항치매, 항당뇨, 항고혈압등 다앙한 활성을 밝혀낼 수 있었죠. Q3. 지난 2월 제33회 국제 크와리즈미 시상식에서 ‘국제과학상’을 수상하신데 이어, 해양의약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마린 드럭스(Marine Drugs, IF=4.6)』에서2019 ‘최우수논문상'을 받으셨습니다. A3. 국제 크와리즈미 상온 대수학 개념을 최초로 개척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인 페르시아 무하마드 이븐무시 알―크와리즈미(770- 840 CE)를 기리기 위해 1987년 이란 정부가 제정한상입니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후원을 통해 매년 전 세계 과학기술지를 대상으로 수상지를 선정하는 국제적인 상이죠. 이란 과학기술원의 어느 교수가 제 논문을 여러 편 읽고 관심을 두게 됐다며 저를 크와리즈미 상 후보자로 추천했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상의 기쁨을 안게 됐지요. 다른 수상자들과 달리 저는 4일간의 수상 스케줄이 따로 계획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란과학기술원, 이란 해양 및 환경 과학기술연구원에서 초청특강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또 기업(SAFF group offshore industries Co.)의 자문요청을 받아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했습니다. 『마린드럭스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게 된것은, 수산물 가공 후 버려지는 가공잔사 중 단백질 및 펩타이드를 기능성 화징품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종설논문(review paper) 덕분입니다. 세계적으로논문의 인용도가 높아 제가 수상자로 선정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온 노력과 연구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아 행복한 마음입니다. Q4. 해양바이오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A4. 해양에는 지구 전체 동식물의 80%에 해당하는 약 30만 종이 서식하고 있지만, 96% 이상이 미이용 자원입니다. 최근 선진국을 비롯해 바다와 인접한 해양국가들은 바이오 소재 개발 대상을 육상자원에서 미이용자원인 해양 생물로 이전하는 추세입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육지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해양관할권을 보유하고 있고 비교적 해양생물자원이 풍부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40여 년 전, 제가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생성과 해조류(미역, 김, 다시마)등 극히 일부만이 식량자원으로 이용될 뿐 해양생물 자원 대부분이 미이용 자원이었습니다. 해양 생물에 대한 기초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죠. 그래서 ‘해양생화학연구실'을 만들고 해양생물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해양생물자원을 통해 수없이 새로운 기능성 물질을 탐색하고 그 기능성을 밝혀왔어요. 해양생물자원을 다 방면으로 활용하려면 연구가 선행돼야 합니다. 생명공학기법(biotechnology)을 이용한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라, 이를 극복하고자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꾸준히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 김세권 교수는 올체 제3회 국제 코와리즈미 시상식에서 '국제과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미국 의학 분야 논문펑가기관으로부터 '해앙생의학 연구 분야 세계전문가 6위'로 선정됐다. Q5. 글로벌 학술정보 기업이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 1% 과학자'로 5년 연속 선정됐고, 지난 3월에는 미국 의학 분야 논문평가기관으로부터 '해양생의학 연구 분야 세계전문가 6위(Top 0.0075%)로 꼽히셨습니다. A5. 학자의 의무 세가지를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며 교수 생활을 해왔습니다. 첫째,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하고 둘째,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하며 셋째, 연구 결과가 인류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지금까지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몰입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게 됐습니다. Q6. 영어로 써진 해양바이오 관련 전문서적 40여 권을 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6. 1999년 캐나댜에 있는 메모리얼내학{Memorial Universtiy)에 객원교수로 있을 당시, 편집자로서 60여 권이상의 책을 출간하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를 알게 됐습니다. 제 연구 분야에 관해 공동편집자로 책을 출간할 것을 제의했는데,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혼자서 출간해봐야겠다 마음 먹었죠. 다행히 해외출판사에서여러 번 출판계획서를 심사한 경험이 있어, 출판계획서를 미국의 유명 출판사인 씨알씨 프레스(CRC press)에 냈고 첫 영문 전문서적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자신감이 생겼고,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요청을 받아 어느새 40권 이상을 출간하게 됐지요. Q7.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연구와 논문 발표, 전문서적 출간까지매 진해오셨습니다. 교수님만의 특별한 비결이있으신가요? A7. 항상 능력이 부족함을 생각하며 누구보다도 노력하고 몰입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무엇이든 용기 있게 시도하려는 자세를 갖추게 됐어요. 사실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영문 전문서적을 발간히는 데는 업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해냈죠. 세상일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Q8. 앞으로해양융합공학, 해양바이오 분야가 미래 사회에 중요한 위치를차지하게 될까요? A8. 앞으로 바다 환경을 관리하고 해양자원을 보호하며 이것을 인류에게 가치 있게 활용하려면 종합 과학적 접근이 필요해요. 때문에 해양융합공학은 앞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또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리에서는 특히 해양생물자원을 활용하는 해양바이오산업 등이 국가의 신동력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됩니다. Q9. ERICA구성원과 후배연구자들에게 ‘열정’에 대해 조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9. 