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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31

[동문][벤처한대] 사람을 구하는 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꿈 (1)

우리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물은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밖에 나가면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 나오고 집과 회사 어디에든 정수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1,000원이면 시원한 생수를 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건강한 물'이라는 단어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티크로스의 김정용 대표는 10년 전부터 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물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이어왔다. (글. 이재오 학생기자 / 사진. 하지권) 믿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없다? 2016년 여름의 핫이슈는 단연 ‘물’이었다. 재난 수준의 더위에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국내 최대 정수기 업체의 물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서 물에 대한 관심이 더 욱 높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건강한 물을 마시고 있을까?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2025년 무렵에는 지구상의 국가들 중 3분의 2 가까이가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아시아 및 유럽 국가들의 물 부족이 심각해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미국도 물 부족 국가가 된다. 수질 오염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하천과 강, 호수들이 더 이상 자연이 정화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기후변화, 운하 개발 등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매해 80만 명이 물 부족으로 죽고, 50만 명이 수질 오염으로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축복받은 나라 중 하 나다. 하지만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배수관의 문제나 사용하는 수도꼭지 등 여러 외부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매 중인 생수는 어떨까? 공장에서 출고될 때는 완벽하지만 햇빛과 만나는 순간 균이 번식하기 시작한다. 정수된 물도 마찬가지다. 저수통에 담겨 있는 순간 세균이 번식한다. 심지어 필터를 통해 나온 물에서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곁엔 믿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사라지고 있다 깨끗한 물, 안전한 물을 내 손으로 김정용 대표는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12년간 소싱매니저로 근무하면서 세계적인 회사의 제품들을 들여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물건과 담당자들을 만났다. 그만큼 많은 소비자도 접할 수 있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기업가가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거기서 굉장히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회사와 고객 간 가장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문제는 다름 아닌 ‘물병’이었다. “판매 중인 플라스틱 생수병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고 텀블러나 젖병에서조차 BPA(비스페놀A, 아주 적은 양에도 신경 발달에 문제 를 일으킬 수 있는 화합물)가 나왔습니다. 아무도 물병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거죠.” 김정용 대표는 지난 2003년부터 스테인리스 보온병, 컵, 텀블러 등의 제품을 개발해 세계의 대형마트와 전문숍 등에 공급했다. 2007 년에는 안전한 물병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스테인리스 텀블러 물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정성이 높고 친환경 재질인 스테인리스야말로 물병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8개월에 걸쳐 100만 개의 물병을 만들어 공급했다. 스테인리스 물병으로는 첫 제품이었던 만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곧이어 시장에 나온 중국산 카피 제품을 보면서 김 대표는 좀 더 제대로 된 물병, 정수까지 가능한 물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휴대용 정수기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단순히 용기로서의 깨끗한 물병과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는 정수기로서의 물병은 차원이 다른 접근이었다. 김정용 대표가 처음으로 마주한 핵심 문제는 정수 필터였다. “각종 친환경 박람회를 비롯해 정수 필터를 확인할 수 있는 관련 행사엔 모조리 참석했지만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필터는 찾지 못했습니다.” 