어느 작가가 제시한, 현대인이 갖춰야 할 행복의 4가지 조건이 생각납니다. 첫째는 어학 공부, 둘째는 전문지식 쌓기. 셋째는 악기 다루기. 넷째는 스포츠 즐기기였죠.이 행복의 조건 4가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고통과 열정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no pain, no gain(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의 교훈이죠.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고, 무언가에 답을 얻기까지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더 빨리 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기술혁신형 기업에서 다양한 성장의 기회가 열릴 겁니다. 기술혁신에는 창의적인 연구개발이 필수입니다. 그러니 창의적인 연구수행 능력 배양에 정열을 쏟아야 해요. 그것만이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마린드럭스 '2019최우수논문상' 김세권 석좌교수와 ‘해양생의학’ 해양생의학은 해양생물자원으로부터 얻은 생리기능성 물질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을 탐구하는 분야다 세계적으로 손꼽 히는 해양생의학 분야 전문가인 김세권 교수는 항암, 항노화, 항치매, 항비만, 항당뇨 등 해양생물자원의 다양한 효과를 밝히는 연구를 이어왔다. 최근 해양의약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 『마린 드럭스」로부터 2019 최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진행 김현지 자료/사진 김세권 교수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 ERICA(하이에리카)'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HY ERICA(하이에리카) 2020년 여름호(통권 제95호) 보러가기 ▶[[한양위키]]에서 'HY ERICA(하이에리카)' 자세히 알아보기

2020-06 15

[동문][사랑한대] 우리 3대가 모이면? 시대를 아우르는 한양 동문회!

▲(왼쪽부터) 한윤재 학생(전자공학 20), 한상준 동문(전기공학 56), 한형섭 동문(전기공학 87) 우리 3대가 모이면? 시대를 아우르는 한양 동문회! 간혹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한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는 있지만, 3대가 나란히 같은 대학 출신인 경우는 드물다. 한상준 동문, 한형섭 동문, 한윤재 학생 가족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귀한 케이스이다. 올해 한윤재 학생이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녀가 모두 한양의 동문이 됐다. 한양의 꿈 안에서 뭉친 3대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소중한 인연, 특별한 필연 올해 한양대는 특별한 새내기를 맞이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인이 된 한윤재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56학번 한상준 동문과 87학번 한형섭 동문, 그리고 20학번이 된 한윤재 학생. 이들 3대는 같은 한양대 동문일 뿐 아니라 같은 전공 선후배 사이가 됐다. 가족 3대가 같은 대학, 같은 전공 동문이 된다는 것은 진귀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손녀가 한양대 전자공학부에 입학하게 됐다고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아들에 이어 손녀까지 저와 함께 한양대 일원이 되 다니 참 감사한 일이죠. 의대나 법대를 제외하고 기술계통에서 같은 대학, 같은 과를 3대가 졸업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지 않을까요?” 한상준 동문은 본인의 뒤를 이어 걷는 자손들의 모습에 뿌듯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늘 3대가 동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뤄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상준 동문은 기쁜 마음으로 주변에 자랑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한윤재(전자공학 20)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같은 대학에 입학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늘 전기나 전자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여러모로 한양대 공대가 우수하다 보니, 어느새 한양대 전자공학부 입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한윤재 학생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입시 준비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한양대는 이미 친숙한 곳이었다. 평소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한양대에 대해 무수히 들어온 탓이다. 또 한양대를 졸업한 가족들을 흠모하는 마음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심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한형섭 동문일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대를 택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뭔가 만들고 조립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멀쩡한 라디오를 부쉈다가 다시 조립하기도 했죠. 그런 제 모습에 아버지께선 은근히 제가 본인의 뒤를 잇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형은 한의사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치의대에 진학하고, 저는 한양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하게 됐지요.” 한형섭 동문은 “스스로 결정한 딸과 달리, 나는 반강제였다”고 유쾌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버지인 한상준 동문은 엄하면서도 자랑스러운, 그래서 언제나 닮고 싶은 대상이었다. 존경하는 이를 따라 걷는 길은 그가 스스로 택한 필연이었다. 자랑스러운 가족의 이름으로 이들 가족과 한양의 소중한 인연, 그 출발에는 한상준 동문이 있다. 경상북도 상주의 모범생이었던 한상준 동문은 1956년에 한양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사실 당시의 한양대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이름도 ‘한양공과대학’이었고 캠퍼스에는 건물 5~6개가 전부였다. 지금에 비하면 시설도 위상도 떨어졌지만, 교수진과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왕십리에서 하숙하며 등하교하던 일과 전기과, 기계과, 토목과 등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 공부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한상준 동문은 여든세 살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과거의 시간을 또렷하게 그려냈다. 대학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그는 한양에서 채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한석탄공사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자동제어 분야를 연구했다. ▲한상준(전기공학 56)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가정이 석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자연히 연탄공장들이 큰 호황을 누렸는데, 잦은 기계 고장이 골칫거리였다. 한상준 동문은 한 연탄공장 사장의 부탁으로 고장이 나지 않는, 과부하 전에 미리 정지해 사고를 방지하는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업계 이슈가 되며 대형 회사들까지 기계 제작을 의뢰해왔다. 현 금성제어기(주)의 전신, 금성제어기제작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국내에서 자동제어 분야로는 우리의 경쟁자가 없었어요. 국내 산업발전과 함께 역동적으로 성장한 시기였죠. 회사가 안정화된 뒤로는 세계 표준에 부합하는 기술개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한상준 동문은 지금까지 연구 비용으로 1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1978년에 창업해 올해로 43주년을 맞은 금성제어기(주)는 국내외 대형 공장들의 배전반과 전기 시스템,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며 국가 산업화에 이바지해왔다. 현재는 한형섭 동문이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밑에서부터 하나씩 배워 사무, 전선, 배선, 철 가공, 조립 등 회사의 모든 업무를 경험해봤다”는 한형섭 동문은 “국내외 배전반 시장 선도를 목표로 회사의 제2 도약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한 시대의 발전을 이끈 데 머물지 않고, 대를 이어 비전을 이뤄가는 중이다. 한양의 품에서 꿈꾸다 ▲한형섭(전기공학 87) 한상준 동문은 지난해 8월 ‘제10회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상은 국가 산업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나눔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한양대 공과대학 동문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한상준 동문은 2012년부터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이어왔는데, 지금까지 2억 3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전달했다. 현재 6명의 학생에게 매월 50만 원씩 생활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놓는 학생들이 없도록 돕고 싶다는 게 한상준 동문의 바람이다.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는 말을 가훈으로 삼고 몸소 ‘사랑의 실천’을 행하고 있다. “꾸준히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신다는 것과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생각한 것보다 할아버지가 훨씬 더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윤재 학생은 “할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도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이자 딸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남에게도 행복이지만, 자신에게도 행복이 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한형섭 동문은 기회가 된다면 자신도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행보를 따라 이웃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딸인 한윤재 학생이 한양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 거창한 교육보다 평소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자녀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한양의 품에서 꿈을 키우고 이뤄낸 부모를 보며 스스로 뒤를 이어 걷는길. 한양과 함께하는 이들 가족의 올곧은 발걸음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글 김현지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여름호(통권 제25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사랑한대 2020년 여름호(통권 제254호) 보러가기

2020-04 24

[동문][동행한대] 장재영 동문, 기부는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기쁨입니다. (2020년 봄호)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천천히, 그렇게 올곧고 바른 마음으로 이어갈 터...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스승의 참 모습을 그대로 닮은 제자.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는 그 가치와 마음을 이어받아 지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용도의 발전기금 약 6,000만 원을 모교에 기부해왔다. ‘한양대’인 모교를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회사명처럼 여전히 순수하고 푸르른 ‘청춘’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를 참된 기쁨으로 느끼는 장재영 대표이사는 그만의 소신으로 천천히 아름답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Q1.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용도의 발전기금을 기부하셨는데요. 어떤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A1. 전임 총장이셨던 이영무 교수님이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지요. 