미네랄은 살아 있고 각종 미세한 불순물과 염소까지도 제거할 수 있는 필터,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필터는 오로지 ‘숯’뿐 이었다. 그는 3년간 숯을 이용해 완벽한 필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한양대와의 연구 제휴, 각 업체 연구기관들과의 협력을 거쳐 3세대 필터를 완성했다. 꼬박 10년을 투자한 결실이었다. 그 결과 김 대표가 개발한 정수 필터는 미국 최고의 위생규격인증 제도인 NSF(National Sanitation Foundation)의 스포츠 보틀(Sports bottle)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제품이란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NSF 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3자 인증기관 중 하나다. 인증받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해 정수 필터 부분에선 손에 꼽는 제품만 등록돼 있다. 김 대표가 제작한 필터는 개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세상에 나온 휴대용 정수 기가 바로 ‘리퓨리(RIPURI)’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 아름다운 손길 김정용 대표는 휴대용 정수기 사업이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2013년 기준 세계 주요 산업 시장 규모 중 자동차 산업이 1,640조 원, 물 산업이 564조 원을 나타냈습니다. 영국의 GWI(Global Walt er Intelligence)는 물 산업이 2015년에 1,0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봤습니다. 물 산업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거예요. 이를 감안하면 이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전조라고 해도 좋을까? 김 대표는 올해 8월 실시한 스토리펀딩에서 565%의 목표 달성을 이뤄 기대했던 이상의 후원금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텀블러와 필터를 지원하는 등 수질 오염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원조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부터는 스리랑카, 네팔,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6개 국가에 대한 공적 개발 원조도 착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처음 이 제품 을 만들기로 했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작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쁩니다. 이런 것에서 우리 제품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김정용 대표의 오랜 꿈을 응원한다. '리퓨리' A to Z What : 어떤 제품인가요? 리퓨리는 정수 필터가 달려 있는 휴대용 스테인리스 물병입니다. 400ml, 600ml, 800ml, 1리터, 1.2리터의 휴대하기 편한 다양한 사이즈를 갖추고 있으며, 12시간 보온과 24시간 보냉 기능을 함께 갖춘 550ml 진공 정수 텀블러도 있습니다. 필터는 300ml 기준으로 1,000회를 마실 수 있고 교체가 가능합니다. 또한 1리터 용량에 펌프를 구비한 ‘리퓨리 펌프(프로)[RIPURI PUMP(PRO)]’ 제품 개발에 성공, 1인 가족을 위해 전기가 필요 없고 유지 비용을 최소화시킨 반영구 적인 제품을 완성했습니다. Why: 왜 이 제품이 필요한가요? 깨끗한 물을 언제나 제공할 수 있는 물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 부족 현상과 수질 오염 현상이 가속되 고 있는 가운데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점차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수까지 가능한 보온·보냉 물병을 만들었습니다. How: 어떻게 그런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요? 스테인리스 재질의 텀블러를 제작해 내부 필터 부분에 균 억제제를 첨가한 두께 10mm 이상의 코코넛 숯(활성탄, 카본)을 블록화해 정수 기능(세균 번식 방지)과 물의 맛을 향상시켰습니다. For Whom: 누구를 위한 제품인가요? 처음에는 건강한 물을 추구하는 선진국 시장이 주요 타깃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로 출장 시 배앓이를 하고 물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오염된 물을 자주 접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이들을 비롯해 깨끗한 물이 필요한 온 세상의 사람들을 위한 제품으로 확대됐습니다. Where: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국내 인터넷 쇼핑몰 등과 자체 사이트인 리퓨리닷컴(www.ripuri.com) 그리고 서울 목동 ‘행복한 백화점’에 1차 입점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인터넷몰인 아마존과 이베이 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 및 해외 파트너십 대리점을 모집하고 있으며, 영국의 정수기 전문 유통업체인 액티브(activeflow.eu)와도 유통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Who: 누가 이런 제품을 만드나요? 2007년 저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45년 경력의 스테인리스 금형 전문가, NSF, 포스코, 한양대학교 산업디자인 및 공과대학 등과의 협력을 거쳐 약 10년의 연구를 통해 올해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2016-10 31