이 교수님이 2012년 9월 <경암 학술상>을 수상하시면서 수상 상금 2억 원 전액을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을 보고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수님과 상의하여 제가 배운 것과 연계해 모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후진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올해 2월에는 화학공학과 학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2,000만 원을 약정했지요. 시험기간 중에 아르바이트로 미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매년 500만 원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Q2. 혹시 다른 기부에도 참여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A2. 이영무 교수님이 부총장으로 재임 시, 에너지공학과 학부 학생들이 <적정기술연구회>를 만들어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멘토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식수가 좋지 못한 환경에 있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적정기술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적은 자본, 비교적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좋은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가 있지요. 그것을 계기로 무동력 마을 정수장치를 개발하였고, <굿네이버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등을 통해 제가 보유한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궁리하며 찾아가고 있습니다. Q3.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다소 위축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A3. 기부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은 선입견 아닐까요? 서로 칭찬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사회 자체가 건강하고 구성원이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국가를 비롯한 공적인 기관을 통하지 않는 직접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기부란 우리 모두의 공동체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며 구성원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부와 관련된 원칙을 세웠습니다. 강요에 의한 기부보다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 즉 기부자가 기부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교발전을 위한 기부는 모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모교인 ‘한양대’가 저의 ‘정체성’입니다. 특히 뉴스나 미디어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 글로벌 시대의 리더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양대의 기사를 접하거나 국내를 비롯해 외국에서 유능한 학생들이 오고 싶어하는 배움의 터전이 제 모교라는 생각을 하면 한양인으로서 자부심뿐 아니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공학도로서 이렇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바로 모교에서의 배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Q4. 한양대의 든든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A4. 저는 공과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지난 1995년 11월에 화학공학과와 통합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각각의 동문회도 합쳐져서 ‘화공계열 총동문회’로 운영되고 있지요. 앞으로도 ‘화공계열 총동문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요즈음 주위를 보면 후배들이 졸업 후 학교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큰 업적을 이루고 사회에 기여를 한 많은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교류해 함께 성장하며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양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나이 많은 선배에게도 서슴없이 “선배님!”하면서 다가오기를 희망합니다. Q5. 퓨어엔비텍. 회사명에서부터 깨끗하고 정직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퓨어엔비텍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A5. 퓨어엔비텍은 멤브레인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학원 석사 논문이 바로 회사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환경분야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비롯, 바이오 분야 및 이차전지용 소재 등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양’의 이름과 자부심으로 누구보다 한양을 사랑하는 장재영 대표이사. 그런 마음으로 그는 오늘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

2020-04 24

[동문][동행한대] 이홍기 동문, 우리의 삶도 예술도 함께 나누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2020년 봄호)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우리의 삶도 예술도 함께 나누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약자를 배려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 아름다운 기부문화의 기준 아닐까요?" 커다란 거목의 나이테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자신이 걸어 온 인생의 향기와 흔적은 비로소 겹겹이 쌓여 하나씩 주름을 만들어간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지난해 5월, 모교 경영대학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한 그는 다만 신이 주신 것을 기쁨으로 함께 나누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사랑하는 예술처럼, 아름다운 색을 지닌 나눔과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한양인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더 성숙한 기부문화로 성장하길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접했습니다. 