[학생][동고동락] 시대의 정신을 노래하는 학생들

연극은 수많은 협업과 분업으로 탄생한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과 무대를 밝히는 사람, 무대를 밟는 사람과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 연극이야말로 각자의 노력을 합산해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전국대학 연극·뮤지컬 페스티벌인 '2016 H-스타 페스티벌'에서 한양대 연극부가 보여준 <요나답>은 바로 그러한 노력과 협업의 산물이었다. (글. 이재오 학생기자 / 사진. 하지권) ▲ 연극 <요나답>에 참여한 연극영화학과 학생들. 왼쪽부터 김로완(10), 장지은(13), 김율아(15), 한현구(16), 허재희(15), 신소현(15) 학생 2016 H-스타 페스티벌의 주인공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연극부가 전국대학 연극·뮤지컬 페스티벌인 ‘2016 H-스타 페스티벌’에서 피터 셰퍼의 작품 <요나답>으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에는 전국 65개 대학에서 85팀이 참가해 치열한 예선을 거쳐 14팀(연극 7팀, 뮤지컬 7팀)이 본선에 올라갔고, 열띤 경합 끝에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이 우승을 차지했다. 연출을 맡은 김소현 학생은 연출상까지 받으며 2관왕을 차지했다. <요나답>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형 요나답을 모티브로 쓴 희곡이다. 다윗왕가를 멸망시키려는 요나답의 계략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작품의 주요 골자다. 김소현 학생은 “2년 전에도 이 대회에 참여했는데, 그때는 기대와 달리 수상을 하지 못했다”며, “이번엔 대상과 함께 생각지도 못했던 연출상까지 받게 돼 너무나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대감독을 맡았던 장지은 학생은 “한 번 더 참여함으로써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양대 연극부가 쟁쟁한 경쟁 상대들 속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지은 학생은 “작품의 길이나 스케일도 컸지만, 철저한 준비 끝에 완벽한 무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소현 학생은 “국내에서 거의 선보인 적이 없던 작품이다 보니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느낌이 컸다”며, “방대한 내용을 경연이란 조건에 알맞게 잘 압축했고, 무대 장치나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개개인의 욕망과 비뚤어진 시선이라는 연극의 주제를 잘 표현해낸 것이 유효했다”고 전했다. ▲ 연극 <요나답>의 한 장면 완벽한 무대를 위한 6개월간의 대장정 이번 작품은 연극영화학과 연극부 학생 30여 명이 서로 부대끼며 6개월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만들어냈다. 스태프, 배우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작품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의상을 맡았던 최민욱 학생은 “의류학과 친구들을 불러서 의상 제작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모든 의상을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비즈 공예품을 옷에 하나하나 붙이는 작업이었어요. 다른 스태프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개 가까이 되는 비즈를 손수 한 땀 한 땀 붙여서 완성한 옷을 봤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암논 역할을 맡았던 박강원 학생은 공연 준비 중에 허리 부상을 당해 공연에 오르지 못할 뻔했다. 그는 “첫 공연 전날 리허설 때까지도 일어날 수 없어 이대로 공연에 못 오르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며, “기적적으로 첫 공연 시작 전에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돼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나답 역을 맡았던 오경주 학생은 3시간 내내 무대에서 열연을 펼쳐야 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실수가 나올 것만 같았어요.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관객들에게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 수상은 작품에 참여한 많은 학생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과도 같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작품이 된 것이다. “연극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불안감을 더는 계기가 됐다”는 김소현 학생의 말에 박강원 학생도 동감한다. “확인을 받고 싶었어요. 그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이 길이 맞는지 계속해서 반문하고 고민해왔거든요. 이번에 상을 받으면서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습 니다.” 연극 <보도지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다!” 연극은 실제로 누군가에겐 놀이였고, 삶이었으며, 미래였다. 시대의 정신을 노래하는 한양대 연극인들의 미래를 기원한다.