우리 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몇 평 아파트와 자동차에 의해 분류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보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이나 선진국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들의 성숙한 사고와 문화의식을 말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중산층의 기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단다. 과연 나 자신은 얼마나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약자를 배려하며 함께 나누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홍기 회장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봉사를 하는 것이 진정한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 가짐은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 익혀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부 문화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성장하고 있지만, 좀 더 성숙한 문화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파트의 평수와 자동차가 중산층의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나는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과연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아름다운 기준 말이에요.” 서로의 꿈을 이뤄가며 감동을 나누다 이유 있는 고집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로지 물류산업으로 한 우물만, 한 길만 꾸준히 걸어 온 이홍기 회장은 기업의 외형적인 성장보다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 1989년, 골드라인 금속공업㈜으로 첫 출발을 한 골드라인의 의미는 ‘값어치 있는, 귀중한 직업’을 뜻한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근무 했을 때 그들의 선진 물류를 보고 놀랐습니다. 선진국에서는 파렛트를 사용해서 효율적인 생산활동이 이뤄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도 물류표준화를 제안했고, 결국 서로가 윈윈하며 고객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골드라인은 국내 최초로 물건을 운반하는 파렛트 시대를 열며 회사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골드라인의 기업 마인드는 ‘고객 감동, 물류 혁신’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홍기 회장의 마음 속에 이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단다. “물류 절감이 고객을 위한 것이 되었고, 고객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과연 나 자신은 기쁨이 있었고, 감동했었나? 직원들도 함께 성장하고 기뻐했을까? 그래, 내 꿈만이 아니라 직원들의 꿈도 함께 이루어주자.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달리 보면, 오너 입장에서는직원들도 제게는 소중한 고객이니까요.” 그런 고민 끝에 골드라인의 경영철학은 ‘꿈을 이루는 창조기업’으로 바뀌었고, 이홍기 회장과 직원들은 세상을 항해하는 멋진 꿈을 꾸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자신의 기쁨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기부 아침에 회사로 들어서면, 이홍기 회장은 조금은 특별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복도를 지나 사옥에 입주해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인사하고 작품을 둘러본다. “인생을 예술처럼 사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 입니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많은 작가 분들과 예술인들이 제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만 오히려 그분들 덕분에 감동을 받고 기쁨을 느낍니다.” 운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회장의 남다른 지역사랑과 미술사랑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하나님을 믿고 봉사를 하면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봉사와 기부가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알게 되었지요. 어차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아깝지가 않아요. 기쁜 마음으로 남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지요.” 나눔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기쁨이 생기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부다. 종교가 다르고, 신앙의 원천이 다르더라도 자신만의 철학과 믿음을 지켜가면서 약자와 함께 나누는 것. 바로 올바른 ‘나눔문화’로 가는 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기부철학인 이홍기 회장. 그는 이처럼 사회에 대한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 “뒤돌아보니 정작 저와 인연을 맺은 모교인 한양대에 가장 늦게 기부한 것을 알게 되었지요. 조금 더 빨리 봉사하고 기부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요.” 해외 명문 대학들이 후원자들의 후원과 기부금에 의해 운영되는 문화가 새삼 부럽기도 하다는 이홍기 회장은 그런 이유로 산학연 모두가 융합하고,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경영대학의 발전을 위해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전기금을 기부하면서 제 모교인 한양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양대와 훌륭한 동문, 후배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모쪼록 한양인 모두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눈다면 한양대가 더 크게 성장하고, 재정적으로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경제 리더로, 한양발전후원회 위원으로, 다양한 곳에서 나눔의 기쁨과 열정으로 인생의 나이테를 완성해가는 이홍기 회장. 그의 삶이 유독 예술처럼 아름다운 이유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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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동행한대] 오충근 동문, 기부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달란트입니다. (2020년 봄호)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기부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달란트입니다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청량하고 맑은 사람. 오충근 동문을 본 처음 느낌이 그랬다. 자신이 평범하기에 모든 일에 열심이라는 그는 무대에서는 반짝이는 열정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따뜻하다. 매 학기 학과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150~200만 원을 모금해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독문과 동문들의 모임에서 겸손하고 소신 있게 책임을 다하는 오충근 동문. 이미 그는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달란트’를 함께 나누고 있다. Q1. 독문과 동문들 모임에서 자발적으로 학과 장학금을 정기적으로 모금해 기부 중이신데요. A1. 제가 재학 당시 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때의 경험은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조금은 가까이에서 친구와 학우들의 일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안타깝게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장학금이었습니다. 좋은 취지의 장학금들이 있었지만, 행정심사나 서류적인 부분의 이유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선배, 후배, 동기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곤 했습니다. 그때 타 학과에는 동문회에서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공익근무를 할 때 주변 선배, 동기들을 한 두 명씩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동문장학금입니다. 그 이후에도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 그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동문장학금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Q2. 독문과 동문들 모임의 구성원 소개와 어떤 식으로 교류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A2. 서로의 맡은 일이 있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특별한 모임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장학금 모금시기나 현황보고시기에 문자와 메일을 통해 연락드리는 정도로 교류하고 있어요. 구성원은 학창시절 가깝게 지내던 분들과 동문 장학금의 필요성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주변사람들에게 권유해 주시면서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었어요. 독문과는 인원이 많지 않아 재학 당시, 학생들 모두와 알고 지낼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지금까지 가까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요.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했던 동문멘토링과 홈커밍데이를 준비하면서 졸업한 선배들과도 연을 맺게 되어 이후에 동문장학금을 알리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91학번 문우식 선배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Q3. 기부하셨을 때, 그때의 소감과 경험은 어떠셨나요? A3. 장학금을 전달할 때마다 매번 뭔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신청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꿈을 접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학생들의 꿈을 이뤄가는 데에 조금 더 도움이 되어주고 싶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단이나 단체도 아닌데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그분들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꾸준히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책임감도 듭니다. Q4. 이 기부금이 모교 내에서 어떤 일에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시나요? A4. 학교에 있는 장학금제도 외에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함께 참여해주고 계신 분들의 좋은 마음이 그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5. 기부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한양인’들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A5. 주위를 살펴보면, 좋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나누고 싶은 마음’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달란트’ 같은 것 아닐까요? 다만 방법을 몰라서 그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동문장학금만큼은 자발적인 모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6. 동문님에게 ‘한양’이란 무엇인가요? A6.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는데요. 단대 학생회장 시절, 축제기간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무사히 각 학과 일일호프 준비를 마친 후, 인문대 옥상에 올라갔죠.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을 즐겁게 즐기고 있던 모습을 바라보던 장면이 저에게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한양’과 함께 했던 그 시간, 그 시절로 돌아갈 거에요. 제게 ‘한양’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니까요. 연극배우로 작은 배역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오충근 동문. 무대 위, 그곳에서 오충근 동문의 따뜻한 달란트가 더욱 더 반짝이길 그려본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