2016-10 31

[교수][시선 집중] 삶 속에서 발견을 일구는 연구자

한양대 ITBT관의 한 연구실로 들어서면 한쪽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도 있다. 책상 쪽에는 화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유전자 치료가 전문 분야인 생명공학과 이민형 교수의 연구실이다. 예술과 생명이 꿈틀거리는 이 연구실에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이민형 교수의 연구가 자라나고 있다. (글. 노윤영 / 사진. 하지권) HMGB1과의 만남 이민형 교수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유전자 치료다. 유전자 치료란 외부에서 치료용 유전자를 주입해 이상이 생긴 유전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질병에 적용할 수 있는 유전자 개발은 물론 유전자를 환부까지 전달하기 위한 전달체 개발 연구도 필요하다. 이민형 교수는 고분자 및 단백질을 전달체로 이용하고자 찾던 중 한 물질에 주목했다. HMGB1(High Mobility Group Box 1)이라는 단백질이었다. 그는 세포의 핵 안에 존재하는 이 단백질을 DNA에 결합시켜 유전자 전달체로 이용해보고자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이자경 교수와의 만남으로 그의 연구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교수는 마침 뇌졸중에서의 HMGB1의 역할을 연구 중이었다. 이민형 교수는 이자경 교수와 연구를 진행하면서 HMGB1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항염증 나노입자’ 개발이다. 급성폐손상 치료 위한 HMGB1 연구 “HMGB1이 염증 유발 인자라는 게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이에요. 그 전까지는 크로마틴 (Chromatin, 염색질)을 형성하는 단백질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죠.” 급성폐손상은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해도 호전되지 않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심장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급성으로 시작되는 폐부종을 말한다. 바이러스나 병원균 감염뿐 아니라 패혈증과 심한 외상 등으로 발병하고는 하는데, ‘급성 호흡 곤란 증후군’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HMGB1이 급성폐손상의 원인 인자로 알려지면서 이후 많은 연구가 줄을 이었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패혈증 등으로 인해 세포가 급격히 사멸할 경우 HMGB1은 다른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한다. HMGB1을 새롭게 수용한 세포는 신체의 문제를 알리고, 자가 치유를 위해 염증을 일으킨다. HMGB1 자체는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내는 알람 역할을 하므로 문제가 없지만, 이로 인해 심각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민형 교수는 2003년께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건은 HMGB1을 억제해주는 입자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입자를 폐 안에 넣으려면 크기가 작을수록 좋겠죠. 또한 폐에는 점막이 있는데, 양이온성을 띨 경우 이 점막을 통과하기 어려워요. 때문에 나노입자인 동시에 음이온성인 입자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민형 교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 HMGB1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BOX A 부분만 분리했다. 이 단백질은 양이온성을 띠고 있었기에 여기에 음이온성 물질을 붙였다. 그러고는 ‘헤파린(항응고제)’이라는 음이온성 고분자를 이용해 나노입자를 만들었다. 이 입자는 크기가 100나노미터 정도로 아주 작았으며,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처럼 분리된 BOX A를 ‘항염증 펩타이드(나노입자)’라 부른다. 이민형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은 급성폐손상 환자의 폐에 이 항염증 펩타이드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항염증 펩타이드는 쉽게 말해 단백질 신약인데 투여 방법, 인체 내 투여했을 때의 안정성, 독성 여부 등 아직 해결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안전하게 작용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요.” 인간에게도 안전하게 작용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흡입을 통해 이 항염증 펩타이드를 투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높은 치사율을 기록하는 급성폐손상도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 획기적인 이번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이민형 교수는 급성폐손상 치료제 개발에 기 여할 수 있도록 보완점을 개선해나갈 예정이다. 더불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유전자 개발과 유 전자 전달체 개발 연구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이민형 교수는 2005년 한양대에 부임했다. 학교에는 그와 같은 연구자를 꿈꾸는 제자들도 많을 터. 연구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이민형 교수는 ‘성실성’을 첫째 덕목으로 강조했다. “물론 연구가 재미있어야겠죠. 하지만 그건 아주 기본적인 거예요. 이를 바탕으로 하되 성실해야 합니다.” 연구는 숱한 실패 속에서 ‘성공’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이런 쉽지 않은 과정을 성실한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면 결코 연구자로 성장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민형 교수의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다. 성실해야 한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연구실에만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한양대에 부임했을 때부터 줄곧 아이디어가 다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죠. 보통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떠올리고는 하잖아요.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되도록 그러지 말라고 해요. 평소보다 아침 일찍 와서 연구와 공부를 하되, 일과를 마치면 남는 시간에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다니고 운동도 하라고 합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니까요.” 과천에 사는 이민형 교수는 시간이 날 때면 과천미술관에 가서 그림도 보고, 인근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소설가나 음악가들이 평소 자신의 삶 속에서 혹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얻듯 과학 연구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삶이 곧 연구, 연구가 곧 삶 이민형 교수는 연구 자세를 은사들에게서 배웠다.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에는 박종상 교수에게 성실함을, 박사후연구원(Post-Dr, 포스닥) 과정을 밟던 미국 유타대 시절에는 김성완 교수(현 한양대・유타대 석좌교수)에게 연구와 학생 교육 등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 덕분에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발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보통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단계적으로 연구를 하지요. 그게 개발이에요. 답을 정 해놓고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방식 말입니다. 물론 그런 연구도 필요해요. 그런 일만 해도 바쁠 거예요. 하지만 제 바람이 있다면 발견하는 연구자가 되는 겁니다.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몰랐던 현상이나 원리를 발견할 수 있겠죠. 그동안은 바빠서 생각들을 접어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앞으로는 새로운 현상과 원리를 통해 참신한 ‘발견’을 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샤갈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다.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푸른빛을 뽐내는 화분도 있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예술과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곳에서 급성폐손상 치료를 위한 치열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발견을 위한 아이디어 역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연구실 너머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는 삶과 연구를 분리시키지 않는 연구자이니 말이다. 연구 시간 또한 연구실에 있는 시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삶이 곧 연구이고, 연구가 곧 삶이다. 삶 속에서 발견을 일구어내는 이 연구자를 앞으로 주목해보자.

2016-10 31

[동문][선배를 만나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그는 한양대 법학과 학생이었고, 재학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우연히 접한 사법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 특채 공고가 그의 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경찰에 큰 뜻이 없었던 그는 13년이 지난 지금,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이 그를 경찰의 핵심 인물로 만든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글. 노윤영 / 사진. 안홍범, 평택경찰서)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다루는 특수수사과 TV 뉴스를 보면 세상은 언제나 이런저런 일들로 가득하다. 세상 곳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분쟁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위협을 받거나, 다치고, 때로는 죽는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건의 배후를 뒤좇으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쓴다. 경찰은 바로 그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들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 로 파장이 큰 이슈에서 특히 더 자주 볼 수 있는 이름 아니던가. 특수수사과는 이름처럼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인 곽정기 총경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수사과는 1972년 창설된 경찰청 직속 부서입니다. 예전에는 ‘사직동 팀’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특수수사과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건 20여 년 전입니다. 특수수사과는 국가나 사회 이익에 반하는 중대 범죄, 정부 기관에서 고발한 범죄, 그리고 국민・경제・보건 ・환경에 관한 중대 범죄 등을 취급하도록 규정되어 있어요. 이름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주로 다룹니다. 경찰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곽정기 총경이 거쳐 온 '특수한' 사건들 특수수사과장에 오르기까지 곽정기 총경은 어떤 일들을 해왔을까. “경찰에 들어온 지는 13년 됐습니다. 대부분 수사과와 형사과 업무였는데 치안 수요가 많은 서울, 강남, 서초, 영등포, 용산 등지에서 일했습니다.” 총경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장, 평택경찰서장, 외사수사과장 등을 거쳐 올해부터 특수수사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부임 이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정부청사를 침입해 성적을 조작했던 사건이나 학원 강사 수능 문제 유출, 고위 공직자 뇌물 등 다양한 사건을 맡았으며 현재도 많은 사건을 수사 중이다. 형사과 및 수사과 업무를 주로 맡았던만큼 그동안 살인이나 강도 등의 사건을 숱하게 겪었다. 탈북했던 황장엽 씨나 배우 박용하와 최진영, 아나운서 송지선 등 유명인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도 그가 맡았던 업무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기억에 남는 사건은 따로 있었다.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던 때 100억 수표를 위조해서 은행에서 현금으로 인출한 다음 시중에 푼 사건이 있었습니다. 40여 명을 검거했고, 그중 10여 명을 구속했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일이었죠. 흥미로웠던 건 주범이에요. 당시 사건의 설계자였는데 초등학교 학력의 50대 남자였지요. 그가 조직폭력배와 은행원, 사채업자, 위조범 등과 공모해 그 큰 사건을 터뜨렸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3년 동안 국내의 다양한 사건을 겪은 곽정기 총경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우선 대한민국은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시행되기 시작한 일명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보면 알 수 있죠.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국민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이 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거예 요. 사회 발전의 긍정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법의 시행으로 선진국 수준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안주하는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안정적인 치안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치안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곽정기 총경이 꼽은 첫 번째 요인은 효율적인 경찰 제도다. 중앙화된 국가 경찰 아래에 단일화된 강력한 치안 시스템이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밀착된 ‘풀뿌리 파출소 시스템’ 역시 지역의 치안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곽정기 총경이 꼽은 것은 112 시스템이다. “우리는 익숙해져 있어 못 느낄 수 있지만, 미국만 하더라도 우리처럼 신고 후 3~5분 내로 출동하는 경우는 없어요. 많은 나라에서 우리의 112 시스템을 부러워하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외부적인 요인들도 있다. 총기 보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오래전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세력화될 수 있는 조직폭력을 발본색원했다는 것이다. 독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총경으로 승진한 이후 그는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그룹별로 나뉘어 과제를 수행하기도 했는데, 그가 속한 조는 ‘독도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을 다루었다. 곽정기 총경은 이때 6개월 동안 독도에 대해 치밀하게 공부했다. “법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국제법 측면에서 생각했어요.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소송 대상이 된다는 가정 아래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궁금했죠. 이를 위해 섬 영유권 분쟁 관련 여러 나 라의 판례를 살폈고, 옛 문헌들도 공부했어요. 그간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동료들에게 강연을 하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평택경찰서장 시절에는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어요.” 이후 곽정기 총경에게는 ‘독도지킴이’라는 특별한 별명이 생겼다. 그는 독도를 대하는 국민의 자세로 ‘냉정’, ‘이성’. ‘적극적 관심’, ‘지속성’을 꼽았다. 감정적인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이되 적 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지 말라 곽정기 총경은 한양대 시절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학생이었다. 몸이 고달프더라도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 빈틈없이 움직였다. 기상 시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간, 쉬는 시간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낭비하고 않고 지켰다. 사법연수원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경찰 특채 모집에 응시해 결국 뽑힐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자기 관리 덕분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경찰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고, 블루오션이라 생각했을 뿐이죠. 직접 겪어본 경찰 업무는 정말 제게 잘 맞았습니다.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는지 몰라요. 제게는 아마 경찰 DNA가 있었나 봅니다.” 곽정기 총경은 경찰 업무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경찰 특채에 응시한 것’을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한양대 후배들에게 경찰직에 대한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경찰이 되려면 지적 능력이 기본인데, 제 후배들이라면 충분히 갖췄으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건강한 신체와 올바른 생각이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경찰이 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곽정기 총경은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남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강조했다. “어떤 직업이 인기 있다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생각이에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해야 행복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10~20년 후를 생각해보세요.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때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곽정기 총경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다. 대학 시절부터 철저하게 자기를 관리했듯,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는 것. 결국 해답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 곽정기 총경은 국제법 관점에서 독도를 치밀하게 공부했고, 이 내용을 나누고자 주변 경찰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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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人사이드 人터뷰] 오래도록 깊은 연기

한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해피 바이러스라는 말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이 떠올리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안다. 결혼한 지 이제 6개월, 한창 신혼 생활에 빠져있는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엿봣기 때문일까. 따뜻한 기운과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김정은 배우를 만났다. (글. 오인숙 / 사진. 하지권) 힘들지만 행복한, 배움의 기쁨 그녀는 일주일에 나흘, 한양대를 찾는다. 연극영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 3학기를 다니고 있어 평일에는 수업이 빼곡하다. 게다가 매주 목요일에는 다른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오전에는 교수로, 오후 에는 학생 신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학 교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을 터. “학점을 받으려면 성실히 다녀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뒤늦게 학업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학생들을 좀 더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였다. “성신여대에서 2년째 강의를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를 토대로 습득한 것들을 위주로 강의하고 있어요. 제가 연극이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후 작품 활동을 잠시 쉬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것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이유는 자기 발전이다. 데뷔 19년차 배우로서 이제는 작품을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에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학교에서 다시 공부하면서 제가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것들 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도 합니다. 석박사통합이 3년 과정인데, 그 안에 학위를 따는 것이 목표예요. 그래서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웃음)” 그녀는 학교와 현장이 좀 더 쉽게 소통하고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진심으로 바랐다. 배우가 학교에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 학교에 있는 이들이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좀 더 넓어지고 빨라질 수 있는 지름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뜻이다. '사랑의 실천' 앞장서는 다양한 나눔 활동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 김정은 배우는 마침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촬영을 끝내고 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 에 출연해 미혼모와 입양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실상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영화나 드라마 홍보가 아닌 비영리단체를 위해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뭘까? 그녀는 좋은 일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앞장설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제가 대한사회복지회에서 16년 동안 홍보대사를 했어요. 2000년대에 찍은 광고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멘트가 크게 유행했었어요. 당시 수많은 홍보대사 제의를 받았는데, 첫 번째로 제의가 들어온 곳이 바로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였어요. 제가 운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16년 동안 홍보대사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를 시작으로 그녀의 나눔 활동은 점점 그 폭을 넓혀갔다. 얼마 전에는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배리어프리버전(자막과 화면해 설이 포함되어 시·청각 장애인들과 비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 는 영화) 녹음을 마쳤다. 또 한양대 자선음악회 MC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연예인 봉사단체 ‘따사모’에서는 14년째 활동 중이다. “나눔 활동은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저도 같이 성장하는 것을 느껴요. 이런 활동을 함께 할 때 제가 행복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필요한 곳이 있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좋은 배우보다는 좋은 사람이 먼저 김정은 배우는 지난해 드라마 <여자를 울려>에서 억척 아줌마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로코퀸’이란 별명을 얻은 그녀에게 억척 아줌마 캐릭터가 어색하진 않았을까? “당시 제가 결혼을 안 한 상태에서 죽은 아이의 엄마를 연기한다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게 결정하진 않았어요. 사실 국내에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아요. 로맨틱 코미디물에서도 여성은 갈등을 위해 존재하는 수동적인 존재나 민폐 캐릭터가 많죠.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제가 맡은 배역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혹은 발전과 성장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시나리오를 보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어요.” 그녀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너무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몸이 가장 고생한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영화 <사랑니>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매우 순도 높게 몰입해서 찍은 작품 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이지만, 제게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처럼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영 화예요. 한창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때 탈출구가 됐던 영화이 자, 정지우 감독님과 최형인 교수님이라는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죠.” 실제로 그녀가 한양대를 선택한 데에는 <사랑니>를 만든 한양대 출신의 정지우 감독과 그로 인해 인연을 맺은 최형인 교수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말한다. 연기는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계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배우가 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다른 사람의 삶도 연기할 수 있다는 말이 절절하다. “연기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너무나 큰 협업이죠. 그래서 좋은 사람이 결국 오래도록 깊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거침없이, 편견 없이, 용기백배 도전 그녀는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 역시 짧지만 그런 고민을 한 시간이 있었다. 내가 투자하고 노력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인가에 대한 고민. 만약 지금 후배들이 똑같 은 질문을 한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네, 무조건 할 수 있어요”라고.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끈질기게 남아 있으면 결국 빛을 본다고 믿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그동안 갈고 닦고 습득한 좋은 재능들은 숨기려고 해도 물에 뜨는 기름처럼 떠올라요. 다만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저는 대중이 좋아하는 끼나 재능은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도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마치 내일밖에 없는 것처럼 힘을 잃고 속상해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인생을 넓고 길게 보고, 상처받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등 두드려주고 싶어요.” 자칭 평화주의자인 그녀는 삶에 불만을 갖기보다는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고정관념이나 편견 없이 언제든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나면 용기 있게 도전해볼 거예요. 그래서 항상 기대하고 있어요. 앞으로 또 어떤 재미있는 캐릭터와 대본을 만날까 하고요.” 그녀는 용기백배하다. 이거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겁 없이 덤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배우 김정은을 만든 힘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 배우 1997년 MBC 25기 탤런트로 입사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통해 데뷔했고, 1998년 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삭발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SBS <파리의 연인>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사랑니>·<가문의 영광>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MBC 드라마 <여자를 울려>에서 아들을 잃은 전직 강력반 여형사 출신의 여주인공으로 열연, 2015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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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기술 한양] 변화를 이끄는 공간의 완성

안기현 교수는 최근 2016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해 ‘용적률 게임’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리. 오인숙 / 사진 제공. 안기현 교수) 올해의 젊은 건축가상 수상 ‘젊은 건축가상’ 2016년 수상자로 안기현 교수가 선정됐다. 준공된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완성도, 건축과 사회에 대한 사고, 조직과 작업 방식, 변화 환경에 대한 대응 능력 등 건축가로서의 기본 역량과 잠재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이 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나라의 미래 건축 문화를 선도할 우수한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는 총 28개 팀이 지원해 3팀(5명)의 최종 수상자가 선정됐으며, 안기현 교수는 AnlStudio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대표와 함께 ‘AnlStudio’ 팀으로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심사 총평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을 창의적으로 조직하는 건축가로서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건축의 사용자 그리고 건축 생산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 모두에게 열린 플랫폼으로 확장된 영역에서 건축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 건물로, 효율성과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작은 입면의 변화를 통해 각 층별로 다양한 공간을 연출했다 ▲ 아모레퍼시픽뮤지엄에 설치했던 아트워크로, 연질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이용해 경계가 불분명한 파빌리온을 구축했다 ▲ 10평의 땅에 올린 3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 제약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 극소주택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공간과 건축 안기현 교수가 운영하는 AnL연구실에서 주력하는 연구 분야는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공간과 건축’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부분의 공간과 건축은 경제성과 효율성의 논리 아래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돼왔습니다. 쉽게는 서울 인구의 반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그렇고, 한양대 학생들이 매일 공부하는 교육 공간도 예외는 아니죠. 저희 연구실은 이런 일상 속에 결여되어 있는 여러 개인적·사회적 표현 욕구와 충족되지 못한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건축과 공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삶의 방식들을 제안해나가고 인식 혹은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환경은 지난 60년간 근대화에서 산업화 과정을 거쳐 빠르게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성장과 개발을 위해 생산성과 기능성에 집중하다 보니, 간과된 것들 혹은 편향된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 채워진 것이 많다. 동시에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건축(공간)에 대한 사회문화적 요구는 다양해지고, 그 양상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안 교수는 “AnL연구실이 많은 이용자의 인식과 일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건축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풍성한 문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 AnL연구실의 작업은 하드웨어 제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율하려면 물리적인 하드웨어뿐 아니라 내재해 있는 다양한 습성과 문화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고 과거와 현재, 지역과 전체, 이상과 현실, 개인과 집단과 같은 21세기의 공간적 조건을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탐구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AnL연구실에서 진행하는 미디어의 발달과 변화에 따른 설계 방법의 연구, 빅 데이터와 연관된 건축 환경 변화와 분석 방법에 대한연구, 디지털 툴과 구축 방법의 변화에 따른 건축 설계 및 구축 방법의 비교 연구, 스토리텔링 및 브랜딩과 연관한 공간/건축/도시설계 연구는 이에 필요한 리서치와 디자인 툴이다. 안 교수의 연구는 미래의 공간과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저희 연구실의 작업은 모범 답안을 찾기보다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해석과 다양한 해결 방안을살펴야 하기에 무엇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누적되어 새로운 프로젝트에 더 넓은 스펙트럼을 제공할 때 우리의 작업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겠죠.” 이렇게 확장된 사고가 결국 우리의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의미 있는 건축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안기현 교수가 지향하는 연구실은 좀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말랑말랑하고 다방면의 기능을 갖춘(generalist-ic) 모습이다. 일례로, 디자인만이 아닌 계획에서 시공(직접 제작하는 수작업 포함), 건축에서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설치미술, 리서치, 전시 기획)까지 참여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세는 내부만이 아닌 외부로도 향해 있다. 관련 기술자나 협업 작가 심지어 클라이언트에게도 적용된다.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아직까지는 먼 미래보다는 주변에서 가능한 모든 재원을 파악하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 역시 끊임없는 변화로 다양한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확장된 다양성으로 의미 있는 건축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안기현 교수와 AnL연구실의 의미 있는 도전이 앞으로 또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